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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12장 현실성의 정복

서양 미술사 스터디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 보셔요^^.

근데 길어서 보시기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앞으로도 스터디 끝날 때까지 계속 정리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미술사』(E.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09)

 

 

12장. 현실성의 정복(15세기 초)

 

 

▲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 ▼

- 그리스 고전의 합리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그리스 시대에 유행했던 자연세계에 대한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사상이 다시 등장하였다. 이 사상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1460년 마케도니아에서 피렌체로 여러 그리스 문헌이 보내져서 코시코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그것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헤르메스 전집」(Corpus Hermeticum)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로 하여금 이것을 번역하게 했다. 피치노와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로 알려진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모세와 동 시대 사람인 이집트 신부로서 실제 인물이고, 기독교의 예언자이며, 플라톤과 플라톤주의도 이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역사적 실수는 르네상스 시대에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 (『과학사신론』(김영식,임형순 공저, 다산출판사, 2008), 71쪽)

- 헤르메스주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매우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의 한 지류로서 중세의 마술적, 연금술적 사조와 연관되어 우주에 존재하는 신비적인 힘을 인정하고 인간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연에 대한 근대적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헤르메스주의는 우주와 인간이 연관되어 있다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당시는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영향으로 ‘존재의 큰 사슬’과 ‘대우주-소우주 유비관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존재의 큰 사슬’ 이론은 이 사슬의 한 쪽 끝에 신과 천사들이 있고, 다른 한 쪽 끝에 인간과 지상세계가 있으며, 이 둘이 거대한 사슬로 묶여 있다는 이론이다. 당시 사람들은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여러 상관관계들을 설명함으로써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추구했고 점성술은 그 관계들을 기초로 발전하게 되었다.

- 헤르메스주의는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우주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신성한 신의 영역이었다. 반면에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신비적 힘들의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되었고, 네트워크 한 부분인 인간과 대우주가 서로 영향을 미쳤다. 즉 헤르메스주의에서 우주는 인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무능력자였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무능력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제하고 변형시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인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 널리 퍼진 헤르메스주의는 동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는 신비주의 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16~17세기에 베이컨과 뉴턴은 신비주의 사상과 연금술에 심취했었다. 기존에 수용된 신비주의가 자연의 초월성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념이었다면, 헤르메스주의는 구사상 체계를 타파하는 새로운 지적 에너지로서 자연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연구하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 플라톤의 만물계(현상계)의 복잡한 현상들이 이데아 세계의 아주 단순한 구조로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신비화의 이면에는 복잡하게만 보이는 우주 현상을 단순한 우주 구조의 원리, 법칙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과학적인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헤르메스주의(또는 신플라톤주의)의 상호 영향과 관련된 신비함은 플라톤의 <관여 또는 분유>개념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관여 또는 분유 개념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당히 비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이 장에서의 현실성(또는 사실성)의 의미 ▼

- 이 현실성은 단순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다. 헤르메티시즘에 따르는 현실이다. 즉 중세 때처럼 신의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지상세계로서의 현실계가 아니라 신의 세계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현실이다.

 

 

▲ 르네상스가 서양 미술사에서 가지는 의미 ▼

-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 고트 족과 반달 족 같은 게르만 종족이 침입하여 로마가 멸망한 지 700년이 지나서야 고딕 양식이라고 부르는 미술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 고딕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인들에 의해 <야만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 이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은 야만적인 고딕 양식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인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 피렌체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계획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하였다.

 

 

▲ 젊은 피렌체 예술가 집단의 지도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lippo Brunelleschi:1377-1466) ▼

- 피렌체 대성당의 돔(dome) 구조의 완성(도판146, <피렌체 대성당의 돔>, 225쪽 참조)

- 중세 시대에는 픞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라서 지상계와 천상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운동의 형태로 볼 때, 천상계의 구조는 원 운동 구조(그리하여 천상계에서 원 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직선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반대로 지상계의 구조는 수직 자유낙하 운동으로서의 직선 운동 구조(그리하여 지상계에서 직선운동은 자연 운동이고, 원 운동은 강제적 운동이 된다)로 이루어져 있다.

- 그러므로 중세 고딕 양식의 건축들은 거의 모두가 직선 형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 형태나 곡선 형태의 구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그러나 지상계와 천상계의 상호 결합과 영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브루넬레스키는 직선과 원형태가 결합된 곡선 형태의 돔 구조를 지붕(지상계와 천상계가 만나는 지점)에 적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아마도 17C 운동 역학의 포물선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Masaccio : 1401-28)의 원근법 ▼

- 원근법은 현실 세계, 즉 3차원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방법인데, 이는 수학적(이 당시까지만 해도 수학은 천상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으로서 주로 수적 비율과 연관된 기하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방식에 의거한 것이다.

- 이 원근법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적용한 것(즉 신플라톤주의 또는 헤르메티시즘을 적용한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삼각형 구조이다.

(선의 이데아)

 

 

 

(이데아1) (이데아2)

 

** 이데아1과 이데아2는 대립쌍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삼각형 구조는 2차원적인, 즉 평면적인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이 삼각형 구조는 현실계에 <관여 또는 분유>를 통해 다양한 입체적 형태로 나타난다(플라톤은 우주의 물질 형상은 바로 정다면체의 기하학적 도형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불은 정4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공기는 정8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 물은 정20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흙은 정6면체로 이루어져 …… 매우 안정적이다. …… 기하학에는 이 네 가지 정다면체 이외에 또 하나의 정다면체가 주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는 또 하나의 원소가 있어야 한다. 즉 제5원소는 정12면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둥글게 생긴 형태로서 하늘을 구성하고 있다).

