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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8a4iiOnzsc

노래의 뮤비 ^^

 

8일만이네요.

 

모든 일은 지난 주 목요일 아침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 영화제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하신 분이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익명의 편지는 두 장으로 구성되어있었고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편의상 저의 실명은 하루로 쓸께요)

 

나는 중증장애남성이다.

90년대 초반 온라인 장애인동호회에서 하루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런데 이후 그녀는 동호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지체장애여성 **를 모함해서 

동호회에서 쫓아냈다.

나중에 **는 이 일로 유산까지 했다고 한다.

 

하루의 남편은 나쁜 시설장이다.

부모들로부터 돈을 빌린 후 사업이 안된다며 사라져버렸다.

이 두 부부는 장애인들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다.

하루의 이름이 이 영화제에 있는 걸 보고

하루같은 나쁜 사람이 영화제에 관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이런 편지를 보낸다….  

 

 

첫장을 보면서 저는 혼란에 빠졌는데

20대 초반에 제가 장애인 통신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로 봉사활동만 했을 뿐

그러니까 모임이 있을 때 활동보조를 하거나

일일호프가 있으면 서빙을 하는 등의 봉사활동만 했을 뿐 

동호회원들과의 교류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혼란스러웠던 건 대학을 졸업한 후의 몇년이 제게는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그 시기를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같이 지내리라 믿었던 대학시절의 사람들로부터 떠나와서

철저히 혼자 지내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이텔 한국사동호회 활동을 했었지요.

제가 한국사학 전공이라 동호회에 가입을 했고

그런데 거기서 큰 분란이 일어났는데 어쩌다보니 그걸 수습하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얼굴을 보지 않는 온라인상에서만 이뤄졌어요.

당시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제게는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었지요.

 

 

한국사동호회는 정기적으로 답사를 다녔는데

차량봉사를 해주셨던 분이 장애인동호회에서도 봉사활동을 하셔서

그 분의 소개로 장애인동호회에도 가끔 나가게 되었습니다.

20년도 더된 과거로부터의 호출은

그리고 악의로 가득찬 호출은 

너무나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침 작년에 참여했던 어떤 프로젝트에

저와 비슷한 시기에 그 동호회의 활동을 하던 분이 계셔서

그 분에게 연락을 해서 여쭤봤습니다.

그 분은 중증장애여성인데

당시에 게시판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했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활발히 활동하던 1~2년 동안만 

그 동호회에서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에

혹시 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

아니면 이름이 비슷하지 않더라고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여성이 쫓겨나는 그런 큰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아니다 였어요.

저의 이름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고

그리고 워낙 통신동호회가 분란이 많아서

자잘한 싸움이 있긴 하지만

누가 쫓겨나고 누구를 쫓아내는 그런 큰 일은

그 시절에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회원이 다 모이던 한강 오프모임에서

활동보조를 했던 저를 기억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두번째 페이지의 하루의 남편에 대한 내용.

사실 그걸 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건 명백히 사실이 아니니까요.

우습게도 저는 저에 대한 고발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있었나,라고 혼란스러워하다가

남편에 대한 고발을 보고

이것은 명백히 거짓이다, 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보다 남편을 더 믿냐고요?

아니오.

이미 우리는 저 껀으로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조사가 얼마나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지 

저희는 압니다.

 

10년 전 쯤, 남편은 장애인 사업장의 대표였습니다.

매달 월급날이 되면 장애가 있는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은 돈을 빌리러 다녔습니다.

저와, 저의 형제들도 자주 돈을 빌려줬습니다.

저희집 마이너스통장의 입출금이 가장 왕성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사업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장애인 직원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직원의 부모를 불러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성교육 이수 등등을 제안했지만

그 부모는, 특히 그 아버지는 

“우리 00이가 드디어 남자가 됐다”라고 좋아했어요.

그 직원이 그런 일을 저지른 건 처음이 아니었는데

부모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피해자의 보호자들은 가해자 직원의 퇴소를 요구했습니다.

 

가해자 직원은 퇴소를 했고

그 부모는 남편을 공금횡령, 착복 혐의로 고소를 했습니다.

