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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포인트 Glocal Point2021-12-06T18:13:11+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어떤 미투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https://blog.jinbo.net/glocalpoint/772019-02-11T17:02:59+09:002019-02-11T16:55:04+09:00<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span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텍스트: [특집] 어떤 미투 # 안팎 / 배경이미지: 시멘트 벽 위에 "#METOO"라는 문구가 여러 글에서 오려 붙인 듯한 낱자들로 적혀 있다." src="/attach/6789/1123646558.jpg" style="width: 700px; height: 262px;" /></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right;"><span id="docs-internal-guid-a1baea48-7fff-eb27-7f3c-bdfe57aa05ad"><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안팎 / 웹진 <글로컬포인트> 기획편집팀</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span id="docs-internal-guid-a1baea48-7fff-eb27-7f3c-bdfe57aa05ad"><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Arial; 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2013년의 일이다. 어느 생매매 업소 밀집 지역에 붙었다는, 이내 ‘삼촌들’(업소를 운영하는 남성들)이 떼어 버렸다는 대자보 한 장이 화제가 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썼듯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이 붙은 이 대자보는 “저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blockquote>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 margin-left: 40px;"><span style="text-align: justify;">안녕들 하십니까</span><br style="text-align: justify;" />
<span style="text-align: justify;">저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입니다.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가 정말 유행이기는 한가 봅니다. 성매매를 하러 온 구매자 남성이 자신도 자보를 썼다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더군요. 거기에 제대로 호응하지 않았다고 주먹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돈을 냈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논리에 구타 당하고 욕먹고 성병예방도 할 수 없고 수치스러운 말들을 듣고 내가 성매매 하는 여성이라는 걸 알고 강간하려 하는 사람들. 돈의 출처는 묻지 않고 그저 돈 벌어오라고 하는 사람들. 결혼도 안 한 여성이 산부인과 드나든다고 경멸하는 눈초리. 쉽게 돈 번다고 마냥 욕하는 사람들[,] 성매매 한 번에 몇 십만원을 지출할 수 있는 남성들의 재력은 묻지 않고 여성에게만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낙태를 하고도 돈을 벌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오늘도 성매매를 하러갑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span><br style="text-align: justify;" />
<span style="text-align: justify;">나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span></p>
</blockquote>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 margin-left: 40px;">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을 깎아 내리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냐는둥 하고 말이다. 저 대자보를 의심했던 사람들, 혹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페이지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던 페이스북<sup><a href="https://blog.jinbo.net/glocalpoint/77#footnote_77_1" title="페이스북은 2017년 8월 일방적으로 페이지를 삭제했다가 수일만에 1200여 명의 항의 서명이 모이자 별다른 해명 없이 복구 조치를 취했다. 페이지 주소는 https://www.facebook.com/성판매-여성-안녕들-하십니까-184300758649712/ 운영자 이소희가 페이지에 게시한 글들과 다른 필자들의 글을 엮은 책으로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도서출판 여이연, 2018)가 있으며(이 책은 1쇄를 낸 후 절판이 결정되었는데, 절판 경과에 대해서는 fb.com/gynotopia/posts/1930658413693709 참고) 이외에 성판매업 종사 당사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페이지로 “성노동자 대나무숲”(fb.com/sexworkersbamboo), “모던바 근무자의 업무일지”(fb.com/bar0000alba) 등이 있다." id="identifier_77_1"class="identifier">1</a></sup> 등을 생각하면 “나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그러나 저 말은 쉽게 먹혀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2016년의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어 2018년 초 “미투(Me too)”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성폭력 고발 운동 가운데 유독 논란거리가 된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의심과 비난이 따라붙곤 하지만) ‘진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미투의 본질을 흐린다’는 식의 ‘악플’이 몰렸던 그 게시물은 다름아닌 성판매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밝히는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의 글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을 깎아내리려는 것이라는 의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반응이 다시 한 번 반복된 것이다.<br />
그 페이지에 종종 달리곤 했던 ‘닥쳐, 이 창녀야’ 수준의 댓글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저러한 반응들은 한국에서 성판매 여성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이것은 한국에서 여성 일반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성판매 경험을 묘사할 때엔 ― 인신매매를 비롯한 직접적인 강요를 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 ‘성매매로 내몰렸다’는 표현이 종종 사용된다. 건강을 비롯한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안전조차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매우 낮은 수준의 협상력 만을 가진 채 일하게 되는 것이므로 내몰렸다는 말은 적지 않은 경우 적절해 보인다.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며, 구매자나 관리자의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 등에서 모두 말이다.<sup><a href="#footnote_77_2" title="‘개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을 타인에게 내어보여야 한다’는 식의 말은 의식적으로 배제했다." id="identifier_77_2"class="identifier">2</a></sup></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그러나 이 당연한 말을 조금 더 뜯어 보기로 하자. 