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기다림의 시간 2

이 글은 '민들레' 75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다림의 시간 (2)


이광흠 
일요일에는 열린사회 구로시민회 사무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목사로, 평일에는 산어린이학교 방과후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깡통’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민들레] 74호에 입양에 관한 글을 썼다. coolie1@naver.com

 

우리를 찾아온 작은아이


나는 이제 두 아이 아빠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 아이는 2006년 6월 15일 한국사회봉사회에서, 또 다른 아이는 2011년 5월 9일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차례로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지난호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둘째아이로 3세나 4세인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온 녀석은 아직 채 돌이 되지 않은 딸아이였다.
 

4월 말, 급하게 전화가 왔다. “9개월 된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이 부모 쪽 처지가 다급한 것 같았다. 우리가 입양을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도 연락을 해봐야 하니 빠른 시간 안에 답을 주면 좋겠단다.
 

초등대안학교 교사인 아내는 학교 아이들과 3박 4일 들살이 중이다. 전화를 해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핸드폰으로 받은 아이 사진을 보냈다.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어려서 큰딸 하경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같이 보내기 힘들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연락을 빨리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내와 상의한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9개월 된 아이가 있는데 잠시 돌봐주실 수 있느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생각을 좀 해보시겠다고 했다. 아내는 들살이 중에 전화를 받아 더 심란한 것 같았고, 나는 나대로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에 관해 알아보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다고 한다. 아내도 고민 끝에 어린이집 등원과 관계없이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다. 모든 게 처음 생각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는 아이를 식구로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둘째 이름을 하람이라고 정했다. 너무 급박하게 입양이 결정되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머니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오셔야 한다. 간혹 내가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날에는 새벽같이 오셔야 할지도 모른다. 건강도 좋지 않으신 어머니께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만약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언제 어디로 등원시켜야 할지 또 고민이 된다.


5월 9일 오전에 하람이는 생모와 이별을 하고, 오후 2시쯤 우리를 만나게 된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아내와 큰딸 하경이가 하람이에게 전하는 말을 동영상으로 찍어두었다. 하경이를 처음 만나던 날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둔 동영상을 하경이는 무척 좋아한다. 하람이에게도 자신을 찾아나서는 가족의 기록을 보여주고 싶다.


하람이를 만나러 간다. 운전 하는 내내 가슴이 떨린다. 아내는 하경이에게 말한다. “엄마하고 아빠가 너를 처음 만나러 가던 날도 오늘처럼 떨렸단다.”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하람이를 만나러 가는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상담실에서 우리들을 처음 만난 아이가 방긋이 웃었다. 오전에 엄마하고 떨어졌을 텐데,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아이는 7월 22일 세상에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싱글벙글한다. 처음 만난 아이는 하경이 어렸을 때를 닮았다. 처음 하경이를 만나던 날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5월 11일이 ‘입양의 날’이라서 그런지 사무실이 더 바빠 보인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서류들과 하람이 생모가 남긴 편지와 물건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많이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하람이 생모가 보낸 옷들을 정리했다. 입양의 날이라고 입양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온통 시끄럽다. 아직 어린 딸을 입양 보낸 하람이  생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경이가 하람이 때문에 갈등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가 보다. 하람이를 예뻐하다가도 자기 방에 가서 한 번씩 소리친다. “엄마는 누구 엄만데? 왜 하람이만 안아주는데?” 소리치던 하경이가 자기 방 안의 또 다른 방에 들어가 앉아있다. 며칠 전 접어뒀던 텐트를 펴 달라고 해서 방에 설치를 했는데 그러기를 잘한 것 같다. 하경이는 화가 날 때마다 그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하람이는 잠을 잘 잔다. 생각처럼 많이 울지도 않는다. 원래 순한 건가, 아니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람이는 생모가 보낸 보행기에도 잘 앉으려 하지 않는다.


다음날 어머니와 이모님, 동생 내외가 집에 왔다.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오지 못하셨다. 하람이를 보고 다들 하경이 어렸을 때를 닮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연우가 하경이게 한마디 한다. “너도 이제 동생의 쓴맛을 보게 되겠군.” 점심을 먹고 어른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경이와 사촌들이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하람이는 잠만 잔다.


아내와 나는 새벽에 잠자는 아이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아이가 청각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닐까? 낮에 아이들이 그 난리를 치는데도 깊은 잠을 자던 일이나, 조금 전 하경이가 잠투정을 심하게 하는 중에도 끔쩍 않고 잠을 자는 아이를 보면서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튿날 낮에 하람이 뒤에서 손바닥을 부딪쳐 소리를 내본다.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청각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원래 순한 아이인 걸까?


호적 신고를 하며


5월 11일 ‘입양의 날’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어머니가 10시에 오셨다. 하경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수궁동 주민센터에 가서 하람이를 동거인으로 올렸다. 하람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법적으로는 우리 딸이 아닌 동거인이다. 호적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람이가 집에 오던 날, 친양자 입양에 관한 서류도 함께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하경이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하람이를 친양자입양이 아닌 특례법으로 호적신고 하기로 한 것이다.


하경이를 처음 입양하던 날에도 나와 아내는 하경이를 호적에 출생(친자)으로 올릴 것인가, 양자로 올릴 것인가 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당시에는 입양 아동이 신생아일 경우 입양 부모 대부분이 출생으로 호적에 올렸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가 신생아인 경우 아이를 출생으로 호적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큰 아이들도 얼마간의 벌금을 물고 집에서 아이를 출생했다며 에둘러 신고를 한다.


