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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09
    [책 읽는 선교사] 남숙씨가 보낸 글
    강물
  2. 2009/12/09
    한겨레에서 NAKASEC과 KRCC를 만나다.
    강물
  3. 2009/04/05
    문득 들른 블러그에서(3)
    강물
  4. 2008/12/14
    [사진] 아르헨티나...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1)
    강물
  5. 2008/12/14
    [사진] 브라질, 아르헨티나 ... 이구아수(3)
    강물
  6. 2008/10/24
    [사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5)
    강물
  7. 2008/08/31
    [사진]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
    강물
  8. 2008/08/16
    [사진]칠레...푼타 아레니스(2)
    강물
  9. 2008/08/16
    [사진]칠레..푸레르토 나탈레스
    강물
  10. 2008/08/10
    [사진]아르헨티나...엘 찬텐(1)
    강물
  11. 2008/08/08
    [사진] 아르헨티나 ...깔라파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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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8/08/08
    [사진] 아르헨티나...바릴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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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08/08/08
    [사진] 아르헨티나 ..멘도사 (1)
    강물
  14. 2008/08/08
    [사진] 아르헨티나...꼬르도바
    강물
  15. 2008/08/08
    [사진] 아르헨티나 ..살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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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08/07/20
    [사진] 칠레 ...산 페드로 (3)
    강물
  17. 2008/07/20
    [사진] 볼리비아 ...salar de uy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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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08/07/20
    [사진] 볼리비아 - 우유니 (1)
    강물
  19. 2008/04/09
    [사진]볼리비아...포토시(1)
    강물
  20. 2008/03/31
    [사진]볼리비아...수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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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08/03/15
    [사진]볼리비아...라파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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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08/03/03
    [사진] 볼리비아...루레나바케 (2)
    강물
  23. 2008/03/03
    [사진] 볼리비아...국경에서 라파즈
    강물
  24. 2008/03/03
    [사진] 페루...티티카카 호수
    강물
  25. 2007/10/13
    1년 4개월여 만에 제자리. (2)
    강물
  26. 2007/10/13
    [사진] 필리핀 마지막 미개척 섬 '팔라완'
    강물
  27. 2007/10/13
    [사진] 마닐라 주변 둘러보기2.
    강물
  28. 2007/10/13
    [사진] 마닐라 '나보타스' 지역 의료자원봉사
    강물
  29. 2007/10/13
    [사진] 세계 3대 해변 가운데 하나라는 '보라카이'
    강물
  30. 2007/10/13
    [사진] 화산섬 '따가이 따이'
    강물

[책 읽는 선교사] 남숙씨가 보낸 글

필리핀 마닐라서 거리의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는 선교활동을 하던 남숙씨가 3년의 선교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밝고 활기 찬 그녀를 만났는데 산엘 한번 같이 가자고 한다.

그녀가 필리핀서 정기적으로 보내던 선교편지도 한동안 못받아 보는가 보다. 마지막 선교활동을 적어 보낸 글의 일부를 올린다.  '기묘라 모사라'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기하고 놀랍다는 뜻이란다. 역시 선교사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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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리, 꽃파는 아이

 
꽃을 팔던 마이조리는 13살. 초등학교 3학년 중퇴. 아이가 꽃을 팔고 집으로 가는 것을 책 읽기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두 송의 장미꽃이 들려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오늘은 몇송이를 팔았느냐고…아이는 오늘 160페소(5,000원정도)를 벌었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벌었기에..이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점심값, 그리고 아침 식사비, 그리고 저녁밥값, 그리고 나머지는 딱 20페소 남습니다. 어…그럼 그럼..20페소씩 매일 남겨서 저금을 하면 나중에 두배로 돌려 줄건데 그렇게 해 보겠니? 한 달이면 400페소, 10달이면 4000페소, 정도 되니깐…두배로 주면 8000페소가 되는데, 그러면 집을 렌트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겠니? 라고 했더니 아이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우리가 매일 정해서 만날 수 없는데, 어떻게 전해 주면 되느냐고. 갑자기 떠 오른 생각이라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고민 을 하다가 우리 집 앞에서 가게를 지키는 레냐에게 부탁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우리 집으로 같이 갔고, 레냐에게 마이조리의 저금액을 매일 좀 받아 달라고 했더니,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임시 저축기록을 20회분으로 만들었고, 매일 마조리가 20페소씩 내고 날짜와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기록하는 것을 잘못하는 데요 하고 하기에 격려하며 레냐 언니가 가르쳐 줄테니 걱정 하지 말라고. 그리고 나서는 그럼 오늘부터 20페소 저금 할래요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아이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고 있어서 20페소를 갖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하고 어서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에 아이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이에서 찾으리라고 하고,,,,아이의 집을 몰라서 집 앞을 지나가는 다른 꽃파는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마조리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다행히도 안다고. 그럼 마조리의 집에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니, 제일 어린 아이를 가리키며 길 안내를 하라고 누나들이 말합니다.. 그래서 막둥이를 데리고 가다가..집을 모른다고 하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가 더 같이 동행하게 되었고, 레미디오스 서클에서 꽃포장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었더니, 마조리는 말라떼 성당 앞에서 누워있다고 했습니다. 아프다고….. 그래서 아이들 3명을 데리고 마조리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마조리의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냥 말라떼 성당 앞에서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집이 없다고..아닌데, 내가 알기로는 다꼬따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그랬더니 아니랍니다..
정말로 성당 앞에 있는 동상 옆에서 동생들 3명을 데리고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마조리와 대화를 나누며, 정말로 집이 없다는 것과, 꽃을 팔아서 생할하고, 그래서 학교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약속을 되새겨주며 40페소를 주었는데, 지금가지 계속 저금을 했으면 많았을 텐데라며….그래서 통장을 만들자고 했는데 말입니다.^^.그리고 마침 지나가던 한 NGO가구 사람들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저녁식사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마조리가 열이 있다고 말해 주었더니, 해열제를 가지고 와서 마조리에게 주었습니다.
마조리를 찾아가는 길, 열이 있는 아이 마조리 때마침 마음을 움직이셔서 마조리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꽃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학교를 중퇴한 것과, 공원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잠을 자는 모습에 마음이 사뭇 아쌀하게 아파왔습니다. 집을 랜트할 수 있다는 말에 더 저축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지난 3년 동안의 짐정리를 하며, 한 번 더 늦은 시간에 말라떼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12월 크리스 마스가 가까워 오는 시점. 거리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성탄절 공짜 음식과 선물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기묘라 모사라..기묘라 모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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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필리핀에 또 돌아가면 저는 거리로 나가서 책을 읽히게 될 것입니다. ---기묘라 모사..기묘라 모사라…

 
마지막주 책 읽기를 하면서는 짬짬이 종이학을 접어서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 생각하며..아이들을 보면서…그렇게 손을 놀려서 아주 작은 종이학을 접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 지요.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기쁨 가득한 아이들입니다. 책 읽기 하나 만으로도 감사해 하던 아이들. 마지막으로 704 체어 우먼을 만나고, 콤플렉스를 지나오며 동네 농구를 아이들과 한게임 보았습니다. 돌아오면 다시 마을 도서관을 이야길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럼 제가 돌아오면 책방은 채워 드릴께요 하는 마음으로요. 급한대로 704의 아이들에게 702마을 도서관을 구경시켜 주었고, 책이 읽고 싶을 땐 그곳으로 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라고 하고/ 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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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NAKASEC과 KRCC를 만나다.

12월 7일, 한겨레신문을 뒤적이다 반가운 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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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미주 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시카고에 온 민영(가명)이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나, 부모들은 민영이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기울였고, 민영이는 줄리아드음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민영이는 그때에야 알게 됐다. 부모님이 불법체류자이고, 민영이도 자동으로 불법체류자이고, 따라서 불법체류자는 대학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민영이와 부모는 시카고 지역 의원과 시민단체 등에 호소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10년 전 이야기다. 그 후 민영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카고의 한 한인단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지금도 ‘제2, 제3의 민영이’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가게 점원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거나 방황을 한다. 현재 미국의 전체 불법체류자 수는 1200만명에 이르고, 이 중 한인 은 2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여름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시카고지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작은 사무실 한쪽에서 이민 1.5세, 2세 대학생들이 이민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요구하는 서명편지 1만여통을 한인들로부터 받아 빌 클린턴 선거사무실로 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마치 대학가 동아리방 같았다.


13년이 흐른 지난 1일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한인교육문화마당집’이라는 간판을 단 번듯한 사무실에는 직원만 10명이었다. 지금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중인 의료보험·이민법 개혁안 등에 한인들의 권익이 반영되도록 하는 데 애를 쓰고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도 합법 이민 문호 개방이라는 방식의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사무실 인근 ‘청소년교육센터’에 들렀을 때는 좀더 놀랐다. 13년 전에는 ‘시카고 한국학교’라는 간판 아래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글이나 우리 민요 등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베트남 모자인 ‘논’을 쓰고 벗으며 베트남 전통무용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도 한인뿐 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대만 등 여러 아시아계가 섞여 있었다. 지도간사 둘 중 한 명은 타이 사람이었다. 영문을 물었다. “처음에는 한인 청소년들의 한국 알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으나, 아이들이 다른 아시아계나 라틴계 친구들을 데려오면서 다국적화됐다.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만 고집하지 않고 이민자 사회에서 다른 민족과 연대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나가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제로 한인 권익운동은 한인들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아시아계·중남미계와의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의원을 찾아가 의회에서 이민자 커뮤니티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표’가 중요하다. 한인교육문화마당집 손식 사무국장은 “의원들은 한인들이 투표를 얼마나 했는가를 먼저 체크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인들은 이제 미국 외에도 한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손 국장의 말이다. “한인들이 고국과 네트워크를 맺어야 하지만, 그 방식이 투표권이라고 보진 않는다. 한인들의 권익은 한국 의회가 아닌 미국 의회에서 해결해야 한다. 한인들은 다른 아시아계·흑인·라티노 등 미국내 소수자와 연대해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야지, 한국으로 퇴행하는 형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한인 사회가 고국 정치바람을 타고 분열될까봐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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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들른 블러그에서

오랜만에 블러그에 들렀다.