성판매 행위의 비범죄화를 비롯한 몇 가지 조치들로써 나아질 수 있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 폭행을 당했을 때, 휴일을 보장 받지 못했을 때, 혹은 이 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신고할 수 있고 국가가 구제 조치를 취한다면 저 ‘내몰림’이 지금과 같이 출구 없는 형태의 내몰림은 아니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 이를테면 복지제도 같은 것을 통해 저 열악한 환경을 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줄인다면, 어쩌면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인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하지만 또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성판매의 조건이 있다. 바로 성적 규범에의 극단적인 종속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사이즈’나 ‘스펙’ 혹은 ‘마인드’와 같은 은어들은 특정 형태의 외모나 순종성 등 사회가 그리는 성적 규범으로서의 ‘여성성’이 성적 거래의 현장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남을 보여준다. 또한 이 여성성이라는 것에 순종성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한, 이것은 순종의 거부에 대해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됨을 잊지 말하야 할 것이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한국과는 다른 여성성 관념을 가진 사회가 있다는 점을, 혹은 한국 내에조차 주류적 관념과는 다른 어떤 것을 가진 그룹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성 문화 일반의 층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일 테다. 어째서 성판매는 단순히 성적 행위 ― 예컨대 다양한 형태의 성교 ― 를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인 순종’을 함께 판매하는 일로서 존재하는가? 구매자의 폭력은 어째서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다지도 쉽게 정당화되고 타인들의 (‘성판매 여성은 자신의 성을 내어 놓은 것이므로 성폭력 피해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언어로 다시금 반복되는 당연한 현상으로서 존재하는가?<br />
달리 말하자면, 어째서 성판매는 인격의 판매로 치환되어 이해되는가? 성을 산 것은 곧 인격을 산 것이므로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생각은 어떤 토대를 갖는가? 성이 인격을 대표할 정도로 중대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많은 남성들은 그의 성적 수행들이 비규범적일 때조차 그의 삶 전반이 부정당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예컨대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조차 사회적 지위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여성의 인격이란 성 이외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성’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구매할 때, 그러니까 어떤 형태로든 여성을 고용할 때, 같은 일이 반복된다. 업무의 종류나 수준에 상관 없이 여성이 ‘직장의 꽃’이 될 때, 노동자 여성에게 업무상 필요한 노동이 아니라 여러가지 성적인 (혹은 성별화된) 노동들 ― 식사나 다과 준비부터 웃음 짓기에 이르기까지 ― 이 요구될 때, 성적인 폭력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이야기 될 때. 그리고 이것은 다시 한 번, 고용 관계 바깥의 다른 모든 관계들에서 반복된다. 성적인 수행들을 연인·배우자 여성에게 의무로 부과할 때, 혹은 여성의 모든 행동을 (종종 거절의 표시마저도) 성적인 신호로 읽을 때.</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이렇게 생각한다면 성판매 여성이 성판매 과정에서 겪는 폭력들, 폭력으로 불리지조차 못하는 여러 강압들은 이 사회 전반에 횡행하는 성적 폭력들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성판매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일 뒤에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단순히 성매매라는 현상을 없애야 한다는 결론(만)이 아니다. 기어이 성매매라는 현상을 존속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그리고 그와 같은 원리를 갖고 있는 이 사회 모든 곳에 있는 이들이, 성으로 제한되지 않는 인격을 되찾을 길을 탐색하는 과정으로서의 성판매 노동 조건 변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성판매 여성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신고조차 할수 없다’는 문제 의식 이상의 지점에서, 성판매 노동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와 미투 운동 일반<sup><a href="#footnote_77_3" title="성판매 여성의 미투와 구분되는 일반 미투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미투 일반’이란 성판매 여성의 것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미투를 가리킨다." id="identifier_77_3"class="identifier">3</a></sup>이 만난다는 뜻이다. 성폭력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은 몇 가지 특정한 행위들을 금지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성은 인격체가 아니기에 성적으로 정복해도 좋다는, 역으로 성 이외의 인격이란 없기에 성적으로 정복하면 모든 인격을 지배한 것이라는 관념에 기반한 성폭력 일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의 미투 운동은 결국 성폭력이라는 개개 행위들을 고발하고 처벌하려는 운동이 아니라 성에 대한 관념 전반을 바꾸는 운동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안희정의 성폭력 혐의를 다루는 법정의 재판관은 “정조”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법조문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 사회의 굳건한 기둥으로 남아 있는 그 단어를, 여성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유일한 것으로 성(적 순결)을 말하는 그 단어를. 그러나 성 이상의 것이 아닌 여성이 그것을 소유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여성이란 그를 소유할 남성을 위해서만 지켜질 가치가 있으며 그 남성이 요구할 때 언제나 전적으로 바쳐져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그 단어를 말이다.</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br />
‘미투 운동’ 앞에서조차 반복되어 입에 오르는 이 “정조”라는 말은,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여성을 비난하는 데에 동원되어 왔다. 그처럼 성이 여성 인격의 전부인 이 사회에서 성을 내어 놓은 성판매 여성은 곧 스스로의 인격을 포기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성판매 여성의 말하기를 의심하고 성폭력 고발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그에 맞서 성을 파는 일 ― 저들의 말로, 정조를 지키지 않는 일 ― 이 곧 인간임을 포기하는 일이 아님을 말하는 실천들은 곧 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지켜야 할 것 ― 따라서 주권자로서의 여성이 거주하는 사회가 지켜야 할 것 ― 이 정조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서의 여성임을 말하는 실천들일 것이다. 때로 다른 이름이 붙고 때로 다른 취급을 받는 이 실천들은, 실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p>
