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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이키? 아나키!</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link>
		<description>
<![CDATA[
평화적 비자본주의 세상을 향한 비폭력직접행동
]]>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dc:creator>돕헤드(mailto:)</dc:creator>
		<pubDate>Wed, 30 Jul 2008 21:20:11 +0900</pubDate>
		<image>
			<title>나이키? 아나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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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평화적 비자본주의 세상을 향한 비폭력직접행동]]></description>
		</imag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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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농성장에서</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div><img id="my_post_img4032600"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files2/138/dopehead/images/200807/300914155.jpg')" height="576" width="324" onload="setTimeout('fixImage(4032600)',300)" alt="" src="/files2/138/dopehead/images/200807/300914155.jpg" /></div>
<div></div>
<div>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하고, 전의경제 폐지를 위해 병역을 거부하고 농성을 시작한 이길준과 함께 하는 농성장의 한 때.</div>
<div>2008년 7월 29일.</div>
<div></div>
<div>밤 회의를 마치고 82cook 사람들이 갖다 준 간식거리를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뒤바뀐 현실</category>
			
			<pubDate>Wed, 30 Jul 2008 21:20:11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7</guid>
			<title>일본의 대안생리대 운동</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7</link>
			<description>
<![CDATA[
<DIV>예전 2004년 말에 일본에서 '반전과 저항의 축제'가 열린 적이 있었어요.</DIV>
<DIV>그때 일본 친구들이 한국에서도 좀 와달라고 해서 도쿄에 갔었는데,&nbsp;그 때 피자매 달거리대를 일본에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자료를 가지고 갔었습니다.</DIV>
<DIV>&nbsp;</DIV>
<DIV>일본 활동가들과는 그 전부터 교류를 하고 있었어요.</DIV>
<DIV>2003년 11월부터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고용허가제 반대 등을 내걸고 1년 넘게 농성을 할 때 피자매연대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명동성당에서 모임을 하면서 달거리대를 전시하고 판매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DIV>
<DIV>그때 일본에서 '케이(IRA의 케이와는 다른 사람)'라는 친구가 와서 피자매연대의 활동을 인터뷰해 갔는데, 그게 일본 아나키스트들이 발행하는 잡지 'Expansion Of Life' (삶의 확장)에 실리기도 했답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8577870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29116.JPG')" src="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29116.JPG" onload="setTimeout('fixImage(8577870)',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위 사진이 2004년에 발행된 Expansion Of Life 제13호입니다.</DIV>
<DIV>이 잡지 중간에 보면 다음과 같이 피자매연대 소식이 실려 있어요.</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6891356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3012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30121.JPG" onload="setTimeout('fixImage(6891356)',300)" border=0></DIV>
<DIV><IMG id=my_post_img7144789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3023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236/noG8/images/200807/260930231.JPG" onload="setTimeout('fixImage(7144789)',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이 기사는 일본 인디미디어(<A href="http://japan.indymedia.org/">http://japan.indymedia.org</A>)에도 실렸는데,&nbsp;기사내용을 요약해보면&nbsp;'피자매연대는 여성생태평화 운동 등을 하면서 이주노동자 운동이나 기타 여러 사회운동과 연대를 한다' 쯤이 되겠습니다.</DIV>
<DIV>&nbsp;</DIV>
<DIV>하여튼, 이미 피자매연대의 활동이 일본에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는 2004년 말에 반전과 저항의 축제에 참가하러 일본에 가면서 주로 각 크기 별로 달거리대를 가져가고, 기타 여러 자료들을 가져갔던 것입니다.</DIV>
<DIV>&nbsp;</DIV>
<DIV>그리고 당시 일본에 있던 아리안이라는 친구가 피자매연대의 활동을 관심을 갖고 지켜봐왔고, 홈페이지에 나온 달거리대 만드는 방법이라든가 기타 한국어로 된 자료들을&nbsp;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 활동가들에게 피자매연대의 활동과 대안생리대에 관한 정보를 더욱 널리 알리게 됩니다.</DIV>
<DIV>&nbsp;</DIV>
<DIV>도쿄에 있는 IRA(Irregular Rhythm Asylum)라는 곳은 여러 대안적 정보와 자료들을 구해볼 수 있는 '인포샵' 같은 곳인데요, 여기에 있던 사람들이 특히 피자매연대의 활동과 대안생리대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DIV>
<DIV>저는 제가 가져간 달거리대를 IRA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면서 일본에서도 대안생리대 활동이 벌어지면 좋겠다고 말을 했고, 아리안을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이 운동이 확산되게 됩니다.</DIV>
<DIV>&nbsp;</DIV>
<DIV>일본은 세계에서 일회용품의 사용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생리대 역시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많은 일본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DIV>
<DIV>대안생리대를 보급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측면을 강조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처음 시작할 때는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는 DIY(Do It Yourself) 적인 측면을 먼저 내세운 것 같습니다.</DIV>
<DIV>무엇이든 산 것보다 직접 만든 것이 더욱 정이 가고, 여러모로 더 좋기 때문이지요.</DIV>
<DIV>&nbsp;</DIV>
<DIV>그렇게 해서 IRA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면생리대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고, 직접 만들기 워크샵도 열리게 됩니다.</DIV>
<DIV>아래 사진은 얼마 전 일본에 갔을 때 찍은 것들입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8442608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0278.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0278.JPG" onload="setTimeout('fixImage(8442608)',300)" border=0></DIV>
<DIV><IMG id=my_post_img4925607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0402.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0402.JPG" onload="setTimeout('fixImage(4925607)',300)" border=0></DIV>
<DIV>&nbsp;</DIV>
<DIV>뺏지처럼 옷이나 가방에 달 수 있도록 만든 미니 면생리대도 있습니다.</DIV>
<DIV>Make The Pad (생리대를 만들자)! 라는 문구를 바느질해 넣었네요.</DIV>
<DIV>알록달록한 천을 생리대 모양으로 오려서 속을 넣고 바느질하니 참 귀엽습니다.</DIV>
<DIV>저도 친구들 선물하려고 몇 개를 구해왔습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5216452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3167.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3167.JPG" onload="setTimeout('fixImage(5216452)',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위 사진이 IRA에서 판매되고 있는 면생리대입니다.</DIV>
<DIV>중형 하나의 가격이 700엔이니까 한국돈으로 약 7천원 정도 되네요.</DIV>
<DIV>천의 색깔도 다양하고 예쁘게 만들었습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8880415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430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4301.JPG" onload="setTimeout('fixImage(8880415)',300)" border=0></DIV>
<DIV><IMG id=my_post_img8044697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4424.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60944424.JPG" onload="setTimeout('fixImage(8044697)',300)" border=0></DIV>
<DIV>&nbsp;</DIV>
<DIV>면생리대에 대한 설명과 착용법, 세탁법 등이 일본어로 소개되어 있습니다.</DIV>
<DIV>크기가 중형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아직도 대안생리대 운동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데 감동을 받았습니다.</DIV>
<DIV>&nbsp;</DIV>
<DIV>특히 일본에서는 노숙인들을 중심으로 대안생리대 만들기와 보급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DIV>
<DIV>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푸른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과 이 노숙인들과 연대하는 활동가들이 대안생리대 만들기 워크샵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DIV>
<DIV>미사코라는 분을 중심으로 대안생리대 워크샵을 통해 보급되고 있는 면생리대는, 아리안의 설명에 의하면, 단순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사각으로 접어서 사용하는 것으로서 피자매 달거리대나 IRA에서 판매하고 있는 면생리대에 비하면 약간 사용이 불편하긴 하지만, 만들기도 쉬워서 노숙인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DIV>
<DIV>&nbsp;</DIV>
<DIV>일본에서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이나 노숙인 문제가 중요한 사회운동 이슈입니다.</DIV>
<DIV>일본 정부는 주기적으로 공원에 거주하는 노숙인 텐트를 쓸어내기도 하는데요, 이런 정부의 탄압에 저항하면서 노숙인들의 인권과 삶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활동가들이 결합하고 있습니다.</DIV>
<DIV>노숙인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주기적으로 영화상영회와 음악회 같은 것을 열고 기타 모임도 개최하는데, 그 중 하나가 대안생리대 만들기 워크샵이에요.</DIV>
<DIV>노숙인들과 함께 대안생리대 만들기 워크샵에 참가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노숙인 문제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정부의 탄압을 막는 활동에 연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DIV>
<DIV>&nbsp;</DIV>
<DIV>한국과 일본에서&nbsp;대안생리대 운동이 각각의 사회환경에 대응하면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DIV>
<DIV>앞으로 인권, 여성, 생태, 평화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반소비주의 운동인 대안생리대 운동이 줄기차게 벌어지고, 다른 많은 지역으로도 확산되길 기대합니다.</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category>
			
			<pubDate>Sat, 26 Jul 2008 22:02:0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6</guid>
			<title>추억의 사진 두 장</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6</link>
			<description>
<![CDATA[
<P>피자매연대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우분투 리눅스가 깔려 있는 컴퓨터에서 루드의 상상력 사진 두 장을 우연히 발견했다.</P>
<P>한 장은 고양이 페스티발에서 공연할 때 찍은 사진이고, 또 한 장은 아마도&nbsp;6월 10일 무렵 광화문 길거리 촛불집회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같다.</P>
<P>&nbsp;</P>
<P>이 사진들은 누가 찍었는지, 그리고 우분투에서 리터칭 작업은 누가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STRONG>앞으로 루드의 상상력을 좀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STRONG> 올린다.</P>
<P>&nbsp;</P>
<P align=left><IMG id=my_post_img9292421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20648186.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20648186.JPG" onload="setTimeout('fixImage(9292421)',300)" border=0><BR><IMG id=my_post_img1532097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20648258.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220648258.JPG" onload="setTimeout('fixImage(1532097)',300)" border=0></P>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뒤바뀐 현실</category>
			
			<pubDate>Tue, 22 Jul 2008 18:50:4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5</guid>
			<title>변태들의 동네, 망원동</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5</link>
			<description>
<![CDATA[
망원동으로 이사를 왔다.
