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촛불상소"를 불편해 하는 마음을 불편해 함

‘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왕의 남자>가 보여준 시대정신…“너무 너무 불편하다” 

 

일주일 전 쯤인가, 레디앙(redian.org)에서 위의 제목과 부제로 시작하고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하다"로 끝나는 정성일의 글을 보고 약간 불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해야 했던 이유의 근거로 삼았던 논리가, 그리고 그의 글이 보여준 시대정신이 영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왕의 남자>라는, new york times에서도 그에 관해 큼지막하게 기사가 실리기도 했던, 영화를 보고난 후의 느낌을 담은 글이었는데.. 난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또 정성일이 그 영화와 닮아있다 말했던 "음란서생"도 보지 않았으니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정성일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해했던 이유나 그 근거로 제시했던 논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아래에 원래 글 복사함)

 

그니까 정성일이 불편했던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이런 거다: [<왕의 남자>를 보고 나니까,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읽혔던 <음란서생>을 보고 나니까] 왕정이었던 옛날이나 선거 민주주의를 갖춘 오늘날이나 -그것이 왕이건 대통령이건- 결국 국가의 수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변덕스럽게 행사하고 있다는 발견이 있었고, 생각해보니 옛날 궁궐앞에 모여 상소를 하던 유생 혹은 억울함 하소연하던 신문고나 오늘날 청와대 앞에 촛불들고 시위하는 거나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정작 달라진 것 없어보이는 허망함.. 일인시위나 촛불시위라는 형식과 그 속에 내재한 어떤 논리.. 결국은 왕이나 대통령에게 하소연 혹은 떼쓰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이게 거리에서 꽃병이 난무하던 시절과 대비되고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여기까지는 나도 고개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무수한 민주주의의 담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보이는 현실 정치의 허망함.. 꽃병으로 상징되던 어떤 전투성이나 혁명적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느끼는 무력감.. 나도 다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 결국 -그것이 백성이든 시민이든- 민초들의 저항을 "전근대적 믿음"의 결과로 치부하는 데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성일에게 있어 현재의 허망함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백성에서 시민으로 마땅히 전화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음에서 그 근거가 찾아진다. 하여 백성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근대의 시대에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을 향해 떼쓰고 있는 것이고 이 사실이 정성일을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여, 제목을 통해 그는 묻는다: ‘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간단히 얘기해 나는 그의 불편함에는 동의하나 그가 불편한 근거를 찾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백성 vs 시민, 혹은 전근대 vs 근대라는 그의 이분법적인 인식틀. 사실 소위 "진보"니 "좌파"니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이분법이 이미 하나의 전제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니 정성일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이분법적 논리가 근거하고 있는 인식론이 무엇이며 그게 귀결되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고가 근대화론에 기대고 있다는 건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차대전 후 등장해 80년대까지 전세계 사회과학계를 주름잡았던 패러다임, 그리고 그후로 지금까지 일국 혹은 국가간 정책을 잡는데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정책 패러다임인 근대화론.. 이 근대화론의 핵심이 바로 "전근대 vs 근대"라는 이분법과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진화론적 논리에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 다 안다.

 

개념적으로야 명료해보이지만 개념적 명료함이 곧바로 현실 적용력과 곧바로 등치되는 것은 아닌데.. 이게 바로 정성일이 발견해낸 과거와 현재 간의 연속성의 측면. 아니, 정성일의 이 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 어디를 보든 개념에서처럼 명료하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했던 곳은 없다. 되려 이 근대화론이 힘을 발휘했던 건 분석적 개념틀로서 보다는 정책노선에서였는데, 혹시나 박정희의 근대화론을 떠올렸다면 대략 제대로 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근대화론의 저변에는 비록 "전근대"의 형태는 다 달라도 결국 "근대"로 이행하게 되는 과정에서 동질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하여 경제발전하고 민주주의 제도 도입하고 그러면 모든 나라들이 다 비슷해질 것이고 결국 세계평화도 오게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환상. 그 환상을 대표하는 가장 최근의 예가 바로 부시가 일으켰던 대이라크 전쟁: 지가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못된다면, 우리(미국)가 억지로라도 민주주의 제도 심어주고 그러면 걔네도 그담부턴 알아서 민주주의하게 되고 우리(미국)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이게 2000년대 근대화론이 정책에 적용되는 방식인 것이다.

