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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옥으로부터의 사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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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지옥에서 고통받지 않는 자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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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dc:creator>Septimus(mailto:)</dc:creator>
		<pubDate>Sat, 11 Oct 2008 13:10: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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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옥으로부터의 사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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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종강 선생님 강연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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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하종강</category>
			
			<pubDate>Sat, 11 Oct 2008 13:10: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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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대혁명에 관한 관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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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p>1. 2006년은 문화대혁명이 중국에서 벌어진 지 40년이 된 해였고, KBS에서는 문화대혁명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다큐멘터리는 첫째, 문화대혁명 당시의 폭력적, 비인간적 만행들에 초점을 맞추어, 둘째, 문화대혁명이 낳은 참상으로 인해 피해받은 생존자들의 상처받은 기억들을 소개하면서, 셋째, 문화대혁명에 홍위병으로 참가하였던 인물들의, 일종의 자기반성을 비추고 있다. </p>
<p> </p>
<p>노골적으로 다큐는 문화대혁명을 반인륜적인,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역사로 규정한다. 나는 다큐가 다소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다큐가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또 어떤 이유에서 다큐는 문화대혁명의 다른 면들을 보여주지 않은 것일까? </p>
<p> </p>
<p> </p>
<p>2. 일단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중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데에서부터 불만족스러웠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와 1949년 중화인민정부 수립 선포 이후 중국을 사회주의로 분류하는 것은 대단히 왜곡된 도식이다. 그 당시의 러시아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인정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p>
<p> </p>
<p>당시 러시아와 중국의 지배권력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게 있었던가? </p>
<p> </p>
<p> </p>
<p>2-1. 여러가지 논점이 있겠지만, 어쨌든 맑스에 의하면, 자본주의 이후 도래할 사회주의 체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성숙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성숙함이란, 최소한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물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과 생활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평등한 상태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p>
<p> </p>
<p>1919년 러시아는 전 국토의 3/4이 원시사회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시베리아 벌판은 유목민들의 부락이 띄엄띄엄 있었을 뿐이다. 서남부의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여전히 목재 농기구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여전히 노동자, 농민들은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10월 혁명으로 완전하게 민족해방을 이룬 것도 아니었다. 혁명 이후 트로츠키는 적군을 이끌고 서방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지원을 받는 백군과의 내전을 치뤄야만 했다. 소련이 수립된 이후에도 식량자급률은 100%를 채운 적이 없다. 이를 사회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소련의 지도부가 우주개발에 투여한 예산을 당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을 위해서 할애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p>
<p> </p>
<p>1949년의 중국 역시 황폐하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공업지대는 동남해안 일부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그 나머지 전역은 전근대적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근 30여년에 이르는 내전과 항일전쟁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중국의 상태로 모택동은 중화인민정부 수립 당시 사회주의를 선포하지 않았다. 여전히 흉년이 들면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몇 천 만 명에 이르는 인민들이) 빙하기를 맞은 것 마냥 이곳저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1958년 이후 발생한 대흉년으로 수 많은 아사자들이 발생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건만 우리는 모택동의 중국을 사회주의 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p>
<p> </p>
<p>이는 북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흉년 한 번 들면 몇 백 만이 굶어 죽는 사회를 놓고, 인류가 형성할 가장 진보적인 체제라고 하는 사회주의 운운할 수 있을 것인가. </p>
<p> </p>
<p> </p>
<p>2-2.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모든 혁명은 사회주의일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들을 근거로 러시아와 중국에서의 혁명을 검토할 때, 그 두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에 이르기 전에 발생가능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정도였다고 바라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
<p> </p>
<p>그것은 중국의 경우에 더더욱 그러하다. 1930년 말 일본군과 국민당에 의해서 밀리고 또 밀려 중국 서북지방에서 포위당했던 홍군 게릴라 부대는 모택동의 지도 아래 일종의 전민족단결 전략을 채택한다. 일제에 항거하는 모든 중국 민족(그들이 부르주아지든, 보수반동분자이든, 국민당이든, 봉건지주이든 친일부역자만 아니라면)은 단결하여 항일투쟁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 전략은 대단히 유효한 성과를 거두어서 항일 전쟁에 있어서 공산당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결국 일본이 패망하고, 국민당도 몰아낸 모택동은 '신민주주의' 기치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국가의 주석이 된다. 그는 약속을 지켜서 모든 영역에서의 계급 갈등을 봉합하고, 통일된 공화국을 일단 건설하는 데에 주력한다. </p>
<p> </p>
<p>결국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중국공산당의 활동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되지 않나 싶다. 첫째, 국토의 통일, 둘째 공화국 건설, 셋째, 민족 해방. 이것은 NLPDR 노선 중에서도 NL, 즉 민족해방을 이룬 뒤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이 이룬 혁명은 아직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p>
<p> </p>
<p> </p>
<p>2-3. 중국 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모택동은 부르주아지를 숙청하지도, 보수반동분자들을 처단하지도 않았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는 확고하였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 역시 충만하였다. 곧 중국 내에서 부르주아지와 보수반동분자들은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처럼 여겨졌다. 자라나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철저하게 공산당 편이었다. </p>
<p> </p>
<p>문화대혁명은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택동이 공산주의에 대한 강렬한 신념으로 문화대혁명을 지휘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택동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이후 대략 20년 뒤에 완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전혀 다른 뜻을 갖는다. 우리가 문화대혁명을 전자의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들의 눈에 포착되는 것은 주로 모택동과 4인방의 정치적 패악질과 그로 인한 처참한 재앙일 것이고, 후자의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문화대혁명의 '문화'가 가리우는 혁명 이면의 것들로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전자의 맥락에서 본다면,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행위가 될 것이고, 후자의 맥락에서 본다면, 전근대적 현상으로 인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p>
<p> </p>
<p> </p>
<p>3. 문화대혁명의 폭력성은 사회주의를 욕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대장정 당시 홍군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이 혁명 기간에 짐승처럼 대우받다가 죽어갔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비단 공산당에 종사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너무나도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에게 침을 뱉으며 뺨을 때렸다는 일화들은 너무나 많다. 홍군의 지도자였던 팽덕회의 뺨을 때렸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로 치면 김일성에게 숙청 당한 박헌영의 뺨을 김일성 대학 신입생이 때린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p>
<p> </p>
<p>체 게바라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그런 것이 20세기 중반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적인 정서였나 보다. 하긴 그들은 총을 들고 싸워야했으니... 하지만 찝찝하지 않은가. </p>
<p> </p>
<p>하지만 나는 문화대혁명 당시 발생한 군중의 폭력이야말로 1970년 전후의 중국이 아직 대체로 전근대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의 근거라고 생각한다. </p>
<p>대약진운동을 생각해보자. 정말 몇천만 평은 되고도 남을 것 같은 평야에서 개미만큼이나 작아보이는 인민들이 피라미드 세우듯 집단 노역하는 모습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모택동의 모습. 이게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 작태인가. 파라오나 진시황 따위가 연상되지 않은가. </p>
<p>또 100만인 대회에 참가한 정말 100만 명의 중국 인민들이 모택동 소책자를 들고 환호하는 전경을 떠올려보자. 로마의 개선장군이 귀국할 때, 이를 환영하는 로마인들이 연상되지 않은가. </p>
<p>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저지른 폭력의 양상은 너무 야만적이어서 <몬도가네>나 <홀로코스트>를 보는 듯 하다. </p>
<p>모택동에 의해서 숙청당한 유소기를 지지하다가 반동분자로 몰린 한 여성 공산당원은 총살당하기 전 '공산 당 만세'를 외치려고 하자, 그녀의 입을 철사로 꿰매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등 뒤에서 철사를 잡아 당겨 말을 못 하게 하였다고 한다. </p>
<p>대체로 이런 일들은 중국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 </p>
<p>인민들은 자신들이 당한 대로 복수하였다. </p>
<p> </p>
<p>즉, 인민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해왔던 대로 똑같이 행한 것 뿐이다. </p>
<p>문제는 예전에는 한 지역의 성이나 장악하였었지만, 이번에는 전체 국가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였으리라는 점이다. </p>
<p>게다가 그들은 30여 년 간의 내전과 항일 게릴라를 통해서 얻은 전투적 경험들이 있고, 또 혁명이나 전투에 실패하였을 경우 당하였던 바가 있었다. </p>
