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7일(수) 저녁 6시
연세대 학술네트워크에서 추진했던 [돌속에갇힌말]상영회를
당일날 취소한 일이 있었다
관련글 - 상영회 무산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처음 이 영화를 상영할 때
서울지역의 경우 하루 전에, 혹은 몇 시간 전에 가서
미리 장비점검을 해보고
테잎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준비해가서 틀어봤는데
해가 두 번 바뀌고 나서 내가 너무 게을러졌다
상영 30분전에야 간신히 학교 앞에 도착해서
상영장에 갔을 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근데 이들이 준비해온 프로젝터에선 이상하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급히 다른 프로젝터를 빌려오고
그 강의실에 설치되어있는 비디오장비들을 다 동원해봤건만
화면이 나오지 않거나 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잡음이 심하거나...
왜 이럴까, 캐논잭으로 연결된 스피커에 문제가 있었을까...
영화를 트는 행사는 처음이어서 이 친구들은 나보다 더 당황했고
나는 기다리는 관객들 앞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음에 틉시다,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를 합시다
내가 담담한 척 차갑게 말했을 때
슬픈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던 한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상영회가 무산된 것은 결코 이 친구들 탓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토록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도 모르고
나는 그저 '또 상영한다니까', 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민망한 일이...
'저야말로 상영회 무산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꼭 다시 상영회를 하겠다고, 받으시라고 기어이 쥐어준 상영료를
거절하지도 못하고 옳다꾸나 받아와서는 이래 저래 써버렸는데
재상영을 추진하려던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하다
어제 무심코 네이버에서 '돌 속에 갇힌 말'로 검색을 해봤더니
한 카페에 위와 같은 글이 올라와있길래 뜨끔했다
그러고 보니 상영회 광고만 해놓고 후기도 안올렸네, 반성 좀 하자...
이제 87년 6월 항쟁을 기념하는 곳은 드물다
아주 번듯해보이는 큰 조직이나 상업매체에서 오히려 생색을 내곤한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들이 조금 새롭게, 조금 다른 시각으로
87년 당시의 민주화 운동을 조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상영회 말고도 강영회와 토론회를 비룻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도 궁금하고 다시 한번 그 친구들을 만나서 좀 더 자세한 소식을 듣고 싶다
다들, 별탈없이 잘 마무리했겠죠?
보고 싶어요
2. 6월 21일(수요일) 저녁 7시
한겨레신문 문화센터에서 [돌 속에 갇힌 말]을 상영했다
이마리오 감독이 강의하는 '다큐멘터리 제작학교' 수업 중에서
특강 형식으로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어째...요며칠 한겨레와 관련된 일이 계속 생겼네...흠...)
(1)번글에서 언급했듯이 몹시 게을러진 나는
30분전에 상영장에 도착해서 테스트는 이 감독에게 맡겨놓고
슬렁슬렁 복도에서 담배를 피면서 수강생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는데
문화센터 활동가 한 분이 와서 특강에 참여하면 강의료를 지불한다면서
인적 사항을 기록한 다음 봉투를 하나 건네주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런 고마울데가!
사전에 상영료를 받는다는 말을 듣지 못해서(했는데 내가 까묵었을수도...^^;;)
아무 생각없이 왔다가 하마트면 감동먹을 뻔 했다
(내가 요새...돈이 없긴 없나보다...돈만 보면 감동한다...T.T)
오기로 한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정도 늦게 영화를 틀었고
시작하는 장면을 보다가...밖에 나가 밥을 먹었다
(배고팠을 수강생들, 죄송...)
밥을 먹으면서 식당 텔레비젼을 흘낏 거렸고
살인사건을 재연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면서
낄낄,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겉으로는 아마도...담담해보였을지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그 영화를 낯선 사람들 앞에서 틀고
그 날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게 힘든 일이었다
여전히 힘, 들, 다
영화 홍보글에서 나는 가해자/피해자, 순응한자/저항한자 등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이야기를 슬쩍 내비쳤으나
나는 아직 '피해자'라는 의식을 극복하지 못했다
생존자, 라고 규정하기에는 낯간지러운 구석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힘들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관객이다보니
질문은 상당히 날카로웠고 이야기는 진지하게 흘러갔다
-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
- 시작과 끝 장면에서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유?
- 맨마지막 검은 화면에서 중얼거리는 건 무엇? 누구? 왜 그런 장면을 넣었나?
- 유시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좀 더 날카롭게 파고들지 않았던 이유?
- 인터뷰와 자료화면이 처음부터 저렇게 구성되도록 기획한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바뀐 것인가
- 왜 당신은 독립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나
- 제작지원을 받지 못했다던데 어떻게 제작비를 마련했나
- 제작기간은 얼마나? 그렇게 오랫동안 제작하게된 까닭은?
