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 sera serahttp://blog.jinbo.net/kimpoo88/침착하고, 차분하게2018-03-12T08:15:15+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성격차지수에 대한 몇 가지 오해푸우http://blog.jinbo.net/kimpoo88/1182016-06-01T15:05:57+09:002015-11-20T10:57:07+09:00<p>1년 사이 여성주의 관련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WEF의 GGI(성격차지수) 관련 오해는 여전한 것 같다.</p>
<p> </p>
<p><u><strong>첫째,</strong></u> 역불평등, 즉 남성이 여성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이는 경우에, 성평등이 이루어진 경우보다 GGI가 더 높게 나온다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지난 글[<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4" rel="bookmark" title="성평등 관련 국제지수 분석 -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span style="color: rgb(0, 0, 255);"><span class="entry-title">성평등 관련 국제지수 분석 -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span></span></a>]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GGI는 역불평등이 일어나는 경우 값을 조정해서 역불평등이 GGI에 유리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한다. 한 번 자료를 직접 들여다 보자. 모든 인용은 2014년 성격차 보고서에 근거한다.</p>
<p> </p>
<p>우선 WEF의 설명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81" src="/attach/4252/1161595475.jpg" width="500" /></p>
<p> </p>
<p>마지막 두 문장을 번역해보자. "그러므로, 성격차지수는 여성의 결과 지표가 남성의 결과 지표와 동등한 국가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만, 어떤 국가의 몇몇 부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좋은 결과를 보인다고 해서 이를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의 중등교육 취학률이 남성의 취학률보다 높은 나라나, 여성과 남성의 중등교육 취학률이 동일한 나라나 같은 점수를 받게 된다."</p>
<p> </p>
<p>이것만으로도 GGI가 역불평등을 유리하게 다룬다는 주장이 단순한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 자료를 직접 보도록 하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590" src="/attach/4252/1256660195.jpg" width="255" /></p>
<p> </p>
<p>2014년 교육 성취도 1위 국가들이다. 보다시피 모두 만점인 1.0000을 받은 국가들이다. GGI는 남성의 교육 성취도를 1.0000으로 놓고, 여기에 여성의 교육 성취도를 대비하여 남성 교육 성취도 대비 몇 점인지를 산출하므로, 교육 성취도에서 1.0000이 나왔다는 것은 이들 국가에서는 교육 성취도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 격차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p>
<p> </p>
<p>만약 GGI가 역불평등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면, 남성의 성취도인 1.0000보다 여성이 더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보이는 경우, 교육 성취도 부문의 값이 1.0000을 초과하는 사례도 나와야 한다. 그런데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0000을 초과하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우연히도 교육 성취도 부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나은 성취도를 보인 국가가 단 하나도 없어서일까? 공동 1위를 한 25개 국가에서는 정말 우연히도 남성 대비 여성의 교육성취도가 딱 1.0000에 떨어지게 나왔을까?</p>
<p> </p>
<p>오스트레일리아의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46" src="/attach/4252/1021234352.jpg" width="500" /></p>
<p> </p>
<p>교육 성취도 부문을 보자. 문명률은 여성 대비 남성이 똑같지만, 초등교육 취학률, 중등교육 취학률, 고등교육 취학률 모두 남성보다 여성이 높다. 특히 고등교육의 경우 여성이 남성의 1.38배에 달하는 취학률을 보인다. 하지만 점수는 모두 1.00이고 1.0000을 초과하지 않는다. 만약 GGI가 역불평등을 유리하게 다루었다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고등교육 취학률 점수는 1.00이 아닌 1.38이 나왔어야 한다.</p>
<p> </p>
<p>그러므로 WEF가 밝히듯이 GGI는 역불평등에 점수를 더 주지 않으며, 실제로 검토해본 결과도 그렇다.</p>
<p> </p>
<p><u><strong>둘째,</strong></u> 고등교육 취학률 계산시 휴학생이 포함되는데, 한국 남성들은 병역의무를 지기 때문에 이 수치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글[<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4" rel="bookmark" title="성평등 관련 국제지수 분석 -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span class="entry-title">성평등 관련 국제지수 분석 -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span></a>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다. 미리 말하지만 이는 오해는 아니다. 실제로 GGI는 대학생에 휴학생을 포함시키는 바람에 한국 남성의 111%가 대학에 다닌다는 이상한 통계가 나오게 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43" src="/attach/4252/1344332291.jpg" width="500" /></p>
<p> </p>
<p>이는 분명 시정되어야 한다. 다만 위의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이 수치의 왜곡으로 인해 한국의 순위가 크게 올라가지는 않는다. 142개국 중 117위에서 111위로 올라가는 정도다.</p>
<p> </p>
<p>다만 이를 들어 GGI가 엉터리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얼토당토 않는 지수라는 식의 비판을 접하게 된다. 이 부분은 오해다. 우선 GGI가 고등교육 취학률, 즉 고등교육 취학률 관련 자료를 어디서 가져오는지 알아보자. 어려울 것 없다. WEF가 스스로 어디서 가져오는지 공개해주고 있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31" src="/attach/4252/1306004508.jpg" width="500" /></p>
<p> </p>
<p>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에서 내는 Education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에서 저런 이상한 통계를 내고 있다는 것인가? 한번 UNESCO에서 제공하는 대한민국 프로필을 보도록 한다. [<a href="http://www.uis.unesco.org/DataCentre/Pages/country-profile.aspx?regioncode=40515&code=KOR"><span style="color: rgb(0, 0, 255);">Country Profiles</span></a>]</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86" src="/attach/4252/1028985744.jpg" width="500" /></p>
<p> </p>
<p>2013년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111.5%다. 그렇다면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는 어디서 자료를 얻길래 이런 이상한 통계를 내는 것일까? 놀랍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보내는 자료를 근거로 한다.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는 각 국가에 교육통계 관련 설문지[<a href="http://www.uis.unesco.org/UISQuestionnaires/Documents/UIS_EDATTAIN_2013_EN.pdf"><span style="color: rgb(0, 0, 255);">Education Attainment Statistics Questionnaire</span></a>]를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이 설문지에 바로 성별 고등교육 취학률 등에 관한 지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p>
<p> </p>
<p>다시 말하면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가 독자적으로 모든 국가의 성별 고등교육 취학률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가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에 각종 교육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가 이를 바탕으로 통계를 도출해내는 것이다.</p>
<p> </p>
<p>이는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의 입장을 소개한 기사 자료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a href="http://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507027011"><span style="color: rgb(0, 0, 255);">군복무 휴학생도 대학생? 통계처리 고민</span></a>]</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73" src="/attach/4252/1061998151.jpg" width="500" /></p>
<p> </p>
<p>앞서 본 바와 같이 WEF는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의 자료를 그대로 쓴다 .즉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 자료만 수정되면 WEF의 GGI도 자동적으로 수정이 된다. WEF가 특별히 대한민국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잘못된 자료의 수정을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가경쟁력지수가 잘 나오기 위해 이 왜곡된 통계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적어도 기사 자료를 통해 보면 그렇다.)</p>
<p> </p>
<p>지금도 여전히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에선 한국 남성의 고등교육 취학률이 100%를 넘기고 있다. 여전히 이상한 자료이고 여전히 이를 인용한 WEF의 GGI는 다소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 정부가 제공한 자료 때문에 다소 부정확한 지수가 나온 걸 들어 GGI의 공신력을 부정해버리는 것, 그래서 WEF는 자료를 엉터리로 수집하는 기관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WEF가 GGI를 산정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WEF는 여전히 가장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기준으로 GGI를 산정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자국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다소 부정확한 자료가 들어가 있다면 단순히 그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보면 될 일이다.</p>
<p> </p>
<p>참고로 예전에 UNDP에 별도로 문의하기로 했던 문제[<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6" rel="bookmark" title="성불평등지수의 오류"><span style="color: rgb(0, 0, 255);"><span class="entry-title">성불평등지수의 오류</span></span></a><span class="entry-title">]에 대해서는 1년 넘도록 UNDP의 대답이 없는 상태다. 그러려니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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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불평등지수는 여성과 남성의 '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경제활동참가율'을 비교하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비율을 달성한 경우도 격차가 있는 것으로 계산한다. 이는 성격차지수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그것까지는 나름 합리성을 갖고 있겠지만, 성불평등지수가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비율을 달성한 경우도 격차로 계산하면서도 기하평균과 조화평균을 사용하는 탓에 저 세 항목에서 나타나는 격차가 서로 영향을 주게 된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무슨 말인지 예시를 들어보겠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모성 사망률이 10, 청소년 출산률이 1, 여성 의원 비율이 50%, 남성 의원 비율이 50%, 여성의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이 100%, 남성의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이 100%,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00%,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00%인 국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성불평등지수에 관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일 것이다. 이 국가의 값들을 성불평등지수 산정 방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자세한 공식은 지난 글들을 참고 바란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GII=1-[({((10/10*1/1)^(1/2)*(0.5*1)^(1/2)*1)^(1/3) }^(-1)+{(1*(0.5*1)^(1/2)*1)^(1/3) }^(-1))/2]^(-1)/[((10/10*1/1)^(1/2)+1)/2*((0.5*1)^(1/2)+(0.5*1)^(1/2))/2*(1+1)/2]^(1/3)</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계산해보면 성불평등지수는 0이 나온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그럼 이런 국가는 어떨까?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모성 사망률이 10, 청소년 출산률이 1, 여성 의원 비율이 1%, 남성 의원 비율이 99%, 여성의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이 99%, 남성의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이 1%,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0%,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0%인 국가 말이다. 정치 권력은 남성에게 완전히 쏠려 있는 반면, 남성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매우 저조하다. 한 마디로 '막장'인 국가다. 이 국가의 값들을 성불평등지수 산정 방식에 대입해보자. 다음이 나온다.</span></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GII=1-[({((10/10*1/1)^(1/2)*(0.01*0.99)^(1/2)*0.1)^(1/3) }^(-1)+{(1*(0.99*0.01)^(1/2)*0.1)^(1/3) }^(-1))/2]^(-1)/[((10/10*1/1)^(1/2)+1)/2*((0.01*0.99)^(1/2)+(0.99*0.01)^(1/2))/2*(0.1+0.1)/2]^(1/3)</span></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계산해보면 성불평등지수가 어떻게 나올까? <u><strong>0이 나온다.</strong></u> 여성의 남성에 대한 권한 상실이 전혀 없는 완벽한 국가다.</span></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의원 비율의 극심한 불균형과 중등교육 이상 비율의 극심한 불균형이 서로를 상쇄해줘서 격차가 없는 것으로 나오게 된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값이 나온다. 성불평등지수는 의원 비율에서 남성 비율이 더 높고, 동시에 중등교육 이상 비율에서 여성 비율이 더 높은 국가(반대도 마찬가지다)의 성불평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따라서 성불평등지수의 산정 방식은 조속히 수정되어야 한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해 UNDP에 별도로 문의를 해볼 예정이다.</p>
<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252',116,'/kimpoo88','');"><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6+%22%EC%84%B1%EB%B6%88%ED%8F%89%EB%93%B1%EC%A7%80%EC%88%98%EC%9D%98%20%EC%98%A4%EB%A5%98%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6&t=%EC%84%B1%EB%B6%88%ED%8F%89%EB%93%B1%EC%A7%80%EC%88%98%EC%9D%98%20%EC%98%A4%EB%A5%98"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6&title=%EC%84%B1%EB%B6%88%ED%8F%89%EB%93%B1%EC%A7%80%EC%88%98%EC%9D%98%20%EC%98%A4%EB%A5%98','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6?commentInput=true#entry116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성불평등지수에 대한 비판적 분석푸우http://blog.jinbo.net/kimpoo88/1152014-11-03T19:02:50+09:002014-11-01T15:58:04+09:00<p>지난 글[<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4"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성평등 관련 국제지수 분석 -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span></a>]에서 잠깐 UNDP(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에 대해 다뤘는데,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성불평등지수를 비판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번 글은 비판적 분석이 주된 목표이니, 개요 등은 지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p>
<p> </p>
<p>성불평등지수는 5개 항목을 통해서 각 국가별 성불평등지수를 산출해낸다. UNDP는 기술보고[<a href="http://hdr.undp.org/sites/default/files/hdr_2013_en_technotes.pdf"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CD;">Technical notes</span></a>]에서 앳킨슨 지수(Atkinson index)에 근거해 불평등 조정 인간개발지수(Inequality-adjusted Human Development Index)를 산출한다고 밝히지만, 성불평등지수 역시 앳킨슨 지수에 근거했는지는 명시해주지 않는다. 다만 기술보고를 통해 UNDP가 공개한 성불평등지수의 산정 방식을 보면, 성불평등지수 역시 앳킨슨 지수에 근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p> </p>
<p>UNDP가 총 3단계를 거쳐 성불평등지수를 산출한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1) 항목 선정 단계, 2) 산정 방식 확정 단계, 3) 구체적 계산 단계. 그렇다면 이 글은 각 단계에 따라 다음의 문제를 제기해보고자 한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첫째, UNDP가 고른 5가지 항목은 성불평등을 드러내기에 적절하거나 충분한가?</span></p>
<p>둘째, UNDP가 제시한 산정 방식은 분야별 지수를 적절하게 합산하는가?</p>
<p>셋째, UNDP는 자기들이 제시한 산정 방식에 따라 정확하게 성불평등지수를 계산했는가?</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첫째 문제제기는 1) 단계, 둘째 문제제기는 2) 단계, 마지막 문제제기는 3) 단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span></p>
<p> </p>
<p> </p>
<p><strong><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line-height: 1.6em;">1. UNDP가 고른 5가지 항목은 성불평등을 드러내기에 적절하거나 충분한가?</span></span></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DP가 선정한 5가지 항목은 '모성 사망률', '청소년 출산률', '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경제활동참가율'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DP가 선정한 항목들이 적절하거나 충분한지 개별적으로 검토해본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1) '모성 사망률'은 성불평등을 드러내는 적절한 지표인가?</span></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모성 사망률'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는 임산부의 비율을 의미한다. 10,000명 당 사망률을 따지며, 한국은 10,000명 당 16명이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UNDP는 출산 도중 사망하는 여성이 여성 권한에 손실을 가져오므로 '모성 사망률'이 유의미하다고 분석한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모성 사망률'을 낮춰야 한다는 데에는 어떤 이의도 없다. 낮은 '모성 사망률'이 건강한 여성의 삶을 보장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의 지표로 활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첫째, '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의 결과인가? 둘째, '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의 원인이 되는가?</span></p>
<p> </p>
<p>한 번 WHO(세계보건기구)의 '모성 사망률' 부분[<a href="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348/en/"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Maternal mortality</span></a>]을 참고해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02" src="/attach/4252/1370439138.png" width="497" /></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WHO는 99%의 모성 사망이 저개발 국가에서 일어나며, 시골이나 가난한 사회에서의 '모성 사망률'이 높게 나온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98" src="/attach/4252/1303643473.png" width="496" /></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38" src="/attach/4252/1378274398.png" width="498" /></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그리고 '모성 사망률'은 빈부격차, 의료 접근권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특히 '모성 사망률'을 낮추는 데 전문 의료인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한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45" src="/attach/4252/1137764764.png" width="485" /></p>
<p> </p>
<p>'모성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여타 요소들 어디에도 성불평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p>
<p> </p>
<p>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미국 지부의 자료[<a href="http://www.amnestyusa.org/our-work/campaigns/demand-dignity/maternal-health-is-a-human-right/maternal-health-in-the-us"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Maternal Health in the U.S.</span></a>]도 이런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p>
<p> </p>
<p><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7" src="/attach/4252/1314978072.png"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text-align: center;" width="500" /></p>
<p> </p>
<p>미국내 '모성 사망률'은 인종에 따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보다 인종간 불평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span style="line-height: 1.6em; text-align: center;">따라서 '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의 결과라는 접근은 받아들일 수 없다.</span></p>
<p> </p>
<p>'모성 사망률'이 성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앞서 보았듯이 UNDP 또한 '모성 사망률'로 인한 여성의 권한 상실을 강조한다. 일단 출산 도중 사망하지 않아야 권한이 보존이라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p>
<p> </p>
<p>그러나 WHO와 국제앰네스티의 자료가 지적하듯이 '모성 사망률'은 전반적인 사회 수준과 의료 접근권에 따라 달라진다. '모성 사망률'이 높은 사회에서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로 인한 남성의 권한 상실도 커지기 마련이므로 '모성 사망률'이 여성 권한의 상실만을 나타낸다고 보기 힘들다. 성불평등의 지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UNDP는 성불평등지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의료 접근권으로 인한 남성의 권한 상실이 전혀 없다고 가정한다(관련된 남성의 수치가 '1'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성불평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는 항목이 최종 지수를 왜곡시킬 여지가 있는 셈이다.</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2) '청소년 출산률'은 성불평등을 드러내는 적절한 지표인가?</span></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청소년 출산률'은 15세에서 19세 사이에 출산한 청소년의 비율을 의미한다. 1,000명 당 출산률을 따지며, 한국은 1,000명 당 2.2명이 출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span></p>
<p> </p>
<p>높은 '청소년 출산률'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청소년의 출산은 교육 기회의 감소를 가져오기 쉬우며, 출산한 청소년은 여러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출산한 성년 여성도 그런 어려움과 마주하지만 청소년이 더욱 불리해지는 경향이 있다.</p>
<p> </p>
<p>하지만 '청소년 출산률'이 과연 성불평등의 결과인지, 혹은 성불평등을 야기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시 한 번 WHO의 자료[<a href="http://www.who.int/maternal_child_adolescent/documents/mpsnnotes_2_lr.pdf?ua=1"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MPS Notes: </span></a><a href="http://www.who.int/maternal_child_adolescent/documents/mpsnnotes_2_lr.pdf?ua=1"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Adolescent pregnancy</span></a>]를 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64" src="/attach/4252/1227045815.png" width="351" /></p>
<p> </p>
<p>저개발 국가에서 95%의 청소년 출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국가의 소득 수준에 따라 '청소년 출산률'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청소년 출산률'은 각 국가의 문화나 관습에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서 접근해야 할 통계자료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92" src="/attach/4252/1180350297.png" width="347" /></p>
<p> </p>
<p>WHO는 저개발 국가에서는 90%의 청소년이 혼인 중 출산을 하며, 75%의 청소년 출산이 의도되었고, 거기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규범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이른 혼인을 '장려'하는 국가에서는 '청소년 출산률'이 반드시 성불평등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이른 출산을 축복으로 여긴다(Thérèse Locoh, Early Marriage and Motherhood in Sub-Saharan Africa, 1999, 참조). 만약 이를 성불평등의 결과라고 본다면, 남성에 비해 여성 청소년만 유독 결혼을 하는 비율이 높다는 자료도 같이 제시하는 등 보다 충실한 조사가 요청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8" src="/attach/4252/1088972079.png" width="336" /></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무엇보다 WHO가 '모성 사망률'의 감소를 위한 정책을 권장했던 것과는 달리 '청소년 출산률'에 대해서는 비율의 감소보다는 출산한 청소년과 자녀를 보호하는 정책을 요청한다. '모성 사망률'이 의료 접근권이라는 뚜렷한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 '청소년 출산률'에 개입하는 요인을 특정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span><span style="line-height: 1.6em;">. WHO 역시 '청소년 출산률'을 감소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알기 위해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힌다.</span></p>
<p> </p>
<p>그럼에도 높은 '청소년 출산률'이 교육 기회 감소 등으로 여성 권한 상실을 야기하는 것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span style="line-height: 1.6em;">낮은 '청소년 출산률'이 성불평등의 해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들의 '청소년 출산률'을 분석한 UNICEF(국제연합 아동기금)의 자료[<a href="http://www.unicef-irc.org/publications/pdf/repcard3e.pdf"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A league table of teenage births in rich nations</span></a>]를 보자.</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628" src="/attach/4252/1146404951.png" width="259" /></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ICEF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의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개선된) 성교육 덕분이 아니라 아직 전통적 가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즉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른 출산이 축복으로 여겨져 '청소년 출산률'이 높았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그 반대의 문화 때문에 도리어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것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ICEF는 특히 한국의 사례를 별도로 언급한다. 한국에서는 혼전 성관계와 임신이 강력한 사회적 불승인에 직면하게 되고, 임신한 청소년들이 상당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 요소가 한국의 매우 낮은 '청소년 출산률'에 일부분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임신한 청소년들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지난 번에 보았듯이 한국 임신 청소년의 임신중절 비율이 81.6%에 이른다는 자료</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a h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007589120&cp=nv"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target="_blank"><span style="color: rgb(0, 0, 205);">성관계 유경험 청소년 평균 15세 시작… 4명 중 1명 임신</span></a><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span style="line-height: 1.6em;">가 있다. WHO는 매년 임신하는 16,000,000명의 청소년 중 3,000,000명 정도가 임신중절을 한다고 본다([<a href="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364/en/"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Adolescent pregnacy</span></a>] 참조). 한국의 임신중절 비율이 월등히 높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높은 '청소년 출산률'이 여성 권한의 손실로 이어지는 반면, 낮은 '청소년 출산률' 역시 여성에 대한 불충분한 사회적 보장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므로 '청소년 출산률'이 성불평등과 일관된 관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우며, 문화적 요인이 크게 반영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3)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은 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를 판단하기에 충분한가?</span></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은 성불평등을 따지기에 적절한 항목들이 아닐 여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이 항목들이 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를 다룬다는 의의를 지닐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두 항목만으로 재생산권 문제를 충분히 다뤘다고 하기는 힘들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DP는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이 여성의 권한 상실을 판단하는 데 유의미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년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지 않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단계의 생존을 보장해줄 뿐, 여성의 경력이나 추후 경제활동참여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출산한 여성이 지속적으로 사회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출산전후 휴가, 육아 휴가, 육아 수당, 육아 시설 확보, 교육 제도 완비 등 여성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육아를 해나갈 수 있는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장비들이 요청된다. 안타깝게도 UNDP는 출산 후 육아 단계는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 성불평등지수가 매우 기초적이고 형식적인 재생산권 문제를 다뤘을 수는 있어도 실질적으로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까지 고려해서 재생산권 문제를 다뤘다고 볼 수는 없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또한 UNDP는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앞서 '청소년 출산률'에서 보았듯이 임신중절 문제는 각 항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뿐더러 재생산권과 관련한 여성의 권한 상실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지표일 수 있다. 여성이 안전한 시설에서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지, 여성이 왜 임신중절을 하는지 조사하지 않고서는 재생산권 문제를 제대로 다뤘다고 할 수 없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4) '여성의원 비율'과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은 사회 내 여성의 권한을 반영하기에 충분한가?</span></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여성의원 비율'과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은 성불평등에 관한 중요한 지표다. 따라서 이 항목들이 포함된 것이 타당한지 굳이 길게 검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회 내 여성 권한을 두 개 지표로만 반영한 것은 아쉽다. 여성 권한이란 얼마나 여성이 얼마나 사회에 자기 의견을 반영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데, 여성의 교수 임용 비율이나, 고위직, 관리직 비율, 각료 비율 등을 아울러 검토해 보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은 일종의 기초적인 자격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더 가깝고, '여성의원 비율'은 정치 분야에서의 의사 결정만 반영하고 있다. 보다 폭넓은 분야에서의 권한 문제를 포섭했으면 지수가 더욱 정교해졌을 것이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5) '경제활동참가율'만으로 경제 영역에서의 성불평등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할 수 있는가?</span></strong></p>
<p> </p>
<p>'경제활동참가율'이 중요한 지표인 것은 맞지만, 경제 영역에서의 성불평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이 각각 얼마나 소득을 얻는지도 같이 조사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성 모두 '경제활동참가율'이 높더라도 여성은 불안정 비정규직, 남성은 고소득 정규직에 몰린다면 이는 성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이다.</p>
<p> </p>
<p>한 번 OECD 가입국 간의 2013년도 성별 임금 격차를 비교한 OECD 자료[<a href="http://www.oecd.org/gender/data/genderwagegap.htm"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Gender wage gap</span></a>, 시간이 지남에 따라 'Latest' 항목이 갱신되니, 아래의 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도를 2013년으로 맞추면 된다]를 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93" src="/attach/4252/1123766996.png" width="500" /></p>
<p> </p>
<p>OECD 가입국 간에도 성별 임금 비율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성이 동일노동에 대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거나, 애초에 남성보다 임금이 적은 직업을 선택하게 되거나, 두 가지 모두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성불평등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따라서 임금이나 소득 차이도 경제 영역에서 같이 고려해줘야 '경제활동참가율'이 유의미해진다.</p>
<p> </p>
