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5

from 분류없음 2012/02/05 00:56

한 방송 토크쇼에 출현한 미국, 독일, 그리고 아시아계 독일인 언론인들이 모여서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변하고 있는거냐는 질문에 대해 토론을 했다. 

 

최근 오바마 정부의 국방정책이 변화를 보이고, 유럽에서 군을 철수하고 중국, 아시아로 전략적 중요성을 옮기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서 생긴 토론회다. 결국 국방비, '방위비용'의 절감을 둘러싼 논란들이다. 시작부터 사회자가 "그래서 미군 전체가 유럽에서 철수할꺼냐"고 대놓고 운을 띄우자.

 

미국기자는 "여전히 유럽은 미국에게 중요하고 중요한 안보의 파트너 지만, 경제적으로 아시아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파트너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만, 남한, 일본에 가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우리가 여기 같이 있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정도인거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독일 기자의 발언에서 중국에 대한 적나라한 시선과 미국에 대한 유럽의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중국은 이미 세계 곳곳에 해군과 군을 파병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기자는 아프간에는 우리 병사들이 가서 죽고 있는데, 중국은 그런 곳에는 파병하지 않고 물건만 판다. 반면 수단에는 유엔에서 파병을 하려 했으나 반대하고, 가서 석유만 사온다. ". 미국 우익들의 반응처럼, 중국에 대한 시선이 매우 곱지 않다. 

 

이에 아시아계 기자는 "세계 파병은 중국만 가는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같이 가고 있는거다"라고 첨언했다. 영어를 잘 못해서 발언권이 잘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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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때 미국의 먀셜플랜의 주 무대였던 유럽은 NSC-68과 미국의 새로운 냉전정책에서 유럽에 쏟아야 할 에너지와 자원이 아시아에 묶이게 될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전쟁을 빨리 끝내라고 압박을 했다. 

 

그리고 소련과 미국은 공식 외교관계가 단절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대사가 가서 상의를 한후, 소련이 먼저 정전을 제안했고, 막판에도 서로 합의를 본 부분이 있었다. 포로문제로 전쟁이 지연되자, 중국은 또 중국의 이해관계가 있었고, 중국포로들만 데려가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 1950년 말부터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던 북한은 소련이나 중국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들어오자 마자 이승만은 기가 살아서 끝까지 북진통일을 외쳤고, 미국내 매파와 강경 군부 맥아더나 공화당 극우들과 쿵짝이 맞아서 그런 입장을 유지했다. 심지어 정전협상마저 거부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했으며, 막판에 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해버려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과 군사 지원을 얻어낸다. 

 

그래서 우리에겐 미제국주의와 전쟁을 치르고 이겼다고 수십년간 기념하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국가와, 미국의 지원하에서 충실한 근대화를 이룬 나라 둘이 남아있다. 

 

지금 중국 지도부는 수단에 가서 상호관계를 돈독히 하고, 아프리카 연합 건물을 그냥 지어주며, 메르켈이 오면 투자에 대한 기업가들과의 모임을 주선한다. 권위주의 국가라 의사결정도 빨라서 국내 노동, 인권탄압은 쉽게 쉽게 이뤄진다.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북한의 존재감은 적어도 우리보다 크다. 여기 냉전의 모순이 있다. 여기 동아시아의 군사 문제가 있다. 미국과 너희들이 와서 풀어라. 그리고 안전한 자본축적을 원한다면 이곳의 평화를 원한다면 와서 투자해라. 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자꾸 노이즈 마케팅을 하다 보니 약발이 떨어지지만, 미국은 어떻게든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에 비해 미국의 충실한 푸들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이뤄지는 정권 교체가 해외로 보내는 신호는 이 상황에서 아주 작은 신호에 불과하다. 좀더 온건한 정부가 나왔구나,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면 좀더 안정이 될테니 투자하기 좋겠구나 정도. 

 

한국전쟁때는 인도수상 네루가, 중립국으로서 종전을 촉구하는 흐름을 주도한적이 있다. 양 강이 적나라하게 대립할때, 피해자와 지역을 대변하는 인도가 모두가 지지할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던 거다. 한국은 중-미라는 이해관계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제 무슨일이 일어나건, 정신똑바로 자기들을 보호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국제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힘 있는 지들끼리 자기 문제를 먼저 챙기고 먼저 해결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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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00:56 2012/02/0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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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 Luxemburg

from 분류없음 2011/12/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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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19:52 2011/12/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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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New Left Review에 실린 두가지 글. 하나는 로빈 블랙번, 다른 하나는 마크 데이비스.

블랙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현 상태를 점검, 분석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마크 데이비스는 현 정세를 바라보며, 봉기와 변혁의 전망들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Robin blackburn, "Crisis 2.0", New left review 72, 2011.[NLR30603.pdf]

 

OECD국가들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거대한 신용경색에 대응하다 보니 미국, 영국, 유로존 국가들의 공공 부채가 GDP의 20-40% 수준으로 증가했다. 사적 영역의 부채를 소위 공적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은행들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게 국가들의 실패임이 드러나고 있다.

 

주식시장들은 공공 지출을 삭감하고 사회적 보호를 축소시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고 중도 좌파나 중도 우파들이 복지국가는 너무 비용이막대하고 관료적이므로 덩치를 줄이고 사적 공급자들에게 그 분야를 넘기라는 설득에 넘어갔다. (33) 대중의 여론은 은행가들로부터 돌아섰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회적 보호를 삭감하고 연금, 건강, 교육을 상업화, 사유화하라는 주식시장의 요구를 따르고 있다. (34)

 

현 위기는 신자유주의와 금융 세계화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극단적인 불평등, 빈곤, 자본의 탈규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대출, 대학 등록금 대출, 사보험 연금들에 의해 생애 과정의 사유화와 상품화되는 등. 개발중인 국가들의 저임금 정책과, 부유한 국가들의 개인 부채 증가는 무역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금융 시장의 탈규제로 자산 버블이 발생했고, 투자 읂애들과 해지펀드들이 '그림자 뱅킹 시스템'을 통해 이 신용들을 더욱 확대했고, 결국 2008년의 붕괴를 맞았다.(35)

 

2008년 10월엔 미 재무부장관이 미국의 9대 은행 CEO들을 불러 정부의 지분과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파산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문제 자산 구제 프로그램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me'(TARP)의 투자를 받는 서약에 서명했다. 그 유명한 골드만 삭스가 이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법적 지위를 '은행 보유 회사'로 전환시켰다. 시티뱅크도 대다수 주식을 국가에 양도했고, 세계 최대 보험사 AIG는 국유화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큰 은행들은 거대한 수익을 내고 있으며, 은행가들의 보너스도 잘 지급되고 있다. 여러 행위에도 불구하고, OECD국가들의 국가 부채, 비금융 기업들의 부채, 은행 부채, 가계부채는 여전히 높은 상태이며, GDP의 3-5배에 이르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돈을 푸는 소위 '양적 완화(quantatative easing) 조치'로 인해 브라질과 중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부동산의 새로운 자산 버블이 촉진되고 있다는 불만을 표하고 있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9% 정도지만, 직업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2천5백만명이다. 대다수는 부채가 많고, 노년 빈곤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결국 2011년 8월 정부와 의회의 합의로 이후 10년간 연방 부채 2조 4,000억 달러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사회 보장과 의료치료, 노인들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이 아마 삭감 대상이 될 것이다.

 

유럽의 경우 아이슬란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대한 대규모 구제가 필요했다. 2011년엔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구제 대상이 되었다. 유로존은 통화에 대한 재정 당국이 없는 상태였고, 유럽 중앙은행 ECB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처럼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가 아니었다.

 

메르켈 정부는 양적 완화를 위해 미국이나 영국 중앙은행들이 한 것처럼, 수조 유로를 발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런 입장은 역시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 부채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거친 협상 전략과 은행에 대한 불신에 기원하고 있다. (39)

 

구제금융은 엄격한 통제와 동반되는데, 연금 안전성이 붕괴되고 삶의 수준을 낮추게 한다. 하지만, 2011년 여름, 독일이 2,100억 유로를 내 총 4,400억 유로를 준비한 유럽재정안전기구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EFSF)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유로존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10월에 그리스가 이걸 거의 다 가져가야한다는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1.9조 유로 부채를 위한 자금은 한푼도 남기지 못하고.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이 하는 것처럼, 이런 대응은 재정안전기구의 자원에 기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부채담보부증권 CDO같은 금융 기법에 의존하지 않고 현금 기반, 거의 1조 유로의 보험대출이 활용될 것이다.

 

2011년 10월에는 유로존 정상들이 결국 그리스 부채중 사채를 자발적으로 50% 줄이게 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직 적절한 '최종 대부자'가 지원하는 강한 경제와 세금 시스템만이 재정시스템이 요구하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핵을 구축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2011년말 독일 정부가 이런 접근방식을 지지하려 하는 듯하나, 전체 유로존을 쥐고 흔들 재정 독재를 확립할 비용을 감당하려는 것.

 

여러측면에서 이번 위기를 통해 연금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2008년 세계 퇴직 연금기금은 1주만에 20%가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는 45-54세 성인의 67%가 예금이 5만달러 미만이며 이는 한달에 300달러 정도 밖에 못받게 되는 것이라는 조사.

 

많은 정부들이 공적 연금에서 사설 연금제도로 전환하려 하는 것은 재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직전까지 IMF와 세계은행은 연금의 상업화를 공격적으로 촉진하려 했었다. 1994년에서 2008년 사이 라틴과 동유럽 30개국이 공적 연금 제도를 사적 기업이 운영하는 개인 연금제도로 대체시켰다.

 

2008년에 폴란드에서 새로 설립된 연금기금은 17% 손실을 보았고, 불가리아는 26%, 슬로바키아는 12%, 에스토니아는 32% 손실이 났다. 따라서 금융 위기는 정부와 연금관련자, 노동자, 등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진단과 처방들

 

이런 위기에 대한 주된 정책적 대응은 가계부채 거품을 줄이고 기업 주기의 경제하락이후 성장을 촉진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경제문제의 핵심은 결과적으로 전지구적 체계에서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지난 십여년간 금융 분야가 엄청나게 성장한 것의 기반에는 미국의 산업 경쟁력의 엄청난 상실이 깔려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기 내내 서구 정부들은 이윤율을 회복하고 끝없는 성장을 지속할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이에 기반해 가계, 기업, 정부기관들이 엄청난 부채를 졌다.

 

달러 레짐 (the dollar regime)은 마블 게임 처럼, 이긴 사람이 게임이 끝나면 다시 진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처럼 지불 시스템의 국제적 균형을 창조했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1992년 중국과 아시아의 엄청난 성장은 생산성 성장을 가져왔고 미국 금융계좌로 엄청난 달러를 보냈으나, 이는 전지구적 수요를 훨씬 넘는 것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자-소비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면  지금과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은 그들의 노동가치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 결국 수요 부족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대 중국은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여 미국에서의 엄청난 신용 팽창을 사실상 도와주었다. 서구의 임금 정체와 동아시아의 저 임금은 결국 가계부채,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자동차 대출로 출구를 찾았다.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많은 연금 기금들이 헤지펀드로 전환되어 배당금을 올리기 위해 위험 상품 투자를 시도했고, 결국 이 모든게 금융화를 확대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자 전후 유럽에서 볼수 있었던 균형성장 같은 것이 막혀버렸다. 중국 노동자들 저임금으로 인해 해외 상품들을 살만큼의 고객이 되지 못하며, 미국의 저임금, 빈곤 대출자들은 빚이 너무 많다.

