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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러시아 푸틴 정권의 성소수자 탄압,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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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연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요즈음 국제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자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소치 올림픽, 크림 반도 병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는 넘치는 에너지와 힘을 과시하고 있다. 푸틴 정권의 공격적인 행보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앞날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의 크림 공화국 병합을 인정하지 않으며 러시아 제재 조치까지 취했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신(新)냉전’이 도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푸틴 정권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국내 유권자들과 동맹 세력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더욱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상태다.
 지난 3월 16일에는 크림 자치 공화국의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로부터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3월 21일,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 공화국과 크림 내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러시아 연방 병합 문서에 최종 서명함으로써 모든 법률 절차를 마무리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하원 및 상원의 비준안 심의, 대통령 서명까지 크림 반도의 병합을 위한 모든 절차가 수일 내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두고 국제 사회는 뜨겁게 논쟁 중이다. 특히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헌법과 1994년 부다페스트 조약을 위반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국제법과 안보,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푸틴 정권이 사실상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러시아 패권주의, 러시아 정교회, 시민 사회 탄압

 


 이러한 푸틴 정권의 제국주의 확장 정책은 사실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18일 러시아 의회 연설에서 푸틴은 코소보 사태를 언급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 바 있다. 그 배경을 보자면, 소련 해체 이후 1990년대 옐친 정권의 충격 요법과 친서방 외교 노선이 모두 실패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적 위기’에까지 직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이런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옐친의 후계자로 등장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구소련 지역으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관리형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유가상승과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패권을 쟁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003년 조지아(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을 시작으로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 레몬 혁명 등 구소련 지역의 ‘색깔 혁명’은 이라크 전쟁, 나토의 계속된 동진(東進) 등과 더불어 러시아의 패권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 구소련 공화국들의 친미•친서방 정권의 배후에 서방이 있고 서방은 각종 비정부기구(NGO)들을 통해 구소련 국가들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정부는 점점 더 서방에 적대적인 정책과 함께 시민 사회를 억압하는 정책을 취하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2012년 7월에 제정된 ‘외국 기관에 관한 법’으로, 외국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정치활동을 하는 NGO들을 압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001년에 출범한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 상하이 협력 기구, 2002년 집단 안보 조약 기구, 2010년 관세 동맹, 2011년 자유 무역 지대, 2012년 단일 경제 공동체 등 러시아의 지역 패권 공고화를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이 2015년 1월 1일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차후 자체적인 의회를 지닌 유라시아 연합으로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경제 구조 문제, 부의 극소수 집중, 부정부패 등 산적해 있는 국내 문제이다. 이로 말미암아 반정부 세력이 꾸준히 증가해 왔고 2011년 총선, 2012년 대선 이후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들이 벌어졌다. 푸틴 정권은 반정부 활동가들을 구속하고 반정부 언론사들을 폐쇄하는 등 시민 사회를 강력히 탄압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소련 붕괴 후 굉장히 종교화된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이용하여 2012년에 학교 종교 교육을 의무화하고 2013년 6월에는 ‘종교인 감정 보호법’을 제정했다. 그와 동시에 반(反) 동성애법들인‘미성년자 대상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과‘해외 동성 커플의 러시아 고아 입양 금지법’도 제정했다. 헌법이 정교분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정권과 러시아 정교회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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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의 반동성애법 제정

 

 ‘미성년자 대상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은 성소수자들을 2등 시민 취급하는 차별법이다. “미성년자에게 비전통적 성적 지향을 형성하게 하거나 비전통적 성관계의 장점을 알리거나 전통적 성관계와 비전통적 성관계가 사회적으로 동등하다는 왜곡된 관념을 심는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 또는 비전통적 성관계에 흥미를 유발하는 정보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미성년자 대상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에 대하여 최대 100만 루블(한화 약 3,000만 원)의 벌금을 과한다. 이 법은 특히 소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방 국가들의 진보 세력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찬양을 받았으며 다수가 동성애 혐오적인 러시아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도 보탬이 되었다. 2013년 러시아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 ‘동성애 선전’ 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동성애자들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은 42%(2007년에는 19%)에 달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86%(2005년에는 59%)나 되었다. 이 법은 심지어 러시아 주변국들로도 확산되었다. 몰도바에서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제정됐다가 유럽연합의 압박으로 폐지됐고 아르메니아에서는 경찰청장이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상정했다가 스스로 철회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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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와서야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은 사실 러시아에서 2003년부터 논의되어 왔다. 2003년에 민족주의적, 보수적 성향의 조국당 소속 알렉산드르추예프 의원이 ‘동성애 선전’에 대한 형사 처벌법을 최초로 러시아 연방 하원에 상정했다. 그는 2004년, 2006년, 2009년에도 유사한 법안을 상정했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실패했고, 추예프는 동료 의원들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 불수리에 대한 소송과 2006년 제1회 게이 프라이드 조직 등의 사건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보수적인 일부 정치인들이 ‘동성애 선전’의 제한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외국 재정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동성애를 ‘선전’함으로써 러시아에 동성애자들이 많아지고 이는 출생률 감소로 이어져 국가가 망한다’는 괴상한 논리는 많은 보수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로스토프 주, 카렐리야 공화국,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에서 ‘동성애 선전’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고 2006년 5월에 랴잔 주 의회가 최초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했다. 뒤이어 2011~2013년 사이에 러시아 연방 주체 83곳 중 11곳(랴잔 주, 아르한겔스크 주, 코스트로마 주, 노보시비르스크 주, 마가단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사마라 주, 크라스노다르 지방, 바시키르 공화국, 칼리닌그라드 주, 이르쿠츠크 주)이 ‘동성애 선전 금지법(지역에 따라 양성애, 성전환, 소아성애 선전도 함께 금지)’을 제정했다.
 급기야 2013년 여름에는 연방 차원에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제정된 것인데, 연방 차원에서의 논의를 살펴보면 2012년 3월에 노보시비르스크 주 의회가 연방 하원에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발의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법안의 설명문 첫 번째 문단이 위에서 언급된 추예프 의원의 2006년도 법안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2013년 1월 25일에 찬성 388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하원 1차 독회를 통과했다. 이후 법안에 등장하는 ‘동성애’, ‘양성애’라는 단어들이 ‘비전통적 성관계’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그 후 6월 11일에 찬성 436표, 반대 0표, 기권 0표로 하원 2차, 3차 독회를 통과했고 6월 26일에 찬성 137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상원을 통과했다. 그 직후 6월 30일에 푸틴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이 발효됐다. 러시아 의회의 모든 원내정당들(통합 러시아당, 러시아 연방 공산당, 정의 러시아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이 동성애 혐오적 정책을 고수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만장일치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푸틴 정권의 성소수자 탄압, 일상에서 반복되는 성소수자차별과 폭력

