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정치를 넘어선 공산주의적 가설[Badiou.pdf]
- 알랭바디우의 20세기 인식과 지젝의 보충 -
1. 알랭 바디우와 진리의 철학
‘진리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바디우(Alain Badiou)는 1937년 모로코의 라바에서 태어났다. 바디우는 1956년-61년까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고 소르본에서 학사,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1958년에는 프랑스와 알제리간의 전쟁에 반대하며 프랑스 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연합사회당(PSU) 건설을 지원했다. 1967년에는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가 만든 스피노자 연구집단에 참여했다.
이 시기 그는 『모델의 개념』(1972)를 통해 맑스주의적 수학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으며, 라캉이 정신분석을 수학적 모델을 통해 형식화하려는 시도에 열광했다. 그리고 1968년 5월의 사건 이후 바디우는 오랜 마오주의 정치, 철학적 개입을 시작.(Benjamin Noys, 2003:124∼125)하며 마오주의 조직인 ‘프랑스 맑스-레닌주의 공산주의 연합 건설을 위한 그룹’ 창립을 위해 노력했다.
바디우는 뱅센대학에서 철학과 내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들뢰즈와의 싸움에서 “볼셰비즘”(<들뢰즈, 존재의 함성>)이란 비난을 받았고, 리오타르에게 ‘스탈린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알튀세르의 ‘오만’과 오류를 비판했다. 이시기에 바디우에 철학은 정치적인 것이었고, 정치는 수정주의에 대한 엄격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바디우의 사고는 중요한 전환을 이루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바디우 철학의 근본적 주장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사건(Event)’의 함의에 충실한 주체들만이 그 상황에서 존재하는 진리truth를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홀워드(Peter Hallward)는 바디우 철학에서 이 주장이 전개되는 세가지 단계를 구분한다. 먼저 1970년대에는 프랑스에서의 68년 5월 그리고 중국에서의 문화혁명이라는 결과에 충실하게, 바디우의 지향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이었다. 마오주의적인 기획은 여전히 중심적인 참조지점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전복적인 대중은 불연속성의 역사적 물질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바디우의 첫 주요저작인 『주체의 이론(Theory of the Subject(1982)』에서 대중들은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형상으로서 그려졌다. 그런데 1980년 초반 실존하는 마오주의의 역사적 파멸에 직면하여 바디우는 그의 근본적인 참조 틀을 역사history에서 존재론ontology으로 이동한다. 당시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존재와 사건(Being and Event, 1988)』에서 바디우는 정치적 혁명이나 과학, 예술적 발명 같은 ‘사건’이 어떤 상황의 요소의 모순적 존재를 불러일으킨다. 그 사건의 함의에 충실한 주체가 결국 차근 차근 그 상황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재현하고 다시 질서를 잡을 새로운 평등적 방식을 고안한다. 결국 『주체의 이론』에서 『존재와 사건』으로의 이동은 존재론적 참조 지점이 대중에서 ‘공백void’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68년 5월에 충실하던 자들의 전향에 맞서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디우의 새로운 주체이론은 기존의 모든 전통적 ‘객관적인objective’ 방식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뿐 아니라 수학적 존재론에 집중하면서 역사와 사회 영역으로부터도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주요 저작인 『세계의 논리Logics of World(2006)』에는 『존재와 사건』의 존재론적 지향에 빠져있던 실존existence, 대상object, 관계relation, 세계World 등을 다룬다. 이 저작은 1980년대에 수학적으로 전환되었던 것에서 다시 약간 객관적 세계에 대한 실질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돌아섰으며 이 책의 가장 명확한 정치적 사례는 파리 꼬뮨이다.(Peter Hallward, 2008:100∼105)
바디우의 가장 대표적 저작인 『존재와 사건』(1988)은 포스트 모던에 대한 바디우의 도전적 응수였다. 바디우는 시인들의 시대, 과학자들만이 진리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시대에 철학은 여전히 진리를 파악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지배에 맞서 철학을 정립하는 것처럼 바디우의 모든 시도는 넓은 의미의 플라톤주의를 계승하려는 작업이다. 바디우의 철학은 진리들을 사유하고 소피스트들의 비판에 맞서 진리를 옹호하며 상대주의의 지배에 도전하여 합리주의를 혁신하는 철학이다.