<fieldset style="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legend><span><strong>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strong></span></legend><!--Creative Commons License--><div style="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a rel="license" href="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 target=_blank><img alt="Creative Commons License" style="border-width: 0" src="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a></div><div style="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이 저작물은 <a rel="license" href="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 target=_blank>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a>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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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a href="https://blog.jinbo.net/glocalpoint/category/35">5호_2019년 1월</a> / <a href="https://blog.jinbo.net/glocalpoint/category/36">특집</a>" 분류의 다른 글</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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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텍스트: 퀴어 커뮤니티와 성폭력 # 잇을 / 배경이미지: 시멘트 벽 위에 "#METOO"라는 문구가 여러 글에서 오려 붙인 듯한 낱자들로 적혀 있다." src="/attach/6789/5995850638.jpg" style="width: 700px; height: 262px;" /></p>
<p> </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 </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right;"><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잇을 / 언니네트워크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right;"><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이 글은 언니네트워크 및 무지개행동 반성폭력교육TF에서의 논의를 정리했다.</span></span></span></span></p>
<p><br />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성폭력을 주로 암수범죄라고 한다. 신고부터 여전히 극히 적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많은 성소수자가 성폭력피해 상담전화를 걸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할 것이다. 미지의 상담원이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일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경험을 경청하여 줄지 두렵다. 상담을 해도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한국 LGBTI 사회적 욕구조사(2014)>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 3,208명 중 레즈비언의 64.3%, 트랜스젠더 여성의 59.7%, 트랜스젠더 남성의 68.5%가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이 ‘자주 또는 종종 일어난다’고 응답했다. 다수의 성소수자가 성폭력 피해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나 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 등에서는 성소수자 대상의 성폭력이나 성소수자 간 성폭력이 파악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다수는 남성이라는 점만 파악이 가능하다.(<2017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전체 상담 2,118회(1,414건) 중 피해자는 여성이 94.5%, 가해자는 남성이 94%) 성소수자 단체에 상담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 경우에도 총 상담건수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알려진 사건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성소수자운동은 여성가족부가 ‘성소수자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정책대상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고 지자체 양성평등기본조례에 개입한 것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양성평등정책이 중요하게 주목하고 있는 성폭력, 가정폭력 문제에서 성소수자를 떼어내지 말고 성소수자의 경험을 파악하고 대응할 것을 주문해왔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정신병원 강제입원, 교정 강간, 학교와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하고도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한편,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성소수자의 성폭력 경험을 가시화하고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수반되어 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알려졌다. 2017년, 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구 에이로그 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팟캐스트 프로젝트 승냥이FM, ACE STORY, (구)논모노로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활동해온 (전)활동가 케이의 착취, 횡령, 성추행과 데이트강간이 공론화되었다. 2017년 10월 행성인은 케이의 강연을 취소했으나 취소의 정확한 이유, 공식입장과 후속처리는 공표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8년 3월 여성의 날을 앞두고 비판이 다시 제기되었고 반상임활동가가 다수의 성폭력 사건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특히 행성인이 성폭력을 방조하고 묵인한 점이 강하게 비판받았다. 이후 행성인은 조정위원회를 통해 성폭력 피해를 신고 받는다는 공고를 올리고, 사과문과 함께 대외 활동을 잠정 중단하였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blockquote>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성폭행, 성추행이란 우리나라 사법기관이 유권해석으로 밝힌 바와 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케 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행위자의 의사, 행위의 태양, 발생한 결과, 피해자의 의사, 신체적 혹은 정신적 조건, 행위자와 피해자와의 관계, 주변의 상황, 당시의 사회구조, 경제 및 교육수준, 신분관계 등에 따른 당사자간의 위계의 존재나 정도 등을 아울러 전방위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이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 내지는 위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바, 여기에서 사람의 의사라 함은 확정적이고 사전적인 의사는 물론 사후적인 의사나 불확정적인 의사 또한 상대방이 예견할 수 있는 정도를 고려하여 참작되어야 할 것이고,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행위자가 개입한 정도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앞서 밝힌 피해자의 진술과 비교하면 피징계자는 피해자들에 대하여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의 동의 여부와 의사를 고의적으로 묵살하거나 기존에 견지하던 태도와 의사를 자신의 교육수준이나 사회구조적 위계를 이용하여 교란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형식적인 동의 의사를 무리하게 표시하도록 한 바,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와 기타 신체접촉 등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며 이는 각 성폭행, 성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여행자 171110 징계3 결정문 (18.01.14 공개)</span></span></span></span></p>
</blockquote>
<p> </p>