 

물론 washington consensus와 imf 정책, 또 wto가 대변하는 논리도 국가간 경계를 허물어 경제 메커니즘에서의 동질성을 찾음으로써 (즉, 각 나라들마다 가지고 있을 "전근대"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근대화"시킴으로써) 모두가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는 것이고. 그냥 한마디로 근대화론은 직접적 제국주의 통치의 시대가 가고 간접적/경제적 제국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에 가장 큰 자양분을 제공했던 이데올로기적 기초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이 워낙에 또 복잡하다 보니 어떤 특정한 역사적 시점이나 공간적 지점에선 근대화론의 주장이 진보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른 이데올로기나 정책들과 뒤섞이게도 되고.. 그러다보니 딴에는 스스로를 사회주의라 칭했던 국가들도 다 변형된 근대화론을 받아들이게 되고, 박정희가 근대화론을 주창하니 남한의 좌파들이 그를 지지하게도 되고..

 

제일 어이없었던 경우는 90년대 중반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민사회"와 관련된 논의였는데.. 결국 대부분 시민사회론자들(이들은 또 얼마나 자칭 진보적이었는가?)에 의해 한국 시민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하여 보다 근대적인, 보다 "시민적"인 것으로 변화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졌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논의 혹은 가정은 여기저기 충만하다.

 

전근대=극복되어야 할 어떤 상태=비민주주의=백성

근대=도달해야할 어떤 상태=민주주의=시민

 

문제는 여기서 "근대"가 표상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서구사회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포장한 것들에 다름 아니라는 것. 반대로 "전근대"가 표상하는 것은 서구사회가 비서구사회들을 부정적으로 포장한 것들에 다른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서구 사회를 최대한 모방하는 프로젝트라는 것. 그리고 어이없게도 수많은 자칭 "진보"나 "좌파"들이 그 지배의 이분법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물론, 그러는 데에 이유가 없을 리 없고, 그건 적어도 지금의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해나가는 데 어떤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그런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델 없이 현실의 방향타를 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모델에 대한 의존은 지금 현실운동이 가질 수 있는 변화의 잠재력을 갉아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따라가려고 하는 어떤 모델이 있다는 게 결국은 상상력을 제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실천이 최고로 발현되었던 사회혁명들.. 모든 위대한 혁명이 혁명이었던 이유는 어떤 모델에 의존치 않고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갔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91년 5월투쟁의 와중에 횡횡했던 권력대안 논쟁을 상기해보시라!)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전근대와 근대라는, 혹은 백성과 시민이라는 이분법에 우리의 사고를, 우리의 상상력을, 우리의 실천을 가두어두려 하고 있다.

 

정성일의 글로 다시 돌아가보자: 오늘날 시민의 탈을 쓴 백성들은 "촛불 상소"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래서 대안은 무엇인가? 백성이 아니라, 진정한 시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정성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 꽃병을 던지던 시절을 그가 향수하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꽃병 던지며 싸우는 행위는 "시민적"인 것인가? 아닐 걸?

 

도대체 왜 백성과 시민이라는, 전근대와 근대라는 상상력 속에 현실의 움직임들을 가두려 할까? 차라리 (체제)도전적 vs. (체제)순응적.. 머 이런 이분법이 낫지 않을까? 아니면 차라리 혁명적 vs. 반동적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대립구도를 쓰던지..

 

지금의 어떤 운동도 혁명적이라 하기엔 너무 무력하다 여긴다면.. 일세기전 지금의 운동역량보다도 더 약한 세력을 이끌며 그들을 "혁명적" 세력이라 칭했던 레닌을 떠올려보면 안될까? 그런 상상력, 그리고 그런 상상력에 부응하는 현실분석과 실천력이 있었기 때문에 소수 볼세비키가 다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너무나 많은 좌파들은 스스로를 카우츠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훗.. 하긴.. 카우츠키 정도라도 되면.. 카우츠키는 그래도 열심히 정치활동이라도 했었는 걸.. (근데 이런 소리한다고 난 또 얼마나 바보 소리 듣게 될까?)

