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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23
    [산문/도종환]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2)
    간장 오타맨...
  2. 2004/08/23
    [시/나희덕] 어린 것
    간장 오타맨...
  3. 2004/08/21
    [신영복/더불어숲] 마라톤 평원에서(2)
    간장 오타맨...
  4. 2004/08/20
    [산문/윤동주] 달을 쏘다
    간장 오타맨...
  5. 2004/08/19
    平等(평등)의 無等山(무등산)
    간장 오타맨...

[산문/조은재] 우리들의 어머니

  • 등록일
    2004/08/23 01:08
  • 수정일
    2004/08/23 01:08

시장 한쪽 구석에서 어머니들의 걸쭉한 이야기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영희 엄마는 대학에 들어간 막내딸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즐거워하고, 군대 간 아들에게 면회를 다녀온 철수 엄마는 아들이 늠름해졌다면서 흐뭇해 합니다.

순이 엄마는 새로 본 며느리가 아직도 가끔 밥을 태운다면서 빙그레 웃고, 준호 엄마는 큰아들이 첫 월급으로 사 주었다며 자식 자랑을 그칠 줄 모릅니다.

 

고추 훌렁 드러내놓고 물장구 친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미보다 훌쩍 켜서 제 앞가림은 물론 어미의 타는 속마음도 제법 읽을 줄 압니다.

아무리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도, 점점 사람구실을 하는 자식들을 지켜 보노라면 하나도 힘이 든 줄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편지 한 장 써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까 싸 주신 도시락이 셀 수 없이 많았어도 고맙다는 마음 한 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이야기" 행복한 도시락 중에서.....



이 글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참 저도 어머니에게 무심한 녀석이 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 겨울 감옥에 있는 아들 면회온다고 바리바리 음식 싸와 울고가신 어머니가 오늘 따라 사뭇 보고 싶습니다. 이 글 작자가 말한 것 같이 저도 고맙다는 말 한번 못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철이 들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우리 어머니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철부지 같은 저에게 무한 사랑을 배풀어준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번 못한게 천추의 한이 될 줄은 몰랐는데..... 늘 계시던 어미니가 떠난다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한 불효자의 불충이겠지요... 이 밤 이글을 보면서 그리운 어머니가 무지 보고 싶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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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

  • 등록일
    2004/08/23 00:46
  • 수정일
    2004/08/23 00:46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나가는 것은 어찌보면 쉬울수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알아나가는 것은 진실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열병에서 이별의 슬픔에 젖어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제일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당사자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대하고 그에게 얼마나 나를 보여주었는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랑은 어찌보면 허망할 수도 있습니다. 라디오를 켜고 새벽 음악을 들으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누군가의 편지를 들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간접 경험해 보고, 이별한 이의 고뇌에찬 사연 글에서는 슬픔을 읽어냅니다. 사랑과 이별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진실했는가 입니다. 

 

사랑의 과정에서 그 상대방에 대한 소유에 대한 욕망은 갈구하지 않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신영복 선생의 글을 빌어 말하자면....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 사견을 조심스럽게 밝혀봅니다.

 

도종환 선생의 산문집에 실린 글 하나 올려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데 욕심과 집착에 빠져 있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의로운 마음이 된다. 마음이 맑고 순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진짜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른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데도 마음이 탁해지고 악한 생각과 계산하는 마음에 빠져 있다면 자신의 사랑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면 마음이 착해지는데 착해지는 것에도 일곱가지가 있다고 한다.

 

"고난을 만나더라도 버리지 않고,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서로 도와주고,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고,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그것이라도 "사분율"에서는 말한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한 가지씩 물어보라.

