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진보정치인이나, 개혁정치인이나, 보수정치인이나, 진보분칠(Redwash)을 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진보분칠(Redwash), 저는 이 신조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데요! :)
'정보기술의 진보'를 '정치경제의 진보'와 등치시키는 자들이 이른바 진보정치인이랍시고 트위터에나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이른바 진보정치가 이 꼴인 것이겠지요.
트위터나 스마트폰에 열중할 시간에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방안을 고민한다면, 그리고 정보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더욱 통제하고 착취하는지 고민한다면, 이른바 진보정치가 지금처럼 우스운 꼴은 아닐 테지요.
그 진보분칠이라는 말, 어디서 누군가가 쓰고 있을지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Redwash라고 하면 붉은색을 칠해버리는 색깔론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저도 마성은 님처럼 트위터에 열올리는 이들을 비꼬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올인하진 않겠지요. 하지만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건 사실인 듯해요. 이번 대법원의 '현자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은 엄청난 사건이어서 몇몇 인터넷 언론에서는 이를 기획기사로까지 하고 있는데도, 종이신문도 그렇고, 트위터도 조용하더구만요. 물론 당사자가 트위터를 하고 있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사안은 트위터에서 이슈가 되기 힘든 듯해요. 이런 현상에는 계속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트위터가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제일 우려스러웠던 점 중의 하나가 야스피스님이 지적한 거예요. 물론 다른 온라인공간이나 오프라인공간에서도 깊이있는 사유와 설득, 공론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인데, 트위터가 이를 더 부추긴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실제 트위터를 보면 그런 듯 싶고요. 트위터 사용자는 적극적인 사용자와 소극적인 사용자(만들어놓고 이용은 거의 하지 않는 이들), 그리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이들로 구분해야 하겠고, 또한 사용자 중에서도 아이폰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구분해야 하겠지요. 연령변수도 중요하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