 

다른 거 다 떠나 난 그냥 정성일처럼 불편해하는 사람들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덜 불편할 것 같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한사람 한사람 일단 자기가 불편해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분명해야 할 것이다. 그냥 어영부영 불편해하고 향수에 젖고 그러는 거.. 그보다 더 슬픈 건 없다. 일단 여기서부터 제대로 출발점 찾을 수 있다면, 다른 건 그 담의 문제다. 

 

 

 

------------------------------------

‘촛불 상소’하는 그대 백성인가 시민인가 
<왕의 남자>가 보여준 시대정신…“너무 너무 불편하다” 
 
 
대한민국 인구는 4,750만이(라고 한)다. 물론 남한만이다. 그런데 단 한 편의 영화를 1,100만 명이 본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을 넘어서서 기괴한 사건이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왕의 남자> 이야기이다. <왕의 남자>는 이 수치를 넘어선 다음에도 여전히 상영 중이다. 역대 기록 중 <태극기 휘날리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수치에서 당연히 아마도 이 영화를 보러갈 리 없는 어린이들을 빼야 한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 분들도 제외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아도 네 명 중의 한 사람은 보았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관객 수는 3년 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숫자보다 더 많다.

 

노무현 후보 지지자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여기서는 <왕의 남자>를 비평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글이 쓰여 졌고, 또 이 영화의 성공에 대해서 많은 분석이 나와 있다. 게다가 이미 끝나가고 있는 이 영화에 관해서 비평을 쓰는 것은 ‘뒷북’의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왕의 남자>의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의 시사가 끝났을 때 이른바 ‘충무로의 선수’들은 뭐, 다소 성공이야 하겠지만 큰 성공을 거두기야 하겠느냐, 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일종의 동성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게이 시네마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 누가 사극을 보냐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고증이 거의 되지 않았다) 또한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잡히지 않은 불분명한 스토리 라인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도대체 연산군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 혹은 내시감이 왜 끝까지 연산군과 흥망성쇠를 같이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충무로 선수’들은 왜 시큰둥했나

 

여기에 스타 한 명 없는 캐스팅도 큰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공을 하고나니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장점으로 둔갑하였다. ‘여자보다 예쁜’ 남자 이준기는 십대 야오이 만화 팬들을 끌어들였으며, 식상한 코미디의 홍수 속에서 사극은 경쟁력이 있었으며, 각자 취향에 맞는 주인공을 각자 선택할 수 있는 멀티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유명한 스타가 없는 편이 호기심을 유발하고 새로운 기대를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 편의 영화가 성공하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분석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왕의 남자>는 영화적으로 그저 그렇다. 거기에 무슨 굉장한 테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대단한 것도 아니며, 미학적으로 논쟁적인 것도 아니다. ‘왕의 남자’ 이준기가 예쁘긴 하지만 그 얼굴을 보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양귀비의 미모는 아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인구 네 명 중의 한명, 혹은 천만 명이 넘게 보았을 때 그 영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건 단순히 공감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무언가 맹렬하게 설명을 요구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거기에 있다. 너무 과장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영화 속에 담겨진 시대정신

 

이것은 작은 성공이 아니다. 작기는커녕 무시하기에 너무 큰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지금 관객들은 누구의 요구로 동원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 누가 이 관객을 ‘홀린 듯이’ 동원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 미스테리를 안고서 겨울이 끝날 즈음 또 한편의 사극을 보게 되었다. <음란서생>은 조선시대를 무대로 남몰래 ‘야설’을 쓰는 사대부 집안의 명문(名文)으로 명망 높은 문장가 윤서의 이야기이다. 사실 한 시즌에 사극영화 두 편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넘쳐나는 사극과 달리 영화에서 사극을 보기란 좀체 힘든 일이다.

