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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세철- 좌익공산주의 개요

[기획대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전망과 과제
- 오세철 동지에게 듣는다
   

편집자가 독자에게

『사회주의 노동자』는 창간 특집으로 ‘현시기 노동계급운동과 사회주의 언론의 역할’을 다루기로 했다. 우리 운동의 전체적인 상황과 언론으로 제한되지 않는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 측면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활동하고 계실 뿐 아니라 학술․이론 영역부터 노동자 투쟁 영역까지 다방면에 걸쳐 영향력을 펼치고 계시는 오세철 동지를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다.


『사회주의 노동자』의 창간특집이라는 출발선에서 노(老)혁명가의 고언(高言)을 듣는 것은 의미가 깊다. 그러나 오세철 동지는 단순한 노 혁명가가 아니라 현재도 우리와 어깨를 함께 하며 투쟁하고 있는 동지가 아닌가. 만나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대단히 젊은 사람이다. 인터뷰를 담당한 편집자는 1992년 백기완 선거본부장 시기 강연장에서 봤을 때보다 최근 직접 만났을 때 훨씬 더 젊어져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위해 일주일 여 사이로 만난 간격에서도 그의 의식은 계속 젊어지고 진보하고 있었다. 일신우일신(一新于一新)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간 특집의 메인으로 배치된 오세철 동지와의 인터뷰를 독자들이 읽는다면 알겠지만,‘현시기 노동계급운동과 사회주의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메인 글로 오세철 동지와의 인터뷰를 기획한 것은 결코 오판이 아니었다. 오세철 동지와의 인터뷰는『사회주의 노동자』에게 대단히 유익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우리 시대의 혁명적 투사들과의 대담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오세철 동지는...


1943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 행동, 사회심리학, 사회학 분야를 공부하고, 1975년에 조직 행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조직 행동 이론, 사회심리학, 연구 방법론, 한국 사회변동과 조직 등을 강의했다.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 힘(준)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사회주의정치연합(준)과 사회이론 연구소 「빛나는전망」에 몸담고 있으며, 맑스주의 대학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문화와 사회 심리 이론』,『동구 제국의 사회와 문화』,『맑스주의, 조직의 정치 경제학, 그리고 한국 사회 변혁』,『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 사회 변혁』이 있고, 최근 <사정연> 명의로『세계혁명-당, 평의회, 노동조합』을 출간하였다.

옮긴 책으로는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있다.

[편집자 주]

최근 다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시고 계신 오세철 동지께 지난 2년 여 동안의 근황을 먼저 물어 보았다. 대학원 설립과 같은 학술운동에서부터 최근 [사회주의정치연합(준)]까지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계신 오세철 동지의 활동의 축과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전 ‘전업적 활동가’를 선언하게 된 배경 역시 대단히 궁금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적 활동가’를 선언하고 나오시게 됐는지, 또한 그 선언 이후 현재까지 무엇을 준비해 오셨고 어떠한 활동을 고민하고 계신지에 대해 질문 드렸다.

선생님의 최근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근황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우선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2년 전에 전업적 활동가가 되겠다고 결의하시고 정년을 5년 남기신 채 안정적인 교수직을 그만 두셨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단을 내리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___나의 반성과 연관되어 있다. 내가 교수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천 활동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했다. 그런데 교수직을 가지고 있으니 어중간 해졌다. 더는 적극적으로 되지 않더라. 교수로서의 실천 정도로 그쳤다. 교수라는 핑계가 계속 따라 다녔다. 실천활동을 하는 동지들이 여

러번 그런 문제제기를 해왔다. 나에 대한 솔직한 비판이 있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더 이상 교수직을 핑계로 어중간하게 활동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실천을 하더라도 나의 특장(特長)이 있다. 그것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전업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말이 직업적으로 혁명운동을 하는 동지처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이해된다면, 직업적으로 혁명운동 하는 동지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내가 (특장을 버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운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가 하는 것도 부정적이다. 그동안 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연대 교수라는 말을 안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업적으로 활동하기로 하고 나는 그런 말을 안 써 왔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 두 가지 말밖에 안 쓴다. 사정연 활동가 또는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 따라 다니는 수식어 없이 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사회과학대학원을 만드시고자 몇 년간 노력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원을 만드시려고 하시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 대학원의 성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__그런 얘기를 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2년 전에 5년이나 정년을 남겨놓고 사회과학대학원을 만들려고 하니까 부르주아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 당시에는 맑스주의 대학원이라는 표현도 했는데 그것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지금까지 연구소 운동, 진보적 학술운동 형식으로 진보적인 학자들을 부분적으로 양성한 역사가 있었다. 또는 몇몇 진보적 교수들이 제도권 대학에 몸을 담고 석박사를 도제(徒弟) 형태로 양성하는 방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고 본다. 여기에는 진보적 교수의 책임도 크다. 자기의 우산 속에서 사람을 키우는 방식이 운동에 어떠한 도움이 되겠는가? 또 다른 학연, 지연 체계가 연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동으로 대규모의 양성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정세와 맞물려서 재생산이 안 되는 현실도 있다. 학생운동을 봐도 현재는 운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옛날처럼 체계적인 학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학문을 하겠다는 학생들의 맥도 많이 끊어졌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면 주체가 나서야 하는데 기존 제도권에 들어온 사람은 기득권이 있어서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내가 먼저 결단을 해야 후배들이나 젊은 연구자들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취지에서 학교를 그만 뒀다.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반성과 판단이 있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물론 내가 될 수 있겠지만 30, 40대 연구자들이 집단적으로 이런 운동을 벌여야 한다. 87년 이후 당시 진보적이었던 소위 제3세대 학자 군(群)이 부분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대학에 사회과학 강좌가 생기면서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뭘 했느냐를 평가해야 한다. 초기 문제의식으로부터 많이 벗어났고 퇴색했다. 제도권 내로 침몰한 모습을 많이 보여 왔다.

그래서 종래의 방식으로 힘들다. 기득권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갖은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가 하는가? 비정규직으로 공부한 사람들, 보따리 장사(시간 강사)하고 여기저기 연구소를 기웃거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고립되어 있지만 이들을 체제에 편입되지 않게 모아내고 주체화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이들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비공식적으로 그런 취지면 같이 할 수 있다는 동의를 몇몇 동지들에게 얻기도 했다. 이런 면도 (명예퇴직하고 사회과학대학원 건립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진보학술운동 자체가 1990년대 이후로 완전히 침체했고 진보학술운동을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는데 기존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1987년 진보학술운동이 제도권에 진입한 이후 지난 18년간의 모습은 뭔가 변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제도권에 편입 · 침몰하였고 또한 진보적 학자층의 양성방식에서도 도제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집단적이고 대공업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기득권의 포기, 선생님은 5년이나 남은 편한 교수직을 포기하고 나왔고 다른 사람들도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기득권의 포기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__제도권에 들어가야 학술적인 것을 할 수 있다는 명분이 87년 당시에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교수가 제도권에서 갖는 기득권이 있었다. 교수라는 계층은 우리 사회의 선망과 존경의 대상으로 취급 받아 왔다. 교수란 그런 집단이다. 교수가 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교수집단은 상위에 있는 기득권 집단이다.