 

궁극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생산한 근본적인 불균형을 멈추는 것은 전지구적 수준의 빈곤을 줄이는 것이다. 만일 저임금 노동자와 빈곤 가구가 소비를 할수 있다면 수요가 회복되고 전지구경제의 뿌리가 될 것이다.(46)

 

2011년 10월 , Daniel Alpert, Robert Hockett and Nouriel Roubini가 ‘The Way Forward’라는 [NAF--The_Way_Forward.pdf]보고서를 내왔다.

이들 역시 빈곤과 불평등이 위기를 촉발하고 회복을 막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 5년간 1.2조 달러를 미국의 하부구조 사업에 투자하는 것. 2) 저임금 대출자들의 부채 탕감,  3) 전지구적 재-균형. 발전국가들의 임금 상승과 복지. 중국 노년인구에 대한 사회안전 보장. '세계 경제 회복 기금' 설치. 를 제안했다.

 

더 급진적인 제안은 Richard Duncan의 The Corruption of Capitalism에서의 제안이다. 그는 이미 2003년 The Dollar Crisis,에서 저임금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수출국에서의  '지구적 최소 임금a global minimum wage' 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지구적인 소득 불균형은 너무 커서, 이런 최소임금제가 도입되어도 이들의 임금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가격 상승은 2-3%에 불과할 것이다. 던컨은 이런 프로그램에 약 1.2조 달러(총 3.6조)가 들 것으로 보았다. 

 

Diane Elson같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는 아동 노동과 젠더 차별, 환경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무역 정책을 주장한다. 무역 불균형은 상대적 이익보다는 절대적 이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수출 국가들에서 작업장은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젊은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다. 무역을 규제하는 권력들이 '최소 임금'을 설정할수 있을 것이고, '생활 임금', 교육에 대한 접근, 노동권 등을 보장해야.

 

영국의 Robert Skidelsky 는 금융 기반 정책보다 대규모 공적 자원을 '국립 투자 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의 역할로 갈 것을 주장. 이런 공립, 국립 은행으로 성장율을 늘리고 적자를 줄일 것으로 전망. 이들은 연금 기금(Pension Fund)이 거대한 규모가 있기 때문에(전체 지구 금융 자산의 1/4 규모) 정치인들을 움직여 이런 자금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채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는 강한 보증과 분명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할 것.

 

프랑스 경제학자 셰네(François Chesnais)는 그의 책 Les dettes illégitimes(2011)에서 추악한 부채(odious dept) 개념을 확대해 공공 부채는, 만일 그것이 자본에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면 부당한 것으로 채무불이행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같은 경우엔 디폴트 선언이 옵션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소유나 지역 금융도 장려될 수 있다. 공동체 은행과 사회 구축은 바람직한 서비스를 제공할수도 있다.

 

저임금 노동자와 빈곤계층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은행 친화적인 구제금융보다 더 효율적이고 '공적 활용'에 적합하다. 부채 구제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대출로 확대되어야 한다. 영국에서 2015년 학생 부채는 700억 파운드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 미국에서는 1조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금융 세계화의 시기에 '공공성'의 개념이 재구축되어야 할듯하다. '국유화'는 부분적인 이익만을 대변한다. 해외로 관심을 돌리면, 공적 이익의 균형은 취소한 두개의 '공공성들' 사이의 문제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블랙번은 금융위기를 기념비적인 불균형과 불평등의 문제로 보았다. 생활 임금, 좋은 노동조건, 모두를 위한 교육, 적절한 치료 수준 , 젠더 평등과 고 기술에 기반한 발전을 제안한다. 하부구조와 그린 테크놀로지에 대한 투자에서도 촉진이 필요. 국제적 합의와 국내 입법, 다자간 행위 규약, 노동권, 집단 협상, 공동 대변, 투명한 규칙과 윤리적 헌신으로 전지구적 상품 사슬을 인간화하려는 것.

 

Mike davis, Spring confronts Winter, New Left Review 72, nov dec 2011.[NLR30601.pdf]

 

"The campus rebellions of 1968 in Europe and the us were spiritually and politically fuelled by the Tet Offensive in Vietnam, guerrilla insurgencies in Latin America, the Cultural Revolution in China and the ghetto uprisings in the United States."(12)

 

"Some of the occupiers of Zuccotti Park, if they had graduated ten years earlier, might have walked straight into $100,000 salaries at a hedge fund or investment bank. Today they work at Starbucks"(12)

 

"Two hundred million Chinese factory workers, miners and construction labourers are the most dangerous class on the planet. (Just ask the State Council in Beijing.) Their full awakening from the bubble may yet  determine whether or not a socialist Earth is still possible."(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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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5 08:09 2011/12/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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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Marx Frederick Engels – Collected Works Vol 46. Marx and Engels 1880-83,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92.

 

2012년이 시작되었다. 김정일의 죽음으로, 정세는 급변하고 있고. 우린 또 무언가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점점 더 미래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행사하게 되는 공간이 열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을 이행기라고 부를수 있는거다.

 

매번 언론의 이슈만 따라가는게 과연 시대인식에 도움이 되는건가 많은 회의가 들어서, 시대를 인식하는 감각이 어떤건지 궁금해서 맑스가 죽어가기 몇년전의 상황들을 서한들을 통해 스윽 훑어 봤다. 이 오늘의 상황의 거울이 되기엔 역시 낡은 것이지만, 때론 낡은 것이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거울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1883년 3월 14일에 죽은 맑스는 1880년대에는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사실상 방에서 엥겔스, 가족등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 이외엔 거의 할 수 있는게 없었다.

 

1871년 파리꼬뮌의 적나라한 진압 이후 독일에선 비스마르크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침몰하는 영국 헤게모니와 금융자본주의는 유럽 전체에 경제위기를 가져왔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 1880년대가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이 생겨난 시기였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미국 등지에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이 탄생한것. 이걸 운동의 제도화라고 봐야 할지 더 큰 힘을 갖게 된 거라고 봐야할진 모르겠지만, 가시적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하고 중앙정치에 힘을 갖게 된건 분명한 일이었다. 이러한 전국적인 노동자 계급 정당의 출현은 이미 1860년대부터 시작된 경향이었고, 맑스와 엥겔스는 각국의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운동에 강령, 전략, 전술적 조언을 하고 있었다. 위기속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고통받는 자들의 사회운동, 그리고 그들의 국제주의적 감각과 네트워크는 결정적이다.

 

사회주의 조직들간의 국제적 교류는 사회주의자, 노동자 신문과 정치 지도자들 사이의 개별적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맑스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해 노동자 운동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이 과학적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면 공식적인 인터내셔널 설립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맑스 엥겔스는 특히 독일 노동계급 운동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 사회주의노동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1878년 10월엔 비스마르크가 반사회주의자 법을 제정한다. 이게 일본으로 수입되어 치안유지법이 되고, 식민지를 거쳐 1948년에 국가보안법으로 연결된다. 사회주의 탄압이, 반국가단체 탄압으로 번역되는게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의 큰 부분. 이 외에도 비스마르크시기 생겨난 계엄, 예외상태법은 메이지 헌법을 통해 아시아로 흘러들어온다. 아! 비스마르크는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가. 아시아에는 반드시 비스마르크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아무튼 비스마르크는 법을 따로 제정하고, 계엄을 선포하는 등 사회운동을 탄압했지만 오히려 이런 탄압으로 인해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독일 사회노동당은 스위스 취리히(독일어권 지역)에서 기관지 Sozialdemokrat를 간행하는 등 대중과의 접촉이 살아있었다. 결국 3년간의 법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역 거점기반으로 출발한 당이 1881년 무렵엔 전국정당이 되었다.  하지만 탄압으로 인해 당 내부 좌우의 분열이 불가피했다. 엥겔스는 개량주의자들과의 분리는 바람직하지만, 반사회주의 법등 탄압을 고려하면 당이 쪼개지는 것은 역량이 약화되는 것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당 내부 분열과 당 자체의 분열, 우린 이미 이 모든 걸 겪었고, 겪고 있다.

 

엥겔스는 Sozialdemokrat 편집장 베른슈타인에게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썼다. 제국의회 내의 우파 사민주의자 대표들이 개량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것이 반대하도록 논평을 쓰게 했다.  맑스는 여러 국가들에 편지를 보내 독일 사회노동당의 상황에 도덕적, 물질적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맑스가 직접 반사회주의법 희생자들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맑스 엥겔스는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알제리, 이집트에서 지역 주민들의 해방투쟁을 돕는것이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엥겔스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내용들이 맑스가 파악하는 세계 정세의 중요 통로들이었다. 맑스는 대학시절부터 주변사람들에게 무어'Moor"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그를 무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의 서신이 마지막 관계들이었던 셈이다. 엥겔스 이외에는 가족들과의 서신 왕래가 큰 일이고 낙이었는데, 1872년에야 공산당선언 독일판이 출간되었고, '자본'이 여기저기에서 간행되고 팔리고 있었다. 그는 "나는 곧 궤도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지만, 부인이 1881년, 큰딸이 1883년에 죽자 더욱 낙심한 채로 지내다 3월 14일에 죽었다.

 

무어로부터의 편지에서 받은 인상이 몇가지 있는데, 동시대적, 국제적 감각, 정세에 대한 인식이외에, '선언'에 대한 것이다. 바디우가 이젠 어디서도 선언manifesto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했었는데, '논평'만 지배하는 세상에선 큰 변화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이다.

 

사실 기분이 묘하다. 지난 여름 수해 관련 소식말고 독일 언론에서 한국에 관해서는 보도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김정일의 사망으로는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진다.  동아시아의 '사건'은 '후쿠시마' 아니면 '김정일'인 거다. 한마디로 재난 사건 보도다. 아니 알카에다의 선언도 한국까지 들리는 판에, 한국 좌파의 선언은 누구 들으라고 나와야 하는 것일까. 우린 누구들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건, 누구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한마디로, 상황추수적인 논평만 하는게 아니라, '선언'을 하며 치고나갈수 있다는 거다. 논평이 아니라 선언을 듣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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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9 22:04 2011/12/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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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from 분류없음 2011/11/30 23:24

여기 저기 다녀오고 이사를 하고 그러는 통에 블로그를 한참 동안 버려두게 되었다. 사람들의 걱정에 비해 파리는 외국인에게 그리 불친절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고가다가 머뭇거리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누구나 유모차를 들어주겠다고  나섰다. 짧은 기간에 대여섯번은 경험했던 것 같다. 크로와상은 맛있었고, 19세기의 수도 답게 오래된 건물들은 아름답고 웅장했다. 학자들은 진지했고 말하기를 좋아했으며, 영미식 성과주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이제 갓 박사가 된 사람들은 국제학회를 조직하는 것이 그들 경력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매우 역동적인 학술대회를 조직했다.