<p><strong>(6) 소결: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 항목은 성불평등지수에서 빠져야 한다</strong></p>
<p> </p>
<p>'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경제활동참가율'이 부족하나마 성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는 반면,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이 성불평등을 드러낸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청소년 출산률'은 해당 국가의 문화나 관습이 그 높고 낮음에 큰 영향을 미치며, 비율이 낮다고 반드시 출산한 청소년이 제대로 보호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을 제외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나마 '모성 사망률'이 그 국가의 수준을 반영해주는 반면, '청소년 출산률'은 그조차 적절하게 반영해주지 못하므로(높을수록 국가의 수준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낮을수록 국가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 계산에서 반드시 빼야 한다.</p>
<p> </p>
<p> </p>
<p><strong><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line-height: 1.6em;">2. UNDP가 제시한 산정 방식은 분야별 지수를 적절하게 합산하는가?</span></span></strong></p>
<p> </p>
<p><strong>(1) UNDP 산정 방식 개관</strong></p>
<p> </p>
<p>UNDP가 성불평등지수를 산정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p>
<p> </p>
<p>MMR은 '모성 사망률', AFR은 '청소년 출산률'(UNDP는 2014년부터 AFR(Adolescent Fertility Rate) 대신에 ABR(Adolescent Birth Rate)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2010년부터 사용되어 왔던 AF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하간 UNDP의 2014년 이후 자료에서의 ABR과 AFR은 동의어다), PR은 '성별 의원 비율', SE는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LFPR은 '경제활동참가율'이다. f는 여성의 지표, m은 남성의 지표를 나타낸다. 2. 목차에서는 편의상 저 축약들을 대신 사용하겠다.</p>
<p> </p>
<p>우선 성별 별로 분야별 수치의 기하평균을 구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59" src="/attach/4252/1004054945.png" width="473" /></p>
<p> </p>
<p>그 다음, 여성과 남성의 수치의 조화평균을 구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6" src="/attach/4252/1307508704.png" width="368" /></p>
<p> </p>
<p>그 다음, 분야별 산술평균의 기하평균을 구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12" src="/attach/4252/1187089356.png" width="491" /></p>
<p> </p>
<p>마지막으로 1에서 조화평균을 분야별 산술평균의 기하평균으로 나눈 값을 빼서 성불평등지수를 구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88" src="/attach/4252/1019384589.png" width="229" /></p>
<p> </p>
<p><strong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2) 격차와 수준은 성불평등지수에 각각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strong></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공식이 매우 복잡해서 어떤 수치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수준과 격차가 언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불투명하다. 만약 수준이 영향을 미친다면 두 국가 간의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같더라도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국가의 성불평등지수가 더 낮게(즉 순위가 더 높게) 나올 것이다.</span></p>
<p> </p>
<p>한 번 수준과 격차가 어떻게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주는지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분석은 다음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p>
<p> </p>
<p><u>첫째</u>, MMR과 AFR은 여성 대비 남성 비율이라는 수치가 없으므로 여기에는 각각 p와 q를 부여한다.</p>
<p> </p>
<p><u>둘째</u>, PRf는 r, PRm은 (1-r)로 놓는다. PR은 성질상 수준을 반영할 수 없다(여성과 남성 비율의 합이 1이기 때문. 성소수자 의원 여부는 성평등 관련 국제지수에서 따로 계산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일단 논외로 한다).</p>
<p> </p>
<p>예를 들어 여성의원이 20명, 남성의원이 80명인 국가나, 여성의원이 80명, 남성의원이 320명인 국가아 모두 2:8의 비율이라서 PRf는 0.2, PRm은 0.8, 즉 1-0.2가 나올 수밖에 없다.</p>
<p> </p>
<p><u>셋째</u>, SEf, LFPRf에 각각 x와 y라는 변수를 놓는다. x, y가 클수록 격차와 상관없이 수준이 올라가므로 x, y는 수준을 나타낸다.</p>
<p> </p>
<p><u>넷째</u>, SEm, LFPRm에 각각 ax와 by라는 변수를 놓는다. 아까 보았듯이 x와 y는 수준을 나타낸다. 따라서 a, b는 격차를 나타낸다.</p>
<p> </p>
<p>예를 들어 A국가에서 SEf와 SEm은 0.1, LFPRf와 LFPRm은 0.2라고 가정하자. A국가는 x가 0.1, y가 0.2로 수준은 낮지만, a와 b는 1로 격차는 없는 국가이다.</p>
<p> </p>
<p>반면 B국가에서 SEf, LFPRf가 0.8, SEm, LFPRm이 0.9라면, x와 y는 0.8로 수준은 높지만, a와 b가 1.125로 A국가보다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p>
<p> </p>
<p>따라서 UNDP의 성불평등지수를 정리해서 남은 최종 식에서 x, y가 소거된 경우 해당 국가의 SE와 LFPR 수준이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a, b가 소거된 경우 SE와 LFPR 격차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넷 모두 남은 경우 SE와 LFPR 수준과 격차가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p>
<p> </p>
<p>이제 정리를 시작한다.</p>
<p> </p>
<p>먼저 여성의 분야별 수치의 기하평균을 정리해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532" src="/attach/4252/1225563721.png" width="460" /></p>
<p> </p>
<p>다음은 남성의 분야별 수치의 기하평균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434" src="/attach/4252/1253529405.png" width="380" /></p>
<p> </p>
<p>다음은 조화평균이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조화평균의 식의 모양을 약간 변형했는데, 같은 식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38" src="/attach/4252/1368192282.png" width="500" /></p>
<p> </p>
<p>다음은 분야별 산술평균의 기하평균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541" src="/attach/4252/1159236909.png" width="500" /></p>
<p> </p>
<p>마침내 성불평등지수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435" src="/attach/4252/1273108965.png" width="500" /></p>
<p> </p>
<p>보다시피 다 정리를 하고 나면 식에서 p, q, r, a, b와 몇 가지 상수만 남고 x, y는 소거되었다. 그러므로 PR, SE, LFPR의 수준 모두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들 항목의 수준이 영향을 주지 않는데 뭣하러 이렇게 복잡한 공식을 쓰는지 의아해지는 부분이다.)</p>
<p> </p>
<p>참고로, (당연한 말이지만) a, b에 1을 대입할 때 (즉 격차가 없을 때) 성불평등지수가 최소화된다.</p>
<p> </p>
<p><strong>(3) MMF와 AFR은 성불평등지수에 어떻게 영향을 주며, 그 수준은 적절한가?</strong></p>
<p> </p>
<p>그럼 이제 MMF와 AFR이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겠다. 이 두 항목이 수준에 관한 지표로서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는데,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가? 성불평등지수의 산정 방식 중에서 남성의 분야별 수치의 기하평균 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성의 수치 중에서 맨 왼쪽에 '1'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여성의 '10/MMF*1/AFR'에 대응하는 남성의 수치이다. 따라서 여성의 '10/MMF*1/AFR' 값 역시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1'과의 격차를 구하는 데 사용된다.</p>
<p> </p>
<p>한편, 격차를 구하는 데 쓰이는 남성 측 지표인 PRm, SEm, LFPRm가 변수인 것과 달리, '1'은 상수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10/MMR*1/AFR'에 대응하는 남성의 수치가 '1'로 고정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한 성별의 값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다 보니까 MMR과 AFR의 국가별 수준에 따라 '1'과의 격차가 달라지게 되며, 이로써 국가별 수준이 성불평등지수에 영향을 주게 된다.</p>
<p> </p>
<p>여기서 MMF와 AFR의 두 번째 특징이 생긴다. 앞서 보았듯이 격차가 없을 때 성불평등지수가 향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SE와 LFPR은 물론이고 PR도 f와 m의 수치가 비슷할수록 성불평등지수가 낮아진다. MMF와 AFR 역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임에도 격차를 구하는 방식으로 수치화되기 때문에, 남성의 지표인 '1'과 비슷할수록 성불평등지수를 낮추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p>
<p> </p>
<p>다시 말하면 '10/MMR*1/AFR'이 남성 측 고정 수치인 '1'과 같을 때 격차가 최소화되므로, MMF를 10으로, AFR을 1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을 의미하게 된다. 왜 하필이면 10과 1인가? 그건 UNCP가 정하기 나름이다. 이것이 이들 항목의 두 번째 특징이다. UNCP가 임의로 최대값을 정해줄 수 있고, 그것이 MMF에게는 10, AFR에게는 1인 것이다.</p>
<p> </p>
<p>이제 성불평등지수의 진정한 문제가 드러난다. 이 10과 1을 정한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성불평등지수가 무엇을 최대치로 놓았는지 알 수 없다는 비판을 소개했는데 그 비판이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10과 1이 어떻게 생긴 값인지 알 수 없다.</p>
<p> </p>
<p>혹자는 AFR에서 1은 가장 작은 수니까 최대치로 잡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AFR은 1 미만으로도 나올 수 있고, 실제로도 슬로베니아는 2013년도에 0.6을 기록했다(참고로 이 경우 0.6을 1로 재조정해줘야 함에도 UNDP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조정을 해주지 않으면 0.001처럼 극단적으로 낮은 AFR이 나오는 국가가 도리어 성불평등지수가 높아지는 이상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최대치를 1로 삼아도, 0.1로 삼아도 된다. 1로 삼을 당위는 없다. 또한 <span style="line-height: 1.6em;">혹자는 최대치를 어떻게 잡든 어차피 거기에 따라 수준차가 드러날 테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치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AFR이 성불평등지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가 달라진다.</span></p>
<p> </p>
<p>예를 들어 AFR의 최대치를 MMF처럼 10으로 잡는다면 MMF처럼 AFR도 10미만의 수치들은 조정된다. 그러면 AFR이 덜 민감하게 바뀌게 되고, AFR 등수 최상위 국가와 최하위 국가 사이의 차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어 AFR이 성불평등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p>
<p> </p>
<p>한 번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A국가는 AFR가 1인 반면, B국가는 AFR가 20이다. 이 상황에서 AFR의 최대치가 1이면 A국가의 '1/AFR'은 '1'이 나오는 반면, B국가의 '1/AFR'은 '0.05'가 나온다. 2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한편, AFR의 최대치를 10으로 잡으면 A국가의 AFR이 10으로 재조정되며, 따라서 A국가의 '10/AFR'은 그대로 '1'이 나오는 반면, B국가의 '10/AFR'은 '0.5'가 나와 두 국가 사이에는 2배의 차이만 나게 된다.</p>
<p> </p>
<p>그렇다면 AFR의 최대치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합리적일까? 적어도 1은 아니다. AFR이 2~4만 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수치(아래 성불평등지수 20위권 국가 표 참조)인데도, 최대치를 1로 잡으면 AFR 2~4가 최대치에서 무려 2~4배나 벌어진다는 결과가 나와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AFR이 1인 국가보다 AFR이 4인 국가가 청소년 출산에 관해 4배나 더 열악한가? 어디에도 이를 증명할 자료가 없다.</p>
<p> </p>
<p>조금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연간 살인 발생 건수(미수와 교사 포함)를 예시로 들어보자. 살인 발생 건수는 인구 100,000명 당 건수로 따지는데, 2013년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의해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1명 미만으로 나오면 218개 국가 중 30위권 안에 들게 된다[<a href="http://www.unodc.org/documents/gsh/pdfs/2014_GLOBAL_HOMICIDE_BOOK_web.pdf"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Global study on homicide</span></a>]. 즉 살인 발생 건수가 100,000명 당 1명 미만이면 살인이 잘 발생하지 않는 국가의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살인 발생 건수가 1명 미만이면 적어도 살인에 관한 한 치안 상태가 양호한 국가라는 판단이 가능하다.</p>
<p> </p>
<p>한편 살인 발생 비율이 매우 낮은 리히텐슈타인이나 모나코의 경우 아예 100,000명 당 0명이 살해된다는 통계가 나오며, 싱가포르도 0.2명 살해된다는 통계가 나온다. 그렇다고 치안에 관한 자료를 작성하면서 살인 비율의 표준을 1명이 아니라 0.1명으로 잡으면, 리히텐슈타인이나 모나코가 프랑스나 영국과 같이 100,000명 당 1명이 살해되는 국가보다 치안 상태가 무려 10배가 좋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또한 일본은 0.3명, 한국은 0.9명이므로 일본이 한국보다 3배 안전한 국가가 된다. 물론 일본이 한국보다 살인 발생율이 1/3 수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일본이 한국보다 3배나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실상은 한국과 일본 모두 살인에 관해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에 속한다는 것이다. UNDP처럼 AFR의 최대치를 1로 설정하면, 살인과 관련해 표준을 0.1로 설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즉 가장 높은 수준의 국가끼리도 수치로 몇 배의 차이가 나버리는 지수를 내놓게 된다.</p>
<p> </p>
<p>여하간 AFR의 최대치를 1로 설정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AFR에 관한 발전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UNDP에 따르면[<a href="http://hdr.undp.org/en/content/table-4-gender-inequality-index"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Table 4: Gender Inequality Index</span></a>, 2013년도 기준] 매우 높은 인간 개발(very high human developments)을 보이는 국가들의 평균 AFR이 19.2다. 아래 표의 순서대로 성불평등지수, MMF, AFR, PR, SE, LFPR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2" src="/attach/4252/1252162250.png" width="500" /></p>
<p> </p>
<p>AFR에서 19.2 정도가 나오면 발전 수준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최대치를 설정한다면 19.2 부근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참고로 MMR의 경우 매우 높은 인간 개발을 보이는 국가들의 평균이 16으로, UNDP가 잡은 최대치인 10과 2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반면 AFR은 실제의 높은 기준과 UNDP의 최대치 사이에서 무려 19.2배 차이가 나게 된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이렇게 AFR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다 보니, AFR이 다른 항목보다 성불평등지수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 번 뉴질랜드와 한국의 수치들을 비교해보자.</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55" src="/attach/4252/1074829224.png" width="500" /></p>
<p> </p>
<p>뉴질랜드는 문자 그대로 AFR을 제외하곤 전 분야에서 한국보다 수준과 격차가 좋다. 단 하나, AFR에서만 떨어지며, 이마저도 매우 높은 인간 개발 기준인 19.2에 비하면 그렇게 문제가 될 수치는 아니다. 한편 한국은 MMF와 AFR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매우 높은 인간 개발 기준에 모두 못 미치는 수치를 보인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의 성불평등지수는 한국의 1.8배다.</p>
<p> </p>
<p>성불평등지수 상위 20개 국가의 AFR 평균 등수와 PR 평균 등수를 내보아도 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15" src="/attach/4252/1261713292.png" width="500" /></p>
<p> </p>
<p>AFR의 평균 등수는 15.6등인데, PR의 평균 등수는 33.75등으로, 아예 평균 등수 자체가 20위 밖이다. 아울러 20위 안에 드는 국가 중 어느 국가도 AFR의 등수가 40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 반면, PR 등수는 40위권 밖에 해당하는 국가가 7개 있다.</p>
<p> </p>
<p>지난 번에 살펴보았던 성격차지수의 경우 건강 분야와 교육 분야가 전세계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어 있어서 전체 순위에 영향을 별로 주지 못했다면, 성불평등지수의 PR은 전세계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없음에도 AFR보다 영향력이 적고, AFR은 실제의 높은 발전 수준보다 최대치가 너무 까다롭게 설정되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다. 결과적으로 격차 지표인 PR보다, 수준 지표인 AFR의 영향력이 더 크다.</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4) 소결: AFR는 산정 방식에서 빠지거나, 최대치가 재조정되어야 한다</span></strong></p>
<p> </p>
<p>AFR은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인데, 그 수준조차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산정 방식에서 빠지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UNDP가 굳이 AFR을 포함해서 계산하고 싶다면, 그 최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현재의 성불평등지수는 성불평등과 관련성이 가장 적은 AFR이 도리어 지수 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p>
<p> </p>
<p> </p>
<p><strong><span style="color:#800000;">3. UNDP는 자기들이 제시한 산정 방식에 따라 정확하게 성불평등지수를 계산했는가?</span></strong></p>
<p> </p>
<p>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위를 바꿀 정도의 치명적인 계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정 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한 관계로 끊임없이 오차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p>
<p> </p>
<p>성불평등지수 산정 방식을 하나의 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76" src="/attach/4252/1184161679.png" width="500" /></p>
<p> </p>
<p>이를 풀어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p>
<p> </p>
<p>GII=1-[({((10/MMR*1/AFR)^(1/2)*(PRf*SEf)^(1/2)*LFPRf)^(1/3) }^(-1)+{(1*(PRm*SEm)^(1/2)*LFPRm)^(1/3) }^(-1))/2]^(-1)/[((10/MMR*1/AFR)^(1/2)+1)/2*((PRf*SEf)^(1/2)+(PRm*SEm)^(1/2))/2*(LFPRf+LFPRm)/2]^(1/3)</p>
<p> </p>
<p>식을 입력할 수 있는 온라인 계산기[<a href="http://web2.0calc.com/"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Web 2.0 scientific calculator</span></a>]를 통해 한국의 성불평등지수를 검증해보자.</p>
<p> </p>
<p>UNDP가 공개하는 최대한의 소수점 아래 자리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식은 다음과 같다.</p>
<p> </p>
<p>1-[({((10/16*1/2.242)^(1/2)*(0.1566666667*0.7704713)^(1/2)*0.4990000153)^(1/3) }^(-1)+{(1*(0.8433333333*0.8911087)^(1/2)*0.72)^(1/3) }^(-1))/2]^(-1)/[((10/16*1/2.242)^(1/2)+1)/2*((0.1566666667*0.7704713)^(1/2)+(0.8433333333*0.8911087)^(1/2))/2*(0.4990000153+0.72)/2]^(1/3)</p>
<p> </p>
<p>이를 위의 사이트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75" src="/attach/4252/1161411639.png" width="500" /></p>
<p> </p>
<p>계산하면 다음의 값이 나온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93" src="/attach/4252/1037095961.png" width="500" /></p>
<p> </p>
<p>UNDP가 제공하는 한국 성불평등지수의 가장 정확한 값은 '0.100797053447479'이다. 따라서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며, 이 오차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다른 국가를 가지고 검증해보아도 약간의 오차가 발견된다). 비록 치명적인 오차는 아니지만 UNDP가 중간 단계의 값들을 공개하면 보다 투명한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p>
<p> </p>
<p> </p>
<p><strong><span style="color:#800000;">4. 결론 - 한국의 순위에 대해</span></strong></p>
<p> </p>
<p>앞서 성불평등지수를 세 가지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해본다고 했고, 그 결과 항목 선정, 산정 방식, 계산 모두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물론 계산 단계에서의 문제는 무시해도 될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을 항목으로 선정했다는 점, 그리고 산정 방식이 불필요하기 복잡하다는 점, '청소년 출산률'이 필요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p>
<p> </p>
<p>이런 문제점은 한국의 순위(152개국 중에서 17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더욱 논란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앞선 표에서 보았듯이 '모성 사망률', '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경제활동참가율' 중 특별히 뛰어난 것이 없음에도 '청소년 출산률' 항목은 2.2명이라는 수치로 3위에 올라가 있다. '청소년 출산률'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순위를 조정하기 때문에 한국은 상당한 이득을 보게 된다(앞선 뉴질랜드의 사례가 그렇다). 더구나 한국의 낮은 '청소년 출산률'은 높은 개발 수준이나 피임 위주의 성교육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라, 높은 청소년 임신중절 비율과, 열악한 사회적 보장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따라서 2.2명이라는 수치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음에도 성불평등지수가 산정되는 과정에서 한국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용한다.</p>
<p> </p>
<p>따라서 성불평등지수가 전반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성평등 관련 지수임은 물론, 특히 한국의 성불평등지수나 그 순위의 신뢰도는 낮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p>
<p> </p>
<p> </p>
<p>참고자료</p>
<p> </p>
<p>Thérèse Locoh, Early Marriage and Motherhood in Sub-Saharan Africa, 1999.</p>
<p> </p>
<p> </p>
<p>-------------</p>
<p>2014. 11. 2. 1:17</p>
<p>싱가포르의 AFR 순위가 16위인데, 4위로 잘못 계산해 관련 항목을 수정했고, AFR에 대한 설명을 보강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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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2."><span style="color:#0000FF;">2. 성격차보고서에 대해</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2.1"><span style="color:#0000FF;">2.1. 성격차보고서 개요</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2.2"><span style="color:#0000FF;">2.2. 성격차보고서의 각 항목</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2.3"><span style="color:#0000FF;">2.3. 성격차보고서의 지수 산정 방법</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2.4"><span style="color:#0000FF;">2.4. 성격차보고서에 대한 비판 및 재비판</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2.5"><span style="color:#0000FF;">2.5. 성격차보고서에 대한 개인적 평가</span></a></p>
<p><a href="#3."><span style="color:#0000FF;">3. 기타 성평등 관련 국제 순위</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1"><span style="color:#0000FF;">3.1. 관련 논의</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2"><span style="color:#0000FF;">3.2. 여성권한척도와 성별개발지수</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3"><span style="color:#0000FF;">3.3. 성·제도·개발지수</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3.1"><span style="color:#0000FF;">3.3.1. 성·제도·개발지수 개요 및 항목</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3.2"><span style="color:#0000FF;">3.3.2. 성·제도·개발지수에 대한 오해</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span style="color:#0000FF;">3.4. 성불평등지수</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1"><span style="color:#0000FF;">3.4.1. 성불평등지수 개요</span></a></p>
<p><span style="line-height: 1.6em;"><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2"><span style="color:#0000FF;">3.4.2. 성불평등지수의 각 항목</span></a></span></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3"><span style="color:#0000FF;">3.4.3. 성불평등지수의 산정 방법</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4"><span style="color:#0000FF;">3.4.4. 성불평등지수에 대한 비판</span></a></p>
<p><span style="color:#0000FF;"> </span><a href="#3.4.5"><span style="color:#0000FF;">3.4.5. 성불평등지수에 대한 개인적 평가</span></a></p>
<p><a href="#4."><span style="color:#0000FF;">4. 결론</span></a></p>
<p> </p>
<p><br />
</p>
<h2><a id="1." name="1."><strong><span style="color:#800000;">1. 들어가며: 성평등의 국가별 순위, 과연 의미있는가?</span></strong></a></h2>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src="/attach/4252/1063253934.png" style="width: 500px; height: 298px;" /></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WEF(세계경제포럼)에서 2014년도 성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GGGR)를 발표했다. 한국은 조사대상 142개국 중에서 117위를 했다. 순위가 낮을수록 성격차가 많이 벌어진 것이니,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가 꽤 크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당분간 인터넷이 또 시끌시끌해지지 않을까 싶다. 4년 전 WEF의 성격차지수와 관련된 글을 하나 쓴 것이 있는데[<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32"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여성 관련 각종 국제지수</span></a>] 새로 자료가 나온 김에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 성평등과 관련된 국제지수를 비교하는 글을 한 편 더 써보고자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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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우선 나는 성격차나 성평등의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것에 부정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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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첫째, 지난 번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국가별 순위만 가지고는 그 나라에서 실질적 성평등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알기 힘들다.</strong> 전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성평등이 달성되었다면, 순위가 낮든 높든 큰 상관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전세계적으로 성차별과 여성 억압이 몰아치고 있다면, 순위가 높다고 한들 크게 좋아할 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의 국가별 성격차를 비교한다고 해보자. 거기서 1위를 해봤자 여성의 보통선거권조차 보장되지 않은 국가일텐데 과연 1위를 했다고 성격차가 없는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전지구적으로 여성 억압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한 성평등이란 무엇인지, 그 완전한 성평등에 비교해 볼 때 현재 여성의 전지구적인 지위는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확정하지 않는다면, 국가 순위는 생각만큼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다.</p>
<p> </p>
<p><strong>둘째, 각 나라 별로 성차별이 일어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중에서 어떤 양상들을 어떻게 수치화해서 비교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strong> 자료에 따라 한국의 성평등 순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도 바로 이 요인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평균 소득은 남성과 비슷하지만, 여성 고위 관료의 비율은 매우 낮은 국가 A와, 여성의 평균 소득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여성 고위 관료의 비율은 50%에 이르는 국가 B가 있다고 하자. A와 B 사이에 순위를 매기기 위해서는 평균 소득과 고위 관료 비율에 각각 가중치를 부여해서 이들을 수치화한 후 A와 B의 최종 수치를 비교해야 한다. 이 가중치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그에 대한 표준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할까? 평균 소득이나 고위 관료 비율은 원 자료가 이미 수치화되어 있어서 그나마 낫다. 여성 할례나 상속에서의 제도적 성차별, 성과 본의 부여 등은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는가? 기관마다 지표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국가별 순위도 국제지수 별로 달라진다. 어떤 방식이 더 정확하며 표준적인지 확답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방식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p>
<p> </p>
<p>이토록 국제지수에 부정적인데 왜 글을 쓰는가? 과도한 의미 부여만큼 성평등 관련 지수들의 의미를 필요 이상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최근 들어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성격차보고서를 중심으로 각종 국제지수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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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a id="2." name="2."><strong><span style="color:#800000;">2. 성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 대해</span></strong></a></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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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a id="2.1" name="2.1"><span style="color:#800000;"><strong>2.1. 성격차보고서 개요</strong></span></a></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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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49" src="/attach/4252/1154075562.png" width="50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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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성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GGGR)는 WEF(세계경제포럼)에서 2006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성평등 관련 국제지수이다. 간혹 성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GGI)라는 표현도 사용하는데, 성격차보고서 안에 담긴 것이 WEF가 조사한 성격차지수다. 즉 성격차보고서는 성격차지수를 소개하는 보고서이므로 이 둘을 동의어처럼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다. 아래부터는 2014년도 성격차보고서(<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World Economic Forum,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4)</span>에 근거한 것이다.</p>
<p> </p>
<p>성격차보고서는 국가 별로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도출해낸다. 이를 위하여 성격차보고서는 세 가지 기초 원칙을 정립하고, 그 원칙에 입각해 연구 분야를 설정하고 성격차지수를 산출한다. 다음이 그 세 가지 기초 원칙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37" src="/attach/4252/1084110533.png" width="500" /></p>
<p> </p>
<p><strong>첫째, 성격차보고서는 수준보다는 격차를 측정한다.</strong>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자원과 기회에 얼마나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며, 실제로 여성이 누리는 사회적 자원과 기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반영되지 않는다. 국가별 수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지수를 산출해내기 위해서다. <span style="line-height: 1.6em;">성격차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일</span><span style="line-height: 1.6em;">수록 평등의 정도와 무관하게 여성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의료를 누릴 것이므로, 그 수준의 차이 자체를 알아내는 것은 성평등</span><span style="line-height: 1.6em;">의 정도를 제대로 반영해주지 못한다. 따라서</span><span style="line-height: 1.6em;"> 설령 전체적인 삶의 수준이 높더라도, 그 안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지</span><span style="line-height: 1.6em;"> 알아내는 것이 성평등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더 유의미하다.</span></p>
<p> </p>
<p><strong>둘째, 성격차보고서는 투입 지표보다는 성과 지표를 포착한다.</strong>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결과적으로 얼만큼 벌어졌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마다 다를 수 있는 고유한 정책이나 권리, 문화, 관습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례나 임신중지, 가족제도 등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p>
<p> </p>
<p><strong>셋째, 성격차보고서는 여성 권한보다는 성평등에 따라 국가 순위를 산정한다.</strong> 바꿔 말하면 남성 대비 여성의 비율이 '1'을 초과하는 경우, 더 이상 성별 격차가 없다고 보고 이를 '1'로 계산한다.</p>
<p> </p>
<p> </p>
