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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타쿠 불온분자 군인의 낙서장</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link>
		<description>
<![CDATA[
<br>
<p align=&quot;center&quot;><font face=&quot;목판&quot;>어쩌다가 한 번씩이나 써야지 뭐.</font></p>
<br>
]]>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dc:creator>동조자(mailto:)</dc:creator>
		<pubDate>Sat, 06 Mar 2010 19:37:07 +0900</pubDate>
		<image>
			<title>오타쿠 불온분자 군인의 낙서장</title>
			<url>http://blog.jinbo.net/files2/128/leftside/common/my_picture</url>
			<link>http://blog.jinbo.net/leftsid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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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r>
<p align=&quot;center&quot;><font face=&quot;목판&quot;>어쩌다가 한 번씩이나 써야지 뭐.</font></p>
<br>]]></description>
		</image>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50</guid>
			<title>&lt;천원돌파 그렌라간&gt;, 2007</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50</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img alt="" src="http://images3.iwilab.com/shared/item/0/10/10458_500x.jpg" /></p>
<p>&nbsp;</p>
<p>&lt;천원돌파 그렌라간&gt;</p>
<p>&nbsp;</p>
<p>감독: 이마이시 히로유키</p>
<p>각본: 나카시마 카즈키</p>
<p>제작: GAINAX</p>
<p>&nbsp;</p>
<p>&nbsp;</p>
<p>&lt;천원돌파 그렌라간&gt;을 정의하는 단 한 단어, 그것은 바로 '열혈'!!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오타쿠 문화의 풍조가 절망감, 패배감, 개인적 갈등 등에 초점이 맞춰질 때 가장 먼저 그것을 포착해 그 흐름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 &lt;신세기 에반게리온&gt;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가이낙스가, 이제는 낡았다고 여겨지는 인간 의지와 말도 안 되는 극복을 그리는 작품을 2007년에&nbsp;내놓은 것이다.</p>
<p>&nbsp;</p>
<p>배경은 모든 인간이 지하에 갇혀 사는 어떤 시점의 미래의 지구. 지하 마을에 살면서 항상 지상을 꿈꾸던 청년 카미나와, 드릴로 구멍을 뚫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기도 장점도 없이 항상 주눅들어 있던 고아 소년 시몬이 우연한 발견을 계기로 로봇을 타고 지상으로 나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불가능하다, 위험하다, 그런 것 있을 리 없다,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등 모든 부정적인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의지와 패기만으로 전 우주를 해방시키는 스케일 큰 이야기다.</p>
<p>&nbsp;</p>
<p><img style="width: 471px; height: 479px"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07/12/f0049312_48eb102c7a596.jpg" /></p>
<p>&nbsp;</p>
<p>▲ 이들이 바로 주인공</p>
<p>&nbsp;</p>
<p>&nbsp;</p>
<p>이른바 '열혈 로봇물'의 특징: 첫째, 강한 의지로 어떤 것이든 돌파한다. 여기에 합리적인 이유는 사실 필요 없다. 둘째, 로봇이 과학적 근거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지막지하게 크고 또 강하다. 물론 적들도 마찬가지. 이런 측면에서 &lt;그렌라간&gt;은 열혈물의 교과서다. &lt;그렌라간&gt;에서 의지의 힘은 '나선력'이라는 설정으로 표현되는데, DNA 나선구조를 가진 생명체라면 의지와 패기를 통해 누구나 방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그렌라간의 유일한 무기인 드릴의 나선운동과 연결되면서 재미있는 일치를 구성한다. 또한 그렌라간은 닥치고 세다. 주인공이 악쓰면서 드릴을 갖다 대면 안 뚫리는 것이 없을 정도고, 최종 합체 형태에 가서는 은하를(;;) 손으로(;;) 집어 던지는 스케일을 보여준다;;;;;</p>
<p>&nbsp;</p>
<p>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크고 강한 다른 열혈 로봇물과 달리, 그렌라간은 로봇에게 '성장'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처음 주인공이 발견한 로봇은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키를 살짝 넘는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며, 짧은 팔다리에 얼굴만 커다래서 웃기기까지 하다. 그러나 합체를 거듭함에 따라 결국 이제까지 어떤 로봇물도 보여주지 못한 우주급(!!) 스케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로봇의 성장은 주인공 소년 시몬의 정신적 성장과도 연계되어 있다.</p>
<p>&nbsp;</p>
<p><img alt="" src="http://t2.gstatic.com/images?q=tbn:lM06F7SJ4xb4RM" />&nbsp;◀ 이랬던 녀석이</p>
<p><img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2/09/47/f0006347_47ac89cd42906.jpg" /></p>
<p>&nbsp;</p>
<p>▲ 이렇게 변합니다</p>
<p>&nbsp;</p>
<p>&nbsp;</p>
<p>또한 애니메이션 내적으로 &lt;그렌라간&gt;의 또다른 특징이 있다면, 만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데포르메' 기법을 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lt;그렌라간&gt;의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열혈물답게 굉장히 과장되어 있으며, 그 동세(動勢)는 인체비례를 무시하기까지 하며 강렬한 원근법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캐릭터들의 신체는 표현의 편의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며, 얼굴 표정도 안면부 함몰을 의심케 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이러한 연출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극적 현실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며,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때 어디까지 대상을 뭉개어(;;) 극대화된 감성적 효과를 노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훌륭한 예라 하겠다.</p>
<p>&nbsp;</p>
<p>내러티브에 있어서 &lt;그렌라간&gt;을 보는 사람을 가장 거슬리게 할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마초이즘일 것이다. 사실 '드릴'이라는 무기 자체부터가 일단 좀 그렇다. 약간만 알고 보면 누가 뭐래도 남근의 상징 아닌가. 게다가 클 수록 좋다니(;;) 이런 원초적인 마초이즘도 몇 없을 것이다. 또한 열혈물의 특성상 여성 캐릭터들은 거의 부차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으며, 남성적 공격성에 대한 예찬은 어떤 페미니스트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 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카미카제 정신의 미화라던가, 정치인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라던가 하는 부분에 대한 비판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어 왔다.</p>
<p>&nbsp;</p>
<p>그러나 &lt;그렌라간&gt;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변호하자면, 열혈물이 내세우는 인간 의지와 불가능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윤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대중 문화의 특성상 그 주 소비층인 젊은 남성들을 의식하여 그것이 남성적 형태로 표출되고는 있지만, 일본이라거나 남성이라거나 하는 외형을 걷어내고 보면 마초이즘이나 카미카제 정신과 유사하지만 궤가 다른, 인간의 원초적인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p>
<p>&nbsp;</p>
<p>&nbsp;</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Animation</category>
			
			
			<pubDate>Sat, 06 Mar 2010 19:37:0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9</guid>
			<title>2010/03/06</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9</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오랫동안 싸지방이 운영지침 변경 관계로 문을 닫았었다. 게다가 다음 주에 훈련이 예정되어 있어서 엄청 바쁜 한 주이기도 했으니 블로그를 여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p>
<p>&nbsp;</p>
<p>격조한 소식에 혹여나 신경쓰신 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p>
<p>&nbsp;</p>
<p>&nbsp;</p>
<p>&nbsp;</p>
<p>2.</p>
<p>&nbsp;</p>
<p>3월을 맞아 일병을 달았다. 이등병 때보다 일이 많아졌고, 시간은 없어졌다. 위병부조장 근무와 외곽근무 사수를 경험하게 되었고, 청소시간에 분리수거 담당도 나가게 되었다.</p>
<p>&nbsp;</p>
<p>이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면 내가 최고참.</p>
<p>&nbsp;</p>
<p>&nbsp;</p>
<p>&nbsp;</p>
<p>3.</p>
<p>&nbsp;</p>
<p>읽을 책이 없어.......... 읽을 시간도 없어..........</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at, 06 Mar 2010 15:44:4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8</guid>
			<title>&lt;케이온&gt; 캐릭터 모음</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img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3/11/10/e0010910_49b71c1114073.jpg" /></p>
<p>&nbsp;</p>
<p>뒤쪽 가운데가 타이나카 리츠, 왼쪽이 코토부키 츠무기, 오른쪽이 아키야마 미오, 앞쪽 가운데가 히라사와 유이.</p>
<p>&nbsp;</p>
<p><img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904/22/20/f0032520_49ef0fc762683.jpg" /></p>
<p>&nbsp;</p>
<p>실제 주인공인 유이를 제치고 케이온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키야마 미오 양. 검고 긴 생머리 츤데레 캐릭터는 모든 오타쿠들의 로망 아닐까?</p>
<p>&nbsp;</p>
<p><img alt="" src="http://cfs4.flvs.daum.net/files/39/73/97/93/19495521/thumb.jpg" /></p>
<p>&nbsp;</p>
<p>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유이 쪽. 귀엽다~</p>