남편과 시설의 직원들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회계담당 직원으로부터 

형사가 제  명의의 입금내역을 보이며 

“이 사람이 혹시 돈놀이를 한 건 아닌가?”

라고 물었다는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의 죄없음을 밝힌 후 담당 형사는 

남편 사업장의 후원자가 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 부모를 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남편은 무고죄로 고소하지 않았고

그 형사가 그 부모를 꾸짖었다는 말을 전해들었어요.

그 때 무고죄로 고소를 했어야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벌을 바라진 않지만 무고죄로 고소를 하는 그 행위가

어쩌면 결백을 입증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문은 물처럼 샅샅이 스며들어버리고

진실은 벌을 받지 않을만큼만 효력을 발휘하나 싶었어요.

 

어쨌거나 조사를 받던 그 과정은

모두의 마음에 깊은 내상을 남겼지요.

그 때 형사들이 남편에게 반복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아니 이 일을 왜 합니까?”

장애인권이나, 장애인 사회통합의 필요성 등등을 말하면

형사들은 그랬답니다.

“아니 그러니까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 그만 하시고

이 일 왜 하시는지 말씀해보시라니까요?

당신한테 뭐가 생기니까 이 일을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게 어떤 건지 알아요.

저도 2000년대 중반부터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을 열심히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써서 뽑히고 나면 돈을 받습니다.

나에겐 뜻이 있지만 동료들을 무료로 부려먹기는 싫었거든요.

기금으로 동료들 활동비를 주며 학교와 시설로 교육을 나갔습니다.

 

국내 최고의 명문이라 불리는 어떤 고등학교의 

특수학급 학생들과 교육을 하려고 했을 때

그때에 그 학교의 교장이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니, 이 일을 왜 합니까?”

교장은 저를 의심했습니다.

장비도 무료, 교사도 무료,

학교에서는 해주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저 사람들은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교장은 우리보고 “빨갱이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세상엔 우리같은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양심과 정의감을 동력으로 

꿈을 이루기위해 사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해보이는 시대 안에

우리는 서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 명문고에 가서 교육을 하려고 했던 건

지적 장애인 미디어교육이

장애학생 당사자의 자존감 향상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찍은 사진을 ok와 ng로 구분하는 그 선택이

자기결정권을 얼마나 향상시키는지를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명문으로 이름난 강남의 그 학교에서 그 성과를 알려주면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의 유용성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월급을 주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고용장려금을 받아서

다시 장애인 고용을 확대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것은

보호와 돌봄만 받던 장애인들이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일을 가졌을 때

자기 자리를 가졌을 때

그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를 

알기 때문이었지요.

저도 그건 압니다.

제가 만든 첫번째, 두번째 영화의 내용이 바로 그거였으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의 의심을 받으며

하지만 기쁘게

꿈을 가지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2013년에 삶의 기반이 다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도

우리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꿈이예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악보다는 선의로 가득차있다는 믿음

당신이 누구더라도 당신과 나의 영혼의 무게는 평등하다는 상상.

당신의 영혼이 장애나 가난이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 몫을 누리고 있지 못한다면

그 상황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남편과 편지 내용을 공유하고

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우리에게 앙심을 품을만한 사람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떠올린 사람은

2000년대 중반에 장애코드로 영화읽기 붐이 일었을 때

제 글에 태클을 거는 방식으로 자기 활동을 이어가던 사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이제 와서 이런 글을 그 사람이 보낼 이유는 없고

그 사람이 20대 초반의 통신동호회 활동을 어떻게 아는가, 였어요.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떠올린 사람은 집회나 큰 행사 때마다

이런 저런 태클로 행사를 망치는 K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냥 다 참고 외면하는데

남편은 K에게 그러지 말라고 몇 번 꾸짖었거든요.

하지만 K가 이런 문장을 구사할 것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다시 예전의 그 장애인 부모를 떠올렸는데

역시나 그 장애인 부모가 저의 20대 초반의 통신활동을 

알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저희는 아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변호사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이었는데

이런 일은 아주 많다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말래요.