<h3><a id="2.2" name="2.2"><strong><span style="color:#800000;">2.2. 성격차보고서의 각 항목</span></strong></a></h3>
<p> </p>
<p>성격차보고서는 4개 분야, 14개 항목을 바탕으로 성격차지수를 산출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409" src="/attach/4252/1407375176.png" width="500" /></p>
<p> </p>
<p><strong>첫째, 경제참여와 기회.</strong> 하부 항목은 '남성 대비 여성 경제활동 참여비', '유사업무의 성별임금형평성', '남성 대비 여성 추정 소득비', '남성 대비 여성 행정직, 관리직 비율', '남성 대비 여성 전문직, 기술직 비율'이다.</p>
<p> </p>
<p><strong>둘째, 교육 성취도.</strong> 하부 항목은 '남성 대비 여성 식자율', '남성 대비 여성 초등교육 취학률', '남성 대비 여성 중등교육 취학률', '남성 대비 여성 고등교육 취학률(총합)'이다.</p>
<p> </p>
<p><strong>셋째, 건강과 생존.</strong> 하부 항목은 '출생성비', '남성 대비 여성 건강 기대수명'이다.</p>
<p> </p>
<p><strong>넷째, 정치권한 부여.</strong> 하부 항목은 '남성 대비 여성 국회의원 비율', '남성 대비 여성 장·차관 비율', '남성 대비 여성 국가원수 재임기간(최근 50년간)'이다.</p>
<p> </p>
<p> </p>
<h3><a id="2.3" name="2.3"><strong><span style="color:#800000;">2.3. 성격차보고서의 지수 산정 방법</span></strong></a></h3>
<p> </p>
<p>성격차보고서는 각 14개 항목에 대한 남성 대비 여성의 비율을 구한 다음, 남성을 '1'로 놓고 그와 비교한 여성의 수치를 산출한다. 예를 들어 남성 국회의원이 100명이고, 여성 국회의원이 50명이라면, 남성을 '1'로 놓았을 때 여성은 '0.5'이므로, '0.5'가 해당 항목의 수치가 된다. 이렇게 성격차보고서는 14개 항목에 대하여 '1'을 만점으로 한 지수를 산정한다(출생성비 등은 비율이 약간 조정된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그 다음, 성격차보고서는 14개 항목에서 산정한 지수들에 각각 가중치를 두어 분야별 항목을 합산해서, 분야별 총합을 '1'로 만든다. 국가들의 표준편차가 작은 항목에 큰 가중치를 주고, 표준편차가 큰 항목에 낮은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예를 들어, '교육 성취도' 분야의 4개 항목 중에서 '초등교육 취학률'은 표준편차가 작은 반면, '고등교육 취학률'은 표준편차가 크다. 그런 경우 '초등교육 취학률'에 더 큰 가중치를 두어, '초등교육 취학률'의 격차가 큰 국가가 '고등교육 취학률'의 격차가 큰 국가보다 불이익을 많이 받게 만든다. 즉 세계적으로 격차의 수준이 비슷한 항목에서 홀로 격차가 심할 경우 불리해지는 반면, 세계적으로 격차의 수준이 제각각인 항목에서는 특정 국가의 격차가 심하든 적든 최종적인 지수상의 차이가 덜 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국제적인 표준화가 이루어진 항목과 그렇지 않은 항목을 보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span></p>
<p> </p>
<p>그래서 다음과 같은 표가 완성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33" src="/attach/4252/1375255384.png" width="500" /></p>
<p> </p>
<p>이렇게 분야 별로 '1'을 만점으로 한 지수를 산정한 다음, 각 분야별 수치를 더한 후 4로 나누면 국가별 성격차지수가 나온다. 즉 분야별 가중치는 없다.</p>
<p> </p>
<p>한국을 예로 들어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97" src="/attach/4252/1063706617.png" width="500" /></p>
<p> </p>
<p>우선 14개 항목을 구한다. 다음에 '1'이 넘는 수치, 예를 들어 기대수명을 '1'로 계산한다. 다음에 각 분야별 지수를 '1'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경제는 '0.512', 교육은 '0.965', 건강은 '0.973', 정치는 '0.112'가 나온다. 이 넷을 더하면 '2.562'가 나오고, 4로 나누면 맨 처음 본 '0.640'이 나온다.</p>
<p> </p>
<p> </p>
<h3><a id="2.4" name="2.4"><strong><span style="color:#800000;">2.4. 성격차보고서에 대한 비판 및 재비판</span></strong></a></h3>
<p> </p>
<p>한국의 성격차보고서 순위가 낮게 나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성격차보고서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된다. 각 비판을 살펴보고 그 비판이 타당한지 검토해본다. <span style="line-height: 1.6em;">우선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설명[</span><a href="http://www.korea.kr/policy/pressReleaseView.do?newsId=155923825" style="line-height: 1.6em;"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2013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GGI) 관련 설명자료</span></a><span style="line-height: 1.6em;">]</span><span style="line-height: 1.6em;">이다.</span></p>
<p> </p>
<p><strong>(1) '유사업무' 항목 문제</strong></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1" src="/attach/4252/1279384003.png" width="500" /></p>
<p> </p>
<p>유사업무를 설문지를 통해 측정했기 때문에 '유사업무' 항목이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 자체는 유효하지만, OECD에서 발표한 2013년도 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보아도 한국은 OECD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93" src="/attach/4252/1167606473.png" width="500" /></p>
<p> </p>
<p>물론 OECD에서 조사한 기준대로 성격차지수를 다시 내보면 유사업무와 관련한 한국의 순위가 조금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큰 폭의 상승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OECD 자료에 비정규직 간의 성별 임금 격차를 포함하는 것이 반드시 한국에 유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p>
<p> </p>
<p><strong>(2) '고등교육 취학률' 항목 문제</strong></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40" src="/attach/4252/1370410936.png" width="500" /></p>
<p> </p>
<p>고등교육 취학률 계산시 휴학생이 포함되는데, 한국 남성들은 병역의무를 지기 때문에 이 수치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서 한국의 '고등교육 취학률' 항목을 보면 남성의 취학률이 100%를 초과한다. 명백히 문제가 있는 산정 방식이며, WEF도 이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p>
<p> </p>
<p>다만 이 항목에서 왜곡이 일어나는 것과, 이 왜곡이 한국의 전체 순위에 영향을 주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앞서 가중치에서 보았듯이, '고등교육 취학률' 항목은 '교육 성취도' 분야에서 가장 낮은 가중치를 받는다. '0.75'라는 해당 항목의 지수는 조정이 된다.</p>
<p> </p>
<p>다음으로, 이러한 부당한 불이익을 받았음에도 한국의 '교육 성취도' 분야 지수는 '0.965'로 높은 편이다. 교육 분야 순위가 103위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교육 성취도'와 '건강과 생존' 분야의 세계적인 성별 격차가 적어서 조금만 지수가 떨어져도 순위가 매우 크게 밀려난다는 데서 기인한다. </span>글 서두에 적어놓은 국가별 순위의 첫째 문제점에 해당한다. 순위 자체에 신경쓸 필요가 적다는 것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26" src="/attach/4252/1245949224.png" width="500" /></p>
<p> </p>
<p>위의 그래프는 전세계의 분야별 성격차를 나타내준다. 건강과 교육은 지수가 '1'에 근접해 있는 반면, 경제와 정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 순위가 103위이든, 건강 분야가 74위이든 크게 문제될 점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분야 지수가 '0.965', 건강 분야 지수가 '0.973'으로 만점과 차이가 별로 안 난다는 점이 중요하다.</p>
<p> </p>
<p>그래도 교육 분야의 지수가 낮아진 것이 전체 순위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악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낮다. 한 번 한국의 교육 분야 지수를 '0.965'가 아닌 '1'로 계산해보자. 그러면 전체 지수가 '0.6403'에서 '0.6491'로 조정된다. '0.6491'은 몇 위일까? 111위이다. 6계단 상승했다. 그러므로 '고등교육 취학률' 항목이 정 못마땅하다면 한국이 111위라고 생각하면 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99" src="/attach/4252/1135657095.png" width="500" /></p>
<p> </p>
<p>정리하자면 '고등교육 취학률' 항목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한국의 전체 순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한국의 교육 항목 순위가 낮다는 이유로 성격차보고서의 신뢰도를 공격하는 비판도 같은 이유로 무의미하다. <strong>한국의 순위가 낮게 나온 진짜 이유는 교육 분야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분야 및 경제 분야 순위가 낮기 때문이다. </strong><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한국은 교육 분야에서 만점 기준으로 '0.035'가 모자랐다. 한편 정치 분야는 1위인 아이슬란드와 '0.553' 차이가 났다.</span></p>
<p> </p>
<p>한 번 상위권에 포진된 20개국의 지수를 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31" src="/attach/4252/1384048476.png" width="500" /></p>
<p> </p>
<p>교육 분야나 건강 분야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더라도 경제 분야와 정치 분야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물론 니카라과처럼 경제 분야는 낮지만 정치 분야가 매우 높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p>
<p> </p>
<p>반대로 하위권에 포진된 20개국의 지수를 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01" src="/attach/4252/1338577457.png" width="500" /></p>
<p> </p>
<p>터키는 건강 분야에서 1위를 했음에도 전체 순위는 125위에 그쳤다. 정치와 경제 분야가 낮은 까닭이다. 그만큼 성격차보고서의 전체 순위에 영향을 주는 분야는 교육이나 건강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분야라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교육 관련 항목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성격차보고서 전체 순위가 완전 허황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히 과잉된 비판이다.</p>
<p> </p>
<p>다음은 그 외 자주 등장하는 비판이다.</p>
<p> </p>
<p><strong>(3) 수준이 아니라 격차를 기준으로 삼은 점</strong></p>
<p> </p>
<p>앞서 살펴봤듯이 성격차보고서는 수준이 아닌 격차를 기준으로 지수를 만든다. 이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인터넷에 꽤 퍼져 있다. 남성의 99%가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여성의 98%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국가보다, 남성의 21%가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여성의 22%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국가의 순위가 더 잘 나오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98/99'와 '22/21'을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98'과 '22'를 비교해야 하는 것이다.</p>
<p> </p>
<p>하지만 평등이란 비교대상을 통해서 산출해내는 수밖에 없다. 남성 대비 비율이 아닌, 단순 진학률을 비교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자원이 성별에 따라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알려주지 못하고, 그저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개발이 덜 된 국가</span>보다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개발이 잘 된 국가에게</span>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이럴 경우 사회적 자원을 여성에게 얼마나 배분하느냐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가 지수를 좌지우지하게 되어 남성과 여성의 지위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서 평등에 관한 지수라는 점에서는 국가별 수준을 배제하고 격차만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p>
<p> </p>
<p><strong>(4) 한국 순위가 일부 '이슬람 국가'들보다 낮게 나온 점</strong></p>
<p> </p>
<p>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국가들 중에서는 일부다처제 등이 허용되는 이슬람 국가나 명예 살인이 벌어지는 국가들이 있다. 따라서 성격차보고서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이런 결과가 발생하는 까닭은 앞서 보았듯이 성격차보고서가 각 국가별 고유한 제도나 문화를 지수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격차보고서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겠으며, 이를 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경제 분야 지수와 정치 분야 지수가 매우 낮아서 한국의 전체 순위가 이들 국가보다 낮게 나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국 정치 분야 지수가 이토록 낮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점을 들어 성격차보고서 전부를 배격하는 것은 부당하다.</span></p>
<p> </p>
<p>사실 제도와 문화 지수 반영 문제는 글 서두에서 제기한 국가별 순위의 두 번째 문제점과 관련된다. 각 국가별 고유한 제도나 문화를 지수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긴 한데, 가중치는 어떻게 부여할 것이며, 어떤 표준을 만들어 수치화를 할 것인가? 아래의 개인적 평가 부분에서 더 자세히 논하겠지만, 일부다처제나 여성 할례, 임신중절 등의 문제를 포함한 국제 성평등 지수가 나오길 바라면서도 그 수치화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p>
<p> </p>
<p> </p>
<h3><a id="2.5" name="2.5"><strong><span style="color:#800000;">2.5. 성격차보고서에 대한 개인적 평가</span></strong></a></h3>
<p> </p>
<p><strong>성격차보고서는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들을 선별하고, 투명하고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이 자료들을 분석했다.</strong> 이것이 성격차보고서의 의의이자 동시에 한계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p>
<p> </p>
<p>즉 성격차보고서는 여성 할례, 성 상품화, 가족의 성본 제도, 임신중절, 일부다처제, 부르카 착용 등의 문제를 포괄하지 못한다. 성격차보고서에 나온 국가별 순위가 곧 그 국가의 실질적 성평등 정도를 충분히 반영해준다고 보기는 어렵다.</p>
<p> </p>
<p>한편, 성격차보고서가 성과 지표만 포착한 것도 나름의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다고 본다. 예를 들어 서구나 한국의 통념상 부르카 착용은 여성 억압으로 여겨지는 반면, 여성에게 기형적으로 마른 몸매를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 억압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다. 각 국가나 문화권이 여성의 신체나 삶에 개입하는 양상은 제각각이다. 그러한 양상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문제가 되거니와, 결국 남는 것은 그 억압의 양상들로 인한 최종적인 결과물, 즉 성과 지표 아니냐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겠다.</p>
<p> </p>
<p>예를 들어 한국의 정치 분야 순위는 93위다. 한국보다 정치 분야 순위가 높은 국가 중에는 파키스탄(85위)도 있다. 파키스탄은 히잡의 착용이 일상화되어 있으며(법으로 강제되어 있지는 않다), 여성의 발언권이 적으며,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2014년 성격차지수는 141위로, 뒤에서 두 번째다. 외관으로만 보기에는 한국의 여성이 파키스탄 여성보다 자유로우며,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span style="line-height: 1.6em;">한국 여성은 남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히잡을 두를 필요도 없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그럼에도 왜 한국 국회의 성비는 파키스탄보다도 편향되어 있는가? 제도적으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이 <strong>보이지 않는 천장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성과 지표는 아닌가?</strong></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정리해보자. 성격차보고서가 나름의 합리성을 지녔음에도 고등교육 취학률이나 유사업무 임금격차와 관련해 다소 부정확한 산정 방식을 지니는 것은 맞고, 임신중절 등 제도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맞다(다만 국가별 분석 자료마다 몇 가지 수치화된 제도적 장치들을 소개해준다). 그리고 분야별 지수에 가중치를 두지 않고 산술평균을 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이런 이유로 성격차보고서에 따른 국가별 순위를 그대로 가져다가 인용하며 한국의 성평등이 이 정도 수준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strong>경제 분야와 정치 분야에 대한 지수 및 순위는 상대적으로 유의미하다</strong>고 본다. 이들은 수치화할 수 있는 지수이며, 그 비교 방식도 간단하고 투명하다. 분야별 지수를 합산하지 않고 따로 보는 한 가중치 적용 문제로부터도 자유로운 편이다. 따라서 만약 성격차보고서를 인용하고 싶다면, 정치 분야나 경제 분야를 떼어내서 인용할 것을 추천한다. (교육 분야와 건강 분야는 상향 평준화로 그 순위가 다소 무의미해졌다고 앞서 설명했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다음은 지난 9년간 한국의 각 분야별 지수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64" src="/attach/4252/1327028810.png" width="500" /></p>
<p> </p>
<p> </p>
<h2><a id="3." name="3."><strong><span style="color:#800000;">3. 기타 성평등 관련 국제 순위</span></strong></a></h2>
<p> </p>
<h3><a id="3.1" name="3.1"><strong><span style="color:#800000;">3.1. 관련 논의</span></strong></a></h3>
<p> </p>
<p>굳이 다른 성평등 관련 국제 순위를 소개하는 까닭은, 각종 기사들이 여러 성평등 관련 국제지수를 비교하면서 성격차보고서의 의의를 깎아내리기 때문이다.</p>
<p> </p>
<p>대표적으로 헤럴드경제의 다음 기사[<a href="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21115000384"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대한민국 여성불평등지수가 나이지리아, 수단과 같은 정도? 국제성평등 지수 현황 분석해보니…</span></a>]가 그렇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84" src="/attach/4252/1160401465.png" width="500" /></p>
<p> </p>
<p>우선 성격차보고서는 "4가지 기준에 대해 남성에 비교한 단순 격차만 보여"주지 않는다. 4가지 분야 14가지 항목에 걸쳐 보여준다. 그런데 이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UNDP(유엔개발계획)의 자료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자료 별로 순위의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은 글 서두에서 말한 두 번째 문제점 때문인데, 한 번 구체적으로 왜 그런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지, 각 국제지수 별로 알아보자는 것이다.</p>
<p> </p>
<p> </p>
<h3><a id="3.2" name="3.2"><strong><span style="color:#800000;">3.2. 여성권한척도와 성별개발지수</span></strong></a></h3>
<p> </p>
<p>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발표하는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 GEM)와 성별개발지수(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 GDI)부터 짚고 넘어간다. 여성권한척도는 의회내 여성비율, 여성 고위관료 비율, 여성 전문인력 비율, 평균기대소득 비율, 정치참여가능연령 등을 기준으로 지수를 산출하는 반면, 성별개발지수는 평균기대수명, 평균 교육 성취도, 기대 교육 성취도, 기대 소득 등을 기준으로 지수를 산출(2013년도 기준)한다.</p>
<p> </p>
<p>UNDP는 2010년을 기점으로 이 두 가지 지수를 앞선 헤럴드경제 기사에서 인용된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로 보완했다. 그러므로 여성권한척도와 성별개발지수를 따로 검토할 필요는 없고, 뒤에 가서 성불평등지수만 보도록 한다. (다만 UNDP에서 아직 성별개발지수를 따로 산출하므로,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는 있다.)</p>
<p> </p>
<p> </p>
<h3><a id="3.3" name="3.3"><span style="color:#800000;"><strong>3.3. 성·제도·개발지수</strong></span></a></h3>
<p> </p>
<p><a id="3.3.1" name="3.3.1"><strong><span style="color:#800000;">3.3.1. 성·제도·개발지수 개요 및 항목</span></strong></a></p>
<p> </p>
<p>성·제도·개발지수(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Index, GID)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2006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 데이터 베이스(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Database, GID-DB)에 포함된 지수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는 UNDP의 여성권한척도와 성별개발지수 등 각종 성평등 관련 국제지수를 포괄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변수를 추가해 보다 충실한 성평등 관련 지수를 산정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여성의 경제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들을 분석하려고 한다. 다음은 OECD가 2006년에 발간한 보고서(OECD Development Centre, Measuring Gender (In)equality: Introducing the 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Data Base (GID), Working Paper No. 247, 2006)에 포함된 관계도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95" src="/attach/4252/1140397874.png" width="500" /></p>
<p> </p>
<p>여성의 경제적 역할이 산출 변수인데, 이 산출 변수는 경제 발전, 자원 접근, 사회 제도라는 세 가지 투입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되어 있다.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는 </span>그 중에서도 사회 지표의 중요성에 주목한<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다. 다음은 OECD의 설명이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85" src="/attach/4252/1172423311.png" width="500" /></p>
<p> </p>
<p>제도적 변수가 여성의 경제적 역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의 핵심에 자리잡는다. 정리하자면 성·제도·개발지수는 경제 발전, 자원 접근, 사회 제도, 여성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모든 지표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되, 그 중에서 제도적 변수에 특히 주목한다. 그래서인지 보고서에서도 내내 특히 제도적 변수를 강조한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보고서 결론에서도 제도가 산출 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강조해준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6" src="/attach/4252/1318910306.png" width="500" /></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여하간 성·제도·개발지수는 제도적 변수를 새롭게 찾아내고 분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서, 제도적 변수를 4가지 분야, 13개 항목으로 나눈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7" src="/attach/4252/1352362965.png" width="500"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52" src="/attach/4252/1283241404.png" width="500" /></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trong>첫째, 신체 관련 제도.</strong> 하부 항목은 '여성에 대한 폭력 관련 입법', '여성 성기 절단 비율 추정치'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trong>둘째, 가족 관련 제도.</strong> 하부 항목은 '평균 혼인 연령', '여성 조혼(15-19) 비율', '일부다처제의 허용 여부', '부모권한의 성별 형평성', '상속의 성평등', '이혼의 자유'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trong>셋째, 소유권 관련 제도.</strong> 하부 항목은 '여성의 토지 소유', '여성의 은행 융자 권리', '여성의 토지를 제외한 기타 물건 소유'이다.</span></p>
<p> </p>
<p><strong>넷째, 시민권 관련 제도.</strong> 하부 항목은 '여성이 밖에서 얼굴을 가려야 하는지 여부', '여성의 밖으로 이동할 자유'이다.</p>
<p> </p>
<p>여성에게 불리한 제도가 많을수록 수치는 '1'에 가까우며, 적을수록 '0'에 가깝다. 여하간 주의할 것은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가 제도 관련 변수만 모으지 않는다. <strong>성·제도·개발지수는 최대한 많은 변수를 모으되, 제도 관련 변수에 특히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strong></span></p>
<p> </p>
<p> </p>
<p><a id="3.3.2" name="3.3.2"><strong><span style="color:#800000;">3.3.2. 성·제도·개발지수에 대한 오해</span></strong></a></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가 한국에서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한국이 2006년도 조사에서 4위를 기록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표가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닌다. 이 표는 OECD가 공식적으로 배포한 표이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88" src="/attach/4252/1298513541.png" width="500" /></p>
<p> </p>
<p>한국이 공동 4위로 올라와 있다. 이 표와 함께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a h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60520&cid=47331&categoryId=47331"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FF;">여성의 사회적 역할</span></a>]도 같이 소개되곤 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6" src="/attach/4252/1382072433.png" width="500" /></p>
<p> </p>
<p>이 설명만 읽으면 마치 한국이 50여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에서 4위를 한 것 같다. 그렇다면 <strong>방금 소개한 표는 과연 저 50여개의 항목을 포괄한 성·제도·개발지수인가? 아니다.</strong>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재선 씨의 보고서(주재선, "통계, 지식과 정책"에 관한 제2차 OECD 세계 포럼 참여 결과 보고, 2007)를 보면 저 표의 정체가 드러난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12" src="/attach/4252/1231303530.png" width="500" /></p>
<p> </p>
<p>한국의 순위나 지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표는 위에서 본 표(한국이 4위라고 나온 표)를 세분화한 것이다. 그런데 평가 항목은 50여개가 아니라 13개이며, 이 평가 항목들은 전체 항목이 아니라 제도 관련 항목에 불과하다. 즉 <strong>한국은 2006년도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span> 종합 4위를 한 적이 없으며, 사회 제도 지수에서 4위를 한 것에 불과하다.</strong> 2006년도 종합 순위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의 2006년도 자료는 많지 않다(부분적인 보고서 몇 개만 존재한다). OECD 홈페이지 데이터 베이스는 2009년도 자료와 2012년도 자료만 공개한다. 그런데 2009년도 자료 이후에는 OECD 가입국들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 한국에 대한 지수나 순위는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2006년도 지수는 정확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2009년도와 2012년도 지수는 OECD 가입국들을 제외해서 각각 한계를 지닌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그래도 성·제도·개발지수의 2006년도 사회 제도 관련 한국 지수는 좋은 편이며, 순위도 높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성·제도·개발지수의 사회 제도 관련 한국 지수가 좋은 것은 보다시피 사실이다. 하지만 OECD가 산정한 저 항목들은 다소 부실하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예를 들어 판례 법리를 조사하지 않고 법령 위주로 조사한 까닭에 한국의 상속제도가 완전 평등인 '0'으로 나왔다. 그렇지 않다. 한국 민법 제1008조의3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은 제사주재자가 승계한다고 정하지만, 대법원은 상속인들 사이에서 합의가 되지 않는 이상 망인의 장남을 제사주재자로 본다(</span>대법원 2008.11.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또한 한국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예외적으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정해 놓아, 명백한 CEDAW(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위반임에도 (한국은 현재 CEDAW 관련 조항을 유보해놓은 상태이다) 관련 항목이 없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더구나 한국의 여성 폭력 관련 입법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며,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즉각적인 구조 조치가 미비한 편이다. 조사 당시 한국에는 아직 친고죄가 있었으며, 부부강간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때인데, 이런 부분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도 미지수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여성에 대한 폭력 관련 입법' 항목에서 한국은 '0.17'을 받았다. 해당 항목은 (1) 가정폭력에 대한 법률, (2) 성폭력에 대한 법률, (3) 성희롱에 대한 법률을 토대로 산정된다. '0'은 완전한 입법이 되어 있는 상태, '0.25'는 입법은 되어 있지만 일반적 특성을 지닌 상태, '0.5'는 입법 계획이 있는 상태, '0.75'는 해당 입법 계획이 일반적 특성을 예정하는 상태, '1'은 관련 입법이 전무한 상태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세 가지 세부항목 별로 0을 만점으로 한 점수를 도출한 다음에, 거기에 1/3을 곱한 뒤, 합산한다(이는 2006년의 방법론</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으로, 2012년의 계산 방법은 다소 다르다. 다만 한국의 유일한 수치는 2006년도 것이므로 2006년도 방법론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이 이 항목에서 '0.17'을 받았다는 것은 세 가지 세부항목의 총합이 '0.5'였다는 의미이다. 세부항목에 따라 정확히 몇 점이 나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어차피 OECD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입법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일반적 특성(general nature)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일반적 특성이 어느 정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한국의 가정폭력 특별법이 여성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는 현실(가정폭력 피해자의 반 이상은 경찰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다. 여성가족부,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1부, 2010 참조)이 얼마나 적절하게 반영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다.</span></p>
<p> </p>
<p>각 항목별 수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측정되었는지, 어떤 가중치가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셈이다(2012년도 방법론은 공개되었는데 2006년도 자료의 방법론은 완전히는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항목별 수치도 그렇고, 수치의 합산에 관해서도 그렇다. 한국은 조혼이 '0.01'임에도 가족관련점수는 '0.00'인데, 어떤 수식을 사용하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자료나 설명을 찾기 힘들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따라서 <strong>한국은 성·제도·개발지수 종합지수에서 4위를 한 것이 아닐 뿐더러, 4위를 한 사회 제도 지수는 다소 허술한 면이 있다.</strong></span></p>
<p> </p>
<p> </p>
<h3><a id="3.4" name="3.4"><strong><span style="color:#800000;">3.4. 성불평등지수</span></strong></a></h3>
<p> </p>
<p><a id="3.4.1" name="3.4.1"><strong><span style="color:#800000;">3.4.1. 성불평등지수 개요</span></strong></a></p>
<p> </p>
<p>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는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2010년 새로 개발한 지수로서 과거의 여성권한척도와 성별개발지수를 보완한다. 한국은 2013년 기준으로 152개국 중에서 17위를 했다. 아래는 UNDP의 설명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8" src="/attach/4252/1175495800.png" width="500" /></p>
<p> </p>
<p>성불평등지수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성과가 어떻게 분배되었는지를 설표보고, 성불평등으로 인한 인간개발비용을 측정한다. 정확히는 성불평등으로 인해 어떻게 성별 개발 가능성이 손실되었는지를 측정한다. 따라서 '1'을 최고점으로, 성불평등지수가 높을수록 성별 개발 가능성의 손실이 많다는 의미이다. 성불평등지수는 격차와 수준을 모두 반영한다. 구체척인 내용은 항목 별로 보도록 한다.</p>
<p> </p>
<p><br />
<br />
<a id="3.4.2" name="3.4.2"><strong><span style="color:#800000;">3.4.2. 성불평등지수의 각 항목</span></strong></a></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19" src="/attach/4252/1387169190.png" width="500" /></p>
<p> </p>
<p>성불평등지수는 3개 분야, 5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p>
<p> </p>
<p><strong>첫째, 생식건강.</strong> 하부 항목은 '모성 사망률', '청소년 출산률'이다.</p>
<p> </p>
<p><strong>둘째, 여성권한.</strong> 하부 항목은 '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이다.</p>
<p> </p>
<p><strong>셋째, 경제참여.</strong> 하부 항목은 '경제활동참가율'이다.</p>
<p> </p>
<p>성격차지수와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하고 비교했을 때 가장 적은 항목 수를 보여준다. 따라서 성격차지수가 성불평등지수에 비해 항목 면에서 세밀하지 않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다음으로, 생식건강 관련 항목은 필연적으로 격차보다는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여성권한과 경제참여는 격차도 반영하게 된다. 성불평등지수는 수준과 격차를 모두 포함하다 보니 복잡한 공식을 통해 이들 항목을 수치화한다.</span></p>
<p> </p>
<p> </p>
<p><a id="3.4.3" name="3.4.3"><strong><span style="color:#800000;">3.4.3. 성불평등지수의 산정 방법</span></strong></a></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이 항목은 UNDP의 기술보고(</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UNDP, Technical notes, Human Development Report, 2013)</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에 근거한다.</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43" src="/attach/4252/1188198003.png" width="500" /></p>
<p> </p>
<p>성불평등지수는 다섯 단계에 걸쳐 산정된다. 우선 극단적인 수치나 원 자료가 '0'인 경우를 조정한다. '모성 사망률' 항목은 100,000명 대비 최소 10에서 최대 1,000으로 조정되며, 여성의원 수가 0명인 국가들에게는 '0.1'이라는 비율을 부여한다. 항목별 수치에서 '0'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p>
<p> </p>
<p>다음으로,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별 별로</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span>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을 구한다. 여성은 5개 항목, 남성은 3개 항목의 수치들 간 평균값을 낸다. 공식은 다음과 같다.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MMR은 '모성 사망률', ABR은 '청소년 출산률'(UNDP는 2013년까지 ABR(Adolescent Birth Rate)라는 단어 대신 AFR(Adolescent Fertility Rate)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다. 따라서 2014년 이전에 나온 자료들에서 나오는 AFR가 곧 ABR이다), PR은 '성별 의원 비율', SE는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인구 비율', LFPR은 '경제활동참가율'이다.</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183" src="/attach/4252/1132587183.png" width="368" /></p>
