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위기구조와 노동의 선택(노중기)

2005/02/10 01:23

노중기 교수의 1999년사회경제학회 원고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관련해서 찾은 것인데, 너무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민주노총의 노사정 참여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구조와 노동의 선택*

노중기**


Ⅰ. 문제제기: 위기의 노동운동

Ⅱ. 사회적 조합주의 : 운동노선의 위기

Ⅲ. 노동정치체제 변동 : 위기의 구조적 배경

Ⅳ. 결론 :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 

           

Ⅰ. 문제제기 : 위기의 노동운동


지난 몇 년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노동정치정세는 역동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가와 겨울총파업, 노동법개정와 민주노총 합법화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탈퇴 등의 복잡한 정치과정을 숨가쁘게 헤쳐왔다. 조직 내적으로는 연맹별 조직재편이 계속되어 산별노조 전환이 구체적인 일정에 오르게 되었으며, 정치세력화의 시도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 과정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보다 구체화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1997년 말 IMF경제공황의 도래와 신정부의 출범은 갑자기 위기를 전면화시킨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1998년 한 해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상황에 처했다. IMF경제위기로 촉발된 대규모의 실업사태와 전면적인 양보교섭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운동은 올바른 주체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닥친 수세기(守勢期) 상황은 오랫동안 공세적 분배투쟁에 익숙해있던 우리 노동운동에 전혀 낯선 것이었다. 특히 국가가 강요한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과정에서는 원칙없는 참여와 불참을 반복하는 가운데 노조조직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위기 진단은 지난 10년동안 간간이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1991-1992년 시기에는 노동운동위기론 논쟁이라는 형태로 '위기'가 이론적, 실천적 쟁점으로 부각된 적도 있었다. 당시의 위기론 논쟁은 주로 국가가 노동억압을 강화함으로써 나타난 노동운동의 일시적 위축현상에 관한 것이었고 위기론자들은 이를 확대 해석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정권기에 들어와 민주노총이 결성되는 등 노동운동이 조직적 발전을 이루어내자 위기론은 쉽게 불식될 수 있었다.

 

반면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는 보다 구조적이고 전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임영일, 1998b) 특히 지난 1년동안의 노동정치과정에서는 운동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위기현상이 감지되었다.

 

우선 노동계급의 전 부문에 걸쳐 양보교섭이 일반화되고 노동조건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식적으로 약 12% 정도 임금이 삭감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실제 하락률은 20%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본격화됨으로써 고용은 전반적으로 불안해졌다. 200만 이상의 신규실업자가 생겼고 이미 하락추세에 있던 조직률도 크게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취업자, 여성노동자 등 노동계급 내부의 취약계층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재벌사업장과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 부문에서 이런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위기는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으로 조직 내 민주주의와 집중성의 문제가 갑자기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대중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조직역량 뿐만 아니라 결정된 방침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는 조직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조직민주주의의 문제는 1기 집행부가 노사정합의과정에서 조합원 대중에 의해 불신임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대중적 지지 위에서 성립한 2기 집행부도 조직방침을 투쟁의 실행으로 실천할 수 없는 무기력상태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물론 이런 파행적인 조직과정에는 경제위기국면의 상황조건, 운동노선의 문제, 취약한 리더쉽 등 보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기업별 노조체제의 한계', 혹은 '취약한 계급역량'으로 일컬어왔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수세기의 상황조건과 결합하여 운동의 위기를 심화시킨 근본 요인이었다.

 

