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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납.량.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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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납.량.특.집

“발톱은 어디에서 오는가” 탄생 비화!

(고작 이런 이야기로 이따위 진지한 제목이 생긴 것이다..)

계속 깎지도 않은 발톱이 방구석에서 나오는 게 이상해서 “어쩌면 도둑이 들어와서 발톱만 깎고 나가는 걸 수도 있다”는 추리도 해봤다. 아직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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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경제적 독립에 대한 이해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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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경제적 독립에 대한 이해와 실제

독립을 한 이유가 ‘혼자서 씩씩하게 살기’였던 만큼, 경제적 독립은 중요했다.

부모님에게 돈을 받으면 아무래도 내 씩씩함을 침해받는 일들이 생기니까.

그렇다고 주5일 같은 일에 매진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총동원해서 조금씩 돈을 벌었다.

기타수업은 그중 하나였다. 당시 오디션 프로그램의 꾸준한 인기 덕분에 기타에 대한 수요도 높았다. 급기야는 동네 세탁소에서 의뢰를 받아 수업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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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누나와 있던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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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누나와 있던 일요일

8살 어린 남동생 누리. 지금은 나보다 키도 크고

남성 청소년 특유의 무던함이 기본 태도이지만,

(게임 얘기가 아니면 반응을 잘 안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리는 나를 거의 존경(!)했다.

“발톱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1호 팬이었던 어린 누리에게

이번 화를 바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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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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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키워본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모든 동물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집에서 키웠던 동물은 물고기와 장수풍뎅이밖에 없다.

그래서 자취의 로망 중에는 애완동물(4년 전에는 이 단어가 대중적으로 문제시되기 전이었다), 특히 고양이 키우기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선뜻 키우지 못했고,

이사를 몇 번 다녀보면서 내 삶이 2년 단위로 휘청거리는데 15년이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최근엔 어떤 생명을 단지 내 삶의 위안을 위해 데려다 키운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들어 (말하자면 길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로망은 무기한 보류중이다.

그러고보니 저 달팽이는 아직 살아있으려나. 달팽이 평균수명이 얼마나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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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무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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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무거운 것들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나의 살림살이는 전기밥솥과 커피포트가 전부였다.

먼저 갖춰놔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ㅋㅋ

그래서 2주일 동안 (냉장고나 가스렌지가 필요 없는 메뉴인)오차즈케와 감자샐러드만 먹었다.

그러면서도 엄청 뿌듯해 하고, 심지어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다.

아는 어른을 통해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하면서,

이게 무척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구하는 것도 일이고, 옮기는 것도 일이고..

이번 화에는 살아가는 데에 드는 수고를 한층 깊이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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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업로드 공지:D

오랜만에 다시 블로그!
이제 매주 화요일 마다 전에 그렸던 만화를 2~3편씩 업데이트 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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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발톱은 어디에서 오는가 34화에 사용되었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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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wom 2호 인문학 수다 : "쩡열을 울린 맑스주의자"

"아무나 볼 수 있는 인문학잡지 나다wom"의 정기코너인 '인문학 수다'기사를 모아두는 곳!

[나다wom 게시판 가서 다른 글들도 읽어보기!]

 

인문학 수다: 영화, 철학, 역사, 기타 등등_ 장르는 불문. 종횡무진 수다 떤 기록들 중 재미난 것들만 특별히 엄선(!)하여 선보이는 코너

쩡열을 울린 맑스주의자

나래 | 기타를 가르치고 만화를 그리고 알바도 하며 나다 공간에 함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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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역사 강의』의 저자 한형식을 만나다!

 

음 세미나 책을 정했을 때 “제목이 ‘맑스주의 역사 강의’래. 으, 맙소사.”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막상 읽었을 때는 걱정했던 것보다 용어에 대한 설명도 쉽게 돼 있고 전체적으로 친절해서, 쩡열과 엠건과 나(나래) 셋 다 벙실벙실하면서 책이 참 재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련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같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건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됐고, 항상 이름으로만 알았던 맑스주의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래서 책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저자인 한형식 선생님을 초청하자고 했을 때엔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기대했다. 마침 가까운 동네에 있는 ‘새움’이라는 세미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한형식 선생님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20대(세 명과 40대 둘!?)들이라고 해서 그런지 꽤 기대하고 오신 듯했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넘어설 수가 없다는 거죠.”

