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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타임] [뉴스따라잡기] ‘생계형 절도’ 안타까운 사연 2007-03-09


 

[8분 2초]  http://news.kbs.co.kr/news.php?id=1314085&kind=c


<앵커 멘트>

얼마전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자전거를 훔친 아버지의 사연, 뉴스를 통해 들으셨는데요.

갈수록 각박해지고, 또 궁핍해지는 삶 속에서 이같은 생계형 절도가 최근 부쩍 늘고 있습니다.

엄연한 범죄이고, 또 처벌을 받아야 하는게 마땅하지만 그 사연을 들어보면 딱합니다.

정홍규 기자, 생계형 절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사정, 어느 정도인가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취재진이 만나본 생계형 절도범들은 대부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 창 먹고 싶은 게 많은 어린 아이들을 잘 먹이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한 아버지, 부인과 아들의 병수발로 정작 자신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온 60대 가장. 그들이 훔친 물건은 단돈 1, 2만 원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절도범이 된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주변의 자전거 보관대입니다. 지난 7일 새벽, 43살 강 모씨는 이곳에 주차돼 있던 자전거 석대를 훔쳤습니다.

<인터뷰> 강00: “앞바퀴 (공기가) 빠져있고, 뒷바퀴도 빠져 있어서 ‘이거는 고물가치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애들 과자라도 사 준다던가 초콜릿을 사 준다던가 이렇게 하려고...”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기 위해 강 씨는 오가며 보았던 이곳 자전거를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쇠톱으로 묶여있는 자전거의 자물쇠 줄까지 잘랐지만, 강 씨의 눈에는 그저 주인 없이 버려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남들이 2년, 3년 방치해 둔 거라고 판단이 되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그래서 갖다가 팔면은 단돈 천 5백 원, 2천원이라도 받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본 행인의 신고로, 강 씨는 절도범으로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엄연히 주인 있는 물건을 훔쳤기 때문인데요.

<인터뷰> 양동희(서울 장안지구대): “(자전거가) 정확히 묶여 있고, 묶여 있는 것을 쇠톱으로 잘랐고... 소유자가 보관이란 차원에서 해 놓은 건데, 그거를 끊어간 거는 고물이라고 방치해서 가져갔다고는 볼 수 없고...”

다세대 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초등생 남매를 혼자 키우며 살고 있는 강씨. 지난 2000년 뺑소니 사고를 당한 뒤, 장애5급 판정을 받은 강 씨는 그동안 일도 못하고 병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진 빚이 5천여 만 원. 아내마저 집을 나가면서 강 씨는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왔습니다.

<인터뷰> 강00: “제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굉장히 돈에 쪼들리고 그랬는데, 아이들이 아팠어요. 감기가 심하게 들어가지고, 토하고 해서 좀 돈이 많이 들고 그랬어요. 마음이 괴로웠지요. 아이들이 아프고 하니까...”

월 80만 원 정도의 정부보조금과 3만원의 장애수당으로 월세와 난방비를 내고나면, 세 가족의 식비와 생활비로 남는 돈은 겨우 30여 만 원.

몸도 성치 않아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다 보니 살림은 빠듯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림에 보태려고 시작한 폐품수집도 벌이가 시원치는 않아보였는데요.

<인터뷰> 강00: “하루 벌면, 잘 벌면 2천원, 3천원. 잠자기 전에 한 바퀴 돌고요, 아침에 새벽에 한 바퀴 돌고,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돌아요.”

한 창 먹고 싶은 게 많은 어린 자식들을 마음껏 못 먹이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강씨, 결국 팔아봤자 만원도 안 될 자전거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인터뷰> 강00: “햄, 햄 사주고 싶어서 그랬다고요. 부대찌개. 그거를 좀 맛있게 해서 주고 싶더라고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생계형범죄를 저지른 일은 또 있었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봉천동의 재개발 주택가.

이곳에서 건축폐자재를 수거하던 김 씨도 절도범으로 몰렸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 “아들하고 아버지랑 둘이서 이사 가고 빈집이라 고물인줄 알고 떼어가려고 했다 버린 건 줄 알고 떼어가다가 조합장한테 들킨 거죠.”

이른 새벽, 김 씨 부자가 담장도 없는 빈집에서 수거하려던 것은 겨우 문짝 2개. 하지만, 이 지역 조합에서 이미 전문고물상에게 돈을 받고, 고철을 떼어갈 것을 허락한 상태였던 겁니다.

<인터뷰> 이한기(서울 관악경찰서): “주인 허락 없이 (고철을) 가지고 가려 했던 거는 절도라고 봐야 되고 원칙적으로는. 그 가치가 고물상에 팔면 문짝 2개가 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으려나...”

김 씨와 함께 한 둘째 아들이 쓴 진술서입니다. 아들은 단지, 60세가 넘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려 했을 뿐 이것이 범죄가 될 줄 몰랐다고 했는데요, 경찰조사에서 이 가족의 딱한 사연이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이한기(서울 관악경찰서): “부인은 대장암 말기 수술을 해서 병중에 있고, 장남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고, 차남은 대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휴학 중인데...”

취재진이 찾은 김 씨의 집. 저녁 늦은 시간까지 김 씨는 폐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종류대로 분류하고, 모아서 버는 수입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00: “오늘 5천 5백 원 (가져다) 팔았고, 거기서 주워서 현찰로 받은 거 3천 원, 2천 원해서 한 1만 7천원 했어요.”

전에는 30년 넘게 시계장사를 하며 화목하게 살아온 가족. 하지만, 지난 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 한파에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 후 10년째 김 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물을 모아, 팔아왔습니다.

<인터뷰> 김00: "수입이 창피해요. 안 놀고 (하루에) 2만원. 3만원이고. (폐품) 분리하는 것을 배웠어요. 쓰레기하고, 돈 되는 거. IMF 후로 그래서 한 달에 6십만 원도 벌까말까..."

혼자서는 간단한 생활도 못하는 뇌성마비 큰아들 뒷바라지도 김 씨의 몫입니다. 4년 전 아내마저 대장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둘째 아들도 휴학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절도를 시킨 꼴이 돼버린 김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는데요.

<인터뷰> 김00: "세상에 도둑질하려고 자식 데리고 가서 도둑질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일이라고 가서 아빠 좀 도와주다가. 자기 명예도 그렇고.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아들한테) 참 미안하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김 씨의 누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김 씨가 한 일을 범죄라고 하는 현실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김 씨 누나: “사는 것이 너무너무 안됐죠. 그 집 헐린데 가서 무엇을 주었다면서요. 그거 쓰레기라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 절도범이라고 한 사람들이 나쁘지.. 가슴이 너무 아프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겨우 몇 만원의 물건을 훔치다 범죄자로 내몰린 아버지들, 소득 2만 불 시대를 앞둔 우리사회 한쪽 그늘에서는 이같이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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