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공연, 그거 보면서 표떨어지는 소리 우수수 들리는 것 같더군요. 천영세 대표가 발표한 것은 공직선거법을 피해나가고자 하는 골육책인 거 같은데, 기왕에 그렇게 할 거 기냥 후보 시켜버리지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다 끝난 다음에 드는 느낌은 첫째, 메이데이 행사가 아니라 통일축전행사를 본 것같다는 느낌, 둘째, 메이데이 행사라기 보다는 민주노동당 지방선거 결의대회를 본 듯한 느낌, 셋째, 이런 느낌들로 인해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가 굉장히 공허하게 들렸다는 느낌... 이런 기분이더만요... 쩝...
수많은 군중들 앞에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 무대의 의미가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가가 중요할 것인데, 그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의 내용으로 보아 그 부분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BC카드의 "아빠 힘내세요"류의 딱 그내용이더군요. 제가 무대에서 너무 멀리떨어져 있어 "엄마(도) 힘내세요" 부분은 듣지 못한걸까요..?
그리고, 저는 민주노동당 지방선거 후보 '활용'보다, 오히려 제 바로 옆에 앉아있던 희망사회당 동지들께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역시, 우리 당은, 민주노총의 늠름한 '장남'이더군요.
끝으로, 어제 행사진행을 우습게 만든 가장 압권은, 그 수많은 집회참가자들을 두고 고작 일이백명 정도가 참여할 수 있을뿐인 대동놀이를 배치했다는점과 대동놀이로 인해 거의 파장분위기가 형성된 시점에서 "투쟁결의문을 낭독하겠습니다"하며 대미를 장식했다는 점. 아마, 대동놀이의 파장분위기로 인해 일찍 자리 뜨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결의문 낭독 못들으신 분 꽤 될듯.
결론은, 참으로 안타까운 메이데이였다는 소립니다..
그 실망들에 몇가지 더 추가하죠. 장애인 투쟁의 승리를 보고함으로써 함께 기뻐하고 다른 문제들로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힘을 주고자 그 노동자대회(?)에서 발언권을 얻어보려고 기를 썼던 장애인 동지들은 이미 프로그램이 모두 결정되어 발언권을 줄 수 없다는 간단한 말로 배제되었고, 마지막 그 대동놀이인가 뭔가에 군중 속에 섞여있던 휠체어를 탄 장애인 동지들은 그야말로 장애물처럼 다시 시청 정문 앞으로 밀려나야했지요.
게다가 노동자의 힘으로 진보정치를 실현하자면서 버젓이 깃발을 들고 나와있는 '희망사회당'의 후보들을 그 단상에 함께 세우지 못한 것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두고두고 부끄러울 일이었습니다. 역시나 배제에 익숙한 소수자의 감수성으로 시청 정문 앞에서는 희망사회당 후보들도 올려라 목이터져라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민주노동당의 주인임을 늘 확인시켜주던 민주노총이나 당에서 올라간 그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더군요.(들을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겠지요.)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가 어이없는 "아빠, 힘내세요!"였다면 아이들이 춤을 추는데 틀어졌던 음악은 짝도 잘 맞추어 "희생하는 엄마가 꽃처럼 아름다워요"였답니다. 그런 노래와 음악에 맞추어 생명이나 평화에 대해 아직 배워보지 못한 아이들은 '조국 통일'의 한 길로 먼저 달려가고 있다더군요. 신종 국기에 대한 맹세라 느껴졌지만 그래도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반여성을 선동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차라리 나았다고 해야할지.....쩝.
산오리/ 저는 돌아다녔기에 망정이지 아마 그냥 앉아있었으면 좀이 쑤셔서 참지 못했을 거예요.
행인/ 아직은 예비후보이기 때문에 상관 없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비슷하게 노동절 행사가 아니라 통일한마당, 민주노동당 당원결의대회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원들이 힘을 받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듯 하고요.
지각생/ 일반적으로 전야제 행사가 더 재미있습니다.