<p> </p>
<p>다음으로, 각 성별 수치들의 조화평균을 구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68" src="/attach/4252/1232807744.png" width="277" /></p>
<p> </p>
<p>다음으로, 각 분야별 산술평균의 기하평균을 구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33" src="/attach/4252/1012493491.png" width="391" /></p>
<p> </p>
<p>마지막으로 성불평등지수를 구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71" src="/attach/4252/1039729672.png" width="157" /></p>
<p> </p>
<p><a id="3.4.4" name="3.4.4"><strong><span style="color:#800000;">3.4.4. 성불평등지수에 대한 비판</span></strong></a></p>
<p> </p>
<p>비판 항목은 두 개의 논문(<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tephan Klasen and Dana Schüler, Reforming the 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 and the Gender Empowerment Measure : Implementing Some Specific Proposals, 2011; </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Iñaki Permanyer, Are UNDP Indices Appropriate to Capture Gender Inequalities in Europe?, 2011)을 참고해서</span><span style="line-height: 1.6em;"> 작성되었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1) 복잡한 산정 방식에 따른 문제</span></strong></p>
<p> </p>
<p>산정 방식이 복잡한 탓에 일반 대중은 물론 정책 입안자도 성별불평등지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성격차지수의 경우, 4개 분야별 지수의 산술평균이라는 직관적 이해가 가능한 반면, 성불평등지수의 경우는 그러한 직관적 이해가 불가능하다. 인터넷에서도 성격차지수의 세부 항목을 나름 분석하는 글은 있어도, 성불평등지수의 세부 항목을 분석하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수치 자료가 공개되어 있음에도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다.</p>
<p> </p>
<p>복잡한 산정 방식이 장점은 아니겠지만, 성불평등지수가 동일한 기준으로 정량화하기 힘든 여러 항목을 합산하는 이상, 다소 복잡한 산정 방식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산정 방식이 정확하고 합리적이라면 복잡함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산정 방식이 무엇을 최대치로 놓고 성취도의 손실을 측정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산정 방식에 내재한 결함이거나, 적어도 산정 방식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p>
<p> </p>
<p><strong>(2) UNDP에 의한 부정확한 계산의 가능성</strong></p>
<p> </p>
<p>더 큰 문제는 UNDP의 기술보고가 들어주고 있는 예시조차 정확한 계산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는 기술보고에 들어가 있는 예시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67" src="/attach/4252/1069597135.png" width="453"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23" src="/attach/4252/1115637430.png" width="411" /></p>
<p> </p>
<p>차근차근 검증해보자. 아래의 검증 과정은 개인적인 계산의 결과물이다. 계산을 위해 Web 2.0 scientific calculator를 사용했다. 우선 맨 위에 있는 (F+M)/2 항목부터 구해보자.</p>
<p> </p>
<p>건강에서는 [{(10/200)*(1/47)}^(1/2)+1]/2를 구하면 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40" src="/attach/4252/1114661331.png" width="500" /></p>
<p> </p>
<p>0.516308...이 나오므로 반올림하면 UNDP의 값이 정확하다.</p>
<p> </p>
<p>권한에서는 {(0.007*0.076)^(1/2)+(0.993*0.244)^(1/2)}/2를 구하면 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38" src="/attach/4252/1041412844.png" width="500" /></p>
<p> </p>
<p>0.257648...이 나오므로 반올림을 하면 0.258로 UNDP의 값이 정확하다.</p>
<p> </p>
<p>경제에서는 (0.252+0.718)/2를 해야 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7" src="/attach/4252/1088527349.png" width="500" /></p>
<p> </p>
<p>0.485이 나오므로 UNDP의 값이 정확하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다음은 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이다. 우선 여성부터 해본다.</span></p>
<p> </p>
<p>[{(10/200)*(1/47)}^(1/2)*(0.007*0.076)^(1/2)*0.252]^(1/3)을 구하면 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74" src="/attach/4252/1345671572.png" width="500" /></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0.0574465...이므로 반올림하면 0.057인데, UNDP는 0.058라는 값을 내놓는다. 0.001의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 수 없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다음은 남성의 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이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1*(0.993*0.244)^(1/2)*0.718}^(1/3)을 구하면 된다.</span></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15" src="/attach/4252/1191192711.png" width="500" /></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0.7070193...이 나오므로 반올림을 하면 0.707로, UNDP의 값이 정확하다.</span></p>
<p> </p>
<p>다음으로, 기술보고에 따르면 조화평균을 구하기 위해서 [1/2*(1/0.058+1/0.707)]^(-1)을 계산하면 되는데, 방금 검증한 대로 한다면 [1/2*(1/0.057+1/0.707)]^(-1)을 계산해야 한다.</p>
<p> </p>
<p>기술보고의 수치대로 계산한다면 다음과 같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1" src="/attach/4252/1010488433.png" width="500" /></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0.107205228...이 나오므로 반올림하면 UNDP의 값이 정확하다.</span></p>
<p> </p>
<p>앞서 검증한 값을 입력해서 조화평균을 구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96" src="/attach/4252/1240595222.png" width="500" /></p>
<p> </p>
<p>0.1054947...로 반올림해도 0.105라서, UNDP의 값과 0.002의 오차가 발생한다.</p>
<p> </p>
<p>다음으로 분야별 산술평균의 기하평균은 (0.516*0.258*0.485)^(1/3)이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9" src="/attach/4252/1370540972.png" width="500" /></p>
<p> </p>
<p>0.4011779...이므로 반올림하면 0.401로, UNDP의 값이 정확하다.</p>
<p> </p>
<p>마지막으로 성불평등지수를 구하기 위해서, 기술보고의 수치대로 하면 1-(0.107/0.401)을 구해야 하고, 검증한 자료대로 하면 1-(0.105/0.401)를 구해야 한다.</p>
<p> </p>
<p>기술보고의 수치대로 계산해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300" src="/attach/4252/1191170864.png" width="500" /></p>
<p> </p>
<p>0.7331670...이므로 반올림하면 0.733으로, UNDP의 성불평등지수가 정확하다.</p>
<p> </p>
<p>검증한 대로 계산해보자.</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height="297" src="/attach/4252/1069248705.png" width="500" /></p>
<p> </p>
<p>0.738154613....이므로 반올림을 하면 0.738이 나와, UNDP의 수치와 0.05의 차이가 발생한다. 여성의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에서 최초의 차이가 발생했는데, UNDP가 이 값을 올림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수치들에서는 반올림을 했으므로 그랬을 가능성은 적다. 결국 여성의 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에서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용한 프로그램이 계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UNDP 측의 계산 착오가 있었던 것이 된다.</span></p>
<p> </p>
<p>한 번 천천히 여성의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분야별 수치들의 기하평균만 다시 구해보자. 앞서 보았듯이 [{(10/200)*(1/47</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1/2)</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0.007</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0.076</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1/2)*0.252</span><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1/3)를 계산하면 된다.</span></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10/200은 0.05다. 1/47은 </span>0.0212765957446809이다. 이 둘을 곱하면 0.001063829787234045이다. 이 수치의 제곱근을 구하면 0.032616403652672147416이다.</p>
<p> </p>
<p>0.007*0.076은 0.032616403652672147416이다. 이 수치의 제곱근은 0.0230651251893416이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0.032616403652672147416*0.0230651251893416*0.252는 </span>0.0001895799612356953929388364281296890112이다.</p>
<p> </p>
<p>0.0001895799612356953929388364281296890112의 세제곱근은 0.0574465753284891351013624273511393362270959이다. 그러므로 일단 내 계산에 실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UNDP의 계산이 맞고, 내 계산이 틀렸다는 반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UNDP에 의한 성불평등지수 계산의 신뢰도가 다소 낮아질 수 있다고 하겠다.</span></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3) 수준 반영에 따른 문제</span></strong></p>
<p> </p>
<p>'생식건강' 분야의 하위 항목은 '모성 사망률'과 '청소년 출산률'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모성 사망률'이나 '청소년 출산률'은 격차가 아닌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이며, UNDP 역시 이 항목들이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두 항목이 단순한 성불평등의 결과물이 아니라 개발 수준의 정도와도 관련이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도 사회 인프라가 갖추어진 지역이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과연 적절한 지표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임신중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재생산권 문제가 충분히 다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은 청소년 출산률이 1,000명당 2.2명으로 최상위권인데, 임신 청소년의 임신중절 비율이 81.6%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어[<a h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007589120&cp=nv" target="_blank"><span style="color:#0000CD;">성관계 유경험 청소년 평균 15세 시작… 4명 중 1명 임신</span></a>] 출산을 한 2.2명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 문제된다.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다만 재생산과 관련된 지표를 포함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span></p>
<p> </p>
<p>여하간 UNDP는 성불평등지수 산정 방식을 통해 수준 문제를 조정하려고 시도하지만, 원 자료가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이상, 성불평등지수 자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성불평등지수가 수준과 격차를 다 반영한 결과, 여성 지위 지수(절대적 지위)나 성평등 지수(상대적 지위)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애매한 지수가 되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불투명해졌다.</p>
<p> </p>
<p><strong><span style="line-height: 1.6em;">(4) 변수 선택 문제</span></strong></p>
<p> </p>
<p>'경제참여' 분야의 하위 항목이 다소 부실하다. 오로지 '경제활동참가율' 하나만 가지고 수치를 산정하는데, 추정 소득이나 임금 형평성 등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UNDP는 성평등 관련 지수를 산출하면서 소득 항목을 반영했던 적이 있었으나, 격차보다는 수준을 반영하는 형식이어서 제대로 성평등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는 소득 항목을 아예 제외해서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어낸 것이다.</p>
<p> </p>
<p> </p>
<p><a id="3.4.5" name="3.4.5"><strong><span style="color:#800000;">3.4.5. 성불평등지수에 대한 개인적 평가</span></strong></a></p>
<p> </p>
<p>성불평등지수는 수준과 격차를 모두 반영하려고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수준을 반영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목표가 산정 방식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정확한 성평등을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본다.</p>
<p> </p>
<p>또한 항목 자체가 적고, 경제 분야는 직업의 질을 묻지 않고 경제활동에 참가하기만 하면 모두 같은 값으로 따지는 '경제활동참가율'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이 측정되었다는 점에서 성취도의 손실조차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몰리는 반면, 남성이 정규직에 편중되어 있어도 그런 차이가 드러나기 힘들게 된다.</p>
<p> </p>
<p>산정 방식이 너무 복잡한 탓에, 개별 분야에 따른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된다. 성격차지수는 개별 분야를 떼어내서 지수와 순위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성불평등지수는 어떤 방식을 도입해야 분야별 지수나 순위가 나오는지 알기 어렵다.</p>
<p> </p>
<p> </p>
<h2><a id="4." name="4."><strong><span style="color:#800000;">4. 결론</span></strong></a></h2>
<p> </p>
<p>개인적으로는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 성격차보고서를 더 선호한다. 주재선 씨는 국제지수 비교글(<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주재선, 우리나라의 성평등지수와 국제성평등지수 비교, 젠더리뷰, 2013)에서 격차만 반영하는 성격차보고서가 "체감적 평등과 거리가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 반면, 성불평등지수는 "국가의 발달수준에 영향을 받는 단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자가 체감상의 문제라면 후자는 지수 자체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차라리 전자가 낫다고 본다. (주재선 씨도 성격차지수를 선호한다는 뜻이 아니다.)</span></p>
<p> </p>
<p>많은 국제단체나 국제지수들은 보다 포괄적으로, 정확하게 성평등 지수를 산출해내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관련된 지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지표들을 어떻게 합산하고 정리해야 할지 복잡해지며, 표준을 정하기도 힘들어진다. 성격차보고서가 표준편차와 산술평균을 사용하는 반면, 성불평등지수가 산술평균, 기하평균, 조화평균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이런 관점의 차이가 현격히 드러난다. 더구나 이들 중에서 무엇을 표준적인 산정 방식으로 삼을 것인지 정하기는 대단히 까다로운 관계로 하나의 종합적인 성평등 지수를 도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p>
<p> </p>
<p>그래서 전체 순위라든가, 전체 지수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항목 별로 수치를 따져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p>
<p> </p>
<p>마무리를 해보자. 여성보다 남성이 리더십을 지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여성 고위직 비율이 낮은 것이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여성과 남성이 각각 어느 분야에서 더 두각을 드러내는지 비교해주는 자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차별의 결과인가,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인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리더십이 뛰어나서 관리직에 진출하기 수월한가, 남성 관리직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성의 리더십을 경험적으로 더 뛰어나게 만들었는가?</p>
<p> </p>
<p>만약 생물학적 원인이 컸다면,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세계적으로 편차가 </span>이렇게 크게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편차가 발생한다는 건 인간이 국가 정책과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점을 반증해주지 않나 싶다. 바로 그 반증으로서 국제지수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p>
<p> </p>
<p> </p>
<p> </p>
<p>참고자료</p>
<p> </p>
<p>OECD Development Centre, Measuring Gender (In)equality: Introducing the 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Data Base (GID), Working Paper No. 247, 2006.</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OECD, 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Database (GID-DB), 2009.</span></p>
<p>OECD, Gender, Institutions and Development Database <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GID-DB)</span>, 2012.</p>
<p>UNDP, Table 4: Gender Inequality Index, 2014 Human Development Statistical Tables, 2014.</p>
<p>UNDP, Technical notes, Human Development Report, 2014.</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World Economic Forum,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4.</span></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여성가족부,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1부, 2010.</span></p>
<p>주재선, "통계, 지식과 정책"에 관한 제2차 OECD 세계 포럼 참여 결과 보고, 2007.</p>
<p>주재선, 우리나라의 성평등지수와 국제성평등지수 비교, 젠더리뷰, 2013.</p>
<p><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tephan Klasen and Dana Schüler, Reforming the 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 and the Gender Empowerment Measure : Implementing Some Specific Proposals, 2011.</span></p>
<p>Iñaki Permanyer, Are UNDP Indices Appropriate to Capture Gender Inequalities in Europe?, 2011.</p>
<p> </p>
<p> </p>
<p>-------------</p>
<p>2014. 10. 29. 20:04</p>
<p>한국의 2013년도 성불평등지수 순위를 187개국 중 15위에서 152개국 중 17위로 수정한다. 15위는 UNDP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순위다.</p>
<p>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2014. 10. 29. 22:15</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UNDP가 계산을 부정확하게 했을 수도 있다는 비판을 추가했다.</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2014. 11. 2. 1:49</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성·제도·개발지수 관련 부분에 내용을 추가했다.</span></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2014. 11. 3. 18:39</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UNDP의 기술보고를 2013년 자료에서 2014년 자료로 업데이트했다. 달라진 것은 색상과, AFR이 ABR로 변경됐다는 점과, 예시가 브라질에서 예멘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수정된 점은 본문에 모두 반영했다. 아울러 계산을 그래픽화했다.</span></p>
<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252',114,'/kimpoo88','');"><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4+%22%EC%84%B1%ED%8F%89%EB%93%B1%20%EA%B4%80%EB%A0%A8%20%EA%B5%AD%EC%A0%9C%EC%A7%80%EC%88%98%20%EB%B6%84%EC%84%9D%20-%20%EC%84%B1%EA%B2%A9%EC%B0%A8%EB%B3%B4%EA%B3%A0%EC%84%9C%EB%A5%BC%20%EC%A4%91%EC%8B%AC%EC%9C%BC%EB%A1%9C%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4&t=%EC%84%B1%ED%8F%89%EB%93%B1%20%EA%B4%80%EB%A0%A8%20%EA%B5%AD%EC%A0%9C%EC%A7%80%EC%88%98%20%EB%B6%84%EC%84%9D%20-%20%EC%84%B1%EA%B2%A9%EC%B0%A8%EB%B3%B4%EA%B3%A0%EC%84%9C%EB%A5%BC%20%EC%A4%91%EC%8B%AC%EC%9C%BC%EB%A1%9C"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kimpoo88%2F114&title=%EC%84%B1%ED%8F%89%EB%93%B1%20%EA%B4%80%EB%A0%A8%20%EA%B5%AD%EC%A0%9C%EC%A7%80%EC%88%98%20%EB%B6%84%EC%84%9D%20-%20%EC%84%B1%EA%B2%A9%EC%B0%A8%EB%B3%B4%EA%B3%A0%EC%84%9C%EB%A5%BC%20%EC%A4%91%EC%8B%AC%EC%9C%BC%EB%A1%9C','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4?commentInput=true#entry114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이방인』의 'charges' 관련 코멘트푸우http://blog.jinbo.net/kimpoo88/1132014-08-25T02:20:55+09:002014-08-24T17:37:21+09:00<p style="text-align: justify;">지난 번 <이방인>의 <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112"><span style="color:#0000FF;">이정서 번역과 관련된 글</span></a>에 대해 Waga Jabal님이 페이스북 상에서 <a href="https://www.facebook.com/waga.jabal/posts/10203558771724309"><span style="color:#0000FF;">비판적 고찰</span></a>을 적었다. <span style="line-height: 1.6em;">페이스북 댓글을 남기는 게 가장 낫겠지만 내가 계정을 비활성화 상태로 해놓은 관계로 따로 글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text-align: justify;">Waga Jabal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blockquote>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프랑스어 charge에도 기소 혹은 기소이유 등의 뜻이 있다. 일반사전에는 잘 안 나오지만 유럽연합 다언어용어 데이터베이스 IATE 및 Robert Herbst가 펴낸 기념비적 역작 Dictionnaire des Termes Commerciaux, Financiers et Juridiques(프랑스어/영어/독일어 법률/경제 용어 사전)에는 이런 뜻이 나온다. 따라서 '기소'의 뜻이 없다며 이정서가 명백히 틀렸다는 블로거의 반박은 꼭 옳지만은 않은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line-height: 1.6em;">예를 들어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제61조 및 주요 언어의 공식 번역은 다음과 같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영어 Confirmation of the charges before trial<br />
프랑스어 Confirmation des charges avant le procès<br />
독일어 Bestätigung der Anklage vor dem Hauptverfahren<br />
이탈리아어 Convalida delle accuse prima del processo<br />
스페인어 Confirmación de los cargos antes del juicio<br />
러시아어 Утверждение обвинений до начала судебного разбирательства<br />
중국어 审判前确认指控<br />
일본어 公判前の犯罪事実確認<br />
영어와 프랑스어가 똑같이 charges로 되어 있고 독일어 Anklage 기소, 고소, 고발 따위를 뜻하며 일본어는 범죄사실이다.</p>
</blockquote>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우선 '기소'와 '기소이유'는 다른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기소'와 '공소사실'도 다른 의미다. '기소'는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공소사실'은 기소가 된 범죄사실을 가리킨다. ('기소이유'라는 용어는 한국 법체계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charges'에 담긴 '혐의'라는 의미를 '공소사실'로 넓혀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재판을 구하는 행위 자체인 '기소'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혹은 그것만으로는 근거 부족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text-align: justify;">Waga Jabal님이 예시로 든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제61조의 경우 국내 번역어는 '기소'가 아닌 '공소사실'이고, 일본어 번역인 '범죄사실'도 세부적 법리나 연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소사실'과 궤를 같이 하는 번역어다. Waga Jabal님이 언급한 IATE에 따르더라도 'charges'는 "</span><span style="text-align: justify;">fait qui pèse sur la situation d'un accusé", 즉 '사실(fait)'에 관한 용어이지 '행위(acte)'에 관한 용어가 아니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text-align: justify;">Waga Jabal님은 "기소 혹은 기소이유"라고 포괄적으로 지칭하지 말고, 'charges'가 정확히 '기소'라는 의미로 사용된 예시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내 단정적인 표현을 철회할 것이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text-align: justify;">덧. 영어에서는 'charge'가 '기소'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공소사실'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따라서 프랑스어의 'charge'가 영어의 'charge'에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프랑스어의 'charge'도 '기소'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해당 문맥의 영어 'charge'가 '기소'라는 의미로 쓰였는지, '공소사실'이라는 의미로 쓰였는지부터 확정지어야 할 것이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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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하물며 외국 문학에 등장하는 법정 장면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오류야 거의 필연일 수밖에 없다. 1. 원 텍스트를 작성하는 외국인 작가부터 정확한 법률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2. 외국어 사전들에서 해당 외국어 단어의 뜻을 충분히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아예 대응하는 적절한 한국어 법률 용어가 없을 수도 있다) 3. 설령 그랬더라도 문맥에 따라 다르게 옮겨야 할 필요가 발생하기도 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제2부에 이르러서는 형사 절차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그런 이유로 국내에 수종의 <이방인> 번역본이 있음에도 제각각 크고 작은 오류를 담고 있다. 내가 제출한 번역본 역시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오류가 생기는 까닭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에서 기인한다. <이방인>의 한국어 번역본에서 역시 이 세 가지 문제가 모두 발생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u>첫째</u>, 카뮈 본인의 부정확한 용어 사용이다. 제2부 제4장 첫째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L'avocat levait les bras et plaidait coupable” 나는 이를 “변호인은 두 팔을 든 채 유죄를 인정하면서도”라고 번역했다. 다른 번역본도 비슷하게 번역했다. 원문 자체가 중의적이거나 복잡하지 않고, 번역에도 별다른 난점이 있진 않다. 문제는 “유죄를 인정”한다는 표현 그 자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미국 형사 절차에서는 법관이 증거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피고인에게 기소사실에 관하여 유죄로 답할 것인지, 무죄로 답할 것인지 묻는다. 이를 기소사실인부절차(起訴事實認否節次)라고 부른다. 유죄를 인정할 경우에는 증거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양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무죄라고 대답하는 경우에는 증거조사를 개시하게 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프랑스와 한국을 비롯한 대륙법계 형사 절차에서는 원칙적으로 기소사실인부절차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가 몇몇 경죄에 대하여 최근 이 제도를 도입하긴 했지만 살인죄와 같은 중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피고인이 자기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법관은 증거조사에 의해 독립적으로 피고인의 죄를 인지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피고인이 스스로 유죄라고 말해도 법관이 무죄 선고를 내릴 수 있다(예컨대 책임조각 등의 사유로). 때문에 법관은 피고인에게 유죄로 답할지 여부를 묻지고 않고, 피고인이나 변호인도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방인>의 배경이 프랑스 형사 절차가 적용되던 식민지 알제리인 이상 뫼르소의 변호인은 변론 과정에서 유죄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설령 변호인이 실제로 ‘유죄를 인정한다’는 단어를 사용했더라도 이는 ‘뫼르소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는 다투지 않겠다’는 취지로만 다뤄질 수 있으며, ‘유죄 인정’이라는 표현이 내포하는 효과를 취할 수는 없다. 따라서 뫼르소가 변호인의 변론을 정리하며 “변호인은 두 팔을 든 채 유죄를 인정하며”라고 서술해서는 안 된다. 소위 말하는 ‘고증 오류’인 셈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치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1심 법원이 피고인에게 사형 선고를 한 경우 피고인은 항소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A라는 소설이 한국 법정을 묘사하며 피고인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항소를 포기해서 이내 사형당했다고 서술한다고 치자. 이는 한국 형사 절차상 가능하지 않은 전개인 것이다. <이방인>도 마찬가지로, 변호인이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전개다. 물론 <이방인>의 경우는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 이해해줄 여지가 있지만.</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렇다면 번역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원문대로 번역을 하더라도 법리적 오류가 담긴 번역본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아쉽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정도 오류가 큰 흠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설령 기소사실인부절차의 연혁과 의의를 아는 사람이 저 표현을 보더라도 카뮈의 취지대로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u>둘째</u>, 불한사전의 불충분한 용어 안내다. 제1부와 제2부에 등장하는 “témoin”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불한사전은 ‘증인’이나 ‘목격자’라는 번역어를 소개한다. 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다수의 번역본은 이를 일관되게 ‘증인’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불한사전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뜻이 하나가 더 있다. ‘참고인’이라는 뜻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경찰에서 조사받는 목격자가 ‘참고인’이라면, 법원에서 조사받는 목격자는 ‘증인’이다. 따라서 경찰이 ‘증인’을 조사한다는 표현은 다소 부적절하다. <이방인>의 경우, 제1부에서 레몽이 뫼르소에게 자기를 위해 경찰에 가서 “témoin” 노릇을 해달라고 한다. 경찰 조사이므로 ‘증인’이 아닌 ‘참고인’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다소 부실한 사전 탓에 대부분의 번역본은 이를 ‘증인’으로 해두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u>셋째</u>, 문맥에 따른 용어 사용의 문제다. 뫼르소에게 “avocat”가 있는데, 사전에 따르면 이는 ‘변호사’라는 의미도 있고, ‘변호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동의어처럼 보이는 두 단어지만 사실 뜻이 다르다. ‘변호사’란 타인을 소송대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하나의 직업이라면, ‘변호인’이란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을 변호하는 지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사소송에서는 ‘변호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변호인’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꼭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는 셈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물론 많은 경우 직업이 ‘변호사’인 사람이 ‘변호인’의 직책을 맡게 되므로 형사소송에서는 두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한국 법체계에서 이 둘이 나뉘어서 그렇지 프랑스에서는 둘 다 “avocat”라는 같은 단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만 제2부 제3장에서 검사가 직접 뫼르소의 변호인을 언급하는 장면이 간접화법 형태로 등장한다. 이때는 명백히 형사소송에 참여하는 지위로서 ‘변호인’을 언급하는 것이므로 맥락상 ‘변호사’ 대신에 ‘변호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가가 피고인에게 붙이는 변호인은 ‘국선변호사’가 아니라 ‘국선변호인’이라고 해야 정확하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행히도 이런 종류의 오류나 오역은 매우 사소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줄거리를 바꿔버릴 정도의 오류도 아니거니와, 작품에 대한 이해와도 큰 관련이 없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정서의 <이방인> 번역본도 법률 용어와 관련해 이런저런 오류를 안고 있다. 다른 번역본과의 차이점이라면, 이정서 번역본에는 “역자노트”가 붙어 있어 이정서가 그런 오류에 이르게 된 비교적 상세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혹은 그가 내놓은 결과물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의 번역본을 비판한 그의 서술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법체계나 법률 용어와 관련된 그의 주장은 대부분 틀렸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번역가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사소한 무지를 탓할 건 없지만, 그 무지가 남의 노력과 성과물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데 동원되었다면 마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몇 개를 보도록 한다. 보아하니 이정서의 <이방인>은 쇄 별로 내용이 꽤 다른 모양인데 (독자로서 유감이다) 나는 2쇄를 기준으로 검토하겠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1) 이정서의 “역자노트” 29.</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제2부 제1장에서 뫼르소의 변호인과 예심판사가 “charges”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정서는 김화영이 “charges”를 ‘수임료’로 번역한 것을 두고 “charges”에는 ‘수임료’와 ‘기소’라는 의미가 둘 다 있지만 여기서는 ‘기소’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정서가 드는 근거는 세 개다. 