전에도 느낀거지만

나의 지난 여행기들을 읽다보니 오타도 많고 

난데없이 꼬여 무슨 문장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도 수두룩 하여 민망하다.

독수리 타법에 pc방 전전하며 쓴 여행기니 오죽하랴 싶다.

 

그리고 중남미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특히 운동관련 정보) 떠났던 여행과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허술한 정보들과

여행 내내 나를 애타게 했던 멋대로 스패니쉬 등등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블러그 방문자 수가 10만이 넘었는데

이런 부끄러운 점들을 감안하고 읽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뒤에야 중남미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설령, 여행 전에 미리 중남미 관련 운동정보를 모으고 관련 공부를 했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 땅을 밟아보기 전까지는 그 대부분이 돌아서면 까먹을 지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행히도 지난날 떠도는 여행자가 되어 막연히 스쳐 지났던 나라들과

그 속에서 얻은 경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해석 할 수가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긴듯 하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시간 나는대로 오타를 손보고

잘못 된 정보들을 손보고

새로운 정보들, 여행을 계기로 맺은 인연들에 대한 후기도 써야겠다.

 

긴 여행에서 돌아 온 뒤, 나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한번도 떠나보질 않았다.

몸이 무거워져 그렇기도 하고 돌아 온 현실에 헉헉대고 적응하느라 그렇기도 하고 ...

국내 어딘가를 다시 여행하게 된다면 그 느낌이 새로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면 좋으련만 돌아 온 일상은 버겁고 무거울 때가 많다.

그래서 마음도 빡빡하고 고달픈가보다.

올 봄에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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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산텔모 거리의 'Tango' ... 산텔모 거리에 골동품 시장이 열리는 일요일, 그곳에 가면 온갖 공연을 만날 수가 있었다. 저들은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 거리에서 춤을 춰왔을까? 감각적 열정인듯 팽팽한 긴장인듯 아니면 탱고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인 듯 그들의 '땅고;는 거칠 것이 없었다. 

 

다시 만난 그들의 'Tango' ... 한주 전, 산텔모 거리에서 만난 '땅고'가 그리워 다시 그 거리를 찾아갔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렇게 '땅고'를 추고 있었다. 은근히 매웠던 날씨, 모두 털 외투를 입고 있는데 카르멘이라는 저 여자 무용수와 남자는 '땅고'의 뜨거운 몸짓으로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1년하고도 반이 더 지난 지금, 그들은 지금도 그 거리에서 땅고를 추고 있을까? 

 

보카 뒷거리에서... 보카 중심가에서 비켜선 거리를 걷는데 소시지와 아사도를 굽는 냄새가 유혹을 한다. 때는 이미 점심 무렵,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정희, 나래와 길을 멈춰 판초빵에 아사도와 살치차(소시지)를 넣은 햄버거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저 아저씨는 참 유쾌하게 일하고 있었다. 

 

마테잔 ... 아르헨티나에 가면 마테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어딜가든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과 마테차를 들고 다니며 저 마테잔과 빨대 하나로 돌아가면서 차를 나눠 마신다.

 

또다른 보카 거리에서 ... 저 아저씨는 보카거리 기념품 가게 앞에 자리를 잡고 마테잔에 무엇인가를 새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마테잔에 새기는 것은 구매자의 이름이나 그림, 행운의 말 같은 것이었다.  


5월 광장에서 만난 원주민들 ... 5월 25일은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이다. 아무 정보 없이 나갔던  'Plaza de Mayo'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 했을때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무슨 집회를 마치고 막 광장을 떠나고 있었다. 무지개 깃발을 펼쳐 들었던 그들...그들이 누구일지 사뭇 궁금하기만 했다. 더구나 그들은 아르헨티나에서 보기 힘들었던 남미 원주민들이었기에 내 궁금증을 더해 주었다. 

 

아르헨티나의 독립 기념일 ... 독립 기념일 아침, 5월 광장 곳곳에 아르헨티나 깃발과 깃발 색의 리본, 뱃지 등을 나눠 주었다. 그들은 내게도 작은 리본하나를 건네 주었다.  


2007년 5월 24-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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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미국 LA를 떠나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시작했던 6개월여 동안의 중남미 여행은 2007년 5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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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브라질, 아르헨티나 ... 이구아수

포즈 도 이구아수 ...사방천지 넘치는 물이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저 먼 곳 어디선가부터  물보라에 쌓여 끝을 알 수 없는 폭포줄기가 겹겹이 내리 쏟아졌다. 그 줄기가 275개나 된다고 했다. 건기에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폭포수가 말라 실망이 컸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폭우가 내려 장쾌한 폭포줄기 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쏟아진 폭포수는 이구아수 강이 되어 끝없이 흘러갔다. 

 

돈주고도 못한다는 물구경 ... 성난 황토빛 이구아수 강은 포스트 이구아수에 좀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저 다리를 금방이라도 삼킬듯 했다. 비는 그쳤지만 저 다리끝까지 갔다오는 사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젖어버렸었다. 

 

뿌에르또 이구아수 ... 둘째날 찾아갔던 아르헨티나쪽 이구아수 폭포. 포즈 도 이구아수를 갔던 날과 달리 하늘은 맑았지만 폭우 때문에 상류에서부터 급류가 넘쳐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보트가 뜨지 않았다. 또한 폭포까지 다가 가는 길들이 폐쇄되기도 했다. 장쾌하게 펼쳐진 이구아수가 저 끝까지 펼쳐져 있다. 

 

뿌에르또 이구아수에 뜬 무지개 ... 이구아수에 도착한 첫날은 계속 비가 추적댔다. 그러나 뿌에르또 이구아수로 가던 둘째날은 하늘이 맑았다. 햇빛이 나니 폭포수 위에 무지기가 떴다.

 

나비, 그 선과 빛깔 ...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려 놓은 무늬같기만 하여 보고 보고 또 보았다. 흰색바탕, 까만줄, 장식처럼 멋스러운 붉은 색이 조화로운 이구아수의 나비. 형형생색 온갖 활홀한 색과 무늬를 가진 나비들이 이구아수 곳곳에서 나풀대고 있었다. 

 

2007년 5월 22일 -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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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주말, 산텔모 거리로 나가면 볼꺼리가 많다. 각종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온갖 공연이 펼쳐지는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거리를 따라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도르레고 광장에서는 주말마다 공동품시장이 열린다. 그 물건들 속에서 나는 세월의 먼지를 안고 과거의 추억과 낭만을 속삭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빛바랜 일상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 한쪽,카르멘이라는 여성의 열정 어린 탱고 유혹에 빠지기도 했었다. 나는 비로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와서 내 짧은 지식 속의 아르헨티나를 만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눈물은 끝난 것일까? 에비타의 무덤 ... 레꼴레따 언덕, 공동묘지에 가면 에바 페론의 무덤이 있다. 정확히 따지자면 에비타만의 무덤이 아니라 에비타 의붓아버지쪽 가족 무덤에 에바 페론이 함께 잠들어 있는 것이다. 레골레따 공동묘지는 무덤을 장식한 화려하고 뛰어난 조각품들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묘지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 명성만큼 아르헨티노들은 물론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무덤과 무덤 사이를 걸으며 공동묘지를 걷는것이 아니라 주인이 먼 길 떠나 오래도록 비어있는 고저택 사이를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또한 생전의 명예와 권력을 죽어서도 누리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사도가 들어 간 햄버거 ...아르헨티나 쇠고기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었다. 값도 싸고 맛도 좋아 어느때는 끼니로 어느때는 간식으로 어느때는 술안주로 즐겨먹었다. 어쩌면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장 싸고 흔한 것이 쇠고기일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는 아사도는 흔했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백구마을 고려사에서 맞은 사월 초파일 ... 백구마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한인타운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떠나고 '산동네 볼리비안들이 내려와 우범지대'로 변해가고 있다지만 이민 초창기부터 최근 몇년 전까지 한인 이민의 애환과 그리움, 희망이 자라던 거리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곳에 가면 한국간판이 걸린 상가를 반가이 만날 수 있고 길거리 오가는 한국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고려사는 바로 그 백구마을에 있는 한국절이다. 사월 초파일, 우리 숙소에 머물던 한국 여행자들은 불자친구의 권유로 모두 고려사엘 갔었다. 그날 법당에 새로운 탱화를 거는 행사를 하며 오색실을 필요한 만큼 가지라했다. 나는 저 모양으로 오색실을 묶어 그날 이후 내내 지갑에 책갈피에 꽂고 다녔다.  