<p>&nbsp;</p>
<p><img alt="" src="http://blogfile.paran.com/BLOG_600341/200909/1252576944_%EB%A6%AC%EC%B8%A03.jpg" /></p>
<p>&nbsp;</p>
<p>극중의 리츠 성격과 마찬가지로, 리츠 팬들은 유난떠는 구석이 있다 ㅋㅋ 2ch 리츠 팬들의 '옥상go'는 이제 고정 대사. 매력 포인트는 까불거리는 평상시와 간혹 보이는 속 깊은 구석, 혹은 소녀다운 감성 사이의 갭이 최고.</p>
<p>&nbsp;</p>
<p><img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905/26/74/d0057774_4a1b60c4915da.jpg" /></p>
<p>이런 느낌도 괜찮지 않나...;; ㅋㅋ 메이저 밴드 느낌.</p>
<p>&nbsp;</p>
<p><img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2/31/64/c0094364_4b3b6af4b3ae0.jpg" /></p>
<p>&nbsp;</p>
<p>2010년 4월 2기 제작 확정!! 일병 휴가 때 꼭 본다!!</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Animation</category>
			
			
			<pubDate>Sun, 14 Feb 2010 18:10:1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7</guid>
			<title>&lt;어떤 과학의 초전자포&gt;, 2009</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img alt="" src="http://pic1.ohpy.com/up/elbbs/2009/09/20/70119/1910785146/1_se7enntim.gif" /></p>
<p>&nbsp;</p>
<p>&lt;어떤 과학의 초전자포&gt;&nbsp; <span style="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とある科學の超電子砲</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감독: 나가이 타츠유키</span></p>
<p><span style="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원작: 카마치 카즈마, 후유카와 모토이</span></p>
<p>각본: 미나카미 세이시</p>
<p>제작: J.C. Staff</p>
<p>&nbsp;</p>
<p>&nbsp;</p>
<p>&lt;어떤 과학의 초전자포&gt;는(원제에서는 초전자포를 레일건으로 읽는다) 같은 원작자의 대표작 &lt;어떤 마술의 금서목록&gt;의 외전격인 라이트 노벨을 애니메이션화한 2009년 12월 신작이다. 금서목록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히로인인 미사카 미코토를 전면에 내세워 큰 관심을 모았다.</p>
<p>&nbsp;</p>
<p>배경은 초능력이 과학으로 검증되어 훈련 가능해진 근미래, 초능력 연구를 조직적으로 시행하며 초능력자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 건설된 계획도시인 학원도시(學園都市)이다. 온갖 초능력 연구 시설과 학교만이 집결되어 있는 이 도시에서, 학원도시에서도 단 7명밖에 없다는 레벨 5의, 몸에서 전기를 방출하는 능력을 가진 속칭 '레일건' 미사카 미코토, 학원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 '저지먼트'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레벨 4의 순간이동 능력자 시라이 쿠로코, 쿠로코와 함께 저지먼트 활동을 하는 레벨 1의 우이하루 카자리, 그리고 우이하루의 친구인 레벨 0의 샤텐 루이코, 이 4인의 소녀가 벌이는 모험극을 그려내고 있다.</p>
<p>&nbsp;</p>
<p>애니메이션은 &lt;금서목록&gt; 시리즈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을 명작이다. 그리고 감독을 맡은 나가이 타츠유키는 J.C. Staff의 최근작 &lt;토라도라!&gt;를 제작했던 인물로서,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살리고 의미를 담은 연출을 선보이는데 재능을 가졌음을 전작을 통해 입증했다. 물론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p>
<p>&nbsp;</p>
<p>특히 &lt;초전자포&gt;에서 큰 줄기를 차지하는 문제는 소위 '레벨0', 즉 분명 이론적으로라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누구나 초능력을 쓸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배워도 능력을 갖지 못하는 무능력자들의 박탈감과 관련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나뉘어지는 재능의 차이와 그로 인해 분할되는 도시 내의 일종의 계급 속에서 피어나는 갈등에 소녀들은 휘말려 간다.</p>
<p>&nbsp;</p>
<p>물론 다른 건 다 차치하고, 화면을 가득 수놓는 꽃다운 미소녀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캐릭터들의 동세도 화면의 연출도 수준급이기 때문에 감상의 기쁨은 배가 된다. 특히 시라이 쿠로코의 "쟛지멘토데스노!(저지먼트에요!)"라는 고정 대사는, 그 자체로선 큰 의미 없는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쿠로코의 독특한 캐릭터와 어투만으로 이미 일본 2ch 오타쿠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p>
<p>&nbsp;</p>
<p>OP의 경우 1쿨 OP가 2쿨 OP보다 좋다. 동조자 추천 별점 5개 만점 중 4개.</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Animation</category>
			
			
			<pubDate>Sun, 14 Feb 2010 17:58:4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6</guid>
			<title>2010/02/14</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6</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첫 휴가는 즐거웠다. 집에 도착해서 사복으로 갈아입자마자 그동안의 군생활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p>
<p>&nbsp;</p>
<p>내가 없는 동안 역시 사회는 많이 변했다. 녹두거리엔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단골이었던 ez 만화방은 문을 닫았다. 그래도 변함없는 얼굴들이 맞이해 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랄까.</p>
<p>&nbsp;</p>
<p>&nbsp;</p>
<p>&nbsp;</p>
<p>2.</p>
<p>&nbsp;</p>
<p>기껏 오덕 분류를 생성해서 이것저것 올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군대 싸지방에선 이미지 업로드가 안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p>
<p>&nbsp;</p>
<p>애니메이션 관련 글에 관련 이미지가 빠지면 앙꼬 빠진 찐빵인데, 이를 어쩌나....</p>
<p>&nbsp;</p>
<p>...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이미지 파일 주소를 그대로 링크하면 되잖아, 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ㅋㅋ</p>
<p>&nbsp;</p>
<p>&nbsp;</p>
<p>&nbsp;</p>
<p>3.</p>
<p>&nbsp;</p>
<p>지우(知友)에게서 편지가 왔다. 훈련소 생활이 힘들긴 한가 보다.</p>
<p>&nbsp;</p>
<p>&nbsp;</p>
<p>&nbsp;</p>
<p>4.</p>
<p>&nbsp;</p>
<p>내가 그 동안 겪어 왔던 학생 시절 4년여를 글로 정리해볼까 싶다. 시간순으로 완벽하게 정리하는 건 무리고, 인물 열전과 주요 추억거리 등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려고 한다.</p>
<p>&nbsp;</p>
<p>예전에 &lt;현시연&gt;이라는 오타쿠 소재 만화를 보면서, 운동권의 학생 생활도 충분히 시트콤스럽고, 흥미로운 극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만화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니 실제로 실천은 못 하는 망상이지만.</p>
<p>&nbsp;</p>
<p>어쨌든 그 즐거웠던, 찬란했던, 아팠던, 절망했던 모든 기억들을 다 정리해 두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un, 14 Feb 2010 17:42:58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5</guid>
			<title>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개봉</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5</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img height="607" width="490" alt="" src="/files2/128/leftside/images/201002/061216281.jpg" /></p>
<p>&nbsp;</p>
<p>2004년, 전 세계&nbsp;오덕들을 열광시키고 모에와 츤데레로 대표되는 21세기 오덕 코드의 정점에 선 전설의 작품, &lt;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gt;. 소설판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잘라먹고 1쿨(주: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은 보통 13화를 기준으로 쿨이라는 단위를 쓰고, 한 번에 방영된 묶음을 기준으로 기라는 단위를 쓴다. 즉 예를 들어 2010년 3월부터 26주 동안 총 26화 방영된 경우, 1기 2쿨짜리인 셈이다)로 나왔던 2004년판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p>
<p>&nbsp;</p>
<p>2009년 가을, 각 화의 순서를 시간 순서로 재배열하고(2004년판은 시간 순서가 제멋대로다), 빠진 몇몇 에피소드들을 끼워넣은 재방영판이 나왔지만, &lt;엔들리스 에이트&gt; 에피소드에 8화를 쓰는 초 무개념 짓거리로 결국 하루히 시리즈 최고의 인기 에피소드, &lt;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gt;(속칭 소실편)이 다시 뒤로 밀리고 말았다.</p>
<p>&nbsp;</p>
<p>하루히의 제작사 쿄토 애니메이션(약칭 쿄애니)은 결국 2010년 2월 소실편을 극장판으로 개봉하겠다고 발표했고, 역시 흥행이 보장되어 있는 인기 에피소드로 가장 돈을 많이 긁어모을 매체를 이용하기 위해 재방영판을 그따위로 만들었다는 팬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팬들은 지갑을 열 채비를 하고 있다. 개봉일은 2월 6일. 휴가 복귀 하기 전에 보고 갈 수 있다. 앗싸.</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Animation</category>
			
			
			<pubDate>Sat, 06 Feb 2010 00:19:2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4</guid>
			<title>오덕질을 위한 변명</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4</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고대하던 휴가를 나와서, 저번 일기에서 예고했던 대로 오덕질을 위한 글분류를 새로 정비했다. 일단 본격적인 블로그 오덕질을 시작하기 전에, 나름 뭔가 이 어둠의 취미(?!)에 대한 자기변호가 필요할 것 같아서 몇 자 끄적여 본다.</p>
<p>&nbsp;</p>
<p>사실.... 오타쿠 취미는, 당사자인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별로 떳떳한 것은 못 된다. 몇몇 오타쿠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핍박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양가 없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서 소비 문화에 침잠해 있는 오타쿠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 내용물이라는 것 역시 대체로 극히 통속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들 뿐이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남성 소비자를 위한 모에함이라는 성적 코드의 매매 행위가 오덕질의 본질인 것이다.</p>