“나는 좀 진보적이다”라는 것이 이제 박해를 받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해직같은 탄압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것도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교수들의 기득권이 있고 진보적인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도 있다. 이것을 포기하는 운동이야말로 진실로 진보학술운동을 실제적인 실천 운동과 만나게 할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진보학술운동이 아니다. 제도권에서 진보라는 이름을 붙인 학술운동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젊은 시절, 학생시절 가졌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한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라고 본다. 아까 같이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얼마까지 받겠냐고 솔직하게 물어 보았다. 거기에 대해 최소 생계비를 받겠다는 결단도 있었다. 이런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도 기득권의 포기는 어렵다. 기득권의 추구는 달성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빨리 이룰 수 있어도 한번 누려본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미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온다면 보통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 그 경계에 있는, 아직 제도권에서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 나서서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사회과학대학원의 진보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혁명적 정치라는 것과 별개로 사회과학대학원의 의의와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대학원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협력 · 제휴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보십니까?


__물론 그것도 추진 주체들이 공동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견해는 있다. 좁게 얘기하면 전체 운동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자들의 양성이라고 본다. 그랬을 때 중심 부분은 맑스주의 이론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연대로 폭을 넓힌다면 발본주의(拔本主義, radical)적인 입장과는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 개량합법주의와는 연대할 수 없지만 발본주의, 즉 여성문제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 근본까지 파고드는 경향과는 같이 갈 수 있다. 물론 발본주의 입장과도 대립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만나는 지점은 맑스주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토론의 문제이다. 그것을 토론하는 자체가 교과과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병렬적으로 여러 입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 입장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발본주의 입장이 있다면 토론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론 뿐 아니라 실천적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연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런 토론을 경과한 이후에 결정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대립할 수 있는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맑스주의와 여성주의) 적대적인 여성주의가 문제가 된다고 할지라도 소통을 통해 어떤 수준에서 만날 수 있는가가 타진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맑스주의를 기본으로 소통과 연대의 모색이 먼저 되어야 한다.


사회과학대학원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신지 2년여가 되어 가지만 가시화된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젊은 연구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문제, 경제적 편리와 안정을 포기하고 희생과 헌신이라는 운동으로써 학술운동을 접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듣고 싶습니다.


__원활하게 진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공개적으로 출발하게 되면 작은 흐름이라도 많은 책임이 따른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말한 대로 그런 주체들이 형성 안 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교과과정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학교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미 진행은 되고 있다. 한번 심포지엄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대학이 외국에서는 어떤 사례가 있는가. 프랑스,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살펴보는 토론회가 있었다. 각 분과 학문별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연구하는 과정에 있다. 교과과정 연구발표회를 10월 29일(토요일)에 가질 생각이다. 1부가 교과과정 발표가 될 것이고 2부가 추진위 구성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때 공식적으로 ‘이런 학교를 만들겠다’라고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1차 발표에서 모든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각 분과의 교과목을 얘기했더라도 ‘다른 분야와는 어떤 연관을 가져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2단계는 분과과정의 연구가 분과를 넘어서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몇 가지 자본주의의 문제를 놓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전체가 이 문제를 놓고 공동 토론할 수 있는 공동교과과정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학문연구가 다른 분과와의 벽을 쌓아왔다. 특히 맑스주의 안에서도 자기 영역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공동으로 학교를 운영할 주체들은 이런 훈련을 쌓아야 한다. 아직 정확한 기일을 잡을 수는 없지만 이것이 2차 발표의 내용이 될 것이다.

이것까지 진행하면서 재정이나 운영문제가 같이 얘기되면 될 것이다. 학교 건립이 날짜를 정해놓고 하기에는 까다로운 것이 많다. 특히 이것이 사회주의 운동의 상황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또한 정세적인 문제와 맞물려 사고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빛나는전망]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시고 거기서 세미나를 계속 진행하고 계신데, 그것도 사회과학대학원 건립 방향 속에서 추진하고 계신 것입니까?

__꼭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과학대학원 얘기 나오기 전에 연구소를 시작한 게 한 3년 되었다. 이것도 드러내 놓고 하지 않고 주로 내부토론을 중심으로 했다. 축적의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회과학대학원을 목적으로 [빛나는전망]을 세운 것은 아니다. [빛나는전망]을 진행 하는 와중에 사회과학대학원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거기서 뭔가 부분적으로라도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세미나의 진행은 그런 의미에서 추진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빛나는전망]은 앞으로 어떤 쪽으로 자신의 연구 과제를 가져갈 생각이십니까?


__초기에 연구소를 만들었을 때는 주로 노동과정론을 연구한 내 제자들이 주축이었다. 70년대말 학번부터 80년대 초중반 학번으로 몰려 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흩어져) 잘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 연구소를 통해 자주 만나고 흐름을 이어가자는 측면에서 좁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나서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노동과정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넓혀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평의회나 유럽 공산주의를 하기 이전에 노동자 평의회 세미나를 우리끼리 먼저 했다. 노동과정론과 노동자 평의회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평의회를 이해하지 않고 노동과정론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이었다. 또는 사회주의에서의 노동과정론은 어떠했는가 하는 식으로 넓혀 나갔다.

영국에서 1년에 한번 나오는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라는 발간물이 있는데, 주제들이 아주 좋다. 공산주의 선언 150주년이라든가 매시기마다 중요한 주제들을 기획해서 내고 있다. 여기서 발간된 것 중 7~8년 분량을 비공개적으로 검토했다. 이것을 하면서 당 세미나를 내가 기획했다. 기획은 이런 식으로 되었다. 여러 사람이 발제를 했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역사학을 한 동지들과 만난 것이 의미가 있었다. 최규진 동지가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공부를 한 사람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중국, 베트남 공산당사를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정보였다. 이런 것이 (당 세미나에서) 의미가 있었다.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과 사회과학의 만남. 역사학과 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빛나는전망]은 사회과학연구소라고 되어 있지만 앞으로 사회과학, 역사학, 철학으로 넓혀나가는 연구소로 자리 잡혔으면 한다. 만일 이것이 더 제대로 된다면 대학원이 만들어졌을 때 그 대학원의 종합연구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학원은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 이제까지 쪼개져 있었던 운동들, 학술운동들을 모아낼 수 있다. 이것이 수공업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출판도 그렇고, 연구도 그렇고... 그러기 위해서는 축적이 많이 필요하고 그런 취지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다.


이번에 [빛나는전망]에서 출판등록을 해서 책을 한권 내셨는데요. 『세계혁명- 당, 평의회, 노동조합』이라는 제목의. 맑스 코뮤날레에 제출하셨던 논문을 골격으로 해서 출판하신 책이시죠? 여기에 보면 “빛나는 전망 실천총서”라고 나와 있는데, ‘실천’ 총서라고 이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__출판사는 연구소와는 또 다른 얘기이다. 연구소의 출판사는 아니다. 뭔가 특화된 출판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맑스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책만을 특화시키고 전문화 시켜서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 걸 누가 만드냐.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했다. 한사람이 50만원 씩 내자고 했고 현재 10명 정도 된다. 나도 조합원의 한명일 뿐이다. 그렇게 넓혀나가자는 취지다.

