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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너는

  • 분류
    일기
  • 등록일
    2016/04/27 02:21
  • 수정일
    2016/04/27 15:32
  • 글쓴이
  • 응답 RSS

아무도 모르는 곳 어느 깊은 연못에

서서히 가라앉은 모래알 하나

배수구 입구에 걸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

물줄기에 끄덕없이 버티는 그 몇 가닥

미처 소각되지 못한 쓰레기, 무엇이었는지 이젠 알 수도 없는 것

그리고 서늘한 밤이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쌓아올린

돌탑의 밑바닥에서 모든 돌멩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그 하나의 돌, 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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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경의 방

  • 분류
    일기
  • 등록일
    2016/04/19 22:02
  • 수정일
    2016/04/20 16:01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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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부터 내가 갇혀 있는 방이 있어

사방의 벽이 일면경인 방

 

어디를 보아도 내 모습밖엔 보이질 않아

그 외의 것은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고

알고 있지 않아서 볼 수가 없어

거울이 서로를 비추어 내 모습이 수만 개쯤으로 늘어나면

나 때문에 내가 질식할 것 같은, 악몽같은 새벽

저 거울의 너머에는 누가 있을까

누가 나를 보고 있을까

보고 있다면 두렵고 보지 않는다면 서럽겠지

 

평생을 고민해도 알 수 없겠지만

궁금해하곤 해, 네가 있는 곳

내가 마주한 거울 속인지, 아니면 또다른 일면경의 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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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우는 밤

  • 분류
    일기
  • 등록일
    2016/04/11 15:53
  • 수정일
    2016/05/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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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 한 이불을 덮고 지내던 시절에는 혼자 우는 밤에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옆에 사람이 있으니 눈물도 누군가에게 건네는 언어였다. 눈물이 흐르는 밤이면 나는 잠든 연인을 깨우려 부러 소리를 내어 울곤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혼자 우는 밤에도 더 이상 연인에게 내 눈물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집으로 이사했다. 혼자만의 집에서는 부러 소리 내어 울 일이 없었다. 때론 소리 낼 필요가 없는데도 목구멍에서 꺽꺽대는 소리가 났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내 울음을 알리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밤들은 곧 아침을 맞았다. 목격자 없는 눈물, 위로 없이도 멎는 울음. 그렇게 익숙해지는, 혼자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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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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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등록일
    2016/03/27 16:30
  • 수정일
    2016/05/01 18:00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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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먼 옛날 같다

어제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은 누군가 고랑을 간 밭이나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천처럼

그 시간을 넘어 가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어딘가를 오르고 걷고 쉴 틈 없이

누군가는 시간이 활을 벗어난 화살 같다고 하지만

 

시간은 그저 흘러가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의 노동과 고뇌와 슬픔이 채워져야 시간은 흐른다

나는 한 순간도 생각을 멈춘 적이 없고 호흡도 멈춘 적이 없다

숨을 쉬어야 시간이 흐른다

공기의 무게를 견디는 몸이 있고 그 몸의 무게를 지탱하는 내가 있다

그 무게에서 해방되어 본 적이 없다

 

때론 반칙 같은 순간

술기운이 나를 현실에서 먼 곳으로 인도할 때나

내 곁에 잠시 머무는 애인의 얼굴을 바라볼 때

나도 시간을 잊고 그도 나를 잊을 때

 

하지만 시간은 그저 흘러주지 않는다

잠에 들어서도 나는 긴 꿈을 꾸고

잃어버린 길을 헤매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전에 눈을 뜨고

생이 순례길 같은 것이라면 

발이 부르트거나 바람이 세차도 걸어가야 하는 것

 

매일은 허무하게 저물지만

시간은 대가 없이 흘러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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