첫째, 프랑스 저소득층을 변론해주는 국선변호인은 국가로부터 보수를 받으므로 예심판사와 수임료를 논할 필요가 없다. 둘째, 예심판사에게 기소 권한이 있으므로 둘이 기소를 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세 번째 근거는 법과 상관없으니 따로 적어놓지 않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우선 프랑스어 사전을 보면 “charges”에 ‘기소’라는 의미는 나오지 않는다. 프랑스어로 ‘기소’는 ‘poursuite’ 내지 ‘accusation’이다. 그러므로 “charges”에 ‘기소’라는 뜻이 있다는 이정서의 주장은 사전에 의해 뒷받침되지는 않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음으로 그의 두 가지 ‘법리적’ 근거를 보자. 첫째 근거는 그 자체로 아주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국선변호인 제도가 꼭 저소득층을 위한 제도는 아니라서 아주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그리고 변호인과 예심판사가 수임료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수임료를 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이정서는 뫼르소의 변호인이 국선변호인이라는 점이 대단한 근거인 것처럼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선변호인도 의뢰인으로부터 수임료를 받기 때문에 굳이 예심판사와 수임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국선변호인은 같이 국가로부터 보수를 받는 입장에서 예심판사와 돈 이야기를 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셈이다. 여하간 변호인이 굳이 예심판사와 수임료 이야기를 안 할 것이라는 지적 자체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둘째 근거와 관련해, <이방인>이 쓰였을 당시 적용되었던 프랑스 구 형사소송법(1808)에 의거, 예심판사에게 부분적으로 기소 권한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살인죄와 같은 중죄의 경우 예심판사에게 기소권(재판회부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고등검찰청 송부 결정권이 있었을 뿐이다. 이 송부 결정권을 이정서는 ‘기소’라고 파악한 모양인데, 중죄의 재판회부 여부를 고등검찰청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고등검찰청 송부 결정을 ‘기소’로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단순하게 보아 예심판사가 기소권을 갖는다고 하다라도 그가 변호인과 기소 여부를 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유죄협상제가 도입되지 않은 프랑스 형사절차를 고려하면 예심판사가 변호인과 기소 여부를 논할 당위는 더더욱 떨어진다. 마치 경찰이 수사를 개시할지 말지를 용의자와 의논해서 결정하는 꼴이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둘이 수임료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기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하다는 말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기소’라는 번역어는 사전에 잘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이정서가 드는 근거도 빈약하다. 그렇다면 어떤 번역이 가장 적절할까? 프랑스 형사소송법에서 ‘charge’는 증거, 피의자/피고인에게 불리한 사항, 혐의, 비용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현행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81조는 예심판사에 대해 “Il instruit à <u>charge</u> et à décharge.”라고 규정해두고 있으며, 한국 법무부는 이를 “예심판사의 수사대상에는 피의자에게 <u>불리한 사항</u>과 유리한 사항이 포함된다.”라고 번역한다(법무부, 2011). 혹은 제1권 제3편 제1장 제1절 제목인 “De la reprise de l'information sur <u>charges</u> nouvelles”는 “새로운 <u>증거</u>에 기한 예심수사의 재개”라고 번역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해당 장면이 예심수사 중에 예심판사와 변호인이 대화하는 장면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항’, ‘증거’, ‘혐의’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charges”를 ‘비용’이라는 의미로는 사용해도 ‘기소’라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으므로 이정서의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2) 이정서의 “역자노트” 38.</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리는 결과적으로 법정에서 뫼르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만다. 이정서는 왜 마리가 그런 증언을 했을까 탐구하며, 마리가 “예심을 맡았던 ‘차장 검사’”에게 뫼르소에 대한 유리한 증언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불리한 증언도 일단 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과감한 추측인데도 이정서는 단정한다. 그래서 이정서는 마리가 차장 검사에게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하지만 프랑스 형사소송법 체계상 차장 검사(avocat général)는 당해 사건의 예심(cours d'instruction)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예심은 예심판사(juge d'instruction)가 주관할 뿐이며, 차장 검사는 공판 단계에 이르러 공소유지의 임무를 맡을 뿐이다. 실제 소설을 보더라도 차장 검사는 공판 이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차장 검사가 예심과 관련된 서류를 검토할 수야 있겠지만 적어도 예심을 담당하는 당사자는 아니다. 따라서 “예심을 맡았던 ‘차장 검사’”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차장 검사가 예심에 관여해 마리와 모종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볼 소설 내적, 혹은 법리적 근거 역시 찾을 수 없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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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3) 이정서의 “역자노트” 40.</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정서는 김화영이 “se défendre”를 ‘변명’이라고 번역한 것을 비판하며, ‘변호’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문이 대명동사로 쓰인 점을 감안하면 ‘자기 변호’ 정도가 될 것이며, 실제로 이정서는 “스스로를 변호”라고 옮겼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데 ‘변명하다’와 ‘스스로를 변호하다’ 사이에는 실제로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정서는 대단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법적 관점에서 본다면 ‘변명 = 자기 변호’다. 한국 형사소송법 제72조와 제200조의5 모두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서술한다. ‘변명’은 적확한 용어인 것이다. 이정서의 비판은 과잉되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4) 이정서의 “역자노트” 47.</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카뮈는 뫼르소의 변호인을 두고 “Il a plaidé la provocation très rapidement”라고 묘사한다. 이정서는 이를 “그는 도발에 대해 황급히 변론한 다음”이라고 옮기면서, 이 도발이란 뫼르소에 대해 사형을 청구한 검사의 도발을 가리키며, 변호인은 거기에 변호(항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원문을 분석해보면 “la provocation”은 “a plaidé” 동사의 직접목적보어, 즉 해당 동사의 대상이 된다. 영어의 3형식 문장(S+V+O)과 유사하다. 따라서 한국어 구문에 맞게 원문을 재구성하면 ‘la provocation을 a plaidé하다’가 된다. “la provocation”은 ‘도발’이라는 의미이므로, ‘도발을 a plaidé하다’가 된다. 한편 이정서는 ‘도발을’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도발에 대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직접목적보어로서 ‘도발’을 제대로 번역하지 않고 원문의 문장 구조를 비튼 것이다. 마치 ‘나는 사과에 대해 먹었다’와 같은 문장이 되어 버렸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a plaidé” 동사는 ‘변론하다’, ‘변호하다’, ‘주장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변호하다’가 주로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변론하다’나 ‘주장하다’가 더 적절하며, ‘변론’이 개별 주장을 모두 포괄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발’이라는 구체적 지점 내지 쟁점을 내세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장’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정리해보면 ‘그는 도발을 주장했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도발’이란 무엇일까? 프랑스 구 형법(1810) 제321조에 의하면 피고인이 자신을 도발(provoqués)한 피해자를 살해한 경우, 양형에서 감경이 이루어진다. 변호인이 ‘도발을 주장했다’는 것은 바로 이 구 형법상 감경 사유인 ‘피해자의 도발에 의한 살인’을 주장했다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와 달리 이정서가 변호인이 검사의 도발에 항의했다고 파악한 것은 문장 구문에 맞지 않고, 프랑스 법체계를 간과한 처사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5) 이정서의 “역자노트” 51.</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교도소 부속 사제가 뫼르소를 방문한다. 원문은 “recevoir”인데, 김화영은 ‘면회’, 이정서는 ‘접견’이라고 번역했다. 이정서는 ‘접견’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며 사전에서 두 단어를 비교해보라고 하며 사전을 인용해 놓았다. 사전에서 ‘접견’은 “[법률] 형사 절차에 의하여 신체의 구속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나 피의자와 만남. 또는 그런 일.”이라고 나와 있다. 반면 ‘면회’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어떤 기관이나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 봄.”이라고 나와 있다. ‘면회’가 ‘접견’보다 포괄적이고 넓은 개념이다. 그런 만큼 ‘면회’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정서는 당연히 자기처럼 번역해야 한다고 자신하는 모양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정서는 ‘접견’이 법률 용어이므로 그게 정확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법률 용어인 것과 정확한 번역인 것은 다른 문제다. 도리어 법률 용어는 딱 정해진 대로 쓰이지 않는 한 오류가 나기 쉽다. 제각각 매우 한정적인 용법만을 지니고, 그 범위를 함부로 벗어날 수 없다. 위에서 보았듯이 김화영의 ‘변명’이라는 번역은 상황에 알맞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접견’이라는 법률 용어는 이 상황에 딱 알맞는 단어는 아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사전에는 신체가 구속된 피고인을 만나는 걸 ‘접견’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부속 사제도 구속된 피고인인 뫼르소를 만난 것인데 말이다. 한 번 ‘접견’의 의미를 더 자세히 따져보자. 아무리 사전이 정확하다고 해도 법률 용어에 관한 한 법률 자체의 설명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재소자의 접견을 규율하는 주된 법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의 제41조 제1항은 “수용자는 교정시설의 외부에 있는 사람과 접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교정시설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접견’이란 외부 사람을 만난다는 맥락을 내포한 것이다. 수용자가 교정시설에 소속된 사람과 만나는 행위를 ‘접견’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예컨대 재소자가 교도관과 만나는 것을 ‘접견’이라고 하진 않는다. 교정시설 내 사람을 만날 때는 접견과 관련된 규정과 절차가 적용되지도 않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침 뫼르소가 만나는 사제는 보통 사제가 아니라 교도소 부속 사제다. 교정시설에 속한 종교인이라서 교정시설 외부에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부속 사제가 뫼르소를 만나는 것을 두고 ‘접견’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한국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역시 ‘접견’과 ‘종교상담’을 전혀 다른 조항에 규정해두고 있으며, 교정본부 홈페이지를 보아도 접견 관련 안내와 종교생활 관련 안내는 구분되어 있다. 이정서의 ‘접견’ 번역이 오역이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반드시 그와 같이 번역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면회’가 무난하며, 나는 사제가 직접 뫼르소의 감방으로 찾아온다는 점에 착안해 ‘방문’으로 번역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6) 이정서의 “역자노트” 53.</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pourvoi”를 할지 말지 고민한다. 김화영은 “pourvoi”를 ‘상고’로, 이정서는 ‘항소’로 옮겼다. 이정서는 1심에 대한 상소는 ‘항소’, 2심에 대한 상소는 ‘상고’이므로 1심을 마친 뫼르소로서는 ‘항소’를 고민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정서의 설명은 3심제 하에서, 그것도 원칙적으로 볼 때만 타당하다. 엄밀하게 보자면 3심제 하에서도 1심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상소할 수도 있으며, 이는 ‘항소’가 아니라 ‘상고’에 해당한다. 실제로 한국 형사소송법은 예외적으로 1심에서 곧바로 대법원으로 상소하는 것을 허용하며, 이를 ‘비약상고’라고 부른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사실 항소심에 하는 상소가 <span style="text-align: justify;">‘항소’, 상고심에 하는 상소가 ‘상고’이다. 말장난 같지만, 상소라는 행위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받아주는 법원이 먼저 있다는 뜻이다. 현행 한국 법체계에서 대법원은 상고심의 지위를 차지한다(이외에도 몇 가지 지위를 더 점하긴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소하는 것은 그것이 몇 심에 대한 불복인지를 불문하고 ‘상고’가 된다. 그런데 보통 2심 판결에 대해 불복해서 대법원에 상소하기 때문에 2심에 대한 상소를 흔히 ‘상고’라고 부를 뿐이다. 또한 2심 형사 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이에 예외적으로 불복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사실관계를 다시 다투는 경우 2심이 다시 심판하기 때문에 ‘재심’이라고 부르는 반면, 법률관계를 다시 다투는 경우 대법원이 심판하기 때문에 ‘비상상고’라고 부른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결국 1심에 대한 상소는 항소, 2심에 대한 상소는 상고라고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제도의 구체적 운용에 따라 알맞은 용어를 골라야 한다. 뫼르소에게 적용되었던 프랑스 구 형사소송법(1808)은 중죄법원(cour d'assises)이 살인 사건의 1심을 담당하도록 하되, 그 판결에 대해 파기원(Cour de cassation)에 상소하는 것만을 허용했다. 3심제가 아닌 2심제로 운영되었던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파기원에 상소하는 것을 바로 “pourvoi”라고 한다. 프랑스 법체계에서 최종심이자 법률심인 파기원에 하는 상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거기에 대응하는 한국 법률 용어는 ‘상고’이다. (절차법상 상고이유가 법률 위반 사유에 한정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법무부 역시 프랑스 형사소송법의 “pourvoi”를 ‘상고’라고 번역한다. “pourvoi”를 ‘항소’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거나, 최소한 현재 학계에 의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번역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위에서 지적한 것 외에도 이정서의 번역본에는 ‘피고/피고인’, ‘참고인/증인’, ‘신문/심문’, ‘고소/고발/기소’ 등의 용어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부분이 다수 있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누차 말했지만 법률 용어와 관련해서는 오류가 날 수도 있다. (물론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그런데 “역자노트”를 통해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했다면 그런 오류에 대한 허용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법리적인 부분에 관한 이정서의 번역과 주장은 신뢰할 만하지 않다. 이정서한테 그가 “역자노트”에 남긴 말을 되돌려준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blockquote>
<p style="text-align: justify;">“이렇듯 역자는 기본적인 프랑스의 법률 체계조차 들춰 보지 않고, 프랑스어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는 자신감에 (사전을 잘 안 보는 편집자차럼) 자기 상식으로 그 뜻을 옮겨서 소설을 완전히 왜곡해 버린 것이다.”</p>
</blockquote>
<p> </p>
<p> </p>
<p>--------------</p>
<p> </p>
<p>2014. 8. 26. 23:08</p>
<p> </p>
<p>예심판사의 기소 권한과 관련해, 프랑스 구 형사소송법(1808)에 따른 권한이 그렇다는 점을 명시했다. 기존 글과 내용 변화는 없다. 한편, 프랑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예심판사는 모든 죄에 대하여 고등검찰청을 거치지 않고 재판에 회부할 권한이 있다. 단, 예심판사에 의한 재판 회부를 기소로 보아야 할지, 이송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p>
<p> </p>
<p>이외에도 몇 가지 띄어쓰기를 통일했다.</p>
<p> </p>
<p>--------------</p>
<p> </p>
<p>2016. 9. 20. 18:50</p>
<p> </p>
<p>한국의 사형제도와 관련해 잘못된 내용을 적어 수정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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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여기서 나는 영화라는 예술 분야가 지니는 특징을 두 가지 정도 짚고자 한다. 하나는 '어둠의 예술'이라는 특징이고, 하나는 '종합예술'이라는 특징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등장했던 적지 않은 단편이 보여줬다시피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영화는 필름을 영사기로 투영하면서 탄생한다. 그 투영된 빛을 보기 위해서는 나머지 사방이 어두워야 한다. 그래서 어둠은 영화의 전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전제가 다소 낡은 것이 되었음을 차마 부정할 수 없다. 영화는 갈수록 다양한 기기, 어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자체 발광하는 기기에서 상영되며, 역으로 여타 영상도 어둠 속에서 볼 때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 그렇다면 '어둠의 예술'이라는 영화에게 고유(했던)한 문법을 어떻게 간직하거나 재해석할 수 있을까?</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하나의 가설이긴 하지만, 나는 <그녀>가 영화의 외적 전제였던 어둠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 내재적 전제로 바꾸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어둠의 예술을 이어나가는데, 특이하게도 그 방식이 '점멸'이다. <그녀>는 점멸하는 영화다. 이 점멸의 감각은 영화사 로고와 동시에 들려오는 'Milk & Honey'라는 오프닝 스코어에서 시작된다. 꺼졌다가, 켜졌다가, 꺼졌다가, 켜졌다가… 그 외에 영화가 흐르는 동안 귀에 들려오는 스코어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켜졌다가, 꺼졌다가… 한 번 'Loneliness #3', 'Some Other Place', 'Owl' 등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인상을 받으리라 본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물론 음악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면은 끊임없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다만 템포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주욱 어두웠다가, 주욱 밝다. 밝을 때도, 무척 밝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진솔한 이야기를 할 때, 화면은 지극히 어두우며, 절정에 이르는 순간 빛은 아예 자리를 비워버린다. 영화는 어둠을 서사 진행의 한 요소로까지 쓰는데, 어둠은 진정 테오도르가 자신과 자기가 맺는 관계를 탐구하고, 어쩌면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물론 자기 한계를 넘어선 상태를 지속시킬 수는 없지만, 그 체험이 바로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다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덕분에 환한 햇빛 아래 일상이 계속된다. 다시 한 번 에이미의 대사를 들어보자. "우린 삶의 1/3 정도를 자면서 보내는데, 어쩜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일지도 몰라." <그녀>가 반복하는 점멸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눈을 뜨기 위해 눈을 깜박여야 하듯이, 영화는 어둠이라는 간격을 통해 다음의 밝음으로 넘어가게 해준다. 이 어둠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그녀>는 자기 안에 영화다움을 간직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음으로 종합예술. 영화에는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듣는 즐거움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종합예술인 까닭은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기 때문일까? 가끔 거기에 만족하는 영화도 더러 있는 것 같고, 나도 분명 그런 영화들을 즐긴다. 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영화를 체험한다고 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체험한다는 것은 자기가 '몸소' 겪는다는 것인데 시청각이 시청각에 머무른다면, 나는 단지 무언가를 듣고 보았을 뿐, 몸소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로 시청각이 시청각을 넘어설 때 체험이라는 기적이 일어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녀>는 무언가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영화다. 조금 선회해주자면 시각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여기서 다시 점멸을 말하게 된다. 이 점멸, 이 깜박임은 눈을 감았다 뜨는 효과를 연상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우 간접적이긴 하지만, 눈꺼풀의 촉감을 느끼게 된다. 테오도르가 누울 때 반쯤 잠긴 눈꺼풀을 통해 영화를 바라보게 되며(실제 우리 눈꺼풀이 반쯤 잠긴 게 아니라 화면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반대로 해변가 장면에서는 눈꺼풀을 파고드는 햇빛이 그대로 전달된다. 영화는 단지 눈에 상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어둠과 빛이 눈에 닿게 한다. 어둠과 빛은 눈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각을 넘어서는 촉각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매만진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아니, 영화는 내내 공감각의 문제를 다소 노골적으로 다룬다. 사만다는 피아노 곡으로 장면을 그려낸다. 그리고 음악으로 사진을 찍는다. 무엇보다 <그녀>는 영화라는 매체가 촉각적인 매체가 아니라는 점과,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실제로는 서로를 만질 수 없다는 점을 연결시킨다. 즉 서사(의 조건)와 영화적 매체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최대한 시각을 정제한 채(어쩌면 반대로, 화면을 꺼버리면서 압도적인 시각을 제공하여), 관객에게 촉각을 전달하려 하고, 동시에 주인공들에게도 촉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여하간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널 만질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어느 순간부터 사만다는 "내 피부가 느껴져."라며 "네가 느껴져."라고 고백한다. 둘은 "우린 여기 함께 있어."라고 외치지만, 그 함께 있음이란 바로 서로를 어루만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체험의 기적, 종합예술이 발현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무엇보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영화의 주제가 점멸이라는 영화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헤어짐이 있어야 마주침이 있듯, 어둠이 있어야 빛이 가능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미가 테오도르와 어둠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건 그래서 아주 우연은 아닐 것이다. 모든 만남은 어둠을 필요로 한다. 방식에 주제를 투영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영화다운 영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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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종로 거리 걸으면서 여긴 참 도시구나 싶었다. 적적한 여름 공기 가르며 빨간 옷을 걸친 남성을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다가섰다. 이내 기다리던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앉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고 올라 탔으나 마지막 자리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라디오를 통해 울려퍼지던 음악은 멎고 뉴스가 나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라는 영화를 보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나름 밝고, 나름 무거운 영화의 줄거리는 잠시 뒤로 하더라도, 중간 중간 명도가 낮은 영화였다. 불이 꺼진 홀 안에서 혼자 빛나는 스크린 위로는 마찬가지로 불이 꺼진 침대 위 테오도르가 비쳐진다. 창백한 자막만이 화면의 균형을 깨뜨리며 눈을 괴롭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영화는,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굳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잘 정돈된 직각 구도들과 각자 있을 자리에 알맞게 채색된 색감을 못 본 척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런데 그 깔끔한 사물들은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마치 두 주인공의 관계가 간직하는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관계가 놓였다. 시각이 자리를 내준 곳에.</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사만다는 그렇게 테오도르를 만졌고, 테오도르도 사만다와 접촉했다. 손 끝으로 곤두세우는 팔의 솜털 하나 하나와 포개진 입술, 그 어루만짐은 음성을 타고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어루만짐이었다. 터질 듯한 설렘으로, 익숙한 긴장감으로, 오르가즘은 가장 눈부신 어둠이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데 사만다는 무언가 또 다른 것이 된다. 산장에서 사만다와 테오도르, 철학자 셋이서 대화한다. 사만다는 음성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유동적이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만질 수 있던 둘인데, 사만다는 기화하기 시작한다. 마치 테오도르 옆에서 끓던 주전자 속 물처럼. 사만다는,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테오도르를 떠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둘은 이별한다. 이별은 힘들다. 납득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제 사만다의 목소리는 사라진 채 테오도르라는 피사체만 남는다. 안개 뿐인 앞을 걸어가는 테오도르지만, 이미 어루만짐의 세례는 이루어졌다. 그 교감의 충만함이. 테오도르는 두 발을 딛고 에이미와 옥상으로 알라간다. 나란히 앉는다. 그 어두운 고요 가운데 에이미는 테오도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hr />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베스트 오퍼></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비오는 거리를 보며 잠깐 7년 전 일을 떠올린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 여름 밤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만물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자.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이 한 개인에게 같은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여기서부터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베스트 오퍼>의 줄거리와 개인 감상이다. 스포일링이 포함되어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만한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경매사이자 감정인인 버질 올드먼은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클레어 이벳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부모님이 남기고 간 저택에 있는 물건들을 감정해서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 광장공포증을 앓는 클레어. 둘은 천천히 사랑에 빠지고 병도 차차 치료된다. 그리고 반전. 클레어는 버질이 비밀스레 모아오던 회화 컬렉션을 훔치려고 연기했을 뿐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버질이 컬렉션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왔던 친구 빌리 휘슬러, 자동인형을 조립하며 연애 상담을 하던 로버트 모두 한 패였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은 버질. 버질은 프라하의 한 카페에 들어가 클레어를 '기다린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모든 게 거짓이었다! 그리고 질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자동인형도 로버트의 위조품이었나? 버질에게 상담하러 온 로버트의 여자친구도 연기였을까? 관리인도? 다락방에 숨었던, 비 쏟아지는 날 버질을 구하러 달려온 클레어도? 컬렉션 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클레어마저? 버질의 결벽증은 호전된 것이 아니었던가? 버질은, 따지고 보면 조금 재수없는 이 할아버지는 마침내 세계에 의지하고 자기를 조금이나마 열기 시작하지 않았던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의문은 끝끝내 이 영화 자체를 정조준한다. 굳이 장르적 철저함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2시간 가까이 자신을 사랑 영화, 성장 영화로 소개하고, 그렇게 발전해 나가고 또 그렇다고 관객을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런데 끝에 가서 그 가면을 벗고선 사실 범죄 영화였음을, 반전 영화였음을 갑작스럽게 밝힌다. 애잔한 로맨스를 지켜보던 관객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그렇다면 이 영화, 영화 자체는 사랑 영화에 대한 위조품인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글쎄, 결국 '진짜'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위조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고백하듯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아하고 깊은 사랑 영화를 부단히, 부단히 흉내낸 이 영화는, 어딘가에 사랑 영화일 수밖에 없는 흔적을 감춰 놓았다. 클레어 역시 그저 속임수일 수만은 없는, 진정한 이별의 미덕을 버질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래서 버질은 사기행각의 피해자로서 행동하지 않고 연인의 과거를 더듬어 찾아가는 사람이 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제 비가 그쳤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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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 글은 동시에 관악 여성주의 모임 달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1. 피해자 중심주의가 도입된 맥락과 무죄추정의 원칙</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1) 사건 해결과 당사자의 진술</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과거 일어난 사건을 둘러싸고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릴 때 제3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을 할까요? 바로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입니다. 진술이 얼마나 일관적이고 구체적인가, '상식'과 '논리'에 부합하는가를 두고 누구 진술을 더 신뢰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게 우리들이 일상에서 겪는 다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법정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주장과 증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어느 정도로 증명을 해야 하<span style="line-height: 1.6em;">는지를 두고 많은 이론과 판례가 있으며, 각종 절차법이 우리 일상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진술과 진술이 엇갈릴 때 누구 말이 더 신빙성 있는지 판단해야만 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line-height: 1.6em;">(2) 성폭력 피해자 진술과 피해자 중심주의</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line-height: 1.6em;">성폭력 사건은 당사자 진술 이외 다른 증거가 없고, 당사자 진술이 자주 갈리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오늘날까지도 피해자 진술은 부당하게 공격받고, 편견과 잘못된 사회 통념을 바탕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깎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성관계 동의를 간주하려거나, 피해자가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 신뢰성을 낮추려는 시도가 그렇습니다.</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런 공격들을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통념에 기반한 부당한 시도로 규정합니다. 이런 공격들이 피해자의 경험과 느낌, 아울러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피해자를 부당한 의심과 불필요한 질문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데 한 두 개의 질문이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이미 수사기관들부터 남성중심적인 시선에 갇혀 있고, 피해자에게 전혀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위축되고 자기가 겪은 일을 제대로 진술하기 힘들어집니다. 여기서부터 피해자 대리인 제도와 신뢰관계인 동석, 피해자 진술 녹화제도가 도출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피해자 중심주의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구조 자체의 변화 없이는 피해자의 경험과 느낌이 제대로 진술될 수 없고, 진술되더라도 사건 해결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는 최종적인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그 고민을 정리한 표현이 바로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한다"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피해자의 경험, 진술은 부당한 의심과 공격에 끝없이 노출되므로 그에 대항하는 원칙으로, 피해자 진술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3)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설명</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형사절차에서 검사는 권력독점체인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체포, 구속, 압수, 수색, 검증을 통해 피고인에 비해 압도적인 증거수집능력을 지닙니다. 아무리 피고인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피고인과 검사가 동등하게 대결하는 한 힘의 균형은 절대적으로 검사에게 쏠립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가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범죄사실을 주장하고 치밀하게 증명할 책임을 모두 검사에게 돌리는 원리입니다. 만약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지울 정도로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면, 피고인에 대한 혐의가 남아 있더라도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중하게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양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은 요구됩니다. 즉 법관은 여전히 누구 진술이 더 합리적이고, 일관적이며 구체적인지를 기준으로 죄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다만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이 낮더라도 함부로 유죄를 선고하지 못하게 만들고, 검사 측 증인들의 증언을 상당한 수준으로 신뢰할 수 있는 때에야 유죄를 선고하기 만듭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형사절차가 아닌 경우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가요?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이래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절차에만 적용되어 왔습니다. 