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감동, 영화

from 숙제들 2002/06/15 07:5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2-06-15


빨간눈사람 제작일기 게시판에서 경순의 글에 대한 답글

 

당시는 그 '월드컵' 기간이었다. 모든 방송사가 한국의 승전보에 열광해서 '감동의 드라마'를 쥐어짜는 바람에 우리같은 사람들은 짜증나서 텔레비젼을 켤 수가 없었다. 경순은 방송이 제조해내는 '애국심'과 '감동' 에 대해 열받은 나머지...자신이 만든 영화가 주는 감동도 본질적으로 저놈들이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고 회의하느라 역시 게시판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

 

자고 있길 바랬는데 역시 빨간경순은 깨어있을 수 밖에 없었구나
그렇다면 굳이 낮밤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요며칠 뉴스를 다시 녹화하고 있는데
어젠 정말 인내력과의 싸움에서 한계를 느꼈다
해도 너무 한다
방송 시스템 안에서 밥 벌어먹고 살던 나도 어쩌면
그 시스템을 내 몸에 이식해버렸을지 모른다
끝까지 밀어부쳐서 확 넘어가게 해놓고
뒤통수치는 그 시스템...
어제는 그래서 나도 못잤다

 

하지만 감동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본다
시스템이 배출하고 통제하는 감동이란 것과
당신들의 영화 <민들레>에서 느끼는 감동이란 것이
'만들어진 것'이란 점에선 본질적으로 같다고 해도
감동을 느낀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측면에선 다르지 않나

설거지하면서 보는 드라마와
돈주고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다른 것 이상으로
충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의도한 감동은 보는 이가 감지하면서도
(그들이 뭘 요구하는지-씁쓸하게 웃긴 애국심 고취인지 나발인지 잘 알면서도)
그 틀안에서 인식이 머물러버린다면
시스템 밖에서 의도한 감동은
의도한 자의 틀을 벗어나
한 인간의 일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적극적인 (관객의) 감동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단 한사람 만이라도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이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그 감동의 속임수까지도 끌어안겠다
이런 내 생각은 단지 당신들의 영화, 혹은
지금까지 내가 본 독립영화들의 '만들어진 감동'에
아직도 속고 있기 때문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2/06/15 07:58 2002/06/15 0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