탱고의 발상지이자 화가 마르틴의 마을 ... 보카는 항구마을이다. 고된 노동을 마친 부두노동자들이 술집에 모여 가난하고 고된 노동과 싸우며 추기 시작한 춤이 탱고라고 한다. 그곳은 또 유명한 화가 마르틴이 살았던 마을답게 건물마다 알록달록 페인트 칠이 되어 있다. 그 거리 곳곳에서 마르틴의 후예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부두노동자와 탱고 ...저 억센 부두노동자들의 노동이 정열의 춤 탱고의 몸짓과 리듬을 만들어 냈다. 보카거리 벽에 그려진 노동하는 부두노동자들은 그 귀퉁이 걸린 화려한 탱고 그림과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가슴마다 탱고리듬이 불타는데...일요일 산텔모 거리서 탱고공연이 펼쳐 질 때, 한쪽 담벼락에 저렇게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나란히 모여 공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더러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무대로 나와 탱고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했다. 그들에게 탱고는 젊은 날의 정열이자 사랑이었을 것이다. 아련한 눈빛 너머, 수천 수백의 몸짓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 정열을 모은 그녀들의 탱고가 살아 오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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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

FIN DEL MUNDO ... 세상의 땅 끝 우슈아이아, 나는 이곳을 향해 북아메리카 LA를 떠나 멕시코, 쿠바, 과테말라로 이어진 중미 여정을 마치고 남미 콜롬비아로 날아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마침내 이곳 세상의 땅끝 우슈아이아까지 왔다. 멀고도 까마득했던 길, 그 무겁던 50리터 배낭이 어느새 내 몸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었던 그 거리와 시간이 꿈만같다.  

 

안데스의 끝자락 띠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 ... 안데스의 끝자락이라 하던가? 콜롬비아에서 부터 날 따라 왔던 안데스 줄기가 마침내 이곳으로 와 남극으로 이어지는 바닷속으로 빠진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트레킹을 하다가 늪같은 저 산중에서 길을 잃어 등줄기 땀범벅이 되도록 겁을 집어 먹고 놀랐었다.   

 

길을 잃어 버리기 전 띠에라 델 푸에고 ... 잎을 떨군 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 선 고적한 저 길이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음침한 숲에 늪같은 것이 나타나 발을 디디면 푹푹 빠지는 공포의 길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침착했었으면 길을 제대로 찾았을것 같은데 그땐 왜 그리 당황 했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동양화 같은 ... 남반구의 겨울로 가는 길목,  마르띠날 빙하로 가는 길은 리프트 운행도 중단하고 인적도 없었다. 먹구름 낀 하늘에 빗방울 날리고 바람도 심상치 않았던 날, 역시 혼자서 올라가려니 공포가 엄습했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오다 남긴 사진.   

 

세상의 땅끝 우체국에 가면 ... 우슈아이아에 있는 세상의 땅 끝 우체국이나 박물관에 가면 세상의 땅 끝 임을 알리는 FIN DEL MUNDO 도장을 같이 찍어 주었다. 이곳은 지향없이 길을 나선 여행자가 궁색한 여행 목적으로 둘러 댔던 이유였다, 이제 그곳까지 이르러 찍고 턴. 내 여행도 끝나간다.  

 

 

2007. 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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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칠레...푼타 아레니스

너는 아는가? ... 과거의 영광을 안고 있는 남반구의 쇠락한 도시 푼타 아레나스, 그러나 이 도시는 다른 도시들 보다 규모가 커 아직도 뭔가 더 할 일이 남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어느 거리를 걷는데 이 도시의 영광과 쇠락, 그리고 오늘날까지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듯한 나무 한그루가 말없이 정갈하게 서 있었다.    

 

마젤란 해협 ... 신대륙 개척에 나선 마젤란이 이 뱃길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하던가? 그래서 그 이름이 마젤란 해협이다. 중남미 사이 파나마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유일한 물 길을 잇는 요충지였던 이 도시는 무수한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광장에 서 있는 마젤란 동상 앞에서 ... 칠레 사람들에게 마젤란은 개척자이기 전에 침략자 일텐데 푼타 아레나스 광장 한 가운데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 아래 침략자들에게 제 땅을 빼앗겨 버린 원주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반질반질했다. 그의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이유에서 였다.   



 

해질 녘 공동묘지 ...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의 공동묘지는 산자와 죽은자가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공원 같았다. 퇴근 무렵 꽃다발을 사 들고 공동묘지를 찾은 직장인들과 가족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해 그늘이 길어지니 나는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맥주 마시는 남자들...대게가 유명하다하여 찾아갔던 한 식당,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이 낮 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저 길죽한 통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맥주통이었다. 여행하며 처음으로 저런 맥주 통을 보았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2007년 5울 14일 -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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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칠레..푸레르토 나탈레스

철 지난 바닷가 같던 푸에르또 나탈레스 ... 칠레 남쪽 또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관문 푸에르또 나탈레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꿈꿔왔는데 이곳으로 오기 전, 트레킹을 포기했었다. 지금은 겨울이고 혼자서 텐트를 싸 짊어지고 다니며 야영을 한 엄두도 안났기 때문이다.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두시간여 머물렀던 푸에르또 나탈레스, 고대하던 이 먼 곳까지 왔으면서도 잠시 스쳐지나야 하는 마음이 너무나 허전하고 허전하여 비수기를 맞은 푸에르또 나탈레스 거리를 방향 없이 걸어 다녔다.     

 

남쪽으로 향하던 길,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 준 쌍무지개 ... 푸에르또 나탈레스에서의 서운함을 접고 다시 칠레 남쪽 푼타 아레나스로 넘어가는 길, 빗줄기 흩뿌리더니 갑자기 쌍무지개가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나타났다.

 

2007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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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르헨티나...엘 찬텐

마테차를 마시는 콘치 ... 엘 찬텐으로 가는 아침 버스, 갑자기 저 멀리 우뚝 솟은 설산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러자 뒷 좌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 여행자가 운전석 앞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버스 운전수와 마테차를 나눠 마시며 유창한 에스파뇰로 긴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콘치였다.

 

한 눈에 그 품격이 느껴지는 피츠로이 ... 버스를 타고 달릴 때 저 멀리 나타 난 눈 덮힌 봉우리가 바로 피츠로이였다. 유난히 하얀 바위, 강직하게 뻗은 봉우리...곳곳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피츠로이는 엘 찬텐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콘치, 피츠로이, 카리나와 함께...콘치와 카리나 덕분에 아주 유쾌했던 2박 3일 간의 엘 찬텐 여행. 바릴로체에서 스키 강사로 일한다는 피츠로이는 콘치의 친구였는데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피츠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다. 


 

Mirador에서...콘치, 카리나와 함께 전망대에 올라갔다. 저 멀리 피츠로이가 보인다. 지난 3월에도 엘 찬텐을 왔었는데 아쉽게 돌아가 이번에는 있을 때까지 있다가 갈 거라며 신이 난 콘치는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메모리도 얼마 안 남은 카메라를 건네주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나와 카리나도 덩달아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붉은 부리 딱따구리...앞서 간 콘치와 피츠로이를 따라 산길을 가던 중, 나와 카리나는 딱따구리를 만났다. 가던 길 멈추고 딱따구리를 찍고, 눈만 돌리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던 주변 멋진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우리는 결국 콘치와 피츠로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와 카리나는 심상치 않은 두사람의 관계를 따지며 콘치를 놀리며 즐거워 했었다.  

 

피츠로이 가는 길...험하지 않지만 방향을 잃을 수도 있었던 피츠로이 가는 길에 길동무 카리나가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엘 찬텐은 곳곳이 저렇게 아름다웠다.

 

2007/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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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 ...깔라파테

리오가에고스의 아침 ... 파타고니아의 관문 바릴로체에서 깔라파테까지 돌지 않고 가는 길이 있는데 겨울에는 폐쇄한다고 했다. 초겨울이건만 이미 그 길은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남미 대륙을 돌고 돌아 깔라파테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29시간을 버스로 달려 내려왔지만 밤은 깊고 갈 길은 더 남아 있었다. 또 리오가예고스에서는 버스를 갈아 타야 하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한 호흡 가다듬어 가리로 하고 따뜻하게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시 아침9시 30분, 한국으로 따지면 한낮일텐데 남반구는 새벽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거장으로 나왔는데 현수막을 든 대오가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촉각이 그곳으로 쏠렸다.      

 

남반구에 깃드는 초겨울 저녁 ... 어느 거리에서 이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깃드는 남반구의 저녁 풍경을 담고 싶어 찍었던 사진 같다. 


모레노 빙하 ...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지역에는 빙하국립공원이 있고 그 일부인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세계자연유산이다. 면적이 250 평방 km에 달하며 줄어 들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늘어 나는 빙하지역으로 몇 안 되는 빙하들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때 가이드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7월 초, 결국 지구온난화 때문에 저 거대한 빙하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여름에 빙하투어를 할 때는 가끔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 떨어져 호수에 빠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겨울에는 다시 얼기 때문에 큰 문제 아니었다. 그런데 7월이면 남반구는 한겨울인데 빙하가 녹아 붕괴 됐다는 것이다.

 

빙하 위를 걷는 사람들...수천년 이어 온 자연의 경이로움 위를 걷는 사람들 속에서 숙연함이 느껴지는듯하다. 

 

또다른 빙하지역...

 

호텔 린다 비스타(Linda vista 아름다운 방문객)...내가 묵었던 숙소도 아니었는데 보경이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은진이와 은진어머니. 이 머나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 만큼 아름다운 마음결을 갖고 있었다. 날이 새도록 듣고 싶던 구수하고 재미있던 은진 어머니의 이민사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갈라파테에 대한 머나먼 그리움이 되어 내게 남아있다.

 

2007년 5월 9일 - 5/12, 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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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바릴로체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길 ...더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남으로 내려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지만 갈 길은 멀기만 했다. 밤 9시였던가? 그 시간에 멘도사를 출발한 버스가 밤새 달려 이름 모를 마을에서 여명을 맞이했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시간을 더 달려 버스는 마침내 남미의 스위스라는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흐르는 강물처럼...광활한 대지, 그 한복판에 푸르디 푸르게 시린 빛을 띤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여기까지 흘러 왔을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던 삭막한 남미 대륙에서 만난 작은 지류는 아름다운 강물이 되어 바릴로체 호수마을까지 함께했다.

