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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0/05/31
    도시농부일기_20200527
    hongsili
  2. 2020/05/23
    노동이야기
    hongsili
  3. 2020/05/02
    뭔가 찜찜한 책
    hongsili

도시농부일기_20200527

hongsili님의 [도시농부일기_20200429] 에 관련된 글.

 

한 달에 한번 밭에 가는 게으른 농부...

게으르다기보다, 다른 일이 너무 바쁜 쓰리잡 농부의 삶...

자연과 함께 하는 한가로운 농부의 삶이란 없어.. 일이 너무 되서 자연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구 ㅜ.ㅜ

 

이번에는 화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1박하고 수욜 새벽부타 작업 시작...

하루종일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세  가지 종류의 회의를 마치고 기차 타고 내려가니 이미 그곳은 오밤중, 다행히 K 샘이 마중나와 주기는 하셨는데 숙소로 쓰는 별채 서재까지 가는 길, 다시 화장실이 있는 아랫집까지 내려가는 언덕길이 암흑천지인데다 풀이 너무도 무성하게 자라서 알던 길도 헷갈리고, 게다가 스맛폰 조명으로 비춰보니 대나무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라나서 여기서 잘못 미끄러져 넘어지면 죽창에 찔려 사망각.... ㅡ.ㅡ

사실 하루종일 회의 돌아다니느라 끼니를 제대로 못챙겨 먹어서 기차에서 작은 떡 두조각 먹은게 다인데 이 오밤중에 어디 가서 밥을 얻어먹을 수도 없고, 동네 가게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생수만 벌컥벌컥... 가방 안주머니에 사탕 한 봉지 찾았는데 sugar free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하늘도 무심하다

이 와중에 달빛 배경 삼아 온라인으로 자료분석 미팅을 하고 ㅋㅋㅋ 그대로 기절...

새벽 알람에 일어나보니 5시 반인데 벌써 세상이 환해서 깜놀...

아침도 못 먹고 일단 날이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작업 시작...

지난 번 작업했던 두둑에 김매기 열심히 해주고, 멀칭이 더 필요한 부분 덮어주고 나서 허리펴니 아침 8시...

 

신기하게 감자꽃도 피고, 수세미, 브로콜리며 가지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음 ㅋ

정말 멀칭을 제대도 해준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실감.. 멀칭만 잘 해주면 김매기 할 것이 거의 없음. 지난 냉해에 콩 파종한 것들이 다 얼어죽었나 했더니 이번에 가보니 절반 정도 싹을 티웠음.. 기특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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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 가서 아침 얻어먹고, 읍내 장에 가서 또 모종 구입.. 파종을 한번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조금씩 때를 달리하며 파종과 수확을 거의 연중 지속...

모종으로 샐러리, 겨자채, 적채, 미니단호박, 수박, 곰취, 홍당무 심고, 집에 있던 루꼴라 씨도 뿌림. 비싼 루꼴라 맘껏 먹어보고 싶은 마음... 샐러리도 벌써부터 볶음밥해먹을 생각에 흐뭇 ㅋㅋㅋㅋ

지난 겨울에 심어놓으셨다는 마늘과 양파도 일부 수확하고, 주말에 엄마한테 부추전 해달라고 부추도 잘라옴 ㅋㅋ

점심먹고 서둘러 올라왔는데 벌써 햇볕이 장난 아니라 힘도 들고, 땀이 정말 삐질삐질....

그런데 역시 한국인은 장비빨 ㅋㅋ 동네 뒷산을 가도 아웃도어웨어 풀장착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 아닌가... 나도 농사 대비 모자와 3M 쿨토시, 3M 안전장갑, 장화를 준비 ㅋㅋㅋㅋㅋ 누가 보면 전문 농사꾼... 심지어 옷은 등산 다닐 때 입던 기능성웨어... 3M 이 정말 좋기는 하더라구 ㅋㅋ 손에 딱 맞고 그립감 좋고, 물기도 금방 마르고.. 토시도 진짜 쾌적함...  장화는 크록스 ㅋㅋ 패션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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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번에는 몇 가지 준비물을 더 챙겨야겠음. 계속 장비 욕심 ㅋㅋ 

일단 야간과 새벽작업을 위한 헤드랜턴 챙겨야 함, 작업 끝내고 샤워 후 갈아입고 올라올 여벌 옷, 얼음물 담을 수 있는 물병. 등산하려고 사모은 소소한 장비들을 이렇게 쓰고 있다 ㅋㅋㅋ 무릎보호대도 가져갈까???