<p>&nbsp;</p>
<p>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떳떳하지 못한 취미를 버리지 않고 심지어 블로그에 게시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이냐.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p>
<p>&nbsp;</p>
<p>"사람이 어떻게 매일 웰빙 음식만 먹고 사나? 쫀듸기도 먹고 아폴로도 먹는 거지."</p>
<p>&nbsp;</p>
<p>사실 불량식품, 몸에 안 좋은 거 다 안다. 정크푸드도 그렇고 술 담배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선식 비스무리한 것만 먹고 해롭다는 거엔 손도 안 대는 거? 깝깝해서 어떻게 그렇게 사냐. 간혹 그렇게 사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다만 난 그런 거 보고 있으면 솔직히 좀 소름 끼친다. 인간의 쾌락에 대한 추구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자기파괴의 충동 아니던가? 그 분들께선 왜 그토록 자신의 이드에 가혹하신 것인가? 자기파괴의 충동이 억압되어 전이되면 타인에 대한 파괴충동으로 전이한다는 얘기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p>
<p>&nbsp;</p>
<p>정도껏 하면 된다. 사실 오타쿠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잘 못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항상 너무 심해서 아니겠는가? 술이야 다들 먹는 거지만 알콜 중독자는 치료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쫀듸기가 스테이크보다 맛있다고 하는 놈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살면서 쫀듸기 한 번 안 먹어 봤다는 사람도 나름 문제 있는 거 아니겠나?</p>
<p>&nbsp;</p>
<p>매일매일을 진지하게 살아야 할 것 같고 모든 일에 정치적 함의를 따져봐야 할 것 같은 속칭 진보파들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유층에 대한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 안 보고, 대상화된 여성을 소비한다며 모에 애니들을 죄다 폐기처분하고, 폭력을 일상화한다며 치고 박는 게임들 전부 지워버리고.... 대중문화는 인민을 순종시키는 마약이라며 목청 높이며,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싸우는 것도 좋은데, 뭐든지 다 그렇게 잡아 뜯으려고 하면 인생 피곤해진다.</p>
<p>&nbsp;</p>
<p>괜시리 큰 의미 부여하지 말고, 정말 말초적인 쾌감을 위한 취미 한 둘쯤 있어도 나쁠 거 없잖겠는가. 보면 재미있다, 예쁘고 귀여워서 기분 좋다, 그냥 여기서 끝나는 아주 단순한 쾌감. 불량식품 사 먹는 기분으로 즐겨 보는거다.</p>
<p>&nbsp;</p>
<p>더 이상 길게 쓰면 뭔가 더 찌질해질 것 같고, 그냥 원사운드의 불후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마무리 지으려 한다.</p>
<p>&nbsp;</p>
<p>"오덕질 그런 거 왜 해요?"</p>
<p>&nbsp;</p>
<p>"시바... 오덕질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십덕십덕</category>
			
			
			<pubDate>Sat, 06 Feb 2010 00:04:4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3</guid>
			<title>2010/01/31</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3</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빌어먹을 혹한기 훈련이 끝이 났다. 30km 행군도 단독군장으로 무사히 마쳤고....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큰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텐트에서 자다 근무 때문에 일어나야 할 때는 기분 더러웠지만.</p>
<p>&nbsp;</p>
<p>단독군장만 하고 걸어도 후유증이 꽤 남는데, 20kg이 넘는 완전군장을 과연 메고 걸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직도 한참 남은 군생활이 처음으로 깝깝하게 느껴진다.</p>
<p>&nbsp;</p>
<p>&nbsp;</p>
<p>&nbsp;</p>
<p>2.</p>
<p>&nbsp;</p>
<p>첫 휴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현재의 계획은 4일과 6일 밤에 각각 목짧은기린 녀석과 더러운 이중전공 복학생 녀석을 만나고, 5일 밤과 7일 밤을 가족과 보내는 것. 물론 낮은 만화, 애니, 와우에 올인이다.</p>
<p>&nbsp;</p>
<p>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결국 이번 휴가에 못 보는구나, 제기랄. 하지만 덕분에 일병 휴가 때는 케이온 2기와 소실편, 뱀파이어 번드에 히다마리 스케치 3기까지 종합 선물세트로 볼 수 있겠군.</p>
<p>&nbsp;</p>
<p>&nbsp;</p>
<p>&nbsp;</p>
<p>3.</p>
<p>&nbsp;</p>
<p>블로그에 너무 정치, 공부 얘기만 써 왔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리뉴얼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휴가 나가면 좀 매만져 봐야겠다.</p>
<p>&nbsp;</p>
<p>사실 진보넷 블로그는 그 특성상 다른 블로그들처럼 취미 얘기를 쓰기가 좀 주저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네이버나 이글루, 티스토리 따위를 뒤적거려 봤지만... 네이버는 포탈과의 연계가 너무 확실해서 짜증나고, 이글루는 쓰레기 산더미 같은 분위기라 패스, 티스토리는 깔끔하긴 한데 너무 폐쇄적.</p>
<p>&nbsp;</p>
<p>뭐 다른 블로거들과 열심히 교류를 하는 성격도 아니고, 어디서 하든 무슨 상관이냐. 기왕이면 내가 좋아서 시작했던 곳에서 내가 좋은 일 하면 그만이지.</p>
<p>&nbsp;</p>
<p>고로 2월 4일부터 8일 사이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이 블로그엔 만화, 애니, 게임 등의 오타쿠 주제가 올라오기 시작할 예정이다. 개봉박두.</p>
<p>&nbsp;</p>
<p>&nbsp;</p>
<p>&nbsp;</p>
<p>4.</p>
<p>&nbsp;</p>
<p>&lt;절반의 인민주권&gt;, &lt;파르티잔&gt;, &lt;법률&gt;, &lt;법철학&gt;</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un, 31 Jan 2010 19:36:1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2</guid>
			<title>&lt;로마사 논고&gt; 인용문</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2</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lt;로마사 논고&gt;의 일독을 끝냈다. 이제 토플 공부 좀 하면서 천천히 재독 들어가야겠다.</p>
<p>&nbsp;</p>
<p>일독하면서 가치가 특별한 듯한 문장들을 노트에 정리했다. 코멘트를 달 만한 인용문에 몇 마디를 붙여 블로그에 기록해 놓는다.</p>
<p>&nbsp;</p>
<p><u>&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u></p>
<p>&nbsp;</p>
<p>87p. "모든 도시는 인민에게 그들의 야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 자유를 희구하는 평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거의 없다."</p>
<p>&nbsp;</p>
<p>88p. "키케로가 말하듯이, 인민은 비록 무식하지만, 그들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무엇이 진리인지를 이야기해줄 때 그 진리를 납득하고 거기에 쉽게 복종하는 법이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마키아벨리가 견지하는 특유의 인민(Popolo)과 귀족(Grandi)의 변증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마키아벨리 당대의 이탈리아 도시들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로마에서는 마키아벨리의 메타포 그대로 계급적인 차이로서 양자가 드러나고 있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대중과 엘리트, 혹은 전위의 구분은 언제나 등장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인간의 의식 발전이 균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부분은 인민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 다만 인민에게서 신망을 받을 수 있을 만한 현실적인 역량과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올바른 자세를 겸비한 전위가 인민과 상호 작용할 때에만 그것이 현실화된다는 것이다.</span></p>
<p>&nbsp;</p>
<p>100p. "만약 그가 폭도에 의해 살해되었더라면 ... 그로 인해 개인과 개인 간에 피해가 속출했을 것 ... 그러한 피해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방어하고자 하는 욕구를 낳고, 이는 파벌로 발전한다. 파벌로부터 국가의 당파가 생기고, 이로 인해 국가는 파멸된다."</p>
<p>&nbsp;</p>
<p>108p. "...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 ... 왜냐하면 복원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 자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자가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p>
<p>&nbsp;</p>
<p>118p. "실로 어떤 입법자도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비상시 법률을 제정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 또한 많은 좋은 일들이 신중한 사람에게는 명백하지만, 그 자체로는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현명한 사람은 신에 호소한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에 있어 종교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고전 독해가 그렇듯이 우리는 여기서 종교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핵심은 '많은 좋은 일들'이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 있어서&nbsp; 합리주의의 본질적인 무력성이다. 즉 여기에서의 종교란 이데올로기 일반이며, 모든 입법자 혹은 혁명가는 그 자체로서는 증명 불가능한 많은 필요한 조치들을 선험적 도덕으로 표현되는 대항 이데올로기로써 뒷받침해야 함을 의미한다.</span></p>
<p>&nbsp;</p>
<p>120p. "... 공화국이나 왕국을 구원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잘 다스리는 군주를 갖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잘 유지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군주를 갖는 것이다."</p>
<p>&nbsp;</p>
<p>134p. "... 새롭게 자유를 얻은 국가는 열렬한 적은 있지만 열렬한 동맹은 없다는 점이다."</p>
<p>&nbsp;</p>
<p>135p. "... 다중을 다스리고자 하면서도 새로운 정부의 적에 대해 단단한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은 자는 단명에 그칠 국가를 수립한 셈이나 다름없다."</p>
<p>&nbsp;</p>