 

누군가는 영어를 쓰지 않는 프랑스의 민족주의를 이야기 하지만, 언어가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독일만큼 뚱하고 이상한 표정을 짓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모든게 느린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은 영 불편한게 사실이다. 한국처럼 인력이 남아돌아서 값싸게 착취하는 나라는 모든게 빠르고 모든게 금방 처리되지만, 여긴 사람들의 일정 자체가 넉넉하게 짜여져 있으니 그런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분명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을 일의 처리 단계 과정 마다 배치해 두고, 서류가 잘못 되었거나,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되돌려 보내고 다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이곳의 질서다. 카프카가 관료제를 두고 이를 갈았던게 새삼 이해가 가는 대목.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약간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개개인의 사정따위 고려하지 않는다. 느리고 무거운 시스템. 일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하지만, 일의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이지, 상대의 요구를 고려하는 히스테리가 아니다.

 

1930년대부터 준비되어 1945년 전후부터 독일 경제 정책으로 부상한 자칭 네오- 리버럴, 프라이 부르크 학파의 '오르도- 리버럴'(질서 자유주의)자들은 모순적인 두 단어를 합치려 했던 사람들이다. 국가의 개입과 질서에 자유와 경쟁을 도입하는 것. 케인지안적 길이라기 보다는 자유주의로의 길이었다. 웬지 독일 사회를 관통하는 모순적인 두가지 원칙같다. 질서와 자유. 질서 안에서의 자유라기 보다는 자유를 활성화 하기 위한 보조적 질서의 개념이었겠지만, 워낙 오래된 관료제의 역사는 곳곳에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마주치는 생활의 많은 영역들이 이주 노동자들이나 서민지역의 사람들이다 보니, 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더욱 찾기 어려운 듯. 소아과의 의사와 학원의 오피스는 친절하지만, 마트의 계산대나 빵집, 고깃집의 점원, 인터넷 설치 상담원, 학원의 학생들은 친절하지 않다.

 

슬로베니아와 러시아 출신 20대 학생들, 정확히는 구직자들의 마초적인 모습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모든일에 거침이 없는 한국 마초들을 보는 기분. 스페인 사람들도 정말 많이 와있고, 그리스 사람, 포르투갈 사람도 많다. 그리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들 순하고 긍정적이고 착한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선 어처구니 없는 허세를 부리고, 남이랑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싶어하는 족속들, 사람 이용하는게 당연한 인간들, 자신들의 서클의 특권으로 사회가 우스워보이는 인간들이 많아서 스트레스였는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게되는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튼 조만간, 공부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할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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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23:24 2011/11/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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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from 분류없음 2011/10/27 03:25

이 척박한 시대에 마음을 울리게 하는 홍세화의 '유일한 꿈'. 진보적인 삶을 살겠다고 대의 앞에 다짐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그것을 다시 깨우고 있다. 모든 것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

-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

  

                                                                                 홍세화(서울마포당협 당원)

  

사랑하고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 있었던 땅에 다시 돌아온 뒤로, 저는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 뿌려진 진보정당의 씨가 마침내 개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회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망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쓴 글을 읽거나 저를 알고 지내온 사람이라면 제가 버릇처럼 되뇌던 말 하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의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는 것, 이것이 귀국 이후 10년 동안 제가 품어온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가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이를 두고 가당찮은 나르시시즘이라 이름 붙일지 모르지만, 제 꿈은 ‘사병’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합니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습니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평당원 홍세화!”― 이처럼 자랑스런 호명이 없을 것이고, 이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고 싶다는 것! 지독히도 척박한 이 땅에서 힘겨운 진보정당의 발걸음 앞에 놓이는 작은 거름이 되는 것, 그 긴 행렬의 끄트머리를 지키며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우다 사라지는 것, 이것은 단지 소망을 넘어 제 삶의 원칙이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둑이 흔들리고 금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보신당>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당의 보루라 믿어왔던 원칙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는 것을 목격하면서 저와 같은 평당원들의 꿈들 역시 황망한 처지에 놓였을 것을 생각하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힘겨웠습니다. 그냥 달아나버리고 싶을 때는 마포강변을 걸었습니다. 나의 빈 주먹질을 묵묵히 지켜보던 쎄느강처럼, 과거 홍수가 나면 주변을 초토화시키곤 했던 그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 말입니다.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무너져가는 둑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언제나처럼, 대답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믿음이 살아나는 당을 위해 이 무대에 오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허공을 향해 퍼부었던 탄식과 누군가를 향한 원망을 모두 접습니다. 주저와 망설임 끝에 저는 오는 11월 진보신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하였습니다. ‘보다 나은 삶’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정치는 존재하며, 그러므로 ‘정치는 고귀한 것’이라 주장해왔지만 결코 저 자신이 오르고 싶지는 않았던 무대, 그 무대에 오르며 당원 동지 여러분께 제 두려운 결심을 알리고, 숱한 번민과 그동안 느꼈던 마음의 고통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진보신당의 미래에 대한 저의 희망을 간략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3년 전 ‘새로운 진보’의 깃발을 내걸고 창당된 뒤, 우리 당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모든 노력들이 헛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오늘 <진보신당>의 초라한 모습 앞에서 자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관성과 관습을 넘어선 우리의 새로움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입니까? 새로움은 어디서 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까? 진보정치의 새로움은 잠자는 권리와 저항의식을 일깨워 불의한 세상의 질서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고 그 최전선에서 눈 부릅뜨고 미래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어디에서 나태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이 자가당착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상황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당 바깥의 대중은 진보신당의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고 우리 당의 당원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불신과 반목은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 피어나는 가시꽃입니다.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지리멸렬을 지속하다 자멸의 시간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 황량한 가시밭을 다시 일구어 ‘빵과 장미’를 가져오는 당의 새로운 시작을 피와 땀을 흘려 만들어낼 것인가? 만일 우리가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위해 저는 이제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 위로 오릅니다.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되새깁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동지 여러분과 제가 떠올려야 할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진보신당>에 남으려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다른 이가 내던지고 간 이 막막한 짐을 계속 지려 하는 것입니까? 그 까닭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아니면 어떤 정당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군부 독재가 종말을 고한 뒤에 민중은 지금 자본의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전 세계에서 요동치는 반反금융자본 투쟁 하나만을 보아도 충분한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35미터 상공의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찬바람을 맞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만 보아도 명확해지는 사실 아닙니까? 우리가 만일 <진보신당>의 당원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양심적인 시민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 땅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약자들의 투쟁의 뒷자리에 서있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만으로는 당과 당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신당>은 자본의 거대한 힘과 싸울 뿐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너머의 내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권력에 맞서 싸워야 할 진보세력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포기하고 급속히 ‘우경화’되는 사태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이 아니라 먼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당의 정체성은 어떤 경우에도 선언이 아니라 실천적 활동 속에서 실현됩니다. 비정규직 없는 평등국가, 핵과 자연 수탈이 없는 생태국가, 전쟁 없는 평화국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연대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입니다. <진보신당>은 싸우는 시늉만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민생은 ‘투어’로 자족해도 좋을 만큼 여유롭지도 녹록치도 않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저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싸우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거대 지배 권력과 싸우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 그리하여 약자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진보신당>밖에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이 공허한 논쟁으로 분열되고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을 올바르게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여기가 로두스Rhodus다. 여기서 뛰어보라!” 만일 우리에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힘이 남아 있다면 다친 무릎을 일으켜 세워 있는 힘을 다해 절벽과 절벽 사이를 다시 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당의 능력 있는 젊은 일꾼들과 함께 지역별로 또는 과제별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루속히 조직화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생존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일에만 몰두하여 ‘지혜’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열악할수록 지혜는 선택과 집중 속에서 잘 발휘될 것입니다. <진보신당>처럼 단 하나의 의석도 없는 작은 정당일수록 한국 사회에 새롭고 핵심적인 의제를 던지면서 진보정치를 주체적으로 견인해야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도자를 추종하는 당원이 아니라 이 시대의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따지는 지혜로운 당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들이 무엇인지 상당 부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해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하며, 상비군 폐지를 공론화시켜 병영국가의 성벽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서울대는 없애고, 대학은 평준화하며, 각종 국가고시는 지역별로 할당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학벌사회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지배 담론에 길들여져 허락된 것만 말하는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바뀌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 당 속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 당의 문화가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호혜적이지 않다면, 보수정당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비난하는 극우 사익추구집단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작은 차이로 끝없이 반목을 거듭한다면, 누구에게 참된 만남과 고양高揚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이 결심을 하고자 했을 때 저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극구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한 말 중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선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를 아직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상처가 두려워 평당원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였던가요,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던 이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만신창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척박한 땅에 참된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는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얻은, 그것 아니었다면 쎄느강변에서 소멸했을 허명에 값하는 의미로서 이미 충분합니다. 동지 여러분이 <진보신당>의 당원임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반드시 오게 하기 위해 오늘과 내일 받을 상처 때문에 뒷걸음질 치지 않겠습니다. <진보신당>은 지나간 역사와 희생당한 투사들에게 빚지고 있는 정당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듯이, 제게도 제가 부재한 땅에서 어둠과 싸우다 앞서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진보신당>의 새출발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으로 이 빚들을 갚으려고 합니다. 부디 저를 딛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인사글의 제목은 체코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치가인 바츨라프 하벨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바츨라프 하벨

 

 

일단 내가 시작해야 하리, 해보아야 하리.

여기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어디서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라고

자신에게 핑계 대지 않으면서,

장황한 연설이나

과장된 몸짓 없이,

다만 보다 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홀연히 알게 되리

놀랍게도

내가 유일한 사람도

첫 사람도

혹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에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2011년 10월 26일 홍세화 드림

 

 

http://newjinbo.org/xe/index.php?mid=bd_member_gossip&page=3&document_srl=233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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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03:25 2011/10/2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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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헤게모니의 위기, 이행의 시대 이런 얘기를 월러스틴이 한지 한 30년 됐고, 아리기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그리고 최종적 위기 이후의 세가지 시나리오를 이야기 한것도 1994년 이니 벌써 한 20년 됐다. 국내에서 윤소영선생과 과천연구실, 백승욱 선생과 사회진보연대가 금융위기 때마다 정세분석을 내놓은 것도 몇년됐다.

 

2002년쯤 아리기의 이 그래프를 본후 이 그림은 내 머리에 그냥 박혀있다.

(출처는 Arrighi, Giovanni,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Times, Verso, 1994,  p. 364, p.367.(국역 : 백승욱, 『장기 20세기 -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그린비, 20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기본에 깔고 1994년에 나왔던 예상은,

 

1)구 중심지들이 지난 5백년간의 자본주의 역사과정을 중단. 과거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감제고지의 경비병이 교체되었지만, 지금은 구 경비병의 군사적 역량이 너무 커서 새로운 중심지에 축적된 잉여자본을 영유하는 지위에 올라설 수도 있을 것이고, 진정한 전지구적 세계제국을 형성해 자본주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도 있다.