- 그런데 이 3차원의 현실 세계는 2차원의 이데아 계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다.

- 도판 149(마사초 작, <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를 살펴보자. 예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 요한의 위치와 헌납자들인 상인들의 위치는 분리되어 있고, 상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지상계(현실계)이고, 그 뒤는 천상계(이데아계)이다. 그러나 천상계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손으로 만지면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 도판 149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비견되는 신(The One)과 예수, 그리고 그 밑에, 대립쌍에 비견되는 성모 마리아(여성)와 성 요한(남성), 그리고 더 밑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관여 또는 분유 형태로서의 상인 부부가 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2차원적으로도, 그리고 원근법에 따라 3차원적으로도 삼각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 이렇게 볼 때 원근법은 기하학적 도형상 삼각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각형의 2점의 지상계로부터 삼각형의 나머지 1점의 천상계에 이르는 모습이 바로 이 장에서 말하는 현실이고, 그 현실은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 성모가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단순한 제스처는 현실계(지상계)와 이데아계(천상계) 사이의 상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하고 할 수 있다. 현실계는 운동 변화하는 세계인데, 이 운동 변화는 대단히 현란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계늬 운동 변화가 이데아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이데아계가 현실계처럼 현란하고 복잡한 운동 변화를 겪는 세계는 아니다. 그러한 운동 변화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상호 영향성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데아는 가장 단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 도나텔로(Donatello : 1386?-1466) - 브루넬레스키 일파 중 가장 위대한 조각가 ▼

- 도판 151, 150(도나텔로 작, <성게오르기우스>)을 살펴보자. 여기에도 범신론적인 헤르메티시즘(헤르메스주의)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중세에서의 지상계와 천상계의 분리를 통해서 볼 때, 상인들은 거의 무표정한 고요한 아름다움(도판127 참조)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천상계의 성인들은 지상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희로애락 등의 감정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 게오르기우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결의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천상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과 힘찬 기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 도판 152(도나텔로 작, <헤롯왕의 잔치>)를 살펴보자. 도나텔로는 여기에서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헤롯왕이 있는 연회장과 악사가 있는 회랑,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의 위치를 원근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세 개의 방을 플라톤의 사회의 세 계급을 분리한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방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근법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왕실의 연회실은 플라톤의 이데아 계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이데아 계는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날 수도 없거니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연회실 안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표현들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포와 갑작스러운 혼돈의 표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교황청과 중세 가톨릭의 권위 상실로 인한 그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살로메의 어머니와 연회석 사이에 <큰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큰 공백>은 곧 <빈 공간>을 의미한다. 중세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의 여향으로 이 세계 전체, 즉 우주 전체는 빈 공간이 없이 꽉 차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빈 공간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운동 변화는 곧 신분제 질서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5C 전까지의 모든 예술 작품에는 빈 공간(여백)을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헤르메티시즘의 영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운동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빈 공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빈 공간은 나중에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알프스 북쪽의 조각가 클라우스 슬뤼테르(Claus Sluter) ▼

- 당시의 부유하고 번창하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 디종(Dijon)에서 1380년 경부터 1405년까지 일한 사람이다.

- 도판 154를 살펴보자.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예수의 수난을 예언했던 예언자인 다니엘과 이사야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도판 151, 152)에서의 성 게오르기우스처럼 인상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 1390?-1441) - 북유럽에서 사실성(현실성)의 정복을 최종적으로 완수한 사람 ▼

- 얀 반 에이크 역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와는 달리 사실적이고 세속적인 표현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신플라톤주의의 범신론적 성격, 더 나아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 성격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은 개개의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인데, 개개의 사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세한 묘사는 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도판 155를 살펴보자. 일단 전체적으로 볼 때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들의 존재 구조가 선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대립 쌍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쌍으로 대비되어 이루어져 있다. 위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 그림도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범신론이 가지는 해방 성격에 따라, 아래 그림을 보면 영주 귀족들과 기사, 농노들과 같은 평민들이 수평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범신론의 성격에 따라 The One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세속 인간의 다양한 표정처럼 다양하다. 도판 141(p.219, 100년 전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제단화)와 비교해 보라.

- 도판 156도 마찬가지이다.

- 도판 157을 보게 되면 생생하고 구체적이면서 세부적인 묘사가 눈에 띄는데 이것도 다 범신론적인 성격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범신론에 의해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하는 것과 깊은 연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원근법도 사용하고 있다.

- 도판 158(<아르놀피리의 약혼>) 이 그림 역시도 얀 반 에이크가 아르놀피리와 그의 신부 잔느 드 쉬라리의 약혼을 기록화처럼 사실성에 기초해 그린 그림이다. 두 인물의 세세한 묘사뿐만 아니라, 특히 강아지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도판 160 참조). 또한 거울에 반사된 모습 역시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거울 속에 얀 반 에이크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거울 속의 그림은 원근법에 의해 처리돼 있다(도판 158 참조).

 

 

▲ 스위스 화가 콘라드 비츠(Conrad Witz : 1400?-1446?) ▼

- 도판 161(<제자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 하신 기적>)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대단히 친숙해 보이는 느낌을 지닌다. 그 이유는 실제 제네바 호수와 살레브 산을 배경으로 그렸으며 실제 어부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성경에서 이 호수는 티베리아 해로 나온다). 중세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면 곰브리치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티베리아 해를 상투적인 몇 개의 물결 선으로 처리했을 것이며, 예수의 모습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이는 마사초의 도판 149(<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의 인물상을 연상시킨다)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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