도시에 살면서 동네가 맘에 들기는 처음이다.

대추리에 살 때는 마을 길목에 난 풀 한 포기까지 사랑했었는데, 그런 마음은 다시 대도시로 돌아오면서 싹 없어져버렸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그저 어서 지나가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이틀 흘려버리는 정도고, 공간에 대한 어떤 감정 같은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가슴 한 켠에 굳은살이 박힌 것처럼 딱딱해버리기 일쑤다.
망원동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예전에 수수님이 "망원동엔 (좋은 의미에서) 변태들이 많이 산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 살기 전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재래시장 골목을 다니면서, 시간 날 때 잠깐씩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자유로움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홍대 앞 같은 자유로움이 아니라 뒷골목 같은 자유로움이랄까.

또 건물들이 높지 않아서 좋다.
고층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것이 망원동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재개발로 곧 헐리게 될 아현동 같은 운명이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 '민중의 집'도 있고, 라디오를 켜면 새벽 1시까지는 마포 FM도 나온다.
난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오래된 습관 덕분인지 인터넷으로 다시 듣는 라디오는 잘 듣지 않고, 오로지 라디오를 켜면 바로 전파로 중계되는 그런 방송을 좋아한다.
마포 FM을 켜니 정통 블루스가 한 시간 연짱으로 나오다가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홍대 앞 인디씬의 이야기가 나오더니, 곧이어 언니들이 나와서 수다를 떨면서 음악 이야기며 기타 친근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라디오를 저녁 아홉시부터 켜놓고, 기타를 치면서 방송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

망원동으로 이사오길 잘했다.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Tue, 22 Jul 2008 01:26:2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4</guid>
			<title>신혼 앞길 가로막는 이명박은 물러나라</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4</link>
			<description>
<![CDATA[
<DIV>디디와 홍진의 결혼식이 있었다.</DIV>
<DIV>청계광장에서 마무리 된 웨딩 자전거 행진에다 공중캠프에서 밤새 벌어진 파티는 최고였다.</DIV>
<DIV>오랜만에 정말 신나게 즐기며 연주를 했고,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DIV>
<DIV>&nbsp;</DIV>
<DIV>이 정도 이벤트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해도 될 법하다.</DIV>
<DIV><BR><IMG id=my_post_img1568997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09359.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09359.JPG" onload="setTimeout('fixImage(1568997)',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자전거 행진을 하기 전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전거에다 구호를 적어놓고 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4949426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0005.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0005.JPG" onload="setTimeout('fixImage(4949426)',300)" border=0></DIV>
<DIV>&nbsp;</DIV>
<DIV>결혼식 사회를 본 무나와 함께.</DIV>
<DIV>내 구호는 '타도 신랑 신부'다.</DIV>
<DIV>꽃마차 위에 올라 내 뒤를 따라오던 디디가 이 구호를 보고야 말았다.</DIV>
<DIV>&nbsp;</DIV>
<DIV>아규와 지음이 포스를 발휘해 신부와 신랑을 태운 꽃마차를 끌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STRONG>'신혼 앞길 가로막는 이명박은 물러나라'</STRONG>고 목청을 높였다.</DIV>
<DIV><BR><IMG id=my_post_img5320849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321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3211.JPG" onload="setTimeout('fixImage(5320849)',300)" border=0></DIV>
<DIV>&nbsp;</DIV>
<DIV>공중캠프에서 열린 밤샘 파티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타 실력을 보여주었던 쏭의 포스가 작렬하고 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4782826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436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4361.JPG" onload="setTimeout('fixImage(4782826)',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쏭의 자전거에 달려 있는 구호.</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1950984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5112.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5112.JPG" onload="setTimeout('fixImage(1950984)',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지선이 자전거에 매달 구호를 적고 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140249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5313.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5313.JPG" onload="setTimeout('fixImage(140249)',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이건 아마도 제프가 적은 구호인 듯. </DIV>
<DIV>결혼이 놀이 사랑 우정 꿈 삶 투쟁 모험이란 뜻인가 보다.</DIV>
<DIV><BR><IMG id=my_post_img8837890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6428.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6428.JPG" onload="setTimeout('fixImage(8837890)',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신혼 앞길 가로막는 이명박은 물러나라!</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9490453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7095.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7095.JPG" onload="setTimeout('fixImage(9490453)',300)" border=0></DIV>
<DIV>&nbsp;</DIV>
<DIV>광화문 사거리 - 안국동 - 인사동길 - 종로2가를 거쳐 청계광장에 도착한 자전거 행렬과 신혼부부를 태운 꽃마차.</DIV>
<DIV>마침 소라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서 이들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4869393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834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8341.JPG" onload="setTimeout('fixImage(4869393)',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촛불은 계속된다.</DIV>
<DIV>저들의 사랑도 계속...</DIV>
<DIV><BR><IMG id=my_post_img5026697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9081.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19081.JPG" onload="setTimeout('fixImage(5026697)',300)" border=0></DIV>
<DIV>&nbsp;</DIV>
<DIV>청계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 키스를 하기 바로 전의 홍진과 디디.</DIV>
<DIV>일생에 한 번 정도 있는 건데, 축하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6957489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20492.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20492.JPG" onload="setTimeout('fixImage(6957489)',300)" border=0></DIV>
<DIV>&nbsp;</DIV>
<DIV>키스를 하고 난 부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DIV>
<DIV>모여 있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한다.</DIV>
<DIV>&nbsp;</DIV>
<DIV><IMG id=my_post_img3890996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21256.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90921256.JPG" onload="setTimeout('fixImage(3890996)',300)" border=0></DIV>
<DIV>&nbsp;</DIV>
<DIV>마치 보름달이 뜬 것 같다.</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뒤바뀐 현실</category>
			
			<pubDate>Sat, 19 Jul 2008 21:26:0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3</guid>
			<title>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3</link>
			<description>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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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title>
<H1><FONT size=3>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FONT></H1>
<H2><FONT size=3>[기고] G8잡는 고양이들 일본에 가다 (4) -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FONT></H2></DIV>
<DIV id=meta>
<P>조약골&nbsp;http://blog.jinbo.net/noG8 / 2008년07월16일 12시51분</P>
<P>&nbsp;</P></DIV>
<DIV>약 2주일 간 일본에 다녀왔다.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렸던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는 홋카이도에서도 아주 구석에 있는 토야코라는 호수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윈저호텔이었다. 사진이나 지도로 볼 때는 몰랐지만, 그 호텔은 마치 중세 시대의 천혜의 요새를 연상시키듯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지만, 사방이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높은 봉우리 정상을 완전히 깎아 만든 곳에 모셔져 있는지라 차량이 없는 일반인들의 접근은 험한 산길을 수풀을 헤치며 올라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외진 곳에 호텔을 지은 이유는 일본에서도 돈이 매우 많은 자들이 여름 휴양지로 즐겨 찾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예쁜 토야코 호수와 아기자기한 토요우라 마을 그리고 저 멀리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드넓은 원시림의 높은 봉우리 한가운데에 휴양을 온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졌다. 바로 그곳에 이 세상에 전쟁과 빈곤 그리고 환경파괴와 차별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확산시켜온 주범들이 모인다고 들었다. 한번 가서 따져묻고 싶었다. 왜 쥐새끼처럼 그렇게 숨어서 작당모의를 하냐고 말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런 고립된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BR></DIV>
<P>&nbsp;</P>
<P>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세계로 뻗어가면서 세상의 자원을 어떻게 훔칠 것인가 모의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모임을 개최할 때마다 성난 시위대가 항상 따라붙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모임은 이제 토야코 호수 한 켠에 산을 깎아만든 윈저호텔 같은 곳에서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해 보호받지 않으면 열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09년 G8 정상회담이 열리기로 예정된 이탈리아 역시 일반인들의 접근이 무척 어려운 어느 아름다운 섬에 회담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권력자들이 세계의 민중이 연대해 펼치는 저항운동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런 사실 자체가 운동의 성과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쩌랴, 저들은 여전히 고립무원의 고도를 마다하지 않고 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니. 애초 나는 그런 곳까지 쫓아가 밥맛 떨어지는 지도자의 얼굴들 면면까지 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G8 반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본 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준비를 했고, 나는 그들의 성의에 감동을 받아 급기야 일본 입국 시 강제로 지문과 얼굴사진 등의 생체정보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결심하게 됐다. 내 삶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칠 중요한 사항을 왜 쥐새끼들 몇몇이 모여서 죄다 결정해버리느냐고 따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힘든 삶을 강요받고 있는 전 세계 민중들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함이었다.</P></DIV>
<DIV>
<DIV>&nbsp;</DIV>
<P></P>