뭘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맑스가 죽기 전에 낸 서한집이 있는데 이걸 제일 먼저 내려고 했다. 준비를 거의 끝냈다. 그리고 맑스의 논문인데 잘 안 알려진 책들을 내려고 기획하고 있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적 함의를 갖는 논문들의 출판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들은 문고판 판형으로 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번역을 중심으로 출판할 생각이다. 아직 토론을 통해서 제대로 된 내용을 생산해내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번역을 많이 추가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정치연합](이하 [사정연])이 시작된 지가 벌써 2년이 되는데 그동안 뭘 했느냐는 제기가 많았다. 기본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얘기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제기가 안팎으로 있었다. 그러면 뭔가 입장을 정리해서 제출하자는 취지로 지난 맑스 코뮤날레에 [사정연] 입장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비판을 받고 토론의 대상이 되더라도 이름을 걸고 운동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역사적인 개관도 있지만 실천적인 함의가 있기 때문에 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천 총서이다.


‘실천’ 총서의 발간도 그렇지만 말씀 가운데 나오는 [사정연]도 선생님의 끊임없는 실천 지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활동이라고 생각되는데, 하나의 실천 활동의 중심체로서 [사정연]을 어떻게 결성하시게 되셨는지, 어떤 활동을 생각하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__[사정연]을 제안한지 2년이 넘었다. 내가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을 탈퇴하면서 동시에 [사정연]을 제안했다. 탈퇴와 제안이 맞물려 있다. 탈퇴의 과정이 있었다. 그냥 던지고 탈퇴한 것은 아니다. [노힘] 총회에서 ‘당 건설 안건’을 냈고 그 안건이 부결되었다. 소수파 의견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여러 정치조직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해 왔는데 그 밑바탕에는 당건설에 대한 문제가 항상 중심에 깔려 있었다. 이것(당 건설)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을 계속 했다. [노힘]에 대해서도 그런 판단을 했고 최종적으로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총회에서 그것에 대한 안건을 던졌다. 안건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추진위를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판단하기에 [노힘]에서는 그 안건이 통과되었어야 헸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히 소수파가 되고 다수가 활동가 조직을 결정하면서 부결이 되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노힘]을 탈퇴하면서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전체 사회주의 진영에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제안일 뿐이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제안서를 보면 안다. 그 제안 과정에서 몇 사람이 떨어져 나왔다. 그렇다면 제안한 것을 실현하는데 역할을 부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정연]은 조직 확대를 해 본 적도 없고 그 때 나온 초기 사람이 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럼 그것이 조직이 아니고 뭐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뭐 조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규정 보다는 우리는 계급정당을 만드는데 매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연대와 결집의 역할이라는 면에서 [사정연]은 전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지금까지 했다고 본다.

원래 오세철 동지의 근황을 여쭈어 보고 그리고 나서 현재 우리 운동의 상황을 질문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오세철 동지의 운동의 족적과 일상적인 삶 그 자체가 우리 운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터뷰 과정에서 우리 운동 상황과 관련해 질문 드리고자 했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 제출되었다. 사회과학대학원, 연구 작업, [사정연]을 통한 당 건설의 매개로 기능하시겠다는 것 등 오세철 동지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과제들이 우리 운동 전반에 드리운 과제들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이 과제들은 간접적이지만 우리 운동의 상황을 반영한 것들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사전에 기획했던 운동 상황에 대한 추상적이고 방만한 질문 문항들을 버리고 우리 운동의 구체적 쟁점에 대한 질문으로 질문양식을 바꾸기로 했다. 노동운동 위기론, 혁명적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국제주의를 추상에서 우리 운동의 현실적 과제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가 그것이다.

현재 광범위하게 운위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__먼저 용어사용에 대해 몇 마디 하겠다. ‘사회주의’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불리고 있는 ‘사회주의’ 중에는 이미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닌 의미의 ‘사회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쓰자는 것이다. 영어로 보면 ‘혁명적 맑스주의’, ‘혁명적 사회주의’로 표현하는 것이 국제적이지 않는가라고 판단한다. 용어 사용에 있어 국제주의를 떠나서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각 정치세력들이 다 쓰는데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물론 실천을 통해서도 구별되겠지만 보다 명확한 개념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엄밀한 개념 사용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특정 개념 사용을 기피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개념은 사용하면서 돌파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사회주의를 말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것과 같은 범주에서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앞서 질문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의 상황을 우리나라만의 것으로 좁게 이해하기 쉬운데 그것보다는 국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상황이 먼저 얘기되어야 한다. 국제주의를 전제하지 않고서 남한 문제를 말할 수 없다. 소위 ‘위기’를 말할 때도 국제적인 위기상황을 말하면서 우리나라 상황을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말 자체도 틀렸다고 본다. 위기를 말할 때는 우선 ‘자본주의의 위기’를 먼저 해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전제 없이 주체들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 자본주의의 필연적 소멸이라는 근본적인 이야기를 전제로 운동의 상황을 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세계적으로 살아남아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이 이 문제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알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법칙적으로 자본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세계적인 논쟁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논쟁은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해체 과정에 있다는 입장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특별히 소멸과 해체의 징조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토론의 과제이다. 그런데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쟁과 토론이 있었는가? 별로 없다. 이런 토론이 전제되었을 때 무엇이 위기인가를 얘기할 수 있다. 우리가 단지 소수라고 해서 위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제시하지 못한 것이 진정한 운동의 위기인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측면이 있다. 또한 대중이 투쟁적이지 않는 시기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로 투쟁하지 않는 대중에 영합하는 것, 낙후된 대중의 의식에 영합하지 않는 것이 위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우선 합법·개량주의자들마저도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이것이 우리 운동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국제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향이라고 점, 그리고 이 측면에서 우리 혁명적 경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제 1 인터내셔널 시기에 바쿠닌 등 무정부주의자들이 사용했고 현재 남한에서 생디깔리스트들도 ‘혁명적 사회주의’를 운운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적 맑스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하고자 합니다. 이 문제는 향후에 더 토론이 필요한 것 같고 선생님은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일반적인 논자들과는 아주 다르게 바라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위기,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국제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위기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신 것 같은데 (국내냐 국제냐를 떠나)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미성숙과 저열함에 있다는 견해이십니까?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__자본주의의 위기는 좀 있다가 ‘혁명적 맑스주의’가 무어냐 하는 문제에서 얘기하겠다.