바디우에게서 진리는 정치·예술·과학·사랑이라는 네 가지 진리 생산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데, 이 진리는 ‘사건’을 통해 생산된다. ‘사건’은 기존 사회를 지배하는 셈의 법칙이 누락시킨 공백Void(라캉의 실재the Real)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공백으로서의 ‘사건’은 셈해지지 않는 것이므로, 식별 불가능한 것으로 출현하며, 사건을 통해 공백이 드러났을 때 그것이 상황에 속한 것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없다.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최초의 개입은 바로 이러한 결정 불가능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사건’은 정치적이 될 수 있는가? 오직 특정 조건 하에서만 사건은 정치적인 것이 되며, 그것에 개입하는 과정이 정치적 진실을 드러낸다. 사건은 그것의 재료가 집단적(collective)일 경우에, 혹은 그 사건이 집단적 다수에 귀속될 수 있을 때 정치적이 된다. 그리고 정치적 사건의 집합적 성격의 결과는 정치가 상황의 성격을 무한한infinite것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는 이 무한성을 즉각적으로 주체적 보편성으로 소환한다. 마지막으로 상황의 상태(state of situation)와 정치의 관계, 특히 정치와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치적 사건과 그것이 드러내는 진정한 성격은 정치적 사건이 오류를 고치고, 국가의 과도한 권력에 한계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사건은 국가 권력의 주관적 오류에 개입한다. 경험적으로 이것은 진정한 정치적 사건의 있을 경우엔 항상 국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것의 권력 과잉을 드러내고, 그것의 억압적 차원을 드러낸다.(Badiou, 2005, 141-145)
사건 다음에 오는 것이 주체다. 주체는 존재, 몸, 인격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이다. 바디우는 한 존재를 지배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충실성을 주체라고 부른다. 진리는 기존 지식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공백에서 나온 것이기에 즉시 인정받지 못하고 소진된다. 그러나 주체는 남는다. 주체의 집합은 식별 불가능한 부분집합을 형성하고, 식별 불가능한 것들을 행한다. 주체는 지속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실천을 행하여 (기존)상황의 법칙에 진리를 인정하도록 강제한다. 주체들의 실천은 결국 진리에 충실한 후(後)사건적 실천이며, 이 지난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실천을 통해 진리를 결국 옳은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서용순, 2009: 15∼17)
바디우는 20세기의 역사를 무대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분석을 시도했다. 특히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이루어진 총 13번의 강연은 20세기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었다. 그리고 이 강연들에서 바디우가 하려 했던 궁극적인 주장은 창조적이고 변형적이며 자유로운 역량이 있는 인간 주체를 순수한 생물학적 동물성으로 환원시키는 ‘동물적 휴머니즘animal humanism’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열려있고 가능한 사유의 기획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바디우에게 샤르트르(급진적 휴머니즘)와 푸코(급진적 반휴머니즘)는 모두 동물적 휴머니즘으로부터 빠져나와 인간을 열려있는 기획으로 파악하려는 것이었다.(Jeffery Bernstein, 2009:1144-45)
바디우는 20세기의 ‘열린 기획으로서의 인간man as open project' 이란 특성은 근본적으로 이상의 현실화와 실천을 중요시하는 ‘실재를 향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20세기에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기 위한 시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 즉 파괴(destruction)와 빼내기(subtraction)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글은 바디우가 『세기 Le Siècle』(2005)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실재를 향한 열정’과 ‘빼기’의 정치라는 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의 의미와 쟁점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2. 20세기와 ‘실재를 향한 열정’
이 세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더 최악인 곳도 있었다”정도의 슬로건 아래에서 안전(security)에 대한 강박으로 끝나가고 있다.(바디우, 2007: 66)
1) 20세기는 전체주의의 세기인가 소비에트의 세기인가
20세기는 흔히 ‘극단의 세기(홉스봄)’ 혹은 전쟁의 세기, 그리고 강제수용소의 세기로 불린다. 20세기는 범죄의 세기로 여겨졌고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의 범죄와 나치즘의 범죄가 전형적인 것이었다. 유럽 유대인의 파괴라는 범죄로 기소된 20세기는 저주받은 세기로 여겨졌으며, 이 세기를 사고하는 중요한 변수는 절멸 수용소, 가스실, 집단학살, 고문, 조직적인 국가 범죄 등이 있었다. (바디우, 2007:2)
20세기의 상징적인 창조물은 강제수용소(concentration camp)였다. 강제수용소는 근대 국가에 의해 강제 노동과 학대, 고문과 살해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수용소를 서구 근대성 그 자체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8세기가 계몽의 시대였고, 19세기가 혁명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수용소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바우만, 2001)
아렌트(Hannah Arendt) 에게 20세기의 상징은 ‘난민’이었다. 그녀는 제국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난민’과 ‘무국적자’의 조건을 새로운 역사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아렌트, 2006: 489) 1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한 이후, 대부분 국가들이 이들의 국적을 박탈했고, 1차 대전 이후 많은 유럽국가들이 자국시민들의 귀화를 취소시키고 국적을 박탈하는 법을 도입했다. 난민과 무국적자가 속출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이들 ‘난민’의 지위는 귀화로 나아가거나 본국송환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상태’로 여겨졌다. 결국 ‘난민’은 국민국가 시스템의 ‘인권’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렌트의 견해이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오늘날 인류의 더 많은 비율이 국민국가안에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민이라는 존재가 앞으로 도래할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확장된 견해를 제시했다.
지젝(Slavoj Zizek)은 이러한 20세기의 전체주의적 재난들을 이론화하는 세가지 방향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하버마스의 방식으로 계몽 자체는 ‘전체주의’와 무관한 해방의 과정이며 미완의 기획으로 여겨 이 재난들을 넘어서기 위한 미완의 기획들을 완성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혹은 오늘날의 아감벤의 방식으로 계몽의 전체주의적 가능성은 내재적인 것이며, 20세기 수용소와 학살은 서구 역사 전체의 부정적인 목적론적 종결점이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엔티엔 발리바르 등의 입장으로, 근대성은 새로운 자유의 장을 열었지만 동시에 위험의 장도 열었으며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인 보증은 없고 투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지젝, 2009:659∼660)
이처럼 20세기는 그것의 부정성을 대면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그것을 설명해야할 만큼 대다수의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던 폭력적인 사건들이 연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바디우에게 20세기는 바로 음울한 범죄의 세기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세기’이고 승리의 세기였다.
