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몇 권 빌려왔다.
가슴이 뛰어 죽는줄 알았다.
9년이나 인도 방랑을 한 후에야, 티벳으로 향했다고 한다.
티벳엔 절대 가지 않겠다, 던 청춘의 결심을 뒤로 하고.
몇번이나 눈을 감고 쉬었다.
후지와라는 티베트 사기꾼이라 부른다.
그는 티베트 시인이라고 부른다.
제 2장 묘음조는. 어떤 티베트 시인이 말해준, 그리고 그 시인에 대한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웃기고 슬픈 이야기.
(나는 책을 읽다가 문득 보르헤스도 그 시인을 만났었던 건 아닐까.
중국과 티벳의 항쟁때 인도로 넘어온 난민인 그는
결코 일하지 않았으며
비루한 행색으로 매일 술을 걸식하며 춤을 추고,
거짓말을 해댔다고 한다.
사내의 거짓말은 듣기 좋았다. 그의 거짓말은 타향살이 십수 년 세월 동안
좋은 맛으로 발효되어, 이제 영락없이 시였다. 같은 별 아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사내의 시가 마음에 넘쳐 흘렀다. 아무도 그의 거짓말을 탓하지 않
았다.
눈표범을 보았다.... 고 사내는 말했다. 눈표범이 산기슭에 내려와서 타오파
라는 약초를 그 우아한 이빨로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손바닥 길이만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빨은, 중국의 값비싼 도자기로 빚어진 것 같았다고. 또
은백색의 부드러운 털이 초여름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말하면서,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그 놈을 보았을 때, 이제 여름이라 산봉우리의 눈도 다 녹았는데
어째서 이런 산기슭의 타오파 밭에, 그것도 저렇게 한 부분만 눈이 남아있는지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놈에게 다가갔던 거예요."
긴장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던 그의 머리에 갑자기 다른 일이 떠올랐는지
그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이렇게 말했다.
"히초츠가 죽을 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어요!"
갑자기 튀어나온 이 말에 어리벙벙해졌지만, 그의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그의
고향 부락의 히초츠 탄두르라는 젊은 처녀가 깊은 병에 걸렸다. 그 처녀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던 그는 기꺼이 부락의 대표가 되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이름도 색도 형태도 알 수 없는 희귀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
열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오년 동안 심산 유곡을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색도 형태도 알 수 없는 약초를 어떻게 찾는가 하면,
그 부락 사원의 경당 안에 있는 낡은 약초 해설서에 그 약초 냄새가 어떤 것인지
기록되어 있어서 그 냄새를 근거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냄새가
어떤 것인가, 약초 해설서에 이르기를...
-그 냄새는, 히말라야 서쪽의 로트 산맥에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투스라는
작은 동물이 교미할 때, 수컷의 배꼽에서 나는 강한 냄새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투스라는 작은 동물은 외견상으로는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어렵다.
교미중에 각기 배꼽에서 내뿜는 서로 다른 냄새로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이
판별을 위해서는 신중하고 냉정한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
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별하는 것도, 오직 교미 전에 볼 수 있는 각 개체의
움직임과 체위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투스를 발견했다면, 즉 운 좋게
도 발정기에 있는 이 희귀한 작은 동물을 발견했다면, 교미의 정경 뿐만 아니라
시간 시간 이 두마리 동물의 이상한 동향을 철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투스라고 하는 이 극히 희귀한 작은 동물의 형태를 누가 알고 있느냐,
이전에 아무도 그런 동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이 동물을 찾아낼 수
있는가. 약초 해설서에 이르기를...
-로트 지역의 산중에서 교미중 배꼽에서 강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동물을 보았
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투스다.
또 그 약초 해설서의 결말에...
-로트 산중에서 투스의 교미를 발견한 자는 운이 좋은 자다. 그 사람은 신중하게
행운의 향기를 기억에 새기고, 약초를 찾아 다시 끈기있게 산을 걸어라.
이 '사람 잡을' 약초 해설서를 근거로, 남자는 히말라야 서쪽의 로트 산 속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투스를 발견하지만
그들이 너무 잽싸게 도망치는 바람에 다시 묘음조를 찾아 나선다.