<blockquote>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와 공동체에서의 배제, 인권단체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행성인을 믿고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행성인 운영위원회는 (1) 행성인 회원이었던 케이 전 퀴어활동가의 성폭력과 노동착취, 횡령 등 인권침해 가해 문제제기에 대한 단체의 미흡한 조치, (2) 반상임활동가(현재 직무정지 되었고, 조정위원회에 회부되어 있습니다)이자 전 사무국장인 활동가의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한 방조와 묵인, (3) 현 성소수자노동권팀장의 성폭력과 주취폭력 등에 대한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분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제기의 대상이 된 회원 뿐 아니라 행성인의 조직문화와 구조에도 폭력을 용인하고 묵인하도록 만드는 잘못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 1.38; 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사과드립니다 (18.03.17 게재)</span></span></span></span></p>
</blockquote>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두 사건은 활동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활동가/회원에 대해,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지위와 힘을 이용했다고 보인다. 이들 사건은 ‘좁은 성소수자판’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고, 반성폭력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교육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높아졌다. 이후 대학 성소수자동아리나 작은 규모의 단체 등에서도 성희롱, 성추행,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 사건들이 공론화되었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소수의 예외’로 남겨진 성폭력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남성간 성폭력’은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대상 성폭력 사례에서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가 82.8% 여성인 경우 10.2%, 성별을 알 수 없는 경우는 6.9%를 차지했다.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2004)> 및 다수의 사례에서 남성 가해자는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며, 피해자에 대해 권력의 우위를 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보고된다. 이는 성폭력이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예시로도 종종 언급된다.</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그러나 성폭력의 기저에 있는 핵심권력이라고 지목되는 ‘젠더권력’이 동성 간에도 작동하는지, 성소수자 간에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우리는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성폭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를 차지한다는 걸 알지만, 그러므로 남성이 남성을, 여성이 남성을, 여성이 여성을,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은 모두 ‘소수의 예외’로 남겨둬도 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이해를 어떤 방식으로 더 넓혀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누구나 성폭력 피해를 겪을 수 있지만 그 ‘누구나’는 90% 이상 여성으로 상상되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은 그 ‘전부가 아닌’ 사건 앞에 공허해진다. 나는 반성폭력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회사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 만약 가해자가 남성이었다면 성희롱임이 분명했겠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정체화하는지를 떠나서) 둘 다 여성이라고 간주할 때 그 관점은 쉽게 간과되었다. 이성애자 기혼여성이 한 몸매평가는 성적인 의미가 없거나 적다고 간주되고, 그러므로 사소하게 취급된다. 같은 행동도 여성이 했다면 무서울 것도, 못 견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정말 여기에 젠더권력이 없으며, 그러면 성폭력이 아닌 걸까?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등잔 밑을 밝혀야 할 때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간혹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성소수자 단체에 전화해 피해자가 성소수자인데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 묻는 일이 있다. 1366은 피해자가 ‘성소수자니까’ 성소수자 단체에 자문을 구하고, 성소수자 단체는 ‘성폭력피해자니까’ 성폭력지원기관에 도움을 구한다. 그래서 성소수자인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별도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거나 어느 쪽이 이 문제에서 전문성을 차지해야 하는가를 논하자는 건 아니다. 성소수자 단체가 성폭력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남성 가해-여성 피해 중심의 성폭력 담론을 어떻게 참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호소를 접해왔다. 일반적인 성폭력 매뉴얼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런데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성적 언행은 성폭력’이라는 명제에서 ‘원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 ‘성적인 것’의 의미를 얼마나 토론해왔는가? 대개 성폭력을 안다고 여기면서도 잘 접근하지 못하는데, 담론의 한계가 아니라, 기존의 논의부터 수용하고 소화하지 못한 데 주된 원인이 있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성소수자 성폭력을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 무엇을 성적 침해라고 느끼고 문제화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와 성폭력을 인지하는 감각이 연관관계를 갖는다면, 그것을 탐구할 때 젠더와 섹슈얼리티, 성폭력에 대해 더욱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서 ‘성적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어떻게 때때로 성폭력과 이어지는지 그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등잔 밑까지 환하게 밝혀야 하는 때가 왔다. 우리가 그 불을 붙여야 한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폐쇄성과 특수성이라는 알리바이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퀴어 커뮤니티는 다소 폐쇄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조직 자체를 경직되게 하기 쉽다. 사회의 공고한 성소수자혐오는 그 자체로도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지만, 커뮤니티가 폭력에 대응하는 데 취약하게 만든다. 피해자, 가해자, 그 주변인 모두가 ‘다른 데 가면 되지’ 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문제제기는 더 어렵고, 이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하고 방어적인 심리는 성폭력 피해 은폐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사회는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와 성폭력을 구분하지 않고 처벌한다. 바꿔서 말한다면 많은 성폭력이 그저 일탈적인 섹슈얼리티로 왜곡된다. 퀴어커뮤니티에도 성희롱과 성추행을 ‘플러팅’, ‘성적 신호를 보내는 행위’ 정도로 여기며, ‘제약 없는 성적 언동’이 문화적 특징으로 수용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일부 존재할 것이다. 커뮤니티가 닫혀 있는 점은 이 기대가 고질적으로 지속되는 데, 다른 구성원을 성적으로 침해해도 비판받지 않는 데 기여한다. ‘아웃팅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적지 않은 성폭력이 일어나는 만큼, 강간 가해자를 고발한 것이 ‘아웃팅’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그러나 ‘특수성’이라는 알리바이는 힘을 잃어간다. 점점 더 많은 성소수자가 페미니스트로, 성평등운동의 주체로 선언하고 있다. 성적으로 친밀한 동시에 불편하지 않고, 불편함을 표현했을 때 그것이 존중받는 커뮤니티를 기대한다. 