바디우에게 20세기는 1914-18년의 전쟁(1917년 10월 혁명을 포함한)으로 시작되고 소련(USSR)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으로 끝난 세기이다. 바디우가 20세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그것에 대한 단죄적 평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 세기만의 고유한 사유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전의 세기에선 생각하지 못한 것을 20세기엔 무언가 새롭게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 바디우는 “나치들의 생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바디우가 보기에 나치즘을 사고방식이 아닌 단순한 야만주의로 보는 것은 소위 ‘민주주의’ 체제의 순수함을 주장하려는 것이자 자본주의적 의회주의가 지닌 야만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들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절멸을 알면서도 막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아프리카에선 수백만이 AIDS로 죽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바디우, 2007:3∼5)
바디우의 이러한 시도는 근대성의 부정적 차원에 대한 논의의 장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구도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지젝 역시 ‘전체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좌파들을 우파 파시스트 독재의 전도된 형태이자 쌍둥이 형제로 매도하여 급진파들을 순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복합적 임무를 수행해온 이데올로기였다.”고 비판한다. 전체주의라는 관념을 받아들이면 파시즘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게 되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지평 속으로 매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라는 관념은 역사적 사실을 사유하게 해주는 용어가 아니라 그에 관해서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종의 ‘구멍마개’였다. 더군다나 기존질서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정치적 기획을 시도하려면 ‘그런 기획은 결국 새로운 집단 수용소로 귀결될 것이다’라는 경고가 날아든다. (지젝, 2008, 14-15)
하지만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전체주의’로 기소되어 부정될 만큼 무의미한 사건들이 아니었으며, 이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 보기 위해서는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던 내용들에 대해서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바디우의 기본적인 생각은 20세기가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혹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새로운 인간성의 창조’라는 기획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기존 인간성의 보존한다는 식의 논의들 뿐이다. 하지만 바디우는 이를 넘어서기 위해 궁극적으로 “이 세기는 실제로 인간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는 또 다른 인간성이 출현한 세기였다”고 규정하고 있다.(바디우, 2007:9-10)
이러한 20세기의 의미는 19세기와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여기엔 두 가지 관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20세기가 19세기의 약속들을 모두 충족시킨 이상적 결말이라는 관점이다. 20세기의 혁명은 초기 맑스주의자들과 유토피아주의자들이 꿈꾼 것이었다. 라캉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20세기는 실재계the Real이고 19세기는 상상계the Imaginary, 혹은 상징계the symbolic였다. 두 번째 관점은 20세기는 19세기가 약속한 모든 것과 관계를 끊은 악몽이나 붕괴된 문명의 야만성이라는 것이었다. 바디우가 볼 때 19세기의 헤겔적 이념이 역사의 운동에 의지하는 것이었다면 20세기의 이념은 역사에 맞서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었다. 1850년과 1920년 사이에 역사적 진보주의에서 정치-역사적 영웅주의로의 이동이 있었고, 따라서 “20세기는 의지주의voluntarism적 세기였다.”(바디우, 2007:15)
2) 실재를 향한 열정과 최후의 전쟁
바디우는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려는 20세기의 기획은 ‘실재를 향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으로 추동되었다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세기도, 상상적인 것 혹은 유토피아의 세기도 아니다. 이 세기의 주요한 주체적 특성은 지금 이곳에서 즉각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20세기는 19세기 같은 ‘약속의 세기’가 아니라 실현의 세기이며, 선언과 미래의 세기가 아니라 행동과 실행의 세기이고 절대적인 현재의 세기였다. 20세기의 주역들은 헛됨이나 숭고한 시도, 이데올로기에의 예속은 19세기의 불행한 낭만주의라고 간주했다. 20세기는 더 이상의 패배는 없으며 승리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이 승리의 주체성은 모든 패배에서도 살아남는다. 승리는 패배 자체도 결정하는 초월적인 주제(transcendental theme)이며, ‘혁명’이 이런 주제의 이름중 하나이다. 1917년 10월 혁명, 그리고 뒤따른 중국과 쿠바의 혁명, 알제리와 베트남의 민족해방 투쟁은 모두 이 초월적 주제의 경험적 증거이고 1848년 6월의 학살이나 파리 코뮌을 보상한다.바디우는 이러한 실재에 대한 열정이 20세기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20세기의 인간들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실재에 소환되고 있다는 신념과 파토스pathos가 있었다고 단언한다.(바디우, 2007:32)
바디우가 사례로 드는 승리의 주체, 실재를 향한 열정을 품은 주체들 중 하나는 제3인터내셔널 요원들의 모습이다. 스페인 내전동안 국제여단의 러시아 공산주의 사절단은 갑자기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는데, 이들은 돌아가면 체포나 처형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병사들을 모두 숙청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절단들은 탈출하거나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바디우는 과연 이런 행동이 이데올로기로 인한 환상이나 미래에 대한 약속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이러한 20세기의 투사militant들은 환상이나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닌 실재(the real)에 대한 찬양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 실재의 공포horror of the real나 죽음조차도 실재의 한 측면으로서 받아들인 주체들이었다. 주체들은 용기와 포기 사이에서 늘 긴장했고 결정되지 않은 미래는 늘 불투명했지만 실재를 추구했다. (바디우, 2007:20)
실재에의 열정 이후 세기의 특성은 전쟁의 세기라는 것이다. 20세기의 현실은 대부분 전쟁의 패러다임 아래에서 전개되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전쟁은 마지막 전쟁decisive war, 최후의 전쟁the last war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1차 대전의 참혹함을 넘어서 새로운 시작을 정당화하는 두가지 방식중의 하나로 나타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914-18년의 전쟁은 나쁜 전쟁이고 극악한 전쟁으로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전쟁이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의 전쟁이어야 했다. 누구도 1918년부터 1939년사이의 평화를 믿지 않았고 다른 전쟁이 필요하며 정말로 마지막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바디우, 2007: 34)
물론 더 이상의 전쟁은 안되며, 모든 전쟁의 종결, 절대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흐름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과 좋은 전쟁/나쁜 전쟁, 정의로운 전쟁, 부정의한 전쟁의 변증법이 뒤얽혀 서로 맞서고 있었다. 바디우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총체적이고 최종적인 전쟁’이라는 주장이 20세기의 중요한 사건들의 배경에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바디우, 2007:36)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괴로서의 최종적인 전쟁과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20세기의 기획은 어떻게 결합되어 있었을까? 바디우는 이는 비변증법적 관계로, 분리된disjunctive 종합으로서, 서로 화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고 보았다. 20세기가 제시한 ‘최종적 전쟁’이란 이념은 과거의 ‘나쁜 전쟁’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허무주의nihilism를 뿌리 뽑고, 새로운 역사적이고 전지구적인 질서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전쟁은 국가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새로운 유형의 주체, 전투원을 창조했다. 결국 전쟁은 주체의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존재는 전투적 존재로 탄생되었다.