 

저 빛이 왜 그리 가슴 저몄던지...알싸한 추위로 옷깃 여미게 했던 아름다운 바릴로체. 호스텔을 정하고 거리로 나와 지향없이 걷고 있는데 호수 건너편에 여리고 맑은 빛을 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순간, 마지막 잎새 떨어지던 이국의 초겨울 날씨 속에 저 빛은 온갖 그리움으로 내게 다가왔고 외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황망하게 휘저어 놓았었다.

 

바릴로체 초코렛...누구는 그리움이 밀려오면 초코렛을 입에 넣고 내내 녹여 먹으며 마음을 달랬다 한다. 초코렛의 달콤함이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일까? 마침 바릴로체는 초코렛으로 유명한 지방이었다. 나는 바릴로체에서 거리를 걸을 때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초콜렛을 입에 넣고 가만 가만 녹이곤 했다. 코끝 싸한 추위, 낙엽, 달콤함 초콜렛, 광활한 호수, 호수 너머 머나먼 설산, 오가는 백인들, 따뜻한 실내, 그리움 ...이런 것들이 지금 내게 남은 바릴로체에 대한 기억이다. 

 

남미의 스위스 ... 골목 골목, 거리 거리, 저 멀리 풍경마저 아름다왔던 바릴로체, 유럽을 가 본적은 없지만 분명, 바릴로체는 지금까지 내가 여행 길에서 만난 수많은 남미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생각해 보니 이국에서 또 다른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도시 바릴로체 때문에 내 마음이 그토록 서글프게 싸했었나 보다.    

 

유혹...혼자 길을 걷다 사잇길을 만났다. 저 앞에 남녀가 나란히 걸어간다. 순간 따라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어딘가로 뻗어 있는 길은, 산길이든, 오솔길이든, 골목길이든 ...모든 길은 여행 내내 나에게 따라오라 유혹하고 있었다.   

 

2007/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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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 ..멘도사

남미 최고봉 아콩카와 가는 길...콜롬비아에서 부터 줄기차게 날 따라 온 안데스, 아콩가와는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이라고 했던가? 아콩가와 가는 길, 설산이 지척에 있는 듯 한데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겨울이 오는 남반구의 찬바람 맞으며 인적 드문 그 길을 걸을 때, 이역만리 떠돌던 내 마음은 무척 시렸었다. 나는 그 길을 서너시간 걷다가 찬 바람과 함께 되돌아 왔다.    

 

2006년 5월, 남반구의 가을...한국에서는 신록이 무성해지고 있을 5월, 남반구는 남쪽으로 내려 갈 수록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먹구름 아래 늘어 선 노란 단풍이 든 나무 풍경이 그림인듯 실물인듯... 

 

먼 길까지 고생했다 ... 샌들 끈이 몇번 떨어지고 운동화는 뒤축이 닳아 내내 발 뒤꿈치를 아프게 했다. 나는 멘도사에서 먼 길 함께 걸어 오면서 나를 위해 제 몫을 다한 두짝의 신발을 나란히 버렸다. 그리고 꽤 비싼 돈주고 방수가 되는(나중에 보니 방수가 안됐다)등산화를 하나 장만함으로  남반구에서의 겨울채비를 했다. 


와이너리의 출근카드 ...포도로 유명한 나라 아르헨티나, 특히 멘도사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와이너리가 많았다. 와이너리 박물관이 있다하여 찾아 갔다. 나는 그곳에서 공짜로 주는 와인 두잔 마시고 취해 비틀대며 자전거 운전했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던 길, 와이너리 노동자들의 낮익은 출근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2007/ 5/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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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꼬르도바

모다 김 아줌마의 옷가게 ... 모다 김 아줌마가 옷가게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곳을 찾아가니 손님들이 만원이다. 그 거리에는 한국인 옷가게가 몇개 있다고 했다. 내가 꼬르도바를 떠나 더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내려 간다 서두를 때, 아줌마는 내게 겨울 옷을 챙겨 싸 주었었다.

 

내가 사랑한 나무1 ... 꼬르도바는 아르헨티나의 교육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는 학교들이 많았다. 학교와 성당으로  이어지는 어느 거리, 아름드리 고목나무에 저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자주 오갔는데 그 길을 거닐 때 마다 저 꽃이 핀 나무가 매화나무를 연상케하며 내 마음을 붙잡곤 했다.  

 

내가 사랑한 나무2 ... 저 꽃나무 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오갔을 것이며 수많은 사연들이 서렸을 것만 같았다. 그 자태만 보아도 사람 사는 세상의 온갖 애환을 말없이 고즈넉히 품어 줄 듯한 기품이 느껴지는 나무였다.

 

죽은자와 산자 ... 꼬르도바 가까이 알타 그라시아라는 곳은 체 게바라가 성장한 곳으로 그가 살던 집이 있다. 천식이 심한 그를 위해 체의 부모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가기 바로 전 해 였던가? 이곳에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가 다녀 갔었다고 한다. 

2007/4/29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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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르헨티나 ..살타

살타가는 길...칠레 산 페드로에서 아르헨티나 살타로 가는 길. 고산협곡을 돌고 돌아 살타로 간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살타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곳을 내가 가게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남미 방대한 땅 덩어리의 나라 아르헨티나로 들어가는 국경도시 살타로 가는 길, 나는 살타가 어떤 곳일지 설램과 긴장으로 이 길을 넘었다.  

 

체 게바라의 조국 ... 살타는 오랜만에 만난 현대적인 도시였다. 또한 중미 멕시코에서부터 남미 볼리비아까지 내가 지나 온 나라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었던 남미 원주민들은 만나기가 힘들기도 했다. 대신 곳곳에서 유럽문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내내, 광활한 대지, 다양한 풍광은 남미의 유럽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 나라에서 체 계바라가 태어났고 성장했다고 한다. 살타의 밤거리, 무슨 행사인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 동상과 걸개를 내걸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최고 성당 ...이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라든가? 그래서 유명한 성당이었다. 

 

와인 따기...우유니에서 부터 함께 했던 현주, 정희. 살타에 도착한 우리는 시장에서 닭을 사다 마늘과 파 등을 넣고 찜통에 푹푹 삶아 닭백숙을 해 먹었었다. 그리고 살타 이후 갈 길이 달라 이별 했는데 현주는 바릴로체에서 정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과 살타 이별을 하기 전 날, 와인파티를 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와인 생산국이었으니  아르헨티나 와인을 마셔 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수퍼에서 산 와인이 안 따진다. 현주와 정희가 온갖 씨름을 해서 땄다. 아마 맛도 별로 였던거 같다.

 

엔 빠나다 ...내가 즐겨 먹던 간식이다. 만두처럼 안에 고기나 야채가 들어 있어 먼 길 갈때나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때 제격이었다.


 

2007/4/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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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칠레 ...산 페드로

달의 계곡 ... 사람들의 여행기에서 남미 달의계곡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었다. 누구는 달의 계곡서 야영을 했고, 누구는 자전거 투어를 하고 ...그런데 남미에 오니 곳곳에 달의 계속이 있었다. 볼리비아 라파즈 가까운 곳에도 달의 계곡이 있어 갔었는데 그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흔히 말하는 달의 계곡은 바로 칠레 산 페드로 이곳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메마른 대지, 저녁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곳, 볼리비아와 달리 부쩍 오른 물가에 놀라 서둘러 산 페드로를 떠났지만 나는 칠레 도착 첫날 달의 계곡엘 갔었다.  

 

저녁노을을 받으며...여행 중에 자연 속에서 세상을 사는 이치를 배울 때가 종종 있다.  노을을 볼 때도 그랬다. 해는 서쪽하늘로 지는데 붉은 기운은 동쪽 하늘 가득 퍼져 있다. 고르게 고르게 나누며 세상을 살라는 자연의 가르침 인가 보다. 달의 계곡 여행에서 만난 한국인 이정경애와 .

 

노을 받은 동쪽하늘 ...하늘이 넓어서 일까? 저녁노을이 너무 작게 퍼져서 일까? 노을이 기대했던 만큼 장엄하지가 않다. 눈에 보이는 하늘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던 내 고향 서산의 노을처럼 아름답지가 않아 실망을 했다.   

 

산 페드로 거리 ...국경을 넘으며 만난 번듯한 고속도로와 달리 산 페드로는 전통적인 모습이 강한 작은 도시였다. 선물가게 앞에서 여인이 상품을 짜고 있었다. 그 풍경이 좋아 가까이 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 눈치 챈 여인이 앙칼지게 사진을 못찍게 한다. 여인의 인상은 아주 강렬했다. 순간 마을 분위기와 다른 여인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지만 나의 실수에 미안함이 앞섰다.

 

'미스 칠레'...마을 중앙 공원 근처 작은 박물관에 2쳔년 된 미이라 미스 칠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를 희망한지 십여년,  아주 먼 길을 오랫동안 달려와 비로소 그녀를 만났다.   



2007. 4/ 2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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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볼리비아 ...salar de uyuni

소년과 알카바...우유니 소금사막에 도착하니 소년이 알카바와 하나되어 뒹굴고 있었다. 소년과 알카바가 번갈아 재주를 부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마치 형제처럼 다정해 보였다. 외로운 소금 사막 한복판, 친구가 없을 소년에게 알카바는 더할데 없이 소중한 친구일 것이다. 