셋째, 변화하는 국가·자본의 대 노동계급전략에 대해 노동운동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김대중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매개로 하여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배제전략이란 점에서는 동일하였지만, 노동계급의 이해를 의제적(擬制的)으로나마 포섭하려는 형식을 갖춰 이전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노동측은 노정(勞政)교섭과 불참선언 혹은 총파업, 총력투쟁 등 다양한 방식의 대응방안을 모색하였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IMF 이후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갑지기 많은 갈등과 혼선, 위기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노동운동노선 상의 혼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노선에 대한 논란은 하반기에 민주노총의 운동노선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social unionism)라는 형태로 정식화되면서 본격화되었다.(김유선, 1998a; 박성인, 1998; 노중기, 1998; 임영일, 1998a) 사회적 조합주의론의 적실성 여부와는 별개로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급한 운동적 과제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운동노선 상의 혼란과 갈등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운동노선의 문제는 항상 국가와 자본의 대 노동전략과의 함수관계, 나아가 노동정치의 구조적 조건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전면화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맥락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2절에서는 1998년 한 해동안의 노동정치와 운동노선의 문제를 노사정위원회 경험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3절에서는 위기를 '1987년 노동정치체제' 해체라는 구조적 배경과 연관지어 정리하고 4절에서는 체제변동의 전망과 노동운동의 전략선택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사회적 조합주의 : 운동노선의 위기


1997년 겨울총파업에서 드러난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객관적 역량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반전되었고 노동운동의 위기상황은 급박하게 다가왔다. 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인 상황요인은 무엇보다 IMF경제위기였다.

 

IMF체제는 1998년 노동정치를 규정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었다. 오랫동안 임금, 노동조건을 둘러싼 공세적 분배투쟁에 익숙해져 있었던 노동운동은 갑자기 수세기의 노동정치상황을 맞이하였다. 전략선택의 구조적 환경은 크게 역전되었으며, 노동은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고용문제와 대규모 실업사태라는 새로운 의제를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전까지의 단사 수준의 단체교섭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또 노동대중은 대규모 실업의 공포 앞에서 양보교섭을 손쉽게 받아들였다.(Zoll and Neumann, 1986)

             

반면에 경제위기는 국가와 자본에 대해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국가는 '국가파산상태와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를 급속히 전파함으로써 노자 간의 힘의 균형을 손쉽게 역전시킬 수 있었다. 구조조정의 당위성은 노조에 대한 각종 공격을 일방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자원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의 우위 속에서도 국가는 전통적인 물리적 억압과 강제 대신 노사정위원회라는 합의기구를 대 노동전략의 지렛대로 선택하였다.

                 

합의기구를 선택한 국가의 손익계산은 그다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물리적 억압과 노골적인 노동배제전략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 선택은 많은 비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여느 때보다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노동측의 사회적·정치적 저항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 예견되었다. 따라서 억압은 취약한 권력기반을 가진 김대중정권이 집권 초반기에 선택하기 힘든 대안이었다.

             

반면 노사정 합의체제는 성공할 경우 집권세력에 상당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대노동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노동쟁의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고 구조조정과 경제살리기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당성기반을 크게 강화시킬 요인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반대급부가 지불되지 않을 수 없다. 협상과정에서 약간의 양보를 허용해야 하는 것 외에도 협상기구의 존재 자체가 전국적 투쟁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역전된 계급역학관계 위에서 세련된 노동정치 운영이 뒷받침될 경우, 이 점은 크게 우려할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노사정체제를 선택한 국가의 전략선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국가는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에서 1월 14일 1기 노사정위원회 구성 합의, 2월 6일 정리해고를 도입한 1기 노사정합의, 6월 5일 1차 노정합의(2기 노사정위원회 구성)와 7월 23일(25일)의 2차 노정합의, 8월 24일의 현대자동차 노사정합의 등 모두 다섯 차례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우선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이나 유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다. 그에 비하면 '합의'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두 차례의 노정합의와 같이 국가는 노사정위원회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을 남발하였다. 합의 직후부터 그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또 민주노총의 불참 시에는 노동측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노사정위원회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국가는 노동측이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 공권력 중심의 강경대응을 굽히지 않았다. 공권력은 노동측의 선택지를 '장외투쟁'과 '노사정위원회 참가-투쟁포기'로 단순화하고 참가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은 억압기구의 동원이 노사정위의 운용전략과 모순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었다. 요컨대 노사정위원회의 잠재적 효과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의 저항을 봉쇄하는 것에 있었다.

