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민

from 숙제들 2006/05/2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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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가 있었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누군가 작품을 발표하면 토론도 하고

이런 저런 책들을 매주 읽어와서 의견도 나누던

그런 동아리가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대부분

나라와 민족을 지나치게 사랑하시는 분들이었고

그 동아리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지녔기에

경직되어 있다, 그래서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아리가 좋았다

그래서 동아리를 떠난 다음에도

밤샘을 며칠씩 해 녹초가 된 상태로도, 택시비가 없는 늦은 밤이라고 해도

그 동아리의 누군가가 불러내면 얼른 나가서 어깨를 비비곤 했다

 

그랬는데

거기에 발을 딱 끊게 된 일이 생겼다

그 안에 있을때도 이런 저런 미심쩍은 일들이야 많았지만

결정적 계기는 월드컵이었다

선배들이...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애까지 안고...후배들을 모아서...

광화문에서 며칠씩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는 것과

그 후에도 오랫동안 그 날의 사진들을 돌려보며 흥겨워한다는 것과

'우리나라 많이 발전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을

많이 많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한 이후로는

입이 딱 벌어졌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이렇구나

 

우리가

그렇게

외롭게

가끔 면전에서 비웃음을 받고

가끔 주먹질도 당하면서 

싸우고 공부하고 집회에 나가 외쳤던 건

다 뭐지?

우리를 소외시켰던 대다수와

소외되어도 좋으니 할 말을 하자던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도대체 그 때 그들과 우리가 달랐던 건 뭐지?

 

나는 그 날부터 '우리'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날부터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다수에도 속하지 못하고

'우리'도 잃어버린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말도 글도 몸짓도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못한 사람은

어떤 말과 어떤 글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랐다

참 막막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월드컵이 온다

상황은 그 때보다 훨씬 심각해보인다

 

힘든 사람들의 고통은

그 때보다 더 다양하게 훨씬 깊어졌고

이 파급력 강하고 상품가치 높은 국제적인 축구잔치를

뭔가 그럴듯한 용도로 활용해보겠다는

정부와 언론과 소위 386들과 기업들의 의욕도

훨씬 강도가 높다

시민들의 대표가 아니라 (주)서울시의 CEO임이 명백한 그 분은

제깍 광장을 팔아넘겼고

붉은 악마들은 승리의 함성과 추억이 담긴 광장을 재벌에게 빼앗겼다

TV광고는 그 축제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21세기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건들이

애국과 감동과 축구공에 얼마나 연관되어있는지를 열심히 증명하느라 몹시 바쁘다

평택과 새만금과 비정규직과 엉터리 국가정책으로 인한 모든 문제들이

바야흐로 말끔하게 묻혀버릴 수 있는 황홀한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공감하기 힘든 '우리'로 부터 나를 분리하는

어떤 '예민'한 사람으로 혼자 침묵하고 싶지 않다

'예민한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우울해하지 않고, 억울해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신나게 판을 벌일만한 일 뭐 없을까

 

그 축제 시기만 되면 밥 먹을 데도 차 마실 데도 없고

집에 들어가도 함성의 파도가 그치질 않아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친구들은

며칠 절에나 갈까, 하고 한숨을 쉬고 있는데

뭔가를 하고 싶고, 또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또 다른 예민한' 사람들을 찾고 있다

 

가끔

'어떤 예민'은

모이고 모여서 의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2003년에 쓴 월드컵과 촛불시위에 관한 글

[뷰파인더로 본 촛불시위]

 

 

2006/05/23 07:24 2006/05/23 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