 


 민족 고유의 가치, 전통, 도덕 그리고 아동 보호라는 미명 하에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이 법이 제정된 직후 러시아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과 일상에서의 성소수자 차별과 폭력은 더욱 가시화되고 노골화됐다. 러시아 국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 총대주교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끊임없이 동성애자들과 동성 결혼을 비난했다. 동성애 혐오적인 TV 프로그램들이 방영되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의 혐오 발언들도 이어졌다. 일례로 배우 이반 오흘로비스틴은 “모든 동성애자들을 산 채로 난로에 쑤셔 넣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2013년 12월에는 푸틴 대통령령에 따라 국영 통신사 ‘리아노보스티’가 폐쇄되고 그 기반 위에 새로운 통신사가 설립됐는데, “동성애자들의 심장은 땅에 묻어 버리거나 태워야”한다고 말했던 친정부 인사 드미트리키셀료프가 신임 사장으로 임명됐다. ‘동성애 선전 금지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 이들도 생겼다. 2013년 12월에 활동가 니콜라이알렉세예프, 야로슬라프옙투셴코, 드미트리이사코프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바롭스크 주간지 편집장 알렉산드르수투린은 동성애자 교사의 발언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돕는 LGBT 그룹 ‘데티-404(Children-404)’의 대표 옐레나클리모바도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가 다행히 2월 말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월 초에는 학교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한 브랸스크 주의 한 여중생이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선전’했다며 청소년 문제 위원회에 회부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러시아 LGBT 네트워크’가 2,000명 이상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9월~2013년 8월 한 해 동안 응답자의 53%가 심리적 폭력을 당했고 15%는 신체적 폭력까지 당했다. 38%는 고용상의 문제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아성애 점령’이라는 조직은 사실상 ‘동성애 퇴치’를 목표로 하는 스킨헤드 자경단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청소년 동성애자를 구타하고 괴롭히며 그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하는 짓을 일삼는다. ‘소아성애 점령’이라는 명분으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어린이들이 동성애자들의 존재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방패로 삼으며 뻔뻔하게 30개 이상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게이 클럽, 성소수자 인권 단체 사무실 등 성소수자들의 공간에 대한 가스 공격, 총기 난사, 성소수자 살해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동성애 혐오적인 경찰은 성소수자들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소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러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차별과 폭력에 대한 묵인, 그리고 동성애 혐오 조장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안맥켈런과 역대 노벨상 수상자 27명은 푸틴에게 성소수자 탄압을 중지하라는 서한을 전달했고 역대 올림픽 챔피언들과 올림픽 출전 선수 52명은 러시아 정부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를 비판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2014년 소치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등 주요 국가 정상들이 소치에 가지 않는 것에 그쳤다. 우리가 직접 보았듯이, 2014년 2월에 개최된 소치 동계 올림픽은 사실상 푸틴 정권의 선전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강경한 대응과 겹쳐 푸틴의 국내 지지율은 최근 3년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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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LGBT 운동의 저항

 