게이문화중심성, 상대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정체성/의제에 대한 편견과 희화화를 경계하고,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하고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기대한다. 이런 변화 앞에, 커뮤니티의 ‘특수성’은 당연히 전제되기 이전에 ‘왜 달라야 하는가?’ 라는 예리한 질문을 받는다. 성급한 알리바이는 내부를 성찰하는 대신 외부적 요건만을 탓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span></span></span></span></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원칙의 부재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성폭력 해결절차가 없다. 사건조사, 가해자징계, 피해자회복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절차가 있어야 기록도 남으니, 문제제기는 늘 ‘처음’이고 당혹스럽다. 성폭력이 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보가 없고, 기존 지원체계가 낯설어서 활용하지 못하고, 상담기관에 연계하지 못한다. 징계 내규만 있을 뿐 징계의 의미, 조직의 책임범위에 대한 토론은 드물다. 이는 역량과 자원의 부족으로 설명되지만, 사실은 원칙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조직의 역량을 재평가하고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량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 역량을 원칙에 맞게 배분하고 정의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원칙의 공백이며, 우리의 한계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무능한 조직이기에 피해자는 부담을 감수하고 공론화를 선택하게 되며, 조직은 급작스럽게 여론에 압도된다. 일상적으로 논의하지 않던 주제를 토론에 부치니 성폭력 피해사실을 적시하게 되며, 여지 없이 2차 피해가 일어난다. 구성원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규약이 있어도 효용을 찾기 어렵다. 사후 약방문. 그저 남는 것은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다.</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안타깝게도, 가해자를 영구제명한다고 해도 조직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구제명은 오히려 조직과 개인이 함께 책임지지 않고 가해자에게만 문제를 전가하는 가장 무책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고자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지금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지 제시하고 신뢰감 있게 소통하는 것, 작더라도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모습이다. 그러려면 주위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구조적 장치 마련과 기준점 세우기</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커뮤니티에 갓 진입했을 때 겪은 성희롱을 시간이 흐른 뒤 문제제기 했을 때, 그 사이 쌓인 위치와 관계 맥락이 겹쳐져 해당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활동 경력도 권력이 된다는 점에서, 왜 곧바로 문제제기하지 않았는지 의심할 게 아니라 조직문화 점검이 먼저다. 소수에 의해 많은 활동이 진행될 때 ‘활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갖는 권력은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권력이 명시적 지위, 물리적 힘만이 아니고,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난 권력이 없다’거나 ‘어쩌라는 거냐’고 항변하기보다는 잘못된 권위와 권력의 행사에 경각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또한 정보와 결정권한이 집중되지 않도록 대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공동의 노력,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기간, 활동량, 커밍아웃의 폭과 인맥 등 서로 다른 위치와 자원에서 오는 격차를 돌아보고 견제하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성과주의를 내려놓고 자기돌봄과 휴식을 독려하는 연습, 때로는 일에 공백이 생기는 것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공백이 재충전이고, 반성이고, 내부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을 갈등을 돌아볼 수 있는 쉼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단일하지 않은 위치, 경험, 정체성이 공존하므로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정신없이 내달리지 않는 조직, 쉼표가 있는 조직일수록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입히는 일도 적다. 좋은 토대 위에 뼈대를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름 붙지 않은 폭력’이 성폭력으로 수렴되는 현상은 사실 자연스럽다. 반성폭력운동은 성차별을 문제시하고, 남성중심적 문화를 배격하고, 성적 불평등을 쟁점화하는 운동이다. 즉 사회가 폭력이 아니라 ‘성’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폭력으로 명명해왔고, 성폭력을 엄격하게 정의해서 ‘어디까지는 괜찮다’고 말하는 방향으로 흘러오지 않았다. ‘성폭력인가?’ 의문이 떠오를 때 이를 ‘조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바꿔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전투’가 아닌 학습의 계기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weight: 700;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쉽게 버리지 않고 천천히 평등을 뿌리내리기</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퀴어 커뮤니티의 성폭력 사건에서 많은 성소수자는 피해자이자 침묵한 방조자다. 그 자책을 헛되게 증발시키고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 성소수자 단체들, 그리고 단체들의 연대체인 무지개행동은 성폭력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배울 수 있는 장을 여는 시작 단계에 있다. 대응은 항상 사건 뒤에 올 수밖에 없는 걸까? 몇 박자 늦었더라도, 그러니 더욱 더 우리가 서로를 성장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 질문과 비판이 아낌없이 있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공동체적 해결’에 해답을 척 내놓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퀴어커뮤니티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이란 ‘커뮤니티를 부수지 않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커뮤니티는 허울을 위해서 사람을 버릴 때 부서진다.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해서도 가해자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피곤하게 하는 사람’,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딱지 붙일 때. 성급한 자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제대로 경청하지 않고 사람을 함부로 이용할 때. 그건 알맹이를 다 버리는 일이다. 그러니 ‘잘 해결해야 한다’고 할 때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을 버리고 가치를 버리면서 성폭력을 잘 해결할 수는 없다. </span></span></span></span></p>
<p> </p>
