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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긴장

  • 분류
    일기
  • 등록일
    2016/05/01 04:08
  • 수정일
    2016/05/01 17:58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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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날처럼 온수로 몸을 씻던 중이었다. 더운 물에 커피 가루를 풀면 녹아내리지 않던가. 궁금한 것은 왜 내 몸이 저 배수구로 사라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액체와 잡다한 덩어리들과 또 얼마간의 허공으로 팽팽하게 가득찬 고무주머니 같은 몸이다. 인체의 칠 할이 액체라던데 내 몸이 물과 함께 녹아내리지 않는 까닭은 고무처럼 늘어난 피부가 이십 년이 넘도록 용케 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늘이나 칼날 때문에 구멍이 난 적들은 있는데 펑 하고 터져버리기엔 작은 손상이었는지 결국엔 봉합되곤 하였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것들이 많은 어린 시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을 만져보곤 한다. 헌데 손목을 자르거나, 눈알에 무언가를 관통시키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해본 적이 없는데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가끔 어떨까 생각은 해봤던 것 같다. 생각이 행동으로 변하기 전에 등줄기를 타고 몸을 휘감은 위험에 대한 감각이 피부에 오소소한 소름을 만들어내곤 했다. 위험에 대한 감각은 늘 호기심의 충동을 압도했다. 

 

 내 몸에는 매일 액체와 기체가 들어간다. 때론 마른 액체에 가까운 음식들도 들어가지만 완전히 고체인 것은 먹을 수 없다. 액체와 기체를 잔뜩 먹는데 몸은 녹아내리지도 허공으로 날아가지도 않는다. 고무주머니 안을 채우는 공기는 몸을 허공으로 띄우기엔 역부족이다. 숨을 최대한 많이 들이쉬어본다. 숨을 내뱉지 않고 버티어본다. 공기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하긴 태어난 이래로는 들숨 날숨의 반복을 멈추는 데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 몸은 터지지도 흩어지지도 않은 채 지구의 표면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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