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본 세상http://blog.jinbo.net/marishin/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2015-07-03T01:00:30+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발칸반도에서 서양 언론이 한 짓marishinhttp://blog.jinbo.net/marishin/1962010-09-07T16:59:16+09:002006-02-27T21:39:58+09:00<p style="text-align: justify;">
이 글은 지난해 연말 아메리카에서 조용히 출판된 책 <언론 청소 : 추악한 보도 - 언론과 유고슬라비아의 비극 (Media Cleansing : Dirty Reporting - Journalism and Tragedy in Yugoslavia)> (피터 브로크 Peter Brock 씀)에 대한 상세한 서평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자는 30년 가까이 활동한 탐사보도 전문 기자이고 서평자는 촘스키와 협력하는 비판적 지식인이자 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인 경제학자 에드워드 허먼(Edward Herman)입니다. 서양 언론들이 얼마나 편파적이고 거짓된 보도로 발칸반도 분쟁을 전세계에 왜곡해 전달했는지, 이 서평만 봐도 기막힐 지경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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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읽으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발칸 분쟁에 대한 지식 대부분을 폐기처분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 글을 읽고나면 지금도 외신을 통해 꾸준히 전달되고 있는 발칸에 대한 보도 내용도 전혀 다르게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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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만 해도 베를린영화제에서 보스니아의 학살과 성폭행을 다룬 영화 <그르바비차>가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간단히 전해진 내용을 보면 이 영화 또한 한쪽 진영 곧 세르비아인들의 잔학 행위만 집중 부각시킨 것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최우수 작품상은 고사하고 출품작에 포함되지도 않았을 게 뻔합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군 사령관으로 학살 혐의를 받고 있는 믈라디치 체포설이 흘러나왔습니다. 세르비아의 학살 자체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그들만 학살 행위를 한 게 아닌데, 이 소식을 전하는 어떤 언론도 그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책이 나오는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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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발칸지역 분쟁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분들은 <a href="http://blog.jinbo.net/marishin/?pid=190">발칸분쟁 이해를 위하여</a>를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서평 글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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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 번역문 보기 --</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 255, 175); padding: 1px; margin: 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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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디어 청소 : 추악한 보도 - 언론과 유고슬라비아의 비극> (피터 브로크, gmbooks, 2005) Media Cleansing : Dirty Reporting - Journalism and Tragedy in Yugoslavia, By Peter Broc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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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 에드워드 허먼 (Edward S. Herman) 출처: <제트매거진>, 2006년 1월호 (<a href="http://www.globalresearch.ca/index.php?context=viewArticle&code=HER20051229&articleId=1667">서평 원문 보기</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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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요하고 가치있는 책은, 다이애나 존스톤(Diana Johnstone)과 마이클 맨델(Michael Mandel)이 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훌륭한 책들(<바보들의 십자군, Fools' Crusade>과 <아메리카가 살인에 대한 처벌을 피한 방법, How America Gets Away With Murder>)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존스톤은 발칸전쟁들의 핵심 역사와 배경[맥락]을 제공하는데, 이 지역 토착 개입 세력, 그들의 배경과 동기와 전략, 외부 개입자들(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도 집단과 홍보 회사들, 오스트리아, 독일, 아메리카, 국제연합과 유고전범재판소[ICTY, 국제형사재판소])이 맡았던 중요한 구실을 분석함으로써 이를 제공한다. 맨델은 최근 아메리카의 침략행위, 이런 행위를 촉진하는 데 있어서 국제법과 국제형사재판소의 구실 및 국제법과 국제형사재판소 악용에 대한 두드러진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브로크는 언론매체의 구실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매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국제형사재판소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원하는 개인들과 집단들과 정부들의 진행계획 추진에 호위병 구실을 한 '공동 참전자'(co-belligerents)였다. '부대에 배속된'(embedded) 언론인들은 이라크 침략-점령과 함께 나타난 게 아니다. 자발적 배속이 발칸 분쟁을 보도한 서양 언론매체의 지배적인 특징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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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가 아주 분명하게 밝혀낸 엄청난 얄궂은 결과는 이렇다. 보통 말하기로 인종 청소와 학살을 중단시킨답시고 더 공세적인 행동을 무자비하게 부추긴 언론계의 공동 참전자들이, 자신들의 호전성과 전쟁 선동이 없었다면 발생했을 사태에 비해 도리어 더 많은 인종청소와 학살을 보장하고 촉발하는 정치적 의제를 추구한 세력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발칸 내부 개입자들과 외부 세력들의 목표와 수단을 주제로 한 존스톤과 맨델의 책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평화에 반하는 '정의'에 초점을 두고 세르비아인들을 악마로 만들고 또 그들을 처벌받아야 할 유별난 집단으로 만드는 행위야말로, 보스니아의 이슬람 지도자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Alija Izetbegovic)와 그의 측근들과 클린턴/올브라이트 및 콜/겐셰[각각 아메리카와 독일의 정부 수반/외무장관 : 옮긴이]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이 사용한 수단이다. 이들은 평화적 타결을 막고 - 가장 중요하게는 1992년 리스본 합의를 깼다 - 무엇보다 이제트베고비치를 위해, 그리고 보스니아의 이슬람계를 위해, 또 코소보해방군과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로 하여금 군사적으로 개입하게 만들려는 집요한 시도에 이 수단들을 활용했다. 브로크는 언론매체들이 이런 친 폭력적이고 반 평화적인 목표에 무자비하고도 효과적으로 봉사했음을 보여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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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이 '패거리 언론(pack journalism)'의 규범적 사례이고 '옹호 언론(advocacy journalism)' 또는 '부속 언론(the journalism of attachment)'이라고 불리던 것이기도 함을 설득력있게 논한다. 언론인들은 선한 쪽이 악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 또는 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의무이자 덜 위험하다는 생각에 쉽게 설득되어, 이 패거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또 선하다고 하는 쪽과 그쪽 희생자들에 밀착하는 옹호세력이 됐다. 발칸지역에서 이런 현상을 부추긴 요인은, 언론인 대부분이 이 지역 언어와 역사를 몰랐다는 사실과 진정한 언론활동을 시도하면 육체적 위협을 받는 탓에 그들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지역에 모여있곤 했다는 점이다. 한 냉소적인 목격자(루이스 매킨지 장군, Lewis MacKenzie)가 지적했듯이 언론인 대부분은 “홀리데이인 호텔로부터 사방 150미터” 안에서 자신들이 본 것만 보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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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뉴스'를 찾는 데 서로 서로에 의존하고, 또 기꺼이 그들을 도와주는 공식 취재원들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언론인들이 사라예보에서 보스니아 이슬람계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머물렀기에, 이들 이슬람계가 아메리카 관리들과 함께 뉴스의 주요 취재원이었다. 또 브로크가 지적하듯이 이 언론인들은 사라예보에 많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들 가운데 약 5만명이 도시를 탈출했거나 내쫓겼다는 걸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이 패거리는 심지어 유대인들의 사라예보 탈출조차 몰랐다.(131-133쪽) 이 유대인들은 수적으로 우세한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은밀히 협박을 받았고 (세르비아계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나치 지배 시절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들의 살인 행위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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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그리고 다른 발칸 지역) 주재 패거리 언론인들은 그래서 아주 조작당하기 쉬운 상태였다. 그들은 더 폭넓은 진실을 미리 알았고, 실질적인 객관성과 균형이라는 개념을 내팽겨쳤으며, 제도화한 편견을 뒷받침하고, 그럼으로써 본사의 편집 책임자들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옹호하고 선전하는 대의명분을 주창하는 데 적합한 이야기들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데이비드 리프(David Rieff) 로이 거트먼(Roy Gutman) 에드 벌리어미(Ed Vulliamy) 같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더 공세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개입 (곧 전쟁)을 촉구하는 운동가이고 자신들만 그런 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사실들과 모든 당사자들의 주장을 따져보고 분쟁 속의 복잡한 사건들을 공정하고도 총체적으로 그려내게 될 진지한 언론인이기를 포기했음을 뜻한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명분을 주창하는 이야기들에 기울고 무비판적인 열정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다루게 됐다. 또 다른 냉소적인 목격자가 묘사했듯이, 이는 곧 이제트베고비치가 “그들을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다룰 수 있음”을 뜻했고 실제로 그들을 보스니아 이슬람계의 선전과 역정보를 위한 앞잡이로 이용했다. (개중 '균형감 있는' 로이 거트먼은 이슬람계 당국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정보 기관과 아메리카 대사관에 의해서도 스타라디바리우스처럼 다뤄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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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패거리짓과 시류영합 과정은 제 스스로를 먹고 자랐다. 보스니아 이슬람계의 고통을 보여주는 암울한 사진과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세르비아계 희생자들과 사건 맥락을 무시하고 또 이에 상응하는 국제형사재판소와 서방 정치 지배층의 의제와 편견의 지원을 받으면서 보스니아 이슬람계를 희생자로 만드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거의 전적으로 일방적인 악마 만들기의 정책 노선이 꾸준히 강화되었다. (하지만 전직 아메리카 국무부 관리 조지 케니(George Kenney)의 조사 결과는 “각 인종의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은 거의 똑같다'는 걸 밝혀냈고 심지어 국제형사재판소가 후원한 조사 또한 사망자 가운데 세르비아계의 비중은 전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구 중 세르비아계의 비중보다 많이 낮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 Ewa Tabeau and Jacub Bijak, "War-related Deaths in the 1992-1995 Armed Conflicts in Bosnia and Herzegovina: A Critique of Previous Estimates and Recent Results," European Journal of Population/Revue européenne de Démographie, June, 2005를 보라) 속기 쉬운 (심리) 상태와 더 시선을 끌만한 악마의 모습을 원하는 욕구는, “강간 수용소(rape camps)”와 아우슈비츠식 “학살 수용소(death camps)”에서의 희생자 만들기에 대한 무책임한 보고와 주장을 더욱 부추겼다. 이런 언론인들의 책들은 브로크가 “희생 서사시”라고 한 것들일 것이다. 이런 책들은 당파적인 취재원들이 제공하는, 유감스럽게도 “확인 안된(unconfirmed)” 목격담에 주로 의존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별적 희생자 만들기를 담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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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는 강간 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주장과 세르비아계가 유독 그리고 군사적 전술 차원에서 강간을 저질렀다는 주장들을 세밀하고도 설득력있게 해부한다. (5장) 그는 분명히 세르비아계의 강간 자체를 결코 부인하지 않지만, 세르비아계의 강간이 보스니아 이슬람계 또는 크로아티아인들의 강간보다 숫적으로 많다거나 더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일말의 증거도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강간의 증거를 수집하는 데 상당한 자원이 투여됐음에도 이에 대한 자료보다는 세르비아인 강간 피해자들에 대한 자료가 훨씬 포괄적이고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르비아쪽 자료는 결코 패거리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세르비아인에 대한 전쟁 범죄와 수용소에 관한 세르비아쪽 조사보고서 일체 또한 이들 패거리 언론들에게 같은 대접을 받았다.) 편견은 언론을 혼란에 빠뜨렸다. '강간은 세르비아의 무기였다'(1993년 10월20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에 글을 쓴 폴 루이스(Paul Lewis)는, 국제연합 보고서가 “800명의 희생자 이름을” 확인했다고 지적했으나 이들이 세르비아계 여성들이었다는 건 언급하지 않았다. 세르비아인에게 강간 당한 피해자가 2만명에서 5만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는 어떤 근거도 없었다. 강간은 세르비아가 저지른 특별한 범죄라는 신념은, 패거리 언론의 강력한 정치적 편견과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이슬람계의 뛰어난 언론 대응과 선전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르비아쪽 증거를 제외한 강간에 관한 모든 문서를 점검한 1994년 1월의 국제연합 보고서는 확인된 피해자 126명을 실었다. 이 확인 결과는 언론의 관심을 끌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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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은 보도라고 해봐야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불과한, 이 광적인 선전 공세에서 언론이 한 것은 그 자체로 치욕이다. 이 사건은 언론이 전혀 제동 걸리지 않았다는 걸 반영하는 동시에 “언론이 이렇게까지 전문성과 윤리가 결여된 걸 본 적 없다”는 국제연합 관리 아라셀리 산타나(Aracelly Santana)의 언급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사라예보에서 언론을 담당했던 국제연합 대표들과 영국 관리들은 패거리 언론인들을 파괴적인 세력으로 경멸했고, 일부는 심지어 '파충류들[비열한 인간들]'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브로크는 트르노폴예(Trnopolje) 통과용 임시 수용소에서 1992년 8월 촬영된 그 유명한 피크레트 알리치(Fikret Alic) 사진에 대해서도 잘 다루고 있다. 이 사례는 적에 대한 중상모략 시도와 서양 기자들과 언론의 도덕관념 결여를 훌륭하게 예시하는 것이다. 영국 아이티엔(ITN; Independent Television News) 방송 기자 두명과 영국 일간신문 <가디언> 기자 한명이 수용소 체류자 가운데서 특히 초췌한 사람을 찾아내서는 철조망이 쳐진 감옥에 갇혀있는 듯 보이려고 세심하게 꾸미고는, 자신들은 바닥에 가는 철사 그물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기둥 두개에 녹쓴 철조망이 걸쳐진 곳 한켠에 자리잡고 반대편에 알리치를 세운 뒤 사진을 찍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기자와 신문 편집자는 셋 또는 네 가닥의 철조망이 강조되도록 알리치 사진의 여백을 잘라냈다.” 통과용 임시 시설이지 수용자 야영 시설이 아닌 이 곳은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피난민들은 마음대로 떠날 수도 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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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크레트 알리치 사진은 곧 서양 언론을 사로잡았고, 벨젠 나치 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대비됐다. 그리고 언론은 이 '학살 수용소'를 광적인 분노와 철저한 사기로 치장해 묘사했다. 이 사진이 선전용 사기 사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를 토마스 다이크만(Thomas Deichmann)이 제시하자, 언론의 대학살이 벌어졌다. “패거지 언론에 속한 개입주의자들이 행한 반격은 격분과 즐거움 속에 개시”됐으며,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져 다이크만의 글을 실은 영국 잡지 <리빙 마르크시즘(Living Marxism)>를 파산시켰다. <리빙 마르크시즘>이 소송에서 긴 것은, 이 글의 사실들이 틀려서가 아니고 기자들이 속일 의도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해서였다. 기자 및 편집자들과 서양 지배계층의 편견에 우연히 맞아떨어진 이 거대한 사기 행위는 부주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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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기 사진은 악마 만들기 과정과 전쟁 옹호 주장을 촉진하는 데 기적같은 효과를 발휘했고, 심각한 거짓 묘사에서 비롯됐음에도 주류 언론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에마 브로크스(Emma Brockes)는 최근 <가디언> 기사로 놈 촘스키(Noam Chomsky)를 공격하면서, 아이티엔이 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겼음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의도 문제를 다룬 것이지 사진에 얽힌 사실들이 오도됐느냐 여부를 다룬 게 아니라는 건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패거리 언론인들은 후속으로 부정적인 내용들을, 언제나 일방적이고 맥락이 제거된 내용들을, 종종 위조된 것까지 포함해 계속 내놓게 될 거였다. 브로크는 책의 몇페이지를 오직 잘못 묘사된 것들, 실제로는 세르비아인이지만 이슬람계로 분류된 희생자 사진들(30-32, 122-124, 170-172쪽을 보라)을 나열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또 뻔한 편견들을 예시하는 여러 사례들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브로크는 패거리 언론인들이 여러 도시, 예를 들어 고라제(Goradze), 모스타르(Mostar), 비하치(Bihac), 부코바르(Vukovar), 스트루가(Struga) 등에 대한 세르비아의 공격을 보도하면서, 이 도시들이 세르비아계에 대한 인종청소가 벌어졌던 곳이라는 사실이나 세르비아의 공격은 이전의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따위를 언급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규칙적으로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일련의 사건들의 맥락 제거하기와 오도는, 보스니아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쪽 취재원에 대한 무비판적 의존과 편견에 근거한 표준적인 보도 행태였다. (세르비아의 고라제 공격에 관한 거짓말들에 대해선 75-75쪽, 부코바르에 대해선 xiii-xv쪽, 크로아티아쪽 선전의 눈에 띄는 효율성과 스트루가에 관한 <에이피(AP)>와 다른 서양 매체들의 정직성 결여에 대해선 42-45쪽, 세르비아 강제수용소 수용자 숫자에 대한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의 거짓말에 대해선 80-81쪽을 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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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는 정책 노선을 따르는 패거지 언론과 다르게 생각하는 언론인들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은 유사한 과정을 통해서 곧바로 공격받고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것이 '언론 청소'이고, 이는 '추악한 보도'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1993년 당시에 이미 확립된 정책 노선을 따르는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유고슬라비아 발: 당파적 언론',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1993-94년 겨울호)을 썼던 브로크 자신만해도 패거지 언론인들에게 맹 공격을 받았고, 그의 글을 실은 매체 또한 압력에 그리고 일탈에 대한 위협에 시달렸다. 발칸반도에서 일하다가 분쟁에 대한 아메리카의 불충분한 개입 때문에 사직한, 전직 아메리카 국무부[외교부] 관리 조지 케니는 관점을 바꿔 정책 노선에 대한 진지한 비판자가 되었다. 브로크처럼 케니도 곧바로 더러운 공격의 제물이 됐고 영국 <비비시방송>과 아메리카 주류 언론의 발칸분쟁 논평자에서 배제됐다. 사라예보 주둔 국제연합 보스니아 평화유지군(UNPROFOR) 사령관 마이클 로즈(Michael Rose) 중장조차 패거리 언론인들의 맹렬한 공격 대상이었다. 