그건 그렇고 위기란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위기’다. 역으로 이것이 극복되면 본능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만나게 되고 제대로 나아가게 된다. 그때에야 어중간한 노동운동의 기회주의, 중도주의 세력이 정리되는 것이다. 이들이 발호할 수 있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무능력이 한몫을 하고 있다. 기회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힘으로 기회주의자들을 갈라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만나는 것이 현 시기 우리의 과제이다. 우파와 사이비 좌파의 선거주의를 깨고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 스스로가 당당하게 합치고 자신을 세워 나갔을 때 노동자 대중과 당당하게 결합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다분히 책임회피적이다. 이건 얘기를 잘못 풀어가는 것이다. 주체의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은 주체의 위기가 조금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말한다.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위기와 모순이 이렇게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랬을 때만이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 운동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__운동의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노동자가 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레닌도 말했지만 노동자들은 본능으로 투쟁한다. 노동자에게는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싸울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다만 본능적인 투쟁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자본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 운동을 참칭하는 자들에 의해 교란되는 측면이 크다. 이것이 바로 운동의 위기이다. 노동대중은 늘 싸우고자 하는데 이들을 스스로 어떻게 더 잘 싸우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무능하거나 확고한 정치사상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위기의 탓을 노동대중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나는 위기를 이렇게 본다. 따라서 위기의 극복은 사상적으로 비타협적인 맑스주의, 혁명적 맑스주의를 고취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민주의, 민족주의 등 반혁명을 부추겼던 여러 가지 조류들이 혁명적 맑스주의를 훼손시켜 왔고 또 훼손시키고 있다. 혁명적 맑스주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자기 확신,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분명한 실천의 방법, 이 두 가지 무기를 확고하게 움켜지지 못하는 것. --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운동의 위기다.

노동운동 위기와 관련하여 “위기의 탓을 노동대중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위기란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위기”이고 “이것이 극복되면 본능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만나게 되고 제대로 나아가게 된다”, “그때에야 어중간한 노동운동의 기회주의, 중도주의 세력이 정리”된다는 말씀은 인터뷰에 나섰던 우리 『사회주의 노동자』편집부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오세철 동지는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맑스주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오세철 동지가 생각하시는 ‘혁명적 맑스주의’ 무엇인지 들어보는 것이 그 다음 순서이리라.

 

방금 선생님께서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위기도 있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기라는 주체의 측면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주의자들의 무능력, “혁명적 맑스주의를 분명히” 하지 못한 데 있고 위기의 극복 역시 혁명적 맑스주의를 고취하는 작업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혁명적 맑스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누구나 사회주의, 맑스주의를 말하지만 지난 ‘맑스 코뮤날레’가 보여주는 것처럼 맑스주의가 ‘자칭’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희화화된 측면 역시 부정할 수 없는데...

__처음에도 ‘왜 혁명적 맑스주의’인가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소련 등 ‘동구 공산주의’와 혼동되고 오염된 측면이 있다. 어딘가에서는 ‘혁명적 공산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구태여 혁명적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음에도 (그렇지 않은 것들 때문에) 구별을 위해서 혁명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공산주의자 선언』에서도 나타나듯이 여타의 사회주의 경향을 모두 비판하고 공산주의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는가? 그것이 진짜다. 『공산주의자 선언』이후에도 공산주의라는 말을 많이 썼지만 원래의 개념하고는 동떨어져 있었다. 카우츠키가 ‘정통 맑스주의’라는 말을 썼는데, 맑스주의의 그 진정한 본령은 우선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나오는 것처럼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공산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맑스주의가 아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론과 방법론을 확고하게 부여잡아야 하는가? 이론적으로는 역사 유물론이다. 이것을 확고하게 부여잡아야 한다. 역사유물론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Décadence of Capital(자본주의 사멸론)이다. 자본주의가 총체적인 체계인데 이것을 토대나 경제적 체제로만 이해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아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총체적으로 결합한 체계의 사멸이다. 자본주의 총체성의 사멸을 얘기해야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되는지 해명하지 않고서, 이론적으로 전제하지도 않고서 싸움은 왜 하고 혁명은 왜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는 없다.

대체로 지금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보는 입장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까지가 자본주의의 정점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물론 레닌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여전히 사멸하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자본주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타당하다. 그 당시가 마지막이고 그 당시가 최고점에서 사멸하는 과정이었다. 사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즉 위기의 해결을 자본주의는 전쟁으로 노동자들은 혁명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1914년까지가 최고조에 달하고 자본가들이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점차 쇠퇴하고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자본주의 과정, 발전의 과정은 쇠퇴의 과정이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 파시즘, 제2차 세계대전의 지속적인 쇠퇴의 과정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는 총체적 자본주의 위기의 객관적 지표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이제까지 해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들이 많다. 이제 와서야 좀 보이는 건데 1914년 이후 지금의 과정은 이런 것이다. 100년 만에 제대로 (올바른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사멸의 마지막 징표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얘기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종말을 얘기해야 그 이후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경우는 봉건제의 사멸과 자본주의 출현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것과 같이 우리도 지금의 자본주의 사멸에 대한 객관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분명한 틀을 가져야 사회주의 혁명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노동자계급 독재)든,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이든 이런 것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멸에 대한 총체적인 입장이 서야 한다. 맑스는 그 당시 자본주의를 분석한 것이다. 우리도 현재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 수준의 분석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역사 유물론을 확립하는 것이고 이러한 관점이 없는 것은 맑스주의가 아니다. 참칭하지 말라. 맑스주의라는 이름을 딴 여러 이론들은 전혀 맑스주의가 아니다. 그냥 이름만 달았을 뿐이다.

또 하나는 실천하는 방법론과 관련해서 유물 변증법이다. 마찬가지로 이것을 하지 않고서도 맑스주의라고 할 수 없다. 주체와 객체, 즉 혁명적 주체의 실천 문제, 객관적 자본주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써의 유물 변증법을 얘기하지 않고서 맑스주의라고 할 수 없다. 아까 카우츠키의 정통 맑스주의를 얘기했던 것처럼, 그 당시 제 2 인터의 개량주의는 점진적인 법칙을 얘기했다. 혁명적 실천의 문제가 배제되어 있었다. 이것이 개량주의의 문제의식이었다. 이것은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계적 유물론은 맑스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물론은 맑스주의가 아니다. 주체와 객체의 통일을 떠난 맑스주의, 혁명적 실천을 말하지 않는맑스주의,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말하지 않는 맑스주의는 맑스주의가 아니다.

이 두 가지를 원칙적으로 부여잡고 풍부화하는 것 -- 이건 내 생각인데 “주의”라는 것은 맑스“주의”에만 붙일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맑스주의는 그 이전의 사상과 확연하게 다른 사상체계를 얘기했으니 “주의”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 다음의 것은 “주의”라고 하기 보다는 기존 맑스주의를 풍부화 한 것 정도다. “레닌은 그것을 얼마나 풍부화 시켰는가?” “주의”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측면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뜨로쯔끼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붙이는 순간 교조화되고 박제화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는 이것을 풍부화하는데 크게 공언한 혁명가, 이론가를 언급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를 온전하게 계승시켰는가?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말씀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동구권의 몰락 이후 90년대 서구 이론들이 대거 수입되면서 80년대 우리가 배워 온 스딸린주의의 대체물로 유행처럼 퍼져나간 것이 알뛰세르의 구조주의와 네그리 등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제 경향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체없는 과정’을 얘기하거나 이것으로 안 되니까 ‘주체와 객체의 분리는 부르주아적 틀’이라고 하면서 스피노자의 범신주의를 대안으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포스트주의 담론과 야합하면서 혁명적 주체인 노동‘계급’을 해체시키고 다중(多衆)화시키려는 시도 역시 있습니다. 이런 오늘과 내일이 다른, 유행에 따라 옷을 바꿔 입듯, 맑스주의를 손쉽게 쥐었다 놨다, 뜯어냈다가 붙였다가 하는 유행 사조와 다르게, 주체의 혁명적 실천이라는 것과 자본주의 사멸이라는 객관의 통일성, 총체성을 강조하는 유물 변증법의 시각을 견결히 유지하고 계신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맑스주의의 경계선은 무엇입니까?


