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2006/07/03 09:33

안도현의 시는 언제 봐도 감칠맛이 난다.

아침에 책상위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소식지 "건강세상" 2006년 5월호에 여는 글로 나와 있는 게 눈에 띄어서 옮겨온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강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 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