이들은, 로즈 중장이 패거리들의 잘못된 정보를 자주 공박한 데 분개했다. 또 보스니아 이슬람계를 위한 운동가들로서 이들은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 폭격을 하지 않는 데 분노했다. (로즈에 대한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 아메리카 <에이비시방송> 뉴스 앵커: 옮긴이]의 편견에 가득 차고 무지하며 더러운 공격 곧 '평화유지군: 국제연합은 보스니아에서 어떻게 실패했는가', 1995년 4월24일 <에이비시방송> 보도에 대한 브로크의 결정적인 분석에 대해선 175-176쪽을 보라. 제닝스와 <에이비시방송>의 이보다 더 광범한 보도 횡포에 대해선 173쪽을 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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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이 리뷰 밑 아래 첨부해놓은 브로크의 책 머릿말을 써준 데이비드 바인더(David Binder)가 당한 일이다. 바인더는 1980년대와 90년대 발칸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 가운데 가장 경험이 많고 지식도 많은 <뉴욕타임스> 기자였다. 그런데 그는 정책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이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을 몰아내려 한 시도를 직접 목격했으며 이를 보도했고, 알바니아계 코소보인 사회의 요인들이 인종적 정화를 시도했음을 인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책 노선이 확고해지자,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이나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때때로 고집하는 그가 신문사 편집자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게 됐다. 브로크가 거론한 악명높은 사례 하나를 들자면, 바인더가 여러명의 자질있는 국제연합 관계자와 군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기사에 얽힌 사건이 있다. 이 기사는, 세르비아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더 공세적인 행동을 설득하는 데 기여한 사건인,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을 주로 희생시킨 1994년 2월5일의 사라예보 마르칼레(Markale) 시장 폭탄 공격 사건 범인으로 보스니아 이슬람계를 지목하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 게재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바인더는 기사를 스위스 신문 <디 벨트보헤(Die Weltwoche)>와 잡지 <포린 폴리시>('대학살 해부', 1994-95년 겨울호)에 대신 기고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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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인더는 발칸반도 보도 담당에서 제외됐고 로저 코언(Roger Cohen), 칼로터 갈(Carlotta Gall), 말리스 시몬스(Marlise Simons), 존 F 번스(John F. Burns)가 임무를 맡았다. 이 기자들은 정책 노선을 추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거짓말도 퍼뜨리되 정책 노선과 이 노선의 편견을 강화시킬 거짓말만 퍼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래 존 F 번스에 관한 부분을 보라.) 바인더에 대한 대응은 1980년대 레이몬드 보너(Raymond Bonner)가 중앙 아메리카 보도 담당에서 제거된 일을 상기시킨다. 보너는 아메리카의 후원을 받는 엘살바도르 군의 학살 작전에 대한 글을 계속 보내다가 일을 당했다. 보너 해고는 언론계 일탈자들에 대한 경고로 널리 인식됐다. 바인더를 제거한 것과 브로크 및 케니에 대한 공격은 비슷한 위협 효과를 발휘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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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체제 아래서, 그리고 악마 만들기 과정의 승리와 투쟁에 대한 단순한 이원론적 관점이 존재하는 가운데, 대규모의 자발적 배속 행위(embedding)와 언론 기준 붕괴가 나타났다. 무슨 수를 쓰든 악당의 소행을 그려내려는 질주가 벌어졌고, 이 과정은 1999년 6월 코소보전쟁이 끝났을 때도 악명높게 진행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패거리 언론인들이 강간 피해자, 주검들, 세르비아의 잔학 행위를 찾기위해 코소보로 몰려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언론의 사기 행위가 넘쳐났고, 언론인이 사심에 찬 선전꾼, 선동꾼들의 표적이 되는 '속아 넘어가기 쉬운 상태'(gullibility)가 심해졌다. 보스니아 이슬람계 관리들이 1992-93년 보스니아 이슬람계 희생자가 20만명이라고 주장하면, 언론(과 클린턴)은 무비판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미심쩍고 앞뒤가 맞지 않고 조지 케니 같은 이들이 의혹을 표시했음에도 그랬다. 국제형사재판소의 후원을 받은 조사자들이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모든 분쟁 당사자들의 희생자를 10만명 정도로 낮춤으로써 이 주장을 반박했음에도(앞에 거론한 타보와 빌랴크[Tabeau/Biljac]의 조사 결과를 보라) 오늘날까지 이 수치는 지속적으로 주장된다.(<뉴욕타임스> 2005년 11월25일 사설 '보스니아, 그 후 10년'과 <워싱턴포스트> 11월29일치 '보스니아의 느린 진보'를 보라.) 우리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의 학살자 200만명에 관한 역사를 상기할 수 있겠다. 이 수치는 1977년초 장 라쿠튀르(Jean Lacouture)가 처음 제시했는데 그는 이 수치가 사실무근이라는 걸 인정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악마가 된 적들에 적용되는 규칙은, 명백한 사기라고 할지라도 최악의 것이 믿을만하고 또 그대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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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는, 보스니아 이슬람계 관리들과 심지어는 아마추어 무선사가 주장하는 많은 분쟁 지역의 희생자 수치를 언론들이 확인없이 받아서 전달하는 게 흔히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희생자 수치는 거의 대부분 과장되거나 전혀 사실과 다르지만, 언론들은 미끼를 덥썩 물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들이 속았음을 알고 실망해도, 정정 기사를 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지도 않았다. 기자들과 언론이 악마가 된 적들에 대한 보도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는 일은 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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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는 최선을 다해 <뉴욕타임스>의 존 F 번스와 <뉴스데이>의 로이 거트먼의 기사를 분석한다. 두 기자는 보스니아 보도로 1993년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한 이들이다. 브로크는, 이들이 상을 받은 건 '부속 언론'과 퓰리처상 체제의 부패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더 폭넓은 언론 부패상의 지표가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에게 붙잡힌 세르비아계 보리슬라프 헤라크(Borislav Herak)가 29명의 이슬람교도를 죽이고 8명의 여성을 강간했다고 고백한 내용을 중심으로 장문의 기사를 쓴 공로 등으로 상을 받은 번스의 사례가 거트먼 경우보다 훨씬 극적이고 심지어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번스의 기사는 “보스니아에서 다른 수천명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평가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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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제트베고비치가 선호하는 인물임이 널리 알려져있던 번스는 소로스의 돈을 받는 영화 제작자와 함께 헤라크를 만나도록 쉽게 허용됐다. (취재 당시 이 영화 제작자가 동행했다는 사실은 번스의 기사에 결코 언급되지 않았다.) 헤라크는 아주 공포에 떠는 모습이었고, “부분적으론 수용소 관리들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번스에게 이야기를 했다. 헤라크는 한동안 고백을 한 뒤에, 관리들로부터 증언이 끝난 뒤 자신을 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달라고 번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주장하는 범행을 확증해줄 주검도, 목격자도 없었다. 헤라크와 함께 붙잡힌 세르비아계 동료는 즉각 헤라크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연합 보스니아 평화유지군 책임자인 캐나다 장군 루이스 매킨지가 그 지역 매춘 구역에서 보스니아 여성들을 강간했다고 헤라크가 비난했으나, 번스와 영화 제작자는 그의 발언 사실을 은폐했다. 번스는, 이런 발언은 헤라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그의 고백 이야기를 훼손할 거라는 점을 매킨지에게 인정했다. 그러나 번스는 거짓임을 알아봤어야 마땅한 거짓말을 옹호하고 직업적 기준을 위반하면서까지 정보를 은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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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뒤 헤라크는 고문을 당했고 고백할 내용을 암기하도록 강요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말을 바꿨다. 그의 말 바꿈 직후 그가 죽였다던 이들 가운데 두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사람의 등장을 보도하면서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이 보스니아 이슬람계 정부로선 낭패라고 썼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자신들이 낭패한 것은 깨닫지 못했다. 퓰리처상 위원회가, 고문당해서 한 고백에 근거한 데다가 증거를 감춤으로써 신뢰성을 잃은 기사 때문에 수상한 번스로부터 상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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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는 번스가 언론 윤리를 어긴 다른 여러 사례들도 제시한다. 번스는 1993년 4월 전쟁으로 숨진 이슬람교도가 14만명이라는 자신의 추정에서 시작해 7월엔 이 수치가 20만명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예보 밖으로 나가는 걸 점점 줄이면서, [번스는] 정부가 뻥튀기한 부상자 수치를 일관되게 보도했다.” (1994년 1월10일) '맥닐-레러 뉴스 아우어(MacNeil-Lehrer News Hour)'에서 번스는 사망자 30만명, 부상자 90만명으로 판돈을 더 높였다. (번스의 다른 거짓말, 거짓 묘사, 증거 은폐 사례들에 대해서는 77-80쪽과 187쪽을 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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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거트먼의 작업에 대한 분석 또한 마찬가지로 통렬하다. 브로크는, 거트먼이 '학살 목격자'(거트먼이 보스니아발 자신의 기사를 바탕으로 1993년에 낸 책 제목)가 아니라 속셈이 있는 진영들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제공한 선전공세의 중개인이었음을 거부하기 어렵게 보여준다. 그의 많은 취재원은 목격자가 아니라 목격자라고 하는 이들의 떠도는 증거를 전달한 이들이다. 거트먼은 이런 취재원들을 무비판적으로 대했고, 심지어 한 대목에선 “믿을만한 소문들”에 대해 말한다. 그는 세르비아의 잔학 행위 주장에 대해 증거를 요구한 적이 거의 없고, 증거를 얻거나 제공받은 건 더더군다나 적다.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이 세르비아의 수용소에 10만명이 갇혀있다고 주장하면 거트먼에겐 그걸로 족했다. 적십자가 세르비아 수용소에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을 모두 합쳐 단지 1만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고 추산한 사실은, 그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거트먼이 선호하는 큰 수치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뜻했다. 거트먼의 관심은 악당들에게 불리한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는 이 일을 단지 대충 날림으로 한 정도가 아니다. 평판이 아주 나쁜 취재원들의 도움을 받아, 현실의 몇몇 '확인되지 않은' 요소들을 담은 허구의 작품을 썼던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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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먼이 대부분의 취재원을 찾아낸 건, 크로아티아인들과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과 아메리카 대사관의 중개자들 도움 덕분이었다. 특히 크로아티아 공보센터(CIC)와, 거트먼이 보기에 “어느 정도 학문적인” 작업을 하는 크로아티아 정부 선전기관으로부터 거의 독점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거트먼은 크로아티아 공보센터의 주요 선전 요원이자 자신의 취재원이 된 야드란카 시겔르(Jadranka Cigelj)를 “우연히” 만났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목격자들( 또는 목격자 소문의 전달자들)을 크로아티아 “자선 재단들”과 아메리카 대사관으로부터 소개받았다는 건 인정했다. 한 비판적 언론인(조앤 필립스, Joan Phillips)이 표현했듯이, 거트먼의 학살 수용소 기사들은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몇마디 설명에 근거한 것이다. 기사들은 소문과 소문의 소문에 의존한다. 여기에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건 관리들의 추측과 짐작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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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먼은 아주 쉽사리 나치의 벨젠 수용소 및 아우슈비츠 수용소와의 유사성을 거론했고 '학살 수용소'(death camps), '강제 수용소'(concentration camps), '강제 이송'(deportations)을 언급하며, 최대 5000명에 달하는 세르비아 학살 수용소 희생자 추정치를 인용한다. 비록 그의 용어 사용과 수치는 대상이 되는 독자의 지식과 이해력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엔 망설임이 전혀 없는 게 분명히 드러났고 거짓 진술도 잦았다.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된 유대인들 같았다”는 표현은 거짓말이다.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강제로 옮겨진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이 가스실로 끌려갈 운명이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듯이 말이다. 필립스는 학살 수용소를 찾으려 보스니아로 몰려든 350명의 언론인들이 “수용소를 찾은 바 없고 수용소가 있었다는 증거도 찾은 바 없다”고 지적한다.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가 만든 수용소가, 거트먼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이슬람계가 만든 수용소보다 더 험하게 사람들을 다뤘다는 증거도 사실 전혀 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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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먼의 작업에 대한 브로크의 상세한 분석(87-116쪽)은, 언론학도들 모두가 꼭 읽어야 하는 언론 남용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사례연구다. 브로크가 묘사하고 있는 이 터무니 없는 행위가, 역정보 흘리기 측면에서 거트먼의 호적수였던 존 F 번스와 공동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거트먼은 자신의 책 <학살 목격자>를 “어떤 상황에서건 인용할 수 없다”고 브로크에게 전자우편으로 경고하는 등 브로크의 분석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반대신문을 당할 수밖에 없는 헤이그 전범재판 증언을 거부함으로써 재판에 노출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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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의 책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홍보 업체들, 독일, 바티칸이 한 일 그리고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도구인 전범재판에 대한 분석 등 이밖에도 많은 훌륭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발칸 전쟁에 대한 비판적 문헌들에 빠져있는 필수적인 부분을 채워주고 주류 언론의 작업을 드러내 알리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제도화한 정책 노선에 도전하는 존스톤과 맨델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주류로부터 무시될 것이라고 덧붙이는 건, 지식인 문화에 대한 서글픈 논평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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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괴로운 건, '좌파'라고 알려진 <네이션(Nation)>,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머더 존스(Mother Jones)> 같은 매체들에 존스톤과 맨델 책 서평이 실리지 않은 것처럼 브로크의 책도 덜 '논쟁적인' 작품들에 밀리는 똑같은 처지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적 기획에 관한 공식 정책 노선이 심지어 자칭 좌파들에 의해서도 도전받지 않게 만드는 제국주의의 능력에 대한 증언이다. 이는 가장 세련된 단계의 헤게모니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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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뉴욕타임스>의 워싱턴 및 발칸 특파원 데이비드 바인더가 쓴 책 머릿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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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집필한 이 책은, 아메리카 언론인 피터 브로크의 대형 폭탄 같은 책이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터진 전쟁에 대한 서양 언론 보도의 충격적인 기록을 폭로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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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패거리 언론인들과 특파원들, 편집자들이 쓰지 않을 것이었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바로 그 이야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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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로 모순되는 기록들, 업계 전반의 실수들 그리고 한 주권국가에 대한 의도적인 해체 시도와, 여러 정부와 국제연합과 정치인 선동 행위, 여론 조작에 동참했던 기자들의 시인과 고백과 은폐행위가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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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워싱턴 소재) 국제 평화를 위한 카네기 기금이 내는 <포린 폴리시>를 통해 저자가 1993년 '유고슬라비아 발: 당파적 언론'을 발표한 이래 아메리카와 유럽의 주류 언론들이 두려워한 책이다. 저 기고문은 공정성과 객관성과 공평함과 진실에 관한 언론 스스로의 환상을 깨뜨리고 언론기관과 언론 유관단체와 학계와 정부 지도자들의 유례없는 반응과 공격을 촉발했고 이로써 유럽에서 거리 시위와 심지어 '언론에 대한 재판'을 유발하는 등 서방 각국 수도에서 반향을 일으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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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걸친 내전을 유발한 '인종 청소'의 외침에서 따온 '언론 청소'라는 말은, 어떻게 서양 언론이 바로 그 핵심 전쟁 선전기구가 됐는지 보여준다. 침공, 점령, 후퇴 그리고 선별적 전범재판 기소는, 이른바 '강간 수용소' '강제 수용소' 그리고 의도적인 잔학행위 정책과 대량 학살과 화학전이 유럽 대륙에 다시 도래한 데 대한 언론의 광기에서 비롯됐다. 수십만명이 몇세기동안 자신의 조상들이 살던 고향에서 잔인하게 내쫓겼다. 끔찍한 경제 제재가 의도적으로 가해졌다. 이는 중세시대 이후 본 적 없는, 한 세대 전체를 휩쓰는 질병, 선천성 기형, 만성질환을 초래했고 이는 몇십년동안 지속될 것이다! 농지는 열화우라늄탄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들과 유독성 화학물질로 둘러쳐졌다. 광범한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과거 분쟁지역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까지 번졌다. 다뉴브강 유역 하류 600마일의 강 주변 생태계가 영원히 파괴되지 않았을지언정 적어도 붕괴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불발 미사일 탄두들과 복합 클러스터 폭탄 부품들을 포함한 셀 수 없는 지뢰와 폭발물과 실탄들이 방치되어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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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국가경제와 지역경제는 규모가 더 줄어들었다. 실업자 집단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게다가 더 나쁜 건, 이 지역 파벌들이 날로 일촉즉발의 상태로 변해가면서 대통령 암살과 선거 모사품의 실패가 초국가주의의 우려스런 등장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10여년전에 유고슬라비아를 망쳐놓은 극단주의적 응징이 유럽 전체를 다시 불붙이고 불안하게 만들려고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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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청소> 이 책은, 신뢰받던 국제 언론 기관들과 전문 언론인들을 소모시키고 지배한 언론 공모라는 병리현상을 추적한다. 면밀한 조사와 공개 기록 분석을 갖추고 행해진 많은 인터뷰들은 특파원들과 편집자들에게 세계를 기만한 자신들의 부주의와 참전 행위와 용인된 공모 행위를 대면하게 강제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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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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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의 30년이 넘는 신문 기자 경력을 장식하는 것은 1989년 퓰리처상 공공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을 포함한 17개의 전문 분야 상들이다. 