그러니까 이런 논리였어요.

당신들이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세상이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은데

자기 소속도, 자기 이름도 못 밝히는 이따위 글에

신경도 쓰지 말라는 겁니다.

일단 모 장소의 CCTV 검색을 요청하고 면담은 마무리지었습니다.

 

 

편지 내용을 다시 살펴보던 저는

편지 안에 여러 영화제 이름이 섞여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또다른 영화제에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두 통이나 왔더랍니다.

영화제 대표자에게, 그리고 영화제 사무국에게.

버릴까말까 하다가 서랍에는 넣어뒀다는 그쪽 분이 말씀하셨어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두 분 기분만 안좋을 것같아서 그냥 침묵했습니다”

 

저는 여러 영화제에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에도 어떤 영화제의 심사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 얘기를 듣던 날은 200편에 가까운 영화들을 보느라

잠을 자다 말다 하던 그 즈음의 일이었어요.

심사회의가 끝나고 그 밤에 사무국장에게 그 편지를 보였습니다.

아직 그 영화제에는 편지가 안왔지만

아마도 심사결과 발표가 나고

심사위원 명단이 발표되면 아마 편지는 또 오겠지요.

 

두 개의 영화제에만 문의를 하고나서

제가 관여하는 영화제들에 문의하는 일은 그만 뒀습니다.

몹시 피로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알려주거나 

믿지 않고 그냥 무시할 거고

그 편지를 믿어서 저와 인연을 끊는다면

그들과 저의 인연이 거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사회의가 끝난 후 깊은 밤에

j감독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의 선배이며 저와 닮은 사람입니다.

명예욕 있는 인간들을 싫어하고

까마득한 후배라도 절대로 착취하지 않습니다.

내년이면 저는 독립영화감독으로 산 지 20년 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습니까.

20대에는 젊은여자애라서 착취받았고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이 집단에 들어온 후에

제가 멈추지 않았던 일은 착취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착취는 권력자만 하는 게 아니예요.

공동의 일을 회피할 때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착취자가 됩니다.

 

독립영화, 도덕성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이 장에도

착취와 갈취는 없지 않습니다.

우리 둘은 어디에서든 악역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악역전문이 되어있더라구요.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는 이유입니다.

 

편지를 보자마자 J가 피씩 웃으면서

“000네” 하는데

갑자기 모든 의문이 확 풀렸습니다.

 

저는 작년에 000와의 싸움의 전면에 있었습니다.

000와 ***가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 거의 모든 일을 했는데

000는 숟가락만 얹었으면서

그 일의 성과에 ****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단기 프로젝트에 임시로 모인 사람들이라서인지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려는 그 상황에서

저는 문제제기를 했고 ***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모임의 구성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문제제기 전담자가 되어있더라구요.

회의에 나가서 제가 이야기를 시작해도

애초에 문제를 알렸던 사람은

딴 데를 보고 있었어요.

그 때 알았어요.

아, 해결이 중요한 거지, 과정은 중요하지 않구나.

이 사람들은 까칠한 사람이라는 표딱지를 싫어하는구나….

 

모두가 침묵하던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아

올 4월초까지 노력했습니다.

일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000가 탐을 내던 성과는 그냥 그 순간에 멈춰있습니다.

000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 성과를 널리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거기에 태클이 들어왔고 그 행위의 중심에 제가 있었습니다.

20년도 넘은 저의 과거를 호출할 수 있었던 건

첫 모임에서 그 모임의 어떤 사람과 인사를 했고

000가 우리에게  서로  아는 사이인가 물었을 때

제가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이

90년대 중반의 장애인 통신 동호회라고 말했거든요.

 

마음은 가벼워졌습니다.

20대 초반의 하루는

장애인 통신 동호회에서

말없이 활동보조를 하고

행사가 있으면 접시를 나르던 사람이었어요.

글도 쓰지 않았대요.

 

그 동호회에서 제가 어땠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시절의 제가 

학생운동을 했었던 과거를,

입만 살아 있었던, 글로만 혁명적이었던 그 시절을 

부끄러워했던 것만은 기억합니다.