 

서로 사랑하다가 고난을 만나더라도 고난 때문에 상대방을 버리지 않을 것인가. 고난을 함께 겪으며 헤쳐 나갈 자신이 있으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고 깨끗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려운 일을 늘 상의하는 사람, 그래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 늘 대화하고 생각이 서로 통하는 사이라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일로 서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이인가.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배려하는 사이인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는 사람인가.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위해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주기 어려운 것을 줄 수 있는가, 내가 가장 아끼던 것을 내 줄 수 있는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소중하기 때문에 주기 어려운 것까지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다면 그는 지금 사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는가. 내가 참고 있다면 상대방도 지금 참고 있는 것이라 한다. 참을 수 있는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지만 그를 위해서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다면 그는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보라,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해지는가를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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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희덕] 어린 것

  • 등록일
    2004/08/23 00:26
  • 수정일
    2004/08/23 00:26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 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온면

지금쯤 내 어린 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

 

시평

 

이 시는 페미니즘의 여러 유형 가운데 에코 페미니즘에 속한 시이다.

 

에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과 여성을 동일한 범주와 차원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즉, 남성 억압에 의한 여성의 수난을 인간 억압에 의한 자연의 수난과 동일시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사적 대상에 대한 모성적 측은지심이 체험적 진실에 힘입어 보편적 감동을 유발하고 있다.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를 바라보고 있는 시적 자아의 정서는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모성적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근원이다. 이 시에는 대상과 세계를 유용성과는 거리가 먼, 지고지순한 사랑과 연대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거룩한 삶의 태도가 들어있다.

 

어린 다람쥐를 보고 시인은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것이 돈다"라고 말하고 있다. 생명 지닌 것들에 대한 외경을 생활로 삼지 않으면 불가능한 시적 표현이다. 시인은 나아가 이 어린 다람쥐에게 자연스럽게 집에 두고 온 아이를 떠올린다.("지금쯤 내 어린것은/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시인은 오르던 산 길(삶, 인생)을 내려오고 마는 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저버린 욕망의 실현이란 모두가 부질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험적 진실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어린 다람쥐와 젖이 그리운 아이와 송사리떼는 여기서 동일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명의 존재라는 차원에서 그것들은 결코 장애를 겪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더 없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다.

                                                                                                             - 이재무 -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적적인 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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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더불어숲] 마라톤 평원에서

  • 등록일
    2004/08/21 21:40
  • 수정일
    2004/08/21 21:40

마라톤의 출발점은 유럽의 출발점입니다.


 이 엽서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평원에서 띄웁니다. 마라톤 평원은 아테네에서 정확히 36.75km거리에 있는 평원입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이곳은 페르시아전쟁의 현장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이하여 고립무원의 아테네 병사들이 절망적인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를 물리친 격전의 땅입니다.



나는 마라톤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올라 2천 5백년전의 광경을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비규환의 전장(戰場)은 보이지 않고 한 어린 병사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기적같은 승리를 전하기 위하여 평원을 달리는 병사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전쟁의 패배와, 패배에 뒤따를 파괴와 살육의 공포에 가슴조이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승전보를 전하기 위하여 잠시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는 아고라로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겼다."는 한마디를 외친 다음 어린 병사는 숨을 거둡니다.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경주가 이 병사를 기리기 위한 것임은 당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그가 출발하였던 곳에는 전사자를 추모하는 위령탑과 오륜마크가 새겨진 작은 성화대 가 세워져 있고 성화대와 나란히 마라톤 경주의 출발선이 대리석으로 땅에 새겨져 있습니 다. 나는 바로 그 출발선에 서 보았습니다. 벅찬 승전보를 가슴에 안고 달려나갔던 어린 병 사의 마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은 오늘날의 마라톤 경주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선수의 심정이 되어버립니다. 병사의 마음과 마라톤 경주선수의 마음은 참으로 엄 청난 차이가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 아득한 두 마음을 넘나들고 있는 나자신이 당황스럽기 까지 합니다.

