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의 그냥그저그래 3http://blog.jinbo.net/gimche/2018-03-12T00:23:50+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그람시의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12762012-10-08T23:46:49+09:002012-10-08T23:46:49+09: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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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10102605"><strong>우리는 그람시의 진짜 얼굴을 몰랐다!</strong></a>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2-08-10 오후 5:29:47)</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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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000080;"><strong>[장석준의 '적록 서재'] 그람시의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strong></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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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 이 사람만큼 다양한 얼굴로 해석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이른바 민주 진보 연립 정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를 들먹이고, 혁명적 사회주의를 부르짖는 이들도 그를 추앙한다. 현실에서 전혀 화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서로 다른 정치 노선에 선 사람들이 저마다 다 그람시를 전거로 내세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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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1970년대에 그람시가 처음으로 이탈리아 바깥에서 주목받기 시작할 때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가장 앞장선 것은 영국의 에릭 홉스봄 같은 유로코뮤니스트들이었다. 이들은 한때 당원 수 200만 명을 자랑하고 30퍼센트 이상의 득표율로 주요 지방자치단체 여당 자리를 석권한 이탈리아 공산당을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좌파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으로 치켜세웠다. 이들이 보기에 이 당의 성공을 뒷받침한 이론가가 바로 그람시였다. 즉, 이들에게 그람시는 유로코뮤니즘의 창시자였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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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람시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은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견강부회에 불과했다. 홉스봄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저명한 좌파 이론가이며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이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앤더슨은 자신이 편집을 맡은 잡지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에 작심하고 발표한 정말 긴 논문('안토니오 그람시의 이율배반', <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갈무리 펴냄, 1995년))에서 '유로코뮤니스트 그람시'의 이미지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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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분명 이 땅에 살다 간 '한' 사람이었는데, 홉스봄의 그람시가 다르고 앤더슨의 그람시가 또 다른 것이다. 한편에는 혁명 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간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로코뮤니즘 선구자 그람시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그런 식으로 해서는 부르주아 지배 체제에 흡수되기 십상이라고 경고하는 그람시가 있다. 누구나 과거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정도가 좀 심하다. 이게 그람시란 사상가를 둘러싼 전 세계적 상황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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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람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물론 그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람시 사상의 정전(正典) 역할을 하는 저작이 <옥중수고>(<그람시의 옥중수고>(전2권, 이상훈 옮김, 거름 펴냄, 1999년)인데, 이 책은 그가 감옥에서 공책에 적은 메모들을 모아놓은 것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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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도 아닌 메모들이다. 아마 그 자신도 몇 년 뒤에 다시 봤으면 뭘 생각하고 쓴 것인지 알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파시스트 체제의 감옥 안에서 썼기 때문에 검열을 의식해서 암호를 사용하거나 애써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독자가 읽기에 부적합한 물건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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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는 해독되기 나름이다. 메모는 이어붙이기 나름이다. 따라서 암호로 채워진 이 메모 다발은 요란한 해석의 전투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람시 읽기의 근본적 난점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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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image.pressian.com/images/2012/08/10/50120810102605.JPG" style="float: left; " /><strong><옥중수고> 이전의 글들을 읽어야 한다!</stro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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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야를 <옥중수고> 너머로 확장해보면 된다. 그람시는 감옥에 갇히기 전에도 상당한 분량의 글들을 남겼다. 그 중 다수는 좌파 정당 활동가로서 당 기관지나 좌파 신문에 남긴 논설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분량의 문예 비평도 남아 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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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옥되기 전에 쓴 글들은 <옥중수고>를 손에 든 독자들을 숨 막히게 하는 새롭고 낯선 개념어들의 중구난방 실험과는 거리가 멀다. 이 글들은 당원이나 노동조합원을 독자로 하여, 아주 구체적인 정치 쟁점들을 간명하게 다루고 있다. 좌파 정당의 젊은 지도자이자 무솔리니 집권 초기에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사람의 문제의식이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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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옥중수고> 이전 논고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옥중수고>의 어지러운 숲 속을 헤쳐 나갈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옥중수고> 이전 글들의 명료한 언어를 통해 투옥 이전 그람시의 고민을 날것으로 확인한 뒤에 <옥중수고>로 뛰어들면 뭔가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저런 해석가의 그람시 말고 감옥 밖 숙제를 감방에 끌고 들어와 씨름하는 그 사람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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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그람시를 읽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1990년대에 한국에도 적지 않은 수의 그람시 소개서나 연구서가 소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옥중수고> 이전의 그람시는 <옥중수고>의 전사(前史) 정도로 간략히 언급될 뿐이었다. 더 나아가, 마치 알튀세 학파가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의 '단절'을 이야기하듯이, 초기 그람시(공장평의회 운동 시기)와 후기 그람시(<옥중수고> 시기)를 나눠 둘이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다루는 책들도 많았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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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불만 때문에 나는 2000년대 벽두에 지금 진보신당 녹색위원장으로 있는 김현우와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갈무리 펴냄, 2001년, 이하 <옥중수고 이전>)이라는 책을 번역했다. 영국의 그람시 연구자 리처드 벨라미가 투옥 이전의 정치적 논설들을 골라 모아 놓은 선집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이 책의 번역에 뛰어든 것은 만용이었다. 그람시 정도의 거장의 저작을 번역하는 일은 아무나 손대서 될 게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는 이탈리아어도 전혀 알지 못했다. 영어본을 중역하는 수밖에 없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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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감히 번역에 나섰다. 그만큼 <옥중수고> 이전 글들을 소개하는 게 그람시의 이해에 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번역 과정에서 이를 더욱더 절감했다. 그람시가 20대 초부터 쓴 짧은 글 한 편 한 편을 세밀히 읽고 우리말로 옮길 때마다 계속 <옥중수고>의 난해한 공식들, 그람시 사상의 전체상이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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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번역자들이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남부 문제의 몇 가지 측면들'이란 글을 강독할 때는 어떤 개안(開眼)의 환희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이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논했던 그람시와 <옥중수고>는 모두 허깨비에 불과했다는 느낌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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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수고 이전>이 나온 지 3년 뒤에 한국의 독자들은 바로 이 글 '남부 문제의 몇 가지 측면들'을 더 정확한 우리말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김종법이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 외>(책세상 펴냄, 2004년, 이하 <남부 문제>)라는 제목의 작은 선집을 낸 것이다. 이 책은 <옥중수고> 이전 그람시의 글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요령 있게 모아놓았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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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영어본을 통한 중역이 아니라 이탈리아 원전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람시의 정치 저작 중에서 이탈리아 원전으로부터 직접 우리말로 번역한 책은 이것이 유일하다. 비록 얇은 문고판 선집이지만, 한국의 그람시 소개·연구사에서 한 획을 그은 책이라 할 수 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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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문제, 이탈리아 자본주의 그 자체</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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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람시 일생에서 최초로 주목받은 논설로 꼽는 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지 두 달 뒤에 발표한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이다(이 글은 <남부 문제>에는 없고 <옥중수고 이전>에 실려 있다). 이 글의 발단은 이탈리아 사회당 내의 참전 논란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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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회당은 전쟁 초기에 이탈리아 정부가 중립을 선언하는 바람에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프랑스 사회당과는 달리 전쟁 찬반 문제로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나라 좌파 정당보다 더 원칙적이어서 전쟁 지지의 오명에서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그냥 상황 덕분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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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의 저명한 좌파 논객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른바 '효과적인 중립'론을 들고 나오면서 파란이 일어났다. '중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참전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 때문에 무솔리니는 당을 떠나게 되고, 결국 파시스트당의 두목이 된다. 아무튼 그람시의 글은 무솔리니가 불러일으킨 사회당 내 참전 논란에 대한 논평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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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글에는 전쟁 문제라는 본 주제 외에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것은 글 첫머리에 제시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다. "<strong>이탈리아</strong> 사회주의자들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strong>이탈리아</strong> 역사의 현재 국면에서 <strong>이탈리아</strong> 사회당의 역할(나는 <strong>프롤레타리아트</strong>나 <strong>사회주의</strong> 일반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은 무엇이어야 하는가?'</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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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에너지를 바치고 있는 사회당은 <strong>이탈리아</strong>의 사회당, 즉 인터내셔널을 위해 이탈리아 국가를 장악해야 할 과제를 떠맡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그 지부이기 때문이다. 이 <strong>직접적</strong> 과제, 이 일상적 과제는 당에게 <strong>특수한, 국민적 성격</strong>들을 부여하며 이탈리아의 생활 속에서 특수한 역할, 독특한 책임을 떠맡도록 한다." (<옥중수고 이전>, 63~64쪽. 강조는 원저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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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에서 젊은 그람시는 '이탈리아'라는 말을 몇 차례나 이탤릭체로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이탈리아 사회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실천 과제를 끌어내는 일을 중요시했다. 그람시가 세상에 말문을 연 첫 번째 글의 서두에서 이 과업을 힘주어 강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23세의 청년 사상가가 자신 평생의 과제를 선포하는 장면이라 하겠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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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는 혁명 일보직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특히 그람시가 활동하던 공업 도시 토리노에서는 피아트(Fiat) 자동차 공장을 중심으로 공장 평의회 운동이 불붙었다. 1920년 여름, 한창 점거 파업을 벌이던 피아트의 공장 평의회는 경영진 없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초유의 실험을 펼쳤다. 당시 <새 질서(L'Ordine Nuovo)>라는 사회주의 신문을 발간하던 그람시와 그의 젊은 동지들이 이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를 통해 일약 이탈리아 좌파의 새 지도자군으로 떠올랐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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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1년 뒤, 사회당의 리보르노 당 대회를 앞두고 그람시는 <새 질서>에 논설 하나를 발표했다. 이것이 <남부 문제>에 수록된 '리보르노 전당 대회'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그람시는 이탈리아 자본주의가 남부 농촌 지역에 대한 북부 도시들의 수탈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거대한 대중 투쟁이 성과 없이 끝난 게 불과 몇 달 전인 상황에서 사회당이 당 대회를 통해 확인해야 할 도전 과제가 바로 이 문제임을 그람시는 강조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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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탈리아 남부 농업 지대의 저발전에 대해서는 그람시 이전에도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남부 문제'는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람시는 이것을 단순히 남부만의 문제로 따로 떼서 바라보지 않았다. 이것이 남부 문제를 강조한 다른 이들과 그람시 사이의 차이였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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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남부 문제를 북부와 남부 사이의 불균등 결합 발전의 문제로 보았다. 즉, 북부의 발전이 남부의 저발전에 바탕을 두고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남부 문제는 이탈리아 자본주의와는 별개로 존재하거나 그것에서 비롯되는 여러 모순들 중 단지 하나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탈리아'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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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발전 노선을 좇아 권력을 획득했다. 이탈리아 자본주의는 농촌을 산업 도시에 예속시키고 중부와 남부 이탈리아를 북부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탈리아 부르주아 국가에서 도시와 농촌 간의 문제는 단순히 대규모 산업 도시와 같은 지역과 그 도시에 직접 예속된 농촌 사이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에서의 한 지역과, 이 지역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채 세부적인 특징에 있어서 구별되는 다른 모습을 가진 지역 간의 문제를 함께 나타내고 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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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이를 통해 지배와 착취를 수행한다. 즉,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직접 작용하고, 국가 안에서는 가난한 농민들과 반프롤레타리아들로 구성된 이탈리아 노동 민중을 포함해 보다 광범위한 계층들에 작용한다. 분명한 것은 산업 노동 계급이 자본가들과 은행가들의 손아귀에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쟁취할 때에만 이탈리아의 국민적 삶의 중심 문제, 즉 남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부 문제>, 43쪽)</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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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북부의 자본가, 은행가들과 남부 농업 블록의 반동적 지배층 사이의 동맹이 이탈리아 지배 체제의 중심 기둥이라 보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배 세력들 사이의 동맹은 남부 문제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북부 산업 노동자 계급과 남부 농민이 이 동맹의 하위 구성 요소로 포섭될 때에만 남부 문제는 완성된다. 달리 말해, 대중이 지배 체제에 '끼워 맞춰져야만' 지배는 최종적으로 작동하게 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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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랬다. 북부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남부 농민들에 대한 북부 자본가 계급의 수탈 덕분에 안정된 일자리와 임금 수준을 유지하는 셈이었다. 레조 에밀리아 같은 북부 공업 지대에 뿌리를 둔 사회당 및 노동조합 내부의 개혁주의자들은 이런 문제에 애써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북부 제조업 호황의 이득을 나누는 데 골몰하는 것을 방조하거나 거들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남부 농민들은 북부 노동자들을 '노동 귀족'으로 질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의 분열이 지배 체제의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 데 화룡정점 역할을 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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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운동의 단절적 자기 혁신이 필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았다. 이제까지 개혁주의자들은 대중의 분열을 극복하기는커녕 그것이 작동하는 데 부속품 역할을 해왔다. 반면 새 시대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보다도 북부 산업 노동자 계급과 남부 농민들 사이의 동맹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심장에 육박해 들어가는 도전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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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르노에서 있을 공산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 사이의 단절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혁명적 산업 노동 계급은 국가 기생주의 안에서 타락해버린 사회주의의 경향들과 절연할 것이다. 혁명적 산업 노동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귀족주의를 창조하기 위해 남부에 대한 북부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경향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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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귀족 정치란, 부르주아 보호 무역주의 관세 제도에 밀착해 협동조합적인 보호 무역주의를 수립했으며 노동 대중 대부분의 지원으로 노동 계급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국가의 다른 생산력에 대한 산업 및 금융 자본주의 지배의 합법적인 형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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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해방은 오직 북부의 산업 노동자들과 남부의 가난한 농민들의 연합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이 연합은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분쇄할 것이고,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농업에 필요한 산업 생산의 새로운 제도를 건설할 것이고, 이탈리아의 후진적 농업을 산업화하고 노동 대중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될 산업 생산의 새로운 기구를 건설할 것이다." (<남부 문제>, 43~44쪽)</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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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역사적 블록' : 그람시의 분석의 목표이자 실천의 출발점</stro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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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르노 당 대회에서 사회당은 결국 둘로 쪼개졌다. 사회당에서 떨어져 나온 당 내 좌파들은 공산당을 새로 만들었다. 그람시도 새 당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1924년부터는 당의 핵심 지도자이자 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람시는 1926년 파시스트 정부에 검거돼 이후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해야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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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은 1926년 투옥되기 직전에 쓴 글이다. 그람시의 체포로 인해 이 글은 4년 뒤에야 공산당의 망명 기관지에 발표되었다. 말하자면 이 글은 <옥중수고> 이전에 쓴 논설들 중 마지막이자 <옥중수고>의 사색이 시작될 시점의 그람시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첫 번째 수고(手稿)다. 이 글이야말로 <옥중수고>의 난삽한 원고 더미를 실로 꿰어주는 역할을 하는 서문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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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그람시는 남부 문제를 다시 한 번 그리고 더 정교하게 다룬다. 그 요지는 리보르노 당 대회 시기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다만 남부 문제가 작동하는 구체적 방식에 대한 분석이 더욱 상세해졌다. 이 분석은 '국가-시민사회', '헤게모니', '전통적 지식인-유기적 지식인', '수동 혁명', '기동전-진지전' 같은 <옥중수고>의 개념어들을 예시하는 착상들로 가득하다. 감옥 안 그람시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게 미발표 원고인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의 내용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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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르노 당 대회를 앞둔 그람시가 북부의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남부 문제의 작동에 한 몫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에서는 남부 지식인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람시가 보기에 남부의 주류 지식인들은 반동 지주층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남부 농업 블록이 지탱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때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남부 출신 지식인 베네데토 크로체도 이런 관점에서 매섭게 비판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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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서는 농업 블록 위에서, 지금까지 농업 블록의 균열이 너무 위태로워지거나 블록의 붕괴로 이어지게 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데 실제적으로 봉사해온 지식인 블록이 작용하고 있다. (주스티노) 포르투타토와 크로체가 이러한 지식인 블록의 대표자들이며, 따라서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활발한 반동적 인물들이라고 여겨진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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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의미에서 크로체는 매우 중요한 '국민적' 기능을 완수했다. 그는 남부의 급진적 지식인들을 농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그들이 국민적이고 유럽적인 문화에 참여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문화를 통해 이 지식인들이 국민적 부르주아 계급에 그리고 결국 농업 블록에 동화될 수 있게 만들었다." (<남부 문제>, 98~100쪽)</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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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지식인'이란 크로체 같은 대학자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크로체 식의 사고가 대중에게 스며들어 일상의 관계들에 시멘트 역할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그람시가 말하는 '지식인', 후에 <옥중수고>에서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 이들이다. 이들의 일상의 고투가 없다면, 지배 블록에는 금세 금이 가고 말 것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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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람시는 노동자 계급과 농민 사이의 동맹에 대한 고민도 지식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 동맹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부 농민들 내부에서 성장한 새로운 지식인 집단이 북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대변자들과 만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주목한 게 <자유주의 혁명>이라는 저널을 통해 남부 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주창하던, 그람시와 동년배이자 남부 출신 지식인인 피에로 고베티와 그 주위의 그룹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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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우리 당 동지한테서 <자유주의 혁명>의 사상적 조류에 맞서 투쟁하지 않았다고 비난받곤 했다. (…) 우리가 고베티에게 대항해 싸울 수 없었던 것은, 적어도 그가 운동의 주요 노선에 있어서만큼은 반대해서는 안 될 운동을 지향하고 대변했기 때문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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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인 문제와, 지식인들이 계급 투쟁에서 지향하는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베티는 실제로 우리를 다음과 같은 계층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 그는 북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남부 문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좀 더 총체적인 연결을 통해 전통적 다른 영역 위에 남부 문제를 상정했던 일련의 남부 지식인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남부 문제>, 102~103쪽)</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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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고베티 역시 그람시와 마찬가지로 무솔리니 정권과의 투쟁 과정에서 순교했다. 하지만 그람시의 기대대로 이들 그룹('행동당'으로 발전한다)은 이후 반파시즘 투쟁에서 공산당과 더불어 양대 축 역할을 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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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람시가 바라본 남부 문제의 전체상이 이러했다. 이 그림은 역사 유물론의 전통적 도식인 '토대/상부 구조' 틀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남부 문제는 '토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탈리아 자본주의에 덧씌워진 '상부 구조'의 문제도 아니다. 흔히 그람시를 '상부 구조'의 사상가라고 하는데, 남부 문제와 대결한 그람시는 결코 '상부 구조'만을 강조한 사상가는 아니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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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옥중수고> 시기의 그람시는 '토대와 상부 구조의 통일'로서, 사회를 이들이 통일된 구체적 양상으로 파악한다는 요청으로서 '역사적 블록(historic bloc)' 개념을 제시한다. 이후 <옥중수고>의 해석가들은 '시민 사회', '헤게모니', '진지전' 등의 개념에 비해 '역사적 블록' 개념을 상대적으로 가볍게만 다루곤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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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굳이 말하면, '역사적 블록'의 사상가였다. 나머지 개념 실험들은 모두 다 '역사적 블록'의 전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 요소들이라고 보면 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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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에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유기적 지식인들의 과제는 우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역사적 블록'으로서 포착하는 일이었다. 즉, 한 사회가 지구 자본주의에 끼워 맞춰져 있는 특정한 조건에 바탕을 두고 다시 그 사회의 대중이 자본의 운동에 끼워 맞춰지는 구체적 양상(=역사적 블록)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자본'의 추상적 운동을 파악하는 데서 더 나아가 '사회'가 이에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간파하려는 시도였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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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분석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헤게모니', '유기적 지식인', '수동혁명' 등의 개념들이었다. 역사적 블록에 끊임없이 응집성을 부여하는 힘이 곧 '헤게모니'다. 그리고 일상의 노동을 통해 이 헤게모니가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세력이 곧 지배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들이다. 혁명적 위기 상황에서는 이런 유기적 지식인들의 활동이 대중의 혁명적 분출을 다시 지배 체제에 끼워 맞추는 '수동혁명'으로 나타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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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적 블록'의 탄생</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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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기존 '역사적 블록'의 타파와 새로운 건설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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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에게 이 길의 출발점만큼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자본의 지배에 대중의 생활이 끼워 맞춰진 바로 그 지점에서 대중들 스스로(적어도 그 중요한 일부가) 이제까지의 관성을 과감히 거부하는 것이다. '역사적 블록'의 중심에 위치한 대중 내부의 분열 및 포섭의 지점에서 이러한 외침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하지 않겠어!"</div>
<div>
그래서 1920년 토리노 파업 당시 조반니 졸리티 총리의 자유주의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과감한 양보 조치(임금 대폭 인상에 노동 시간 단축, 게다가 경영 참여 권한까지!)를 제시했을 때, <새 질서>의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졸리티 정부의 제안은 결국 토리노의 투쟁과 동시에 들끓던 남부의 민심은 짓밟으면서 반면 북부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북부 자본의 지불 능력으로 포섭해보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에서 이렇게 회고한다.</div>
<div>
"실제로 피아트의 숙련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 계급조합주의는 승리를 거두겠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도자와 안내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상실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더 빈곤한 노동자 대중에게 특권 계급으로 보일 것이며, 농민 대중에게도 부르주아와 같은 수준에 있는 착취자로 인식될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이 언제나 그랬듯이 농민 대중에게, 그들의 고통과 비참한 빈곤의 유일한 원인으로 여겨질 핵심적 특권 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를 소개하려 들 것이다." (<남부 문제>, 86~87쪽)</div>
<div>
그렇다. 처음에는 어떤 집단적 '행위'가 필요하다(<파우스트>). 1920년의 이탈리아 상황에서 그런 '행위'란 곧 북부의 노동자들이 남부의 수탈과 결합된 일체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새로운 '역사적 블록'의 씨앗이 될 수 있다.</div>
<div>
물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여기에 달려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원초적 '행위'를 해석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며 이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럼 이제 이 '행위'는 다른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관계들의 원형이자 지속적 참조점이 된다. 이러한 반복과 확산의 과정이 곧 대항헤게모니의 형성 과정이며, '진지전'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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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지적, 도덕적'이란 수식어를 즐겨 사용했다. 이 용법에 따른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지배 대중 측의 '지적, 도덕적' 행위다. 그런데 여기에서 '도덕적'이란 말이 막연한 윤리적 행위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기존 '역사적 블록'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판단을 바탕으로, 대중의 분열과 포섭을 낳는 그 사회관계들을 뒤집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만들어내는 실천이어야 한다.</div>
<div>
달리 말하면, 이것은 '자본'의 지배를 '사회'의 자기 통치로 대체할 그 주역, 즉 '사회'를 새로이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피지배 대중이 기존 '역사적 블록'의 반복을 끊는 행위에 착수하고 이 행위를 씨앗 삼아 구성할 새로운 관계들은 곧 '자본'을 대체할 '사회'의 실체, 그것이다. '자본'의 운동에 결박되어 있던 '사회'가 드디어 스스로 그 결박을 풀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람시의 사상 전반은 '자본'을 대체할 '사회'를 어떻게 실체화할 것이냐는 '사회주의'의 가장 심층에 자리한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이기도 하다.</div>
<div>
흔히 그람시를 '정치 이론의 대가'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정치'의 이미지와 범위에 따라 그람시를 해석하려 든다. 그러나 그람시에게 '정치'란 분명한 자기만의 맥락과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피지배 대중의 집단적인 윤리적 '행위'를 이끌어내려는 일체의 노력이다. 여기에서 주어는 어디까지나 대중들 자신이며, 그 포부는 몇몇 정책적 지향을 넘어선다.</div>
<div>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가 이런 것이다. 그람시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북부 도시와 남부 농촌 사이에 작동하던 모순이 어찌 보면 노동 계급 내부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현직-실직, 남성-여성 등의 분열로 작동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람시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대화해야 할 사상가이자 우리 실천의 선배다.</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1276,'/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276+%22%EA%B7%B8%EB%9E%8C%EC%8B%9C%EC%9D%98%20%3C%EB%82%A8%EB%B6%80%20%EB%AC%B8%EC%A0%9C%EC%97%90%20%EB%8C%80%ED%95%9C%20%EB%AA%87%20%EA%B0%80%EC%A7%80%20%EC%A3%BC%EC%A0%9C%EB%93%A4%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276&t=%EA%B7%B8%EB%9E%8C%EC%8B%9C%EC%9D%98%20%3C%EB%82%A8%EB%B6%80%20%EB%AC%B8%EC%A0%9C%EC%97%90%20%EB%8C%80%ED%95%9C%20%EB%AA%87%20%EA%B0%80%EC%A7%80%20%EC%A3%BC%EC%A0%9C%EB%93%A4%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276&title=%EA%B7%B8%EB%9E%8C%EC%8B%9C%EC%9D%98%20%3C%EB%82%A8%EB%B6%80%20%EB%AC%B8%EC%A0%9C%EC%97%90%20%EB%8C%80%ED%95%9C%20%EB%AA%87%20%EA%B0%80%EC%A7%80%20%EC%A3%BC%EC%A0%9C%EB%93%A4%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1276?commentInput=true#entry1276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한겨레)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8352009-08-22T22:21:40+09:002009-08-22T22:21:40+09:00<!--FCKeditor--><p> <strong>2009/01/18 03:54<br />
</strong><font color="#105738">한겨레의 이 기획이 2주에 한 차례씩 연재된다면 이 서문적인 글에서 언급된 이들만 대충 해도 올 한해 내내 기사가 나올 것 같다. 그 동안 새롭게 등장한 진보 지식인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물론 기사가 충실하다는 전제하에서이지만...<br />
<br />
그런데 소개된다는 이들 중에 내가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지난 10여년간 정말 공부를 하지 않은 게 틀림 없다. 이들의 이론을 아는 게 나에게,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의욕이 솟는다. <br />
<br />
아직은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내가 아직은 젊구나 하면서 스스로 자위하게 된다. 물론 내 본업이라도 충실히 한 다음에 할 것이긴 하지만...</font> </p>
<p> </p>
<p>-----------------------------------------<br />
<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3763.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3763.html" target="_blank"><font color="#5a5194">끝나지 않은 ‘역사’…다시 쓰는 ‘미래’</font></a></strong> (한겨레,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09-01-16 오후 07:02:55)<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font></strong> <br />
<br />
2주에 한 차례씩 연재될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기획에 소개할 이론가를 선정하고 기획하는 과정에 도서출판 길과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등 국내 소장학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또 이들은 이 시리즈의 주요 집필자로 나서 진보 사상의 지도를 그린다.<br />
<br />
<strong>① 연재를 시작하며</strong><br />
<br />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진보 사상은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며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br />
<br />
<strong>■ 마르크스주의 이후 어떤 진보 사상인가?</strong> <br />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들머리 진보 사상은 역사적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이냐란 화두와 마주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진보 사상은 근본적으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다룰 지식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더는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유일한 지배 원리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 누구도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일한 ‘역사의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극단적 폭력을 수반하는 고도의 과학기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모두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br />
<br />
<strong>■ 새로운 진보 사상의 주역은 누구인가?</strong><br />
우리가 이번 기획에서 다룰 진보 지식인들은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했던 진보 사상의 대가들을 잇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을 계승하고 있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장뤼크 낭시, 브뤼노 라투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이번 기획의 주인공들이다. 바디우와 발리바르,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지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사상의 성좌에 새겨 넣고 있다면, 낭시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마르크스,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의 유산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무위(無爲)의 공동체’라는 독자적인 사상 경지를 이룩했다. 라투르와 스티글레르는 각각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인간적 삶의 형식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지, 또 비자본주의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길은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있다. <br />
<br />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와 카를오토 아펠 이후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계승한 악셀 호네트와 한스 요아스가 이번 기획의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비판이론을 독창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사상 지평을 열어가는 크리스토프 멩케도 주요 인물로 소개될 것이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종말>이란 책으로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엘마 알트파터나 <히스테리>로 독창적인 여성 연구의 새 차원을 보여준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도 <한겨레>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br />
<br />
이번 기획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진보 지식인들 소개다.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배출한 이후 20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탁월한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세계 사상의 흐름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다소 때 이른 전망을 낳고 있다. 그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번 기획에서 다룰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잔니 바티모는 이미 독자적인 사상 영역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선구자들이다.<br />
<br />
영·미권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프레드릭 제임슨,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진보 이론의 최전선에서 작업하는 지식인들이 이번 연재 기획의 중추를 이룰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현대 문화연구 창시자의 한 사람인 스튜어트 홀이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와 급진 민주주의의 제창자로 잘 알려진 샹탈 무페가 포함돼 있다. 또 탈근대 사회의 모순적인 삶의 양상들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이론가들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가장 주목받는 세계체계론 연구자인 조반니 아리기와 생명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내재한 정치철학적 함의를 추적하고 있는 니콜라스 로즈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인들이다. ‘정보시대 3부작’으로 잘 알려진 도시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와 비판지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하비의 작업에서도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br />
<br />
지금까지 거론한 인물들은 이른바 ‘북쪽’, 곧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진보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 이래 우리가 깨닫게 되었듯, 21세기 진보사상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는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의 청산이다. 우리가 서양 바깥의 진보 지식인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br />
<br />
그중에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인도의 지식인들이다. ‘현존하는 인도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라나지트 구하는 소수 전문가들 외에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지하고 가난한 대중을 지칭하는 서발턴(subaltern)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후반 진보 사상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 놓은 역사학자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에서 영감을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 연구에 비판적으로 동조하면서 탈식민주의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제창한 ‘센코노믹스’도 21세기 진보 사상의 중요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br />
<br />
우리와 인접한 동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대안을 구상하는지 살펴볼 것이며, 중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인 왕후이가 제창하는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연대에 관한 구상을 들을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좀더 많은 인물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서구 형이상학의 대안을 제시하는 해방 철학의 대가 엔리케 두셀은 우리에게 남아메리카 진보 사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br />
<br />
<strong>■ 또다른 진보의 세기를 위하여</strong> <br />
지금 이 순간도 카지노 자본주의의 거대한 도박 노름에 민중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마치 시곗바늘을 30여년 전으로 되돌린 듯 공안통치의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정권의 기세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반동의 역풍이 거셀수록 진보의 나무는 조금씩 희망의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가 독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진보의 세기가 시작될 수 있고 또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의 씨앗을 뿌리려고 하는 이유다. </p>
<p> </p>
<p>-------------------------------------------<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6072.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6072.html" target="_blank"><strong><br />
<font color="#5a5194">탈근대가 쫓아낸 ‘진리’를 다시 불러오다</font></strong></a> (한겨레, 서용순/세종대 초빙교수·철학, 2009-01-30 오후 09:49:14)<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②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font></strong><br />
<br />
<font color="#193da9">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 라바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1968년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식인이었고,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며 옛 스승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70년대 말 마오주의 운동의 쇠퇴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집합이론과 여러 탈근대 철학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1988년 <존재와 사건>을 집필했다. 이는 새로운 진리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철학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였다. 이후 <철학을 위한 선언> <윤리학> <조건들> <메타정치 소론> 등에 이어 2005년에는 <존재와 사건>의 2권인 <세계의 논리>를 출간한다. 이 밖에도 바디우는 현실의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는 <정황>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고, 옛 동지들과 결성한 ‘정치 조직’(Organisation Politique)을 통해 ‘당 없는 정치’를 기치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펴고 있다.</font> </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알랭 바디우</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strong><font color="#1153a4">■ 사르트르·알튀세르·마오를 거쳐</font></strong> <br />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요일 저녁. 이미 일흔을 넘긴 노교수의 강의가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쥘 페리 대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에서부터 현직 교수, 교사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젊은 학생들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강의실을 채우고 있다. 시간이 되자 백발의 노교수가 천천히 강의실로 들어온다. 곧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200여명의 청중은 정적 속에서 강의에 집중한다.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이 강의의 주인공은 알랭 바디우(72)라는 프랑스 철학자다.<br />
<br />
바디우는 그의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견줘 국내에서 그다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대표작인 <존재와 사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이래 끊임없이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프랑스 철학의 많은 거장들이 타계한 지금, 바디우는 오늘날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br />
<br />
그의 이력은 복잡다단하다. 장폴 사르트르를 추종하던 젊은이였던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1968년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70년대 마오주의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유를 추구하게 된다. 그 결실이 바로 <존재와 사건>이다. 이 저작에서 바디우는 집합이론을 통하여 존재론을 재조명하고, 퇴장당한 것으로 간주된 ‘진리’를 다시 철학 속으로 끌어들인다.<br />
<br />
<font color="#1153a4"><b>■ 진리의 부활과 철학의 복권</b></font> <br />
프랑스를 중심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에 대한 비판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른바 탈근대 철학은 전통 철학이 추구했던 진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진리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모든 비(非)진리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같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비판이었다. 탈근대 철학은 이를 통하여 철학이 더는 진리를 욕망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철학은 이제 진리 없는 상대주의의 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추구했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진리도, 어떤 유토피아도 사유할 수 없다는 우울한 승인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던 80년대 후반, 바디우는 그에 반대하여 철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야심찬 시도를 감행한다.<br />
<br />
이는 무척 독특하고 흥미로운 시도이다. 바디우는 철학을 복권시키기 위해 기존의 철학을 넘어선다. 그의 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진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에게 진리는 여러 영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u>진리란 복수(複數)의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 복수의 진리이다. 그러한 진리는 예술·정치·과학·사랑 같은 철학 외부의 영역에서 생산된다. 철학의 할일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생산된 진리를 ‘사유’하는 것</u>이다.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탈근대 철학에 맞서 바디우는 ‘진리는 있다’고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탈근대 철학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진지한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가운데 전통 철학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u>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지닌 ‘사건’으로부터 출현한다</u>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과거의 철학이 말하고 있는 진리가 아닌 혁신된 진리이다.<br />
<br />
이렇게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완전히 거부하고 진리를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철학을 구원하고자 한다. 이전의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어느 한 영역에 가두었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다른 진리들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진리는 폭압적인 형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맹종하는 실증적 철학과 정치적 진리를 특권화하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이렇게 어느 특권적 영역에만 갇혀 있는 철학을 원하지 않는다. <u>정치를 특권화하는 철학은 예술·과학·사랑 같은 영역을 모두 정치에 종속시키고, 과학을 특권화하는 철학은 다른 영역을 도외시하게 된다</u>는 것이다. <u>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철학</u>이다.<br />
<br />
바디우는 그렇게 혁신된 철학을 통해 진리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진리에 대한 사유는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이고, 사건 이후에 생산된 ‘진리’에 대한 사유이며, 그 진리에 충실한 ‘주체’들의 실천에 대한 사유이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의 산문과, 파울 첼란, 페소아의 시학에 집중하고, 현대 집합이론의 혁신에 천착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이다.<br />
<br />
<font color="#1153a4"><b>■ 오늘의 현실과 19세기의 유사성</b></font> <br />
그는 오늘의 현실을 19세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광범위한 빈곤층의 증가, 젊은이들의 허무주의, 불평등의 확대 등은 모두 19세기를 지배했던 현상들이다. 그에 따르면 ‘파리 코뮌’이라는 19세기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 이후 혁명의 기운은 쇠퇴하였고, 다시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위기를 맞이하기까지 50년에 가까운 휴지기가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확실히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68년 혁명 이후 모든 해방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u>자본이 노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그 관계는 분명 역전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공산주의는 끝났고, 우리에게 실현해야 할 해방의 가설이 더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인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가설을 일신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보편적인 것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u>. 그것이 <u>우리가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u>이다.<br />
<br />
<font color="#1153a4"><b>■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b></font> <br />
바디우가 말하는 평등은 결코 객관적인 평등, 실현해야 할 목표로서의 평등이 아니다. <u>임금이나 기회의 평등, 계약에서의 평등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평등하다’는 선언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지배관계를 실질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평등의 선언</u>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해방을 포기하고 주어진 지배질서에 투항하는 일일 뿐이다. <u>모든 의미 있는 정치적 선언은 항상 평등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를 통해 보편적 정치로 나아간다. ‘역전의 정치’의 동력은 항상 이러한 평등의 선언에 있는 것</u>이다.<br />
<br />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적 정치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이다. 분명 오늘날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최근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 위기의 확산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공포라는 괴물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강박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러한 인내를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u>오늘날 해방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u>인 것이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는 지켜내야 하는 진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무명용사들은 어디에나 있다. 바디우는 말한다. 당신이 두 번 믿지 않을 것을 사랑하라고. 그리하여 진리 속에서 영원하라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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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8667.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8667.html" target="_blank"><font color="#5a5194">‘충분한 민주주의’ 이뤘다는 주장은 반민주적이다</font></a></strong> (한겨레, 최원/시카고 로욜라대 박사과정 수료, 2009-02-13 오후 07:02:29)<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③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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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6699">1942년 프랑스 아발롱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를 사사하고, 네덜란드 네이메헌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나, 1981년 당의 보수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축출된다. 현재 파리 10대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어바인대 교수다. 이데올로기, 국가, 시민권 문제 등을 이론화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80년대부터 대중들의 교통양식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를 적극 수용했다. 이를 기반으로 해방과 변혁이라는 근대 정치의 두 가지 상에 동일성들과 경계들의 폭력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인륜(civility)의 정치를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민주주의와 독재> <역사유물론 연구>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대중들의 공포> 등이 있다.<br />
<strong><font color="#a341b1">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고,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 ‘국민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지만, 국민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갖는다.</font></strong> </font> </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에티엔 발리바르</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지금 세계 곳곳에는 때아닌 만리장성들이 건설되고 있다. 중동에는 본디 테러리스트를 막을 목적으로 세웠지만,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오는 길을 차단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또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주변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려는 이주자들을 막기 위한 감시초소 장벽이 있고, 아메리카 쪽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멕시코 국경에 세워진 9척 높이의 일명 ‘죽음의 장벽’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상품들이 자유롭게 유통된다고 해서,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넘다 죽어갔다. 이렇게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죽음의 장벽’ 멕시코 쪽 벽면에 주민들은 여러 벽화를 그려 놓았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경계를 침범하지 않았다. 경계가 우리를 침범해 온 것이다.”<br />
<br />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당면한 삶의 필요에 따라 이동한 것뿐인데 이를 막아서는 경계야말로 부당한 것 아니냐는 항의다. 그러나 이 문구는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도처에 경계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경계는 이제 국경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복제되고 증식되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를 침범해 오고 있는 중”이다.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이 제도화됨에 따라, 사회는 일정한 경계선 안에서 동질성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점점 더 다양한 경계선들에 의해 분할된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br />
<br />
외부 식민지들이 공식적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시대에 중심국들의 국경 안에는 새로운 식민지들이 은밀하게 건설되고 있으며, 제국주의 국가의 옛 경계를 방어하던 비민주적 제도와 통치술도 모습을 바꿔 중심 안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도시 내 게토나 도시 외곽 빈민촌의 형식을 취하는 이러한 내부 식민지들은 세계 중심국들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속도로 같은 장애물이 그곳을 에워쌈으로써 분리(segregation)의 장벽을 이루고, 경찰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처럼 이 내적 경계를 방어한다.<br />
<br />
경계들의 이러한 폭발적 증식 속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소멸이다. 어떤 이가 피부색을 이유로 검문당하고 강제송환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곳곳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견줄 만한 제도적 인종주의가 출현하고, 과거 민주주의의 상대적 성과들이 소실된다. 이른바 “내국인들”은 초과착취되는 이주자들의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권리의 현저한 후퇴를 감내하거나, 자신의 경제적 곤궁에 대한 불만을 이주자들에 대한 증오로 투사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휩쓸린다.<br />
<br />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할 철학자가 에티엔 발리바르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그의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스피노자의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발본적 개조를 도모해온 철학자다. 특히 80~9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와 그 난점을 분석하는 한편, 이를 근대 국가의 민족형태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연관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경계들”에 대한 독창적인 논의를 생산해왔다.<br />
<br />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체제로 정의하지 못한 채 <정치론>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엄밀한 사고의 결과다. <u>민주주의란 본디 하나의 정치체제에 주어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대중의 실천일 따름</u>이다. 이러한 실천은 원칙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으로 재개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u>실존하는 모든 정치체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민주화되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 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u>.<br />
<br />
발리바르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대적 경계가 바로 국민 경계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최대한 달성되었다고 하는 서구의 “복지국가들”조차 국민 경계 안에서 다소간 평등한 사회권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곧 <u>국민 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었지만, 동시에 국민 성원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그 너머에서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가졌다</u>는 것이다. 마치 멕시코 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가 미국 쪽에서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듯이 말이다.<br />
<br />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민 경계가 가졌던 이러한 전략적 기능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것도 경계의 위기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자 자본과 국가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역량도 그만큼 위축되었고, 정치는 초국가적 기술관료들이나 국제법 전문가들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경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곧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경계는 복잡성을 더해가면서 인구통제와 민주주의의 제한을 위한 수단으로 그 반민주적 성격을 노골화하고 있다.<br />
<br />
발리바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경계들의 민주화”를 제안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경계 내에서의 민주주의를 고민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경계들의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경계들을 단순히 철거하고 세계공동체의 단일한 시민권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경계들의 제거는 더 많은 폭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u>문제는 경계들을 이루는 반민주적 제도들을 변혁하고 경계들의 내부와 외부가 민주적으로 교통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과 실천을 정치의 중심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다. 상이한 정치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거주하는 바로 그곳에서 더는 “시민”과 “이방인”(또는 “적”)이 아닌,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서로-시민들(co-citizens)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가 발명되어야 한다</u>.<br />
<br />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한 정치는 세계정치이며, 시민권은 국민들을 관통하는 관(貫)국가적(transnational) 수준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주자들은 “우리”와 더불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재개할 동료 능동 시민들로 인정되어야 한다.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이 우리에게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적 정치의 새로운 지형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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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두적 우파국가’에서 살고 있다 (한겨레, 양창렬/파리1대학 박사과정, 2009-02-27 오후 06:51:18)<br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④ 자크 랑시에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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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치는 결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한겨레, 박준상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2009-03-13 오후 07:29:46)<br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⑤ 장뤼크 낭시 Jean-Luc Nancy<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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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⑦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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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리를 인정하라”…투쟁은 계속된다 (한겨레, 문성훈/서울여대 교수, 2009-04-24 오후 07:01:08)<br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⑧ 악셀 호네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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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분투로 역사의 진보에 개입하라 (한겨레,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09-05-15 오후 10:38:16)<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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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은 없다, 미적으로 타당한 개인이 있을 뿐 (한겨레, 김동규/연세대 강사, 2009-05-29 오후 07:21:17)<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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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경제’로 위기의 자본주의 넘어서라 (한겨레, 임운택/계명대 교수, 2009-06-12 오후 07:28:17)<br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⑪ 엘마 알트파터 Elmar Altva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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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남성언어가 파괴한 여성자아의 흔적” (한겨레, 이현재/서울시립대 연구교수, 2009-06-26 오후 06:56:39)<br />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⑫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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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5115.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5115.html" target="_blank"><font color="#333333">‘벌거벗은 생명’의 영속화에 던지는 경고</font></a></strong> (한겨레, 박진우/연세대 연구교수, 2009-07-10 오후 07:01:19)<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⑬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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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2b8400">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간행된 발터 베냐민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를 지낸 뒤 베로나대학과 유럽·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건축대의 철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이후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1998), <예외 상태>(2002), <군림과 영광>(2007)을 거치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font> <br />
<font color="#174600"><strong>‘호모 사케르’는 희생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를 죽여도 어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대 로마법 용어였다. 아감벤은 이 용어를 통해 정치를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strong></font></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아감벤</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현존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 세계 전모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감벤의 저술 활동, 특히 그의 주저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권이 훨씬 넘는 저술들이 이미 세상이 나와 있으며, 한국 독자들도 지난 2년 사이에 두 권의 번역서를 접한 상황에서 그의 사유를 한층 상세히 재검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호모 사케르>라는 책, 그리고 이 책에 이르는 과정과 이후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동시대의 모든 사유와 고민들을 앞선 세기와는 단절된 형태로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는 아감벤의 문제의식에 비춰 본다면, 또한 이를 통해 20세기가 결코 풀지 못한 과제들(여기에는 정치적 좌우의 대립, 계급과 인종의 대립, 법과 민주주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범주들이 포함된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는 과제와 직접 마주친다면,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br />
<br />
아감벤은 원래 로마대학 출신의 법학도였다. 학창시절부터 이미 파졸리니, 모라비아 등이 주도한 지식인 서클에 적극 참여하면서 문학과 미학, 철학 분야로 사유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1970년대에 그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 세 명의 사상가와 본격적으로 마주쳤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는 초기 아감벤의 문학적·미학적 사유뿐 아니라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정치철학적 사유의 핵심적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1978년에 이탈리아어로 간행된 <발터 베냐민 전집>의 편집자로서 그의 이름이 유럽 지성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이래, 그가 직접 수집한 청년기 베냐민의 미발굴 서한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루어진 베냐민 사상 전체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그에 따르면 베냐민 사상의 진면목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유대 신비주의적 해석의 자장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성 학계와의 갈등은 그의 명성을 유럽의 좁은 문학 연구자 서클의 범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후 데리다·들뢰즈·낭시·바디우 등 프랑스 지식계의 지도자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당시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사유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아동기와 역사>에서 <산문의 이념>을 거쳐 <언어의 죽음>에 이르는 저술들은 이런 지적 여정과 편력을 반영한 중간 결과물이자, 동시에 다음 단계의 정치적 성찰을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br />
<br />
1995년에 처음 간행된 <호모 사케르>는 같은 이름으로 간행된 연작의 첫째 권에 해당하면서, 그의 사유의 전모를 밝히는 데서 반드시 거쳐야 할 대표작이다. 사회주의권 붕괴가 결코 ‘역사의 종언’일 수 없음을 증명했던 유고 내전의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정치를 본격적인 사유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하였다. <호모 사케르>라는 이 낯선 제목은 원래 고대 로마법 전통 속에서 범죄자로 판정받은 자를 뜻하는데, 성스러운 자이자 저주받은 자여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처벌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용어를 통해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 패러다임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 이래의 정치이론이 오랫동안 주권자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주권자와 법의 관계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규정해 왔던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통해 그는 정치를 궁극적으로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니까 주권 권력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주권 속에 포함되는 이 모순적 존재, 즉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는 법·주권·시민·인권처럼 오랫동안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 범주로 간주되었던 용어들을 의문에 부치게 만든다. 이 용어들은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정치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재구성되어야 할 사유의 재료들인 것이다. <br />
<br />
사실 이 책은 처음 간행될 당시에는 아감벤의 필생의 사유가 응축된 ‘주저’로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새롭게 시도한 정치철학적 사유의 단초들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제기하는 사유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나아가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이 사회적 이슈로 변모할 때, <호모 사케르>가 제시했던 새로운 사유 모델은 한 차례 대중들의 충분한 시선을 끌 수 있었다.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의미망 속에서 의미가 점차 모호해져 가던 기억·증언·재현 같은 주요 개념들에 대해 우리를 다시금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갔던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 : 호모 사케르 3>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과 <호모 사케르>라는 저자의 패러다임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다. 아울러 9·11 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호모 사케르>가 언급했던 “예외 상태의 영속화”가 눈앞의 현실임을 역설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br />
<br />
그가 볼 때 예외 상태란 법의 공백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 법질서의 핵심이기도 하다. 법보다 ‘법’의 ‘힘’이 우선하며, 그것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정치사의 양대 열쇳말이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유의 근본 단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의 또다른 변용이자, 새로운 영역에서의 이론적 시도다. 2007년에 발표된 <군림과 영광>이라는 또 하나의 <호모 사케르> 연작은 ‘영광’의 스펙터클, 그것이 가리고 있는 경제 우선의 통치 메커니즘의 계보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제가 정치를 압도하는 근대 생명정치의 특성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새롭게 발표되는 그의 저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br />
<br />
이제 우리 앞에는 마지막 질문이 놓여 있다. 과연 이처럼 주권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호모 사케르’들의 사회, 혹은 ‘영속적인 예외 상태’ 속에서의 삶, 그리고 ‘군림과 영광’의 스펙터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는가. 과연 <호모 사케르>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호모 사케르>가 전개한 수많은 논의들을 거치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와 그 주체라는 오랜 패러다임을 오늘의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호모 사케르> 연작이 진행되면서, 그가 가장 시달렸던 과제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해답은 모호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저자는 우리에게 최종 답안을 전해 줄 것이라 약속한다. 그것이 바로 <호모 사케르> 연작이 도달할 최후의 종착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여전히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종결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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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061101184134099&outlink=1]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9061101184134099&outlink=1" target="_blank"><font color="#333333">우리의 '벌거벗은 삶'을 징벌하다</font></a></strong> (머니투데이 | 2009/06/11 12:30)<br />
<strong><font color="#193da9">[MT교양강좌]조르지오 아감벤, 인간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규정<br />
</font></strong> <br />
"오늘날 국가권력과 대칭되는 위치에 있으면서 절대적인 기본권으로 간주되는 생명의 신함이란 무엇일까?"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시각을 지닌 비평가다. 지난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나 파리의 국제철학원과 베로나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아감벤의 저서 '호모 사케르'는 21세기 전 세계 인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대변하는 아감벤의 문제작으로 ‘권력 대(對) 벌거벗은 생명’을 중심축으로 서양 사상사의 맹점을 해체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정치 철학’을 제1철학으로 정립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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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철학적 정의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정치적 정의 모두를 넘어 인간은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새로운 제1원리를 도출한다. 그가 분석하는 역사 인식이나 세계관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체제의 상관관계를 넓은 지성사적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다. ‘sacer’는 라틴어로 ‘성스럽게 되다’, ‘저주를 받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로마법에서 유래한 단어로, 직역하면 성스러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즉, '호모 사케르'란 벌거벗은 생명,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을 말한다. 아감벤은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1920년대 독일 사상계의 문제의식을 먼저 소개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사이에 흐르는 공통의 물음을 되짚어 본 뒤 이들 사상가에 주목하여 정치적 실타래를 추적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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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법의 문제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양자에 대한 비판적인 계승을 시도한다. 아감벤에게 있어서 주권은 아우슈비츠와 핵시대, 그리고 9.11이후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는 상황에서의 정치와 법질서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개념이다. 그가 보기에는 문제는 단지 주권이 비상사태를 근거로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삶으로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극단의 삶을 만들어낸다는데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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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의 위기는 기존의 법과 삶의 관계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철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감벤은 순수한 잠재성의 정치를 통한, 보편과 개별의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의 상을 제시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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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id="fck_dom_range_temp_1250945777397_669">---------------------------------------------<br />
<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7667.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7667.html" target="_blank"><font color="#333333">‘다중’은 네트워크 투쟁으로 ‘제국’에 맞선다</font></a></strong> (한겨레, 윤수종/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2009-07-24 오후 06:58:25)<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⑭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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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105738">안토니오 네그리는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독일 역사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68혁명 이전까지 인식론, 철학, 정치학, 국가론 등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썼다. 1959년 이후 자율주의적인 좌파잡지(정치집단)에 참여했다. 1970년대에 일어난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감명을 받으면서 자율주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고,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억압적 상황에서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와중에 그의 대표 저작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출간됐다. 198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가타리를 비롯한 탈근대이론가들, 이탈리아 망명자들과 함께 연구와 정치 활동을 병행했다. 1997년 마이클 하트와 <제국>의 집필을 끝낸 뒤 이탈리아로 돌아가 수감됐다가 2003년 자유의 몸이 됐다. </font> <br />
<font color="#174600"><strong>근대적 주권은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 새로 등장하는 ‘다중’은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다중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절대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strong></font></span></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네그리</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안토니오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제국>(2000)과 <다중>(2004)의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두 저작은 1970년대 이래로 일관된 연속성을 갖고 전개돼온 그의 오랜 작업의 결실이다. 네그리는 또 하나의 지배 장치로 변질된 공산당과 종래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곧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자본주의적 지배체제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성의 측면에서는 노동자를 축으로 한 ‘계급’ 주체성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배치로서의 ‘다중’으로 이행했다고 파악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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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br />
</strong>네그리는 <제국>에서 국민국가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이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인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측면에서 부연될 수 있다. 근대적 주권에서 제국적 주권으로의 이행은 우선 영토적인 국경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근대적인 국민국가들과 그 국가들 사이의 지배와 종속 관계인 제국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그 대신 이제는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국적인 자본과 그러한 자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국제기구들(유엔·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세계무역기구 등)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가 됐다. 따라서 국민국가 시대에는 국경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중요했지만, 제국적 주권하에서는 국경과 외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이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며, 모든 전쟁은 제국 안의 시민전쟁, 즉 내전이 된다. <br />
<br />
제국의 시대에도 위계와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정밀하게 강화된다. 위계와 차별은 생물학적 차이나 가시적 차이에 의존하는 인종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유동적이고 유연한 일상적인 체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잔인해지는 일상적인 실행체제 속에서 관철된다. 제국적 주권은 하나의 중심적인 갈등을 둘러싸고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 갈등들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되는 것이다. <br />
<br />
제국의 또다른 특징은 생산의 성격 변화다. 네그리에 따르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이전과 달리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거대 공장의 노동력이 차지했던 중심적 역할이 쇠퇴하고, 비물질적이고 소통적인 노동력이 대신하고 있다. 여기서 비물질적 노동이란 “서비스, 문화 상품, 지식, 또는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왜 이러한 변화가 중요할까? 그것은 이런 노동의 형태 속에는 협동이 노동 자체 속에 완전히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곧 비물질적 노동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이 더 이상 자기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자본에 의해 가치증식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치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그리는 바로 여기에서 제국의 질서에 이미 내재해 있는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제국 권력의 지배가 결코 완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네그리의 말로 요약하자면, 제국 권력의 효율성은 폭탄에 의한 파괴에, 화폐에 의한 판결에, 소통에 의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다. <br />
<br />
<strong>다중, 소통하는 자율적 집합주체의 등장 </strong><br />
<제국>이 지배에 대한 분석이라면, <다중>은 부제인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의 와중에 등장하는 다중과 그에 따른 사회운동의 방향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multitude)은 무차별적인 무리로서 ‘대중’(mass)이 아니라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br />
<br />
네그리는 이전에도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 대신에 주변층이나 실업자, 여성, 학생 등을 포괄하는 사회적 노동자 개념을 사용해 왔다. 다중은 이 개념을 좀더 확장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u>다중은 군중, 인민, 대중, 국민, 계급 등과 같은 종래의 정치적 주체 개념과 대비되는 새로운 주체 개념이다. 다중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종족, 젠더, 성적 지향 및 상이한 노동형태와 생활방식, 세계관, 욕망 등과 같은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다중은 계급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u>된다. 특히 직접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을 포함하게 된다. <br />
<br />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다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도 변화한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 모델은 집중제의 마지막 표현이었으며, 네트워크 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네그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투쟁은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널리 확산됐고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br />
<br />
<strong>대의제를 넘어 절대적 민주주의로</strong> <br />
이러한 네그리의 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데 가장 주요한 장애를 대의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u>대의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다중의 역능구성 과정을 통해 기존 권력을 혁신해 나가는 구성권력 전략을 사고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u> 따라서 네그리는 <u>대표를 만들어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화를 막으면서 다중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조직화해 나가는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u>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바로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대의제를 파괴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구성은 대안 제도를 만드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주체들이 아래로부터 욕망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사회관계를 구성해가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했던 절대적 민주주의다. <br />
<br />
네그리의 이런 주장은 많은 쟁점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존의 좌파 운동에 대해 비판점을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는 당 형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네트워크 형식의 운동을 강조하고 대안 세계화 운동, 다양한 소수자 운동과 자율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분석했지만 노동을 구성(노동자 계급을 조직)하려고 했듯이, 네그리는 제국을 분석하지만 대중을 구성(구성권력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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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0137.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0137.html" target="_blank"><font color="#333333">거짓진실 벗긴 ‘약한 사고’…변혁 추동하는 ‘강한 실천’</font></a></strong> (한겨레, 박상진/부산외대 교수, 2009-08-07 오후 10:18:13)<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⑮ 잔니 바티모 Gianni Vattimo</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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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105738">잔니 바티모는 19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해석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종교와 사상의 문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로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탈근대적 사고로 연역하면서 해석학의 기초 위에 이른바 ‘약한 사고’의 이론을 주창했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와 인터넷이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좌파 정치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1964년부터 2008년까지 토리노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쳤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진실에 대한 예술의 주장>, <기독교 이후>, <허무주의와 해방>, <해석학적 공산주의> 같은 책들을 썼고, 국내에 <투명한 사회>와 <근대성의 종말>이 번역돼 있다. </font> <br />
