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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가구에 전기, 물 끊지 말아야

 

올겨울 찬바람이 칼날같이 매섭다. 강추위가 불어 닥칠 거란 일기예보를 보면 행여나 또 촛불화재사고 뉴스가 나는 것은 아닌가 노심초사하게 된다. 2004년 장애인 부부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 불이 나 사망했다. 2005년 역시 단전으로 촛불을 켜고 공부하다 잠들었던 15세 여중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렇게 단전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는 생각보다 적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전기나 수도요금을 체납한 가구가 2006년 기준으로 약 10만 가구가 넘는다. 요즘같이 추운 날 불이 들어오지 않거나 물이 나오지 않는 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을 이웃이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최약자층이다.     

전기와 물을 쓴 만큼 요금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빈곤가구는 전기와 물이 끊겨도 이를 자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 생명에 위협받기도 한다.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있다. 2006년 새로 제정된 「에너지기본법」에서도 국가로 하여금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하여 에너지를 보편적으로 공급하도록 그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전기와 물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필요로 하는, 다른 것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는 필수공공재다. 그런데 단전 ․ 단수로 인한 피해자가 받는 불이익은 매우 크다. 체납요금을 징수하기 위해  단전․단수이외의 다른 완화된 법적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조치는 너무‘가혹’했다.

외국은 어떠한가?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단전․단수조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미국, 호주 등 영미법계 국가의 경우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최소한의 전기와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가의 보편적 서비스 공급의무가 형성되어 있어, 공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때에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토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요금징수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프랑스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공급기업이 재정을 지원하여 에너지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취약계층을 선별하여 일정량의 전력 요금을 기금에서 대납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별로 처한 사정과 제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빈곤가구 현실과 외국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최소한 빈곤가구에게는 생활에 필수적인 양 만큼의 전기․수돗물을 계속 공급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촛불화재사망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한국전력공사는 2005년부터 단전대신 ‘전류제한기’를 달아 시간당 일정량의 전기는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기가 끊겨 촛불화재사망사고가 일어나 인권위가 개선방안을 권고하게 되었다.

현재는 요금을 체납하면 전기․수도 공급자가 직접 조치를 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빈곤가구인지 여부를 파악해서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선별된 빈곤가구에 대하여는 사회복지재정을 통해 체납요금을 직접 대납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참고로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 중 일부는‘전력산업기반기금’로 조성되고 있다. 관련법은 사회복지증진에도 동 기금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간 이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사회복지재정과 연계하여 빈곤가구에 대한 전기의 보편적 공급 사업을 위한 재원으로서 동기금은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설령 일반체납자라 하더라도 개별적인 사정에 따라서는 단전이나 단수로 인해 생존의 위협까지도 발생될 수 있기 때문에 요금 징수는 다른 법적 수단을 우선해서 사용하고 단전․단수는 최후수단으로 악의적 체납자에 대하여만 엄격한 요건과 절차로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한전이 설치한 전류제한기에 의해 공급되는 현행 시간당 220W만큼의 전력량으로는 최소생활보장수준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전력량을 재평가하여 공급량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빈곤가구의 낡은 배선설비와 가전제품은 전력 소모량이 높을 뿐더러, 컴퓨터나 전기장판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밖에 일반주택과 달리 공동주택(즉 아파트)의 경우 관리주체가 관리비연체자에 대해 단전․단수할 수 있는 규정을 ‘아파트관리규약’에 넣어 활용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양극화 심화에 따라 공공임대아파트의 관리비연체가구수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고 하니 빈곤층이 밀집된 임대아파트의 경우 심각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대구 임대아파트에서 관리비를 내지 못해 단전․단수되어 장애인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관리비징수와 단전․단수조치는 서로 연관성이 없으며, 원칙적으로 관리비 연체문제는 민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07년 12월 25일, 전기가 끊긴 집에서 혼자 살던 40대 남성이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다가 화재로 숨졌다. 인권위 권고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 더더욱 안타깝다. 우리사회가 이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란 점에서 가슴이 시리다. 인권위가 권고한 내용이 하루빨리 법제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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