다음번에는 작업량이 몹시 많을 것으로 예상... 일단 블루베리 수확을 사칭한 시식 ㅋ 마늘과 양파수확, 산에 있는 복숭아 싸주기, 그리고 역시 엔드리스 김매기...

그네 언니 말대로 바쁜 벌꿀은 쉴틈이 없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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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야기

#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와이즈베리, 2020

 

 

번역서 제목이 안티 아닌가... ㅡ.ㅡ
저자 자신도 "일은 한까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줄어들 뿐"이라고 쓴 마당에

 

  • 기술적 실업 (technological unemployment) - 아마도 구조적 실업 중에서도 특별히 기술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상황을 지칭한 것일텐데, 이미 1930년 영국의 케인즈가 이 용어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함. 근데 무려 이보다 100년 전 리카도가 1821년에 '기계장치에 대하여'라는 챕터에서 이 문제를 언급
  • 저자는 기술적 실업의 시대 특징으로, 기술 진보를 통해 모든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는 크게 해결할 것이지만 세 가지 문제, 1) 불평등, 2)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 3) 삶의 목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것

 

  • 기술 진보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방향의 힘이 작동. 첫째 노동자를 대체하는 해로운 힘, 둘째 노동자를 보완하는 유익한 힘 (1 생산성 효과, 2 파이확대 효과, 3 파이 탈바꿈 효과) - 지금까지는 이 두 가지 힘의 싸움에서 후자가 대개 승리했고 언제나 인간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기에 이를 '노동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었음
  • 21세기 들어 숙련도별 고용율 변화를 보면 대개 고숙련과 저숙련이 늘어나고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 관찰 . 이를 양국화 혹은 공동화라고 부르고 ALM 가설 (Autor-Levy-Murname)로 설명가능. 그동안 사람들이 흔히 '일자리'에 집중했지만, 상향식으로 일자리보다 '업무' 단위로 쪼개 보면 기술에 의한 대체 '업무'가 보다 명확해짐. 대개는 교육이나 숙련 수준보다는  "틀에 박힌" 업무, 암묵적 지식보다는 '명시적' 지식에 의해 의존하는 업무들이 자동화되기 쉬움. 어떤 일자리든 단일 업무만 하는 직종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직종이나 일자리가 통째로 자동화된다기보다 이러한 '업무'들이 자동될 가능성
  • 그런데.... 인공지능에서 나타난 실용주의 혁명이 이러한 ALM 가설마저 무너뜨림.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자동화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예가 트럭 운전과 의료진단이었는데 지금 보면 가장 앞서나가는 분야 중 하나. 절차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지능을 굳이 모방하지 않아도 기계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업무 수행 가능.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인간 능력이나 처리하기 힘든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추세를 확인하는 것! 시간이 지날 수록 기계는 서서히, 끈질기게 발전에 인간 업무 영역으로 발을 넓힌 것이 분명. 이것이 '업무 잠식'인데 인간이 일에서 사용하는 세 가지 능력, 신체/인지/정서 능력 모두 기계의 압박

 

  • 하지만 이는 전세계에서 지역적으로 시차를 두고 발생. 그 이유는 1) 과제의 차이 (특정 산업 비중), 2) 비용 차이 (영국에서 지난 10년간 오히려 기계세차가 감소하고 손세차가 늘어난 것은 값싼 이민자 노동력 때문 ㅜㅜ. 상대비용), 3) 교제 및 문화의 차이
  • 마찰적 frictional 기술실업 -  일자리가 몽땅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거리는 있는데 모든 노동자가 일감을 차지할 수 없는 상황. 그 이유는 1) 숙련 기술의 불일치, 2) 정체성의 불일치 (기술진보가 반드시 매력적인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 신기술 때문에 제조업에서 밀려난 남성노동자들이 핑크칼라 일자리로 들어가지 않는 현상), 3) 장소의 불일치 (기술이 지역적 거리를 무위로 만들것 같지만, 예컨대 '거리의 종말, 평평한 세상'이라고 해도 현실은 다름. 러스트벨트 vs. 실리콘밸리)

