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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2
    1990년 그리고 2014년
    깡통

1990년 그리고 2014년

7월 31일(목) 국립대전현충원에 들렸다.

 

군 시절 내게는 편안한 후임 병이 한 명 있었다. 나는 3월 군번이었고, 후임 병은 6월 군번이었다. 나는 포반에서 근무를 했고, 후임 병은 수송부에서 근무를 했다. 후임 병은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다니다 입대를 했고, 사단에서 체육대회가 있으면 자기가 전공하던 종목과 비슷한 씨름 선수로 파견 나가곤 했다.

 

우리는 부대에서 가끔 집합과 얼 차례 및 구타를 당하고는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조직적인 구타가 제법 있었다. 언제까지 누구 밑으로 어디로 다 모여~~

 

어느 날 6월 후임 병은 나를 붙잡고 울먹였다. 운동을 하면서 많이 맞아도 봤지만 이건 정말 억울해서 못 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사실 고참들은 쌍팔년도 보다는 편해졌다고는 했지만 우리도 꽤나 맞았다.

 

어느 날 입대한지 일주일 밖에 안 된 12월 군번이 몸에 자해를 했다. 부대는 발칵 뒤집히고, 나는 몸에 자해를 한 후임병과 함께 해병 2사단에 갔다가 그곳에서 치료가 힘들다고 해서 국군수도통합병원까지 갔다. 나는 자해한 후임 병을 제일 먼저 발견했기 때문인지 군 앰브란스를 타고 함께 움직였다. 이 사건으로 내 위 군번들은 남한산성으로 갔다. 졸지에 내 바로 위아래 군번들은 남한산성으로 간 선임 병들을 대신해서 후임 병의 군기 잡는 군번에 들어갔다.

 

군인의 길, 고참 서열 등을 후임 병들이 알고 있는지 점검하고, 모르면 식기로 한 대 줘 패는 등의 일을 군기 잡는 다고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우리 군기 당번들(식기 당번 또는 짬밥)은 후임 병들을 다 불러 모으는 일이 없었다. 그랬더니 지나가던 어떤 간부는 요즘 부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말을 던지곤 했다. 물론 고참들은 매 번 뭐라 뭐라 하면서 후임 병들의 군기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 그래야 우리가 편하다나 뭐라나. 당시 병장들은 이등병들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임 병들의 태도가 우리 눈에도 거슬리기 시작했고, 결국 12월부터 6월 군번까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고참은 후임 병들이 너무 편해서 그런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이 날 모임을 가진 군번들과 그 아래 군번들은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것이 후임 병들만의 잘못일까?

 

6월 군번이던 그 후임 병은 후임 병들의 잘못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선임 병들이 후임 병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냐며 후임 병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선임 병들이 태도를 바로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날 모였던 모두가 그 말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지켜보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판단이 된다면 그 때 다시 모여 예전 방식을 선택할지 말지를 고민하자고 하고서 흩어졌다.

 

그 사건 이 후 지금까지도 당시처럼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후임 병들을 모아 줘 패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때 후임 병들이 안 맞아서 그렇다고 판단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 그 중 몇 명은 남한산성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 날 이 후 시간이 지나 훈련을 준비하던 6월 군번 후임 병이 사고를 당했다. 후임 병이 안치되었다는 병원에 가서 시신을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나는 후임 병의 곁에 있었다. 몸만 차가운 후임 병은 내상을 입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국군 수도통합병원에서 장례 정차를 모두 마친 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갔다. 휴가를 나와 비석으로 된 묘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후임 병의 묘 자리를 보고 온 것이 1990년이니 벌써 24년 전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조화를 샀다. 하나는 6월 군번 후임 병을 위해, 또 하나는 군에서 제대를 하고 PC 통신을 하다 하이텔에서 만난 친구를 위해 샀다. 그 친구는 태백에서 목회를 하다가 2013년 사망 할 때까지 보훈 병원에서 투석을 받았다. 친구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던 날 참 많이도 울었다.

 

친구가 안장되던 날 6월 군번이던 후임 병을 찾아 볼 생각을 했는데 이름은 생각이 나는데 성을 몰라 찾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기억을 끄집어내서 결국 인터넷으로 안장 위치를 찾았는데 그 뒤로 1년이 지나 버렸다. 친구에게도 매일 갈 것 같이 말을 했는데 1년이나 지나서야 찾아봤다. 정말 나도 징하다. 국립대전현충원도 묘비가 하나 둘 계속 늘어간다.

 

그 날 오마이뉴스에서 28사단의 윤일병 기사를 봤다. 이 글을 쓰다 8월 1일 28사단의 윤일병 사건에 대한 후속 기사를 봤다. 할 말은 많은데 막상 쓰려니 허공으로 흩어진다. 28사단 윤일병 가족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단지, 6월 후임 병의 사망 소식을 모른 채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달려오셨다가 영안실 앞에서 실신하시던 후임 병의 어머니 모습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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