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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 승재샘에게

십여 년만에 샘의 연락을 받고 집안을 둘러보니, 샘이 기억하는 십이삼년 전의 제 흔적이 아무데도 없군요. 딱 떠오른 것이 "X세대 다시 읽기"인가? 그 책이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작년 봄 이사를 하면서 책 여러 권을 버렸고, 수십 권은 아직도 상자 안에 들어있으니, 어딘가 남아있거나, 혹은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등학교 몇학년 때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달간 QT를 하던 노트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어요. 어머니에게 빼앗긴(?) 기억은 나는데, 돌려받았는지 어쨌는지.

 

교회 출입문 앞에 넣어두고 오가며 들러서 글을 끄적이던 공책은 아직 교회에 남아있을지 어떨지 모르겠고.

 

제 블로그와 선생님의 홈피에 남기신 글들을 보며, 저는 많이 변했고 선생님은 여전하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보시기엔 저 역시 여전한가봅니다. 어쨌든 여전하신 선생님께, 힘들어 보이는 선생님께 뭔가 으쌰으쌰 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것은 없고.

 

해서, 남의 글을 빌어 선생님께 으쌰으쌰 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언젠가 이분이 펴낼 "예수전"을 꼭 읽어볼 작정입니다.

 



설날 아침, 마침 일요일이라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신도가 육십 명 남짓인 교회는 보수교단에 속하지만 속을 뒤집지 않으면서 예배를 마칠 수 있는 곳이다. 그건 그곳 목사 덕이다.

 

목사는 지난해 초 신장암 3기 진달을 받았다. 그는 몇몇 병원을 전전하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 왔지만 별 진전이 없다. 그는 "열한시 예배엔 제 딸애가 참석해서 이런 이야기하기가 불편하다"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선 좀 더 강한 항암치료를 해보자고 하지만 저는 더 이상의 병원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암 진단을 받고 처음엔 하루하루 죽음이 저를 조여들어오는 느낌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아주 평안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마음의 평안함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이 남아있다면 하느님이 낫게 해주실 테고 아니라 해도 저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공포와 불안을 없애기 위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는 걸 그의 손에서 알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악수를 나눌 때 상대를 위로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의 손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믿음이 그를 평안하게 한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회개 후의 삶, 그 상태를 말한다. 회개란 교회에 안 가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개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 이런저런 세속적인 욕망에 찌들어 살던 사람이 전혀 다른 것을 좇게 되는 것,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이 회개다. 그리고 그 상태를 기쁜 마음으로 지속하는 게 믿음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기에 세속적인 고난에도 절망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죽음마저 이겨내게 된다.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구원을 얻었다, 영원한 목숨을 얻었다고 하는 건 바로 그래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목숨이 뭔지 설명했다. 예수는 ‘믿음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는 곧이어 ‘사람이 온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마가 8:34~8) 얼핏 앞뒤가 안 맞는 그 말을 통해 예수는 진정한 목숨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진정한 목숨은 육체의 목숨이 아니다. 설사 수백 번 부활한다 해도 세포덩어리로서 육체는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 진정한 목숨은 육체가 죽은 이후에도 (단지 기억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사는 것, 이다.

 

예수의 육체는 이천년 전에 개처럼 달려 죽었지만 예수는 그를 닮아가려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다. 예수는 그들과 대화하며 살을 비빈다. 물론 진정한 목숨은 어떤 종교적 절차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와 소통하는 수많은 정신들에서 보듯, 신념의 가장 높은 형태는 종교적 믿음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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