이 세기의 열정은 실재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 실재는 적대antagonism였다. 이 세기의 현실 상황은 분열, 대결, 전쟁으로 재현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20세기에서 세계의 공유된 법은 하나(일자, One)도 아니고 다자(Multiple)도 아니었다. 그것은 둘(Two)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던 것은 20세기엔 조화도, 단순한 헤게모니도, 통합된 신의 권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자가 아니었던 것은 권력의 균형을 얻는 것 혹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법칙은 ‘둘’이었고 만장일치의 복종이나 연합적 평형의 가능성을 배제한 양상으로 재현되었다.(바디우, 2007:37)
그런데 이 둘, 적대는 세가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먼저 전 지구적 규모의 생명을 건 전투가 진행되는 중심적인 적대(냉전)가 있었다. 그런데 이 적대는 ‘계급적대’와 ‘인종(민족)적대’로 나뉘었다. 공산주의는 전지구적 대립을 계급들간의 대립으로 보았으나 파시즘은 이 대립을 민족(nation)과 인종(races)간의 대립으로 보았다. 2차대전은 이 분열에 따라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전쟁은 최종적 통일(definitive unity)을 이루려는 전쟁이었다. 20세기의 적대는 적대는 한 진영이 다른 진영에게 승리하는 것을 통해 극복될 것으로 여겨졌다. 20세기는 하나(the One)를 향한 강렬한 욕망에 의해 추동되었다.(바디우, 2007:59)
바디우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 세기의 주체성은 ‘실재를 향한 열정’을 추구하고, ‘결정적인 전쟁’의 패러다임 밑에 위치하며, 파괴와 건설 사이의 비변증법적 대결을 수행하고, 적대를 넘어선 승리를 추구했다. 결국 이 세기는 ‘최후의 투쟁 The final struggle' 이라는 이념 아래에서 제국, 혁명, 예술, 과학, 개인들의 삶이 모두 전쟁을 치른 세기였다.
3)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
오늘날의 현실적 도덕주의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을 수 있는 이 혁명적 정치의 세기를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바디우에게 실재는 ‘선악의 저편’에 있는 것이며, 공포horror와 열정의 자원이고, 치명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것이다. 바디우의 사유는 단순한 반전, 비폭력, 평화주의적 사고가 진보의 이념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시기에 혁명과 폭력에 대한, 20세기의 열정에 대한 재평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지젝은 실재의 공포라는 측면 즉 폭력의 문제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개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본래적인 혁명적 분출에는 '순수한' 폭력의 요소가 있다. 비록 폭력 그 자체는 본질적인 가치는 없지만 혁명적 과정의 본래성의 기호이며 이 과정이 실제로 기존의 권력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표이다. 따라서 폭력이 없는 혁명의 꿈은 정확히 '혁명이 없는 혁명'(로베스피에르)의 꿈이다. (지젝, 2009[시차]: 744-745)
폭력 자체의 가치는 없어도, 그것이 보여주는 징후와 잠재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데올로기적 이중구속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의 이행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이후의 움직임에 의해서만 정치화될 수 있는데, 성공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런 폭력행동에 대해 그냥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 감추어진 해방적 잠재력을 분별해야 한다. (지젝, 2008[레닌]: 386)
문제는 폭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지젝은 폭력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폭력적인 ‘행위로의 이행passages a l'acte’이라는, 단지 행위자의 무능을 증명하는 폭력이 있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폭력 과시처럼 진정한 목적이 아무것도 없이, 실제로는 변하지 않게 하는 폭력도 있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좌표의 조종이 변하는 폭력적 행위가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폭력을 위해서는 순수한 물러남이라는 선택행위를 통해 바로 그 자리가 열려야만 한다.(지젝, 2009[시차]: 746)
지젝에 따르면 스탈린의 폭력과 파시즘의 폭력은 다른 것이다. 스탈린 치하에서의 숙청은 파시즘의 폭력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이었다. 그리고 이 과도함이야 말로 스탈린주의에서 도착적으로 변해버린 본래적인 혁명의 사례라는 놓칠 수 없는 신호이다. 이 점이 파시즘과 다르다. 파시즘의 경우 나치 시대의 독일에서조차 지배 질서에 반대하는 정치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외양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에 비해 1930년대 스탈린시대에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고 누구나 뜻밖의 반역자로 고발당하고 구속되어 총살에 처해질 수 있었다. 나치는 반유대주의로 응축되었지만, 스탈린주의는 사회라는 신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들였다. 이런 까닭에 나치의 경찰들은 저항의 행동, 흔적, 증거를 찾았지만 스탈린주의 수사관들은 모호한 구석이 없이 선명한 조작들을 꾸며내는 일에 몰두했다.(지젝, 2008[전체]: 197)
이런 과도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런 폭력의 문제는 파괴의 형태로 나타나는 정화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사회의 실질적인 적대와 갈등을 대면하지 않고 그것을 유태인이라는 외부의 적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파시즘과 달리, 스탈린주의의 과도한 폭력성은 역설적이게도 그 배후에 혁명의 진정성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폭력의 분출은 오히려 무능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폭력 자체, 파괴적인 힘의 전시 자체는 그 반대, 즉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을 예증하는 경우들이다.(지젝, 2009[시차], 672)