 

  • 기술적 실업의 문제는 직접 실업률을 높이는 문제만이 아니라 일의 성격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음 1) 사람이 몰리면 임금 하락, 2) 일부 일자리에 질의 하락, 3) 일자리의 지위 하락
  • 구조적 기술 실업은 기술진보의 '보완하는 힘'의 약화 때문인데, 그 이유는 1) 생산성 효과가 사라져가고 있음 (노동자 생산성이 올라가면 가격 인하나 고품질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다른 분야에서 노동 수요가 높아지는데... 이제는 노동자 생산성이 올라가도 노동 수요 증가 일어나지 않음) 2) 파이는 분명히 커지겠지만, 그러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업무 수행에 인간이 유리하지 않음 (업무 잠식 효과), 3) 파이탈바꿈 효과가 소비와 고용 두 가지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 ==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이 어떤 기계보다 나을 것이라는 '우월성 추정 superiority asusmption'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즉..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판단. 이제는 열등성 추정을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상황.
  • 구조적 기술 실업 시대 불평등은 두 가지 자본, 전통자본과 인적 자본 모두에서 나타남. 인적자본과 전통자본 둘 다 없는 경우에 세상 암울해지는데 ㅜ.ㅜ  두 가지 모두 갈수록 불공평하게 분배됨 1) 권력을 이용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상위 1%, 0.1%의 독식) 2) 노동소득 분배율의 감소 == 결국 분배 문제가 핵심

 

  •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큰 정부 big state. 큰 정부가 맡은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 현재의 사회보장 제도나 소득 부양 정책들은 모두 고용이 일상이고 실업은 어쩌다 나타나는 예외라는 전제에 따라 설계되었지만, 이제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고용이 일상이지도, 실업이 예외인 것도 아님 ㅜ.ㅜ  큰 정부는 1) 가치있는 자산과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크게 매기고 (노동자, 전통자본, 대기업), 2) 그렇게 모은 돈을 자산과 소득이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함. 필자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조건부 기본 소득 주장
  • 1796년 토머스 페인이 기본소득 처음 주장하고 그동안 각기 다른 이름으로 이 개념이 회자됨. 지역 배당금, 보편수당, 시민소득, 시민급여, 정부상여금, 국민보조금 등등.. 그런데 기본소득의 '기본'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 (즉, 기본소득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다운 삶이냐, 최저 보장이냐)과 더불어 보편성에 해당하는 구성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함 == 글쎄올시다??? 생산 영역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디??? 그래서 저자는 정부가 '전통 자본의 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 자본은 그대로 둔 채 소득만 분배하고 인적 자본만 폭넓게 분배한다면 경제불균형은 해결될 수 없음.
  • 또한 정부는 노동을 지원해야 함. 왜냐하면 일에는 경제와 상관없는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 기술 대기업 문제도 심각하게 여겨야 함. 그들의 문제는 과거처럼 독과점 같은 '경제'이슈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대개 경제적 측면과 관련 없는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함. 구글의 알고리즘이나 페이스북의 데이터 거래 등등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 그런데 현재는 신기술을 어떻게 어디에 이용할지를 이런 기술 대기업들에게 맡겨놓고 있음 ㅜ.ㅜ 이들의 정치적 힘을 감독할 수 있는 기관, 소비자가 아닌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함. 물론 정부라고 다 선은 아님. 중국의 기술 국유화가 가져온 끔찍한 감시사회를 떠올려보면...

 