<strong><font color="#174600">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서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font></strong></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바티모</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
<p>이탈리아의 철학자 잔니 바티모는 탈근대성이라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약한 사고’라는 사유와 실천 형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철학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바티모가 말하는 탈근대성은 근대성을 폐기하거나 이어받는다기보다, 심화하고 비틀고 치유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한층 복잡한 사고를 가리킨다. 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중문화와 매스컴, 인터넷이 날로 번창하는 현대 세계는 무수한 입장들이 가로지르는 네트워크로 짜인다. 그런 상황은 새로운 좌파의 철학과 정치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br />
<br />
바티모는 탈근대성을 다원주의로 파악한다.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할 때 발생한다. 반면 절대적인 진리는 민주주의를 저지한다. 절대 진리가 있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절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을 반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와 이별하는 시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한껏 높이는 시대다. 바티모에 의하면, 진리가 단단하고 영속적인 객관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존재론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진리를 재해석과 재맥락화, 재서술에 의해 새로 구성되는 어떤 것으로 선별하고 채택해야 하는 해석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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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세계를 묘사하기보다 해석해야 한다. 탈근대적 해체가 통일된 역사서술에 종말을 고한다면, 그를 위한 철학은 ‘차이의 모험’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를 사건으로 인식함으로써 진실의 개념에 해석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진실은 없고 해석만이 있으며, 따라서 진실의 가치는 해석들의 차이들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여기서 해석하는 주체의 자리가 중요하게 떠오른다. 진실이나 존재는 주체의 해석 행위에 따라 가변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티칸과 같은 종교 기관이 의도적인 설교를 하고, 미국과 같은 정치적 제국이 자본주의를 선전하며, <엔비시>(NBC)나 <시엔엔>(CNN) 같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선택된 뉴스를 통해 ‘객관적 사실’을 정의한다면, 철학은 진실이란 단지 해석들의 게임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br />
<br />
우리 시대에 철학은 논증적인 담론보다는 일종의 교화하는 담론이며, 지식의 발전과 진보보다는 인류의 교화를 향한 담론이다. 철학자의 임무는 영원을 이해하도록 인류를 이끄는 플라톤 식의 어젠다와 상응하지 않는다. 그보다 인류가 역사를 향해, 역사와 함께 나아가도록 만든다. ‘약한 사고’는 결코 사고의 약함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는 더는 논증적이지 않고 교화적이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약한 사고’에 근거한 철학은 주장이 아니라 호소이며 선언이다. 주장은 응답을 기대하지 않거나 거기에 대처하려 하는 반면, 호소와 선언은 응답을 기대하며 그 응답과 함께 커나간다. <br />
<br />
바티모는 오늘날 정치와 철학이 이해하고 구성해야 할 진실의 유일한 지평은 사회적·문화적 대화의 인식론적 조건들을 재검토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u>진실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분배와 참여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일반 대중이 가장 잘 이해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진실과의 이별과 그에 따른 ‘약한 사고’는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토대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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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약한 사고’를 펼치는 바티모는 ‘좌파에 대한 좌파의 철학자’라고 불릴 만하다. 그것은 여전히 절대적 토대를 전제로 하는 좌파에 비해 바티모는 ‘좌파 철학’을 토대의 붕괴와 재구성을 통해 추구하기 때문이다. <u>좌파의 정치는 무조건적인 도덕적 의무, 보편타당성의 주장, 초월적인 합리적 전제들을 회의하고 비틀고 재구성함으로써 가능하다</u>. 따라서 철학은 좌파 정치에서 부수적이지 않다. 바티모와 같은 좌파에게 철학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회정치적 주도권을 지닌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약해진 마르크스’를 주창하면서 ‘약한 사고’를 정치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br />
<br />
돌이켜보면, 바티모는 68혁명에 참가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수감된 그의 학생들이 보낸 편지에서 바티모는 형이상학적 주체를 주장하는 폭력적 논리를 발견하고, 절대 원칙을 생산하는 철학은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했다. <u>그의 급진성은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회의하고 비판하며 끊임없는 재사고의 대상으로 올리면서 이루어졌다</u>. 그런 입장에서 바티모는 1970년대 이래 좌파 정치에 관여했고, 바티모를 위시한 철학자들이 급진적이지 못하다는 붉은 여단의 압력을 폭력으로 간주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 정치에서 혁명과 같았던 ‘탄젠토폴리’(뇌물도시) 사건에서 정치적 열의를 보였다. 그 뒤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접은 상황에서 바티모는 언론 기고를 통해 논쟁을 지속시켰고, 그와 함께 베를루스코니 체제를 비판했다. <br />
<br />
바티모는 1999년부터 5년 동안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인권과 문화, 교육, 매체와 같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바티모의 유럽의회 활동은 다원주의의 확립으로 두드러진다.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용어를 삽입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 바티모는 유럽은 다원주의적이어야 하며, 단일 종교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과 가치를 부정하고 망각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기독교적 가치는 세속주의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자신을 포기하는 방식의 사랑이라는 가장 기독교적인 개념에 토대를 둔다. 그런 면에서 <u>세속주의는 다양한 종교들이 제한 없이 스스로의 신앙을 추구할 수 있는 다원주의와 통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교적’ 힘은 세속주의의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토대를 제공해준다</u>.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 개념을 넣으려는 바티칸의 압력은 바티모의 눈에 유럽의 다원성을 좀먹는 교조적 형이상학의 발현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세속주의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종교성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br />
<br />
바티모가 유럽에서 본 것은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의 꿈이다. 유럽연합은 초국가적 국가가 점령이나 침공, 전쟁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해 구성된 최초의 경우다. 바티모는 유럽연합을 진지한 정치적 진보의 표상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자연스러운 기반이 아니라 다양성들의 자발적인 기초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단 하나의 언어와 종교, 인종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종교, 인종에 의해 구성되었기에, 무한하게 뻗어나가고 적용될 수 있을 공동체라고 바티모는 굳게 믿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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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모의 좌파적 사고와 정치 실천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u>사회주의는 모든 사회적 가치와 권력의 민주화가 펼쳐지는 우리의 집단적 삶을 국가적으로 조절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는 ‘투명한’ 민주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투명한 민주 사회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공통의 결속된 원칙들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을 남기는 사회</u>다. ‘불투명한’ 사회에서 폭력은 형이상학적 구조와 그것이 빚어내는 궁극적 진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반면, 진정한 인간 존엄성은 기존의 자연스러운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재고하는 개인들의 자유에서 나온다. <br />
<br />
이제 보편적 전통이 와해되고 절대적 진실이 붕괴하는 세속화의 근대 역사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이러하다. 우리에게 형이상학적 구조와 궁극적 진리는 무엇인가. 그들에 맞서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소통을 이루는 공간은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답과 함께 새로운 체제의 구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나름대로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약한 사고’는 그를 위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사유와 실천의 형식이다. </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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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72515.html]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72515.html" target="_blank"><font color="#333333">‘통치성’ 메스로 신자유주의를 해부하다</font></a></strong> (한겨레, 서동진/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2009-08-21 오후 08:52:56)<br />
<strong><font color="#193da9">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16) 니컬러스 로즈 Nikolas Rose</font></strong> <br />
<br />
<font color="#105738">니컬러스 로즈(62)는 현재 영국의 런던 정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생명과학, 생명의학, 생명공학과 사회 연구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학자다. 유대계 후손으로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줄곧 사회학 분야에서 이론적 작업을 펼치고 있다. ‘영국 통치성 학파’의 좌장으로 ‘현재의 역사’라는 그룹을 조직해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 바탕한 서구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에 진력하여 왔다. 최근에는 생정치, 다시 말해 생명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들이 생산하는 효과와 권력에 이론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font><br />
<strong><font color="#174600">통치성 개념을 통해 푸코는 권력을 지식과 주체화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을 통해 해명하고자 시도했다. 로즈는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이론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동시대 자유주의 권력의 해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정련했다. </font></strong> </p>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로즈</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니컬러스 로즈는 흔히 통치성 연구로 알려진 푸코주의적 사회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미셸 푸코가 1970년대 후반 콜레주 드 프랑스의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강의노트에 등장한 ‘통치성’이란 개념은 일종의 이론적 프로그램처럼 받아들여졌고, 영국을 중심으로 독특한 푸코주의적 사회이론 그룹이 만들어진다. 통치성 학파라고 알려진 이론가들은 실은 ‘현재의 역사’라는 연구자 네트워크에 참여한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는 여러 저작으로 출간됐고, 이는 현재 ‘통치성 연구’라고 불리는 흐름의 바탕을 닦은 작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즈는 이 그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br />
<br />
로즈는 영국에서 특히 강력했던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속에서 이론적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병리학과 정신의학에 관한 푸코 초기 저작에 영향을 받으면서 <심리학 복합체>, <영혼을 통치하기>와 같은 초기 주요 저작을 완성한다. 이는 영국의 정신병리학 기관이던 타비스톡 연구소에서 민속지적 방법을 통해 정신병리학 제도의 권력과 작용을 분석했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로즈의 이론적 관심을 전환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푸코의 통치성에 관련된 글과 그의 세미나를 통해 발표된 제자들의 논문들이었다. <br />
<br />
그는 ‘현재의 역사’라는 그룹을 조직하고 그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널 <경제와 사회>를 통해 그 성과를 소개했다. 이 시기 그의 이론적 성과를 묶은 것이 피터 밀러와의 공동 저술 논문을 묶은 <현재를 통치하기>와 그의 신조어인 ‘선진자유주의’란 개념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자유주의적 권력을 분석하고자 시도한 <자유의 권력들>이다. 아마 로즈의 이론적 성과를 집약하고 있을 <자유의 권력들>은 신자유주의라 알려진 정치권력을 분석한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는 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통치성 개념을 권력 분석의 이론적 도구로 다듬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br />
<br />
<u>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이라는 이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돌출한 개념</u>이다. 그것은 정치철학의 주권론과 국가론 혹은 경제적 결정을 은폐하는 허구적 상부구조로서의 국가권력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 탐색 과정에서 출현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왕의 목을 베기’라는 푸코의 유명한 표현은 점차 ‘국가의 통치화’에 관한 분석으로 다듬어졌고 그는 이를 자신의 작업을 망라하고 조직할 수 있는 개념이라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이론적 개념이라 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통치성을 통해 푸코는 권력을 지식과 주체화라는 개념을 통해 재구성하고 이를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을 통해 해명하고자 시도했다. 로즈의 작업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에게서 특기할 점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이론으로서 체계화하고 이를 동시대 자유주의 권력의 해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정련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br />
<br />
그는 통치성 혹은 그가 선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u>‘정치적 합리성’을 크게 세 가지의 성분으로 나눈다. 그것은 첫 번째 지식과 언어,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무엇보다 그것이 행사되는 대상을 구성하고 창안해야 한다</u>. 예를 들어 어디까지가 경제적인 삶의 세계이고 무엇이 사적인 삶의 세계인지는 전연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경제적인 삶이라 할 때, 성장·효율·능률·합리성·진보·성과·이득 같은 것 역시 무엇을 가리키고 그것은 어떻게 판별되고 측정하며 평가해야 할지 전연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무한히 다양한 삶의 세계들은 그것을 읽고 분석하고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빚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다양한 지식과 언어를 생산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br />
<br />
<u>두 번째로 테크놀로지를 들 수 있다. 권력은 단순히 관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특정한 효과를 겨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장치·도구·계산방식 등을 만들어낸다</u>. 이는 성장·진보·안녕·안전·교정·개선 같은 다양한 목표를 충족하고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 지식들을 생산하고 그에 관련된 인물·기관·제도·자격·보상 같은 것들을 끌어들인다. <u>세 번째로 권력은 윤리 혹은 주체화라고 할 만한 것으로 이뤄진다. 그것은 자유주의 권력의 결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권력은 무엇보다 자유를 동원하면서 작동하는 것임을 가리킨다</u>. 사람들은 행복·안전·건강·성공 등 다양한 포부와 욕구를 가지고 다양한 삶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때 사람들은 그런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하고 타인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련된 다양한 규범과 행위의 코드에 관련을 맺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 혹은 주체화라고 할 수 있다. <br />
<br />
로즈는 이 세 가지의 성분으로 구성된 권력의 해부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역사적 변전을 분석한다. 그는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를 크게 자유주의·복지주의·선진자유주의라는 단계로 나눈다. 자유주의란 18세기에 형성된 초기 서구 자유주의 권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된 특징은 권력이 초월적인 원리나 임의적인 의지를 통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즉 그것이 행사되어야 하는 대상에 대한 지식(특히 정치경제학)을 배경으로 신중하고 또한 효과적으로 행사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더불어 권리를 행사하는 법적 주체라는 겉모습에도 실제 삶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개인들을 통치받는 대상 혹은 주체로 만들어낸다. <br />
<br />
이런 초기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의 등장, 개인주의의 만연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면서 혹은 로즈가 강조하는 개념을 빌리자면 숱한 ‘문제화’를 통해 복지주의로 변이하게 된다. 복지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를 통한 통치’라고 말할 수 있다. 복지주의는 무엇보다 ‘사회’를 발명하고 그를 통해 권력이 행사하는 대상과 주체를 전연 다른 방식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기술로서 사회보험과 사회복지를 동원한다. ‘연대’란 개념을 통해 권력이 행사하는 대상은 공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의무와 책임을 나눠 가지는 사회적 시민 혹은 국민으로 변형된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혹은 로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진 자유주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 것일까. <br />
<br />
그것은 무엇보다 ‘사회의 종말’이란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연대라는 이상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나눠 가진 사회적 시민은 이제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개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한 친화성과 정서적 유대에 기반한 ‘공동체’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는 위험의 관리를 둘러싼 테크놀로지 역시 감사, 책무성, 성과 측정과 같은 것으로 바꾼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예는 복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복지로부터 노동 연계 복지로 혹은 능동적 복지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런 변화는 자신을 돌보는 개인을 겨냥하고 그들의 책임 부여를 요구한다. <br />
<br />
신자유주의 분석을 위한 유용한 이론적 틀로 통치성 개념이 각광을 받으며 1990년대에 서구 학계에 일약 통치성의 이론적 붐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일어나고 로즈와 동료들의 작업 역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작업은 자유주의 권력에 관한 치밀한 분석에도 권력이란 개념을 특권화하면서 현실에 관한 통치를 분석하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의 위상을 제거하고 정치를 사회학화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그것은 로즈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푸코를 경유하여 정치를 사고하려 했던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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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에 딱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정인 교수가 뉴라이트 전문가도 아니지만, 옮겨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br />
뉴라이트가 진보를 표방하는 게 남는 장사인지 여부는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뉴라이트들에게도 보수보다는 진보가 더 우월한 가치로 다가가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뉴라이트가 언제부터 자유주의를 전세낸 것인지... 그들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올곧게 투쟁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어도 고개를 끄덕여줄 터인데...<br />
</span>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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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387]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387"><font color="#333333">조중동 광고낸 뉴라이트 “우리가 진보”</font></a></strong> (미디어오늘, 2009년 07월 16일 (목) 11:11:28 류정민 기자)<br />
<font color="#193da9"><strong>‘자유주의 진보연합’ 창립식…진보정당 “뉴라이트로 장사 안되니까 속임수” </strong></font><br />
<img alt="" src="http://www.mediatoday.co.kr/news/photo/200907/81387_86860_130.jpg" /> <br />
‘자유주의진보연합은’은 16일 오후 한국언론회관에서 창립식을 열기로 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에는 임헌조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최진학 뉴라이트 전국연합 정책실장,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김종규 전 한국청년회의소 인천지부 수석 부회장, 이용원 동서디지털방송 대표이사 등이 공동 대표로 참여한다. <br />
<br />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조중동에 낸 신문광고에서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가 진보입니까”라고 물으며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창립선언문에서 “진보를 가장한 허황된 급진세력들로부터 이제 ‘진보’를 되찾아 와야 한다”면서 “좌파들이 만들어 놓은 낡은 프레임을 깨고 선진한국의 문턱에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개혁시키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br />
<br />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을 지낸 최진학 공동 대표는 “‘진보’란 보수자유주의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단어”라며 “진정한 ‘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행동을 일삼으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참칭하는 세력들에게서 ‘진보’라는 단어를 되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br />
<br />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진보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이나 세력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 상대를 제거해야 할 세력으로 간주하는 게 바로 수구적인 모습이다. 진정으로 진보를 표방하고 싶다면 다른 이들의 생각에 열린 자세를 가지라”면서 “뉴라이트로 장사가 안 되니까 이름만 살짝 바꿔서 국민에게 속임수로 다가가려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p>
<p> </p>
<p><strong><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문정인 교수 관련 글</span></strong></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 -------------------------------------<br />
<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47415.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47415.html"><font color="#333333">“뉴라이트, 보수 자유주의만 강조 양극화 눈감아”</font></a></strong>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4-01 오후 05:58:43)<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펴낸 강정인 교수 <br />
“한국, 서구사회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 전통 취약”<br />
민족·급진주의 등 4대 이념으로 민주화 과정 설명</font></strong><br />
<br />
“자유주의가 독재의 명분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사회주의는 과잉억압되고, 민족주의는 신성화됐습니다. 이걸 ‘일탈’이나 ‘파행’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한국 정치사회가 갖는 고유성과 특수성의 결과라고 봐야지요.”<br />
<br />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자유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급진주의의 경쟁과 타협이란 관점에서 정리한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후마니타스)이 출간됐다. 집필에는 강정인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김수자 이화여대 교수, 문지영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정승현 서강대 교수, 하상복 목포대 교수가 참여했다. 대표 필자인 강정인 교수는 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서구 근대가 300여년에 걸쳐 발전시킨 여러 이념들이 압축적이고 필사적으로 투쟁해온 역사”로 규정했다.<br />
<br />
서구와는 다른 한국적 특수성을 강 교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1930년대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개념화한 이 용어는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른 후발 근대화 국가에 나타나는 과거 질서와 미래 질서의 동시적 병존 상태를 가리키는데, 강 교수는 이것을 한국 정치질서의 모호성과 불안정성을 해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서구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가 출현하고,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합니다. 반면 한국 같은 후발국가에서는 구질서의 이념이 잔존하는 가운데 온갖 근대 이념들이 동시적으로, 급작스럽게 출현합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 안에 과거 질서인 권위주의와 미래 질서인 자유민주주의가 병존하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게 되는 거지요.”<br />
<br />
강 교수가 볼 때 보수주의 정권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가 붕괴한 것은 그들이 ‘세계시간의 압력’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배이념이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충돌하면서 지속적인 정당성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전통이 취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u>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현실을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이념적 활력과 계급 역량이 취약했던 상황에서 자유주의보다 더 광범위한 호소력을 지닌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거에 보수·반동화</u>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br />
<br />
<img alt="" align="right"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0402/6000211895_20090402.JPG" />최근 강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뉴라이트 등이 주도하는 ‘보수의 쇄신’이다. 한국 보수주의는 저항적 자유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적인 자기변신에 나서는데, 이들은 민주화된 정치현실과 게임법칙을 수용하고 보수주의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대한 지지와 탄탄히 연계시킴으로써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이것을 ‘보수세력의 자유주의화’로 정의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명실상부한 지배이념의 지위를 확보합니다. 아울러 권력을 상실한 과거 보수세력이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법치주의와 헌정주의에 호소하게 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입지가 한층 강화된 것이죠.”<br />
<br />
하지만 보수의 쇄신에 대한 강 교수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복지와 분배에 반대하고,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를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는” 그들의 논리는 서구와 다른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서구와 달리 복지와 분배정책이 취약한 신생 민주국가입니다. 이 상황에서 자유와 시장경제만 강조하면 사회적 양극화는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br />
<br />
진보세력을 향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전진과 후퇴는 ‘3한4온’ 식으로 교대되는 법”이라며 “반동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법치’ 논리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법을 밥 먹듯이 어기던 사람들이 법치를 들고 나오는 게 고깝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보면, 위법을 일삼던 사람들이 법을 강조함으로써 법치 자체가 탄탄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상호보완적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법 법’하는 것을 용인해줄 필요가 있습니다.”<br />
<br />
하지만 그를 법적 안정성만 중시하는 실정법 지상주의자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그는 1994년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를 통해 형식적 법치주의의 맹목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관용과 비판정신을 두루 갖춘, 자유주의의 이념형에 충실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기도 한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한 그였지만, 재판정에 나가서는 “학문적 저술은 정치적 잣대가 아닌 학문 논쟁을 통해 비판해야 한다”며 검찰의 사법권 남용을 비판했던 일은 유명하다. “개인적으론 ‘착한 자유주의자’란 호칭이 맘에 듭니다. 새가 날려면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 다 있어야 하는데, 저는 좌든 우든, 어려울 때 ‘구원투수’ 로 나서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거든요.”<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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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7918.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7918.html"><font color="#333333">[문정인칼럼] 뉴라이트의 해괴한 ‘진보’ 탈환전</font></a></strong> (한겨레,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9-07-26 오후 09:09:0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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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6일치 주요 일간지 여러 곳에 아주 해괴한 5단 전단 광고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자유주의 진보연합’이라는 단체의 창립을 알리는 이 광고는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다”라고 선언하면서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 모두를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이 광고는 “종북주의자, 가짜 민주주의자들이 사취해 갔던 ‘진보’의 의미를 탈환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을 의미심장하게 알리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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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진보 탈환전’은 지난 4월 박효종 교수를 중심으로 이미 선포되었다. 박 교수는 정명론(正名論) 운운하며 “헌법적 가치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세계사적 흐름이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그리고 진보의 이름값도 제대로 못하는 친북좌파 세력을 “‘진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검은 백조’처럼 모순적 표현의 극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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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비판을 살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진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보통명사로서 진보이다. 이는 주어진 사회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부단히 개선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을 뜻한다. 보수진영에서는 의미론적 혼선을 피하기 위해 ‘진보’ 대신 ‘선진’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 경우 ‘진보’라는 용어가 ‘사취’당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유명사로서의 진보 개념이다. 이는 19세기 말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발흥한 진보주의에서 파생한 개념으로, 자본주의 심화와 민주주의의 기득권화에 따른 각종 모순과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정책적 대응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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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보주의는 국가 개입을 통한 시장 실패의 교정, 빈민 구제, 교육, 의료서비스의 보편화 등을 통한 적극적 사회정책 전개, 복지를 통한 성장의 모색, 대기업의 독과점 방지, 그리고 환경 보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 대안을 요체로 삼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독점 현상을 막기 위해 일반시민의 참정권 확대를 옹호했고 노사정 3자의 새로운 정치적 협의체 구성에 역점을 둔 바 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민주당, 유럽의 사민당 또는 노동당의 정강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고 이러한 이념적 사조를 자유주의(liberalism)라 칭하기도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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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시장 우선주의, 작은 정부, 감세와 규제 혁파를 통한 성장 등 하이에크가 주장해온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에 이념적 근거를 두고 있는 뉴라이트로서는 위에 논의한 진보주의를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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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진보’에 연연하는 것인가. 보수라는 용어가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국적 보수와 보편적 보수 간의 내재적 상치 현상에 있다. 이들이 추앙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중소상인과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적 이념 노선을 표방했고, 이들의 또다른 영웅인 박정희 대통령 역시 자유지상주의 또는 영미식 보수주의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개발국가’ 모델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 뉴라이트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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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하자. ‘하얀 백조’만 강조하고, 비판적인 인사들을 ‘종북주의자, 가짜 민주주의자’로 매도하는 동시에 정권 잡았다고 ‘진보’의 이름까지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세력, 이들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인 것이다. 이제 제발 정명과 색깔의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겸허한 자세로 소통, 화해, 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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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2009.8.3 추가</strong></p>
<p><span style="color: #003300">손호철 교수가 뉴라이트의 진보 표방과 관련하여 이와 마찬가지로 liberal을 진보로 오독하고 있는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사실 후자가 더 필요한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의 번역본 또한 원저자가 liberal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부분을 자의적으로 (한국적 현실에 맞춰) 진보로 번역하였다. 이런 식의 오용이 진보에 대한 엉뚱한 인식을 부채질한다. 저들 자유주의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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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좌파, 사회주의에 대한 오용의 논란도 언급될 수 있겠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은 좌파정당일까. 최근에 진보신당 내의 의견그룹으로 출범한 사민주의 정파는 사회주의자들일까. 여기서도 한국적 현실이 의미가 있기는 한데...</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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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손호철 교수 칼럼</span></strong></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
<strong><a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03081227&section=01">'진보'가 그렇게 부러운가?</a></strong> (프레시안,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2009-08-03 오전 8:18:12)<br />
<span style="color: #000080"><strong>[손호철 칼럼] 극우도, 자유주의도 진보를 자칭하는 기이한 대한민국</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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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 자유주의는 진화를 해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했고 이제 사상, 표현, 언론, 집회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자유주의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호도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아래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을 억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왔다. 또 자유주의연대처럼 자유주의를 극우반공주의로 착각하는 무식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먼 곳에 와서 고생이 많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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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에는 더욱 기이한 광고가 언론에 나타났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는 광고였다. 내용을 읽어보니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다"라는 구호가 나타났다. 내용적으로는 자유주의연대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먼 극우반공주의연대였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민주노총, 전교조 등 흔히 진보세력이라고 불러온 세력은 '수구세력'이며 자신들이 진짜 진보라고 진보를 자청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주목할 것은 냉전적 보수세력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도 진보를 자처하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진보를 자임했고 이를 계승한 민주당도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떼를 쓴 극우세력이 아니더라도 여러 언론과 학자들까지도 이같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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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난맥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br />
첫 번째 방식은 변화에 대한 태도로 변화에 찬성하면 진보, 변화에 저항하면 보수로 보는 것이다. 서구언론 등에서 소련 동구몰락 당시 공산당을 보수파로 부른 것이 이 같은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의 냉전적 보수세력이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이같은 용법에 기초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용법은 변화의 방향, 변화의 이념적 내용과 상관없이 변화에 대한 태도만으로 보수, 진보를 논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용법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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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용법은 가장 널리 유포된 용법으로 진보, 보수를 상대적인 정도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을 점수로 환산해 노무현 후보가 가장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한 것이 그 한 예다. 이 같은 용법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당, 김대중, 노무현 정부, 민주당은 진보이고 미국의 공화당은 보수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용법역시 문제가 많다.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이 진보라는 주장은 미국과 한국이 사회당, 사회민주당 등 노동자계급 정당 내지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유럽과 달리 보수양당제를 기본틀로 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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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용법은 이념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절대주의적인 용법이다. 즉 시장과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이에 우호적이면 보수, 이에 비판적이면 진보로 보는 것이다. 즉 최소한 사회민주주의 이상의 입장(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이 진보라는 용법이다.<br />
마지막으로 해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진보 대 보수가 하나가 아니라 젠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르게 해체된다는 입장이다. 몇 년 전 한 페미니즘 잡지 편집장이 여성운동의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여성운동이 지지해야 할 가장 진보적인 후보라는 주장을 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그 주장이 바로 이같은 시각에 의한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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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네 가지 용법 중 세 번째 용법과 네 번째 용법을 결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용법이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가 중심에 있지만 이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고 젠더, 환경 등 다양한 의제들에 대한 태도도 결합시켜 진보 대 보수를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한나라당과 같은 골수 보수세력 만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민주당도 진보가 아니라 '보수정당'이다. 구체적으로, 보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도 아닌 자유주의세력, 개혁세력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정치세력은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1) 한나라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예전의 수구), 2)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개혁세력, 3)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같은 진보세력이라는 삼분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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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한국정치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보수(the conservative), 자유주의(the liberal), 진보(the progressive)의 세 세력이 현대정치의 기본구도이다. 이중 미국은 진보는 없고 보수 대 자유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이에 달리 진보가 존재하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시절, 노무현 정부 핵심인물이었던 유시민 장관이 노무현 정부가 좌파라는 비판에 대해 유럽적 기준에 따르면 중도우파정부라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같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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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두 번째 용법에 기초해 자신들도 진보라고 주장해 왔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실현불가능한 관념적 진보이고 자신들은 실현가능한 현실적 진보, "유연한 진보"라고 주장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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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 교수, 그리고 민주당 관계자들이 말하는 진보는 진보의 원어인 '(the) progressive'가 아니라 '(the) liberal'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progressive)가 아니라 자유주의(liberal)라고 주장해 왔는데 자신들이 liberal이라고 하니 나의 주장에 동의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liberal을 자유주의가 아니고 진보라고 번역한 뒤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progressive가 진보지, 어떻게 liberal이 진보인가? 영어단어 공부부터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노무현 정부 참여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progressive인가? 이에 대해서는 progressive는 아니고 liberal이라고 꼬리를 내릴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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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진보주의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고 아직도 완전한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한 정치적 진보주의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진보주의와 정반대에 서 있는 냉전적 보수세력까지 모두들 진보를 자임하고 나서고 있는 이유이다. 다른 나라라면 극우세력이나 자유주의세력에게 당신들이 진보(the progressive)냐고 물으면 무슨 소리라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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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마도 진보라는 단어가 한국어에서 갖는 좋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도 진보라는 뜻의 progress는 좋은 의미이다. 결국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잊고 있는 것은 발전을 의미하는 진보(progress)와 정치적 성향을 지칭하는 진보(the progressive)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케네디정부는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을 주장하는 등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첫 번째 의미를 진보를 자주 자신들의 목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자신들이 두 번째 의미에서 진보세력(the progressive)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사실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란 미국정치에서 나쁜 의미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세력, 극우적 보수 세력이 자신들이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라고 주창하고 나서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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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경우 진보세력을 부를 때 지칭하는 '진보'라는 명칭을 두 번째 의미(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 the progressive)가 아니라 첫 번째 의미의 진보(progress)로 오해하고 이 같은 용어에 질투하고 이를 빼앗기 위한 촌극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발전'을 의미하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전통적으로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는 세력은 '발전'이 아니라 '퇴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그러한지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같은 주장은 일상적의 의미의 진보(progress)와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the progressive)를 구별하지 못한 무지의 발로에 불과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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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진보연대와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문제제기 중 의미 있는 것도 있다. 물론 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를 첫 번째 의미의 진보(progress)로 이해하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촌극이다. 그러나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진보입니까"라는 그들의 질문을 두 번째 의미로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즉 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the progressive)의 입장에서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소위 '진보세력'이 정말 진보인가 하는 자기반성이다. 예를 들어 이들의 비판처럼 "3대 권력세습을 꾀하고 있는 김정일 집단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것, 북한의 핵실험 등에 대해 자위권이라고 옹호하는 것이 정치적 진보노선일 수 있는 것인가 자성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진보(the progressive)인가?</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788,'/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88+%22%EB%89%B4%EB%9D%BC%EC%9D%B4%ED%8A%B8%EA%B0%80%20%EC%A7%84%EC%A0%95%ED%95%9C%20%EC%A7%84%EB%B3%B4%3F%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88&t=%EB%89%B4%EB%9D%BC%EC%9D%B4%ED%8A%B8%EA%B0%80%20%EC%A7%84%EC%A0%95%ED%95%9C%20%EC%A7%84%EB%B3%B4%3F"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88&title=%EB%89%B4%EB%9D%BC%EC%9D%B4%ED%8A%B8%EA%B0%80%20%EC%A7%84%EC%A0%95%ED%95%9C%20%EC%A7%84%EB%B3%B4%3F','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788?commentInput=true#entry788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민주주의, 촛불-복지연합, 파시즘...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7482009-06-28T19:43:42+09:002009-06-28T19:43:42+09:00<!--FCKeditor--><p><span style="color: #003300">올해 초부터 새록새록 나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민주주의, 파시즘X, 정당연합 등의 논의가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재평가 논의와 진보의 재구성, 그리고 독재에 대한 정의 등 다양한 부가적인 논의가 추가된다. 작년 촛불정국에 대한 환상이 부채질하는 점도 있으리라. 이에 대해 좌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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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것들만 모았는데도 꽤 된다. 아래 글들 중에서 이광일, 김원, 손호철(애매하긴 하나), 조희연의 글이 인상적이다. </span>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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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관련 글</span></strong></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
<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46378.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46378.html"><font color="#333333">“진보여, 다양한 세력 모아 한국형 뉴딜연합 만들라”</font></a></strong>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3-26 오후 07:29:35)<br />
<strong><font color="#193da9">진보-보수 합동 심포지엄<br />
정책포럼-선진화재단 주최<br />
‘감성의 정치’ 실현 등 제안 </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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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연대가 필요하다.”(홍성민 동아대 교수), “밥 먹여주는 좌파로 거듭나라.”(주대환 사민주의연대 대표), “친북이 아닌 애북(愛北)·지북(知北)이 필요하다.”(김근식 경남대 교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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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의 회생을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 제시됐다. 26일 중도좌파 두뇌집단(싱크탱크)인 좋은정책포럼(이사장 변형윤)과 뉴라이트 그룹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이 공동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진보적 정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연대 전략’을 제안했다. 성장과 세계화, 북한 문제 등 진보의 ‘약한 고리’에 대한 성찰도 이어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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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 그들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홍성민 교수는 진보세력을 향해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파트 부녀회, 전업주부, 노인, 취업준비생처럼 학문적으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집단들이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홍 교수는 “감성과 취향 등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이것을 정치변혁의 역량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계급과 이념, 옳고 그름에 호소하는 ‘이성의 정치’에, 정체성과 취향, 좋고 싫음에 주목하는 ‘감성의 정치’를 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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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진보진영에서 두드러진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선호 현상의 배경과 한계를 조명했다. 그는 <u>“북유럽 모델은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평등과 연대의 가치에 부합하는데다, 최근의 경제 실적도 양호한 편이어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 같다”며 “문제는 이 모델과 관련한 논의가 지나치게 모델 확립 이후의 작동 방식과 성과에 집중돼 있다는 점”</u>이라고 꼬집었다. 요컨대 한국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모델과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없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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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교수는 다양한 진보세력이 하나로 결합하는 ‘정치연합’의 형성을 제안했다. 사소한 이념적 차이를 떠나 다양한 진보세력이 하나로 결합하는, 미국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연합’과 같은 연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전통과의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주대환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 과제로 삼고, 민족민주운동으로 상징되는 ‘후진국형 진보’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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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애정어린 비판을 쏟아냈다. 보수 쪽 토론자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주대환 대표의 ‘밥 먹여주는 진보’ 개념의 편협성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의 욕망에는 ‘밥’으로 포괄할 수 없는 탈물질적 영역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며 “녹색이나 탈근대적인 다양한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진보세력이 진보정당과 진보 유권자 사이에 가로놓인 ‘정치의식의 거리’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고, 강명세 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보정당의 착근을 가로막는 지역주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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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25023008]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25023008"><font color="#333333">“밥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font></a></strong> (서울, 이순녀기자, 2009-03-25 23면)<br />
<strong>국민과 소통에 실패한 한국의 진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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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그룹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은 민주·독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홍성민 동아대 교수) <br />
“지금까지 진보는 먹고 사는 문제에 무관심한, 혹은 무능한 진보였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자기들끼리의 논쟁에 갇혀 진보 진영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br />
“진보진영은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만 높일 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김윤태 고려대 교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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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반성의 목소리는 냉철했다.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과 좋은정책포럼(이사장 변형윤) 공동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에 발제자로 나서는 인사들은 미리 내놓은 발표문에서 현재 진보 진영이 처한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위기의 원인은 일맥상통한다. <u>진보의 가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데, 진보 그룹은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경직된 대결구도에 매몰돼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u>했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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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 대표는 ‘한국 진보에 미래는 있는가’란 글에서 “노동운동이 자기 조합원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국민적 지지를 잃은 탓에 진보 전체가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교수는 ‘한국 진보의 비교사적 고찰’에서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정당은 국회의 권력 게임에 매몰됐고, 노동조합은 점점 쇠퇴했다.”고 말했다. 홍성민 교수는 ‘한국의 진보,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민주주의 모델을 상정하고 그것이 아니면 이단이고, 비겁한 타협이라고 매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러한 자기 반성을 전제로 새로운 진보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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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대표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뉴레프트 운동을 제안한다. 그는 “도덕적 우월감이 없는 좌파를 지향하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며,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등 사상적 전환과 관점의 변화를 통해 진보는 환골탈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로운 진보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중심과제로 삼아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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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교수는 “2008년 촛불시위는 정부와 국회가 아닌 거리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잠재력이 표출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진보의 지평을 확대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사회운동의 역동적 힘은 정치사회의 현실적 대안과 긴밀하게 연결돼야 하며, 정당과 사회운동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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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574692]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574692"><font color="#333333">이념논쟁..혁신된 진보가 필요하다</font></a></strong>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2009-03-26 19:11)<br />
<strong><font color="#193da9">한반도선진화재단.좋은정책포럼 개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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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내부고발자처럼 인식돼 있다"면서 운을 뗀 주 대표는 '한국 진보에 미래는 있는가'에서 해묵은 진보나 보수보다는 복지국가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족·민주운동은 이미 낡은 가치"라고 일축하고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이상은 필요하고, 또 이를 정치화할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대표는 "새로운 진보뿐 아니라 새로운 보수도 나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보수주의자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보수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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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고려대(사회학) 교수는 '한국 진보의 비교사적 고찰'에서 "진보 진영이 두 번이나 집권하고 나서 진보 진영의 위기가 나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라며 "이는 진보 진영이 권위주의에 맞서서 저항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주화 이후에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통제하는 획일적인 평등주의는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는 원리다. 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면서 사회적 협력 방안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통치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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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사회학) 교수는 토론에서 정치 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불일치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진보는 연령이 젊고,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반면 보수는 고연령, 저소득, 저학력 계층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저소득, 저학력 계층이라면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보수집단을 지지하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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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세 세종연구소(정치학) 수석연구위원은 장 교수가 지적한 정치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이 같은 불일치의 원인으로 지역주의를 꼽았다. 강 연구위원은 "밖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동네에 오면 향우회 활동을 한다. 지역주의가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책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일영 성균관대(정치학) 교수는 토론에서 "한국진보가 범했던 중요한 실수가 주된 전투의 전장을 과거에서 찾았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싸워야 할 전장은 과거가 아닌 미래"라고 주장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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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홍성민 동아대(정치학) 교수는 '한국 진보,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계급이라는 단위로 보수나, 진보라는 주체를 설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이제는 진보의 의미가 됐다"고 진단했고,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진보, 글로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글로벌화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조건 개방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러 부작용을 통제하는 범위 안에서 (개방을) 해 나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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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font color="#333333">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font></a></strong>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호] 2009년 05월 05일 (화) 20:19:32 필리프 퐁스/<르몽드>도쿄특파원, 번역 최서연)<br />
<strong><font color="#193da9">경제위기와 신뢰상실, 이명박 정부의 '이중고' <br />
국민들 지나친 비관론 빠져 우파에 몰표<br />
해법은 우경화 아닌 직접 참여 민주주의<br />
</font></strong><strong> </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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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979.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979.html"><font color="#333333">한국의 촛불, 일상의 역동적 저항</font></a></strong> (한겨레21 2009.05.22 제761호, 안수찬 국내 부편집장) <br />
<strong><font color="#193da9">[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 기획 /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br />
87년 체제에서 진화한 ‘호모 칸델리스’의 탄생<br />
풀뿌리 주민단체가 주도, 정치 플랫폼으로 접속</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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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분자들에겐 실망스런 일이지만, 광장의 저항이 의회의 권력으로 곧장 이어지는 일은 좀체 없다. 대부분 우회로를 거친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 정도가 거의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조차 그 직후 거대한 반동의 시기를 볼거리처럼 싸매고 나자빠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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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잉태의 우회로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2008년 4~8월의 ‘촛불 항쟁’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4월 어느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일군의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이 그들을 따라 촛불을 들었다. 5월 2일 제1회 촛불문화제가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뒤이어 8월 무렵까지 촛불의 물결이 거리를 덮었다. 그 사람들, 그 시간들을 통틀어 우리는 ‘촛불’이라 불렀다. 그리고 촛불은 흔적도 없이 꺼져버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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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저항은 중앙권력에 집중했다. 그러나 촛불은 달랐다. “잠 좀 자고, 밥 좀 먹자”는 지난해 촛불 항쟁의 구호는 “개별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유럽 68혁명의 구호와 정확히 일치한다. 삶의 구속을 거부한 젊음의 역동적 반란이었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일상의 혁명성에 주목한 새로운 저항 인류의 정념이 촛불 이후 한국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다.<br />
<br />
1년 전 촛불 항쟁은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심지어 시민단체까지 당혹시켰다. ‘호모 칸델리스’, 즉 촛불 시민들은 ‘중앙의 지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청소년이 성인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시민단체가 기성 정당을 이끌었다. 그 역주행은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지도’·‘계획’· ‘국가’의 강박은 사라졌고, ‘지역’·‘참여’·‘토론’·‘일상’에 대한 환호가 유쾌하게 번졌다. 이에 대해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촛불집회와 한국 사회>(문화과학사)라는 책에서 “촛불집회에서 활성화된 시민세력이 풀뿌리 수준에서 여론 변화를 이끌어내고 제도정치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모색하지 못할 경우, 정치위기의 기본 구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신 교수가 비관을 섞어 전망했던 촛불 정치의 등장을 우리 눈앞에서 구현한 사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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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풀뿌리 주민단체의 역사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3세대 주민단체가 촛불 정치를 지피고 있는 주역이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풀뿌리 주민단체의 요람이었다. 당시 국민운동본부는 전국 시·군·구 단위로 지역 조직을 뒀는데, 6월항쟁 이후 주로 빈곤 지역에 남아 있던 조직들이 자생적인 풀뿌리 주민단체로 발전했다. 서울 관악·구로 등 노동자 주거 지역이 대표적인데, 이들 1세대 주민단체는 노동·빈민·농민 등 전통적 재야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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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주민조직의 두 번째는 넓은 의미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이 일구었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정치인 노무현을 중심으로 일종의 팬클럽을 형성했고 2000년대 들어 전국 단위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이후 ‘시민참여 정당’을 내세운 개혁당의 지역적 근간이 됐다. 참여정부의 부침과 함께 이들의 활동은 사실상 수면 아래로 침잠했지만,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감과 별개로 제대로 된 시민정치를 꿈꾸던 사람들이 과거 개혁당 지역조직에 많이 참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대통령제를 위시한 ‘중앙정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풀뿌리 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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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세대가 오늘날 전국에 걸친 풀뿌리 주민단체를 이루고 있다. 공동육아조합, 방과후교실모임, 공부방모임, 먹거리 생활협동조합, 생태공동체 등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육아, 교육, 먹을거리 등 일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의 자생적 모임이다. 1·2세대 주민단체는 ‘동원’의 질서에 강하게 긴박돼 있었다. 반독재 운동의 거대한 명분에 ‘복무’한다는 이념을 갖춘 ‘전업 운동가’들이 주를 이뤘다. 3세대 주민단체는 본질적으로 ‘참여’의 정서가 강하다. 내 아이의 문제를 당신 아이의 문제와 함께 풀기 위해 품앗이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전업 운동가는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활 운동가가 있다.<br />
<br />
이들에겐 광우병 쇠고기, 탁아·육아 시절, 입시 교육, 주택 가격, 대학 등록금 등이 가장 큰 고민이다. 이 ‘3세대 풀뿌리 주민 모임’들이 1년 전, 촛불 시위의 주역이었다. 이들의 고민이 곧 지난해 촛불의 슬로건이었다. 이제는 촛불 정치의 동력이 되고 있다. ‘개별적인 것’에 주목했던 시민들이 ‘정치적인 것’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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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무렵 전국의 시민단체가 2만여 개였고, 2003년에는 2만5천여 개로 늘었다. 2000년 이후 새로 생겨난 5천여 개 단체의 대부분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풀뿌리 단체로 추정된다. 게다가 2000년과 2004년의 낙천·낙선 운동을 거치면서 지역 시·군·구 단위의 주민단체들은 더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현재 풀뿌리 주민단체는 5천~1만여 개로 전국 곳곳을 점점이 장악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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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촛불 후보의 등장은 풀뿌리 주민단체들의 개미군단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결과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범시민 후보’가 탄생한 과정은 이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시흥시에는 작은 촛불이 켜졌다.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각종 개발사업 관련 뇌물 수뢰 혐의로 구속된 이연수 시장이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월급까지 받아가는 상황이었다. 시흥의 풀뿌리 주민단체들은 한여름철 두어 달 동안 4만6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br />
<br />
풀뿌리 정치의 전통이 깊었던 것도 배경이 됐다. 이 지역에서는 2005년 급식조례제정 운동을 하며 석 달 동안 2만여 시민들의 서명을 받은 경험이 있다. 1997~98년 시화호 개발 반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2008년 촛불문화제, 그리고 최근까지 지속됐던 주민소환운동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연대는 넓어지고, 구성원은 다양해지고, 정치적 각성도 비등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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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소금창고 복원 운동의 경험은 각별했다. 한 회사가 철거해버린 일제시대 소금창고를 지역문화재로 복원하기 위해 지역단체들이 ‘소금창고시민행동’이란 이름으로 뭉쳤고 2007년 6~8월 촛불문화제가 이어졌다. 이념을 넘어선, 범시민운동의 ‘결정체’였다. 중앙정치적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생활 의제’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사 때는 진보단체는 물론 지역예총·문학회 등까지 울력해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결국 시와 회사로부터 복원 약속도 받아냈다. 이들이 이듬해 주민소환운동의 지지자·서명자가 됐을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br />
<br />
시장은 올 1월30일 대법원에서 뇌물수수죄로 시장 자격을 박탈당했다. 주민소환운동에 뒤이어 “우리의 후보를 직접 내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들이 자연스레 모아졌다. 시흥시장 선거에 ‘범시민 후보’로 나선 최준열 후보는 주민소환운동본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최준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지난 2월, 예비후보 등록 당시 후보 개인에 대한 인지도는 5%에 불과했지만, (범시민 후보라는 사실만으로도) 지지율이 16%가 넘었다”고 말한다. 16%는 유권자 대비 주민소환운동 서명자의 비율과도 일치한다. <br />
<br />
<u>풀뿌리 주민단체가 없었다면 1년 전 촛불도 없었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촛불’만 봤다. 지금 광장에는 촛불이 없다. 그래서 촛불이 사그라졌다고 생각한다. 정작 촛불을 지폈던 풀뿌리 주민단체는 지난 1년 동안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해왔다. 1년 전의 ‘촛불’이 전국에서 지역 단위로 낙하해 생활 영역에 밀착하고 기존 대의정치를 견제·혁신하려고 정치 영역에 뛰어든 것이다. 그 일부가 이번 경기교육감 선거와 4·29 재보선에서 등장했다</u>. 2010년 지방선거에 ‘촛불 후보’의 움직임이 더 긴박해질 것은 불문가지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촛불의 진화를 관찰하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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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대체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기초지자체는 물론 광역지자체 선거에 시민 후보를 내는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 정당까지 아울러 ‘시민 후보 중심의 선거 전략’을 펼치겠다는 정서가 강하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그 모범 답안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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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40여 개 단체가 참여해 시민사회 진영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2월 총회에서 ‘지방선거 기획단’을 구성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시민운동 진영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오는 6월께 보고서를 제출하는 ‘특임’을 맡았다. 서울의 주요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단체의 상근활동가 10여 명이 지방선거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다. 오광진 연대회의 정책팀장은 “지방선거에 참여할지 말지를 포함해 백지 상태에서 여러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 전략을 토론해 확정지을 방침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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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가 출신의 후보가 선거에 참여했던 과거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몇몇 명망가들이 개인 자격으로 기존 정당에 영입되거나, 일부 단체 차원에서 무소속 후보를 배출하는 방식이었다. <u>최근 논의는 정당 영입 또는 정당 건설은 배제한다는 전제 위에 진행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은 아직 점칠 수 없으나, 가장 적극적인 시나리오는 서울시 등 ‘전략 지역’에 시민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 때처럼, 주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내세우는 후보에 대해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 주도의 촛불 연합 후보’ 모델</u>이다. <br />
<br />
이처럼 ‘촛불 후보’는 대의정치 내지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기본 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 전체에 대한 혐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경기교육감의 투표율은 12.5%에 불과했다. 역대 최저치다. 중앙정치에 대한 혐오가 선거 불참으로 이어졌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을 총체적으로 불러세우지 못하면 결국엔 공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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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지방선거에서 범시민 후보의 파괴력이 작용한다 해도, 뒤이은 총선·대선 등을 감안하면 ‘정당’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u>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라는 시민 후보 모델은 대단한 의미가 있지만, (풀뿌리 세력 내부에서) 정책을 합의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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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바닥부터 전복시키려는 촛불 시민들이 꿈틀대고 있다. 거리의 축제가 정치의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것은 철학자 마루쿠제의 표현을 빌리면 미적인 것의 정치적인 것으로의 침입이다. 촛불 시민은 조금 멀지만, 가치 없지 않은 우회로를 택해 조금씩 지역정치와 중앙정치로 진입하고 있다. 촛불 시민, 호모 칸델리스가 광장을 지나 의회와 청사를 향하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 사회에 저항이란 게 존재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동네 골목길을 가리키면 된다. 그 길 역시 청와대로 통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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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57948.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57948.html"><font color="#333333">반이명박’ 넘어 ‘대안정부’ 준비해야</font></a></strong> (한겨레, 최장집(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2009-06-01 오전 10:50:17)<br />
<strong><font color="#193da9">‘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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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u>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를 존중하고 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그것에 반해서는 정치 안정도, 사회 안정도, 정권 유지도, 정책 추진도, 경제 발전도 가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u>이다. 대규모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 전국적인 애도와 정부 비판의 큰 흐름은 이를 실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평범하지만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br />
<br />
한국의 서민, 소외 세력이 배출한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와 굴욕감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상과 가치는 깊은 공명을 가져왔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정치적 출로도, 어떤 정신적·심리적 의탁도 갖지 못한 보통의 시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u>한국의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데까지만 허용되고, 사회 여러 부문과 정당 체제, 나아가 체제의 운영 원리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해 과도하게 책임을 물었던 때도 많았다. 사실 그의 성취와 한계는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 전체, 좁게는 민주화 세력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u>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도 지난 정부, 지난 정치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데 힘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br />
<br />
야당을 강화하여 현 정부를 대체할 대안 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방향에 대한 선택은 이처럼 비교적 간단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집합적 열정을 불러일으켜 권력에 항거하는 것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집권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차기 정부가 될 강력한 대안 세력을 형성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배웠다. <u>권력에 항거하는 열정의 분출이 반이명박 정서를 최대화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대칭적 양분 구조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는 기대와 다를 수 있다</u>. 국내외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이, 운동과 제도의 체제가 분리된 양극화된 갈등 구조는 보수의 장기 집권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br />
<br />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이 대안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보수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대표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지지 기반을 다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외부로부터 인적 자원을 수혈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보수적 이념에서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하고, 실현 가능한 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 이슈와 노동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하고, 기존의 진보적 정당이나 노동운동과도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br />
<br />
그러나 이 모든 변화의 요구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과 병행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은 정치의 방법을 통해 대중적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가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 정치인들, 정치 지망생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모나면 정 맞는다”라는 말로 압축된 보수적 정치 규범에 순치되지 않고 보여준 과감함이다. 정치에서 비난받을 일은 대중의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7년 전 노무현이 이룩한 일을 성취해낼 또다른 노무현을 요청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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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9]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9"><font color="#333333">노무현 최후의 꿈 ‘진보의 재구성’</font></a></strong> (시사IN [90호] 2009년 06월 01일 (월) 14:21:13 박형숙 기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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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비공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참모들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덧붙이고 자료를 올리고 책도 추천하면서 주제에 접근해갔다. 학자 출신 참모들이 전공별로 ‘독선생’ 노릇을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성경륭(사회학),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정치학), 정책특보를 맡았던 이정우(경제학),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정치학),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철학) 등 전·현직 교수가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같이 공부하자. 월급은 못 주고 차비는 드릴 테니 자주 오시라”고 열의를 보였다. 김창호 전 처장은 “처음에는 나와 소수의 사람이 책과 참고자료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참여하는 분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소통 공간도 마련되고 시스템화되었다”라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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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윤태영 전 대변인) 최종 수렴지는 ‘진보주의’였다. 5년 대통령 경험을 바탕으로 노무현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기존 틀로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그리로 이끌었다. 의외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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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말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그는 “진보를 지향한 정부”라고 규정했지만 수사처럼 들렸다. ‘유연한 진보’ ‘실용 진보’ ‘합리적 진보’라며 기존 진보와 차이를 드러내려 했지만 ‘노무현=진보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좌파는 별로 없었다. 되레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 진영에서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사이비 진보”라고 비판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참여정부의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무현의 대표 어록이었다. 특히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그런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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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노무현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난관에 처했다. 그 자신 탈권위주의와 시민권력을 주창해온 주인공.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도 있지만 동시에 경계하고 뛰어넘어야 할 위치에 국가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내 고민을 진보라는 틀에 담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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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식 진보는 달랐다. <u>국가 영역의 ‘복지’, 시장 영역의 ‘성장과 경쟁’, 시민사회 영역의 ‘공존의 가치’를 어떻게 진보로 재구성하느냐가 핵심. 주체는 시민이었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게 그의 현실 인식이다. 지난 10년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탈권위주의 사회로 이동하고 있지만 국가가 후퇴한 ‘빈자리’를 시장과 소수 독점 미디어가 차지하면서 시민사회 영역은 더 좁아지고 위축되었다. 여기에서 노무현이 왜 기를 쓰고 조·중·동과 법정 소송을 불사하고 언론 개혁을 부르짖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u>. 시민에 의한 사회 재구조화의 전제는 합리적 토론과 논쟁이었다. 공론장이 살아야 시장의 지배, 독점 미디어의 지배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어줘도 왜 휘두르지 못하냐는 비난, 또 무능한 정권,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낙인찍히는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권력을 동원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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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601190740&section=06]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601190740&section=06"><font color="#333333">'추모 그 이후',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font></a></strong> (프레시안,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2009-06-01 오후 7:24:08)<br />
<strong><font color="#193da9">[기고] 전혀 새로운 조직의 등장이 필요하다</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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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논객이고 운동가고 일반 시민들 할 것 없이,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주장들 속에 우리가 채택할 것은 채택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 또한 지금 시국에서, 아니 이명박 정권의 치하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실천이며, 계속되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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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중들의 분출하는 분노가 기존의 분노와 사뭇 다르다. 그 원인들이 몇 가지 있다. MB악법으로 인한 공공성 파괴를 목격해야 할 비정규직, 교육관계, 공기업사유화 대상들, 언론관계 등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또한 경제환경을 재벌 중심으로 몰아가면서 일상의 삶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각종 경제관련 악법을 목격해야 하는 종소기업가들부터 소속 노동자 등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의 행태에 대한 분노다. 권력의 주구로서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국민과 시민들을 적대시하며 오로지 이명박 정권 유지수단으로 자청하는 검찰과 경찰에 대해 격렬히 분노하는 시민들이 많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몰아간 주범인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뿐만 아니라 조중동 등과 같은 수구언론들의 작태에 분노하는 민중들이 있다. 겹치기도 하고 또 따로따로, 다양한 의제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한 곳을 지목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청와대'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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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현실의 맥락을 짚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 같다. 지난 해 6월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모였던 촛불집회는 '저들'에 의한 어이없는 대반격에 밀려 지난 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 내내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노동계 등에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평가는 다양했고, 여전히 촛불을 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해 겨울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2차에 걸친 '도발적 입법전쟁'에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언론노조가 소속된 미디어행동 정도가 칼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투쟁을 깃발을 올렸을 뿐이다. 반면 저들은 '경찰계엄령'을 내린 듯, 철통같은 경찰방어막 뒤에 서서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탄압하는 수순을 잊지 않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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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모욕죄'로 아예 법제도를 개악하자는 데까지 비화하면서 반격을 가했다. 상대적으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 '공영방송'은 스스로 무릎 꿇고 투항했다. MBC마저 정치권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이 있었던, 스스로 알아서 했던 '기는 모양새'를 현 정권에서 노골적으로 전시하기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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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투쟁의 구심으로서 민주노총, 아니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주력부대들은 한결 같이 침묵함으로써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시대반동 사회반동의 작태를 그냥 방관했을 뿐이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준비된 투쟁역량과 더불어 준비된 연대투쟁의 자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항세력들의 기대와 달리 무기력했다. 그렇다고 딱히 새롭게 대오를 정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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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각종 현안마다 깃발을 들고 저항의 중심으로 역할했던 유명한 시민사회단체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노조가 속한 미디어행동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단체나 연대체들이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투쟁에서 무기력함을 노출하면서 투쟁의 현장 밖으로 나 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역량도 싸워야겠다는 의지도 부족했고 박약했다. 딱 한 번,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듯 싸운 6월을 제외하고 이명박 정권 집권 내내 무기력증을 호소함으로써 전체 사회운동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난 1년 반을 보내고만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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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했던 전면전이었고,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됐던 전면전이 자발적인 시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불가항력이었으면,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은 시민사회의 무능력이었다. 전술적 과제를 확정하고, 조직적 과제를 논의하는 장을 열지 못했던 시민사회단체의 무능력과 더불어 전술적 조직적 오류에 기인한다. 그 결과 자발적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노를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전술적 과제와 전략적 과제를 구분할 수 있는, 조직적 포괄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수호투쟁을 계속 할 수 있는 지도력은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고, 저들의 공권력을 기반으로 한 폭력적 반격과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법제적 반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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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혀 새로운 조직의 등장이 필요하다. 몇 몇 명망가들이 자신들의 인맥으로 구성하는 전국단위의 투쟁체 구성방식은 20여 년 전인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 구성방식을 전혀 탈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 명망가들은 구성하는데만 의미있는 요소였을 뿐 운영하고 책임지는데까지 그 의지나 역량은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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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이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가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하소연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하소연뿐만 아니라 체포되거나 구속되어도 홀로 외로이 고립감에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 과정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시민들과 함께 밤을 새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며, 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u>.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처럼, 몇몇 명망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뚜렷하고 합의된 전술적 목표, 조직적 대오, 권위있는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식부터 달리 가야 한다는 의미다. 진격의 시점과 퇴각의 시점에 다수가 따를 수 있는 권위있는 지도부의 구성은 이제 긴급한 과제가 되었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헌신적이고 민주적인 핵심역량을 구성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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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민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공개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비밀주의 밀실주의 안면주의 정실주의 일방주의적 조직구성방식은 이제 낡은 것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듯 내 던져버려야 한다. <u>일방적으로 위로받고 배려받는 조직, 일방적으로 위로해주고 배려해 주는 조직이 아니라, 소통의 건강함을 바탕으로 함께 위로하고 받고 더불어 배려하고 받는 그런 살아 숨 쉬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존의 조직과 자발적 시민들이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운동적 열정이 넘실대는 조직을 구성하는 원칙이다</u>. 이런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과 더불어 집단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런 집단지성과 집단실천은 공개적인 시국대토론회 등을 통해서 '교집합'을 찾아내고, 그 교집합을 중심으로 투쟁의 내용을 한정함으로써 상호이해와 상호인정을 확보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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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제적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이 널려 있고, 반민주적 작태에 분노하면서 자신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국민들이 쉴새없이 분노를 토하고 있다.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걸러 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들이 와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덕수궁 대한문 앞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일정하게 쟁취해 놓은 공간, 거의 유일하게 시민들간 국민들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 시점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 작은 공간밖에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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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부터 이제 우리는 '만인공동회'를 선언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모범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문별 쟁점토론에서부터 종합적 시국토론을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인터넷 공간의 논객들부터 출전해서 토론하고, 글쓰고, 또 토론하고 글 쓰며 네티즌과 소통하고 일반시민들과 소통하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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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북핵문제 언론악법문제 건강의료문제 교육문제 경제문제 문화문제 등 각 부문이 고민하고 있는 각종 문제를 드러내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넘어 새로운 진보의 정책과 방향을 설정해 보자. 당연히 투쟁과 저항의 구심점을 조직하는 조직논쟁도 이 공간에서 '선수'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발언함으로써 함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대안을 마련해 보자. 한국경제의 성장방법론도 논의해 보자. 분배방법론도 토론해보자. 작지만 크게 보고 시작해 보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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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084]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084"><font color="#333333">‘촛불-복지연합’으로 나가자</font></a></strong> (레디앙/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2009년 하반기호, 2009년 06월 01일 (월) 15:47:11 이재영 기획위원)<br />