정치 및 환경 분야 작가이자 탐사보도 기자로 높이 평가되는 브로크는 남부 탐사보도 언론상(듀크대학), 워싱턴언론센터의 토마스 L 스토크스(Thomas L. Stokes) 환경언론상 등을 받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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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6년 이후 발칸반도, 서중부 유럽, 옛 소련, 중동 등을 두루 다녔다. 발칸전쟁에서 서양 언론이 한 임무에 대한 전문가인 그의 논쟁적인 글들과 보도들은 전세계 많은 신문에 게재됐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관한 전국 대상 텔레비전 토론에 출연했고 수많은 아메리카 국내외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와 인터뷰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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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Philadelphia Inquirer)>에서 기자를 시작한 그는 20년동안 (텍사스) <엘파소 헤럴드포스트(The El Paso Herald-Post)>에서 일했고, 뉴멕시코와 콜로라도와 워싱턴의 신문에서 집필 및 보도 및 편집을 담당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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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e from the universe 미치오 가쿠(Michio Kaku, 加來 道雄) <프로스펙트(Prospect)> 2005년 2월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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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종말을 고할 운명이다. 종말을 고하기 전에 고도의 문명이 ‘웜홀’(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연결로)을 통해서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공상과학소설 같아 보이지만, 물리학과 생물학 법칙들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그 방법이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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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치오 가쿠는 뉴욕시티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이다. 이 글은 그의 책 <평행 우주론> 내용을 개작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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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계속 가속도가 붙으면서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 결국 모든 지능있는 생명체는 마지막 파멸 곧 거대한 동결 상태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고도의 문명은 궁극의 여행에 나서야 한다. 평행 우주로 도망치는 것이다. 노르웨이 신화에서, 신들의 운명(Ragnarok)은 지구가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의 악마같은 손귀에 잡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들이 사악한 뱀들, 흉악한 늑대들과 거대한 싸움에서 쓰러지면서 하늘들이 스스로 얼어붙는다. 해와 달이 삼켜지면서 영원한 어둠이 황량한 얼음 땅 위에 내려앉는다. 모든 신들의 아버지 오딘이 마침내 쓰러지고 시간 그 자체가 멈춘다. 이 고대 신화가 우리의 운명을 예언하는가? 1920년대 에드윈 허블의 작업 이후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과학자 대부분은 우주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팽창도 느려진다고 믿었다. 1998년 로렌스 버클리 국립 천문대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천문학자들이 우주 전체를 밝게 비출만한 규모의 먼 은하계의 초신성 폭발 20여회를 연구함으로써 팽창률을 계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산한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우주의 팽창 속도를 높이면서 은하계들을 서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 연구집단을 이끄는 인물 가운데 한명인 브라이언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아직도 내 머리를 젓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점검해봤는데... 정말로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우리가 몰살하게 될 것이라고 난 믿었다.” 물리학자들은 허둥지둥 칠판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와 비슷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어두운 에너지’가 중력에 반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에, 빈 공간 그 자체가 우주를 날려버릴 정도의 반발력을 지닌 어두운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우주가 팽창할수록, 어두운 에너지는 우주 팽창 속도를 더 빠르게 해 결국 지수적으로 빨라지게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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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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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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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이 아주 선정적이어서 재미로 번역해봤습니다. <a href="http://www.prospect-magazine.co.uk/article_details.php?id=6701">프로스펙트의 영어 전문 (유료)</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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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올터먼(Eric Alterm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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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네이션> 2001년 4월23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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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칼럼니스트 에릭 올터먼이 쓴 글입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언론들이 어떻게 사주에 대해 침묵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머독의 아들 제임스가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라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했다면 난리를 쳤을 <위클리 스탠더드>, <폭스 텔레비전>, <뉴욕포스트> 등 보수 언론들의 논객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답니다. 사주에게 사족을 못쓰기는 한국 언론이나 미국 언론이나 비슷합니다. 이 글은 안티조선일보 사이트 '우리모두'의 '미국 뒤집어보기' 게시판에 덱스터라는 분이 번역해 올리신 것입니다. 이 게시판 관리자 저스트맨님께서 게재 허락을 받아 제공해주셨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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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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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모두 사이트의 `미국 뒤집어보기' 토론방에 '덱스터'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 번역해 올린 겁니다. 토론방 운영자께서 번역자의 허락을 받아 보내주셨는데, 번역 일부를 제 구미에 맞게 고쳤습니다. 일종의 편집권 행사로 이해해주시길 ^-^. 아래는 덱스터님께서 이 글에 등장하는 언론에 대해 설명하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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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에서 미국의 여러 신문 잡지가 언급되는데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 설명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앨터먼(Alterman)이 언급하는 미국의 보수 언론으로 머독 일가 소유의 폭스 텔레비전 (Fox TV), 뉴욕포스트 (New York Post), 위클리 스탠더드 (Weekly Standard), 그리고 여타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rnal), 더 뉴리퍼블릭 (The New Republic),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 소유의 워싱턴타임스 (Washington Time) 등을 들 수 있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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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스탠더드는 주간조선 쯤으로 보시면 되고요. 지난번 미군 스파이 정찰기 충돌 사건이 있었을 때, 부시가 미안하다는 말을 중국측에 한 걸 가지고, "국가적 수모" ("national humiliation") 라고 혹평하여 미국의 보수적인 일반 언론들조차 혀를 내두르 게 만들 정도로 강경보수입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입장으로 식량을 원조하는 걸 두고 나라 살림을 거덜내니 어쩌고 하고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말을 아끼는 걸 두고 적에게 아부한다는 둥 비판을 일삼는 한국의 일부 언론을 꼭 닮았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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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뉴리퍼블릭의 경우 더 네이션과 비교할만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보수지 인데요, 더 네이션과 묘한 라이벌 관계여서 서로 자주 비판하지요. 원래 두 잡지 모두 진보적 성격으로 출발했는데 50-60년대 매카시 열풍과 월남전에 대한 입장에서 갈라지면서 더 뉴리퍼블릭은 완전히 보수우파로 나섰지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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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해먹기 좋은 멍청이들" 이란 용어를 기억하는가? 냉전 시기에 공산주의라는 꿈같은 이상과 소련 스탈린주의라는 끔찍한 현실을 구분해 바라보지 못했던, 뜻은 좋았지만 어리석었던 좌파들 말이다. 그들은 (스탈린) 독재에 눈을 감았고, 그럼으로써 조 맥카시나 로이 콘과 같은 빨갱이 마녀사냥꾼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한 데 묶어 스탈린식 빨갱이라고 색칠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여 민주적 좌파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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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티브이>의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이며, 루퍼트 머독의 거대 언론 제국의 후손이자 장래 상속자로 점쳐지는 스물여덟의 제임스 머독의 경우, 멍청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관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이 미국의 스파이 비행기를 잡아 승무원들을 억류하기에 약간 앞서서, 대학 중퇴자인 이 사람은 로스엔젤레스 밀큰 연구소(Milken Institute) 모임에서 연설하면서 베이징의 공산 압제자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댔다. 그것도 모택동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그는 세계 언론의 중국 인권 탄압 실상 보도를 비판했다. "오늘날 안정을 해치는 세력들은 중국 정부에 매우 대단히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는 홍콩의 용감한 민주주의 주창자들한테 "절대주의" 정부의 존재를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훈수를 두었다. 그러고는 "중국의 성공을 내심 바라지 않는" "위험하고" "종말론적인" 파룬궁 종교운동측에 대한 박해에 거의 동의하는 것에 다를 바 없는 발언을 했다. (대략 150명의 파룬궁 지지자들이 경찰 구금 상태에서 이미 숨졌고 현재 만명이 수감중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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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라는 용어가 (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이유는 이 젊은 머독이 자기 소유의 출판물들을 읽어보기만해도 그가 연모해 마지않는 독재자들의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머독 소유 <위클리 스탠더드>의 논설위원들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독재 체제"이자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며, "'안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면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불안정'을 만들어내고는 그것을 진압해 버리는 식으로 행동하게 마련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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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수적인 머독 집단의 다양한 언론계 인사들에게 전화로 물어보았을 때, 그 말 잘하던 사람들 모두 아들 제임스 머독의 언급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폭스 뉴스>쪽의 경우, 네트웍 분야 사장 로저 에일스(Roger Ailes), 토크쇼 진행자 토니 스노우(Tony Snow), 입심좋은 빌 오라일리(Bill O'Reilly) 모두의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평소에 약간만 거슬려도 꽹과리를 있는 힘껏 울려대는 데 열을 올리는 <뉴욕포스트> 사설면 편집인 봅 맥마너스(Bob McManus) 뿐만 아니라 이 신문 편집장인 켄 챈들(Ken Chandle)은 할말을 잊은듯 일절 함구했다. <위클리 스탠더드>쪽의 경우, 편집인이자 출판인인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 편집장 프레드 반스(Fred Barnes), 그리고 수석 논설위원 크리스토퍼 캘드윌(Christopher Caldwell) 모두 너무 바빠 필자의 전화에 대한 답신 전화를 하지 못한 게 분명한 듯하다. 오피니언란 편집인 데이비드 텔(David Tell)은 친절하게도 필자가 위에서 인용한 부분이 실린 기사를 가르켜 주었지만 그 잡지의 소유자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석 편집인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한껏 상냥했으나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컴퓨터에 문제가 좀 있어요. 처음에 저는 당신이 고용주의 아들에 대한 제 코멘트를 바란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곡해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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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 직원들에게 새로운 건 아니다. 루퍼트 머독은 이미 여러해동안 공산주의자의 동조자로 악명을 날려왔다. 중국에 대한 자신의 상당 규모의 투자를 지키려는 생각으로 그는 기꺼이 <영국방송협회>(BBC)를 자신의 위성방송망에서 축출하고, 중국 공산당 원로 정치계의 비위를 맞추려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책의 출판을 취소하고, 읽기에도 괴로운 선전물을 출판하려고 수백만달러를 지불한 게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텔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권 독립이 지켜진 거라 지적한 건 맞는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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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킨슬리(Michael Kinsley)가 설명했듯, <슬레이트>(Slate)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드는 잡지] 쪽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미국 사회의 힘있는 기관이라는 점에 걸맞게 비판적으로 검증하리라"고 기다리는 건 진짜 어리석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인들이 정직한 자유주의자들에게 달려들 때 써먹기 좋아하는 그런 야비한 수식어를 월급 주는 그들의 사주인 빨갱이 아첨꾼들에게 적용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희망 사항에 다름 아니다. (로버트 노박(Robert Novak) 이름으로 <슬레이트>가 스톤(I. F. Stone)에게 그것도 사망한 뒤에 퍼부은 무시무시한 비방을 사과하기에 지금이 적기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스톤은 그 잡지 편집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청난 개인적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련의 만행을 비판했고, 죽는 그 자리에서도 천안문 광장의 반정부 민주인사들을 지지한 사람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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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설리번(Andrew Sullivan) 은 자신의 배니티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위클리 스탠더드>가 머독 일가를 비판하지 않은 걸 두고 "사주를 비판할 능력이 있는냐야말로 모든 잡지의 편집권 독립을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고 주장하며 궁시렁거렸다. 그 기준이라면 <더 네이션>이야말로 설리번이 가장 좋아하는 잡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만일 사주인 마티 프레츠(Marty Peretz)의 우습기까지 한 강박적 유태인의 이방인 혐오와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뉴 리버블릭> 사설 하나라도 발견해 낸다면, 내가 그 양반에게 르 시르케 (Le Cirque)에서 저녁을 사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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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선명의 <워싱턴타임스> 기사에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먹이로 삼는 사교의 위험에 대한 글을 못찾는 건 당연한 거다. 심지어, 모회사인 파워풀 미디어(Powerful Media)가 최근 스티븐 빌(Steven Bill)과 맺은 거래와 똑같은 종류의 사건을 탈무드식으로 그때 그때 기사화하는 데 전문인 인사이드닷컴(Inside.com)도 그 거래를 한껏 탈무드식으로 다룬 데이비드 카(David Carr)의 기사를 내보내기 전에 경쟁사들이 그 뉴스를 흘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사주에 관한 한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침묵을 금으로 여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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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진의 자기 방어적 위선에 있다기보다는 보수 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그들이 그리는 전반적인 그림에 있다. 우파한테 있어서, 그들의 가장 관대한 후원자가 공공연히 공산 독재자인 동시에 자신들이 미국 국가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하는 정권을 지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편집인 툰커 배러대러전(Tunku Varadarajan)의 머독 일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실음으로써 이점에 있어서는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의 버클리 일가나 베넷 일가 문제는 어떤가? 머독이 사실상 전체 포드호레츠(Podhoretz) 식구들에게 월급 봉투를 뿌린다는 사실이 지구상 어떤 다른 권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해온 것인가? 빨갱이 사냥의 대가들이 지금에 이르러 공산주의를 눈감아 주는가? 필요할 때에 제대로 된 우파 반공주의자 하나 찾는 게 왜 이다지도 힘들단 말인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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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 에릭 앨터먼은 <더 네이션>, <워스 매거진>(Worth Magazine), 엠에스엔비시닷컴 (MSNBC.com)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뉴스쿨 유니버시티의 세계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senior fellow)으로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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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right; ">