 푸틴 정권이 오랜 기간 준비하여 이루어 낸 전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러시아 성소수자들의 ‘생존’을 위한 저항과 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러시아 LGBT 운동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동성애 처벌법이 폐지된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레닌 사후 스탈린이 권력을 쟁취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1934년에 ‘남색’ 처벌법이 제정됐다. 이 반동성애법은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1993년에 동성애가 비범죄화될 때까지 많은 동성애자들과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이용됐다. 1980년대 LGBT 운동은 이 법을 철폐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84년에 설립된 ‘게이 연구소’는 국제 사회에 소련의 LGBT 상황을 알리고 에이즈 예방 활동을 펼치다가 KGB에 적발되어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일부 멤버는 해외 망명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걸쳐 올가크라우제의 ‘독립 여성 클럽’, 예브게니야데브랸스카야와 로만 칼리닌의 자유주의당과 ‘성소수자 연맹’, 올가주크의 ‘차이코프스키 재단’, 게이 레즈비언 연맹 ‘날개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전국 연합체 ‘삼각형’, 마샤게센의 국제동성애자인권위원회(IGLHRC) 모스크바 위원회 등이 반동성애법 철폐와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위해 활약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9년 11월에 소련 최초의 동성애 신문 <테마>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투쟁 방식에 대한 활동가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동으로 국제 퀴어 영화제(1991년 최초)와 각종 국제 학술 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러시아 LGBT 인권 운동은 2000년대 들어 더욱 확대되어 새로운 단체들이 설립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2003년에 최초의 동성애 잡지인 <크비르(퀴어)>가 출간되고 2004년에는 MSM 대상 HIV/AIDS 예방 단체인 LaSky가 설립됐으며, 2005년에는 니콜라이알렉세예프의 주도로 모스크바 인권 단체 GayRussia.Ru가 설립됐다. 이 단체는 다음 해인 2006년에 제1회 게이 프라이드(자긍심 행진)를 조직했으나 모스크바 시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끝내 프라이드를 감행했다가 참가자들은 경찰에 연행되고 말았다. 같은 해에 러시아 최초 및 유일의 전국 LGBT 조직인 ‘러시아 LGBT 네트워크’가 결성되기도 했다. 2008년에는 MSM에 대한 헌혈 차별 철폐를 쟁취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LGBT 영화제 ‘Bok o Bok(나란히)’가 출범했다. 동성 결혼 법제화를 위한 투쟁도 2000년대에 처음 시도됐다. 2005년에 야블로코당 소속의 바시키르 공화국 의회 의원 에드바르드무르진과 동성애 잡지 <크비르> 편집장 에두아르드미쉰이 혼인 신고를 거부당한 후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동성 결혼 금지가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는 유럽인권보호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이 소송을 기각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다른 활동가들이 법정 소송을 통해 동성 결혼을 인정받으려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들은 언론을 통해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널리 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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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에 러시아 사회는 보수화, 종교화, 전체주의화를 겪고 있었다. 푸틴과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권력 강화와 더불어 시민 사회 탄압, 특히 성소수자 탄압이 가시화됐다. 그 결과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반동성애법들이 제정됐고 이로써 러시아 LGBT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프라이드 조직을 둘러싸고 때때로 이견을 보이기도 했던 활동가들은 반동성애법 철폐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쓰게 되었다. 차별에 맞선 투쟁에 가담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점차 늘어났으며 해외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의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16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러시아 LGBT 네트워크’는 성소수자들에게 법률적, 심리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들은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등의 혐오 대응에 앞장서고 있으며 성소수자 가족 지원, 사회학적 연구, 국내 정당 및 시민 단체들과의 대화, 국제 연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GayRussia.Ru는 2006년 이후 지금까지 게이 프라이드 개최가 금지되고 있는 러시아에서 성소수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들은 언론을 통한 가시화에 주력하며 러시아 및 국제 법원에서의 법정 투쟁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또 벨라루스 등 러시아 주변국 LGBT 활동가들과의 연대를 실천하며 혐오 발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2006년 랴잔주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그리고 2013년 여름에는 연방 차원에서) 제정된 ‘동성애 선전 금지법’에 맞선 투쟁에도 적극 가담하고 있다. ‘러시아 LGBT 스포츠 연맹’은 소치 올림픽 폐막 직후인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제1회 러시아 LGBT 오픈 게임즈를 개최했다. 차별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뭉친 ‘LGBT 평등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비성소수자 지지자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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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폭력,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

 

 

 러시아 야권 내부에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 탄압, 시민 사회 탄압, 성소수자 탄압, 제국주의적 확장이 계속되면서 정부에 의한 탄압에 고찰이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서로에 대한 공감과 연대도 확대되고 있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오랫동안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에 나설 수 없었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상징물인 무지개 깃발이 이제는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힘차게 펄럭인다. 러시아 성소수자들은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하며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월 1일, 러시아 상원이 푸틴 대통령의 요청이 있은 지 2시간 만에 크림 반도에 대한 파병을 승인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LGBT 인권 단체 ‘븨홋(Coming Out)’이 “우리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반대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력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러시아 LGBT 네트워크’는 군사 개입 없이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모스크바에서는 ‘무지개 연합’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LGBT 평등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연합’이 반전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 어떤 부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성소수자들 그리고 차별과 폭력이 아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이야말로 푸틴 정권의 탄압과 야욕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들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두 평화를 기원하며 차별과 폭력 및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에게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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