<strong><font color="#193da9">[좌파의 위기, 위기의 정치] "범야권 2010 촛불 프라이머리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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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ff">1. 이명박의 위기 아닌 위기 <br />
</font>이명박 정권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파시즘’이라는 예단에서부터 ‘노무현 2기’라는 평가까지로 다양하다. ‘파시즘’이라는 평은 대체로 자유주의파, 문화적 관점, 비관적 경고에서 나오고, ‘노무현 2기’라는 평은 대체로 사회주의파, 경제적 관점, 냉소적 분석에서 나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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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스스로의 동인, 그리고 그 정권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권을 가장 먼저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 ‘다음’의 정권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 정권이 하는 일이 노 정권과 ‘다르기’를 바라고, 이 정권의 정치 기획은 노 정권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그 ‘다름’이 사실인가 아닌가, 좋은가 나쁜가는 정권이든 국민이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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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민주당은 2004년 국가보안법과 언론법, 과거사 등에서 ‘개혁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8년 국정원법과 미디어법, 교과서 등에서 ‘보수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것은 대립자와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정체(正體)를 확인하는 것이 노무현과 이명박 정치행위의 근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적 포만을 줄 수 없어 이데올로기적 위무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한국 보수의 위기를 반증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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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많이 다르지만,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과 다른 정도보다는 작게 다르다. 조금 긴 관점을 들이대면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비슷하고, 노무현 이명박 정권이 비슷하다. <u>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은 그 정권들이 일종의 붐(boom)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u>일 것이다. 노와 이는 공히 각각의 당 안에서는 취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386’으로 불리는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群)의 선도적이고 일관된 지지로 집권에 다다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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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민주주의의 심화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그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감이 사회경제적 욕구로 급속히 전화된 점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경제사회 정책이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실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증명되면서 그의 지지세력은 팬클럽과 삼성 일족으로 협소화, 견고화된다. 이명박 정권 역시 촛불집회를 거치며 수도권 386과 절연되고, 결국 그 정권에는 교회, 우익인사 등 공신(功臣)만이 남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나라당 안에서 색깔을 의심받기조차 하던 이명박이 ‘수구 꼴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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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3김 시대에 뒤이은 <u>‘노무현+이명박 현상’이란 [ ① 기성정당 지지기반의 이완 ②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여론 주도성 ③ 그 인구집단 욕구의 급격한 변화 ④ 기성정치권의 욕구 수용 불가에 의한 괴리 ]</u>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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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무능하다거나 한국 정치가 장기파동(long waves) 국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곧 급격한 정치변동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가 거리에서의 아노미와 감성적 일탈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운동의 한계가 아니라, 그 운동이 처해있던 정치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민주당들은 이미 촛불시위자들의 눈 밖에 났고, 사회주의 정파들은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상황, 이명박 정권만이 유일한 국가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즉, 보수우익의 위기는 그 상대자들의 침묵으로 인해 현상하지 못하고 잠재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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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ff">2. 좌파 위기의 뿌리 <br />
</font>위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어느 기준에서 어찌 보느냐에 달려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한국 좌파정치의 장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을 굳이 위기라 할 필요도 없겠다. 짧은 시간에 꽤 커졌고, 더 커져야 할 미래의 도상에서 잠시의 정체나 퇴보를 피할 도리는 없으므로, 지금 한국 좌파정치가 보이는 지지부진함이란 정상적 발전과정의 한 시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토막난 국회 의석 수, 저조한 지지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같은 것이 우연적 요소들에 의한 일시적 머뭇거림이라기보다는 그 운동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 표출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좌파정치의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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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조만간 재통합할 것을 빌어 마지않는다. 어느 나라 어느 정당에서든 내부 정파가 있어 왔으니, 민주노동당파와 진보신당파가 한 당 안에서 어울려 놀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는 양자가 결코 융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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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당적인 조직이었음에도 민주노동당이 1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당의 미개척 영역이 워낙 광대했던 덕분이다. 초기에 수십 개의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던 정파들은 백여 개의 지구당으로 진출하면서도 다른 정파와 심각한 충돌을 빚지 않았고, 어느 누구든 민주노총이라든가 사회운동의 여러 영역에서 ‘민주노동당’으로 행세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미개척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당 성장이 포화에 이르고, 지구당과 분회 차원에서까지 정파끼리의 충돌이 빚어지고, 당 밖에서 누가 민주노동당을 대표할 것인가가 ‘모의’가 아닌 ‘실탄(實彈)’의 문제가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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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그깟 강령 따위’에 개의치 않았지만, 나중에는 당 권력을 경과하면 공중파 TV에서 “북핵은 자위권이다”라거나 “민주노총이 각성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선 가능성도 없는 출마가 고역이었지만, 나중의 민주노동당에게는 적어도 비례명부 상위권은 정파들의 명운과 장래를 좌우하는 뜀틀이 되었다. 당 이념을 대신한 유일한 규율은 지극히 형식화된 다수표였는데, 그나마도 ‘북조선식 강권 투표’나 ‘남한식 매수 투표’가 횡행하며, 다수파든 소수파든 ‘민주주의’로 후퇴하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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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쌍방 누구도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고사는 모면하였으므로 동거의 이유가 사라졌고, 가족이 불었으니 더 이상 비좁은 집에 동거할 수도 없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그만큼만 기획됐었고, 결국 성공했다. <u>형해화된 강령 쪼가리가 아니라 통일된 이념을 가지지 못한 것이 민주노동당의 실패라면, 노동계급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민주노총의 오늘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계급 다수자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와 정당함을 설득하는 데 실패</u>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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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은 민주화 이전의 가족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경쟁논리를 내면화했고, 그를 노동조합운동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선도적 조직 가담자들의 ‘고성장기 과실 분배형 노동운동’으로 출발하여, 조직 외부의 불안정노동에 대항하는 ‘저성장기 과실 배제형 노동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그 공개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실질적으로는 자본독점운동의 한 축으로 편입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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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ff">3. 상상의 확장, 정치로의 집중 : 촛불프라이머리 <br />
</font>좌파정치의 위기가 이념의 부재와 세력 형성의 실패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단은 별스럽지 않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분당, 민주노총의 퇴락을 거치며 그런 문제의식이 첨예화되고 있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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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대환과 단병호는 진보정당들 밖에서 ‘사민주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사회당 같은 당들 중에 딱히 적을 둘만한 곳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최근 행보는 다분히 ‘탈정당적’이다. 하지만, 이런 근원적 문제의식이 현실 타개에 도움이 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념부터 세우자는 주대환의 주장,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자는 단병호의 진술은 몇 줄짜리 강령과 수백 명의 노동자들밖에 가지지 못한 150여 년 전의 독일 망명객들이 공산당을 창건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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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주대환의 이념은 노동자들에 의해 실험 실천되지 못할 것이고, 단병호의 노동자들은 이념에 의해 모이거나 이끌어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은 우리 운동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되먹임 자폐선(feedback loop)에 갇히게 할 뿐</u>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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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공산주의자동맹, 1869년 독일사회민주노동당의 창당 이래 사회주의 운동의 본령이란 이념운동도 아니고 노동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도전적 정치다. <u>정치는 이념을 유예시킬 수 있지만, 이념이 정치를 자연스레 불러오지는 못한다. 정치가 세력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세력은 정치를 넘어서지 못한다</u>. 정치는 이념과 세력의 구성에 필요한 시간의 누적을 지혜로운 선택으로 단축시키는 것이다.<u> 대자적 계급은 진보정치 아래에서만 형성되고, 급진이념은 도전적 정치에 의해서만 조탁될 수 있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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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정치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 기반 취약과 동시에 민주당의 지리멸렬함, 즉 부동(浮動)하는 민심에 의해 정치재편이 내연(內燃)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답보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경험을 통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초록동색’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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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유권자들의 정파성은 일관되게 약화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정당 지지세력이 소멸하는 한편, 보수정당들이 근친수렴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재기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정치재편은 야권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12년까지의 정치 상황은 민한당에서 신민당으로 제1야당이 교체되던 상황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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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촛불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진보정당까지 포함되는 정치세력이 촛불집회를 제대로 수용치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폭발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때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재편의 동력으로 재등장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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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이 출마 선거구를 조정하자는 구상이 조심스레 검토되고 있다. 4대 동시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구와 출마자가 워낙 많고, 그 대부분인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범야권’이 심각하게 경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이런 구상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u>문제는, 광역단체장처럼 정치적 상징성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선거에서도 그런 ‘조정’을 할 것인가이다. 첫째, 그런 조정이나 연합을 할 필요성이 있는가? 야권 전체가 워낙 열세이므로, 조정이나 연합은 필요하다. 둘째, 그런 조정이 바람직한가? ‘범야권’이라 통칭되지만,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정책 차이까지 묻어버리는 연합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그런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방법이 있는가? 모든 야당이 수긍할 만한 공정한 룰(rule)은 없다. 양보를 강요할 수 있는 명분은 ‘촛불프라이머리’ 정도가 유일할 것</u>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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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 모델과 김상곤 모델을 따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을 배제할 수 없고, 후보를 만드는 과정도 훨씬 대중적이어야 한다. ‘경제민생 위기극복 연석회의’를 이룬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광우병대책회의, 촛불집회를 주도한 네티즌들이 함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촛불프라이머리를 치루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u>그 틀 안에서 일정한 기준과 자격 요건으로 선거관리위, 선거인단, 후보자를 정할 수 있다면, 다음 지방선거가 또 한 번의 촛불축제가 될 수도 있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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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ff">4. 한국 정치의 위기, 변화의 위기 : 복지연합으로 나가자</font> <br />
촛불프라이머리가 성사된다면 그 안에서 공동공약을 도출할 수도 있겠고, 일회성의 선거연대이니 선출된 후보 측에 공약을 일임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가 ‘촛불연합’쯤으로 불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구상을 해보는 이유는 <u>그동안의 좌파운동이 이념이나 세력을 형성하기에는 부적절한 노선을 밟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촛불연합 같은 것으로 판을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u>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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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 사회를 이끈 주요 변화, 노무현의 집권, 이명박 정권의 등장, 촛불집회는 흔히 ‘중산층’으로 불리는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표출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급속한 민주화의 산물이고, 경제주의 노동운동과 자유주의 시민운동에 의해 고무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史實) 속에는 불안정 노동계층과 영세 자영업자가 빠져 있다. <u>지금 한국 좌파운동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은 유럽의 공산당이나 사회민주당들이 태동할 때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그래서, 색깔로는 ‘사회주의’이고 형식으로는 ‘노동운동’인 한국의 좌파운동이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급진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비약점(jumping point)을 넘지 못한 채 고립돼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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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와 노동운동에서 이미 조직돼 있는 좌파운동으로부터 섣불리 이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촛불연합이 제대로 된 하층연대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운동엘리트집단보다 더 깊고 넓은 풀(pool)인 것은 분명하다. <u>중산층화된 좌파운동은 그 풀 안에서 우리 운동이 포섭하지 못한 불안정 노동계층을 만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기업임금과 기업복지 선점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하층 계층과 사회복지연합을 맺으면서, 세력과 이념의 재구성을 도모해야 한다</u>.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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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이었던가 삼성 이건희는 한국 정치는 후지고, 저희 자본가들이 다 이룬 것이라 우겨댔었는데, 경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호응해왔다. 군사주의적으로 조직된 영남권의 중화학공업 노동자들,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전투적 노동운동이 조직한 노동력이 1990년대 초반까지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세기 들어서는 창의적이면서도 값싼 IT노동자들,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개방적 대학문화가 쏟아낸 노동력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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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성장은 ‘생태’나 ‘신성장동력’ 따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장이란 바로 정치 변화에 의한다. 그런데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김영삼으로, 김대중으로, 노무현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온 흐름이 끊기고 있다. 뻔히 보이는 한국 정치의 미래는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이거나 중도수렴된 보수양당의 지리한 정권교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여러 사회지표가 OECD 최고라는 둥, 최저라는 둥 운위되는 상황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길고 긴 변화의 도정을 앞두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정치가 현재처럼 요지부동이라면 사회적 불균형과 불안정은 다른 통로를 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란 바로 정치적 변화의 정지이고, 좌파정치의 정체에서 비롯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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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099.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099.html"><font color="#333333">미완의 화두 ‘민주주의’</font></a></strong> (한겨레21 2009.06.05 제763호, 조혜정 기자) <br />
<strong><font color="#193da9">[표지이야기-기억의 미래] 퇴임 뒤 시민주권운동 제안하며 누리꾼과 열띤 토론…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 돌리지 말라”던 그 말</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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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이 만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은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다. 재임 기간엔 권력 분산을 시도했고, 퇴임 뒤엔 시민에겐 ‘시민주권운동’을 제안하는 한편, 민주주의·진보주의를 성찰하는 책을 남기고 싶어했다. 화두는 던졌으되 완성하지 못한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남겨진 이들에게 숙제로 남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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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그린 민주주의의 모습은 그가 제안한 시민주권운동 개념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떤 방식으로 유통됐는지에서 엿볼 수 있다. 대통력직에서 물러나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 직후인 지난해 3월 노 전 대통령은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시민주권운동, 앞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은 운동입니다”라며 토론을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시민주권운동의 개념을 저보다 잘 설명한 글”이라거나 “저보다 한 수 위의 글입니다. 저도 이렇게 배웁니다”라고 토론 글을 소개하면서 일독을 권했다. “우리가 함께 참여해 이런 글들을 정리하고 편집하면 ‘시민주권운동’과 ‘민주주의 2.0’에 관한 훌륭한 설명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집단지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백, 수천 건의 댓글·관련글로 토론이 확산되면서 시민주권운동엔 살이 붙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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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미디어가 중요하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주장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민주권운동의 목적지가 참여와 권력 견제였음을 설명해준다. 이런 구상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때부터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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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교수와 참모들에게 진보주의 연구를 해보자며 만든 비공개 인터넷 카페에 지난 4월13일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좌파 신자유주의자 노무현’이 자신을 포함한 민주정부 10년을 어떻게 성찰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도 진보주의의 역사가 있었는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본시 그들의 좌표는 어디에 있었을까? 과거의 말과 이력을 살펴보자.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같은 날 쓴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 진보주의의 미래?’라는 글에선 진보주의의 방향을 고민했음이 드러난다. “진보의 시대라는 개념이 정태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의 위기와 그 이후 세계의 질서. 세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진보 진영의 전략은 새로운 경쟁의 환경과 경쟁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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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 전 대통령의 활동을 두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자신의 연구와 탐구를 시민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치열하고도 절박한 실천의 끈으로 여겼다는 점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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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제도 정비는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을 관통하는 과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헌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9일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그는 왜 ‘안 될 일’을 굳이 추진했던 것일까? 의문을 푸는 열쇠는 정치개혁의 핵심인 권력 분점과 정당 책임정치에 있다. 2005년 7월28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쓴 글을 보면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당정분리 제도는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자는 국민적인 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당과 국회의 위상과 권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당을 정권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는 국정 운영이라 생각한다.”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국정 운영의 많은 권한을 총리와 나누고,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려고 애썼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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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대 개혁입법을 비롯해 그가 추진한 일은 사사건건 야당의 반대에 부닥쳤다.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정책도 효과를 내기도 전에 수시로 치러지는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의 소재가 됐다. 그로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불일치가 불합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임기 중반 이후 레임덕에 시달리고 결국엔 탈당을 강요당했던 것도 대통령 단임제와 임기 불일치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인식했다. 두 기관의 임기를 맞춰 국정 운영을 맡기고, 그 평가는 다음 선거 때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원포인트 개헌 제안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당시 이백만 청와대 홍보특보는 “(노 대통령이 청산하겠다고 약속한) ‘낡은 정치’는 낡고 닳아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국가 운영 시스템을 의미한다. 헌법은 국가 운영 시스템의 최고 규범이므로, 헌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헌안은 이런 의미에서 낡은 정치 청산의 핵심이자 정치개혁의 화룡점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개헌 발의를 할 경우에 대비해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해두었던 대국회 연설문을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글에선 평소 자신이 구상했던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내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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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에게 지역주의 극복은 “정치 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였고,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역사에 대한 의무”였다.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구체적으로 선거구제 개혁,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내각제 도입 등을 검토해볼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은 그렇게 지역주의의 벽을 무너뜨려보자는 ‘노무현식’ 해법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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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테니, 지역구도만은 벗어나보자는 주장이었다. 소문상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내내 붙잡았던 화두는 민주주의였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타협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이를 가로막는 것이 적대적 지역구도와 권력 독식이라고 여겼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연정을 제안했던 건 대화와 타협을 위한 연합정치를 모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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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정 제안도 실패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지역주의 극복이야말로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특정 지역을 한 정당이 독식하는 구조를 깨는 건 사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그래야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유입도 가능하고, 정치가 국민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든 비례성이 높은 투표제가 도입돼야 한다. 대선에서도 결선투표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라 국회가 쉽게 제도를 바꾸려 들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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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유권자는 선택할 대안이 있어야 투표를 한다. 정치·사회·심리적 친밀감과 안정감을 주는 대안이 되도록 정당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7대 총선에서 유권자가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던 건 ‘개혁’을 내세운 새로운 대안이었기 때문인데, 이 대안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해체돼버리면서 유권자는 배신감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정치 무관심층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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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관심은 한국 사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의식의 확대도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덕수궁 돌담길에 늘어서 힘겹게 그를 보내던 시민들 사이에선 희망의 싹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마지막 길, 당신께 이것만은 약속드립니다. 평생 투표를 꼭 하겠습니다.” 누군가 마련한 붙임판엔 ‘평생 투표’를 약속하는 색색의 스티커가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다시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되새길 때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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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85]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85"><font color="#333333">범야권의 진보는 ‘노’의 신자유주의보다 떳떳한가</font></a></strong> (시사IN [91호] 2009년 06월 09일 (화) 14:38:05 이종태 기자)<br />
<strong><font color="#193da9">노 전 대통령은 공격적 개방과 복지로 한국을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적응시키려 했다. 결과는 현실 정치 공간에서의 패배. 그러나 노무현을 비판해온 야권 세력은 그를 능가할 수 있는가. </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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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이 5년 동안 끌어안고 뒹굴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대외적 조건이었다. 이런 대외 조건에 노무현이 대응한 방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 적응’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도 시도하지 못했던 자본시장 개방(국내 기업의 소유권을 외국인이 보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조처)을 김대중이 완료했다면, 노무현은 공격적인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을 성취하려 했던 정치가였다. 개방과 자유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추구한 정치가는 민주화운동 출신인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시아 금융허브’와 그 수단인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했다. 해외의 유수 금융기관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한 것도, 골드만삭스나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을 육성하자는 주장이 국정 지표처럼 부상한 것도 노무현의 집권기였다.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팔고, 증권사가 지급결제권을 가지게 하는, 이른바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를 본격 추진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 금융을 비롯한 교육·의료·법률·회계 등 ‘고급 서비스업’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 역시 노무현 시대에 오히려 크게 심화되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무현이 취임한 2003년 70.6%에서 2007년에는 85.9%로 급증했다. 내수를 중시하는 정부인데도 그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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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을 추구하면 양극화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앞서 겪은 미국 민주당(클린턴 이후), 영국 신노동당의 1990년대 이후 ‘신노선’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이 신노선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폭넓은 계층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 모델을 선호한다. 부유층이 성장해서 하위 계층으로 부를 확산시킨다는 ‘트리클 다운’ 효과에는 회의적이다. 둘째, 우파 세력으로부터 시장과 성장이라는 가치를 빼앗아 자기 세력의 의제로 삼았다. 노동자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 해도 좀처럼 시장을 규제하거나 제한하려 하지 않는다. 셋째, ‘복지’의 개념을 바꿨다. 이들에게 복지는 ‘세금을 걷어서 소외층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투자’다. 예컨대 교육 부문에 집중 투자해 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많이 키움으로써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식. 이 경우 복지는 경제의 일부분이 된다. 넷째, 기회의 평등이다. 사회투자 혹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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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지 지출은 노무현 재임 기간에 크게 늘어났다. 공공부조(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은 노무현이 집권한 2003년 1조9600억여 원에서 2007년에는 2배에 가까운 3조4300억여 원으로 급증했다. 의료보험 보장 수준도 김대중 재임 시의 50% 내외에서 64%까지 끌어올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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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무현이 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의 사회·경제 철학을 정책에 본격적으로 반영한 것은 집권 후반기다. 특히 보육 부문은 영미의 사회투자 개념을 거의 직접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아동발달지원계좌는, 저소득 어린이 측에서 이 계좌에 일정한 금액을 적립하면 18세까지 같은 금액을 정부가 넣어준다. 18세 이후에는 이 돈을 학자금, 기술습득 비용, 창업이나 주거마련 비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희망스타트 프로젝트는 저소득층의 0~12세 아동을 대상으로 건강·복지·교육 등에서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보육 예산은 2003년 3428억원에서 2007년에는 1조4178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2007년 6월의 참평포럼 1차 월례강연회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회투자는 우리 국민을 경쟁력 있는 국민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어린이에게, 그리고 불편하거나 조건이 불리한 사람들에게 집중 투자를 해서 그 사람들에게도 사람다운 삶을 보장함과 더불어서 우리 사회의 부담을 없애가자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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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u>노무현 정부는 ‘적극적 개방을 통한 강력한 성장’이라는 기조 아래에서, 사회통합 및 성장 인프라 육성 차원으로 인적 자본에 투자한 것이다. 이는 기실 영국과 미국 중도 진보 세력의 정책을 한국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무척 엄혹했다</u>. 그 이유를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당시에 틀 지워진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그리고 복지를 사회 기본권으로 간주하게 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오히려 양극화를 극대화하고 재생산하면서 복지를 억압했다. 사실 경제 부문에서 진행되는 양극화를 복지로 막기는 힘들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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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선언’의 내용은 기실 노무현의 후기 노선과 대동소이하다. 경쟁력 및 가치의 원천을 자본이 아닌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그렇고, 일자리 창출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삼는 것도 그렇다. 성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지만 노무현도 성장주의자였다. 사실 뉴민주당 선언과 노무현의 후기 노선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의 쌍생아다. 그러나 이 노선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중도진보 세력이 이 노선으로 집권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 나라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금융패권 국가였다. 또 이 노선은 지난해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본격화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운명이 불투명하다. 영국 신노동당은 지지율이 급락하는 추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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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을 갈자’거나 ‘뉴민주당 선언은 부도수표’ 등 은유와 비아냥은 멋지다. 그러나 먼저, 노무현이 오르기 위해 버둥거리다 떨어지고 만 그 ‘벽’을 진보 정치의 현실적 제약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넘을 자신이 없다면 노무현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 그 ‘벽’의 이름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라는 엄혹한 대외 조건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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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0015.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0015.html"><font color="#333333">“대통령·행정부·의회 권력분배해야”</font></a></strong> (한겨레, 김지은 기자, 2009-06-11 오후 09:08:33)<br />
<strong><font color="#193da9">‘6월포럼’…‘한국민주주의 퇴행’ 잇단 제기<br />
‘반대통령제’ ‘유럽식 비례대표제’ 등 제안</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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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22돌을 맞은 10일 저녁 <한겨레> 후원 6월포럼 연속토론회에서는 흔들리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과 우려, 대응 모색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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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로 나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서울 정동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민주주의가 과연 후퇴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자성하고 있다”며 “6월 항쟁 22돌을 맞은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u>지난 10년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변화를 “밑으로부터 참여의 급증에 따른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와 “아래로부터의 지방화인 ‘협치’(거버넌스)의 증대”로 꼽았다. 반면 한국 정치의 또다른 특성으로 ‘정당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더딘 발전’을 들었다</u>. 박 교수는 “직접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고는 대의체제, 민주정부가 안정적이기 어렵다”며 대통령과 총리, 행정부와 의회가 권력을 적절히 분배하는 ‘반대통령제’를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박 교수는 ‘전자 민주주의의 확대’도 변화의 큰 축으로 꼽고, 대의 민주주의가 투명성과 공개성을 핵심으로 하는 전자 민주주의를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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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신행정수도 문제처럼 <u>‘불법’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다루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민주주의를 위축시킬 것</u>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u>“시장성, 효율성이 민주성, 시민성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고, 정치가 특정 기업 일부 최상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며 사회 공공성의 파괴를 우려</u>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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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조현옥 이화여대 교수 역시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하며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정당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 발전이 시민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너무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면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며 “소수 정당이 제도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럽식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등 선거 제도를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전자 민주주의의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로 ‘엘리트와 대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짚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의 특성으로 ‘속물주의’를 꼽으며 “속물주의는 우리 사회가 모든 문제를 경제 우선주의로 보면서 도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사회가 80년대 이후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달렸는데, 경제적 민주주의는 등한시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내용적인 민주주의가 채워지지 않은 게 우리 사회를 속물주의로 이끄는 게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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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성 통일맞이 집행위원장은 “6월 항쟁과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진전한다고 생각하며,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선 토론자들이 ‘정당정치 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현 상황에 대해 “시민단체의 책임이 더 크다”며 “시민단체들이 일상적 참여정치를 기본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집중적으로 정치행동을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에서 남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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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081729275&code=960100]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081729275&code=960100"><font color="#333333">다시 불붙는 ‘민주주의 논쟁’</font></a></strong> (경향, 김진우기자, 2009-06-08 17:29:27)<br />
<strong><font color="#193da9">ㆍ盧 전대통령 서거, 6·10항쟁 22돌 맞아 점화</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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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다시 말해지고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터져나왔던 민주주의 논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근 잇따른 시국선언에서도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 원칙들’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때 마침 ‘역사비평’ ‘문화과학’ 등 계간지 여름호에선 민주주의 관련 특집들을 마련했다. 6·10 민주항쟁 22돌을 맞아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을 성찰하는 토론회도 잇달아 열리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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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도 현재 한국 사회가 급격한 민주주의 후퇴와 사회경제 정책의 혼돈을 목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특집 ‘경제위기와 민주주의-대공황기 사회경제 정책의 함의와 한국의 미래’를 마련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의 경제위기, 민주주의와 시장만능주의’라는 글에서 비슷한 시기 경제위기에 직면해 각각 시장만능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길을 택한 미국과 스웨덴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스웨덴의 경제위기 극복 및 경제와 민주주의 동반 발전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밝혔다. 경제위기를 단시간 내에 극복하겠다는 조급주의를 버리고 구조개혁의 기회로 받아들인 점, 정부와 재계가 노동자를 대등한 동반자이자 경영의 협력자로 받아 들여 산업 평화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꾀한 점 등이다. 이 교수는 “이명박 경제 정책의 본질은 서로 모순되는 관치경제·개발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혼합된 것이므로 집권 5년은 관치경제·개발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사이를 우왕좌왕할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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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일자리 만들기와 재무장’이라는 글을 발표한 이진모 한남대 교수(사학)는 “나치 독재정권에 의한 일시적 경제회복은 비극적인 ‘막다른 골목’ 세계대전으로의 길이었다”면서 “심각한 세계적 경제위기에 직면해 독재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결을 약속했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단지 전쟁과 파멸이었다”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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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여름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최근 경찰폭력의 증가, 악법 입법, 극우세력 준동 등 다양하게 파시즘적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체 특집을 ‘파시즘’으로 잡았다. ‘역사적 파시즘과 파시즘 X’라는 글에서 편집위원회는 “역사적 파시즘의 특수한 배치를 가능하게 했던 여러 조건들과 요소들이 이명박 정권과 함께 다시금 현저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정권이 장담하는 것과 달리 한국경제가 금년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되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몰될 경우 이 두 조건을 우파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파시즘 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긴장관계 강화는 파시즘 체제 구축을 위한 정세적 변수로 활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편집위원회는 “한국은 제3세계의 지역적 군사독재와는 달리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찰력에 의존하는 ‘정보파시즘’이 결합된 ‘신자유주의 파시즘’과 같은 양상을 취할 수 있다. 이런 변종 파시즘 체제는 과거와 같이 군사력을 굳이 동원할 필요 없이 법률적 정보 통제를 통해서 구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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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kdemocracy.or.kr/Notice/notice_view.asp?bid=event_notice&num=443&page=1&od=&ky=&sh=]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kdemocracy.or.kr/Notice/notice_view.asp?bid=event_notice&num=443&page=1&od=&ky=&sh="><font color="#333333">[보도자료]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을 논한다!</font></a></strong>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4)<br />
<strong><font color="#193da9">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항쟁기념 학술대토론회 개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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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2돌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6월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민주주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학술대토론회를 오는 6월 9일(화) 오후 1시 30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개최한다. “한국민주주의와 87년체제”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토론회에는 손호철(서강대), 박명림(연세대), 정일준(고려대), 이영훈(서울대), 이병천(강원대) 교수와 원희룡(한나라당), 김부겸(민주당) 의원 등 한국사회의 지식인으로, 정치현장에 있는 현직 국회의원으로 저마다의 다양한 시각을 펼치는 이른바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한국민주주의의 현황에 관한 견해와 전망을 펼칠 예정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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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 당시 성립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9차 개정헌법의 헌정체제와 사회문화의 기조를 지금까지 큰 틀에서 유지하며 이것이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학관계(dynamics)를 만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의 한국사회는 여야간 정권교체, 시민사회 활성화, 남북 긴장완화와 같은 성공적인 민주주의 발전 요소도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도전이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에 맞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정체 또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 역시 존재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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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준 교수는 “통치성을 통해본 한국현대사: 한국의 사회구성과 ‘87년체제’”라는 주제로 보다 색다른 관점의 체제론을 제시한다. 정교수는 87년체제에서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뿐만이 아니라 53년 체제, 61년체제의 한국사회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전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 시장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교수는, 사회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국가의 개입 정도나 시장의 형성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해체하고 있는 통치성의 저발전을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척도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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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는 ‘체제논쟁’ 자체에 충실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손교수는 48년체제(극우반공체제)로부터 61년체제(개발독재체제), 이의 정치체제(관료적 권위주의내지 종속적 파시즘)를 해체한 87년체제를 거쳐, 이를 정치경제체제(발전국가)를 해체해 신자유주의로 대체한 97년체제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특히 97년체제를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사회체제로서 그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고 있다. <u>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서의 의미만 남았을 뿐 이미 97년체제로 대체되었고 08년체제 역시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갖고 있다는 면에서 97년체제의 틀 내에서 작동하고 있다</u>고 역설한다. 그는 앞으로 ‘너무 큰 체제론’이 아니라 정당체제, 사회운동체제, 분단체제 등 부분체계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보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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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교수는 민주화 20년의 발자취에 대해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문민화, 지방화, 엄정한 선거와 그 결과의 준수, 시민사회 발전, 남북화해 진전, 인권과 양성평등의 증진, 동아시아 협력 주도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왔지만 많은 문제를 낳아오기도 했다. 박교수에 의하면 <u>(‘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대통령제 권력구조, 지역주의의 과잉대표, 노동의 과소대표, 사법통치사회, 반복되는 개헌논의 등으로 표출되는) 제도적 불안정성, (민주화될수록 기업, 언론, 교육, 종교 등의 사회경제 권력의 자율성이 커짐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역진(逆進) 현상, (자유․시민․개혁 세력/담론과 노동․민중․급진 세력/담론 사이의 연합이 해체되는 대신) 경제유일주의․시장만능주의, 그로 인한 속물화 등이 부각되고 있다</u>고 보고 있다. 박교수는 <u>“사회정책(social policy)과 시장경제(market economy)를 결합”한 “사회국가”, 공적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시민교육, 헌정구조의 개편(4년 중임의 반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 감찰관련 기구의 독립 및 중립화를 통한 감독부(監督府)의 신설 등),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반(半)직접민주주의의 실현, 개혁세력의 최대연합을 민주화 의제로 설정하고 실천할 것을 주문</u>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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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발표 요약문<br />
< 통치성을 통해본 한국현대사 : 한국의 사회구성과 ‘87년 체제’ ></strong> - 정일준(고려대 사회학과 교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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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통치(governing)라는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개괄하면서, ‘87년 체제’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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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현재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국가화 또는 시장화가 아니다. 바로 국가의 ‘통치화’(governmentalization)가 문제이다. 통치성의 문제설정과 통치테크닉은 정치투쟁과 경쟁의 유일한 쟁점이자, 유일한 실제 공간이다. <u>국가의 통치화는 동시에 국가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국가가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동시에 국가의 안팎을 규정하는 바로 이 통치성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능력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등등을 끊임없이 정의하고 재정의 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통치기예이기 때문</u>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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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의 역사사회학이라는 시각에서 한국의 국가와 시장의 역사적 형성과 변형을 지구정치경제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한국의 사회구성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역사로서의 현재에 작용하는 안팎과 위아래의 힘들을 자유주의적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효과로 파악하면서 ‘87년 체제’ 담론을 ‘53년 체제’, ‘61년 체제’ 또는 ‘97년 체제’와 상호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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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자유주의 통치성이 뿌리내리지 못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 과속질주함으로써 현 정부는 권위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통치성(authoritarian neoliberal governmentality)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국가의 과잉개입이나 과소개입도, 시장의 전횡이나 미비도 아니다. 바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해체하는 통치성의 저발전이 문제</u>이다! 비판은 통치에 선행하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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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한국체제’ 논쟁을 다시 생각한다.-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론을 중심으로></strong>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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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체제논쟁은 그동안의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정치경제체계와 정치체계의 결합체라는 ‘사회체계(social system)’와 헌정체제, 사회운동체제, 노동체제, 정당체제, 젠더체제, 분단체제 등 다양한 ‘부분체제들(partial regimes)’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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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때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서의 의미를 아직도 갖고 있지만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체계(열린 총체성)로서는 그 의미가 소멸됐고 현재는 97년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한국의 사회체계는 48년체제(극우반공체제)로부터 개발독재체제인 61년체제, 이의 정치체제(관료적 권위주의내지 종속적 파시즘)를 해체한 87년 체제를 거쳐 정치경제체제(발전국가)를 해체해 신자유주의로 대체한 97년체제에 이르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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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정치경제체제의 단절이 없었다는 이유로 61년 체제와 97년 체제만이 존재하며 87년체제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부의 견해는 경제환원론으로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08년체제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못이다. <u>이명박정부들어 정치적 재권위주의화와 경제체제의 우경화(‘우파 신자유주의’)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97년체제의 특징인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08년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u>이다. 다만 97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08년체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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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회체계 분석과는 별개로 다양한 수준에서의 부분체제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바 이글에서는 그 예로 헌정체제, 노동체제, 분단체제, 정당체제, 정치균열체제, 민주화체제, 사회운동체제 등을 예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분단체제의 경우 적대적 분단을 특징으로 하는 48년체제에서 평화공존적 분단을 특징으로 하는 2000년체제를 거쳐 다시 적대적 분단으로 회귀하는 08년체제로 나가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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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체제는 좌우 이념정당이 난립했던 45년체제에서 보수정당들만 남은 53년체제(보수정당독점체제), 이 보수정당들이 지역정당으로 변모한 87년체제(보수지역정당독점체제)를 거쳐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루어진 현재의 04년체제(보수지역정당우위체제)에 이르고 있다. 사회운동도 좌우운동이 난립한 45년체제, 분단후 자유주의적 반독재민주화운동만 남은 53년체제, 5.18이후 진보운동이 살아난 80년체제, 민주화이후 자유주의적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분화되는 90년체제, 뉴라아트같은 냉전적 시민운동이 등장해 민중운동, 시민운동, 뉴라이트의 3분구도가 이루어지는 2000년체제, 효순, 미선 촛불시위이후 조직화되지 않은 네티즌들이 주도하는 02년체제로 변화해 왔다. 한국의 체제논쟁은 앞으로 이 같은 다양한 부분체제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뚜렷이 한 뒤 이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많이 축적해 나가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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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한국민주주의; 온 길, 선 곳, 갈 길 ></strong> - 박명림(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정치학)<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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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경험하는 건국 이래 최초의 진보정부에서 보수정부로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수많은 이론적 현실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국 민주주의 후퇴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고, 속도가 빠르며, 범위가 전사회적이라는 점이다. 과연 민주화 2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문제였는가? 현실구조와 정치에서 항상 거시는 미시로 발현되고, 미시는 거시로 응축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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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화의 긍정적 성취로서는 탈군사화와 군부의 정치개입 전면금지 및 문민화 고착, 주기적 선거 및 결과승복 전통 확립, 사법부 독립, 인권증진, 정치사찰의 중단, 돈 안드는 선거 실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최소한의 공공성·형평 정책의 추구, 시민사회와 참여의 폭발적 성장, 양성 평등의 진전 및 지방자치·지방분권 증진, 내적 민주화의 남북관계로의 파급효과로 인한 대북화해협력 정책의 시도, 동아시아 협력 이니셔티브 주도 등의 성과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성취는 쉽게 폄하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발전이 지금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역전되고 있다는 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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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많은 문제를 안은 채 진행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br />
첫째는 한국 민주화의 제도적 불완전성, 불안정성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탈정당화, 지역화, 대통령-여당 갈등의 반복, 사법화·형사화, 헌법적 문제의 반복적 출현이 지속되었다. 87년 이후 한국정치의 대의기능은 정당을 넘어 시민단체, 사법부, 인터넷, 언론으로 5분(五分)되었다. 정당의 역할은 그만큼 축소되었다. 게다가 ‘모든 민주정부들’이 대통령탈당으로 인해 세계 정당민주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없이 반드시 비정당·무정당 통치기간을 가질 정도로 정당체제는 불완전·불안정하였다. 모든 여당은 갑자기 대통령당화하였다가 급격하게 탈대통령화하였다. 동시에 대통령의 권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로 급변하길 반복한다. 대통령(현재권력)과 여당(미래권력)의 갈등 역시 필연적이었다. 노태우-김영삼, 김영삼-이회창 갈등 이래 현재의 이명박-박근혜 갈등에 이르기까지 현행헌정구조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선거균열과 정당체제는 지역주의·지역정당체제와 같이하며, 이는 일반적 사례와는 달리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역정당체제와 노동의 배제·과소대표가 병행된 것은 주목할만하다. 보수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이 김대중·노무현 집권조차 상당 부분 지역연합에 기초하였음을 고려할 때 이 요소는 헌정구조·정당체제와 관련해 심각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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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삶과 정치의 사법화와 형사화(criminalization) 역시 중요한 현상이었다. 즉 민주화 이후 법원-헌재의, 헌법적 법률적 권한을 넘는, ‘정치적’ 비중과 역할의 현저한 증대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행정수도, 병역의무, 호주제, 환경문제(새만금), 삼성승계를 포함한 중요한 정치·사회·경제·인권·생활 의제들이 법원의 독립을 넘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법원에 의해 결정되는 “법원에게 물어보는 사회”, “헌재에게 물어보는 사회”, 즉 ‘사법통치사회’(juristocracy)가 되었다. 검찰의 기소 및 법원의 재판이 국민대표의 당락을 좌우하는 형사화 역시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의회와 법원의 상호독립과 균형을 범위를 넘는, 비선출직인 법원의 과도한 사회개입과 결정권한은 대의민주주의의 위협요소가 아닐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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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제와 개헌문제 역시 빈발하였다. 중간평가 약속(노태우), 3당합당과 권력구조 개헌 합의(김영삼), DJP 연합과 개헌 약속(김대중), 개헌제안(노무현), 집권시 개헌 약속(한나라당)....을 포함한 모든 정부들이 개헌을 약속하거나 제안할 만큼 87년 헌정체제는 불안정하였다. 지금도 18대의회는 개헌문제를 계속 논의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극복하거나 정리하지 않으면 매 정부마다 개헌을 추진하거나 반대하는 상시개헌제안과 실패 상태가 반복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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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이념적 정서적 양극화였다. 이제 사회경제적으로 한국은 시장유일주의로 인해 정부의 시장화·사사화·탈공공화로 인해 시장의 경제적 불평등이 그대로 사회적 시민적 공공적 교육적 불평등으로 고착되는, 마치 부자 한국, 서민 한국의 두 개의 한국인 것처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통계를 따르면 양극화를 넘어, 민주주의의 기저조건으로서의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위협하는 거의 사회해체 수준에 돌입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정서적 이념적 거리 역시 너무나 멀어져 진보 한국과 보수 한국의 두 한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통합은 고사하고 두 이념은 지금 두 조직, 두 노선, 두 시위, 두 지향을 갖고 모든 이슈에서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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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한국민주주의의 사회적 경제적 역진현상이었다. 즉 정치와 사회경제의 심각한 부조응-탈구(dislocation)현상이다. 기실 이점은 한국민주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정부·정치와 시민사회만이 민주화되어 민주정부를 갖는 일종의 기형적 돌출적 민주화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정부만이 시민사회의 지지로 등장하고 지탱한, 마치 섬처럼 포위된 민주화였던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가 시장화로 치달으면서 모든 나라에서 국가의 민주주의를 밑받침하는 경제와 사회, 특히 기업, 언론, 교육, 종교의 핵심 4 부분은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증대되는 자율성에 바탕해 더욱 양극화·과두화(사실상 半獨占化)·보수화하였다. 우리는 자율화에 따른 거대한 힘의 역전과 포위, 이점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화로 인한 자율화, 즉 민주정부로부터 자율성을 부여받을수록 더욱 과두화하며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역설의 병행이었던 것이다. 즉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사회적 역민주화가 함께 진행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미 보수적 과두적인 경제사회 영역에다가 정부마저 투표를 통해 다시 보수정부로 바뀌자 모든 영역에서 일거에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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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담론적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현상 및 이의 전사회화-정치화였다. 일종의 좌우 모두의 단일표제주의로서의 경제유일주의 현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점은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두드러졌다. 특별히 자유-노동, 시민-민중, 개혁-급진 담론의 분열 - 양측 모두의 한계로 인한 - 과 후자의 전자에 대한 경제정책-분배정책 실패에 대한 거센 공격은 공교롭게도 보수언론을 통해 기업과 보수정당의 담론 장악 - ‘잃어버린 10년’ ‘경제가 문제다’ ‘CEO 대통령이 필요하다 ’- 에 크게 기여하였다. 자유-노동연합, 시민-민중연합, 자유-사민연합을 통해 보수파를 견제하고 사회정책-복지정책을 강화할 수 있었던 역사적 경로에 비해 이 분열은 경제사회의 과두화와 성장연합-발전연합의 재구축에 기여하는 역설적 역할을 수행하고 말았다. 급진파, 노동계층의 투쟁 및 자유-노동연합이 보수주의를 견제하고 자유주의-사민주의-복지연합을 갔던 경로들과 반대를 갔던 것이다. 보다 거시적 비교 연구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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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경제유일주의,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속물화 역시 지적되어야한다. 인종, 지역, 종교적 요인을 빼고 한국에서 특정 상류층 구역의 선거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몰표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화의 진전과 함께 삶의 거의 모든 가치가 경제적 물질적 부의 크기에 의해 좌우되면서 인간적 사회적 삶의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급격하게 쇠락, 축소되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복부인”, “투기”와 같은 부정적 용어들조차 시장화의 흐름 속에 성공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는 가치전도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들로 인한 재빠른 부의 창출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무런 도덕적 부끄러움과 장애를 느끼지 않는 가운데 삶의 빠른 외면적 성공을 자랑하는 전국가적 전사회적 전세대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언표는 아마 “초등학교 때 1억 만들기”와 같은 가공할 시장주의=물질유일주의(유물주의)=속물주의일 것이다. 민주시민은 고사하고 여러 기본자질을 갖춘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화창출의 주체를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단의 목적화로의 완전한 전도인 것이다. 재화의 크기가 삶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보니, 절차와 방법에 관계없이 가장 속물적인 삶조차 가장 성공적인 삶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 큰 문제는 공적 시민과 사적 삶, 공적 요구와 사적 욕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과 무게의 완전한 소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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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비교적 분명해보인다. 발표자는 이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br />
먼저 <u>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최소 존재 이유의 복원, 즉 형평성, 공공성의 회복이랄 수 있다. 그것은 시장의 극심한 양극화 과두화와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형평성·공공성 회복, 분배역할</u>을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와 민주정부의 존재이유는 시장의 창의력을 보장하는 동시에 불평등을 교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장과 정치는 존재의 이유가 같지 않으며 서로 보완적 역할을 통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발표자는 삶의 질과 복지를 추구한, 한국 정도의 경제성장 이후 거의 모든 선진 민주국가들이 갔던 “사회정책(social policy)과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결합”, 또는 “사회국가”를 바람직하면서도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u>현재 OECD 평균 1/6-1/7로서 최악에 불과한 정부의 공적 지출, 재분배역할을 최소한 OECD 평균수준이라도 수행해야하는 것이다. 사회정책과 분배역할에 관한한 한국은 정부 역할이 없거나 그대로 시장에 맡겨놓은 상태이기 때문</u>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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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많은 사례에 대한 거시적 역사적 비교연구들이 보여주었듯 사회권력자원의 분산과 형평 없이 극심한 과두사회나 양극화 상황에서 지탱가능하고 발전하는 민주체제는 존재하기 어렵다. 민주정부는 전적으로 사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 즉 과두체제로 치닫거나 또는 민중저항을 통해 붕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공공성 형평성의 회복은 지금 한국민주주의는 물론 한국사회와 체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화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민중혁명과 급진주의를 넘었던 서구부르주아처럼, 한국 보수정부와 세력의 보수적 지혜가 절실한 부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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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u>시민덕성의 제고를 통한 사회적 공준, 공동선, 공동가치 기준의 확립을 위한 노력이다. 좌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합의가능한 공준을 창출하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추구하는 문제보다 더욱 중요</u>하다. 그리고 기실 인간과 사회문제의 많은 것들은 두 이념의 극단적 편향으로는 외려 풀리지 않으며, 거꾸로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인가의 중용,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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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회문제와 인간문제, 개별성과 전체성은 분리될 수 없다. 시민 개개인 삶의 발전을 위한 사회전체 문제의 해결은 필수적이며, 전체 사회문제의 바람직한 개선의 목표 역시 개별적 삶을 행복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발전을 위한 공적 시민의 양성과 시민덕성의 제고·교육은 그 자체 사회적 가치이자 개인적 행동규범을 포괄한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좋은 시민없이 좋은 민주주의, 좋은 사회는 어렵다. 좋은 민주주의는 곧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체제이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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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헌정구조의 근본적 개혁이다. 이제 현행 단임 대통령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도, 지속될 수도 없다. 한국민주주의는 고사하고 한국의 체제 자체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행 5년단임제이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행정부와 의회, 대통령과 국무총리(또는 부통령)가 권력을 분점하는 동시에 책임성을 제고하며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4년 중임의 반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를 제안한다. 또 국회의원 보수와 특권을 축소한 뒤 국회의원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늘려 대표성을 강화한다.(현재는 선진국의 1/2 수준) 그때 비례대표는 지역대표의 1/2 수준으로 대폭 증가시킨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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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지역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대통령 임기 중간에 비례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임기 중간에 중간평가를 결행, 직접 참여와 저항 이외에는 임기 내내 평가의 기회가 없는 현재의 선거주기를 혁신한다. 즉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한다. 권력구조는 4권분립체제를 지향한다. 검찰·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금융감독기구 등 감찰관련 기구의 독립 및 중립화를 통한 감독부(監督府)의 신설을 통한 입법-사법-행정-감독의 4권분립을 제안한다. 이제 3권분립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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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민주주의 구성원리의 수정이다. 87년 이후가 보여주듯 인민주권과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참여와 대의의 결합 없이는 후자, 즉 대의민주주의조차 안정될 수 없다는 점이다. <u>국민주권을 넘어 인민주권과 참여를 제도화하는 민주정부 구성 노력이 절실하다. 즉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반(半)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특히 주요 사안에 대한 시민직접결정의 원칙을 도입하여 확장할 필요</u>가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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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대표들(의회)의 대표행위에 대한 시민통제 역시 강화되어야한다. 이제 시민참여, 시민발의, 시민청원, 시민소환, 시민입법, 시민의회(공회)제도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통해 참여와 대의의 결합 없이는 6월항쟁, 촛불, 탄핵반대, 추모 열기 등을 수용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시민의사를 제도적으로 수렴·반영하지 않고는 대의정치와 정당체제를 안정시킬 방도가 존재하질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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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는 정치연합을 향한 진보개혁진영의 지혜, 중용, 공존, 인내를 강조하고 싶다. 야당-재야-노동-시민 사이의 최대민주연합을 통해 반군부독재 민주화를 이루었듯 이제 다시 최대진보개혁연합, 또는 최대복지연합, 자유-사회-개혁연대를 결성하여 2단계 민주화를 달성해야할 것이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 자유-노동, 시민-민중 세력, 온건 개혁과 진보 개혁 세력과 정당 사이의 기원, 네트워크, 노선, 지향은 (기존 민주개혁, 또는 급진담론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금번 정권교체로 드러났듯) 그들과 보수세력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작다. 아니 크더라도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줄 정도로 강조되거나 최대강령주의·근본주의를 고수해선 안된다.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 효과를 목도한 이제 이 차이는 과거처럼 반복되거나 과장되어서는 안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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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59915.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59915.html"><font color="#333333">‘87년 민주주의’ 후퇴인가 ‘97년 신자유주의’ 심화인가</font></a></strong>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6-11 오후 02:31:26)<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사회 체제논쟁 재점화<br />
‘반신자유주의’-‘반이명박’ 정치논쟁으로 확대<br />
손호철 “IMF뒤 양극화·비정규직 등 근본 변화” <br />
</font></strong> <br />
‘87년 체제냐, 97년 체제냐.’ 진보 사회과학계에 다시 한번 ‘체제논쟁’이 점화될 조짐이다. 논쟁의 중심에는 1990년대 후반 노사관계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뒤, 2000년대 중반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특성을 총괄하는 용어로 공론화된 ‘87년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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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한국 민주주의와 87년 체제’라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87년 체제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체제논쟁은 더이상 ‘주먹구구식’ 논쟁이 아닌,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인 ‘사회체제’와 헌정·노동·정당·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들’을 구분하는 체계적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논쟁의 방향 전환을 촉구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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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을 규정하는 총체적 사회질서가 1987년 불완전한 민주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보는 ‘87년체제론’에 대해선 6월항쟁 20년을 전후한 2007년 무렵부터 다양한 논의들이 쏟아졌다. “87년체제는 없다”는 전면부정론이 나왔는가 하면, “87년체제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종결됐다”는 시효소멸론도 주목을 받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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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이명박 정부 출범을 거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논쟁은 촛불시위와 미디어법 파동, 용산 참사 등을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공고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여겨지던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 양상을 보이면서 이른바 ‘민주화 체제’로서 87년체제가 갖는 과도기적 불안정성이 거듭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창비그룹이 최근 87년체제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를 <87년체제론>이란 책으로 묶어낸 것이 발화점 구실을 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97년체제의 우위를 주장하는 손 교수 등의 주장을 “우파의 ‘선진화론’과 동일한 프레임에서 87년체제를 평면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번에 손 교수가 작심한 듯 창비의 87년체제론을 반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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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의 비판은 창비그룹이 1987년의 질적 전환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이후의 전환, 곧 1997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화가 갖는 의미를 부당하게 축소하고 있다는 데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의 주류화와 청년 실업, 사회 양극화 등 “97년 이후 나타난 근본적 변화를 목격하면서도 한국의 사회체제가 여전히 87년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눈먼 ‘색맹 사회과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손 교수가 볼 때, 87년체제는 헌정체제 같은 부분 체제의 의미는 있지만, 사회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체제의 의미는 소멸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변화에 주목하는 ‘08년체제론’에 대해서도 손 교수는 “권위주의 회귀와 경제의 우경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97년체제의 특징인 제한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것이 아니란 점에서 08년체제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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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쟁의 무게가 간단치 않은 것은 체제 성격을 둘러싼 이론적 경합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반신자유주의 연합’(97년체제론) 대 ‘반이명박 연합’(87년체제론) 같은 정치전략과 연동된다는 데 있다. 1980~90년대 엔엘·피디간 사회 성격 논쟁이 ‘민주대연합론 대 독자세력화론’이라는 정치 논쟁과 짝을 이뤄 진행된 것과 같은 이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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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는 헌정·노동·민주주의·분단·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손 교수의 논의에서 이들 체제는 사회체제의 ‘하위체제’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그 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97년체제가 요청하는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기축으로 다양한 ‘하위연합’을 접합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반헤게모니 전략이다. 손 교수의 97년체제론을 ‘신자유주의 환원론’으로 비판해온 반대 진영의 반응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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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114.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114.html"><font color="#333333">파시즘X의 탄생</font></a></strong> (한겨레21 2009.06.12 제764호, 안수찬 기자)<br />
<strong><font color="#193da9">[표지이야기]유사 파시즘, 신자유주의 공안국가, 파시즘 프렌들리… <br />
규정은 아직 이르지만 ‘파시즘 경향’은 급증해 <br />
</font></strong> <br />
청와대 한 수석실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좌파 방송 때문이므로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미디어법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국정 방향에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시민들의 추모 열기, 교수들의 시국선언,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조사 결과 등을 모두 배척하고 있다. ‘독주’다. 이를 ‘독재’라 칭하는 이도 늘고 있다. 비판 여론은 안 듣는다. 집회·시위는 금지한다. 그들은 현재 조작당하고 있을 뿐이므로, 조만간 대중을 조작하는 자들을 처벌하면 된다…. 청와대의 이런 인식에서 ‘파시즘’을 읽어내는 목소리도 마침내 터져나오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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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건과 하나의 전략이 결합할 경우 이명박 정권은 새로운 ‘파시즘 엑스(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계간 <문화과학> 2009년 여름호)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공동 명의의 글이 최근호에 실렸다.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 엑스’로 돌변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학자들이 집단적으로 ‘파시즘’의 개념을 빌려 현 정부를 공식 호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계에선 파시즘을 함부로 규정하는 것을 꺼린다. 우파 세력을 모욕주려고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면, 진짜 파시즘의 등장을 흘려버리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 있다. <br />
<br />