 

리에 앉아서 서로 활동 내용과 단체 소개를 하다가 재정, 단체의 유지와 관리에 관해 얘기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유물론에 대한 강의로 이어졌다. 좀 벙찌긴 했는데 중간중간에 유물론은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신 만큼 쉽고 와 닿게 말씀해 주셔서인지 얘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이 사회구조나 삶의 토대가 된다는 이론인데, 개인적인 차원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이 어떤 수단으로 먹고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이론과 주장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론적으로는 폭력적이고 일관적인 규율화에 대해 반대하면서, 막상 폭력적이고 일관적으로 청(소)년을 비롯해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규율화하고 있는 명문대에서 강의하시는 어느 학자분이라던가. 개인의 선택이고,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자는 건 아니지만 왜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이런 현상을 문제 삼지 않고 당연하게 넘어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청소년이 게임을 많이 하게 되면 행복할까요?”

 

장 인상 깊었던 얘기는 셧다운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깊은 고민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주변의 청소년활동가 친구들이 반대운동을 해서 어쨌든 만약 내 주변의 누군가가 찬성한다고 하면 경계의 눈초리를 흘긋흘긋 보냈을 터인데, 한형식 선생님은 애초에 셧다운제에 대한 찬반 여부로 정치적 성향을 가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 잣대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갈렸을까. 

 

부분은 당파성과 이어진다고 하셨는데, 당파성은 이 주장이 누구의 이익관계와 연관이 됐는지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금융과 문화산업으로 연명을 해왔기 때문에 게임 산업에 긍정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금융과 문화산업이 진보진영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지만 마치 음모론을 듣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막상 내가 그런 식으로 어떤 사건을 볼 수 있게 되면 지금 이렇게 듣는 것만큼 재밌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렇다면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건 꼭 좋은 것일까, 청소년이 그래서 게임을 많이 할 수 있게 되면 정말 행복해질까 물어봤을 때 우리는 소심하게 “음… 쪼끔?”이라고 대답할 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그랬을 때에도 제일 좋은 것은 게임회사가 아니겠느냐고, 우리는 과연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하면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차이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현실을 인식하고 억압을 지워나가는 그 과정이 자유인 거에요.”

 

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우니까 통제할 필요도 없고, 통제하면 안 된다는 태도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어떤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제하는 장치를 자유를 위한다고 제거해도 결코 이득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현실적으로 대체할 만한 다른 규율 없이 무엇인가를 해체하려 하면 시작은 좌파가 강력한 국가주의와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거였을지 몰라도, 끝은 비슷한 흐름을 갖고 시작한 우파와 합쳐진 신자유주의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했다. 이건 아까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더 잘 모르겠는데, 어쩐지 홈스쿨링을 시작했을 때 도시의 소비적인 놀이문화를 엄청나게 잘 소화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여튼.

 

스주의에서 자유는 단지 내가 자유롭다고 선언하거나 어딘가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나를 제약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과 싸우다 스스로 자신만의 규율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소년들한테 이미 사회적으로 확정되어 있는 시스템 안에서 틈을 내 공간을 주고 멋대로 하라는 건 자유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사회의 제약 요소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자기규율화 하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자유와 규제를 딱 잘라버리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이해는 되지만 어른들이 툭하면 마음대로 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라고 하던 게 생각이 나면서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말씀을 장장 세 시간 동안 해주셨기 때문에 자른 게 많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뽑는다면, 마무리 분위기가 됐을 때쯤 쩡열이 질문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던 것. “근데 이렇게 알고도 실천할 자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한형식 선생님이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위로를 해주시다가 약속이 있으셔서 저녁도 같이 못 드시고 가셨다. 

 

놀라긴 했지만 뭔가 저게 나다가 아니었으면 가능한 상황이었을까 싶어서 재미있었다. 나다 사람들이랑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면서 나다에 사니까 이런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들을 기회가 생겨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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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여기는 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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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 여기는 내 집!?

길은 어딜가나 지긋지긋하게 잃는 편인데 이사 첫 날엔 진짜로 멘붕했다.

일본 여행가서 밤 12시에 잃었던 날 다음으로 당황했던 듯ㅋㅋ.

 

음. 매일 걸레질 하는 건 한 달 정도 갔던가?

그래도 내 공간의 힘은 참 큰 것 같다.

처음 몇 달 간은 집에 올 때마다 책임감과 무서움을 번갈아가면서 느꼈다.

...이걸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니 새삼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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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나다 여름특강 포스터 이미지

나다한테 두 번째로 의뢰받았던 특강포스터 이미지다.

이 때 특강주제는 연애. 알랭 드 보통을 패러디한,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이었다.

나다 특강포스터를 네 개 정도 그렸는데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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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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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후로 집주인 아저씨를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은혜는 그래도 가끔 집에 와서 닭도리탕도 해주고 그랬다. 비록 그 때 나는 채식을 했지만. 감자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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