(네그리의 '제국' 환상의 실제 버전)

 

2)미국이 이렇게 하지 못하고, 동아시아 자본이 감제고지를 차지. 국가형성/전쟁형성 역량을 결여한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그런 분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애덤 스미스와 페르낭 브로델의 주장이 옳다면 특별한 행위자의 행동에 의해 종식되지 않겠지만, 세계시장 형성과정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종료될 수도 있을 것. 자본주의는 국가권력과 더불어 소멸하고, 시장경제라는 하위층이 다소 아나키적 질서로 복귀.

 

3)폭력의 증폭. 내전-> 국가간 전쟁-> 지역전쟁..

 

웹 2.0 정치니 자본주의 4.0이니 성찰적 민주주의니 웃기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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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5 21:56 2011/09/2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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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정치를 넘어선 공산주의적 가설[Badiou.pdf]

 

- 알랭바디우의 20세기 인식과 지젝의 보충 -

 

 

1. 알랭 바디우와 진리의 철학

 

‘진리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바디우(Alain Badiou)는 1937년 모로코의 라바에서 태어났다. 바디우는 1956년-61년까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고 소르본에서 학사,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1958년에는 프랑스와 알제리간의 전쟁에 반대하며 프랑스 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연합사회당(PSU) 건설을 지원했다. 1967년에는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가 만든 스피노자 연구집단에 참여했다.

 

이 시기 그는 『모델의 개념』(1972)를 통해 맑스주의적 수학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으며, 라캉이 정신분석을 수학적 모델을 통해 형식화하려는 시도에 열광했다. 그리고 1968년 5월의 사건 이후 바디우는 오랜 마오주의 정치, 철학적 개입을 시작.(Benjamin Noys, 2003:124∼125)하며 마오주의 조직인 ‘프랑스 맑스-레닌주의 공산주의 연합 건설을 위한 그룹’ 창립을 위해 노력했다.

 

바디우는 뱅센대학에서 철학과 내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들뢰즈와의 싸움에서 “볼셰비즘”(<들뢰즈, 존재의 함성>)이란 비난을 받았고, 리오타르에게 ‘스탈린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알튀세르의 ‘오만’과 오류를 비판했다. 이시기에 바디우에 철학은 정치적인 것이었고, 정치는 수정주의에 대한 엄격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바디우의 사고는 중요한 전환을 이루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바디우 철학의 근본적 주장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사건(Event)’의 함의에 충실한 주체들만이 그 상황에서 존재하는 진리truth를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홀워드(Peter Hallward)는 바디우 철학에서 이 주장이 전개되는 세가지 단계를 구분한다. 먼저 1970년대에는 프랑스에서의 68년 5월 그리고 중국에서의 문화혁명이라는 결과에 충실하게, 바디우의 지향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이었다. 마오주의적인 기획은 여전히 중심적인 참조지점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전복적인 대중은 불연속성의 역사적 물질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바디우의 첫 주요저작인 『주체의 이론(Theory of the Subject(1982)』에서 대중들은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형상으로서 그려졌다. 그런데 1980년 초반 실존하는 마오주의의 역사적 파멸에 직면하여 바디우는 그의 근본적인 참조 틀을 역사history에서 존재론ontology으로 이동한다. 당시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존재와 사건(Being and Event, 1988)』에서 바디우는 정치적 혁명이나 과학, 예술적 발명 같은 ‘사건’이 어떤 상황의 요소의 모순적 존재를 불러일으킨다. 그 사건의 함의에 충실한 주체가 결국 차근 차근 그 상황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재현하고 다시 질서를 잡을 새로운 평등적 방식을 고안한다. 결국 『주체의 이론』에서 『존재와 사건』으로의 이동은 존재론적 참조 지점이 대중에서 ‘공백void’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68년 5월에 충실하던 자들의 전향에 맞서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디우의 새로운 주체이론은 기존의 모든 전통적 ‘객관적인objective’ 방식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뿐 아니라 수학적 존재론에 집중하면서 역사와 사회 영역으로부터도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주요 저작인 『세계의 논리Logics of World(2006)』에는 『존재와 사건』의 존재론적 지향에 빠져있던 실존existence, 대상object, 관계relation, 세계World 등을 다룬다. 이 저작은 1980년대에 수학적으로 전환되었던 것에서 다시 약간 객관적 세계에 대한 실질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돌아섰으며 이 책의 가장 명확한 정치적 사례는 파리 꼬뮨이다.(Peter Hallward, 2008:100∼105)

 

바디우의 가장 대표적 저작인 『존재와 사건』(1988)은 포스트 모던에 대한 바디우의 도전적 응수였다. 바디우는 시인들의 시대, 과학자들만이 진리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시대에 철학은 여전히 진리를 파악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지배에 맞서 철학을 정립하는 것처럼 바디우의 모든 시도는 넓은 의미의 플라톤주의를 계승하려는 작업이다. 바디우의 철학은 진리들을 사유하고 소피스트들의 비판에 맞서 진리를 옹호하며 상대주의의 지배에 도전하여 합리주의를 혁신하는 철학이다.

 

바디우에게서 진리는 정치·예술·과학·사랑이라는 네 가지 진리 생산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데, 이 진리는 ‘사건’을 통해 생산된다. ‘사건’은 기존 사회를 지배하는 셈의 법칙이 누락시킨 공백Void(라캉의 실재the Real)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공백으로서의 ‘사건’은 셈해지지 않는 것이므로, 식별 불가능한 것으로 출현하며, 사건을 통해 공백이 드러났을 때 그것이 상황에 속한 것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없다.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최초의 개입은 바로 이러한 결정 불가능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사건’은 정치적이 될 수 있는가? 오직 특정 조건 하에서만 사건은 정치적인 것이 되며, 그것에 개입하는 과정이 정치적 진실을 드러낸다. 사건은 그것의 재료가 집단적(collective)일 경우에, 혹은 그 사건이 집단적 다수에 귀속될 수 있을 때 정치적이 된다. 그리고 정치적 사건의 집합적 성격의 결과는 정치가 상황의 성격을 무한한infinite것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는 이 무한성을 즉각적으로 주체적 보편성으로 소환한다. 마지막으로 상황의 상태(state of situation)와 정치의 관계, 특히 정치와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치적 사건과 그것이 드러내는 진정한 성격은 정치적 사건이 오류를 고치고, 국가의 과도한 권력에 한계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사건은 국가 권력의 주관적 오류에 개입한다. 경험적으로 이것은 진정한 정치적 사건의 있을 경우엔 항상 국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것의 권력 과잉을 드러내고, 그것의 억압적 차원을 드러낸다.(Badiou, 2005, 141-145)

 

사건 다음에 오는 것이 주체다. 주체는 존재, 몸, 인격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이다. 바디우는 한 존재를 지배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충실성을 주체라고 부른다. 진리는 기존 지식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공백에서 나온 것이기에 즉시 인정받지 못하고 소진된다. 그러나 주체는 남는다. 주체의 집합은 식별 불가능한 부분집합을 형성하고, 식별 불가능한 것들을 행한다. 주체는 지속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실천을 행하여 (기존)상황의 법칙에 진리를 인정하도록 강제한다. 주체들의 실천은 결국 진리에 충실한 후(後)사건적 실천이며, 이 지난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실천을 통해 진리를 결국 옳은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서용순, 2009: 15∼17)

 

바디우는 20세기의 역사를 무대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분석을 시도했다. 특히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이루어진 총 13번의 강연은 20세기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었다. 그리고 이 강연들에서 바디우가 하려 했던 궁극적인 주장은 창조적이고 변형적이며 자유로운 역량이 있는 인간 주체를 순수한 생물학적 동물성으로 환원시키는 ‘동물적 휴머니즘animal humanism’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열려있고 가능한 사유의 기획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바디우에게 샤르트르(급진적 휴머니즘)와 푸코(급진적 반휴머니즘)는 모두 동물적 휴머니즘으로부터 빠져나와 인간을 열려있는 기획으로 파악하려는 것이었다.(Jeffery Bernstein, 2009:1144-45)

 

바디우는 20세기의 ‘열린 기획으로서의 인간man as open project' 이란 특성은 근본적으로 이상의 현실화와 실천을 중요시하는 ‘실재를 향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20세기에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기 위한 시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 즉 파괴(destruction)와 빼내기(subtraction)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글은 바디우가 『세기 Le Siècle』(2005)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실재를 향한 열정’과 ‘빼기’의 정치라는 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의 의미와 쟁점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2. 20세기와 ‘실재를 향한 열정’

 

이 세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더 최악인 곳도 있었다”정도의 슬로건 아래에서 안전(security)에 대한 강박으로 끝나가고 있다.(바디우, 2007: 66)

 

 

1) 20세기는 전체주의의 세기인가 소비에트의 세기인가

 

20세기는 흔히 ‘극단의 세기(홉스봄)’ 혹은 전쟁의 세기, 그리고 강제수용소의 세기로 불린다. 20세기는 범죄의 세기로 여겨졌고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의 범죄와 나치즘의 범죄가 전형적인 것이었다. 유럽 유대인의 파괴라는 범죄로 기소된 20세기는 저주받은 세기로 여겨졌으며, 이 세기를 사고하는 중요한 변수는 절멸 수용소, 가스실, 집단학살, 고문, 조직적인 국가 범죄 등이 있었다. (바디우, 2007:2)

20세기의 상징적인 창조물은 강제수용소(concentration camp)였다. 강제수용소는 근대 국가에 의해 강제 노동과 학대, 고문과 살해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수용소를 서구 근대성 그 자체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8세기가 계몽의 시대였고, 19세기가 혁명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수용소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바우만, 2001)

아렌트(Hannah Arendt) 에게 20세기의 상징은 ‘난민’이었다. 그녀는 제국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난민’과 ‘무국적자’의 조건을 새로운 역사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아렌트, 2006: 489) 1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한 이후, 대부분 국가들이 이들의 국적을 박탈했고, 1차 대전 이후 많은 유럽국가들이 자국시민들의 귀화를 취소시키고 국적을 박탈하는 법을 도입했다. 난민과 무국적자가 속출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이들 ‘난민’의 지위는 귀화로 나아가거나 본국송환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상태’로 여겨졌다. 결국 ‘난민’은 국민국가 시스템의 ‘인권’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렌트의 견해이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오늘날 인류의 더 많은 비율이 국민국가안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민이라는 존재가 앞으로 도래할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확장된 견해를 제시했다.

지젝(Slavoj Zizek)은 이러한 20세기의 전체주의적 재난들을 이론화하는 세가지 방향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하버마스의 방식으로 계몽 자체는 ‘전체주의’와 무관한 해방의 과정이며 미완의 기획으로 여겨 이 재난들을 넘어서기 위한 미완의 기획들을 완성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혹은 오늘날의 아감벤의 방식으로 계몽의 전체주의적 가능성은 내재적인 것이며, 20세기 수용소와 학살은 서구 역사 전체의 부정적인 목적론적 종결점이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엔티엔 발리바르 등의 입장으로, 근대성은 새로운 자유의 장을 열었지만 동시에 위험의 장도 열었으며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인 보증은 없고 투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지젝, 2009:659∼660)

이처럼 20세기는 그것의 부정성을 대면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그것을 설명해야할 만큼 대다수의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던 폭력적인 사건들이 연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바디우에게 20세기는 바로 음울한 범죄의 세기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세기’이고 승리의 세기였다.