<p>문화대혁명에서 발생한 집단적 폭력은 그러므로 중국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여서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의 체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더 많이 근원한다 하겠다. </p>
<p> </p>
<p> </p>
<p>3-1. 문화대혁명의, 전근대의 현상에 포함될 것 같은 폭력적 단면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혁명 안에 들어가서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 어떠한 폭력이 발생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문화대혁명의 경우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는데, 무엇이 분명한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p>
<p> </p>
<p>첫째, 대약진운동, 인민공사의 실패와 대흉년으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모택동의 공작</p>
<p>둘째, 사회주의 노선의 수정에 대한 선진 공산당원들의 분노</p>
<p>셋째, 과거유산에 대한 근대적 청산</p>
<p>넷째, 도시를 제외한 대다수의 농촌 지역에서 발생한 계급 갈등, 또는 문화 갈등</p>
<p> </p>
<p>네 가지 모두 다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정확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p>
<p>나는 네번째 이유에 마음이 끌렸다. </p>
<p> </p>
<p>앞서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은 민족연합노선에 따라 수립된 국가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공산당의 노선과 대립하는 부르주아지, 보수반동, 봉건지주 세력이 혁명세력과 공존하고 있었다. 문제는 항상 농촌이다. 공산당의 지배적인 구성원도 농민들이고, 농촌에서 벌어진 지주와 소작농 간의 계급갈등을 이해해야 중국적 사회주의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 </p>
<p> </p>
<p>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공산당의 핵심이 동쪽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도시들로 집중되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세 상태로 고스란히 남아 있던 농촌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봉건질서가 부활하였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한 때 쫓겨났거나 또는 지식인이라고 홀대 받던 교사가 다시 돌아와 교편을 잡았을 것이고, 반동적인 부자가 떵떵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관료들의 횡포로 인한 폐해는 심각하여 생산물에 대한 보고도, 그 결과 얻어지는 보상에 대한 분배도 정상적이지 못하여 인민들의 분노는 재차 누적되고 있었을 것이다. </p>
<p> </p>
<p>문화대혁명의 근원이 팽덕회에 대한 숙청에서부터 발원하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 문화대혁명은 부패하고 수정주의적인 관료를 그 적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발생한 폭력들의 양상을 살펴보건대, 그 대상은 봉건질서의 대변자들까지 포함해야할 것이고, 거기서 이루어진 복수의 정도들은 그 때까지 인민들이 어떻게 당하여왔는가를 가늠케 하여준다. </p>
<p> </p>
<p>하지만 이건 오로지 가설일 따름이다. 주로 인민들은 항상 그래왔으니까. </p>
<p> </p>
<p> </p>
<p>4.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에서는 올림말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알고 있다. 노인들과 소년이 대화를 나누어도 그것은 한글 식이 아닌 영어 식이다. 기성세대로서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언어가 바뀌니 자연스럽게 생활습관이나 의식도 다 바뀌기 마련이다. </p>
<p> </p>
<p>다큐멘터리는 문화대혁명의 이러한 영향을 현재 중국 사회에서 도덕적 진공 상태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늘날 중국에서는 다시 공자와 유교가, 삼강오륜이 유행하고 있다. 모택동의 붉은 소책자가 1000만부 가량 나갔었다는데, 공자와 유교 관련 서적이 그와 비슷한 만큼 판매되었다고 한다. </p>
<p> </p>
<p>하지만 존칭이나 올림말이 있는 것이 좋은가, 없는 것이 좋은가. 그것이 정말로 필요하단 말인가. 만일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그것들이 굳이 언어로 표현되어야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언어로 표현되고 들음으로써 일상적으로 우리 의식을 훈육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인 법. </p>
<p> </p>
<p> </p>
<p> </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pubDate>Sat, 11 Oct 2008 04:39:4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104</guid>
			<title>das leben der anderen</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104</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이 영화는 대략 2, 3년 전에 박과 함께 씨네큐브에서 봤다. </p>
<p>박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p>
<p>처음 봤을 땐 그냥 그랬다는 느낌이 강했다. </p>
<p>언젠가부터 케이블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는데, </p>
<p>-아 이리하여 난 케이블을 끊기 힘들다-</p>
<p>다시 보니 이 영화 역시 거짓말과 진실에 관한 영화인 듯 하다. </p>
<p>&nbsp;</p>
<p>배경은 독일의 재통일 직전의 동독사회이고, </p>
<p>주인공 하나는 비밀경찰, 다른 하나는 동독의 희곡작가이다. </p>
<p>후자는 반체제적 성향이 강한 인물인데, 서독 주간지에 동독의 상황을 고발하는 칼럼을 기고하고, </p>
<p>이로 인해 비밀경찰로부터 강한 의혹을 받는다. </p>
<p>이 모든 것을 숨겨준 자는 전자인데, 원래 냉정하기 그지 없는 그 사람이 어찌하여 그렇게 변화하였을까, 를 딱히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논리는 없다. </p>
<p>몇 가지 개연적인 상황들이 있는데, </p>
<p>첫째, 희곡작가의 연인인 연극 여배우에 대한 흠모</p>
<p>둘째, 경찰학교 동기생이자 자신보다 상관인 인간에 대한 혐오</p>
<p>정도랄까. </p>
<p>&nbsp;</p>
<p>그 중에서 첫번째 이유는 반복적으로 비밀경찰 주인공이 이 여인에게 '관객들에게 돌아가야죠'라는 대사를 흘리면서 강조된다. </p>
<p>어쨌든 비밀경찰의 거짓말과 속임(수)로 희곡작가는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p>
<p>실상 영화나 연극 모두, 또 동독 체제의 선전선동 모두 거짓이나 다름 없다. </p>
<p>거대한 거짓 안에서 존재하는 거짓들. </p>
<p>허나 그 거짓이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며, </p>
<p>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p>
<p>물론 거짓이 사람을 죽이거나 슬프게 하고, </p>
<p>고통을 주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p>
<p>&nbsp;</p>
<p>허나 반대로 이 비밀경찰에게 숨길 수 있는 진실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p>
<p>그는 모든 공간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또 녹취함으로써 모든 거짓에 둘러싸인 진실들을 알 수 있다. </p>
<p>그렇게 '타인의 삶'을 음미하던 비밀경찰은 두 연인이 사랑하는 것도 모두 듣고, 그들이 읽는 책도 알게 되며, 하여 자신 역시 그 책을 읽고, 희곡작가의 진실한 마음을 읽어나간다. </p>
<p>결국 희곡작가와 그의 친구들이 은밀한 행위를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이를 일러바치고자 상관을 찾아가는데, 그 상관이 또 이 비밀경찰 주인공의 마음을 짓밟는다. </p>
<p>하나의 진실한 행위와 거짓을 지키기 위한 거짓된 행동 사이에서 주인공은 전자를 지키기 위해서 진실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을 하고 마는 것이다. </p>
<p>&nbsp;</p>
<p>&nbsp;</p>
<p>진실이나 진심을 결코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p>
<p>무슨 할 말이 있더라도 끝끝내 마음 속에 쟁여놓다가, 문득 사건이 벌어지고 머리가 돌아버리면, </p>
<p>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p>
<p>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p>
<p>또 속임수를 쓴다. </p>
<p>한편으로는 본인을 가리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진심을 지키기 위하여. </p>
<p>&nbsp;</p>
<p>반면 이런 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볶아서 그가 담지하고 있는 진실이나 진심 따위를 들쳐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p>
<p>이들은 대부분 폭력적인 사람들이다. </p>
<p>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방법으로. </p>
<p>허나 상대를 가학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반드시 전자가 되어보아야 한다. </p>
<p>그리하여 자기 내면에 다양한 군상들을 심고, (눈)물도 주고, 노래도 불러야 하는 것이다. </p>
<p>혹자는 이런 인간을 이중적인 인간으로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p>
<p>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 부정할 방도는 없다. </p>
<p>하지만, </p>
<p>&nbsp;</p>
<p>'타인의 삶'을 밤새도록 듣고 또 들음으로써 그들의 진실을 보호하고, </p>
<p>그리하여 결국 그 진실을 알게 되었던 이 대머리 비밀경찰과 같이, </p>
<p>영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p>
<p>영원하다, 그게 뭐 중요하겠냐만, </p>
<p>누군가에게 중요할 수도 있지. </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거짓말</category>
			<category>타인의 삶</category>
			<category>das leben der anderen</category>
			
			<pubDate>Fri, 10 Oct 2008 03:33:4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103</guid>
			<title>호와의 재회</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103</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호는 나와 같은 출신이면서 다른 조직에 있던 친구다. </p>
<p>그는 몇 년 전 어느 날 불현듯 자취를 감추고 바다를 건너버렸다. </p>
<p>오늘 그와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만났는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p>
<p>&nbsp;</p>
<p>어제는 &lt;바람의 화원&gt;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p>
<p>윤복은 자객에 의해서 버려진 우물 안에 버려지고, </p>
<p>자신이 그린 그림을 빼앗기는데, 우물 안 윤복과 청개구리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줬었다. </p>
<p>마침내 홍도가 윤복을 발견하고 구출해내는데, 그 순간, 역시 청개구리가 홍도의 애쓰는 발재간에 맞추어 또 우물을 뛰어오른다. </p>
<p>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을 보고 대단히 서러웠던 것 같다. </p>
<p>우물 안 개구리 역시 우물 안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터, 고함 지르고, 안달나서 어쩔 줄 모르는 윤복의 모습이 너무 간절하였다. </p>
<p>&nbsp;</p>
<p>살다 보면 우리 주변에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p>
<p>너무 잔인한 말인가. </p>
<p>다들 노력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p>
<p>하지만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p>
<p>당연하게도 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p>
<p>그러나 목숨을 거는 인간들이 있었다. </p>
<p>눈 앞에 존재하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그 폭력 보다 무서운, 어둠의 고요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조폭 구사대들을 응시하며, 자기가 어찌 될 것임을 예상하기에 더더욱 증폭되는 두려움을 온 몸으로 껴안으며,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간절한 목소리로 다독이면서, </p>
<p>대가리 찢어지고, 손가락 부러지고, 정강이 두동강 나던 사람들이 있었다. </p>
<p>&nbsp;</p>
<p>내 기억에 호는 최소한 그런 인간이었다. </p>
<p>그런 인간이 사라진 후에 거리를 도배하는 말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최소한 호는 그런 용감한 인간이었다. </p>
<p>어떠한 말도 그를 완벽하게 숭배할 수 없다. </p>
<p>어떠한 몸짓도 그를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다. </p>
<p>목숨을 거는 것은 재현하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
<p>또한 그런 연유로 그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p>
<p>그가 숭배되거나 재현될 수 없는 존재인 고로. </p>
<p>&nbsp;</p>
<p>주로 구전으로서나마 전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음유시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p>