 

남미 볼리비아 salar de uyuni ...올 초에 누군가 이곳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글을 여행자 카페에서 읽었었다. 굳이 그 앞에서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니건만 자리잡고 보니 태극기 아래 ㅎㅎ. 우유니 소금 사막 아래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저녁 들녁에서 만난 알카바 ...하룻밤을 묶기 위헤 들른 마을. 방에 들어서자 아담과 벤은 불도 켜지 않은 어둡고 추운 방에서 기타를 치며 멋진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오가는 사람들이 방문 앞에서 힐끗댔다. 여행 중에 서로의 음악성(?)을 알아보고 동행을 하게 됐다는 그들의 기타연주는 가히 수준급.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새삼 느꼈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정희, 현주와 마을을 둘러 보았다. 바람불고 추운 들녁에 알카바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피하지 않는 그들의 눈매가 볼리비아 사람들 만큼이나 선하디 선했다.    

 

플라멩고와 만나다...딱히 길이라고 닥여진 곳 없이 주로 차가 달리는 곳이 길이었다.  어느곳에서는 수십 수백 갈래 차바퀴를 따라 길이 나 있기도 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호숫가에서 플라멩고 떼를 만났다. 플라멩고 춤을 연상하며 아주 화려한 새들일거라 상상했는데 아니었다. 스페인의 춤 플라멩고와 같은 뜻일까?   


게이저 온천 ...새벽 4시 쯤 숙소를 출발하여 달리는 사이 땅에서 김같이 땅에서 쏟아오르는 게이저를 만났다. 동틀 무렴에 다다른 게이저 온천, 날이 추워 모두 웅크렸는데 작은 온천애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추위에 웅크리며 온천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이 날을 기다렸던 터라 주저없이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누군가 포도주를 가져왔는지 나팔을 불며 주욱 돌려 마셨다. 그 새벽, 그곳의 그 포도주 맛 잊을 수 없다.     

 

운전사 부부...2박 3일 여행동안 우리 7명의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이자 요리사였던 부부. 아이들이 다섯이고 우유니 투어 운전 10여명 경력이라던 부부는 아주 따뜻했고 금실도 좋아 보였다. 일행이 간식으로 가져 온 사탕을 입에 있는 사진을 찍어 준 뒤, 부부의 사진도 한장 찍었다. 나는 그들 옆에 앉아서 안되는 에스파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길을 달릴 때, 눈 앞에 선명한 별이 우리를 줄곧 따라오고 있었다. 아줌마는 그 별이 남십자성(estrella del sur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 남십자성.

 

애닮은 막내 같던 볼리비아...4월 4일 띠띠까까에서 시작했던 불리비아 여행을 4월 23일에 마치고 다시 국결을 넘게 됐다. 정들었던 운전사 부부와 이별을 하는데 아줌마 눈에 눈물이 고였다. 10여년 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부질없이 스쳐지나는 인연임을 알았을텐데 아직도 길떠나는 여행자들과 이별을 아쉬워 하며 눈물을 흘려 주다니...비포장 길을 달려 다다른 국경, 볼리비아 국경을 넘으니 아주 오랜만에 번듯한 고속도로가 나왔다. 같은 대륙, 국경이 맞닿은 지척의 나라건만 이렇게 때깔이 다른다니...떠나 오는 볼리비라가 애닮기만 했다.     

 

2007/4/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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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볼리비아 - 우유니

길...포토시에서 우유니로 가는 길은 마치 작은 그랜드 캐년 같기도 하고 메마른 산 길 같기도 했다. 그렇게 메마른 그 길을 서너시간 달려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목인 국경도시 우유니에 다다를 수 있었다. 차창 밖, 볼리비아 대지 위로 쏟아지던 투명하고 마른 햇빛 너머 나의 어린 시절 가을날의 기억과 그 속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지났었다.  

 

우유니, 우윳빛 도시일 줄 알았는데 ...이름이 주는 부드러운 미미지 때문에 나는 내가 처음 볼리비아 소금사막 우유니라는 지명을 알았던 수년 전부터 줄곧 누가 말해 준 것도 아닌데, 우유니는 우윳빛 도시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유니는 메마른 사막도시였다. 내 기대와 달랐음에도 한시간여면 모두 돌아 볼 수 있는 작은마을 우유니가 좋아 나는 곳곳을 걸어 다녔었다. 그 길에서 집으로 가는 저 가족을 만났다. 

 

노점과 노인 ..노점을 하는 노인은 손님이 오는지 가는지 모른 채 무엇인가를 골몰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호객행위에 시끄러운 우리의 노점과 달리 마치 다른 경지에 이르른 삶의 여유로움이 노인에게서 배어 나왔다.

 

볼리비아 모자 ...볼리비아 대도시를 벗어나면 마치 우리 초가집 같은 저런 흙집을 흔히 만날수 있었다. 집 문턱에 기대 서서 하릴없이 거리를 구경하던 모자가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지나던 내 카메라에 들어왔다, 그을의 일상은 이렇게 가난했지만 느리고 순박하고 아름다왔다. 그 기운이 잠시 스쳐 지나가던 여행자의 가슴에까지 와 닿았다. 

 

4월의 햇발 아래 ...남반구의 4월은 늦가을이다. 쪼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우유니 하늘아래, 하얀 햇빛이 온 거리를 덮고 있었다. 저 거리 노점에서 식사대용으로 사 먹었던 고기, 야채 다채로운 맛이 들어 우리나라 만두같던 엔빠나다가 참 맛있었다.  

 

            2007년 4월 19일 -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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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볼리비아...포토시

포토시 가는 길...포토시는 세게에서 가장 높은 도시라고 한다. 걷기도 힘들 그곳에 은광이 있다고 한다. 수크레에서 포토시로 가는 차창 밖에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남반구의 4월은 가을임을 상기시켜준다. 그러자 남쪽으로 가는 마음이 바빠진다. 겨울이 오고, 길이 닫히기 전에 그곳까지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우유니에서 그리 멀리않은 (4시간여 거리 였던거 같다.)포토시로 향했다.   

 

탄광 도시 ...다행히 고산증이 오지 않았다. 콜롬비아, 아니 멕시코 산크리스발 산악지대에서 부터 고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가 보다. 포토시는 유명한 은광도시답게 거대한 은광을 중심으로 그 아래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은광 투어(?)...포토시 곳곳에 은광투어를 안내하는 여행사가 많았다. 그 가운데 한 여행사 앞에 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토시를 잘 표현한 포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여행사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은광을 찾아가기로 했다.

 

탄광 노동자들...4천500고지, 걷기도 힘든 그곳에서 은을 캐는 노동자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여행자들을 대했다. 코카잎을 건네면 자발적으로 카메라 앞에 폼을 잡아 준다. 이곳에서 은을 퍼 날랐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후, 세월이 흐르고 정권도 민중정권으로 바뀌었건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전근대적 노동환경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있었다. 코카잎을 하도 쌉어 입주변이 시커매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코카잎을 씹으며 고산노동의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탈의실...들어갈 때는 등도 펴기 힘든 저 움막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와 보니 하루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탈의실이었다. 달리 작업복이라 할 것도 없고, 샤워시설조차 있을리 없는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단지, 광산먼지에 찌든 옷을 좀더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문 앞에 내 달은 색동 깃발을 보며 그들의 안전을 기원해 본다.  

 

퇴근길...오후 늦은 해를 받아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 고지대 은광에서 하루 노동을 마친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마을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세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은광을 돌고 나온 나의 젖은 시야에 그 모습이 아련하게 들어왔다.  그 와중에 나는 그 풍경을 향해 습관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2007. 4/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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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볼리비아...수크레

아침햇살 속에 도착한 마을...라파즈서 밤버스 타고 수크레로 향했다. 막 아침햇살이 퍼질 무렵, 버스는 수크레로 통하는 마을입구에 도착했다. 버스가 마을에 들어서자 도로가에 빵봉지를 든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양 서 있다. 나는 아침 식사꺼리를 사가지고 가는 아이들일거라 얼핏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밤새 차를 달려 온 승객들에게 빵을 판다. 짧지 않은 중남미 여행길에 익숙한 풍경이었건만 잠시 딴 생각 했었나보다. 아이들이 빵을 파는 동안 나는 창밖 풍경을 찍었다. 경찰서 입구에 성모상이 아침을 맞고 있었다. 저런 성모상은 중남미 곳곳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다. 

 

남미 최초의 대학 ...수크레에는 남미 최초의 대학이 있다. 내가 수크레에 도착했을 때, 호스텔마다 빈 방이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전국 대학생들이 수크레에 모여 무슨 회의를 하기 때문이란다. 수크레는 유서깊은 대학도시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지키고 있나보다. 하지만 밤버스에 지친 나는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기대 가득안고 국경을 넘어 라파즈로 향하던 때와 달리 볼리비아는 여러모로 나와 꼬였다. 12시에 빈 방이 나온다는 저가의 지저분한 호스텔을 간신히 잡고 짐을 맡긴 채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가이드 북도 없이 방향 없이 걸었다. 그러면서 거리를 익히고 시장을 살피고, 공원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낮선 도시에 익숙해지곤 한다.     

 

교문이 열리길 기다리며...등교길, 학생들과 교사들은 교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중남미 대부분 나라 학교에서는 아침일찍 교문을 미리 열어 놓는 경우가 드물었다. 드넓은 운동장이나 놀이기구가 없는 학교이기에 학생과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맞춰 교문이 열려야 들어 갈 수 있었다. 서두를 것 없는 그들의 삶이기에 지루한 기다림 마저 평화로와 보였다.      

 

한줄 한줄 노동과 예술이 만나...수크레에는 남미 최초의 대학이 있는 도시이자 볼꺼리 많은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그 박물관 이름을 알 수가 없어 헤맸다. 아침 일찍 첫손님으로 들른 아트박물관. 그곳에는 저렇게 손수 짠 직물들이 격조높게 전시되어 있었다.