<DIV>일본 입국은 쉽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05년 홍콩 WTO 반대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이와 관련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사람들, 즉 반세계화 운동가들, 또는 저들의 말을 빌면 요인의 신변에 위험을 끼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협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의 정보를 이미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입국을 불허하고 본국으로 추방하는 바람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대항국제포럼’에 참여해 학술활동을 하기로 한 학자들까지도 일본 공항에서 열 시간 이상씩 억류되었고, G8 반대활동을 독립적으로 기록하고 보도하기 위해 온 미디어 활동가들도 공항에 붙들려 한참을 심문을 받아야 했다. 집회에서 발언을 하기로 예정된 연사나 포럼 발표자들까지 입국을 불허하는 일본 정부의 강경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본 출입국관리소는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에게 회담 개최일인 7월 7일 이전에 일본을 떠나도록 하는 3~5일짜리 임시 체류허가증을 발급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DIV>
<DIV>&nbsp;</DIV>
<P></P>
<DIV>회담 시작 전부터 과도한 공권력의 사용으로 비판을 받은 일본은 그야말로 경찰국가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G8을 반대하는 집회와 행사를 조직하는 일본인 활동가들을 사찰하고 은근히 협박하는가 하면, 모든 집회와 행사에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불법채증을 버젓이 자행했다. 3인이 모여 촛불을 들고 간단한 집회라고 할라치면 어느새 알고 달려온 정보과 형사들이 외국인 활동가들의 신상을 모조리 파악해 향후 입국금지 자료로 활용할 터였다. 모든 집회는 3일전에 경찰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하며, 시작 시간에서부터 끝나는 시간, 장소와 참가인원 그리고 허가되는 행동과 불허되는 행동의 목록이 자세히 적힌 경찰의 방침에 집회참가자들은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행진할 때는 4열을 맞춰 행진해야 하며(군대의 사열이라고 받고 싶은 건가?), 대열 중간에 공백이 생길 경우 얼른 앞으로 달려가 메꿔야 했는데, 경찰은 보통 집회참가자의 수만큼 배치되어 바로 옆에서 같이 행진하면서 쉴 새 없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였다. 길바닥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를 적는다든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전단지를 뿌린다든가, 1차선 이상을 차지한다든가, 경찰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든가 등등 미리 경찰의 받지 않은 어떤 행동도 불허되었는데, 이를 어길 경우 현장에서 연행을 하기도 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조직에 책임을 맡은 활동가들을 찾아내 연행하여 구속을 시키는 등의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일본은 연행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도 경찰에 의해 23일까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일절 면회도 금지된다고 한다. 즉 한 번 연행되면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판사의 개입 없이 완전 고립된 상태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없으며, 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공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의 상상력이 메말라버렸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 순응하는 얌전한 시민사회의 활동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뿌리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제거하며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저항적 사회운동이 기를 펴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체제가 만들어지는지 곁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력자들은 법을 통과시키고,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기 때문에 반체제의 자유와 권리는 투쟁하면서 지켜내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체제다.</DIV>
<DIV>&nbsp;</DIV>
<P></P>
<DIV>6월 말부터 교토, 오사카, 도쿄 등지에서 크고작은 집회와 행동 그리고 대항포럼 등이 마련되었고, 7월 5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G8 정상회담을 반대하거나 문제제기 하는 모든 사람들이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총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이 약 오천 명 정도였다. 오천 명이라면 한국에서 매일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달간 일본의 시민사회와 운동권이 발벗고 나선 성과가 겨우 오천 명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볼 일이 아니었다. 사실 저항적 사회운동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한국도 1-2년 전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이나 비정규직 투쟁에 만 명을 모으기가 쉬운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촛불을 끄기 위해 모든 권력을 총동원해 만든 공안정국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만 명의 시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BR></DIV>
<DIV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align=center>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
<TBODY>
<TR>
<TD width="100%"><IMG class=ARTICLE_PHOTO height=450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3777/s130837233.jpg" width=600></TD></TR>
<TR>
<TD width=600>
<DIV style="PADDING-RIGHT: 3px; PADDING-LEFT: 3px; FONT-SIZE: 80%; PADDING-BOTTOM: 0px; COLOR: #fff; LINE-HEIGHT: 150%; PADDING-TOP: 3px; FONT-FAMILY: '돋움', Dotum; LETTER-SPACING: -0.05em; BACKGROUND-COLOR: #797979; TEXT-ALIGN: justify"><!--▲&nbsp;&nbsp;--><!-- [출처: ]--></DIV></TD></TR></TBODY></TABLE></DIV>
<DIV><BR>다양한 사람들 오천 명이 모였는데,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집회와 행진을 했다. 빨간색, 검은색, 분홍색, 흰색 등 색깔도 다양했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두드리며 행진하는 이, 얌전히 깃발을 따라가는 이, 음악에 맞춰 춤추며 가는 이, 피켓이나 허수아비를 들고 걷는 이, 경찰에 도발을 하는 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이 등 제각각으로 보이던 사람들도 ‘G8 반대’라는 구심점에 하나가 된 아름다운 투쟁이었다. 문제는 삿포로에 모인 그 사람들이 모두 토야코 호수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까지 따라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려는 골수(!)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삿포로 시내에 머물면서 포럼이나 토론회를 열거나 집회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일정을 짰고, 윈저호텔 주변에 가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대가 등을 바라지 않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운동을 해온 이름 없는 활동가들이었다. 체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일본 공산당은 삿포로 집회에 많은 당원들을 출석시켰지만 그들은 토야코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행진에서는 큰 깃발을 들고 많은 수가 참여해 조직력을 과시했던 어떤 노동조합도 회담장 근처에 가서 활동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큰 단체 소속이 아닌 사람들, 또는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 활동가들, 국제연대라는 이름의 상호부조 이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갖고 있지도 않은 풀뿌리 지역 활동가들만이 삿포로에서도 차로 3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토야코 호수 주변에 모여들 고민을 하고 있었다.</DIV>
<DIV>&nbsp;</DIV>
<P></P>
<DIV>회담장 주변은 온통 산지여서 그곳에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머물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애초부터 일본 활동가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듯 싶다. ‘천 명’ 정도가 함께 머물면서 낮에는 집회를 하고 밤에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무리 뒤져봐도 토야코 호수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회담장에서 가깝게는 10km 이상, 멀게는 30km 이상 떨어진 산 속의 몇몇 캠프장에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우라 캠프와 소벳츠 캠프 그리고 다떼 캠프 등 세 곳이 선정되었다. 이 중 토요우라 캠프는 회담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규모도 가장 큰 캠프장으로 최대 2천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삼림캠핑장이었다. 기본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위 전력을 가진 국제 활동가들은 대부분 토요우라 캠프로 가게 되었고, 일본 활동가들은 주로 소벳츠 캠프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목초지에 임시로 마련한 다떼 캠프에도 활동가들이 들어가 총 세 곳에서 회담장을 포위, 압박한다는 집회 전략이 짜여지게 되었다. 이 전략은 토야코 호수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많을 경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일본 전역의 모든 경찰이 홋카이도로 총집결한 상황에서 회담장 근처에 어떤 압박이라도 가하기 위해서는 반대행동에 참여한 사람이 최소한 몇 천 명은 되어야 했다. 특히 천혜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윈저호텔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산정상으로 뻗어 있는 유일한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은 이미 대테러 특공대가 원천봉쇄하고 있지 않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는 일본의 상황도 문제가 됐다. 회담장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물리적 압력을 가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는 경찰이 행진 허가를 내주었지만, 토요우라 캠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행진 허가는 마지막까지 경찰이 내주지 않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G8 정상회담을 막으러 텐트며 코펠이며 25kg 이상 짐을 싸들고 그 멀고먼 토야코 호수까지 무진 애를 쓰고 갔다가 경찰의 봉쇄로 캠핑장 정문을 나서지도 못한 채 산 속에 갇힐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토요우라 캠프에서도 행진 허가가 나긴 했지만, 경찰의 그 허가사항이란 것이 참 웃긴 것이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는 행진을 할 수 없고, 산길을 돌고돌아 20km를 걸어가면 도착하는, 회담장에서 5km 떨어진 한적한 마을까지만 행진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토요우라 캠프에 간 사람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허가된 것 같았다.</DIV>
<DIV>&nbsp;</DIV>
<P></P>
<DIV>토요우라 캠프에 도착한 첫날, 이 문제로 주로 국제 활동가들과 일본 활동가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즉 일본 경찰이 허가된 경로로 20km를 넘게 걸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6시간을 걸어봤자 회담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그렇게 해야 하나, 차라리 다른 방법을 동원하면 안되나. 이런 주제를 놓고 새벽까지 이어진 전체모임에서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직접행동을 하자는 의견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서 경찰이 허가한 행동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몇 백명이 머리를 맞대고 몇 개 언어로 통역을 거듭하며 합의를 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부는 아침에 예정된 행진 코스로 행진을 시작하고, 다른 일부는 좀 시간이 지난 뒤 다른 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경찰은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과 마찰을 일으켰다가는 경찰과의 (강요된) 합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애꿎은 일본 활동가들만 모조리 구속될 판이었다. 토요우라 캠프에서는 일부가 행진을 하고 일부는 경찰과 대치하다가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에는 예정된 코스에 따라 행진을 했다. 회담장 가까이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행진의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또한 온갖 언론사의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G8 정상회담의 문제점을 행진을 통해 압축적으로 알리는 것도 행진 이유가 되었다. 7월 5일 삿포로 집회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다가 부당하게 연행된 DJ들과 트럭 운전사의 석방을 요구한 것도 토야코 호수를 둘러싸고 진행된 행진에서 주요한 이슈였다.</DIV>
<DIV>&nbsp;</DIV>
<P></P>
<DIV>캠프장에서의 첫날이 지나자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저들이 교묘하게 마련해놓은 윈저호텔 근처로 바짝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회담장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접근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경찰국가가 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안보라는 이름으로 어떤 식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애초에 경찰의 저지선을 넘어 회담장으로 접근해 펼침막을 펼쳐보이거나 ‘호텔 인간띠 잇기’ 등의 꿈을 꾸었던 활동가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좌절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세상을 열망하며 1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3일간 캠핑장에 모여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곳에 모였던 이유일 수 있으니 말이다. <BR></DIV>