번역: 덱스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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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렌달, 짐 노레카스(Steve Rendall and Jim Naureck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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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1995년 9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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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자본가들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투자가들이 길잡이로 생각하는 이 신문에서 사설면(의견면)은 절대 믿지말라는 것이 `페어'의 충고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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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b> 아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점을 실증하려고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자, 월스트리트저널은 91년 10월15일 "신뢰의 협곡"이라는 사설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증거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8개월 뒤인 92년 6월9일 전직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그는 이 신문 사설난에 종종 글을 쓰는 이다)가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 위증죄로 기소되자, 이 신문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로 내놨다. "와인버거씨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쳤다"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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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비시시아이(BCCI)은행의 퍼스트아메리칸은행 인수에 대한 조사를 거론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94년 10월28일 "미국의 관심은 한줌의 아랍 악당들이 어떻게 워싱턴시에서 가장 큰 은행을 지배하게 됐는가이다"라고 했다. 뻔뻔스러운 인종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 월스트리트저널이 어떤 상황에서건 "한줌의 유태인 악당"이라고 쓰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 이 은행 운영자는 아랍인들이 아니다. 설립자 아가 하산 아베디와 최고 경영인 스왈레 나크비는 파키스탄인이다. 이 은행에 빚을 갚지않은 최대 채무자인 고칼 가족은 인도인이다. 가장 큰 손해를 본 이는 아랍국인 아부다비의 지배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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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외국 관련 사기</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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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b> 이 신문의 사설면 부편집인 조지 멜론이 82년 2월19일 `맥닐/네러 뉴스아우어'에 나와, 엘살바도르의 엘모조테에서 생긴 민간인 학살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레이몬드 보너 기자의 보도를 월스트리트저널이 비난하는 이유를 밝혔다. 멜론은 보너가 "마르크스주의는 자연스럽다는 정치적 편향"이 있다는 식으로 넌지시 말했다. 증거를 대라고 하자, 멜론은 보너가 "게릴라운동에 대한 기사에서, 게릴라들과 함께 다니며 취재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스데이의 시드니 샨버그가 92년 10월27일 지적했듯, 보너는 4번의 연재 기사 각 회마다 자신이 반군들과 함께 다녔다는 것을 밝혔다. 첫회 제목은 "살바도르 반군과 함께 전투지대를 가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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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b> 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면에 글을 썼고 요즘도 가끔 기고하는 쥬드 워니스키는, 뉴욕타임스 88년 4월12일치에 실린 편지에서 엘살바도르의 군인이며 정치가인 로베르토 도뷔송이 살인부대와 연루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메카시적(McCarthyist)"이며 "최근 10년간 가장 성공적이라고 할만한 조작 선전"이라고 낙인찍었다. 도뷔송이 살인부대에 연루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점은 레이건 정부의 내부 메모에서도 확인됐다. 81년 3월18일 중앙정보국이 당시 부통령인 조지 부시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도뷔송이 땅 부자들의 부하였으며 지난해에 좌익 또는 좌익 동조자 혐의가 있는 수천명을 죽인 우익 살인부대를 관장하는 인물이다"고 밝혔다. 85년 7월31일의 미국 외교부(국무부) 전통에는, 도뷔송이 엘살바도르 가톨릭 지도자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암살할 기회를 누가 "잡을까"를 결정하는 모임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 94년 1월4일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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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b> 79년 11월8일치와 89년 6월3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앙골라 게릴라인 조나스 사빔비를 "포르투갈에 맞서 싸운 노련한 군인"이라고 언급했고 88년 12월21일치 사설은 그가 이끄는 "유니타(UNITA) 반군이 23년동안 앙골라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군대가 진짜 반제국주의 세력에 맞서려고 사빔비를 고용했다는 것은, 78년 포르투갈 군사정부가 무너진 뒤 발견된 편지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레이 등 공저, 더러운 일 2, 조슨과 마틴, 프론트라인 남아프리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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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b>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프랑스의 남태평양 핵실험을 막으려 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대해 폭력을 쓰라고 주문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95년 7월12일치 사설은 "이성적이지 않은 요구의 싹을 틔우려고 하는 광신자들을 상대할 때는, 종종 힘을 사용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핵실험을 중단하라는 그린피스의 "이성적이지 못한 요구"에 모든 남태평양 섬나라 국가 지도자는 물론이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의 "광신자" 총리들이 호응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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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범죄와 처벌</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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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b> 94년 2월11일치 범죄에 대한 사설에서 이 신문은 "강도들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연방수사국 통계에 따르면, 92년 강도사건은 67만2480건이 있었고 강도와 연루된 살인은 2254건 뿐이었다. 100에 99.7번은 강도가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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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8.</b> 사설면에 실리는 "유명하고 인용할만한"이라는 컬럼은 92년 11월13일치에서 교사들이 지적하는 공립학교 문제를 40년대 경우("차례가 아닌데 발언하는 것, 껌씹는 것, 떠드는 것 등등")와 90년대 경우("살인, 강간, 강도 등등")로 나눠 대비시켰다. 이 신문은 전혀 상관없는 두가지 목록을 비교했다가 골탕을 먹은 것이다. 한 목록은 74~75년 학교 범죄에 대해 교장들에게 질문한 (답변한 것이 아니라) 목록이고, 다른 것은 43년에 꼽힌 학교에서 가장 흔한 골칫거리다. (이 잘못된 비교는 94년 3월6일치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폭로됐다.) (92년 9월11일치 계간 의회연구자에 실린) 이 목록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실수를 하나 덧붙이기까지 했다. "근래"라는 시대를 80년에서 90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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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노상 강도들</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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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9.</b> 습지에 관한 연방규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빌 엘런의 사면을 촉구하는 92년 11월18일과 93년 1월15일 사설에서 이 신문은 엘런이 단지 "이동하는 철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 야생동물 보호소"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기소된 것은 "옛날에 땅 보전 담당 기관이 습지가 아니라고 판정"했으며 (나중에)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습지라고 말한" 곳에 "진흙 두차 분량을" 버렸다는 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엘런이 "자신이 흙을 버릴 때는 존재하지도 않던 [1989년]의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기소됐다고 우겼다. 빌 엘런의 "야생동물 보호소"는 사실은 사냥용 시설이었다. 그이는 나중에 생긴 규정을 어겨 기소된 것이 아니라 72년에 만들어진 청정수질법을 다섯번이나 어겼기 때문에 기소된 것이다. 엘런은 명백한 습지 86에이커를 흙으로 묻은 혐의를 받았다. 매립한 땅 가운데는 작은 만도 포함된다. 이는 1898년에 제정된 `강과 항구법'을 위반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93년 2월20일치) 엘런은 새 규정이 만들어진 89년보다 1년전인 88년에 이미 작업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세차례나 받았다. 언론인 빌 지포드가 93년 11월치 월간 워싱턴에 쓴 것을 보면 "고소는 논쟁의 여지없는 습지에 대한 것에만 관련됐지만, 엘런이 흙으로 채우거나 형질을 변경시킨 면적은 1000에이커에 달한다. 습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쟁점이 아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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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0.</b> "멸종 동식물법을 어긴 것은 마이클 로로서는 최선의 행동일 것이다"라고 기업경쟁력연구소의 이케 수그가 93년 11월10일 이 신문 사설란에 실린 컬럼에 썼다. 컬럼의 제목은 "집을 잃고 쥐를 살리다"이다. 수그는 로가 93년 10월 캘리포니아 숲에서 불이 나자 보호동물인 스테픈캉가루쥐의 서식처 주변에 있는 "방화대를 치워" "자신의 집이 불에 타는 것을 막았다"고 썼다. 수그는 캉가루쥐 연구지역으로 지정된 7만7000에이커의 개인 땅 안에 있는 다른 29채의 집 주인들도 마찬가지로 법을 어겼더라면 집을 건졌을 거라고 주장하면서, "로의 이웃들은 법을 지키느라 자신들의 집을 잃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캉가루쥐가 사는 개인 땅에서 나무를 잘라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람쥐의 사촌인) 이 동물은 땅밑에 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미국 회계감사원은 집 주인들이 땅을 팠다면 집이 불타지 않았을지 조사했다. 감사원은 불이 시속 80마일의 강풍을 타고 고속도로 두곳과 운하 한곳을 뛰어넘어 번져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체적으로 볼 때 지역 관리들과 화재 전문가들은 잡초를 없앴다고 해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결론냈다. (94년 7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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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1.</b> 월스트리트저널은 멸종 동식물법의 지나친 집행을 비난함으로써 또 한번 캉가루쥐를 공격했다. 남캘리포니아대학 법과 교수인 컬럼니스트 기디온 캐너는 ("법의 법칙", 95년 5월24일치) 남 캘리포니아 지역 농부인 투앙 밍린이 95년 2월 "다섯마리의 쥐 위로 쟁기질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고 썼다. 캐너는 "린이 영어를 못한다"며 "연방정부가 멸종 동식물법에 대해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이 법에 대해 알았는지는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법률 전문지 레코더 95년 6월14일치를 보면 린이 체포된 것이 쟁기질 때문이 아니라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 3종의 서식지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팁튼 캉가루쥐, 새끼 여우, 표범 도마뱀이다. 레코더는, 린이 처음 편지를 받은 것은 92년 12월이었고, 체포되기 한주전에는 몇번이나 사람이 직접 경고장을 배달했다고 밝혔다. 배달한 사람은 수렵 관리인인데, 그는 린과 그의 아들, 농장 주임에게 땅을 경작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사실을 잘못 안 것은 그만 두더라도, 월스트리트저널이 법학 교수를 동원해 -- "법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컬럼으로 -- 법에 대한 무지를 핑계로 내세운 것은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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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원자탄급 허풍</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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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2.</b> 94년 8월2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떨어뜨린 원자탄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제안하자, 제안 문구를 거론하며 공격하고 나섰다. "에놀라 전시회의 작가가 가미가제 비행단을 표현하면서 드러낸 낭만주의는 특히 기이하다. 이 글은 슬픈 가락으로 `젊음, 인생과 함께 넘쳐나는 그들의 몸'이라고 표현했다."고 썼다. 이 문구는 전시회 기획자가 쓴 것이 아니다. 제안 문구에 분명하게 나와있듯이 가미가제 비행단의 일원으로 아직 살아있는 유기테루 수기야마가 쓴 것이다. 스미소니안 제안 문구는 "전시회 관람자들에게 가미가제의 자살 광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포함시킨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미국인은 이 자살 광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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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3.</b>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날 사설은 이 인용문을 스미소니언 전시회 기획자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심리적 경향"을 나타낸 증거로 제시했다. 인용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부분 미국인에게 이 전쟁은 ... 복수전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려는 전쟁이었다." 다음은 일본에 우호적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스미소니언의 인용문 전문이다. 일본의 팽창주의가 독특한 점은 적나라한 공격과 극도의 잔인함이다. 37년 난징에서 저지른 수만명의 중국인 학살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군대의 잔학상 가운데는 민간인과 강제노동 동원자, 전쟁포로를 폭력적으로 대하고 사람을 생물학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있다. 41년 12월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 미군 기지를 공격했고 태평양의 다른 연합국 영토에 대한 충격적인 공격도 개시했다. 그래서 극도의 비참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독일, 이탈리아에 대항해 수행한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이 전쟁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려는 전쟁이었다. 전쟁이 45년 막바지에 이르자, 두쪽 모두에게 이 싸움은 끝장을 볼 때까지 가야하는 것이 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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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4.</b> 원자폭탄 사용을 옹호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의 94년 8월29일 사설은 미국에 대한 침공이 이뤄졌다면 "미국쪽 희생자가 100만명 이상 생겼을 거라는 게 모든 추정치의 일치된 견해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추정치"? 연합참모총장에 제출한 45년 6월의 공식 보고서는 (부상자를 포함한) 전체 미국인 희생자를 13만2500에서 22만명으로 추정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45년 6월 희생자가 11만명이라는 추정치도 너무 높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가들도 "100만명"이라는 수치에 근접한 문서를 제시할 수 없었다. (원자 과학자 게시판 86년 6-7월치, 외교사 93년 겨울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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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보도 비법</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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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5.</b> 93년 2월5일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가정내 폭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공정보도'(FAIR: 이글이 실린 엑스트라를 내는 언론보도 감시기구 : 번역자)의 노력을 공격하면서, 수퍼볼 결승전이 열리는 일요일에 가정내 폭력이 늘어난다는 `공정보도'의 보고서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일군의 기자들이 마치 신성한 문서나 되는 양 취급했다"고 썼다. 사설은 유독 기자 한명을 칭찬했다. 폭력적인 경기와 가정내 폭력의 연관성을 부인한 기사를 93년 1월31일에 쓴 워싱턴포스트의 켄 링글이 그 기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그이는 기자들이 분명히 선호하지 않는 보도 비법을 썼다. 정보제공자에게 전화해 사실인지 확인한 것이다"고 썼다. 사실 그는 1차 정보제공자인 `공정보도'의 중앙사무실에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만약 전화라도 했다면, 우리의 정보가 가정폭력 피난처에서 일하는 여성의 1차 보고와 "보도 비법'을 써서 매맞은 여인들을 인터뷰한 기자들이 쓴 기사에서 얻은 것이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공정보도'에 속은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일군의 기자' 가운데 한명이라고 지목된 뉴욕타임스의 로버트 립사이트는 실제로 이보다 몇년전인 87년에도 수퍼볼과 가정내 폭력의 관계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NBC 밤뉴스, 87년 1월18일) 기자는 의심을 품고 정보원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요지의 사설을 쓰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의 논설위원은 `공정보도'에 전화해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다. 만약 전화했다면, 홍보대행 업체 도비스키 어소시에이츠가 `공정보도'의 홍보를 맡고 있다는 또 다른 오보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회사는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거론하기 전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던 업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점을 비롯해 사설의 잘못을 지적하는 편지를 실어달라는 `공정보도'의 요청을 거부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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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경제적 넌센스</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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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6.</b> 이 신문의 논설위원 로버트 버틀리의 책, `기름진 7년'이라는 제목은 레이건 집권 시기가 카터 집권 시기와 비교해 월등하게 번영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버틀리는 80년대 경기침체기의 바닥인 82년과 회복기의 최고지점이었던 89년을 비교해서 "레이건 시대"의 성장률이 3.8%라고 계산했고 "카터 시대"는 성장의 최고지점이었던 73년과 바닥인 82년을 비교해 1.6%라고 계산했다. 이런 정직하지 못한 비교는 카터 집권시기에 발생하지도 않은 두번의 침체기를 카터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반면에 레이건에게는 침체기를 떠넘기지 않았다. 카터 집권 시기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75년과 80년을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은 3.5%가 된다. 정직한 경제학자라면 비교할 때는 비슷한 주기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경기가 가장 좋았던 73년과 79년을 비교하면 성장률은 2.8%가 되고, 역시 가장 좋았던 79년과 89년을 비교하면 2.5%가 나온다. "기름진 7년"은 고작 이정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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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7.</b> 월스트리트저널은 81년 6월29일 금융산업 규제완화를 칭찬하면서 "이 해결책의 멋은 시장에 의존하고 연방정부의 주머니에 의존하지 않아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고 썼다. 연방정부의 주머니는 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해결책의 비용을 감당하느라고 1500억달러나 썼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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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8.</b> 논설위원 로버트 버틀리는 미국에 "더 이상 가난뱅이는 없고 있다면 은둔자같은 이들이 조금 있다"고 주장했다.(워싱턴포스트 82년 7월11일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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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림보 커넥션</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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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9.</b> 월스트리트 저널에 사설을 쓰는 존 펀드는 러시 림보(Rush Limbaugh, 극우 성향의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의 첫번째 책 `당연히 그래야 하는 방식'을 대필했다. `공정보도'의 책 `전혀 그렇지 않은 방식'에 잘 나타나듯이, 이 책은 거칠다 싶을 정도로 엉터리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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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0.</b> 공화당 전략가 윌리엄 크리스톨은 러시 림보를 "월스트리트저널 사설면의 거의 완벽한 방송판'이라고 언급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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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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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앰스터버튼 (Matthew Amster-Burto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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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1997년 11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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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언론들 50년동안의 첩보와 비밀활동을 축하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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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 50돌 관련 언론보도를 언론비평 단체 페어가 분석한 글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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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toggle-text" onclick="toggleMore(this)" style="cursor: pointer; display: none;">글 읽기</span></p>