<p>술도 많이 마셔야 한다. </p>
<p>진실한 진실이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p>
<p>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을, </p>
<p>그것은 결코 패배하지도, 변절하지도 않는 다는 것을, </p>
<p>우리 모두 잘 기억하기 위해서. </p>
<p>그리하여 잘 살기 위해서. </p>
<p>&nbsp;</p>
<p>닥쳐라 씨벌 놈의 세상아</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pubDate>Fri, 10 Oct 2008 00:03:18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102</guid>
			<title>sale 풍경</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102</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한국의 점포들은 1년 내내 세일한다. </p>
<p>할인을 그렇게 해대도 이윤이 남는 것인지. </p>
<p>하긴 남지 않으니까 소규모 점포들이 연달아 도산하는 것일 테지만. </p>
<p>허나 백화점은 어떤가. </p>
<p>10만원 짜리 잠바를 전국에 있는 수 십개의 백화점이 동시에 들여놓았다가</p>
<p>계절이 바뀌었다, 연휴가 왔다, 방학이다 하면서 반값, 심지어 80% 세일을 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p>
<p>그렇게 해서 10만원 짜리 잠바 한 벌을 5만원에, 또는 2만원에 팔아먹어도 이윤이 남아서 저 지랄을 떠는 것은 웬 토끼가 개고기 먹는 현상인가. </p>
<p>&nbsp;</p>
<p>도대체 저 상품들의 원가는 얼마인가. </p>
<p>상품의 생산자들이 빼앗긴 부불임금은 얼마인가. </p>
<p>무조건 세일한 몫 이상일 것인데, 그렇다면 80% 세일하는 10만원 짜리 잠바에 담긴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얼마란 말인가. </p>
<p>또 원료생산자의 몫은, 유통업자와 물류노동자의 몫은, 창고관리노동자의 몫은, 포장노동자의 몫은, 그 모든 걸 가능케 하여주는 정유노동자의 몫은, 전력노동자의 몫은, 다 어디로 갔을까. </p>
<p>&nbsp;</p>
<p>이 모든 혼돈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와 같은 물음으로 세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p>
<p>왜냐면 이미 우리 사회의 전체 대중은 이 메커니즘에 완전히 적응'되'었으므로. </p>
<p>마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온갖 해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버릴 수 없는 것처럼. </p>
<p>하지만 이러한 물음들을 자꾸 대중들에게 던지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다. </p>
<p>설령 이 모순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어느 정도의' 개선을 꾀할 수 있으니까. </p>
<p>&nbsp;</p>
<p>&nbsp;</p>
<p>아... 더러운 세상. 죽기 전에 바뀌기나 할려나..</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pubDate>Mon, 06 Oct 2008 16:22:4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101</guid>
			<title>hell boy</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101</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이것도 만화가 원작이다. </p>
<p>어째서 미국은 슈퍼히어로물에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p>
<p>우리에겐 기껏 홍길동이 있었을 뿐이고, </p>
<p>근대에 들어와선 각시탈, 붉은 매, 마루치 아라치&nbsp;따위가 있었을 뿐이며, </p>
<p>그 외에는 주로 인간이 아닌 기계들일진대. </p>
<p>또는 공룡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언제나 쿨할 수 있는 초인, 또는 완성태에 다가가는 성장 중의 성인이 아닌 기껏 아기일 뿐이건만. </p>
<p>&nbsp;</p>
<p>반영웅 히어로물로 각광을 받았던 이 작품을 그런 이유로 나는 보지 않았었다. </p>
<p>어제 우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는데, 몇 가지 면에서 대단히 좋은 작품이었다. </p>
<p>역시 예술작품을 편견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p>
<p>&nbsp;</p>
<p>&nbsp;</p>
<p>1. 악마의 자식, 지옥 소년</p>
<p>지옥 소년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려 있고, 둔부에 꼬리가 붙어있는, 피부색이 빨간, 악마의 자식이다. </p>
<p>이 정도면 반공시대 빨갱이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p>
<p>본디 태생이 악마의 자식일진대, 이 녀석은 인류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도리어 선을 행한다. </p>
<p>사람들이 그를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든 말든. </p>
<p>&nbsp;</p>
<p>여기서 선과 악의 구분이 무너진다. </p>
<p>영화 말미에 인간의 독백에서 나타나듯,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뭘까? 모든 존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의 태생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에 무엇을 행하였는가가 중요'-그대로 아님-한 것이다. </p>
<p>비록 지옥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악을 행해야할 태생적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p>
<p>기초수급자의 가족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노동운동을 해야하는 인간이어야할 필요 없듯이, </p>
<p>부르주아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하여 그가 부르주아지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p>
<p>&nbsp;</p>
<p>'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아마도 모택동이 아닐까 싶다. </p>
<p>그는 인간의 본성으로 '자각적 능동성'을 제기하였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인간의 '자의식'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p>
<p>물론 자각적 능동성으로 거창하게 표현한 데에는 자의식이란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상 비좁은 한계 때문이겠지만. </p>
<p>인간은 자각적 능동성을 갖고 환경에 대처한다. </p>
<p>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객관 세계를 자신이 자각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을 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사물을 바꿔나가고, 나아가 자기 자신 마저도 바꿔 나간다. </p>
<p>모택동은 역사를 창조하고 변형시키며 개척하는 인류의 본성을 이것으로 꼽았다. </p>
<p>그러므로 한 인간의 태생 자체가 그 인간의 향후 의식 세계와 삶을 규정한다는 것은 그에게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p>
<p>단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그에게 선택적으로, 부분적으로 수용될 따름이다. </p>
<p>&nbsp;</p>
<p>하지만 반면 그가 '주체사상'의 원형격인 그와 같은 개념을 사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의 특수한 조건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p>
<p>중국은 18세기에도, 20세기에도 인구가 무진장 많았다. </p>
<p>숱한 농민반란이 있었고, 왕조는 무수히 무너졌다. </p>
<p>죽어도 죽어도 끝없이 쏟아지는 사람들의 홍수. </p>
<p>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런 관념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p>
<p>원자폭탄으로 망한 일본 제국주의를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0만 명의 홍군을 한반도로 파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p>
<p>대장정과 오랜 게릴라 전투로 인민들의 고통과 피로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음에도 말이다. </p>
<p>그는 맥아더가 중국 대륙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더라도 '모든 중국인이 오줌을 누면 일본 따위의 섬은 가라앉힐 수 있다'는 대국적 배짱으로 버텼을 지도 모른다. </p>
<p>실제로 그는 모순론인가 실천론에서 전쟁을 이기는 힘은 무기가 아닌 인간, 인간의 의지와 방아쇠를 당기는 힘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p>
<p>이 정도면 막가자는 것 아닌가. </p>
<p>&nbsp;</p>
<p>&nbsp;</p>
<p>어쨌든 지옥 소년의 가장 큰 미덕은 기독교식 선악의 이분법에 의존하고 기초하는 슈퍼히어로물을 완전히 배격하였다는 점에 있다. </p>
<p>&nbsp;</p>
<p>&nbsp;</p>
<p>&nbsp;</p>
<p>2. 지옥 '소년'</p>
<p>영화에서 지옥 소년을 보호하고 기르는 박사가 한 명 나오는데, 그는 2미터 가량의 이 거구에게 뺀날 kid(애새끼)라고 부른다. </p>
<p>실제로 이 지옥 소년은 지옥에서 태생하였다는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고 허구헌 날 땡땡이 치고 투정부리기 일수다. </p>
<p>말 그대로 애 인 것이다. </p>
<p>&nbsp;</p>
<p>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p>
<p>지옥 소년은 무엇인가 완성된 인격체가 아니다. </p>
<p>그는 성장 중에 있고, 그 단계는 매우 어리다. </p>
<p>즉, 그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그에겐 부재하다. </p>
<p>오로지 그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옥 출신이라는 것 뿐이다. </p>
<p>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접할 때마다 성수를 뿌려대고 십자가를 들이밀 마음이 들 것이다. </p>
<p>하지만 박사는 지옥 소년을 지옥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맞추어 대하지 않고, </p>
<p>그가 아직 소년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대한다. </p>
<p>그가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박사가 진정한 과학자라면, 응당 그리 해야 할 일이다. </p>
<p>&nbsp;</p>
<p>하지만 기독교도, 나아가 과학으로 무장하자고 노래하던 사회주의도, 운동권들도 그렇게 사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p>
<p>그렇다고 하여 그들에게 크나큰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
<p>인간은 조건의 산물이다. </p>
<p>한 인간이 그러한 편견적인 인식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성장하는 와중에 경험한 바들에 의한 것이지, 그의 인격이 속좁아서 그러한 것은 아닐 게다. </p>
<p>그러므로 과학자로서의 태도와 소양을 갖추는 일은 쉽지 않다. </p>
<p>그렇다. 박사는 지옥 소년의 본성(지옥에서 태어난 연유로 지옥 세계의 성격을 내면화하고 있을 지 모르는)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의 객관 조건을 문제 삼았다. </p>
<p>하여 그는 지옥 소년을 편견 없이, 아직 미성숙한 하나의 아이로 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p>
<p>&nbsp;</p>
<p>&nbsp;</p>
<p>&nbsp;</p>
<p>3. 못 마땅한</p>
<p>구도는 대단히 거창하다. </p>
<p>반면 줄거리는 뻔하다. </p>
<p>결국 지옥소년은 내면에 잠재한 악마적 본질(그의 이름!!!은 지옥으로의 관문을 여는 열쇠였다!!!)을 거두고, 손바닥을 지지는 십자가를 보면서 인류의 편이 되기를 선택한다. </p>
<p>무엇이 부족하였을까.. 예산, 시간, 좋은 작가...</p>
<p>&nbsp;</p>
<p>이런 면에서 지옥 소년의 모든 철학적 배경은 한낱 수단으로밖에 비추이지 않는다. </p>
<p>이 결정적 한계가 헬 보이를 그저 그런 슈퍼히어로물, 또는 피상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p>
<p>&nbsp;</p>
<p>&nbsp;</p>
<p>&nbsp;</p>
<p>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본 것 같진 않군..</p>
<p>다시 봐야 하나...</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hell boy</category>
			<category>헬 보이</category>
			<category>지옥소년</category>
			
			<pubDate>Mon, 06 Oct 2008 07:23:11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100</guid>
			<title>love songs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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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FCKeditor--><p><embed src="http://www.youtube.com/v/Fa3h3pnhg8s&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armageddon(아마겟돈: 세계의 종말에 있을 선과 악의 결전장, 네이버 사전 曰)에서 벤 애플렉이 우주선 타기 전에 리브 타일러에게 들려주다. 스티브 부세미가 노래 잘 부른다./ Peter, Paul and Mary</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embed src="http://www.youtube.com/v/7PCyNMrhxG4&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nbsp;</p>