- 제작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 완성하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등 등
한 시간 정도 이야기가 계속되었는데 닫힌 공간에 있으면 숨이 막히기 때문에...
자리를 옮겨서 뒤풀이를 했고 밤11시경에 귀가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빠르게, 혹은 평화롭게 흘러가는데
내 안에 갇혀있는 '말'들은 87년 12월의 그 사건 말고도 많다
많고도 많다, 그래서 가끔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사라질 용기조차 없는 나는 꾸역꾸역 또
뭔가를 만들고 논쟁하고 쓰고 움직이면서
덜 힘든 쪽을 향해, 더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힘을 줘, 나도 힘을 내볼께
3. 지난 일요일(25일)과 어제(26일, 월요일)
씨네21에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SHOUT]의 촬영현장을 취재하고 갔다
취재기자가 한 사람, 사진 기자가 한 사람
향촌 철거대책위 건물로 같이 가서 사진도 찍고
향미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돌아갔다
씨네 21에서는 다음 다음주에 실을 예정으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현장에 대한 기사를 기획했으며
태준식 감독을 비롯한 감독 네 사람의 작업현장을 취재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난주에 푸른영상을 통해
'기자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나' 하는 연락을 받은 다음
모 기자와 처음 통화를 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나는 2004년에 장편을 하나 발표했을 뿐이고
그 작품은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지인들로부터도 지적을 많이 받았으며
잘 알려진 독립영화제작소에 소속된 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의 회원도 아니다
게다가 이번 작업도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지원공모에서 세 번이나 탈락할 만큼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이 기사화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에 그들이 그 곳에 나타났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음..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촬영을 할 때
출연하는 분들과 스텝들 외에
제3자가 옆에서 나를 지켜본 경험이 한번도 없다
다행히 일요일날 향촌에서는 벽화를 그리느라고 (관련글-재원의 제작일지)
부침개를 굽고 수박을 썰며 잔치분위기여서
가자마자 일단 막걸리를 한 잔 얻어마셨다
그러자...머리속이... 맹, 한 것이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W의 공연 때 공연장 밖에서 작품전시를 했던 윤희씨도 만나고
향미와 개미갬과 준하도 만나고
주민들과 아이들이 공부방 공사와 벽화작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급하게 카메라에 담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월요일에는 W 멤버 중에서 영화로 참여한 란희씨가
미디액트에서 편집을 하고 있다기에 우선 그곳에 가서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서 재밌는 이야기를 제법 풀어냈고
연수와 금례가 극작공부를 시작한 인천 민예총에 가서 촬영을 하고 왔다
기자들 덕분에 머뭇거리던 숙제(출연자 인터뷰)를 해결한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과연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늘 취재를 하는 사람이다가
입장이 바뀌어서 취재대상이 되었던 몇 번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사람이 드물었다
특히 [돌 속에 갇힌 말]이 방영취소되었을 때
인권하루소식을 통해 그 상황을 신속하고 차분하고 꼼꼼하게 작성했던
시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는...기사 아래 댓글을 통해서 수정해야할 부분을 지적하거나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서 잘못 전달된 내용에 대해 항의를 해야했다
그런 일은...지적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피곤하겠지만
지적을 해야만 하는 사람에게도 몹시 피곤하고 난처한 일이다
아무리 정중한 표현으로 지적을 한다고 해도
수정을 요구하는 말이기 때문에 서로 불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취재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취재하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테두리를 그어놓고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들은 이야기를
그 테두리에 맞게 재해석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글도 쓰고 비디오도 찍는다
남의 사적 공간에 함부로 들어가서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을 민폐를 끼쳐가며
'작품'을 한답시고 개기는 인간이다
나는 과연 제대로 일하고 있나
다른 누구를 비판하거나 지적할 자격이 있을까
멈칫,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작업, 정말 잘해야 한다
기사가 어떻게 나가느냐, 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의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방영하자'고 저희들이 먼저 연락해놓고
나중에 축구프로그램을 틀어야 한다고 슬쩍 미뤄버리는
어이없는 일도 안일어날테고
영화를 틀 때 마다 민망해서 자리를 피하는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젠장, 누가 취재하러 와준 덕분에
어깨만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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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한테, 기사꺼리 떨어졌나? 했더니.. 씨껍하더라구요. ㅋㅋ.. 어떤형태로든 긴 작업을 할때 적절한 자극은 정말 필요한거 같아요. 저도 그 기자랑 이야기하면서 어부데데한거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화끈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투쟁!!~ 입니다요..
저는 처음 만나자마자...'그 잡지가 독립영화에 관한 기사에 인색하던데...'라고 말해서 역시 시껍을...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