정양/ 관악구위원회는 대동놀이가 시작하자 그냥 자리를 떠서 저녁식사를 하려 갔지요. 대동놀이가 하나되는 장이 되기는 커녕 참여자와 비참여자를 갈라놓는 시간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투쟁결의문도 낭독했군요. 무슨 투쟁을 결의했는지 정말 궁금하군요.
깨비/ 장애인투쟁이 승리를 했기에 그에 발언권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님과 함께 있던 장애인 동지들이 시청 정문 쪽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님쪽으로 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약간 있었어요.
그리고 희망사회당은 장애인 후보를 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도 자리를 줄 수 있었는데, 그들이 배제된 진보정치가 도대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어요. 저희 지역위의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도 아마 단상에 가지 못했을 듯한데...
"희생하는 엄마가 꽃처럼 아름다워요"라, 거참 어떻게 그런 노래를 선곡할 수 있을지... 이런 행사를 한번씩 지나칠 때마다 자민통 계열의 사람들과 함께 뭘 할 수 있을지 답답해져요.
글쎄요, 물론 세계노동절에 굳이 수십번씩 '조국'을 찾아대는 멘트에 '제기랄~ PT한테 조국이 어딨냐?'고 중얼거리기도 했고, 아무 관점없이 북한 노래만 틀어대면 통일에 기여하는 건 줄 아는 무식한 국가주의, 통일주의에 질리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장애인에 대한 배제나 희망사회당에 대한 배제 등은 이른바 자민통 계열이 아닌 좌파들이 이 행사 진행의 주체였다고 해도 별로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래서겠죠? 새벽길님이 이런 행사를 지나치면서 '자민통 계열의 사람들과 함께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저는 "저놈의 주류 운동권들과 대체 뭘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답니다. ㅠㅠ
주류 운동권이라...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다만 정당 차원에서 민주노동당이 희망사회당을 배제한 것이 문제일 수 있겠지만,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희망사회당이 다른 좌파 정치조직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지 의문입니다.
소수자에 대한 배제 문제는 항상 제기될 수 밖에 없고, 제기해야 하는 문제이겠지요. 그런데 참여와 배제의 경계를 어떻게 나눌까 또한 문제 아닐까요? 이를테면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성소수자 등은 어떻게 할지....
덧붙여 주류 운동권은 무엇이고, 비주류 운동권은 무엇일까요? 상대적이지 않나 싶은데요.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가 상대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참여와 배제를 얘기할 때, 경우에 따라서 언급해야할 문제의 지점은 전혀 다릅니다. 이 경우에서는 성소수자의 예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지요. 그 집회에도 제가 아는 성소수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기는 했습니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들의 존재는 비가시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행사 하나에 비가시적인 존재를 가시화시켜내는 건 주체의 의지가 아닌 다음에야 쉽지 않은 일이구요. (경우가 다르다는 건 가령 예전에 문제가 되었던 비정규직 철폐 포스터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경우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노동절 집회에서 장애인들의 경우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장애인들은 대오를 이루어 자신들의 존재를 가시화시켜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열에서 노골적인 배제를 당한 것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적어도 눈뜨고 있는 자였다면 그 자리에 있는 그 많은 휠체어 장애인들을 보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대동놀이를 준비했더라도 그 대동놀이를 펼치면 그 장애인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조차 멀쩡하게 눈뜨고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진행했다는 건, 정말이지 용서되지 않는 일이예요. 희망사회당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적어도 대중적으로(?) 이름까지 바꾸어 진보정당임을 표방하고 깃발을 든 그들이 배제된 것은 소수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을 만들어보겠다고 기를 쓴 적이 있는 이들에게 소수자의 문제를 떠나 올챙이 시절 몽땅 기억못하는 개구리 꼴에 다름 아닙니다. 이제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모든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전유하러 드는 열린우리당과 뭐가 다른지, 아직도 제도 정치권에서는 소수 중의 소수밖에 안되는 주제에 민주노동당이든 민주노총이든 너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