__나는 그렇게 본다. 그들은 원칙을 얘기하는 것과 교조를 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칙을 고수하는 것을 교조라고 말하는 것,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원칙을 모르고 하는 말이던가 아니면 원칙이 아닌 것을 합리화하는 것에서 교조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건 전혀 관계가 없다. 미안하지만 구조주의와 네그리주의, 포스트주의는 맑스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무슨 무슨 주의라고 불러라. 알튀세르주의라고 하든, 네그리주의라고 하든. 그렇지만 그것들은 맑스의 사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맑스의 말을 인용했다? 그건 인용한 거다. 누구는 인용 못하나? 신자유주의자들도 맑스를 인용할 수 있다. 이것이 희화화하다. 맑스 코뮤날레를 봐도 그렇고 …… 개나 소나 어중이떠중이 누구나 맑스라고 말만 하면 다 모이는 거냐. 그런 것이 참 안타깝다. 맑스 연구자는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맑스주의자는 아니다.


선생님은 두 가지를 제기하셨습니다. 자본주의 사멸론으로써의 역사 유물론과 혁명적 주체의 실천이라는 문제와 연관해서 유물 변증법에 확고히 기초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론적 원칙에 기반한 혁명적 맑스주의의 정치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__여전히 그런 원칙에 가깝게 실천해 왔는가? 어떤 세력이?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이어받고 있는가라는 문제라고 본다. 이 두 가지를 원칙으로 부여잡으면서 동시에 규모는 작더라도 역사적으로 그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가가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 혁명적 맑스주의 세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존하는 세력들에 대해 [빛나는 전망] 당 세미나에서 정리한 바 있다. 4가지로 정리했는데 최근에 하나를 더 보탰다.

우선 뜨로쯔끼 그룹 중에 제 4 인터내셔널 그룹이 있다. 그런데 제 4 인터내셔널 그룹은 문제가 많다. 제 4 인터내셔널 재건그룹도 이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제 4 인터내셔널 재건 그룹은 제 4 인터내셔널 그룹보다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제 4 인터내셔널이든 제 4 인터내셔널 재건그룹이든 간에 모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다.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뜨로쯔끼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는데 소련의 비호(庇護), 보위(保衛)라는 측면이 문제다. “문제는 있지만 제국주의에 포위되어 있고 방어해야한다”는 류의 입장들 …… 그래서 무슨무슨 노동자국가론이 될 수밖에 없었다. 뜨로쯔끼가 그렇게 얘기했고 그 계열의 모든 그룹들이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 생각을 못 버리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북한도 그렇고 뭣도 그렇고 ……. 그렇다면 우린 이걸 어떻게 볼 것이냐? 내가 왜 이것을 얘기하냐 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토대의 변화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만 계속 유지되면 그나마 뭔가 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내거는 것이 정치혁명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왜 바뀌지 않느냐를 알고 싶으면 중국의 예를 보면 된다. 중국의 기간산업이 국유화되어 있는 것, 즉 좁은 의미에서 토대에서 소유를 아직 놓치지 않고 있다는 평가 …… 정치권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은데. 그래서 정치권력을 바꾸는 혁명이 일어나면 보존되는 것(기간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과 만나서 완전한 사회주의가 될 수 있다는 논리. -- 이건 참 허황된 것이다. 나도 중국을 많이 봤지만, 이미 다 넘어갔다. 그걸 왜 못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 넘어가고 완전한 시장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토대의 변화에 대해 아니라고 얘기하고 정치권력만 혁신하면 된다는 것이 바로 “보위론”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렇게 보고 있다. 재건파가 이전 제 4 인터내셔널보다 극복된 점은 있다. 뜨로쯔끼의 잘못된 역사 해석을 많이 비판했다. 비판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것을 어떻게 보는가, 스딸린 체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건 내 개인 의견이니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쪽 그룹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또 한 그룹은 이른바 혁명적 마오주의(모택동주의)를 계승하려는 그룹이다. 그래서 기본으로 인민전쟁을 내세운다. 마오(모택동)의 노선 중 인민전쟁만 받아들이고 폭력혁명을 얘기하는 세력이 있다. 방법론으로써의 인민전쟁이나 폭력혁명을 그 자체로 비판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오주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마오주의자로 자임하는데 그것은 마오주의의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술만을 채택한 것이다. 그럼 마오에게 전술만 있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술만 받아들이고 마오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마오주의자로 이름 붙이는 것, 이런 세력들이 국제적으로 실존하다.

그 다음에 내가 본 것이 좌익 공산주의의 흐름이다. 유럽이 중심이었다. 물론 레닌이 죽고 난 이후 러시아에서도 뜨로쯔끼를 중심으로 좌익 반대파 흐름이 존재했지만. (이 둘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많다) 좌익 공산주의는 크게 독일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흐름과 이태리 ·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흐름으로 나뉜다. 그런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독일 좌익 공산주의는 2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평의회 공산주의로 바뀐다. 좌익 공산주의와 평의회 공산주의는 여기서부터 다른 것이 된다. 그러나 다른 곳은 (진행양상이) 많이 다르다. 이태리 쪽은 평의회 공산주의가 아니라 계속해서 좌익공산주의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렇다면 이 둘(평의회와 좌익 공산주의)의 차이가 뭐냐? 이것은 바로 당이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좌익 공산주의 때는 당과 평의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당과 평의회의 결합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1927년이 되면 호르터가 죽는다. 호르터는 실천가고 판네쿡이 이론가였다. 그런데 호르터가 죽으면서 좌익공산주의가 평의회 공산주의로 가게 된다. 그러면서 당을 부정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독일과 네덜란드의 특성이다. 그렇다면 이것(평의회 공산주의)이 지금도 있느냐? 이런 평의회 흐름은 지금은 없다. 그런데 옛날 좌익 공산주의의 흐름을 복원하려는 경향은 있다. 평의회 흐름은 거의 소멸되었다. 미국의 파울 마틱,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세계산업노동자동맹)등 아주 소수만 평의회 경향으로 존재한다. 그것도 불명확하게. 그것은 좌익 공산주의와 다르다.


