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 좋은 꿈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직 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라면,
가장 긴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 루쉰(魯迅)의《아침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중에서 -
* 꿈은 꾸기도 하지만 갖기도 합니다.
꿈을 꾸는 것은 수동적 결과물이지만, 꿈을 갖는 것은
인생의 능동적 시발점입니다. 꿈은 클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꿈이어야 합니다. 큰 꿈, 좋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는 이미 그 꿈의 절반 이상을 이룬
셈입니다. (2001년11월5일자 앙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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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받은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요새는 좋은 글귀를 봐도 그냥 삐딱하게만 보고 싶어지더군요.
보편적으로 타당한 말은 없다고 해야 하나요.
아직 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라면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 긴요하다고 루쉰이 말했다지만,
엉뚱한 꿈을 꾸고 있다면 '꿈 깨라'고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도원 님도 큰 꿈을 꾸되, 좋은 꿈이어야 한다고 덧붙였고,
루쉰 또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에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남의 자식을 망치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게 좋은 꿈이 아니라면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 황우석 지지자들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이 문장을 좋아해서 메신저와 블로그에 내걸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애매한 상황에서 엉뚱한 사람들에게 잘못 사용되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 문장 자체가 싫어지더군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으니까요.
꿈, 상상력, 행복... 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꿈인지, 무엇을 상상하는지, 누구의 행복인지,
그것을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은 새벽에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꿈을 꿀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