‘파시즘 엑스’는 조금 다르다. 일단 유보적인 개념이다. <u>이명박 정권이 곧 파시스트 정권인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형태가 과거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즘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 미지의 것을 경고하는 개념</u>이기도 하다. <문화과학>은 현 정부가 ‘파시즘 엑스’로 변화할 “여러 조건과 요소들이 현저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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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u>한국 경제가 올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으로 침체할 경우, 또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돼 먹고사는 문제에만 급급할 경우, 그리고 우파가 억압·통제를 통해 이런 상황을 돌파할 경우,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 해체기의 ‘파시즘 엑스’가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다”</u>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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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의 설명은 이렇다. △장기 침체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6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 △1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 및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자이면서도 소비자본주의에 익숙한 20대 등이 우익 사회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지지율 30%를 떠받치는 견고한 보수층(우익 개신교·50대 이상 노년층·영남)이 중핵이 되고, 뉴라이트 단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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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지난 3월 국민행동본부 산하 ‘애국기동대’의 출범은 작지만 눈여겨볼 대목이다. 해병대·특전사 출신 90여명으로 이뤄진 애국기동대는 출범 선언에서 “반헌법적 좌익 폭도들과 싸운다” “좌익들의 패륜적 테러에 대해 정당방위적 자위권을 행사한다”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종북 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등을 ‘맹세’했다. 선언문만 보자면, 극우 돌격대를 연상시킨다. 출범식 직후에는 무술 시범도 보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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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강력한 국가 통제를 특징으로 한다. <문화과학>은 ‘MB 악법’에 주목한다. <u>국정원법 개정(국내정보 수집권한 확대·국가비밀 범위 확대), 집회·시위법 개정(마스크 착용 금지), 신문·방송법 개정(신방 겸영 허용·대기업 지상파 지분 확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감청 권한 강화) 등은 개인의 자유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면 표현의 자유의 모든 영역을 ‘합법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 여기에 최근 북핵 위기로 인한 남북 대결 국면은 ‘외부의 적’을 동원하는 공포정치의 바탕이 될 수 있다</u>. <문화과학> 발행인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히틀러의 나치즘은 정권을 먼저 장악하고 나중에 우익 대중운동을 일으켰다”며 “이명박 정부의 집권 기간에도 ‘국면’에 대한 판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 엑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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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를 매개로 탄생한 합성물이 파시즘 정권이다.”(로버트 팩스턴, <파시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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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현 정권이 정말 파시스트 정권이라면 모든 세력이 연합해 이를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강하게 규정하면 좌파 세력 내부의 건강한 ‘차이’가 사라지고 일종의 ‘반파시스트 전선’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민주주의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대중을 동원해 반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권력이 판단한다면, 이를 ‘유사 파시즘’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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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고려대 교수(공공행정학)도 “권위주의를 오랫동안 경험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을 염두에 둔다면, 노골적인 파시즘이 한국에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억압은 “전체주의건 권위주의건 파시즘이건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로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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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파시즘 대신 ‘신자유주의 공안국가’라는 말을 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집회·사상·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고, 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도 과거처럼 ‘정권의 하수인’이 됐다. 그는 “파시즘이라고 규정짓는 일보다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파쇼화’를 우려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u>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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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레커먼은 ‘프렌들리 파시스트’(friendly fascist)라는 말을 썼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선한 얼굴로’ 정치적 반동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파시즘 프렌들리’의 맥을 잇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파시즘 이행기’라는 표현을 썼다. 부시 정권이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u>“파시스트 체제로 옮아가는 것은 여러 행위들이 합쳐져 민주주의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 결과) 어느 순간 민주주의가 급작스럽게 퇴보한다”</u>고 봤다. ‘파시즘 이행기’를 판별할 몇 가지 잣대를 제시했는데, 이명박 정부 시기의 한국 시민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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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에 나서거나 비판적 발언을 하면 신체적 위협을 가한다. 시민들의 무차별 체포와 투옥을 꺼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준군사조직’이 등장한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도청을 합법화하고 개인의 전과와 정치 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 자료를 활용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겨냥해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시민단체에 첩자를 심어 조직을 파괴하거나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으로 괴롭힌다. △비판적 검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인격모독을 포함한 고문, 근거 없는 고발,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마구잡이 기소 등의 사법독재가 등장한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언론인을 모독하거나 수치심을 주고, 해당 언론의 책임자들이 언론인을 해고하게 만든다.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범죄로 만들기 위해 불법행위의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새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안팎의 위협을 부각시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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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울프는 파시즘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파시즘 이행기’의 잣대는 어쩐지 낯익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이 지난 2009년 6월, 한국의 시민들은 파국의 징후를 날마다 발견한다. 경찰·검찰·언론 등에서 일어나는 그 징후를 돋보기로 들여다볼 때다. 안 그러면 ‘파시즘 엑스’가 정말 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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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파시즘이란 ‘경고 표지’를 세심히 읽어라</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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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파시즘 탄생 90주년이다. 파시즘은 1919년 3월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무솔리니가 퇴역군인, 언론인, 지식인 등을 모아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들을 ‘파시 디 콤바티멘토’, 즉 전우단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파쇼 또는 파시즘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 악마화하고 이에 가차 없는 폭력을 휘둘러 축출하는 정치·사회 운동을 일컫게 됐다. 파시스트 정권은 이런 일을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경우다. 그 어원은 ‘도끼’다.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 시가 행진 때 나뭇가지에 싸인 도끼를 들었다. 그걸 ‘파스케스’(fasces)라 불렀다. 국가의 권위와 결속을 상징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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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파시즘을 독재,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과 구분해 쓴다. 학문적 의미에서 파시즘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발생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 또는 민주주의의 ‘실패’가 파시즘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화 이전 단계의 제3세계 독재는 파시즘이 아니라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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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대중운동의 특성을 띠고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에 대한 강력한 분노를 띤 광범위한 대중이 파시즘을 옹립한다. 다만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은 나치 정권 수립 이후 본격적인 ‘나치 국민운동’이 전개됐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파시스트 대중운동이 선행해야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반대의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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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의 고전인 <파시즘>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은 “미래의 파시즘은 굳이 고전적 파시즘의 외적 특징이나 상징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시즘 등장의 ‘경고 표지’를 더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u>위협을 느낀 보수 세력이 적법 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헤매며 국가주의적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u>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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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111.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111.html"><font color="#333333">촛불은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font></a></strong> (한겨레21 2009.06.12 제764호, 신윤동욱·임지선 기자) <br />
<strong><font color="#193da9">[표지이야기] 들끓던 애도가 잦아든 거리, 강경 진압에 저항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슬픔은 켜켜이 쌓이고 쌓이네</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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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애도의 시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그렇게 말했다. 애도의 행렬이 거리로 나와서 분노의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각자가 슬픔을 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덧붙인다. “그러나 마음에 저축된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아가 한홍구 교수는 사람들이 촛불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탄핵 저지의 촛불은 민주세력에 다수당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개혁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촛불은 아무리 거리에서 외쳐도 이명박 정부가 듣지 않는단 사실을 알려줬다. 그렇게 촛불은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의회에 맡겨서 안 되니까 거리로 나왔는데, 거리로 나와도 안 되니 다시 의회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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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투표다. 수많은 조문객은 종이에, 가슴에 꾹꾹 눌러썼다. ‘평생 꼭 투표하겠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그것을 “유권자의 의식과 기준을 확 바꾼 혁명”으로 평가한다. 장석준 실장도 “민심이 정치에 스며든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촛불이 지난 4월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촛불의 효과는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의 보수적 선택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바꿔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수도권 중도층의 민심을 2007년 이전으로 되돌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수도권의 변화가 부산·경남 등 지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장 실장의 분석처럼, 실제 6월3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앞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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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합법적인 조문으로 이미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며 “지금도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한국방송 <뉴스9>를 보는 대신에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를 보는 것으로 유·무형의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안진걸 팀장은 “대규모 시위로 드러나지 않아도 반이명박 정서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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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강경 진압의 침묵 효과도 있다. 박진 활동가는 “수많은 전경에 첨단장비를 동원하고 법률 조항까지 활용해 단순 집회 참가자도 범법자로 만드는 물리력의 겁주기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강력한 물리력 동원의 이면에서 자신감의 결여를 읽기도 한다. 박 활동가는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역 광장 곳곳에 숨어 있는 경찰을 보면서 동의받지 못한 권력의 자신감 상실이 애처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감이 곧바로 정권의 위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민주화의 역설적 혜택을 보수 세력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석준 실장은 “쇠고기 정국의 촛불도 정권을 바꾸자는 요구는 아니었다”며 “1987년 민주화 이후에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동의가 이뤄져, 정권이 반민주적 수단을 동원해도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을 깨지 않는 한에선 정권 교체 요구까지 나아가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또 다른 측면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수구 세력은 국민이 말로는 저렇게 하지만, 선거에선 정작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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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성과와 더불어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지금 상실의 대상은 단순히 노무현 개인을 넘어서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무엇”이라며 “그러나 <u>대의제 민주주의 틀을 넘어서기 꺼리는 한국의 중간층은 불만의 원인인 이명박 정부라는 기표를 제거할 방법도 없다</u>”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촛불을 민주화 이후로 추구해온 정상 국가에서 벗어난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항의로 보았다. 그러나 중간층의 이러한 열망은 새롭게 등장한 기득권 정권 앞에서 꺾였다. 이 교수는 <u>“한국의 기득권층은 사익 추구를 곧 공공성으로 착각하는 집단”이라며 “87년 이후로 민주주의 룰을 만들어온 중간층의 자부심은 기득권 정부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u>고 지적했다. 그렇게 촛불은 중간층에 좌절의 경험으로 남았다. 그래서 대의제 안에서 좌절된 욕망을 위무하는 굿 같은 촛불을 다시 들기는 어렵단 것이다. 여기에 장석준 실장은 촛불 방식의 한계도 지적한다. <u>“촛불은 누구나 참여 가능한 수준의 저항으로 대중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정권의 강경 진압에 맞서 이런 방식의 저항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부딪혔다. 그래서 집회가 유지되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대중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u><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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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복한 슬픔은 당장의 행동을 넘어서 사람들 가슴에 깃발을 세우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유관순의 죽음이 3·1 운동을, 순종의 죽음이 6·10 만세운동을, 김주열의 죽음이 4·19를, 박종철의 죽음이 6월 항쟁을 낳았다”며 “그의 서거도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크나큰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종이나 순종 같은 조선시대 임금보다 훨씬 친근한 존재여서 사람들이 느끼는 일체감이 더하고 슬픔이 깊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광주보다 더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조문객이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네댓 시간을 기다려 조문을 했던 이들을 “조문객이 아니라 상주”라고 표현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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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5090838&section=01]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5090838&section=01"><font color="#333333">다시 문제는 대중이다</font></a></strong> (프레시안,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2009-06-15 오전 9:31:21)<br />
<strong><font color="#193da9">[손호철 칼럼] 탄핵정국-MB집권-촛불집회-조문정국, 그리고…</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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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순간'. 대중이 일상으로 벗어나 광장으로 뛰쳐나온 '광장의 정치'가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역사에 드물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칭한다.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겨난 '광기의 순간'과 조문정국은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를 단락으로 하여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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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재보궐 선거에 나타난 한나라당의 참패를 시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한나라당의 추락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후 가속화된 데다가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등해 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역전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지율의 변화가 현재 의석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나아가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을 포함한 냉전적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우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속도전이라는 국정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을 경우 6월 국회에서 언론관련법의 강행처리 등 최근 일련의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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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사과 등이 없으면 6월 국회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밝힌바 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도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등이 언제까지 등원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전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일단 국회가 열리게 되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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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밖으로 나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이 또 다른 변수이다. 특히 진행되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총파업을 비롯해 민주노총이 예고하고 있는 7월 총파업, 그리고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강행처리하려 할 경우 일어날 MBC 등 언론노동자들의 총파업, 아직도 별 성과 없이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용산참사 관련 투쟁 등 다양한 시민사회수준에서의 투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 투쟁 역시 일반 대중들의 지지가 없는 한 고립되어 각개 격파될 수밖에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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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것은 다시 한 번 대중이다. 대중이 노대통령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성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에 분노해 다시 한 번 일어선다면 이 같은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다시 광장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 광장을 외면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결국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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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중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의 역사만 해도 그러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분노한 대중은 질풍처럼 거리로 달려 나와 노 전 대통령을 구해줬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세력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천막당사 생활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대중은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표차의 승리와 한나라당에 총선에서의 압승을 선사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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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잠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다시 대중을 거리로 내몰았다. 장마도, 장대비도 꺾지 못한 대중의 분노 앞에서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 올라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보며 자성을 했다는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촛불이 사그라지자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용산참사와 여러 비극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침묵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격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져왔고 이에 다시 대중은 일어나 끝없는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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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정국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애도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또 다시 민심에 귀를 닫고 속도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MB의 오만에 대중이 분노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 촛불 이후처럼 조용히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지,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해가 져야 비상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 사후적 해석만을 할 뿐, 언제 대중은 분노하고 언제 대중은 침묵하는지, 알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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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615151259&section=01]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615151259&section=01"><font color="#333333">현 단계 '진보개혁세력'의 과제는? 역시 '연합'이다</font></a></strong> (프레시안, 조성대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한신대 교수, 2009-06-15 오후 3:38:14)<br />
<strong><font color="#193da9">[기고] 수도권 선거연합 합의가 출발점</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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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역주행시대와 구동존이(求同存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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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MB정부가 탄생한 후 후퇴만을 거듭하는 소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잡아 세워야 한다. '민주회복 국민위원회'의 당면한 과제는 22년 전 6월 항쟁의 피와 땀의 결실인 87년 체제를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세는 민주주의회복을 위한 반MB전선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u>현 단계 반MB전선의 요체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MB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통해 대안적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u>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87년 체제가 생산해낸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계승함과 동시에 진일보시키는 작업인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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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정책연합은 결국 공적 영역의 회복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로 인해 허물어진 한국사회를 복원하는 중요한 원칙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만으로 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공동의 과제일 수밖에 없으며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공통된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런 대(大)정책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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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동안 진보정치세력은 서로의 차이를 강조하고 결별하는데 너무 익숙해왔다. 몇몇 정당 지도자들의 당파적 결정에 의한 분당 및 신당창당의 반복, 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종북주의 논쟁은 분열과 결별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진보진영이 분열할 때 대중들은 우리로부터 이탈하며 결국 MB식 정치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정책연합을 구성함에 있어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즉, 차이는 유보하고 공통점을 확대발전시키는 넓은 진보로 세력을 재구성해나가야 하며, 이는 당면한 반MB 진보연대의 실천과제이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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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연합의 길<br />
4·29 재보선은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MB식 정치는 아니다"는 정치적 심판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이다. 4·29 재보선은 MB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한나라당에게 0대 5라는 참패를 안겨준 이번 재보선은 분명 MB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보다 주의 깊게 짚어봐야 하는 대목은 선거가 "MB식 정치냐 아니냐"라는 질문지에 국민들이 단지 "MB식 정치는 아니다"고만 판정해 주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정치노선과 정치세력이라는 양 측면에서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노선을 심판하고 퇴출시킬 수 있는 통일적인 정치적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MB식 정치는 행정부 출범초기의 집권 정치연합을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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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이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진보개혁세력에게 안겨주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단일화에 이은 반MB진영의 정치적 승리를 어떻게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확대 시킬 것인가에 있다. 4·29 재보선에서 승리한 각 정당이 그 승리를 당파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존립과 독자적 발전에 대한 유권자의 위임으로 아전인수 한다면 진보개혁진영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정치지형을 의제적으로 다당제화해서 결과적으로 진보의 분열을 정당화하고 보수·수구적 정치세력의 정치적 재기와 독주에 협력하게 될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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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민주당의 행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4·29 재보선 당시 민주당은 한마디로 말해 반MB진영의 구심 역할에서 낙제 점수를 보여줬었다. 전주지역 공천을 둘러싼 당 지도부의 분열과 DY의 무소속 출마는 그 진의야 어떠했던 간에 민주당이 과연 대안정당일 수 있는가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했다. 부평과 시흥에서의 민주당의 승리 또한 수도권 개혁블럭 유권자들이 출구(exit)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MB심판의 선택지로 민주당을 활용한 것이지 진정한 대안정당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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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은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앞선 당지지율과 서울광장에서 끓어오르는 민심에 다소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모든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할 수 있는 의제를 제안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제반 진보적인 사회세력과 소통하며 반MB전선을 폭넓게 재구성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실패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민주당을 차갑게 외면하고 현재의 지지율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버릴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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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광장의 성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할 경우 촛불 민심이 차갑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점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노당과 진보신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울러 현재 회자되고 있는 친노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도 여론의 차가운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MB식 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진보개혁진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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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2010 지방선거와 '진보적 연립자치'의 방향<br />
그렇다면 진보개혁진영은 '반MB 진보개혁연대'의 통합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가? 첫째, 시기적으로는 2010년 지방선거를 단기적 목표지점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을 목표지점으로 순행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통합의 형식으로 연립(자치)정부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통합의 진원지를 우선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에 두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p>10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가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의 기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조건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통해 종국적으로 상층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연대의 좋은 시험장이 될 수 있다. <u>반MB 정치통합의 사회적 요구가 높은 이 때 우리는 가장 하위의 지방정부 단위부터 서로의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확대해나가는 연립자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2012년 대선에서는 명실상부한 진보개혁진영의 연립정권을 실현해야 한다.</u> 물론 그 전까지 진보개혁진영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될 수만 있다면 연립정권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의 단일정부가 구성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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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내용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연대이며, 구동존이(求同存異로)의 지혜가 이 과정에서 더 없이 중요한 자세임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통합은 어떤 형식적 틀을 지닐 수 있는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연립자치, 즉 각 지방정부를 진보개혁세력의 연립정부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연립의 지분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각 정당 혹은 정파가 얻는 국민적 지지도를 기준으로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광역의회 또한 연정을 구성할 것을 목표로 교통정리를 해나가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를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로 확산시켜 나가면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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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진보적 연립자치를 목표로 형식적 틀은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및 필요하다면 진보적 시민단체를 포함해 대표자 연석회의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10월 재보선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게는 아래로부터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학습과 훈련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실험장소가 될 것이다.<br />
<br />
더욱 중요한 것은 연립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각 정당은 현재의 정당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 과정에서 각 당은 파당적 이해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의 선명한 정치노선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통합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지가 될 것이다. 물론 진보적 연립자치를 전국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나 그 마저도 난관에 봉착한다면, 수도권에서나마 후보단일화를 통해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수도권이 개혁블록 형성의 핵심적 지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외에 향후 대선과 총선 가두에서 반MB 정치의식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개혁의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도권에서의 승리는 진보개혁진영에게 모멘텀을 부여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지방선거를 평가하는 리트머스지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무조건 단일화된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해야함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하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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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u> 현재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은 민주주의회복과 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 과제의 도출과 해결을 위한 건설적 토론과 대안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넓은 진보로의 재구성을 추진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첫째, 현시점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기치로 반MB 진보연대를 넓은 수준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둘째,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반MB 연립자치의 승리로 몰고 가야 한다. 10월 재보선에서의 후보단일화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위한 연합공천과 후보단일화를 실천해야 한다. 셋째, 최소한 진보개혁진영은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 즉 수도권 선거연합에 합의해야 한다. 수도권의 승리는 전국승리의 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정당 및 정파는 자신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u>.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의 기득권 포기는 진보연대 구축에 있어서 민감하지만 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통합의 전제조건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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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6113535&section=01]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6113535&section=01"><font color="#333333">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font></a></strong> (프레시안,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사회민주주의연대 회원, 2009-06-16 오후 12:00:01)<br />
<strong><font color="#193da9">[복지국가SOCIETY] 노무현 이후, '초록-복지 동맹'이 필요하다</font></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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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3]로 이동합니다." href="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3" target="_blank">이명박 정부를 ‘파시스트’로 부를 것인가</a></strong> (시사IN [92호] 2009년 06월 15일 (월) 10:59:05 이종태 기자)<br />
<font color="#193da9"><strong>경찰 폭력,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극우 세력의 준동. 파시즘을 연상케 하는 현실. 한국은 파시스트 국가로 가고 있는가. </strong></fon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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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8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뉴라이트 계열의 사단법인 시대정신 개최)에서는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취지문에서 “광우병 파동, 용산 참사 및 노무현 국민장 등에서 주장하는 민주화 요구는 실체가 전혀 없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은 민주 절차에 따라 선출된 합법적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그렇다면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안 이사장은 ‘사상적 포장에 불과하다’라고 아주 명확하게 정리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포장했나? ‘종북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통일지상주의, 반미주의’ 등이다. 결국 안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민주주의 논쟁은 극좌 세력의 위장전술에 불과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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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정당에서는 제왕적 총재가 부활하면서 사당화(私黨化)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후보 경선이 사라졌다.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도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이다. 임 교수는 <u>정치 부문 외에서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읽어낸다. 경제·복지·교육 등에서 시장원리만이 강조되면서 공공성과 사회통합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u>이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위협이다. 그래서 임 교수에게 촛불시위는 “자기 파괴적인 시장의 운동에 저항해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민주수호 운동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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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논지가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에게는 “현행법상 불법 시위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민들은 (주권자로서)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인민은 그 헌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행 법규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것은 “법치주의·입헌주의의 후퇴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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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법의 지배(입헌주의)’ 차원에서만 진단할 수는 없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복성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미네르바 기소 및 장자연 관련 수사 등 사례에서 ‘법의 지배’라는 원칙 자체가 유린된 증거를 찾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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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논쟁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 탄핵 정국 당시 ‘의회권력 대 거리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제기된 바 있다. 대의민주주의 대 직접민주주의의 구도다. 분명한 것은 ‘대의민주주의 대 직접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틀만으로 구체적 현상을 재단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추상적 논의의 틀을 벗어나 이명박 정부를 구체적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u>김세균 서울대 교수나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등은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라는 패러다임으로 우리 사회를 읽으려고 시도</u>한다. 예컨대 이들에 따르면, <u>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을 시장경제 일변도로 재편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까지 훼손하거나 후퇴시키기도 한다</u>.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명박 정부 이전인, 10여 년 전부터 추진되었다. 그러나 추진 주체가 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의 후퇴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성향상 경찰 기구를 통해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을 분쇄하는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적 사회 분열을 해결하기 쉽다. 자본에는 약하지만 대중에는 강하고, 자본에 대한 규제는 폐기하지만 대중의 저항은 제도적 폭력으로 완강하게 저지하는 국가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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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파시즘의 조짐을 읽어내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6월 초에 발간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제9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대해 “그 자체가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한다. 문화이론 전문지인 <문화과학> 2009 여름호는 ‘파시즘 X’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파시즘적 경향성’을 짚어보려고 했다. ‘파시즘 X’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파시즘(독일·이탈리아·일본)과 다를 수 있는, ‘미지의 형태의 파시즘’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조건과 한 가지 전략이 공고히 결합하는 경우 이명박 정권은 언제든지 새로운 ‘파시즘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 두 가지 조건이란 바로 △한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하는 경우와 △대다수 국민이 탈정치화되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몰되는 경우다. 이런 정세를 우파가 잘 이용하기만 하면 “‘파시즘 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주장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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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를 사실상 ‘독재자’로 규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을 제외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 정치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 등 원색적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런데 <u>특정 세력에 대한 규정으로 파시스트, 파시즘, 경찰국가 등은 ‘독재’보다 훨씬 강한 개념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독재자’와는 타협하고 거래할 수 있지만, 파시스트와는 어렵다. 파시스트는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강한 규정들이 지식인 사회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이 위험수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u>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4개월여 만에 엄청나게 많고 폭 넓은 정적 집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파시스트처럼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밑으로부터의 파시즘’이라는 대중운동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u>‘애국운동(우파 대중운동)’은 대중뿐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정부·여당으로부터도 진지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지식인 사회가 이명박 정부를 호명하는 방식들(파시즘·경찰국가)은, 극우집단이 다른 세력에 퍼붓는 저주(예컨대 친북 좌파)처럼 ‘배제의 논리’로만 작동할 수도 있다</u>. 냉정하고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시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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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361039.html]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361039.html"><font color="#333333">[왜냐면] 문제는 ‘반MB 연합’과 ‘반신자유주의 연합’의 결합이다</font></a></strong> (한겨레,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9-06-17 오후 09:33:25)<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겨레를 읽고</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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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월11일치 “‘87년 민주주의’ 후퇴인가 ‘97년 신자유주의’ 심화인가”라는 기사는 내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한국 민주주의와 87년체제’라는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87년체제’ 논쟁을 잘 소개해주었다.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 체제’의 의미는 있지만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인 ‘사회체제’라는 면에서는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완전히 바뀐 1997년 이후 시효가 다 되어 현재는 ‘97년체제’라는 주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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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당 기사가 논쟁을 정치전략과 연결시킨 부분은 문제가 있다. 기사는 ‘97년체제론’이 반신자유주의 연합론과, 87년체제론이 반이명박 연합과 연동된다고 분석했으나 이는 내 생각과 다르다. 기사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제 글이 구체적으로 분석했듯 97년체제론이 반신자유주의 연합론과 관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반이명박 연합은 87년체제가 아니라 08년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u>반이명박 연합은 크게 보아 첫째 이명박 정부 집권 후 나타난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 둘째 감세 등 극우적 경제정책, 셋째 냉전회귀적인 대북정책과 관련되어 있는 바, 이는 모두 87년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08년체제’의 정치체제와 관련된 것이고, 감세 같은 이명박 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 정책(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은 ‘08년체제’의 경제체제와 관련된 것</u>이다. 나아가 부분 체제인 분단 체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2000년체제가 ‘평화공존적 분단’이었다면 ‘08년체제’는 군사독재 시절의 ‘적대적 분단’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에 반대하는 것이 반이명박 연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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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진짜 중요한 문제는 ‘97년체제’냐, ‘08년체제’냐가 아니라, ‘97년체제’와 ‘08년체제’의 관계, 즉 반신자유주의 연합과 반이명박 연합의 관계</u>다. 전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좌익 소아병으로 문제가 많다. 반대로 후자만 강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확대,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명박을 위해 무조건 대동단결하자는 것은 역으로 우편향이다. 결국 반이명박 연합과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정세에 따라 적절히 결합해 나갈 수밖에 없다. <br />
<br />
일례로 민주당은 최근 재보궐 선거에서 한-미에프티에이 본부장 출신을 인천 부평을 후보로 출마시켰는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은 반이명박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엠비(MB)악법 반대투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과 관련된 반이명박 투쟁에서 이들이 민주당에 대해 “너희는 한-미에프티에이 본부장을 공천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니 같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당장 눈앞의 투쟁인 ‘08년체제’의 문제, 나아가 보다 심층적인 문제인 ‘97년체제’의 문제를 적절히 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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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9105842&Section=01]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9105842&Section=01"><font color="#333333">노무현, 바보 전태일과 '벌거벗은 용산'</font></a></strong> (프레시안,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2009-06-19 오전 11:45:58)<br />
<strong><font color="#193da9">[기고]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br />
</font></strong> <br />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이런저런 평가들,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술들도 제법 눈에 띕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 평가들 가운데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나누어 말하는 언술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서민적인 인간 노무현'과 '개혁가로서 정치인 노무현'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언술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며 논에서 모를 심는 인간 박정희'와 '민족과 국가의 진로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정치인 박정희'라는 언술을 오랜 동안 들어 왔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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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을 비교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언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추모라는 이름 아래 바로 그 '인간적인 것'이 '정치인 노무현'?혹은 '정치인 박정희'?의 역사적 과오와 오류들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걸러내는 망으로 기능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것이 미래의 삶에 대한 사유와 그것을 향한 크고 작은 실천을 봉쇄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br />
<br />
그래서 요사이에는 종종 분신한 전태일을 생각하곤 합니다. 노무현과 달리 이 가난한 노동자에 대한 평가들에서는 '인간 전태일'과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구분하는 언술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적인 것'은 개별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그 어떤 고유한 특성이 아닙니다. 애초 그런 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자들과 이런저런 모순과 갈등을 매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존재들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 관계들에는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들, 즉 정치들(운동들)이 이미 내재되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가 지니고 있다는 '인간적인 것들'이 그가 맺고 있는 이런저런 관계들, 따라서 그에 내재된 정치를 매개로 평가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br />
<br />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적인 것'으로 다가온 것이 다른 이들한테는 자신들의 희망과 꿈을 빼앗아간 '비인간적인 것'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느 분들에게는 파격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말투와 행동이 다른 분들에게는 무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민주적인 것'이 또 다른 이에게는 '독재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이분법은 인간을 역사적인 관계들의 밖으로 밀어내어 마치 '모두에게 준거로 적용될 수 있는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이 실존하는 것처럼 추상화시킨다는 점에서 현실을 가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br />
<br />
당연히 전태일에 대한 평가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은 노무현과 달리 전태일을 둘러싼 평가들에서는 이런저런 이견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를 죽인 구조적 폭력, 즉 자본과 권력은 다르게 평가하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민주주의, 그리고 요즘 성숙하지 못한 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곤 하는 '진보'를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을 죽음으로 추구한 사람, 노동자 전태일'로 기억될 뿐입니다. 아니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구조적 폭력 그 자체인 자본과 권력조차도 비록 표면적이겠으나 그의 삶에 대해 비아냥거리지는 못합니다.<br />
<br />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의 적대감 속에 감추어진 그 어떤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비밀은 이른바 '인간적인 전태일'과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의 모순에 직면하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던 이 노동자는, 그래서 '단 한 사람의 지식인 친구가 있었으면'하고 희망했던 바로 그 노동자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며 자신이 그 일부이자 전체라고 생각한 노동자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그리고 '운동적인(정치적인)' 모든 것을 다 하였기에 심지어 적대자인 자본과 권력조차도 그를 가벼이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 인식,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가 '사적인 것을 상징하는 인간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상징되는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여 대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자본과 권력의 이분법적 인식 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새삼스레 '인간적인', '운동적인(정치적인)'따위의 수사를 붙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전태일이 인간적인 이유는 그가 진정 역사적이고 정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그 무엇'이 따로 존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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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500만 명 이상이 추모한 '정치인 노무현'의 '인간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신자유주의개혁'의 도상에서 죽어간 노동자들, 농민들, 가난한 자들에게 그 권력은 분명 '살아 있는 권력'이었습니다. 지금 그 바통을 이어받아 파시즘화 경향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경찰국가 이명박 정권의 구조적 폭력 때문에 죽어나가고 있는 이들처럼, 그 당시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적자'라는 것을 내세우며 그 주검들에게 내뱉은 언술들을 깨끗이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어찌되었든 그 언술과 행태들이 '인간적인 것'이었나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인간 노무현'의 그 어떤 언술과 행동에 호감을 지니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속했던 정치세력이 집권 이전이나 이후에 가난한 대중에게 준 멸시, 억압과 삶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 그토록 '인간적인 것'이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br />
<br />
그래서 묻습니다. '인격화된 자본과 권력'에게 '인간적인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많은 경험들을 통해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들도 권력 이전에, 대통령 이전에, 정치인 이전에 인간들인데'라며 기대를 버리지 못하다가 삶 자체를 빼앗긴, 혹은 빼앗기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 '인간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거기에 대고 지금 '인간적인 정치인, 인간적인 대통령' 운운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만일 그것이 실존의 차원에서 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국 노무현 정권 시대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것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혹은 그 정권에 대한 객관적 비판을 무디게 하고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br />
<br />
그의 집권기에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느니,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느니 말하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정도로 여기고 탄압하더니 지금 와서 다시 그것이 '역진'하였다고 한탄하며 이미 폐기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고 말하는 것이 정말 '인간적인 것'인가요. 이른바 '인간적인 것'이 '그 어떤 상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언술과 행태야말로 정말 비인간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br />
<br />
그런데도 지금 그 '인간적인 것' 운운하는 것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이니 그 자체에 대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도 어찌됐든 '자신들의 인간적, 정치적 군주'를 잃은 그 애통한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기에, 그리고 최소한 실존적 죽음 앞에 명복을 비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다소 격한 감정을 토해대며 분노의 화살을 '진보'에게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정중히 말씀드린 바 있었습니다.<br />
<br />
그런데도 그에 그치지 않고 억지 논리와 해석, 천박한 지식으로 '진보'를 조롱하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에게 "협잡꾼"이라는 딱지마저 붙여 진보를 도매금으로 넘기니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자신들이 지지한 정치세력의 재집권 실패의 원인을 정치적 이념과 전망을 달리하는 진보의 탓으로까지 돌리는 그들의 언술을 접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며 오히려 이런저런 연민이 증폭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br />
<br />
그 이유는 이런 발상과 행태를 지닌 분들에게 둘러싸여 '반특권, 반권위, 반지역주의'를 모색하려 했으니 애초 그런 목표 자체가 (신)자유주의정권 아래에서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래도 노무현 정권이 하고자 했던 최소한의 개혁조차도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들이 기존의 그 특권, 그 권위, 그 지역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그 알량한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닐까라는, 장관과 고위 관료, 군 장성, 그리고 국영기업체 사장 등의 지역적, 학교별 안배를 따지면서 마치 그것이 지역주의의 완화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준거인 양 들이대다 자신들의 지분만 일정 정도만 보장되면 수탈, 억압받는 타인의 고통쯤은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처신하는 바로 그런 이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자로 기능할 수 없는 그 지점에, 따라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에 '인간적인 것'이라는 추상적인 언술을 가져다 놓고 자신들의 한계와 오류를 성찰하기보다 그것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그런 자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br />
<br />
진정 노무현정권의 지지자, 혹은 '이론적, 정신적 후원자'라면 오히려 그를 잘 보필하지 못한 반성과 함께 절필을 해도 부족할 판에 자신들의 천박한 붓끝을 놀려 딴에는 망자를 추모, 옹호한다고 하나 '망나니 춤'을 추어 정치적, 이념적 차원을 떠나 실존적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보에게까지 상처를 내고 있으니 이 어찌 '반인간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br />
<br />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인간적인 것'이란 진정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입니까. 저는 외려 용산에서 울리는 이름 없는 자들의 삶의 외침과 생동감 속에서 그것을 봅니다. 거기에서는 단순히 추모와 애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과 새로운 사회관계들의 단면을 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과 감성의 흐름, 그것의 나눔과 공유, 그리고 그와 결부된 이성적이고 창조적 행위들이 어우러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심지어 자본과 권력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마저도 순식간에 해학으로 전변시키는 그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의 단면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서는 각자의 사상과 이념, 종교를 넘어 '자기지배의 실현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자발적 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기에 그렇습니다.<br />
<br />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요, 거기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벌거벗은 주권자들'에 대한 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거대 건설자본이 그 곳에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육신의 일부인 부모, 자식의 생명조차 빼앗기고 그 불구덩이에서 살아 나온 또 다른 그들의 일부는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br />
<br />
그렇기에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그곳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그 무엇을 대가로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를 두고 싸우는 '주류와 비주류'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권력'과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하는 지금 '죽어 있는 권력'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아니 끼고 싶어 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글로벌 건설자본과 결탁한 파시스트적 경찰국가가 내몬 '벌거벗은 주권자들'의 삶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그 곳에 관심을 가지는, 아니 자기 자신을 벌거벗은 주권자라고 생각하기에 그로부터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들 또한 저 위임권력들을 통제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간 그들에 의해 자꾸만 죽음과 삶의 경계로 내몰리는 그런 허울뿐인 '벌거벗은 주권자'는 아닌지요.<br />
<br />
사정이 이런데 그런 그들을 향해 권력과 자본이, 그 어떤 이들이 대중을 선동하는 진보, 좌파, 심지어 '빨갱이'라고 역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히려 사회구성원의 최소한의 삶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가 바로 그들이 하고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억압하고 탄압하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부당한 사회관계들, 권력관계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면, 그것을 무슨 수로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비난이 무서워 수탈, 억압, 차별,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약탈당하는 자연과 생태에 눈 감는다면, 그것을 어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자, 진보, 좌파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찌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제2의 노무현'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제들을 진정 자기 것으로 삼은 너무도 아름다운, 너무도 인간적인 청년 전태일이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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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넘어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큼 '인간적인 것'이, 따라서 '정치적인 것'이 어디에 있나요.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것은 반인간, 반정치입니다. 아직도 150일 이상을 병원의 차가운 냉동고에 보관된 용산의 주검들, 삶의 기로에 선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과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 이미 찢기기 시작하여 신음하는 4대강과 같은 자연과 생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편에 많은 이들의 추모 속에 국민장을 마친 한 시대의 정치지도자이자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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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380]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380"><font color="#333333">다시 ‘독재’를 생각한다</font></a></strong> (레디앙, 2009년 06월 22일 (월) 11:25:19 김원 /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br />
<strong><font color="#193da9">[정치사회비평] 김대중-노무현 때도 비슷…추모 머문 대안의 후퇴</font></stron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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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사망 이후 민주주의, 독재 등 말이 등장하고 있다. '담론' 차원에서. 담론이라는 면에서 독재나 민주주의가 세력관계를 반영한 적이 오래되었는데, 좀 새삼스럽다. 그럼 '독재'란 무엇일까? 담론 수준에서 독재는 '군부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이 아닐까? 요즘 보수정당이나 일부에서 자주 쓰는 '소통의 부재'란 아마도 시민사회와 반대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다수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는 시민사회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지 못하는 '이익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는 곧바로 '정당정치의 미발전'으로 이어진다. 예전 말로 치자면, 대의제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br />
<br />
하지만, 되돌이켜 보면 이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질문하면 그 역시 아니다. 포퓰리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2000년대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고, 시민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br />
<br />
그렇다면, 왜 독재나 소통 결여란 문제가 제기될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자. MB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사용이 잦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강력하다 등이 이를 보여주는 주된 현상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 정권에도 사회운동 등에 대한 탄압은 존재했고, 억압적 국가기구도 작동했다. 불안정노동, 구조조정, 노사관계로드맵 등을 기억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을 뿐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기구 작동이 이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독재라고 부르는 근거는 아니다. <br />
<br />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u>독재를 부르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담론 수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좁혀진다</u>. 다시 1987년 수준의 민주주의로 회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라는 담론을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보면 모든 자본주의 국가와 정권은 독재이다. 다만 정권 형태의 차원에서 '누가 집권'했냐에 따라, 반동적 부르주아지냐 아니면 자유 부르주아지냐에 따라 그 형태상 차별성이 나타날 뿐이다. <br />
<br />
이런 엄밀한 논의를 떠나서, <u>담론 수준에서 독재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대중들에게 외치면,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그 민주주의는 87년 제8차 개헌에서 규정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즉 민주주의의 계급성이 아주 쉽게 망각된다</u>는 것이다. 지금 운위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의 정치적 외피로서 민주주의이다. 그 외피에 상처를 내는 반동적 부르주아지들의 지배에 대항하자는 것이 현재 시점이다. <br />
<br />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내가 해버린 하나의 이유는 <u>'독재'란 담론이 지닌 자기 한계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용하더라도 써야 한다</u>는 의미이다. <u>그것이 인지되지 않았을 때, 민주주의 투쟁은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u>이다. <br />
<br />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억압적 국가기구', 이른바 공권력의 문제다. 일단 전제해야 하는 것은 현재 국가기구의 작동은 80년대적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른바 국가-자본관계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전일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의 동원은 과대성장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이 아니다. 오히려 <u>자본은 자신의 장기적 정치이익 - 이른바 경제위기 극복이나 사회안정 등 - 을 위하여 공권력의 노골적인 사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총자본과 국가간 이해의 수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MB정권은 자본분파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공권력을 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u>이다. <br />
<br />
다시 1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국가=억압', '시민사회=헤게모니'라는 얼토당치 않은 말을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그람시 소개서 중에 그런 해석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u>자본주의 국가는 늘 억압적이며, 최종 순간에 자본(총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서 강제력을 준비하고 예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며 억압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작동 메커니즘</u>이다. 따라서 <u>현재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은 '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상황</u>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br />
<br />
시국선언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독재에 맞서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는 이념적인 면에서나, 조직적인 면에서 분화가 공고화된 상태이다. 지금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내 MB정권의 공권력의 과잉 사용과 시민사회내 이익매개 기능의 단절을 비판하며 나온 - 모두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 반대연합이란 의미에서 -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u>독재와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진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u>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안이 퇴영적인 만큼 설득력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넓게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br />
<br />
혹자는 87년 6월 이전을 회고하며, '좀 더 대중적인 슬로건'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내 존재하는 대항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u>추모정국에서 형성된 민주주의-독재 전선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현재 전선이 가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에 그러하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u>. 역시 이 점에서 나는 죽음으로 형성된 추모정국의 생명력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대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죽음과 추모에서 한 발 떨어져서 추모 주위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시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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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31164905&section=03]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31164905&section=03"><font color="#333333">김동춘 "누가, 왜 화해와 용서를 말하나"</font></a></strong>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2009-06-03 오전 9:51:19)<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①]<br />
</font></strong> <br />
<font color="#aa1a19">"(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화해와 용서를 내세운 신문이 몇몇 있다. 화해, 용서,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피해자냐, 가해자냐… 이것이 중요하다. 또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가 중요하다."<br />
</font> <br />
지난달 2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학교'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다수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퇴임 후 1년6개월도 되기 전에 자살했다는 것"이라며 "순수하게 개인적 이유가 아니라 검찰의 정치성 짙은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이, 왜, 어떤 상황이 국민의 대표였던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우리 국민은 질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br />
<br />
또 김 교수는 "이는 김구, 여운형 암살부터 시작됐던 계속되어온 역사의 비극"이라며 "왜 우리나라 역사는 이렇게 비극적인가, 왜 한국 사회의 한 시대는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낙인찍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적대시해서 죽게 만드는 우리 사회 체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성찰해봐야 한다"며 "한국이 처한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역시 한국 사회의 전쟁, 그리고 군사주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br />
<br />
<font color="#aa1a19">"현재 남·북한은 사실상의 전쟁 중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도 사실 전쟁 상황이었던 걸 고려하면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계속 전쟁 상황이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했던 것이다."</font><br />
<br />
김동춘 교수는 "현재 한국을 이끄는 주류 세력의 정신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전쟁만큼 중요한 변수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짧은 10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국민들의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더라도 무사할 수 있던 사회가 아니었다"며 "전쟁 체제는 기본적으로 만성화되고 구조화된 폭력의 체제였고, 그 체제에서 지배 질서의 기둥은 경찰과 군대였다"고 분석했다.<br />
<br />
<font color="#aa1a19">"경찰과 군대는 폭력기구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전쟁 체제다. 국가 예산 중 상당 부분이 군대에 지출되고, 국민을 처벌하고 감시하여 그들의 복종을 유도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전쟁 체제라고 본다. 또 국회와 국민의 감시와 통제 밖에 있는 비밀 국가조직이 무소불휘의 힘을 발휘하는 사회 역시 전쟁 체제다."</font><br />
<br />
김 교수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1961년에 설립된 한국의 국가정보원,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미국의 FBI, 일본에 존재했던 '특별고등경찰' 등을 예로 들며 "비밀조직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적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권력자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국민을 사찰, 테러, 감시를 묵인하는 체제가 전쟁 체제"라며 "그 극단적인 형태가 학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뿐 아니라 냉전에 있었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br />
<br />
김 교수는 "당시의 학살이 멀리 떨어지고 야만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과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 우리 사회가 한 걸음만 더 떼면 저렇게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즉 적과 나의 이분법이라는 광기가 발동하면 그렇게 된다"며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상대방을 덧칠하고 좌우 양쪽에서 서로를 죽이는 것은 무서운 행동이지만, 준 전쟁 상황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 반복돼 왔다"고 덧붙였다.<br />
<br />
김동춘 교수는 "국가보안법 등을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사찰 체제는 지난 60년 간 해체되지 않았다"며 "조용한 형태의 사실상의 학살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권력의 이름을 빌린 합법적 폭력은 언제나 법의 경계를 넘어서 법 영역 밖에서 이뤄져 왔다"며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공권력의 불법성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고문과 불법 감금과 학살이 자행되던 그때와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font color="#aa1a19">"'빨갱이 죽이는 것이 뭐가 죄가 돼?' 이런 생각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졌는지 질문해보자. 정치적 반대 세력, 위험한 이의 목숨을 뺏는 것 자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와 지배 구조가 어디에서 왔는가?"</font><br />
<br />
이어 김동춘 교수는 "이것은 곧 한국 지배세력의 문제와 연동돼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과 군부, 그리고 경찰이 가지고 있는 좌익 공포증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일종의 가해 매카니즘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물론 회색지대에 있는 세력까지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보수 세력의 태도는 이들이 갖고 있는 태생적 콤플렉스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친일 콤플렉스가 보수 세력 심성의 기원을 이룬다"며 "그 세대는 자연적으로 없어졌지만, 문제는 이 콤플렉스가 변형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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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친일 세력 이후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자로 등장했다. 국민을 설득할 어떤 정치적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권력이 주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미군이 이들을 용인하면서 계속 권력을 쥐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자기들처럼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이 아닌 사람, 즉 도덕성을 무기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저항하거나 대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여기서 지배세력에게 관용과 타협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사죄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거꾸로가 된다. 자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깨끗한 사람, 바른 말 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이들을 모두 빨갱이로 모는 것, 이것이 우익 콤플렉스의 기원이다."</font><br />
<br />
따라서 김동춘 교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포용력이 좁은 이유는 자신의 정치 도덕성 기반이 그만큼 좁다는 걸 의미한다"며 "흐르는 위기의식과 공포감으로 구성된 우리 사회의 만성적인 콤플렉스가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가져오게 했던 이유가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 했던 시기는 우리 사회에서 지난 10년 정도로 아주 짧았다"며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과거 정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런 식의 정치 문화와 지배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은 사실 국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민들이 고발하지 않거나, 굴복하거나, 침묵하거나, 항복하거나, 도피하는 까닭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흔히 전쟁이나 폭력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학하면서 자기 파괴로 가는 과정과 같다"고 지적했다.<br />
<br />
김 교수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전쟁의 트라우마와 지배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고, 조금씩 변해왔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배 세력이 관성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단죄하고, 이를 통한 용서와 화해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춘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같은 비극적 일을 보면서 너무 생생하게 우리의 현대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왜 이런 일이 계속 나타나는지 우리는 곰곰히 돌이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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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09100829&Section=03]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09100829&Section=03"><font color="#333333">김동춘 "노조 운동하면 감옥 갈 각오하는 '민주 국가'?"</font></a></strong>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11 오전 6:36:29)<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②]<br />
</font></strong> <br />
<font color="#aa1a19">"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됐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얼마나 민주화가 이뤄졌나. 노조 운동 열심히 하고 감옥 가지 않을 수 있는가. 기업 측의 손해배상소송 청구</font><font color="#aa1a19">를 당해서 노동간부가 파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부당노동 행위를 한 사용자가 처벌될 수 있는가."<br />
<br />
</font>김동춘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됐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당선됐다"며 "이들의 당선에는 어느 정도 노동세력의 힘이 작용했지만 결국 6월 항쟁의 성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더 거시적으로 얘기하면 1987년 이후 민주화가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 세력은 시민운동과 민주노총 운동, 혹은 진보정당, 혹은 이들을 지지하는 소극적 지지세력 정도였다"고 말했다.<br />
<br />
김동춘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 역시 단시 신자유주의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쇄시킬 수 없었던 내적 역량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br />
<br />
<font color="#aa1a19">"<u>한국의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외생적 형태로 진행됐다. 자본가도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다</u>." </font>이날 '계급·계층의 변화와 사회운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부르주아와 지배 세력은 태생의 한계가 있었다"며 "또 국가주도의 성장정책과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자본은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br />
<br />
김동춘 교수는 "<u>국가의 후원이란 면세 조치, 수출 특혜 등 각종 혜택으로 자본이 외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것과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차단하는 것과 두 가지로 집중</u>되었다"며 "이 두 가지로 초기 한국 자본이 성장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은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요청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며 "또 초기 자본축적 과정에서 권력과의 결탁, 부동산 투기, 탈세, 노동자 탄압 등 온갖 부도덕한 과정을 거쳐서 부를 축적한 도덕적 취약성이 있으며 따라서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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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성을 두고 "<u>기본적으로 2차대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작품</u>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font color="#aa1a19">"미·일·한 자본주의가 가진 특성이 있다. 우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노동 배제 체제다. 미국 자본주의는 노동 운동과의 전쟁의 역사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어용노조 밖에 없다. 한국 노조는 공식적으로 허용돼 있지만, 노조 운동은 감옥행을 의미했다." </font>그는 "또 다른 공통점은 진보정당이 없는 점, 사회 복지나 국가 복지라는 개념이 없는 점, 계급적 연대 대신 교육을 통해 가족이나 개인단위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끊임없이 성취를 유도하는 사회라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 사회는 이런 특징이 극우 반공과 함께 굴러가는 정치경제 체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동춘 교수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며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안일한 해석이며, "개발독재가 변형된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u>남미와 한국처럼 개발독재형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간 나라는 사실상 자유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u>"며 "이는 어느 정도 복지 체제가 남아있는 서유럽 등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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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8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지구화"라며 "특히 <u>서비스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노동유연화와 연결되면서 비정규직의 숫자가 50%대까지 늘었다</u>"고 말했다. 그는 "<u>세 번째 특징은 주주자본주의"라며 "국민의 다수가 주식 투자자가 되면 이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주주로 생각하게 되고, 노조의 파업에 반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u>"고 설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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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u>'비대칭적 계급구조화'</u>를 들었다. 그는 <u>"지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온 반면 사회적 약자, 소수자, 노동자는 계급으로 뭉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했다</u>"고 설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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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1992년이후의 총선과 대선을 분석해보면 소위 '강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투표행태를 '여촌야도'로 설명했지만, 1992년을 계기로 서울에서도 부유한 지역에서는 일관되게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font><font color="#aa1a19">또 계급구조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부가 세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결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벌가는 재벌가 끼리만 결혼하고, 명문대 입학자의 출신 배경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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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는 "반대로 노동 세력은 현실정치에서 하나의 세력이나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했다"면서 지역주의와 낮은 계급의식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친노동 후보가 나오더라도 현실 정치의 한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힘이 있는 쪽을 지지한다"며, 민주당의 애매한 노선도 노동세력의 취약성과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세력화가 되지 않는 노동 운동은 비정규직, 서비스화, 위로부터의 노동 탄압과 맞물리면서 조직률이 떨어졌다"며 "민주노동당이 2004년 10석을 얻은 것 역시 노동 운동의 힘보다는 선거제도의 변화 즉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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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민주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어진 거대한 추모 행렬이다. 김동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18대 총선 결과 온 국민이 '경제 동물'이 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조문의 성격"이라며 그들은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애통해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슬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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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많이 가진 이들은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 많이 슬퍼한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많이 힘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과 자신의 처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 통칭 서민이라 불리는 약자, 당하고 산 사람들, 차별 받았던 이들이 더 많이 슬퍼했다고 본다."</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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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는 <u>"더 많이 슬퍼한 바로 그 사람들이 정말 단결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누가 자기를 대변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할 사람들"</u>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들 대다수는 노조활동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시민단체는 잘난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이라며 "<u>조문한 수백~수천 만 명의 에너지를 어떻게 현실적 동력으로 전환시킬지는 결국 진보정당, 시민단체, 노조에 던져진 숙제</u>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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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6163813&Section=03]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16163813&Section=03"><font color="#333333">손호철 "'진짜' 노무현 기념 사업을 하고 싶다면…"</font></a></strong>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17 오전 8:23:23)<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③]<br />
</font></strong> <br />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일은 어떤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념 사업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 학교' 강연에서 손호철 교수는 "문제는 노무현 정신"이라며 "질 줄 알면서도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부딪혔던 용기를 가진 제2, 제3의 바보 노무현을 양산하는 게 그 첫 번째"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가 꼽은 두 번째 노무현 정신이 있었다. 바로 지역주의 극복이다. 이는 이날 강연의 주제이기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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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한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1987년까지는 민주-반민주가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불행히도 지역주의가 전면화됐다. 민주-반민주 구도는 약화됐지만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졌고, 지역주의의 압도적 우위가 계속됐다. 거기에다 부상하고 있지만 자리잡지 못한 진보-보수 구도가 결합된 상태, 이것이 한국 정치다."</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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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손호철 교수는 1987년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을 꺼내며 "지역주의에서 양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로써 민주화가 5년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둘이 연합해서 민주화 운동을 해도 될까말까 했는데, 한 김이 군사세력과 연합해서 다른 한 김을 죽이는 3당 합당과 DJP연합이 나왔고, 결국 계속 캐스팅보드는 군사 세력이었다"고 말했다.<br />
<br />
손 교수는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호남-영남의 대결이었다는 인식"이라며 "부마 항쟁만 보더라도 TK와 PK는 전혀 다른 세력이었고, 부산-경남과 호남은 저항적 지역주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양김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TK 대 PK-호남의 대결이 치뤄졌을 것"이라고 "노무현의 비극은 이 속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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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1987년 3김이 떨어져나오면서 4개의 지역당 구도가 나왔다.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민정당, JP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이 두 개는 군사독재세력이었다. 그리고 YS와 DJ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을 들고 나왔다. 호남과 PK는 저항적 지역주의였다. 그 지역구도 때문에 1988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일어나게 됐고, 노태우는 정계 개편을 해서 야당과의 연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원래 생각과 다르게 3당 통합이 이뤄졌다. 이는 결국 군사독재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합이면서 지역 연합이었다. 호남을 소외시킨 나쁜 연합이었다."</font><br />
<br />
손호철 교수는 "이때 YS를 따르던 정치인 중 그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노무현이 있었다"며 "또 제3의 길을 원하던 유권자들은 무주공산이 됐는데, 이들은 비호남 야성 유권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노(反盧)와 친노(親盧)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며 "제3후보의 가능성이 항상 남아있었고, 이는 1992년 정주영 이후 이인제, 노무현, 김두관, 유시민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 유권자들이 지역구조의 우위 아래 민주-반민주를 선택했다는 점"이라며 "거기에서 열린우리당의 비극 등 모든 갈등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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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떠나고 부산의 정치인 이기택이 민주당을 이어받아 지도부를 했다. 당시 민주당의 탈지역화가 어느 정도 일어났다. 그러나 1995년 지자체 선거에서 김대중이 나오면서 탈지역주의는 깨졌고, 노무현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후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나올 때 또 안 따라간 이들이 노무현을 비롯한 몇몇 개혁후보였다. 노무현의 정신, 3김정치의 극복과 지역주의의 극복을 내건 그의 첫 실험이 이것이었다."</font><br />
<br />
손호철 교수는 "1997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과 대립했던 김대중 진영으로 갔고,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대선에서 당선됐다"며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은 그에게 버릴 수 없는 과제였고, 열린우리당을 통해 시도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아무리 지역주의를 욕해도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갈등구조가 생기지 않는한 이는 영원할 것"이라며 "2004년에는 탄핵과 반탄핵이라는 중요한 이슈가 있었고, 1987년 이전엔 민주-반민주라는 압도적인 구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는 초계급적 지역 연합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깰 수 있는 방법은 거꾸로 가는 것, 바로 초지역적 계급 연합"이라고 말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걸인'부터 '재벌'까지 자기 지역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계급적 지역연합이라면 지역을 넘어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지역적 계급연합이다.<br />