<p dir="ltr" style="line-height:1.38;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arial,helvetica,sans-serif;"><span id="docs-internal-guid-d37d47ea-7fff-cdd2-7098-25f41b477cd2"><span style="color: rgb(0, 0, 0); background-color: transparent; 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vertical-align: baseline; white-space: pre-wrap;">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평등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안온하고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평등을 담보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앞으로 해나갈 노력뿐이다. 피해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경청하고, 가해자의 주변인이라면, 그를 감싸는 것이 그를 위해서나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새기며, 무책임하게 가해자를 옹호하고 부추기기를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정도 잘못은 넘어가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라는 안이한 생각이 실상 우리 자신을 얼마나 모욕하는지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등을 재고하고, 평등을 뿌리내려야 한다.</span></span></span></span></p>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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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텍스트: [특집] 어떤 미투 # 안팎 / 배경이미지: 시멘트 벽 위에 "#METOO"라는 문구가 여러 글에서 오려 붙인 듯한 낱자들로 적혀 있다." src="/attach/6789/1326384536.jpg" style="width: 700px; height: 262px;" /></p>
<p> </p>
<p dir="ltr" style="margin: 0pt 0px; color: rgb(34, 34, 34); font-family: 나눔고딕, NanumGothic, 돋움, Dotum, 굴림, Gulim, sans-serif; line-height: 1.38; text-align: right; padding: 0px !important;"> </p>
<p dir="ltr" style="margin: 0pt 0px; color: rgb(34, 34, 34); font-family: 나눔고딕, NanumGothic, 돋움, Dotum, 굴림, Gulim, sans-serif; line-height: 1.38; text-align: right; padding: 0px !important;"><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나영 / 웹진 <글로컬포인트> 기획편집팀</span></span></p>
<div> </div>
<p>‘#MeToo’(이하 미투)는 2018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고발은 꾸준히 있었고 ‘00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한 공론화도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힘으로 2018년에는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화의 궤도에 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들어선 새 정부가 장식 삼아 페미니즘을 자신의 깃털 사이에 대충 꽂아두고 있을 때, 서지현 검사는 국정농단을 보도했던 바로 그 JTBC에 출연해 자신을 드러내고 검찰 내부의 성폭력 문화를 고발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연이어 김지은 씨가 안희정을, 최영미 시인은 고은을 고발했다. 즉, 이들의 미투는 개인적인 피해 호소나 폭로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적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 의미를 “나도 고발한다”가 아닌 “나도 당했다”로 해석하며 사건을 개별화, 개인화해 나갔다. 고발이 스캔들이 되고, 사건이 법정으로 집중되어 오직 ‘무죄냐 유죄냐’만이 사건의 의미로 남게 될수록 그 속에서 정치적 발화의 의미는 조금씩 탈각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계속해서 주지해야 한다.</p>
<p align="left"> </p>
<p>한편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 대학, 군대, 체육계 등 사회 각계의 영역에서도 고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주여성들도 국회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었고, 운동사회 내 성폭력이나 성소수자 간 성폭력에 대한 고발도 이어졌다. 미투로 고발된 모든 사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위치한 각 사회 영역의 특수한 조건과 맥락들 속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개인과 극단의 생존 자체가 연출가 한 명에게 달려있는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연극계의 미투를 이해할 수 없고, 해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과 함정 내 구조, 군에서의 여성 성소수자라는 위치가 어떠한 조건을 만드는 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해군 내 성폭력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주여성이나 성소수자는 더 복합적인 지형들이 얽혀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지금 어디로 흩어졌을까. 누군가는 “가해자가 유명하지 않아서 우리의 이야기는 미투가 되지 못한다”고 아이러니한 심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투로 고발된 각 현장의 조건과 맥락은 사라지고 가해자 개인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p>
<p align="left"> </p>
<p>문제는 어떤 지점에서 도돌이표처럼 이 미투 운동의 정치사회적 효과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한계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한계는 그 동안 반성폭력 운동이 계속해서 넘어서고자 했던 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p>
<p>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 광장은 다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용기에 기대는 미투가 아니라 구조를 흔드는 미투가 되기 위해, 2018년의 미투는 이제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이어져야 할까. 이 글에서는 2018년의 미투를 돌아보며 그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죽일 놈, 재수없는 놈, 억울한 놈</strong></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서지현 검사의 고발 이후 2018년 국회에서는 1월부터 3월까지만 90여 건에 달하는 성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중 39건이 가해자 처벌 방지에 관한 법안, 38건이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처벌 강화가 실질적으로 성폭력을 줄이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이전 5년의 통계 추이만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2013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었지만 이후 성범죄 발생률은 오히려 증가하고, 기소율은 감소해왔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한겨레신문이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4년 성폭력 범죄 인구는 10만명 당 58.2건으로 10년 전 23.7건에 비해 145.5%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살인, 강도, 방화 등 다른 강력범죄는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성폭력 범죄는 약 2.5배나 증가하였으며, 특히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범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고 있다.<sup><a href="https://blog.jinbo.net/glocalpoint/75#footnote_75_1" title="한겨레, “박대통령 “4대악 척결”에도 성범죄 급증 여성들 ‘범죄 피해 불안’ 더 커졌다“, 엄지원 기자, 2016.3.7." id="identifier_75_1"class="identifier">1</a></sup> 한편, 2017년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7월까지 13만 건의 성범죄가 발생하였고 기소율은 2013년 76.9%에서 2014년 80.5%로 잠시 높아졌다가 이후 계속 감소하여 2017년엔 76,5%로 2013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sup><a href="#footnote_75_2" title="여성신문, “2013년 이후 성범죄 13만 5000건...피해자 90% 여성”, 이하나 기자, 2017.9.1." id="identifier_75_2"class="identifier">2</a></sup> 반면,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된다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소송을 하겠다”고 굳이 언급할 정도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무고죄 고소는 증가했다.</p>