바디우가 ‘실재를 향한 열정’의 사례로 들었던 많은 혁명적 폭력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지젝이 보기엔 평등주의적인 정치적 극단주의 또는 과도한 급진주의는 항상 실제로 ‘끝까지 가는 것’에 대한 거절의 지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코뱅당이 극단적 테러에 의존한 것은 경제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교란시키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을 증명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 행동화의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지젝이 보기엔 문화혁명도 실패했다. 바디우는 마오의 문화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혁명적인 정치활동의 중심적 생산영역으로서의 당-국가의 종말”로 보지만, 지젝은 바디우가 문화혁명의 사건적 위상을 부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즉 그것은 사건이기는 커녕 ‘병적인 중음충동’이라고 부르기 좋아했던 숭고한 전시에 불과했다. 낡은 유물들을 파괴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의 부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를 떨쳐 버리는 데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이었다. 문화혁명의 실패는 단지 국가권력의 전복만이 아닌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하는 것의 실패. 새로운 일상 생활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의 실패였다.(지젝, 2009[대의]:297, 310)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1928년 스탈린주의적 혁명의 역설은 그 혁명의 극단적 난폭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실체를 실질적으로 변형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근본적이지 않았다. 그것의 난폭한 폭력성은 전적으로 무능한 행위로의 이행passage a l'acte으로 읽어야 한다.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진실을 위해 명명 불가능한 실재의 전면적 강제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권력 유지를 위해 모든 ‘원칙들’을 조작하고 희생하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의 태도를 함축한다.(지젝, 2009[대의]: 232)
이것은 지금의 미국헤게모니 질서 붕괴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1945년과 달리 세계는 미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이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미국은 스스로 세계적 군사권력으로 주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대안적 권력의 중심(중국, 러시아)와 맞서는게 아니라 약한 적들(이라크, 쿠바, 북한, 이란..)과의 연극적 전쟁과 ‘위기’를 상연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최근 부시 정권의 폭력 분출은 권력의 실행에 아니라 겁먹고 비이성적인 행위로의 이행이다.(지젝, 2009[대의]: 543)
이처럼 지젝은 바디우가 ‘실재에 대한 열정’과 ‘최종적 투쟁’으로 그 잠재적 가능성을 복원하려 하는 20세기의 혁명과 폭력, 전쟁을 다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폭력 자체는 권력의 무능을 보여주는 ‘행위로의 이행’인 경우가 많으며, 더욱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폭력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정화의 정치와 빼기의 전략
1) 추방과 ‘정화purification’의 논리
바디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 혁명적 폭력으로 전환되었을 경우 나타나는 참혹한 결과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를 통해 새로운 해방적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세기의 실재를 향한 열정과 혁명적 정치는 왜 그렇게 폭력적이었는가? 바디우가 보기엔 20세기는 실재에 대한 열정은 실재와 가상을 구분해 내려는 열정으로 나타났다. 브레히트의 ‘소격distancing’이 연극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이었듯이, 20세기는 현실의 폭력과 가상사이, 얼굴과 가면사이, 벌거벗은 것과 겉치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천착했다. 맑시스트들은 현실을 숨기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사고했으며, 예술의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아방가르드의 원칙으로도 반영되었다.
바디우는 1937년 스탈린주의 대테러 시기 모스크바의 재판을 하나의 연극으로 보고 이 재판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문제였다고 평가한다. 대부분 이미 사임한 이 재판의 희생자들은 미리 계획된 재판에서 자백을 해야했다. 비노비에프와 부하린이 인생 전체를 통해 일본 스파이이며, 히틀러의 괴뢰이며 반혁명의 첩자였다고 보두가 믿었을까? 다수의 고위 관료들이나 군부 요인들은 비밀 기관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왜 공개 재판이 이뤄졌을까? 바디우는 이 재판은 순수한 연극적 허구였으며, 희생자들은 잘 짜여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고 본다. 여기서 문제는 이미 확신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는 재현을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 전체는 인민의 적을 숙청하는 것을 통해서만 승인 받을 수 있었다.(바디우, 2007:52)
정치를 선과 악의 너머로 위치지우는 이러한 열정, ‘실재에의 열정’에 있어서 가상의 기능은 무엇인가? 바디우에 따르면 “실재는 가상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실재일 수 없”으며, 실재에의 열정 역시도 필수적으로 의심받는다. 실재가 실재라고 누구도 입증 할 수 없다. 혁명적, 절대적, 확신, 충성, 덕, 계급 위치, 당에 대한 복종, 혁명적 열정 등등은 가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따라서 그 범주와 그것의 준거들은 항상 공개적으로 추방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결국 이는 충성과 복종, 열정을 의문시하는 주체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모두에게 ‘실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주는 의례’를 통해 수행된다. 이런 의미에서 추방은 이 세기의 위대한 슬로건 중 하나였다.(바디우, 2007:53)
해방은 항상 그 자체, 혹은 그것을 배반하려 하는 주체를 생각하며 정당화된다. 여기서 진정한 해방의 주체적 이름은 미덕 Virtue이다. 하지만 덕에는 공유되고 믿을만한 제한을 둘 수 없다. 결국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덕의 반대이며, 그것의 이름은 ‘타락’이 된다. 결국 "진짜 해방의 핵심은 타락에 대한 투쟁”이 된다. 그리고 타락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 투쟁의 잠재적 목표가 되며 모두가 혐의자가 된다. 따라서 해방은 완전히 논리적 방식으로 ‘혐의자들에 대한 법’과 만성적인 추방으로 일어난다.