  • 인간은 왜 일에 의미를 부여할까...  싫의 의미와 일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 고대에는 일을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보기도 했고, 구약성서에서 일은 인간에 내려진 징벌. 반면 프로이트와 베버는 삶의 의미와 연관성을 찬양했지만 산업혁명 시대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음 "가끔은 이런 의심이 든다. 일이 줄어든 세상을 두려워하는 글을 쓰는 학자들과 평론가들이 사실은 자기가 일에서 얻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의 경험에 잘못 투사하는 것은 아닐까?" ㅋㅋㅋ 나도 항상 이런 우려를 하기는 하지만, 일 자체를 잘 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음.
  • 일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편'. 마약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목적의식이 솟구치게 하지만, 동시에 일에 취해 갈피를 못잡게 함으로써 주의를 흩뜨려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도 함. 일이 마음속에 워낙 깊숙이 뿌리내린 탓에, 일에 몹시 의존하는 탓에 일이 줄어든 세상이 다가오리라는 생각을 흔히들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실제로 생각하더라도 중요한 내용을 전혀 표현하지 못함. 일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분명한 것은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더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나 아렌트 말처럼 우리는 "노동이라는 족쇄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노동자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이 사회는 이런 자유를 얻어낼만큼 값진 더 고귀하고 의미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케인즈 걱정대로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여가의 시대와 풍요의 시대를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대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즐기기보다 죽어라 애쓰도록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 여가가 끔찍한 선물이 되지 않으려면 1) 교육 재검토하기, 2) 여가 형식 결정하기, 3) 다시 '일'에 대해 생각해보기 - 유급 노동이 줄어든 세상이라 해도 일이 아예 없는 세상은 아니기에
  • 그동안 경제적 목표에 집중했기에 파이가 얼마나 커질지를 알고자 현대의 기술자인 경제학자들에게 의지해왔지만,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근본적 목표를 다시 검토해야 함.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느냐'이며, 의미 있는 삶은 사는 것이 어떤 뜻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함

 

디지털시대 일자리의 퇴조와 관련하여 매우 차분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함. [노동의 종말]에 비해 훨씬 최근에 쓰인 책이라 현재의 상황에 훨씬 더 부합하기도 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림...  (사실 내가 이거 읽고 있을때가 아니었는데 말야.. ㅜ.ㅜ)

그런데, 뭔가 대안 쪽으로 오면 갑분싸.... 법인세 높이고 전통자본에 세금 높이는 것 다 동의하는데, 이걸 대안이라고 제시하면... 여기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이미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이전에도 이야기해왔으나 노-자간 역관계 때문에 안 되고 있던 건데.. 다시 공자님 말씀 들먹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어쨌든 생산의 재배열과 국가의 적극적 분배 개입, 기업 통제를 종합해보자면  '공공성'이라는 언어로 개념화하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적 공공성'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 같음.

참, 눈에 띄는 잡상식 ㅋ '틈새의 신  god of the gaps'이라는 표현 너무 적절 ㅋㅋ 종교지도자들이 현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으로 정의한다는 의미 ㅋㅋ

 

#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아빠가 건물 경비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순수한 독자의 마음만으로 읽을 수는 없었지.. ㅡ.ㅡ

일단 사회 구조고 뭐고.... 사람들이 참 못됐다는 생각!!!
스스로 응분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대한 자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 대한 멸시를 통해서 나의 상대적 지위를 구축하려는 이들의 생생한 사연에 진정 환멸.....
마침 부산에서 노숙인, 이주민 단체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온 다음날이라, 인류에 대한 환멸이 한층 더 심했던 듯..  아오 정말 미친 새끼들... 욕도 아까움..

  •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 그들은 걸핏하면 나에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버렸다.
  • 사실 경비원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중 반가운 것은 빗방울 뿐이다. 눈이며 꽃잎이며 낙엽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모두 다 쓰레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입사 첫날, 나는 별 생각없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  추위를 견디다 못한 경비원들이 파카를 지급해달라고 좀 더 높은 사람에게 건의해봤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 주치의는 나의 노동이 과로를 넘어 자해 행위였다며 나무랐다. 몸이 힘들면 자각 증상이 있게 마련이고 바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한 것 뿐이었다. 자해가 아니라 살기 위한 자구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대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 나도 젊을 때 같으면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견뎌야 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고령자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더 주신 걸까. 그러나 견뎌야 할 것들은 참 많았다.
  • 그때는 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노동을 하는 줄알았고 그래서 삶이 더욱 고단했다. 그러나 이 책의 편집자를 만난 후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그 책에서 생명이 위협받는 엄혹한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의 노동은 한낱 응석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부끄러웠다. 나보다 훨씬 힘들고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내 도동의 강도화 환경은 그대로지만 이런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덜 힘들다. 이 점이 더욱 감사하다.
  •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땅의 늙은 어머니 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이제는 내가 빠져나온 (최소한 학력자본과 사회자본 측면에서) 그곳을 다시금 돌아보며,
겨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나의 부모, 이웃들에 대한 연민, 사명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멸, 인생은 고해라는 현타 때문에 세상 하직하고 싶은 마음까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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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찜찜한 책

#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나쁜 교육] (2019)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프시케의숲, 2019

 

아..... 진짜 애~~~매 한 책...

