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입니다.

 

지난 해(2016년) 2월, 그린비출판사는 갑작스럽게 초래된 경영난을 근거로 하여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인원을 모집하고, 희망퇴직을 시행하였습니다(2월에 인원을 모집하였고, 3월 말일자로 조합원 4명을 포함하여 총 9명의 직원이 퇴직하였습니다. 총 14명 임직원 중 9명이 희망퇴직한 것으로, 곧바로 대표이사도 그만두었기에 사내에는 4명의 직원이 남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파주 월롱에 소재한 (회사 소유의) 창고로 사무실을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고, 새로 선임된 대표 포함 모든 임직원이 창고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고로 약 5개월간 출퇴근을 이어가던 2016년 10월, 분회는 노사 간 임금협상을 준비하고 개시 소식을 알려 드린 바 있습니다.1) 다소 늦었지만, 그간 그린비출판사분회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 주셨던 분들께 교섭의 진행 경과와 이후 상황에 대해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1. 교섭 경과

 

2016년도 임금협상에서 분회의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월 170만 원(관리비 포함)의 월세를 지불하면서도 비워 둔 서울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
둘째, 희망퇴직 과정에서 약속한 투명한 경영 공개

 

1)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를 요구한 배경

― 임차인을 찾지 못해 방치된 사무실의 활용과 작업량 증진: 임대계약 기간이 1년 넘게 남은 서울 사무실의 새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파주 월롱으로 출근하게 된 것은, ‘희망퇴직 과정에서 기존 창고 관리 인원도 모두 퇴직했기에, 입출고 및 창고 관리를 위해 최소 1인은 지금 당장 창고 업무에 투입되어야 한다. 관리의 효율과 창고 환경 적응을 위해 증산동 사무실 인원 전원이 월롱 창고로 이전하고, 증산동 사무실은 새 임차인을 찾는 대로 계약을 종료하는 것이 좋겠다’는 회사의 입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은 이러한 회사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에 새 임차인이 나타나기까지 증산동 사무실에서 일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고 회사의 요구를 수용해 파주 월롱 창고로 출근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년이 넘도록 새 임차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사무실은 계속 비어 있는 채로 월세를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분회는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를 요구하면서, 절약되는 출퇴근 시간(왕복 세 시간에 달하는)만큼 무급의 초과노동을 해 작업량을 늘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안전한 업무 환경 보장: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는 작업량 증진만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안전한 업무 환경과도 연관된 문제였습니다. 조합원들은 서울의 주거지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파주 월롱에 소재한 창고로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창고는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인도에 가로등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지 않아, 동절기 퇴근 시에는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해 도보로 15분가량 걸어 월롱역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창고에서 역까지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조명이 밝은 도로는 화물트럭과 군용트럭 등이 수시로 다니는 차도로서 더욱 위협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일련의 사정들을 고려하여 서울 사무실로의 복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으나 사측은 ‘관리비 증가’와 ‘노동 통제의 어려움’을 근거로 하며 서울 사무실로 복귀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 뿐이었습니다. 

 

2) 교섭의 난항

이 과정에서 사측은 그간 조합원들의 업무량(교정량)이 업계 관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켰고, ‘다품종 소량생산만이 살 길’(빠른 시간 안에 보다 많은 책을 생산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경영 기조만을 고집했습니다. 조합원들이 각각 제작, 외서 저작권 관리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으며, 2015년 경영 방침의 변화로 도서기획 업무에 주력했던 점에 대해서 피력하였으나, 이는 전혀 참작되지 않았습니다. 퇴사가 발생했을 때 인수인계를 받아 작업을 진행했거나(그린비출판사는 노조 출범 후 편집 및 디자인 부문에서 단 한 차례의 충원도 하지 않았기에, 퇴사에 따른 업무 부담은 남은 인원들이 분담해야 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 부담은 가중되었습니다), 편집부원들이 나누어 작업했던 책들, 전면개정판 작업 등은 업무량으로 산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지난 2015년 3월 말까지 (경영난을 초래할 수 있는) ‘주주의 고액 배당’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인해 업무가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여기에는 분명 사측의 책임도 존재한다는 노측의 반박에도, 사측은 과거 노사갈등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일말의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노동 의욕은 지속적으로 저하되었고, 교섭을 지속할수록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공방이 교섭마다 반복된다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극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조합의 해산

이러한 연유로 조합원들은 임협 전반과 분회 활동에 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무실 복귀 문제를 포함하여, 경영진의 경영 의지가 거의 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 상황과 의지는 2016년 희망퇴직 시행 당시에서 좀처럼 나아간 바가 없었습니다. 지난 해 11월 28일에 진행된 5차 교섭에서 분회는 <2017년 2월 말 퇴직을 조건으로 한 서울 증산동 사무실로의 임시 복귀>를 요구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분회는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와 퇴직으로 이어지는 결정이 우리 자신을 극단적 선택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법이며, 현재 작업 중인 업무들을 그나마 책임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사측은 재고의 여지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를 수용하였습니다. 또한 그토록 험난했던 증산동 사무실로의 복귀는 퇴직을 조건으로 제안한 지 이틀 뒤인 11월 30일에 곧바로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 2월 28일자로 남아 있던 조합원 2인이 모두 회사를 떠나게 됨으로써, 언론노조 그린비출판사분회는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피로도가 극심한 상태에서 퇴직을 하였기에, 이 같은 교섭의 진행 경과와 분회의 해산 소식을 늦게 알리게 된 점에 대해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2. 분회의 해산 이후 상황: 회사의 소재지와 대표이사의 변경