<p>157~158pp. "... 그 개혁된 정부가 잘 유지되고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하거나 소망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실제에 못지않게 외양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이것은 많은 개혁가들이 잊고 있는 것이다. 구제도의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새로 설계된 사회구조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 유명한 코뮌이나 소비에트 역시 기존에 각국에 이미 존재하던 풀뿌리 기구에 권력을 부여하여 변형시킨 것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제도 중에 그러한 외양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어떤 것을 핵으로서 활용할 수 있겠는가?</span></p>
<p>&nbsp;</p>
<p>163p. "인민은 자유를 잃지 않고 지속할 때보다도 오히려 일단 잃었던 자유를 되찾았을 때 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p>
<p>&nbsp;</p>
<p>176p. "... 이와 달리 처신하고 나서 위험이 닥쳐왔을 때 은혜를 베풂으로써 당장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 단지 일신의 파멸만을 재촉할 뿐이다."</p>
<p>&nbsp;</p>
<p>177~178pp. "내부적인 또는 외부적인 원인으로 비롯되는 위험 ... 그러한 위험이 심각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경우, 가장 안전한 계획은 그것을 기어이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대처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p>
<p>&nbsp;</p>
<p>182p. "... 무력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명칭이 붙은 관직이라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관직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해서 꼭 권력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p>
<p>&nbsp;</p>
<p>183p. "... 공화국은 그 제도 가운데 임시 독재 집정관(인용자 주 - Dictator의 번역어)과 같은 관직을 꼭 설치해두어야 한다."</p>
<p>&nbsp;</p>
<p>190p. "... 잘 정비된 공화국은 그들의 국고를 넉넉하게 하고, 시민은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여기서 시민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 당대에나 로마 시대에나 '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풍요롭게 사용하고도 남는 잉여자원을 의미했다. 즉 무위도식이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소외시킬 만한 정도의 사치,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분배를 좌우할 권력을 부여할 수 있는 생산 수단으로서의 부이다. 여기서&nbsp;말하는 것은 시민을 배곯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그들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자원만을 제공하고, 한 번에 큰 자원을 요구하는 대사(大事)나 사고에 대해서는 공공 사업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다.</span></p>
<p>&nbsp;</p>
<p>205p. "... 인민들이 호감을 느끼고 부자들이 적대감을 느끼는 참주들은 훨씬 더 확고한 지위를 누린다는 결론이 나온다."</p>
<p>&nbsp;</p>
<p>209p. "... 공화국이나 왕국을 유지할 것을 기대한다면, 당신 자신의 백성들로 구성된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p>
<p>&nbsp;</p>
<p>210p. "... 우두머리가 없는 다중의 무력함 ..."</p>
<p>&nbsp;</p>
<p>213p.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 공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면 일거에 잔혹한 조치를 취하고 그 후에는 인민 사이에 평온과 확신을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통해 공공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p>
<p>&nbsp;</p>
<p>220p. "... 인민은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잘 속지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으로 내려오면 재빨리 그리고 쉽게 사태를 직시하게 된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문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안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인민이 쉽게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사안들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들에게 일반적인 사안의 형태를 드러내 줄 수 있어야 한다.</span></p>
<p>&nbsp;</p>
<p>232p. "... 인민은 좋은 것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자주 그들 자신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한다..."</p>
<p>&nbsp;</p>
<p>241p. "... 토지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 ... 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공화국은 물론 모든 나라에 위험한 인물들이다. ... 왜냐하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모든 종류의 자유로운 정부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예나 지금이나 잉여자원을 생산 수단으로 활용하는 무위도식자들은 자유의 적이다.</span></p>
<p>&nbsp;</p>
<p>246p. "... 지도자가 없어 걷잡을 수 없는 다중보다 더 무서운 것도 없겠지만, 다른 한편 그보다 더 연약한 존재도 없는 것이다. ... 다중이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의 지도에 따라 단결을 유지하면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p>
<p>&nbsp;</p>
<p>253p. "다중의 잔인함은 모든 다중의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고 염려되는 한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의 잔인함은 군주가 자신의 개인 재산을 탈취할 것이라 염려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다."</p>
<p>&nbsp;</p>
<p>262~263pp. "... 세계는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나쁜 것만큼이나 좋은 것도 많았다고 판단된다. ... 전체로서의 세계는 본래 동일하게 남아 있었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마키아벨리 특유의 순환론적 관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그가 역사를 횡단면으로 잘라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난다. 즉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 역사란 각각의 시대를 통괄하는 사이클을 단면으로 잘라내어, 다른 시대의 단면들과 겹쳐 봄으로써 그 일치함을 확인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는 나선형으로 전진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마키아벨리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관찰하면 당연히 그 원형 운동의 궤적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것을 관찰할 수 있지만, 그것과 반대로 역사를 종단면으로 관찰하면 - 즉, 각 시대를 통과하면서 변화한 모든 요소들을 연속선상에 놓는 방식을 사용하면 - 역사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span></p>
<p>&nbsp;</p>
<p>272p. "... 도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개별적인 선이 아니라 공동선이기 때문이다."</p>
<p>&nbsp;</p>
<p>291p. "... 전쟁을 일으킨 자라면 누구든지 이익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지며 ... 위의 지침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 무엇보다도 ... 전쟁의 기간을 짧게, 그리고 규모는 크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이것은 전쟁 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내전에도 적용된다.</span></p>
<p>&nbsp;</p>
<p>301~302pp. "... 내가 어떤 군주와 전쟁을 했으면 하는데 그 군주와 우호조약을 맺어 오랫동안 준수해온 사이라면, 그 군주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그의 동맹국들 중 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정의의 명분이나 다른 핑계를 쉽게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군주가 분개하고 나서면 그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 나의 의도가 실현되는 것이고, 만약 그가 분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속국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그의 나약함과 신의 부족이 만천하에 폭로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전쟁을 하고자 하는 군주를 현체제, 혹은 현체제의 표상으로서의 국가로 바꿔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span></p>
<p>&nbsp;</p>
<p>303p. "군주가 자신의 군대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력을 금력이나 지형상의 유리함 또는 사람들의 선의로만 측정한다면 그는 항상 스스로를 기만하는 셈이 될 것이다."</p>
<p>&nbsp;</p>
<p>308p. "...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쉽게 원조할 수 없거나 ...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인해 무력을 사용하여 원조할 수 없는 군주와 동맹을 맺는 것은 ... 실질적인 원조를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허명(虛名)을 가져다주는 데 불과하다는 점이다."</p>
<p>&nbsp;</p>
<p>315p. "... 전쟁에 대비하여 무장을 하고 훈련된 인민을 거느리고 있는 군주는 강력하고 위험한 전쟁을 수행할 때 항상 자국 안에서 기다려야 ... 그러나 신민들이 무장하지도 않고 전쟁에 익숙하지도 않은 나라의 군주는 가능한 한 본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p>
<p><span style="color: #ccffff">-&gt; 인용자 주: 역시 사회적 내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전선을 모순이 첨예화되는 노동의 영토, 즉 현장으로 전제하거나, 아니면 적들의 심장부인 국가기구로 전제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얼마나 '무장'한 인민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다른 곳에서도 지속적으로 조언하고 있듯이, 결국 최종적으로 무장한 인민을 가지는 것 이외에 승리할 방법은 없다.</span></p>
<p>&nbsp;</p>
<p>317p. "나는 원래 비천한 운명에 놓여 있는 자가 정정당당한 실력만으로 정직한 방법을 통해 위대한 권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p>