<DIV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align=center>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
<TBODY>
<TR>
<TD width="100%"><IMG class=ARTICLE_PHOTO height=450 src="http://www.newscham.net/data/news/photo/1/43777/s130838044.jpg" width=600></TD></TR>
<TR>
<TD width=600>
<DIV style="PADDING-RIGHT: 3px; PADDING-LEFT: 3px; FONT-SIZE: 80%; PADDING-BOTTOM: 0px; COLOR: #fff; LINE-HEIGHT: 150%; PADDING-TOP: 3px; FONT-FAMILY: '돋움', Dotum; LETTER-SPACING: -0.05em; BACKGROUND-COLOR: #797979; TEXT-ALIGN: justify"><!--▲&nbsp;&nbsp;--><!-- [출처: ]--></DIV></TD></TR></TBODY></TABLE></DIV>
<DIV><BR>윈저호텔에 다가가 이명박이나 부시, 후쿠다 총리 같은 자들의 역겨운 얼굴을 보는 것보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비슷한 모습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포옹하며 며칠을 같이 보내는 것이 훨씬 즐겁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쟤네들은 지들끼리 스스로 고립시키라고 하지 뭐. 우리는 이번에 이곳에 모여 다시 한번 부자들만의 세계화를 멈추라고 경고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었다. 찐 감자와 주먹밥으로 점심을 같이 먹고 20km 등산을 하며 새까맣게 탄 얼굴로 서로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우정이랄까 아니면 정감어린 무엇인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연대라는 두 단어로는 세밀하게 표현하기 힘든, 수평적이고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집단의 일부이자 뚜렷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다. 2001년 외환위기로 국가경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이 스스로 자치운동을 벌이며 삶을 복원하는 과정도 그런 느낌을 민중들이 공유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마리나 싯트린Marina Sitrin이라는 사람은 ‘Horizontalism’이라는 책에서 현지 풀뿌리 주민들의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지난 몇 달간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즉 나에게 중요한 어떤 문제를 남이 결정해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해가려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에 온몸을 내맡긴 사람들만이 서로 느낄 수 있는 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 말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따뜻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반가울 수 있는 힘 말이다. 일본에서 만난 많은 활동가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가능해진 배경이 되었던 촛불집회와 길거리 행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애를 썼고,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스페인에, 프랑스에, 홍콩에, 미국에 그리고 일본에도 있었다. </DIV>
<DIV>&nbsp;</DIV>
<P></P>
<DIV>애초 일본 활동가들은 세 개의 캠프를 조직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캠프에 모든 사람이 몰려 있을 경우 쉽게 말하면 ‘몰살’되기 십상이고, 또한 캠프를 두 군데,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탈집중화된 투쟁을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것을 잘만 하면 커다란 힘으로 승화시켜 G8 정상회담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적은 수의 사람들이 토야코 호수에 모였고, 그런 가운데 다시 캠프를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우리의 힘은 더욱 분산된 역효과도 있었다. 회담장 가까이 간 사람들은 대부분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탈집중적 기획을 한 것은 당연했지만 어떻게 보면 ‘탈집중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 우려를 나만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날의 행동이 끝나고 모인 사람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세 캠프가 결합해 마지막 행동을 하자는데 동의했다. </DIV>
<DIV>&nbsp;</DIV>
<P></P>
<DIV>G8 정상회담은 우리가 가서 막지 않아도 이미 각국 자본가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를 내지 못하고 폐막되고 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어서, 이곳을 회담장소로 잡으면서 일본 정부는 ‘에코’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 아름다운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각국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에코’는 가장 효과적인 선전구호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자본가들은 ‘에코 마케팅’을 하지 않고는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모든 제품에 에코를 내세우는 형편이 되었다. ‘이 제품을 사면 환경이 보호된다’는 문구가 광고에 한 두 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해서, 이제 일본에서는 에코라는 것이 운동권의 구호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가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웰빙’이 일본에서 지금 에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어떤 활동가는 집회에 나가 큼지막하게 ‘에코 반대’라고 써붓인 피켓을 들고 내내 행진을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에코를 내세워 2012년으로 마감이 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2050년을 목표로 삼은 새로운 환경정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고갈되는 석유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개발만이 답이라고 여기는 자본가 정부들이 에코의 가치를 위해 산업에 제한을 가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각국의 정상들이 샴페인과 산해진미를 즐기던 7월 9일 세 군데 캠프로 나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토야코 호수 저 너머로 윈저호텔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모여 신나는 행진을 벌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같이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삿포로에 모두 모여 행진하던 사람들이 며칠 간 다른 캠프로 헤어져있다 다시 상봉하는 순간은 박수와 환호성이 가득했다. 경찰은 여전히 귀찮게 굴면서 연행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골칫거리는 되지 못했다. </DIV>
<DIV>&nbsp;</DIV>
<P></P>
<DIV>우리는 각자의 위치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싸움은 진행형이다. 7월 5일에 사운드 트럭을 몰다가 연행된 운전사와 그 트럭 위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며 행진을 할 수 있게 음악을 틀던 DJ 두 명이 아직도 일본 삿포로 중앙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다. 이 친구들의 석방과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일본에서 같이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어디에 있건 다시 만날 것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억압을 가하기 마련일테고, 나에 대한 억압은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억압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DIV></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category>
			
			<pubDate>Wed, 16 Jul 2008 16:04:2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2</guid>
			<title>2mb OUT</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2</link>
			<description>
<![CDATA[
<DIV><IMG id=my_post_img9944334 style="CURSOR: hand"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50430557.jpg')"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7/150430557.jpg" onload="setTimeout('fixImage(9944334)',300)" border=0></DIV>
<DIV>&nbsp;</DIV>
<DIV>문화연대 활동가 친구가 갑자기 전화해서 노래하라고 했다.</DIV>
<DIV>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DIV>
<DIV>그래서 7월 14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나가게 됐다.</DIV>
<DIV>&nbsp;</DIV>
<DIV>급하게 하는 공연이 잘 될리가 없다.</DIV>
<DIV>요즘 부쩍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어떻게든 촛불이 이어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에 기타를 들고 나섰다.</DIV>
<DIV>노래를 한 곡 하고 나니까 며칠간 낯설어 보이던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이 되었다.</DIV>
<DIV>&nbsp;</DIV>
<DIV>전에 Tori~가 만든 '전쟁반대 No! 부시'를 나는 몇 번이나 개사를 해서 부르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 노래를 개사해서 '2mb OUT'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노래를 했다.</DIV>
<DIV>멜로디가 쉽고 재미가 있어서 호응을 이끌어내고 흥응 돋구는 첫 곡으로 이 곡은 잘 어울린다.</DIV>
<DIV>가사는 때에 따라 맘대로 바꿔불러도 된다.</DIV>
<DIV>&nbsp;</DIV>
<DIV><STRONG><FONT size=3>2mb OUT</FONT></STRONG></DIV>
<DIV>작곡 Tori~</DIV>
<DIV>작사 돕 </DIV>
<DIV>&nbsp;</DIV>
<DIV>광우병 쇠고기 수입 대운하 강행</DIV>
<DIV>이명박을 몰아내요 (2mb OUT!)</DIV>
<DIV>집회와 시위의 자유 가로 막는</DIV>
<DIV>어청수도 몰아내요 (어청수 OUT!)</DIV>
<DIV>&nbsp;</DIV>
<DIV>재벌에겐 온갖 특혜</DIV>
<DIV>서민에겐 고통분담</DIV>
<DIV>불평등한 꽉 막힌 이런 세상</DIV>
<DIV>온몸으로 거부한다</DIV>
<DIV>&nbsp;</DIV>
<DIV>이 땅의 모든 권력은 너와 내가 </DIV>
<DIV>우리들이 갖고 있다 (2mb OUT)</DIV>
<DIV>우리의 말을 안듣는 대통령 따윈</DIV>
<DIV>우리에게 필요없다</DIV>
<DIV>&nbsp;</DIV>
<DIV>라라라라라라</DIV>
<DIV>라라라라라라</DIV>
<DIV>&nbsp;</DIV>
<DIV>평화의 촛불을 들고서 시청광장으로 달려가자</DIV>
<DIV>반갑구나 친구들 다시 만나 이명박을 몰아내자</DIV>
<DIV>&nbsp;</DIV>
<DIV>광우병 쇠고기 수입&nbsp;민영화 강행</DIV>
<DIV>이명박을 몰아내요 (2mb OUT!)</DIV>
<DIV>
<DIV>집회와 시위의 자유 가로 막는</DIV>
<DIV>어청수도 몰아내요 (어청수 OUT!)</DIV></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희망을 노래하라</category>
			
			<pubDate>Tue, 15 Jul 2008 16:45:0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1</guid>
			<title>짤린 손가락</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1</link>
			<description>
<![CDATA[
어제 밤, 촛불집회의 상황은 정말이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아니, 그곳이 전쟁터였다.

광화문 쪽으로 막 밀리다가 서울시청 방향으로 시위대가 밀리고 있을 즈음, 대책회의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전경 진압 때문에 손가락이 잘렸다고.
푸른색 옷을 입은 아저씨가 그 잘린 손가락 가져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으니 어서 돌려달라는 화급한 방송이었다.
봉합수술을 받아야 하니 손가락을 발견한 사람은 시급히 돌려달라는 방송이 수 차례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는 전경들이 진압하고 지나간 그 아수라장에서 혹시라도 잘린 손가락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광화문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 그리고 눈물과 콧물, 우비와 모자와 신발과 찢어진 옷쪼가리와 유인물과 음식물로 뒤범벅이었던 광화문 길바닥에서 혹시나 그 잘려나간 손가락을 찾을 수 있을까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진압을 마친 경찰은 어느새 자동차들을 소통시키고 있었다.
누군가 "자동차를 다니게 하면 손가락을 못찾잖아요"라며 경찰들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손가락 비스무리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알고보니 그것은 옥수수 깡텡이였다.
손가락, 어떤 손가락인지 모르지만, 그 크기를 짐작하면서 길바닥을 헤집고 다니니 색깔이 비슷한 빵쪼가리 같은 것도 손가락처럼 보였고, 쓰레기더미며 축 늘어진 우비며 혹시 그 밑에 손가락이 감춰져 있지 않을까 하여 뒤집고도 다녔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그 손가락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얼음도 없고, 찬물도 없는데, 그냥 내 손에 그 손가락을 들고 대책회의 방송차로 가야 하나, 아니면 오늘도 바로 옆에 모여있던 의료봉사단에게 일단 넘겨줘야 하나, 머리 속은 복잡한데, 손가락은 보이지 않고, 광화문 도로엔 이제 양방향으로 차들로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경찰은 언제나 자동차 중심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은 바로 차들이 다니게 하기 위한 것.