<p>before sunset(해지기 전에)에서 왈츠 부르는 줄리 델피</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embed src="http://www.youtube.com/v/sAldTlejA6Y&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nbsp;</p>
<p>everyone says I love you(다들 난 당신을 사랑한다 말해요)에서 팀 로스가 부르다/ Frank Sinatra</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embed src="http://www.youtube.com/v/n8VfN2BhJA8&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aladdin(알라딘) 中 a whole new world(졸라 새로운 세상)</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embed src="http://www.youtube.com/v/AKIShUgOueA&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moulin rouge(붉은 풍차)에서 노래하는 이완 맥그리거</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object id="NFPlayer9274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 height="408" width="500"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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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p>&nbsp;</p>
<p>&nbsp;</p>
<p>white nights(백야), 여자는 국립극장장인가 하는데, 기억으로는 소련을 탈출하려고 했던 남자의 옛 애인이었던 것 같다. 컷 되기 전에 여자는 혼자서 Vysotsky(소련 반체제 가수, 우리로 치면 정태춘이나 김광석 정도일까)의 Koni Priveredlivie(뒷걸음 치는 야생마)를 아마도 몰래 듣고 있었다.</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풋사랑에 빠진 홍을 위하여. </p>
<p>용감하고 씩씩하게 너의 삶을 살어라</p>
<p>&nbsp;</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Frank Sinatra</category>
			<category>armageddon</category>
			<category>leaving on a jet plane</category>
			<category>Peter, Paul and Mary</category>
			<category>before sunset</category>
			<category>Julie Delpy</category>
			<category>waltzs</category>
			<category>everyone says I love you</category>
			<category>If I had you</category>
			<category>aladdin</category>
			<category>a whole new world</category>
			<category>moulin rouge</category>
			<category>your song</category>
			<category>white nights</category>
			<category>백야</category>
			<category>Vysotsky</category>
			<category>koni priveredlivie</category>
			<category>뒷걸음 치는 야생마</category>
			
			<pubDate>Mon, 06 Oct 2008 06:47:4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9</guid>
			<title>人狼에서 빨간 두건 동화</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9</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엄마 배가 고파요."</p>
<p>라고 소녀가 말하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p>
<p>&nbsp;</p>
<p>"찬장에 고기가 있으니 먹으렴."</p>
<p>&nbsp;</p>
<p>소녀가 찬장에 있는 고기를 먹으려고 하자,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p>
<p>&nbsp;</p>
<p>"그건 네 엄마의 고기이니 먹지 마렴."</p>
<p>&nbsp;</p>
<p>소녀가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p>
<p>&nbsp;</p>
<p>"엄마, 고양이가 그러는데, 이 고기가 엄마의 고기래요."</p>
<p>&nbsp;</p>
<p>"그런 고양이에겐 신발을 던져버리려무나."</p>
<p>&nbsp;</p>
<p>소녀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목이 말라진 소녀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p>
<p>&nbsp;</p>
<p>"엄마 목이 말라요."</p>
<p>&nbsp;</p>
<p>"냉장고에 포도주가 있으니 마시렴."</p>
<p>&nbsp;</p>
<p>소녀가 냉장고에 있는 포두주를 마시려고 하자, 창문에 새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p>
<p>&nbsp;</p>
<p>"그건 네 엄마의 피니 마시지 마렴."</p>
<p>&nbsp;</p>
<p>소녀가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p>
<p>&nbsp;</p>
<p>"엄마, 새가 그러는데, 이 포두주가 엄마의 피래요."</p>
<p>&nbsp;</p>
<p>"그런 새에겐 두건을 던저버리려무나."</p>
<p>&nbsp;</p>
<p>소녀는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소녀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p>
<p>&nbsp;</p>
<p>"엄마 졸려요."</p>
<p>&nbsp;</p>
<p>"침대로 와서 자려무나."</p>
<p>&nbsp;</p>
<p>침대에 누운 소녀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p>
<p>&nbsp;</p>
<p>"엄마 왜 귀가 그렇게 커요?"</p>
<p>&nbsp;</p>
<p>"네가 하는 말을 잘 들으려고."</p>
<p>&nbsp;</p>
<p>"엄마 왜 눈이 그렇게 커요?"</p>
<p>&nbsp;</p>
<p>"너를 잘 보려고."</p>
<p>&nbsp;</p>
<p>"엄마 왜 손톱이 그렇게 커요?"</p>
<p>&nbsp;</p>
<p>"너를 잘 움켜쥐려고."</p>
<p>&nbsp;</p>
<p>"엄마 이가 왜 그렇게 커요?"</p>
<p>&nbsp;</p>
<p>그러자 늑대는 소녀를 잡아먹었다. </p>
<p>&nbsp;</p>
<p>-그대로 아님-</p>
<p>&nbsp;</p>
<p>&nbsp;</p>
<p>&nbsp;</p>
<p>&nbsp;</p>
<p>동화는 궁시렁궁시렁 묘사를 하지 않아서 좋다. </p>
<p>설명이 많은 동화는 좋은 동화가 아니다. </p>
<p>짧고 간결한 표현만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p>
<p>하지만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p>
<p>그러므로 동화의 세계는 공상적이기 쉬운데, 그 공상을 간결하게 묘사하는 일이 또한 반대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p>
<p>&nbsp;</p>
<p>인랑의 저 동화는 아마도 무력투쟁에 나선 '섹트'라 불리우는 집단이 작성한 우화일 것이다. </p>
<p>어머니의 살과 피는 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들의 것이다. </p>
<p>그걸 먹고 자란 산업화의 후대들은 늑대의 번뜩이는 눈과 손아귀 아래에서 다시 먹히게 된다. </p>
<p>슬픈 동화다. </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동화</category>
			<category>人狼</category>
			<category>인랑</category>
			<category>오시이 마모루</category>
			<category>빨간 두건</category>
			
			<pubDate>Sat, 04 Oct 2008 20:01:0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8</guid>
			<title>외로운 김</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앞서서 나가는&nbsp;사람은 고독하다. </p>
<p>무엇이든지 일을 제안하는 사람은 외롭다. </p>
<p>남들은 다치기 싫어하고, </p>
<p>김은 더 이상 다치는 것이 두렵다. </p>
<p>남들이 그렇게 말을 하지 아니하고, </p>
<p>술자리에서 넋두리나 읊거나</p>
<p>추상적인 농담들을 놓고 싸움이나 벌일 때, </p>
<p>김 역시 그냥 그렇게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싶다. </p>
<p>누구 하나 손 잡아주지 아니하는 듯 하다. </p>
<p>관심 갖지 아니하는 듯 하다. </p>
<p>&nbsp;</p>
<p>하지만 김 역시 모른다. </p>
<p>김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p>
<p>얼마나 김을 기억하고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는지. </p>
<p>본디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p>
<p>잘못이 있다면 김에게 있지 아니하고</p>
<p>김을 외롭게 한 자들에게 있으나, </p>
<p>이 세상에 그런 일이 한 둘 인가. </p>
<p>다 그렇게 될 것이다. </p>
<p>고요하게 잊혀질 것이다. </p>
<p>상처는 어설프게 무뎌지고, </p>
<p>냉소가 세계를 휩쓸 것이다. </p>
<p>&nbsp;</p>
<p>그러나 누구도 김이 냉소적으로 변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p>
<p>김 역시 잠시 걸음을 멈출 때일 테다. </p>
<p>주변을 돌아보고, </p>
<p>자기중심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보다 더</p>
<p>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때일 테다. </p>
<p>그걸 말해준다고 하여 김이 이해할 것인가. </p>
<p>모든 사람들은 정해진 과정의 시간을 거쳐야만 하는 것인가. </p>
<p>&nbsp;</p>
<p>'왜 희망은 광기인가</p>
<p>슬픔은 독인가'</p>
<p>어찌하여 그 모든 것들은 눈보라처럼 일순간일 뿐인가. </p>
<p>부디 외로워하지 말라, 김이여. </p>
<p>외로움을 살자. 그러면</p>
<p>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 </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pubDate>Thu, 02 Oct 2008 15:48:2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7</guid>
			<title>[레디앙] 423가지 화학물질 1,834가지 향료 섭취</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 border="0">
    <tbody>
        <tr>
            <td class="view_t">423가지 화학물질 1,834가지 향료 섭취 </td>
        </tr>
        <tr>
            <td class="view_sub_t">진보신당 "가공식품 첨가물 인체 영향 연구 전무한 실정"</td>
        </tr>
        <tr>
            <td height="5">&nbsp;</td>
        </tr>
        <tr>
            <td align="left">&nbsp;</td>
        </tr>
        <tr>
            <td height="15">&nbsp;</td>
        </tr>
        <tr>
            <td class="view_r" id="articleBody">
            <p align="justify">멜라민&nbsp;파동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부터 중국산 분유까지 먹거리에 대한 불신으로 소비자들의 공포감이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진보신당이 &ldquo;국민들은 이미 423가지의 화학물질과 1834가지의 향료를 합법적으로 섭취하고 있었다&rdquo;고 주장하고 나섰다. 멜라민에서 시작된 파동이지만 멜라민에 대한 조사에 그칠 것이&nbsp;아니라 &ldquo;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대책&rdquo;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br /><br />진보신당 정책위원회는 30일 이슈브리핑을 통해 &ldquo;멜라민 파동은 수입 먹거리에 대한 문제는 물론 식품 내 유해 첨가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rdquo;며 &ldquo;우리는 표기만으로는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rdquo;이라고 말했다. 또한 &ldquo;유해첨가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형편&rdquo;이라고 말했다. <br /><br />진보신당은 &ldquo;분유에 약 30종류 이상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대부분이 &lsquo;화학 합성물&rsquo;&rdquo;이라며 &ldquo;그러나 인체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아이들이 먹는 과자역시 '유해식품첨가물 덩어리'지만 단순히 맛과 멋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rdquo;고 말했다.&nbsp;이어 &ldquo;문제는 식품첨가물 생산은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이 인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nbsp;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점&rdquo;이라고 말했다.&nbsp;<br /><br />진보신당은 특히 &lsquo;식품표시제&rsquo;를 문제로&nbsp;제기하며&nbsp;&ldquo;같은 용도의 첨가물은 일일이 명칭을 기재하지 않고 용도명 하나만 표기해도, 고기를 잴 때 간장을 사용했다면 간장에 들어있는 첨가물을 표시하지 않아도,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 약품도 완제품에 남아있지 않으면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nbsp;등 문제가 많다&rdquo;며 &ldquo;법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rdquo;고 주장했다. </p>
            <p align="justify"><strong>멜라민만 문제 아냐</strong></p>