<p>&nbsp;</p>
<p>347p. "... 공화국이 그 좁은 경계 안에 멈추어 있으면서 자유를 누리기란 불가능하다."</p>
<p>&nbsp;</p>
<p>358p. "... 사람들은 널리 퍼진 자기 기만을 통해 선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을 추종하거나, 아니면 공공선보다는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추천된 어떤 사람들을 추종하게 된다. 그러나 역경에 처하면 이런 기만은 마침내 폭로되게 마련이고, 당연히 사람들은 평온한 시기에는 거의 잊혀졌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p>
<p>&nbsp;</p>
<p>362p. "무릇 통치라는 것은 백성들이 당신을 해칠 수 없거나 백성들이 당신을 해치는 것을 원하지 않도록 백성들을 다루는 것에 다름 아니다."</p>
<p>&nbsp;</p>
<p>393p. "인간은 운명의 구도에 따라 부딪혀 나갈 수는 있지만 그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간은 아주 패배한 것처럼 체념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운명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운명 또한 구부러진 미지의 길을 따라 움직이므로, 인간은 어떠한 운명이나 어떠한 고난에 처해 있든지 항상 희망을 품어야 하고 절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p>
<p>&nbsp;</p>
<p>420~421pp. "... 참주의 권력을 강탈하고 나서 브루투스와 같은 자를 죽이지 않는 자나, 국가를 자유롭게 하고 나서 브루투스의 아들과 같은 자들을 죽이지 않는 자는 권력을 단지 일시적으로밖에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어떤 악이 선을 쉽사리 분쇄할 염려가 있을 때 그 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코 그 악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p>
<p>&nbsp;</p>
<p>453p. "... 군주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되, 자신의 권한과 그들의 권한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또 왕국 이외에 무언가 소망할 것을 그 중간에 남겨두어야 한다."</p>
<p>&nbsp;</p>
<p>458p. "... 왜 .... 자유로운 정부로부터 참주정으로의 변화와 그 역의 많은 변화들 중 어떤 것은 유혈사태를 수반하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 이는 ... 변화된 어떤 정부가 폭력에 의해 수립되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만약 어떤 정부가 폭력에 의해 수립되었다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생겨났을 것이며, 붕괴할 때에도 과거에 해를 입은 자들은 필연적으로 복수를 시도하고, 이러한 복수의 열망을 유혈과 죽음을 낳는다."</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학습</category>
			
			
			<pubDate>Fri, 25 Dec 2009 09:47:25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1</guid>
			<title>2009/12/20</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1</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행보관님이 진노하시어 싸지방 이용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오늘은 행보관이 출근하지 않아 전병력이 몰래(??) 싸지방을 하고 있다.</p>
<p>&nbsp;</p>
<p>이 부대, 다 좋은데 간부들이 또라이인데다가 수도 많다. 그나마 장교가 많으면 좀 괜찮겠는데 다 부사관 찌끄레기들. 내년 9월부터 10개월간 분대장 노릇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p>
<p>&nbsp;</p>
<p>&nbsp;</p>
<p>2.</p>
<p>&nbsp;</p>
<p>참고로 나는 소위 풀린 군번. 저번 주 월요일에 벌써 후임 2명이 생활관에 들어왔고, 이번 주엔 또다른 후임 1명이 다른 생활관에 들어왔다.</p>
<p>&nbsp;</p>
<p>내 위로 생활관 맞선임은 나와 5개월 차, 분과 맞선임은 6개월 차다. 내년 8월만 되면 생활관에 선임 3명, 분과엔 1명만 남게 된다. 게다가 분과 맞선임이 약간 모자란 분이신지라 분대장은 자연스레 내게 넘어오게 될 것이고 나는 10개월 동안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다. 으하하하.</p>
<p>&nbsp;</p>
<p>&nbsp;</p>
<p>3.</p>
<p>&nbsp;</p>
<p>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결국 한국 좌파의 단결을 가로막는 큰 틀에서의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경제주의/정치주의적 편향에 대한 견해차와, 기회주의에 대한 견해차.</p>
<p>&nbsp;</p>
<p>후자의 경우 그 해결이 매우 난망하다. 사실 기회주의란 거,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가의 보도로 쓰일 수 있는 모호한 개념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이걸 덮어놓고 가는 것도 정답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들 마음에 안 드는 활동양태를 죄다 몰아다 기회주의라고 비난하고 다니는 현재의 모습도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p>
<p>&nbsp;</p>
<p>하지만 전자의 경우엔 어느 정도 그 매듭 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양극단 편향을 지양하고 통합적이고 변증법적인 이해를 이끌어낼 이론적 틀 없이, 과거의 권위 있는 저서들 중에서 각 정파의 입맛에 맞는 구절들만 뽑아 비난의 무기로 쓰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다. 결국 이 문제는 계급권력과 생산관계에 대한 명쾌한 해설과, 그것을 밑바탕으로 한 통일적인 사회구성체론이 제시될 때만 해결될 수 있다.</p>
<p>&nbsp;</p>
<p>물론 그 이론을 힘있게 뒷받침해줄 세력을 구성하는 것 역시.</p>
<p>&nbsp;</p>
<p>&nbsp;</p>
<p>4.</p>
<p>&nbsp;</p>
<p>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 2월에 극장판으로 개봉한다는데, 지금 신병 위로휴가를 나가서 이것을 보고 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본인의 초유의 관심사다.</p>
<p>&nbsp;</p>
<p>국내에서 정식 개봉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보려면 불법 다운로드판인데, 이게&nbsp;풀리는 시점이 과연 개봉일을 기점으로 언제부터일 것이냐의 문제다. 이틀에서 사흘 내로 판이 돌긴 하겠지만 나 같은 양민 오덕이 구해보기엔 어려운 루트에서 돌아다닐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 단속에 걸려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p>
<p>&nbsp;</p>
<p>물론 철저한 계산으로 휴가일을 잡아놔도 사람 수 문제로 며칠 밀려 버리고 그러면 다 헛고생. 어헣헣.</p>
<p>&nbsp;</p>
<p>&nbsp;</p>
<p>5.</p>
<p>&nbsp;</p>
<p>역시 마키아벨리는 재미있다. 이 고전주의자에게선 항상 정치의 역동성을 발견한다.</p>
<p>&nbsp;</p>
<p>&lt;로마사 논고&gt;는 &lt;군주론&gt;과 같은 맥락에서 읽어도 다른 느낌을 주는 저서이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공화국에 대해 논하고 있는 후기 저서라는 측면에서 &lt;군주론&gt;의 우회적인 지적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lt;군주론&gt;에서의 현실주의적 조언이 공화국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lt;군주론&gt;의 언급이 단순히 민중에 대한 군주의 실체 폭로라거나, 군주를 파멸로 몰아가기 위한 함정이라고 보는 나이브한 견해를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p>
<p>&nbsp;</p>
<p>그러나 고전에서의 공화국 논의를 볼 때마다 턱턱 걸리는 부분이 바로 도덕주의라는 부분. 사실 이것은 도덕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맥락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권력 유지 기능을 도덕적 기강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과연 현실주의적인 견해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p>
<p>&nbsp;</p>
<p>마키아벨리에게서 새로이 배운 또 하나의 황금 같은 교훈: 역사가 순환한다 해도, 그 운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순환의 과정이 없어지면 결국 인간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도 결국 똑같아질 것이라 냉소하는 자들이여,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라.</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un, 20 Dec 2009 18:58:5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40</guid>
			<title>Idea: '계급'을 정치화하기(미완성)</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40</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2월 4일의 일기에 마지막으로 썼던 단상을 조금 더 발전시켜 긁적여 본다.</p>
<p>&nbsp;</p>
<p><strike>&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trike></p>
<p>&nbsp;</p>
<p>강막수 선생 이후 사회과학에서 계급이라는 단어를 빼고 이루어지는 논의는 거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건 사회를 논함에 있어 계급을 논하지 않고서는 언제나 중대한 공백을 남기게 되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은 명백해진지 오래다. 그러나 여전히도 그 정의나 개념의 이해는 불충분한 것이 사실이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왜곡되거나 모호한 수사법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p>
<p>&nbsp;</p>
<p>그간 Gauche 정치학은 주로 국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 국가가 ruling class의 executive인가, 상대적 자율성을 가졌는가, 가졌다면 얼마나 가졌는가, 현대 국가는 현대 사회의 발전과 함께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가 등등. 이러한 흐름은 현실 정치에서 국가가 가진 중요성에 기인한 것 못지 않게, 정치학의 대상, 즉 권력이라는 것이 국가로 현상한다는 근대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에도 크게 기인한다.</p>
<p>&nbsp;</p>
<p>그러나 권력을 사회로부터 이반시켜 근대 국가기구라는 특수한 조직체에만 귀속시킬 경우 사회 전체를 총괄하는 시각에서 권력을 고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정치학은 고전적으로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이라는 정의를 사용하곤 한다. 이렇게 간명한 정의를 이미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권력을 국가라는 렌즈만을 통해 고찰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가치의 배분이 언제나 국가에 의해서, 혹은 기초적으로 국가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인가?</p>
<p>&nbsp;</p>