 

이곳 마라톤 평원을 찾아 오면서 나는 많은 역사서가 지적하고 있는 지형상의 특징을 확인 해보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평원은 해안을 향하여 입을 대고 있는 주머니처 럼 입구는 좁고 안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원입니다. 6백척의 전함으로 마라톤만( )에 상륙한 페르시아 대군이 전열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갑자기 개미목처럼 좁아진 협곡에서 학 익진(鶴翼陣)을 펼치고 있던 아테네의 중장밀집(重裝密集) 창병(槍兵)의 돌격과 포위에 직면 하게 됩니다. 페르시아군이 자랑하는 대병력의 이점이 한순간에 무산되어버리는 전략상의 패인이 어렵지 않게 확인됩니다. 나는 마라톤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산위에서 당시의 광경을 애써 눈앞에 그려보았습니다만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 벌판을 달리는 어린 병사의 모습만 또렷이 떠오릅니다. 아테 네군의 결정적인 승인(勝因)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내려는 병사들의 결연한 용기 였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아마 어린 병사의 추억 때문에 갖게 되는 감상이기도 하겠지만 아테네군이 비록 병력에 있어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였지만 그들에게는 사활이 걸 린 전쟁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가 페르시아군에게는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이 마라톤 전투의 승리는 단지 아테네를 지킨 승리에 그치지 않고 당신의 말처럼 '유럽'을 만들어낸 승리입니다. 2천5백년의 장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 마라톤 평원은 그때의 단검조각하나 묻혀 있지 않은 한적한 벌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오늘의 유럽 이 유럽으로 보전될 수 있게 한 유럽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표시된 마 라톤 경주의 출발선은 그야말로 유럽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0년후인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해전에서 동양의 제국 페르시아의 서진(西進)이 다시 한번 저지됨으로써 비로소 유럽이 확고하게 그 땅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해전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의 맹주가 되어 페리클레스 의 황금기로 이어졌으며 이 찬란한 고대 그리스문명은 르네상스를 거쳐 유럽의 정신으로 자 리잡게 됩니다. 실로 유럽의 땅과 유럽의 정신이 탄생되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마라톤 평원을 떠나 다시 살라미스해협을 찾았습니다. 살라미스 해협도 마찬가지였습 니다. 연기와 불길로 뒤덮인 바다는 간 곳 없고 푸른 물결만 출렁이고 있습니다. 마라톤 전 투에 참가한 전사들이 그 갑옷과 무기를 스스로 마련하였던 것과는 달리 살라미스해전에서 는 무장(武裝)을 자변(自辨)할 능력이 없는 무산(無産)시민들도 저마다 노젓는 병사로 참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에 임하는 아 테네시민들의 의식이 그만큼 고양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일뿐 아니라 그만큼 고대 그리스 민 주주의의 기반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과연 어떠한 수준의 어떠한 내용을 갖는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 단 유럽의 시각을 떠나 논의되어야 할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세계가 승전과 환희로 이루 어진 아폴적 세계만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리스문화도 다른 많은 고대문화와 마찬가지로 식민지와 노예의 희생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는 아침 살라미스 해협의 아침 바닷물에 손을 씻으며 이 평화로운 풍경속에 그림처럼 앉아 있습니다. 아침안개 자욱한 포구에는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어깨너머로 먹이를 찾는 갈메기들이 한가롭기 그지 없습니다. 생각하면 전쟁의 승패(勝敗)는 물론이고 나라의 흥망 (興亡) 역시 역사의 흐름이라는 유장(悠長)한 세월에 실어 본다면 그것은 한 바탕 부질없는 춘몽(春夢)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찬란히 꽃피웠던 그리스의 황금기도 오래지 않아 '그리스 의 자살'이라는 30년간의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케도니아 의 젊은 왕에게 망하게 됩니다. 지금은 유럽의 나라들이 바야흐로 유럽연합(EU)이라는, 나라를 뛰어넘는 새로운 틀을 만들 어가고 있지만 금세기가 보여준 광기어린 전쟁과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는 종교적 반목과 민족적 쟁투에 생각이 미치면 국가라는 틀의 완고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 면 인류사가 이륙해온 문명은 개별국가의 흥망과는 상관없이 어어져오는 것인지도 모릅니 다. 나라가 없어진 것을 망(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없어진 것을 망이라 했던 고인(古人)의 역사관을 수긍한다면 국가란 문명을 담는 그릇이 못되고, 문명은 국가라는 그릇에 담 기에는 너무나 크고 장구한 실체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생각을 작은 그릇에 간수하고 있을뿐입니다. 먼 에게해의 물가에 앉아서 전쟁의 승패와 나라의 흥망과 문명의 유장함에 젖어보는 나자신 이 과연 하염없는 역사의 이방인 같이 느껴집니다. 절실할 것 하나 없는 이방인의 마음에도 문득 문득 솟구치는 감상이 있습니다. 마라톤 평원의 출발선에 섰을 때의 마음이 그것입니 다. 어린 병사가 숨을 거두며 외쳤던 한마디 말과, 올림픽 마라톤경주의 승리자가 결승점에 서 가슴으로 테이프를 끊으며 외치는 한 마디 말에 담긴 의미가 내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 습니다. '우리는 이겼다.'는 말과 '나는 이겼다.'말의 엄청난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말의 의미에 그처럼 몸서리치는 까닭은 아마 '나'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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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윤동주] 달을 쏘다