 

그건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물론 돈의 문제이고(사극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 다른 하나는 한국영화관객의 주류인 20대 관객들에게 사극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두 편의 사극영화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음란서생>에 대해서도 나는 세세한 영화평을 피할 생각이다. <왕의 남자>와 <음란 서생> 두 편의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란서생>과 이상하게 닮은 점

 

사실 두 편의 영화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두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사람이 시나리오를 썼고, 그런 다음 전혀 다른 사람이 연출했으며, 전혀 다른 투자사로부터 돈을 받았고, 전혀 다른 영화사에서 만들었다. 두 영화가 조선시대를 무대로 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아무 상관도 없는 두 영화가 임금을 다룰 때 이상하게도 그 인물의 성격이 겹친다는 것이다. 두 편은 동일한 임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남자>는 구체적으로 연산군을 지적하고 있고, <음란서생>은 다만 조선시대라는 것 말고는 사색당파로 나뉘어 당쟁을 일삼던 조선시대 후기라는 정도의 배경만을 보여줄 뿐이다.

 

연산군이 조선시대의 임금 중에서 가장 폭군이라는 사실은 온갖 드라마에서 보여주었고(그러나 그것이 역사적으로 정말 가장 폭군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음란서생>의 임금은 이상할 정도로 연산군과 닮아있다. 그래서 <음란서생>을 보고 난 다음 마치 <왕의 남자>와 동일한 왕정을 다룬 영화라는 착시현상마저 들었다.

 

둘 다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둘 다 여자에게 몰두하고 있으며, 둘 다 (그 관계는 다르지만) 삼각관계에 빠져 패배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조선시대에 폭군만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두 영화에서 임금은 반쯤 미친 상태이다. 혹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미친 임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임금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다. 말하자면 임금은 이야기의 매개자이다.

 

변덕스런 권력, ‘코드’ 불일치, 그리고 가짜 눈물

 

그런데 그 매개자가 절대적인 권력으로 이 모든 운명을 관장한다. 권력이 반 쯤 미쳤을 때, 그가 자신의 권력을 내키는 대로 사용할 때,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달리고 관객들은 주인공의 운명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눈물은 가짜 눈물이다. 왜냐하면 이 눈물을 끌어내는 비극은 세상의 절대적인 운명에 대해서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권력과 코드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데서 오는 좌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상황은 그것을 통과해야하는 자들에게는 비극이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희극이어야 한다. 마치 할리우드의 엎치락 뒷치락 코미디들이 그걸 감당해야하는 주인공들에게는 끔찍한 비극이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희극이 비극으로 둔갑한 이유가 무엇일까? 더더구나 지금 (흥행지표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사랑하는 장르는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가 대세이다. 이를테면 한 해의 흥행결과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 코미디 영화들. 혹은 <왕의 남자>에 살짝 가려서 보이지 않은 <투사부일체>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공. 지난해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가문의 위기>의 성공.

 

<왕의 남자>가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 시대 ‘무엇’

 

내가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사극이라거나 혹은 임금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이 두 편의 영화의 절정은 끔찍하게도 고문이다.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에는 이상하게도 임금의 지시에 의한 고문이라는 개입이 비극을 고조시킨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 장생의 양쪽 눈을 인두로 지져서 장님을 만든 다음에야 일시적으로 고통을 중단한다.

 

<음란서생>에서는 당대의 명문가이자 장안의 ‘야설’ 작가인 윤서의 두 다리를 부러트릴 만큼 고문을 가한 다음에야 비로소 멈춘다. 둘 다 임금이 직접 개입하고, 그가 지시를 내리고, 그것을 지켜본다.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어떤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니다.

 

임금은 이 이야기에 고문의 형식으로 개입한다. 같은 말이지만 이야기가 비극이 된 까닭은 이 고문의 과정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고문의 자리에 가서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는 쪽의 자발적 수동성(나는 지금 능동성을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대중문화와 대중들 사이의 관계가 즐거움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아무리 끔찍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괴롭기 위해서 자기 발로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없다. 이상하고 잔인한 말이지만 그 괴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진실이다. 이걸 그저 단순하게 마조히스트적인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것도 매우 용의주도한 즐거움이다. 여기서 이 즐거움이 항상 동시대의 일상생활에서 오는 결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모든 영화는 동시대의 관객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자기 시대의 노골적인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자기 시대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들을 물고 늘어질 때 구경꾼들은 진부하고 따분하다고 느낀다.