묘음조는 절묘한 소리로 노래하는 새.
사내의 표현에 따르면, 이 세상 삼천 세계의 모든 음악, 사람의 노래,
새의 지저귐, 짐승의 포효, 자연의 소리, 종소리, 대단한 고승의 절절한
독경소리.. 그 일체의 모든 소리를 통틀어도 이 새의 소리를 능가할 수 없다.
묘음조가 울때 지상의 모든 것, 즉 인축금수에서 곤충까지 일체 중생은
말없이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흐르는 작은 강의 속삭임, 바람소리,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 그 모두가 멈추고 흐르는 구름이나 별,
떨어지는 눈과 비와 돌은 그 자리에 멎는다. 죽어가는 일체 중생의 몸 안에서
작업중인 죽음의 신조차 그 움직임을 멈추고.. 세계의 모든 것이 그 운행을 멈춘 채, 깊은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묘음조의, 그 무엇보다 존귀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귀한 작은 새가 한나절이나 계속 울다가 마침내 그 지저귐을 멈출
때, 다시 세계는 마치 태양이 우주를, 지구가 태양을, 달이 지구를, 사람이 부처를,
소가 밭을, 곤충이 꽃을 맴돌듯이, 그리고 중생이 생과 사의 바퀴를 돌듯이,
세계의 일체가 거대한 진리의 수레바퀴처럼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묘음조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서 울어보였지만,
어울리지도 않았고 얘기의 품격만 손상시켰다.
아무튼, 묘음조를 이용해서 사내는
투스의 교미중 배꼽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로트 산속을 끝없이 걸어, 3년후 드디어 약초를 발견한다.
사내 말로는 그 약초는 연꽃의 싹이었다고 한다.
"눈 덮인 산속에 연꽃이 있었단 말이오?" 취객 중의 누군가가 묻자...
남자는 약간 어색한 어조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런데, 그게, 저어... 이제 모두들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저 히말라야가 연꽃이란 것을요, 그 사실을, 그 땅에 있을 무렵에는
누구나가 알고 있었을 겁니다... 형님."
그저 넓기만 한 술집의 토방 여기저기에 드러눕거나 앉아있는 대여섯명의
취한 '의협심 강한 젊은이'들은, 사내의 이 말에 술이 깨었다. 사내를 눈여겨
보는 어떤 이의, 잔잔한 웃음을 머금은 그 눈에는 이제 생각이 담기고....
어떤 '젊은이'는 비틀비틀 일어나서 탁한 눈으로 사내의 눈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그 잔에 술을 따랐다. 술은 잔을 채우고 넘쳐 땅 위로 흘러 떨어
졌다. 또 어느 뚱뚱한 손님은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우고... 술자리를 허허로운
걸음으로 벗어났다. 초로에 접어든 한 취객의 시선은 툭 터진 지붕 너머
어둠이 깃든 동쪽 하늘로 옮아갔다. 모두들 사내의 말에 그들의 조국 티베트를,
그 어머니 히말라야를, 그 신비롭고 우아한 연꽃을 떠올렸으리라.
이 책을 쓴 후지와라는 술을 잘 못했지만
자주 그 곳에 가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술을 접대했다.
그러나 천겹의 연꽃잎으로 이루어졌다는 히말라야에서 온 시인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여느때처럼 술집-광장에 앉아 꽁술을 마시며
황금색 털을 가진 곰이 눈사태 위를 달리는 얘기를 하던 그는
곰이 뛰어오르는 흉내를 내다가 발이 미끄러져 머리를 세게 부딪쳤고
3일간이나 기절해 있다가
깨어나서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고, 언어장애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몸으로 그는 티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훨훨 떠났다.
여자들이 선물한 탁주를 오리터짜리 석유통 두개에 가득 채워서
몸 앞뒤로 매달고, 아주 기분 좋은 모습으로 동쪽으로 걸어갔다.
오늘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티벳의 소식이 심란하다.
문득, 어제 읽은 아름답고 슬프고 웃긴 문장들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줄여 쓸 재간이 없어서
이런 결과가 빚어졌군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