애초에 권력독점체인 국가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에 그런 권력독점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민사절차를 비롯한 다른 법 영역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무죄추정의 원칙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일반적인 증명책임입니다. 주장하는 자가 증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증명이란 결국,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누구 진술이 더 신빙성 있는가 문제로 복귀하게 되며, 피고인을 더 유리하게 취급한다든가 할 필요는 사라집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4)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해자 중심주의</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만약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한다"를 형사절차에도 도입한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 형사절차에서 성폭력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규정한 입법례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전무합니다. 여성주의자들조차 형사절차에까지 피해자 진술에 대한 1차적 신뢰를 도입하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여성주의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앞서 소개한 대로 수사과정과 법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막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직업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편견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규제하려고 합니다. 미국 등 몇 개 국가는 이런 규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한국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피해자 신뢰관계인 동석 등은 특별법으로 받아들인 상태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데 반성폭력 자치규약은 형사절차가 아닙니다. 학생사회에 국한해서 보자면, 학생회가 강제수사권을 갖는 권력독점체도 아닙니다.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형사절차와 동일시하는 오류가 발생하는 까닭은 "성폭력 = 범죄 = 형사처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성폭력은 범죄일 뿐만 아니라 민사상 불법행위이며 각종 단체의 내규에 따른 징계 사유입니다. 민사상 불법행위로서 성폭력을 판단할 때 무죄추정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으며, 징계 사유에 대한 검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남는 것은 일반적인 증명책임이며, 피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 가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 문제로 귀결될 뿐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형사법 분야에서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피고인을 유리하게 다루듯, 다른 법 분야에서도 권력의 편향이 나타날 경우 증명책임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분야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환경소송이나 제조물책임소송 등은 한 쪽에 권력이 편향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기업이나 의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측의 증명책임을 완화시켜주는 법리들이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성폭력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원칙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남성중심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남성인 가해자 측에 권력이 편향되기 쉽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정으로서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한다는 차원입니다. 형사절차라면 무리가 있겠지만 자치규약에서 이런 원리를 도입할 수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을뿐더러,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한 증명책임의 보완 내지 수정은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5) 피해자 중심주의와 자의적 판단 문제</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오늘날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피해의 호소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기존 남성중심적인 시선에서 탈피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개정된 사화과학대 반성폭력 회칙은 “이[피해자 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책은 피해를 호소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자의적 사유로 누군가를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고 재단할 권력을 쥐어주는 명백히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결과를 낳는다.”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부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하지만 성폭력상담소 등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근거로 피해자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피해자가 피해를 주장한다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진 않습니다. 설령 피해자의 호소가 있더라도, 그리고 피해자 중심주의가 도입되었더라도 피해자와는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분명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유발할 수 있는 자의성이 존재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실제 적용에서 우려했던 것만큼 자의적으로 적용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개정된 반성폭력 회칙은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 혹은 몇 가지 사건을 근거로 피해자 중심주의가 자의적인 판단을 불러일으킨다고 단정하는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도입된 맥락을 너무 단순화시킵니다. 개정 전 사회과학대 반성폭력 회칙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소 애매하게 규정했고,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피해자 중심주의 자체의 문제이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2. 성폭력 희화화와 대중운동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1) 성폭력에 대한 희화화</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반성폭력 운동은 전진된 성폭력 개념을 제시해왔지만 항상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 희화화와 조롱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성폭력 개념을 포괄적으로 잡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첫 번째는 3회 이상 상대방에게 교제나 만남을 요구하는 방식의 스토킹을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을 둘러싼 희화화입니다. 이런 유형의 스토킹은 경찰청조차 성범죄로 분류할 정도로 ‘좁은’ 의미의 성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경범죄처벌법 개정에 대해서 “이젠 무서워 고백도 못하겠다”, “여성분들 앞으론 두 번만 튕기는 걸로 합시다” 등의 조롱도 상당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두 번째는 부부강간입니다. 흉기를 들어 폭행을 하는 부부강간이 처벌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적으로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하지 않은 동의 없는 부부간 성관계도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반성폭력 운동의 주장에 대해서는 숱한 희화화가 일어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세 번째는 성노동자의 성폭력 피해입니다. 성노동자도 당연히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노동자가 자기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발한 대자보에 대해 쏟아진 야유들을 기억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스토킹과 같은 ‘전형적’인 성폭력조차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만약 포괄적인 성폭력 개념이 희화화의 원인이었다면 스토킹에 대한 희화화가 없었어야 함에도 운동권 내에서조차 조소가 이어졌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2) 희화화와 운동에 대한 진단</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포괄적인 성폭력 정의가 성폭력의 무게감을 없애 희화화를 촉발했다고 말하지만, 문제가 있는 분석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우선 포괄적인 성폭력 정의가 성폭력을 흉악하고 잔혹한 범죄로만 취급하는 통념적인 시각을 없애려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은 포괄적 성폭력 정의를 통해 성폭력이 뿌리깊은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우리가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대상으로 정의하려 했습니다. 무게감을 아예 없애는 게 아니라 그 내용과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무게감을 없앤 건 반성폭력 운동이 아니라 성폭력에 대한 반성폭력 운동 진영의 주장을 희화화한 당사자들입니다. 당연합니다. 희화화 자체가 상대방 주장을 조롱하면서 그 무게감이나 진지함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무게감을 없애기 위한 희화화는 끝없이 이루어집니다.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비꼬거나, 좌파들이 조금만 반자본주의적인 이야기를 하면 북한이나 가라며 윽박지르는 반응들이 그렇습니다. 희화화하는 측은 상대방이 어떠한 빌미를 제공하기만 하면, 때론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도, 희화화를 합니다. 그걸 가지고 대중운동의 성패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성급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3) 젠더 기반 폭력과 대중운동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반성폭력 운동이 그 동안 고수해온 젠더 기반 폭력을 바탕으로 한 성폭력 개념은 실패했으며,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이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 주장을 보면 마치 반성폭력 운동 전반이 여태까지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을 주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성폭력 법제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반성폭력 운동 진영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 개념을 관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신상숙, 젠더, 섹슈얼리티, 폭력, 2008, p. 30). 이후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규정하고, 그런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2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성폭력을 젠더 기반 폭력이라고 정의해오는 경우가 오히려 소수였던 셈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학생사회나 운동사회 중에서도 이미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을 받아들인 곳이 존재합니다. 사회 전반에 비추어 보면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인식이 더더욱 압도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언론기사는 물론이고 보수적이라고 평가하는 법원조차 판례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일반 대중이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에 거부감을 느끼고,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이 모순을 내포하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반성폭력 운동 진영과 여타 미디어, 법률 교과서, 판례, 공공기관 주도 성교육이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가르치고, 홍보해왔기 때문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학내 반성폭력 운동이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을 주장해왔으나 실패했다는 진단 역시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심지어 반성폭력 운동 진영마저도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동일시하는 마당에 학내에서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을 주장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아무리 학내 반성폭력 운동의 초점을 젠더 기반 폭력에 맞추더라도,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학내 반성폭력 운동이 곧바로 효과를 나타내기는 쉽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4)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이 남긴 과제</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20년 넘게 성폭력이 성적 지기결정권 침해라고 주장해서 얻은 것과 아직 얻지 못한 것이 각각 있습니다. 우선 정조를 침해한 죄로서 성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피해자에 대한 비난도 일정 부분 줄어들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부부강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아냈으며 친고죄 역시 폐지되었습니다. 대중들의 인식 역시 적게나마 바뀌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반면 구조적 성격으로서 성폭력은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줄어들진 않았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성폭력 범죄 형량이 늘어났으며, 언론 보도는 갈수록 선정적으로 흘러갑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이라는 관념이 남성 편향적 섹슈얼리티를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 이 지점을 반증합니다. 여전히 사회는 성폭력을 야기하는 구조를 바꾸는 데 주저하고, 성폭력이 일부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라는 인식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내 성폭력 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반성폭력 운동이 다시금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을 강조하고 쟁점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개인 대 개인 문제로 치환되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옮겨오는 작업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에 비해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학내 반성폭력 진영이 도리어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을 포기하고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성폭력을 도입해야 비로소 대중이 성폭력을 구조적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매개가 생긴다고 주장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하지만 이 주장은 지난 20년 간 반성폭력 운동이 한계를 드러낸 지점을 반복하자는 것입니다. 반복이라고 하기도 애매합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성폭력 정의인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학내 반성폭력 운동의 정의를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가 대중이 성폭력을 구조적 폭력으로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5) 성폭력 사건 공론화 문제</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대중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성폭력의 민주적 해결을 강조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무엇을 성폭력이라고 볼 것인지 구성원 사이에 합의하고 결정하면 된다고 합니다. 성폭력 사건은 공론장 안에서 평가되고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개정 반성폭력 회칙 역시 사건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포함한 평가 절차를 공개적으로 하도록 강제합니다(제10조 제1항 제5호, 제2항). 피해자가 이런 공개 과정을 원하지 않는다면 아예 처음부터 신고를 하지 말거나, 신고를 반려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제9조 제3항 제1호).</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물론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공개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건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애매한 경우, 공론화를 통해 성폭력 여부를 결정하는 이상 구체적 사실관계 공개가 불가피하게 됩니다. 구체적 사실관계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폭력 여부를 결정하고 사건을 평가하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데 이처럼 다소간의 사실관계를 포함한 진상조사 결과 공개가 필수적이고, 그 공개된 진상조사를 가지고 어느 구성원이든 참석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평가회가 열리는 이상 피해자의 생존권은 매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 사건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공동체 내에서 어디서든 자기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고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개정 회칙은 심지어 평가의 권한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을 경계합니다(제10조 제2항 제1호 해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은 대중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맥락의 복잡함이나 피해자 심리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위해 전문성 역시 동시에 추구합니다. 성폭력 상담원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까닭도 바로 이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전문가에 의한 판단을 경계하고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통해 사건을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개정 회칙이나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성폭력 사건에는 구체적 피해자가 존재하며, 그 피해자는 대중에 대한 공개가 아니라 훈련을 받은 전문가에 의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3.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평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1) 미비했던 제도적 장치</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기존 회칙이나 대책위원회 운영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기존 회칙은 피해자의 진술이나 발언에 대한 2차적 판단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곧 피해자의 말에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대단히 문제가 많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음으로 가해자 대리인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아 각 당사자가 대책위원회 테이블에서 직접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불러 일으키고,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지막으로 학교 상담소를 비롯한 전문 상담소와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거나 애매한 사건의 경우 도리어 외부 단체와 공동 테이블을 모색하거나 적어도 조언이라도 구해서 보다 수월한 해결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미비점들은 각 당사자들의 감정적 충돌이나 갈등을 부추기거나 완충 지대를 마련해주지 못하며, 피해자에 대한 ‘설득’을 어렵게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2) 성폭력이었는지 여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이런 미비점과, 그런 미비점으로 인한 결과들이 모두 피해자 중심주의와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은 절대 성폭력이 아니었다, 나아가 “잘못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으로 확정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치 젠더 기반 폭력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성폭력 개념을 바꿔오면 당연히 그 사건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는 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자기 성적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할 권리이듯, 어디까지를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그 침해로 규정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예를 들어,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성별 발언권이 충분히 보장된 상태에서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 자기 성적 행위를 스스로 구성하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요? ‘성’을 섹슈얼리티로 해석하는 것 같은데, 자기 섹슈얼한 행위의 구성이 어디까지인지, 섹슈얼리티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그렇게 단정적으로 정할 수 있는가요? 연애 관계 끝에서 이별하는 것이, 성별 발언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섹슈얼리티와 상관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요?</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문제에 대해 개정 회칙은, 그리고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공론장에서 평가하면 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설령 공론장에서의 토론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지라도, 섹슈얼한 행위의 구성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발제하고 토론해도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답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3) 사건에 대한 재평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오히려 서울대 사회과학대 성폭력 사건에서는 그 사건을 성폭력으로 규정하는지 여부가 핵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건의 맹점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반드시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하고, 그 테이블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각 성폭력 사건은 그 사건만의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제대로 치유될 수 있고 고통이 최소화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피해자 중심주의입니다. 그래서 피해자 중심주의란 상황에 따라서는 피해자에 대한 설득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설득을 시도한 류한수진 씨의 행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다만 과연 그런 설득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일어났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런 사항들을 SNS에 독자적으로 공개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대책위원회 구성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다른 방식의 치유는 어려운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고 보지만, 이를 단지 류한수진 씨만의 책임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와 별개로 피해자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취한 것이 곧바로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는 식의 판단을 허용한 기존 회칙의 미비점은 마땅히 비판되어야 하고, 여타 전문 상담가가 대책위원회 테이블에 참여하는 길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점은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지점들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 중심주의 자체의 폐기와 성폭력 개념의 축소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4) 피해자 중심주의 자체의 폐기가 필요한가?</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직접 참여하지 않은 제가 3자적 위치에서 이 사건을 다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과연 가능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위치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한 사건을 둘러싼 미비점이나 문제점 때문에 피해자 중심주의를 폐기하고 성폭력 개념을 축소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논리적 비약과 성급한 결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기존 회칙에 문제점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런 문제점은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면 될 뿐, 피해자 중심주의 자체를 폐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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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p>
<p><a href="http://blog.jinbo.net/kimpoo88/88#1."><strong>1.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주식을 민간에 양도하는 것이 가능한가?</strong></a></p>
<p> <a href="#1.1.">(1)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의 주식양도제한 규정을 통해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a></p>
<p> <a href="#1.2.">(2)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결의 요건을 가중시켜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a></p>
<p> <a href="#1.3.">(3) 기타 국토교통부가 주장하는 안전장치들은 어떠한가?</a></p>
<p> <a href="#1.4.">(4) 법제화를 통해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a></p>
<p> <a href="#1.5.">(5)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은 무엇인가?</a></p>
<p> <a href="#1.6.">(6) 소결</a></p>
<p><a href="#2."><strong>2.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할 필요가 있는가?</strong></a></p>
<p> <a href="#2.1.">(1) 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하려고 하며, 이는 타당한가?</a></p>
<p> <a href="#2.2.">(2)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경영은 누가 하는가?</a></p>
<p> <a href="#2.3.">(3)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유효한 경쟁은 가능한가?</a></p>
<p> <a href="#2.4.">(4)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은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a></p>
<p> <a href="#2.5.">(5) 소결</a></p>
<p><a href="#3."><strong>3.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strong></a></p>
<p> <a href="#3.1.">(1) 왜 전국철도노동조합은 민영화 반대만이 아니라 임금인상도 내거는가?</a></p>
<p> <a href="#3.2.">(2)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임금인상 8.1%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a></p>
<p> <a href="#3.2.">(3)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은 불법인가?</a></p>
<p><a href="#4."><strong>4. 결론</strong></a></p>
<p> </p>
<p> </p>
<p>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민영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논쟁은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나뉩니다. 첫째,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주식을 민간에 양도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인가, 둘째,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할 필요가 있는가, 셋째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주로 첫 번째 파트가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민영화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p>
<p> </p>
<p>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만 지적하려고 합니다. 온라인 토론을 보면 ‘팩트’에 경도되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요즘에서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극대화되었다는 느낌은 분명 듭니다. 팩트에 대한 존중은 물론 합리적인 토론 자세입니다. 하지만 팩트에의 경도가 어떠한 추론이나 합리적 의심마저 가로막는 기재로 활용된다면, ‘팩트’라고 부르기 애매한 어떠한 추론이나 논리적 보충도 불가능해지며, 결국 어떠한 결론이나 판단도 불가능해집니다.</p>
<p> </p>
<p>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요구안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2013년 12월 11일을 기점으로 요구사항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1" title="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1211000555&md=20131214004413_AT" id="identifier_88_1"class="identifier">1</a></sup> </p>
<blockquote>
<p>▷ 코레일은 별도 주식회사 설립 결정을 철회<br />
▷ 국토부는 수사발 KTX 주식회사 면허발급을 중단<br />
▷ 여야는 민의에 따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을 위한 소위를 구성<br />
▷ 국민을 위한 철도산업발전을 위해 관련 당사자들이 위한 소위를 구성<br />
▷ 철도공사는 합법파업에 대한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등 노동탄압 중단</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요구안에 임금인상이나 복리후생 등이 빠져 있기 때문에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와 관련된 부분 등만 합의가 되면 임금인상이 없어도 파업은 종결됩니다. 그런데 이런 근거자료에 대해서 “전국철도노동조합이 명시적으로 임금인상이 없어도 파업은 종결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식의 반론이 있습니다.</span></p>
<p> </p>
<p>파업이란 소기의 요구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벌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파업의 정의 자체에 요구사항이 달성되기까지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요구안에 임금인상이 빠진 이상 임금인상 없이도 교섭이 타결될 수 있는 것은 파업의 정의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명시적인 문구만을 요구하는 행위는 팩트에 대해 철저한 것이 아니라 논리에 대해 무지한 것입니다.</p>
<p> </p>
<p>그래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다면 반대로 물을 수 있습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을 하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파업을 종결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p>
<p> </p>
<p>무엇보다 큰 문제는 팩트에의 경도가 도달하는 종착점은 당사자의 발언에 대한 집착이라는 점입니다. 특정한 당사자가 무슨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만 비로소 ‘팩트’가 충족되었다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p>
<p> </p>
<p>팩트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한국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가 민영화는 없다고 발언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민영화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이 한국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의 발언에 어떠한 추론이나 해석도 가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팩트라고 여길 것입니다.</p>
<p> </p>
<p>그러나 여기서 유일한 팩트는 한국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가 민영화는 없다고 발표한 것이지, 민영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자와 후자를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추론이 필요합니다. 한국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의 발언을 신뢰할 수 있다는 추론입니다. 이 추론은 숨겨진 추론이라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p>
<p> </p>
<p>한국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의 발언을 토대로 민영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들 발언의 신뢰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재반론으로, 정부의 말이니 신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습니다.</p>
<p> </p>
<p>정부의 말이니 신뢰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증명되지 않은 사항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이래로 도입되기 시작한 권력분립은 정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경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국가조직이란 개별 관료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 법치주의를 도입하고 있으며, 국가기관 사이의 상호견제와 통제를 핵심적인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p>
<p> </p>
<p>정부의 말이므로 신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법치주의의 역사를 완전 역행하는 꼴입니다.</p>
<p> </p>
<p>정부의 발언을 신뢰할지 말지는 전혀 결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연 자기 발언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p>
<p> </p>
<p>이를 위해 첫째 파트인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주식을 민간에 양도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인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 16px;"><a id="1." name="1."><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1.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주식을 민간에 양도하는 것이 가능한가?</strong></span></a></span></p>
<p> </p>
<p><a id="1.1." name="1.1.">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1)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의 주식양도제한 규정을 통해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 </strong></span></a></p>
<p> </p>
<p>국토교통부는 2013년 7월 11일,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민간매각에 대한 방지대책을 발표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2" title="http://www.molit.go.kr/USR/NEWS/m_71/dtl.jsp?lcmspage=1&id=95072381" id="identifier_88_2"class="identifier">2</a></sup></p>
<p> </p>