미시적인 부분에서 많은 내용에 동의하는데, 왜 굳이 우익의 혐오와 차별 행동에 대한 비판보다 그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소위) 진보주의자, 좌파에 대한 비판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좀 이해하기 어려움. 대학이 진보주의자 일색으로 기울어져서 사상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걸 보면 과연 글쎄올시다...  한국 대학, 특히 교수진의 보수성이야 그렇다치고 미국도 우파 씽크탱크가 그렇게 차고 넘치고 시카고학파 같은 우파의 이데올로그가 그토록 강고한데 이건 너무 과도한 걱정 아닌가 말여? 파편화된 정체성 정치나 극단적(?) '정치적 올바름' 에 비판적인 것도 사실 아슬아슬....  예컨대 정체성의 정치가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black lives matter 에 all lives matter 로 물타기하는 세력, 페미니즘이 아니라 보편적 휴머니즘이어야 한다며 물타기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영 찜찜할 수밖에 없음 ㅜ.ㅜ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주장을 하는 방식, 그것의 정치적, 이성적 동기보다는 '심리적/정서적 반응'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예민하거나 피해자주의에 물들어서라기보다, 분명히 개소리하는 인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과거라면 넘어갔을 문제들도 오늘의 높아진 인권감수성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많아졌기에 문제제기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할진데 말이지... 

당장 한국의 상황만 봐도, 학교에서의 성차별 발언, 성추행, 심지어 성폭력 사건들이 과연 요즘 아이들이 예민해서 문제 삼는 건가? 우리 때도 그게 뭔가 불편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아무개 선생 '변태'다 피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걸 설명할 안어가 없었을 뿐....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삼는 소위 '한남 문학'도  이미 예전부터 이건 좀 아닌데, 여자가 무슨 남성 주인공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야, 맨날 겁탈이나 당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하여 이현세 만화에 질색팔색했던 것이나, 일제강점기 남성 지식인 자의식 과잉 소설에 갸우뚱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다만 이걸 문제로 개념화하지 못했던 거지...   마치 예전에는 다 너그럽게 받아들였는데 요즘 애들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이런다고 본다면 진정한 지적 게으름이거나 너무 꽃길같은 안온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


그럼에도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동의하는 바가 적지 않았고, 나도 '안전주의' 문화에 대한 우려가 있기에 몹시 흥미롭게 읽기는 했음...  사실 이런 책은 혼자 읽을 게 아니라 술 마시고 같이 까대면서 읽어야 하는데 ㅋㅋ 아쉽네 그랴.. 예전에 스티븐 핑커 책 보면서도 같이 까댈 사람을 찾지 못해 한동안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며 주변 사람들보고 제발 읽고 나의 이 불편한 마음을 같이 나누어보자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ㅋㅋ  

 

책의 내용을 좀 정리해보자면...
 
*

미국사회에 두루 퍼져나간 '대단한 비진실 great untruth'을 크게 세가지로 정리.

1) 유약함의 비진실: 죽지 않을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2)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3)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

이들은 여러 비진실 명제들 중에서도 고대(?)의 지혜와 모순되고, 현대 심리학 연구결과와 모순되며, 이 명제들을 끌어안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입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비진실'로 명명됨. 근데 바로 여기부터 살짝 고개를 갸우뚱... 고대의 문헌이라고 다 진실만 담고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고통과 도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자원이나 레질리언스가 갖춰졌을 때나 성장에 도움이 되지 마냥 좋은 것도 아니잖여. 건강불평등 업계에서 allostatic load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도 20년이 넘었는디.... 심지어 고통을 겪어야 강해진다, 요즘애들 고생 안해서 물러빠졌다는 지적은 자칫 "나 때는 보리밭에서 일하다 애만 쑥 잘 나았다고.. 내가 군대 있을 때는 말이야..." 이런 '라떼' 꼰대가 되기 십상 ㅡ.ㅡ  
하지만 두번째 '느낌'에 대한 신봉 (한국에서는 KIBUN ㅋㅋㅋ)이나 선/악 구도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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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리고 책의 모티브가 된 아틀란틱 칼럼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대학들의 연사 초청과 관련한 폭력(?)사태와 교과 과정에서의 '트리거워닝' 요구 점증 때문... 