<p>가치의 배분은 일차적으로 모든 인간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활동이자, 동시에 사회 전체의 규칙에 따라 사회 전분야에서 일어난다. 이 배분에 개입하는 권위(Authority)를 묻는다면 당연히 국가 이전에 무엇보다도 사회 자체의 룰, 가장 근본이 되는 합의된 규칙에서 물어야 한다. 즉, 체제(System)가 가장 일차적인 권력의 핵이라는 점이다.</p>
<p>&nbsp;</p>
<p>강막수 씨에 따르면 체제는 본질적으로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이 생산관계는 가치를 수취하는 지배 계급과 가치를 생산하는 피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생산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선 필자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아는 &lt;Das Kapital&gt;에 잘 나와 있다.</p>
<p>&nbsp;</p>
<p>즉 권력의 핵이자 권력의 장으로서의 체제를 고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생산관계와 그에서 도출되는 계급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여기서 기존의 Kapital 연구, 생산관계와 그 법칙을 경제 원리로서 연구해온 흐름에 존재한 하나의 맹점을 지적할&nbsp; 필요가 있다. 그 맹점이란 바로 Kapital에서 제시된 관계와 법칙 일체는 모두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요되어 최종적으로는 합의에 이른, 인위적인 결과물이자 법적 관계라는 점이다.</p>
<p>&nbsp;</p>
<p>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대상을 인위적이라고 칭하면 그 대상이 그러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 자연히 사멸하거나, 자연적인 흐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 믿는 순진한 구석을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가 인위적/법적 관계이며, 여기엔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필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법적/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 구성물이지만, 그것은 자체적인 동력과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현상태로 자리잡은 이상 자족적인 생명력을 가진다.</p>
<p>&nbsp;</p>
<p>약간 다른 곳으로 샜는데, 결국 정리하자면 생산관계란 경제제도가 아닌 정치적 룰이며, 계급이란 사회경제적 통계 범주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양 끝, 법적 관계의 갑과 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찰할 때만이 비로소 권력의 근본을 파헤칠 수 있다.</p>
<p>&nbsp;</p>
<p>그렇다면 이러한 재정의가 현대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어떠한 새로운 함의를 던져 주는가? 이에 대해서는 새로이 권력의 주체와 그 구성 조건, 그리고 권력의 작동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p>
<p>&nbsp;</p>
<p>근대 정치학이 모든 입장 차이를 떠나 합의할 수 있는 하나의 근본적인 발견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의 주체가 언제나 집단이라는 것이다. 과거 권력이 개인의 사유물이라고 봤던 전근대적 인식과 달리, 본질적 취약성(vulnerability)에 갇혀 있는 인간 존재는 언제나 집단을 이루어 권력을 쟁취하고, 그를 통해 피지배자들에게서 지배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p>
<p>&nbsp;</p>
<p>강막수 씨가 체제의 기본 구조가 생산관계에 있다고 본 이유는 바로 생산관계가 사회의 가치를 배분함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알고리즘을 형성한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물질을 생산해내기 위한 활동을 어떻게 사회화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게 할 것인가. 여기에서 계급이 발생한다. 즉 이 체계 안에서 계급이란 즉 생산 활동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 자신들을 특정한 유리한 위치, 다시 말해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수취해 낼 수 있는 위치에 놓고자 하며 또 놓아진 집단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권력의 고전적 정의에 비춰볼 때, 이 집단은 결국 가치를 자기 집단에게 유리하게 배분함에 있어 사회적 권위를 구성하고 강제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권력의 주체가 된다.</p>
<p>&nbsp;</p>
<p>이러한 권력의 주체가 구성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에 대해 우리는 루소로 다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루소는 인간의 정치적 결사체의 근본을 탐구하여 그 기저에 일반의지(la volonte generale)가 있다고 보았다. 일반의지는 해당 결사체를 구성하는 모든 자연적 개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이해관계의 교집합이며, 집단적 합의와 행동을 통해서만 취득할 수 있는 이익을 성취하고자 하는 집단적 의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필자가 과거 루소를 고찰하면서 빠뜨렸던 부분이기도 한데) 이미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엔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의 공존이라는 테마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소가 '의지'라는 개념을 이유 없이 사용한 것은 아니다. 즉 일반의지는 그 집단이 가지는 이해관계의 교집합이 존재해야 한다는 객관적 차원의 조건과, 그 집단이 그것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관적 차원의 조건을 모두 요구한다.</p>
<p>&nbsp;</p>
<p>권력의 주체로서의 계급 역시 이와 마찬가지 조건을 구비했을 때 구성될 수 있다. 즉 특정한 생산관계에 근거하여 가치를 이동시킬 경우 해당 집단으로 가치가 집중된다는 객관적인 조건과, 그것을 전사회적으로 강제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그 이익을 성취하겠다는 주관적인 조건을 모두 갖출 때 비로소 그 집단을 계급이라 할 수 있다.</p>
<p>&nbsp;</p>
<p>그렇다면 권력의 주체가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계급적 일반의지가 사회적 일반의지로 환원됨을 통해 일어난다. 즉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와 의지가 사회 전체적으로 피지배 대중에 의해 승인되어 그들 스스로의 이해관계와 의지로서 내면화될 때 권력은 작동하며 관철된다. 이러한 일반의지의 범위 확장 과정에도 역시 일반의지의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지배 계급의&nbsp;권력 획득(즉, 지배 계급의 룰에 의거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점과, 주관적으로 지배 계급이 내세우는 룰이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의롭다는 동의가 그것이다.</p>
<p>&nbsp;</p>
<p>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안정된 사회에 계급이란 사실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배 계급만이 권력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룰을 안정화시키고, 그에 따라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주역으로서 활동한다. 피지배 대중에겐 자신들의 룰이 없으며, 주체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의 배분에 참여할 수도 없다. 그들은 지배 계급의 계급적 일반의지로부터 환원된 사회적 일반의지를 수용하여 자신의 의지로 삼는다.</p>
<p>&nbsp;</p>
<p>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현대 사회의 체제를 이상과 같은 시각에서 고찰해 보자. 현대 사회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법적 관계는&nbsp;소수의 갑이 생산수단의 독점적 소유권을 승인받아 그 조건을 활용해 다수의 을이 가진 가치(즉 노동력)을 수취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생산물을 분배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갑측의 계급적 일반의지는 즉 독점적 소유권이라는 법적 동의를 근간으로 하여 일단 사회의 총생산물을 일차적으로 자신들에게 집중시키고, 그 분배를 수행할 수 있는 권위를 독점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반면 을측의 사회적 일반의지는 그 권위를 승인함으로써 자신들이 분배받을 수 있는 생산물이 보장되고 혹은 증가될 수 있다는 데 있다.</p>
<p>&nbsp;</p>
<p>이러한 두 가지 차원의 의지가 결합되어 형성된 동의에 의해 구성된 현대 사회의 법적 관계는, 이에 따라 갑측이 을측의 사회적 활동을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단순히 생산물의 분배 그 자체에만 지배적 권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배를 맡을 수 있다는 승인으로부터 연역되어 사회적 생산과정 전체, 즉 같은 말로 사회적 활동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갑측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는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통제라고도 할 수 있다.(참고 - 최형익, &lt;자본론의 정치적 해석&gt;)</p>
<p>&nbsp;</p>
<p>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회의 구조를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나누어 인식하는 것은 실제의 통합적인 성격에서 한참 엇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는 물질을 생산하는 하부구조와 문화를 생산하는 상부구조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재화와 생산물 전체가 하나의 계급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것이며 이 지배의 성격이 이원화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분리하여 이 사이의 결정성이나 자율성을 논하는 모든 논의는 사실상 논의를 어지럽히고 경제주의와 문화주의 양극단의 오류만을 낳아 왔다. 물질적 자원과 비물질적 자원 전체가 사회적 생산물이며,&nbsp;그 사회적 생산과 분배의 전과정이 지배 계급에 의해 통제된다는 시각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 전반의 모든 움직임을 생산관계라는 단일한 틀 안에서 해석할 수 있다.</p>
<p>&nbsp;</p>
<p>그리고 이러한 통합적 지배-피지배 관계의 틀 안에서 을측, 즉 피지배 대중 측은 갑측의 독점적 소유권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승인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구매하여 소유할 권리를 얻는다. 자원 전체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의 대당으로서 자기 소비품의 독점적 소유권을 인정받는, 동일한 권리의 등가 교환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을측은 사실상 갑측의 의지를 수용하는 객체로서 존재하며, 사회적으로 갑측에 통합된 부속품으로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p>