다음으로 합의내용과 합의이행의 측면에서도 정부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1기 합의에서 쟁점이었던 정리해고와 노동자파견제를 제외하면 정부는 특별히 노동측에 요구할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거래에 앞서 이미 이윤을 남긴 유리한 교환이었고, 국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노동의 요구를 처리할 수 있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는 노사정 간의 형식적 동등성에도 불구하고 1:2.5 혹은 1:2의 실질적 역관계가 지배하였다. 국가는 자본측 반대에 기대어 노동측의 요구를 희석화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측 요구는 4단계에 걸친 복잡한 노사정위원회의 의사과정을 거치면서 손쉽게 지연되었고 추상적인 약속으로 바뀌었다.(노중기, 1999) 또 정부의 통제밖에 있는 국회심의과정에서는 합의내용이 변질되거나 이행이 무산되었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였다. 쟁의권을 넘겨주고 정리해고를 수용한 대가로 노동이 얻은 것은 그나마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유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교환은 심한 부등가교환이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를 통해서 노동운동 내부에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보아서 상당한 노동통제 효과를 산출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노동측의 손익계산서에는 손실이 심각하였다. 200만을 상회하는 신규실업자, 20% 이상의 실질임금 하락, 노동조건의 악화와 노동강도의 강화, 비정규직 노동과 파견노동의 증가 등 노동시장 여건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조직력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 특히 사용자가 주도한 각종 부당노동행위는 정부의 솜방망이 엄포와 방관 아래 계속 확대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생활고의 가중, 가족의 해체와 노숙자로의 전락, 범죄와 정신질환 및 자살의 증가 등 노동자대중의 고통은 크게 증가하였다. 또 합의체제가 가동되고 있었지만 구속·수배노동자들의 수는 김영삼정권기의 그것을 상회하는 형편이었다. 요컨대 고통분담의 구호는 노동자계급의 고통전담으로 끝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동의 입장에서는 부등가교환보다 노동운동 내부의 균열과 상처가 더 심각한 손실이었다. 그것은 균열이 노동운동의 조직발전에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2월 9일 민주노총 1기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사태, 노사정합의 이후 현대자동차 노조의 무력화와 내부 갈등은 단지 상징적인 사건들일 뿐이었다. 노사정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균열은 편재적인 것이었고 계속 재생산되었다. 현장조합원과 단위노조 지도부, 현장조직과 상급연맹 중앙지도부, 제조업과 사무직, 각 산업과 업종, 남성과 여성 등의 축을 따라 노조조직 내부의 의견대립은 심화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당면한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 업종 간의 이해대립이 항상적으로 작용하였다. 노조 내부에 있었던 운동노선 상의 차이들도 균열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IMF라는 특수한 상황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손실을 낳은 일차적인 원인은 노동측의 전략적 판단이 실패했다는 점에 있었다. 1998년 초의 시점에서 민주노총에게 주어진 전략적 선택지는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불참-대중투쟁이라는 형태로 단순화되어 있었다. 민주노총 1기 집행부는 전자의 입장을 채택하였고 2기 집행부는 두 가지 극단의 전략을 가로지르며 흔들렸던 것이다. 특히 1기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합의의 형식으로 손쉽게 받아들인 것은 상황판단 실패였고 이는 심각한 휴유증을 낳았다.

           

1기 집행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서구 코포라티즘의 합의기구와 유사한 것으로 보거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주관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런 평가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신 정부의 민주성과 개혁성에 대한 기대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민주노총 내부에 존재하던 운동노선 상의 혼란, 이른바 '사회적 조합주의'의 문제가 깔려있었다.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unionism)노선은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 등의 이름으로 존재해왔던 노동운동 내부의 하나의 유력한 흐름이었다. 이 노선은 위기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저성장-고실업'의 경제구조 변동에 조응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전투적' 운동노선을 지목하였다. 그리고 정책 참가, 기업수준의 경영참가 및 사회개혁투쟁 등을 위기돌파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사회적 조합주의론'에서 볼 때 IMF위기와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조합주의'노선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여 노동운동을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명분만 외치는 모세조합주의나, 투쟁노선과 협상노선을 우왕좌왕하는 지그재그조합주의, 협소한 이해에만 집착하는 실리적 조합주의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기 노사정합의를 '사회적 조합주의론'이 정당화하기에는 많은 이론적 한계가 있다.

