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름은 양정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점심시간이면 숟가락을 하나 들고다니며
애들 밥을 긁어먹었다. 그래서 별명이 꺼런(乞人)이었다.
점심 값으로는 영화잡지를 사봤는데,
아무래도 그건 스타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
어느날 밤 늦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얼근히 취해있었는데,
얼른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깜빡 졸아서 이상한 곳에서 내렸다.
주머니에 남은 돈으로 택시를 타고 연신내 근처까지 갔을때는
밤은 늦고
남은 돈으로 캔맥주 두캔을 살 수 있었다.
밤길에 쭈그려 앉아 같이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지금 이야기 하려는 그 아저씨가 등장했다.
"학생들, 젊어서 좋네 좋아."
"아저씨가 자네들 보니까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그러는데,
같이 술 한잔 하면 안될까? 아저씨가 한잔 살께, 응?"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 오히려 진솔한 이야기.
그런 관계에는 얼마나 많은 방해요소가 첩첩 산중으로 있는가!
경험이 있는 나는, 얼른 쉬쉬 피하면서
"아저씨, 저희 이것만 마시고 가야되어요. 에고 부르렁꽁깽."
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 꺼런은 그순간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 봤다. 모르긴 몰라도...
'야. 네가 그럴 줄 몰랐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껄.
그리고는 아저씨를 향해.
"그래요, 아저씨. 한잔 해요. 속상한거 있으면 같이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라고 하여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병씩 들고 계산대에 섰는데,
"그럼 얘들아 잘먹을께"
라고 해서 바로 집으로 걸음을 시작하였더니,
다시 팔을 붙잡고 맥주를 사는 아저씨.
(여기까지만 해도 내가 좀 못됐다.)
편의점 파라솔에 셋이 오순도순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뭔가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저 앞에 여자애들이 담배피고 있어서 한대 때려줄려고 했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꺼런은 나를 다시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봤다.
꺼런의 눈은...
'아. 이럴줄 몰랐다. 미안해, 털썩.'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눈빛을 교환했다.
어쩔수 없다. 살다보면.
비겁하지만.
이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구석이 많건간에.
우리는 냅다 달렸다.
나는 아저씨가 사준 반쯤 남은 맥주를 챙겨서 달렸다.
3.
마지막으로 친구를 볼 수 있는 기회라,
없는 살림에, 디디를 두고,
한국에 잠깐 들어가기로 하고,
디디는 학교 선생님한테서 돈까지 꿔 놨지만,
망설이다 위의 결정을 내리는 동안에 비행기 표가 매진되었다.
아마 꺼런이었으면,
"에이 씨,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바로 비행기 표를 샀을지도 모르겠다.
꺼런은 돈을 잘 안 갚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