            <p align="justify">진보신당은 커피전문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 크리머를 예로 들며 &ldquo;커피 크리머 안에는 식물성 유지, 유화제, 증점제, pH 조정제, 착색료, 향료로 만들어지는데 이에 대한 식품표기는 낱개 포장에 적혀있지 않고 식품표시제에 관련 규정도 없어&nbsp;소비자들은 무엇이 첨가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것&rdquo;이라고 말했다. <br /><br />이어 진보신당은 &ldquo;첨가물이 충분한 안전성 평가를 거치더라도 과용과 오용시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음은 물론, 실제 일반시민들에게서도 피해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rdquo;며 법의 사각지대에 식품안전이 방치되고 있음을 주장했다.</p>
            <p align="justify">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먹는 과자를 예로 들며&nbsp;&ldquo;과자에는 인공색소(적색 2호, 적색3호, 황색4호, 황색5호), 표백제 아황산나트륨, 보존제 안식향산나트륨, 조미료 MSG 등은 아토피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첨가물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rdquo;고 설명했다. <br /><br />진보신당은 이중 &ldquo;적색 2호는 타르계 색소로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1976년 이후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과일 칵테일의 체리, 과자에 들어가는 인공색소 적색 3호는 1983년 미국 식약청(FDA)의 보고서에서 쥐에게 갑상선 종양을 일으킬 만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고 밝혀진바 있다&rdquo;고 말했다. <br /><br />&lsquo;황색 4호&rsquo;도 &ldquo;고농도 노출 시 심장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있으며&nbsp;&lsquo;황색 5호&rsquo;는 아스피린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rdquo;고 설명했다. 이어 &lsquo;아황산염&rsquo;은 &ldquo;과일쥬스, 물엿, 포도주, 잼 등에&nbsp;사용되는데, 이 물질이 물에 녹으면 강한 산성을 띄어 식도 훼손, 위 점막 자극, 통증, 신경염, 만성기관지염, 천식 등을 유발해 과다사용을 금하고 있다&rdquo;고 밝혔다. </p>
            <p align="justify"><strong>식품첨가물 영향연구는 거의 없어</strong><br /><br />이어 &ldquo;어린이나 십대에게 과잉행동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안식향산나트륨은 쥬스, 청량음료, 강장제, 파스타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고 &lsquo;MSG&rsquo;도 &ldquo;두통, 메스꺼움, 심박수 변화 등을 유발한다고 알려&rdquo;져 있으며&nbsp;&nbsp;음료에 사용되는 '액상과당'은 "혈당치를 빠르게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인공감미료인 사카린도 "발암물질"로, '아스파탐'은 "난치병 유발 물질"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nbsp;</p>
            <p align="justify">진보신당은 &ldquo;문제는 다양한 화학첨가물들의 인체 유해성이 아주 조금씩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며, 또 이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다는 점&rdquo;이라며 &ldquo;허용기준치 내의 첨가물이라도 다양한 종류를 복합적으로 장기간 섭취했을 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고 있다&rdquo;고 문제를 제기했다. <br /><br />이어 &ldquo;1일 허용량은 성인 기준이며, 허용량이 개별 식품 기준량이라 하루에 여러 가지 식품을 섭취할 경우, 허용치 초과가 쉬울 수 있다&rdquo;며 &ldquo;그럼에도 누적량(총량)에 대한 연구도 없고 기존 독성평가 자료도 완전치 않다&rdquo;고 비판했다. 이어&nbsp;&ldquo;더불어 최근 식품위생 검사기관이 엉터리 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rdquo;이라고 말했다. </p>
            <p align="justify"><strong>법제도정비 시급</strong><br /><br />진보신당은 &ldquo;멜라민같은 화학첨가물의 문제가 심각한&nbsp;것은&nbsp;한 번 몸이 망가지면 비가역적으로 회복이 어려우며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경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rdquo;이라며 &ldquo;특히 아이들은 학교 앞 불량 먹거리에&nbsp;노출되어 있는데&nbsp;조사에 의하면 이들 식품에 최고 16가지의 식품첨가물이 포함되어있었으며, 평균 7~8개의 첨가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rdquo;고 말했다. <br /><br />진보신당은 &ldquo;결국 가장 시급한 것은 식품첨가물에 대한 연구와 철저한 관리 감독&rdquo;이라며 &ldquo;유통과정에 대한 조사와 생산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조항 신설 등 &lsquo;사전예방의 원칙&rsquo;을 먹거리 안전 정책에 있어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rdquo;고 주장했다.</p>
            </td>
        </tr>
        <tr>
            <td height="20">&nbsp;</td>
        </tr>
        <tr>
            <td><!--기사날짜와기자이름바//-->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
                <tbody>
                    <tr>
                        <td width="5"><img height="25" src="http://www.redian.org/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 width="11" alt="" /></td>
                        <td bgcolor="#fcfcfc"><span style="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font face="돋움" color="#666666">2008년 09월 30일 (화) 14:19:51</font></span></td>
                        <td align="right" bgcolor="#fcfcfc"><span style="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font face="돋움" color="#666666">정상근 기자</font> <a href="http://www.redian.org/news/mailto.html?mail=dalgona@redian.org"><img src="http://www.redian.org/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 border="0" alt="" /> <font face="arial" color="#666666">dalgona@redian.org</font></a></span></td>
                    </tr>
                </tbody>
            </table>
            </td>
        </tr>
    </tbody>
</table>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진보신당</category>
			<category>레디앙</category>
			<category>멜라민</category>
			<category>화학첨가물</category>
			<category>식품첨가물</category>
			
			<pubDate>Wed, 01 Oct 2008 02:54:3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6</guid>
			<title>once I loved</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6</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embed src="http://www.youtube.com/v/RVL2r1Q0GWs&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embed></p>
<p>&nbsp;</p>
<p>&nbsp;</p>
<p>&nbsp;</p>
<p>by Dianne Reeves</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once I loved</category>
			<category>Dianne Reeves</category>
			
			<pubDate>Tue, 30 Sep 2008 09:29:2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5</guid>
			<title>태풍태양</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5</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단 한 번 성공을 위해 수백번 넘어지는 친구들에게 바칩니다'라고 감독은 따스하게 영화를 마친다. </p>
<p>그는 &lt;고양이를 부탁해&gt;의 감독으로, 차기작에 기대를 많이 품었던 숱한 사람들이 많이 실망하였던 것 같다. </p>
<p>하지만 &lt;몽정기 2&gt;를 보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 다시 보게 된지라 눈을 못 떼고 끝까지 다 봤다. </p>
<p>다시 보니 좋은 영화인 것 같다. 적잖이 깔끔하게 잘 만든. </p>
<p>&nbsp;</p>
<p>청춘성장드라마는 이것저것 모든 걸로 은유될 수 있다. </p>
<p>내가 이 영화를 운동권 영화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나의 단점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다. </p>
<p>무엇이든지 내 멋대로 해석하고자 하고, 또 그러고 그쳐버리는. </p>
<p>나는 이 의혹을 확신하기 위해서 네이버에서 정재은 감독을 검색해봤다. </p>
<p>내가 선택하고 싶은 정보를 얻지는 못하였고, 그녀가 한예종 영상원 1기 졸업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p>
<p>음.... </p>
<p>&nbsp;</p>
<p>&nbsp;</p>
<p>영화 중반에&nbsp;스케이트 타는 아해들이 경찰하고 시비가 붙어서 파출소에 끌려간다. 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천희가 파출소에 들어가 쇼부를 치고, 파출소 안에서 아해들과 대화를 하는데, 그 중 한 아해가 </p>
<p>&nbsp;</p>
<p>"미운 놈은 뭘 하든 미운 거잖아요. 저도 사랑받고 싶다고요."-대략 이런 걸로 기억함</p>
<p>&nbsp;</p>
<p>라고 말하고선 씬이 바뀐다. </p>
<p>&nbsp;</p>
<p>하나의 씬(보다 전문적인 표현이 있겠지만, 대략 시나리오 상 이 개념을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내 맘대로)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어쩌면 쉬운 것인지 모르겠다. </p>
<p>왜냐면 우리가 보통 영화를 찍는다면서 무언가를 횡설수설 늘어놓을 때,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줄거리를 갖는 형태가 아니라 대부분 어떤 장면들의 어설픈 조합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p>
<p>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일세. 이러쿵 저러쿵, 이 얼마나 획기적인 장면인가!'라고 시작하다가 '그리하야 어떠어떠한 배경을 뒤로 하고 이따위 저따위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아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하구나!' 식으로 끝나는 것이다. </p>
<p>저 파출소 씬은 대략 1분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천희가 김강우 일당과 함께 파출소에 등장하는 장면(대단히 깎듯한 태도로 경찰들에게 인사하며)과 이천희가 쇼부치는 와중 자연스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아해들로 화면이 꽉 차고, 이어서 아해들의 증언들, 그리고 바로 이천희와 아해들이 논쟁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p>
<p>마지막에 저 대사 하나 날리고 끝나고 마는 것이다. </p>
<p>하나의 씬이 그렇게 끝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p>
<p>모든 문단이 주로 삼단,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배웠듯이 감독의 결론은 저 대사일진대, 그 말은 곧 이 아해들도 알 만큼 안다이지 않을까 싶다. </p>
<p>&nbsp;</p>
<p>&nbsp;</p>
<p>사람들은 스케이트 타는 거리의 아해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p>
<p>저 아해들은 학교도 안 갈 것이다, 약을 할 것이다, 비행을 일삼을 것이다 등등.</p>
<p>사람들은 저 아해들이 자기 생각을 모를 거라고 쉽게 재단한다. </p>
<p>그러다가 시비가 붙기라도 할라치면, 보통 사람들은 이 아해들의, 예상 외의 기민한 판단력에 흠칫 놀라다가, 곧 이러니 저러니 변명들을 늘어놓기 마련이다. </p>
<p>뭐, 그것들은 아해들에 의해서 쉽사리 간파당한 자신들의 편견을 감추기 위한 것들로서, 예를 들자면, 내가 너희들이 마냥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닐세, 다 너희들이 걱정되서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등등. </p>
<p>&nbsp;</p>
<p>싸움이 안 붙으면 대단히 다행이지만, 보통 사람들에 비하여 의외의 자제력을 갖춘 저 아해들의 선빵(참는 자가 이기는 것이니 참는 것이야말로 선빵)에 되려 흥분하고 마는 쪽은 우리들이기 마련이다. </p>
<p>상황이 커져서 파출소에 가면, 이제 문제는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느냐, 하는 것이다. </p>
<p>우리들로 하여금 그와&nbsp;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저 아해들이&nbsp;알 만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p>
<p>무엇에 대해서?가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만큼 아는 것에 있어서 뚜렷한 대상이 존재하기는 한가. &nbsp;</p>
<p>&nbsp;</p>
<p>그래서 현자들은 아는 것 보다 태도를 중시하였다. </p>
<p>지식이 많은 것 보다 지혜를 갖추는 것, 뭐 그런 것들. </p>