               

먼저 '사회적 조합주의론'은 경제구조결정론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고성장-저실업'과 '저성장-고실업'의 경제구조 변동에 따라 운동노선이 변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도한 단순 인과도식이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노동정치체제의 구조, 노조조직체제의 특성, 국가정치 및 국가 통제전략의 전개 방향, 운동의 경험과 대중들의 의식수준 등 중요한 정치적 매개변수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노동정치의 측면들, 즉 IMF체제 하에서 합의의 가능성과 한계, DJ정부와 자본의 전략적 목표와 의도, 그 실행과정이 노동운동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가를 거의 분석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회적 조합주의론'은 서구 사민주의사회의 합의체제를 절대화하거나 이상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포라티즘은 포드주의타협과 복지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이에 대응한 역사적 산물이었다.(Hyman, 1994) 서유럽에서 그것은 1980년대 이후 크게 위축되었고 때로 붕괴하였다. 나아가 정책참가와 코포라티즘제도는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 따라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으며, 가능하다해도 전혀 다른 실천적 함의를 갖게 된다. 그러나 '사회적 조합주의론'에서는 이를 노동운동이 거쳐야 할 필연적이고 단선적인 발전경로의 하나로 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경제위기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노사정합의가 시도된 바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및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합의체제들이 노동운동에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가는 매우 조심스럽게 분석되어야 할 주제이다. 서구의 경험을 기초로 그 결과를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제3세계 국가에서 합의체제는 정책참가의 의미보다 노동계급 통제기구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개념적으로 한국판(版) '사회적 조합주의'는 남아공의 '사회운동적 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와 유럽의 사회적 코포라티즘(societal corporatism)의 이종교배(異種交配)로 파악된다.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에 대해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연대와 계급적·대중적 정치투쟁의 원리를 제거하였다. 또 사민주의에서는 역사구조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합의주의와 정책참가만을 수입하였다. 남아공의 노동운동 경험에 대한 사회적 조합주의의 인식은 물신성(物神性)이 느껴질 정도이다. 코사투의 정책참가에 대해서는 남아공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치우친 인식은 그 합리적 핵심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어렵게 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남아공의 미래는 사민주의의 계급타협체제로 투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전투적 노조주의의 실리주의를 비판하지만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다른 의미의 실리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사회개혁, 제도개선의 실익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회전체의 이해를 '계급'의 이해와 대립시킴으로써 자본주의경제의 '생산성', '경제성장'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재영, 1999)

             

결국 '사회적 조합주의'의 현실적인 의미는 그 이론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 객관적 조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책참여는 '협조'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았다. 현장노동자들의 비판은 근거없는 비난이나 무책임한 선동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적 실패는 단순히 운동노선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위기를 극대화한 촉발요인이었을 뿐이다. 1기 집행부를 비판하고 노사정위원회 불참입장을 명료히 표명했던 2기 집행부도 국가 주도의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의 위기는 한층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연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문제였다.

 

Ⅲ. 노동정치체제 변동 : 위기의 구조적 배경


1987년 노동정치체제는 기업별 노조조직과 단체교섭, 노동에 대한 국가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 저항이 맞물려 재생산되었던 노동체제였다. 이 체제 하에서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의 기본구조는 국가의 노동계급에 대한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 대중동원전략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모순은 전 사회적 수준의 자유화,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정치에서의 반민주성의 강고한 유지로부터 연원하였다. 동시에 이 체제는 국가·자본에게 상당한 정치·경제적 비용을 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도 가로막는 것이었다. 각 주체들은 이 체제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으며, 결국 1987년체제는 과도기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체제를 변형시키기 위한 노사정 주체들의 오랜 각축은 1997년 겨울총파업과 노동법개정으로 정점에 달했고 체제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복수노조금지조항과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삭제, 개정은 민주노총을 실질적으로 합법화함으로써 정치체제와 노동체제의 탈구현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었다. 또 같은 해 말 시작된 IMF체제와 김대중정권의 성립은 체제 해체의 속도를 크게 높여준 요인이었다.(임영일, 1998b; 노중기, 1997; 장홍근, 1998)