<br />
그는 "진보 정당이 크고, 한국 정치가 진보 정치로 가는 것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는 방법은 진보정당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라고 덧붙였다. <font color="#aa1a19">"노 전 대통령이 '이제는 진보 정당을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딜레마는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강력한 해답이 진보정당인데, 다시 가장 커다란 장애는 지역주의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평균 3%를 얻었는데, 가장 득표율 낮은데가 대구가 아니라 광주였다. 그런 지역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한국 정치의 화두다."</fon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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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23180554&section=01]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23180554&section=01"><font color="#333333">손호철 "아직도 진보·보수 타령인가?"</font></a></strong>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24 오전 7:54:31)<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④]<br />
</font></strong> <br />
<font color="#aa1a19">"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font>지난 1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 민주주의 학교' 강연을 맡은 손호철 교수는 "한국 정치를 볼 때 진보, 보수, 개혁의 의미를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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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a1a19">"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 핵심 화두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회과학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혼란에 부딪혔다. 특히 한국에서는 두 가지 개혁을 뭉뚱그려 보고 있다. 민주 개혁과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것이다."</font><br />
<br />
우선 손호철 교수는 "개혁은 부단히 재생산되고 다시 등장한다"며 '개혁'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의 역동성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진보 대 (흔히 개혁 세력이라 부르는) 자유주의적 보수 내지 개혁적 보수 대 (흔히 보수라 부르는) 냉전적 보수의 삼분구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교수는 "민주주의 전선과 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두 개의 개혁, 두 개의 전선이 있다는 것에 주의하라"며 보수 세력으로부터 '좌파'라고 공격을 받았던, 또는 '진보' 정권이었다고 일컬어졌던 노무현 정부가 진행했던 개혁의 성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문했다.<br />
<br />
손 교수는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의 역풍을 맞으면서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자유주의 세력이 과반수를 차지했다"며 "그 여세를 몰아 노무현 정부는 언론법, 국가보안법 폐지 등 자유권에 해당하는 권한을 확대하는 개혁 법안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오히려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을 개악하는 등 자유권 확대 측면에서 많이 기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반면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표적 사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며 "그때 지지층과 열린우리당 내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난다. 사실 '한나라당과 우리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정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예는 김근태 의원이 당 대표였던 시절인데 사실상 한나라당과 연정을 해서 비정규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br />
<br />
손호철 교수는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개혁이었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진보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며 "극우로 왜곡됐던 한국의 보수를 '글로벌 스탠더드'의 보수, 즉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로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font color="#aa1a19">"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면 진보인가? 자유민주주의는 틀린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회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가 된다. 국보법 폐지의 찬반 여부는 진보-보수가 아닌 보수-수구, 정상적 보수-극우의 갈림길이었다."</font><br />
<br />
또 손 교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경제 규제를 했으니까 좌파 정부였다"는 주장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font color="#aa1a19">"그렇다면 최고 좌파는 박정희가 아닌가? 햇볕정책 때문에 좌파 정부였다? 그 정책은 페리보고서를 베낀 것이었다. 복지 정책? 김대중과 노무현 복지 정책의 수준은 유럽과 미국 신자유주의의 5분의 1 정도였다. 두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세력이었다." </font>손호철 교수는 "이 둘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은 좋은데 국보법은 폐지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이다. 앞으로 개혁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게 민주 개혁인지, 신자유주의적 개혁인지 분류해보라"고 지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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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손호철 교수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 사태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짓밟고 싼 값에 대우자동차를 GM에 팔았다"며 "국부를 거덜내는 방식으로 팔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그 장본인인 민주당이 대우를 살리겠다며 폼을 잡고 나오고 있다"고 질타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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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경제위기를 봤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이 잘못됐었다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는데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가는 건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뉴민주당 플랜을 들고 나온 민주당도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역사성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그때의 국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br />
<br />
손호철 교수는 "결국 경제를 살렸지만, 결과로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원조 무능은 한나라당인데도 그런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대다수는 경제위기가 아직 극복되지 않아서 못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못 사는 이유는 경제 위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극복됐기 때문"이라며 "이제 민생의 어려움은 경제위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원한 우리의 미래가 됐다"고 전망했다. <font color="#aa1a19">"자유주의 10년, 결과는 민생 경제의 실패와 양극화가 됐다. 중산층과 서민 정부 표방하고 나섰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반서민적 정권이었다. 전두환, 박정희보다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결국 박정희 향수를 불러오지 않았나."</font><br />
<br />
손 교수는 "그런데 이명박의 중요한 공이 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가장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반서민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씻어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민주당을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이 민주 개혁의 발목을 잡은 셈"이라며 "민주당으로서는 민주 개혁만이 한나라당과 구별한 자신의 정체성인데도, 신자유주의의 개혁에 발목을 잡히는 딜레마에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손호철 교수는 "결국 신자유주의 업보를 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어려움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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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02085711&section=03]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02085711&section=03">손호철 "그들은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a></strong>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 2009-07-03 오전 8:49:37)<br />
<strong><font color="#193da9">[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⑤·끝]<br />
</font></strong> <br />
<font color="#aa1a19">"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 </font>정권은 더욱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 있다. 서울광장, 광화문, 쌍용차 평택 공장, 용산 참사 현장 등 곳곳에서 경찰은 '철통 경비'를 서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와 기자회견을 막고 참가자를 연행한다. 지하철과 버스정류장 곳곳이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통제된다. 정부 정책 홍보를 위해서라며 극장에 '대한 늬우스'가 상영된다.<br />
<br />
그러는 사이, 언젠가부터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다시 지면 위로 등장했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두고 "파시즘 초기"라고 일갈했다. 지난 6월 29일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진행한 강연의 주제도 바로 파시즘이었다.<br />
<b><br />
</b>손호철 교수는 우선 파시즘 논쟁에 앞서 파시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파시즘 논쟁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정치 선동적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코드, 선정적 용어로서의 파시즘이 아니라면 파시즘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정의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독일과 이탈리아를 파시즘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손호철 교수는 "히틀러 동원에 움직이는 대중들을 연상하듯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동원, 그리고 파시스트당이 전형적인 파시즘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 번째 시각은 파시즘이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1920~30년대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난 광범위한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며 "파시즘에서 대중적 지지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며 출현 과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따라서 <u>현재 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의 여부를 따질 때 억압성의 전면화냐, 또는 광범위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기반하느냐라는 두 개의 이슈가 개입돼 있다</u>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br />
<br />
그는 "그러나 <u>파시즘의 기본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여부가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재편이 있었느냐의 문제</u>라고 본다"며 "이승만 정권을 두고 파시즘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권이 덜 억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독점 자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시즘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며 "결국 경제 공황 속에서 자유주의 정권들의 경제 위기 극복 능력이 무능했고, 그것에 따라서 첨예한 계급 갈등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비슷하다. <u>민생의 위기와 양극화가 바로 파시즘이 나오게 된 계기</u>라고 볼 수 있다"며 "자유주의 정권의 무능, 사회적 갈등의 첨예화라는 점에서 우리도 유사하다"고 설명했다.<br />
<br />
손호철 교수는 "MB 정부는 현재까지 두 시기로 구분될 것 같다"며 "집권 이후 2008년 광복절까지가 촛불 시위 방어에 급급했던 수세기라면 광우병 집회 이후 공세로 전환됐고,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를 핑계로 이같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기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u>이명박 정부는 우파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토건 국가</u>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br />
<br />
그는 "<u>파시즘 체제가 나오게 되는 기본적 틀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라며 "대공황을 가져온 것은 시장이었고, 미국이 그 위기를 뉴딜을 통해 해결했다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억압적 국가 개입을 통해 했던 것</u>"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것과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이뤄지고 있다"며 "금산 자본 분리 완화, 비정규직 법안 추가 개악, 최저임금제 부분적 해제, 부유층 감세, 삽질 경기 부양책 등 기본적으로 친자본주의고 반동적인 경향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국가 개입이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위기를 해결할 때, 부유층에 증세하고 빈곤층에 감세하는 부의 이전을 하는 오바마적 해법이 있다면 MB식 해법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u>부자를 감세하고, 재정 적자가 나니까 부가가치세를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 부가 더욱 더 부유층에 이전되게 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다양한 저항을 억압적 방식으로 누르는 신파시즘으로 가는게</u> 아닐까"라고 덧붙였다.<br />
<br />
손호철 교수는 "또한 <u>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게 되면 민중의 저항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누르고 진행하기 위해 경찰국가의 특성</u>이 나타난다"며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그래서 경찰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항상 레이건, 부시 정부가 작은 국가를 얘기하면서도 법과 질서, 경찰 증원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결국 <u>정부가 민주 정부이냐에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펴게 되면 경찰 국가 경향이 내재돼 있다</u>"며 "그런데 MB 정부는 플러스 알파"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모두 후퇴하고 있다"며 "더군다나 MB악법들이 통과될 경우 이는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br />
<br />
그는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있다"며 "최근 이뤄진 검찰청장, 국세청장 임명이 제왕적 대통령 부활을 또 다시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예외적인 파시즘 국가라고 보기에는 헌정 질서의 중단이나 의회 민주주의적 틀의 철폐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아직 없다"며 "나는 이것이 <u>야금야금 갉아먹는 것 같은 '크리핑 파시즘(creeping fascism)의 경향</u>으로 본다"고 주장했다.<br />
<br />
손호철 교수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MB 정권이 끝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또 우파 신자유주의도 꼭 MB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국적 특수성과 관련해 봐야할 문제"라며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인구가 많은 영남에 있다는 지역주의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50대 노령층과 근본주의적 기독교층도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br />
<br />
손 교수는 "그러나 낙관적 요소도 있다"며 "한국의 경우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한 것이 아니라 최장집 교수의 표현대로 일종의 열망·실망의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즉 현 국면은 국민의 반동화가 아니라 실망의 사이클 때문이라고 본다"며 "10년쯤 뒤에는 다시 냉전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국민의 재진보화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손호철 교수는 "또한 25~30%의 무당파가 계속 침묵하거나 한나라당을 지지할 경우 MB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도 70~75%가 지지 내지 침묵을 하는 것이 돼 '파시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25~30%를 어떻게 끌어내고 조직할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단순히 상층부 연합이 아니라 오바마처럼 풀뿌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br />
<br />
그는 "문제는 파시즘이 뭐냐에 대한 훈고학적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u>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이에 대해 다수가 침묵한다면 이미 파쇼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u>"고 설명했다. 그는 "<u>체제로서의 파시즘은 아니더라도. 결국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u>라고 본다"고 덧붙였다.<!--/DCM_BODY-->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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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748,'/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48+%22%EB%AF%BC%EC%A3%BC%EC%A3%BC%EC%9D%98%2C%20%EC%B4%9B%EB%B6%88-%EB%B3%B5%EC%A7%80%EC%97%B0%ED%95%A9%2C%20%ED%8C%8C%EC%8B%9C%EC%A6%98...%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48&t=%EB%AF%BC%EC%A3%BC%EC%A3%BC%EC%9D%98%2C%20%EC%B4%9B%EB%B6%88-%EB%B3%B5%EC%A7%80%EC%97%B0%ED%95%A9%2C%20%ED%8C%8C%EC%8B%9C%EC%A6%98..."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748&title=%EB%AF%BC%EC%A3%BC%EC%A3%BC%EC%9D%98%2C%20%EC%B4%9B%EB%B6%88-%EB%B3%B5%EC%A7%80%EC%97%B0%ED%95%A9%2C%20%ED%8C%8C%EC%8B%9C%EC%A6%98...','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748?commentInput=true#entry748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보수주의와 한국정치’ 학술대회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7662008-09-18T11:13:21+09:002008-09-18T11:13:21+09:00<!--FCKeditor--><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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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270115">"한국 보수, 이념적 체계화 과정 필요"</a></strong>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2008-09-17 11:39)<br />
<span style="color: #000080"><strong>양승태 교수 한국정치사상학회 학술대회서 주장</strong></span><br />
<br />
한국의 보수세력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단계에서 벗어나 보수이념을 체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양승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주의와 한국정치-무엇을 보수할 것인가?'를 주제로 20일 서강대에서 열리는 한국정치사상학회 학술대회에 앞서 17일 미리 배포한 기조연설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br />
<br />
양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 보수주의는 사상적으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씨앗단계'다. 전쟁으로 촉발된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과 '낙인찍기'가 적어도 6공화국 이전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에 따라 경쟁을 통한 이념적 발전이라는 측면을 보수세력에게 기대하기 힘들었다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그나마 진보와의 대결을 통해 보수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br />
<br />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양 교수는 뉴라이트운동과 건국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역사의 긍정적 부분을 부각하려는 '역사바로세우기' 노력 속에 보수주의의 현실 좌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예로 뉴라이트운동의 중심이념인 '공동체 자유주의'가 "정치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 토대를 두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대응키 위해 급조한 정치적, 수사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다시말해 공동체 자유주의는 인권, 개인의 존엄과 자유, 시장경제, 공동체적 연대감 등 온갖 좋은 '메뉴'만을 표방하고 있는데 이는 개념간 상호 상충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진보세력도 거부하는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이념이 아니라는 얘기다.<br />
<br />
또 역사바로세우기와 관련, "한국의 산업화를 이룬 인물들의 업적에 수반하는 부패나 공인의식의 결여 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한 설득력도 없고 보수주의의 이념화에도 기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주의는 현재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이해 및 보수해야 할 가치의 이념적 근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지킬 만한 것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이념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br />
<br />
최치원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도 '한국에서 보수주의적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발제문을 통해 "한국 보수세력의 세계관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보수세력은 그간 정치적 상황을 성장의 적극적 기회로 활용해 이득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br />
<br />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혁적 민주정부 출범 이후(1998) 한국의 보수주의'라는 논문에서 "뉴라이트운동 등으로 쇄신한 한국의 보수세력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참여의 확산과 사회경제적 평등의 심화를 거부하고 단지 신자유주의의 원리에 따른 최소한의 민주주의, 곧 슘페터적인 엘리트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br />
<br />
이밖에 김비환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와 김동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각각 '영국 보수주의 형성과 전개'와 '독일 바이마르 시기의 '보수혁명' 담론에 나타난 공동체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통해 서구 보수주의 역사를 개괄했고, 장인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현대 일본의 보수주의'를 통해 보수세력의 심리와 논리를 들여다봤다.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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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10883.html">“뉴라이트 이념, 급조한 정치적 수사일뿐”</a></strong> (한겨레, 안수찬 기자, 2008-09-18 오후 02:09:37)<br />
<span style="color: #000080"><strong>‘보수주의와 한국정치’ 학술대회</strong></span> <br />
<br />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21세기 초엽 한국 보수주의의 약진은 의미심장하다. 시민사회를 일구어 마침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이에 대한 학계의 논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데, 뉴라이트가 그 이름처럼 정말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친일·반공·독재의 과거 수구세력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인지의 문제다.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이를 따져보는 자리가 20일 낮 12시30분부터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열린다. 한국정치사상학회가 ‘보수주의와 한국정치-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를 주제로 여는 학술대회다. <br />
<br />
<strong>‘공동체 자유주의’는 기존 주장을 재구성한 것<br />
시민사회 조직·동원엔 성공…정체성모색 실패</strong> <br />
<br />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발표문에서 민주정부 이후 한국 보수주의 세력의 변화 양상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분단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민주정부가 내건 ‘탈냉전·민주화·다원화’의 가치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반공주의의 약화와 반미 감정의 확산으로 비쳤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의 자기 쇄신의 출발점이다. <br />
<br />
쇄신의 노력은 두 갈래로 나타났는데, 보수 행동주의와 뉴라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3년 ‘반핵반김 국민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중집회를 통해 전통적 보수집단의 ‘행동주의’가 돌출했다. 강 교수가 보기에 이런 보수 행동주의는 “민주화 이후 발생한 다양한 시민운동과 (진보 진영의) 행동주의를 모방한 것”이다. <br />
<br />
보수 행동주의를 주도한 것은 전통적 보수세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이후 ‘뉴라이트’가 출현했다. 강 교수는 이를 “본격적인 보수주의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뉴라이트의 기치를 내건 이른바 ‘전향 386’들이 “보수언론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단골 논객으로 초대받았고, 보수언론을 대신하여 보수여론을 조성하고 확산하는 선봉장으로 급부상했다”고 분석했다. <br />
<br />
뉴라이트가 펼친 담론 공세의 핵심은 ‘포퓰리즘’에 대한 것이었다는 게 강 교수의 생각이다. 전통적 보수세력이 내걸었던 ‘빨갱이’라는 이념 공세와 비교할 만한 이 담론은 “더 이상의 민주화는 필요하지 않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는 타락한 민주주의인 중우정치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br />
<br />
민주화의 성과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의 담론은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분된다고 강 교수는 평가한다. 다만 그것은 ‘엘리트주의적 민주주의’다. 아울러 사회적 자유주의와 평화공존형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신자유주의와 반공자유주의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혁신의 요소가 추가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주장을 좀 더 일관되고 체계적인 논리를 통해 엮어낸 것”이다. 오히려 뉴라이트의 새로움은 정치 자원의 동원 양상에 있는데, “과거처럼 국가에 기대지 않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보수세력을 자발적으로 동원·조직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보수세력의 자기 쇄신의 핵심이다. <br />
<br />
그런 점에서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의 발표문은 한국 보수의 진정한 사상적 성찰을 주문한다. 양 교수는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보수주의라 불릴 수 있는 이념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혁신세력과 논쟁을 하며 자기를 정립한 서구의 보수주의와 달리 혁신세력을 아예 절멸시킨 한국 보수주의는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제도·체제를 뒷받침하는 가치를 능동적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이념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br />
<br />
비록 위기의식에서 비롯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는 “한국의 보수진영이 이념적 정체성을 본격 모색하기 시작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강 교수와 마찬가지로 양 교수 역시 그 진전이 대단치 않다고 지적한다. “뉴라이트가 중심 이념으로 내세우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체계적 이념이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급조한 정치적 수사”라는 것이다. <br />
<br />
한국 보수주의의 진정한 쇄신을 지체시키는 것은 이명박 정부라고 양 교수는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의 일부가 이념 정체성 모색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가치관과 이념에 근거하지 않은 실용성을 내세워, 오히려 보수주의의 이념적 발전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 새로움이 없지 않으나 지적 성찰과 이념 정립에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고, 다만 새로운 조직 방식으로 국가권력 장악에만 성공했다는 데 뉴라이트의 특징이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양 교수는 이런 글을 덧붙인다. “그 점에 관해서 진보 진영도 다르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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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다시 묶어서 보니 또 다른 맛이 난다. <br />편집자인 박상훈은 이미 출간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년 1판 출간)의 후속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주었던 만큼의 충격은 없다. 아마 이미 접해서일 수도 있겠다. <br /></font> <br /><strong>저자 서문<br /></strong> <br />○ 선거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경우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 및 분배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헤게모니로 군림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그러한 사회경제체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거의 허구인 것처럼 보인다(최장집, 2006: 6-7).<br /> <br />○ 경제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담론으로서나 정치적 이슈로 제대로 제기되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서유럽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조건에 있다(최장집, 2006: 7).<br /> <br />○ 최장집은 민주정부의 구조, 민주정부의 리더십과 엘리트, 민주정부의 성격 변화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 문제의 원인은 정책 이념과 방향, 그리고 실제 정책 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포함하여 민주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기인하는 바 크며, 그것은 외부의 어떤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주정부 스스로의 변형이 가져온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기성질서와 같은 외부의 압력이나 제약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어떤 가치와 어떤 생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8).<br /><br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계속 보기...</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strong>1장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br /></strong> <br />○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외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 내부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오른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왼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제기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가 체제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심리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8).<br /> <br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민중적인 내용을 확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최장집은 자주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의 형성”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최장집, 2006: 19). <br /> <br />○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사태를 통하여 커다란 민주화의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u>민주주의란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제도화하는 통치체제로서,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 스스로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체제</u>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민주적 성격을 보다 많이 갖는 정부일수록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익보다는, 그 정책의 효과가 사회최상층의 권익을 보다 더 잘 실현하는 이념이자 정책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래서 민주화와 특정 정책독트린의 효과 사이의 비상응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를 민주화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화의 역설은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20). <br /> <br />※ 변형주의(trasformismo): 19세기 후반 이래 이탈리아 정치 엘리트들의 행태에서 기원한 개념. 좁게는 집권 엘리트들이 안정적인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 반대파를 통합해내는 정치와, 그것이 빚어내는 비공식적인 후원-수혜 관례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반대파들이 지배적 가치에 흡수, 동화되는 양식 일반을 가리키는 데, 여기서는 주로 민주정부 나아가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헤게모니에 흡수, 동화되는 현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뚜렷이 구분되는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통해 사회에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는 정당들간의 경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지 못한 정당체제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정치양식(최장집, 2006: 22).<br /> <br />○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정부 시기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부터 왔다. 대안이 주변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기존 집권당의 지도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과 아울러 개혁에 대한 커다란 자율성을 확보한 정부가 탄생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민주주의제도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를 모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그가 책임성(accountability)의 연계로부터 벗어나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응하는 개혁의 추진자이기보다 현상유지를 더욱 강화하는 헤게모니의 추진자가 될 때 누가 그를 민주적으로 구속할 수 있겠는가?(최장집, 2006: 23)<br /> <br />○ 대의제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민중이 스스로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출한 대표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 통치자의 행위가 책임성을 갖도록 하는, 대표체제의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다.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 고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선출된 통치자가 그를 선출해준 투표자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드는가의 문제는, 민주주의체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해결해야할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선거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정치적 자유와 참여를 확대시키고, 사회경제적 정치의제의 범위를 확대하고, 민주적 통제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때, 이러한 정부를 대의적이라고 말하고, 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br /><u>민주주의는 어떤 형식적 기준을 갖고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실천의 과정</u>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노력이 중단되거나 거부될 때 민주주의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3-24).<br /> <br />○ 대표-책임의 고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민주적 통제와 구속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으나, 반대로 개혁자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것을 수행하고자 할 때 지지의 동원과 권력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따라서 통치자가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의 연계를 부담스러워할 때, 그것은 개혁에 필요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과제를 통치자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4).<br /> <br />○ 사회가 갈등적 이익과 요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u>민주주의란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갈등들을 억압하거나 범죄화하는 대신,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이익들을 공식적 대표의 체계 내에 통합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정치적 과정</u>으로 이해할 수 있다(최장집, 2006: 26). <br /><font color="#336600">→ 이게 민주주의 맞나?</font><br /> <br />○ 보수적 야당은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정책적 입장과 차이가 커서 더 공격적이고 그러지 않으면 협조적이 되기보다, 민주정부의 지지기반이 강할수록 타협적이고 약할수록 공격적인 양태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가 보수헤게모니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지지기반과 야당과의 관계 모두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이탈과 공격은 커졌고, 결과적으로 민주정부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리더십은 크게 손상되었다.<br />경제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은 민주주의 하에서 하나의 정부가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영역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간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생산레짐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경제관료의 수중으로 넘겨진지 오래다. 노동-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잔여범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강력했던 만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해졌다. <br /> <br />사회경제적 정책영역에서 변화가 없었던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동북아허브 건설, 지역균형 발전,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건설과 같은 정책영역이었다. 이는 국가재정과 행정력의 대규모 투입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이미지는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개발이익을 둘러싼 ‘이권의 지방배분 정치’(pork-barrel politics)였다. 거대한 국가자원의 공간적 재배분이 사회적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것이 민중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렵다. 국가의 예산이 이권이 되고, 여기에 투기적 요소들이 결합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그간 적지 않게 경험해왔다(최장집, 2006: 27-28). <br /> <br />○ 민중주의 운동의 중요한 약점은 민주주의이론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키지 못했고, 대의제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를 핵심적 구성요소로 한다. 이로부터 권위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강력한 집단적 열정과 에너지를 창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가치이면서 동시에 제도적 실천이다. 그 제도 작동의 중심 메커니즘은 선거와 정당이다. 그리고 그것은 헤게모니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헤게모니의 제약이라는 조건하에서 민주적 제도를 운용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비상한 능력의 지적․정치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권위주의를 붕괴시키는 능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최장집, 2006: 33).<br /> <br />○ ‘87년 체제’를 사실적 서술개념이 아닌 사태의 평가를 위한 가치함축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것은 민주화로의 전환점에서 이루어졌던 제도화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 이후 이 사태를 규정하는 응결된 틀로서 과도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구조주의적인 설명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잘못된 경로를 1987년 헌법과 같은 제도의 틀이 갖는 문제로 환원하면서 결국에는 1987년을 전후한 민주화 과정을 통째로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br /> <br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민주화운동으로 표출된 강렬한 변화의 욕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낡은 정치적 대표의 체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의 갈등 축이 노동문제와 사회경제적 문제를 포괄하도록 재편하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정당들이 전국적으로 의석을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기존의 지배적 접근은, 민주화의 과제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낡은 정당체제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최장집, 2006: 34-35).<br /> <br />○ 최근 노사모가 보여 주고 있는 변화는 인물 중심의 정치참여가 갖는 문제의 최종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가치와 대의가 아닌, 특정의 리더를 추수하는 운동의 경우 그 리더의 행적에 따라 운동의 성격과 궤적이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민주화운동의 탈동원화와 함께 이들 운동세력의 해체와 기존질서내로의 분자적 흡수를 촉진하는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는 또한 변형주의의 효과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최장집, 2006: 37). <br /> <br />○ 민주주의를 가져온 중심세력들이 담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는 운동의 열정을 통하여 분출된 바 있었지만, 제도를 만들고 제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극히 미숙하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기존의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엄청난 대중적 동원에 의한 집합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상황에서는 국면적 힘을 극대화하는 운동이 극히 효과적이다. <br /> <br />그러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문제는 체제전환에서 요구되는 논리와는 상이하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폭넓은 정치참여를 통한 민중권력의 창출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 어느 체제보다 민중적 요소를 부여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참여가 참여자의 계몽적 이해와 자각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리고 참여를 통한 힘의 창출이 제도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키지 못할 때,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이 실천을 통해 습득되지 못할 때, 민주주의체제에 내재된 민중적 요소는 발현되기 어렵다.<br /> <br />한국 사회에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실현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모순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가운데 운동의 효능을 과대평가하는 인식을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최장집, 2006: 38-39). <br /> <br />○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세단계로 구성된다. ① 민주주의의 시민사회적 기반이 강화되고 건강하게 발전하여, 정치의 중심조직으로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사회에 폭넓게 기반을 갖게 되는 것, ② 선출된 정부가 대표-책임의 연계에 의해 구속되는 것, ③ 선출된 정부의 정책 효과가 경제적 부와 자원의 분배구조를 향상시켜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강화하고,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제약하는 조건을 최소화하는 것(최장집, 2006: 39). <br /> <br />○ <u>민주주의는 총체적 비전을 담는 이념이나 어떤 통일적인 도식 내지는 규범과는 본질적으로 병존하기 어려운 체제</u>이다. <u>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와 결정은 가능한 많은 참여자들이 논의의 결과로서 획득되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일 뿐</u>이다. 그렇기 때문에 <u>민주주의는 그것이 작동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 과정 내부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결정하는 이 실천적 경험을 통해 민중들의 자각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체제이다. 운동은 위기나 특정의 국면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u>.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진보파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쉬운 선택이다. <u>운동의 재활성화가 오늘의 변화된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지도 회의적이거니와,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회피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u> 안타깝지만 퇴행의 사이클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br /> <br />결정적인 순간에 운동을 통해 무엇을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운동의 항상적 동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참여의 정치적 실천은, 자각된 전위부대가 운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자극을 불어넣는 방법보다 일상적 정치과정 내부에서 민중들 스스로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권력의 작동과 민주주의의 제도,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요구된다.<br /> <br />오늘의 현실에서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운동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과거 민주화시기보다 더 큰 운동가 개인의 자기희생과 실존적 문제가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은 투쟁을 통한 문제 해결을 본질로 한다. 운동이 정치와 사회 전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운동가는 그에 대응하는 이념과 가치, 규범과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운동은 피할 수 없이 사회에 대해 갈등적이고 이념적이 되며, 또 이러한 운동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사회를 향하여 어떤 효과를 갖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압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삶의 조건과 공적 과업을 일상성 속에 결합함으로써 실현되어야 하고,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상적 조건에서 운동가는 사적 생활과 공적 대의를 위한 행위간의 커다란 괴리와 긴장으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은 그의 행위가 사회를 개선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자신의 삶, 개인적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설정할수록, 강한 이념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로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더욱 더 이상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41-43).<br /><font color="#336600">→ 결국 운동도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최장집 교수는 미헬스가 언급한 바 있었던 과두제의 철칙에서 진보정당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운동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에 관한 논의가 최근의 조희연, 손호철 교수가 참여한 진보논쟁의 싹이 아니었나 싶다.<br />아무튼 최장집 교수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긴 하다.</font> <br /> <br />○ "<u>현실정치에서 제도 내지 일상적 담론구조를 통해 제기될 수 없는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사회의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은 운동이지만, 이를 정치의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제도화된 정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괴리와 긴장,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정당으로의 제도화는 운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언제나 불만족스럽게 대표하고 실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운동대로, 오래 지속할 수 없고 일상 속에서 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u>. <br />운동-정당간의 관계는 일종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u>정치의 현실주의자로서 민주주의 제도가 허용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 정당이라는 중심 수단을 활성화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치의제로 전환하여 실천하는 정치의 과정이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u>고 믿는다. 이 과정은 정치현실 속에서는 최대한이지만, 운동의 의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이상의 기준에서는 최소한이 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서 작동하게 되지 않나 싶다. <br />이상과 운동은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잃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정치에서 최대강령적 목표를 얻으려고 할 때는 다른 가치를 희생시키거나 너무 많은 비용/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정된 최소강령적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정치에서는 때때로 엘스터가 ‘신포도’(sour grapes)라고 표현하듯, 적당한 물러섬과 현실 상황에 적응하며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가능성 또는 선호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최장집, 2006: 44-45).<br /><font color="#336600">→ 편집자 주에 나와 있는 글인데, 앞에 나온 논의를 잘 정리하고 있는 인용문이다.</font> <br /> <br /><strong>2장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주화 세대의 과제</strong><br /> <br />○ 과거 군부통치를 한국 사회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협소한 엘리트 지배의 권위주의였다고 한다면, <u>민주화 이후에는 그간 참여가 배제되었던 대중적 참여의 폭이 비약적으로 넓어진 민주주의가 되었어야 했는데</u>,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되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48). <br /><font color="#336600">→ 이에 대한 근거가 구체적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br /></font> <br />○ 정서적 급진주의와 보수적 실천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인은 결국 헤게모니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있는 것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갖다 쓰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강한 레토릭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왔다(최장집, 2006: 54).<br /> <br />○ 투입 지향적(input-oriented) 정치와 정책 형성의 모델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사회와 유리된 전문가들만의 싱크탱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요구와 변화가 투입되고 소통되는 체계이다. 산출(putout) 중심의 정책생산 전문가 집단은 자본과 권력, 헤게모니 등 외부의 영향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싱크탱크가 잘 발달해 있는 미국 정치,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사회적 기반, 민중적 요소와 괴리되어 미국 사회의 상층과 전문가 엘리트 집단 중심의 기술관료적 비전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최장집, 2006: 55). <br /> <br /><strong>3장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헤게모니 사이에서</strong><br /> <br />○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은 우리가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련의 개념틀이나 믿음의 체계를 발전시켜 온 결과로 보기 어렵다. 즉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냉전반공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경제독트린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해방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냉전반공주의는 한국사회와 정치의 제도화를 주형해온 이데올로기적 기반이자 해석의 틀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특정 갈등은 그 표출과 대표가 허용되는 반면, 어떤 갈등은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갈등의 제도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상의 유지를 가져오는 보수의 스펙트럼에서만이 정당의 조직과 정치경쟁이 허용되는 정당체제의 협애한 제도화는 그 직접적인 결과이다.<br /> <br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가 창출하는 가장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삶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실제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데 있다. 헤게모니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능력 내지는 힘이라 할 수 있다(최장집, 60-61). <br /> <br />○ <u>한국의 민주화가 폭넓은 사회개혁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제약</u><br />- 이 모든 것은 분명 이를 믿도록 하는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두려움의 동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는 세 가지 역사적 경험을 말하는 것인데, <u>일제 식민지배로 상징되는 주체적 근대화의 실패 경험, 전쟁과 분단을 통하여 내면화된 미국에 대한 의존성,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성공사례로서 인식되는 박정희 신화</u>가 그것이다. 이들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속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부추기고, 비판과 경쟁적 대안의 조직화를 어렵게 하며, 가치의 다원화를 가로막는 효과를 갖는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어찌되었든 경쟁에서 이겨야한다’, ‘미국에 밉보이면 안 된다’는 두려움은 그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1). <br /> <br />○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이 갖는 문제의 핵심은, 사익의 실현과 사적 영역의 극대화를 강조하고 공적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을 중심가치로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을 해체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시장 역시 사회조직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국가의 규제정책과 국가의 역할을 통하여 조직되고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효율성이 시장 스스로에 의해 자동적으로 창출된다는 주장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독트린이 강조하는 것처럼 국가의 역할, 국가의 경제행위가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도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제이콥 핵커와 폴 피어슨이 미국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듯이, 세금 감축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차적으로 부유층에 혜택을 부여하고 사회복지정책과 공공정책을 위한 재정을 감축함으로써 일반 국민과 저소득층에 해악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국가의 역할이 전환된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62-63). <br />Hacker, Jacob S. and Paul Pierson(2005). <em>Off Center: The Republican Revolution and the Erosion of American Democracy</em>. Yale University Press.<br /> <br />○ 신자유주의의 효과가 두 가지 내용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시장과 국가․정치․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설정하면서, 전자의 사적 영역과 시장원리가 후자의 국가․정치․민주주의로 인해 축소되는 것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의 내부적 작동원리에 있어 시장원리의 절대적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상대적 크기를 강조하는 첫 번째의 경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은 각각 뚜렷한 자율성과 작동원리를 가지며, 양자의 경계를 인지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시장의 지배효과는 상당 정도 제한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는, 시장의 가치와 원리가 사회의 모든 하위구성단위와 수준, 영역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갖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전면적이다. <br /> <br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정치영역에 미치는 효과는 첫 번째 경우에서 두 번째 경우로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청와대와 정부조직의 구성 및 운영원리를 기업조직의 원리를 따라 개혁하고자 했고, 정책과 그 결정과정, 나아가 정치와 정당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압도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만큼 그 영향력의 확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없다(최장집, 2006: 63-64). <br /> <br />○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들은, 반부패와 투명성 강화, 그리고 정책경쟁을 모토로 한 당의 전문화 등과 결합하면서, 정치개혁론의 근저에서 가장 중요한 헤게모니적 위력을 갖는다. 이런 종류의 개혁들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u>민주주의의 제도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기층의 대중적 삶의 현실로부터 나오는 요구들이 어떻게 폭넓게 대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u>이다(최장집, 2006: 65). <br /> <br />○ 성장과 효율성의 원리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나 전문기술주의 가치의 강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최장집, 2006: 65).<br />- 기술관료적 경영주의(technocratic managerialism): 막스 베버적 관료주의의 목적합리성과 현대 기업 조직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영적 원리를 결합한 개념. 수단적 가치와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조직 및 조직운영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비정치적 내지는 반정치적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기업조직과 정치적인 권위주의 체제와 잘 상응한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 갈등에 기초하고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며, 효율성보다는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중심 원리로 하는 민주정치의 특성과는 상반된다. 엘리트 내지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회로식 결정방식과는 달리 결정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이 공적 통제 하에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민주주의적 정치과정 및 정책결정과정과는 정반대되는 조직이나 제도의 운영원리이다.<br /> <br />○ 아직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더 우월한 가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효율성의 가치가 중시되어야 하고, 이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를 통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성장=효율성=기술관료적 경영주의’의 등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이 등식은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가치는 민중주의와 분명히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u>정치개혁의 의제를 지배하는 기술관료적 효율성의 가치는 대중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이를 대신하여 전문적 지식이라는 덕목을 갖춘 엘리트들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전제나 지향을 배면에 깔고 있다</u>고 할 수 있다. <br /> <br /><u>민주화이후 정치개혁의 내용들 역시 민중참여를 제약하고 엘리트지향성을 강하게 갖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u>. 민주화 이후 모든 선거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국회의원 교체율을 나타냈으며, 17대 국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기존 국회의원의 60% 이상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보수독점의 구조를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이익과 갈등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 경쟁과는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쟁투를 계속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br /> <br />민주정부하의 정책결정과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다. <u>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부서의 정책형성과 심의과정에서 외부로부터의 투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확대</u>되었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자들과 중간층 인사들의 다수는 과거 운동권 출신이며, 개혁적 인사들이다. 이들과 시민사회의 소통 채널들은 전에 없이 확대되어 정책결정과정에 있어 시민사회 운동단체들의 참여와 그로 인한 투입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민주정부의 정책 내용과 결정 방식은 실제 사회현실 및 사회갈등의 중심내용과는 크게 괴리되어 있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참여가 확대되고,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진 집단은 대학의 지식인들과 연구자들, 국가영역과 민간영역에 있는 연구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전문가 집단이다. 최근에 이르러 크게 확대된 각종 정부위원회나 자문위원회, 그리고 정책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한 이들 전문가 집단의 참여는 민주화와 더불어 변화된 정책결정과정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u>이다. 지난 어떤 민주정부보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의 효율적 운영과 생산적 정책결정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전문가의 참여가 결합된 기술관료적 결정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열성적이었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 지식인의 참여와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u>중요한 것은, 의제의 설정에서 정책의 형성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실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와 민중적 요구가 중심적 동력이 되어야 하며,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u>이다. 오늘날 민주정부의 정책과 그 결정과정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나 정치경제적 문제와는 매우 거리가 먼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정책 산출 중심의 사고와 정향으로 특징되는 바, 전문가 엘리트의 비전에 의해 창출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내용과 스타일은 특히 노무현정부에 들어와 두드러진다. 국가 운영과 정책 결정의 이러한 기술관료적 스타일은 정치를 효율적 정책의 산출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인 이전투구의 장이자 파벌간의 난투장으로 이해하는 정치관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6-67). <br /> <br />○ 정치에서 도덕주의적 가치가 강한 이유에 대해, 혹자는 도덕과 명분을 중시했던 조선조 유교적 전통의 산물이라는 정치문화적 기원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 대해 도덕주의적 접근이 강한 것은 사회경제적 갈등의 표출을 억압하고 자연히 갈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데 기인한다. 즉 즉 갈등이 팽만한 사회에서 갈등을 정치적․제도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 따른 사회심리적 보상작용의 결과물이이라는 것이다. <br /> <br />도덕주의는 민주적 과정의 실패의 산물이다. 그것은 갈등을 민주정치의 과정 내에서, 정치 안에서 제도화의 방법을 통하여 해소했던 경험이 많지 않고,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문제를 혁명적 방법으로 일거에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청산주의적 심리와 성급함의 심성에 그 연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68-69).<br /> <br />○ 도덕주의에 대한 운동권의 의미내용은 훨씬 더 치열하다.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자는 도덕적 인간이 되어야하고, 역으로 도덕적 인간이 진정한 운동가라고 인식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인간만이 민주주의자이며 이들만이 민주주의를 잘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와 매개된 정치적 실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으로 수용하는 태도이자 자세이다. 민주주의가 가치와 이상, 그에 헌신하는 도덕적 열정 없이는 진전될 수 없고, 또 그럴 경우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현실 제도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실천되고 작동되지 않으면 안 되며, 갈등과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과정으로 뛰어들지 않고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할 때만이 운동이 지향하는 민중적 가치와 대의를 민주주의라는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다(최장집, 2006: 70). <br /> <br />○ 도덕주의가 가져오는 민주적 과정에 대한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현실을 현실 자체로서 접근하기보다 규범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차원의 실질적 문제에 무감하게 만들고, 갈등과 권력, 나아가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표출과 그에 기초를 둔 정당을 매개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핵심요소로 한다. 즉 민중적 참여와 민중적 요구의 확대를 통해 기존의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개혁을 압박하거나, 민중적 권력을 창출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것을 정치과정의 중심으로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민중적 요소의 투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상당정도의 갈등, 무질서와 소란스러움을 동반하며, 이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는 말이다(최장집, 2006: 70-71). <br /> <br />대체적으로 운동권들은, 권력이 충돌하는 민주정치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정치의 영역 밖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정치를 초월해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전문가라든가 사법부라든가 시민사회의 운동이라든가 하는 어떤 제3의 해결자를 불러들이는 방법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71). <br /> <br />○ IMF 금융위기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와, 한국의 경제발전과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가 초래한 노동시장의 분화는 모든 노동운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동의 이익기반을 해체했다. 이러한 변화는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들 사업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들간의 이익갈등을 첨예한 대립관계로 몰아넣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공동이익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조직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도덕주의적 방법으로 접근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사적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론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노동운동도 이 집합행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독립운동, 혁명적 변화, 민주화운동과 같은 사회적 변혁기, 즉 동원의 시기에는 집합행위의 딜레마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원이 평상시로 되돌아가는 탈동원의 시기, 도덕주의는 물질적 이익추구 앞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br /> <br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했다”라든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며, 과거의 도덕적 가치를 불러들이면서 이 사태에 대해 도덕적으로 개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 운동이 더 이상 과거의 도덕성을 견지할 수 없는 것은, 거시적으로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조건의 변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경제발전에 의한 노동시장조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미시적으로는 운동에 헌신하는 개인이 자기이익에 반해, 그리고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에 거슬러 지속적으로 도덕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br /> <br />도덕주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법으로는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힘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도덕주의의 딜레마는 노동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화운동 전반에 해당된다. 도덕률에 기초한 정당화는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와 양립하지 못하게 될 때 붕괴된다(최장집, 2006: 71-73). <br /> <br />○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개혁의 이름으로 과격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 저간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규모나 자원동원 능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이다. <u>연대와 공동체의 원리로 움직여야 할 시민사회의 운동 부문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자원을 고리로 수혜-후원의 구조에 깊숙이 통합되었다. 반대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조직된 관료행정체제의 구조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상응하도록 개혁하려는 노력은 쉽게 포기되었다. 각종 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관료기술주의적 결정을 보완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u>. 즉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시절보다 국가의 확장된 부문으로 통합된 사실이 두드러진다. 요컨대 시민권을 확장하는 민주정부의 기능은 실종된 반면, 신자유주의 가치를 준봉 혹은 내면화한 정부의 기능은 크게 확장된 것이 그간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최장집, 2006: 73-74).<br /> <br /><strong>4장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 열망-실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나</strong><br /><font color="#336600">→ 2003년 5월 29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이다. 최장집 교수의 탁견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노무현 정부는 최장집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행동해왔다. <br /></font> <br />○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 ‘열망-실망의 사이클’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br />전자는 선거과정에서 분출된 열망이 선거 이후, 즉 새로운 정부의 수립 이후 실망으로 변하는 주기적 순환을 말하며, 후자는 정당의 역할보다 언론과 검찰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열망-실망 사이클’의 악순환의 결과이자 때로는 원인 혹은 그와 수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열망-실망의 사이클은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하나의 법칙적 현상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간 민주정부들이 보여 준 반복적 패턴이었다(최장집, 2006: 76). <br /> <br />○ 민주화 이후 야당이 집권정당이 되고 정부가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커다란 문제(최장집, 2006: 77-79)<br /> <br />첫째, 리더십과 인적자원의 문제<br />개혁은 힘의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슬로건이나 개혁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할 힘의 동원과 기득이익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과정에서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비전과 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현실성이 있어야 하며, 이를 추진할 수단들 역시 정비되어야 한다. 즉 개혁은 정책적이기에 앞서 정치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br /> <br />둘째, 헤게모니와의 대면과 타협<br />새로운 정부들은 보수적인 헤게모니와 타협하는 정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이 집권한 민주정부 자체의 약함 때문이고, 사회의 사적 영역에서 강력한 기득이익들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br />기득이익을 능가하는 정치적 지지기반이 투입되지 못하고, 강력한 헤게모니에 저항할 주체적 역량을 갖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현상유지를 결과하게 될 안일한 정책대안을 선택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br /> <br />셋째, 한국판 분할정부의 출현<br />중요한 것은 분할정부가 자주 정치의 교착상태를 만들어내면서, 대중동원을 목표로 한 정당간 선거경쟁으로부터 대통령 대 의회라는 제도간의 권력투쟁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증대하게 되는 정치의 퇴락현상, 긴스버그와 세프터가 말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정당정치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br />분할정부는 행정부와 의회간의 제도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에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기능적으로 작동할 때에는 오히려 민주정치를 퇴행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br /> <br />○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최장집, 2006: 79-81)<br />Ginsberg, Benjamin and Martin Shefter(1999). Politics by Other Means: Politicians, Prosecutors, and the Press from Watergate to Whitewater. W.W. Norton & Company.<br /> <br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출현은 민주주의의 퇴락을 말하는 징후적 현상이다. <br />미국의 경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두 정당간의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좁혀지는 것과 함께 선거에서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정치인들간의 정권 획득을 둘러싼 쟁투가 격렬해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반면, 사회 저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메커니즘인 정당의 역할은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투표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성’을 갖지 않는 제도나 기구들, 즉 국가기구 내의 검찰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언론이 점차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br /> <br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중심적 이슈들 바깥에 위치하는, 즉 갈등의 폭이 적고 기술관료적 접근이 가능한 이슈들, 예컨대 탈규제정책이나 행정합리화, 대민행정업무의 개선과 같은 문제들은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u>갈등의 폭이 넓은 이슈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u>. 여기서 최장집은 외적 제약보다 내적 제약을 더 강조한다. <u>선출된 정부가 대안적인 비전, 정책목표, 정책의 실천프로그램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u>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정부는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빠르게 보수기득이익과 타협하고 그에 포획되는 경향을 보였다. <br /> <br />○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부문의 자율성 증대와 더불어 사적 영역의 확대이다. 기업, 언론, 지식사회 등 한국 사회의 보수적 부문은 시장효율성을 강조하고 그 동안 한국을 이끌어 왔던 국가에 대하여 그것의 실패, 비효율성을 말하면서 공공부문에 대한 민간부문의 우위를 강조한다. 즉 이들에게 있어 민주화는 곧 시장자유화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운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국가의 팽창이 권위주의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라고 전제하면서 공공성과 시민사회, 그리고 비정부조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세계화,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장효율성의 가치와 독트린이 지배적인 오늘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u>사적 영역과 시민사회의 확대가 곧 그동안 권위주의하에서 억제되었던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 사회의 균열과 갈등의 광범위한 표출,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정치적 대표체제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u> 대중의 정치참여가 증대되고, 이들의 이니셔티브하에서 정치가 확대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의 중심 조직, 메커니즘이 정당이다. 그러나 <strong><u>대중의 정치참여 확대 없이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가 확대된다는 것은 사회의 거대 사익 집단들, 거대 사적 조직과 기구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는 ‘정치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의미</u></strong>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곧 정치영역에 있어서 거대 사익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반면 공공영역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최장집, 2006: 83-84). <br /> <br />○ 정당 중심의 정치가 약해지고 언론이 정치를 대신할 경우 사회의 광범한 저변층이나 중산층의 이익과 요구보다는 상층의 기득이익이 일면적으로 대변될 가능성이 높다. <br /> <br />정치과정의 순환구조<br />1) 사회․시민․투표자→투표→정당→선거로 선출된 정부→사회․시민․투표자에 대한 ‘책임성’<br />2) 사회․시민․투표자→언론을 통하여 제공되는 여론의 투입→언론의 영향하에 있는 여론의 부침과 평가에 끌려 다니는 정당과 정부→투표자에 대한 책임성의 약화 : 미디어크라시(mediacracy), 미디어민주주의(media democracy)<br /> <br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면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정당의 저발전과 정치인들의 무책임에 돌려질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정당은 새로운 유권자층과 사회 저변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으며, 선거경쟁에서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다른 한편 언론의 정치지배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귀결인 측면도 있다(최장집, 2006: 84-85). <br /> <br />○ 지배담론으로서의 도덕주의(최장집, 2006: 86-88)<br /> <br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정치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잣대를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부패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주변의 부패문제와 씨름했다. 대통령과 관련 있다 싶은 부패 사안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언론과 야당의 공격, 국회의 제도적 권력과 결합된 특검제의 활용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번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br /> <br />부패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의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국가 부문과 관련된 부패문제의 핵심은 국가와 사적 영역 사이에서 후원과 정치적 지지가 교환되는 관계, 혹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수혜와 지대추구로 연결되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부패를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화이다. 부패 때문에 민주주의나 정치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 때문에 부패가 유지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부패담론’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창궐은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br /> <br /><u>개혁적인 정부라면 정치개혁의 제일의 주제를 민주적 참여와 대표성의 확대, 그리고 국가/정부의 책임성 확대에 두어야 한다</u>. 그러나 그간의 정치개혁 논의에서 그 기준과 목표가, 반부패로 표징되는 도덕적 규범이나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진이라는 경제적 가치에 두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br /> <br />○ 지배담론으로서의 전문가주의(최장집, 2006: 88-90)<br /> <br />민주정부도 큰 사회를 움직이는 기구이고 국가 역시 거대조직의 하나라고 할 때 이를 운영함에 있어서 전문성, 기술합리성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다. <u>문제는 전문기술합리성이 민주적 가치에 우선하여 강조되거나 이를 대체하려 할 수도 있다는 사실</u>이다. 사회나 조직의 운영원리로서 그것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전문적 지식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판단과 여러 윤리적 고려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평등한 참여, 평등한 시민권과 같은 정치적 원리 등 숱한 문제를 포괄한다. <br /> <br />로버트 달은 이미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론화된 바 있는 이러한 전문기술주의를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라고 보았다. 마넹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u>추첨제와 순환제를 중심으로 공직을 선출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의 본질은 전문기술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u>했다(마넹, 버나드(2004). 『선거는 민주적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이 전문기술주의는 정치에 있어 ‘후견주의’를 그 내용으로 하며, 민주주의의 중우적 성격을 부정적으로 강조한다. 기술합리주의, 엘리트주의는 일체의 민중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br /> <br />언론이 강조하는 전문기술주의는 현대의 발전한 과학적 지식이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으며, 다수결과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해 해결하기도 어렵거니와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분열되기 쉽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에 끌려 다니는 동안 사회 전체를 위해 중요한 문제, 미룰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문제들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갖는다. 이러한 가치와 관점은, 우리 사회가 갖는 학벌 중심적 특성이나, ‘고시’라는 국가시험을 통한 공직자 충원 방법, 그리고 박정희식 관료적 발전모델의 신화 등으로 인해 쉽게 확산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br /> <br />정치인들의 자격에서도 전문가라는 평가가 중시되고, 정부의 인사 특히 국영기업, 공사 등의 인사충원에 있어 “정치인 배제, 전문가 중시”라는 기준이 자주 강조되듯이 전문성, 기술합리성의 가치는 정치적 가치보다 우선시된다. 뿐만 아니라 <u>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주의가 수반하는 효율성의 가치는 민주적 결정이 아닌 기술관료적 결정을 정당화</u>한다.<br /> <br />○ 지배담론으로서의 신자유주의(최장집, 2006: 90-91)<br />시장경쟁에서의 이익창출과 이를 위한 효율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기업운영의 논리가, 사회적 갈등을 표출․대변하고 시민들의 안정과 복리 증진을 기본가치로 하는 공적 결정의 논리를 대신하면서, 국가 운영의 원리를 기업 운영의 원리와 동일선상에 놓게 된 것이다. <br /> <br />○ 민주정부라면 참여의 폭을 넓히고 사회의 요구를 폭넓게 대표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개혁자들이 논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정치개혁의 목표를 지역주의 극복/반부패에 둔다면 그것은 방향을 잘못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정치엘리트 내의 지역적 분포만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92-93).<br /> <br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에게서 발견되는 특징: ① 선거와 더불어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한 정당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그 역할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② 갈등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br /> <br />대통령 역할에서 핵심은 그가 정당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투표자들은 선거경쟁에서 그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 이념,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다른 정당 후보가 아닌 그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그를 지지한 투표자로부터 선거를 통해 그 요구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배담론의 여론몰이는 그가 갈등을 표출하고 파당적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대표가 아닌, 통합과 화합을 실현하는 국가 전체의 대표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이에 부응해 대통령은 정당의 대표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기득이익과 타협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즉 선거 때는 표를 위해 지지자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지지자들의 요구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최장집, 2006: 94). <br /> <br />○ 일반 대중들의 참여로부터 시작하여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이 전체과정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상상력이 대통령의 머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u>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대중의 요구 표출과 지식인들의 이론화 노력이 정당의 대표기능과 상호 소통하면서 만들어지고 습득되는 사회적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u>이다. 대통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응집하여 정책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br /><u>민주화 이후 대통령 주변에 그리고 정책결정이 일어나는 정부의 부처 주변에 정책자문을 위한 위원회들의 설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들 정책자문기구의 역할이 사회의 요구와 사회적 지식의 투입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할 것</u>이다. <br /> <br />앞선 정부보다 나은 차이와 업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정책결정은 전문가주의와 기술관료주의의 범위 안에서 순환되는 내부투입(within-put)에 중심이 주어졌다. 핵심은 국가영역 밖의 사회로부터의 투입이다. <u>정책결정이 아래로부터의 투입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란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의 고위 결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정책을 만드는 산출과정을 의미하기보다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의 광범한 요구들이 정책결정과정으로 투입되는 과정을 더 중심에 두는 체제이기 때문</u>이다(최장집, 2006: 95-96).<br /> <br />○ 3년이 지난 2006년 시점에서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최장집, 2006: 96-98)<br /> <br />노무현 정부의 통치스타일은, 앞선 다른 정권에 비해 세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u>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담론과 실제 정부 정책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u>이다. 실제 정책의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떤 정권 못지않게, 아마도 가장 미국의 요구에 순응적이었다. 한때 그토록 강조했던 동북아시대론, 동북아균형자론은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한미동맹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실제 정책에서는 가장 과격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부정적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br /> <br />둘째, <u>서로 다른 정책방향 내지 정책 사이에 부정적 의미의 상호교환(trade-off)이 빈번하다는 점</u>이다. 한 정책분야에서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중대 정책을 끌어 쓰는 틀어막기식 접근이 자주 나타난다. 대미외교의 미숙함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정책영역을 부당하게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미 FTA를 하면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안보위험이 줄어드는 효과를 갖는다는 식의, 서로 다른 차원의 정책분야가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진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조건에서 가능했다. <br /> <br />셋째, <u>정책노선의 일관성 부재</u>이다. 하나의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정책방향과는 매우 다르거나 아니면 정반대가 되는, 변화의 진폭이 드라마틱하다 할 정도로 크다. <br />이러한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한미 FTA 문제이다. 자칫 IMF사태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르는 정책사안에 대하여 정책결정자들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사전준비도 없이,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사회에 강권하는 일은 민주정부가 취해야 할 결정방식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까지 그렇게 졸속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반 국민과, 그 정책효과를 부정적으로 안게 되는 사회집단들을 소외시키고 대통령과 소수 기술관료 내지 보좌관들이 중대 정책사안을 폐쇄회로적 방법으로 결정하는, 권위주의체제에 전형적인 기술관료적 결정방식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r /> <br /><strong>5장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디자인 서설<br /></strong><font color="#336600">→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편, 「아세아연구」, 47권 3호(2003년 12월)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이다.<br /></font> <br />○ 민주화 이후 제도개혁은 여야당을 포함하여 여러 정치적․사회적 그룹으로부터 제기되었다. 하나는 분권형 대통령제 및 책임총리제와 같이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정부형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부패 척결, 깨끗한 정치 구현, 생산성과 효율성을 실현하는 정당개혁에 대한 요구였다. <br /> <br />노무현 정부는 출발 초기부터 통치구조를 둘러싼 개헌이슈에 결속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헌정체제가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잘 작동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나아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현재의 제도논의들이 얼마나 한국 민주주의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br /> <br /><u>제도문제가 좋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제도디자인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점</u>을 유념해야 한다(최장집, 2006: 100-101). <br /> <br />○ 제도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민주화라고 하는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민주화 이후 사회의 새로운 주요 이슈들과 그로부터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제도의 결핍 또한 큰 문제가 되고 있다(최장집, 2006: 101).<br /> <br />○ 제도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 최장집은 지오반니 사르토리의 문제의식, 즉 “제도는 무엇보다도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르토리는 제도를 제재와 보상으로 구성된 유인체계의 틀로 이해한다. 하지만 최장집은 제도를 유인체계의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한국으로 수입된 원래의 모델과 한국적 토양이 접합하면서 빚어지는 효과, 즉 정치사회학적 문제에 보다 많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다소간 문제의식을 달리한다. 그것은 한국의 개혁자들이 외래의 모델을 가져왔을 때,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이 그 제도의 효과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제도를 수입할 때 상정했던 목적과 실제로 이식된 토양에서 나타나는 효과간의 차이에 주목한다.<br />Sartori, Giovanni(1994). <em>Comparative Constitutional Engineering</em>. Macmillan Press Itd. p. ix.<br /> <br />이러한 문제의식은 두 단계의 고려를 필요로 한다. <u>하나는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이 설정된 이후에 특정의 제도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u>이다. 이러한 접근은 광범한 그물망으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상호연관 효과를 가짐으로 인하여 제도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01-102). <br />Elster, Jon(1988). "Introduction." Jon Elster and Rune Slagstad eds. <em>Constitutionalism and Democracy</em>. Cambridge University Press.<br /> <br />○ 필립 슈미터와 마찬가지로 최장집도, 현대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체제가 아니라 별개의 특성을 갖는 영역에서 제도화된 ‘부분체제들’(partial regim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즉 여러 부분체제들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위계적으로 조직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원리로 조직된 부분체제들이 잘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있도록 결합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가지고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문제영역에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특정 영역 또는 보다 상위의 영역에서 제도개혁 디자인을 할 때에도 다른 영역, 또는 하위 체계의 영역과 상호보완적이고 순기능적으로 결합하는 문제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최장집, 2006: 103).<br /> <br />○ 민주주의도 하나의 통치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는 인간의 선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정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br /> <br />정치가 비록 부패로 변질되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하더라도 이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올바른 처방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치유책은 민주주의의 비용이 정치에서 과도한 부패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과도한 도덕적 기준이 아닌 엄격한 법률적 기준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목적 역시 부패가 완전히 척결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하다. 부패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관련하여, 병보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최장집, 2006: 104).<br /> <br />○ 민주주의에 필요한 정치의 비용의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합리적인 개혁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기업이나 거대 사익집단에는 법적 기준을 높이되 비용의 원천은 다변화․다원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당과 사회, 후보와 유권자가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통제기준은 낮추되 거대 사익과 국가/정부가 유착될 가능성이 있는 지점의 통제기준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br /> <br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의 정치에 기초를 둔다. 어떠한 부패도 허용하지 않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환경에 정치를 위치시키고자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참여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는 약화된다. 정치가 도덕화될수록 대중정치의 조건은 약화되고, 그 결과 정치 밖에서 풍부한 정치적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사회 상층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현대판 귀족주의적 특성은 강화될 것이다. 