혹시나 그 길에서 차들의 타이어에 손가락이 뭉게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 분이 손가락을 찾아 봉합수술을 잘 마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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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Thu, 26 Jun 2008 14:53:35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50</guid>
			<title>나의 로망, 울트라베이스 앰프</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50</link>
			<description>
<![CDATA[
<P>오늘 낙원상가에 가서 베이스 앰프를 구입했다.</P>
<P>쏭의 도움으로 멋진 앰프를 초저가에 구입했어.</P>
<P>베링거의 300와트 짜리 베이스 앰프인데, 소리가 얼마나 맑고 찰진지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더라.</P>
<P>무게가 30kg에 달해.</P>
<P>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P>
<P>볼륨을 12시 방향에만 맞춰도 길바닥 평화행동의 앰프보다 커지더라.</P>
<P>다양한 음색을 낼 수 있어서, 녹음이든 공연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베이스 연주가 가능해졌단다.</P>
<P>이제 드럼세트만 있으면 우린 길거리에서도 멋진 공연을 할 수 있겠어.</P>
<P>&nbsp;</P>
<P>새 베이스 앰프는 어떻게 생겼냐고?</P>
<P>&nbsp;</P>
<DIV><BR><IMG id=my_post_img7860003 style="WIDTH: 460px; CURSOR: hand; HEIGHT: 551px" onclick="viewPostImage('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6/130135268.jpg')" height=700 src="http://blog.jinbo.net/files2/138/dopehead/images/200806/130135268.jpg" width=487 onload="setTimeout('fixImage(7860003)',300)" border=0></DIV>
<DIV>어때 근사하지 않아?</DIV>
<DIV>
<P>스피커 부분이 알루미늄 콘으로 되어 있는데, 이게 베이스 소리를 묵직하면서도 맑게 내주는 부분이거든.</P>
<P>베이스 기타를 치는 사람들은 이런 앰프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지.</P>
<P>&nbsp;</P>
<P>하여튼 이걸 끌고&nbsp;목요일 길바닥 평화행동에 갔어.</P>
<P>오늘 처음 이것을 사용할 마음으로 들떠 있던 거야.</P>
<P>마침 쏭이 오프닝 솔로 연주를 할 동안 나는 앰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이런 소리 음색도 내보고, 저린 소리도 내보고 하는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줄기가 떨어지더라.</P>
<P>그러더니 비가 굵어지는거야.</P>
<P>결국 새로 산 베이스 앰프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접을 수밖에 없었어.</P>
<P>&nbsp;</P>
<P>오는 토요일에 다시 길거리로 나가보려고 해.</P>
<P>이날 다시 촛불문화제가 크게 열리거든.</P>
<P>요즘 자주 길거리에 나가서 노래하고 연주할 때 앰프의 출력 이상으로 우리가 연주를 할 때 앰프가 자꾸 다운되어서 힘들었잖아?</P>
<P>이젠 길바닥 앰프 시스템이 다운되는 일 없이 우리의 현란한 사운드를 뽐낼 수 있을 거야.</P>
<P>소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베이스를 따로 빼니까&nbsp;부담이 많이 줄었거든.</P>
<P>&nbsp;</P>
<P>이젠 길거리에서도 심장을 쿵쿵쿵 울리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을 거야.</P></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희망을 노래하라</category>
			
			<pubDate>Fri, 13 Jun 2008 01:46:00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9</guid>
			<title>매듭2</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9</link>
			<description>
<![CDATA[
<DIV>아래 글 매듭1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의 생물학적 성 그리고 젠더에 관련해서 내적인 부조화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고요,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글을 쓰게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DIV>
<DIV>&nbsp;</DIV>
<DIV>어떤 사람들은 진즉부터 이런 고백을 듣고 싶었다고 말을 했고요, 그래서&nbsp;꺼내기 힘든 말을 했습니다.&nbsp;</DIV>
<DIV>답글을 남긴&nbsp;스캔님 같은 경우에는 고백보다 오류를 먼저 인정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DIV>
<DIV>&nbsp;</DIV>
<DIV>저는 스캔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DIV>
<DIV>스캔님의 지적, 즉 여성들이 제게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 문제, 그러므로&nbsp;문제가 되었던 그&nbsp;글을 읽은 대부분의 또는 많은 여성들이 불편해했던 것에 대해 저는 오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DIV>
<DIV><BR>그래서 이제 저는 남성/여성의 차이를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으며, 그런 차이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BR>제가 남/여 사이의 무수히 많은 경계들을 다 무시하고 매우 관념적으로 여성-되기를 주장한 오류를 범한 것 같습니다.</DIV>
<DIV>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내 의욕이랄까요, 아니면 당위랄까요, 이런 것이 지나치다보니 이런 오류가 생겼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불쾌감을 일으켰습니다.<BR></DIV>
<DIV>저는 앞으로 영원히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DIV>
<DIV>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온 모습 때문이기도 합니다. </DIV>
<DIV>그런 나의 상태를 '민중은 여성이다'라는 글에서 섯부르게 '여성'이라고 지칭한 오류도 범한 것 같네요.</DIV>
<DIV>죄송합니다.<BR></DIV>
<DIV>사회운동을 하면서 저는 제가 바깥으로 토해내는 많은 비판에 대해 똑같은 비판의 잣대를 항상 나 자신에게도 들이대려고 합니다.</DIV>
<DIV>제 오류를 지적해주신 몇몇 분들께 감사드립니다.</DIV>
<DIV>쉽지 않은 글쓰기였을 것입니다.</DIV>
<DIV>덕분에 나의 문제점들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DIV>
<DIV>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더 중요한&nbsp;것은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우느냐 겠죠.</DIV>
<DIV>저는 실수를 그냥 묻어두지 않고 거기서 무엇인가 배우고 고치려고 합니다.</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Sun, 08 Jun 2008 20:09:3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8</guid>
			<title>영상편집에 도전하다</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8</link>
			<description>
<![CDATA[
<DIV><A href="http://blog.jinbo.net/noG8"><B>No! G8</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noG8/?pid=67">[G8 잡는 동영상]</A> 에 관련된 글. </DIV>
<DIV>&nbsp;</DIV>
<DIV>고양이 페스티발을 준비하면서 영상편집까지 하게 되었다.</DIV>
<DIV>영상작업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게 된 것은 내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DIV>
<DIV>사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DIV>
<DIV>&nbsp;</DIV>
<DIV>영상편집은 이번이 두 번째다.</DIV>
<DIV>며칠 간 집회에 못나가고&nbsp;매달려 만든 영상이라서 나름 애착이 간다.</DIV>
<DIV>영상편집이 의외로 재미있다.</DIV>
<DIV>전에 음반을 만들면서 음악파일을 편집하는데는 달인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노가다 작업을 했었는데, 영상편집이나 음악편집이나 큰 차이가 없어서 그 때 익힌 감각을 좀 발휘해보았다.</DIV>
<DIV>내일 열리는 고양이 페스티발에서 커다란 스크린에 빔을 쏘아 상영하는 모습을 그리보니 몸이 부웅 뜨는 것 같다.</DIV>
<DIV>&nbsp;</DIV>
<DIV>영상편집을 제대로 하려면 컴퓨터도 좋아야 하고, 장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영상작업을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간단히 UCC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DIV>
<DIV>5분짜리 하나&nbsp;만드는데 이틀을 꼬박 보내야 하지만 말이다.</DIV>
<DIV>&nbsp;</DIV>
<DIV>졸리다.</DIV>
<DIV>&nbsp;</DIV>
<DIV><EMBED style="LEFT: 0px; WIDTH: 320px; TOP: 42px; HEIGHT: 285px" src=http://dopehead.net/files/catfesta-video-04.wmv width=320 height=285 type=video/x-ms-wmv></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Thu, 05 Jun 2008 12:09:5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7</guid>
			<title>매듭1</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7</link>
			<description>
<![CDATA[
<DIV><A href="http://blog.jinbo.net/hyunhyun"><B>Hyunhyun, 나루</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hyunhyun/?pid=1127">[답장을 기다리며]</A> 에 관련된 글. </DIV>
<DIV>그 외에도 많은 글에 관련된 글.</DIV>
<DIV>&nbsp;</DIV>
<DIV>오랫동안 매듭을 지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실제로 글을 다시 쓰지 못하고 있었어요.</DIV>
<DIV>왜 글을 다시 쓰지 못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그저 보내버렸을까 계속 생각해보고 있습니다.</DIV>
<DIV>&nbsp;</DIV>
<DIV>처음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버린 것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던 제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어요.</DIV>
<DIV>'반성문'이나 '민중은 여성이다' 같은 글을 쓴 뒤 시간이 약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겨우 다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이미 뭐랄까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되어버린 후였고, 나에 대한 비판들 때문에 두려웠습니다.</DIV>
<DIV>어떤 사람이 쓴 글에서는&nbsp;"돕 같은 자는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nbsp;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nbsp;받았던 느낌은 이미 나는 '매장이 되어버렸다'였던 것 같아요. </DIV>
<DIV>&nbsp;</DIV>
<DIV>
<DIV>사실, 그 논쟁이 벌어진 이후 올라온 글들은 아주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그 글들을 내가 모두 자세하고 꼼꼼하게&nbsp;읽지 못한 채 일부 사람들이 사용했던 매우 자극적이고 분노에 찬&nbsp;표현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한동안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 같아요.</DIV></DIV>
<DIV>그래서 한동안 아는 사람들,&nbsp;특히 진보넷 블로거들&nbsp;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DIV>
<DIV>나를 공격한 사람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nbsp;곧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책으로 이어졌어요.</DIV>
<DIV>'커다란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자책말이에요.</DIV>
<DIV>&nbsp;</DIV>
<DIV>
<DIV>그리고 사람들마다 궁금해했던 부분, 의아해했던 부분, 화를 냈던 부분, 비판을 했던 부분들이 모두 달라서, 내가 글을 하나를 쓰면 다른 사람이 "왜 내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느냐"고 추궁할 것 같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멀어지게 되는 것만 같아서 글을 쓰기가 두려웠습니다.&nbsp;</DIV>
<DIV>어떤 글을 올려도 오해만 커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DIV>
<DIV>예를 들어 '민중은 여성이다'라는 글에 나오는 자전거와 자동차 부분이 마치 폭력의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글을 쓸 때는 몰랐고, 내가 글을 올린 뒤에 사람들이 더욱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DIV>
<DIV>나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그런 의도로 읽힌다는 것이 답답하고 그래서&nbsp;이젠 내가 아무리 뭐라고 글을 쓰거나 해명을 하거나 설명을 해도 나에 대해 내려진 판단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을 크게 느꼈습니다.</DIV>
<DIV>&nbsp;</DIV>
<DIV>
<DIV>그래서 우울한 나날들을 오래 이어가다보니까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DIV>
<DIV>마음 한 켠에서는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건과 이후 일어났던 일들&nbsp;자체를 떠올리는 것이 내겐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습니다.</DIV>
<DIV>왜냐하면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무엇으로 후벼파는 것처럼 아렸고, 그냥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이었어요.</DIV>
<DIV>&nbsp;</DIV>
<DIV>처음 올린 반성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가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 있었습니다.</DIV>
<DIV>나는 예전에 성폭력대책위 활동도 하고, 또한 백인위 등에서 공개한 성폭력 사건들을 읽어보면서&nbsp;주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성 가해자들이&nbsp;반응하고, 대응하는 비슷한 패턴 같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DIV>