            

노사정위 노동정치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났던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런 체제 변형의 구조적 지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1987년체제에 내재해 있던 노동운동 내부의 한계들이 한꺼번에 표출한 것을 의미하였다. 국가의 통제전략이 완화되고 민주노조운동이 시민권을 얻음으로써 전혀 새로운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고 전투적 대중동원전략의 효능은 노동운동 내부로부터 의심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초유의 전면적 수세기, 혹은 경제공황기라는 상황적 조건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문제제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요컨대 구조적 지형의 변화들은 노동운동의 노선에 대한 고민과 문제제기를 전면화시키는 계기였다.

              

체제변동은 필연적으로 각 주체들의 전략적 태도의 변화와 내적 갈등을 수반하였다. 먼저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은 구조적으로 변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별 노조조직의 강제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완전한 배제를 기조로 하였던 1987년체제 하의 국가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시민권을 획득하였고 법적으로 기업별 체제를 더 이상 강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기존 전략을 부분적으로 변형시켜 최대한 유지하는 방안과 방임전략이나 포섭전략 등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는 방안 두 가지였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국가가 선택한 것은 전자였다. 그것은 기존의 물리적·법적 통제수단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바꾸고 이데올로기나 조직적 통제를 보다 강화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노동측은 전략 수준의 변화를 주관적으로 기대하였으나 주도권을 쥔 국가가 후자를 선택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1987년체제 하에서 국가 노동통제의 가장 큰 결함은 민주노조운동의 불법화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와 민주노총의 불법화라는 모순이 해소됨에 따라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의 통제효력은 크게 높아질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우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단체협약 체결권에 대한 인준 금지, 파업기간 중 임금지급 금지, 대체노동의 허용 등 개정노동법에서 새로 도입된 통제조항들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반적인 사회민주화가 확장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의 실질적 합법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론을 동원한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효과도 더 커지게 되었다.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점차 확대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결국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즉 체계적으로 조작된 여론과 쟁의에 대한 다양한 법적, 행정적 통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더불어 양대노총체제를 이용한 조직적 통제도 더욱 용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사정위원회는 무엇보다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통제기구였다. IMF경제위기로 말미암은 유리한 이데올로기지형은 국가가 노동대중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더욱이 노동측이 먼저 3자합의기구를 요구하고 나섰으므로 상황은 국가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국가는 노사정위를 매개로 해서 수세에 몰린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탈퇴-전투적 투쟁'과 '참가-노사협력'의 획일적 선택 구도를 강제할 수 있었다. 경제공황이라는 이데올로기지형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존재 그자체가 전자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노사정위원회는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압박'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노자 간의 권력균형의 산물이 아니었다.(신광영, 1998; 김수진, 1999; 조효래, 1999)

           