<p>여기서 저 아해들의 태도란 무엇일까? </p>
<p>그것은 바로 '남이야 뭐라든 내 갈 길 스스로 가겠다'는 것이다. </p>
<p>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을 둘러싼 타인의 시선은 매우&nbsp;중요하다. </p>
<p>그것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같이 우리 주변을 꽉 메우고 있어서 그것 없이 삶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p>
<p>우리는 나이를 먹고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자라면서 학습받은 대로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의상이나 말투 따위를 준비한다. </p>
<p>그러다가 어느 날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한다. </p>
<p>때로는 정말로 죽기도 한다. </p>
<p>로빈슨 크루소에게 프라이데이가 없었다면, 그가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 소설 자체가 이어질 수 있었을까. </p>
<p>&nbsp;</p>
<p>그 타인의 시선이 억압임을 느끼는 자는 일상 자체가 고통이자 공포다. </p>
<p>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은 이러한 내용을 갖고 있다. </p>
<p>저 아해들 역시 '과격하게'-영화의 영제는 'the agressive'-스케이트를 타는 자신들의 행위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을 느낄 것이다. </p>
<p>거기서 자신들을 하류로 분류해대는 시선을 간파할 것이다. </p>
<p>때로 대놓고 욕설하는 자도 겪을 것이다. </p>
<p>시비가 붙기도 하고, 그러던 중 본인들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를 들을 것이다. </p>
<p>너희들은 이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들이라는 내용의. </p>
<p>-스케이팅을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불필요한 존재들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p>
<p>&nbsp;</p>
<p>그 가운데 아해들은 상처를 받고 세상과 담 쌓고 지낸다는 말을 듣는다. </p>
<p>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함과 동시에, 불신하는 짓 자체도 포기하기 위해서 없는 것으로 결론짓고 만다. </p>
<p>하지만 아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
<p>반복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끝없이 상처받고, 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갖는 현실적 의미들을 깨우치게 되더라도, 여튼 최소한 싫증이 나거나 몸이 망가져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들의 행위는 지속될 것이다. </p>
<p>결국 저 아해들은 위대한 용기를 증거한다. </p>
<p>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p>
<p>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남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참견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p>
<p>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자신들이 스케이팅을 즐기는 것과 같이 자유이므로. </p>
<p>남이 자기자신에 대해서, 또는 이 세상 무언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잘못인가? </p>
<p>글쎄, 그런 거룩한 작업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최소한 저 아해들에겐 유죄판결이 성립하지 않는다. </p>
<p>&nbsp;</p>
<p>&nbsp;</p>
<p>아무도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밤 거리에서 법을 전복시키며 스케이팅을 하는 아해들은 주말마다 화염병을 던지며 거리를 점령하던 학생운동권이다, 라는 나의 해석은 지극히 얇은 이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p>
<p>하지만 최소한 우리들은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p>
<p>내가 생각하는 우리들은, 남들이 뭐라고 욕하고 걱정해주고 하지 말라고 조언해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다. </p>
<p>그 모든 행위가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들은 남들이 우리들에 대해서 맘껏 씨부릴 수 있는 자유를 이백프로 인정해줌으로써, 하여 우리들에 대한 이 세상 모든 욕설들을 기꺼이 다 받아줌으로써 참회하였다. </p>
<p>그것이 결코 용서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죽음이다. </p>
<p>그러므로 나와 내가 생각하는 우리들은 대단히 행운아였다. </p>
<p>그 행운이 꾸준하게 내 곁을 지켜주길 바란다. </p>
<p>그와 함께 꾸준하게 남이야 뭐라든, 스스로 깨지고 부서지면서 겪음으로 배우고 살아가길 바란다. </p>
<p>&nbsp;</p>
<p>그 위대한 용기를 스케이팅 하는 거리의 아이들로부터 끌어낸다는 것은 정재은 감독의 따스한 능력이다. </p>
<p>반면, '나쁜 영화'의 장선우나 '눈물'의 임상수는 어찌나 차가운지...</p>
<p>또 최근의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얼마나 황당한가.</p>
]]>
			</description>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태풍태양</category>
			<category>정재은</category>
			<category>the agressive</category>
			
			<pubDate>Tue, 30 Sep 2008 08:30:1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fauntine/?pid=94</guid>
			<title>the last emperor</title>
			<link>http://blog.jinbo.net/fauntine/?pid=94</link>
			<description>
<![CDATA[
<p>1988년(아, 얼마나 오래 전인가...)에 세상에 나온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사회주의를 버렸다고 욕 먹게 만든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p>
<p>이 작품 이전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확실히 선명한 색상을 숨기지 않고 있다. </p>
<p>제목만이라도 음미하자면, <혁명 전야>, <석유의 길>, 그 외에 유명한 작품들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00>이 있다. <파리...>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많이 읽히고, <1900>은 20세기 농민반란에 대한 영화다. </p>
<p> </p>
<p>사람들이 그를 두고 변절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1988년 마지막 황제 이후의 작품들 때문이기도 한데, 가장 대표작은 <리틀부다>. 인간은 디지기 전에 언젠가는 반드시 중대한 변화를 겪게되는데, 그가 불교에 심취하여 정신적 격정에 시달렸었는지, 그냥 사회주의자에서 불교신자로 변화하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여튼 이로 인해 그에 대한 오해가 증폭된 것은 분명하다. </p>
<p>나는 <몽상가들>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역시 사람들은, 특히 운동권들은 68혁명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p>
<p> </p>
<p>마지막 황제는 내가 초등학교 때 개봉한 작품으로, 엄마랑 형 손 잡고 같이 극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p>
<p>그 당시만해도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없었고, 극장계에는 일류와 이류의 구분이 있었으며, 전자는 개봉관으로, 후자는 재상영관으로 운영되었었다. </p>
<p>하여 개봉관에서 영화 선정 하나 잘못해서 대목을 놓치거나 흥행에 실패하면, 사업 자체가 파산에 이를 가능성이 무척 높았는데, 그런 이유로 특히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내가 볼 수 있는 영화의 폭은 대단히 좁았다. </p>
<p>아메리카에서처럼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여기저기 세워진 뒤에도 실상 영화 관람의 폭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p>
<p>그건 내 자신에 내재하는 이유도 있지만,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다양한 영화를 관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본연의 모습을 그리 탈바꿈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p>
<p>불연듯 옛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 당시에 마지막 황제를 개봉한다는 것이 적잖은 용기를 요구하였을 것이라 연상되기 때문이다. </p>
<p> </p>
<p>그렇다. 이 영화는 대단히 지루한 영화다. 내막이 어떻든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뤄야만 하는 영화, 또는 영화가 됐든 모든 예술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걸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은 인간들에게 있을 테고.. 어쨌든.................</p>
<p> </p>
<p> </p>
<p>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지막 황제는 역사적 유물론을 영상화한 것이다. 영화의 원작은 부의의 자서전인 <황제에서 시민으로>이지만, 논점을 부의(푸이, 청나라 마지막 황제, 만주국의 황제이기도 했다.)의 개인적 변화 자체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p>
<p>부의 자체가 청나라의 황제로서, 그 삶 자체로 그 개인적 의미보다 상징적 의미가 강하였다. </p>
<p>감독이 이 소재로부터 보여주려고 하는 바는 그러므로 한 중국 왕조의 황제가 겪은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아닌 것이다. </p>
<p> </p>
<p>부의는 그 자신이 봉건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면서 동시에 20세기 초중반까지 지속되었던 중국사회의 봉건성, 전근대성을 대표한다. </p>
<p>그의 변화는 중국 전체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영화에서 나타나는 그의 인격적, 의식적 변화는 곧 중국 사회격변기의 변화를 따르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를 반영한다. </p>
<p>만주국의 멸망, 뒤이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과 함께 전범으로 몰려 수감된 부의는 자신을 키워왔고, 또 자신이 살아왔던 봉건적 삶의 방식이 변화한 사회조건으로 말미암아 하나씩 붕괴하는 것을 경험한다. </p>
<p>그는 자신이 황제였다는 사실과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았었다는 사실을 꿈처럼 여길 만큼 낯선 사회에 내동댕이쳐지고, 더 이상 봉건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귀족적 행태에 환멸을 보낸다. </p>
<p>비로소 부의의 의식개조는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그 역시 일반 시민들(아마도 그에게는 평민들)과 동일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새로 태어난다. </p>
<p>그 역시 스스로 신발끈을 꿰매고, 세수할 물을 떠오고, 사람들과 함께 태극권을 하고 등등. </p>
<p> </p>
<p>중국에서의 혁명은 그렇게 인간의 의식을 전변시켜내고 있었다. </p>
<p>아마도 감독이 형상화하려고 하였던 바는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p>
<p>영화의 마지막이 문화혁명을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p>
<p>역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또 그 변화하는 바에 의하여 역사의 구성원인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또한 문화혁명이기 때문이다. </p>
<p> </p>
<p>영화에서 문화대혁명은 다소 파쇼적으로 비추인다. </p>
<p>이를 통해서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중 하나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인지 유추할 수 있을 듯 하다. </p>
<p>하지만 내가 알기론 68혁명 당시 문화대혁명은 대단히 성공적인 운동으로 알려졌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이러한 묘사가 그가 배신자라는 누명을 쓰는 하는 단초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p>
<p>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는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p>
<p>초반부는 당연히 긍정적 평가가 대세였고, 등소평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이어지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문화대혁명을 일종의 파쇼적, 독재적 억압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적인 것 같다. </p>
<p>그러나 문화대혁명기에 이루어진 사회복지정책은 적지 않다. </p>
<p>이 시대에 태어나거나 청소년기를 보낸 중국인들은 대단히 평등한 사회경제토대를 누릴 수 있었는데, 감독이 이를 알고 영화의 말미를 그렇게 구성하였는지, 반대로 68의 대학생 지식인들이 이를 알고 문화대혁명을 지지하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p>
<p> </p>
<p>영화의 무삭제판은 우리가 익히 봐온 영화 보다 한 시간 가량 분량이 더 많다. </p>
<p>그러므로 영화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p>
<p>어떤 관점이나 의도에서 삭제가 이루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p>