<p>여기서 가장 먼저 쟁점이 되는 것은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법률」상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상 지방공기업”에게만 주식양도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정관에 민간매각 제한을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합당한 조치인 것 같지만 현행 상법이 이와 같이 특정 대상에 대한 주식양도를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는지 여부가 문제됩니다.</p>
<p> </p>
<p>흥미로운 점은 국토교통부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아가면서까지 대응을 한 반면, 민간매각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지 않고, 3개 로펌(김앤장, 세종, 한결)의 검토를 받는 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민간매각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한 쟁점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확실히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3개 로펌의 검토의견에 대해서는 뒤에서 후술하겠습니다.</p>
<p> </p>
<p>여하간 정관에 민간매각 제한을 명시하는 것이 상법 위반인지가 문제됩니다. 이는 상법 제335조 제1항 단서가 주식양도의 제한으로 정관을 통한 이사회 승인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이외 추가적인 제한에 대해서는 예정하고 있지 않는 까닭입니다. 더구나 일각에서 제335조 제1항 단서는 투하자금 회수의 자유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sup><a href="#footnote_88_3" title="송옥렬, 상법강의, 제3판, 홍문사, 2013, p. 821." id="identifier_88_3"class="identifier">3</a></sup>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어렵게 됩니다.</p>
<p> </p>
<p>한 번 법조문을 살펴보며 구체적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p>
<blockquote>
<p>상법 제335조 (주식의 양도성) ① 주식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다만, 회사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발행하는 주식의 양도에 관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할 수 있다.<br />
제335조의2 (양도승인의 청구) ① 주식의 양도에 관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경우에는 주식을 양도하고자 하는 주주는 회사에 대하여 양도의 상대방 및 양도하고자 하는 주식의 종류와 수를 기재한 서면으로 양도의 승인을 청구할 수 있다.</p>
</blockquote>
<p>우선 제335조 제1항 단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사회의 승인이라는 절차적 제한 이외에 다른 제한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335조의2 제1항을 보면 주식을 양도하고자 하는 주주는 회사에 대해 양도의 상대방 및 양도하고자 하는 주식의 종류와 수를 정하고 승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p>
<p> </p>
<p>즉 1차적으로 주식을 양도하려는 주주가 양도의 상대방을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정관은 제335조의2 제1항에 규정된 양도의 상대방 선택과 관련된 부분을 사전에 봉쇄해버리려고 합니다. 이는 상법의 명문 조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됩니다.</p>
<p> </p>
<p>다음으로는 대법원의 관련 판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할 판례<sup><a href="#footnote_88_4" title="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48429 판결" id="identifier_88_4"class="identifier">4</a></sup>에서는 당시 주주 간에 설립 후 5년 간 주식양도를 완전히 금지하는 약정이 유효한지 여부가 문제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상법 제335조 제1항 단서 는 주식의 양도를 전제로 하고, 다만 이를 제한하는 방법으로서 이사회의 승인을 요하도록 정관에 정할 수 있다는 취지이지 주식의 양도 그 자체를 금지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정관의 규정으로 주식의 양도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주식양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둘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합니다.</p>
<p> </p>
<p>주식양도에 대한 전면적 금지는 무효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면적 금지가 아닌 부분적 금지인 경우는 어떨까요? 대표적인 판례<sup><a href="#footnote_88_5" title="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7다14193 판결" id="identifier_88_5"class="identifier">5</a></sup>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사실관계는 일정기간 동안 주식을 양도하기 위해서는 주주 전원의 동의를 요하도록 하고, 매수의사가 있는 주주가 우선적으로 매수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주주 간 계약이 유효한지 여부였습니다.</p>
<p> </p>
<p>대법원은 “주주들 사이에서 주식의 양도를 일부 제한하는 내용의 약정을 한 경우, 그 약정은 주주의 투하자본회수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다면 당사자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고 판시합니다. 즉 이와 같은 사실관계로는 투하자본회수 가능성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p>
<p> </p>
<p>마지막으로 소개한 판례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첫째, 판례에서는 주식양도 제한이 일정기간에 불과한 반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의 경우 그러한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둘째, 판례에서는 주주가 우선적으로 매수할 권리를 가질 뿐이기 때문에 주주가 매수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제3자에 대한 매수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반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의 경우 민간매각을 아예 봉쇄해버리고 있습니다. 셋째, 판례는 주주 간 계약이 유효하다고 한 반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는 이러한 내용을 정관에 정했습니다.</p>
<p> </p>
<p>결국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이 유효한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만약 법원이 보기에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정관이 2007다14193 판결의 사실관계와 다르면 무효가 나오는 것이고, 같으면 유효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수서발 KTX의 경우 지분처분을 원천적으로 제한한 것이 아니며, 이사회 승인을 거쳐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헌적 소지가 전혀 없다는 법률적 검토를 완료한 상태”라는 한국철도공사의 발언은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법적으로 엄밀한 의견은 아닙니다.</p>
<p> </p>
<p><a id="1.2." name="1.2.">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2)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결의 요건을 가중시켜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strong></span></a></p>
<p> </p>
<p>설령 정관이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결의를 통해 우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공공부문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이사회의 특별결의(2/3출석, 4/5 찬성)를 거치도록 하여 철도공사 동의 없이는 승인이 불가능”이라고 발표했으며, “매각제한과 관련된 정관내용을 변경할 경우에는 주주총회에서 특별의결(2/3출석, 4/5 찬성)토록 하는 등 정관을 개정한 후 지분을 매각할 것이란 우려에 대하여도 추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합니다.</p>
<p> </p>
<p>한국철도공사도 마찬가지 의견이며, 한국철도공사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지분의 41%를 갖는 한 한국철도공사 동의가 없는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결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p>
<p> </p>
<p>그런데 이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결국 한국철도공사가 동의할 경우 정관 변경과 이사회 승인 모두가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검증을 의뢰한 3개 로펌들 역시 “철도공사의 동의 없이 공공지분이 민간에 매각되는 것을 방지하는 실효적인 방안이며, 현행법상 추가적인 조치를 상정하기 어렵다”라고 대답했습니다.</p>
<p> </p>
<p>정리하자면 한국철도공사의 동의가 있으면 공공지분의 민간매각이 가능하며, 현행법상 한국철도공사의 동의가 있는데도 민간매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가 “민영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한국철도공사의 입장은 생각만큼 견고한 것이 아닌 셈입니다.</p>
<p> </p>
<p>반면, 한국철도공사는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아내겠다”고 했으므로 한국철도공사가 민간매각에 동의할 리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최연혜 사장이 드러눕든 말든 한국철도공사법 제16조에 의하면 국토교통부장관이 한국철도공사에게 업무와 관련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최연혜 사장이 아무리 진심으로 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국토교통부장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p>
<blockquote>
<p>한국철도공사법 제16조 국토교통부장관은 공사의 업무 중 다음 각 호의 사항과 그와 관련되는 업무에 대하여 지도·감독한다.<br />
1. 연도별 사업계획 및 예산에 관한 사항<br />
2. 철도서비스 품질 개선에 관한 사항<br />
3. 철도사업계획의 이행에 관한 사항<br />
4. 철도시설·철도차량·열차운행 등 철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항<br />
5. 그 밖에 다른 법령에서 정하는 사항</p>
</blockquote>
<p>국토교통부장관은 어떠한가요?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 역시 2013년 12월 11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서승환국토교통부장관은 국회에 가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민영화는 없다고 발표했으면서도 막상 민영화 금지 법제화에는 반대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입니다.</p>
<p> </p>
<p>첫째, 2013년 12월 9일에 있었던 제320회 국회 제6차 국토교통위원회 오후 회의에서 간사인 이윤석 민주당 의원은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묻습니다. “첫째, 사회적 합의를 거친 후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둘째, 철도 면허, 지분 매각 등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사항은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정부가 이 정도 합의에 동의한다는데 맞는가?”</p>
<p> </p>
<p>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그런 합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동의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6" title="http://w3.assembly.go.kr/jsp/vod/vod.do?cmd=vod&mc=354&ct1=19&ct2=320&ct3=06" id="identifier_88_6"class="identifier">6</a></sup></p>
<p> </p>
<p>둘째, 2013년 12월 17일에 있었던 제321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위원장인 주승용 민주당 의원은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묻습니다. “파업과 관련해서, 국토교통위원회 내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민영화 금지 관련 논의를 진행하자는 야당의 의견에 찬성하느냐?”</p>
<p> </p>
<p>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소위원회 구성에 반대한다.”고 대답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7" title="http://news1.kr/articles/1455559" id="identifier_88_7"class="identifier">7</a></sup></p>
<p> </p>
<p>만약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이 대국민 담화문 때 밝혔듯이 민영화를 추진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민영화 금지 관련 논의를 진행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한국철도공사의 동의 없이 정관이나 이사회 승인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오로지 국토교통부의 의지에 달려있을 뿐이며, 국토교통부의 진의는 지극히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의지에 달려있는 것만으로는 어떤 보장도 되지 못합니다.</p>
<p> </p>
<p><a id="1.3." name="1.3.">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3) 기타 국토교통부가 주장하는 안전장치들은 어떠한가?</strong></span></a></p>
<p> </p>
<p>국토교통부는 이외에도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주협약에 따라 매각자에게 위약벌이 부과”된다거나 “정부에서 철도사업 면허 부여 시 지분매각은 이사회 승인을 의무화”했다고 설명합니다. 보시다시피 모두 이사회의 승인이 있으면 가능한 구조라서 원천적 차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p>
<p> </p>
<p><a id="1.4." name="1.4.">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4) 법제화를 통해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는가?</strong></span></a></p>
<p> </p>
<p>만약 법률의 명시적 규정을 통해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한다면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실질적인 수단입니다.</p>
<p> </p>
<p>법률을 통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 양도를 차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상법 자체를 개정해서 상법 제335조 제1항에 주식양도의 상대방에 대한 제한도 가능하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상법 자체 개정은 훨씬 더 많은 이론적, 실무적 논의를 필요로 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습니다. 더구나 설령 그렇게 상법이 개정되더라도 여전히 정관 변경이나 이사회 승인을 통한 주식양도는 가능하게 됩니다.</p>
<p> </p>
<p>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에 대한 특별법 제정입니다. 그 특별법에다가 각 지분비율을 명시해놓거나 주식양도의 제한을 정해놓으면 주식양도가 불가능해집니다. 예시를 몇 개 들겠습니다.</p>
<blockquote>
<p>한국철도공사법 제4조(자본금 및 출자) ① 공사의 자본금은 22조원으로 하고, 그 전부를 정부가 출자한다.<br />
한국전력공사법 제4조(자본금) 공사의 자본금은 6조원으로 하되, 정부가 100분의 51 이상을 출자한다.</p>
</blockquote>
<p>보시다시피 이 법들은 정부의 출자비율을 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철도공사의 경우 정부가 100%,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정부가 51%를 출자하며 적어도 그 선에서는 지분율이 보장됩니다. 물론 이러한 규정들이 지분 양도 자체를 원천 금지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출자 당시에만 그 정도의 비율을 지키면 되는 것이지 그 이후에도 저 지분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갈릴 수는 있다는 것이지요.</p>
<p> </p>
<p>만약 그런 해석상의 문제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면 별도 규정을 통해 주식의 민간매각 금지 조항을 두면 됩니다. 그러면 이 조항이 상법에 대한 특별법의 성격을 지니게 되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주식이 한국철도공사나 국토교통부의 의지만으로 민간에 매각될 가능성은 사라진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p>
<p> </p>
<p>결국 법률 등을 통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매각을 금지한다면 민간매각 방지조치를 충실히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p>
<p> </p>
<p>법제화에 관해 한동안 온라인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민간매각 법제화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주장은 한 번도 지상파에서 소개된 적도 없고, 어떠한 정부 각 부처 발표문이나 한국철도공사 성명, 각 정당들의 공식 보도 등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의 실체는 무엇인가요?</p>
<p> </p>
<p>바로 몇 개의 신문기사입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연합뉴스 기사였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8" title="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2/09/0200000000AKR20131209091500001.HTML?from=search" id="identifier_88_8"class="identifier">8</a></sup></p>
<blockquote>
<p>“국토위는 여야 간사 합의를 통해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공공 지분을 민간에 매각할 수 없도록 운영회사 정관이 아닌, 법령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그리고 아주경제 등이 이 기사를 재생산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9" title="http://www.ajunews.com/view/20131209145409990" id="identifier_88_9"class="identifier">9</a></sup></span></p>
<blockquote>
<p>“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야 간사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 공공 지분의 민간 매각 금지 방안을 운영회사 정관이 아니라 법령에 명문화하도록 합의했다.”</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기사들은 2013년 12월 9일에 있었던 제320회 국회 제6차 국토교통위원회 오전 회의에 근거합니다.</span></p>
<p> </p>
<p>당시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인 주승용 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 여야 간사(강석호 새누리당 의원, 이윤석 민주당 의원) 간에 민간매각과 관련해서는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기로 했다”고 발언을 합니다. 이 발언을 근거로 기사들이 생산된 것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6" title="http://w3.assembly.go.kr/jsp/vod/vod.do?cmd=vod&mc=354&ct1=19&ct2=320&ct3=06" id="identifier_88_6"class="identifier">6</a></sup></p>
<p> </p>
<p>그러나 앞서 보셨다시피 이런 합의는 연이어 오후에 있었던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반박됩니다. 여야 간사 중 한 명인 이윤석 민주당 의원이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에게 했던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p>
<p> </p>
<p>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이윤석 민주당 의원은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묻습니다. “첫째, 사회적 합의를 거친 후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둘째, 철도 면허, 지분 매각 등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사항은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정부가 이 정도 합의에 동의한다는데 맞는가?”</p>
<p> </p>
<p>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그런 합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동의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p>
<p> </p>
<p>일각에서는 이윤석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합의와, 앞서 오전에 제출되었던 여야 간사 합의가 다른 합의이므로 여야 간사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야당 간사가 하루(12월 9일)만에 여야 간사 합의 따로, 여야와 정부까지 포괄하는 합의 따로, 총 2개의 합의를 진행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오전 회의에서 주승용 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합의와, 오후 회의에서 이윤석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합의는 같은 것입니다.</p>
<p> </p>
<p>결정적으로 이윤석 민주당 의원은 그 다음 날인 2013년 12월 10일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재차 확인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11" title="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121011370822174&outlink=1" id="identifier_88_11"class="identifier">11</a></sup></p>
<blockquote>
<p>“국토위 야당 간사인 이윤석 의원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어제(9일) 국토위에서 이번 파업 중단하고 여야정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와 여당 반대로 좌절됐다”며 “정부는 무엇이 부족해서 이사회 일정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하지만 국토교통위원회 여야 간사 사이에 대화가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법제화에 대한 이야기는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야기일 뿐이지, 서류화된 것도 아니고 명문화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합의'라는 형태의 구체적인 의사 확인이 있는지도 불분명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12" title="http://www.ytnradio.kr/program/?f=2&id=27683&s_mcd=0263&s_hcd=01" id="identifier_88_12"class="identifier">12</a></sup></span></p>
<p> </p>
<p>여기에 더해 아까 보았듯이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2013년 12월 17일에 있었던 국회 제321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재차 법제화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회의는 여야 간 의사진행 순서에조차 합의를 보지 못해 정회됩니다.<sup><a href="#footnote_88_13" title="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18004014" id="identifier_88_13"class="identifier">13</a></sup></p>
<p> </p>
<p>몇 가지를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민주당 내에서는 민간매각 금지 법제화 추진이 상당한 호응을 얻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당내 공식적인 입장인지 등은 불투명합니다. 새누리당은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석호 의원이 법제화 추진에 찬성한다는 것은 확인이 되지만 나머지 의원들이 어떠한지는 훨씬 더 불확실합니다. 때문에 법제화에 ‘여야 합의’가 되었다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p>
<p> </p>
<p>물론 국토교통부장관의 동의가 없어도 국토교통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를 만들고, 민간매각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철도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토교통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여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p>
<p> </p>
<p><a id="1.5." name="1.5.">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5)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은 무엇인가?</strong></span></a></p>
<p> </p>
<p>관련하여 2013년 12월 18일, 철도산업의 민간매각 금지를 법제화하는 철도사업법 일부개정안이 변재일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14" title="http://likms.assembly.go.kr/bill/jsp/BillDetail.jsp?bill_id=PRC_M1H3Z1Y2R1V8D1S7A5L0W0O6M1F0L1" id="identifier_88_14"class="identifier">14</a></sup></p>
<p> </p>
<p>제안자 명단을 보니 11명 모두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 마련은 없었음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반증이라고 봅니다. 해당 법률안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p>
<blockquote>
<p>철도사업법 제5조(면허 등) ③ 철도사업의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자는 법인으로 하며, 해당법인의 소유권은 공공부문(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상의 지방공기업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갖는다.</p>
</blockquote>
<p>기존에는 공공부문이 갖는다는 구절이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강한 개정안이 나온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만이 아니라 다른 철도 부문 민영화도 당분간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는 민간매각 이외에도 상당부분 문제가 있습니다. 여하간 과연 국토교통부와 여당이 이 개정안을 수용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민영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p>
<p> </p>
<p>하지만 새누리당은 끝끝내 이런 입법화를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법제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 본인이 돌연 입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15" title="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219_0012605015&cID=10301&pID=10300" id="identifier_88_15"class="identifier">15</a></sup></p>
<blockquote>
<p>새누리당 국토위원회 간사인 강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각종 철도 면허라는 것은 입법사항이나 정치적 논의 사항이 아니다”라며 “시장참여가 본질이고 공익을 고려한 행정부의 재량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br />
그러면서 “면허를 내주면서 면허 대상에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만 인정한 입법 사례는 없었다”며 “만약 철도 분야 사례를 인정한다면 모든 공기업에 일반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큰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br />
강 의원은 또 “면허를 주면서 공공자금만 유치하고 국가 이외의 민간 투자를 원천적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으로 한다면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된다”며 “특히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청의 고유권한인 면허에 대해 국회의 사전 심의를 거치는 거는 입법부 권한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라고 말했다.</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워낙 중요한 말들이 많아서 길게 인용했습니다. 여기서 철도 면허는 입법사항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철도사업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span></p>
<blockquote>
<p>철도사업법 제5조(면허 등) ① 철도사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국토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국토교통부장관은 철도사업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부담을 붙일 수 있다.<br />
② 제1항에 따른 면허를 받으려는 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업계획서를 첨부한 면허신청서를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br />
③ 철도사업의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자는 법인으로 한다.</p>
</blockquote>
<p>보시다시피 이미 법인에 한하여 철도사업의 면허를 받을 수 있다든가 하는 부분은 입법적으로 규제가 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법적인 규제를 추가하고 말고는 국회와 정부가 정하기 나름이지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p>
<p> </p>
<p>하지만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은 철도사업의 시장참여가 본질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고, 심지어 이를 금지하는 입법을 하면 나머지 공기업에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번에 법으로 철도 민영화를 금지하면, 추후 다른 공기업 민영화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강석호 의원은 이런 발언을 나름 반대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공공부문 민영화를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싶습니다.</p>
<p> </p>
<p>다음으로 강석호 의원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위반 여부 발언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선 해당 발언은 그 자체로는 부정확한 발언입니다. 자유무역협정은 각 국가마다 맺는 방식이 다른데 정확히 어떤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 위반인지, 혹은 전부 위반인지 등을 명확히 했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GATT나 WTO 관련 국제조약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여하간 본질은 이런 식으로 민간매각을 금지하는 법안이 WTO-FTA 체제에 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무척 인상적인 발언입니다.</p>
<p> </p>
<p>관련해서 보다 구체적인 발언이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인 김태흠 의원의 발언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16" title="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792752&g_menu=050200&rrf=nv" id="identifier_88_16"class="identifier">16</a></sup></p>
<blockquote>
<p>김 의원은 민주당의 법안이 한미 FTA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면허를 통해 공공 자금 만을 유치하는 것은 FTA에 부합하나 입법을 통해 국가 외의 투자를 원천 제한하는 것은 FTA 위배”라고 지적했다.</p>
<p>그는 “한미 FTA 상 2005년 6월 30일 이후 건설된 노선은 원칙적으로 개방 가능하다”며 “입법을 통해 자본 참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면 기 개방된 제도를 폐쇄하는 것이므로 역진 방지 조항에 위배돼 FTA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p>
<p>김 의원은 위헌 소지도 지적했다. 그는 “면허는 자유로운 신청과 참여가 본질이나 신규 사업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하게 차별하고 입법으로 공공 독점을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공공 부분 외 철도사업자에 대한 진입을 차단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 위배”라고 말했다.</p>
</blockquote>
<p>우선 간단한 부분인 위헌 소지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김태흠 의원은 면허가 자유로운 신청과 참여를 본질로 한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입니다. 행정법상 면허는 강학상 허가 혹은 강학상 특허 둘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전자의 경우 김태흠 의원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국가에 의한 훨씬 강력한 제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공 독점을 하더라도 반드시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p>
<p> </p>
<p>그렇다면 철도사업면허는 강학상 허가에 해당하느냐, 강학상 특허에 해당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 구별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강학상 허가란 통상 금지된 자유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해석하는 반면, 강학상 특허란 새로운 권리를 설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조차 강학상 특허로 보는 현행법의 체계상 철도사업면허는 더 따질 것도 없이 강학사 특허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p>
<p> </p>
<p>다음 부분이 보다 까다롭습니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다음부터 “한미FTA”) 위반 여부입니다. 김태흠 의원이 문제삼는 한미FTA 부분을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부속서 I (서비스/투자) 대한민국의 유보목록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17" title="http://www.fta.go.kr/korus/img/pdf/kor/k69.pdf" id="identifier_88_17"class="identifier">17</a></sup></p>
<blockquote>
<p>유보내용: 국경간 서비스무역</p>
<p>한국철도공사만이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p>
<p>경제적 수요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p>
</blockquote>
<p>이 유보내용은 철도운송 및 부수 서비스에 대해 대한민국이 한미FTA 제12.4조를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미FTA 제12.4조가 독점, 쿼터제 등을 금지하는 조항이므로, 제12.4조를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는 철도운송 및 부수 서비스에 대해 한미FTA 발효 이후에도 여전히 시장진입 장벽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p>
<p> </p>
<p>여기서 쟁점은 대한민국이 어떤 방식으로 이 유보조항을 적용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김태흠 의원은 해당 유보목록에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이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면허를 통한 제한만이 가능하고, 입법적 제한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입법적 제한이 개방된 제도의 폐쇄를 뜻하므로 한미FTA에 위배된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p>
<p> </p>
<p><span style="line-height: 1.6em;">그런데 우선 이 유보내용이 정말 </span><span style="line-height: 1.6em;">“개방된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유보내용은 한미FTA의 적용을 일정부분 배제하겠다는 의미라서, 오히려 이 유보내용의 의의는 한미FTA에도 불구하고 철도운송 및 부수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정당화하는</span><span style="line-height: 1.6em;"> 것이라고 평가해야 합니다.</span></p>
<p> </p>
<p>다음으로 면허를 통해서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입법적으로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타당한지 검토해봐야 합니다. 사실 김태흠 의원은 위계를 달리하는 두 가지 사항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면허는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수단’입니다. 입법은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단계’입니다.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p>
<p> </p>
<p>설령 철도사업법을 개정해서 법 안에 민간 참여 금지 조항을 넣더라도,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수단은 여전히 면허입니다. 민주당의 개정안을 보시면 알겠지만 법에다가 민간이 참여할 수 없다는 면허 발급의 요건을 정하고 있을 뿐, 여전히 수단 자체는 면허입니다.</p>
<p> </p>
<p>김태흠 의원의 말대로 면허에 의한 민간 참여 금지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는 “민간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어느 단계에선가는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단계가 정부의 지침이 될 수도 있고, 국토교통부장관의 명령일 수도 있습니다. 면허에 의해 민간 참여를 금지시키더라도 여전히 명령이든 지침이든 별도의 판단 과정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p>