<DIV>그런 패턴들은 또한 대부분 이차 가해를 낳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DIV>
<DIV>예를 들면 처음엔 부인하거나&nbsp;논쟁을 회피함으로써 사건이 가라앉기를 바라고, 또한 주변의 지인들을 총동원하여 현재 대책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보를 수집하여 이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고, 또한 피해자를 회유(또는 협박)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거나 하는 식 말입니다.</DIV>
<DIV>나는 이런&nbsp;것들을 알고 있었기&nbsp;때문에 처음, 나의 글에서 성폭력이라고 느꼈다는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대부분의 가해자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반성의 시작이다"는 강한&nbsp;요구를 자신에게 했습니다.</DIV>
<DIV>&nbsp;</DIV>
<DIV>변명이나 부정을&nbsp;하지 않는 것이 일단 내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한 친구가 "너 이제 활동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명령과 또 한 편으로는 두려움에 휩싸여 반성문에 쓰게 된 것입니다.</DIV>
<DIV>일단 위기상황을 빠져나가려고 자신만 생각하는 가해자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습니다.</DIV>
<DIV>내가 어떤 맥락에서 글을 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떻게&nbsp;받아들이게 되었는가, 피해자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가장 큰) 피해자에게 어떻게 하면 안심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DIV>
<DIV>피해자의 입장에 서보는 것, 그것이 가해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일단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 인지를 하고, 혹시 모른 2차 가해나 재발을 막기 위해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DIV>
<DIV>이런 맥락을 알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돕이 이렇게 반응을 했지?" "난 돕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요구하지 않았는데?" "난 다른 설명을 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DIV>
<DIV>&nbsp;</DIV>
<DIV>'민중은 여성이다'라는 글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피해자 중심주의를 풀어쓴 글입니다. </DIV>
<DIV>그 글 가운데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가해자를 옹호하게끔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DIV>
<DIV>하지만 내가 그 글을 쓸 때 나를 휘감았던 생각은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피해가 갈 수 있으며, 내가 가해자가 되었을 경우 제일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원칙이었습니다.</DIV>
<DIV>&nbsp;</DIV>
<DIV>반성문 이후 올린 민중은 여성이다는 글에서 그 원칙을 그렇게 길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단 당장 일주일 이상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급하게라도 "나는 내가 쓴 글로 인하여 심적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 또는 "이해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DIV>
<DIV>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DIV>
<DIV>&nbsp;</DIV>
<DIV>이제 여성의 신체기관을 자전거 이름으로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짜증을 불러일으킨 글을 내가 쓰게 된 맥락에 대해서 밝혀보겠습니다.</DIV>
<DIV>사실 이 부분을 이제 와서야 쓰게 되는 것은 제게는&nbsp;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DIV>
<DIV>&nbsp;</DIV>
<DIV>나루님이 길게 글을 쓰셨더군요.</DIV>
<DIV>전문을 가져와보자면,</DIV>
<DIV>&nbsp;</DIV>
<DIV>
<P><FONT color=#79c101>6. 돕을 비판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nbsp;직접적인 표현을 꺼리면서 모호한 격려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nbsp;이유 중 하나로</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건</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한 사람의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겉보기에는 여성이지만 자신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며</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자신의 신체구조를 불편해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그 반대의 경우도 알고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자신은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데</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꼭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알고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nbsp;여/남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권력이 만들어낸 차별일 뿐이라고 그는 일갈한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그들 중 누군가는 하리수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좋아한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nbsp;한 사람은 그런 자신을 혐오해서&nbsp;몇 몇 친구 외에는&nbsp;철저하게 숨기고 있고</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다른 한 사람은 소통가능한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생물학적 성이라는 것이&nbsp;</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어떤 이에게는 날마다 자살을 꿈꾸는 괴로운 조건이 될 수도 있고</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어떤 이에게는 '차이'와 '자유'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하면서</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나서서 활동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FONT></P>
<P><FONT color=#79c101></FONT>&nbsp;</P>
<P><FONT color=#79c101>&nbsp;&nbsp; 그러다가, 어느날, </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nbsp;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체 부위를 거론하게 되었을 때</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면</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nbsp;그것이 아웃팅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억지로 커밍아웃을 해야될 수도 있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혹시 이번 일이 한 사람의 생존을 가로막는 그런 일로 번지면 어떡하지?</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나는 그게 두려웠다</FONT></P>
<P><FONT color=#79c101>&nbsp;&nbsp; 하지만 돕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FONT></P>
<P>&nbsp;</P>
<P>하지만 돕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을 밝히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P>
<P>저는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매우 오래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P>
<P>일단 저는 나에게 부과된 남성성을 거부하고자 했습니다.</P>
<P>한국에서 남성으로 길러지고 남성성을 갖고 생활한다는 것은 내가 제일&nbsp;혐오하는 일이었습니다.</P>
<P>&nbsp;</P>
<P>집회에 나가면서&nbsp;전투에 나가니 하는 식이 싫었고, 군사주의 등 남성적 지배형태로 나타나는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BR>벗어나고 싶었고, 달라지고 싶었습니다.<BR>남성에게 부과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내 삶에서 조롱하고 거부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래서 날 성별화시키는 것에 반대했습니다.<BR>나를 남성으로 대접하는 사람들을 나는 지금도 싫어합니다.</P>
<P>나의 가족들이나 과거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날 남성으로 호출할 때 저는 화를 내거나 무시하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최소한의 대응을 하는데,&nbsp;왜냐하면&nbsp;그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한데, 왜 남성이라는 것을 나에게 씌우나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P>
<P>이곳에서 나를 남성으로 기정사실화한 뒤 전개되기 시작한 수많은 논지들에 대해 내가 난감해하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겠지만 오랫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도 그런&nbsp;이유에서입니다.</P>
<P>&nbsp;</P>
<P>그런데 이것은 그저 나의 정치적 신념이나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P>
<P>왜냐하면 나는 여성이 되고 싶다, 또는 여성으로 살고 싶는 강한 욕망을 한동안 갖고 있었으니까요.</P>
<P>그 욕망은 내가 생물학적으로 20대인 시절에는 꽤나 강했습니다.</P>
<P>그 때는 혼란의 시절이었고 남성의 성기를 자르면 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P>
<P>이것을 인정하기도 힘들었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습니다.</P>
<P>공개적으로 표현하기는 더욱 힘들었고요.</P>
<P>나는 날 완전히 바꾸려고 했습니다.</P>
<P>나의 모든 것, 나의 언어에서부터 나의 젠더 그리고 나의 생활 모두를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P>
<P>지독히도&nbsp;스스로를 싫어했던 20대였습니다.</P>
<P>결국 나는 여성의 육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만 했습니다.</P>
<P>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던 시절입니다.</P>
<P>그래서 나는 '남성의 육체를 갖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하지만 남성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자'고 마음먹게 되었고,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지금도 물론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과정이지요)을 거쳐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졌습니다.</P>
<P>&nbsp;</P>
<P>지금 나는 여성들과 있을 때 난 훨씬 더 편합니다.<BR>언니라는 표현이 좋고 그것을 자주 사용합니다.&nbsp;</P>
<P>부엌일 하기를 좋아하고,&nbsp;월경을 하지도 않으면서 월경에 관한 이야기를 지난 몇 년간 매일 하다시피 하면서 살았죠.&nbsp;</P>
<P>그리고 몇 가지 더 단편적인 것들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P>
<P>&nbsp;</P>
<P>클리토리스와 자전거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P>
<P>거기서 뇌리에 남은 표현 가운데 "클리토리스는 인체의 수많은 기관들 가운데 유일하게 쾌락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이다"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P>
<P>의학전문가가 해부학적으로 설명하는 그 부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P>
<P>이것을 여체의 기관이 아니라 인체의 기관이라고 했던 부분에 주목을 해서 보셨으면 합니다.</P>
<P>클리토리스가 내게는 없는데, 마치 내 몸속 어디엔가,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
<P>귀나 손처럼 인간의 신체기관의 하나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P>
<P>하지만 매우 특별하고 특이한 기관으로서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던 같습니다.</P>
<P>내 몸에도 그것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강하게 하고 있었나봅니다.</P>
<P>그러다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자전거에 그 이름을 붙이니까 자전거를 탈 때마다 어떤 합일의 기분 같은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P>
<P>그러니까 자전거를 탈 때면 더 이상 갈라져 있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느낌 또는 비로소 내가 온전한 자신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흥겨웠던 것 같습니다.</P>
<P>&nbsp;</P>
<P>나는 스스로 3분이 1 정도는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P>
<P>그리고 나머지 자신은 여전히 강요되고 주입되고 확인되는 남성성과 싸우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P>
<P>클리토리스라는 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성애적 감정도 느끼지 않습니다.</P>
<P>퇴화되어버린 꼬리뼈 같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입니다.</P>
<P>&nbsp;</P>
<P>학교 다닐 때 성적 자유주의나 가부장적 순결 관념&nbsp;운운하면서 후배 여학생을 꾜셔서&nbsp;잠자리를 하려던 남자선배들을 보고 정말 역겨웠습니다.</P>
<P>그런 남자들은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금기들을 깨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합니다.</P>
<P>클리토리스를 언급한 내 글이 그런 역겨운 남자선배와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해서 참 심난하고 답답했는데, 글쎄요, 이제 좀 매듭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P>