 

경영상 어려움으로 인해 조합원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고 분회가 해산된 2017년 5월 현재, 전 조합원들은 그린비출판사의 소재지와 대표이사가 변경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합원들이 퇴직을 한 지 만 1달이 된 지난 3월 28일에,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소유주(유일한 주주)였던 유재건 씨가 대표이사직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입니다(변경된 주소지는 유재건 씨가 운영하고 있는 ‘엑스플렉스’의 주소지와 동일합니다). 유재건 씨는 분회에 의해 경영 의혹이 제기된 2013년 10월, 갑작스럽게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바 있습니다.2)

분회의 해산 이후 사무실을 서울로 이전하여 유재건 주주의 신사업체 사무실과 합치고, 주주가 다시 대표이사직을 맡게 된 현재의 상황은, 지난 2013년 임금협상 당시부터 이미 수차례 경영 의혹을 제기한 바 있기에 예상치 못했던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수년간 ‘유재건 전 대표는 이제 그린비와 무관하며 그가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수없이 되풀이했고, 분회 역시도 조합원들이 모두 떠나고 1달 만에 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주주의 고액 배당과 동종의 신사업체 경영이 ‘현금성 자산 부족’을 포함한 경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유재건 씨에게 직접 공개 질의를 진행했던 지난 2014년,3) 사측은 유재건 전 대표가 “노사 간 분규로 인하여 쫓겨나다시피 대표이사직을 그만두”었고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기에 “노동조합이 교섭해야 할 상대는 현 경영진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라고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4) 사실상 회사의 존속과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권이 주주에게 있음에도, 분회는 ‘주주의 선임으로’ 새로 온 대표이사들과 지지부진한 교섭을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해산하자마자 그린비와 엑스플렉스는 사무실을 합쳤고, 그린비의 유일한 주주는 대표이사직을 다시 맡았습니다. 그간 사측이 강조했던 것처럼, 이것이 ‘소유주의 권리이며 권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사측이 항변할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사측이 보인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경영에 대한 무의지, 각종 의혹을 떠올릴 때 이 과정이 노사 간 대화/교섭의 책임을 회피하고 결국에는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니더라도, 1년 전 경영 위기를 빌미로 노동자들의 퇴직을 종용하고 이후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수하다 노조 해산 후 곧바로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은 그 자체로 비상식적이며 비윤리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노동조합이 해산된 지금, 조합원들에게 구속력 있는 대응 방법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간 연대하고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께 사측의 발 빠른 후속 행보에 대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 같은 내용을 알립니다.

 

3. 수많은 독자와 저역자, 출판노동자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린비출판사분회에 소속되어 있던 조합원들을 포함하여, 출판노조협의회 산하 출판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그린비출판사의 경영 행보를 주시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출판계 전반에 퍼져 있는 출판노동자를 경시하는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많은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노동조합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들을 해고로써 내치고, 어렵사리 생긴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시도를 시시때때로 행하는 곳이 바로 출판계이기 때문입니다. 더 건강한 출판 산업을 위해 그린비출판사의 행보를 계속 주시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 든든하게 연대해 주신 수많은 독자와 저역자, 출판노동자들께서도 역시 이 과정에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린비출판사분회의 출범 이래 그간 많은 지지와 연대를 보여 주신 분들과 언론노조 산하 출판노조 구성원들께 이 같은 해산 소식과 일련의 상황을 알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고 먹먹합니다. 그간의 지지와 연대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출판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노동 조건과 출판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려 한다는 다짐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2017년 6월 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

 

 

 


1)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가 설립 4주년을 맞았습니다!” http://blog.jinbo.net/gblu/23

2) “언론노조 그린비분회 투쟁 경과 보고(2013년 7월~2013년 12월 현재)”      http://blog.jinbo.net/gblu/16

3) “[질의서] ㈜그린비출판사 경영 상황에 대한 유재건 주주의 입장을 질의합니다”    http://blog.jinbo.net/gblu/19

4) “노동조합의 성명서에 대한 입장” (분회의 성명서 2014-1에 대한 사측의 입장문. 2014년 12월 3일에 인트라넷에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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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8:30 2017/06/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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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선화 2017/06/05 12: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생 많으셨습니다. 출판 노동자 그리고 동료로서 항상 지지합니다. 처음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2. 김은주 2017/06/05 18: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런 행태에 대해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그린비 저자들과 엑스플렉스 강사님들께 공감과 연대를 호소합니다. 불의를 간과하지 마십시오.

  3. 득명 2017/06/17 23: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끝까지 이렇게 관심을 갖으시는 건.. 해산이 아니라 해소라는 표현이 맞으실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