우익적 선동을 일삼는 논객들의 교내 초청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간혹 폭력사태로 진화하는 것에 대해, 저자들은 공론의 장에서 논박하는게 바람직하지 아예 물리적으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 (대학은 무엇보다 '제도화된 부당성 증명'의 공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1991년 정원식 계란투척 사건으로 희대의 패륜 세대라고 싸잡아 욕을 먹었던 90년대 대학생 세대의 일원으로서 한 마디 보태보자면, 당시 전교조 탄압을 비롯한 문제적 인물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 대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음. 겨우 계란이나 던진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저항과 의사표현의 방법이었는데,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민주화 운동을 억압해온 정권이 학생들을 패륜 운운하며 이 사건을 부각시킨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어이 상실.. ㅡ.ㅡ


단, 이 책의 저자들이 이러한 학생들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좀 다른 이유 때문임. 학생들의 반대행위가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저항이나 실천이라기보다, 이것이 학생들의 '감정을 격발'시키거나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반대에 나서는 것이라는 점에 우려....  이러한 비판에는 나도 완전히 수긍함...  학생들이 교정 안에서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타당한 규범이지만, 미성년자도 아닌 대학생들이 그토록 '정서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지는 진정으로 모르겠음...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좀 후덜덜한 것이, 유혈낭자하고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혐오와 차별이 그득한 고전문학을 배우거나 법학과에서 성폭력 사례를 포함한 판례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고 트리거워닝을 요구하거나 리딩리스트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논쟁적 연사들의 발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입을 수있기 때문에 안전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은 매우 황당.... 뭔 다들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봉선화들인가 ㅡ.ㅡ  (아마도 압권은 영국 초등학교에서 눈싸움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 눈 만지기를 금지시킨 거 ㅋㅋㅋ)  

이렇게 보호받다가 사회로 나가면 어찌 되는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학 공간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멧집을 키워서 사회에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사실 SNS 상에도 다큐멘터리나 영화에 대해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트리거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을 보았는데, 트라우마는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잖여 ㅜ.ㅜ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남...  


안전주의는 다소 위험한 개념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함. 제일 안전하려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면 됨 ㅡ.ㅡ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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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공격(microaggression)이란 개념도 소개함. '매일의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다반사로 일어나는 언어적, 행동적, 환경적 차원의 멸시.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유색인종을 상대로 적의, 경멸감, 혹은 부정적 뉘앙스의 인종적 혐하와 모욕을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저자들은 이러한 개념이 지나치게 대중화하고 오만군데 적용되고 있다는데 문제의식. 그런데 사실 이것도 애매~한 것이... 실제로 노골적이지 않은 암묵적이고 일상화된 차별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타인의 행동/발언 하나하나를 맥락으로부터 거세시키고 과잉해석하여 미세공격이라 비판하는 것도 과도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모두 예민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점.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된 온갖 차별적 발언들, 심지어 자기 딴에는 선의에서 내뱉었지만 편견 가득 담긴 발언에 짜증이 두 배로 났던 경험들은 다 있지 않나...

 

그런데 또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심하다 싶기는 함 ㅋ 소수자 학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누가 봐도) 선의에서 비롯된 발언들마저 미세공격으로 과잉 해석하고 소셜미디어 상에 앞뒤 맥락 없이 공개해서 (일명 '가해자 지목 문화') 더 나은 해결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사례는 너무 익숙함. 여기에 일종의 피해자의식 문화가 결합하는데, 이는 독립성과 회복탄력성이 아니라 "나약함을 신성시하는 분위기"를 가지며 세 가지 특징이 있음. 첫째 개인이나 집단은 사람들이 범하는 무례에 대해 고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둘째, 제3자에게 항의하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쓴다... 이 세 가지는 당장 몇 개의 구체적 사례가 떠오를만큼 최근 몇 년간 사회단체들에서 극심한 갈등으로 비화되고, 문제제기한 당사자를 포함하여 소모적 상처만 입고 끝나는 (아니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음. 심지어 대학원생 커뮤니티에서도 종종 목격. 왜들 그렇게 자신을 가장 취약한 약자이자 피해자로 포지셔닝하는지 가끔 어리둥절해질 때도 있음. 학생 때, 전공의 때 문제제기해서 해결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한번 맞붙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면, 극심한 권력 불평등 때문에 감히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며 마치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말은 하는 사람으로 간주하는데 ㅋㅋㅋㅋ 여보시오들.. 나라고 갓 스무살 때 나이많은 남자 선배들, 전공의 때 교수들이 오냐오냐  내 이야기 잘 들어주어서 그런 거 아니라오 ㅋㅋㅋㅋ
하여간... 저자들의 비판에 동의하는 부분이 적잖으면서도 시종일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세대 후려치기, 리버럴 후려치기에 불안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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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저자들의 원인진단은...