<P>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다면 계속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P>
<P>&nbsp;</P>
<P>그리고 글에서 다 쓰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P>
<P>나에 대해 분노의 감정 또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기회가 되고, 괜찮다면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P>
<P>누군가의 글에서 나의 과거에 관한 부분이 자세히 드러나 참 힘들었습니다.</P>
<P>그런 매듭들, 또 내가 힘들게 했던 많은 고통들 조금씩 천천히 풀겠습니다.</P></DIV></DIV></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Wed, 04 Jun 2008 07:04:21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6</guid>
			<title>보호라는 권력관계</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6</link>
			<description>
<![CDATA[
<DIV><A href="http://blog.jinbo.net/dalgun"><B>달군</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dalgun/?pid=1230">[예비군에게 보호받고 싶지않다]</A> 에 관련된 글. </DIV>
<DIV><A href="http://blog.jinbo.net/kommunistka"><B>은수</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kommunistka/?pid=140">[촛불소녀를 지키는 예비군오빠들?]</A> 에 관련된 글. </DIV>
<DIV><A href="http://blog.jinbo.net/minjung"><B>김강</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minjung/?pid=112">[다시, 다함께, 대책위, 예비군 여러분들께]</A> 에 관련된 글. </DIV>
<DIV><A href="http://blog.jinbo.net/manic"><B>무나</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manic/?pid=243">[시위가 뭔데?]</A> 에 관련된 글. </DIV>
<DIV>&nbsp;</DIV>
<DIV><STRONG>외국인보호소</STRONG>라는 곳이 있다. </DIV>
<DIV>정부 측 설명에 의하면 ‘일시적으로 외국인을 보호하는 곳(어쩌구)’이라고 한다. </DIV>
<DIV>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DIV>
<DIV>10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2007년 2월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에서 드러난 실상은 그곳이 외국인들을 구금하던 ‘감옥’이었다는 것이었다. </DIV>
<DIV>이 감옥에 강제로 갇힌 사람들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미국이나 프랑스의 외국인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DIV>
<DIV>피부색이 짙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구금대상이 된다. </DIV>
<DIV>또는 이주노동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표적단속의 희생양이 되어 그곳에 구금된다. </DIV>
<DIV>일전에 여수외국인보호소에 흑인이 한 명 있었는데, 당연히 가난한 나라 출신일 거라고 생각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그가 미국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DIV>
<DIV>고압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갑자기 예우를 갖춰 대했다고 한다.<BR></DIV>
<DIV>당신이 아나키스트라면 ‘보호소’라는 말이 가진 권위적 성격을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DIV>
<DIV><STRONG>동물보호소</STRONG>나 <STRONG>미아보호소</STRONG>에서 느껴지듯 보호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무엇인가 베푸는 것을 말한다. </DIV>
<DIV>제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존재에게 온정 따위를 베푼다는 뜻이 보호엔 들어있다. </DIV>
<DIV>약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은 오만함이며, 강권의 행사인 것이다. </DIV>
<DIV><BR>그래서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이나 생명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으며, 지구라는 별에서 공생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STRONG>환경보호</STRONG>’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DIV>
<DIV>생태계를 인간이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한 생각이지만, 매년 2만 여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는 지금의 체제를 인간들의 이윤추구활동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DIV>
<DIV>자연과 노동자를 착취의 대상으로 격하시킨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이윤추구활동을 벌이던 자들이 언젠가부터 자신의 추악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슬그머니 꺼내든 깃발이 환경보호인 것이다. </DIV>
<DIV>그런 자들은 소나 닭을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는다. </DIV>
<DIV>산업화된 나라에서 인간이 먹는 동물은 인간과 함께 자라지 않는다. </DIV>
<DIV>원래 초식동물인 소들은 비육장과 도축장이 함께 자리한 거대한 공장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항생제가 가득 든 동물성 쓰레기 사료를 먹고 빠른 시간에 살을 불린 뒤 2초에 한 마리씩 포장되는 고기덩어리로 취급될 뿐이다. </DIV>
<DIV>병이 생기면? </DIV>
<DIV>몇 백만 마리씩 살처분을 하면 된다. </DIV>
<DIV>그냥 땅에 묻는 것이다. </DIV>
<DIV>핸드폰이나 알루미늄 캔처럼 이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DIV>
<DIV>그런 체제에서 광우병이 생겨난다. </DIV>
<DIV>가장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방법까지 총동원을 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짜여진 미국의 자본주의 공장에서 광우병이 생산되는 것이다. </DIV>
<DIV>&nbsp;</DIV>
<DIV>한우가 안전하다고? </DIV>
<DIV>글쎄. </DIV>
<DIV>목초나 건초를 뜯어먹고 자란 소가 아니라면, 미국을 따라가기 바쁜 한국의 공장형 사육체제에서 미국산 사료를 먹고 생산된 소들이 별로 안전할 것 같지는 않다. (좁디좁은 비육장에 갇혀 우골분 사료를 먹은 소들의 육질이 자유로이 초원을 거닐며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보다 부드럽다고 한다) </DIV>
<DIV>사육장에 불이 나 소들이 불에 타 죽은 모습이 흡사 외국인보호소 같았다. </DIV>
<DIV>이는 한국사회가 타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DIV>
<DIV>보호의 대상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명이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소들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외국인보호소와 광우병 소를 생산해내는 비육장은 닮은 꼴이다. </DIV>
<DIV>&nbsp;</DIV>
<DIV>이것이 과연 보호인가?<BR></DIV>
<DIV>경찰청이 박종철을 고문해 죽였던 서울 용산구 남영역 근처에 있는&nbsp;대공분실을 ‘<STRONG>인권보호센터</STRONG>’라는 새로운 간판으로 바꿔 달았는데, 그것 역시 ‘경찰이 공권력이라는 힘으로 지켜주겠다’는 권력행사의 의지표명에 불과하다. </DIV>
<DIV>인권이란 누가 지켜줄 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DIV>
<DIV>누가 누굴 지켜줘야 하는 체제가 필요 없어지도록 만드는 과정이 바로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 </DIV>
<DIV>미국이 보호해준다는 평화가 실은 그 강대국이 지휘하는 질서에 편입되어 열심히 꽁무니를 좇아갈 때 비로소 조금 떨어지는 떡고물을 안심하고 받아먹는 것이지 않은가. </DIV>
<DIV>힘으로 불만을 내리누를 때 지켜지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화이며, 가정의 알량한 평화란 것도 실은 가부장의 권위에 복종할 때 지켜지지 않던가. </DIV>
<DIV><BR>군복을 입고 촛불집회에 나온 예비군들 역시 이와 같은&nbsp;권력관계에 자신들과 집회 참여자들을 강제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nbsp;</DIV>
<DIV>그래서 누군가를 보호해주겠다는 권력에의 의지를 버리고, 평시민으로 돌아가 촛불을 들라.</DIV>
<DIV>사람들은 폭력으로부터 비폭력 방어법을 배운다.</DIV>
<DIV>전경의 폭력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아간다.</DIV>
<DIV>그것은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DIV>
<DIV>&nbsp;</DIV>
<DIV>촛불문화제 이후 연일 벌어지는 길거리 행진에서 '다함께' 역시 예비군들이 보이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DIV>
<DIV>스스로를 집회 엘리트라고 여기는 다함께 활동가들은 대중을&nbsp;보호하겠다거나 지도하겠다는 욕망을&nbsp;갖고 사람들의 자발성을 억눌러버린다.</DIV>
<DIV>오죽하면 '확성기 괴담'이 유행할까.</DIV>
<DIV>&nbsp;</DIV>
<DIV>오늘 12회 인권영화제에 가기 위해 캠페인용 탁자와 촛불집회 홍보물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DIV>
<DIV>내 홍보물에 '촛불집회에 참석하자'는 커다란 구호가 적혀 있는데, 지하철에 탄 시민들이 그 글을 보면 서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DIV>
<DIV>특히&nbsp;몇몇 사람들은&nbsp;내게 이렇게 이야기를&nbsp;했다.</DIV>
<DIV>&nbsp;</DIV>
<DIV>"확성기를 든 사람은 절대 쫓아가지 말래요. 그 사람들 모두 쁘락치라고 그러던데요. 조심하세요."</DIV>
<DIV>&nbsp;</DIV>
<DIV>나는 확성기를 든 사람이 모두 쁘락치는 아니며, 또한 사람들이 요즘 하얀색 확성기를 든 채 길거리 행진을 유도하고 있는 한 여성을 프락치로 오인하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DIV>
<DIV>다음 아고라(에 가본 적은 없지만)에 이런&nbsp;'확성기 괴담'이 파다하다고 한다.</DIV>
<DIV>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DIV>
<DIV>보호와 지도를 하겠다는 권력에의 욕망이 이런&nbsp;결과를 불러온 것이다.</DIV>
<DIV>엘리트주의는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한다.&nbsp;</DIV>
<DIV>&nbsp;</DIV>
<DIV>보호를 해주겠다는 것은&nbsp;관계에서 자신이 누리는&nbsp;권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DIV>
<DIV>그래서 결국 우리들 각자는&nbsp;자신이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선언해야&nbsp;한다. </DIV>
<DIV>보호받을 존재들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nbsp;우리의 운동이 목표로 하는 바 아니던가?</DIV>
<DIV>&nbsp;</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category>
			
			<pubDate>Fri, 30 May 2008 23:20:5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5</guid>
			<title>&lt;여성주의로 잇다&gt; 상영회</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5</link>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height=707 src="http://cfs9.tistory.com/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YmxvZzEyMDg0NUBmczk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EuanBn" width=500><BR><BR><BR></DIV>
<DIV><BR>여성주의자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지난 3월부터 저와 제가 활동하고 있는 여성주의 저널 n[앤]에서는 대학 여성주의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 사이, 저는 카메라를 들고 &lt;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 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gt;와 &lt;성공회대 여성주의저널 n[앤]&gt;, &lt;여성주의자 문화집단 난리부르스&gt;(서울대)를 찾아가서 만났고, 우리의 만남을 다큐멘터리에 담았습니다. 나와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는 여성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웠고, 더 만나고, 더 이어지고 싶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담은 &lt;여성주의로 잇다&gt;라는 다큐멘터리를 오는 5월 30일 이화여대에서 상영합니다. <BR><BR>상영회에도 이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lt;변태소녀하늘을날다&gt;와 &lt;난리부르스&gt;가 참여합니다. 저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가 서로 이어지길 원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상영회를 계기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네트워크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BR><BR>그래서 여기에 관심있는 다른 대학 여성주의자/모임들도 초대하여 대학 여성주의자들의 네트워크를 위한 간담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9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서울, 경기지역 대학 여성주의자들의 느슨한 수다모임인 '들꽃모임'에서 활동했던 푸하님도 초대하여, 우리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BR><BR>자세한 제안서는 <A href="mailto:feminism-n@jinbo.net"><FONT color=#0066cc>feminism-n@jinbo.net</FONT></A>으로 메일을 주시거나 club.cyworld.com/feminism-youNme 로 오셔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은 대학 여성주의자들, 그리고 예전에 대학에서 활동했던 여성주의자들, 더 다양한 여성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DIV>
<DIV>&nbsp;</DIV>
<DIV><A href="http://nalae.tistory.com/109">[대학 여성주의자 네트워크를 위한 상영회/간담회]</A>에 관련된 글</DIV>