<p>&nbsp;</p>
<p>To be continued...</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학습</category>
			
			
			<pubDate>Sun, 06 Dec 2009 14:28:5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39</guid>
			<title>2009/12/04</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39</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철도노조의 파업이 사실상 백기항복으로 끝났다. 절반은 승리라는 건 그냥 립서비스고...</p>
<p>&nbsp;</p>
<p>이번 철도노조 파업 철회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은 파업 대오 이탈의 급증에 있었다고 들었다. 여론 악화와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을 또다시 견뎌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제 너무 자주 본 원인이라 신물이 날 지경이다.</p>
<p>&nbsp;</p>
<p>파업 대오 이탈과 여론 악화 사이의 연관 관계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현장에 선 노동자들을 그간 너무나 쉽게 노동자라 불러 왔지만, 그들 역시 노동자이기 이전에 '시민'이자 '국민'이다. 우리가 전사회적인 정치전선에서 지속적으로 헤게모니를 내어줄 때 현장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p>
<p>&nbsp;</p>
<p>그러나 전사회적 정치전선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2002~2009까지 한국 대중운동의 하나의 담론으로까지 격상한 촛불시위의 무기력한 모습이 보여주듯, 사회적 권력을 중심으로 한 조직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시민운동은 대안이 아니다. 생산과정에 파열구를 내고, 적대전선의 한가운데에 해방구를 만든다는 기존의 방법론의 유효성엔 아직 변함이 없다.</p>
<p>&nbsp;</p>
<p>문제는 이것이 결국 악순환 - 그것도 아주 고전적인 악순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투쟁해야 정치전선에서 승리하는데, 현장에서 투쟁하려면 정치전선의 승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논리로는 풀리지 않는 아주 현실적인 악순환.</p>
<p>&nbsp;</p>
<p>하나의 돌파구가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투쟁 하나하나를 현장과 전국 양쪽 모두에서 소화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노조의 범주를 뛰어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경제 조합적 성격을 벗어난 정치적 결사체의 새로운 구상이 필요해진다. 고전에서 보자면 결국 다시 그람시, 그리고 평의회의 이슈가 다시금 제기된다고 본다.</p>
<p>&nbsp;</p>
<p>그러나 이미 건설되어 있는 노조조차도 흔들리는 이 때,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붉은 조직체를 밑바탕부터 다시 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장 활동가들에게 비현실적인 공리공론일 것인가. 가장 급진적이라는 사람들조차 노조의 통제권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시점에서 결국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인가.</p>
<p>&nbsp;</p>
<p>&nbsp;</p>
<p>2.</p>
<p>&nbsp;</p>
<p>군대에서 가장 먼저 추방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정신교육일 것이다. 소감문이랍시고 쓰레기 같은 문자의 조합을 내 손으로 스스로 써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던 한 주였다.</p>
<p>&nbsp;</p>
<p>&nbsp;</p>
<p>3.</p>
<p>&nbsp;</p>
<p>지배적 일반의지의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 양자에는 모두 하나의 균열이 존재한다.</p>
<p>&nbsp;</p>
<p>객관적 조건의 균열은 물론 지배적 일반의지가 사실 일반의지가 아니라는 점, 주관적 조건의 반작용을 빌어 군림하고 있는 헤게모니적 특수의지라는 점이다. 즉 객관적 차원에서 지배적 일반의지는 언제나&nbsp;저항적 일반의지의 존재를 함축한다.</p>
<p>&nbsp;</p>
<p>주관적 조건의 균열은 바로 지배적 일반의지의 객관적 조건과 그 주관적 조건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 있다. 즉 헤게모니를 점유하는 원동력으로 제시된 보편적 이념은 스스로 보편적이지 못한 지배 class의 객관적 기초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왜곡되며, 이는 지배적 일반의지를 체화한 피지배 대중에게 모순을 체험시킨다.</p>
<p>&nbsp;</p>
<p>문제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의 양 균열을 한 점에 일치시키는 것이다.</p>
<p>&nbsp;</p>
<p>&nbsp;</p>
<p>4.</p>
<p>&nbsp;</p>
<p>일반의지의 측면에서 볼 때 사실상 피지배 class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피지배 대중일 뿐이다. 이것을 즉자/대자와 같은 말놀이로 설명할 필요가 굳이 없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주제이다.</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Fri, 04 Dec 2009 19:59:4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38</guid>
			<title>2009/11/29</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3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참고로 나의 부대 주소는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부리 산 47-1번지 8368부대 이병 박성철 앞].&nbsp;블로그 보는 친구들은 편지 좀 보내길.</p>
<p>&nbsp;</p>
<p>&nbsp;</p>
<p>2.</p>
<p>&nbsp;</p>
<p>일반의지의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에 대해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자료가 없다 보니 공상에 가까운 생각들만 늘어나는지라 쉬운 일이 아니다.</p>
<p>&nbsp;</p>
<p>일단 다시 한 번 그람시에 천착하게 되는 이유가 늘어난 건 확실하다. 객관과 주관의 괴리 속에 그 균열로부터 마그마처럼 뿜어나오는 정치의 역동성을 그의 hegemony 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옥중수고는 금서 목록에 없던데....</p>
<p>&nbsp;</p>
<p>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의 class politics의 현장을 반추해 볼 때, 이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일반의지의 객관적 차원에 매몰되어 특수의지의 범주를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군상들이나, 주관적 차원의 뜬구름을 쫓다가 의지 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군상들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p>
<p>&nbsp;</p>
<p>&nbsp;</p>
<p>3.</p>
<p>&nbsp;</p>
<p>찬란했던 나날들을 쌓아두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참으로 큰 복인 것 같다.</p>
<p>&nbsp;</p>
<p>소아병적일 정도의 성급함과 답답할 정도의 우유부단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어린 시절. 온갖 오류와 부끄러움으로 점철되었더래도 술 한 잔 같이 기울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속의 진솔한 얘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실로 찬란했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p>
<p>&nbsp;</p>
<p>아무리 힘들어도 그 때를 떠올리며 견딜 수 있다. 나의 그 때에 함께 해 주었던 모든 친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언제나 축복이 함께 하길.</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un, 29 Nov 2009 14:39:38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37</guid>
			<title>2009/11/25</title>
			<link>http://blog.jinbo.net/leftside/?pid=13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1.</p>
<p>&nbsp;</p>
<p>책은 언제 들여오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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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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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3를 처음으로 쏴봤다. 한 발씩 깨작깨작 쏘던 K-2에 비해 다라라락 나가는 K-3는 훨씬 시원시원했다.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병기라는 생각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남자는 어린 것과 다 큰 것의 차이가 장난감의 가격 차이일 뿐이라고. 어느 정도는 손맛 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내 자신에 살짝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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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보병용 경기관총의 임무는 분대 전투에서 지향 사격을 통해 적의 진격을 막거나 진격해 오는 적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것이다. 이 병기의 발명으로 1차 세계&nbsp;대전은 인류 전쟁사의 사상자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파리의 구불구불한 길을 십자로로 뚫어놓은 것이 파리 코뮌 시절 손쉬운 시민군 진압을 가능케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사실 경기관총의 발명 이후 마음먹고 소수의 군대를 투입해서 절대 다수의 반란자들을 진압하는 건 훨씬 손쉬운 일이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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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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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싸지방도 할 수 있고 노래방도 갈 수 있고, 원래 할 수 없는 것 중에 금지된 건 없는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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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다만 근무 시간이 많다 보니 짬이 나질 않는게 문제다. 비공식적인 작업이나 심부름 때문도 아닌 것이, 역시 군대다 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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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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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의 피를 토하는 외침이 늘어가고 있지만, 냉정하게 볼 때 한국 내 class struggle의 흐름은 명백히 하강세를 타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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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단순히 빈곤해진다고,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정세가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신들만의 특수한 취미판단을 마치 보편적인 과학적 판단인양 주장하여 관철시키는 것, 즉 hegemony.</p>