니노는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한 체제를 민주주의적이다, 또는 공고화되었다라고 평가하는 주관적 정당성이 아니라, 그 작동을 통하여 실체적으로 그 정의가 충족되는 객관적 정당성이라고 강조하면서, “나의 관심은 정치체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관한 공동체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체제를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만드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br />Nino, Carlos Santiago(1996). <em>The Constitution of Deliberative Democracy</em>. Yale University Press. p. 8.<br /> <br />민주주의는 제도적 형태를 갖는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들’로 구현될 수 있다.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는 한 사회의 선택이다. ‘객관적 정당성’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실현하고자 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05-106).<br /> <br />○ ‘즉응의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세 문헌<br />1) 엘스터는 제도적 안정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정치체제를 서술하는 개념으로 ‘인스턴트’(instant) 정치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자주 변화했던 플로렌스의 선거제도를 예로 든다. Elster, "Introduction", pp. 9-10. 2) 니노는 다수결을 통해 결정이 만들어질 때 시간적 변수에 초점을 둔다. 그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이익이 변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익이 표출될 때 과거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현재의 변화된 시점에서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결정이 현재의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항상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즉응적’(instantaneous) 정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니노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어떤 도덕적․규범적 끈, 그리고 또한 이 관계를 강제적으로 묶는 외부적 제도로서의 헌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Nino, p. 183. 3) 쉐보르스키, 스토크스, 마넹은 제도화가 너무 안정적으로 된 결과로서 고도의 담합적 정당체제가 만들어진 경우와 그 정반대로 선거 때마다 정당체제가 변하는 제도화 없는 극단적인 경쟁체제로서 ‘명멸하는’(ephemeral) 정당체제를 대비시킨다. 두 극단은 다 부정적이다. 바람직한 정당체제는 안정적 제도의 틀 내에서 경쟁체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Przeworski, Adam, S. Stokes, B. Manin eds.(1999).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em>Democracy, Accountability and Representation</em>.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49.<br />한국의 인스턴트 정치는 위의 세 요소를 모두 부분적으로 포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이익과 유동하는 세력균형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와 체제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작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 혹은 표피적 변화는 계속되지만 기존의 구조는 그대로 있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최장집, 2006: 109-110).<br /> <br />○ 민주화 이후 정치적 대표체제와 관련하여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하나의 독자적 조직으로서의 정당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문제는, 정당이라는 개별 구성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별 정당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자체 독자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역으로 개별 정당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간 경쟁의 틀 내지는 배열형태, 즉 정당체제의 차원에 존재한다(최장집, 2006: 111).<br /> <br />○ 사회의 갈등이 폭넓게 대표되는 것과 이들간의 경쟁이 중요한 까닭은, 샤츠슈나이더가 강조했던 바와 같이, 갈등의 범위가 좁아질 때 갈등의 강도는 더 첨예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폭넓게 대변하지 못하는 허약한 체질의 정당체제로부터 나온다(최장집, 2006: 111-112).<br /> <br />○ 문제가 되는 것은 특수이익과 정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분출하는 특수이익을 다루고, 공익과 특수이익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특수이익에 대해 정부와 일반이 사용하는 지배적인 담론이란 고작해야 ‘집단이기주의’라는 말밖에는 없다. 이 단순하고 권위주의적인 말만으로는 무엇이 공익이고 무엇이 사익인지, 무엇이 공익과 부합하는 사익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사익인지를 알 수 없다. 특수이익들이 왜 나쁜지에 대한 이렇다 할 정의 없이,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 전횡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u>특수이익에 대한 비합리적 대응은 사회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제들</u>이다(최장집, 2006: 112).<br /> <br />○ 최장집은 한국에서의 지역주의 문제가 갖는 핵심 성격을 이데올로기적 현상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해가능한 주요 요소들로 구성된 집적물로 이해된다. 즉 다양한 이념과 가치의 정치적 동원을 억압하는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계’,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익에 조직적․재정적 기반을 두지 않는 ‘사회적 기반 없는 정당구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중첩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 등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3). <br /> <br />○ 지역주의적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한다면, 인위적으로 지역별 의석분포를 균등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역 이외의 다른 이익들이 표출/조직되어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균열축이 들어오게 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14).<br /> <br />○ 오늘의 정치권과 언론을 통하여 무성하게 제기되는 정치개혁 담론과 논의를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것들이 도덕주의적 관점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정치가 당면한 문제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을 강조하는 동안, 참여․대표․책임성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들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br /> <br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이다. 정당이 국가/정부와 사회를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자, 정부를 만들고 정책적 수단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심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의 발전 없이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br /> <br />정치개혁의 제1의 목표는 어떻게 정치의 장을 경쟁적이면서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포괄적이 되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부터 모든 정치개혁이 시발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곧 참여와 대표, 책임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최장집, 2006: 114-115).<br /> <br />(1) 참여<br /> <br /><u>민주주의는 곧 대중참여의 정치</u>를 의미하기 때문에 참여, 대표, 책임성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는 참여이다. 민주적 제도의 모든 것은 이 참여라는 기초 위에 건립된다. 그러므로 <u>참여의 폭과 내용은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요인</u>이다. <u>참여의 개념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중심적인 것은 투표를 통해 선거경쟁에 참여하는 것</u>이며, 따라서 투표율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민주주의의 척도이다. <br /> <br />인구의 1/3 정도가 참여한 가운데서 다수를 획득한 정당이 집권당이 된다는 것은 대표성 역시 극히 취약한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구조적으로 소수정권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투표자와 투표불참자의 구성이 확연한 계층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인종, 저소득층, 노동자 등 사회 하위계층의 투표율은 극히 저조한데, 그래서 미국을 중산층 중심의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은 공화-민주 양당의 당 간부들과 중산층 지지자들이 그들의 기득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담합하여 개혁을 사보타지하기 때문이다(Ginsberg and Shefter. <em>Politics by Other Means</em>. pp. 21-22.). <br /> <br /><u>민주주의에서 하나의 정치제도가 보수적이냐 개혁적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찾는다면, 그것은 참여를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 제도를 갖느냐, 아니면 이를 촉진하는 제도를 갖느냐에 있다</u>.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개혁논의는 참여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법의 집행자들, 개혁자들, 지배적 담론은 대중의 집단적 힘이 정치로 들어오는 문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신규 유권자들이 선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은 줄고 있는데도, 시민운동의 선거개입이나 여러 가지 운동적 형태의 선거캠페인 등은 불법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br /> <br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이슈들을 폭증시켜 왔다. 그것은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비교적 장기간의 주기를 갖는 한 번의 선거로, 이 다양하고 복잡한 의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몇 개의 정당대안 중 하나에 대한 투표라는 선택이 만들어 내는 집합적 결정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적 결정구조는 매우 엉성하고 조야하기만 하다. 새로운 이슈의 등장과 선거라는 방법에 의한 결정 사이에 비대칭적․구조적 불균형이 커지게 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 특징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u>전반적인 사회의 민주화와 아울러 여론, 담론이 창출되는 영역에서 거대 사익들의 독과점을 억제하는 논의구조의 확대와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u>하다. <br /> <br />특수이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도록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더욱 강하게 기대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책이나 개혁안을 결정하여 위로부터 부과할 때 충돌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민주정부가 공권력을 사용할 때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은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br /> <br />사회 전체이익과 특수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제도의 핵심은 이들 이해당사자들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과 같이 사회의 중요 생산자 집단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합의적 결정주의, 즉 코포라티즘이다. 그 제도적 장치는 정부가 중재자(interlocutor)가 되고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직접 대화하여 결정하는 정부, 기업단체 대표, 조직노동자 대표의 3자결정기구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합의적 결정주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하부기반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든, 노동자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율적 결사체 조직이 기능이익의 범주에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정부대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이들 조직을 협의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정책결정의 당사자로서는 그만두고라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참여는 사회 내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대표성을 갖는 각자의 조직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5-118). <br /> <br />(2) 대표<br /> <br />중요한 것은 사태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인데, 결정구조의 폐쇄성과 정치부패는 정치적 대표체제의 이념적․계층적 협애성과 엘리트 카르텔 구조의 특성 위에서 만들어졌고 유지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당체제의 변화 없이 개별 정당조직의 개혁이 효과를 갖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지배적인 접근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정당체제 개혁의 효과가 정당조직 내부의 민주화로 연결되는 접근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 <br /> <br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범위와 (계급의) 편향성은 동일한 경향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갈등이 한 쪽으로 치우쳐 국지화되면 사회상층의 이익이 편향적으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방향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편향성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br /> <br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정치개혁 논의들은 어떻게 사회의 이익, 요구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오고 어떻게 정치를 경쟁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인가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정치안정이냐 불안정이냐의 기준이 주요가치로 인식되면서 양당제가 선호되고, 다당제는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가치와 이익, 갈등들이 광범위하게 표출되는 것에 중심적인 가치를 둔다면 다당제가 선호될 수 있을 것이다(최장집, 2006: 118-120). <br /> <br />(3) 책임(성)<br /> <br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선출된 대표․정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맡기면 잘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의 정도를 판단해 전망적으로(ex ante) 평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정부가 임기동안 얼마나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느냐 하는 데 대해 사후적으로(ex post) 평가하는 것이다(Przeworski, Stokes, and Manin,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pp. 29-54). 현실에서 이를 담보하는 중심적인 메커니즘은 정당이다. 정당․후보는 강령, 이념, 공약의 차이와 유능함의 정도로 경쟁자와의 차별성을 과시하게 되고, 이를 이행하도록 노력하여 다음 선거에서의 평가를 통해 재선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br /> <br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하여 제기되고 또 실제로 실현되기도 한 당정분리론과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바로 이 책임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연계, 대통령과 정당의 연계를 단절하고, 정치적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책임정치의 약화를 가져오고, 정치체제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능적 통합성을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체제의 파편화, 즉흥성, 무책임성, 제재대상의 불분명함, 평가의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br /> <br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 가운데 하나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에만 치우침으로써 체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을 많이 드러냈다는 데 있다. 개혁자들은 수평적 책임성이 과도할 경우 그것이 자주 파괴적 효과를 가질 수 있고 잠재적으로 헌정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0-123).<br /> <br />○ 쉐보르스키는 <u>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u>라는 매우 함축적인 정의를 내린다(쉐보르스키, 아담, 임혁백․윤성학 옮김(1997). 『민주주의와 시장』. 서울: 한울. p. 34. Adam Pezeworski(1991). Democracy and the Mark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권위주의는 집권세력이 패배할 경우 판을 쓸어버리고 결과를 번복하면 되기 때문에, 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선거과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경쟁의 결과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체제이다. 여기에서 선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거나 다만 체제정당화의 기제에 불과하다. 이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정치행위자들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패자는 다음 선거경쟁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28).<br /> <br />○ 좋은 제도개혁은 어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좋은가, 왜 어떤 부문에서 제도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논의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br />동일한 제도는 개혁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u>제도개혁은 제도 자체의 내용과 그 제도가 작동하는 조건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u>이다. 많은 경우 외부의 모델을 따르는 개혁은 원래 모델이 실현했던 효과를 갖기보다, 해당 사회의 여러 토착적 조건들과 결합하면서 기존의 부정적 문제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도개혁은 최소주의적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하며, 광범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9). <br /> <br />○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적 원리이자 제도들, 예컨대 3권분립, 다수결의 원리, 지역대표의 선거제도 등 기존의 제도적 장치에 상상력과 사고를 묶어둘 필요는 없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는 다양한 제도대안이 모색될 단계에 이르렀고 또 실제로 모색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혁 논의는 그간의 한계를 넘어, 상상력과 아울러 넓은 이성적․공론적 논의가 가능한 방향으로 확대․발전되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30). <br /> <br /><strong>6장 민주주의와 노동의 문제</strong><br /> <br />○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하게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136).<br /> <br />○ 한국의 민주정부들의 경제, 사회정책은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성장중심적이고, 그러므로 재벌중심-노동배제적이고, 세계의 그 어떤 주요 국가들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 즉 시장근본주의를 따르는 경제독트린과 정책라인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IMF위기 이후 불과 7,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매우 급진적으로 취해졌고,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재편성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를 추동하는 중심적 가치는 경제성장이고, 이를 실현하는 도구적 가치는 효율성, 경쟁, 능력주의(meritocracy) 등이다.<br /> <br /><u>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약한 자원을 갖는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을 통하여 정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체제</u>이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서민층이나 소외계층들은 선출된 정부들이 개혁적이기를 기대하면서 투표했고, 그들을 정부로 선출했다. 그러므로 선출된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보장과 복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할 위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치자간의 신뢰(trust)이며 최근의 민주주의이론의 개념으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하겠다. 이 연결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 하나의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따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다.<br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 세계적 모델사례로 발전해 가고 있다(최장집, 2006: 138). <br /> <br />○ PD적 문제의식은 그동안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PD적 문제의식의 정리․실현 내용은 ① 노동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며 보편적 원리로서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그에 따라 사회전체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는 것 ②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존중되나, 제어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경쟁, 효율성, 업적중심의 가치만이 아닌 그와는 다른 근원적인 인간가치, 사회윤리적․공동체적 가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정하게 규제․제어되는 것 ③ 재벌중심의 경제/산업구조는 다양한 대기업의 존재와 중소기업의 강화에 의해 보다 다원화되고, 영세자영업은 현대화된 자영업으로 발전되는 것 등의 요소들을 포함한다(최장집, 2006: 140).<br /> <br />○ 선거경쟁을 주도하는 정치엘리트 ― 그들의 조직적 표현으로서 정당 ― 경쟁의 결과 등장한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과 단지 논리적으로만 연계되어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책임성과 위임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다른 어떤 권위주의적, 엘리트적 지배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br /> <br /><u>투표에 의한 선거경쟁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거니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나 학자들은 두 방향에서 대안을 찾는다</u>. 한 방향은 <u>투표와 선거경쟁 자체를 의미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살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채널들을 발전시키는 방법</u>이다. <u>결정과정의 참여범위를 넓히고, 민주적 통제의 이슈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대안적 정보원과 지식을 확보하여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와 이성적 판단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u>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주장이다(John Dryzek, Robert Goodin, 그 밖의 참여민주주주의 이론가들). 다른 한 방향은, <u>민주적 자유와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 즉 경제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u>이다(Robert Dahl, Charles Lindblom, Amartya Sen, Joseph Raz 등). 이 내용들은 이미 PD라는 형태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적으로 정리․실현하는 과제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될 것이다(최장집, 2006: 141-142). <br /><font color="#336600">→ 최장집 교수는 참여민주주의의 틀 안에 경제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br /></font> <br />○ 민주주의의 질과 내용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국가와 시민사회, 공동체적 필요와 사적 선호, 국가에 의한 공적 강제력과 자율적 교환 등 이들 양자 간의 구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배합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 필요와 공적영역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병립하지 못했듯이, 사적 선호와 사적 영역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143-144).<br /> <br />○ 현재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양자는 어디에서인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br /> <br />흥미있는 사실은, IMF위기이후 민주정부들의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기보다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즉 민주정부에 의한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가 완강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였다. <br /> <br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 가치, 제도, 실천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이익과 갈등의 광범한 표출을 허용하고 정당이나 운동 또는 이익집단들을 매개로 하면서, 갈등해결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체제이다. 일차적으로 민주주의는 시장경쟁과 그것이 창출하는 불평등화와 소외효과를 중화하고 보완하는 민중적 성격을 띠는 정치제도이자 체제이다.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왜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퇴행한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 하겠다(최장집, 2006; 144-145).<br /> <br />○ 민주정부의 변신(metamorphosis)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최장집, 2006; 145-147).<br />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집권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지 못했다.<br /> <br />②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로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행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대 헤게모니와 압력은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시민사회 내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집단인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이다. 불확실한 위임과 대표-책임간의 연계가 느슨한 구조를 갖는 데다 민주정부가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하고,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을 통하여 경제적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동안,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 민주정부의 집권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그들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세력과 좋은 관계 설정 또는 그 방향으로의 지지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 결과는 경제, 사회정책 영역의 보수화이다.<br /> <br />③ 헤게모니와의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키게 된다. 민주정부는 두 요소에 의해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자체가 결과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 소외, 사회해체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현재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 <u>아마도 노무현 정부만큼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정책적 실천에 있어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예는 찾기 힘들 것</u>이다.<br /> <br />○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시장지상주의, 이를 구성하는 시장자율성 또는 시장주권, 경쟁, 업적주의, 효율성의 가치가 사회 전체의 전일적 가치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시장지상주의의 가치가 이데올로기가 된 것의 효과(최장집, 2006: 147-149)<br /> <br />①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는, 가치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단일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이를 수행한 결과에 따라 서열화되기에 이르렀다. ... 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가 헤게모니가 되는 만큼 그 안에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을 갖는다. 그것은 국가-재벌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성격 자체를 변모시킨다. 즉 모델이 되는 재벌기업이 국가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행위의 범위를 정의해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시하며, 관료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모시키는 것이다.<br /> <br />② 시장과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사회에 대한 국가의 중심적 역할이 급격하게 약화됨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거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한국도 이제 기업사회적 면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민주화 이후 계속되어야 할 민주화는 민주정부의 선출을 중심으로 국가부문의 민주화가 선행하고, 다음에는 민주정부의 개혁적인 정책들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를 개혁하는 방법으로 민주적 가치와 규범, 규칙들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주화가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정지될 때, 국가의 약화에 힘입어 사회의 헤게모니 구조는 이전보다 더 완강한 보수적 질서로 재편되기 쉽다. <br /> <br />○ 핵심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여 노조가 얻을 것은 다만 부분적인 교환 이상일 수 없다. 노조는 참여하여 작은 것이라도 얻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급진적․파괴적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하에서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이미지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협상의제 자체를 보다 중요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최장집, 2006: 151). <br /> <br />○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의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하는가, 이를 위해 어떻게 사회부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가에 있다. 민주정부의 경험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까닭은 두 측면, 즉 ①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이념과 정책대안을 갖지 못했다는 점과, ②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세력화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증폭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최장집, 2006: 158).<br /> <br />○ PD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성장에 균형을 맞추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하고, 경쟁하는 사회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에 기초하면서, 그것은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전일적 가치와 힘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또한 시장-효율성-경쟁을 중심원리요 가치로 삼고, 인간노동의 가치가 발전의 한 수단, 성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공리주의적 원리에 대응하여, 공동체의 가치, 인간의 근원적 가치, 그리고 노동의 보편적 가치 등 독립적인 가치를 증진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을 맞추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br /> <br />그러나 공동체적 노동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세력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정책의 수준에서 그것은, 노동계층을 포함하는 민중들에게 보편적인 경제적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 그리고 상당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및 고용체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세력화의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그들의 운동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적 힘의 균형추 내지 중심세력 중의 하나로 역할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br />절차적 민주주의로부터 또는 그것을 기초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현재와 같은 선거경쟁과 대표의 체계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가? <u>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가 보다 확대되고, 이를 통해 민중적 힘의 투입이 정치과정 내로 넓게 수용되어야 할 것</u>이다. 그것은 <u>참여와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u>을 말한다. 참여는 투표를 통해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노동현장, 직업현장인 사회의 하위조직과 수준에서 성원들의 폭넓은 참여를 말한다. 그리고 운동은, 제도가 갖는 본래적 보수성, 즉 경직화와 일상화, 민중적 힘을 제약하는 경향성 때문에 민중적 힘이 정치과정으로 투입되는 중요한 채널이다(최장집, 2006: 159-160).<br /> <br /><strong>7장 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 하나의 시안</strong><br /> <br />○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고 과격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한미 FTA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은 한미 FTA 정책이 그만큼 복합적이고도 다층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결정된 이후에야 서둘러 이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함에 따라 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162). <br /> <br />○ 성장잠재력 저하, 국제경쟁력 약화, 고용증대에 대한 부정적 전망, 사회 양극화, 그 위에 중국의 추격위협이 가중시키는 미래에 대한 어두운 예상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근거로 동원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불러들이는’ 이 쉬운 방법을 모르고,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고 한국적 조건에 부합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괜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된다. <br /> <br />위와 같은 정부의 논리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뤄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인과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간 정책결정자들이 견지했던 신자유주의적 비전과 한미 FTA 추진이라는 처방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br /> <br />노무현 정부의 한미 DTA 정책은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그 동안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적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그간 추구했던 정책노선이 가져온 가장 분명한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 양극화이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수행이 가져온 실제의 기록일 텐데, 이에 기초해서 평가한다면 분명 그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한미 FTA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에 입각하여 운영해온 기존의 경제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성장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말하고, 한미 FTA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최장집, 2006; 164-166). <br /> <br />○ 성장중심론의 한계<br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면서 그 원인을 따지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주장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에 대한 일방적 과신에 치우쳐 있다. <br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구조에서 높은 기둥들은 다음 단계의 행진에서도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작은 기둥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 더 나쁜 경우는 행진(성장)이 계속되면서 맨 앞줄의 기둥(최고소득 집단)이 전봇대만큼 높아지고, 중간과 마지막에 선 기둥(소득수준이 낮은 집단)들의 높이가 비슷해지거나 더 작아지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성장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론이나 정책은, 행진 그 자체가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열에 참여해서 행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렌도르프가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이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성장에만 초점을 두는 논리는 너무 단순하고 일면적이라는 사실이다. 동반성장론은 성장을 강조하고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은 말하지만, 그 대열의 구성과 내용과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복지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이렇다 할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은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최장집, 2006: 167-168). <br /> <br />○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은 과거에 이루어진 선택이 그 이후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제약한다는 뜻이다. 경로의존성은 제도들에 얽혀있는 상호작용의 체계가 여러 행위자들의 관성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자 기성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이익이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변화를 어렵게 하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제조업 중심의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이제 금융, IT, 서비스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로 발전하자는 것은 한국 경제사에서 경로의존성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였다. 다른 경로의 선택의 공간이 존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74-175).<br /> <br />○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IMF 금융위기와 같은 엄청난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의 차이가 정당간 경쟁의 축을 만들기보다는, 거꾸로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적 차이가 더욱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경쟁하는 정당들은 정작 민중적 삶의 조건에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책 차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최장집, 2006: 179).<br /> <br />○ 지식정보산업, 금융 및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앞세운 성장제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 노동․고용․소득 상황의 악화를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 야당, 관료, 재계, 주류 언론, 지식인 전문가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엘리트 집단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어떤 대안적 이념이나 프로그램의 형성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강한 헤게모니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정부정책과 국가의 자원들이 집중될 때 사회적 시민권 내지 사회보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은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이는 대통령과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 추진을 천명했을 때, 한국의 여야 양대 정당 어디로부터도 이렇다 할 비판이나 대안이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br /> <br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삶의 피폐화나 불평등의 심화가 한국 사회에서는 정당간 경쟁을 분기시키는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정당들은 한결같이 경제성장을 강조한다. 대안을 말하고 이를 진지하게 실현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 대안을 지지할 수 있는 강한 정치적 세력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안이 강한 의지를 갖는 정당의 강령과 정책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강령과 정책을 갖는 정당이 선거경쟁에서 승리하여 그 정책 실현을 위임받거나, 아니면 정치적 다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표의 블록을 형성하여 그 크기만큼 정책내용으로 포함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br /> <br />강한 분배효과를 갖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책대안이 제기될 때 기존의 수혜집단들은 많든 적든 불이익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새로운 잠재적 수혜집단이 부각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책이슈가 선거경쟁의 핵심 의제로 제기될 때 갈등은 사회화되고 유권자 동원은 확대되면서 정당체제는 재편의 압력에 더 강하게 노출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80-181).<br /> <br />○ 교육-기술유형은 생산의 사회적 체제이론의 관점에서 말하는 제조업 생산체제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양자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제공해주는 연결고리는 ‘자산특수성’(asset specificity)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갖는 특정의 교육과 기술은 투자를 통해서 그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에게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특정 노동자들이 소지하는 특정의 기술은 ‘자산특수적 기술’이 된다. 이 개념에 바탕을 둔 산업조직의 거래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소지하는 기술 자산이 특수하면 할수록 그 자산의 소지자들은 한 경제조직 내에서 경제행위를 수행하는 데 더 큰 인센티브를 갖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복지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갖는 이론적 함의는 매우 크다. 이 관점에서 볼 경우, 노동자가 보다 특정한 기술을 소지하는 것과 이들이 취업해 있는 기업에 대한 헌신의 강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체제란 생산성을 초과해서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는 자산특수적 기술을 보호한다는 관념으로 이해되고, 그러할 때 그 혜택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몫으로도 돌아가게 된다. 국가가 사회보호를 통해 일정한 기술을 갖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면, 그것은 사적 생산의 단위인 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는 기술을 보호하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85-186). <br /> <br />○ 최장집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조업분야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산업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을 병행하면서 두 영역에서의 미시적 연계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짐으로써 세계화된 국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조율된 생산체제를 창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br /> <br />경제성장의 동력이 국내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그에 기반을 두는 ‘내발적’ 발전 전략, 즉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필요하다.<br /> <br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대표체제가 사회적 요구를 얼마나 폭넓게 대표하는가에 따라 여러 다른 유형의 기술-교육-생산-성장-복지-노사관계의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고, 정치적 리더십의 진취적 계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는다(최장집, 2006: 197). <br /> <br />○ 필립 슈미터는 로버트 달이 말하는 민주주의 조건 목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요소가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최장집, 2006: 198). <br /> <br /><strong>8장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관점에서</strong><br /> <br />○ 한반도 평화를 ‘통일’에서 찾는 이해방법과 ‘공존’에서 찾는 이해방법을 대비시키면서, 후자의 관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이유는, 통일이 안 돼서가 아니라 공존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통일이 당위적으로 강요될 때, 남북한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들이 과소평가되거나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거부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들이 통일 이후로 미뤄지거나, 모든 문제의 근원을 분단으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에 희생될 수 있다. 통일은 공존이라고 하는 평화의 조건이 갖춰진 이후 남북한 두 체제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고, 또 그럴 때만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최장집, 2006: 223). <br /> <br /><strong>9장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공존과 평화를 위한 의미지평<br /> <br />10장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관점에서</strong><br /> <br />○ 민주화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보는 이유는 민주화의 동력들이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일차적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이 민주화를 이끌어 냈으며,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 참여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향후에도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민중적 참여의 폭이 확대됨과 아울러 그 역할이 커지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최장집, 2006: 261-262).<br /> <br />○ 절차적 정당성을 갖지 못했던 박정희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하여 산업화라는 실질적 변화를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보전하고자 했다는 능동적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br />그러나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말 그대로 권위주의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를 의미한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고속성장을 목표로 국가-재벌기업의 연합을 통해 중심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들의 참여를 정치와 생산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권위주의는 고도성장을 추동하고, 고도성장의 성과는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구조를 통하여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은 병행되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산업화의 구조적 결함은 무엇보다도 그 발전체제가 민주적 요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산체제란 국가가 앞장서 자본을 증대시키고, 노동을 억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로부터의 소외는 발전의 성과를 분배하는 과정에서의 소외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최장집, 2006: 263). <br /> <br />○ 기본적으로 민주화란, 구체제가 구축한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 내에 다시 위치시키고 정렬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제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양자 간의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에 의해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집약되었다(최장집, 2006: 267).<br /> <br />○ 민주화이후의 정당체제가 구체제 하에서 발전한 정당체제를 얼마나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격을 형성하고, 발전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 결정적 변수라 하겠다. 구체제의 정당체제는, 매우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 내에서 제도화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구체제의 지배적 이념이요 가치라 할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중심 내용으로 했으며 또한 그 틀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제약하는 조건이었다. 그 부수적 결과의 하나는 지역감정의 동원과 지역기반에 의존하는 지역주의 정당체제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정당체제는 운동의 중심세력이 참여함으로써 그것이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며, 운동이 제기한 두 중심의제를 정당 간 경쟁구조 내로 포섭하지도 못했다(최장집, 2006: 268-269).<br /> <br />○ 한국의 민주화가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은, NLPD의 이념에서 혁명적 급진성을 제거하고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이념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이후의 조건에서는 현실의 핵심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될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그 이념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정당체제 내로 들어오고, 그럼으로써 구체제하에서의 정당체제가 재편성되고, 그 정당이 선거경쟁을 통해 다수당이 되고 정부가 되어 그 개혁프로그램들을 실행하는 경로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0-271).<br /> <br />○ 민주정부들이 민중문제와 관련된 정책영역, 즉 경제정책과 노동/사회정책에 있어서 대안을 갖지 못할 때 나타난 결과는 매우 퇴행적이었다. 한편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대안형성의 틀과 방향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세력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의 결과는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 즉, 구체제 하에서 완결된 권위주의산업화 발전모델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결합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된 것이다. <br /> <br />헤게모니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고 효과를 미치는 영역은, 바로 보통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이 핵심이 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 및 사회-노동정책이라고 하겠다. 민주화이후 민주정부들이 발전시켰던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경제영역이나 사회의 구조와 계층화에 있어서나 미시적 삶의 영역에 있어서나 여러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br /> <br />사회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공적 집합적 결정능력과 수행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정치의 구조도 취약해졌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이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없는 민주주의’, ‘민중 배제적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그 정의에 있어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이익, 요구, 열정을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실현하는, 보통사람들 스스로의 통치체제이다. 즉 민주정치는 공공선을 결정하고 창출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수의 힘이 지배적인 결정원리인 민주주의 하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의지와 권력이 권위주의와 같은 다른 엘리트중심 체제와 비교하여 더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가장 큰 역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리더십이 IMF금융위기 이후, 구체제의 성장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구체제의 성장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이고 무매개적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272-273).<br /> <br />○ 한국현대사가 냉전반공주의 이념과 분단국가의 발전→권위주의적 산업화와 고도성장→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사회는 몇 개의 대기업집단, 몇 개의 대학, 이들 대학 출신의 엘리트, 몇 개의 언론사, 몇 개의 강력한 이익집단들과 그들 간의 상호 연계망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 사회가 동심원적 구조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그리하여 모든 사회적 힘이 중심의 정점으로 초집중화하면서 특권 계층 간의 폐쇄적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br /> <br />반면 서민대중의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고 대변함에 있어 별다른 진전을 얻지 못하고,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스스로를 대표하는 자율적 권력의 중심으로 성장하지 못한 힘없는 익명의 다중으로 떨어졌으며, 이데올로기와 대중조작에 의한 동원의 대상으로 자주 전락하곤 했다. 경제적 생산체제에서만이 양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요 영역에 있어서도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즉 정치적·사회경제적 동원능력이 잘 발달된 강력한 대규모 조직과 그 주변에서 기능하는 엘리트집단을 한편으로 하고, 힘없고 조직·대표되지 못한 다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것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br /> <br />강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력, 창조적 사고, 그리고 대안이념들의 발전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다원적 발전이 억압된다. 결과는 냉전반공주의나 발전주의와 같은 일괴암적 유일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모델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노동없는 민주주의 또한 대표적인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유일가치와 몽매주의를 만연하게 한다. 민주화 이후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수준에서의 민주화가 경제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넘쳐흐르는 효과를 제어하고자 했던 거대 조직과 기득이익들의 보수적 대응에 기인하는 바 크다(최장집, 2006: 273-275).<br /> <br />○ 최대강령적 혁명은 민주주의의 작동과 병립하기 어렵다. 혁명적 사태를 동반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수는 있으나, 민주주의는 항시적인 민중동원과 운동을 통해 작동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정치적 참여와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가지며, 공공선을 창출하는 집합적 결정과정에 개인이 개별적인 단위로서, 또는 유사한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는 방법을 통하여 참여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그것은 경쟁하는 이익의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 제도의 틀 안에서, 갈등하는 이익들 간의 경쟁을 허용하고 타협하도록 이끄는 체제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운동이 중심이 되는 비상한 시기의 체제가 아니라 일상성 속에서, 즉 보통사람들의 삶의 세계에서 제기되는 일상적 관심사와 더불어 작동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이 체제에서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포괄하는 최소강령적(minimalist) 이념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76).<br /> <br />○ 오늘날 민주적 제도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어떤 최적의 배합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그 중심 내용으로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민중주의는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통한 개혁의 프로그램들, 즉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정당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생산체제의 각 수준에서 조직노동의 참여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며, 분배구조의 개선과 사회복지권의 확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와 공공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실현되었다. <br /> <br />신자유주의적 독트린과 그에 입각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여기에 노동참여, 사회복지 및 사회통합을 가치로 하는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 모델의 내용이 가미될 수는 있어야 한다(최장집, 2006: 277-278). <br /> <br />○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이후 초기 건국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양극화로 인한 내전적 상황과 6.25전쟁으로 나타난 실제의 전쟁을 통하여, 그리고 남북한 분단과 항구적 대결구조를 통해 어느 나라보다도 큰 폭력과 보통사람들의 많은 희생, 사회적·이데올로기적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다. 이 갈등과 균열 위에서 군부엘리트 지배와 권위주의 산업화는, 경제발전이라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엘리트지배의 공고화와 노동배제/소외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음으로써, 또 하나의 거대 균열과 갈등구조를 창출했다. <br />민주화는 중첩적 갈등으로부터 배태되고 분출되었지만, 동시에 이 거대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을 통해 완화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는다(최장집, 2006: 278-279).<br /> <br />○ 갈등과 균열의 표출과 정치적 대표를 부정시하는 한 통합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은 대안의 봉쇄, 곧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를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사회의 중심적 갈등과 균열을 대표해야 하며, 기존의 지배적 이념이 아닌 대안적 이념을 통해 이를 조직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br />랄프 다렌도르프에 따르면, 현대의 대규모 사회에서 갈등은, 그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억압될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는 사회가 강해지고 통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억압하거나 마구 뒤섞거나 치환되지 않게 해야 하며 그 자체가 표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br /> <br />정당과 정당간의 차이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대변하고 이를 현대적 언어와 이념과 이론으로 정의하고, 그리고 이들 차이들이 정당과 정당간의 경쟁을 제도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접근되고 해결될 때 비로소 한국사회의 해체적 경향은 서서히 제어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9-280).<br /></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419,'/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419+%22%EC%B5%9C%EC%9E%A5%EC%A7%91%282006%29.%20%E3%80%8E%EB%AF%BC%EC%A3%BC%EC%A3%BC%EC%9D%98%EC%9D%98%20%EB%AF%BC%EC%A3%BC%ED%99%94%3A%20%ED%95%9C%EA%B5%AD%20%EB%AF%BC%EC%A3%BC%EC%A3%BC%EC%9D%98%EC%9D%98%20%EB%B3%80%ED%98%95%EA%B3%BC%20%ED%97%A4%EA%B2%8C%EB%AA%A8%EB%8B%88%E3%80%8F%22" target="_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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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 구태의연한 대목이 많이 눈에 띈다.<br />제목은 그대로 하더라도 그에 딸린 내용은 왼쪽의 눈으로 좀더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br />아무튼 여기에서 제시되는 주제들에 대해 나름의 입장 정리만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지니게 될 듯하다.</font><br /> <br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계속 보기...</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1부 인간의 정치, 삶의 정치<br /> <br />1. 정치, 그 불가피성과 매력<br /> <br />버나드 크릭(Bernard Crick)에 의하면, 정치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위대한 가치가 있다. 정치는 모든 사회 집단들의 자유와 능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김비환, 2000: 18). <br /> <br /><font color="#008000">→ 통치형태의 분류에서 다수지배자의 순수형인 Polity를 법치적 민주제로, 타락형을 폭민제로 번역하고 있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font><br /> <br />2. 정치는 참다운 인간됨의 조건<br />3. 국민을 위한 국가, 국가를 위하는 국민<br />4. 국가의 발생과 존재근거<br />5. 권력, 두 얼굴의 야누스 <br />6. 민주주의 없이 정치권력 없다?!<br />7. ‘표현의 자유’ 대 국가: 영화 ‘거짓말’의 경우<br />8. ‘포스트모던’한 정치의 모습은?<br />9. 권위와 권위주의 사이<br /> <br />민주주의는 권위가 부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단지 권위가 창출되고 유지되며 행사되는 방식이 전통적인 권위주의 사회와는 크게 다를 뿐이다(김비환, 2000: 62).<br /> <br />10. 질서와 삶의 비전, 이데올로기<br />11. 새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난다<br /> <br />보수와 진보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동에 관한 태도 및 견해를 의미한다(김비환, 2000: 69).<br /> <br />12. 지역주의, 공멸에 이르는 병<br /> <br />2부 민주주의, 그 장구한 역사의 드라마<br /> <br />13. 민주주의를 아십니까?<br /> <br />민주주의는 어원상 인민 - 원래는 가난한 다수의 사람 - 을 의미하는 demos와 권력 혹은 지배를 의미하는 kratos의 합성어로서 어원적으로는 ‘가난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전 시대의 민주주의는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수적인 우세에 입각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플라톤 등은 민주주의를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 평가했다.<br />그러나 사회가 진화하면서 대다수 인민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고 물질적인 여유도 확보해감으로써 민주주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김비환, 2004: 81).<br /><font color="#008000">→ 이게 타당한 설명인지 모르겠다. <br /></font> <br />민주주의를 인민의 자치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결과를 떠나서 민주주의는 인민 다수의 합의를 통해 정치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정치원리이기 때문이다. <br />하지만 민주주의를 어떤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정한 절차 혹은 수단이라고만 이해한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제시될 경우에 민주주의가 불필요하게 될 수 있다. <br /> <br />민주주의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들의 도덕적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br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인격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므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잠시라도 유보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김비환, 2004: 82-83).<br /> <br />던(J. Dunn)은 민주주의를 ‘결코 완성할 수 없지만, 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으로 표현했다.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정치원리 중에서 가장 결함이 적을 뿐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그나마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생활의 원리이다. 민주주의는 오직 민중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만 숨쉬며 생존해갈 수 있다(김비환, 2004: 84).<br /> <br />14. 민주주의, 그 이상과 현실의 조우<br /> <br />슘페터(J. Schumpeter)의 경험주의적인 엘리트주의 민주주의론과 그 비판(김비환, 2004: 88)<br />민주주의는 정책결정과정에 민중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정치형태가 아니라 민중이 자신들을 통치할 대표자들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적 장치에 불과하다.<br />지나친 경험주의적 편향성<br />민주주의에 담겨있는 본래의 규범적 의미를 제거하여 있는 그대로의 민주정치 현실을 정당화시켜 버리는 보수주의적 편향성<br /> <br />15. 민주주의, 평등한 시민권을 향한 대장정<br /> <br />미국에서는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되었고,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야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호주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흑인들에게도 투표의 권리가 부여되었다(김비환, 2004: 92).<br /> <br />16.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파트너<br />17. 민주주의와 그 적들: 독재와 전체주의<br /> <br />독재와 전체주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독재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부각시켜주는 것은 삶의 두 영역-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다. 정치권력이 삶의 공적인 영역만 통제하느냐, 아니면 사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한 모든 삶을 통제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구분 기준이다. <br /> <br />전체주의는 권력이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통제함으로써 전체 사회를 일정한 방향으로 동원․유도해 나가는 정치형태이다(김비환, 2000: 101-102). <br /> <br />18. 아테네, 민주주의의 영원한 고향<br /> <br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과 목표는 페리클레스의 ‘장송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에 나타난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과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아테네의 민주정치에서는 권력이 소수의 수중이 아닌 전체 민중의 손에 있다. 둘째, 공적인 지위의 등용에 있어서는 계급보다는 실천 능력이 고려된다. 셋째, 사생활에서는 자유롭고 관용을 베풀지만 공공업무에서는 법률을 준수한다. 넷째, 아테네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무에도 관심을 갖는다. <br /> <br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덕스러운 시민이 주체가 된 정치라는 점이다. 덕스러운 시민은 도시국가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려는 각오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협소한 사생활의 공간을 벗어나서 도시국가의 공공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려고 한다. 그들은 사생활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전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김비환, 2000: 110).<br /> <br />19. 영국혁명: 국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br /> <br />20. 프랑스 혁명: 정의와 평등을 향한 불멸의 이정표<br /> <br />1789년 직접민주주의의 이념은 분명히 존재했었고, 이 이념은 혁명과정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19,20세기의 혁명운동들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주정부에 보다 확실한 모델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로마 공화국으로부터 모델을 끌어왔다. 이 모델은 정치적 결정과정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이고도 계속적인 참여와 공화국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정신이 중심이 된 것이다. <br /> <br />프랑스 혁명은 직접민주주의 이념을 부활시켜 실천하고자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역설적으로 새로운 대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대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김비환, 2000: 119-120).<br /> <br />21. 미국의 독립선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br /> <br />혁명기 미국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에서 투표권의 확대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평범한 민중들이 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지 투표만 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통치자로서 활동했다. <br /> <br />1776년 대부분의 미국혁명주의자들은 군주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했지만 혼합정 이론을 배격할 의도는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공화국은 군주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의 장점을 결합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형식상으로는 혼합원리를 바탕으로 한 공화제적인 정부형태가 탄생하게 되었다. 단일한 제도 내에서 위약한 통치자인 상원은 소수의 대표자들로, 그리고 강력하고 광범위한 힘을 가진 하원은 다수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 <br /> <br />그러나 펜실바니아의 일부 혁명주의자들은 혼합정 이론을 거부했다. 그들은 미국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하며, 정부는 단지 그들의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상원을 인정하면 귀족제도가 부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펜실바니아의 제헌의원들은 총독과 상원이 없는 단일한 입법체로 구성된 단순한 정부형태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거대한 공동체에서 실천 가능한 18세기형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단일한 행정수반과 상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혼합정을 옹호했다. 그런 상황에서 펜실바니아 헌법의 반대자들 중 일부는 상원의 존재는 귀족이나 상층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이중으로 대변하는 것이라며 상원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원제도를 다른 사회계급의 입장을 대표하는 제도가 아니라 온전한 신뢰를 보낼 수 없는 입법부의 두 부분으로 이해한 것이다. <br /> <br />이와 같이 상원이 민중을 대표하는 또 다른 제도라고 한다면 정부의 다른 부분들인 총독이나 재판관들도 민중을 대표하는 제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권위는 민중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국의 원리와 민중이 직접 통치한다는 민주정의 원리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어지고 만다. 1776년 헌법을 제정할 때 미국인들은 총독과 상원들이 비록 민중에 의해 선출되지만 민중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선거를 대표성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u><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대의원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민중 사이의 이해관계의 상호성이 대표성의 적합한 기준</font></u>이었다. 비록 선출된 지사들이나 상원들의 권위가 민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해도, 그들은 민중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민중을 대표하지 않았던 것이다. <br /> <br />1780년대에 이르면 미국인들은 오직 해당 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투표만이 대표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점차 선출된 모든 정부인사들을 민중의 대표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의회의 하원은 보다 더 직접적인 민중의 대변자로 인식되긴 했지만, 더 이상 유일하고 완전한 민중의 대변자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민중은 모든 곳에서 대표되었고, 모든 정부의 인사들에 의해 대표되기에 이르렀다.<br /> <br />정부의 모든 부분들에까지 대표관념을 확장시킴으로써 미국인들은 주에서 연방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관리들로 구성된 새로운 연방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이제 민중은 모든 곳에서 지배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어떤 곳에서도 지배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중은 이제 과거에 하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미국 정부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민중을 정부 바깥에 있는 사회계급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계속되어온 사회와 국가 사이의 동일성도 파괴되었다. 메디슨(J. Madison)에 의하면, 미국 정부의 진정한 독특성은 통치과정으로부터 민중을 전적으로 배제시킨 것이었으며, 따라서 미국은 언제나 공화국(대표체제)으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체제를 해밀턴(A. Hamilton)은 민주공화정, 즉 대의민주주의라고 불렀다. <br /> <br />1776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고전적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이었던 덕스러운 지도자의 상은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빈번한 선거운동과 경쟁정치, 법률 제정시 사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위기의 고조, 정당의 합법화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변해갔다. 장사를 하는 것이나 정치에 종사하는 것이나 모두 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공공 서비스와 봉급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일 자체를 명예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를 가장 독특하게 만들었던 것은 일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등주의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br /> <br />노동에 대한 태도와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고만큼 미국인들과 미국민주주의를 유럽과 확실하게 구분한 것은 없다. 누구나 일하려고 하고 따라서 노동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특정집단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발전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모두가 노동자였고 공직마저도 생계를 위한 일로 인식되었다(김비환, 2000: 124-130).<br /> <br /><font color="#008000">→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이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font><br /> <br />22. 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운영<br /> <br />1917년 2월, 러시아 소비에트는 1871년 프랑스에서 출현했던 자치공동체인 파리코뮌의 근대적 형태로서 등장했다. 파리코뮌(Commune de Paris)은 자체적인 입법, 사법, 행정 및 방위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원리는 통치과정 전체를 통해 모든 민중을 참여시킨다는 것이었다. 볼셰비키(Bolshevik)의 애초의 역할은 민중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 소비에트에서의 민주주의는 직접적이고 참여적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이론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민중의 힘을 이용하려는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산업생산의 붕괴, 연료와 식량의 부족, 기근, 질병 등 전쟁의 재앙들은 소규모의 인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자신감과 열정이 있는 다수 민중의 힘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실제적으로 실현될 필요가 있었으며,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한계를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br /> <br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실제적 필요성과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는 고도로 집중화된 독재체제를 발전시켰다. 인민위원회에 집중된 권력은 혁명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서 정당화되었다. 볼세비키 정권이 코뮌식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한 약속은 실제로 포기되고 이상과 실제의 간격은 커져갔다. 소련공산당은 원래의 이상을 상황논리로 덮어버리고, 공산당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말았다(김비환, 2000: 134-135).<br /> <br />23. 대의민주주의, 그 등장의 불가피성<br /> <br />서구에서 18세기 중엽부터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결과 경제생활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편성되기 시작했고, 도시가 거대한 규모로 팽창됨으로써 도시의 인간관계는 원자화되었고, 익명성이 두드러졌으며, 상업적인 계약관계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모든 시민들이 한 곳에 모여 직접 사회의 문제를 논하고 결정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불가능해졌다. <br /> <br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은 단순히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적․시간적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산업사회는 그 규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구조의 복잡성에 있어서도 이전의 농경사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사회의 경제체제와 다양한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으면 관리하기 힘들게 되었다. 사회의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서라도 국민들을 대표할 엘리트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br /> <br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대의민주주의가 출현함으로써 국민들은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정기적인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직접 모여서 국사를 논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국민들은 소수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국사를 담당하게 하고 자신들은 노동을 하고 돈을 벌며 여가를 즐기는데 시간을 쓰게 된 것이다.</font> 물론 국민들은 자신의 수입 중에서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여 전문가들이 국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렇게 볼 때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대의제 민주주의는 전문가와 국민들 사이의 일종의 기능분화의 결과</font>라고 할 수 있다. <br /> <br />이론적으로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전문주의의 불가피한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인들의 자유와 합리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이 필요했기에 민주주의가 근대인의 도덕적 특성 - 자율성 - 을 실현할 수 있는 절차로서 요구되었다. 그러나 근대의 산업사회는 시민들의 도덕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그 규모가 크고 복잡해져 버렸기 때문에 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은 정치참여를 통해 자율성을 실현하고픈 시민들의 욕구와는 양립하기가 어려웠다(이와 같은 근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난점은 자유주의 사회의 시민들을 점차 탈정치화시켰고, 프라이버시를 더욱 신성시하도록 이끌어갔다). 그러므로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u>시민들의 자율성을 최소한이나마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최소한의 정치참여 욕구 실현), 복잡한 산업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엘리트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허용할 수 있는 정치원리가 절실히 요청되었고, 이에 부합한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u></font>였다. 대의민주주의는 자율성의 이상과 사회관리의 효율성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민주주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김비환, 2000: 136-139).<br /> <br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br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지나치게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몇 년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 고작이고, 그 후보자들도 자신들이 직접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미 정해진 후보자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br /> <br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1942)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만 민중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승인하거나 또는 부인할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따름”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 엘리트의 지배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보수적이며, 시민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대의원들이 지적․도덕적으로 일반 시민보다도 월등히 우월하며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의민주주의는 대의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권력을 쥐어주고, 국민에게는 너무나 적은 권력만을 남겨준다. <br /> <br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의원들의 부패와 무능력에 실망한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김비환, 2000: 139-141). <br /> <br /><font color="#008000">→ 사회구조의 복잡성, 전문적인 관리의 필요성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관료제의 극복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공허할 수밖에 없다. </font><br /> <br />24. 대의민주주의의 ‘대표’: 누가, 누구를, 어떻게<br /> <br />대표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주로 두 가지 의미, ‘신탁’(trust)의 의미와 ‘대리’(delegat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탁으로서의 대표개념은 일반 시민들이 그 대표자에게 정치적 문제에 관한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해 달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일반 시민과 대표자들 간에 능력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대리모델에서 대리인(delegate)은 대리를 부탁한 사람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서 행동하는데, 18세기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대리인이 선거구민들의 의사와 이익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선호에 의지한다면, 결국 대리인 자신의 이익과 선호를 표현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이 대리모델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대리로서의 대표개념을 사용했던 이들은 특히 대의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이익이나 견해의 차이가 최소화되는 제도적 장치를 선호했다. 대표자의 임기를 아주 짧게 정한다든지, 국민소환(recall)이나 국민발의(initiatives), 국민투표(referendum)와 같은 직접민주정치의 제도들을 도입함으로써 대표자들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예이다. <br /> <br />오늘날의 지배적인 대표개념은 근대 정당제도가 발전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 전후기에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대표자들은 개인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특정한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충실한 ‘정당인’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선거기간을 통해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그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권위를 위임한다. 그러므로 대표개념은 이제 개별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관계로부터 일반 시민들과 정당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 따르면, 대표자는 선거구에서 선출되지만 전체 국민의 위임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정당의 일원으로서, 특정 선거구민의 뜻과 이익이 아닌 전체 국민의 뜻과 이익을 대표하는 신탁자로서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위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br /> <br />또 하나의 근대적인 대표개념으로 ‘유사’(resemblance)가 표현하는 것이 있다. 유사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대표개념은 의회와 정부의 대표는 계급, 종교, 성, 인종 등 다양한 집단들로 균열된 사회구조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란 사회의 균열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맑스주의 시각에 기초한 대표개념이다. <br />유사 용어를 사용하여 대표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의회와 같은 대표제도는 계급, 성, 인종 등과 같은 사회집단별로 할당되어야 하고, 따라서 투표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내보낸 후보자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br /> <br />사회와 정치제도의 변화에 따라 신탁, 대리, 위임, 유사의 네 가지 대표 개념들은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기도 하면서 변화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신탁이나 대리로서의 대표개념이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김비환, 2000: 143-146). <br /> <br />25. 민주주의는 정당정치?<br /> <br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고,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행동함으로써 주로 선거를 통해 정부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시민들의 조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정당은 국가의 공식적인 제도이고 정치적 이익과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공직을 위해 경쟁하고 정권의 획득을 목표로 노력한다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정당의 현대적 기능은 ① 이익의 대표, ② 정치 엘리트의 육성과 충원, ③ 목표의 설정, ④ 이익의 결집, ⑤ 정치적 사회화와 동원, ⑥ 정부의 조직 등이다(김비환, 2004: 147-149). <br /> <br />26. 지방정치, 민주주의의 실험장<br /> <br /><strong>27. 참여민주주의, 공동선 발견과 배움의 장<br /></strong> <br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가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의회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대표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br /> <br />이에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자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대의민주주의의 성격 자체에서 찾는다. <br /> <br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적 형태이다. 자유주의 시대의 국민들은 점점 더 사적인 생활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치참여는 정기 선거와 같은 일회성의 행사에만 국한되고 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장려하기보다는 사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자들은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무능하게 평가하는 한편, 은근히 국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제한하고자 하는 논리를 제공해왔던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정치참여가 특권이 아닌 부담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고상한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br /> <br />하지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오늘날의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가 참여의 결핍에서 온다</font>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풍요로웠던 시민생활의 이상을 오늘날의 상황 속에 다시 복구하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인류가 잃어버렸던 공공생활의 풍요로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만나서 토론하는 가운데 삶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br />따라서 오늘날의 참여민주주의자들이 대의민주주의가 단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대표하지 못하고 행정부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이유만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공적 생활에의 참여가 인간의 삶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는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며, 공적 생활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비참여적인 삶이 줄 수 없는 공적인 자유와 행복을 체험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font>이다. <br /> <br />참여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와 결부되어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자유민주주의는 사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정치적인 관심도 높지 않고 정치에 관한 지식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을 경우 권력이 비교적 쉽게 남용될 수 있다. 권력기관들 사이에 권력을 분할함으로써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만, 이런 제도들은 그 자체로서 권력의 남용을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한다</font>. 만일 권력간의 타협과 담합이 이루어지거나 한 권력기관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행정부의 독재로 전락하든지 의회의 독선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br />참여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이런 결함을 보완해주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권력의 남용과 공무원의 부패를 막아줌으로써 공화국을 민주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음은 물론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행정관행을 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font>. <br /> <br />또한 참여민주주의자들은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정치에 관한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는 배움의 방법으로 참여를 이해한다.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수록 사람들은 공적인 문제에 대해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올바르거나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font>. <br />또한 참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공적인 공간에서 서로 만나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싹트게 되는 것</font>이다. 처음에는 적대감이나 이기심을 가지고 공적인 모임에 참여하게 되지만, 대화와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협소한 이기심을 털어버리고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과 행복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br /> <br />참여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매너를 세련되게 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반복된 참여를 통해 익숙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접하면서 세련된 행동과 에티켓을 배우는 것이다. 참여는 사람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면적인 태도와 행동도 변화시키는 전인적인 학습의 장인 것이다.<br /> <br />오늘날과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모든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참여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는 성취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인생관과 행복관을 바꾸도록 해줌으로써 보다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김비환, 2000: 158-162).<br /> <br /><font color="#008000">→ 김비환은 참여민주주의를 토의민주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파악하는 듯하다.</font><br /> <br /><strong>28. 일터민주주의를 생각한다<br /></strong> <br />우리는 중대한 국가의 일을 논의하고 결정할 때나 동료들 사이에서 공동의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곤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이나 의결방식은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는 일터에서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br />그러나 일터에서의 민주주의는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며, 따라서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br /> <br />만일 민주주의가 그렇게 좋은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이라면 왜 직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을까. 물론 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일터도 있지만, 흔하지 않으며, 설령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도입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은 그리 철저하게 관철되지 않는다. 국가도 하나의 결사이고, 직장도 하나의 결사이며, 민주주의가 좋은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이라면, 왜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는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일터에서는 강제하지 않을까.<br /> <br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과 직장의 노동자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다르다. 보통의 경우 우리의 선택에 의해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출생에 의해 정해진다. 하지만 특정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직종 중에서 특정 직종을 선택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지 다른 직종으로 바꿀 수 있다. 즉 한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은 비자발적인데 반해, 직장을 선택하고 바꾸는 것은 자유롭고도 자발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br /> <br />그런데 직장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일터에서도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을 크게 약화시킨다. 국가의 정치적 결정은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는 과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와 반대로, 직장 생활과 관련하여 개인이 자유를 누리는 정도는 훨씬 크고 - 직장에서의 의사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경영자의 관리방식이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개인은 언제든지 그 직장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 직장에서의 의사결정은 선택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 <br /> <br />국가의 공적인 문제는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처리되어야 국민들이 그 정책의 결과를 용인하고 감내할 수 있으나, 국민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정책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경우 이는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럽게 된다. 따라서 국가 정치에 있어 민주주의는 어떤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실현시켜야 할 절박한 과제이지만, 일터의 경우 그와 같은 절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br /> <br />물론 유럽국가들처럼 서로 문화가 비슷하고 인접해 있는 지역에서는 국가의 선택도 비교적 용이하므로 직장을 선택하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특수한 지역에서는 직장이 거의 없어서 국가를 선택하는 것보다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탄광촌과 같이 다른 직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광부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그 예이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다면 일터에서도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는 강제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집행은 민주주의 국가가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일반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br /> <br />대체로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다양한 직종과 직장을 어느 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정책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직장을 선호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정책이 다소 권위적으로 결정되더라도 임금수준이 높은 직장을 선호할 수 있다. 만일 국가가 국가 차원의 정치에서처럼 일터에서도 민주주의를 강제한다면 그것은 기업가들과 근로자들의 선택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가가 모든 정책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고 동등한 자격으로 정책결정을 하도록 강제한다면 적지 않은 기업가들이 기업을 세우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br /> <br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모든 곳에 적용되지 않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기업가들이 개인들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존중하여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이것은 그 기업의 자유재량에 맡기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일터에서는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의 위험이 없는 한 어느 정도의 비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절차도 용인될 수 있다(김비환, 2000: 163-168). <br /> <br /><font color="#008000">→ 일터민주주의를 기업의 선택에 맡긴다면 공공부문에서는 어떠해야 할까. 국가의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할 텐데.<br />결국 선택의 자유가 중요한 요소인 것인가. 탄광촌의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일까.<br />일터에서는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font><br /> <br />29. 전자민주주의, 낙관만 할 수 있을까?<br /> <br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일방적으로 민주주의 혹은 전체주의를 결정지을 수 없고, 현재의 정치형태(또는 과정)가 정보통신기술의 사용을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문제는 정보통신기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어떤 정치형태를 발전시키는 데 보다 유리한지 아니면 불리한지를 철저히 검토해서, 그 잠재력을 가능한 한 민주주의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 분배, 활용,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당연히 한 사회의 문화적 특수성, 정치발전 수준, 경제구조 및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정도에 관한 논의를 포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또는 변수)들이 정보통신기술의 사회․정치적 활용의 방향과 목적을 상당부분 조건짓기 때문이다. <br /> <br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이해할 경우, 즉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아터튼(C. Arterton)의 연구결과와 같은 경험적인 연구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참여지향적인 민주정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정치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제조건들과 매개변수들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양과 질, 정치 행위자들의 의식과 태도, 비용과 노력의 문제 등 다른 조건들이나 매개변수들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정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좌우된다. 유석진 교수는 『정보화와 민주주의』(1997)에서 아터튼의 경험적인 연구를 요약한 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하였다.<br /> <br />첫째, 정보화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이론적 경험적 차원에서 확립된 결정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할 수 없으며, 앞으로 많은 학술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br />둘째, 정보화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질적인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는 환경변수로서의 역할 정도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br />셋째, 한 걸음 더 나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가정하여도 정보화는 민주주의의 질적 고양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다시 ‘정치적’인 매개변수의 작동을 통해 만족될 것이다.<br /> <br />이 명제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자체가 곧 적극적으로 이해된 민주정치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기술결정론적 명제의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다(김비환, 2000: 171-173). <br /> <br />30. 초국가체제에서 민주주의는 생존할 수 있는가?: 세계화의 문제<br /> <br />31. 유교와 민주주의가 만났을 때<br /> <br />유교민주주의는 유교로부터 자유주의, 다원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하고 자유주의의 한계와 결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접합시킨 형태이다. 그것은 유교로부터 그 형이상학적․우주론적 내용을 제거하는 한편 -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의 다원주의와 자유․권리 의식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공동선을 고려하여 자유와 권리의 일방적인 행사를 절제할 수 있는 시민의 덕성 함양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굴하여 자유민주주의에 접합시킨 형태인 것이다(김비환, 2000: 186). <br /> <br />3부. 민주주의, 그 끊임없는 인간의 열망<br /> <br />32. 높낮이 없는 민주적 유대를 위해: 평등의 문제<br /> <br />33. 너와 나의 차이, 공존할 수 있다: 관용의 원리<br /> <br />관용은 관용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신념과 행위 또는 관행을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br />구성요소: 1) 관용하는 자가 못마땅해 하는 어떤 행위나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2) 관용하는 자는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 행위나 신념을 방해해선 안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관용의 태도는 단순한 묵인이나 체념보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br /> <br />관용은 그릇된 것이라고 믿어지는 신념이나 행위와 관련될 때 더 중시되는 동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관용이 잘못된 신념이나 행위까지도 존재하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을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포하게 되기 때문이다. - 관용의 역설<br /> <br />관용은 반드시 관용되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나 느낌을 포함한다.<br />그리고 관용은 못마땅한 신념이나 태도에 대해 강제적으로든 아니면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개입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 실천된다. <br /> <br />로크는 『관용에 관한 서한』에서 관용에 대해 옹호하였다. <br />볼테르(Voltaire):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죽을 때까지 변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br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자유론』: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는 일환으로 관용을 강조하였다. 관용은 사회의 개선과 지적인 진보, 그리고 지식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며, 개인의 도덕적․정신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김비환, 2000: 196-199). <br /> <br />34. 정의로운 사회의 윤곽<br /> <br />35. 법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법의 지배<br /> <br />36. 신뢰와 불신, 민주주의의 두 척후병<br /> <br />37. 민주적 절차의 조건들<br /> <br />민주적 절차의 포괄적인 특징<br />1) 정치적 평등의 기준. 공도엧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복종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권위적인 결정은 정치적인 평등의 기준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평등은 결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절차가 정치적 평등의 기준에 잘 부합한다는 것은 결정과정에 참여자들의 선호가 잘 표현되고 동등하게 반영된다는 뜻이다.<br /> <br />2) 효율적 참여의 기준. 시민들은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단계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시민들의 선호와 의지가 정확히 반영되지도 않고 고려되지도 않을 것이다. <br /> <br />다알(R. Dahl)은 어떤 결정절차가 이러한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면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다 완전한 민주적 절차는 이외에 ① 참여자들의 ‘계몽된 지성’이 필요하고, ② 의제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완전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만 적용되면 안되고 중요한 문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br /> <br />하지만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용의 기준’(criterion of inclusiveness)도 요구된다. 누가 시민에 포함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역적, 역사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br /> <br />그러나 이상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절차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김비환, 2000: 220-223).<br /> <br />38. 여론정치로서의 민주주의, 과연 신뢰할 만한가?<br /> <br />39.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선거, 그 빛과 그림자<br /> <br />40. 정치적 무관심의 부메랑: 프라이버시가 위협받고 있다!<br /> <br />4부 행복한 민주시민, 정의로운 민주공동체<br /> <br />41. 시민사회, 밀레니엄 민주주의의 토양<br /> <br />킨(J. Keane)은 시민사회를 ‘법적으로 보호되는 비정부 제도들의 복잡하고도 역동적인 결합체’로 정의한다. 이에 따를 경우, 시민사회를 이루는 “비정부제도들은 비폭력적이며 스스로를 체계화하고 반성하며, 그들의 활동에 ‘테두리를 정하고’ 억누르며 또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와 영구적으로 상호긴장관계에 있는 경향”을 보인다. <br />시민사회적 시작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단지 정기적인 선거나 경쟁적 정당체제, 다수지배와 같은 협소한 제도적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국가제도들과 분리된 사회생활의 영역에서도 실질적인 민주적 원리들이 관철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권력분점의 논리가 국가제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제도 내에서도 관철됨으로써, 권력이 남용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심들이 공개적인 논의와 타협 및 합의에 따라 처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긴장관계에 있는 두 영역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이며, 또한 각 영역 내에서 권력을 배분하고 권력행사를 공개적으로 감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br /> <br />시민사회와 국가는 서로 긴장관계에 있으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겔너(E. Gellner)는 시민사회를 “국가를 견제하기에 충분히 강력하고, 국가가 평화를 지키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사회의 다른 부분들을 지배하고 원자화시키는 것을 막아주는 다양한 비정부 제도들의 집합체”라고 하였다(김비환, 2000: 244-245). <br /> <br />42. 시장과 민주주의: 반대로 뛰는 두 마리 토끼?!<br /> <br />43. 페미니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행군<br /> <br />44. 사익과 공익이 어우러지는 사회, 그 풍요로움을 꿈꾼다<br /> <br />45. 국가로부터의 자유에서 국가로의 자유로<br /> <br />46. 공손함(civility), 그 보이지 않는 조화의 원리<br /> <br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실현하게 해주는 유일한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서 항상 예민하게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운용해야 한다면 이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민주적인 태도가 습관화되어 일종의 문화처럼 우리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를 인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머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판단하느라고 과부하가 될 것이다. <br />공손(civility)이라는 덕목은 일종의 문화처럼 민주시민의 ‘마음의 습관’이 되어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여 부드러운 인간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이 공손의 미덕은 민주제도의 한계를 보완해 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의 원활하고 온전한 운용에 필수적이다. <br /> <br />쉴즈(E. Shields)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다소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이 제도들은 공손의 미덕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은 최소한의 공손의 미덕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공손의 미덕을 태도이자 행위의 패턴으로 이해한다. 공손은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와 사회의 모든 계층과 부문들에 대한 존중과 애착의 태도이다. 근본적으로 공손의 미덕은 자신의 개인의식이 부분적으로 집단적 의식에 의해 대체된 사람의 태도를 의미한다. <br /> <br />또한 쉴즈는 공손한 태도가 ‘개인들이 서로를 보고 서로를 들으며 서로를 직접 대하는 모든 상황에 두루 작용하며, 입법부와 정치적인 집회와 같은 정치적 공간에까지 자연스럽게 미친다’고 하였다. 나아가 공손의 미덕 그 자체는 개인의 자아를 집합체의 일부로 보는 집단 자의식에 입각해 있는 정치적 행위의 양식으로서, 개인적이거나 협소한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규범을 내포하고 있다. <br /> <br />민주주의를 정착․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제도를 구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민주적 덕성이 함양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운용주체인 민주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운용하기에 충분히 덕스럽고 헌신적이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타락하거나 권위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김비환, 2000: 271-275).<br /> <br />47. 유고의 忠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br /> <br />48. 더불어 행동하는 행복: ‘공적 행복’<br /> <br />49. 정의로운 사회, 그 행복의 조건<br /> <br />50. 한국적 민주시민의 형성을 향하여<br /></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400,'/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400+%22%27%EA%B9%80%EB%B9%84%ED%99%98%282000%29.%20%EB%8D%B0%EB%AA%A8%ED%81%AC%EB%9D%BC%ED%86%A0%ED%94%BC%EC%95%84%EB%A5%BC%20%ED%96%A5%ED%95%98%EC%97%AC%27%20%EB%A5%BC%20%EC%9D%BD%EA%B3%A0%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400&t=%27%EA%B9%80%EB%B9%84%ED%99%98%282000%29.%20%EB%8D%B0%EB%AA%A8%ED%81%AC%EB%9D%BC%ED%86%A0%ED%94%BC%EC%95%84%EB%A5%BC%20%ED%96%A5%ED%95%98%EC%97%AC%27%20%EB%A5%BC%20%EC%9D%BD%EA%B3%A0"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400&title=%27%EA%B9%80%EB%B9%84%ED%99%98%282000%29.%20%EB%8D%B0%EB%AA%A8%ED%81%AC%EB%9D%BC%ED%86%A0%ED%94%BC%EC%95%84%EB%A5%BC%20%ED%96%A5%ED%95%98%EC%97%AC%27%20%EB%A5%BC%20%EC%9D%BD%EA%B3%A0','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400?commentInput=true#entry40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322007-03-09T03:03:48+09:002007-03-09T03:03:48+09:00<P><STRONG><FONT color=#000000>2005년 02월 10일 02:32 <BR> </FONT></STRONG></P>