독일-네덜란드의 좌익 공산주의 흐름을 복원하려고 하는 것이 ICC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국제 공산주의자 흐름)이다. 이것은 각 나라에 많이 있다. 여기의 입론을 보면 당, 노동자 평의회를 결합시키자는 입장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당이 뭐냐 하는 것은 얘기해봐야겠지만 절대로 당을 부정하는 평의회 공산주의를 계승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한쪽에서는 자신을 평의회 공산주의라고 비판하고 반대편에서는 자기네를 레닌주의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양 극단에서 이렇게 본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런 흐름이 바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좌익 공산주의를 계승하는 흐름이다.

그리고 이태리를 중심으로 하는 IBRP(International Bureau Revolutionary Party, 혁명당을 위한 국제 서기국)라는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이 유럽에서 좌익 공산주의를 계승하고자 하는 (독일 · 네덜란드와는) 또 다른 흐름이다.

그런데 좌익공산주의와 뜨로쯔끼의 만남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한 토론의 대상이라고 본다. 1920~30년대 전세계 좌익 공산주의자들과 러시아의 좌익 반대파가 모이는 시도가 있었다. 그 흐름에서 거의 대부분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뜨로쯔끼주의와 같이 하지 않는다. 이렇게 갈라져서 만들어진 것이 뜨로쯔끼주의만의 제 4 인터내셔널이다. 이 역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기본적인 입장 차이 --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반파시즘 전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민주의 개입전술에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좌익 공산주의는 여기에 대해 모두 반대하고 비판했다. 이것이 뜨로쯔끼주의와 원칙적으로 부딪쳤다. 결국은 뜨로쯔끼 중심의 좁은 의미의 제 4 인터내셔널이 만들어 졌는데 그것은 엄밀한 의미로 인터내셔널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런 역사가 있었다. 뜨로쯔끼주의의 한계는 또 그런 것도 있다. 스딸린에 대한 반대개념만으로 존재한다. 자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입장이 없다. 이런 것에 대해 따져야 하고 역사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원칙의 문제를 따질 때도 전술의 옳고 그름의 문제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공산주의운동의 역사를 전세계적으로 비교·검토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맑스주의의 내용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안 거치고 이리저리 모이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선생님이 연구하고 계신 많은 문제의식들을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스딸린주의, 사민주의로 존재하는 변질된 맑스주의에 대해 경계를 치시고 혁명적 전통을 찾아가시는 것 같은데요. 평의회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신가요? 그리고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을 중심으로 하는 뜨로쯔끼주의에 대해서도 이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그런 사상적 경향들과 대립 각을 친 좌익 공산주의의 역사를 탐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좌익 공산주의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__가장 핵심적으로 갈라지는 것이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시점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독일 같은 경우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부딪히는 부분이 나타났다. 이태리는 제2차 대회까지는 동의하고 그 뒤에는 코민테른에서 축출되는 형태를 취했다. 이 모든 것이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핵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보르디가와 같은 쪽은 스스로를 철저한 레닌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레닌 사후의 과정에서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핵심이다. 언제부터가 반혁명이냐, 반혁명의 계기, 반전의 시점에 대한 판단에서 좌익공산주의들이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것의 마지막 판단은 아무리 끝까지 가도 히틀러의 등장이 마지막이더라. 1930년대 히틀러의 등장이 역사적으로 용인된 것 -- 물론 여기에는 전세계 공산주의의 책임이 크다. 결국 “소련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소련 체제의 토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자본주의 토대 분석과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앞으로의 토론과 논쟁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나머지 문제에서 전선이나 개입문제는 사실 부차적이다. 여기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혁명주의냐 아니냐를 가르는 큰 기준이 되리라 본다.

그다음 세계혁명의 문제를 봤을 때 스딸린의 일국 사회주의가 있겠지만 이것에 비추면 부차적이다. 다시 말해 아까 얘기한 두 축 역사적 유물론과 유물 변증법의 관점에서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선생님이 말하시는 것은 레닌 사후에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평가의 요체라는 말씀인데,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부각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SWP(socialism Worker's Party,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이나 뜨로쯔끼의 ‘타락한 노동자국가론’ 중에 하나를 그저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90년대를 지나, 세계 맑스주의 운동과 논쟁 속에서 이 문제를 탐구하고 평가하려는 흐름이 2000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을 이끄는 중심에 선생님이 서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최근 평의회 공산주의에 대한 부각 역시 독일 평의회 공산주의자 륄레가 소련을 최초로 ‘국가자본주의’라는 틀로 규정지은 인물이라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륄레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낙인찍은 때가 코민테른 제2차 대회 때인 1920년이죠? 이러한 평의회 공산주의의 맥은 미국의 파울 마틱이 잇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기관지 이름이 ‘안티 볼쉐비즘(Anti Bolshevism)’이죠? 일단 선생님은 평의회 공산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고 하셨는데, 양자를 구분 짓는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까 당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__먼저 ‘안티 볼쉐비즘’은 파울 마틱이 낸 책이고 그것이 꼭 기관지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것 같기도 한데 ……. 평의회 공산주의와 좌익 공산주의의 주요한 차이는 당 문제도 있고 또 다른 것은 러시아 혁명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평의회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본다. 그러나 좌익 공산주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레닌에 대한 평가나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__어떻게 보면 레닌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덜 비판받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더 살았으면 (욕먹을 것이) 더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 병으로 죽어서 …… .(웃음) 어쨌든 맑스-레닌으로 이어지는 전통으로서의 레닌의 위대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의 레닌에 대한 평가는 기본이다. 그런데 전술문제에서 문제가 뭐냐 라고 말하면, 레닌은 세계혁명의 보편성으로써 러시아 상황과 유럽의 상황을 말했다. 좀 떨어져서 보자면, 레닌의 세계혁명 과정에서의 전술을 보편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이건 내 생각이다) 구체적인 전술 하나하나를 다 따져보면 어떤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전술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무오류의 인물과 상징으로 레닌을 평가하는 것, 그것이 레닌주의(교조주의)다. 세세한 입장에서 레닌을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레닌주의자는 아니고 전체적으로 레닌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일 뿐이다.


저희는 맑스주의를 유일하게 “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는 입장에 동의합니다. 저희는 맑스 이후 운동의 역사에서 맑스의 『공산주의자당 선언』을 20세기 초 복원했던 운동들, 레닌이나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개인이 아니라 그 운동 자체가 현재 우리가 다시 계승해야 할 운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혁명적 맑스주의에서 레닌은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스딸린주의 시대에 우상화된 것처럼 그가 처음 「시장문제에 대하여」를 쓰며 정치 입문한 24살 초반부터 완결적인 사상을 담지하고 있었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닌의 사상은 찜머발트 좌파의 시기까지 끊임없이 성장하고 형성되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혁명 이후 죽기 직전에도 몇 가지 (중요하지만) 부분적인 오류는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맑스주의를 유일하게 “주의”라고 부르는데 아쉬움이 있어서 덧붙일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세계 맑스주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레닌이라고 봅니다. 그 부분은 다음에 선생님과 풍부한 논의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__시간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오늘 여기서 다 털어놓고 얘기하기는 그렇고... 구체적인 전술문제는 차차 풀어나갔으면 한다.


혁명적 맑스주의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면 선생님이 현재 연구하시는 방향은 보르디가를 잇는 IBRT의 전통을 살펴보고자 하시는 건가요?


