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

2006/04/05 16:21

오늘 한참 시원하게 인간의 원초적인 3락 중의 하나를 누리고 있을 무렵 친한 선배 한 분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구절을 누가 말했는지 묻는다. 생각나는 대로 파우스트에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괴테가 말한 것 같다고 했다.

 

확실하냐고 선배가 재차 묻자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그글쎄요..." 하면서 맞게 대답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냐고 답변을 했다. 자신은 시간이 없다고 나보고 찾아서 다시 전화를 달랜다. 쩝...

  

그 구절을 전화까지 하여 나에게 물은 즉은 오늘 강금실 씨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선언을 하면서 출마선언문에 그 구절을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확인한 후 전화를 하면서 언제 왜 그 쪽에 가담하게 되었냐고 그랬더니 자신이 하고 있는 포럼에서 강금실 선본의 공약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긴 김두관 씨가 열우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출마할 때 과외교사를 했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가끔 이것저것 물을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란다. 내가 민주노동당원이고, 서울시장으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말은 예전에 이론과 실천이던가 하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의 표지에 붙어 있던 구절이다. 레닌이 좋아했다고 하던가.

 

말 그대로 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현실, 현장에 기반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80년대의 활동가들이 이 구절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해석의 여지가 넓기도 하고... 아마 지금도 자신이 어디에 출마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 이 문구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그 이유이리라. 강금실 후보 뿐만 아니라 심상정 의원이 2004년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여성명부 후보로 나서면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할 때에도 이 말을 사용했었다.

 

그를 지켜준 건 이념이라기보다는 현장 경험이었다. “서노련이 이념 논쟁에 휩싸이면서 사노맹 등 여러 정파로 뿔뿔이 갈라져 와해됐는데, 나는 당시 어떤 정파에도 가담하는 걸 거부했어요. 대중운동에 뿌리박은 정치조직이 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죠.” 그래서 서노련 내부 논쟁 과정에서 그는 좌우 양쪽으로부터 ‘현장 경험주의자’라고 비판받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왼쪽으로 치우친 사람도 아니고 다만 왼쪽과 중간 지점 사이 그 어디에 서 있는, 어떤 이념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념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늘 푸르른 생명의 나무라고 했던가. “언젠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사투를 방문했는데, 그쪽 간부들이 ‘우리는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레닌식이냐 마오식이냐고 물으니까, 그런 게 아니라 에이즈가 없고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흑인도 무상교육을 받는 이런 사회가 사회주의라는 거예요.” 그는 “(노동해방이론을)잘 모르는 사람이 용감한 법”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혁명의 날카로운 칼보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불꽃에 가까웠다.([심상정] 야무진 일꾼이 당신 곁으로…, 한겨레21 2004년03월11일 제500호) 

 

나는 저 구절이 별로 맘에 안들었다.

남들이 다 좋아하고 맘에 들어하는 것은 일단 삐딱하게 보고 싶다.

물론 내가 저 구절을 써먹을 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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