]]>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Wed, 28 May 2008 14:27:2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dopehead/?pid=644</guid>
			<title>대운하는 대량학살을 부른다</title>
			<link>http://blog.jinbo.net/dopehead/?pid=644</link>
			<description>
<![CDATA[
&nbs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대운하는&nbsp;대량 학살을 부른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많은 사람들이 지난 20세기를 전쟁과 폭력의 세기라고 부르고 있다. 양대 세계대전과 이후 줄곧 이어진 냉전체제 때문에 한 세기 내내 세계 전역에서 전쟁이 이어졌고, 설령 베트남 같은 뜨거운 전장이 아닌 곳이라도 언제든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는 ‘전쟁체제’가 가져온 일상적 폭력이 만연했다는 것이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세기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1세기가 ‘인간이 일으킨 환경재앙의 세기’라고 불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새천년이 다가온다면서 나팔을 불며 야단법석을 부린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는 지금 환경재앙의 공포 앞에 속수무책으로 ‘다음은 또 어디에 재앙이 몰아닥칠까’를 두려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라는 2005년 8월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2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백만 명 이상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어야 했다. 2004년 12월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로 죽은 사람은 15만 명이 넘는다고 하고, 수백만 명이 가족과 집을 잃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전 버마에서는 태풍이 몰고온 대홍수로 10만명이 죽었다고 하고, 중국 쓰촨성에서는 대지진으로 지금까지 8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양국 모두 피해자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도무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정신적 피해를 안고 또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실정 아닌가.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20세기에 미국이 떨어뜨린 원자폭탄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메가데스’를 일으켰다면 21세기에는 이보다 끔찍한 메가데스인 ‘환경적 대량 학살’이 지금 우리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환경적 대량 학살이 더욱 끔찍한 이유는 이것이 어디서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며, 이것을 막을 방도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학살이 몰고올 피해가,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켜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구조적으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과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 준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는 쓸모 없는 상품(광우병 쇠고기나 유전자조작 농산물도 바로 철저히 이윤의 논리에 따라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이다)을 대량으로 만들어 세계 각지에 쏟아부으려는 대기업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지금 어떤 지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더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환경에 대한 착취는 마음껏 해도 좋다는 20세기 야만적 자본주의가 지구 전역에 걸쳐 기승을 부린 결과 발생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이제 지구의 생태계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진이나 태풍이 몰고온 피해를 단순한 자연재해라고 볼 수는 없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시장개방과 불공정한 무역을 강요받으며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대다수 가난한 지구인들에게 기후변화의 피해가 고스란히 쏠리고 있는 반면, 전 지구적 이윤경쟁과 자원약탈전쟁에서 승리한 극소수의 부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부를 누리고 있다. 세계의 100대 부자들이 소유한 재산이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보다 많다지 않은가. 이런 불평등한 자유무역에서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은 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보건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환경적 대량 학살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어가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렇다면 한국은 환경적 대량 학살에서 안전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 12월에 삼성중공업 소속의 예인선단이 태안 앞바다에 정박중이던 유조선을 들이받아 발생한 끔찍한 원유유출 사건 역시 돈으로는 계산하기 불가능한 피해를 일으켰으며, 서해안 생태계를 말살시켰고, 회복하는데 수십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에서 환경적 대량 학살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세 명의 어민이 자살한 것을 제외한다면, 이 원유유출 사고로 인해 인간이 당장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하단부에 축적되기 시작한 원유의 독성이 결국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신체에 수십 배로 농축되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결국 우리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이윤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을 착취해온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생태계가 보내온 경고는 지구 전역에 걸쳐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환경을 망치는 것은 곧 사회적 약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계속된다면 그 누구도 이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고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런데 이와 같은 지옥의 묵시록을 완전히 외면한 채 여전히 더많은 이윤을 위해 자연을 마구 착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다. 이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란 두말할 나위없이 환경재앙을 일으키는 사업이다. 그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귀를 현혹하기 위해 이 정권이 꺼내든 카드가 이른바 ‘친환경 사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정권이 처음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대운하를 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번엔 관광과 내륙개발을 위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았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대운하 사업을 강행할 뚜렷한 논거를 찾기 힘들게 되자 약간의 잠복기를 거친 이 정권은 이제 ‘친환경적으로 4대강을 정비하겠다’는 해괴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런 계속되는 눈속임을 참을 수 없었던지 결국 정부의 녹을 먹던 과학자까지 양심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몇 년 전 인권활동가 대회가 열리던 충주에서 평택 대추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적이 있었다. 때는 마침 겨울 갈수기라 남한강은 무릎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흐르던 물이 가까이서 보니 어찌나 맑은지 팔뚝만한 잉어들이 노닐던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이 정권은 먼저 4대강을 정비하겠다면서 바로 그 남한강의 강바닥을 파내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강이 하도 오래되어서 퇴적물이 쌓였으므로 물고기가 잘 살 수 있도록 친환경적으로 파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준설공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단번에 알아버렸다. 바로 강에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을 파내려가 최소 깊이 6미터 이상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벌이던 현대건설에서 그 흉물스런 방조제에 크게 써붙여놓았던 구호가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친환경적으로 방조제를 시공하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이른바 토건족들이 즐겨 사용해온 단어가 바로 친환경이다. 여길 가도 친환경 아파트, 저길 가도 친환경 재건축 투성이다. 산을 밀어버리고 거기에 댐을 만들어도 친환경이란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토건재벌들이 날리는 친환경이라는 수사에 속을 줄 아는가? 분명히,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정비사업이 일단 벌어져 삽을 뜨기 시작하면 ‘이미 시작한 공사는 중단시킬 수 없다’ ‘이미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공사를 중단하면 지금까지 들어간 공사비는 헛돈이 된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대운하 공사를 강행할 것이 뻔하다. 이땅의 토건귀족들이 새만금 방조제 공사 때도, 천성산 터널공사 때도 즐겨 사용한 메뉴이기 때문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그 대기업 건설사 사장 출신이다. 대기업 건설사 사장이 가장 꼴보기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움직이지 않고 그냥 놀고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석유를 펑펑 소비하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이윤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물선이 4대강을 따라 다닐 수 있도록 이어놓아야 핏줄에 피가 돌 듯 경제가 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모양인데, 정작 대운하를 통해 전국으로 돌게 되는 것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일 것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아마도, 토건족을 대표하는 이명박 정권은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팠던 것처럼 남한의 국토 대부분을 토목공사로 휘저어놓고싶었을 것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재벌을 살찌우는 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것이라는 박정희의 1960년대식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놓은 이명박이 아닌가. 민중의 자립과 공생의 기반인 농업과 환경을 망가뜨려온 박정희의 전철을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 사업 추진을 통해 똑같이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 환경재앙이 몰아쳐 생태계가 파괴되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이 현실을, 1960년대에 굳어진 2MB 두뇌로는 아예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최강대국 미국이 하라는대로 쇠고기 수입하고, 유전자 조작 농산물 수입하면서 찰싹 빌붙으면 큰형님이 식량위기든 에너지위기든 환경위기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기 때문인가? 그리고 행여 민중들이 이에 반발해 들고 일어나면,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이라크 민중 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것처럼, 강력한 경찰력을 내세워 진압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인가? 건설회사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터전에 자리잡고 살아온 사람들을 강제철거한다. 건설사 사장에서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는 조폭이 아니라 공권력을 휘두르면 된다 이건가? 더욱 기고만장해진 이명박 정권이 소중한 생태계를 민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소수 재벌의 이윤을 위해 자기 맘대로 강제철거하려는 것이 바로 대운하 사업의 본질 아닌가!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시대는 변했다. 그만큼 환경은 파괴되었고, 생태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건강이자 우리들의 목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불도저 식의 친재벌 정책들이 실은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정면에서 노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이 연일 촛불을 들고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매일 이렇게 가진 것이 촛불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가 외치고 있다. 이명박 탄핵!</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nbsp;</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2008년 5월 26일 웹진 다산인권에 기고한 글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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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author>돕헤드</author>
			<category>나의 화분</category>
			
			<pubDate>Tue, 27 May 2008 19:22: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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