 

'슬쩍' 찍어 버렸다...박물관에 들르면 나는 항상 입구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찍지 말라면 굳이 찍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유혹일까? 마치 그림같이 섬세하게 짠 저 직물들을 보자 첫손님인 나를 빼고 아무도 없는 전시관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몇장의 사진을 샀지만 그것 갖고는 양이 안 차 결국 카메라를 들이댔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행자가 이국에서 느끼는 이런 유혹을 순박한 볼리비안들이 양해해 주리라는 믿음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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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볼리비아...라파즈2

페루 푸노에서 라파즈 가는 길의 티티카카 ...달리는 버스를 따라 티티까까 호수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륙의 나라 볼리비아, 그 나라 중서부에는 저렇게 넓은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우유니 소금 사막이 있어 바다를 대신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즈 가는 길...국경은 넘어 첫번째 도시 코파카바나에서 볼리비아 버스로 갈아타고 라파즈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라파즈.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은 도시이름 라파즈. 버스를 타고 달리다 버스와 사람이 각각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다시 버스를 달리다 보니 줄 곧 따라오던 티티까까 호수가 끝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멀리 설산이 보인다. 라파즈가 나를 향해 어서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루레나바케에서 라파즈 가는 길...고대하던 루레에서의 정글여행에 맘 상한 채 다시 라파즈로 돌아 가던 길,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마른날씨 뽀얀먼지가 날려 차안에 가득하더니 어느 구간부터 비가 내렸다. 그러자 버스가 진흙에 빠져 하 세월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았다.


볼리비아 노동자들의 집회...루레나바케에서 돌아와 다시 찾았던 라파즈, 어느날 피씨방에서 나오니 바로 앞 도로에 집회대열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건네주는 유인물을 받았지만 trabajo, 즉 노동자라는 단어 밖에 알 수가 없었다. 집회는 저녁마다 이어졌다. 마추픽추에서 만났던 미국의 노동운동가 릭을 라파즈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는 그 노동자들이 볼리비아의 섬유노동자들인데 퇴직연금 등의 문제로 최근 파업 중이라고 했다. 행진을 하여 광장에 도착한 노동자들은 피켓들을 태우고 마무리 집회도 없이 각자 해산들 했다.

 

라파즈의 아이들...언덕배기에 있던 숙소에서 시내로 내려오다 보면 성당과 대통령 궁 등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 거리에서 온갖 모양으로 꾸민 아이들이 가장 행렬을 만났다. 무슨 행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창조적이며 다양한 소품으로 복장을 꾸민 아이들의 행렬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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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볼리비아...루레나바케

루레나바케 거리 풍경...후덥지근한 열대우림의 열기가 느껴지던 루레나바케. 라파즈에서 이곳까지 정글여행을 위해 2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아마존 정글의 진수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 왔던 이곳. 그러나 나는 아마존 정글의 진수는 고사하고 원숭이 한마리 뱀 한마리 구경 못하고 실망만 가득안고 돌아가야만 했다.  


아마존의 끝 석양무렵...아마존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루레나바케에서 묵었던 호스텔 한국인 주인아저씨는 호스텔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 강이 아마존의 끝이라고 했다. 노을이 지면 어둠이 내리고 어둠과 함께 별이 뜨면 그 별을 헤아리며 아저씨와 아저씨 친구분의 이민사를 듣던 때가 얹그제 같기만 하다.


요리...2박 3일 정글 여행을 같이 했던 가이드. 정글여행에 속은 생각을 하면 미웠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그. 그는 때가 되면 저렇게 부엌에 불을 피워 요리를 했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 그 곁에서 곧잘 거들어 주곤 했다. 또 앞마당에서 과일(?)을 따와 즙을 짜 물에 풀면 시원한 레몬에이드가 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즐겨 만들어 식탁에 놓곤 했다. 

  

미라도르에서...아무래도 이상해 진짜 정글을 가고 싶다고 가이드를 조르니 두어시간 정글을 헤쳐 찾아갔던 전망대. 사방 끝도 없이 정글이 펼쳐져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정글은 더욱더 깊은 저 속에 있었던 것이다.


타잔처럼...타잔과 제인이 저랬던가? ㅎㅎㅎ 나무줄기를 다듬어 잡아 타고 저쪽을 날아갔다 온 가이드가 날더러 해보라고 한다. 먼저 벨기에 친구 페드로가 시범을 보이고 다음으로 내가 해 보았다. 재미느 는 있었다.  

 

(2007. 4. 6-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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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볼리비아...국경에서 라파즈

페루 볼리비아간 국경 ...내가 여행했던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했던 나라 볼리비아. 우리나라와 외교관계가 좋지 않다 유난히 비자받기도 까다로왔다. 그레서 나는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페루 리마에서 며칠 동안 한국인 민박집으로, 페루 보건소로,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여기저기 뛰어 다녀야만 했었다. 사뭇긴장을 했는데 국경은 여느나라 국경과 별다르지 않고 평화롭고 한적했다.  

볼리비라 첫마을 코파카바나 시장...국경을 넘은 페루버스에서 볼리비아 버스로 갈아타기까지 2시간여 시간이 비었다. 그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주변을 둘러 보니 시장에 볼꺼리가 많았다. 게다가 불과 몇시간 전에 출발했던 페루와도 다른 분위기다. 나는 고대하던 볼리비아에 많은 기대를 갖게 되었다.   

호숫가 선착장...끝없이 이어지던 티티카카 호수가 사람과 차를 각각 다른 배에 태워 호수를 건넜다. 그곳부터 호수가 끝났고 버스가 달리니 어느새 저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웠던 라파즈...라파즈는 고지대라 날이 추웠다. 게다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의 모습도 사뭇 추워 보인다. 나 역시 라파즈에 머무는 동안 몸과 마음이 아주 추웠다. 한국식당 아줌마의 푸근한 인심이 없었더라면 더욱 힘들었을 라파즈였다.

달의 계곡에서...버스를 타고 혼자 찾아갔던 달의 계곡. 여행하는 동안 남미 여러나라에서 달의 계곡을 만났는데 이곳사람들도 달에게서 느끼는 정서가 동양 사람들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 

 

공립학교 아이들...볼리비아, 아르헨티나에서는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저렇게 하얀 교복(교복이라기 보다 간호사 가운같은)을 입은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립학교 학생들은 저런 옷을 입는다고 했다. 부활절 아침이었던가? 라파즈 성당 앞에 아이들이 모여  선생님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연대...라파즈를 떠나 수크레로 가던 저녁 무렵, 라파즈를 벗어 나던 거리에 저것이 서 있었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쿠바의 카스트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그들의 연대가 가난한 남미민중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을까?  

 

(2007. 4/4-6) / (2007. 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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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페루...티티카카 호수


갈대섬 우로스... 3천 8백고지. 지상에서 가장 높고 그 길이가 가장 길다는 티티카카 호수, 그 호수에 갈대로만 만든 섬이 떠 있었다. 섬 자체가 하나의 보트 같아 거주가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가족단위로 공동체를 이루어 원주민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기다림일까?..우틸리티 섬처녀들이 바다같은 호숫가에 나와 앉아있다. 그들은 여행객이 탄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가구별로 배정(?) 된 민박손님을 각자 자기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파티를 할 때, 마을처녀들이 나와 여행자들과 함께 전통춤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틈나면 수시로 뜨개질을 하고...내가 머물던 속소 처녀에게 춤추는 시간이 즐겁냐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당연한 답변을 했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떠나버리는 여행자들에게 이 섬의 모든 것은 상품이 되었다.     


낮설지 않은 풍경...토담에 초가(?) 코때묻은 아이들, 이역만리에서 맞이하는 풍경이건만 그리 낮설지가 않고 오히려 정겹다. 내가 어릴적 우리집이 흙담이었고 저런 아이들의 모습도 내 모습이자 내 동무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리라.  

 

오래 된 미래...하룻밤을 보내고 민박집을 떠나려니 마음이 서글프다. 이 가족은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을 스쳐 보냈을까? 이런 의식은 수없이 치루었을텐데 아직도 내게 그들은 오래된 미래 같디만 하다,  


소녀들...우리가 다른 섬에 도착했을 때, 소녀들이 다가와 매듭으로 만든 팔찌를 팔았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나름대로 근덕지게 물건을 팔던 소녀들은 여행자들이 다시 길을 떠날 차비를 하자 저쪽에 모여 앚아 떠나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2007.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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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4개월여 만에 제자리.

1년 4개월여 걸었던 길.

2006년 5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날아갔던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해 12월 4일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멕시코 국경을 넘어 중남미 여행을 시작했던 일 역시 꿈만같다. 

북미 대륙의 마지막 나라 멕시코의 서북쪽 티후아나에서 남미 대륙의 끝이자 세상의 땅끝인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까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여행 6개월여 만에 세상의 땅끝 우슈아이아에 닿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5월 30일, 내 발자욱이 곳곳에 서려있을 라틴아메리카를 떠났다.