<p>&nbsp;</p>
<p>과거 내가 썼던&nbsp;주체론, 일반이익으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적 대중의 결합 이론에 결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반이익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객관적인 것이냐는 점. 사실 일반이익의 객관적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강막수 선생의 모든 체계는 삽시간에 허물어지고 공허한 이데올로기론만 남는다는 점이 내 발목을 잡긴 한다. 하지만 그 객관성을 인정하더라고 그 실현의 차원에서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p>
<p>&nbsp;</p>
<p>나는 일반이익에 근거하여 결성되지 않은 현재의 폭압적 체제를 무정부 상태라고 규정했지만, 사실 모든 정치사회는 일반이익에 근거하여 있다. 문제는 그 일반이익이라는 것이 바로 ruling class의 일반이익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일반이익을 사회 전체의 일반이익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ruling class라는 점을 망각한 것이 내 분석의 가장 큰 오류이다. 따라서 현 체제는 어떠한 관점에서도 무정부 상태가 아니다.</p>
<p>&nbsp;</p>
<p>다만 일반이익의 객관적 존재 기반과 주관적 실현 차원의 괴리에서 정치의 역동성이 나온다는 점, 따라서 정치의 가능성이 여전히 일반이익에 기초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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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Wed, 25 Nov 2009 19:28:2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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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blog.jinbo.net/leftside/?pid=136</guid>
			<title>2009. 11. 1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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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FCKeditor--><p>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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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오랜만에 날짜 제목으로 된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사실 사회에 있을 땐 이래저래 찌들어서 더이상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아 차마 글을 쓸 수 없었는데, 군대에 와서 유예된 시간을 보내며 어느 정도 치유되고 있는 것 같긴 해서 다행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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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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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다시 생각하지만 난 결정적인 순간에 참 운이 좋다. 찌질거리던 중학교 시절 우연히 안양외고로 영어 시험을 보러 가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던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야자시간 우연히 손에 넣은 책을 통해 마치 대오각성과도 같이 사회문제에 눈을 떴을 때도 그렇고...</p>
<p>&nbsp;</p>
<p>현재 내가 있는 부대로 배치된 것도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자대 정도로 무슨 결정적인 순간이냐 할 지 모르겠지만, 황금같은 젊은 시절 중 2년을 바치는 곳이 개 같아서야 사람이 피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무 부조리도 적고 일도 할 만 한 것이, 역시 내 인생은 살 만한 인생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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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내가 주로 하게 된 일은 경계근무이다. 멍하니 초소에서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삽질하고 흙나르는 일을 내 빌어먹을 근력으로 어떻게 소화하나 고민하던 내겐 천국과도 같은 일이다. 게다가 행정업무와는 달리 간부에 치이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혼자 가만히 있으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풍부하다. 나중에 짬이 차서 위병소 조장 근무를 하게 되면 책 볼 시간도 많이 늘어난다 한다. 이건 뭐, 전방 갔던 친구한테 어딜 가든 쪽쪽 빤다고 욕을 들어 처먹어도 할 말이 없다 ㅋㅋ</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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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p>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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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군대에 와서 새삼 생각하는 건데,&nbsp;새로운 세상에서 군대는 어떻게 될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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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비폭력주의자들, 반전주의자들은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새로운 세상에서도 군대는 핵심적인 기능체로 자리할 것이라고, 자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설득과 강제의 양면으로 파악할 때, 강제의 측면은 다시 말해 독재, 강막수씨 말씀을 빌리면 class 독재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독재라는 측면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폭력이다. 즉 폭력을 독점한 집단으로서의 군대는 정치 그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 이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p>
<p>&nbsp;</p>
<p>문제는 그 군대가 과연 어떠한 군대이느냐는 것이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고대, 중세, 근대의 군대가 본질적으로 다 같은 군대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구 현실 사회주의권이 그랬듯, 그리고 지금의 우리 일부 동포들이 그러하듯 군사주의적/국가주의적 오염의 근원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p>
<p>&nbsp;</p>
<p>여기에는 단순한 정치적 격변뿐 아니라 여러 문화적 변화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성주의적 관점, 평화주의적 관점, 생태주의적 관점 등 다양한 시각들이 전사회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당연히도, 일차적으로 정치적 제도가 적합하게 마련되어야만 한다.</p>
<p>&nbsp;</p>
<p>강막수 씨의 &lt;프랑스 내전&gt;과, 지금까지의 많은 격변의 경험들에서 그 단초 정도는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새로운 독재의 주체인 class가 집단적으로 무장의 주체가 되어야만 하며, 명령권자의 선발이나 전략목표의 선택과 관련하여 민주적인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모병제는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모병제는 일견 class 대중을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로부터 놓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폭력 기구로서의 군대를 대중의 통제(그것이 아무리 미약하고 상대적인 통제라 할지라도)로부터 이탈시켜 특수 집단에게 폭력을 독점하게 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p>
<p>&nbsp;</p>
<p>음... 여전히 생각해 볼 거리는 많이 남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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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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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제대로 된 책은 언제쯤 되어야 볼 수 있을까. 병영 도서관엔 책이 빈곤해도 너무 빈곤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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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번에 플라톤의 &lt;법률&gt;이 새로 출간되었다 해서 꼭 한 번 보고 싶은데, 행보관이 병영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보기 전까진 도서 반입을 금지한단다. 짬 좀 차면 깡으로 반입하겠지만 아직은 무리다. 젠장, 나보고 그 쓰레기 더미들을 읽으라니 웬 말이냐.</p>
<p>&nbsp;</p>
<p>현재 짜놓은 군생활 독서 목표 목록은 다음과 같다:</p>
<p>&nbsp;</p>
<p>플라톤 - &lt;국가&gt;, &lt;법률&gt;</p>
<p>마키아벨리 - &lt;로마사 논고&gt;</p>
<p>칸트 - &lt;실천철학 비판&gt;, &lt;판단력 비판&gt;</p>
<p>헤겔 - &lt;법철학&gt;</p>
<p>스카치폴 - &lt;국가와 사회혁명&gt;(이건 제목 때문에 안되려나?;;)</p>
<p>아렌트 - &lt;인간의 조건&gt;</p>
<p>발리바르 - &lt;민주주의와 독재&gt;</p>
<p>&nbsp;</p>
<p>절대로, 머리를 썩혀 나가진 않겠다.</p>
]]>
			</description>
			<author>동조자</author>
			<category>일기</category>
			
			
			<pubDate>Sun, 15 Nov 2009 20:05: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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