 

바디우에게 20세기는 1914-18년의 전쟁(1917년 10월 혁명을 포함한)으로 시작되고 소련(USSR)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으로 끝난 세기이다. 바디우가 20세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그것에 대한 단죄적 평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 세기만의 고유한 사유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전의 세기에선 생각하지 못한 것을 20세기엔 무언가 새롭게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 바디우는 “나치들의 생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바디우가 보기에 나치즘을 사고방식이 아닌 단순한 야만주의로 보는 것은 소위 ‘민주주의’ 체제의 순수함을 주장하려는 것이자 자본주의적 의회주의가 지닌 야만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들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절멸을 알면서도 막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아프리카에선 수백만이 AIDS로 죽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바디우, 2007:3∼5)

 

바디우의 이러한 시도는 근대성의 부정적 차원에 대한 논의의 장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구도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지젝 역시 ‘전체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좌파들을 우파 파시스트 독재의 전도된 형태이자 쌍둥이 형제로 매도하여 급진파들을 순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복합적 임무를 수행해온 이데올로기였다.”고 비판한다. 전체주의라는 관념을 받아들이면 파시즘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게 되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지평 속으로 매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라는 관념은 역사적 사실을 사유하게 해주는 용어가 아니라 그에 관해서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종의 ‘구멍마개’였다. 더군다나 기존질서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정치적 기획을 시도하려면 ‘그런 기획은 결국 새로운 집단 수용소로 귀결될 것이다’라는 경고가 날아든다. (지젝, 2008, 14-15)

하지만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전체주의’로 기소되어 부정될 만큼 무의미한 사건들이 아니었으며, 이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 보기 위해서는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던 내용들에 대해서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바디우의 기본적인 생각은 20세기가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혹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새로운 인간성의 창조’라는 기획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기존 인간성의 보존한다는 식의 논의들 뿐이다. 하지만 바디우는 이를 넘어서기 위해 궁극적으로 “이 세기는 실제로 인간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는 또 다른 인간성이 출현한 세기였다”고 규정하고 있다.(바디우, 2007:9-10)

 

이러한 20세기의 의미는 19세기와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여기엔 두 가지 관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20세기가 19세기의 약속들을 모두 충족시킨 이상적 결말이라는 관점이다. 20세기의 혁명은 초기 맑스주의자들과 유토피아주의자들이 꿈꾼 것이었다. 라캉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20세기는 실재계the Real이고 19세기는 상상계the Imaginary, 혹은 상징계the symbolic였다. 두 번째 관점은 20세기는 19세기가 약속한 모든 것과 관계를 끊은 악몽이나 붕괴된 문명의 야만성이라는 것이었다. 바디우가 볼 때 19세기의 헤겔적 이념이 역사의 운동에 의지하는 것이었다면 20세기의 이념은 역사에 맞서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었다. 1850년과 1920년 사이에 역사적 진보주의에서 정치-역사적 영웅주의로의 이동이 있었고, 따라서 “20세기는 의지주의voluntarism적 세기였다.”(바디우, 2007:15)

 

2) 실재를 향한 열정과 최후의 전쟁

 

바디우는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려는 20세기의 기획은 ‘실재를 향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으로 추동되었다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세기도, 상상적인 것 혹은 유토피아의 세기도 아니다. 이 세기의 주요한 주체적 특성은 지금 이곳에서 즉각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20세기는 19세기 같은 ‘약속의 세기’가 아니라 실현의 세기이며, 선언과 미래의 세기가 아니라 행동과 실행의 세기이고 절대적인 현재의 세기였다. 20세기의 주역들은 헛됨이나 숭고한 시도, 이데올로기에의 예속은 19세기의 불행한 낭만주의라고 간주했다. 20세기는 더 이상의 패배는 없으며 승리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이 승리의 주체성은 모든 패배에서도 살아남는다. 승리는 패배 자체도 결정하는 초월적인 주제(transcendental theme)이며, ‘혁명’이 이런 주제의 이름중 하나이다. 1917년 10월 혁명, 그리고 뒤따른 중국과 쿠바의 혁명, 알제리와 베트남의 민족해방 투쟁은 모두 이 초월적 주제의 경험적 증거이고 1848년 6월의 학살이나 파리 코뮌을 보상한다.바디우는 이러한 실재에 대한 열정이 20세기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20세기의 인간들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실재에 소환되고 있다는 신념과 파토스pathos가 있었다고 단언한다.(바디우, 2007:32)

 

바디우가 사례로 드는 승리의 주체, 실재를 향한 열정을 품은 주체들 중 하나는 제3인터내셔널 요원들의 모습이다. 스페인 내전동안 국제여단의 러시아 공산주의 사절단은 갑자기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는데, 이들은 돌아가면 체포나 처형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병사들을 모두 숙청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절단들은 탈출하거나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바디우는 과연 이런 행동이 이데올로기로 인한 환상이나 미래에 대한 약속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이러한 20세기의 투사militant들은 환상이나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닌 실재(the real)에 대한 찬양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 실재의 공포horror of the real나 죽음조차도 실재의 한 측면으로서 받아들인 주체들이었다. 주체들은 용기와 포기 사이에서 늘 긴장했고 결정되지 않은 미래는 늘 불투명했지만 실재를 추구했다. (바디우, 2007:20)

 

실재에의 열정 이후 세기의 특성은 전쟁의 세기라는 것이다. 20세기의 현실은 대부분 전쟁의 패러다임 아래에서 전개되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전쟁은 마지막 전쟁decisive war, 최후의 전쟁the last war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1차 대전의 참혹함을 넘어서 새로운 시작을 정당화하는 두가지 방식중의 하나로 나타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914-18년의 전쟁은 나쁜 전쟁이고 극악한 전쟁으로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전쟁이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의 전쟁이어야 했다. 누구도 1918년부터 1939년사이의 평화를 믿지 않았고 다른 전쟁이 필요하며 정말로 마지막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바디우, 2007: 34)

 

물론 더 이상의 전쟁은 안되며, 모든 전쟁의 종결, 절대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흐름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과 좋은 전쟁/나쁜 전쟁, 정의로운 전쟁, 부정의한 전쟁의 변증법이 뒤얽혀 서로 맞서고 있었다. 바디우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총체적이고 최종적인 전쟁’이라는 주장이 20세기의 중요한 사건들의 배경에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바디우, 2007:36)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괴로서의 최종적인 전쟁과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20세기의 기획은 어떻게 결합되어 있었을까? 바디우는 이는 비변증법적 관계로, 분리된disjunctive 종합으로서, 서로 화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고 보았다. 20세기가 제시한 ‘최종적 전쟁’이란 이념은 과거의 ‘나쁜 전쟁’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허무주의nihilism를 뿌리 뽑고, 새로운 역사적이고 전지구적인 질서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전쟁은 국가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새로운 유형의 주체, 전투원을 창조했다. 결국 전쟁은 주체의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존재는 전투적 존재로 탄생되었다.

 

이 세기의 열정은 실재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 실재는 적대antagonism였다. 이 세기의 현실 상황은 분열, 대결, 전쟁으로 재현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20세기에서 세계의 공유된 법은 하나(일자, One)도 아니고 다자(Multiple)도 아니었다. 그것은 둘(Two)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던 것은 20세기엔 조화도, 단순한 헤게모니도, 통합된 신의 권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자가 아니었던 것은 권력의 균형을 얻는 것 혹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법칙은 ‘둘’이었고 만장일치의 복종이나 연합적 평형의 가능성을 배제한 양상으로 재현되었다.(바디우, 2007:37)

그런데 이 둘, 적대는 세가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먼저 전 지구적 규모의 생명을 건 전투가 진행되는 중심적인 적대(냉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적대는 ‘계급적대’와 ‘인종(민족)적대’로 나뉘었다. 공산주의는 전지구적 대립을 계급들간의 대립으로 보았으나 파시즘은 이 대립을 민족(nation)과 인종(races)간의 대립으로 보았다. 2차대전은 이 분열에 따라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전쟁은 최종적 통일(definitive unity)을 이루려는 전쟁이었다. 20세기의 적대는 적대는 한 진영이 다른 진영에게 승리하는 것을 통해 극복될 것으로 여겨졌다. 20세기는 하나(the One)를 향한 강렬한 욕망에 의해 추동되었다.(바디우, 2007:59)

바디우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 세기의 주체성은 ‘실재를 향한 열정’을 추구하고, ‘결정적인 전쟁’의 패러다임 밑에 위치하며, 파괴와 건설 사이의 비변증법적 대결을 수행하고, 적대를 넘어선 승리를 추구했다. 결국 이 세기는 ‘최후의 투쟁 The final struggle' 이라는 이념 아래에서 제국, 혁명, 예술, 과학, 개인들의 삶이 모두 전쟁을 치른 세기였다.

 

3)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

 

오늘날의 현실적 도덕주의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을 수 있는 이 혁명적 정치의 세기를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바디우에게 실재는 ‘선악의 저편’에 있는 것이며, 공포horror와 열정의 자원이고, 치명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것이다. 바디우의 사유는 단순한 반전, 비폭력, 평화주의적 사고가 진보의 이념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시기에 혁명과 폭력에 대한, 20세기의 열정에 대한 재평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지젝은 실재의 공포라는 측면 즉 폭력의 문제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개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본래적인 혁명적 분출에는 '순수한' 폭력의 요소가 있다. 비록 폭력 그 자체는 본질적인 가치는 없지만 혁명적 과정의 본래성의 기호이며 이 과정이 실제로 기존의 권력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표이다. 따라서 폭력이 없는 혁명의 꿈은 정확히 '혁명이 없는 혁명'(로베스피에르)의 꿈이다. (지젝, 2009[시차]: 744-745)

폭력 자체의 가치는 없어도, 그것이 보여주는 징후와 잠재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데올로기적 이중구속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의 이행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이후의 움직임에 의해서만 정치화될 수 있는데, 성공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런 폭력행동에 대해 그냥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 감추어진 해방적 잠재력을 분별해야 한다. (지젝, 2008[레닌]: 386)

문제는 폭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지젝은 폭력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폭력적인 ‘행위로의 이행passages a l'acte’이라는, 단지 행위자의 무능을 증명하는 폭력이 있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폭력 과시처럼 진정한 목적이 아무것도 없이, 실제로는 변하지 않게 하는 폭력도 있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좌표의 조종이 변하는 폭력적 행위가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폭력을 위해서는 순수한 물러남이라는 선택행위를 통해 바로 그 자리가 열려야만 한다.(지젝, 2009[시차]: 746)