<p>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할 것 같은데,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p>
<p> </p>
<p> </p>
<p>어쨌든 말년기의 부의는 정원관리사의 신분으로, '돈'을 주고 자금성에 들어간다. </p>
<p>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황제궁에 몰래 들어간 부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황제의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 </p>
<p>그 때 문화재 관리인의 어린 아들이 등장해 부의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데, 부의는 내가 오래 전에 황제였고 저기에 앉았었노라고 들려준다. </p>
<p>어린 아이는 증거가 있냐고 묻고, 부의는 황제의 의자 안 쪽에, 자신이 처음 궁궐에 입성하여 황제가 된 직후 자신을 가르치던 황제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귀뚜라미가 담겨 있는 통을 빼내어 어린이에게 준다. </p>
<p>우습게도 50여년의 세월 동안 봉건성의 최고위에 머물러있던 귀뚜라미는 죽지도 않고 살아서 통 밖으로 나오고 고개를 돌린 어린이는 부의가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p>
<p>뭐, 귀뚜라미가 부의가 되었다!</p>
<p>부의에게 있어서 의식의 변화는 완전하지 못하였다!</p>
<p>아니, 그럴 수도 없고, 당연한 것이다. </p>
<p>모택동식, 나아가 김일성식 주체사상의 한계가 은근하게, 다소 미덥지 않게 묘사된다. </p>
<p> </p>
<p> </p>
<p>언젠가 무삭제판을 다시 보면, 또 쓸 거리가 생기겠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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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pubDate>Sat, 27 Sep 2008 20:20: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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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ooh</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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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p>&nbsp;</p>
<p>&nbsp;</p>
<p>by scissor sister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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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ooh</category>
			<category>scissor sisters</category>
			
			<pubDate>Sat, 27 Sep 2008 20:20: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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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인과의 만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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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Keditor--><p>"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냉택없이 물어오는 인간들이 있다는데,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다. </p>
<p>그 질문이 너무 희화화되어서 도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중의 하나로 굳어진 나머지 도인들이 그 질문하는 버릇을 버려서인지도 모르겠지만, </p>
<p>아니면 종파가 다른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지만, </p>
<p>내가 만난 도인들은 하나같이 "조상운을 타고났는데, 잘 안 풀리고 있네요" 따위로 말을 시작했었다. </p>
<p>1, 2학년 때를 돌이켜보면, 종로 거리를 지나가다 하루에도 다섯 번 씩은 만나곤 하던 그 도인들이 나이를 먹고 나서부턴 도통 만날 일이 없었는데, 어제 정말이지 근 2년 만에 도인을 만난 것이다. </p>
<p>도인들이 자주 나를 붙잡고 말을 걸면, 어느 정도 최면이 되어서 내가 정말 조상운이 좋은 놈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p>
<p>해서 그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들이 은근히 술자리에서는 자랑스러운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었던 것이다. </p>
<p>&nbsp;</p>
<p>하지만 내 주변에 그런 도인들 안 만나본 사람 하나라도 있던가? </p>
<p>그가 얼굴에 장애를 갖고 있지 않는 한-장애인을 비하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도인들이 꼭 얼굴을 보고 말을 걸어오니까-, 그래서 눈이 하나 없다거나, 귀가 없다거나 하지 않는 한, 또는</p>
<p>그의 얼굴에 용문신이 있지 않는 한, 내가 볼 때 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한다. </p>
<p>그중 경험치가 높은 자들은 나름 관상보는 재주가 늘어서 마음이 빈곤하고 헐거운 자들을 능력 껏 걸러내기나 하겠지, 연상되는 셈이다. </p>
<p>&nbsp;</p>
<p>어쨌든 뭔 놈의 조상운이 그리도 타고났는지, 도인들은 꼭 나에게 막히고 막힌 조상운을 틀어제낄 '키'를 내가 쥐고 있노라고 맘껏 띄워주면서, </p>
<p>이것저것 신상명세를 물어온다. </p>
<p>몇 년 생이냐? 직업은 뭐냐? 몇 월 생이냐? 성이 뭐냐? 고향은 어디냐? 등등</p>
<p>어떤 때는 중매쟁이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거리에서 헌팅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p>
<p>한 번은 대단히 젊은 여성 둘(갓 대학에 입학한 듯이 여겨지던)-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청계천 광장 가는 길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p>
<p>길 좀 안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에게 으레 그런 버릇이 있는 것처럼, 걸어다니는 네비게이터임을 자부하는 나도 꽤나 공들여서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었었다. </p>
<p>이들의 화법은 은근히 효과적인 면이 있어서, 길을 물어보는 중간중간에 자꾸 나의 신상명세를 캐묻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p>
<p>오분 정도 뒤에 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고백하였을 때,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호흡을 맞추면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문장들을 만들어왔겠구나, 따위를 생각했었다. </p>
<p>-영국 드라마 'skins'를 보면 거식증에 시달리던 캐시라는 여자아이가 '왜 아무 것도 먹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회피하는 화법을 시연하는데, 딱 그와 같이 정신없는 수사였다 할 수 있을 것 같다-</p>
<p>차라리 그들이 만담에 빠져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p>
<p>&nbsp;</p>
<p>이런 류의 도인들을 혐오하게 되었던 것은 한 남성 도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뒤 그 실체를 경험하기 위해서 그가 묵고 있는 사무실로 향하던 와중에 알게 된 '방법' 때문이었다. </p>
<p>교보문고에서 책 사보고-거의 6년 전 일이지만 또렷히 기억한다-집으로 가려고 세종문화예술회관 쪽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가 나에게 왔다. </p>
<p>그는 여느 도인들과 달리 매우 차분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고, </p>
<p>살다보면 그렇고 그런 날들이 여럿 있듯이, 굉장한 호기심이 몰려와서 "그럼 같이 가봅시다"라고 한 삼십여분 만에 결심한 것이었다. </p>
<p>사무실은 천호동 쪽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p>
<p>나로서 궁금한 것은, '어떻게 더럽혀진 조상운을 정화시키는가' 따위였으므로, </p>
<p>가는 길에 쉼없이 그에게 묻고 또 물었다. </p>
<p>그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깨끗이 정수한 물이 있는데-뭐 일종의 성수나 정한수가 아닐까 싶다-</p>
<p>그 물을 한 종지 떠놓고, 절 따위를 한다는 것이다. </p>
<p>"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냐"에, "그것만 하면 된다"로 일관하던 그는, </p>
<p>군자역 즈음에 이르렀을 때, 얼마만큼의 돈을 올린다고 고백하였다. </p>
<p>그 순간 나는 못 가겠다고 말하고, 아쉬워하며 붙잡는 그를 뿌리치고선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지하철을 타고 돌고 돌아 동작까지 갔다. </p>
<p>내가 좀 더 기발한 인간이었다면, 그의 등 뒤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브루스 윌리스다"고 외친 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릴 때, 달아나는 것이었는데. </p>
<p>우리는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후로도 두세 정거장을 더 함께 흘러갔던 것이다. </p>
<p>&nbsp;</p>
<p>한 번은 나를 설득시키려는 도인을 반대로 내가 설득시키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p>
<p>그이는 대단히 선한 인상의, 하지만 대단히 작으면서 옆으로 쫙 찢어진 눈을&nbsp;가진&nbsp;여성이었는데, 여느 도인들이 그러하듯이 무턱대고 내 앞에 나타나선, 귓동냥 좀 하고 가시라는 것이었다. </p>
<p>누구에게나 그렇고 그런 때가 언젠가는 반드시 있듯이, 오랫동안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던 나는 그녀를 이끌고 자진해서 다방으로 들어갔다. </p>
<p>그녀가 나의 신상명세를 물어볼 때 마다 나는 똑같이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해서 하나씩 알아나갔고, 그녀가 외대 중문과에 다니는, 당시 4학년 학생이라는 사실을 입수하였다. </p>
<p>나는 외대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한 번 같이 만나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p>
<p>그녀는 난데 없이 나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다 알아요"라고 싸늘하게 답하였다. </p>
<p>나는 차마 그녀에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라고 되묻진 못하였는데, 아마 나의 그런 주저함이 그녀의 의구심이 옳았다고 확신케하였으리라. </p>
<p>그런데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였던 걸까? </p>
<p>어쨌든 우리는 근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유물론자이니 그런 영혼 상의 문제들에 관심이 없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전화번호를 넘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p>
<p>집에 가는 길에, 역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그렇고 그런, 훗날 돌이켜봤을 때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의 직관적인 판단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일을 하곤 하는데, 그녀가 자기 번호를 적어준 종이에 불을 붙여서 담배를 피웠던 것 같다. </p>
<p>다방에서 긁은 카드 영수증과 함께. </p>
<p>&nbsp;</p>
<p>그런 일련의 후회스러운 경험 이후 나는 도인들이 나에게 접선을 요구할 때마다 대판 싸우는 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곤 했다. </p>
<p>허나 이들은 대단히 경솔하면서도 겸손하고, 나즈막하면서도 끈질겨서 도리어 내가 스트레스를 더 받았던 기억이다. </p>
<p>때때로 나와 같이 다혈질인 사람을 만날 때면, 그 날은 매우 운수 좋은 날인 것이다. </p>
<p>끄트머리에 가면 나는 김대중과 이회창이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따위의 말들을 하고 있기 마련이고, 그는 자기가 주일마다 교회도 다니는 사람이다 따위로 끝나버리곤 했지만. </p>
<p>&nbsp;</p>
<p>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변화하는 법이라, 나도 언젠가부터 어떤 인간이 설령 전두환 같은 개새끼더라도 그가 하는 말은 들어주고 보자, 따위의 태도를 갖게 되었는데, </p>
<p>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도인들이 나를 피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p>
<p>문득 길을 지나가다가 저 인간은 분명 도인인데 왜 내 길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지, 같은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p>
<p>내가 더 도인처럼 보였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
<p>나는 내가 생각해도 남들과 사뭇 다른, 어떤 도인상의 경직된 틀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p>
<p>그런데 어제, 비로소 2년 만에 그들이 다시 나를 찾은 것이다. </p>
<p>UFO를 숭배하는 자들이 '맨 인 블랙'을 봤을 때 느낄만한, 약소한 쾌감이 이런 것일까. </p>
<p>&nbsp;</p>
<p>이들은 베테랑이었다. </p>
<p>또한 40대 후반의&nbsp;여성들이었다. </p>
<p>-단 한 번을 제외하고, 나에게 접선을 요구한 도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일종의 그들 나름의 조직전술인가보다-</p>
<p>다짜고짜 나에게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길래, 돈 없다고 응수하였더니, </p>