__보르디가는 한 예이고 그런 전통을 잇는 이태리쪽 좌익 공산주의 전체를 말한다. 좌익 공산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문건으로 나와 있는 자료들을 번역해서 빠른 시일 내에 출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이외에도 당의 역사뿐만 아니라 운동의 역사에 대한 보급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운동의 역사가 일천하고 맑스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 일천한데, 선생님이 그런 분야에 대해 연구해서 후배 활동가들에게 보급해 주시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__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 “‘혁명적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인터뷰하는 가운데 우리가 잘 몰랐던 국제 운동에 대한 해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세철 동지는 일찍부터 국제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힘] 초대 대표로 계실 때 외국에 나가 교류를 시도한 경험도 있으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 사회주의자들의 국제주의 관점이 저열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레닌 시대의 강령을 보면 자국의 운동을 국제 프롤레타리아운동의 ‘분견대(分遣隊)’로 규정한 것에 반해, 남한의 운동가들을 국내 운동에 기반해서 국제적 교류와 연합을 사고한다. 통일적인 국제운동의 분견대인가 아니면 일국 운동들의 국제적 연합인가 -- 현재 국제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서 오세철 동지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노동운동의 위기’란 ‘혁명적 맑스주의의 위기’이고 이것은 국제 운동의 위기의 한 표현이지, 남한만의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문제는 아니다.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가 소비에트 사상체계에 그대로 의존했던 1990년대 초반 남한의 혁명운동을 어떻게 붕괴시켰는가를 생각한다면, 위기의 해결이 일국적일 수 있다는 발상이 얼마나 문제있는 발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세철 동지의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입장에 덧붙여 우리는, 작년부터 운위된 이 위기론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것은 1992~3년에 회자됐던 ‘노동운동 위기’가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 공격에 맞선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투쟁으로 인해 잠시 가려졌던 것에 불과하다. 새로 시작된 위기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생적 투쟁으로 잠시 가려졌던 위기가 대중투쟁의 소강과 함께 더 크게 곪아서 터진 것에 불과하다.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로 본격화된 국제 운동의 위기의 남한 발현 현상,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주체의 위기가 우리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으로 인해 잠시 가려졌던 것뿐이다.

이러한 측면에 우리는 오세철 동지께 국제주의에 대한 동지의 관점과 우리가 어떻게 국제주의 운동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여쭤 보았다.

아까 혁명적 맑스주의를 얘기하시면서 국제운동에 대해서 개괄을 해 주셨는데요. 국제주의와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운동이 피상적으로만 얘기되고 구체적으로 얘기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노동운동의 위기도 국내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운동의 위기를 국내적으로만 바라본다거나 위기의 극복을 일국적으로 바라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당도 국내당에 대한 견해는 있으나 혁명적 국제정당에 대한 부분은 (인터내셔널가만 많이 부를 뿐) 피상적으로만 바라보고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측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제운동과 국내운동의 관계 그리고 우리 운동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국제운동과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 텐데 어떠한 형태로 관계를 맺을 것인지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__운동의 역사적 실패란 결국 인터내셔널의 실패다. 이런 측면에서 물론 각 국가의 당도 얘기하지만 먼저 국제 혁명당을 얘기해야 한다. 따라서 인터내셔널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 반성을 통해 ‘인터내셔널을 어떻게 제대로 만들 것인가’가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국내 당의 건설은 이것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무수히 비판했던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실천적으로도 극복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이제 막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분파로써 편입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진 세력들이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고 국제적인 조직과 관계를 가지고 토론을 시작해야 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서구를 위시로 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지금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계속 죽어 있다가 2000년 이후에야 올라오고 있다. 이것도 객관적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멸에 대한 징조와 맞물려 있다. 이런 흐름에 우리의 이름으로, 남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정파가 있을 수 있다.(그리고 실제로 정파가 많다) 정파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분파적 파벌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공통의 무언가를 가지고 개입하고 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조직이 개별적으로 국제 조직과 연계를 가지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다함께]가 그렇다. 하지만 [다함께]는 SWP에 종속되어 있는 한 분파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분파끼리의 만남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제주의가 편협한 분파주의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서 세계적 흐름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관철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우리의 맑스주의를 세워서 이것이 세계적인 흐름과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적인 흐름을 통일적으로 형성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하는 것도 위기다. 자기 것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만나자는 것은 착오다. 이념․사상적으로 공통기반을 갖추었다면 그것을 위한 동일한 조직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이후에 전술적인 문제를 얘기했으면 한다.

적어도 세계에서 우리를 볼 때 혁명적 사회주의로써 소통할 대상이 있구나 하는 정도까지 수준을 높이고 이에 기반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질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진영을 형성해나가야 한다.

아까 국제공산주의 세력들의 정치적 입장 상의 갈라짐도 얘기했지만 인터내셔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도 차이가 나면서 갈라지는 것 같다. 이러저러하게 만들어서 그냥 합치면 되느냐, 아니면 지난 과정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만들 것이냐. 뜨로쯔끼주의는 형식적으로 만나서 하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인터내셔널을 만들 수 없다.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의 실질적인 국제연대를 가져나가야 하고 남한의 사회주의 한 분파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개별적인 외국 조직과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이 단일체로서 전체 국제운동과 관계를 갖자는 말씀인 듯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국제운동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는데 그런 문제의식이 형성되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__두 가지 경험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현장 조직만이 모이는 세계적인 모임이 있었다. 당은 아니고 현장조직이지만 모두 혁명적 조직과 관련이 있었다. 2년마다 한번씩 모임을 가지는데 4-5년 전쯤 독일에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거기에 참여했다. 국제적인 연대 단위이다 보니 국제적인 연대, 즉 어떻게 함께 싸울 것인가를 활발하게 토론하고 결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모임을 한국에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것은 지금도 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국내에서만 현장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현장을 보면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경험이 하나 있다.

또 하나는 파리에서 열린 ‘세계 맑스주의자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 일주일 정도 기간동안 진행되었다. 10명 기조 발제 중 아시아 대표로 나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혁명적 맑스주의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공산당에서도 왔으니... 넓은 의미의 맑스주의자가 한 5~600명 정도 왔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도 ‘맑스 코뮤날레’ 같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맑스주의자 대회가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혹은 혁명적 사회주의진영만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때는 개별적으로 끈이 닿아서 갔지만 그것으로 그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병폐도 있다. 국제연대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자기가 경험한 것을 자신만의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자산이겠지. 사람도 만나고 인맥도 형성하고, 정보도 얻고... 그런데 이것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지 않는다. 자신만의 연(緣)으로 존재하는 국제운동. -- 이건 아니다. 그래서 특별히 더더욱 개인이나 분파가 아니라 집단과 전체로 개입해야 한다는 바램이 있다.

또한 우리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본다. 같이 모이지 못했을 뿐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혁명적 맑스주의는 이제 시작이다, 그러니까 2000년 이후가 시작이라는 평가에 기반하신 것이죠?