다음으로 체제변동에 따라 노동운동의 내부구조와 운동조건도 크게 변화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민주노총의 시민권 획득이었다.(임영일, 1997; 노중기, 1997)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불법화되었던 1987년체제 하에서 위기는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없었다. 조직 내부에 잠재했던 이해관계의 차이나 운동노선의 차이들은 국가와의 전면적 대치전선 속에서 크게 부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조직 내의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취약한 조직집중성의 문제도 쉽게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불법화라는 껍질이 깨지자 비로소 이 모든 조직 내적 문제들이 '현안'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불안과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정치는 조직 내부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고용문제는 이전의 경제적 분배투쟁과는 질(質)을 달리하는 과제였다. 1987년체제에서 일차적인 수혜자였던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처음으로 위협받게 되었던 것이다. 또 이전에 균열을 감싸주던 경제적 실리획득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개별 노조와 연맹,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의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 조직의 이해에 관계된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민주성이나 정책결정의 내용에 대한 각 조직의 몰입 정도는 커졌고, 이해대립은 훨씬 첨예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노사정위원회는 갈등을 현재화하는 효과를 산출하였다. 우선 노사정위 참가문제로 각 조직의 노선 상의 차이는 표면화되었다. 예컨대 연맹 별 조합원의식의 편차는 곧바로 조직 간의 갈등으로 발전하였다. 국가는 구조조정의 시기를 연맹별, 기업별로 조정함으로써 각 조직의 이익대립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운용하였다. 노사정위에 참가하라는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각 연맹들의 요구는 노사정위원회를 1년이나 유지시킨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기업별체제의 한계가 전면화한 것도 체제변동이 가져다 준 중요한 변화였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는 동시에 복수노조와 산별노조로의 조직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조직구조는 여전히 기업별체제의 기본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더욱이 경제위기 상황은 기업 간 격차를 확대시켜 1987년체제를 지탱한 기본틀인 기업단위의 단체교섭과 노동자 동원기제의 원활한 작동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임영일, 1998b: 105-113)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 내부에는 조직의 집중성과 조직민주주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조직집중성과 조직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결합되어 있는 문제이다.(임영일, 1999a) 노사정위 노동정치에서는 한편에서 하부 조직이나 현장조직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조직민주주의의 문제와 의사결정이 중앙조직으로 체계적으로 집중되지 않는 집중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지 못함으로써 효과적인 의사결집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따라서 통일적인 정책실행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크게 보아 기업단위의 작업장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이 상급연맹이나 중앙조직으로 그 활동영역을 확대, 이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는 민주노조운동에서 초기업단위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갑자기 부각시킨 하나의 계기였다.

            

결국 그것은 기업별체제의 '민주성'이 확대된 조직구조에서 어떻게 변형, 재생산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고, 곧 의사결정의 민주적 집중성에 관한 문제였다. 현재와 같이 기업단위의 조직운영방식이 그대로 중앙조직에 복제되어 되풀이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료제적 대의제기구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제어하고 현장조합원의 의사참가를 제도화하는 새로운 조직민주주의의 모델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Ⅳ. 결론 :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Hyman and Ferner, 1994) 전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와 신자유주의의 자본공세는 서구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Moody, 1997) 노동운동은 축적체제의 변동과 자본공세에 따라 자기정체성을 위협받고 있으나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도 이런 세계사적 위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MF충격은 이미 진행되어 오던 위기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전면적으로 확대시킨 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위기는 한국사회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독특한 구조 위에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위기탈출의 전망은 세계사적 변동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특수한 구조적 토양 위에서 사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해체되고 있는 1987년체제가 어떤 새로운 노동정치체제로 발전할 것인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선 확인되어야 할 것은 새로운 체제가 서구나 제3세계의 어떤 기존 모델과도 유사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운동주체와 국가·자본의 주관적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현재의 조건에서 그 가능성은 없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법제화하고 그 위상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곧바로 코포라티즘의 제도화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노동배제를 위한 단기적 통제수단으로 매우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이든 국가코포라티즘(state corporatism)이든 우리 사회에 코포라티즘체제가 형성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임영일, 1998b: 114-116) 그보다는 일본식의 기업단위 노사협조체제가 아직도 훨씬 가까이 있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국가와 자본, 노동 3자 모두는 새로운 체제의 상을 갖고 있지 않다. 독점대재벌 헤게모니의 자본은 이미 해체되고 있는 1987년체제로의 회귀나 자본의 일방적 지배를 원하고 있으며, 국가는 대안적 노동체제에 대한 뚜렷한 장기적 플랜을 갖고 있지 않다. 또 노동측의 경우에는 '사회적 조합주의'와 '계급적 대중투쟁' 또는 '대중적 정치투쟁'의 두 가지 길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노동측의 두 가지 길은 모두 내용적으로 모호한 상태이며 추상적 논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1987년체제'는 아니지만 전체 노동계급을 배제하는 새로운 과도적인 노동체제의 형성이다. 이 체제의 기본요소에는 국가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 양대 노총에 대한 분할지배, 기업별 노조조직체제의 온존과 산별조직으로의 부분 전환, 자본의 적대와 기업단위의 대립적 노사관계 등이 포함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올바른 전략 선택은 국가·자본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에 변형을 가할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변인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은 위기국면, 체제전환의 국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선 조직 외적으로는 국가와 자본의 형식적 포섭전략이 상당 정도 유지될 것이므로 자주성 확보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와 재벌 구조조정과정에서 제기되는 정책참가, 경영참가 문제는 그 시금석이었다. '경제살기'와 '기업살리기'의 이데올로기적, 조직적 도전 앞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상당 정도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배제적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대중의 반대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 결정으로 끊임없이 환류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직의 민주성은 유지되고 있다. 이런 조직적 자주성은 1999년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투쟁전선'으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위기국면에서 제 일차적 과제는 조직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국가의 배제전략에 대해서 전투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동원의 전략, 대중적 정치투쟁전략이 계속 확대·발전되어야 한다. 사실 1987년체제 10년동안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큰 권력자원은 작업장수준의 조직과 '파업'투쟁역량,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경제적 권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권력, 불안정한 정치지형에 개입하여 정치적 불안정성을 배가하고 민중적 요구를 제시하는 전국적 수준의 정치적 권력자원이었다. 이런 면에서 민주노조는 전사회적 이해를 대표하는 사회적 권력으로써 전민중적 요구의 대리전달자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조운동은 조직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전민중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공세에 대해서 정치적 전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런 외부 정치적 과제는 내부정치의 강화로 진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외부로부터 촉발된 것이라 하더라도 위기의 극복은 내부의 균열을 치유하는 내부정치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내부정치는 산별노조 건설을 매개로 해서 연대의 질을 심화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위기의 구성하고 있는 핵심문제들인 조직 내 민주주의와 조직 집중성의 딜레마는 산별노조로의 구체적인 전환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길이 없을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계급역량의 강화라는 보다 장기적인 과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된다. 현재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이미 거의 모든 조직 주체들이 당면한 과제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환은 몇몇 연맹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 정도로 진행 중에 있다.