<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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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앙정보국이 지난 9월 창설 50주년을 맞았을 때, 언론들의 보도는 냉전시대 이후 이 정보기관의 앞날이 불확실하다는 데 맞춰졌다. 언론들도 똑같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말을 더듬는 전직 대통령이나 되는 양, 말썽많은 정보국을 높이 평가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달리 설명할 길이 있겠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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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동안 중앙정보국은 무시무시한 기록을 쌓아왔다. 피의 학살과 쿠데타 선동(53년 이란, 54년 과테말라, 73년 칠레 등), 선거조작과 결과 뒤집기(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아메리카 등), 외국 지도자 암살기도(시하누크, 루뭄바, 카스트로 등). 그러나 주요 언론의 중앙정보국 발자취 보도에는 이런 자세한 기록(윌리엄 블럼과 킬링 호프가 쓴 `2차대전 이후 미군과 중앙정보국의 개입'을 보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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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것이 <시엔엔>(CNN) 랄프 베글레이터 기자의 97년 9월18일 보도다. 이 기자는 "중앙정보국의 과거가 영광스런 것만은 아니다"고 인정하면서도 "중앙정보국이 개발해낸 고위도 첩보사진과 기술적 발전의 성공"을 지적했다. 그런 뒤 알드리치 에임스 같은 간첩들이 중앙정보국의 성격을 훼손했다고 안타까워하는 전직 요원을 화면에 등장시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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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공식적인 태도의 <로이터통신>은 9월17일 보도에서 중앙정보국을 싫어하는 이가 있다는 점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로렌스 맥킬런 기자는 클린턴 대통령과 중앙정보국장 조지 티넷의 말만을 인용했다. 이밖의 인용은 익명의 백악관 보좌관이 기자들에게 요원들과 전직 요원들이 모인 모습을 찍지 말라고 경고한 것 밖에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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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8일치 <유에스에이투데이>의 긴 기사에도 중앙정보국을 비판하는 이의 말은 전혀 없고, 중앙정보국 옹호자들의 거짓 정보 인용만 가득하다. 정보국이 지휘한 73년의 칠레 쿠데타에 대한 기술같은 것들이 그렇다. "76살인 메릴랜드 동부해안 출신 레이 워렌도 흥분했다. 그는 좌파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뽑힌 칠레로 떠났다. 그는 중앙정보국이 `민주적인 반대세력이 죽지않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아옌데는 73년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 군사 쿠데타는 16년동안의 우익 독재로 이어졌다." 칠레의 역사 (또는 중앙정보국의 정치활동)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정보국이 선거로 구성된 정부를 보호하고 독재에 대항했다고 결론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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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중앙정보국 연혁"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신문은 61년에 중앙정보국이 우주에서 인조물을 처음 회수했다는 것을 넣을 자리는 있어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피닉스작전에 대해 쓸 자리는 없었나보다. 피닉스작전은 베트남전쟁중에 중앙정보국이 펼친 암살 계획인데, 이 계획으로 2만명이 희생됐다는 주장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뒤 중앙정보국이 소련에 간첩으로 보내기 위해 나치 전범들을 모았다는 점도 들어갈 자리를 못찾기는 마찬가지다.(마틴 리 등이 공동편집한 `클리블랜드의 정직한 인물'을 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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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정보국의 친구</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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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특히 편파적이다. 9월17일에 (로이터통신과 유사하게) 책을 인용한 클린턴의 연설을 고스란히 인용해 기사로 쓴 것뿐 아니라, 이보다 3일 전인 14일에는 정보국의 오랜 친구인 월터 핀커스(엑스트라 97년 1,2월호를 보라) 기자가 손상된 정보국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의도로 쓴 긴 기사를 실었다.</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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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커스는 "정보국장 조지 티넷은 올해초 의회에서, 테러단체를 선별하는 일을 하는 요원들이 지난 7개월동안 해외 미국 대사관에 대한 두번의 공격을 사전에 막았다고 밝혔다"고 썼다. 물론 이런 말도 덧붙였다. "티넷은 어디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등 작전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밝히기를 거부했다." 핀커스는 <산호세 머큐리뉴스>가 정보국의 지원을 받는 니카라과 콘트라가 마약을 미국에 퍼뜨렸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에 대한 이 신문의 편파적인 공격에 앞장선 기자다. (이에 대해서는 <a href="http://blog.jinbo.net/marishin/?pid=43">교묘한 거짓말</a>을 보라 : 번역자) 핀커스는 50주년 기사에서 콘트라-마약 스캔들을 암시한 유일한 기자다. 그는 자신이 <머큐리뉴스>의 게리 웹(폭로기사를 쓴 기자 : 번역자)을 공격했을 때보다 이 폭로를 좀더 신뢰하는 인상을 줬다. 물론 그가 강조한 것은 치명적인 정책에 대한 정보국의 책임의식이 아니라, 중앙정보국의 명성이었지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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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덧붙이자면, 과거 정보국의 중앙아메리카 활동에 대한 정보국과 법무부의 새로운 조사가 곧 나올 전망이다. 이 조사는 정보국이 니카라과 반군을 돕는 마약업자들과 협력한 것과 반인권적인 폭력을 휘두른 혼두라스의 특수부대를 정보국이 훈련시킨 것에 대한 비판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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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교본같은 도구를 이용해 특수부대를 훈련시켰는데(비밀 작전 97년 여름), 그들이 나중에 반인권적인 행동을 저질렀다면 놀랄 일인가. 물론 아니다. 다른 중앙정보국 사정은 잘아는 핀커스도 정보부 작전의 이런 측면은 몰랐나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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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커스는 정보국이 96년 사담 후세인을 쿠데타로 몰아내려 했던 것도 건드렸다. 이 작전은 언론인 패트릭 코크번이 97년 4월15일 새크라멘토비에 "정보국 50년 사상 최악의 실패"라고 썼듯이 재앙으로 끝나고 말았다. 핀커스는 뭐라고 했을까? "정보국은 이라크 탈출자들과 전직 정보국 요원을 동원해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에 대항하는 작전을 편 것 때문에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참여했던 이들도 결과에 대해 실망했다." 작전실패로 처형당한 많은 이라크안의 정보국요원들이 실망만 했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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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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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큰 실수와 서투른 짓</b></p>
<p>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적어도 토마스 파워스가 9월14일치에 쓴 정보국의 자화자찬을 기사가 아니라 독자의견으로 처리하는 양식은 보여줬다. 핀커스처럼 파워스는 정보국의 잘못을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의식적인 정책 측면에서가 아니라 흔히 있는 실수로 묘사한다. "큰 실수와 서투른 짓들은 고통스럽지만 모두 큰 게임의 한 부분이다. 정보국이 50년동안 유지한 일처리 방식에 대한 평점을 준다면 합격점 이상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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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국이 악당 집단이 아니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라는 파워스의 지적만큼은 정당하다. 그는 케네디가 정보국의 카스트로 암살시도를 몰랐다거나 레이건과 부시가 이란-콘트라사건과 무관하다고 보는 생각을 "아이들의 역사"라고 비꼬았다. 계약을 맺고 여러 매체에 똑같은 컬럼을 쓰는 정보국 비판가 알렉산더 코크번도 9월18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쓴 글에서 50돌을 계기로 이런 점을 강조했다. "50돌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보국이 악당집단이라는 생각을 영원히 없애버리는 것이리라." 언론은 이 교훈을 불편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종종 잊는다. 대통령 유세기간에 이란-콘트라사건과 부시가 정보국장으로 있었다는 두가지 쟁점을 부각시키지 못했을 때가 바로 이런 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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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스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스파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결론맺었다. "언제나 큰 관건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가, 정보국이 이를 도울 수 있는가다. 법을 만드는 이들을 위한 교훈: 마음대로 정보국을 주물러라, 그러나 없애지는 말아라." 몇십년동안의 폭력적인 비밀공작을 "평화유지"라고 하는 아이러니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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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뒤 정보국이 설립됐을 때, 무비판적인 보도 분위기를 조성하는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예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50년동안 잔학상이 모두 기록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무비판적인 보도 분위기는 독자는 물론 정보국의 불건전한 기록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일조를 한 추적보도 전문기자들에 대한 모욕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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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지금까지 감춰졌던 정보국의 역사 한가지를 탐구하는 데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전직 요원과 그들의 아내들의 요리법이다. 이 기념적인 요리책의 출판은 정보국 50돌과 맞아떨어지면서 수많은 언론에 오르내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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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앰스터버든은 전직 페어의 인턴사원이며, 지금은 시애틀에 사는 자유기고가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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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정보국: 거미줄에 걸리다</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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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언론의 정보국 50돌 관련 기사 가운데 공정한 사례의 하나는 ABC News website(www.abcnews.com/sections/us/cia916/index.html, 이젠 링크가 연결되지 않음)에서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경고로 시작한다. "대실패로 끝난 피그스만 사건, 정치지도자들을 제거하려는 어설픈 시도들,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는 데 비참하리만치 실패한 점을 이 나라를 이끄는 스파이집단이 잊고 싶어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라고 <에이비시방송>(ABC)의 데이비드 피니는 썼다. "60년대에 정보국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약 엘에스디(LSD)를 실험했고 베트남전에 항의하는 이들을 감시했다. 80년대는 고문과 학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사람들과 관련됐고 이란-콘트라 시대에는 무기를 위해 마약을 거래하는 일에 연루됐다." 정보국 50돌에 대한 다른 기사들과 달리, 티니의 기사는 정보국 비판자인 `인권감시'의 대표의 말도 인용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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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방송의 시청자 가운데 이 독립적인 보도를 접한 이들은 거의 없다. 피니의 기사는 텔레비전에 방송되지 않고 인터넷에만 올려졌기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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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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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솔로몬(By Norman Solomo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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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1997년 1/2월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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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 (Snow Job) -- 제도 언론은 미국정보국을 위해 피해 관리를 떠맡는다. (The Establishment's Papers Do Damage Control for the CI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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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위있는 신문들이라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어떻게 중앙정보국(CIA)에 협조하는지를 언론비평 단체 '페어(FAIR)'가 폭로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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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주의깊게 진행되지 않으면 정확하게 수행할 수 없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잘못됐다는 느낌과 죄책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거짓말을 믿으며 교묘하게 거짓말하기, 불편한 사실은 잊기, 그리고 다시 필요할 때는 필요한 기간만큼만 망각에서 불러내기, 객관적인 존재를 부인하기, 사람들이 부인하는 것을 의식하기, 이 모든 것은 필요불가결한 것들이다. --조지오웰, "1984"에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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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보국이 지원하는 니카라과 콘트라반군이 로스엔젤레스의 가난한 흑인거주 지역에 유입된 코카인과 연계됐다고 폭로한 연재기사를 <산호세 머큐리뉴스>가 지난해(96년) 8월 보도한 뒤 몇주동안, 주요 신문들은 이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9월초,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3대 신문이 갑자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이들이 유발한 소란은 아직도 채 가시지 않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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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9월21일 <뉴욕타임스>의 첫 보도는 전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콘트라반군의 코카인이 미국에 판매됐다는 보도에 대한 조사명령이 내려졌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정보국장 존 더치와 익명의 "전직 정보국 고위인사들"의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치는 "나는 이 혐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들은 정보국의 진취적인 정신의 본질 및 순결성을 건드렸다"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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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마약밀매업자 오스카 다닐로 블란돈, 노르빈 메네세스와 "정보국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치뿐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콘트라와 관련된 일을 했던 전직 정보국 고위 관계자들이 이번주에 두 사람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고 이 주장을 재확인하는 보도를 했다. 이 기사 어디에도 정보국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듯한 기미가 없다. 정보국의 내부 조사가 이 사건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가 된다는 고정관념은 그 뒤에도 자주 반복해서 나타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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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웹 기자가 쓴 머큐리뉴스 기사에 대한 논란은 계속 커졌다. 정보국의 부인은 격분한 대중,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항의시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까지 이어졌고, 정당의 흑인 간부들은 연방 차원의 조사를 요구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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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되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매서운 반격이 시작됐다.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맹공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은 것이다. 언론이 흔히 쓰는 판에 박은 듯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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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11월11일 "지난달 머큐리가 동료들에게 된통당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차례대로 이 기사의 헛점을 집요하고도 잔인하게 파고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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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내부 심의, 비판가인 하워드 커츠는 게리 웹에 대해 수없이 많은 비평을 해댔다. 이 비평은 갈수록 경멸적이 됐는데, 10월28일에 실린 "음모의 웹(webb, 거미줄이란 뜻의 web과 같은 발음 : 번역자) "이라는 글은 이런 말로 끝이 난다. "올리버 스톤씨, 당신의 음성녹음을 확인해보세요."