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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살아요?!

시트콤 Sit com 은 Situation comedy 의 준말이다. 문자 그대로 상황에 따라 웃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코메디 드라마이다.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이를테면 종편에서 방영하는 '청담동 살아요' 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청담동이라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배경이 보여주는 사치스러움일까? 아니다.  오히려 '청담동 살아요'를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은 다름아닌 '청담동' 이라는 게토에 숨겨진 사회적 약자이며 사회적 모순이다.

 

 '청담동 살아요' 는 지방 변두리에서도 근근히 살던 혜자네 가족이 지인의 실종을 계기로 무려 그것을 숨기는 대담함까지 보이며 청담동 오래되고 낡은 상가주택으로 입주를 하며 겪는 에피소드이다.

 

한 가족이 이러한 통 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사회가 하루 아침에 오갈 곳이 없어진 이들을 위한 장치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 혹은 사회가 사회 구성원의 몰락에 무책임하다는 것은 하이킥 2편에서 처절하게 이미 드러났다.

 

청담동 살아요는  소위 청담동이라는 게토에 살아가는 숨겨진 사회적 약자를 드러낸다.  내가 청담동을 게토라고 한 이유는  게토의 원래 뜻은 사회나 공동체에서 추방(?) 혹은 격리 된 공동체가 사는 지역이지만, 남한에서 특정 지역은 그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게토를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그 중에 하나가 다름아닌 청담동이다. 연예인이나 어느날 갑자기 돈벼락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다름'을 구별짓기 위해 몰려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이 아니면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왜? 불편할테니까. 그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언어가 다르고 이용하는 식당의 규모가 다를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불편한 것을 참고 견뎌야할 필요가 없기도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청담동이라고하면 남한의 1% 지배계급이 사는 지역이지만, 그 곳에도 노동자는 존재한다. 가령, 백화점이나 마트와 같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감정 노동자와 청소를 하는 청소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 곳에는 존재한다. 그들도 역시 청담동이라고 불리우는 곳을 구성하는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담동이라고 하면, 우리가 놓치고 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더블 소외를 받는 계급이 있다면 그것은 청담동에서 살아가는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누군가 어디 사세요 라고 물었을 때 소위 부자동네에 산다고 대답했을때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7,80년대 당시 20대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학번을 가진 대학생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던  20대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86 세대라고 싸잡아 지시하는 것과 같은 폭력을 드러 낼 수 있다.  다시말해 사회 전체가 당시 노동자계급에게 이유없이 떳떳하지 못한 사회적 좌표를 제공해 사회적 열등감을 재생산하거나 그 언어로 인해 소외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계급간의 갈등은 백화점 VVIP 고객에게만 제공하는 문인회에 들어가 ''사모님'' 들 사이에 앉아 있는 만화방 주인 혜자의 불편한 교제와 남자 잘 만나 인생로또를 꿈꾸는 비정규직 감정노동자 지은의 허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확대되고 부풀려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는 반드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숨겨버린 사람들을 청담동이든 평창동이든 그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오히려 화려함에 가려지기 쉬운 곳에서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등한시 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고, 그들의 있음과 함께 있음을 나에게 명심하게 하려고, 그러기 위해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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