결국 실재와 가상을 분리할 형식적 제한이 없을 때엔 현재 자체를 실재라고 더욱 더 주관적으로 믿으면서 그것이 더 의심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부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심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정화의 논리(The logic of purification)는 결국 무nothingness인 상태로 귀결된다. 궁극적으로 죽음만이 순수한 해방의 유일한 이름일 수 있으며, ‘잘 죽는 것dying well' 만이 의심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우리의 세기, 실재를 향한 열정으로 야기된 세기가 모든 방면에서(정치에서 뿐 아니라) 파괴의 세기였던 이유이다.(바디우, 2007:54)
그렇다면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이 폭력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바디우는 기본적으로 해방의 정치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정치라는 것이 만일, 부와 부자들, 권력과 권력자들, 학문과 학자들, 자본과 그 하수인들에게 사회를 종속시키려는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이런 정치가 자애로우며 진보적이고 평화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실재에 대한 열정은 도덕성이 결여되어있다. 도덕성은 니체가 말하든 단지 계보학적인것이다. 그것은 구체제의 잔여물이다. (바디우, 2007: 62-63)
하지만 실재에 대한 열정에는 가상의 증식을 동반하며, 실재를 벌거벗기고 정화하는 것이 시작된다. 실재를 정화한다는 것은 실재를 감싸고 감추고 있는 현실로부터 그것을 빼낸다는 것이다. 가식적인 것에 대한 폭력적 취향은 여기서 나온다. 정화의 끝은 현실의 총체적 부재로서의 실재이며 그것은 무 이다. 바디우는 이 경로를 따르는, 이 세기에 진행된 수많은 시도들을 파괴적 니힐리즘이라고 부르고, 그것의 주체적 동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기에 이것은 창조이다. 그리고 이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은 ‘악을 피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실재와의 모든 접촉을 피하려 한다. 요즘은 수동적 니힐리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니힐리즘, 즉 반동적 니힐리즘이 되어간다. (바디우, 2007:64)
2) 물러남과 빼기의 전략
바디우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 행위로 이행되는 두가지 방향을 구분한다. 첫째는 파괴 그 자체를 승인하고 불명확한 정화 업무를 떠 맞는 것이고, 둘째는 불가피한 부정성을 조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바디우는 후자를 ‘빼내는subtractive’ 방향이라고 부르고, 파괴(Destruction)냐 빼내기(subtraction)냐?하는 것이 20세기의 중심적인 논쟁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빼내기인가? 말레비치(Malevich)는 1918년에는 매우 유명한 ‘White on White’라는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은 정화의 축도이다. 색체와 형상은 모두 제거되었고 오직 기하학적 암시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 암시는 바탕(ground)과 형상(form)이라는 추상적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흰색과 흰색이라는 영(null)의 차이, 같은 것의 차이 - 소멸하는 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최소의 차이(minimal difference)를 보여준다.(바디우, 2007:55)
바디우가 보기엔 이 그림은 그것은 최소한의, 하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차이의 상연이다. 그것은 장소와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것 간의 차이이며, 장소와 발생의 차이이다. 이것은 0과 1의 차이. 무와 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왜 이것은 파괴와 다른가? 바디우는 이런 방식이 현실을 동일성(identity)으로 여기는 대신, 현실을 간극(gap)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실재와 가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현실을 고립시키는 정화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 자체가 실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통해 해결된다는 것이다.
진짜 동일성을 획득하려 하고, 그것의 복제물의 가면을 벗기려하며, 허구를 불신하는 동일성에 강박적인 실재의 열정이 있었다. 그것은 진짜authentic를 향한 열정이며 진정성authenticity을 향한 열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정은 오직 파괴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하지만 정화는 완성될 수 없으며 악 무한(bad infinite)의 형상을 띄고 있다.(바디우, 2007:56)
이와는 다른 실재에 대한 열정이 있다. 최소한의 차이를 구성하는데 헌신하는, 차별화하는 열정이 그것이다. 테러라는 형식에 끌려가지 않고 실재를 향한 열정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식을 바디우는 빼내는 방식(subtractive path)이라고 부른다. 빼기는 현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차이로 진짜 핵심(real point)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을 정화하기 위해 그것의 표면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통일성unity으로부터 그것을 빼내는 것, 아주 작은 차이 속에서 그것을 감지하기위해 ,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소멸하는 관계/조건을 드러내는 것. 발생하는 것과 발생하는 장소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젝은 『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정화 purification'와 ’빼기 subtraction'의 구분이라고 평가(Alain Badiou and Slavoj Zizek, 2009 : 102)하며 이후 저작에서 이 빼기의 방식에 대한 여러 평가와 분석을 개진한 바 있다.