지젝에 따르면 스탈린의 폭력과 파시즘의 폭력은 다른 것이다. 스탈린 치하에서의 숙청은 파시즘의 폭력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이었다. 그리고 이 과도함이야 말로 스탈린주의에서 도착적으로 변해버린 본래적인 혁명의 사례라는 놓칠 수 없는 신호이다. 이 점이 파시즘과 다르다. 파시즘의 경우 나치 시대의 독일에서조차 지배 질서에 반대하는 정치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외양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에 비해 1930년대 스탈린시대에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고 누구나 뜻밖의 반역자로 고발당하고 구속되어 총살에 처해질 수 있었다. 나치는 반유대주의로 응축되었지만, 스탈린주의는 사회라는 신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들였다. 이런 까닭에 나치의 경찰들은 저항의 행동, 흔적, 증거를 찾았지만 스탈린주의 수사관들은 모호한 구석이 없이 선명한 조작들을 꾸며내는 일에 몰두했다.(지젝, 2008[전체]: 197)

이런 과도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런 폭력의 문제는 파괴의 형태로 나타나는 정화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사회의 실질적인 적대와 갈등을 대면하지 않고 그것을 유태인이라는 외부의 적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파시즘과 달리, 스탈린주의의 과도한 폭력성은 역설적이게도 그 배후에 혁명의 진정성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폭력의 분출은 오히려 무능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폭력 자체, 파괴적인 힘의 전시 자체는 그 반대, 즉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을 예증하는 경우들이다.(지젝, 2009[시차], 672)

바디우가 ‘실재를 향한 열정’의 사례로 들었던 많은 혁명적 폭력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지젝이 보기엔 평등주의적인 정치적 극단주의 또는 과도한 급진주의는 항상 실제로 ‘끝까지 가는 것’에 대한 거절의 지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코뱅당이 극단적 테러에 의존한 것은 경제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교란시키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을 증명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 행동화의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지젝이 보기엔 문화혁명도 실패했다. 바디우는 마오의 문화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혁명적인 정치활동의 중심적 생산영역으로서의 당-국가의 종말”로 보지만, 지젝은 바디우가 문화혁명의 사건적 위상을 부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즉 그것은 사건이기는 커녕 ‘병적인 중음충동’이라고 부르기 좋아했던 숭고한 전시에 불과했다. 낡은 유물들을 파괴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의 부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를 떨쳐 버리는 데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이었다. 문화혁명의 실패는 단지 국가권력의 전복만이 아닌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하는 것의 실패. 새로운 일상 생활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의 실패였다.(지젝, 2009[대의]:297, 310)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1928년 스탈린주의적 혁명의 역설은 그 혁명의 극단적 난폭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실체를 실질적으로 변형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근본적이지 않았다. 그것의 난폭한 폭력성은 전적으로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passage a l'acte으로 읽어야 한다.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진실을 위해 명명 불가능한 실재의 전면적 강제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권력 유지를 위해 모든 ‘원칙들’을 조작하고 희생하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의 태도를 함축한다.(지젝, 2009[대의]: 232)

이것은 지금의 미국헤게모니 질서 붕괴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1945년과 달리 세계는 미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이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미국은 스스로 세계적 군사권력으로 주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대안적 권력의 중심(중국, 러시아)와 맞서는게 아니라 약한 적들(이라크, 쿠바, 북한, 이란..)과의 연극적 전쟁과 ‘위기’를 상연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최근 부시 정권의 폭력 분출은 권력의 실행에 아니라 겁먹고 비이성적인 행위로의 이행이다.(지젝, 2009[대의]: 543)

이처럼 지젝은 바디우가 ‘실재에 대한 열정’과 ‘최종적 투쟁’으로 그 잠재적 가능성을 복원하려 하는 20세기의 혁명과 폭력, 전쟁을 다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폭력 자체는 권력의 무능을 보여주는 ‘행위로의 이행’인 경우가 많으며, 더욱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폭력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정화의 정치와 빼기의 전략

 

1) 추방과 ‘정화purification’의 논리

 

바디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 혁명적 폭력으로 전환되었을 경우 나타나는 참혹한 결과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를 통해 새로운 해방적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세기의 실재를 향한 열정과 혁명적 정치는 왜 그렇게 폭력적이었는가? 바디우가 보기엔 20세기는 실재에 대한 열정은 실재와 가상을 구분해 내려는 열정으로 나타났다. 브레히트의 ‘소격distancing’이 연극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이었듯이, 20세기는 현실의 폭력과 가상사이, 얼굴과 가면사이, 벌거벗은 것과 겉치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천착했다. 맑시스트들은 현실을 숨기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사고했으며, 예술의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아방가르드의 원칙으로도 반영되었다.

바디우는 1937년 스탈린주의 대테러 시기 모스크바의 재판을 하나의 연극으로 보고 이 재판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문제였다고 평가한다. 대부분 이미 사임한 이 재판의 희생자들은 미리 계획된 재판에서 자백을 해야했다. 비노비에프와 부하린이 인생 전체를 통해 일본 스파이이며, 히틀러의 괴뢰이며 반혁명의 첩자였다고 보두가 믿었을까? 다수의 고위 관료들이나 군부 요인들은 비밀 기관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왜 공개 재판이 이뤄졌을까? 바디우는 이 재판은 순수한 연극적 허구였으며, 희생자들은 잘 짜여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고 본다. 여기서 문제는 이미 확신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는 재현을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 전체는 인민의 적을 숙청하는 것을 통해서만 승인 받을 수 있었다.(바디우, 2007:52)

정치를 선과 악의 너머로 위치지우는 이러한 열정, ‘실재에의 열정’에 있어서 가상의 기능은 무엇인가? 바디우에 따르면 “실재는 가상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실재일 수 없”으며, 실재에의 열정 역시도 필수적으로 의심받는다. 실재가 실재라고 누구도 입증 할 수 없다. 혁명적, 절대적, 확신, 충성, 덕, 계급 위치, 당에 대한 복종, 혁명적 열정 등등은 가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따라서 그 범주와 그것의 준거들은 항상 공개적으로 추방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결국 이는 충성과 복종, 열정을 의문시하는 주체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모두에게 ‘실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주는 의례’를 통해 수행된다. 이런 의미에서 추방은 이 세기의 위대한 슬로건 중 하나였다.(바디우, 2007:53)

해방은 항상 그 자체, 혹은 그것을 배반하려 하는 주체를 생각하며 정당화된다. 여기서 진정한 해방의 주체적 이름은 미덕 Virtue이다. 하지만 덕에는 공유되고 믿을만한 제한을 둘 수 없다. 결국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덕의 반대이며, 그것의 이름은 ‘타락’이 된다. 결국 "진짜 해방의 핵심은 타락에 대한 투쟁”이 된다. 그리고 타락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 투쟁의 잠재적 목표가 되며 모두가 혐의자가 된다. 따라서 해방은 완전히 논리적 방식으로 ‘혐의자들에 대한 법’과 만성적인 추방으로 일어난다.

결국 실재와 가상을 분리할 형식적 제한이 없을 때엔 현재 자체를 실재라고 더욱 더 주관적으로 믿으면서 그것이 더 의심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부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심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정화의 논리(The logic of purification)는 결국 무nothingness인 상태로 귀결된다. 궁극적으로 죽음만이 순수한 해방의 유일한 이름일 수 있으며, ‘잘 죽는 것dying well' 만이 의심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우리의 세기, 실재를 향한 열정으로 야기된 세기가 모든 방면에서(정치에서 뿐 아니라) 파괴의 세기였던 이유이다.(바디우, 2007:54)

그렇다면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이 폭력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바디우는 기본적으로 해방의 정치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정치라는 것이 만일, 부와 부자들, 권력과 권력자들, 학문과 학자들, 자본과 그 하수인들에게 사회를 종속시키려는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이런 정치가 자애로우며 진보적이고 평화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실재에 대한 열정은 도덕성이 결여되어있다. 도덕성은 니체가 말하든 단지 계보학적인것이다. 그것은 구체제의 잔여물이다. (바디우, 2007: 62-63)

하지만 실재에 대한 열정에는 가상의 증식을 동반하며, 실재를 벌거벗기고 정화하는 것이 시작된다. 실재를 정화한다는 것은 실재를 감싸고 감추고 있는 현실로부터 그것을 빼낸다는 것이다. 가식적인 것에 대한 폭력적 취향은 여기서 나온다. 정화의 끝은 현실의 총체적 부재로서의 실재이며 그것은 무 이다. 바디우는 이 경로를 따르는, 이 세기에 진행된 수많은 시도들을 파괴적 니힐리즘이라고 부르고, 그것의 주체적 동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기에 이것은 창조이다. 그리고 이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은 ‘악을 피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실재와의 모든 접촉을 피하려 한다. 요즘은 수동적 니힐리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니힐리즘, 즉 반동적 니힐리즘이 되어간다. (바디우, 2007:64)

 

2) 물러남과 빼기의 전략

 

바디우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 행위로 이행되는 두가지 방향을 구분한다. 첫째는 파괴 그 자체를 승인하고 불명확한 정화 업무를 떠 맞는 것이고, 둘째는 불가피한 부정성을 조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바디우는 후자를 ‘빼내는subtractive’ 방향이라고 부르고, 파괴(Destruction)냐 빼내기(subtraction)냐?하는 것이 20세기의 중심적인 논쟁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빼내기인가? 말레비치(Malevich)는 1918년에는 매우 유명한 ‘White on White’라는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은 정화의 축도이다. 색체와 형상은 모두 제거되었고 오직 기하학적 암시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 암시는 바탕(ground)과 형상(form)이라는 추상적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흰색과 흰색이라는 영(null)의 차이, 같은 것의 차이 - 소멸하는 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최소의 차이(minimal difference)를 보여준다.(바디우, 2007:55)

바디우가 보기엔 이 그림은 그것은 최소한의, 하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차이의 상연이다. 그것은 장소와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것 간의 차이이며, 장소와 발생의 차이이다. 이것은 0과 1의 차이. 무와 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왜 이것은 파괴와 다른가? 바디우는 이런 방식이 현실을 동일성(identity)으로 여기는 대신, 현실을 간극(gap)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실재와 가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현실을 고립시키는 정화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 자체가 실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통해 해결된다는 것이다.

진짜 동일성을 획득하려 하고, 그것의 복제물의 가면을 벗기려하며, 허구를 불신하는 동일성에 강박적인 실재의 열정이 있었다. 그것은 진짜authentic를 향한 열정이며 진정성authenticity을 향한 열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정은 오직 파괴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하지만 정화는 완성될 수 없으며 악 무한(bad infinite)의 형상을 띄고 있다.(바디우, 2007:56)

이와는 다른 실재에 대한 열정이 있다. 최소한의 차이를 구성하는데 헌신하는, 차별화하는 열정이 그것이다. 테러라는 형식에 끌려가지 않고 실재를 향한 열정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식을 바디우는 빼내는 방식(subtractive path)이라고 부른다. 빼기는 현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차이로 진짜 핵심(real point)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을 정화하기 위해 그것의 표면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통일성unity으로부터 그것을 빼내는 것, 아주 작은 차이 속에서 그것을 감지하기위해 ,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소멸하는 관계/조건을 드러내는 것. 발생하는 것과 발생하는 장소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젝은 『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정화 purification'와 ’빼기 subtraction'의 구분이라고 평가(Alain Badiou and Slavoj Zizek, 2009 : 102)하며 이후 저작에서 이 빼기의 방식에 대한 여러 평가와 분석을 개진한 바 있다.

