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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30
    10인 이하의 조직을 잘 이끄는 법
    깡통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랑힐 닐스툰
비룡소, 1998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비룡소에서 랑힐 닐스툰이 쓰고, 하타 고시로가 그렸고, 김상호가 옮겼다.

 

 

 

버스는 만원이어서 버스 안은 따뜻했다. 차창엔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빠는 한 아주머니 옆에 앉았는데, 그 아주머니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사내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있었다.


자리가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아빠는 신문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아이가 말했다.
“왜 그러니 얘야?”
아이의 엄마가 대답했다.
“나.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뭐니?”
“아빠에 관한 건데 ·······.”
“그래, 뭐냐니까?”
“도대체 아빠들이 왜 필요한 거예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도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웃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그 질문이 전혀 우습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이전에 설명해 주지 않은 걸 이상하게 여겼다. 아빠는 이제야 비로소 이 아이가 아빠의 존재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알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빠들은, 돈을 번단다.”
아빠가 대답해 주었다.
“그건 엄마도 할 수 있어요. 우리 집 돈은 전부 엄마가 버세요.”


“아빠들은, 자동차를 몰지.”
“그건 엄마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차를 빌리면요.”
“아빠들은, 아빠들은 말이지······· 페인트 칠을 하지.”
“그건 엄마도 할 수 있어요. 엄마는 우리 집 전체를 페인트 칠 했어요. 그리고 도배도 하고. 그리고 커튼도 다셨죠.”


“음, 음······· 아빠들은 고장난 게 있으면 다 고친단다.”
“하지만 그건 엄마도 할 수 있어요. 엄만 저기. 내 웃옷의 지퍼도 바꿔달아 주신걸요.”


“음, 음, 아빠들은 말이지, 그러니까·······.”
아빠는 안경을 벗어서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그러면 늘 생각이 정리되곤 했는데, 이번엔 그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아빠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아빠들은·······.”
아빠는 말을 더듬었다.
“뭔데요?”
아이가 물었다.
“응, 그러니까 내 생각엔 말이지······· 음.”
아빠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엄마들은 할 수 없는데, 아빠들은 할 수 있는 그런 뭔가가 있어야만 하는데·······.’


“우린 여기서 내려야 해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네.”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아주머니와 가방과 그 아이가 지나갈 수 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씩씩해야 해요, 나무 뿌리 난쟁이 아저씨.”
아이가 말했다.
“씩씩해야·······.”
아빠는 똑같은 말을 따라 해 보려고 했지만, 나머지 말들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아 버렸다. 아빠는 안경을 코에 걸고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아빠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빠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빠들이 할 수 있는 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빠의 머릿속은 완전히 텅텅 비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아빠는 내려야 할 정거장이 되면 줄을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버스 운전사가 친절하게 아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아빠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여기가 종점입니다.”
버스 운전사가 말했다.(15-19.)

 


얼마 전 하경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김장을 했다. 궁더쿵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모여 김장을 했다. 사실 아내와 내가 산어린이학교에서 퇴근을 해 도착하니 김장은 이미 끝났다.


들국화 선생님과 먼저 도착한 엄마들이 김장을 다 해 버렸다. 오전엔 아이들이 김장을 먼저 선생님들과 했고, 본격적(?)인 김장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부랴부랴 왔을 땐 이미 끝나고 뒤풀이 준비를 하거나 뒤풀이 중이었다.


김장은 엄마들의 몫이라 생각했는지 아빠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늦게 온 아빠들 중에도 근처의 다른 모임에 가고 엄마들은 한 쪽에 모여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 동안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사소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엄마들은 한 방에 앉아 육아 문제에 대해 이야기들을 했다.


아빠들은 어디에 있을까? 공동육아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저녁이었다.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에 대한 문제는 엄마들만의 몫일까? 남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민들레’라는 잡지를 읽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라는 책을 아이들과 함께 아빠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면 자신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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