<p align="left"> </p>
<p>2018년의 #미투 운동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은 정작 중요한 문제가 법적 처벌 수위에 있기 보다는 법으로 다룰 수 없는 부분, 즉 점점 심각해져 온 차별적 구조의 모순이 폭발한 데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성폭력 사건이 매번 조두순 사건과 같은 심각한 강력범죄의 문제로 상징화되고 그 때마다 ‘강력한 법적 처벌’만을 대책으로 제시한 결과, 그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일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구조적 문제로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개인 간의 문제로만 방치되어 왔다. 가해자가 괴물로 그려질수록 일상의 성폭력은 관심에서 멀어져 온 것이다.</p>
<p>또한 구조적 맥락보다는 가해자, 피해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가해 행위의 수위, 피해자의 당시 반응 등에만 주목하다 보니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구분되곤 한다. 이를테면, 가해자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죽일 놈’으로 명백히 인식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심각한 상해나 사망에 이를 정도의 폭력을 행했거나, 피해자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미성년자이거나, 판단과 저항을 전혀 할 수 없었음을 강조하여 입증해야 한다. 그 밖의 경우에는, 일례로 안희정 전 도지사의 경우 기껏해야 ‘재수없는 놈’ 정도로 취급되고, 양예원 씨가 고발한 스튜디오 실장처럼 심지어 ‘억울한 놈’이 되기도 한다. 어느덧 가해자의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반응을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법정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p>
<p> </p>
<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법이 없어서 문제인가</strong></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서울서부지법 조병구 판사는 안희정 사건 1심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비동의 간음죄’가 없어 현행법으로는 그를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성소수자 여군에 대한 해군 간부들의 성폭력 사건 항소심을 담당한 고등군사법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내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의 성립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증거가 불충분하여 강제추행과 강간치상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희정 1심 판결 이후 한동안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논의가 있었으나 두 판결에서 보다시피 문제는 법이 없어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대법원은 이미 1998년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대법원 1998.1.23. 선고 97도2506 판결)함으로써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유무형의 위력 행사를 판단할 수 있음을 밝혔다. 위력을 이러한 전제 하에 판단한다면 피해자가 당시 적극적인 거절의사를 밝히지 못했던 상황이라 해도 이를 기준으로 충분히 가해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2018년 10월 판결(대법원 2018.10.25. 선고 2018도7709 판결)에서도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면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적용할 수 있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리 가해사실을 기각하는 결론을 내려놓고 법리 해석을 끼워 맞추는 재판부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의 입증 부담이 가중되고 가해자에게는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결과가 반복되는 것이다. <sup><a href="#footnote_75_3" title="다행히 안희정 사건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지방별정직 공무원이라는 신분상 특징과 비서라는 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지시를 순종해야 하고 내부적 사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했다"는 내용으로 가해자의 행위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 행위임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 id="identifier_75_3"class="identifier">3</a></sup></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성폭력 판단, 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잘못된 전제들</strong></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마저 여전히 폭행과 협박의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최협의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피해자에 의해 고발된 가해행위를 가해사실로 판단하기에 앞서 개인 간의 성적 관계로 전제하고 구성요건을 맞춰나가는 식의 재판 관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인 남녀 간에 성적 관계가 있었다면 모종의 성적 욕구나 이를 유발하는 행위가 상호간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사건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제는 합의된 성관계와 성폭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첫째, 남녀 사이에는 당연히 성애적 감정이 유발된다고 전제하며, 성적 행위와 성적 욕구를 당연한 인과로 전제한다. 성적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에도 아무런 성애적 감정이 없었을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성애적 감정을 느껴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며, 성폭력으로서의 성적 행위는 단순히 성적 욕구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지배 욕구,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 다른 욕구 불만이나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 등 다양한 욕구와 의도에 의해 벌어진다. 그러나 명시적인 폭행과 협박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이러한 다양한 지점들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지 않음으로써 ‘성적 욕구를 유발했을만한 정황’만을 전제로 사건을 판단하게 된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러한 판단은 동성 간 성폭력을 다룰 때에도 문제가 된다. ‘남녀 사이가 아님에도’ 성행위가 이루어졌다면 이는 가해자의 동성애적 욕망 때문이거나, 피해자도 이에 동의했기 때문이라는 전제 하에 사건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현주 감독 사건에서 판사가 “혹시라도 무죄를 선고하게 되면 피해자를 동성애자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문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피해자는 동성애자여도 동성애자임을 말할 수 없고, 동성애자가 아니어도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둘째, 가해자를 성적 행위의 주체로 판단하는 반면, 피해자는 그에 대한 의사표현의 주체로만 판단한다. 