 

우리 시대 언어로 다시 번역을 해야 한다

 

구경꾼들은 거기서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어야 영화와 자신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얻는다. 그 어떤 잉여.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이라는 일상생활 안에서 통과에 실패하고 무언가 망설이고 있는, 무언가 버티고 있는, 무언가 불편한, 무언가 억압당하고 있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침묵 당하고 있는, 무언가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무언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걸고넘어지면서 그 아픔에 울거나 혹은 그 아픔을 보고 웃는다.

 

카타르시스? 그건 고작 두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훔쳐내기에는 너무 엄청난 단어이다. 영화에서 감정은 그렇게 만족스럽게 배설되지 않는다. 차라리 여기에는 무언가 문제가 다루어졌다는 상상적 교란이 있다. 사실 영화에서 현실 속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해서 실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착각에 빠진다.

 

그때 거기에 정서적으로 나는 어느 자리에 가야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울 것인가, 웃을 것인가.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을 끌어안는 정서는 동시대의 잉여라는 것이다. 일상생활 안의 대중문화, 그것이 끌어당기는 지금 여기의 세상과의 관계.

 

아무리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이 조선시대를 무대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성공은 2005년 겨울, 혹은 2006년 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대중들의 감흥, 혹은 그 이야기에 대한 호응이라는 것이다. 대중영화와 일상생활 사이에 있는 어떤 순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다시 번역해야만 한다.

 

요즘 마키아벨리는 왜 그렇게 많이 출판될까

 

약간 시선을 돌려보자. 지금 갑작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왕실에 대한 관심은 별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아직도 왕조시대를 살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의 텔레비전 드라마 <궁>의 신기한 성공. 그런 다음 인터넷 웹 서점을 검색해보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이 전례 없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려 일곱 종. 물론 <군주론>에 집중된 글이 대부분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교양 이상의 전문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은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드문 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거의 지난해부터 일종의 붐이 불었다는 인상이 있을 정도로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이를테면 여기에는 ‘스타’ 철학자 들뢰즈가 불러일으킨 스피노자 유행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 (알튀세를 예외로 한다면) 마키아벨리를 끌어낸 글은 거의 만나보기 어렵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전문서적이 아니라 교양서적 수준으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무언가 군주가 문제가 된 것이다. 하나의 담론이 갑자기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들 때 그것은 헤게모니가 내세우는 알리바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일시적인 유행처럼 보이는 담론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그것이 일상생활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담론에 동의할 때, 그 의미보다도 그 맥락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군주’가 문제가 된 것이다

 

나는 대중문화 현상을 곧바로 사회의 반영이라고 단정 지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고 태연자약하게 무시하는 것은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중적 동의에는 그것을 설명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모든 대중적 성공은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거리에서 꽃병이 사라진 시대에, 오직 거리에서 일인시위만이 외롭게 계속되고 있는 시대에, 그 자리에 장동건이 서 있을 때에만 관심이 되는 시대에, 바로 그런 우리 시대의 정치적 투쟁이란 그 의미를 누가 먼저 ‘캐치’하느냐의 싸움이다.

 

나는 21세기 한국에서 살면서 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그건 촛불시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 앞에 모여서 청와대로 향한다. 백성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 청와대에 앉아있는 저 분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 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 곳으로 향한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가? 대통령은 임금님이 아니다. 그런데 왜 청와대에 앉아있는 저 사람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가? 상소문을 들고 종로에 앉아있는 유생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신문고. 당신은 백성인가, 시민인가?

 

나는 이 이상한 전근대적 믿음의 시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푸코의 말. 왕을 왕으로 만드는 것은 왕 자신이 아니라 그가 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일개 영화평론가에 지나지 않는 나는 당신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생활 안에서 살면서 <왕의 남자>의 기이한 성공과 그 뒤를 잇는 <음란서생>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불편하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