  • 정치적 양득화와 정당 간 적개심의 심화 - 근데 이것도 한국이랑 좀 비슷한게, 계급적/사회경제적 이슈보다는 이념적, 규범적 이슈를 둘러싼 양극화라는 점에서 계급전쟁보다 '문화전쟁'에 가까운 것으로 보임, 미국 민주당이 뭐 그렇게 진보적이라고 ㅋㅋ
  • 십대의 불안증과 우울증 수준 증가 - 대학이 문제라기보다 이미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진단 일명 i 세대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한 사회적, 상업적 실험 속에 푹 담긴 채 인격 형성에 중요한 십대 시절을 보냈던 첫번째 세대'라는 점이 단서 이들은 어른의 감시 없이 보낸 시간과 오프라인 생활 경험이 과거의 그 어느 세대보다 적었던 시대라는 진단...  븍히 여자 아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취약하며 우울증도 남자아이들에 비해 급증, 어느 정도냐 하면 불안증으로 고충을 겪는다는 학생이 2016년이 되면 51%  한국도 과연 이럴까?
  • 양육 방식의 변화 - K 스타일의 입시교육 몰빵.. 특히 미국 중산층 엘리트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고, 그러니 미국의 명문대 입학생들에게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는
  • 자유놀이의 감소 - "사회적 상호작용이 성글어지면 이 세상은 더 많은 갈등과 폭력에 물드는 곳이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보다 다른 누군가의 강압에 의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가장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될 것이다" - 이 부분은 세넷이 '무질서의 효용'에서 극도로 강조했던 부분으로, 한국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
  • 캠퍼스 관료주의의 성장 - "대학생들이 극단적 좌파 성향이거나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라 학생을 소비자로 대하는 시장지향적 결정을 내리고, 학생들을 1년에 6만 달러 거금을 지불하고 수업과 각종 진미, 안락한 편의시설과 신나는 학교 생활을 즐기는 고격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고, 결국 이 관료주의라는 것은 책임회피의 정치...
  • 정의에 대한 고조된 열정 - 글쎄올시다?? 이건 마치 한국 학생운동의 이념과잉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싶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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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저자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바람이 불어오면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더 거세게 타오르는 횃불이 되도록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에는 깊이 공감...
허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하라. 그러면 상처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느끼지 말라. 그러면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ㅋ 뭐래, 원효대사 해골물이냐...

저자들은 1) 자기 힘으로 할 수있게 준비시킨다, 2) 감정적 추론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준다, 3) '우리 대 그들'을 넘어 사고하도록 가르친다, 4) 학교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같은 양육 방법을 안내하면서, 자신들의 전공답게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소개.


인지행동치료에서 말하는 왜곡된 자동사고 유형이란.. 1) 마음 읽기 2) 미래 점치기, 3) 재앙화, 4) 딱지 붙이기, 5) 긍정적인 면 깎아내리기, 6) 부정적 필터링, 7) 과도한 일반화, 8) 이분법적 사고, 9) 당위적 사고, 10) 자책, 11) 남 탓하기, 12) 불공평한 비교, 13) 후회 지향, 14_) 상황 가정, 15)  감정적 추론: 감정이 현실 해석을 이끌도록 내맡기는 것, 16) 부당성 증명을 못 받아들임, 17) 판단 위주 사고


내 주변에도 이런 종류의 인지왜곡 대장들 몇 명 있고, 트위터 세상에는 한 백만 명 있는 것 갈음 ㅋㅋ   이것이 과연 사회적 수준의 대응으로 적합할지는 의문이지만, 이들이 이러한 인지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개선될 것임은 분명해 보임 ㅋ

아우.. 누구 이 책좀 읽고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캠페인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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