바디우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형식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 국가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국가 형식으로부터 자신을 ‘빼내는’ 제스처인 것이다. 바디우 뿐 아니라 크리츨리, 네그리는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통제하는것을 목표로 둔 당-국가 정치의 시대는 끝났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지금부터 정치는 국가의 영역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시켜 국가 외부에 있는 ‘저항의 장소들’을 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빼내고 탈주하고 이탈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지젝, 2009[대의]: 605-606)
바디우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로운 형식의 정치, 즉 ‘빼기의 정치’,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절차들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것이다. ‘당에 의한 봉기 형태와 달리 이 빼기의 정치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파괴적이지도 않고 적대적이거나 군사적이지도 않다.’ 이런 정치는 더 이상 ‘국가에 의해 확정된 스케쥴과 아젠다에 따라 구조화되거나 분극화되지 않는다’(바디우, 2008)
지젝이 보기에 빼기는 헤겔의 ‘부정의 부정’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지배권력을 직접 부정-파괴 하는 대신 그 지배권력의 장 안에 남아 있음으로써 그것이 바로 이 장 자체를 전복하고 새로운 실정적 공간을 개방하는 것이다.(지젝, 2009: 610)
하지만 문제는 빼기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뉴에이지의 명상은 가장 순수한 빼기일 수도 있다. 그들은 사회적 현실을 내버려 둔 채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한다. 지젝이 보기엔 민주주의적 빼기는 결코 빼기가 아니다. 그럼 빼기는 언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가? ‘그것이 스스로를 빼내는 시스템의 좌표 자체를 무너뜨릴 때’이다.
지젝이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장면이다. 유권자들이 집단적으로 투표를 거부하고 무효투표를 하여 정치 체제 전체를 패닉 상태에 빠뜨린다. 합법적 의례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물러나는 단순한 제스처가 국가권력을 절벽 너머의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지젝, 2009: 611)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와 투표 불참과는 다른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아무런 위협적인 것이 없다. 문제는 투표 불참이 행위의 형태로 대타자에게 영향을 미칠 때만 하나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지젝은 두가지 방식의 빼기가 있다고 파악한다. 즉 빠져나오려는 장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빼기/물러남 혹은 자기가 빠져나오려는 그 장을 폭력적으로 뒤흔드는 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물러남으로서의 빼기와 ‘미세한 차이로의 환원’으로서의 빼기가 겹쳐지는 운동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장으로부터 빼내는 동시에, 그 장속으로 강력하게 개입하여 그것을 봉쇄된 최소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미세한 차이, 부분들과 비-부분, 1과 0, 집단들과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주체를 헤게모니 장으로부터 빼내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이 장 자체에 영향을 가하여 그 장의 진짜 좌표들을 벌거벗기는 빼기이다.(지젝, 2009 : 613)
이것은 계급투쟁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계급 차이를 계급 적대로 악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빼기란 전체적인 복합적 구조를 그 적대적인 극소의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반인종차별주의와 반성차별주의 투쟁이 타자의 전적인 인정을 위한 노력을 향하는 반면, 계급투쟁은 타자를 극복하고 진압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물리적 소멸은 아니더라도 계급투쟁은 타자의 사회정치적 역할과 기능의 소멸을 목표로 삼는다.(지젝, 2009[시차], 709)
여기서 덧붙일 것은 이런 빼기의 제스처는 보편적인 계급적 차이가 아니라 오직 특수한(민족적, 종교적) 영역의 ‘실체적’ 차이와 관련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계급적 차이는 빼기를 할 수 없는 차이로, 우리는 그로부터 스스로를 빼낼 수 없다. 계급차이는 특수한 지대들 간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공간 전체를 관통하여 절단하기 때문이다.(지젝, 2009[대의]: 613)
3) 새로운 인간의 창조와 보편적 특이성
이처럼 바디우는 20세기의 ‘실재에 대한 열정’을 재평가하고 그 기획의 잠재력과 긍정성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20세기가 새롭게 창조하려던 ‘새로운 인간’이라는 기획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20세기가 만들어 내려던 ‘새로운 인간’은 두가지 반대되는 경로가 있었다. 하나는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이었다. 먼저 파시스트적 사유에서 새로운 인간은 망각하고 타락한 고대인을 ‘복권’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 새로운 인간의 정의는 인종이나 민족, 대지, 피와 토양 같은 신화적 총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정화는 사라진 기원을 회복하기 위한 폭력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다. 즉 새로움이란 확실성, 진정함authenticity의 생산이 되고 진정하지 않은 것을 파괴함으로서 복권해내는 것이 이 세기의 임무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상가들 특히 맑스주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인간이란 역사적 적대의 파괴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는 진정한 창조였다. 공산주의의 새로운 인간은 계급과 국가 너머에 있다. 두 번째 경우 새로운 인간은 모든 폐쇄된 형태 뿐만 아니라 모든 단정적인 것 특히 가족, 사유재산, 민족국가에 저항한다.
맑스 역시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 특이성(universal singularity) 어떤 단정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특히 어떤 ‘조국’도 없는 새로운 인간, 부정적이고 보편적 개념이 이 세기를 가로질렀다.