               

그러므로 현재 노동운동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부분은 산별노조와 현장조직, 또는 정책·제도와 이념·운동노선의 대립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문제는 산별 전환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합리적 핵심을 보존, 계승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서구모델이나 제3세계 조직모델의 적용과정일 수 없다. 그것은 건설과정 자체의 역동성에서 새로운 독창성이 만들어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이다.

                 

우선 1987년체제 이래 계속되어온 현장수준의 대중동력을 변형·유지하는 것은 그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결성 이후 급격히 약화되어 온 대기업의 현장조직들을 복원하고 이를 전 조직에서 재생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산별조직의 활동중심인 지역조직과 현장조직을 여하히 연결하여 조직민주주의를 실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정책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른바 '민주성'은 체제 전환의 과정에서 그 이념적 기치가 새로운 수준에서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집중성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한 것이다.

             

둘째로 내셔날센터기구로서의 '민주노총'의 위상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사업장의 쟁의가 곧바로 전국적 연대투쟁의 전선이 되는 우리 노동정치의 독특한 조건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이런 독특성이 제도정치의 불안정성과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부재, 자본권력의 취약한 헤게모니, 노조조직 구조의 기형성, 전반적인 이데올로기 지형 등 구조적인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들은 체제 전환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정책기구, 협의기구를 넘어서서 상당한 정치적 역할은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유주의적 노동정치의 환경에 놓인 서구의 내셔날센터와는 달리 민주노총은 전 민중적 대중투쟁의 연대기구적 성격을 상당 기간동안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산별노조 건설은 그 과정과 내용, 결과적 조직모델에 있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연대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직전환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및 기타 민중부문과 조직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문제는 서구 산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건이다. 자본의 전지구화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재구조화를 야기하고 있고 자본운동의 모순은 노동계급 내·외부의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김동춘, 1997) 조직적 연대를 위해서는 조직 형식 상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조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를 양보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조직전환의 전체 구도를 기획, 추진하는 데에는 민주노총의 주도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시민운동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조직적 준비도 시급하다. 이 점과 관련해서 IMF시기의 경험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의 장은 넓었지만 연대보다 갈등을 야기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간의 바람직한 연대고리 모델의 창출은 노동운동 위기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 계급적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유연한 연대를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실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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