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노조원들의 서러운 투쟁

2007/09/23 04:33

언제 집에 내려갈까 하다가 저녁에 결단 - 어차피 오늘 중으로 끝내기 힘드니 책과 자료들을 챙겨 내려가서 마무리를 하자 - 을 내리고 고속버스를 잡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런 명절날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고, 특히 언론에서는 보통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명절 연휴에도 쉬지 않고 땀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 운운하는 기사를 내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엊그제인가에는 코스콤, 기아차 비정규직,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현황을 다룬 프로가 TV에 나왔다. 작년에도 가족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면서 파업투쟁을 승리하자고 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올해도 공장을 배경으로 동료들과 사진을 찍게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올해 추석에는 이랜드 노동자들이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추석 전의 집중투쟁으로 추석대목을 노리는 이랜드자본에 타격을 가하고 투쟁을 승리로 이끌자는 결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투쟁은 흐지부지 끝나고, 결국 추석 이후에까지 연장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난 20일(목요일) 갑작스레 홈에버 강남점에서 면목점으로 매출중단투쟁의 장소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너무 멀어서, 그리고 할 일도 있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라도 가야지' 하는 생각에 찾아간 홈에버 면목점 앞에는 투쟁에 참여한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전경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오 중에 연대단위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몇 되지 않았고...
 
괜시리 이랜드 노동자들에게 미안해져서, 집으로 오는 길에 탄 지하철 안에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이랜드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힘을 줄 수 있을까. 
 
어제는 이랜드 3기 지도부인 장석주, 박승권 동지가 아침에 긴급체포되었다. 이젠 사측과 협상을 벌일 노조측 대표조차 공석인 상태가 되었다. 2시에 항의집회가 있다고 문자가 왔었지만, 얼마나 모였을지...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랜드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시라는 인사를 하기 쑥쓰럽다. 게다가 기나긴 연휴가 즐겁기는 커녕 긴 연휴로 인해 자칫 자신들의 투쟁이 관심에서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랜드 노조원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추석이 끝나면 매출타격투쟁에 함께하면서 그런 걱정과 염려가 기우였음을, 강고한 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러운 투쟁 “부모님 죄송해요” (경향신문, 심희정·송진식기자, 2007년 09월 21일 17:52:22)
 
이랜드 홈에버노조 조합원 고모씨(39·여)는 추석이 다가올수록 들뜨기는커녕 서글픈 생각뿐이다. 이미 귀향도 포기했다. 40만~50만원 정도 드는 귀향길 경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이랜드 파업에 동참한 뒤 석달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해 가게 수입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탓이다. 삼삼오오 선물을 사들고 고향에 내려가는 이웃들을 보면 고씨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21일 서울역에서 이랜드 해직 노조원들이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김문석기자>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친척들이라도 찾아뵐까 생각도 했지만 이 역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랜드 파업에 고씨가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척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한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파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친척들에겐 못내 송구스럽다.
 
고씨는 “매년 추석때마다 작은 선물이라도 사서 친정과 시댁을 찾아뵙곤 했는데 올핸 죄송스러울 따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1일 오후 민주노동당 대회의실에서는 홈에버노조 소속 모 지부의 총회가 열렸다. ‘추석 이후의 투쟁입장 발표’와 ‘귀향 예정 노조원 파악’이 이날의 안건이었다. 추석은 지부 소속 조합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추석 전에는 끝나겠거니’ 생각했던 노조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운 현실에 지치고 실망한 조합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남편과 “추석때까지만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던 한 노조원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남편과의 약속을 어길 수도, 동료 노조원들의 뜻을 져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참여하겠다”고는 밝혔지만 추석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게 됐다. 다행히 다른 지부원들은 추석 이후에도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어두웠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이날 총회에 참여한 30여명 중 대부분은 연휴 기간 동안 서울에 남기로 했다. 경제적 이유로 귀향을 포기한 조합원들이 상당수다. ‘승리’한 모습으로 친척들을 뵙고 싶다는 노조원도 있었다.
 
노조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투쟁 휴일은 추석 당일날 단 하루. 이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노조원을 빼고는 연휴기간 파업투쟁에 동참할 예정이다.
 
연휴를 앞둔 노조 집행부 사무실도 이날 분위기가 무거웠다.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서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동료들 때문이었다. 지난 7월 말 김경욱 위원장이 구속 수감된 이후 엊그제까지 6명의 동료들이 구속됐다.
 
회사측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후 집행부 간부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가 이젠 협상을 벌일 노조측 대표도 공석인 상태가 됐다.
 
노조 관계자는 “추석연휴가 길어 연휴가 끝나면 이랜드 문제가 더 관심에서 잊혀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양측의 협상전망도 밝지 않다.
노동부 안경덕 노사관계조정팀장은 “마지막 교섭을 벌인 지난 16일에도 노측은 징계 규모 축소를 요구하고 사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협상이 결렬됐다”며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아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진 만큼 이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결국 노사 양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노사간 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라며 정부 역할이 한정돼 있다고 털어놨다.
 
이랜드 노조는 본격적인 추석 귀향길이 시작되는 내일까지 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 등지에서 사측을 규탄하는 ‘귀향 선전전’을 펼친 뒤 추석연휴가 끝나는 대로 매장타격투쟁을 재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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