6월 1일, 33시간 긴 비행과 11시간 시차를 넘어 아시아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

여행이 아닌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전혀 계획에 없던 시간으로 내게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9월 7일. 일정대로였다면 이날 귀국하는 것이었는데 비행기표 문제가 생겨 9월 12일 8시 50분 즈음 1년 4개월여 만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도착 시간이 9시 50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알고 있었던것 같다. ㅎㅎㅎ

익숙한 말, 여유있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를 마치고 입국심사대와 세관심사대를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내 가방을 낚아챈다. 어? 아무도 나오지 말라 했고 비행기도 1시간 빨리(?)왔는데...흥연이다. 동생남편. 선영이는 두살배기 정현이를 엎은 채 운전대를 잡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ㅎㅎㅎ

 

일흔 셋의 우리 엄마.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저녁상을 차리고 계신다. 큰오빠부부는 케잌까지 들고 들어온다. ㅎㅎㅎ

거실에 태맥산맥2권이 있어 누가 읽는 것이냐 물으니 엄마가 읽고 계신데 아주 재미있다고 하신다. 엄마는 여느 어머니들의 삶이 그러하듯 평생 농사 지으며 5남매 키우고 말년에는 공장까지 다니느라 두다리 뻗고 사셨던 날이 없으셨던 분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이듬해 가을농사까지 마무리한 다음 인천으로 올라와 도시생활을 시작하셨다.

도시에서도 엄마는 한시도 앉아 계시지 않고 주말농장이라는 밭으로, 집 뒤 계양산 등산으로, 온갖 집안 일로 내내 일을 만들어 하셨다. 그러다 틈 나면 조카들이 읽다가 놓고 간 동화책을 읽곤 하셨다. 어떤 책은 눈물 흘리며 대여섯 번도 읽으셨다고 했다.

내가 떠나기 전, 엄마에게 초등학교 5,6학년용 동화책을 몇권을 사다드렸는데 그것도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했다. 어느날 동생이 태맥산맥을 갖다 줘 읽기 시작하셨다는데 재미는 있지만 눈이 침침해 오래 못 읽으신댄다. 

그리고 엄마는 큰 돼지 저금통 하나를 내게 내미셨다. 나 들어오면 엄마에게 주고 간 휴대폰 대신 새 휴대폰 사라고 내 생일때나 명절날, 아니면 틈나는 대로 나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며 그곳에 한두푼씩 모으셨다는데 그 돈이 30만원이 넘었다.

그런데 나와 엄마의 일상적인 싸움은 머지 않아 다시 시작됐다. 아니 나의 일방적인 잔소리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자식들 챙기는 그 모습에 짜증 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엄마를 마음 편케 하는 것일 텐데도 나는 자꾸 내게 엄마를 맞추려 하는 것 같다. 다행히 나 없는 동안 엄마는 건강히 나름대로 당신 관리를 하시면서 잘 계서 고마왔다. 

 

제자리 찾기

돌아 온 다음 날 부터 나는 오랜동안 쟁여 놓았던 내 방의 짐과 긴 여정을 함께 한 배낭의 살림들을 풀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 이삿짐처럼 방안 가득 쌓인다.

큰오빠가 인터넷 연결을 위해 통신사에 연락하고 요금도 오빠통장서 나가게 처리해주었다. 게다가 사은품으로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 나는 필리핀서 엠피쓰리가 망가져 낼름 엠피쓰리를 신청했는데 조카들이 걸린다. 내 엠프쓰리 수리 가능하면 둘 중 하나는 조카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쉰이라는 우리 큰오빠. 그사이 폭싹 삭아 버렸다. 그래도 큰오빠는 내가 늘 비웃는(?)뻥과 구라로 서로에게 자신감을 주며 동생들 챙기는 마음은 여전하다.

방안 가득 어질러 놓고 저녁에 동네서 피시방을 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 정말 오랜만에 털어 놓는 낮익은 수다. 늦은 밤까지 물빠진 월미도 밤바다 구경까지 하고 돌아왔다.

다음날도 낮에는 방안 가득 어질러 놓은 짐들과 씨름하다 비 내리는 저녁무렵, 동네 가까이 사는 선배를 만나 막걸리에 김치전을 먹으며 지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1년 4개월여 사이 가장 큰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은 쑥 커 버린 열명의 조카들이었다. 큰 조카 지연이는 밤10시까지 학원수업을 해야 하는 입시경쟁 대열에 들어 선 전형적인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 없는 동안 할머니 챙겨 드린다며 거의 매일 우리집 와서 잤다는 예쁜 지선이, 웬만한 운동을 무자게 좋아하고 잘하는 종완이, 아기 같으면서도 소견 깊은 세은이. 꽃미남에 축구광이 되어버린 기찬이. 알토란 같은 개구쟁이 상훈이, 새침스럽게 똑소리나는 소은이, 다섯살 나이에 두 동생의 형이 된 정찬, 무엇이든 멋진 것을 찾는 다는 네살 정진, 그리고 어느새 제 필요한 말들을 익혀 의사표현하는 정현. 

그렇게 하루 이틀...이제 귀국 한달이 지났다. 긴 여행을 마치고 나면 그 후유증도 크고 길다던데...지난 한달 사이 자칫 그 후유증에 빠질듯한 순간도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차분히 일상을 되찾기 위해 맨 처음 한 일이 전에 쓰다 말고 간 다이어리를 사 다시 쓰는 일이었다.

 

기나긴 여정을 뒤로하며.

다시오지 않을 나의 지난 1년 4개월여. 육로로 미국 엘에이부터 남미대륙을 돌고 비행기로는 지구 한바퀴를 돌았다. ㅎㅎㅎ 지나 온 모든 길들은 항상 갈 수도 안갈 수도 있었던 선택을 가진 두가지 길이었다. 내가 걸었던 하나의 길, 고단하고 고독했던 여정이었지만 가고 싶었던 곳, 소망하던 일들을 조금씩 이루던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부모형제 친구들 모두 나름의 부침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안녕들 하니 다행스럽고 고맙다. 

또한 다시 한번 생각컨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가기 힘들었을 그 길들. 그 발걸음을 가능케 용기를 주고 응원하며 염려해 준 모두에게 깊이 깊이 감사드린다. 그 마음으로 나의 새로운 일상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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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리핀 마지막 미개척 섬 '팔라완'

팔라완 가는 하늘 길...내 긴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필리핀의 마지막 미개척 섬이라는 '팔라완'.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오지로 알려져 있는듯하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오지를 찾아 또는 난파선 등 유명한 스킨스쿠버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  그곳으로 향한다. 7000여개의 섬으로 만들어진 섬나라 필리핀, 비행기에 타면 정말 필리핀이 무수히 많은 섬의 나라임을 실감하게 된다. 하늘아래 백사장을 낀 섬들이 마치 보석처럼 펼쳐져 있다.  

 

지하강(undergroud river)으로 들어 가는 길...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동굴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곳이다.

 

지하강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메이와 마리떼는 지하강 여행에서 만난 필리피노 친구들이다. 둘은 직장 동료라고 했다. 스물여섯 메이는 어릴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리고 마리떼는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는데 마치 20대 같았다. 그녀들은 말이 설은 내게 온갖 친절을 베풀며 챙겨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다음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그녀들과 하루 더 호핑투어(섬여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포트 파튼의 저녁 노을...필리핀 최후의 미개척 섬 팔라완, 시내에서 지프니를 타고 너댓시간 더 들어 간 포트파튼, 이곳은 예정이 있던 곳이 아니었는데 여행 끝무렵, 불편한 차를 타고 열몇시간 더 먼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노을이 아름답고 편히 쉬기 좋다는 포트파튼을 마지막 여행지로 가게 됐다. 사진에 찍힌 저 일가족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위해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자연의 빛깔...오래 전 부터 내 가슴에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에 살거나 머물고 싶다는 바램이 있었다. 포트파튼의 저녁하늘. 위 사진과 같던 노을이 어느순간 사그라들며 아래 사진과 같은 빛깔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감옥 마을...팔라완 푸에르토 프린세사 이와히그는 감옥 마을이다. 마치 동양화 같은 산들이 펼쳐져 있는 마을, 곳곳에 죄수복을 입을 사람들이 평화롭게(?)오가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했다. 입구 쵸지판과 옷을 뺀 다른 곳에서 어디서도 그곳이 감옥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1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이 감옥, 이곳에는 2천 500여명의 죄수들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거쳐간 수감자들의 갱생률이 아주 높다고도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팔라완서 마닐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공항에 닿을 무렵, 주변 마을이 보였다. 저 아래 옴닥 옴닥 빈민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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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닐라 주변 둘러보기2.

이멜다를 따르는(?) 사람들...이멜다의 부정과 부패, 사치는 이미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혀를 내두르게 한지 오래다. 그녀는 최근까지 재판을 받은듯 하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마음이 복잡해 발길 닫는 대로 걷다가 집회대오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니 웬지 분위기가 이상타. 나눠주는 유인물을 받아 사전을 뒤져 대충 읽어 보니 이멜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상사람이 다 아는 부정부패인데 왜? 이방인이 내게도 어이가 없었다. 이멜다 티셔츠와 이름표를 단 여인에게 다가가 목에 건 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이멜다 관련 무슨 조직의 회원증이란다. 역시 이 집회는 이멜다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집회였다. 여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 물으니 무슨 생각인지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 주었다.   

 

가수 프레드리 아낄라 공연....혼자였으면 절대 이런 곳을 안오고 못왔을 것이다. 그런데 학원 미국인 선생이자 같은 숙소에 머무는 '티쳐GV' 따라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바엘 가 보았다. 그전에 그는 내게 몇번이나 술마시러 가자고 했었는데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대며 사양했었다. 눈빛만 봐도 여자를 밝히는듯한 표정과 나치 같은 머리모양이 영 맘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프레드리 아낄라 공연을 하는 바에 가자고 했다. 그날은 따라가 보았다.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아낙' 즉 '사랑하는 내 아들아~!'의 가수였다. 