(스톤은 캐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등 음모론을 즐기는 영화감독이다. : 번역자) 포스트의 자유주의 기고가 매리 맥그로리는 10월27일의 글에서 "산호세의 기사는 포스트를 포함해 주요 매체의 불신을 받고 있다"고 언론의 상황을 전하는 식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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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기사에 유행하는 구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기사의 많은 결론이 의심받고 있다" (포스트 11월6일치) "언론비평가와 다른 신문들이 머큐리뉴스의 보도에 의문을 품고 있다"(뉴욕타임스의 AP통신 인용보도, 11월7일치) 뉴욕타임스 11월16일 "정보국장이 코카인 음모론을 부인하다"는 제목의 기사 다음 구절을 보면, 유명한 언론들 또한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보국 관리들은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언론들도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문은 계속 번지고 있으며 그칠줄 모른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도드는 이렇게 썼다. "더치 국장과 몇몇 유력신문의 조사자들은, 정보국이 미국내 도시에 코카인을 퍼뜨리는 데 구실을 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머큐리뉴스의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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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심스러운 취재원들</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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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요 신문"들이 반박한 것은 엄밀하게 무엇인가? 제도 언론들은 머큐리뉴스의 폭로에 대한 중앙정보국의 당연한 부인에만 의존하고 있다. 언론인 마크 쿠퍼가 주간지 뉴타임스로스앤젤레스에서 지적했듯 "중앙정보국이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의심이 가는 취재원(중앙정보국 : 번역자)의 주장을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받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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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에 대한 10월21일치 뉴욕타임스의 전면 기사에서, 팀 골든 기자는 익명의 취재원들과 한 인터뷰 내용을 독점게재했다. 익명의 취재원이란 "정보국 보고서를 접할 수 있는 정부 관리"라는 식이다. "전, 현직 콘트라반군과 중앙정보국 관리, 마약단속반원 수십명, 마약 거래와 관련된 행정관료와 전문가"식의 익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블란돈을 전혀 모른다는 중앙정보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역력하다. 이런 식이다. "블란돈이 수천파운드의 마약을 남캘리포니아의 최대 마약업자에게 제공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블란돈이 머큐리뉴스의 기사에 핵심인물로 묘사되기 전까지는 블란돈에 대한 기록이 중앙정보국에는 전혀 없었다고 정보국 관리는 밝혔다." 똑같은 주장이 등장하는 9월21일치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도 정보국의 부인이 자기변명적일 뿐이라는 기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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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3회에 걸친 연재기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중앙정보국 관리들은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콘트라반군 지도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이 신문은 10월21일 전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관리 가운데는 빈센트 카니스트라로도 있는데, 기사에서는 "전직 정보국 관리"라고만 나온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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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기사에서 이 인물에 대해 독자들이 눈치챌 만한 단서를 주지 않았지만, 카니스트라로는 80년대 초반 미국 중앙정보국의 콘트라 관련 업무를 책임진 인물이다. 그는 84년 국가안보회의로 자리를 옮긴 뒤에, 아프카니스탄 무자헤딘 게릴라를 비밀리에 돕는 일을 감독했다. 마약 거래에 손을 대고 있는 이 게릴라들에 대한 지원 때문에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전세계 최대 헤로인 공급국으로 떠올랐다.(더 네이션 88년 11월14일치, 더 네이션은 미국의 진보적인 월간지임 : 번역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이런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기때문에, 독자들은 중앙정보국이 결백하다는 카니스트라로의 주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니스트라로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마약거래를 눈감아주려는 성향이라고는 없다. 이것은 너무 민감한 사안이다.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그늘진 구석도 아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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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카니스트라로의 신분을 위장해서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공격하는 데 써먹은 것은, 점잖지 못한 언론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우익신문인 워싱턴포스트는 9월12일 기사에서 "폭로 기사는 출처가 전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카니스트라로의 말을 인용했다. 전직 워싱턴타임스(통일교 소유의 극우신문 : 번역자) 기자 마이클 헤지는 스크립스하워드 뉴스서비스의 기사에서 카니스트라로를 "반테러 행위와 남미 전문의 전직 정보국 요원"이라고 기술했다. 그는 또 "나는 중앙정보국이 블란돈과 메네세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머큐리뉴스가 제기한 혐의는 완전히 엉터리다."는 그의 말도 인용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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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뉴스에 대한 언론의 반박 기사에는 이 신문이 제시한 명시적인 증거에 대한 반박은 거의 없다. 오직 있다면 중앙정보국의 부인뿐이다. 머큐리뉴스가 제시한 증거에는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연방정부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률서류와 블란돈 자신의 증언도 포함되어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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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누구의 군대인가?</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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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뉴스의 기사가 틀렸다고 본 유력한 언론비평가들은 종종 웹 기자가 쓰지도 않은 내용을 갖고 증거가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는 10월4일치 기사에서, 웹 기자가 스스로 인정한 점 곧 마약거래를 알면서도 묵인한 정보국 관리가 누군지는 모른다는 점에 대한 규명에만 몰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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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평가들은 엉뚱하게 콘트라반군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군대라고 웹 기자가 언급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한 예로 워싱턴포스트의 커츠는 10월2일치 기사에서 "웹이 `정보국의 군대'라는 말을 계속 쓰는 것은 중앙정보국이 이 일에 관련된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것임이 명백하다"고 불평을 늘어놨다. 사실 니카라과민주군(FDN)을 미국 중앙정보국의 군대라고 한 것은 언론 특유의 표현이다. 이 표현은 본질적으로 사실에 부합하는 관계를 강조해 보여준다. 이 군대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선동해 구성했다. 우두머리를 뽑고 월급을 준 것도 미국 중앙정보국이다. 게다가 정보국 관리들은 그날그날 전장의 전략까지 관장했다. 전직 콘트라반군인 에드가 캐모로는 "우두머리들은 단지 미국 중앙정보국의 명령에 따르는 하수인이다"고 밝혔다.(니카라과: 개입의 대가, 피터 코른블러 지음. 엑스트라의 87년 10월11일치 캐모로 인터뷰기사 참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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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신문사 편집국 분위기는 계속 강해졌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의 마크 피셔는 11월7일치 기사에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 미국 중앙정보국과 콘트라의 연관 문제에 대해서까지 이의를 제기했다. "중앙정보국과 콘트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몇주동안 거론했던 대담프로그램 진행자 존 매디슨이 기가 죽어버렸다"는 식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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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뉴스를 공격하는 일련의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는 10월21일 기사에서는 중앙정보국의 군대와 중앙정보국을 분리하는 의미론적 시도까지 벌였다. 이 신문은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콘트라군 사령관 엔리케 베르무데즈를 만나기 위해 혼두라스에 간 적이 있다"는 점은 밝혔지만, 곧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콘트라 지도자들처럼 베르무데즈도 미국 중앙정보국의 돈을 받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은 아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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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형적인 말장난이다. 이 점은 컬럼니스트 머레이 켐트폰이 뉴스데이 10월23일치 글에서도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들을 구별하려는 것은 정보국이 혼동을 유발하기 위해 시도하는 교묘한 수법 가운데 하나다. 정보국은 외국의 고위직 고용원을 `요원'이라고 하지않고 `정보제공자'라고 표현한다." 이런 혼동은 많은 기자들이 머큐리뉴스의 기사가 틀렸고 중앙정보국은 부당하게 혐의를 뒤집어썼다고 판단하게 만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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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심스러운 폭로</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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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언론의 공격 가운데 가장 타격을 줄만한 것은 웹 기자가 마약 거래로 번 돈을 과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웹은 이 액수를 수백만달러라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행정관료들에 따르면 블란돈은 3만~6만달러 어치의 코카인을 두번에 걸쳐 판 뒤 판매대금을 메네세스에게 줘 콘트라군에 보내도록 했다"고 10월4일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0월21일 "메네세스가 콘트라군의 재정지원자이기는 했지만 그가 기부한 돈은 5만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그를 알던 두 사람의 말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추산치는 순식간에 언론적인 의미에서 신성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진보적인 잡지 : 번역자) 더 네이션의 데이비드 콘이 사설에서 블랜돈과 메네세스가 제공한 돈은 "5만달러 정도 일것"이라고 씀으로써 이 잡지조차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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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추정치를 높게 잡은 머큐리뉴스의 주장이 이들의 주장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크다. 머큐리뉴스는 대배심과 법원에서 수백만달러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증언까지 해야했지만, 너무나 대조적으로 워싱턴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정부 관료"(워싱턴포스트 10월4일치) 또는 "블란돈과 함께 마약을 판 동업자와 콘트라 지지자"(로스앤젤레스타임스 10월20일치) 또는 "로스앤젤레스의 마약거래 관계자"(로스앤젤레스타임스 10월21일치) 식의 익명의 취재원이라는 취약한 근거만으로 5만달러라고 주장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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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는 마약판매대금이 콘트라에 흘러들어간 것은 80년대 초반의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모두 근거가 약하다. 머큐리뉴스가 스스로 실시한 보도 내용 검증 작업을 담당한 피트 케리는 훨씬 많은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블란돈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했던 로스앤젤레스 보안관의 진술서에는 콘트라와 연계됐던 것이 적어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고 나온다. 86년의 진술서에서 3명의 비밀 정보원은 블란돈이 아직도 돈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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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언론이 정설이라고 여기는 것에는, 블란돈의 마약을 받아 판매한 "프리웨이" 리키 로스가 마약이 크게 확산되는 데 별로 기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포함된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4일치와 12일치 기사에서 "로스가 활동한 것과 마약이 급속히 퍼진 것은 우연의 일치"라는 구절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료를 보면 "마약이 급속도로 번진 것은 수많은 나라출신의 여러명 때문이다"라고도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10월21일 "마약거래 전문가 몇명은 로스가 마약계의 거물이지만, 이런 거물은 아주 많다"고 결론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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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의 마약이 콘트라와 연계된 밀매업자들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대중에 공개되기 2년전, 로스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94년 12월20일치 2400자짜리 장문의 기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기사는 로스를 마약보급의 핵심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태풍의 눈이 있다면, 수십년간 이어진 마약세력의 중심이 있다면, 로스앤젤레스에 대량생산된 마약이 넘쳐나게 된 데 가장 책임이 큰 무법자 자본가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프리웨이 릭이다." 그럼 이 기사의 제목은 과연 뭘까? "구속된 마약의 왕; 수감 5년만에 출옥하다. 이 마약판매상은 로스앤젤레스 마약 확산의 핵심인물이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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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마약에 관한 한 "로스는 누구보다도 이를 민주화했다. 양을 늘리고 값을 폭락시키고,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만큼 병을 확산시켰다." 그는 "중남부의 첫번째 마약 백만장자가 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다른 거래상들이 시장의 밑바닥에서 애쓰고 있는 사이, 그의 전국적인 거대조직은 하루에 50만달러어치 이상씩 팔아치우면서 누구든지 단돈 몇푼이면 마약을 살 수 있는 충격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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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썼던 제시 캐츠는 정통론으로 굳은 주장(로스가 마약계의 최고실력자가 아니라는 주장 : 번역자)에 굴복해, 여론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듯한 내용의 기사를 96년 10월20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1면에 실었다. 이제 로스는 다른 마약거래자들과 비교해 난장이가 되어버렸다. 많은 "대체가능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로스는 마약이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게 된 것과 관련이 없다"고 캐츠는 썼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이 기자는 2년전의 자기 기사가 왜 그렇게 엉터리였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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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무시된 증거</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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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뉴스의 연재기사가 종종 과장됐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엘리트 언론의 머큐리뉴스 기사에 대한 공격의 목적은 분명히 자신들의 콘트라-코카인 기사에 대한 엉터리 보도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 엉터리보도는 10년 이상 계속된 증거감추기와 관계가 있다.(엑스트라 87년6월호, 88년 3-4월호) 워싱턴포스트가 전형적이다. "브라이언 버거와 내가 85년 12월20일 AP통신을 통해 콘트라의 코카인 밀수에 대한 첫번째 기사를 썼는데, 워싱턴포스트는 1주일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이를 부인하는 주장을 붙여 이 기사를 전국뉴스면 맨끝에 한줄걸치듯 실었다"고 로버트 페리는 회상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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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미국의회 하원 마약위원회(위원장 찰스 랜절 공화당 의원)는 콘트라의 마약 관련 혐의를 조사한 뒤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7월22일 "의회 위원회, 콘트라가 마약거래와 관련됐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다"는 제목을 달아 사태를 왜곡했다. 랜절이 이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이를 신문에 싣지도 않았다.(엑스트라 87년 11월12일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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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 타임지의 로렌 주커만이 한명의 사건조사 전문기자와 콘트라 마약 사건을 맡았다. 두 사람은 콘트라가 마약과 연관됐다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다. 하지만 주커만이 쓴 기사를 윗사람들이 제동을 걸었다.(엑스트라 91년 11-12월치) 편집간부가 주커만에게 "타임지는 회사차원에서 콘트라를 지원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기사가 산디니스타(콘트라와 싸우는 니카라과 정부군으로 좌익임 : 번역자)가 마약에 연관됐다는 것이었다면 잡지에 싣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2년 뒤, 존 케리가 위원장인 상원 소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콘트라의 마약거래에 연루된 것을 강하게 비난하는 보고서를 냈다. 페리는 "이 중요한 보고서가 나온 것은 89년 4월이었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실을 700자 짜리 빈약한 기사로 20면에 처박아 넣어 사실을 축소했다"고 말했다.(더 컨소시엄 96년10월28일치; www.delve.com/consort.html) "게다가 마이클 이시코프가 쓴 이 기사는 조사결과 드러난 콘트라반군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대신 위원장 케리를 비난하는 공화당 위원들의 말을 주로 인용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제도 언론들은 이를 케리를 조롱하는 쪽이 안전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뉴스위크는 91년 8월5일치에서 케리를 "소란스러운 음모론 광"이라고 표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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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7월 백악관의 탐정 올리버 노스, 국가안보 고문 존 포인덱스터, 주코스타리카 대사 루이스 탐스, 미국 중앙정보국 간부 조세프 페르난데스와 다른 콘트라게이트 관련 인물들이 코스타리카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것은 코스타리카 의회 마약거래조사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오스카 아리아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처였다. 이 위원회는 콘트라반군이 코스타리카에서 마약거래 조직을 재건했고, 이 조직을 백악관의 협력을 받은 노스가 강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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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사거리라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AP통신이 89년 7월22일 이 기사를 전송했지만 뉴욕타임스와 3대 텔레비전들은 이를 인용보도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기사를 뒷면에 단신으로 처리했다. `페어'(공정보도)의 스티브 렌달이 워싱턴포스트에 전화해 왜 단신으로 처리했냐며 항의했지만 월터 핀커스 기자는 사과하지 않았다. 이 기자는 나중에 96년 머큐리뉴스 기사를 공격하는 데 나선 기자 가운데 하나다. 이 기자는 "코스타리카 의회위원회가 무슨 주장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대꾸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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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하반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기사에 흐르는 기본 전제는 콘트라가 마약거래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80년대 내내 중요한 정보(콘트라의 마약거래 개입)를 무시하던 신문들이 이런 주장을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옴부즈맨인 제네바 오버홀서는, 미국 정부와 마약밀매의 관계에 의문을 다시 제기하면서 3대 신문들이 "좀더 나은 대답을 찾기 위해 찾아다니는 대신 머큐리뉴스의 오류를 찾아다니는 데 더 열성적이다"고 지적해서 표적이 되고 말았다. 