<P><FONT color=#156200>아래 글에 따르면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량주의자가 되는군. 평등연대(해방연대라고 하나?) 사람들도 정말 서운해하겠다. <BR> </FONT></P>
<P><FONT color=#156200>이 텍스트에 기반해서 각 단락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게 되면 뭔가 그럴싸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걸 가지고 교육을 해도 되겠다. 그런데 원전을 읽으면 이렇게 되는건가? <BR> </FONT></P>
<P><FONT color=#156200>민주노동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고 좌선회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제발 민주노동당의 튼튼한 좌측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BR> </FONT></P>
<P><FONT color=#156200>뭐라고 잔뜩 썼지만, 이 글이 어떠한 실천적 함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글쓴이가 뭐라고 할지... 역시 민노당의 개량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려나. 아무튼 나름대로 흥미있었다. <BR> </FONT></P>
<P><FONT color=#156200>특히, 중간쯤에 "</FONT><FONT color=#9b014f>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FONT><FONT color=#156200>"</FONT><FONT color=#156200>는 언급은 최근의 사회적 합의주의 논란과 관련하여 곱씹을 만한 대목이며, 약간은, 아니 상당히 실용주의적이고,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는 전진 그룹 동지들에게 권하고 싶은 대목이다. <BR> </FONT></P>
<P><FONT color=#000000>---------------------</FONT></P>
<P><FONT color=#156200>내가 이 글을 왜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되었다. </FONT></P>
<P><FONT color=#156200>물론 아래의 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생각해볼 꺼리가 있지 않나 싶다.</FONT> <BR> </P>
<P><FONT color=#0021b0>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한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 한다. </FONT></P>
<P><FONT color=#0021b0></FONT> </P>
<P><FONT color=#0021b0>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BR></FONT> </P>
<P><FONT color=#156200>→ 다시 말해서 레닌의 언행에서 무슨 원칙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레닌의 저작들을 꼼꼼하게 읽었다면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같은 철학서조차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해야 제대로 본 것 아닐까. </FONT> <BR> </P>
<P><FONT color=#0021b0>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FONT></P>
<P><FONT color=#0021b0></FONT> </P>
<P><FONT color=#0021b0>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인 것이다. </FONT></P>
<P><FONT color=#0021b0></FONT> </P>
<P><FONT color=#0021b0>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FONT></P>
<P><FONT color=#0021b0>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BR>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BR> </FONT></P>
<P><FONT color=#0021b0>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FONT> <BR> </P>
<P><FONT color=#6d201b>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BR> </FONT></P>
<P><FONT color=#6d201b>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BR> <BR>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BR> </FONT></P>
<P><FONT color=#6d201b>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BR> </FONT></P>
<P><FONT color=#6d201b>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FONT> </P><br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P align=right>백철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활동가) </P>
<P></P>
<P><STRONG>1. 청산별곡(淸算別曲) <BR> </STRONG>
<P></P>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청산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소련의 몰락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색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에게는 스탈린주의의 문제가 곧 레닌주의의 문제로 등치되었고, 위대한 러시아 혁명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조산아(早産兒)에 불과했다. <BR> </P>
<P>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급기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것은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니고 개량주의의 하나의 조류를 재탕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이병천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반전 위기의 집중적 표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위기'를 들면서 "우리 시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과제는 시민사회내의 민주적 헤게모니의 획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시민사회의 형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BR> </P>
<P> 그들은 또한 "계몽된 전위만이 역사의 근원적 운동법칙, 공산주의로의 필연적 운동법칙과 방도를 알 수 있고, 또 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관념적·폐쇄적 확신으로부터 계급의 진리, 사회와 역사의 진리의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위당의 독재라는 주장이 나오며, 대중 위에 군림하는 전위당의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전위당론이 당독재로 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노자간의 계급 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중층화, 다층화되었다고 하면서 성, 인종, 환경 등 시민사회 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BR> </P>
<P> 현재 이른바 좌파 운동 진영 내에서 주장하는 '복수적대에 기반한 차이와 연대의 정치', '일괴암주의',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들은 바로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수식어의 화려한 외관을 살짝 뜯어보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적대적인 실체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BR> </P>
<P> 그들은 전통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대해 '구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며, 구좌파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구좌파'를 모든 것을 노자간의 계급문제로 돌려 버린다는 계급환원론으로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자동붕괴론, 경제결정론으로 화석화하여 무덤으로 끌고 들어갔다. <BR> </P>
<P> 신좌파의 불온한, 빈곤한 상상력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 인종, 인권, 생태 등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과 분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임노동에 대한 착취를 하면서 재생산되는 사회다. 사회 각 영역에서의 모순들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착취질서를 폐지하는 운동과 결합되어 나가야 한다. <BR> </P>
<P> 이것은 부문운동의 고유의 영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을 중심으로 하여 굳건하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여성의 문제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각종의 차별, 억압과 어떻게 분리될 것이고, 인종의 문제가 이주노동자의 계급적 문제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파시즘에 의한 인종청소와 제국주의 전쟁도 자본주의의 폭력적, 반동적 결과물들이다. 자본주의의 각 부문에서의 문제를 그 부문의 문제만으로 한정시키는 것이야말로 환원론인 것이다. <BR> </P>
<P>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을 주장했다면 왜 그토록 노동자 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행동과 전위의 의식성을 강조했겠는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비판하는 자들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인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보라! 물적,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계급간의 투쟁이 당시의 구체적인 법률적, 정치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풍부하고 긴장감 있게 분석하고 있지 않는가! <BR> </P>
<P> 청산주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도 터져 나왔다.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진보적 노동조합운동론, 국민적 노동조합 운동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투쟁일변도의 전투적 조합주의 노선은 국민대중과 노동대중으로부터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적 관점에서 국민경제와 국민국가 및 시민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책임"지는 노동운동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노협의 전투적 노동운동 노선 대신에 노사간의 사회적 파트너 쉽에 의거한 협조적 노사관계 구축을 호소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이후 사회적 조합주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으로 연이어 등장하게 되면서 현재는 사회적 합의주의로 포장된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구조조정 시 노조의 참여 등 대중운동 영역에서 노사협조주의의 직접적인 기반이 되었다. <BR> </P>
<P> 한편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인민노련, 삼민동맹,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비위를 구성하여 합법주의적, 투항주의적 행보를 계속하였고, 사노맹은 사회주의 합법화를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개량주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진영의 청산주의적 움직임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의 직접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BR> </P>
<P> 결국 91년 소련의 몰락 이후에 남한에서 등장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비합법적 노동운동의 청산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론적, 조직적, 실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개량주의의 삼두마차가 되었다. <BR> </P>
<P> 남한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사회주의의 청산별곡(淸算別曲)이 울려 퍼지는 동안 진지하게 이론적, 실천적 모색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치열한 모색을 통하여 소련의 몰락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원리와 전통으로부터 일탈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현재 자본주의의 모순은 오직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과학적 인식으로 바라볼 때 구체성을 띠고, 그것의 모순 극복은 자본주의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건설 위에서만 가능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BR> </P>
<P>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청산주의적인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전통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은 아직 굳건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비합 사회주의자들은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하면서 대중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BR> </P>
<P>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상황을 절대화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식으로 논쟁에 임하는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패권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며 이러한 패권주의적 태도는 부르주아의 힘에 굴복할 패배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당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민주당이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FONT style="BACKGROUND-COLOR: #befa5a" color=#6d201b>오직,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의 관점에 서서 토론해야</FONT> 한다. <BR> </P>
<P><STRONG>2. 전위정당론과 비합법주의의 옹호 </STRONG></P>
<P></P>
<P>1) 전위정당론은 대중과의 선진적인 결합방식이다 <BR> </P>
<P> 전위정당론에 대해서 마치 소수의 결사체의 음모적 조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위정당을 비판하는 세력들 중에서는 러시아 볼셰비키가 소수의 블랑키즘적인 테러로 짜르전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성공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왜곡하고, 혁명의 정당성을 비난하는 세력들이 자주 사용하는 악선동 중의 하나다. <BR> </P>
<P> 전위정당론은 질적 개념이지 양적 개념이 아니다. <FONT color=#6d201b>전위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전위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전위정당은 이런 조직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중적 전위정당을 지향</FONT>한다. <BR> </P>
<P>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전위정당이었지만 1917년 혁명 이전에는 8만 여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대중적 전위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내에서 노동자 다수의 지지와 농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전까지 혁명은 일정에 올려지지 않았다. <BR> </P>
<P> 흔히들 러시아 혁명은 기동전적인 국가 탈취 전략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셰비키를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과 노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불굴의 투쟁을 통해 당과 소비에트라는 굳건한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면 기동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BR> </P>
<P> 1921년 혁명 이후 레닌은 이탈리아 공산당(PCI) 지도자에게 "볼셰비키는 1000만이 넘는 군대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보다 더 러시아 혁명의 대중적 성격을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BR> </P>
<P> 러시아 혁명을 비난하는 세력들은 그람시의 진지전을 예로 들면서 시민사회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람시의 진지전은 1920, 21년 부분적인 무장공세를 통해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험적인 공세를 계속하였던 독일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모험주의 세력들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또한 1928년 파시즘의 공세에 대해 사민당과의 통일전선전술을 거부한 스탈린주의 제3 코민테른의 초좌익적인 오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렇게 <FONT color=#6d201b>진지전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 것</FONT>이었다. <BR> </P>
<P> 혁명 활동을 수행할 당시에 전위당과 국가권력 타도의 문제에 모든 전력을 기울였음을 볼 때 그람시가 기동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람시의 혁명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그람시에게 기동전은 이미 전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모험주의와 초좌익주의에 대항해 통일전선전술을 주장하기 위해 진지전에 대한 일면적인 강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BR> </P>
<P>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 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FONT color=#6d201b>전위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적에 상관없는 공동의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 관계를 대변한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 앞선다"</FONT>는 것이다. <BR> </P>
<P> 이렇게 전위는 계급의 일부이지만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이고 계급 투쟁의 전반을 이끌고 조직하는 중심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 관계는 무차별적인 이해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전진에 기여하는 방향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BR> </P>
<P> <FONT color=#6d201b>전위는 가장 헌신적이고 올바른 전략적, 전술적 지도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권위와 지도력을 획득</FONT>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위의 지도에 대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비판하는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전위가 가지는 권위는 강요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의 선물이다. 지도와 피지도는 상명하달이나 명령 식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에 있다. 지도하기 위해서는 지도받아야 한다. 대중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서는 대중을 지도하지 못한다. <BR> </P>
<P> <FONT color=#6d201b>전위는 대중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하여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선진적 대중들을 전위적 지위로 끌어올려 지도의 위치를 갖게 하는 것이 전위적 지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고양시켜야</FONT>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대중의 무의식,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이기주의에 기초해서 착취질서와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BR> </P>
<P> 노동자 대중들에게 전위당의 지도력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전위당의 지도를 이미 있는 것으로 하고 대중을 지도하려 한다면 아무도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위와 대중의 관계는 법률적 강제와 강압적 지시로 전락하면서 왜곡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고 "코민테른의 도장이 찍힌 당원증의 힘만으로 노동계급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BR> </P>
<P></P>
<P><FONT color=#767173>공산당의 지도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대된다. 공산당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반혁명 분자"이다. 노동자는 사전에 맹세코 공산당 조직을 신뢰해야 한다. 당의 목적과 계급의 목적을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당 관료는 계급대중에게 법령을 하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노동계급이 미리 텔만과 레멜러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이 역사를 통해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 바쳐야 할 모든 노고는 다 무슨 소용인가? (트로츠키, 반파시즘 투쟁) <BR> </FONT></P>
<P> 트로츠키는 이러한 관료적 지도를 대중에 대한 최후 통첩주의라고 비판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당독재로의 변질은 전위당 이론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전위당 이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선 것이다. <BR> </P>
<P>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인 이병천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기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전위당 이론이 결국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당독재로 전환했다고 비판한다. <BR> </P>
<P> 레닌의 의식성에 대한 강조는 노동대중들의 자생적으로 분출해 나오는 투쟁을 경제주의적 투쟁의 한계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당건설에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능동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FONT color=#6d201b>노동자 계급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레닌은 이러한 불일치를 두고 훗날 자생성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의식성에 대한 강조를 두는 '막대 구부리기'를 했다고 회고</FONT>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과의 긴밀한 결합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BR> </P>
<P></P>
<P>2) 조직형식은 정치적 내용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BR> </P>
<P>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는 비밀주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치를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물론 대중운동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에서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의회활동 등 공개적, 합법적 활동에 대한 비중도 늘어 갔다. 이후 볼셰비키는 공개적, 합법적 노동자당을 만들자는 청산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현시기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조직구조의 형태는 합법·반(半)법의 노동자조직의 네트워크로 둘러싸인 당세포의 총화로서의 비합법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볼셰비키에게 합법적 활동은 비합법의 내용을 합법적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파하는 것이다. <BR> </P>
<P><FONT color=#767173>합법조직은 비합법 핵의 사상을 대중 사이에서 전파하는 거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종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조직 형태와 관련해서는 비합법이 자신을 합법에 '적응'시킨다. 그러나 우리 당의 사업 내용과 관련해서는 합법활동이 비합법 사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레닌, 합법정당론) <BR> </FONT></P>
<P> <FONT color=#6d201b>달라진 정치적 조건에서 볼셰비키의 조직형태는 비합법 조직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 공간 내에서 비합법적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은 의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폭로하고, 분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비합법 중핵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FONT>한다. <BR> </P>
<P>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정치적 제약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체제가 급격하게 위기에 빠져들 때 국가권력은 중립성과 동의와 설득이라는 외관을 벗어 던지고 무차별적인 탄압을 가해올 것이다. <BR> </P>
<P> 조직의 안정성이 유지될 때만이 공산주의 선언에서 말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BR> </P>
<P> 엄격한 비밀주의는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이다. 이 조직관계에 대한 비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타도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비합법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공개적 조직은 조직관계를 전면 드러낸다. 하지만 조직관계를 전면적으로 적들의 수중 앞에 노출하면 할수록 사상적 자유는 오히려 제약될 수밖에 없다. "<FONT color=#6d201b>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FONT>". <BR> </P>
<P> 합법주의자들은 남한의 정치조건이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변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합법주의 노선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열려진 정치적 공간은 비합법적인 정치적 내용을 공공연하게 선전·선동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지는 것이지 합법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BR> </P>
<P> 노무현 스스로도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주의에 대한 용인은 그것이 전혀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사민주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제도화를 추구하여 분출하는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FONT color=#6d201b>사회주의 활동의 공간이 열려진다는 것은 정권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내적 투쟁 역량이 성장하고 계급적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는 만큼 보장되는 것</FONT>이다. 정권의 선의에 조직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BR> </P>
<P> 많은 동지들이 비합법 조직에 비해서 공개적 조직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공개, 비공개라는 형식이 민주주의의 관건은 아니다. 사회당 혁신 논쟁에서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처럼 당 내에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있었다. 하지만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에는 이 노선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혁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FONT color=#6d201b>조직 내적인 민주적 토론과정이 없는 지도부의 전술전환과 이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조직 내부에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없는 것을 의미</FONT>한다. <BR> </P>
<P> 합법과 비합은 단순히 조직의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내용의 차이다. 조직은 정치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에서 황광우는 합법적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비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달라"고 주장했다. 사노맹의 사회주의 합법화 노선에 있어서도 이러한 논리는 유사하게 적용됐다. 이것은 조직노선을 단순히 상황의 포로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한총련의 합법화 구걸을 보라! <BR> </P>
<P> <FONT color=#6d201b>조직 노선의 변화는 반드시 정치적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한사노당의 조직형식상의 변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개량주의로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신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사노맹은 비합법 조직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입지가 약화되어 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동적 상륙전"으로서 사노맹을 해체하고 공개적인 이념정당을 추진</FONT>했다. 사노맹의 조직 형식 전환은 개량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들이 합법조직으로 전환하여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이후의 역사적 진행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BR> </P>
<P></P>
<P><STRONG>3.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론에 대한 비판 <BR> </STRONG></P>
<P></P>
<P>1)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 <BR> </P>
<P>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과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계획으로서의 조직건설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이다. 조직건설은 강령적 수준의 사상적 통일을 기반으로 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인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한다. 물론 이런 수준의 조직 내에서도 전술적, 개별적 수준에서의 일치는 현실 투쟁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조직 내외적인 논쟁과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획으로서의 조직 건설이다. <BR> </P>
<P> 노힘은 비제도적 투쟁정당에서 활동가 정치조직을 주장하고 있다.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전형적인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노힘은 '정치적 재조직화'라는 글에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라는 테제를 우리가 인정함과 동시에 공통의 지향태로서의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인정한다면 공통의 지반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지반이 활동가 정치조직의 틀 속에 묶일 수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노힘은 그것을 '어항론'으로 표현하고 있다. <BR> </P>
<P><FONT color=#767173>그것은 일단 '하나의 어항에 모든 고기를 모은다'에서 시작한다. 그 속에서 각각의 정파들이 내세우는 조직노선·정치노선상 공개적인 사상투쟁을 벌여 나가고, 동시에 대중적인 공동 투쟁을 통해서 계급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조직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새로운 조직건설 방법론의 핵심이다. (노힘, 정치적 재조직화) <BR> </FONT></P>
<P> 이것은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공동투쟁체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조직화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공통의 지반으로 인정하는 수준에서 하나의 조직적 틀로 묶일 수 있다면 이 어항에 들어오지 못할 물고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 활동가들의 대부분도 이러한 공통의 지반에 동의하고 있다. 하나의 어항에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으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고 종국에 어항은 깨지고 말 것이다. <BR> </P>
<P> 노힘은 "활동가 정치조직은 노동자의 힘의 입장에서는 당건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에 기초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힘의 새로운 조직 건설 방법론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대중조직론(PMO) 노선의 유사한 재판이다. <BR> </P>
<P><FONT color=#767173>그것은 정치적으로 자각되어 가는 선진노동자로 구성되는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민주집중제를 지향하는 단일 규약을 갖는 조직이다. PMO는 노조와 질적으로 다르지만 이것이 자체 발전하여 전위조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조직론 팜플렛, 정치적 대중조직론) <BR> </FONT></P>
<P> PMO노선은 결국 전위조직도 대중조직도 아닌 어정쩡한 조직 형태를 낳았다. 물론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조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현장연대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것은 노힘의 조직 건설이 절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직건설에 있어서 노힘의 무원칙한 팽창주의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러한 발상은 이후 또 다시 조직 내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많다. <BR> </P>
<P> 노힘은 기간 강령적 수준 하에서의 노선적 통일 없이 조직을 구성하였다. 또 이념적 강령적 내용이 없다보니 조직 구성원의 자격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노힘은 대중운동에서 많은 고통을 받아 왔다. 조직 내에서의 노선상, 실천상의 차이는 크게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조직 내부의 규율상의 문제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대중운동 내에서의 실천상의 오류에 대해서도 노힘은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BR> </P>
<P> 노힘의 활동가 정치조직은 정치적 통일성과 조직적 일체감의 약화라는 노힘의 한계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실제 노힘과 활동가 정치조직을 같이 하려고 하는 현장연대는 노동자 중심성을 부정하면서 복수적대에 기반한 모순의 다층적 구조를 주장하고 있다. 평의회를 주장하지만 당에 대해서는 일괴암주의라고 하면서 비판적이다. 과연 노힘은 이러한 느슨한 조직구성으로 어떻게 관료주의, 개량주의라는 대중운동의 질곡들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것인가?<BR> </P>
<P></P>
<P>2) 계급좌파, 사회주의 대중정당 <BR> </P>
<P>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이를 지지하고 나선 사회주의 대중정당론 역시 과정으로서의 조직건설론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추상적 좌파에 대한 승인을 조직구성의 전제로 한다. 이러한 승인 하에서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구체적인 이념적 강령적 통일성 속에서 조직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BR> </P>
<P>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 강령적 통일은 "당 건설 과정에서 사상이론가들이 결집하여 '사회주의 강령제정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가 '정기적인 내부토론으로 견해를 가다듬고 수시로 대중토론회를 개최하여 대중운동의 성과가 강령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강령 제정 사업을 전개"해 나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에서는 정치 총파업 조직, 전국적 정치신문 발행, 현장 활동가 양성과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무수히 많이 나열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조직적 성격과 사상적 내용으로 그 과제들을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해방'과 '연대'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이 제시돼 있을 뿐이고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과제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BR> </P>
<P> 물론 강령이라는 것은 혁명의 이론적, 실천적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조직의 무기이다. 강령은 단순히 이론적 나열이 아니다. 실천의 무기로 전화되지 못하는 이론적 분석을 우리는 강령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강령적 수준에서의 이론적 통일성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완성된 고정불변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BR> </P>
<P> 사회주의 운동의 전략, 전술적 원리, 실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치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FONT color=#6d201b>전위정당, 국가파괴 전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혁명의 핵심적 테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강령적 수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FONT color=#000000><FONT color=#6d201b>것</FONT>이다. 이와는 반대로 </FONT>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을 과제로 삼는 정치 세력들을 개량주의 노선</FONT>이라고 부른다. <BR> </P>
<P>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의회주의·합법주의·개량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구별시켜 주는 핵심적 관건"으로 "대중운동의 성장·발전에 철저하게 복무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성장·발전 동력을 획득하는 노선"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FONT color=#6d201b>단순히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는 여부는 활동 방향과 태도의 문제이지 근본적 노선의 차이는 아니다. 어떤 대중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혁명적 대중 운동의 성장 발전에 복무하여 혁명을 하려는 것이 바로 개량주의와 구별되는 핵심</FONT>인 것이다. <BR> </P>
<P> 강령적, 조직노선상의 통일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사회당의 계급좌파는 다양한 내부의 이념적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중심성 강조와 복수적대에 기반한 부문운동에 대한 강조, 국유화 계획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PT독재에 대한 승인과 무정부주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국가타도와 단절적 이행론에 대한 반대 등 상호 적대적인 정치적 노선이 혼합돼 있다. <BR> </P>
<P>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과연 이러한 정치적 차이를 강령제정위원회에서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강령으로 녹여낼 수 있는 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러한 화해할 수 없는 정치노선상의 차이를 단순히 단일 조직 내에서의 공동실천으로 묶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치를 절충주의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BR> </P>
<P> 계급좌파를 제출한 안승천은 조직 구성의 원칙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론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회당에서는 정식화된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회주의 대중정당과 마찬가지로 안승천은 "사회당의 강령은 한국의 사회주의자 그룹 대다수가 참가하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하여 과정으로서의 조직 건설을 주장 하고 있다. 결국은 "모여서 한번 해보자! 누가! 사회주의자가! 무엇을! 사회주의를!"이라는 동어반복적 결의 외에 정치적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별로 없다. <BR> </P>
<P> 사회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대개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라고 부르는 것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며 운동이야말로 나의 전부이다"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주장으로 귀결된다. <BR> </P>
<P><FONT color=#767173>사회당이 사용하는 '사회주의' 개념은 사회 모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 민중의 최대 요구의 총체적 표현이며, 현실을 극복해가기 위한 운동 그 자체다.(사회당,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사회주의 정치) <BR> </FONT></P>
<P><FONT color=#767173>코뮤니즘은 미래에 도래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 대한 지향',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교류의 원리', '돈, 조직, 명분 등 모든 물화된 가치보다 개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 등 코뮤니즘의 행위규범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정성훈, 청년 좌파의 성과와 패기로 독립좌파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자! 사회당이여!) <BR> </FONT></P>
<P> 노동자 계급에 의한 자본주의 국가권력 타도와 정치권력 장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만이 남는다. <FONT color=#6d201b>자본주의 "현실을 극복해 가기 위한 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한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나가는 개량주의 운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의 수단은 각 부문 내에서의 투쟁과 의회장악이다.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만 제기되는 코뮤니즘은 단지 도덕성과 고매한 인격을 갖춘 인간형을 추구하는 사회당 식 품성론에 불과</FONT>하다. <BR> </P>
<P>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를 극복해 가기 위한 투쟁은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 굳건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미래에 도달할 사회체제가 아니라 오늘의 행위 규범"으로서의 운동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벽에 부딪혀 물질적 상태마저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BR> </P>
<P> 이것은 사회당이 가진 패기와 열정 그리고 순수성과 상관없이 "쓰디쓴 자본주의의 바다에 사회개량주의의 레모네이드 몇 병을 넣어 이 자본주의의 바다를 사회주의의 단물로 바꾸겠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만큼 공상적이기 때문이다. <BR> </P>
<P> 사회당의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강령 연구와 실천의 과정에서 회피하거나 얼버무리고 있는 국가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국가의 문제 앞에서 "하나의 정치적 강령"은 사민주의와 혁명주의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BR> </P>
<P> 결국 사회당과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과정으로서의 조직론은 계획으로서의 조직론이 제기한 최초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을 스스로 거부하게 된다면 강령제정위원회에서의 합의지점은 민주노동당에 비해 대중투쟁에 대한 상대적 강조는 있지만 선거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상대적 강조점조차도 선거에 직면해서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데 왜 따로 조직을 꾸리는가?" 라는 민주노동당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또 다시 조직재편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BR> </P>
<P></P>
<P><STRONG>4. 계급좌파와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합법주의다. <BR> </STRONG></P>
<P></P>
<P> 사회당 내에서의 혁신 논쟁이 제기된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대선에서 얻은 0.089의 득표율이다. 사회당 내부에서 혁신논쟁을 이끌고 있는 동지들 스스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참패가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통일좌파의 실패와 대통령 선거의 참패는 그 동안 쌓여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BR> </P>
<P> 출마동지회(출동) 노선은 선거주의의 극악한 결과물이다. 2004년 총선에서 227개 전지역구에 후보를 내기 위해 고향 등 연고에 따라 하나씩 지역구를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출동노선이다. 그런데 정성훈은 출동노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 <BR> </P>
<P><FONT color=#767173>셋째의 문제를 낳은 뿌리는 중앙당을 비울 테니 다른 좌파가 들어와서 대선을 주도하라는 「통일좌파」의 황당한 구상에 그 원인이 있다. 사회당의 투쟁 전통을 이론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그리고 가을 정세에서 주도적으로 투쟁하지 못한 것은 중앙당을 비우고 주요 간부들이 모두 지역구 사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황당한 구상의 뿌리에는 227명을 채우는데 사활을 건 출동노선이 있다.(위의 글) <BR> </FONT></P>
<P> 정성훈은 중앙당 사업이 약화되고 부문운동이 압살된 것 때문에 출동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출동 노선의 합법주의는 정당명부제 같은 "정치개혁의 대세를 거스르는 패배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성훈은 선거제도의 개혁 요구야말로 합법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정성훈의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선거주의, 부문운동적 사고의 한계에 갇혀 있다. <BR> </P>
<P> 사회당의 출동노선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의회진출에 모든 전략적 전술적 사고를 집중하는 개량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사회당 바깥의 명망가'에게 기댄 통일좌파와 출동노선은 사회당의 의회주의가 낳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의회주의에서 제도정치권에 1석이라도 진출하는 것은 사활을 건 정치행위이다. 의회진출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활동하던 지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친인척을 중심으로 하여 인맥을 이용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어쩌면 의회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이것이야말로 원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회당 내부의 혁신 논쟁에서 제기된 출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나온 본질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BR> </P>
<P> 사회당은 혁신 논쟁에서 생활정치를 강조한다. <BR> </P>
<P><FONT color=#767173>여기서 생활정치란 민중의 삶과 호흡하는 정치활동을 말합니다…출퇴근길이나 이동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연스럽게 수시로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정치문제를 화제로 삼으며 가볍게 토론을 벌인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간략한 선전과 연락처를 인쇄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대중들에게 나누어준다면, 한마디로 선거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자연스럽게 정치선전을 수행한다면 사회당의 모습은 아주 달라지지 않을까요?(안승천, 계급좌파 2부) <BR> </FONT></P>
<P>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무차별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선전·선동하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의회주의 정치이다. 대중은 여기서 투쟁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당 정치를 경청하는 무대의 관객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사회당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리충족된다. 사회당의 생활정치는 자본주의의 대리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BR> </P>
<P> 이것은 사회당의 생활정치가 지역구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지구당 중심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다.<FONT color=#6d201b> 일상적인 생활정치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FONT>된다. <BR> </P>
<P> 반면에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는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노동자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기행동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는 선거와 지구당이 아니라 노자간의 계급투쟁과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현장 내에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제기된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된 개량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자신감으로 작용하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는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 같은 초보적인 개량마저도 허용하지 못하고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공세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BR> </P>
<P>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반동성을 매시기 매순간 폭로하면서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해야 한다. 이것은 출퇴근 길이나 이동 중에 우연히 만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잘 디자인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수행하는 일방적인 정치선전과 분명히 다르다. 파업이나 구조조정 반대 투쟁, 해고자 복직투쟁, 노동재해와 직업병에 맞서는 투쟁, 일상적인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과 인원충원 투쟁, 비정규직 투쟁 등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계기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단결을 고취시킨다. <BR> </P>
<P> 사회당의 혁신논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개량주의 내의 개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개량주의의 우물 안'에서 벌어지는 혁신의 결과는 사회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없으며, 2004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득표와 의회 진출에 실패할 경우 또 다시 극심한 내부 혼란과 조직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BR> </P>
<P> 사회당의 계급좌파를 지지하는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면서 대체권력"을 주장한다. <BR> </P>
<P><FONT color=#767173>노동계급 대중운동의 새로운 폭발적 고양을 총체적으로 준비하고 선도해 냄으로써 새롭게 성장·발전하는 노동계급 대중운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력을 구축하고, 그러한 힘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 가능성을 가진 현실정치의 실체로서 위상을 확립한다.(양준석/오민규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발전전략에 대하여) <BR> </FONT></P>
<P> 결국 이들의 집권전략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가 아닌 국가의 활용론에 머무르고 있다. 대중투쟁에 대한 강조는 집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동 계급 운동이 폭발적으로 고양된다면 그러한 힘은 제도정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를 철저하게 분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고양을 제도정치 영역으로 제한하여 집권으로 향하는 계기로 돌리려 하고 있다. 왜 노동자 투쟁의 폭발적 고양을 자본주의 체제로 가두는가? 노동자 계급의 폭발적 고양을 철저한 야당으로 제한했던 과거 러시아의 멘셰비키처럼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혁명을 반대할 것인가? <BR> </P>
<P> 물론 이들은 "집권은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대안권력 창출'이라는 보다 원대한 목표를 향한 중간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장치를 대중들의 대안권력으로 '대체'시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BR> </P>
<P> 그러나 세계노동운동의 어느 역사를 뒤져 보아도 제도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여 집권을 한 세력들이 스스로 군사, 행정, 의회, 사법 기구 등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을 파괴하고 혁명권력으로 대체한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시도한다면 굳이 집권이라는 계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여기서 비약을 하고 있다. 무엇으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집권과 대체권력의 창출 사이에 혁명이 없다. 혁명을 말하지 않는 대안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점진적 개혁에 머무를 뿐이다. 결국 정치적 수사와 전투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은 변형된 합법주의에 불과하다. <BR> </P>
<P></P>
<P><STRONG>5. 개량주의와의 대적전선으로 혁명적 주체를 굳건히 세우자! <BR> </STRONG></P>
<P></P>
<P> 개량주의.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 반대와 전투적 노동운동의 부활을 부르짖던 현장조직 운동은 현재 끊임없는 운동적 타락을 보이고 있다.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을 이끌고 왔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전국회의)는 현재 대중운동의 혁신은커녕 자신의 지친 몸을 끌고 갈 힘조차 갖지 못하고 힘겨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전국회의로 대표되는 조직의 위기인 것이지 현장조직 운동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전국회의가 지향했던 현장조직 운동의 강화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BR> </P>
<P> 현장조직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선진 노동자들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현장조직의 선거조직화와 현장조직 활동가들의 관료적 타락과 부패는 정치적 전망을 갖지 못하고, 사상적 무장을 하지 못했던 한계에서 비롯됐다. <BR> </P>
<P> 정치적 전망이 없는 활동가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투쟁이 전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운동의 원칙, 미래와 연결되지 못하는 눈앞의 이해를 추구하다 보면 실용주의와 조합주의가 자리 잡게 된다. 여기에 끊임없이 파고드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온갖 유혹과 탄압은 당장의 이익도 방어하지 못하고 현장조직 운동을 타락시켰다. 이것은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장 중심성은 현장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정치에 대한 배타적인 측면도 있었다. <BR> </P>
<P>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현장조직 운동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미 부여를 했다. 하지만 현장조직 운동이 빠르게 퇴락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지나친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를 현장 활동가들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정치조직의 무능력과 전망 제시 실패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과 정치조직 운동의 결합이라는 것을 이유로 현장조직 운동을 정치조직의 하부단위로 인위적으로 재편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BR> </P>
<P> 좌파 진영 일부에서는 현장조직의 정치적 분화를 이유로 이러한 분화발전론을 제기하고 있다. 우파진영에서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에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영향을 가지고 있는 편집부 '여명'에서 현장조직의 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로의 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현장조직의 구성원을 정치조직의 구성원으로 할 것으로 제한하면 현장조직의 대중적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그것은 결국 정치조직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에 맞서서 현장조직 운동의 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조직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현장조직 운동의 대중성을 강화하고 계급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BR> </P>
<P> 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개량주의와 맞서 싸우면서 현장의 진지를 강화하고 현장에서 사회주의의 선진적 주체를 새롭게 조직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 것인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FONT color=#6d201b>남한 사회주의 운동은 강령적 수준에서의 사상적 통일성의 확보와 조직적 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내용과 실천을 부여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FONT>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활동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그것을 하기 위한 관점과 태도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BR> </P>
<P> 민주노동당의 실패가 혁명적 정치를 저절로 부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현장의 붕괴와 실리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선거주의, 관료주의를 강화한다. 현재 대중운동에 있어서 관료주의와 실리주의, 협조주의는 개량주의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BR> </P>
<P> 온갖 기회주의적 조류들을 물리치고 현장으로부터 대중운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과 실천투쟁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활동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개량주의라는 이유로 공동활동을 거부하게 된다면 그것은 종파주의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대중들에 대한 기권이 된다. <BR> </P>
<P> 우리는 <FONT color=#6d201b>대중운동 내에서의 공동 활동에 있어서도 민주노동당이 왜 일관되게 대중운동을 지도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을 타협적으로 끌고 가는데 일조하는 지를 공동활동을 통해 폭로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철회가 부르주아 정당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세력들에 대한 지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FONT> 한다. 그런데 노힘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제도권 내에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성과로 바라본다. <BR> </P>
<P><FONT color=#767173>'비제도영역'에서 정치-사회운동의 '정치적-조직적 구심'을 건설하는 일이다. 이 조직의 구심은 무엇보다 사회운동적·대중적·계급적 정치조직의 성격을 지니며, '제도영역'의 진보정당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대중운동의 성장과 계급투쟁의 진전을 위해 서로 '억제'하는 관계가 아닌 '상승'의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대중운동의 영역에서는 '경쟁'의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제도영역'에서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위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한다"(강동진, 좌파여! 새로운 정치운동을 조직하자!) <BR> </FONT></P>
<P> 노힘은 비제도 영역, 민주노동당은 제도영역에서의 '상승'의 관계를 갖는 '새로운 정치운동'은 양날개론의 변형된 재판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노힘은 제도영역에서의 민주노동당의 필요성과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제도영역'에서의 '상호보완' 관계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현장투쟁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을 파괴하면서 진행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대안을 찾는 개량주의는 관료주의의 온상이 된다. <FONT color=#6d201b>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는 궁극적으로 노사협조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FONT>으로 하고 있다. <BR> </P>
<P> 우리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조직적,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반대를 외치는 많은 정치조직들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조직적 틀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민주노동당과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활동하는지는 의문이다. <BR> </P>
<P> 민주노동당과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독립된 혁명적 주체를 새롭게 발굴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독립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본의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로 인해 이에 맞서는 노동자의 계급투쟁도 일상화 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은 개량주의, 관료주의 지도부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고,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투쟁할 수밖에 없는 계급투쟁의 객관적 조건과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는 주체적 역량의 괴리를 채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 <BR> </P>
<P> 이를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전국적 노동자 투쟁전선을 형성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조직해야 한다. 현장을 통한 전국적 조직화의 중심은 대공장이다. 물론 이것은 중소 사업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주의자의 역량으로 볼 때 전략적 지역과 공공, 금속의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해서 거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대공장 사업장들은 노사협조주의자들과 관료주의자들이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선진 노동자들의 조직인 현장조직조차도 관료주의와 협조주의적 영향을 받으면서 대중적 신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공장 내에서의 활동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서는 안된다. <BR> </P>
<P> 대공장의 혁명적 강화는 노동운동 전반을 강화하고 자본의 거점을 약화시키는 중심 고리의 역할을 한다. 자본의 노동의 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확대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99년부터 대중적으로 분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에 강력한 투쟁정신을 불어넣었지만 정규직과의 연대의 실패, 현장 조직화의 실패 등으로 인해서 대부분 패배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공장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새롭게 투쟁이 분출해 나오고 있다. <BR> </P>
<P> 대공장 내에는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1만 5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일 공장에 밀집해 있고, 수만에 달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대공장 내의 선진 노동자 운동은 무수한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과의 강력한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대공장 운동의 전투적 강화는 이러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굳건한 연대의식에 기초하여 자본에 대항한 계급적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BR> </P>
<P> 자본은 최근에는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수백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전산업에 걸친 비정규직의 확대에 이어 자동차 업종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확대될 것이다. 산업전반에 걸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 이주노동자들과의 국제주의적 연대의 실질적인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편협한 조합주의나 실리주의로 노동자의 실질적인 연대전선을 구축할 수는 없다. <BR> </P>
<P> 남한 내에서 선진 노동자들은 그 동안 '객관적 현실의 변화'를 근거로 한 정치조직들의 우경화와 인텔리 혁명가들의 거듭되는 배신으로 인해서 정치적 전망을 상실하고 이른바 '바깥의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보여 왔다. 하지만 떠날 곳 없는 현장 활동가들은 객관적 현실의 변화 이전에 변하지 않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부딪히며 현장을 꿋꿋이 지켜 왔다. 그들에게는 오직 '현장만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정치조직들의 대중적인 활동은 현장 활동가들에게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현장의 선진 활동가들은 "현장과 사회주의 정치의 굳건한 결합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BR> </P>
<P> 마지막으로 나는 좌파 동지들에게 지구당과 선거일정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주의 활동이 아니라 현장 내에서의 계급투쟁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하나가 될 것을 호소한다. 그 길에 남한 대중운동의 성장과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투쟁! <BR> </P>
<P></P>
<P><STRONG>「보론」과연 소련은 국가자본주의였는가? <BR> </STRONG></P>
<P></P>
<P> 남한에서 IS가 소련 몰락 이후에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이후에 몇몇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나서고 최근에는 노힘의 채만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BR> </P>
<P> 국가자본주의 논쟁의 긍정성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원리적인 상을 제시하였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에서 제기하는 국가자본주의 논쟁은 논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도식적이고 박제화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탈린주의에 대한 도덕적 분노가 과학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BR> </P>
<P> 예를 들어 최근에 제기된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도 소련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상당 부분이 도덕적 분노에 머문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그 글의 상당 부분은 소련 사회에서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사회주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분노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인텔리적 관념과 공상의 소산이라고 본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정당한가? 우리는 관념론자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의 사회주의는 그렇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회주의의 왜곡과 변질에 맞서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BR> </P>
<P> "채만수와 노힘의 스탈린주의 옹호를 전면 비판한다!"는 글은 소련에서 노동자가 아래로부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계획에 참여하지 못한 점, 관료(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 유럽혁명과 중국혁명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 등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소련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내용을 가지지 못했다는 분석만 있을 뿐 자본주의였다는 예는 들지 못한다. <BR> </P>
<P></P>
<P><STRONG>관료는 자본가인가? <BR> </STRONG></P>
<P> 노동자가 실질적인 계획의 주도자가 되지 못하고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인 계획을 했다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증명이 되지는 못한다. 관료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는 자본주의적 착취는 아니다. 아니 착취라는 표현이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부가된 가치로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수탈한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착취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BR> </P>
<P> 소련에서 관료의 수탈은 타관료와의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살아 남고 자본을 증식하기 위하여 개별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련에서 관료는 계획된 생산량을 초과달성함으로써 관료적 유능함을 인정받고 자리를 보장받거나 출세를 한다. 관료가 자본가 계급이라면 경쟁에서 밀린 관료의 몰락과 관료의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한 관료가 계획된 생산량을 채우지 못해서 관료적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면 다른 관료로 대체되지 다른 경쟁력 있는 관료가 원래 관료가 있던 산업부문을 과점 또는 독점하지는 못한다. <BR> </P>
<P> 자본가는 자신의 기업 내부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개별 잉여가치를 소유한다. 하지만 소련에서 관료는 전체 사회가 생산한 총생산물 중에서 관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소련의 관료가 생산물을 더 많이 분배받기 위해서는 총잉여생산물을 늘려야 한다. <BR> </P>
<P>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사적으로 생산한 생산물의 상호교환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물론 이 말은 교환과정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총잉여생산물이 늘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관심은 오로지 개별자본을 늘리려고 할뿐이다. <BR> </P>
<P> 관료는 자본가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글을 보면 스탈린과 김일성 등이 자본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관료라는 표현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 논쟁에서 관료의 지위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BR> </P>
<P> 스탈린의 좌우익 편향은 그가 자본가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좌우익 편향은 원칙에서 일탈하고 전술적 오류 등에서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오류다. 레닌이 좌익 소아병에서 비판한 독일공산주의 노동자당은 자본가였는가? 이런 식의 논리적 비약이 국가자본주의 주장 글에서 발견된다. 이런 식의 비약이라면 남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인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세습이 가능한가! 독점자본주의에서 왜 독점을 제한하는 독점금지법이 있는가!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본질로 하는 국가가 왜 복지정책을 쓰는가! <BR> </P>
<P> 이점에서 남한에서 발표된 국가자본주의 주장을 보는 것보다 제4인터내셔널의 만델과 SWP의 크리스 하먼, 캘리니코스, 토니클리프, 데릭하울 등의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과학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도움이 된다. 물론 기본적인 주장은 남한 내에서 국가자본주의 논쟁과 동일하지만 논리적 사실 규명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남한의 글은 주장이 강하지만 그 글들에서는 논리적 예증이 강하다. <BR> </P>
<P> 크리스 하먼은 만델의 타락한(왜곡된) 사회주의 주장이 그 논리적 귀결로 소련이나 동구에서 노동자들의 아래로터의 투쟁에 끝까지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만델은 소련사회가 사회주의로부터 일탈을 했지만 17년 혁명의 성과로 남아 있는 국유화 계획화라는 소유관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BR> </P>
<P>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만델은 발끈하면서 제4인터내셔널은 동구와 소련에서의 모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지지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만델의 반발은 유효적절하지 못하다. 크리스 하먼은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이 사회가 자본주의에 비해서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적 봉기가 관료적 통치 계층의 지배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고, 오늘날 소련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부활'을 낳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력증에 이르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IS의 전술적 오류를 담고 있다. <BR> </P>
<P> 남한에서 IS(물론 SWP도 마찬가지겠지만)는 소련의 몰락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소련사회에 대한 환상을 접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대단히 무책임한 주장이다.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내적 혁신이 불가능해지고 소련이 몰락하면서 전세계 부르주아 진영은 엄청난 계급적 자신감과 힘을 가지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가중했다. <BR> </P>
<P>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은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고, 전세계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개하는가 이다. 과거에 소련이나 동구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관료주의 타도와 사회주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소련과 동구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BR> </P>
<P> "사회주의가 모든 악의 주범이다. 민주적인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 대부분이 가슴속으로 공감하는 구호였다. 소련이 몰락한 이후에 노동자들은 실업 등 자본주의적 모순이 강화되자 이제는 또 다시 '스탈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그 때가 차라리 좋았지!"가 대부분 노동자들의 대중적 정서이다. 로마 교황의 소련 몰락에 대한 개입설도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투쟁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BR> </P>
<P> 소련의 몰락은 SWP의 기대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의 부활에 대한 염원을 가져다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중립적으로 모든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투쟁을 조직하느냐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한다. <BR> </P>
<P></P>
<P><STRONG>조직화된 자본주의가 가능한가? <BR> </STRONG></P>
<P> 크리스 하먼은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클리프는 그 자신이 레닌과 청년 부하린이 제1차 세계 대전기에 발전시킨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어떻게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시켰는지 보여 주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밀착을 주장하면서 소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인 국가자본주의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BR> </P>
<P> 그러나 레닌은 오히려 제국주의론에서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자본주의의 독점이 강화되면 하나의 독점체가 형성되면서 경쟁을 제한하고 자본간, 자본가 국가간의 경쟁에 의해서 발생하는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독점은 독점체 내부의 경쟁, 독점체와 비독점체의 경쟁, 선발 독점체와 후진 독점체의 경쟁 등 불균등 발전에 의해서 자본주의 내부 모순과 경쟁을 격화시키고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BR> </P>
<P>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은 힐퍼딩에 의해서 조직화된 자본주의로 나아간다. <BR> </P>
<P><FONT color=#767173>카르텔화의 진정한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카르텔화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없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히려 카르텔화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독립적인 산업은 카르텔화 한 산업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것에 합병된다. 이 과정의 궁극적인 결과는 총카르텔의 형성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모든 생산부문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하나의 기관에 의해 의식적으로 규제될 것이다〈힐퍼딩, 금융자본 제15장 '자본주의적 독점의 가격결정과 금융자본의 역사적 경향'〉</FONT><FONT color=#767173> <BR> </FONT></P>
<P> 힐퍼딩은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는 의식적인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한 산업부문 전체를 장악하는 총카르텔의 형성에 의해서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이 계획적으로 규제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힐퍼딩은 또 같은 책에서 이와 상반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BR> </P>
<P><FONT color=#767173>생산 전체를 담당하고 따라서 공황을 제거하는 총카르텔 그 자체는 경제적으로는 상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직은 사회적·정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직은 그 조직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강화될 이해대립이라는 암초에 좌초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카르텔에 공황의 지양을 기대하는 것은 공황의 원인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같은 책, 제20장 '공황의 성격변화와 카르텔과 공황) <BR> </FONT></P>
<P> 이처럼 힐퍼딩은 상호모순 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 카르텔의 발전으로 인해 공황은 일정 정도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힐퍼딩은 자본주의에서 독점의 발전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되는 한 독점체의 몰락이 전체 산업부문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공황의 파국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카우츠키와 힐퍼딩의 초제국주의론과 조직화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내부에서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거 또는 완화할 수 있다고 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개량주의적인 실천을 낳는다. <BR> </P>
<P> 결국 SWP 진영이 소련이 국가자본주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레닌과 부하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BR> </P>
<P> 국가 내부에 경쟁에 제한되고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 계급론'에서 미하엘 마우케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언급은 그것이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 통일을 의미하는 한 말할 것도 없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본들의 경쟁을 원리상 제거하는 체제는 자본주의를 이미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국가독점자본주의나 국가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총자본의 대변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단일한 자본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발생했지만 형식상 자본 위에 존재하는 자립적인 외양을 취한다.</P>
<P> </P>
<P> 소련 내에서 경쟁과 가치법칙의 작동을 증명해 보라는 주장에 대해서 크리스 하먼은 클리프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경쟁형태는 다름 아닌, 서로 다른 국가들에 소속된 경쟁적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다"라고 빠져나가고 있다. 정확히 쓰려면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들 사이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국가와 사적 자본주의 국가와의 군사적 경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BR> </P>
<P></P>
<P><STRONG>무기경쟁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는가? <BR> </STRONG></P>
<P> 소련이 자본주의였다는 가장 유력한 주장은 사실 무기경쟁이다. 하지만 무기경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무기경쟁이 한 사회의 지배적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군사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붇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도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가 자본주의 축적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BR> </P>
<P><FONT color=#767173>1990년에 GNP에서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퍼센트에서 5.4퍼센트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1980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크리스 하먼,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 <BR> </FONT></P>
<P> 일반적으로 무기산업에 대한 투자는 자본주의에서 사치품에 대한 소비와 마찬가지로 비생산적 소비영역에 속한다. 물론 무기 자체의 판매로 인해서 일부분 생산적 소비가 되기도 하지만 무기생산자체는 자본가 국가에게 잉여가치를 창출해주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 소비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위의 책에서 크리스 하먼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BR> </P>
<P> 소련에서도 무기경쟁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양식은 아니었다. 소련의 총매출액에서 무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을 넘어 설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소련은 단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몰락했을 것이다. 무기경쟁도 자본주의적 경쟁은 아니었다. 소련의 무기경쟁은 판매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제국주의로부터의 체제의 수호라는 측면이 가장 컸다.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위협이 없었다면 악의 화신 스탈린조차도 군사비의 상당 부분을 대중의 소비와 복지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기경쟁이 자본주의적 경쟁이었다면 무기경쟁에서 지면 무기산업의 몰락과 독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할 텐데 미국과 무기경쟁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미국이 소련 무기산업을 먹어치웠다는 괴상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BR> </P>
<P> 데릭하울은 '가치법칙과 소련'에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 경쟁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BR> </P>
<P><FONT color=#767173>무역량으로 볼 때 노동의 국제분업으로부터의 분리가 러시아 지배계급이 자국의 생산성과 그들 경쟁국의 생산성을 비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관료들이 상품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꾸준히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데릭하울,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가치법칙과 소련') <BR> </FONT></P>
<P>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경쟁은 교환을 전제로 하는 경쟁이다. 단순히 비교를 위한 지표로서의 경쟁을 어떻게 자본주의적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BR> </P>
<P><FONT color=#767173>그의 상품은 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 상품을 시장에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상품 소유자에게는 그것은 교환가치의 담당자, 따라서 교환수단이라는 점에서만 직접적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상품소유자는 자신을 만족시켜 줄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을 얻기 위하여 자기 상품을 양도하려고 한다. 모든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그것의 비소유자에게는 사용가치이다. 따라서 상품은 전면적으로 그 소유자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소유자를 바꾸는 것이 상품의 교환인데, 이 교환을 통하여 상품은 가치로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또 가치로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상품은 사용가치로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제1편 제2장 교환과정) <BR> </FONT></P>
<P><FONT color=#767173>자기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단순히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곧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상품으로 되기 위해서 생산물이 그 사용가치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교환을 통해서 이전되어야 한다)〈마르크스, 같은 책 제1권 제1편 제1장 상품〉 <BR> </FONT></P>
<P> 이처럼 소련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은 자신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사용가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물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무기생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용가치를 위해서 생산되고 교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에 의해서 소련 사회 내부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 <BR> </P>
<P> 소련에서 가치법칙은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상품의 교환을 규정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가-그 교환이 등가교환인 한-여기서도 지배한다. 다만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데 그것은 달라진 환경 하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노동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가 없으며 또한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개인적 소유권으로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 수단의 분배에 관한 한 상품의 등가 교환과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고 하고 있다. <BR> </P>
<P>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감가상각비나 사회적 복지(결국 노동자에게 귀결되는)를 제외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시간으로 환산해서 일종의 노동증명서를 통해 사회적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소비만큼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것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그 사회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다. <BR> </P>