__그렇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평가가 있다.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 그런데 정당에 대한 평가는 없다. 민노당 빼고는 (당이) 없으니까.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 흐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죠?


__그렇다. 내가 노힘 대표였을 때 그런 직함을 갖고 갔으니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이다. 완전히 새로운 틀로 가야한다. 외국의 국제흐름도 2000년 이후에 활발해진 것이니... 이런 흐름은 최근의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운동역사의 실패는 결국 인터내셔널의 실패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당도 중요하지만 국제당을 먼저 애기해야 한다.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가 실천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젊은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주의적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하는지,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떤 것이 부족하고 보강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__뭐 아까 대략 얘기했다고 보는데, 국제적이기 위해서는 우선 국제적인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각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부르주아 쪽에서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자료에 대해서 우리 식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측면에서 공부가 많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또 사실 각 나라의 입장이야 인터넷에 들어가 기관지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텐데, 언어가 안 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언어 공부가 상당히 필수적이라고 본다. 영어만큼은 독해하는 정도라도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도 영문 사이트는 있다. 영어만 되도 웬만한 글은 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현실에서는 언어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위한 영어 공부는 (부르주아 교육기관에서 하는 것과) 달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문법, 기본적인 단어면 된다. 나머지는 사전을 찾아보면 되니까. 그래서 운동을 위한 영어반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이런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혁명적 맑스주의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노동계급 내 선전선동하기 위해, 그리고 남한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 내의 소통을 위한 통로로서 [사회주의 노동자]라는 잡지를 창간하려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오세철 동지에게 사회주의 언론의 과제란 무엇인지, 그리고 창간하는 [사회주의 노동자]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질문 드렸다.

사회주의 언론의 임무와 과제는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동지가 판단하는 사회주의 언론활동의 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__전통적으로 매체를 사고했을 때 기본적으로 선전․선동․교육이라는 역할이 존재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전국적 정치신문의 역할은 예전 비해 비중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매체를 사고할 때는 현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매체를 놓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영상매체, 인터넷 등등 어느 매체가 어느 정도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매체가 중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외국을 보더라도 기관지는 기본이다. 어떤 조직이든 기본적으로 기관지를 통해 토론하고 논쟁한다. 그러나 기관지뿐만 아니라 인터넷 신문까지를 포함해서 다른 소통의 매체가 필요하다. 여기에 인터넷 매체를 결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케이블이나 방송국 등은 어떤 형태든 우리 운동 진영이 하나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일간지보다는 채널을 하나 확보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게 대중과의 소통 채널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과 만나고 대중에게 자신의 입장을 넓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확보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이기기 위해서는 자본이 장악하고 쥐는 것에 대응하는 매체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단지 한 매체, 하나의 조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에서 우리가 돈과 힘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내용의 확립이라는 측면이 있을 거고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가는 우리 실력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한 조직이 담당할 것이냐, 또는 모든 조직이 똑같은 것을 할 것이냐. 이런 것이 시행착오였다고 본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가장 어려운 매체를 한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일단 각 조직은 기관지를 낸다. 자기 것을 내는 것은 누구나 한다. 이것도 공동으로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것이다. 그 다음은 신문인데 이것은 힘을 합쳐도 어렵다. 전정신이 되든 뭐가 되든 힘을 합쳐도 따라가기 힘들다. 이것이 두 번째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것부터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신문) 앞으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울 때 어느 정도까지 같이 해야 할지의 구상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관지, 그 다음 신문(주기가 어떻게 되든 간에, 가장 어려운 것은 일간지겠지만), 그리고 나서 영상 매체인데, 방송국이 필요하다고 본다. 방송국, 케이블 채널 같은거 ……. 이것에 대한 계획도 같이 가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큰 기획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 속에서 선차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한 세력만이 고민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다함께 얘기해야 할 문제다.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방송국을 만들면 혁명적 맑스주의가 대중들과 관계를 맺는데 좋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진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큰 틀에서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노동자]의 경우는 이론 부분을 주요한 한 축으로 하는 종합잡지로서의 자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들 중 서구의 SA(Socilist Alliance, 사회주의자의 (전략적) 제휴)에 대한 모델링이 한국에서 필요하지 않느냐,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의 매체를 하기 위해서라도 모여서 통합력을 갖추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을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서구의 SA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와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는지 간단한 문제의식을 들었으면 합니다.


__Alliance를 연대라고 봐도 되고 동맹이라고 봐도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그런 동맹의 형태가 없다. 중간그룹 정도가 그것을 한다. 주로 현실적인 목적은 선거연합이다. 선거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 전술적으로 모이는 형태가 크다. 그렇게 하다가 당을 만들어보자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지금 단계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SA는 사민주의와는 또 다른 것 같다.

혁명적 사회주의진영에서는 SA가 어려운 것이 있다. 왜냐하면 자기 입장이 너무 분명하다. 또 대부분의 혁명적 사회주의진영은 선거에 참여를 안 하니 현실적으로 모일 이유도 없는 것 같다. 모르겠다. 이후에 상호 토론을 통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위해 모일 수는 있겠지만 SA처럼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SA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는 세력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어중간한 세력이 하는 형식이 있을 수 있고 (우리의 경우) 그럴 가능성도 있다. 선거연합을 해서 민노당에 어떻게 해보겠다는 식의 …… 그런 식의 시도가 벌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SA는 아니다. 만일 혁명적 사회주의진영의 경우에는 적더라도 자기 조직이 있다면 자기 조직을 유지한 채로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 없을까?

뭔가 공통분모로 묶일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념적으로는 맑스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공통분모가 없다면 만날 필요도 없는 것이니까. 그 다음은 당건설의 공통분모다. 그런 정도에 동의하는 개별(물론 조직이 있겠지만)이 참여하는 네트워크, 그런 정도의 것은 얘기가 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본다. 그 속에서 공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는 그 안에서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SA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노동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__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자임을 한다면 혁명적 사회주의진영의 내부에 조금한 차이 -- 전술적 차이 --는 밖에서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큰 테두리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다. 내부에서 상호 비판이 가능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아 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갈라치기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보면서 국제주의의 입장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전체적인 운동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실천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가장 큰 바램이다. 설사 그것이 현실적 제약으로 힘들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의 경우는 매체를 내고 있는데 그것을 [사회주의 노동자] 자신만의 매체로만 사고하지 말고 공론화의 연단으로 사고했으면 좋겠다. 공론과 논쟁의 장,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전체적인 의견을 모아나가는 위한 자기 역할을 했으면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를 지금까지 지켜봤을 때 이론영역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론 영역에 관심이 많다면 국제적인 이론에 대한 소개도 할 수 있다. 그것을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 전체에 제시하고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각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 간의 큰 틀 내에서의 분업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각 조직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사회주의 노동자]도 자기 역할을 했으면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아까 말씀하셨던 혁명적 맑스주의 세력의 테두리 내에서 개방성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들의 참여나 그들과의 토론을 조직하기 위한 역할을 했으면 하는 선생님의 당부와 바램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__그렇다.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 편집부 sanosin@jinbo.net
등록일 : 05.09.21 (17:41)
쪽수 : 8 ~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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