오버홀서는 "중앙정보국이 적어도 마약거래에 콘트라가 관련됐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로 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워싱턴포스트가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대한 태도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들이 이 사안에 큰 관심을 갖게된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은 지체없이 이 문제로 관심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언론의 보도를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패리는 정곡을 훨씬 더 정확히 찔렀다. 워싱턴포스트의 10월4일치 기사가 "콘트라가 마약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이 신문이 "오랫동안 콘트라가 마약에 관계됐다는 혐의를 조롱했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아이러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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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더럽고 위험한 세상</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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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엘리트 언론들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콘트라군대가 마약거래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감추고 이 사실을 용감하게 보도한 언론을 공격했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이들이 콘트라 지원을 지지했다는 점이 부분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말 두 신문은 콘트라에 대한 군사지원을 승인했다. 물론 가끔은 마지못해 하기도 했지만. 88년 2월 워싱턴포스트의 콘트라 지지 사설 2건(88년 2월3일과 5일치)은 의회의 중요한 표결을 앞두고 "당근과 채찍의 조화가 산디니스타를 움직이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군사적 "채찍"이 니카라과 농촌지역 농부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찾아볼 수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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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3개 신문에서 사주나 경영진의 태도는 신문의 논조를 결정하고 기자들의 일을 제약한다. 전직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인 데니스 맥두걸은 뉴타임스 로스앤젤레스 96년 9월19일치에서 편집인 셀비 코페이 3세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현상황을 지키려는 인물의 사전적 정의 그 자체다. 그는 폭로성 기사가 지배 엘리트들의 반발을 일으킬 것인가 여부를 판단한다. 반발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그 기사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실릴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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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국가 엘리트와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관계는 정보국 설립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진 것으로 유명한 칼 번스타인은 20년전인 77년 10월20일 롤링스톤지에 실은 중앙정보국과 언론에 관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중앙정보국 관리들 이야기로는 중앙정보국이 (뉴욕)타임스와 관계를 대언론 관련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1950년부터 1966년까지 대략 10명의 중앙정보국 관리가 타임스의 첫면을 제공받았다. 이것은 그전 발행인인 아더 헤이스 슐츠버거가 승인한 계약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슐츠버가가 만들어놓은 타임스의 중앙정보국 지원 정책의 하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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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의 전 직장인 워싱턴포스트 또한 중앙정보국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번스타인은 중앙정보국 관리가 워싱턴포스트의 그전 소유주이나 발행인에 대해 한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필 그래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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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행인들의 후손들이 두 신문을 여전히 경영하고 있다. 비밀리에 중앙정보국을 도와야한다는 의무감 또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88년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 캐더린 그래함(필 그래함의 부인)은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래함은 중앙정보국 고위 관리들에게 "우리는 더럽고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리가디스 매거진 90년1월호) 이런 말도 했다. "일반 대중이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정부는 비밀을 지키고 언론은 자신들이 알아낸 것을 신문에 실을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번성한다고 나는 믿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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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자들의 차례다. 이런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을 어느 정도 믿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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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솔로몬은 언론 관련 신디케이트 컬럼니스트이다. 신문에 그의 주간 컬럼 "미디어 비트"가 실리도록 돕고 싶거나 미국 중앙정보국-콘트라-마약 논쟁에 대한 언론보도에 관한 연사로 초청하고 싶은 이들은 "mediabeat@igc.org"로 전자우편을 보내면 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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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보조자: 스티브 렌달</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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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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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리(Robert Parr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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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언론 연합’ (Consortium for Independent Journalism) 1997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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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중앙정보국(CIA) 지원 역사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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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ore-content" style="border: 1px dashed black; background: none repeat scroll 0% 0% rgb(239,255,175); padding: 1px; margin: 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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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같은 유명 신문은 기사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신중하게 평가를 내려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신문이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보면 '유죄'라고 표현한다. 혐의자가 적이라고 여겨지면 표현을 명확하게 하고, 동지라면 문장은 모호해진다. 그래서 종종 누가 뭘 했는지를 불명확하게 하는 수동태를 쓰기 일쑤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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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비평가 에드워드 에스 허먼은 <제트매거진> 97년 6월치에 실린 "말 속임수와 선전"이라는 글에서 "말들은 보통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 뒤바뀐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6월7일치에서 이런 기술을 새로운 경지에 올려놨다고 할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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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지면에는 똑같은 사건을 다룬 두 개의 기사가 실렸는데 서로 11페이지나 떨어져 있다. 이 사건은 가학적인 과테말라 군대가 5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살해한 것이다. 이 군대는 지난 54년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민주 정부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뒤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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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는 당연히 관련 기사지만 '관련기사 몇면' 식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하나는 (미국 정부나 중앙정보국에 대한 언급은 없이) 쿠데타의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뉴욕타임스가 어떻게 미국중앙정보국을 도왔는지에 대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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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에 실린 기사는 과테말라인들이 농촌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공동묘지를 힘겹게 발굴하는 것에 대해 소름끼치게 소개하고 있다. 대량 학살에 군대가 무슨 책임이 있는지는 명확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수동태를 선택했다. 레리 로터 특파원이 쓴 이 기사는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과테말라의 36년동안 지속된 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밖에 4만명이 실종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표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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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잔인함은 가족 전체를 쓸어버릴 정도로 무분별했다. 리오네그로에서는 한 묘지에서 어린이 100명과 여성 80명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생 안드레스 사하카바하의 16세기 교회 건물에서는 군대에 희생된 이들이 발견됐는데, 군 장비와 음화가 그려진 카드도 함께 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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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마르틴 힐로테페케 외곽에서는 군인들이 깊은 우물에 희생자들을 집어넣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80년대 초반부터 악취가 종종 나는 이 우물을 의심했지만 인구가 1050만명인 이 나라의 다른 수천명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 로터는 보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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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군대의 괴기스런 행위도 기술하고 있다. 군인들이 희생자들의 목에 밧줄을 맨 뒤 스스로 목매달아 죽도록 한 이야기, 군인들이 겁을 주는 수법으로 부모 눈 앞에서 어린 여성들을 강간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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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모레노는 81년 12월12일 군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아버지를 때렸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저항하자 항복할 때까지 군인들은 10살된 딸(모레노의 여동생)을 성폭행했다. 아버지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그 뒤 아버지를 다시 못봤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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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이 공동묘지 기사는 지난 40년 이상 과테말라를 휩쓴 공포에 관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54년 야코보아르벤츠 정부를 축출하고 군대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미국중앙정보국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빼버렸다. 민중 봉기를 막기 위한 정부군의 테러가 이 나라의 농촌 지역을 파괴하던 80년대 초반 레이건 대통령이 과테말라군을 다시 지원한 것에 대한 언급도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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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뉴욕타임스 편집진은 1면 기사의 관련기사 표시까지 빼버려 사태를 더욱 분리시켰다. 종교 소식과 전국 요약 소식 바로 다음면인 11면 끝에는 중앙정보국이 뉴욕타임스 발행인 아더 헤이스 슐츠버거의 도움을 받아 54년 쿠데타를 지휘한 것을 설명하는 1단짜리 기사가 있다. 휴일인 토요일 아침 꼼꼼히 신문을 살핀 독자만 이 기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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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공놀이</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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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와이너가 쓴 이 11면 기사는 지난 35년부터 61년까지 발행인을 맡은 슐츠버거가 비밀 공작을 다루지 말라는 중앙정보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중앙정보국장 앨런 덜레스는 라틴아메리카 특파원 시드니 그루슨이 이 사건을 다루지 못하게 하도록 뉴욕타임스에 요구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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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벤츠처럼, 그루슨도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 54년 5월말 과테말라 현지의 중앙정보국 관리 알버트 해니 대령은 그루슨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중앙정보국 기록을 뒤졌다. 최근에 비밀문서 지정이 풀려 공개된 과테말라 쿠데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해니는 이 보다 2년 앞서 "그루슨이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이 참석한 멕시코시티의 파티에 여러번 갔었다."고 썼다. 이 정보는 슐츠버거에게 전달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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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전에 덜레스는 개인적으로 슐츠버거에게 중앙정보국을 따르도록 요청했다. 슐츠버거는 자신이 구술한 메모에서 "나는 앨런 덜레스에게 전화해 그루슨을 멕시코시티에 묶어두라는 그들의 요구를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이 발행인은 54년 7월3일에 덜레스에게 전화를 했다. 슐츠버거의 결정으로 중앙정보국의 선동가들은 쿠데타 성공의 열쇠가 되는 거짓 정보와 혼란을 과테말라에 마음놓고 퍼뜨릴 수 있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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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슐츠버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그는 그루슨의 이후 기사를 "보통 때보다 훨씬 주의를 기울여" 검열하는 데 동의했다. 이 발행인은 그루슨을 멕시코시티에 머물도록 명령한 뉴욕타임스의 내부 기록 사본을 중앙정보국에 보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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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의 기사는 그루슨 사건에 대한 타임스의 이전 묘사가 불완전하며 방향이 잘못된 것임도 밝혔다. 뉴욕타임스북스가 출판한 책 <한쪽에 치우침 없이>에서 오랫동안 뉴욕타임스의 특파원을 한 해리슨 살스버리는 슐츠버거의 항복(중앙정보국에 협조한 것: 번역자)이 마지못해 한 것처럼 묘사했다. 이 책에는 슐츠버거가 직접 덜레스에게 전화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루슨을 감시하겠다는 뜻도 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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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면 기사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슐츠버거의 행위가 언론 정신에 위배된다는 명시적인 비판 또한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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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기사를 처리한 뉴욕타임스의 방식은, 중앙정보국이 지원한 니카라과 반군의 마약 거래를 다룬 <산호세 머큐리뉴스>의 96년 연재기사에 대한 거친 비판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난 가을 타임스는 다른 주요 신문들과 합세해 이 기사의 과장된 혐의를 비난하는 기사를 써댔다. 그리고는 머큐리뉴스의 편집인 제리 세포스가 압력에 굴복해 이 기사에서 발을 빼자, 이 사실을 97년 5월13일 1면에 크게 보도했다. 14일에는 "머큐리뉴스 자백하다"는 제목의 거친 사설이 뒤를 이었다. 43년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죄는 없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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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친 중앙정보국이냐 반 중앙정보국이냐</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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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중앙정보국이냐 반 중앙정보국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뉴욕타임스의 불공정한 보도는 최근 몇주동안 다시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보국이 58명의 핵심 과테말라 지도자를 암살자 명단에 올려놓은 사실을 기록한 서류를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하자,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를 5월28일치 5면에 쳐박았다. 이 기사는, 실제로 암살하지는 않았다는 중앙정보국의 주장을 의심하는 기미도 나타나지 않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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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뉴욕타임스는 19면에 중앙정보국이 53년 이란 쿠데타에 대한 기록 대부분을 없애버렸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쿠데타로 샤 모하메드 레자팔레비가 선거로 당선된 총리 모하메드 모사데를 몰아냈다.) 지금까지 중앙정보국 관리들은 자신들이 쿠데타의 막후에서 활동한 것에 대해 부인하면서 내부 문서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의 기록이 60년대에 없어진 것이다.(뉴욕타임스 97년 5월29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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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 처리가 큰 일 같지 않지만, 이 결정은 워싱턴과 다른 언론매체 내부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머큐리뉴스가 물러선 것을 뉴욕타임스가 1면에 보도하자, 다른 신문은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이 사건이 쟁점이 됐다. 대조적으로 슐츠버거가 중앙정보국에 협조한 것을 안쪽 면에 배치한 것은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 텔레비전의 박학다식한 이들과 프로듀서들은 1면 기사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에, 이 기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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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버거 이야기를 숨김으로써, 뉴욕타임스는 자신들이 과테말라에서 수십만명이 숨진 것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숨겼다. 