신생아를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입양 신고를 해서 호적에 올리려면 입양 대상 아동이 일가 창립을 해야 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시 복잡한 서류들을 작성해야만 한다. 아이를 출생으로 올리면 이 복잡한 과정들이 모두 생략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하경이를 출생으로 신고하지 않고 특례법에 의한 입양으로 호적 신고를 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왜 아이들을 친자로 신고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나는 그저 아이들이 생모를 찾을 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경이와 달리 하람이는 부모의 호적도 있다. 그런데 하람이를 친양자로 입양 신고를 해버리면 서류상으로 그 모든  기록이 지워지고 만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하지만 특례법으로 입양 신고를 하면 아이의 과거 기록이 보존되고 나중에 생모를 찾으려 할 때도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아이의 성과 이름은 바뀌겠지만, 언젠가 하람이 자신이 원할 때 생모를 찾아갈 수 있는 길이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원하는 것은 그냥 그것뿐이다.


하경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들살이가 강화에서 있었다. 들살이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하람이를 반긴다. 다른 사람들이 하람이를 만지려 할 때마다 하경이가 자기 동생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내 동생이라고 말하는 게 좋은가 보다. 예전에 하경이는 징검다리어린이도서관 엄마들과 아이들이 반겨주었는데, 하람이는 궁더쿵어린이집 가족들이 반겨준다. 두 녀석과 우리 부부 모두 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며칠 뒤에는 아내가 학교 아이들과 터전살이를 한다고 해서 저녁에 하경, 하람 두 녀석을 데리고 산어린이학교에 갔다. 우리 부부가 입양을 준비하는 것을 알고 있던 아이들은 하람이를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하람이를 본 아이들이 예쁘다고 난리다. 아이들에게 입양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린 셈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은 그녀가 고맙다


한국입양홍보회에 갔다가 영상 하나를 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입양 대상 아동 TV 광고’이다. 한국입양홍보회에서 만든 이 영상 속에는 아이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기관의 연락처가 나온다. 그런데 이 영상이 오해를 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아이를 매매하기 위한 영상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영상을 보며 홈쇼핑에서 상품 고르듯 아이를 골라 입양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충동구매 하듯 함부로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양은 그렇게 손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영상이 사람들에게 입양을 충동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입양을 하기까지는 여러 절차와 과정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처음으로 국내 입양이 해외 입양을 앞질렀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해외 입양을 줄이려 활동해 왔고, 매년 일정 비율을 강제로 줄여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그 부작용이 커졌다. 입양기관마다 아이들이 포화 상태가 된 것이다. 해외로 입양되던 아이들의 수를 강제로 줄였지만 그만큼 국내 입양이 늘지 않아 아이들이 넘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입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발생하는 상황을 줄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적절하게 보호하는 조치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입양 아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심하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도 그에 못지않다고 느껴져서, 나는 아이들이 잠깐 공개되더라도 그들이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5월 11일 ‘입양의 날’은 우리 사회에 입양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자 입양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정부에 건의하여 만들어진 날이다. 한편 5월 11일을 ‘싱글맘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입양은 남의 자식을 빼앗아 자기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입양 부모들도 미혼모가 자신의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아이가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낫다고 믿을 뿐이다.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한 엄마들의 결정을 아이를 버린 행위라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또 정부에서 입양을 권장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말들은 아이를 입양한 부모나 입양을 보낸 부모 그리고 입양된 아이들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부모들이 평생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이 스스로 두고두고 버림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기를 바라는 걸까? 또 상처 받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입양 부모들은?


나는 하람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준 그녀가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하람이를 낳은 엄마가 하람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겠다고 결정한 것을 존중한다. 또 입양 부모인 나는 새 가족을 만나는 설렘 속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포기한 그녀의 고통 때문에 마음이 아파다.


하람이가 집에 온지 13일이 지나고 있다. 며칠 동안 하람이가 새벽에 깨서 운다. 그동안 눌려있던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죽은 듯이 잠만 자던 아이가 이제 조금씩 울기 시작한다.


하경이는 아침마다 하람이를 끌어안는다. 하람이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언니 때문에 또 울고, 하경이는 그런 하람이가 귀엽다며 또 뽀뽀를 해댄다. 하지만 하경이는 샘도 늘었다. 엄마 아빠가 하람이만 안아준다고 자꾸 투덜댄다.


오늘 아침 두 아이가 함께 일어났다. 하람이한테 똥냄새가 난다고 하경이가 알려준다. 하람이 분유를 자기가 타겠다며 젖병에 물을 붓다가 그만 넘쳐버렸다. 분유를 젖병에 넣는다고 하다가 분유를 바닥에 잔뜩 흘리기도 했다. 하경이는 하람이를 만나 다시 성장한다.


입양은 특별한 사람들의 선행도, 사랑의 실천도 아니다. 그저 가족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일일 뿐이다. 나는 하경이와 하람이가 잘 자라서 자신을 낳은 엄마를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을 낳아 준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 때까지 나는 하람이 생모가 하람이를 위해 쓴 이 편지를 고이 간직해 둘 생각이다.


“엄마가 널 낳아도 엄마 노릇도 못했는데 정말 미안해.
 어린 나이에 널 낳아서 너가 이쁜 줄 모르고 키웠는데….
 정말 엄마가 너한테 해줄 말은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없어.
 정말 좋은 곳으로 니가 가는 거니까 거기 가서는 아프지도 말고
 사랑 가득 받고 나중에 커서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러와.
 엄마는 항상 너를 기억 속에서 지우지 않고 살 거야.
 엄마 맘 충분히 이해해줄 거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