 

내가 아무리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루는 누군가를 모함해서

유산을 시킬만큼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나는 어떤 상황에서 말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권위주의를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나는 부당한 명예욕에 침묵하질 못합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올 4월까지의 그 일에 대해서

나 후회해, 라고 J에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어.

나는 너무 바빴어.

교통사고로 충격을 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했어.

처음엔 그냥 2주일 정도만 참여하면 된다고 해서 갔었어.

그게 해를 넘겨버린거야.

발을 빼기에는 상황이 심각했고

나까지 침묵한다면 그건 비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어.

한 번 눈을 감으면 같은 상황이 오면 또 그렇게 되겠지.

늘 그렇게 눈을 감지 않으려 노력했고 맞서 싸웠어.  상처받으며.

그런데 지금은 너무 후회돼.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했고

그렇게 실망할 상황에 처하게 된 걸

너무너무 후회했어.

결국 애초에 지키주고 싶었던 ***과도 

더이상 연락하지 않게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어…..

 

 J는 “우리는 그냥 우리가 살던대로 살면 돼”라고

정말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했어요.

맞아요. 하나마나한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

그게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됩니다.

 

10년전 남편의 일을 맡았던 형사에게 의뢰를 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사를 해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정말 000이라면

000에게는 치명적입니다.

000가 그토록 명예에 집착하는 이유는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내가 1을 하는 사람이면 1만큼 평가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함께 시작했던 사람이

5를 해서 5만큼 평가받는 것을 배아파합니다. 000는.

더 나아가서 5를 한 사람을 모함하고 욕하고 다닙니다.

000는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고

000와 함께 일을 해본 사람은 다시는 000와 일을 안합니다.

저도 다시는 000근처에도 안 갈거라고

올 4월에 모든 일을 정리하면서 다짐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그냥 변호사말대로, J말대로 그냥 살던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다만 제가 관여하고 있는 곳,

특히나 이름난 단체(검색에 걸리니까요)의 관련자들에게는

미리 말을 합니다.

이러저러한 편지를 받았고 아마 이 곳에도 올지도 모릅니다.

작가언니는, 저명한 신경정신과전문의를 오빠로 둔 언니는,

제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망상이 있는 사람인데, 망상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방이 반응하는 순간

자기가 한 말을 사실로 믿어버린다더라.

그러니 어떤 반응도 하지 말아…

 

블로그를 닫는 문제에 대해서  j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어요

블로그를 닫는 게 적절한 거니?

그 사람은 니 블로그 몰라….

 

블로그에 글을 쓸 때면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타박타박 산책을 하면서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태도로 글을 써요.

그 누군가는 나의 친구입니다.

나는 그 누군가를 신뢰하고

그 누군가 또한 나를 아낍니다.

적의에 찬 누군가의 존재를 상정한다면

블로그에 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걱정해주는 메일, 전화, 

그 마음들 잘 받았어요.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파일 정리를 하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걱정하는 당신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긴 글을 씁니다.

걱정마세요.

그냥 살아오던대로 그냥 살께요.

 

첫번째 편지를 받았을 때엔

그 적대적이고 끔찍한 말들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두번째 편지를 건네받은 후에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곧 담담해졌지만

첫번째 편지의 문장들이 정말 나를 향해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말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증오는 그만큼 깊구나.

하지만 일이 잘못된 이유는 당신한테 있는 거지 

내가 아니다.

000보다 몇십살 어린 *** 는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나의 기획이었고 나의 노력이었고 나의 성과입니다.

이 성과는 내가 가져갑니다"

그러니 000는 약이 올랐겠지요.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을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을지 상상이 됩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노력으로만 채우시기 바랍니다.

타인의 것을 훔치는 짓은 그만 하고.

물론 이 말이 그 사람에게 가닿지는 않겠지요.

 

그저 나는 살아오던대로 

그냥 살아가겠습니다.

타박타박 걸으며

걷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주저리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저는.

걱정말아요. 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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