  • 등록일
    2004/08/20 10:30
  • 수정일
    2004/08/20 10:30
번거롭던 四園가 잠잠해지고 시계 소리가 또렷하다 보니 저윽이 깊을 대로 깊은 모양이다. 보던 책자를 책사머리에 밀어놓고 잠자리를 수습한 다음 잠옷을 걸치는 것이다. "딱" 스위치 소리와 하께 전등을 끄고 창녘의 침대에 드러 누우니 이때까지 밝은 휘양찬 달밤이었던 것을 감각치 못하였었다. 이것도 밝은 전들의 혜택이었을까.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슬픈 선창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 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얀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 폭의 목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 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 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뿐 벅쩍 고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한 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깊은 사념에 잠기우기 한창이다. 딴은 사랑스런 아가씨 所有할 수 있는 아름다운 想華도 좋고, 어린 적 미련을 두고 온 고향에의 향수도 좋거니와 그보다 손쉽게 표현 못할 심각한 그 무엇이 있다.

바다를 건너온 H군의 편지 사연을 곰곰 생각할수록 사람고 사람 사이의 감정이란 미묘한 것이다. 감상적인 그에게도 필연코 가을은 왔나보다.

편지는 너무나 지나치지 않았던가, 그중 한 토막, "군아, 나는 지금 울며울며 이 글을 쓴다. 이 밤도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인간인 까닭에 가을이란 흙냄새도 안다. 정의 눈물, 따뜻한 예술학도였던 정의 눈물도 이 밤이 마지막이다.

또 마지막 켠으로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은 나를 영원히 쫓아버리는 것이 경직할 것이오".
나는 이 글의 뉘앙스를 해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에게 아픈 소리 한마디 한 일이 없고 서러운 글 한 쪽 보낸 일이 없지 아니한가. 생각컨데 이 죄는 다만 가을에게 지워보낸 수 밖에 없다.

홍안서생으로 이런 단안을 내리는 것은 외람한 일이나 동무관 한낱 괴로운 존재요 우정이란 진정코 위때로운 잔에 떠놓은 물이다. 이 말을 하나 잃어버린다는 것이 살을 베어내는 아품이다.

나는 나를 정우너에서 발견하고 창을 넘어 나왔다는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는가 왜 나왔느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두뇌를 괴롭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귀뚜라미 울음에도 수줍어지는 코스모스 앞에 그윽히 서서 닥터 빌링스의 동상 그림자처럼 슬퍼지면 그만이다. 나는 이 마음을 아무에게나 전가시킬 심보는 없다. 옷깃을 민감이어서 달빛에도 싸늘히 추어지고 가을 이슬이란 선득선득하여서 설운 사나이의 눈물인 것이다. 발걸음은 몸뚱이를 옮겨 못가에 세워 줄 때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달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나니냐, 문득 하늘을 쳐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을..............

나는 곳곳한 나뭇가지를 고나 띠를 째서 줄을 매어 퓰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33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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