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대선강령에 대한 몇몇 분들의 비난을 읽어봤습니다. 아래 새벽길 동지가 친절하게 반론을 했기 때문에 긴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보충설명만 하지요.
현미녹차님이 “참정권을 박탈” 운운하셨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읽으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전진 대선강령 6장은 정치사상의 완전한 자유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다못해 과거 독재정권, 인권탄압 등의 책임자에 대한 참정권 제한도 한동안 논의되다가 현실적 의미가 없어 빼버렸습니다. 하물며 특정 계급에 대한 참정권 박탈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다만 생산수단을 독점한 계급의 사회경제적 지배력이 정치적 지배력으로 발휘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공정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6장의 핵심입니다.
특히 6장에 들어있는 해설들은 공정한 선출제도와 정치시스템의 여러 가능성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입니다. 전적으로 각 계급과 그 대표체로서의 정당들 간의 경쟁을 전제로 한 내용들이지요. 그런데 참정권 박탈이라니? 이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혹시 명칭이 맘에 들지 않는지요? 그에 대해서는 전진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민중대표자회의, 의회, 평의회, 그리고 다시 민중대표자회의 등으로 몇 번이나 명칭이 변경되었지요. 좋은 명칭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얼마든지 열린 자세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참이슬님은 전진 대선강령이 추상적 구호의 나열이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굵은 제목만 복사해서 나열하셨나봅니다. 전진 대선강령은 다양한 사례분석과 토론의 결과물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감수도 받았습니다. 주택부문에서는 택지국유화를 포함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선언적이고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새벽길 동지도 말했듯이, 선거강령과 선거공약을 혼동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컨대 특정한 기업에 대한 처리방침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일반의 처리방침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선거강령의 역할입니다.
혹시 당 정책위가 만든 정책 자료집을 봤는지요? 전7권 분량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각각의 내용들은 여전히 추상적입니다. 전진 대선강령은 A4용지 31쪽 분량입니다. 모든 주제들을 다루지 않고 압축된 주제들만 다뤘지만, 각 주제별 내용은 당 강령보다 충실하다고 자부합니다. 대선강령으로 무슨 전집이라도 만들었어야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전진 대선강령은 보통의 독해력과 약간의 시간만 할애하면 누구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과 분량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대선강령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바랍니다. 다만 굵은 글씨만 읽고 선입관과 본능에 따라 반응하는 것은 별로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정말 토론하기 어렵네요. ^^ 참이슬님은 전진 및 전진의 대선강령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입각해서 이를 풀어내서 합리화하는 근거를 찾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여 토론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부족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합의점을 찾기도 어렵고요. 몇가지만 덧붙이지요.
대선강령을 집권 문제로 파악하시는데, 2007년도에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전진의 대선강령에서 제기한 사회경제적 의제들은 실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행 정치질서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거기서 논의는 끝이죠.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것을 전제로 대선에 후보가 출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대선강령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권력을 잡으면 앞으로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집권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보수정당의 정책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미시적인 공약과 정책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헌법을 뜯어 고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자신 없는 말을 했나요? 헌법을 고쳐서라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죠. 참이슬님이 말하는 "하겠다"는 약속과 확신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궁금하네요.
나아가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등을 제외하고는 사회주의 기획의 비전이 제출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보수정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그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지요?
참이슬님이 말하는 '자신감'의 측면에서 보면, 이미 강령에서조차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의 꽁무니를 쫓아가자고 하는 것보다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전진의 대선강령이 훨씬 더 자신감에 차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실천 의지와 진정성은 대선강령의 수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 또한 자신감 없음의 표현일 듯 하고요.
제가 보기에 참이슬님은 전진에서 뭘 내놔도 "이건 추상적인 원칙의 나열일 뿐이야"라고 하실 듯 하네요. 양극화에 대한 긴급 처방의 제시를 맨 처음에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선거강령에 정권 잡으면 앞으로 5년 동안 무얼 하겠다는 얘기가 없냐?”라는 말을 되뇌인다면 대선강령에서 앞부분은 훑어보지 않고 넘어간건가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슨 사오정 개그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전진의 대선강령이 생각만큼 그리 급진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추상적인 원칙의 나열'로 점철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가능성 있는 다른 사회의 전망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점을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요. 계급전사님이 언급한 것처럼 '택지국유화', 즉 1가구1주택,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는 주택의 택지까지 국유화한다는 것은 정서상 맞지 않고 실현가능성이나 실효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이 그 예입니다.
영국 노동당의 1974년 선거강령에 대해서는 참이슬님이 잘 언급해주셨네요. 더 정확히 파악해봐야겠지만, 1974년 총선에서는 국가기업위원회(NEB) 설치안과 그 외의 몇 가지 구조개혁 정책을 묶은 대안경제전력(AES)가 총선강령으로 채택되었답니다. 해롤드 윌슨 노동당수 등 노동당내 우파가 “특정한 25대 대기업에 대한 NEB의 처리방침"을 나중에 삭제했지요. 즉 영국 노동당은 1974년에 사회화강령을 통해 권좌를 되찾았지만, 당내 우파는 NEB안을 실제 관철시킬 의지가 없었고, 산업부장관 토니 벤을 중심으로 한 당내 좌파는 이에 저항했지만, 결국 AES 중 대부분의 내용이 원안과는 다른 왜곡된 형태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즉 1974년 총선강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참이슬님이 "기업 일반의 처리방침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것을 가지고 쟁점을 삼는지 그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대선강령 자체를 가지고 보셨으면 잘못된 지적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국노동당사에 나온 것처럼, 노동당 좌파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천하기 위해 선거강령에 구체적인 적용 대상 기업들의 명단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재원 부담 방안까지 명시하는 초안을 냈고, 전진 또한 그와 비슷하게 제출했답니다.
"자산 또는 매출액이 상당한 규모인 대기업은 그 자체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먼저, 자산 10조원이상 그룹에 속하는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부터 1차적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켜 나간다"고 했던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업화의 기준은 정부에서 제출한 ‘중핵기업 출총제’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는 7개 그룹의 24개 기업이 해당합니다. 다만 그 재원마련에 았어서 영국의 북해석유나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같은 명시할 수 있는 재원이 없는 관계로 "외환위기 시절 재벌들에게 행해졌던 특혜에 비추어 영구채권 형태로 마련"한다는 정도로 언급한 것은 조금 미흡하긴 합니다만, 브라질 노동자당이 농지개혁시 유상수용에 소요되는 재원 마련을 단지 '성장'에서 찾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노동당 우파스러운' 선거강령이라고 하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삼성생명을 국민기업(또는 공기업)화한다는 의견은 앞으로도 논의하면 좋겠네요. 물론 저는 무지막지하게 그냥 공기업화하기보다 우선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자율과 연대 홈페이지에서의 대선강령 논의는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더이상의 토론은 별로 생산적일 것 같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