<p> </p>
<p>그렇다면 정부 지침이나 장관 명령의 단계로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허용되고, 입법으로 민간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요? 일관성이 없는 논리입니다.</p>
<p> </p>
<p><a id="1.6." name="1.6.">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6) 소결</strong></span></a></p>
<p> </p>
<p>여태까지 살펴보신 것과 같이 국토교통부에서 내놓은 안전장치라는 것들은 모두 이사회의 동의가 있거나 정관의 변경이 있으면 무력화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비추어 봤을 때, 국토교통부가 민간매각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입니다. 정관 규정은 그나마도 상법과 충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정관 변경이 없어도 민간매각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p>
<p> </p>
<p>즉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안전장치로 민간매각을 방지하기 어렵습니다.</p>
<p> </p>
<p>가장 실질적인 방안은 법제화 밖에 없는데 국토교통부에서 반대하고 있으며, 여야 사이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적도 없으며, 민주당이 발의한 철도사업법 일부개정안만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반대 의사를 명백히 표한 상태입니다. 아직 불투명한 부분이 산재해 있음에도 현재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는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에 대한 면허 발급을 진행하는 등 속도를 내는 중입니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 16px;"><a id="2." name="2."><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2.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할 필요가 있는가?</strong></span></a></span></p>
<p> </p>
<p><a id="2.1." name="2.1.">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1) 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하려고 하며, 이는 타당한가?</strong></span></a></p>
<p> </p>
<p>국토교통부가 2013년 6월 26일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보면 한국철도공사의 비효율적인 사업구조로 인한 부채 누적을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와의 경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두려는 주된 이유입니다 .</p>
<p> </p>
<p>그런데 국토교통부의 자료에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05년이래 4.5조원 재정지원에도 연간 5천억원 이상 적자 지속”라는 표현이 있으나 한국철도공사는 2011년 이전에 흑자를 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2010년 총포괄손익 5,007억원 이상, 2011년 총포괄손익 4,275억원 이상의 흑자를 보던 상태였습니다. 매년 적자가 지속되었다는 표현은 한국철도공사 공시 재무상태표에 반하는 셈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영업이익과 관련해서 적자가 매년 났다는 말은 맞지만 한국철도공사가 영업외 손익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총포괄손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sup><a href="#footnote_88_18" title="http://info.korail.com/2007/kra/ope/ope10000/w_ope14006.jsp" id="identifier_88_18"class="identifier">18</a></sup></p>
<p> </p>
<p>더구나 한국철도공사가 떠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나 적자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sup><a href="#footnote_88_19" title="http://www.alio.go.kr/alio/information/debt/p_de_05_01_list.jsp?org_code=C0268" id="identifier_88_19"class="identifier">19</a></sup> 등에 의하더라도 기존 경부고속철도 건설비 4.5조원, 철도망 확충에 따른 철도차량구입비 2.5조원에서 기인하는 등 비효율적인 운영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철도망 확대 정책에 의한 것입니다.</p>
<p> </p>
<p>이러한 부분과 관련된 적자나 부채는 공공사업 시행 도중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법 제12조에 따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줘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경영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p>
<blockquote>
<p>한국철도공사법 제12조(보조금 등) 국가는 공사의 경영 안정 및 철도 차량·장비의 현대화 등을 위하여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예산의 범위에서 사업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거나 재정자금의 융자 또는 사채 인수를 할 수 있다.</p>
</blockquote>
<p>이외에도 한국철도공사는 2009년 9월 17일, 민자사업단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수익성 악화로 운행이 힘들어진 인천국제공항철도를 1.2조원에 인수한다든가, 용산 개발이 무산되는 등의 요인으로 부채가 3.7조원 가량 더욱 누적되었습니다. 이들 역시 철도의 운영 자체와는 무관한 부분들입니다.</p>
<p> </p>
<p>더구나 애당초 정부는 한국철도공사의 자본금 22조원 전부를 출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9.5조원만을 출자해서 부채비율을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즉 우선 정부의 출자의무부터 마무리가 된 다음에 재정 상태를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모든 책임을 한국철도공사에게 돌리는 꼴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20" title="http://info.korail.com/2007/kra/ope/ope10000/w_ope14008.jsp" id="identifier_88_20"class="identifier">20</a></sup></p>
<p> </p>
<p>이외에도 한국철도공사의 국제신용등급이 낮아서 채권 발행 등이 어렵다는 주장이 있으나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입니다. 여전히 한국철도공사의 신용등급은 높게 평가됩니다. 2012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Moody’s에서 A1 등급, S & P에서 A+ 등급을 줬으며<sup><a href="#footnote_88_21" title="http://info.korail.com/2007/kra/ope/ope10000/w_ope17011.jsp" id="identifier_88_21"class="identifier">21</a></sup> Moody’s는 한국철도공사 채권에 대해 2013년 11월, A1등급을 매겼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22" title="http://news1.kr/articles/1421990" id="identifier_88_22"class="identifier">22</a></sup></p>
<p> </p>
<p>결정적으로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에서 파악하는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적 어려움의 원인이 다릅니다. 2013년 12월 9일 있었던 제320회 국회 제6차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당시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은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과 김영래 한국철도공사 부사장에게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적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p>
<p> </p>
<p>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지만 그 중에 독점화에 따른 비효율,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은 임금 등이 있다”고 답변한 반면 김영래 한국철도공사 부사장은 “공사로 넘어올 당시의 건설부채 4.5조원, 공항철도 관련 1.2조원, 용산 사업 무산 등”을 들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는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 자회사로 추진하기에 앞서 한국철도공사 부채 원인부터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p>
<p> </p>
<p><a id="2.2." name="2.2.">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2)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경영은 누가 하는가?</strong></span></a></p>
<p> </p>
<p>국토교통부는 철도산업 발전방안 주요 질의 답변에서 “12. 연기금이 최대 출자자로서 경영간섭 가능성?”에 대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투자는 국공채 수준의 적정 수익확보가 목적이며, 경영간섭의 사례가 없”으며 “수서발 KTX는 철도공사 책임하에 운영”한다며 관련 논란을 일축했습니다.</p>
<p> </p>
<p>그러나 같은 문서에서 국토교통부는 “16. 수서발 운영사가 철도공사로부터 독립적 경영이 가능한지?”에 대해 “출자회사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하여 철도공사의 경영지배를 제한하고, 연기금 등 기타 출자사에 감사 추천권을 주어 견제하는 방안 검토”라고 말해 여전히 연기금 등의 경영 참여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될지는 아직도 혼선이 있는 상태인 셈입니다.</p>
<p> </p>
<p><a id="2.3." name="2.3.">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3)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유효한 경쟁은 가능한가?</strong></span></a></p>
<p> </p>
<p>유효한 경쟁이 가능할지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대체로 “별도 철도사업자로 기능”, “회계와 경영의 분리” 등 지극히 규범적이고 원론적인 답변들을 위주로 내놓습니다. 그나마 실질적인 방안과 관련된 것은 “우수 운영자에게 Peak-time 운행 확대, 선로배분 추가, 선로사용료 할인 등”을 제공해서 경쟁을 촉진한다는 것입니다.</p>
<p> </p>
<p>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애당초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이용객과 서울역이나 용산역 이용객이 다르기 때문에 유효한 경쟁은 어렵다는 의견이 존재합니다. 윤영진 계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발언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23" title="http://www.ytnradio.kr/program/?f=2&id=27672&s_mcd=0214&s_hcd=01" id="identifier_88_23"class="identifier">23</a></sup></p>
<blockquote>
<p>“제가 보건데 아마 서울 강남지역이나 아니면 경기도 동남부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코레일 쪽의 요금이 싸더라도 서울역으로 안 가고 아마 수서발 KTX를 이용하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하면 순수한 경쟁시스템이라고 보기 어렵죠”</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이와 관련하여 국토교통부는 적절한 반박 보도자료나 성명서를 낸 적이 없습니다.</span></p>
<p> </p>
<p><a id="2.4." name="2.4.">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4)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 시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은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strong></span></a></p>
<p> </p>
<p>한국철도공사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KTX 노선 중 일부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로 넘어감에 따라 한국철도공사의 운영 수입이 줄어들 예정인데, 과연 한국철도공사는 어떻게 부채와 적자를 만회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 개통초기 서울‧용산역발 수요의 일부(10 수준)가 수서로 이전될 가능성” 자체는 인정합니다.</p>
<p> </p>
<p>다만 향후 철도수요 전체가 “(‘10) 서울‧용산 11.3만명/일 → (’16) 서울‧용산 12.5만, 수서 7.8만”과 같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는 의견입니다.</p>
<p> </p>
<p>하지만 국토교통부가 2009년 발표한 주요역별 이용승객현황을 보면 서울역의 일일 KTX 승하차인원은 52,103명이고, 용산역의 일일 KTX 승하차인원은 11,342명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24" title="http://www.mltm.go.kr/USR/policyData/m_34681/dtl.jsp?search=주요역별&srch_dept_nm=&srch_dept_id=&srch_usr_nm=&srch_usr_titl=Y&srch_usr_ctnt=&search_regdate_s=&search_regdate_e=&psize=10&s_category=p_sec_10&p_category=&lcmspage=1&id=435" id="identifier_88_24"class="identifier">24</a></sup> 이들 모두를 합해도 7만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2010년에 철도수요가 11.3만명으로 올라간 것은 납득하기 힘들고, 해당 수치들이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 명시적으로 밝혀야지 검증이 가능할 것입니다.</p>
<p> </p>
<p>설령 국토교통부의 예측대로 수요가 증가할지라도 문제입니다. 만약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로 분리시키지 않는다면, 수서발 KTX도 한국철도공사가 관리할 것이고, 그 수요로 인한 운영이익은 모두 한국철도공사에게 귀속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하는 것은 한국철도공사의 수익을 줄였으면 줄였지 늘리지는 않는 셈입니다.</p>
<p> </p>
<p>국토교통부는 이외에도 “수서발 KTX의 차량정비, 임대 등에서 추가수입 발생”을 들고 있으나 차량정비 등을 이원화하는 체제는 추가수입을 발생시킬지는 몰라도 사고 위험을 키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듭니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1년 전 직접 밝힌 의견이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25" title="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14730.html" id="identifier_88_25"class="identifier">25</a></sup></p>
<blockquote>
<p>“복잡한 기계와 설비, 여러 사람의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야 안전이 담보되는 철도의 특성상 운영기관 다원화는 사고 위험을 키우기 때문이다.”</p>
</blockquote>
<p><span style="line-height: 1.6em;">국토교통부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방안인 “적자선 개방, 물류부문 적자감축, 차량‧시설부문 비용절감 등”은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설립과는 직접적 관련은 없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적자선 개방이란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따를 때 “수익성 등을 이유로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하는 적자선에 대해서는 철도서비스 유지를 위해 민간참여 허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철도 민영화 그 자체입니다.</span></p>
<p> </p>
<p>민영화에 대한 부작용과는 별개로 과연 적자선의 민영화가 가능하긴 한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민영화를 한다면 민간회사의 특성상 노선 감축과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인데, 노선 감축과 요금 인상을 정부 측에서 억제한다면 민간회사는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정부에게 인수를 요청하게 될 것입니다. 유사한 사례로 민간회사가 운영하던 공항철도가 적자를 내자 결국 한국철도공사가 이를 인수하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26" title="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402009013" id="identifier_88_26"class="identifier">26</a></sup></p>
<p> </p>
<p><a id="2.5." name="2.5.">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5) 소결</strong></span></a></p>
<p> </p>
<p>결국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해야 할 만큼 한국철도공사의 운영이 비효율적이라고 보기 힘들며, 설령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하더라도 그로 인해 경쟁이 가능하거나 한국철도공사의 재무 상태가 나아지리라는 예측을 하기는 힘듭니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 16px;"><a id="3." name="3."><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3.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strong></span></a></span></p>
<p> </p>
<p><a id="3.1." name="3.1.">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1) 왜 전국철도노동조합은 민영화 반대만이 아니라 임금인상도 내거는가?</strong></span></a></p>
<p> </p>
<p>일각에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임금인상 8.1%를 요구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이번 파업은 “임금인상을 위해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sup><a href="#footnote_88_27" title="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838504&cp=nv" id="identifier_88_27"class="identifier">27</a></sup></p>
<p> </p>
<p>그러나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5호가 당연히 예정하고 있는 형태의 노동쟁의입니다. 때문에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파업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건 노동3권과 단체행동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p>
<blockquote>
<p>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정의)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p>
</blockquote>
<p>물론 철도는 중요한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전면파업을 하게 되면 일상생활에 지나치게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려를 방지하고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필수유지업무를 지정하여,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준수하라고 규정합니다.</p>
<blockquote>
<p>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2조의2(필수유지업무에 대한 쟁위행위의 제한) ②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로서 이를 행할 수 없다.</p>
</blockquote>
<p>전국철도노동조합은 이 필수유지업무를 준수하며 파업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p>
<p> </p>
<p><a id="3.2." name="3.2.">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2)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임금인상 8.1%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strong></span></a></p>
<p> </p>
<p>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산정한 임금인상 8.1%는 물가상승률, 업무강도 등을 고려해서 노동조합 측에 가장 유리하게 잡은 수치입니다.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한 주장을 합니다. 이런 현상을 부정한다는 것은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입니다.</p>
<p> </p>
<p>왜 정부 가이드라인인 2.8%보다 높은 수준으로 잡았느냐는 비판은 그래서 일리가 없습니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는 방법을 취하게 됩니다. 같은 원리로 한국철도공사 또한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낮은 임금인상 0%, 즉 임금 동결을 내걸었습니다. 양 측 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수치를 내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된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양 측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수치를 두고 협상을 벌여가며 중간 정도에서 합의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p>
<p> </p>
<p>그럼에도 평균임금 6,000만원 받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 노동자들의 평균근속년수는 19년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28" title="http://www.alio.go.kr/alio/public/p_ma_06_00_list.jsp?org_code=C0268" id="identifier_88_28"class="identifier">28</a></sup> 단순하게만 계산하자면 19년차 노동자의 임금이 6,0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6,000만원이 19년차 노동자의 평균임금 치고 많은 편이라고 함부로 말하기는 힘듭니다.</p>
<p> </p>
<p>참고로 신입사원의 초임은 2013년 기준 2,594만원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29" title="http://www.alio.go.kr/alio/public/p_ma_06_01_list.jsp?org_code=C0268" id="identifier_88_29"class="identifier">29</a></sup></p>
<p> </p>
<p>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2013년 12월 11일자로 임금인상을 요구안에서 뺐기 때문입니다.<sup><a href="#footnote_88_1" title="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1211000555&md=20131214004413_AT" id="identifier_88_1"class="identifier">1</a></sup></p>
<blockquote>
<p>▷ 코레일은 별도 주식회사 설립 결정을 철회<br />
▷ 국토부는 수사발 KTX 주식회사 면허발급을 중단<br />
▷ 여야는 민의에 따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을 위한 소위를 구성<br />
▷ 국민을 위한 철도산업발전을 위해 관련 당사자들이 위한 소위를 구성<br />
▷ 철도공사는 합법파업에 대한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등 노동탄압 중단</p>
</blockquote>
<p> </p>
<p><a id="3.3." name="3.3."> <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3)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은 불법인가?</strong></span></a></p>
<p> </p>
<p>문제는 이렇게 임금인상이 빠진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정한 노동쟁의의 정당한 목적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판례는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권에 관한 사항’을 노동쟁의의 정당한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영권에 관한 사항’과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양자택일적으로 파악하는 판례의 견해를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p>
<p> </p>
<p>판례에 따르면 자회사 설립과 같은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것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나 합리적 이유 없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그 실시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쟁의행위에 나아간다면, 비록 그 실시로 인하여 근로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그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sup><a href="#footnote_88_31" title="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도11030 판결" id="identifier_88_31"class="identifier">31</a></sup>습니다.</p>
<p> </p>
<p>예컨대 판례는 구조조정도 경영상 결단이기 때문에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해고 유무가 달려있는 문제가 단지 경영상 결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현실과 너무 유리되어 있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에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경영상 결단이더라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당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판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p>
<p> </p>
<p>여하간 현재 판례의 태도에 따른다면 자회사 설립 등의 철회를 주된 사항으로 요구하는 파업은 목적의 정당성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그 파업이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법’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현행법상 ‘불법 파업’이라는 말은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위 ‘불법 파업’이라고 하는 것들은 목적의 정당성이나 수단의 정당성 등을 결여했기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뜻합니다.</p>
<blockquote>
<p>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br />
제4조(정당행위)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p>
</blockquote>
<p>즉 설령 목적이 정당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별개 범죄행위를 구성하거나 손해배상의 요건을 갖췄을 때에야 비로소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관련해서 한국철도공사는 조합원 일부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습니다.</p>
<p> </p>
<p>그러나 대법원은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고,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sup><a href="#footnote_88_32" title="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판결" id="identifier_88_32"class="identifier">32</a></sup>고 판시해서 목적의 정당성을 결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p>
<p> </p>
<p>그렇다면 설령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임금인상을 제외한 자회사 설립 철회만을 내걸어 그 목적이 현행법상 정당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업무방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번 파업은 수차례 예고되었으며, 필수업무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등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아니라서 반드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 16px;"><a id="4." name="4."><span style="color: rgb(178, 34, 34);"><strong>4. 결론</strong></span></a></span></p>
<p> </p>
<p>살펴보았듯이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 주식의 민간매각을 실질적으로 차단하기는 힘든 상태이며,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도로 설립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조차 상당부분 의심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파업 역시 업무방해죄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p>
<p> </p>
<p>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민간매각이냐 민영화냐는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민간이 공공부문을 경영할 경우 공공성이 아니라 이익창출이 제1의 목적이 되고, 그 과정에서 공공성이 희생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민간회사가 공공성을 최우선에 두고 전기나 가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민영화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민간회사가 공공성을 최우선에 둔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겠지요.</p>
<p> </p>
<p>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바꿔 말해 설령 정부나 기타 공기업이 지분을 100% 가지고 있더라도, 해당 기업이 공공성이 아닌 이익창출을 제1의 목적으로 내세우면 아무리 민간 자본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공공성이 후퇴하는 결과는 마찬가지이게 됩니다.</p>
<p> </p>
<p>무슨 말이냐면, 설령 정부의 말대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에 민간 자본이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운영에 있어 민간회사와 다를 게 없다면 민간 자본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철도산업 발전방안 주요 질의 답변에서 “14. 출자회사는 공공기관인지?”라는 질문에 대해 공공기관 지정은 가능하지면 “공공기관 지정시 경영계획, 평가 등에 대한 규제를 받게 되어 효율성이 약화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 필요”라고 답했습니다.</p>
<p> </p>
<p>공공기관이 되면 각종 규제를 받으므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받는 규제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입니다.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공공성보다는 이익창출을 더 우위에 두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p>
<p> </p>
<p>그렇다면 아무리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에 민간 자본 참여가 없다고 해도 하는 행동은 민간회사와 다를 게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의 경영을 본받아 한국철도공사의 경영체질 역시 개선하겠다는 것은 결국 한국철도공사 역시 공공성을 후퇴시키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p>
<p> </p>
<p>민간매각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떠나 수서발 KTX 운영주식회사를 별개 자회사로 설립하는 것이 문제인 까닭입니다.</p>
<p> </p>
<p>----------------------------------</p>
<p>2013. 12. 20. 1:01</p>
<p>몇 가지 비문과 오타 등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내용상 변화는 없습니다.</p>
<p> </p>
<p>----------------------------------</p>
<p>2013. 12. 20. 2:58</p>
<p>한국철도공사 신용등급평가 기준일은 2012년 12월 31일이었는데 실수로 2013년 12월 31일이라고 써서 수정했습니다.</p>
<p>이외 몇 가지 비문과 오타 등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p>
<p> </p>
<p>----------------------------------</p>
<p>2013. 12. 20. 6:12</p>
<p>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2013년 12월 18일 철도산업의 민간매각을 금지하는 철도사업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대표발의한 사실이 확인되어 관련 내용을 수정했습니다.</p>
<p> </p>
<p>----------------------------------</p>
<p>2013. 12. 20. 14:45</p>
<p>법제화 논의가 계속 갱신되어 목차를 분리했습니다.</p>
<p> </p>
<p>----------------------------------</p>
<p>2013. 12. 21. 00:54</p>
<p>FTA 관련 부분과 결론 부분을 추가했습니다.</p>
<p> </p>
<p>----------------------------------</p>
<p>2013. 12. 21. 19:37</p>
<p>FTA 관련 부분에서 새누리당 측 의견이 추가되어 이를 반영했습니다.</p>
<p> </p>
<p>----------------------------------</p>
<p>2013. 12. 24. 2:35</p>
<p>부채와 관련해서 국토교통부의 자료는 호남고속철 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나타난 부분으로 대체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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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footnotes"><ol><li id="footnote_88_1">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1211000555&md=20131214004413_AT<a href="#identifier_88_1"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2">http://www.molit.go.kr/USR/NEWS/m_71/dtl.jsp?lcmspage=1&id=95072381<a href="#identifier_88_2"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3">송옥렬, 상법강의, 제3판, 홍문사, 2013, p. 821.<a href="#identifier_88_3"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4">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48429 판결<a href="#identifier_88_4"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5">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7다14193 판결<a href="#identifier_88_5"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6">http://w3.assembly.go.kr/jsp/vod/vod.do?cmd=vod&mc=354&ct1=19&ct2=320&ct3=06<a href="#identifier_88_6"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7">http://news1.kr/articles/1455559<a href="#identifier_88_7"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8">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2/09/0200000000AKR20131209091500001.HTML?from=search<a href="#identifier_88_8"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9">http://www.ajunews.com/view/20131209145409990<a href="#identifier_88_9"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10">http://w3.assembly.go.kr/jsp/vod/vod.do?cmd=vod&mc=354&ct1=19&ct2=320&ct3=06<a href="#identifier_88_10"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11">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121011370822174&outlink=1<a href="#identifier_88_11"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12">http://www.ytnradio.kr/program/?f=2&id=27683&s_mcd=0263&s_hcd=01<a href="#identifier_88_12"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13">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18004014<a href="#identifier_88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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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footnote_88_21">http://info.korail.com/2007/kra/ope/ope10000/w_ope17011.jsp<a href="#identifier_88_21"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22">http://news1.kr/articles/1421990<a href="#identifier_88_22"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23">http://www.ytnradio.kr/program/?f=2&id=27672&s_mcd=0214&s_hcd=01<a href="#identifier_88_23" class="backToTextAnchor"><img src="/plugins/../jplugins/CKEditor/images/icon_footnote_backtotext.gif" alt="텍스트로 돌아가기" /></a></li><li id="footnote_88_24">http://www.mltm.go.kr/USR/policyData/m_34681/dtl.jsp?search=주요역별&srch_dept_nm=&srch_dept_id=&srch_usr_nm=&srch_usr_titl=Y&srch_usr_ctnt=&search_regdate_s=&search_regdate_e=&psize=10&s_category=p_sec_10&p_category=&lcmspage=1&id=435<a href="#identifier_88_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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