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NeoPool -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명교 - 온몸으로 저항을 선언하는 삶
몽롱일기 - 김예슬의 뉴타입 정신과 소심함
요그 - 이른바 대학 보이코트에 대하여
사회의 다른 만물이 그러하듯이 만물은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대학도 그런 편인데, 자유로운 사상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라는 근본없는 관념에 부합하게 대학이 존재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가령 신학으로 유명했던 파리대학이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는 당연하게도 당시 봉건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카톨릭 교리 연구였고, 볼로냐의 법학 대학에서 생산되는 이데올로기는 역시 봉건법이나 혹은 당시 성장하던 도시의 부르주아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오늘날 대학이 사무직 노동자 혹은 관료나 자본가를 배출하는 공장이었듯이 당시의 대학에서는 의사나 법관, 신학자 혹은 한량들을 배출하는 공장...이라기보단 공방이란 느낌이랄까. 뭐 지금이야 대학을 안나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부모나 교사들이 생난리를 치지만 뭐 그때는 대학을 안나와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졸업장을 대량 인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그때 유명한 사람치고 대학 나온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이택광 - 대학은 공장이다
<가디언>에 기고한 조내선 월프 교수(UCL)의 지적처럼, 미들섹스대학 같은 신생대학이 경영난을 이유로 철학과나 기타 ‘장사’가 되지 않는 인문학전공 학과들의 문을 닫는 일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들을 영국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했던 맨체스터대학의 고전학과가 없어진 것이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문화연구의 산실 버밍엄대학의 문화연구학과가 사라진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의 도입 이후 영국대학에 불어 닥친 변화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미들섹스대학의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나는 “이런 풍경은 너무도 한국에서 익숙하다. 이것은 미들섹스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다”고 부기했다. 영국의 교육부장관이 한국의 대학을 본받자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솔선수범해서 ‘반인문학적 경영’을 펼쳐왔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중앙대의 문과대학 개편도 이런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려는 바깥의 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이미 있는 것이라는 역설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언론>
프레시안,
반대파들에겐 '내가 내 살 길 찾겠다.'는 간결하고 명확한 행동 지침이 있는 반면 지지파들은 이 학생에게 공감과 응원을 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한다. 스펙 프레임 외에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취업과 시험 성공 외에 어떤 목표를 설정해야 할지 정답을 내놓기 힘들다. 저항의 연대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이 자퇴 선언에 대한 날선 비난이나 자조적 공감을 보다보면 이 시대 20대들의 상처가 읽힌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고, 사회도 말해주지 않고 스스로도 위로하기 힘들다. 20대가 꿈을 정하고 제도권 안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무도 그걸 탓하진 않는다. 그러나 남의 꿈을 비웃고 하나의 틀로 상대방을 낙인찍는 행위는 언제나 추하다.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가방끈이 길어야, 열심히 공부한자가 승자가 된다’는 생각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아서 취업 못했다’와 ‘청년실업의 책임이 노력하지 않는 개인에게 있다’는 말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명백하게도 청년실업의 원인은 지금의 ‘고용 없는 성장(회복)’으로 표현되는 경제위기에 있는 것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대학기업화의 효과로 개개인의 만족감은 상승했을지라도 청년실업의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이미 중앙대 학내언론 탄압과 새터(새내기OT) 탄압, 숙명여대 학생 사찰문건 발견, 성신여대 학교본부의 학생회 불인정 등 최근 들어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악해지고 치졸해지고 있다. 대학기업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기업의 운영방식, 지배구조와 흡사하게 대학을 운영하는데 있다. 기업 마인드로 대학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대학의 목적에 비춰볼 때 불필요하거나 위배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특히 여기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학생, 교수, 교직원에 대해서는 ‘대학명예 훼손’, ‘대학발전 방해세력’ 등의 딱지를 붙이며 탄압하고 있다.......
......호세대(法政大)에서는 06년 3월 이래 3년 반 동안 112명 체포, 33명 기소되었고, 학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건조물침입’, 당국에 항의하면 ‘위력업무방해’를 적용하며, 심지어는 교직원을 동원해 폭행,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학내에는 감시카메라가 150개, 선전물 부착 및 유인물 배포도 금지하고, 학내의 연설과 토론은 ‘평온한 학내환경의 침해’로 간주하여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가 10년 후 한국 대학의 모습이라고 어찌 예상하지 못할 것인가.......
한국의 지배계급은 대학 교육에 ‘시장’을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기업을 대학에 끌어들이고 대학의 돈벌이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국제경영개발원(IMD) 같은 기관도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결정짓는 주요 지표로 바로 “사회수요 부응”과 “발전기금” 같은 것들을 든다.
정부는 대학 평가에 산학협동 실적을 포함시키는 등으로 기업을 대학에 끌어들였다.
대학들은 산학협력단을 설치했고 각종 기업 연구소가 대학 안으로 들어왔다. 특정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을 위해 성균관대학교의 휴대폰학과 같은 ‘계약학과’도 생겼다.
학사과정도 기업의 필요에 맞게 개편됐다. 상대평가제가 확대되는 등 졸업 요건이 강화되거나 한문학과 같은 데까지 영어 강의가 도입됐다. 최근 중앙대학교에서는 ‘회계’가 필수과목이 됐다.
마찬가지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들은 앞다퉈 적립금을 쌓고 기부금 모금에 나섰다. 2007년 기준으로, 목적도 불분명한 채로 쌓아 둔 이월적립금이 7조 원에 이른다. 교육부는 이에 발맞춰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했다.
최근 대학들은 기술지주회사나 ‘학교 기업’을 설립해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과 상품ㆍ서비스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기업 사업금지’ 업종을 1백2개에서 19개로 대폭 줄여 줬다.
정부는 산학협동과 대학의 돈벌이를 부추기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떠넘겼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은 모두 교육예산 확대를 공약했지만, 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비율은 좀체 늘지 않았다. 2009년 기준, 한국은 0.6퍼센트로 OECD 평균 1.1퍼센트의 절반 수준이다.
국립대도 법인화가 추진됐다.
한 고려대 학생이 대학 자퇴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나는 그가 반전운동에서, 촛불항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용산 투쟁에서 나와 함께 분노하고 싸운 김예슬 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연아와 김예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경쟁'이 아닌가 싶다. 한쪽은 세계챔피언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1등 인간'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미디어시대 자본주의사회의 '초극강 상품'이다. 그래서 그 대학이 모셔갔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거대한 자본의 탑에서 돌멩이에 불과한 인간이다. 그 끝없는 경쟁의 트랙을 질주하다가 결국 방황하는 젊은이다.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한 그가 택한 것은 자퇴였다. 이렇듯 완벽하게 대비되는 두 젊은이가 '고려대'라는 공간 안에서 뒤범벅이 되어 존재한다.
'김예슬 선언'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던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그 반응들은 천차만별이었지. 김예슬 씨를 향해 되지도 않을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는 자도 있었지. 사실 그들은 대단히 많은 말들을 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예의 그 '집요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을 따름이야.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단계들을 선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선택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어 있는 것만 같다
-조용히 그만둘 수도 있었는데 대자보를 붙이고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이유는.
너무나 약해서였다. 다시 비겁해질까봐, 다시 받아달라고 학교 문을 들어설까봐.
대안 대학은 구체적인 상을 이거다라고 제시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알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문예창작과를 가지 않고도 시를 쓸 수 있고, 미대를 안 가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편리를 위해 개성이 무시되는 걸 인정해선 안 된다.”
<제2 김예슬? 채상원씨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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