바디우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형식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 국가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국가 형식으로부터 자신을 ‘빼내는’ 제스처인 것이다. 바디우 뿐 아니라 크리츨리, 네그리는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통제하는것을 목표로 둔 당-국가 정치의 시대는 끝났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지금부터 정치는 국가의 영역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시켜 국가 외부에 있는 ‘저항의 장소들’을 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빼내고 탈주하고 이탈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지젝, 2009[대의]: 605-606)

바디우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로운 형식의 정치, 즉 ‘빼기의 정치’,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절차들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것이다. ‘당에 의한 봉기 형태와 달리 이 빼기의 정치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파괴적이지도 않고 적대적이거나 군사적이지도 않다.’ 이런 정치는 더 이상 ‘국가에 의해 확정된 스케쥴과 아젠다에 따라 구조화되거나 분극화되지 않는다’(바디우, 2008)

지젝이 보기에 빼기는 헤겔의 ‘부정의 부정’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지배권력을 직접 부정-파괴 하는 대신 그 지배권력의 장 안에 남아 있음으로써 그것이 바로 이 장 자체를 전복하고 새로운 실정적 공간을 개방하는 것이다.(지젝, 2009: 610)

하지만 문제는 빼기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뉴에이지의 명상은 가장 순수한 빼기일 수도 있다. 그들은 사회적 현실을 내버려 둔 채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한다. 지젝이 보기엔 민주주의적 빼기는 결코 빼기가 아니다. 그럼 빼기는 언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가? ‘그것이 스스로를 빼내는 시스템의 좌표 자체를 무너뜨릴 때’이다.

지젝이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장면이다. 유권자들이 집단적으로 투표를 거부하고 무효투표를 하여 정치 체제 전체를 패닉 상태에 빠뜨린다. 합법적 의례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물러나는 단순한 제스처가 국가권력을 절벽 너머의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지젝, 2009: 611)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와 투표 불참과는 다른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아무런 위협적인 것이 없다. 문제는 투표 불참이 행위의 형태로 대타자에게 영향을 미칠 때만 하나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지젝은 두가지 방식의 빼기가 있다고 파악한다. 즉 빠져나오려는 장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빼기/물러남 혹은 자기가 빠져나오려는 그 장을 폭력적으로 뒤흔드는 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물러남으로서의 빼기와 ‘미세한 차이로의 환원’으로서의 빼기가 겹쳐지는 운동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장으로부터 빼내는 동시에, 그 장속으로 강력하게 개입하여 그것을 봉쇄된 최소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미세한 차이, 부분들과 비-부분, 1과 0, 집단들과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주체를 헤게모니 장으로부터 빼내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이 장 자체에 영향을 가하여 그 장의 진짜 좌표들을 벌거벗기는 빼기이다.(지젝, 2009 : 613)

이것은 계급투쟁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계급 차이를 계급 적대로 악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빼기란 전체적인 복합적 구조를 그 적대적인 극소의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반인종차별주의와 반성차별주의 투쟁이 타자의 전적인 인정을 위한 노력을 향하는 반면, 계급투쟁은 타자를 극복하고 진압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물리적 소멸은 아니더라도 계급투쟁은 타자의 사회정치적 역할과 기능의 소멸을 목표로 삼는다.(지젝, 2009[시차], 709)

여기서 덧붙일 것은 이런 빼기의 제스처는 보편적인 계급적 차이가 아니라 오직 특수한(민족적, 종교적) 영역의 ‘실체적’ 차이와 관련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계급적 차이는 빼기를 할 수 없는 차이로, 우리는 그로부터 스스로를 빼낼 수 없다. 계급차이는 특수한 지대들 간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공간 전체를 관통하여 절단하기 때문이다.(지젝, 2009[대의]: 613)

 

3) 새로운 인간의 창조와 보편적 특이성

 

이처럼 바디우는 20세기의 ‘실재에 대한 열정’을 재평가하고 그 기획의 잠재력과 긍정성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20세기가 새롭게 창조하려던 ‘새로운 인간’이라는 기획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20세기가 만들어 내려던 ‘새로운 인간’은 두가지 반대되는 경로가 있었다. 하나는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이었다. 먼저 파시스트적 사유에서 새로운 인간은 망각하고 타락한 고대인을 ‘복권’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 새로운 인간의 정의는 인종이나 민족, 대지, 피와 토양 같은 신화적 총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정화는 사라진 기원을 회복하기 위한 폭력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즉 새로움이란 확실성, 진정함authenticity의 생산이 되고 진정하지 않은 것을 파괴함으로서 복권해내는 것이 이 세기의 임무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상가들 특히 맑스주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인간이란 역사적 적대의 파괴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진정한 창조였다. 공산주의의 새로운 인간은 계급과 국가 너머에 있다. 두 번째 경우 새로운 인간은 모든 폐쇄된 형태 뿐만 아니라 모든 단정적인 것 특히 가족, 사유재산, 민족국가에 저항한다.

맑스 역시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 특이성(universal singularity) 어떤 단정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특히 어떤 ‘조국’도 없는 새로운 인간, 부정적이고 보편적 개념이 이 세기를 가로질렀다.

프롤레타리아는 단순한 보편적 계급이 아니다. 그들은 ‘몫 없는 자들’로서, 사회체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당화해줄 특수한 특질이 결여되어 있기에 사회적 부분집합에 속함이 없이 사회라는 집합에 속해있다. 그들의 소속은 그 자체로 보편적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 부여된 특질은 부정적 특질이다. 다른 모든 계급들은 잠재적으로 ‘지배계급’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데 반해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지젝, 2009[대의]: 616-17)

보편적 특이성은 ‘국민’과 ‘프롤레타리아’의 구분으로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즉 인민(nation, people, 국민)은 포함적이고 프롤레타리아는 배제적이다. 인민은 완벽한 자기확증을 방해하는 침입자나 기생 존재와 맞서 싸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바로 그 핵심에서 인민을 분해하는 투쟁을 강행한다. 인민은 자기 확인을 원하고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해체를 원한다.(지젝, 2009[대의]:618) 이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몫 없는 자들’이 조성한 보편성의 권력인 것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 특이성은 오늘날 더욱 필요한 것이 되었다. ‘가족주의’의 지배 속에서 젊은이들도 가족을 숭배하며 둥지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적 문화의 정치가 지배하는 가운데 동성애자들도 가족과 민족에 통합되길 요구하고 있으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상황에서 새로운 인간은 독재 뿐 아니라 가족, 사적 소유로부터 벗어나려했던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맺음말 : 공산주의적 가설과 미래 정치학

 

이처럼 바디우에게 20세기는 전체주의의 세기, 범죄의 세기, 실패의 세기가 아니었다. 20세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 지배한 세기이며,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적대에 맞서 최종적 투쟁을 추구한 세기였고, 전쟁의 패러다임 하에서 추구된 파괴적 니힐리즘 안에는 주체의 역할을 긍정한 능동적 니힐리즘이 있었다. 하지만 보증할 수 없는 실재를 확증하기 위해 가상적인 것, 배반을 추방하고 제거하려는 정화의 논리가 극단적 폭력과 파괴를 가져왔고 이와는 다른 방식인 ‘빼기의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바디우에겐 20세기의 기획은 끝난 기획이 아니며, 다시 복원해야할 기획이 된다. 공산주의 역시 ‘가설hypothesis’로 명명되어 그 가설이 제출되고 실현되는 과정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바디우가 보기엔 공산주의적 가설의 발전은 두 개의 커다란 시기로 나눠졌다. 첫째 시기는 공산주의적 가설이 자리를 잡는 시기이며 둘째는 그 가설의 실현으로 향하는 예비적 시도의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는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1792-1871)의 시기로, 이 시기엔 기존 질서의 전복을 통해 집단적 대중운동과 권력 장악이 연계되었다. 이 혁명들은 낡은 사회형태를 파괴하고 ‘평등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정착시켰으며, 도시 거주자들, 장인, 학생으로 구성된 대중운동이 발전했다. 그리고 구체적 형식을 갖추지 않은 대중운동이 점차 노동계급의 지휘아래 놓이게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1917년에서 1976년까지의 시기로, 바디우가 ‘소비에트의 세기’로 부른 20세기였다. 바디우는 이 시기에서는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파리 코뮌과는 달리 유산계급의 무장한 반혁명에 대항하여 어떻게 (혁명을) 유지할 것인가? 적의 공세에 대항해 혁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권력을 조직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공산주의적 가설들은 정식화되었다. 승리를 위한 강박은 조직의 문제에 집중해 공산당의 ‘철의 규율’로 나타났고, ‘당’은 이전시기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러시아, 중국, 체코, 북한, 베트남, 쿠바) 그러나 당은 약화된 반동적 체제의 전복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 건설에는 부적한 것이었고, 당-국가는 권위주의로 발전했다.

바디우는 이 시기 사이에 40년의 간격이 있었고,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세계 전역에 걸쳐 제국주의의 승리하고 공산주의 가설은 기각되었다고 말한다. 바디우에 의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두 번째 시기가 끝난 이후 우리는 또 한번 ‘적에 의해 지배되는 휴지기’에 있으며, 결국 공산주의적 가설의 새로운 시기가 열리게 될 것이다.(바디우, 2009)

문제는 20세기의 고안물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디우는 두 번째 시기는 끝났고 그것을 복원하려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적 경험의 형태들 속에서 공산주의적 가설이 나타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바디우는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주력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에 집중하는 것을 회피하고, 심지어 오늘날의 투쟁 형식(반-세계화 운동)을 조소하면서, 해방적 투쟁을 엄격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오늘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형식인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정의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가로막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간주된 민주주의적 형식에 대한 믿음이다.(지젝, 2009[대의], 278)

바디우는 오늘날 민주주의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만들어 내는 주체는 이기주의적이고 향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핵심적 특징으로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민주주의는 사실 권리상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의 민주주의이다.(바디우, 2010:29-34)

지젝은 한편으론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오늘날 ‘반자본주의’라는 기표는 전복적 자극을 상실했으며, 반지구화 운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사실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기에 두겹의 싸움이 필요하다. 즉 첫째는 반자본주의, 둘째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식(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싸움이 그것이다.(지젝, 2008[레닌]:484-485)

그러나 지젝의 지적처럼 바디우의 ‘순수 정치학’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시각이 전적으로 부재한다. 바디우는 국가기구를 전복시키고 붕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주의자들의 혁명적 당 정치학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경제적’ 영역의 혁명적 잠재력을 고찰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일하게 남은 길은 국가의 경제 밖에서 작동하며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동원의 선언에 한정하는 ‘순수한’ 정치적 조직의 길이다. 지젝이 보기엔 이런 교착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경제적’인 영역에 진리의 위엄과 사건을 위한 잠재력을 재건하는 것 뿐이다.(지젝, 2009[대의]: 645)

결국 바디우의 기획은 몇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너져버린 상징의 폐허위에 ‘공산주의’라는 상징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야심찬 기획으로 보인다. 바디우의 개념들을 통해 20세기를 다시 보는 작업은 새로운 차이들을 발명해내고 지금까지 막연한 ‘파괴’로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바디우의 시선을 받아들인 자들의 현실 읽기는 많은 기대를 받으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Alain Badiou and Slavoj Zizek, 2009, Philosophy in the Present, Polity.

