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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 대한 짧은 생각 - 고건을 예로

고건의 급낙마를 보는 소회를 밝히자면 참 속이 시원하다 이다. 그 외에 달리 더 할 말은 없다. 아는 것도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말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당치않게 민주개혁세력의 통합 어쩌고 하는 통에 영 기분이 안 좋았던 터다. 고건이 '민주개혁'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정말 말이면, 갖다붙이면 다 말인건지...

고건은 이런 내 속내엔 아랑곳없이 저 혼자서 30%를 넘는 지지를 받으며 환호하다가 소리없이 10%대의 지지율로 추락하고 급기야 스스로 대망을 접기에 이르렀는데 이건 정말 나와는 아무런 공감없이 이루어졌다. 참 난감한 일이 아닌가? 뜬금없는 30% 지지율도 이해가 안 가지만 1년만에 10%대로 떨어진 것도 이해가 안 간다. 그가 30%의 지지를 받을 만한 근거는 무엇이며 또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10%로 떨어진 건가? 그건 고건의 영광과 쇠락일까? 아니라고 본다.

나는 이것이 여론조사라는 의식측정기구의 고질적인 조악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애초에 30%가 허깨비였기에 저런 현상이 나오는 거다. 문제는 그 허깨비를 근거로 사람들이 행동한다는 데 있다. 여권의 신당논의는 고건의 30% 지지도와 노통의 10% 지지도가 촉발시킨 구체적 행동이다. 막대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여론조사가 저렇게 허무맹랑하게 이루어진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쪼가리 하나 던져주고, 또는 전화로 명바기-그네-고건 중에 하나만 고르세요. 이런 식으로 조사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곧바로 국정추진력이 되고 정책이나 정당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는 그 가부와 존립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조사하려면 없는 게 낫다. 국회 상임위의 의안심의과정을 보면 제안설명- 전문위원검토의견- 대체토론- 축조심사- 찬반토론- 표결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데 나는 이것을 준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돈 아까우면 차라리 하지 말면 된다. 허깨비 붙들고 놀아나면 그 손해가 훨씬 크다.
예를 들어 한미fta에 대해 찬성하냐 반대하냐? 조사했더니 찬성이 60%더라. 그럼 뭐하나? 한미 fta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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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더리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과연 믿을 만하고 목숨을 바쳐 수호할 만한 정치체제인가?
이 질문에 지금 한국사회는
  아래 표와 같이 답하고 있다.


한겨레 여론조사

▲ 한겨레 여론조사

이 결과를 가지고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를 걷어찼다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박근혜가 아무리 '그 시절'을 긍정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돌아갈 순 없다. 이명박이 아무리 추진력이 좋더라도 박정희의 유신은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력은 없으며 그들은 군인도 아니다.
그들이 시대를 거슬러 갈 수 있는 최대치는 조선일보의 통제 아래서의 파시즘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또는 조선일보를 통제하려 하는 순간 권력의 거품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집단이 집권했을 경우, 극단적으로 말해 방씨일가의 자유 요구치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담보한다는 얘기다.
방씨의 자유의지가 한국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이다. 조선일보가 허락하는 만큼만 파시즘은 허용되고 양보하는 만큼만 민주주의는
구속된다. 놀라운 역설 아닌가?

유시민이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고 말한 것은 대강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지난날의 파시즘이 출현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옹호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달리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나는 가끔 민주주의가 정말 짜증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네이버같은 곳에서 보는 금수같은 댓글,극우인사들의 망발 등을 접하면 이런 생각이 바로 든다. 이런 '꽃'같은 것들을 그냥 두고봐야 하다니!
오랜 시간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천착해 수립한 나의 견해들은 누군가의 즉흥적이고 저열한 의견에 얼마나 무력하던가! 답답함과
노여움, 경멸과 분노로 주고받는 담론은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던가...떼쓰는 데는 도무지 대책이 안 서는, 언제나
나보다는 상대의 성숙함이 요구되는 제도. 최소한 정치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겸손하며 도덕적인. 민주주의는 이런 제도다.
한마디로 매우 비효율적인 제도. 그 많은 사람들은 이걸 몰라서 그렇게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효율하면 파시즘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초인이 말한다. "나는 절대자다. 나는 말하고 너희들은 움직인다."
경부고속도로 정도는 며칠만에도 깔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동산정도는 잡으려면 순간에도 잡는다. 수도이전은 대통령이 이사만 가면 된다.^^

그래서일까? 우리국민이 요구하는 차기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 1위는 '추친력'이다. 다시 말해 '효율'.
1리터면 100킬로는 달리는 그런 것. 이건 바로 파시즘의 덕목이다. 그 많은 피는 헛된 것이었나?

'
민주주의는 사회의 건강상태를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특성을 가진 제도'라고 한다.
나는 '무자비할'에 방점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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