GV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더러 폭력적이기도 한 미국인이었다, 10년전 한국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파트타임 애인이 중학교 수학선생 유부녀였다나...나는 그 한마디에 '인간의 질'을 판단해 버렸다. 수업시간이면 나는 안되는 영어였지만 자주 그와 언쟁을 해야만 했다. 함께 수업을 하던 레이나는 마치 두사람이 '톰과 제리'같다고도 했는데 필리핀을 떠날 즈음, GV와는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버린듯하다.  ㅎㅎㅎ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 리살의 발자욱 ... 리살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필리핀 해방을 위해 투쟁한 사람이라고 했다. 마닐라의 스페인이라는 인트라무스에 가면 그가 갇혀 있었다는 감옥이 있다. 사진의 발자욱은 그가 감옥을 나와 사형장으로 갈때 남긴 발자욱이라고 한다. 그는 근처에서 사형을 당했는데 그곳이 바로 리살공원이다. 리살공원에 가면 그의 동상이 있다.

 

친구들 ...명숙씨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날, 이별을 아쉬워 하며 특별한 날 찾아 가던 호텔의 샤브샤브 집에서 내가 저녁을 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평소 명숙씨가 오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들르곤 했다는 근처 호텔을 같은 이유를 들어 둘러 보았다. 이곳이 무슨 유명호텔이었는데...이름이 기억 안난다. 노처녀 셋보다 더 파릇파릇한 아줌마 에이미, 선교사 남숙씨, 나, 명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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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닐라 '나보타스' 지역 의료자원봉사

보라카이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남숙씨가 토요일 하루 자원봉사를 해달라고 한다. 무엇이냐 물으니 의료활동 나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필리피노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 할 내가 아니었기에 기꺼이 함께 가겠다며 즐거워 했다. 

다음날, 우리는 한국에서 의사를 하다 필리핀으로 와 전국을 누비며 의료선교활동을 한다는 의사선생님이자 선교사를 따라 최근 장만했다는 의료버스를 타고 다보타스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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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타스'지역으로 가는 길 '톤도'지역의 빈민가... 남숙씨는 내가 관심있어(?) 할 곳이라며 거리를 보라고 했다. 빈민가가 도로 옆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달리는 차량을 구경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몰려나와 뛰놀기도 했다. 마닐라 말라테거리의 빈민가는 비교도 안될 지지리도 가난한 빈민가가 차창 밖으로 오랜시간 스쳐지나고 있었다.

 

아침 9시에 만나 출발하기로 했는데 필리피노타임 때문에 사람들이 늦어 마을에 우리가 도착하니 12시 가까이 되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공터에는 이미 100여명의 사람들이 나와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부터 먹자고 하며 우리를 어느집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그 집은 잘사는 집이다. 알고 보니 전직 장관의 형제집이라나...음식은 필리핀 전국의 음식을 모았다는데 처음 먹어보는 요리들도 많았다. 그런데 저녁무렵 일이 끝날 때까지 전직장관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내내 자리를 지키며 동네사람들과 함께했다. 이 나라도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극심한 나라라 하는데 그래도 얼굴만 내비치고 악수하고 떠나버리는 한국의 인사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사' 아닌 '약싸'가 되다...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날의 자원봉사자들이 맡은 일은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최근 남숙씨는 내가 운동권 내 호칭을 가르쳐 주니 장난삼아 나를 '한동지'(?)라고 불렀고 나는 남숙씨를'선교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날 이후 우리는 약을 조제하니 우리도 '약사'가 됐다며 서로 '한약사', '김약사'라고 불러 주기로 했다. 그러자 옆애서 처방전을 써주던 의사선생님이 '약사'가 아닌 '약싸'라고 바로 잡아 주어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날 우리가 한 일은 의사선생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찾아 싸주는 일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게 약사 아닌가? ㅎㅎㅎ

 

사람이 사는 마을...일을 마치고 잠시 골목을 벗어나 바로 이어진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역시 골목 뒤, 가난한 빈민가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웅덩이 같은 더러운 물 빠져 고기를 잡고 있었다. 장관 형제의 집은 골목 입구에 있었고 그 주변에는 역시 잘사는 집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가난의 깊이를 더 실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골목의 소년...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서자 한 소년이 공을 갖고 논다, 사진을 찍고 싶다하니 폼을 잡아 준다. 야무진 소년의 표정만큼 그의 미래가 희망차게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서 있는 뒷편 허름한 곳들은 모두 사람이 사는 빈민가이다.  

 

삶의 터전...결코 께끗해 보이지 않은 바다, 그러나 그곳은 이곳 사람들의 가난한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삶의 터전이었다. 


 (2007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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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세계 3대 해변 가운데 하나라는 '보라카이'

보라카이 해변...보라카이 해변은 세계 3대 해변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유명세 때문인지 지금은 비수기라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었다. 실제 보라카이를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타고 보니 80%정도는 한국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이 해안 바다 안팎, 심지어 하늘에서까지 온갖 스포츠와 레져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해양스포츠의 천국답다. 

 

몇발짝만 들어가도...해안가는 호텔과 식당, 기념품 가게, 여행객들로 즐비했다. 그곳에서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색깔이 다른 필리피노들의 삶을 만날 수가 있었다.

 

호스텔에서 본 보라카이 바다...내가 묵던 곳은 2층이었다. 그곳에서 밖으로 나와 내려 다 본 바다는 시시각각 제 색깔을 달리하며 아름다움을 폼내고 있었다.

 

내가 필리핀으로 온 또 다른 이유...쿠바와 칸쿤 등 카리브해 연안을 여행하며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었다. 그리고 그 전, 한국애 있을때도 바닷 속 세상이 궁금하여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그러나 모두 여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 가기 전 필리핀 3개월 체류를 결정하며 나는 두가지 목표를 정했었다. 하나는 영어공부, 다른 하나는 스킨스쿠버 다비버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18m까지 들어 갈 수 있는 오픈워터만 하려했다. 그러나 하던 중 질러신이 나를 자극하는 바람에 어드밴스까지 하고 34m바닷속까지 들어 갔다 나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형형색색 아름다운 물고기, 그림 같은 산호초 숲, 난파선 다이빙, 야간 다이빙 모두 해보았다. 그러나 성격이 급하면 위험 상황에 대응력이 떨어진다며 하루에도 서너번씩 나의 급한 성격에 대해 충고 해 주던 강사가 늘 내 옆에 붙어 다녔기에 이것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실제 얼마나 성질이 급한지 안다. 하지만 여행하며 많이 느긋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여행하며 만난 한 친구는 호주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에게서 엿보았던 몸에 밴듯 침착하고 면밀했던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도 있게 되는듯했다. 아뭏튼 강사님의 충고는 사무치게 새겨 들을 대목이었다. 

 

'스노쿨링 샷?'...스킨스쿠버 다이버 시험에 합격하면 '스노쿨링 샷'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있었다. 필리핀의 그 유명한 산 미구엘 맥주 한병을 스노쿨링에 따라 단숨에 마시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주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거기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보내 줄거라는 진짜 자격증이 왜 아직 안오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의 친구들은 마침 학력위조시비로 시끄러운 정국 속에서 나 역시 외국서 가짜 자격증따고 거짓말 한다며 '자격증 위조' 시비를 걸며 나를 놀리는데 말이다.ㅠㅠㅠ.  


(2007년 8월 26일 -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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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산섬 '따가이 따이'

따가이 따이 가는 길 ...어느 주말, 마닐라에서 주로 어울려 놀던 여인 4인방이 화산섬이라는 따가이 따이에 놀러갔다. 따가이 따이 가는 길에서 사먹은 옥수수 맛이 아주 고소하고 좋았다. 또한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필리핀의 부자마을도 있었고 파인애플 농장, 바나나 농장 등이 있었다.  

 

호수로 둘려 싸인 화산섬...나는 따가이 따이가 어떤 섬일지 궁금했다. 마닐라 여행자 숙소에 머물때 한 친구가 따가이 따이를 다녀왔는데 아주 뜨거웠다고 했다. 나는 과테말라 활화산을 생각하며 "화산때문이었냐? 햇빛 때문이었냐?'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햇빛 때문'이라고 답했었다. 화산으로 가는 저 언덕 길을 말타고 오르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서양여행자들은 애를 데리고서도 대부분 걸어 올라갔다, 나도 걸어 올라가고 싶었던 길이었다.

 

코코넛 먹기...중국 따렌에 있는 한국인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있는 명숙씨가 방학을 이용해 영어공부를 하러 왔었다. 명숙씨는 수영을 좋아해 마닐라에 머물며 가끔 수영장을 다녔는데 명숙씨를 따라 수영장에 가면 그녀는 내게 선생답게 잘못 된 나의 수영 동작을 바꿔주곤 했는데 명숙씨가 가르쳐 준대로 하면 정말 수영이 잘됐다.  따가이 따이 꼭대기에서 코코넛 쥬스를 같이 빨아 먹고 있다. ㅎㅎㅎ

 

내 친구들...사라는 서울서 직장을 다니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필리핀으로 건너와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필리핀을 떠나 올 즈음, 기념품 가게에 취직을 하기도 했다, 화끈한 그녀의 성격이 매력이었다. 에이미는 필리핀 이민 7년차 아줌마. 남편과 딸은 세부에 있고 그녀는 일때문에 마닐라에 머무는데 유난히 음식 솜씨가 좋은 그녀는 나를 위해 저녁상을 차려 놓고 매일 기다렸었다. 그 덕에 필리핀서 늘 배고프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내가 그 소리를 안하게 됐다, 명숙씨는 중국서 국제학교 교사를 하는데 똑부러지는 성격의 친구다. 

 

따가이 따이를 떠나는 길 ...따가이 따이를 벗어나려면 보트를 타야 한다, 이쪽 하늘은 맑은데 저쪽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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