Alain Badiou, 2005, Metapolitics, Verso.

Alain Badiou, 2007[2005], Alberto Toscano(Trans), The Century(Le Siècle), Continuum.

Alain Badiou, 2009, “사르코지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 공산주의적 가설”, 『뉴레프트리뷰』, 도서출판 길.

Alain Badiou, 2010, “하나는 스스로를 둘로 나눈다”,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마티.

Benjamin Noys, 2003. The Provocations of Alain Badiou, Theory, Culture&Society20(1), pp.124∼125.

Jeffery Bernstein, 2009, “Badiou's ahistorical century, Philosophy & Social Criticism 35(9), pp.1144-1145.

Peter Hallward, 2008, Order and Event - On Badiou's Logics of Worlds, New Left Review53, pp.100-105.

Slavoj Zizek, 2005, 이성민 옮김,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 b.

Slavoj Zizek, 2008, 정영목 옮김, 『지젝이 만난 레닌』, 교양인.

Slavoj Zizek, 2008, 한보희 옮김,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새물결.

Slavoj Zizek, 2009, 김서영 옮김, 『시차적 관점』, 마티.

Slavoj Zizek, 2009, 박정수 옮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그린비.

Z. Bauman, A Century of Camps?, in P. Beiharz (ed.), The Bauman ReaderMalden, MA: Blackwell Publishers, 2001.

서용순, 2009, 알랭 바디우와 진리의 철학, ;제이슨 바커, 염인수 옮김,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이후.

제이슨 바커, 2009[2002], 염인수 역,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이후.

조르지오 아감벤, 박진우 역, 2008,『호모사케르』, 새물결.

토니 마이어스, 박정수 역, 2005,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앨피.

한나 아렌트, 이진우․박미애 역, 2006,『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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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01:56 2011/09/0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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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없다

from 분류없음 2011/09/06 06:01

1. 정당 밖의 정치

 

안철수라는 인물의 향후 운명이 어찌되건 간에, 솔직히 이 현상 자체가 주는 뭔가 통쾌함이 있다. 정말 듣보잡들만 모여서 자기들 특권만 나눠먹고 있는 한나라, 민주당 등의 정당시스템 자체가 의미없어 진 것이다. 자기 순서만 기다려 몇년간 납작 엎드려 있던 박근혜, 안철수가 뜨자마자 지지율이 반토막이다. 오세훈이 어쩌고 저쩌고 수작을 부리고 홍준표가 사실상 이겼다 어쨌다 헛소리를 하건 말건 정치 테크노크라트들이 장악해서 진입할수 조차 없는 '정치권'의 행태에 넌더리가 난 것이다. 한진중공업을 봐도, 강정을 봐도, 어디를 보건 지금 정치는 정당 시스템 밖에 있다. 오세훈-곽노현-안철수 따라가기 숨가쁠 정도더니 정권 말기에 열릴 정치 공간이,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촛불에서 한번 드러났었다. 근데 그게 무슨의미인지 우린 이해하지 못했다. 기존 사회운동세력들은 뒤늦게 참여해 '정권퇴진'만 몇번 외치고 초라하게 물러났고, 원로들이 나서서 이 에너지를 제도정치로 가져가야한다는 얘기만 하다가 되돌아갔다. 용산에서도 정당이 들어온건 없다. 정치인 한두명이 가끔 들렀을뿐. 사회의 모든 갈등 사안에 정당들은 마치 '좋아요', '싫어요'라는 지지/반대 표시만 하는 수동적 존재처럼 여겨진다.

 

2. 긍정적 개입

 

대중에 대한 공포로 작동하는게 한나라당이고, 그 공포에 대한 공포로 작동하는게 민주당이나 국참당 세력이라면 이 공포와 공포에 대한 공포 들에 대한 공포로 작동하는게 진보정당들 아니었던가? 부정, 부정의 부정, 부정의 부정의 부정. 이렇게 가면 이 시리즈는 끝이 없다. 그러는 사이 능동적 개입 역량은 계속 사라져간다. '적'을 욕하며 자신을 차별화하는 '진정성'의 '도덕'정치는 지지율 추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눈 앞의 상황을 보고, 솔직해지자. 진보정당 통합 결렬? 난 모두의 진정성 있는 선택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솔직히 통합 강령 안에서 어떠한 시대인식도, 어떠한 감동도 받지 못했다. 강령을 보고 가슴이 벅차고, 냉철한 시대인식에 눈이 뜨이고, 이 대의를 보고 내 생을 바치고 싶은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마치 차마 져버릴수 없는 교과서적 원칙들을, 핵심 주도세력들이 다시 같이 일할수 있는 몇가지 확인지점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한나라당 - 민주당이 정치 테크노크라트가 된 미국식 보수 양당의 복사판이라면, 지금의 민노당-진보신당은 점점더 80년대 운동권 엘리트들의 모임같아 보인다.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금융위기가 더 심해져서 더욱 큰 변화의 순간이 왔을때, 가장 급진적인 신념을 지키고 있는 세력에게 그 역사의 행위자로서의 소임이 주어질까? 현실인식이 없는 메시아 주의는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닌듯 하다.

 

역사 앞에 계급장은 없다. 냉혹한 역사의 흐름앞에서 새로운 세대가 과거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존경해주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행의 시대앞에서 모두가 어린 아이처럼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3. 휘둘리지 않는 우리의 일정, 우리의 주도권

 

무엇보다 긍정적 개입을 해야한다. 시대를 반영한 더욱 명확한 요구를 해야한다. 그 명확한 요구들을 더 구조적인 지점으로 연결시키고 더 크게 품으며 가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후의 총선, 그리고 이후의 대선을 이야기 한다. 계속 반복해 이야기 하고 싶지만, 이젠 그 시간표 자체를 다르게 짜야한다. 말많은 정치평론가들 처럼 관망하며 노닥거릴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검찰에 휘둘리고, 언론에 휘둘리고, 북한에 휘둘리고, 선거 일정에 휘둘리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

 

저들이 경계에 몰리면 몰릴수록,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고 사태는 격화될 것이다. 박원순에 대한 검찰-국정원 파일이야 수십년 누적되어 있을 것이고, 안철수는 정치권의 공격에 쉽게 상처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단하긴 이르지만 총선, 대선 불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작금의 상황을 두고 또 진보세력들이 이러쿵 저러쿵 거리두며 폼잡는 논평만 하고 있는 다면 난 정말 좌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름다운 영혼들의 자리는 없다. 일부 역사적 소임을 다한 논객들이 보이는 찌질한 근성을 버려야 한다. 이러쿵 저러쿵 충고하고 주문하는 소비자 근성도 버려야 한다.

 

안철수에게 그래서 넌 색깔이 뭐냐라고 묻는게 아니라, 안철수라는 텅빈 기표로 모인 이 정치에너지의 내용을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직접 가 닿아야 한다. 언론만 바라보지 말고, 계속 콘서트도 열고 젊은이들이 모여서 놀게 해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임을 만들어 주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 요구들에 언어를 만들어 내고. 바닥부터 기는 심정으로 듣고 배우고 함께하고 모욕을 견디고 또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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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06:01 2011/09/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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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정마을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일까? 이미 공사수주가 2009년에 이뤄졌기 때문에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럼 시공사는 어디일까? 당연히 삼성물산이다. 우리가 용산에서 본 건 한 사례에 불과했다. 2007년 용산, 2008년 UAE원전 수주, 2009년 동대문 디자인시티 수주, 2009년 7월에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인천대교를 짓고, 노무현이 정리한 평택에 들어가서 민영 군인아파트를 짓는다. 가재울 재개발도 하고. 삼성물산 회장은 퇴임하고 제주지사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기지건설하러 여론동원하려다가 실패한거다.

 

2. 그 악명높은 쿠바의 관타나모 형무소옆에는 거대한 미 해군 기지가 있다. 쿠바라는 지역은 미국 밖으로 취급되고, 더군다나 '군사기지'라는 특수성까지 겹쳐서 미국의 모든 국내법 밖에서 할수 있는 모든일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수백명을 아무 근거 없이 구금해서 고문하고 심문했다. 제주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 저 멀리 있는 섬이고,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더 특수한 지역으로 여겨져 이후 심해질 동북아의 갈등상황에서 예외상태적 상황에 제주가 휩쓸리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3.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미 한국 전체가 예외상태적 상황에 처하고, 미군과 중국군의 전장터가 되어있던 1953년 5월, 미 공군은 진해에 '포로 수용소 학교'를 지었다. 왜 진해였을까? 진해에 해군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당시 미 공군의 심리전 담당 부서의 지부 같은 것이었다. 미 심리전 담당 부서는 온갖 비밀작전을 수행하던 조직이었다. 여기에 이전부터 CIA와 일하던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인간 생태학자, 심리학자들이 모여들어서 1급비밀 조직을 구성했다. 진해 학교의 배후에 있던 작전이론은 '스트레스 예방접종' 이론이었다. 이는 고문 상황을 대비한, 고문에 저항력을 기르는 훈련이었는데, 실재로 진해에서 강사들은 포로로서의 생활의 심리상태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고문 했다고 한다. 한국은 그저 민감한 미국 국내여론의 감시에서 벗어나 온갖 실험을 할수 있는 비밀작전 실험실이었던 거다.

 

4. 정권과 해군은? 존재감에서 밀리는 해군이 외부 돈으로 자기 사업할수 있으니 좋고, 정권은 군비 감축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비를 증강시켜 부담을 전이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기업 돈으로 해결하니 좋고. 원래 이 정권이 직접하는거 하나 없이 다 자본에게 내주고, 떡검과 견찰에게 다 해결하라고 미루는 아웃 소싱 정권 아니던가.  

 

5. 미국-정권-해군-삼성물산의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다. 미국은 자기 돈 안들이고 기지 하나 생기면 좋다. 정권은 자기 돈 안들이고 군사력 키우고 해군과 삼성물산 요구 들어주니 남는 장사, 해군은 자기 돈 안들이고 기지하나 세워 세를 키울수 있으니 좋다. 삼성물산은 여기에 항구가 건설되면 크루즈 선박을 띄우고 관광산업을 유치하면서 관련된 상권을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원래 삼성물산은 여기에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방향을 잡고 있었다. '자유'라는게 특권과 예외와 군사적 이해관계의 복합물이란걸 알수 있다. 그래서 제주 해군기지의 이름은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름으로 귀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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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17:04 2011/09/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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