<P> 마르크스는 이것을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를 토대로 한 협동적 사회 내에서는 생산자들이 그들의 생산물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 각 개인의 노동이 더 이상 간접적 방식이 아닌 직접적 방식으로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은 더 이상 생산물들의 가치 즉 생산물들이 소유하는 하나의 물질적 특질로는 표현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사회에서의 등가교환은 자본주의에서의 가치법칙과 달리 생산물 분배의 준거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R> </P>
<P>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시장기구를 통해 생산과 분배를 사후적으로 규제한다. 생산된 생산물은 판매를 하는데 이 판매가격이 가치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자본은 다른 생산영역으로 옮겨간다.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개인들의 사적노동으로 인해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생산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이것을 지배하는 법칙이 바로 가치법칙이다. <BR> </P>
<P><FONT color=#767173>"그렇다면 다시 가치법칙이란 어느 한 개인이 만들어낸 생산물이 시장에서의 판매를 통해 상품으로 전화되는 기제를 지칭하며, 따라서 그것은 가치의 결정에 반드시 요구되는 일종의 사회적 제약 내지는 그 범주로서 고유의 역할을 보유하게 된다"(정운영, 노동가치이론) <BR> </FONT></P>
<P> 소련에서는 비록 계획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이었지만 가치법칙에 의해 사후적으로 생산이 규제된 것이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해서 생산량, 목표량 등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무기경쟁을 가지고 외부적 경쟁이 소련 사회 내부를 규정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BR> </P>
<P>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소련이 사회주의였다면 어떻게 정치혁명이 없이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 그들은 소련이 본질상 차이가 없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사적자본주의로 이행했기 때문에 정치혁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의 해로 규정을 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1928년에 어떤 정치혁명이 일어났는지를 마찬가지로 답해야 한다. 지배계급 스스로 자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적 정치혁명을 했다는 말인가? 자기로부터의 정신혁명은 가능하지만 지배계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정치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를 희생하는 생산력주의, 농민에 대한 수탈, 노동자 권리의 박탈 등은 노동자 국가의 타락과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혁명은 아니다. <BR> </P>
<P> 그들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출발해서 관료적 지위로 올라갔다면 노동자 계급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노동자 계급적 요소는 조금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료는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자립화한 요소다. 그것을 (악의로의) 지양(止揚)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립화한 관료는 반동적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제스쳐를 취한다. 그것이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는 길이다. 소련에서 관료는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무기경쟁을 통해서 체제를 유지하고 노동자, 농민을 희생하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관료적 지위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BR> </P>
<P></P>
<P><STRONG>그렇다면 소련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STRONG><STRONG> <BR> </STRONG></P>
<P> 나는 관료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말하겠다. 이 주장에는 소련에 대한 모종의 환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공상적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라고 사회주의의 여러 유형을 나열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사회주의는 항상 과학적 사회주의일 수는 없다. 민족적 사회주의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을 두고 노동자혁명이 없었는데 어떻게 사회주의인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북한 지배층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자본주의가 저발전하여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중심부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일궈나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BR> </P>
<P> 그렇다면 관료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관료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한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련은 국유화 계획화라는 사회주의적 형식과 대비되는 사회주의에서 용인될 수 없는 관료적 내용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터져 버리면서 소련의 몰락을 낳았다. 물론 소련의 몰락에는 이런 내적 모순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압박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과 고립정책은 내적 모순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BR> </P>
<P> 남한에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사회주의적 계획화와 국유화라면 어떻게 저렇게 비효율적일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사회주의적 계획은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본질로 하는데 현실의 소련에서의 계획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사회주의적 계획은 언제나 효율적일 것이라는 관념의 소산이다. 사회주의적 계획도 노동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BR> </P>
<P> 채만수는 소련이 사회주의라고 보면서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하지만 스탈린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는 침묵을 한다. 채만수는 스탈린주의가 유럽혁명의 실패와 제국주의의 포위, 저발전한 자본주의에서의 혁명과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혁명 주체의 내전으로 인한 사망 등을 원인으로 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스탈린주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스탈린주의는 비판받을 것이 없고 역사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긴다. <BR> </P>
<P> 이에 대해서는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잘 비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스탈린주의가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소련의 몰락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다. 스탈린은 노동자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면서도 노농동맹을 주장했던 레닌의 정신을 버렸다. 현실적으로 농민의 비중이 상당한 저발전한 국가에서 혁명에 농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혁명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농민의 역할은 큰 것이다. 농민에게는 설득과 집산화를 통한 물적유인이 필요하다. 소농의 토지를 강제로 수탈하여 집산화할 수는 없다. 도리어 집산화된 협동조합이 소농 경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이 농민은 집산화에 참여할 것이다. <BR> </P>
<P> 그런데 스탈린은 중공업을 통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농민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통해서 강제 수탈했다. 노농동맹의 정신은 사라지고 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수치에 급급해서 농민을 원시적 축적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소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먼저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선의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식 생산력의 발전은 대중의 물질향상이 아닌 발전을 위한 발전이라는 관료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생산력주의를 독려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선성장 후분배라는 성장우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BR> </P>
<P>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보려면 파리코뮌을 보라고 했다. 레닌도 국가와 혁명에서 파리코뮌에서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노동자민주주의를 극찬했다. 그런데 파리꼬뮌은 베르사이유 군대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군대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려 있으면서도 이런 외적 극한적인 상황을 내적 민주주의로 극복하려고 했다. 파리코뮌 당시의 포위와 고립에 비하면 소련에서의 제국주의의 포위와 고립은 훨씬 더 극복하기 쉬운 고난이었다. 파리코뮌처럼 제국주의의 포위와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파괴 같은 어려움들은 오히려 소비에트의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이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죽어간 새로운 전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극복했어야 했다. <BR> </P>
<P> 그런데 스탈린은 공포정치를 통한 극도의 억압과 관료적 효율성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선다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이유를 들어 수많은 학살극을 벌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의 범죄이다. 계급투쟁은 급격한 내전기에 가장 격화된다. 그런데 내전이 끝난 이후에 계급투쟁이 격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탈린은 부르주아의 반혁명에 맞선다는 구실로 노동자, 농민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고 지배력을 강화했다. 노동자 국제주의의 원칙은 유럽에서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일국사회주의'로 변질됐다. <BR> </P>
<P>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의 간섭과 내부의 반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1919년 8차 당대회에서 조차도 분파를 금지하지 않았다. <FONT color=#6d201b>고도로 집중된 통일성을 발휘해야 하는 17년 10월 혁명 직전과 내전 이후 혼란기인 21년 10차 당대회에서 분파는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 내에서 경향적 흐름은 보장됐고, 이견자들의 문집발행 권리와 당중앙의 배포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상투쟁의 자유를 보장했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는 분파주의가 통제한다고 막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분파의 활동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활력 있는 당을 만들면서 분파가 분열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볼셰비키는 내부 분파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정립하면서 성장해 왔다. 대신에 레닌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라는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통해 행동의 통일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는 토론의 자유는커녕 동지에 대한 숙청만 있었다.</FONT> 당 내부의 이견을 가지고 동지들을 학살하고 숙청한다는 것을 제국주의의 포위라는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BR> </P>
<P> 레닌 당시의 당대회 규약과 실질적인 당대회 운영을 스탈린 시기의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BR> </P>
<P> 실제 레닌은 혁명기간 내내 끊임없이 소수자의 위치에 내몰렸다. 그럴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촉발해내면서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뒤마 선거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논쟁, 1917년 혁명 과정에서 4월 테제를 발표할 당시의 논쟁, 혁명 이후에 독일과의 강화협정을 맺을 때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은 격렬한 반대와 반발에 직면했다. 하지만 레닌은 치열한 토론과정을 통해 이를 돌파해 나갔다. 레닌 주변의 동지들은 레닌의 입장에 대해서 "반볼셰비키적이다", "레닌이 드디어 맛이 갔다"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레닌은 플레하노프처럼 멘셰비키로 전향한 동지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설득을 통하여 함께 할 것을 설득했다. <BR> </P>
<P> 레닌이 독일과의 강화조약을 주장하던 혁명 이후의 당대회를 보면 부하린이 레닌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혁명 이후면 레닌의 권위가 가장 높을 때다. 하지만 토론에 있어서는 그 권위는 조금도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규약에도 이런 반대의견의 제출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이 돼 있었다. 심지어 의사 결정 이후에 비판의 자유도 보장이 됐다. 중앙위원회의 독일과의 강화조약 결정에 대해 몇몇 지방조직에서는 이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공표하기조차 하였다. 레닌은 지방조직의 주장을 반박하는 비판을 제기했지만 그 태도표명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닌은 이러한 비판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BR> </P>
<P><FONT color=#767173>단독강화의 문제로 중앙위원회와 날카롭게 의견을 달리하는 동지들이 중앙위원회를 엄하게 비판하고 분열의 불가피성에 대한 확신을 표명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이는 모든 당원이 갖고 있는 더할 바 없이 정당한 권리이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藤井一行 볼셰비키 당조직론) <BR> </FONT></P>
<P> 하지만 스탈린주의가 뿌리박힌 당대회는 한마디로 모든 대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 토론 대신에 이견자는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당내에서 트로츠키를 비롯한 좌익반대파를 추방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독점한 1930년대에 열린 16차 당대회와 1934년 17차 당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영웅숭배적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BR> </P>
<P><FONT color=#767173>특히 이 대회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찬미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등단자는 보고나 발언 속에 스탈린의 '위업'을 칭송하게끔 되었고, 발언 도중에도 스탈린의 이름이 나오면 대회 대의원들은 당연히 '총기립'하여 '폭풍과 같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박수'를 보내야 했다. 결정을 '전원일치'로 채택한 것도 물론이지만 일부 의안을 제외하고는 결의안을 작성하는 위원회조차 거의 설치되지 않게 되었다.(같은 책) <BR> </FONT></P>
<P> 스탈린 시대에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의 실질적인 내용과 형식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34년 제17차 당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 하에서 숙청에 대한 새로운 규약도 마련되었다. <BR> </P>
<P>1. 계급적으로 이단이며 적대적인 분자. </P>
<P>1. 당을 속이고 당에 대하여 자신의 본래의 견해를 숨기며 당의 정책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면종복배자(面從腹背者) </P>
<P>1. 당과 국가의 철의 규율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파괴하는 자. </P>
<P>1. 부르조아분자와 유착하고 있는 변질자. </P>
<P>1. 출세주의자, 이기주의자, 관료화된 분자. </P>
<P>1. 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당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당의 깃발을 더럽히는 도덕적 부패자. </P>
<P>1. 당원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강령, 규약, 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습득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 <BR> </P>
<P> 물론 당의 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규약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규약대로 한다면 '걸려들지 않을 자'는 하나도 없다. 특히 면종복배자를 숙청한다고 하는 규약은 반대파를 완전 제거하는데 무한한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당내 비판의 자유 제거는 당을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당독재'로 전환시켰다. <BR> </P>
<P> 소련의 몰락 이후에 스탈린주의적인 당운영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론을 '일괴암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주의의 당운영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 당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운영된 볼셰비키의 전위정당과도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스탈린주의적인 당독재는 오히려 전위정당의 핵심 정신이 무너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게 된 것이다. <BR> </P>
<P> 소련 사회는 소비에트의 실질적인 부활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의 고양 등을 통해 외적 고립을 내적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가 되어야 했다. 혁명적 주체 없이 혁명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 후르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혁명적 주체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관료적 개혁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척결이 아니라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의 새로운 양산에 불과했다. 관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적이 되어야 했다. <BR> </P>
<P> 유럽에서의 혁명의 실패는 혁명 주체들의 문제도 있지만 스탈린의 잘못된 개입에 의한 측면도 크다.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서 독일 사민당과 반파시즘 통일전선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민당을 파시즘과 한편으로 몰아갔다. 사민당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반면 중국혁명에서는 이에 대한 오류를 극복한다는 것이 너무 멀리 나아가서 중국공산당과 국민당과의 합작을 주장하면서 공산당의 해체를 조장했다. 결국 대외적인 고립도 스탈린 스스로의 잘못된 원칙과 전술에 기인한 좌우편향적인 정책에 기인한 것이 많다. <BR> </P>
<P> 이런 측면에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과의 전술적인 차이는 크게 없다고 본다. 여전히 소련사회의 몰락의 원인에 대한 치열한 모색은 계속되고 소련 사회 구성체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 풍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BR> </P>
<P>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을 한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의 우위성을 보증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되려 스탈린주의의 오류를 자기 것으로 해서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 다시 스탈린이 처한 처지에 똑같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혁명은 일국에서 비롯된다. 동시적 세계혁명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혁명의 일국적 고립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돌파할 것인가? 는 혁명 주도 세력이 직면하는 가장 큰 난관이 될 수 있다. 혁명 과정에서 내전을 통해 생산력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혁명을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BR> </P>
<P> 자본주의는 무정부적 생산과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라는 자신의 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위기를 낳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원칙과 원리로부터 멀어져 갔기 때문에 몰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원리와 원칙에 충실할 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는 정정 가능하다. 여기에 다시 한번 역사발전의 추동력이 있는 것이다. <BR> </P>
<P>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하는 시도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저발전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남한 자본주의는 자본의 과잉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당시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다. 따라서 내전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당시 혁명 러시아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을 것이다. <BR> </P>
<P> 당시 볼셰비키에게는 혁명의 성공과 유지에 있어서 사활적이었던 농민에 대한 고려도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 사회였지만 인구비율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었다. 남한에서 농민은 대부분 노동자화 되거나 반프롤레타리아화 되고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나 한·칠레 무역 협상 등으로 인해 남한 농업은 소농이 몰락하고 있다. 세계의 거대 농업과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한에서도 점점 더 집산화된 대규모 자본이 진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트화는 점점 더 진척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농업뿐만 아니라 자본의 독점화에 의해서 몰락이 가속화되는 쁘띠부르주아 등 산업전반에서 아군을 점점 더 충원받게 될 것이다. <BR> </P>
<P> 러시아에서는 관료와 자본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했다. 이것은 신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기노조, 연전노조, 교수노조 등이 생겨나면서 전문가 집단들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관료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등장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국가 운영의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은 사회주의 계획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BR> </P>
<P>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관료화를 막는 객관적 조건의 하나이다. 결국 관료주의를 막는 관건은 주체의 능동성과 의식성이 얼마나 고양되어 있는 가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물적토대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는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심화된 위기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자본주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의 전세계적인 위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같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타나면서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반동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직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쟁반대를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BR> </P>
<P> 이제 노동자 국제주의는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닥치고 있다. 이러한 혁명을 위한 물적토대의 강화라는 객관적인 필연성을 주체적인 역량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다. 소련의 몰락은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 주었다. 이것이 소련 사회의 성격을 두고서 논쟁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BR> </P>
<P>-끝- </P>
<P><FONT color=#0021b0>**이 글은 2003년 4월 26일에 있었던 '사회주의 정치 운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토론회에 제출되었던 글이다. 이 글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퍼왔다. <BR> </FONT></P>
<P><A class=con_link href="http://www.bolshevik.org/hangul/miscel/baek.htm" target=_blank><FONT color=#800080>☞ 관련 페이지 보기</FONT></A><BR></P><br /></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32,'/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32+%22%EB%82%A8%ED%95%9C%20%EC%82%AC%ED%9A%8C%EC%A3%BC%EC%9D%98%20%EC%9A%B4%EB%8F%99%EC%9D%80%20%EB%AC%B4%EC%97%87%EC%9D%84%20%EA%B0%80%EC%A7%80%EA%B3%A0%20%EC%8B%9C%EC%9E%91%ED%95%A0%20%EA%B2%83%EC%9D%B8%EA%B0%80%3F%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32&t=%EB%82%A8%ED%95%9C%20%EC%82%AC%ED%9A%8C%EC%A3%BC%EC%9D%98%20%EC%9A%B4%EB%8F%99%EC%9D%80%20%EB%AC%B4%EC%97%87%EC%9D%84%20%EA%B0%80%EC%A7%80%EA%B3%A0%20%EC%8B%9C%EC%9E%91%ED%95%A0%20%EA%B2%83%EC%9D%B8%EA%B0%80%3F"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32&title=%EB%82%A8%ED%95%9C%20%EC%82%AC%ED%9A%8C%EC%A3%BC%EC%9D%98%20%EC%9A%B4%EB%8F%99%EC%9D%80%20%EB%AC%B4%EC%97%87%EC%9D%84%20%EA%B0%80%EC%A7%80%EA%B3%A0%20%EC%8B%9C%EC%9E%91%ED%95%A0%20%EA%B2%83%EC%9D%B8%EA%B0%80%3F','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32?commentInput=true#entry3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몸으로 하는 공부?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1002006-05-05T02:24:13+09:002006-05-05T02:24:13+09:00<P>강유원 잡문집, 『몸으로 하는 공부』, 여름가지, 2005.</P>
<P> </P>
<P><FONT color=#008000>이 책은 서평 형식의 글로 짜여진 것이 아니라 강유원의 홈페이지 ‘</FONT><A class=con_link href="http://www.armarius.net/" target=_blank><FONT color=#008000>armarius.net</FONT></A><FONT color=#008000>’에 연재했던, 책과 세상에 대한 강유원의 잡문집이다. 책 마지막에 실린 <내가 공부하는 방법>은 인터넷 공간에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나도 본 적은 있는 듯하다. 나름대로 철학이 담긴 공부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나 이렇게 공부할 수 있을까. 강유원은 교수와 학자, 학내의 지식인과 학교 밖의 지식인을 구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조소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나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와닿는 충고가 될지... 그래도 이런 공부하는 방법을 본 것은 재수할 때 이후 처음이다. </FONT></P>
<P><FONT color=#008000> </FONT></P>
<P><FONT color=#008000>글이 쉽게 읽힌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강유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그 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옮긴 이유이고...</FONT></P>
<P> </P><br /><p><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계속 보기...</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br /><P><STRONG>01. 말하기와 글쓰기</STRONG><BR> <BR>우리가 <U><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자신의 지적 호기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그것을 채우는 과정을 체득했으냐 그렇지 않느냐</FONT></U>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길러지는 자질은 머리에 쌓는 지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자질을 기르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BR>어려서부터 글로만 이루어진 텍스트 읽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책을 읽어 지식을 넓히려 해도 책 읽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다. …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글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꾸욱 참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읽는 일부터 해보자. 이런 점에서 글읽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야 책이 손에 잡힌다. 책이 손에 잡혀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17-18쪽)<BR> <BR><STRONG>02. 머리로 알기, 몸으로 해보기</STRONG><BR>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고 전체를 이론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태의 실상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줄 아는 것</FONT>이다. (21쪽)<BR> <BR>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해석을 "(예를) 배우고 때를 정하여 (제자들이 함께 모여) 실습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하였다. <BR>누군가 뭘 '안다'고 말하면 '해봤어?' 라고 한번쯤 물어서 그의 지행합일 정도를 측정해보자! (21-22쪽)<BR> <BR><STRONG>03. '안다'는 것</STRONG><BR> <BR>사람들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건 뭘 배우고 알게 되며 그렇게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한다. … '내가 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할 때에는 항상 '이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한다. 따라서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앎에 대한 참다운 자세를 가진 사람은 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FONT>. 즉 그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U><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을 주제파악이 잘된 사람</FONT></U>이라고 할 수 있다. <BR>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아는 체하면 영원히 아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스스로가 아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면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데, 그런 상태가 계속되어 자기 최면에 걸려서 나중에는 아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도 속게 된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과감하게 말하자 '나는 그것을 모른다'고.<BR>이것은 지식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 남들은 자기가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모른다'고 말하면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자신의 지식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좋지만, 모르는 것은 겸손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 (28-29쪽)<BR><FONT color=#008000>→ 나에게는 이런 면이 부족했던 것 같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남들이 나의 허상을 볼수록 내가 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고시생 경력으로 인해 '몰라도 아는 척, 조금 알아도 다 아는 척, 책표지만 봤어도 책을 다 읽은 척 …' 이런 척하는 자세가 고시에 합격하기 위한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잘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내가 '앎'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FONT><BR> <BR>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 '할 줄 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머리로 익힌 것을 몸으로 해봐서 할 줄 아는 단계로까지 가야 어느 정도 앎의 완성에 접근해간 것이다. 이것이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이다. (30쪽)<BR> <BR><STRONG>04. 책의 속살과 껍질<BR> <BR>05. 책 따로, 세상 따로<BR> <BR>06. 지식인은 어떻게 먹고 사는가<BR></STRONG> <BR>어떤 개인 회사 사장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일하라'고 한다면, 일단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건 사장 몰래 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 아닌 한, 또는 자신이 회사의 주인일 수 있는 일종의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즉 사장이 유일한 주인임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고 말만 그러하다면 그건 멋있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54쪽)<BR><FONT color=#008000>→ 연구소 조직도 마찬가지이겠지?</FONT><BR> <BR>교수가 될 사람은 겉으로는 자신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 논문을 쓰고 학생을 위하여 강의를 한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러하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본질적인 관계가 아니다. 논문 주제를 학문적 관심에만 근거하여 선택하기보다는 학계의 동향, 여러 가지 역학 관계, 취직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 등을 따져서 하기 때문이다. 지도교수와 관련된 중요한 행사가 겹치면 아무 생각 없이 주저 없이 갈등 없이 학생을 위하여 강의를 하러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62쪽)<BR><FONT color=#008000>→ 강유원은 교수와 학자를 구별하여 대비시키면서 교수를 폄하한다. 특히 최근에 모 교수가 총장이 되려고 하는 것과 관련하여 가까운 다른 교수들이 수업을 등한시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현실적인 이해라고 보았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BR></FONT> <BR>이런저런 대책을 추상적으로 늘어놓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아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것 하나를 해결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번져나가는 파급효과에 의해 다른 것들도 저절로 해결되는 단서를 잡아야 한다. <BR>사립대학의 학생들이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교수나 시간 강사들에게 '학생을 위하여 강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각인시키는 일이다. 교수나 강사들이 이를 철저하게 자각하고 학생들을 주인으로 대우하게 되면 나머지 일들은 쉽게 해결된다. 교수와 강사들은 학생을 포함한 대중들을 위해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는 일도 신경을 쓸 것이며, 이는 지식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63쪽)<BR> <BR>교수와 학생의 지위가 평등하다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과 교수의 권위는 별 관계가 없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교수의 권위는 그가 가진 학문적 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학생들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것</FONT>이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교수와 강사들에게 학생들이 주인임을 자각하게 하려면 이를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하고, 이 장치는 교수나 강사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FONT>. 즉 그들의 밥통을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쿠폰제'라는 말로 집약된다. <BR>강의평가제가 실시되는 대학들이 제법 있다. 이거 말은 쉬운데 시행은 어렵고 효과는 불투명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미친 척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밥통을 건드리지 않는 한 효과는 없다. (64-66쪽)<BR><FONT color=#008000>→ 쿠폰제라는 게 시장기제적 성격을 가지기는 하지만, 의미있는 제안이라고 본다. <BR></FONT> <BR><STRONG>07. 지식인과 매스미디어</STRONG><BR> <BR>현대의 지식인은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식인이 시민이나 대중을 만나려면 먼저 미디어를 만나지 않으면 안되며, 그에 따라 미디어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지식인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69쪽)<BR> <BR>유명 지식인들은 무슨 이슈가 있을 때면 미디어에 등장해서 떠들어댄다. 겉보기에는 지식인 자신의 주의주장을 펴는 듯하지만 그들이 매스미디어에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미디어의 검열을 거쳤음을 의미하므로, 그들의 주장은 미디어가 선택한 미디어의 주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유명하기는 하나 당파성은 없다. 좌파 분위기를 내는 이들도 가끔 눈에 띠기는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명성에 굶주린 거지일 뿐이다. … 토론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격렬하게 대립한다 해도 그들은 '미디어가 선택한 자'들이라는 패거리에 속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텔레비전에 대하여』에서 그들을 이렇게 규정한다.<BR>"일회용 사고의 전문가들이며, 방송인들은 그들을 '단골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안심하고 초대할 수 있는 자들이며, 타협적인 사람들이고, 어려움을 만들지 않으며, 말썽을 피우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73쪽)<BR><FONT color=#008000>→ 전반적인 논지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것에 수긍할 수는 없다. 매스 미디어에 대한 선입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를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당파적인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고 본다. 미디어가 선택하지 않은 자들이 당파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파성은 대중매체에의 노출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BR></FONT> <BR>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 않다. 둘뿐이다. 체제 안으로 흡수-고용co-opt되어 살아가거나, 아니면 꿋꿋이 살아가거나뿐이다. (75쪽)<BR> <BR><STRONG>08. '문화'라 불리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STRONG><BR> <BR>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던 백남준의 작품을 '구경'나와 보았던 광주 인근의 시골 할아버지는 '뭐여, 별 희한한 게 다 있네' 하지 않았을까? 그걸 고도의 문화적 창작이라 한 사람은 몇 안되었을 것이다. <BR>한국 사람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을 것이다. …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듯이 -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 문화는 먹고사는 자리나 방식과 따로 놀 수가 없는 것이다. <BR>그런 점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찍어주고 먹고사는 사람에게도 문화가 아니다. 그의 아트가 문화로 보이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먹고사는 게 해결되고 비디오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쳐 볼 수 있는 이들뿐이다. (82-83쪽)<BR> <BR><STRONG>09. 리영희의 '객관성'</STRONG><BR> <BR>나는 이른 바 '내 인생의 책'이 없다는 것에 스스로 의아해한다. 그러나 나는 이게 좋다. 책이 영물이기는 하나 딱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면 얼마나 내 인생이 풍부하지 못하냐 싶은 것이다. <BR>한 권의 책, 하나의 사건이 삶에 있어서 하나의 계기가 되고 그것에 다시 또 하나의 계기가 이어져서 그러한 계기의 사슬들이 삶을 구축해나간다. 그렇다면 그런 계기들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들이므로 하나도 버릴 게 없다. - 이런 식으로 따지는 게 이른바 '방법론적 전체주의'다. (85쪽)<BR><FONT color=#008000>→ 나에게도 '내 인생의 책'은 없다. 있더라도 한 두 권이 아닐 것이다. </FONT><BR> <BR>리영희의 『반세기의 신화』 제2부 '우상과 신화의 정체'에 묶인 글들에 일관되고 있는 리영희의 태도는 객관적 보고서를 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BR>"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시민의 개인적 작업이므로, 필자로서는 소론의 결론이나 부분적 기술이 전부 옳다고 고집할 생각은 없다. 작으나마 학문적 시도이므로 과학성과 논리성의 인도를 받으면서 진실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만족할 것이다." (87-88쪽)<BR> <BR><STRONG>10. 한국 '문화' 탐구 방법론</STRONG><BR> </P>
<P>'일상의 파시즘', '내 안의 파시즘'에 대해 떠들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챙겨서 살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 '남의 파시즘'은 타기해야 하지만, 내가 저지르는 파시즘은 용서가 된다. <U><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나도 실천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 주의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죄악</FONT></U>이다. (91쪽)<BR> <BR>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에서 시도하는 '합리적인 설명'<BR>"아주 기이하게 보이는 신앙들이나 관행들이라 해도 면밀히 검토해보면, 평범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상황, 욕구, 활동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 …… 진부하고도 통속적인 원인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그것들이 성, 에너지, 바람, 비 등등의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현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현상들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91쪽)<BR> <BR>마빈 해리스가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어』(황금가지)를 쓴 목적은 앞의 책과 마찬가지이며, 다만 분석 대상이 다를 뿐이다. 앞의 책이 원시 사회나 종교적 금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미국 사회의 경제, 여성, 범죄, 문화 등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다룬다. 하지만 목적은 똑같아서, 이 책은 "이성을 통해 자연과 문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 노력은 '계몽'의 시도이다. (95쪽)<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계몽은 늘 필요하다</FONT>. 제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어보려는 사람은 늘 너무나 적다. 제정신일 뿐만 아니라 영악하고 탐욕적인 놈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놓고 그 틈바구니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전개된 이후 세상에는 천재지변을 빼고 우연히 일어난 사례란 하나도 없다. 모든 일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소해 보이는 사회적 현상도 따지고 들어가 보면 분명한 원인이 있고 그 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이와 이익을 보면 놈이 분명히 갈린다</FONT>. (96쪽)<BR> <BR>어떤 사회를 설명하는 방식 중 "도덕적,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은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문화의 '상부'-도덕적ㆍ정신적 가치 - 의 변화보다는 '하부' - 소속원들이 일상생활을 꾸려 나가는 구체적인 행동방식 - 의 변화를 먼저 살피는 게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유리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대학생들이 교수들을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면 대학생들의 머릿속을 뒤져서 버르장머리 제거 바이러스를 찾아내기보다는 대학이라는 곳이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어떻게 변했으며, 그 변화과정에 교수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따져보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BR>이는 일종의 물질주의적인 것이다. 마빈 해리스가 미국 사회의 변화를 고찰하는 태도가 이것인데, 그는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들인 "미국의 제품과 서비스, 인플레이션, 가정생활, 섹스, 범죄, 복지, 종교 등에서의 성격 변화와 미국의 직업조직, 작업 방식, 노동 인구의 성비 등에서의 변화" 등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97-98쪽)<BR> <BR>미국의 흑인들 중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다수는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생활을 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범죄 행위가 희생이라기보다는 기회로, 일탈 행위라기보다는 생업으로 …… 월등한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이 된다. 그러므로 "미국 도심지의 거리를 위험 지역으로 변화시킨 노상강도들은 천성적으로 폭력과 범죄에 대한 욕망을 지닌 병적인 타락자들이 아니다. 노상강도질은 이들의 직업이다". (100-101쪽)<BR> <BR>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이를테면 정보화 사회라는 말로 치장되고 있는 서비스 중심경제로의 이동,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선 이혼율과 그에 이은 청소년 범죄의 증가 등은 어쩌면 물질주의적 틀로써 해명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가장 적절한 해명일 것이다. (103-104쪽)<BR> <BR><STRONG>11. 패스트푸드 전체주의</STRONG><BR> <BR>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면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우리의 마음에 새삼스럽게 의식되지 않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새삼스럽게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문화가 아닌 것이다. (106쪽)<BR> <BR>패스트푸드의 범람을 막는 일은 경제활동구조와 관계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각성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전 사회적ㆍ국가적 급식 시스템과 농업생산 시스템의 뒷받침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즉 패스트푸드 문제는 개인의 입맛이 아닌 사회적 밥통의 문제인 것이다. <BR>'패스트푸드'는 사실 현대사회, 특히 아메리카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즉 이제 단순한 음식이 아니고 그것 안에 아주 다양한 습관과 관행, 심지어 문화까지도 포괄한다. <BR>패드트푸드의 대명사는 맥도날드다. 그런데 이제 맥도날드는 일종의 사회ㆍ경제적 현상을 가리킨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맥도날드화 McDonaldization'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더 많은 부문들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FONT>을 의미한다. 이 규정은 원제가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인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라는 책에 나오는 것이다. <BR>이 책의 저자인 조지 리처에 따르면 "네 가지 매혹적인 특성이 맥도날드 모델, 좀 더 넓게 말해 맥도날드화의 성공을 이끄는 핵심이다. 간단히 말해 <U><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맥도날드는 고객과 종업원, 지배인 모두에게 효율성 efficiency, 계산가능성 calculability, 예측가능성 predictability, 그리고 통제 control를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FONT></U> 그리고 이 네 가지 특성은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맥도날드의 경영전략일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가 움직여가는 기본적인 작동원리이면서 동시에 특정집단에 속한 인간 전체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즉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방법</FONT>이기도 하다. (108-110쪽)<BR> <BR>현대사회에서 기업은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 인생과 온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윤창출의 대상이 된다. … 끊임없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유포하고, 계절신상품을 출시한다. 계속적인 소비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정부를 움직이고 반대세력을 무력화시켜서 우리의 인생전체를 기업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자본주의 기업의 전체주의'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바로 '맥도날드화'인 것이다. <BR>자본주의 국가라 해도 정부는 원칙적으로 국민들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경제체제와는 무관하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 부른다. 그런데 기업은 민주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최고 경영진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 기업은 철저한 독재체제이자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런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기업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가의 정책에 심각하게 관여해서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그 국가의 민주성은 형편없어진다. 즉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은 가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기업에 의한 사회지배가 실행되는 것이며,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의한 일상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FONT>. <BR>우리의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일상을 파고 들어와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FONT>이다. 정치적 형태의 전체주의가 농약이라면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는 생물학적 오염과 같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도 모르게 기업의 전체주의 지배를 돕고 있으나,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을 겨누고 있다는 절 알고 있다. 빤히 알면서도 어쩌질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파시즘'의 본질적 내용이요, 그것을 '패스트푸드 전체주의'라 할 수 있겠다. (113-115쪽)<BR><FONT color=#008000>→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다. <BR></FONT> <BR><STRONG>12. 노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BR></STRONG> <BR>멘탈리티는 정신적인 것을 주입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육체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생겨난다. (120쪽)<BR> <BR>구체적으로 누가 위에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고 사는 것만이 노예처럼 사는 건 아니다. 그것의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옳고 그름이 검증되지 않은 채 사회에 떠돌아다니는 풍문에 자신의 삶을 맡겨서 사는 것도 노예처럼 사는 것</FONT>이다. … 그러나 따져보면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이렇게 살아도 한 세상이고, 저렇게 살아도 한 세상이다. 그러니 뭐 '의미'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하면서 사는 건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 (하지만) 인생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다. (125-126쪽)<BR><FONT color=#008000>→ 역설적인 비유</FONT><BR> <BR>선택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급기야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고 싶어진다.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위력의 결정과 선택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저 윗사람의 입에서 떨어지는 '명령'에 내 머리를 맡긴 채 묵묵히 그것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명령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소시민이 어떻게 해서 유태인 학살계획을 담담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었는지를, 그리하여 아무 생각 없는 평범함 banality이 바로 현대인의 악의 원천임을, 즉 악의 평범성을 증언해주고 있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FONT>. …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21세기적 인간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BR> <BR><STRONG>13. 학문의 세 가지 태도</STRONG><BR> <BR>인문학적 태도는 현존의 것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확고하고도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한다. 의심은 모든 학문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태도이다. … '인문학의 위기'의 본래적인 의미는 현존의 사태를 의심하고 확실한 것을 모색하고자 하는 '인문정신의 위기'이며, 이런 점에서 볼 때 현대인들은 무비판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BR>인문학적 태도인 의심은 진정한 지식 추구의 출발점이고 사태의 고정성을 깨뜨리는 힘이기도 하지만 완결에 이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 따라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인문학적 태도가 좀 심하다 싶은 사람은 지나친 의심을 거두고 사회ㆍ역사적인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BR>사회과학적 태도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 파악을 중요하게 여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 태도의 기본적인 목표이다. 이 태도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해도 더 나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단지 그 사태를 밝혀주는 증거를 나열할 뿐이다. … 자료의 객관성을 검증하고 그것의 단단함을 점차로 확보해나가는 것을 사회과학적 탐구라 할 수 있다. <BR>공학적 태도는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을 찾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는 실용적 태도이다. …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천까지 고려하지 않는 탐구는 그저 탁상공론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공학적 태도가 어떤 의심 없이 객관적인 사실 확인 없이 무조건 실용성만을 따라간다면 이는 유사공학적 태도이다. (131-136쪽)<BR> <BR><STRONG>14. 철학의 현실적 쓸모</STRONG><BR> <BR>수영은 물속에서 해나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한번 해보고 나서 물가로 나와서 자기점검을 해보고, 그 점검을 바탕으로 다시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해보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수영을 배울 수 있다. 이 과정을 대상과 자기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진리에 이르는 탐구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142쪽)<BR> <BR>형식논리학이 우리의 일상에서 일정한 지표의 역할을 하려면 그걸 배우는 과정에서 이러한 형식성을 넘어서 진정으로 비판적인 내용까지도 담아야 하며, 이는 논리학을 가르치는 이들이 논리학의 형식만이 아니라 세상의 내용까지도 챙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R>그것이 올바른 규칙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배우는 것은 나중 일이다. 세상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물가에서 수영하는 흉내를 먼저 낼 것이 아니라, 일단 물속에 들어가본 다음에 자세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세상을 들여다본 다음에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제대로 된 것인지 궁금할 때 논리학의 형식을 이용할 수 있다. (144쪽)<BR>내가 보기에 우리가 자신의 판단을 검토할 때 고려해야 할 검증기준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느닷없는 엮기' - 논리학에서는 cogito interruptus라 한다 - 이고, 다른 하나는 사태가 속한 차원을 혼동하는 범주의 오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뭐든 도매금으로 속단해 버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145쪽)<BR><FONT color=#008000>→ 내가 글을 쓸 때 자주 범하는 오류들이다. 특히 선동적인 글을 쓸 때 그러한데,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쩝...</FONT><BR> <BR>철학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여는 바로 비판적 사고 -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인지 의심하고 검토해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처한 구체적 관계 속에서 그 진실을 확인하려는 태도 -를 늘리는 데 있어야 한다. (147쪽)<BR> <BR><STRONG>15. 방법론적 시니컬</STRONG><BR> <BR>나는 '삶이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을 다른 방법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에 대해서 깊이 따져 봄으로써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나,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이다. <BR>그런데 여기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워낙 변화무쌍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철학은 본질에 대한 학문이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철학적 탐구인 사회ㆍ역사철학 역시 본질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데, 변하지 않는 본질은 영 찾아내기가 어려워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사회에 관해서도 상대적 개념과 잠정적인 규정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나를 시니컬하게 하지만, 나는 이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시니컬'은 철저하게 본질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론적 시니컬일 뿐이다. (158쪽)<BR> <BR>내가 특정이념을 신봉하지 않는 것은 이념이 덧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념 이전에 인간이 있었으니 이념이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게 못된다. 나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이론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내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받아들인다. (161-162쪽)<BR> <BR><STRONG>16. 고전의 힘</STRONG><BR> <BR>마키아벨리가 훌륭한 지도자의 예로 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장한 예언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언'을 오늘날의 말로 풀어보면 '비전'이다. 리더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 비전을 제시하는 과정이 설득이고, 설득을 위해서는 지식과 겸손이 필요하다. 단편적인 정보의 묶음이 아닌 사태를 처음부터 끝가지 꿰뚫어서 파악한 지식이 있어야만 오늘을 분석하고 앞날을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 해도 그것이 겸손한 형식 속에서 표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165-166쪽)<BR> <BR><STRONG>탈 아카데미즘의 길목에서 <BR></STRONG> <BR><STRONG>내가 공부하는 방법<BR></STRONG><FONT color=#008000>→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동기를 부여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줄은 책을 살 때에는 몰랐다. 나답지 않게 이런 책을 사다니...</FONT><BR> <BR>교수는 교수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바를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강의를 성실하게 하는 교수, 개념을 철저하게 따져서 강의하는 교수, 무슨 일이든지 원칙대로 처리하는 교수, 자신은 늙은이면서도 일 학년 학생에게도 반말하지 않는 교수, 리포트를 써내면 빨간 펜으로 고쳐서 되돌려주는 교수, 어떤 일이 있어도 학점을 고쳐주지 않는 교수, MT도 공식행사라면서 반드시 참석하며, 그것도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가는 교수. 이렇게 처신하는 교수는 강의 시간에 늦게 들어와서 일찍 나가는 일도 없고, 무슨 보직을 맡을 겨를도 없으며, 어디에 잡문을 쓸 여가도 없고, 텔레비전에 나갈 시간도 없고, 정치에 돌릴 눈은 더욱이나 없다. 이런 교수가 있다면 계속해서 강의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빨아들여야 한다. <BR>이런 교수에게 공부를 배우면 우선 개념 따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것부터 시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부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원칙대로 처리하는 걸 배울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뒤죽박죽되어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되돌아올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아무리 어린 사람이어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세상은 나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인격으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제대로 된 삶이 기초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공부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서도 기본이다. (177-178쪽)<BR><FONT color=#008000>→ 젠장... 아무래도 나는 교수할 타입은 아닌 모양이다. </FONT><BR> <BR>지도 교수 또한 지도 교수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바를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도 학생에게 잔심부름시키지 않는 교수, 자기가 쓴 논문을 자기가 타이핑하고 편집까지 하는 교수, 출판사에서 넘어온 교정본을 자신이 교정보는 교수, 새로울 것도 없고, 치열함은 더더욱 없이 사교장으로 변해버린 학회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교수, 대학원 수업 시간을 꽉 채우고 끝내는 교수, 고전만 붙잡고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그것만 읽히는 교수, 논문 주제를 상의하면 <알아서 써보라>고 하는 교수, 막상 논문을 써 가면 주격 조사나 접속사부터 따지는 교수, 논문 인용문의 원전을 죄다 찾아보고 잘못된 번역과 적절치 않은 인용을 지적해주는 교수, 이렇게까지 해놓고도 <지금까지는 문장 연습과 논문 쓰기 연습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주제를 잘 정하고, 본격적으로 써보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교수, 자신이 정한 기준에 합당치 않으면 아무리 여러 학기가 지나도 결코 논문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교수, 같은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가진 견해와 달라도 학생의 주장이 논리적이면 인정해주는 교수, 자신에게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에게 다른 학교 강의 하나 알선해주지 않는 교수, 아무리 오랜 세월을 공부해도 두 사람의 거리가 딱 그만큼에 멈춰 있게 하는 교수. <BR>이런 지도 교수 밑에서 배우면 공과 사를 분명하게 하는 법을 배운다. 고전만 붙잡고 앉아서 공부를 했으니 기본이 튼튼해진다. 게다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소홀히 읽는 일이 없게 된다. 무슨 문제든지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문장 쓰는 훈련을 하므로 자신의 언어로써 생각하고 말하는 힘이 길러진다. 공부 가르쳐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을 안 써주니까 학생도 자연히 쓸데없는 데 신경 안쓰고 공부만 하는 습성이 생긴다. (179-180쪽)<BR><FONT color=#008000>→ 이것도 당연히 어렵다. 뭘 할 수 있을까.</FONT><BR> <BR>선생님 없이도 공부하는 방법을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BR>베끼기 없이 <내 철학> 해봤자 남는 건 처치할 길 없는 거만과 아무런 맥락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란한 단어들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한 사람조차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지껄이기 마련이고 남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자신의 철학이 그 만큼 심오하기 때문이라는 도취에 빠지며 급기야는 도사가 된다. (182쪽)<BR> <BR>철학사를 읽든 철학의 제문제를 읽든 주의할 점은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한다. 누가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만 읽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아네게는 중요한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베끼기는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FONT>. … 베끼기는 독학이 가져다주는 폐해도 막아준다. 독학하는 사람은 어떤 분야의 책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기 마련이다. 역사적인 연관이나 주제의 관련성에 유의하지 않고 읽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그 결과 아는 게 많아져서 장광설을 쏟아놓는다. 게다가 그들은 최근의 것 what's new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서 항상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장광설은 사라지고 말을 더듬게 되며, 그 점을 지적하면 원래 제대로 된 공부는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우격다짐을 하곤 한다. … 어쨌든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베끼기를 거치지 않은 독학은 시간낭비, 지적인 허영일 뿐이다. 베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체득하는 이점이 있다</FONT>. (183-184쪽)<BR> <BR>베끼기를 열심히 하여 기초를 다졌으면 구체적인 자기 공부에 들어갈 차례다. …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공부 주제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여야 한다. 실존적인 차원에서 고민해 본 문제를 다듬어서 철학적 주제로 삼는 것</FONT>이다. 별로 해주는 것 없이 규제만 하고 세금만 잔뜩 걷어 가는 국가가 못마땅했으면 국가론을 주제로 삼아보다는 것도 좋다. … 주제를 이런 식으로 정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거, 남들이 하는 거 붙잡아서 공부하다 보면 유행이 지나서 말짱 헛것이 될 수도 있고,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만 하게 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공부는 얼마 가지 않아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185쪽)<BR><FONT color=#008000>→ 프로포절을 어떻게 할지 고민된다. 바꾸어야 하나.</FONT><BR> <BR>탐구할 주제를 정했으면 책을 읽기 시작해야 한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책은 그 주제에 가장 심오한 학설을 제시한 철학자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철학자를 판별하는 근거는 베끼기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베이스</FONT>이다. 번역본이 있다면 일단 그걸 정독한다. 번역이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또 제대로 된 번역본이 드문 것도 사실이므로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 원전을 읽기 위해서 해당 외국어를 익혀야 함은 당연하다. 철학자의 책을 읽어나갈 때는 머리를 비우고 그의 입장에 서서 읽어야 한다. 괜한 말 덧붙여 봐야 쓸데없는 일이고 감상일 뿐이다. <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철학자의 책을 충분히 읽어서 그 책에 등장하는 개념과 논지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관련된 책, 즉 해설서나 참고 문헌을 읽는다</FONT>. 이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186쪽)<BR><FONT color=#008000>→ 이건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좀더 생각해봐야겠다.</FONT><BR> <BR>참고 서적을 읽은 다음에는 다시 철학자의 책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읽는다. 누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이거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자기 글을 써볼 차례다.<BR>오로지 원저작만을 인용하여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써서 글이 안 되면 원저작을 다시 읽어야 한다. 원저작의 인용만으로 글을 쓴 다음에는 참고서에서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여 각주에 덧붙인다. 본문과 각주가 글에서 차지하는 지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각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본문은 글의 뼈대요, 살이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원저작의 내용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원저작과 대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대결이 없다면 영원히 참고서에 의존해야 하고 원저작을 넘어설 수 없다</FONT>. (187-188쪽)<BR> <BR>여기저기서 떼다 붙인 글로 리포트를 써내던 사람이 자기 논문을 쓰기 시작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떼다 붙인 글들도 문장이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평소에 아무 주제나 붙잡고 글을 써봐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일기라도 날마다 써야 한다. 말은 일사천린데 글은 엉망이라면 공부를 접는 게 낫다. 생각이 표면에서만 떠돌 뿐 되새겨지지 않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책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정리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BR>생각의 결을 따라서 물 흐르는 듯이 이어지는 글은 언제든 쓸 수 있지만, 엄격한 틀 속에서 글을 쓰는 훈련은 다시 할 기회가 없다. 글은 최대한 간결하게 써야 한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내 눈으로 읽어서 내 손으로 쓰는 것이 핵심</FONT>이다. 정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에게 묻지 말고 지도 교수에게 물어야 한다. (189-190쪽) <BR> <BR>마지막으로 할 일은 공부를 심화시키는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철학자의 사고를 검토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나의 언어로 소화시키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 하는 일은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공부를 심화시키는 목표는 교수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자가 되는 데 있다. 공부는 벼슬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BR><FONT style="BACKGROUND-COLOR: #e4ff75">학자가 되려면 우선 공부를 시작할 때 했던 일, 즉 베끼기를 계속 해야 한다. 자신이 집중적으로 연구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상과가 있었다 해서 철학의 전 영역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다른 분야를 공부한 사람의 글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FONT>. 이해도 못하는데 토론과 비판은 더더욱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것을 계속해서 다지는 것은 심화된 공부에 있어서도 밑거름이다. 심화의 과정에서는 반드시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 우선 읽어야 할 분야는 역사이다. 통사는 물론이고 세부적인 항목을 다룬 역사책들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역사책 읽기는 철학적 주제들에게 생동성을 가져다 준다. <BR>오늘날에 대해서 탐구하고자 한다면 신문이나 잡지 등을 열심히 읽어야 함이 기본이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되 사회과학적인 인식을 가지고 읽어야 하므로 사회과학 관련 서적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역사와 사회과학에 대한 독서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만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기본을 갖출 수 있고, 그것이 공허한 탁상공론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BR>시대에 충실한 학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인 사유로 가는 첩경이 아닐까. 철학사에서 접하는 철학들 중에서 오로지 철학만 공부해서 얻어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든 분야를 골고루 천착한 결과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학자가 되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BR>훌륭한 학자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훌륭한 학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성인데, 이게 구체적으로는 먹고 사는 일과 연결되어 있어서 자기를 먹여 살려주는 사람을 욕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190-193쪽)<BR><FONT color=#008000>→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하게 되면 학자가 되기 어려운가. <BR></FONT> <BR><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기 학대>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매저키스트가 된다면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해서 명예를 얻지 않아도 슬프지 않으며, 공부가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서럽지 않다. </P><br /></div><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100,'/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00+%22%EB%AA%B8%EC%9C%BC%EB%A1%9C%20%ED%95%98%EB%8A%94%20%EA%B3%B5%EB%B6%80%3F%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00&t=%EB%AA%B8%EC%9C%BC%EB%A1%9C%20%ED%95%98%EB%8A%94%20%EA%B3%B5%EB%B6%80%3F"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100&title=%EB%AA%B8%EC%9C%BC%EB%A1%9C%20%ED%95%98%EB%8A%94%20%EA%B3%B5%EB%B6%80%3F','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100?commentInput=true#entry10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사회민주주의, 한국사회의 대안?새벽길http://blog.jinbo.net/gimche/262005-01-31T17:19:58+09:002005-01-31T17:19:58+09:00<P><FONT color=#156200>사회민주주의연구회, 서강대대학원총학생회, 서울혁신연대가 공동 주최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릴레이 강연회의 마지막 일정에 유팔무 교수가 발제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전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FONT></P>
<P><FONT color=#156200>이제 서울혁신연대가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보루가 되려나 보다. 유팔무 교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있다가 사민당 활동을 하기 위해 탈당하여 사민당에서 당직을 맡았었는데, 지난 총선 결과 사민당이 해산한 이후 다시 복당하였다. </FONT></P>
<P><FONT color=#156200></FONT> </P>
<P><FONT color=#156200>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내 능력밖이지만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FONT></P>
<P> </P>
<P>-------------------------</P>
<P> </P>
<P>- 일시 : 2005년 2월 2일 18시 30분 - 20시 30분 <BR>- 장소 : 서강대 김대건관 301호 <BR>- 주제 : 사회민주주의, 한국사회 대안인가? </P>
<P>- 발제 : 유팔무 <BR>- 패널 : 김동춘, 윤도현 <BR></P>
<P><BR>2005년 2월2일 서강대 대학원 동계강좌 종합토론 발표문 </P>
<P><BR><STRONG><FONT size=4>사회민주주의, 한국사회의 대안? </FONT></STRONG></P>
<P align=right>유 팔 무 (한림대교수, 사회학) </P>
<P> </P>
<P><STRONG><FONT size=3>1. 사회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FONT></STRONG></P>
<P><BR>통상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라고 할 수 있다. </P>
<P>첫째로는 보수 정치가나 일반인들의 이해방식으로서 좌파와 동일시하는 방식이다. 사회주의와 구별하지 않는다.1)<FONT color=#0021b0> (각주: 이들은 ‘진보’를 더 광범위한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BR></FONT> </P>
<P>둘째로는 진보 혹은 좌파진영의 일반적인 시각으로서 서유럽의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P>
<P>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어떤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이념이나 운동세력으로 이해하면서 혁명과 사회주의를 포기한 개량주의라 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서유럽식 사회체제, 즉 복지국가 자본주의체제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P>
<P> </P>
<P>셋째로는 민주사회주의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사회주의는 목표, 민주주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현실태로 나타나는 서구 사회민주주의(체제나 이념 및 운동세력)를 사회민주주의의 정체 혹은 후퇴로 평가하며, 이행의 전망을 갖는 입장이다.2)<FONT color=#0021b0> (각주: 민노당 주류나 좌파, 사회당 좌파의 경우는 이를 사회민주주의라 부르지 않고, 이와 구별하는 의미에서 민주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라 부르는 경향이지만, 필자 등의 경우는 이를 사회민주주의 좌파(즉, 사회민주주의 내의 좌파)라 동일시하여 사회민주주의 우파(즉, 현실 서구 사회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와 함께 사회민주주의로 포함시켜 이해하고 있다.)</FONT></P>
<P> </P>
<P><STRONG>1)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나 민주사회주의와 같은가. </STRONG></P>
<P><BR>서구역사를 보면, 사회민주주의는 3단계에 걸쳐 그 의미가 변천해 왔다(이하 유팔무, 2001; 2004a 참조). </P>
<P><BR>첫째, 19세기에는 사회주의 및 민중민주주의(=실질민주주의)와 동일한 의미를 지녔었다. </P>
<P><BR>둘째, 20세기 초, 중반에는 민주사회주의. 즉, 민주적-개량적-의회적 방법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 노선으로 정립되었고, 소련-동구 중심의 공산주의와 분리, 대립하는 경향으로 협소화되었다. </P>
<P><BR>* 20세기 초 독일사민당의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논의 및 볼세비즘 비판(베른슈타인, 1985 참조)을 통해 주류화해 갔음. </P>
<P>*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1951년 프랑크푸르트선언(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985 참조)이 이정표가 됨. </P>
<P> </P>
<P>셋째, 20세기 후반에는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선거정당을 통해 현실정치적으로 실용주의화해 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으로의 이행 전망과 국유화 정책을 포기해 가면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용인하는 한편, 사회주의적으로 수정 혹은 개혁하여,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층의 이익대변 및 보호를 주된 정책 목표로 삼아 복지국가제도를 확충, 유지해 나갔다. </P>
<P><BR>* 독일사민당의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 강령기초위원회, 1999)이 상징. 시장경제체제 수용.3) <FONT color=#0021b0>(각주: “전체주의의 경제통제는 자유를 파괴한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자유로운 경쟁이 진실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유시장 체제를 지지한다. 하지만, 시장이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곳에서는 경제분야에서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가능한 한 최대한의 경쟁과 필요한 만큼의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FONT></P>
<P>* 독일사민당의 라이프치히 강령(SPD, 1998); 공산주의의 일당독재 비판, 고데스베르크 강령 정신 유지(민주사회주의, 즉 사회민주주의란 민주화와 사회적-경제적 개혁을 통해 자유, 형평,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제를 갖는 입장), 소유문제에 대한 언급회비, 형평성과 연대를 강조. 환경-평화-여성-문화 등에 대한 강조. </P>
<P> </P>
<P>* 스웨덴 사회민주당 이론가들의 최근 입장(Carlsson & Lindgren, 1998),4) <FONT color=#0021b0>(각주: 필자가 발췌 번역하여 한국사회민주당 창당기념 대토론회(2003.3) 자료집에 수록됨, 후에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FONT><A href="http://samin21.jinbo.net/"><FONT color=#0021b0>http://samin21.jinbo.net/</FONT></A><FONT color=#0021b0> 공개자료실, 민주노동당 평당원 모임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연대 </FONT><A href="http://www.kdlpsds.org/"><FONT color=#0021b0>http://www.kdlpsds.org/</FONT></A><FONT color=#0021b0> 자유광장 게시판에 일부를 올렸음.)</FONT></P>
<P>“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는 ... 혼합 경제 제도를 주장한다. 이들은 소유권이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더 강조한다. </P>
<P>... </P>
<P>사적 소유를 폐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분배를 변화시키고 과거에 억압받았던 사람들에게 권력을 분배하는 방식으로도 문제가 해결된다. 사회민주주의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이러한 통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같은 새로운 방향설정은 1932년 전당대회에서 명확히 재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예컨대 영국 페이비언협회와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논의에서부터 연원한다. </P>
<P>그렇다면 이것이 <U><FONT color=#6d201b>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FONT></U></P>
<P><U><FONT color=#6d201b>만일 "자본주의"를 "사적 소유"라고 정의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그러나 사적 이윤이 다른 모든 이해에 우선하고 사회나 고용주 그 어느 측도 기업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자본주의를 정의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FONT></U></P>
<P><U><FONT color=#6d201b>그러나 ... 사회민주주의가 이윤추구를 인정하지만 이윤추구가 다른 모든 이해들에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다른 이해들에 이윤추구가 우선시된다면, 사람과 환경과 같은 생산의 다른 요소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윤추구는 분명 정치 민주주의적 역량, 강력한 임금노동자 조직, 법률적 지원을 받는 소비자들과 같은 다른 이해들에 의해 균형이 잡혀져야 한다.</FONT></U> </P>
<P>이 밖에도,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사적 소유기업, 생산자 연합, 소비자연합과 같은 소유의 다른 형태들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상이한 동기와 상이한 목표를 가진 행위자들이 시장의 발전과 역동성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P>
<P>이상이 사회민주당에 의해 채택된 기본입장이다. “ </P>
<P> </P>
<P><STRONG>2)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구성요소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STRONG></P>
<P><BR>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
<P><BR>첫째, 개인주의와 반대되며 결합한 집단주의; 사회 전체라는 집단의 이익과 가치 및 판단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입장으로서 개인주의5) <FONT color=#0021b0>(각주: 개인주의란 개개인의 이익과 가치 및 판단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다.)</FONT>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녔으나, 개인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로서 단순한 집단주의 혹은 집체주의를 뜻하는 공산주의와 다르다. </P>
<P><BR>둘째, 경제체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에 기초한 사회적-계획적 생산 및 분배 시스템과 그것을 향한 이념적 지향을 뜻하며, 공산주의와 같다. </P>
<P>그러나, 소련,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를 공산주의 사회체제의 초기단계 혹은 초급단계로 이해하는 체제로 이해하는 시각이 정립되기도 하였다. </P>
<P><BR>셋째, 이행의 수단 혹은 방법; 사회주의는 혁명이나 개혁을 모두 포함하며, 이행방법에 대한 제약이 없다. </P>
<P>칼 맑스는 공산주의를 여러 사회주의들 중에서 혁명적-국제연대적 사회주의 및 진보세력으로 국한하여 이해하였으며, 이런 인식은 후에 소련-동구 사회주의 노선으로 이어졌다. </P>
<P>반면, 서유럽에서는 20세기 들어 이런 공산주의적 사회주의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나 합법(의회주의)적 방법론을 취하는 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아졌다. </P>
<P><BR>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회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P>
<P><BR>첫째, 그리이스-로마 시대의 고전적 의미와 서양 근대 계몽사상에서는 인민의 자유, 평등한 참여 및 토론, 의사결정을 통한 지배의 원리로 이해되었다. </P>
<P><BR>둘째, 근대 서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금권정치 및 1인1표제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 제약되고 왜곡되고 형식화하였다. </P>
<P><BR>셋째, 이로 인해 사회적-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비판과 대안이 제기되었다. </P>
<P>민주주의 = 부르주아, 소수, 강자층의 지배 =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P>
<P><=> 민, 다수, 사회적 약자층의 지배가 진정한 민주주의 = 프로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P>
<P><BR>넷째, 사회주의적 인민민주주의의 현실과 몰락;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이후 소련-동구의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의 사회주의적 인민민주주의는 직능대표제, 민주집중제로 특징지워졌다. -> 당간부(특히 서기와 정치국원)의 자립화, 특권층화, 독재로 이어졌고, 집단적 찬반 공개투표제를 통해 왜곡되어 인민으로부터 통제 안되는 집단독재 시스템이 되었다. 다시 형식적 민주주의로 현실화되었으며, 경직성, 비능률성의 문제도 발생하여 스스로, 그것도 인민봉기에 의한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P>
<P><BR>다섯째, 사회주의적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의 비판과 대안; 다원적 정치 및 다당제, 사회주의의 수단 및 운영의 측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조하였다. </P>
<P><BR>다) 서구 사회민주주의 평가 - 성과와 한계, 그리고 한계극복을 위한 노력. </P>
<P><BR>-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적인 운동노선과 정치세력, 체제 등 세 가지 면에서 볼 때, </P>
<P>첫째, 맑스-레닌주의와 공산주의의 결함을 비판, 새로운 노선, 특히 안정국면에서의 대중노선을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적절했고, 성과를 낳았다. </P>
<P>둘째,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약점(특히 시장실패)을 견제, 보완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안전망과 복지제도를 도입, 확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P>
<P>셋째,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확장,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다. </P>
<P><BR>-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성장 및 고용의 한계. 노동자의 체제 내화 및 이질화 심화. 의식발달정체. 조합주의에 함몰하여 주변집단 및 신빈곤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에 소극적이었다. </P>
<P><BR>- 한계극복을 위한 노력; 1990년대 이후, 서구의 사민당들은 이런 문제들을 탈피하고자 제3세력의 요구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함으로써 활로를 개척하려고 해 오고 있다. 적녹동맹 및 적극적-생산적 복지정책으로의 전환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영국적 ‘제3의 길’, 독일적 신중도노선 등. </P>
<P><BR><-> 전진인가 후퇴인가? 우리라면 어떻게 해야할 것일까. </P>
<P><BR>* 참고; 서구 사회민주주의 내에는 좌파와 우파, 신좌파와 신우파가 있으며, 이들 간의 헤게모니 쟁탈의 결과로서 이러한 노선들이 정립되었다. </P>
<P> </P>
<P><STRONG><FONT size=3>2. 한국에 필요하고 적합한 사회민주주의는? </FONT></STRONG></P>
<P><BR><STRONG>1) 한국에 필요한 대안. </STRONG></P>
<P> </P>
<P>가) 대안을 필요로 하는 한국적 상황. </P>
<P><BR>- 경제적인 면에서, 성장과 경제대국화, 그리고 성장둔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본주의화 및 세계화 압력이 지속되고 수용된 결과이다. 고용 및 노동 문제는 imf 이후 계속 심각한 상태에 있다. 이와 함께 경제주권과 안정성도 상실되어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졸 신규취업희망자들을 포함한 여타의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보호정책은 커다란 진전을 보고 있지 못하며, 분규가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열린우리당이 집권했고,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밝지 못한 상태에 있다. </P>
<P> </P>
<P>- 정치적인 면에서, 과거사규명, 보안법폐지 등 개혁정치가 시도되고 있으나, 자유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금권정치,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제도개혁은 커다란 진전을 보고 있지 못하다. 좌파의 이념, 사회주의의 이념 등도 공식적으로 수용되고 있지 못하다.6) <FONT color=#0021b0>(각주: 민노당은 비공식적으로, 공식적인 선거제도 때문에 할 수 없이, 불가피하게, 억지로 수용되고 있을 뿐이다.)</FONT></P>
<P> </P>
<P>나)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P>
<P><BR>- 경제적인 면에서는 사회주의 원리가 도입되어 자본주의와 병립, 혼합, 조절되는 유연적 혼합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혼합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 또 어느 정도이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은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유동적, 가변적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P>
<P><BR>- 정치적인 면에서는 첫째, 자주-평화의 입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돈 안드는 선거제도의 확립, 참여민주적 발의, 소환제 도입, 확립, 직능대표제 같은 인민민주주의 제도의 부분 수용 등이 필요하다.7) </P>
<P> </P>
<P>- 사회문화적인 면에서는 자주, 평화, 환경, 여성, 문화 등 민족적-시민적 과제와 이슈에 대한 근본적-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대안이 채택, 수용되어야 하며, 이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P>
<P><BR>- 대안의 종합; 자주적, 평화적, 참여민주적 녹색사회민주주의. </P>
<P><BR><STRONG>2) 민주노동당은 적합하고 가능한 대안인가. </STRONG></P>
<P><BR>가) 민노당의 기본 이념과 핵심정책들. </P>
<P><BR>강령 전문에서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 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시작하고 있다(이하 유팔무, 2004b 참조). 이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이란 노동자, 민중이 직접 참여하여 통제하는 '자주적-민주적-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고 요약할 수 있다. "외세를 물리친다."고 하는 것은 비단 미국과 일본 등의 정치적 간섭과 지배에 대하여 저항하고 자립을 도모하는 것 뿐아니라 경제적인 지배와 종속으로부터도 자립해 나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자립적이고 자주적인 정부와 경제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P>
<P><BR>정치적인 차원에서의 '자주'에는 '자주-평화-통일'이라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목표와 자주-평화라는 방법이 수반되어 있다. 여기에는 외세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이 담겨져 있으며, 평화통일의 입장이 담겨져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남쪽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에 대한 반대하면서 '북한식의 연방제 통일'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통일체제는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극복되면서 민중의 권익과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는 체제여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이 양쪽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 지양한 민노당의 대안이 바로 자주적이면서도 '민주적-사회주의적인 시장경제' 체제이다. </P>
<P><BR>민노당은 강령에서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라는 식으로 대안적인 경제체제의 윤곽을 다소 모호하게 그려놓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민주적-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이다. 이는 사회주의적 소유 및 경영의 경제질서가 중심을 이루면서도 노동자 중심의 민주적 참여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범위 내에서 시장경제질서와 사유재산권이 ‘수용’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이런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재벌기업의 해체 및 일부 공기업화, 노동자의 기업소유 참여 및 경영참여, 협동조합기업과 한겨레신문사와 흡사한 ‘국민주’ 기업의 설립 및 육성, 노동자, 시민이 참여하는 각급 단위의 경제(조절)위원회 설립, 운영 등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국가 사회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는 민주적 참여와 시장에 대한 소극적 활용을 통해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을 통해서 극복하는 '진보적인 제3의 길'이라 할 수 있다. </P>
<P><BR>이러한 모델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더 강하기 때문에 영국이나 독일식의 '중도적 제3의 길'과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유럽식의 중도적 제3의 길이란 현대판 자본주의에 해당하는 '신자유주의'의 기조와 정책을 일정부분 수용하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보다 오른 쪽에서 제3의 길을 찾는 것, 따라서 왼쪽에서 출발한 중도노선인 반면, 민노당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보다 왼쪽에서 제3의 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P>
<P><BR>민노당은 그러나 사회주의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당의 의사결정이나 활동의 면에서도 민주주의를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당내의 ‘저항’과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민노당의 대표나 원내에 진출한 ‘드림팀’조차도 리더쉽이나 자율성과 정치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제약’이 따른다. 말하자면, 민노당 간부와 활동가들은 민노당의 이념과 정책을 실현하는데 ‘복무’한다는 자세로 갖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P>
<P><BR>정치분야의 강령 중 전문에 표현된 것으로는 "국민이 공직 대표자를 소환, 탄핵, 통제하고 발의권을 가지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항목이 대표적이다. 강령 본문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선거공영제의 실현, 국민의 소환권과 발안권 등으로 직접 민주제를 적극 실시"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P>
<P> </P>
<P>이와 같은 당 강령의 기조 속에서 만들어진 지난 4.15 총선에서의 주요 공약들 중 주목할만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P>
<P><BR>- 국민소환제 및 국민발의제 즉각 도입. </P>
<P>-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1대 1로 하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P>
<P>- 지역평등세제(역교부세제)를 도입하고, 주민이 자치단체 예산을 짜는 참여예산제 도입. </P>
<P>- 이라크 파병부대를 귀환시키고, 침략전쟁 파병을 결정한 전범을 처벌. </P>
<P>- 부유세 도입. </P>
<P>- 노동자소유기금을 설치하고 노동자경영참가법을 제정하여, 재벌과 대기업을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 </P>
<P>- 아파트 원가공개, 저소득층에 대한 주거비 보조. </P>
<P>-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폐쇄하며, 핵없는 대안에너지 체제로 전환을 추진. </P>
<P>- 공공대중교통.자전거?보행자 중심 교통정책으로 전환. </P>
<P>- 서울대학교를 해체하고 모든 국공립대를 통합하여 특성화. </P>
<P><BR>나) 대안으로서의 민주노동당 - 그 적합성과 가능성에 대한 평가. </P>
<P> </P>
<P>첫째, 민주노동당은 어떤 정당인가. </P>
<P>강령과 주요정책을 통해서 볼 때, 사민주의 정당인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정당인가. “자주적 민주적 시장사회주의” 정당(유팔무, 2004b)인가. </P>
<P> </P>
<P>둘째, 한국사회를 진보화시키는데 적합한 대안인가. </P>
<P> </P>
<P>- 이념의 측면에서 보면, 기본은 좋으나, 구사회주의의 색채가 강한 것이 문제이다. 이 점에서 표 떨어지고, 지지층 확대에 부적합하다. 보다더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할 필요가 있고, 내부에서의 논의는 내부용으로 가지고 갈 필요가 있다. 대외용/대내용을 분리 사고할 필요가 있다. </P>
<P><BR>- 조직과 지지기반, 세력의 측면에서 보면, 세가 튼튼한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세력의 기반이 협소하고 취약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노동자’ 정당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와 한국노총 조합원조차도 적극적인 기반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개혁적 중산층과 시민들도 지속적-적극적인 지지층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유팔무, 2004b 참조) </P>
<P> </P>
<P>셋째, 어디로 가야할까. - 전환의 필요성. </P>
<P><BR>- 대중성 있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자주적, 평화적, 참여민주적 녹색사회민주주의”로 가야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솔직하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회민주주의로 가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길이자, 집권을 했을 때, 소련-동구의 사회주의나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민노당 강령)하는 길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에서도 배워야 하지 않을가. 조합주의, 노동자계급의 개량화, 새로운 지지층 확보하고 넓히기 위한 국민정당으로의 전환 등. </P>
<P><BR><STRONG><FONT size=3>3. 종합 및 토론. </FONT></STRONG></P>
<P><BR>- 사회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P>
<P><BR>- 서구 사회민주주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P>
<P><BR>- 사회민주주의는 한국사회 진보의 대안인가. </P>
<P> </P>
<P>- 어떤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적합한가. </P>
<P> </P>
<P>- 민주노동당은 적합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가. </P>
<P> </P>
<P>- 사회민주주의의 세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이, 혹은 어떤 전환이 필요한가. </P>
<P><BR><STRONG>* 몇 가지 참고문헌; </STRONG></P>
<P>베른슈타인(1985)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양호민(편), {사회민주주의}, 종로서적. </P>
<P>사회주의 인터내셔널(1985) “프랑크푸르트선언 - 민주 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 양호민(편), {사회민주주의}, 종로서적. </P>
<P>유팔무(2001) "왜 사회민주주의인가“,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편), {한국 사회민주주의 선언}, 사회와연대. </P>
<P>______(2004a) "왜 사회민주주의인가“, {한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진보}, 논형. </P>
<P>______(2004b) “민주노동당, 진보적 이상과 보수적 현실 사이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진보}, 논형. </P>
<P>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 강령기초위원회(1999) {강령기초용 참고자료집 - 국내외 정당 강령과 관련자료 모음} </P>
<P>Carlsson, Ingvar & Anne-Marie Lindgren(1998) What is Social Democracy. Swedish Social Democratic Party. Stockholm. </P>
<P>SPD(1998) Grudsatzprogramm der Sozialdemokratischen Partei Deutschlands. (독일사민당 기본강령, 라이프치히 대회) </P><div class="buttons-bottom right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308',26,'/gimch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26+%22%EC%82%AC%ED%9A%8C%EB%AF%BC%EC%A3%BC%EC%A3%BC%EC%9D%98%2C%20%ED%95%9C%EA%B5%AD%EC%82%AC%ED%9A%8C%EC%9D%98%20%EB%8C%80%EC%95%88%3F%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26&t=%EC%82%AC%ED%9A%8C%EB%AF%BC%EC%A3%BC%EC%A3%BC%EC%9D%98%2C%20%ED%95%9C%EA%B5%AD%EC%82%AC%ED%9A%8C%EC%9D%98%20%EB%8C%80%EC%95%88%3F"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gimche%2F26&title=%EC%82%AC%ED%9A%8C%EB%AF%BC%EC%A3%BC%EC%A3%BC%EC%9D%98%2C%20%ED%95%9C%EA%B5%AD%EC%82%AC%ED%9A%8C%EC%9D%98%20%EB%8C%80%EC%95%88%3F','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gimche/26?commentInput=true#entry26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