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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9
    내가 공개입양을 선택한 이유
    깡통

내가 공개입양을 선택한 이유

세월호 때문에 무기력증에 있던 내가 네이버의 건모(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에서 명의 성인 입양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입양부모들의 글도 읽었습니다. 그러다 어떤전문가들이 워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글을 읽고,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으로 글을 올린 돌아와 글을 씁니다.

 

나는 아이를 입양한, 입양된 아이들의 아빠입니다.

 

우리 부부는 2006 6 첫째를 입양했습니다. 입양 상담을 받고 기다리다가 입양 대상 아동이 있다는 소식에 아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이를 처음만난 우리 부부는 잠이 들어있던 아이와 함께 가족이 되었습니다. 당시 공개입양을 택한 부모들도 상당수가 입양아동을 호적에 친자로 올렸었습니다. 호적상만이라도 구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아이를 입양으로 호적에 올리려 했기 때문에 아이는 위탁 형식으로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밟은 후에야 서류상 아이와 가족이 있었습니다.

 

기관에서 처음 입양을 상담하면서 우리 부부는 혈액형도 상관없었고, 단지 딸이라면 좋겠다는 의사만을 밝혔습니다. 처음 입양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첫째는 딸을 입양하고 둘째는 아들을 입양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딸을 입양했지만 현재 우리는 둘째도 딸을 입양했습니다.

 

20064월부터 6첫째를 만날 때까지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글로 적어 블로그에 올렸고, 간헐적으로 입양 가족으로서의 삶을 적어왔습니다. 입양을 하려는 자신과 아이를 입양을 했을 어떤 일들이 있을지 고민하며 적은 글들을 글을 쓰기 읽어보니 당시에 나는 첫째를 만나기 전까지 좋은 부모가 있을까라는 설램과 두려움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공개입양을 생각도 못하던 1999 스티브 모리슨(한국명 최석춘)씨와 한연희 씨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공개입양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정서에 공개입양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2014오늘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스티브 모리슨 씨와 한연희 씨를 비롯한 한국입양홍보회 초기 공개입양 부모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생각하니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아이를 입양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디에 속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2006 한국입양홍보회에 가입을 하고도 그리 크게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건모(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 만들어질 때의 이야기를 조금은 알면서도 지금까지도 건모에 깊이 몸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한국입양홍보회에서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입양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가족이 되는 하나의 방법일 다른 것이 없다고 말을 하고 싶어 지금까지 강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입양홍보회에서 반편견입양교육을 다듬는 연구위원 대부분은 강의가 입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강사인 나는 반편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분들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한국입양홍보회 연구위원들의 의견과 다른 반편견 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강사로서 강의 속에서 가질 있는 조금의 여유속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반편견입양교육을 진행하다보면 학생들은 강사가 입양한 부모라는 사실에 놀라고 좋아합니다. 그러니 입양부모가 아닌 다른 전문가들에게 반편견입양교육을 맏기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아이들과 함께 자랄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첫째를 입양 2006 입양 부모들 안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편화 아동 양육수당에 대한 것과 의료급여 1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는데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과 받을 있다면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의 충돌이었습니다. 10만원의 아동 양육수당을 받으나 마나라는 주장과 일단 10만원이라도 받고 늘려 가야 한다는 입장의 충돌은 현재의 비밀입양과 공개입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자식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일어난 충돌이었습니다. 나는 모든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개개인들에게만 짊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정부의 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의료급여 1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의료급여를 신청하자 첫째 아이 이름만 달랑 들어간 종이쪼가리가 날아왔습니다. 아이 이름만 달랑 들어간 의료급여증을 가지고 병원에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때문에 많은입양 부모들이 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고, 정부에서는 만들어 놨더니 사용도 안하더라. 불필요한 제도는 없애야 한다는 기류가 있었습니다. 한국입양홍보회에 속했던 입양부모들이 지속적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오늘과 같이 사전, 사후가 가능하고, 가족 모두가 들어간 의료급여증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부부가 아니 내가 공개입양을 선택한 이유는 거창하게 입양 문화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나와함께 살아가는 아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내가 길을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공개입양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난 주간과 세월호 소식으로 무기력해져 쓰기도 힘들어 하지만 부활의 소망을 품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8먹은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첫째 딸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2013 1 22 블로거의 동영상을 옮깁니다. 다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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