프롤레타리아는 단순한 보편적 계급이 아니다. 그들은 ‘몫 없는 자들’로서, 사회체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당화해줄 특수한 특질이 결여되어 있기에 사회적 부분집합에 속함이 없이 사회라는 집합에 속해있다. 그들의 소속은 그 자체로 보편적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 부여된 특질은 부정적 특질이다. 다른 모든 계급들은 잠재적으로 ‘지배계급’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데 반해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지젝, 2009[대의]: 616-17)
보편적 특이성은 ‘국민’과 ‘프롤레타리아’의 구분으로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즉 인민(nation, people, 국민)은 포함적이고 프롤레타리아는 배제적이다. 인민은 완벽한 자기확증을 방해하는 침입자나 기생 존재와 맞서 싸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바로 그 핵심에서 인민을 분해하는 투쟁을 강행한다. 인민은 자기 확인을 원하고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해체를 원한다.(지젝, 2009[대의]:618) 이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몫 없는 자들’이 조성한 보편성의 권력인 것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 특이성은 오늘날 더욱 필요한 것이 되었다. ‘가족주의’의 지배 속에서 젊은이들도 가족을 숭배하며 둥지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적 문화의 정치가 지배하는 가운데 동성애자들도 가족과 민족에 통합되길 요구하고 있으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상황에서 새로운 인간은 독재 뿐 아니라 가족, 사적 소유로부터 벗어나려했던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맺음말 : 공산주의적 가설과 미래 정치학
이처럼 바디우에게 20세기는 전체주의의 세기, 범죄의 세기, 실패의 세기가 아니었다. 20세기는 ‘실재를 향한 열정’이 지배한 세기이며,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적대에 맞서 최종적 투쟁을 추구한 세기였고, 전쟁의 패러다임 하에서 추구된 파괴적 니힐리즘 안에는 주체의 역할을 긍정한 능동적 니힐리즘이 있었다. 하지만 보증할 수 없는 실재를 확증하기 위해 가상적인 것, 배반을 추방하고 제거하려는 정화의 논리가 극단적 폭력과 파괴를 가져왔고 이와는 다른 방식인 ‘빼기의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바디우에겐 20세기의 기획은 끝난 기획이 아니며, 다시 복원해야할 기획이 된다. 공산주의 역시 ‘가설hypothesis’로 명명되어 그 가설이 제출되고 실현되는 과정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바디우가 보기엔 공산주의적 가설의 발전은 두 개의 커다란 시기로 나눠졌다. 첫째 시기는 공산주의적 가설이 자리를 잡는 시기이며 둘째는 그 가설의 실현으로 향하는 예비적 시도의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는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1792-1871)의 시기로, 이 시기엔 기존 질서의 전복을 통해 집단적 대중운동과 권력 장악이 연계되었다. 이 혁명들은 낡은 사회형태를 파괴하고 ‘평등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정착시켰으며, 도시 거주자들, 장인, 학생으로 구성된 대중운동이 발전했다. 그리고 구체적 형식을 갖추지 않은 대중운동이 점차 노동계급의 지휘아래 놓이게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1917년에서 1976년까지의 시기로, 바디우가 ‘소비에트의 세기’로 부른 20세기였다. 바디우는 이 시기에서는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파리 코뮌과는 달리 유산계급의 무장한 반혁명에 대항하여 어떻게 (혁명을) 유지할 것인가? 적의 공세에 대항해 혁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권력을 조직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공산주의적 가설들은 정식화되었다. 승리를 위한 강박은 조직의 문제에 집중해 공산당의 ‘철의 규율’로 나타났고, ‘당’은 이전시기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러시아, 중국, 체코, 북한, 베트남, 쿠바) 그러나 당은 약화된 반동적 체제의 전복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 건설에는 부적한 것이었고, 당-국가는 권위주의로 발전했다.
바디우는 이 시기 사이에 40년의 간격이 있었고,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세계 전역에 걸쳐 제국주의의 승리하고 공산주의 가설은 기각되었다고 말한다. 바디우에 의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두 번째 시기가 끝난 이후 우리는 또 한번 ‘적에 의해 지배되는 휴지기’에 있으며, 결국 공산주의적 가설의 새로운 시기가 열리게 될 것이다.(바디우, 2009)
문제는 20세기의 고안물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디우는 두 번째 시기는 끝났고 그것을 복원하려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적 경험의 형태들 속에서 공산주의적 가설이 나타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바디우는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주력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에 집중하는 것을 회피하고, 심지어 오늘날의 투쟁 형식(반-세계화 운동)을 조소하면서, 해방적 투쟁을 엄격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오늘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형식인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정의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가로막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간주된 민주주의적 형식에 대한 믿음이다.(지젝, 2009[대의], 278)
바디우는 오늘날 민주주의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만들어 내는 주체는 이기주의적이고 향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핵심적 특징으로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민주주의는 사실 권리상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의 민주주의이다.(바디우, 2010:29-34)
지젝은 한편으론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오늘날 ‘반자본주의’라는 기표는 전복적 자극을 상실했으며, 반지구화 운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사실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기에 두겹의 싸움이 필요하다. 즉 첫째는 반자본주의, 둘째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식(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싸움이 그것이다.(지젝, 2008[레닌]:484-485)
그러나 지젝의 지적처럼 바디우의 ‘순수 정치학’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시각이 전적으로 부재한다. 바디우는 국가기구를 전복시키고 붕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주의자들의 혁명적 당 정치학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경제적’ 영역의 혁명적 잠재력을 고찰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일하게 남은 길은 국가의 경제 밖에서 작동하며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동원의 선언에 한정하는 ‘순수한’ 정치적 조직의 길이다. 지젝이 보기엔 이런 교착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경제적’인 영역에 진리의 위엄과 사건을 위한 잠재력을 재건하는 것 뿐이다.(지젝, 2009[대의]: 645)
결국 바디우의 기획은 몇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너져버린 상징의 폐허위에 ‘공산주의’라는 상징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야심찬 기획으로 보인다. 바디우의 개념들을 통해 20세기를 다시 보는 작업은 새로운 차이들을 발명해내고 지금까지 막연한 ‘파괴’로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바디우의 시선을 받아들인 자들의 현실 읽기는 많은 기대를 받으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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