해당 사건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상호 간의 합의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들이 피해자에게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어느 덧 가해자의 행위는 마치 배경처럼 나열되고 심문의 방향은 피해자를 향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이와 같은 관행은 피해자의 의사표현을 판단 능력의 문제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미성년자, 장애인 등의 경우 판단과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한편, 다른 피해자의 경우에는 판단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피해자상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결정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피해자의 동의 여부나 성적 자기결정권이 어려운 딜레마가 된다. “YES MEANS YES, NO MEANS NO”가 마치 명확한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 되지만, 결국 무엇이 동의를 강제하는가의 문제를 떼어놓고는 ‘동의’와 ‘자기결정’을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관행이 이어지는 한 피해자 입장에서의 판단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가 분명한 안희정 사건이나 해군 성폭력 사건에서조차 피해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도리어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데 과연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된다고 해서 “동의하지 않았는데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질문이 멈춰지게 될까? 결국 법적으로 범죄의 구성요건만을 두고 이루어지는 논의는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잘 해내야 했던 피해자들과 변하지 않은 구조, <br />
더 이상 성폭력을 ‘성의 문제’로만 다루지 말자</strong></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제 성폭력을 정치사회적 맥락으로부터 탈각시키는 층위를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폭력을 ‘성의 문제’로만 다루는 구도를 깨야 한다. 성폭력을 ‘성의 문제’로만 다룰 때, 성폭력은 폭력이 아닌 욕망의 문제가 되거나, 다른 폭력의 구조와 분리되어 상상되고, 동시에 다른 폭력보다 과도하게 상상된다. 그 결과, 조직 내 위계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상적 폭력을 견디는 것은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성폭력을 견딘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로 여겨진다. 고발의 언어를 피해의 언어, 공포의 현실로만 형상화 할수록 정치사회적 주체로서 고발에 나선 이들은 욕망의 대상, 피해자로만 재현되고 가해자는 사이코, 변태, 괴물이거나 억울한 욕망의 주체로 남는다. 섹슈얼리티를 자원으로 이용한 이들과 무고하게 성을 침해당한 이들로 피해자의 유형이 구분된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이주여성들은 미투를 통해 생산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이주노동 구조, 한국인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거주 여건이 귀속되게 만드는 한국의 비자제도가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배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고발했다. 연극계 미투에서는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연출자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연극계의 열악한 구조가 연극계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임을 짚었다. 현재 진행 중인 스쿨미투에서는 교사, 또래 학생에 의한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립학교의 구조적 문제, 나아가 교육 현실의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성-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만이 아니라 이에 연결된 다른 구조들을 건드려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동의도, 성적 자기결정권도 개인의 문제로만 돌아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성폭력 사건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그에 연결된 수많은 구조적 연결고리들을 보아야만, ‘진짜 문제’가 보인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늘 대증적 해결책으로 개별 사건에만 집중되거나 법적 논의로만 귀결되고 만다는 것이 반복되어 온 문제이다. 미투 운동이 지닌 중요한 의의는 바로 이런 지점들을 드러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8년에는 이를 정치사회적 의제로서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우리가 미투 운동을 한 단계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이제 이러한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br />
마지막으로, 성폭력은 노동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여기서 ‘노동의 문제’라는 것은 1차적으로는 임금노동에서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에 대한 개념과 전제까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금노동에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성차별적 고용과 노동구조가 어떻게 성폭력의 구조를 유지시키는지 여러 차례 다루어져 왔기에 여기서 굳이 반복해 짚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강조하여 짚고 싶은 것은 임금노동 구조만을 다루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에서 고발자로 목소리를 낸 많은 여성들이 “잘 해내야 했다”, “잘 해내야 했기에 쉽게 말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임금노동 구조 안에서는 주어진 위치가 좁고, 그 아슬아슬한 벼랑길에서 떨어지는 것은 곧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돌아올 차별적 시선과 동시에, ‘여자라서’ 다시 기어오르기도 벅찬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할 때, “NO”를 말할 수 없는 구조는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 구조의 원인은 임금노동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임금노동에서의 성차별을 유지시키는 구조는 여성들을 1차적으로 가사, 돌봄, 임신출산 영역에 묶어두려는 구조,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 여성들에게 불안정, 계약직 노동을 요구하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가정의 영역으로 돌아갈 것으로 전제되는 여성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여성들은 직장에서 늘 임시의 위치로 여겨진다. 성폭력은 이 취약한 위치를 이용하여 가해지는 폭력이다.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신출산 노동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노동의 영역이자, 임금노동과의 연결선상에 있는 노동, 중요한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되어야 임금노동에서의 위치도 달라질 것이다.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만드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MeToo에 대한 응답은 개인들의 #withyou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2019년엔 우리가 다른 행보로 확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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