<p>우유 하나 사줄 돈도 없느냐고 물었다. </p>
<p>아, 아무리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다손 치더라도, 이들은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p>
<p>아니다. </p>
<p>이들은 지금 미쳐있는 것이다. </p>
<p>비록 그 대상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조상교'라서 문제이지만. </p>
<p>아니면 이들은 지금 반대로 나에게 숭고한 기회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p>
<p>나의 막히고 막힌, 더럽게 재수 없는 조상운을 정화시킬 갱생의 기회를. </p>
<p>마치 목사들이 매주 마다 초딩들의 콧물 묻은 돈까지 모두 회수해가는 야비한 짓을 서슴치 않으면서도,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는 낯짝을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그 아이들에게 자기가 신의 거룩한 빛을 보여주고 있음을 자타가 공인할만큼 자부하듯이. </p>
<p>오, 뻔뻔함에도 결이 있는 것이다. </p>
<p>&nbsp;</p>
<p>나는 끝끝내 우유 사주기를 거절하였다. </p>
<p>이들은 나를 편의점 파라솔로 끌고 갔고, 나는 담배 피면서 이야기해도 좋겠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상대가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라 차마 그러질 못했다. </p>
<p>이런 면에서 유럽 인간들은 참 편할 텐데. </p>
<p>이들은 나에게 "인상이 참 무서우시네요. 하지만 덕이 있습니다. 조상복을 참 많이 타고나셨어요. 하지만 조상복이 지금 막혀서 생각이 많으시네요. 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지요. 그건 조상님이 지금 황천을 떠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한이 참 많아요. 그 한을 풀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효도를 하셔야 해요. 집에서 제사는 좀 지내시죠? 그게 다 조상님들 저승가는 길 편하게 가시라고 한을 풀어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혹시 집안에 객사하시거나 요절하신 조상님이 계신가요?"&nbsp; 따위의 궤변을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줄줄 외웠다. </p>
<p>나는 때때로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유시민 같은 인간을 이들 앞에 세워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름 쓸만한 블랙 코미디가 될 수도 있겠다. </p>
<p>어쩌면 나는 내 나이를 속였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p>
<p>어차피 내 인상이 40대 중반 격이니, 큰 맘 먹고 한 6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고 했어야 했는데. </p>
<p>아마 그러면 이토록 직설적이고 싸가지 없는 질문 따위는 받지 않았으리라. </p>
<p>&nbsp;</p>
<p>하지만 그 질문도 받았으니 답은 해야겠다 싶어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p>
<p>두 분 정도가 떠올랐는데,&nbsp;생명체로 간주되기 전에 흡입되어 희생당한 누이 하나와 마흔에 간암으로 돌아가신 알콜중독자 고모 한 분이 있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p>
<p>그런데 이 싸가지 없는 도인들께서는 그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 또는 구체적인 내막은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이 바로, "조상복을 타고난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형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형은 조상복을 타고나지 않으셨고, 그쪽께서 타고나셨네요. 조상님들이 복을 주려고 점지했는데, 그 복이 막혔네요. 조상님들의 기운을 풀어드려야하는데, 그 기운이 보이지 않다고 해서 믿지 않으면 안 돼요. 원래 기운이라는 것은 동양철학에서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있는 거죠. 효도하고 계시죠? 효도 하셔야죠?" 따위의 궤변을 또 타짜의 유해진마냥 쉴 새 없이 늘어놓는 것이었다. </p>
<p>나는 아마도, 너무나 멍청하게도 이 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p>
<p>그들이 질문을 하는 것은 중간중간에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다. </p>
<p>정말로 그것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기 말을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다음 단계의 말을 또 늘어놓기 위한 교두보로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p>
<p>아, 우리네 삶에 그런 질문들이 얼마나 많던가. </p>
<p>즉, 자기가 정말로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내고 싶은 답을 묻고자 하는 질문을 위한 쓸데 없는 질문들. </p>
<p>하지만 이들은, 그렇기에 얼마나 현명하던가. </p>
<p>운동권들이 이들의 현명함을 조금이라도 체득하고 있다면, 그래서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따위의 간사하지만 훌륭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더라면. </p>
<p>&nbsp;</p>
<p>마지막으로 이들은 나에게 직업을 물었다. </p>
<p>아마도 면죄부의 가격을 흥정하기 위함이리라. </p>
<p>나는 거짓말로 사회운동한다고 답했다. </p>
<p>그랬더니 일순간 짤막한 한숨이 나왔는데, 그것에 사업의 결과가 밝지 않을 것이리라, 라는 아쉬움만 담겨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p>
<p>그래서 나는 부득이하게도 '기' 라는 문제에 대해서 답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p>
<p>설령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더라도, 기껏 그들과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소재는 그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p>
<p>&nbsp;</p>
<p>서경덕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 중 氣學(기학, 이 표현 또는 구분은 올바르지 않다. 왜냐면 그것을 이학이나 기학으로 부르거나 구분짓든, 그 모든 것은 성리학이다. 성리학 안에 이미 '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박헌영의 독립운동을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라고 부르거나 구분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박헌영에게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과제는 민족해방이었으므로 그의 독립운동은 두 이념적 지향을 모두 내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편의상, 또 다들 그렇게 많이 부르니까)에 깊이 몰두한 사람들은 자연에 빗대어 '기'를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p>
<p>물론 그들이 자연 자체를 '기'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p>
<p>그러므로 理(리)와 기를 변증법과 유물론의, 실체와 현상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p>
<p>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리와 기 자체가 세계에 대한 은유이듯, 텍스트 상의 개념들을 내 방식대로, 은유로서 해석하여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
<p>그러므로 나는 학문할 자격이 없다. </p>
<p>&nbsp;</p>
<p>그러나 성리학자들이 기 자체를 서구의 고대 사상가들처럼 물질이나 질료 따위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을지언정&nbsp;자연이 아닌 다른&nbsp;어떤 자연적인 것으로 기 개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난감하고 모호한 처지에 빠졌으리라는 점은 쉽게 연상할 수 있다. </p>
<p>즉, 육체의 발달, 계절의 변화 등이 리의 법칙을 드러내는 기의 운동이라고-그러니까 기는 곧 리의 작용, 리가 운동하면 기가 나타나는 것 따위-설명하는데, 또 육체나 계절 그 자체가 기는 아니니 당혹스럽고 난해하지 않은가. </p>
<p>속 편한 유학자가 있었더라면, 개소리 집어치우고, 그냥 그게 그거다고 말하자, 고 하였을 텐데, 그것도 그런 것이 그런 속 편한 유학자가 한 명도 없었겠는가, 말이다. </p>
<p>&nbsp;</p>
<p>또한 성리학이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대단히 진보적인 구석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인간평등을 넘어서 만물평등의 사상이기도 한데, 예를 들자면 '리는 인간 뿐만이 아닌 이 세상 만물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다' 따위의 명제를 보고 있노라면, 으레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방법서설 中)는 데카르트의 글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p>
<p>물론 현대 성리학자들은 이것마저도 확대해석하여 기리니끼리 유학이야말로 서양사상의 근본적인 문제점,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전제를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관점을 끌어낼 수 있는 사상이라고 자랑하지만 말이다. </p>
<p>-실제로 몇몇 생태주의자들은 유학의 이러한 논리를 사용한다고도 한다. 문헌으로 확인하진 못하였지만-</p>
<p>&nbsp;</p>
<p>학자적 태도가 결여된 나는 끝내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그 보이지 않는 기라는 것이 보이지 않다고 말한 유학자는 없어요. 유학자들은 기가 자연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했지요. 저는 아주머니의 기가 제가 알고 있는 기와 다른 것 같네요."라며 거짓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p>
<p>아주머니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p>
<p>하여 나는 "무엇때문에 제가 조상복을 타고 났다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 이유를 좀 알려주세요.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제가 아주머니 말씀을 믿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는데, 그냥 알 수 있다고 하였다. </p>
<p>그 슈퍼한 능력에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니까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기가 아주머니께는 어떻게 보이느냐는 것입니다."라고 물으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아는 거에요. 저희들은 수련을 많이 해서 알 수가 있지요."하는 것이었다. </p>
<p>이때 주사파가 떠오른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p>
<p>북한에 굶어죽는 주민이 수백만에 이른다고 하면, 너가 북한에 가봤냐, 니 눈으로 보고 확인한 거냐, 라고 응수하는 그 비열한 뻔뻔함. </p>
<p>그러면 당신은 갔다왔냐고 물으면 으레 그들은 간첩질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p>
<p>"그래, 난 가봤다."라며. </p>
<p>그래 너희들이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은 가봤겠지, 아니 평양도 가보긴 했겠지, 라고 더 자극했어야 했는데,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더 묻질 못하였었다. </p>
<p>&nbsp;</p>
<p>"잘 모르겠네요."</p>
<p>왜 끝은 항상 이렇게 너저분한지 모르겠다. </p>
<p>나는 매번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허나 그게 뭐 큰 문제일까? </p>
<p>여튼 이들은 나에게 효도하라며 인사했고, 나는 그 말에 담긴 이들의 저주를 느꼈다. </p>
<p>니 운명이 어찌될 지 뻔히 보인다는 투의, 지극히 기분 나쁘고 저열한 저주. </p>
<p>운동권 중 그런 저주 안 해본 사람 어디 있을까? </p>
<p>"10년 뒤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라는 나의 저주는, </p>
<p>"10년 뒤에 니가 운동하고 있나, 내가 운동하고 있나 두고보자."라는 유치한 도발로 몇 년 뒤에 되돌아왔다. </p>
<p>하지만 그렇게 매번 빌빌 꼬아서 아니꼽게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p>
<p>-그렇게 여유부리는 것 또한 나의 문제이지만-</p>
<p>&nbsp;</p>
<p>종교인에게서 주사파의 화법을 떠올린 것은 우연일까. </p>
<p>또 운동권의 화법을 떠올린 것은. </p>
<p>날이&nbsp;어두워 사물이 흐리다. </p>
<p>책이나 봐야겠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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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eptimus</author>
			<category>글들</category>
			<category>성리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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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도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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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리</category>
			
			<pubDate>Thu, 25 Sep 2008 08:28: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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