미국을 기록하는 신문은 완전히 참회하고 고백하려면 아직도 멀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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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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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도위(Mark Dowi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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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네이션> 1998년 7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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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뉴욕타임스>가 환경이나 과학, 건강 문제에서 기업쪽 편만 드는 실태를 고발합니다. 특히 심한 기자가 과학기자로 유명한 지나 콜래타(Gina Kolata)라고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뉴욕 타임스의 과학보도는 정평이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이 신문의 `사이언스 타임스'라는 섹션은 우리나라의 한 신문이 매주 번역해서 싣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면 더 이상 사이언스 타임스를 믿을 수 없게 되실 겁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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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가장 도전적인 쟁점이 해외 문제였을 때, 이 나라의 기록의 신문 뉴욕타임스는 외신 보도에 힘을 쏟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신문의 외신부장이었고 이 것을 발판으로 현재 편집국장이 된 조셉 릴리벨드(Joseph Lelyveld)는 세계 어느 언론보다 인상적이었다. 이 신문의 외신 보도가 잘못될 수 있다면 그것은 타임스가 권력에 대한 반사적인 충성 때문에 언제나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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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평가를 그 동안 이 신문의 전쟁, 정치 스캔들 또는 국내 위기 문제에 대한 실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문이 너무 자주 체제 편에 서고 분쟁과 민간의 불화 또는 `그날의 추문성 사건'(gate-of-the-day인데 사전에 뜻이 안 나와 이렇게 추정했음: 번역자.)에 대한 보도가 언제나 정치적 성향을 담고 있거나 세부 사항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타임스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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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기술 문화가 형성되면서 과학은 날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타임스 편집자들은 신문의 과학적 기능을 신문의 목적의 핵심으로 보게 됐다. 건전한 과학이 건전한 정책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건강, 환경, 의학, 생물학, 심지어 물리학과 수학에 대한 보도가 이 신문 지면에 지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지면을 이 나라의 과학 글쓰기의 거장들이 수놓았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이가 과학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타임스의 전설 월터 설리번(Walter Sullivan)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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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신문이 국내외 보도에서 얻은 지위를 과학에서도 똑같이 얻으려면 한가지 문제를 고쳐야 한다. 국내외 정치보도에서보다 과학보도에서 이 신문은 더욱 권력 편에 서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권력은 기업 권력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아주 재능 있고 논란을 일으키는 과학 기자 지나 콜래터(Gina Kolata)의 작업과 관련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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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는 아주 뛰어나다. 취재원을 개발하고 서류를 얻어내고 복잡한 자료를 분석하고 뜨거운 뉴스 거리를 분명하고 생동감 있는 문체로 쓰는 데는 이 여성에 필적할 이가 거의 없다. 이 기자에 감탄하는 타임스의 동료는 "그 이는 모든 것을 갖췄다"고 말한다. 98년 5월26일 사이언스 타임스 섹션에 실린 역병 박테리아의 행동을 에이즈 바이러스에 비교한 그 이의 기사가 증명하듯, 그 이는 가장 난해한 과학 문제의 신비를 벗기는 능력이 있다. 그 이를 비방하는 이들조차 그 이를 "뛰어나고" "능력 있고" "통찰력이 있고" "타고난 재능을 갖췄다"고 표현한다. 메릴랜드 대학에서 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콜래터는 1987년 이후 타임스에 600개 이상의 기사를 썼으며, 이 가운데 많은 기사는 첫 면의 큰 기사였다. 그 이의 기사는 일상적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또 종종 큰 상업적 영향도 끼쳤다. 그 이 이름이 거론되거나 등장하지 않는 과학 콘퍼런스, 저널이나 인터넷 웹페이지는 드물다. 종종 그 이가 설리번의 망토를 물려받을 인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 이를 존경하는 동료를 포함해 그렇게 많은 신문사 동료들이 그 이에 대해 기분 나빠하는가? 그리고 왜 그 이는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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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놀랍게도 콜래터를 모든 이의 전면에 등장시킨 최근 에피소드와 거의 관계가 없다. 이 이야기는 그 이가 전망 있는 암 치료제 몇가지에 대해 5월3일 과장된 기사를 쓴 뒤 몇시간만에 예약 제의를 띄운 것이다. 이 기사가 온 나라 과학 저술가들 사이에 그 이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전자우편을 촉발했지만, 타임스에서 그 이의 11년 경력으로 보면 경미한 잘못에 불과한 것으로 여길 만 하다. 사실 그 이에 대한 직업적 경멸은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한 그 이의 보도의 결과로 차츰 쌓여 온 것이다. 그 주제란 에이즈 연구, 실리콘 유방 이식술, 유방암, 식품 방사선 처리, 환경 호르몬(내분비 교란 물질) 등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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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의 기사를 취재원 하나 하나씩, 인용문 하나 하나씩 분해하면, 친숙한 양식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이가 인용한 이들을 다시 인터뷰하면, 그 이가 첫번째 연락을 하기 전에 이미 어떤 기사를 쓸지 결정한 것 같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그 이의 질문은 암시하는 듯하고, 어조는 투쟁적이다. 균형을 맞춘 것처럼 보이고 싶은 생각에서 모든 종류의 취재원과 접촉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말을 세심하게 선별하며, 때로는 미리 정해 놓은 것을 입증하는 말로 고친다. 그 이와 의견이 다른 과학자들을 무시하고 빼거나 더 큰 권위를 얻은 사람을 동원해 누른다. 이런 권위란 보통 이름 뒤에 훨씬 긴 약자가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 기자와 생각이 같은 취재원은 일반적으로 생각이 다른 취재원보다 5 내지 6배는 많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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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콜래터의 보도 잘못이 기자적 자질 부족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보도의 문제점이 타임스라는 기관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확대되면, 이는 논란이 되는 기술 제품의 보도에 대한 타임스의 정책을 내보이는 것이 된다. 이 정책의 내용이란 과학적 탐구에 대한 접근이 반 환경적이고 친 기업적이며 근본주의적인 것을 뜻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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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콜래터에게 이 글과 관련된 특정 질문에 전화로 또는 팩시밀리로 답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이는 글로는 약간의 사소한 사실만 밝혔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에 대해 이 기자가 타임스의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통해 직접 한 유일한 말은 "내 기사는 기사 자체로 말한다"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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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에이즈 보도</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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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는 온 나라에서 에이즈가 기승을 부리던 80년대말 에이즈 연구에 대한 작은 기사를 통해 스스로를 논쟁적인 기자로 자리 매겼다. 이 기사로 뉴욕의 활동가들이 펀치 슐츠버거(Punch Sulzberger)의 집 앞과 타임스 건물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활동가들은 기록의 신문이 전국적인 유행병을 무시하고 연구에 대한 정부의 보도 자료만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설에서 "이 병은 여전히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만 제한되어 있다. 취약한 사람들이 모두 감염되면 새로운 희생자는 줄어들 것이다."고 씀으로써 에이즈의 심각성을 지워 버렸다고 지적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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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콜래터는 "평행선"(parallel track) 연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연구 방법은 완전히 에이즈가 침투한 환자처럼 병이 너무 심하거나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일반 실험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적인 약을 임상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국립건강연구소(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에이즈 권위자 앤서니 포시(Anthony Fauci)와 식품의약청(the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모두 이 방식을 승인했는데도 콜래터는 이 정책과 과학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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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를 특히 거슬리게 한 것은 마틴 딜래니(Martin Delaney)와 짐 코티(Jim Corti)라는 캘리포니아의 활동가가 실시한 물밑 실험이었다. 두 사람은 일반 임상의사의 도움을 받아 "컴파운드 큐"라는 실험적인 약을 실험했다. 이 약은 말기 에이즈 환자 수천명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종종 실험 대상은 죽을 수 있고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두 사람은 믿었다. 딜래니는 "그들 모두 에이즈 환자다"라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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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콜래터는 시종일관 죽음이 실험의 실패 탓이라고 보도했다. 약을 탓한 것이다. 심지어는 실험에 참가한 의사가 실험 대상자 대부분은 실험과 상관없이 죽었거나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 말한 뒤에도 그랬다. 딜래니는 콜래터가 연구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두번이나 잘못 표현했고, 계속 자신의 말을 왜곡해서 인용했다고 주장한다. "전화로 또는 직접 만나 몇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딜래니는 타임스의 편집인 맥스 프랭클(Max Frankel)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글을 신문에 실어 주면 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 편지도, 그렇다고 고침도 나가지 않았다. "좋은 기자는 기사가 정확하기를 원한다"고 딜래니는 말한다. 또 "콜래터는 자신이 얻고 싶은 이야기를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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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기사에서 콜래터는 독자들에게 친숙해질 방법을 만들어 냈다. 몇몇 엄격하고 예측할 수 있는 윤리주의자들을 찾아내고 평판이 좋은 기관의 뛰어난 연구자 두세명을 확보한 뒤 이들에 의존해 평행선 약품 실험의 반대로 나아간다. 기사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들을 계속 인용한다. 이런 비난을 딜래니와 코티같은 검증받지 않은 활동가들이 견뎌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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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가 길게 인용한 취재원의 하나는 더글러스 리치먼(Douglas Richman) 박사다. 이 박사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 분교의 뛰어난 연구의사(research physician)인데 평행선 방식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를 표현했다. 그런데 리치먼은 콜래터가 "그 이 나름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말을 왜곡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리치먼 박사는 콜래터 기사에 등장하는 포시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연구자가 대중을 교육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콜래터는 이 작업을 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명백하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 편지는 맥스 프랭클의 책상까지는 찾아갔지만, 타임스 지면에까지 도달하는 길은 못 찾았다. 신문사의 누구도 답변하지 않은 것을 물론이다. 나중에 포시는 콜래터의 기사를 다시 읽고 자신 또한 너무 잘못 묘사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콜래터의 기사 일부는 "잘못된 표현"이 있거나 "사실을 균형을 잃은 채 제시했다"고 포시가 말한 것으로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가 보도했다. 그러나 이 비판이 타임스에서 콜래터의 경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도리어 그 이는 다른 주제를 찾아 자신의 비정통 보도 기법을 다시 마음껏 써먹을 권한을 얻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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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유방 이식과 유방암</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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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가 이번에 고른 주제는 실리콘 유방 이식술이다. 유방 이식은 반대에 서는 이에겐 꿈의 주제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생각이 갈리는 두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세력은 다우코닝(Dow Corning), 브리스톨메이어 스퀴브(Bristol-Myers Squibb)와 기타 실리콘 제조업체에 대한 대규모 소송이 벌어진 10년 동안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 가운데 한쪽 편을 들면 반대에 서는 이가 되는 것이다. 중간에 선 기사는 관심을 덜 끌게 마련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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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위크>, <뉴스위크>와 대부분 일간지의 실리콘 유방 이식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기업-의학 복합체쪽 이야기를 아주 균형적으로 서술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다. 제조업체가 놀라운 신제품을 동물실험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내놓는다. 부작용이 보고되고는 곧 예외적인 것이거나 시술을 잘못해서 생긴 것으로 무시된다. 몇년 동안 의사나 환자들이 불만을 쏟아낸다. 이 경우는 이식 파열, 실리콘이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현상, 연결 조직의 질병이나 다른 불편이 제시됐다. 제조업체들이 제품을 내놓기 전에 이미 위험을 알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됐다. 소송이 계속된다. 불행에 빠진 이들이 제조업체를 비난한다. 제조업체는 제품 책임 담당 변호사들을 비난한다. 조심스런 기자들은 판결을 기다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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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콜래터는 판결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조업체에 무게를 두고 그들이 법정에서 주장한 것 상당수를 반복했다. 흔히 하듯 배심원들이 원고쪽의 승소 판결을 내리자 그 이는 배심원들이 고의로 과학적 진실을 무시했다고 썼다. 그 이는 자신의 보도를 입증하려고 기사에서 존 서전트(John Sergent) 박사의 이런 말을 인용했다. "나는 이 이식에 꼭 한정할 수 있는 병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뛰어난 면역학자를 한명도 모른다." 그 이는 서전트가 다우와 브리스톨메이어스에게 많은 돈을 받고 고용된 피고쪽 증인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원고쪽에 유리한 증언을 하고 돈을 받은 의사들을 호되게 비판해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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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환자들에게 소견서를 써주고 법정에서 이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대가로 돈을 받은 몇몇 얄팍한 의사들을 스스로 찾아내 폭로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다우 등에 대한 소송이 가치가 없고 몇몇의 소송변호사들이 괜찮은 기업을 파산으로 몰아갔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돈을 뜯으려는 변호사와 의사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제품이 해를 줄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증거를 조사하면서 배심원들은 다우코닝의 부정 혐의가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 회사에게 유방 이식으로 인생을 망쳤거나 훼손당한 여성들 전체와 42억달러에 화해하도록 강제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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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콜래터는 여전히 기업 편을 드는 쪽을 선택했다. 1995년 6월13일 다우코닝의 파산에 대한 콜래터의 기사 제목은 "정의의 판결 아니면 완전한 희극? 유방 이식에 대한 공격이 어떻게 다우코닝을 11장으로 몰아갔나?"라고 외쳤다. 마치 다우의 홍보물 같은 제목이다. 1995년 5월 이 회사가 10여개 주요 신문에 실은 광고는 "원고쪽 변호사들은 이식물 제조업체에 대한 소송에서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6월에 쓴 기사에서 콜래터는 한탄했다. "법적인 미신이 생명을 얻어냈다... 크고 번성하던 기업을 무릎꿇게 했다." 다우의 최고경영자가 케미칼 위크 잡지에서 넌지시 내비쳤듯, 파산은 원고에 대한 배상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상당히 명백한 사실을 콜래터는 놓쳤는지 몰라도, 투자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파산을 선언한 뒤 첫 분기에 다우의 수익은 모든 기록을 깼고 주가는 시장의 나머지 주식들과 함께 치솟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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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22일 실린 다른 유방 이식술 기사 "새로운 연구 결과, 유방 이식과 질병이 상관없다는 것이 드러나다"를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콜래터는 관절 질병(Joint Diseases) 병원의 게리 솔로몬(Gary Solomon) 박사를 접촉했다. 솔로몬은 유방 이식이 파열한 뒤 연결 조직으로 병이 번진 환자를 맡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취재원이 됐고 뉴욕 근처에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전화로 몇시간동안 통화했다. 이 때 솔로몬은 "실리콘과 연결 조직 질병의 관계에 대한 19가지 연구 결과에 대해 안내했다". 솔로몬은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언급한 연구 결과 가운데 하나가 부정적인 것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질병이 실리콘과 관련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콜래터씨는 부정적인 것을 보도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머지 18개 연구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에 대한 내 논평을 인용 보도했는데, 마치 유방 이식에 문제가 없다고 내가 믿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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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격분했다. "그 이는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건전한 과학을 무시하는 편을 선택했고 내 견해를 심하게 잘못 표현했다. 나는 그 이의 옛날 기사들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 이는 이미 4년전에 유방 이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확립한 것이 분명했다." 솔로몬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편집국장 조세프 릴리벨드 앞으로 직접 써서 보냈다. 이 편지에서 솔로몬은 콜래터에게 당한 것을 썼다. 답장이 없었다. 이 글이 신문에 나지도 않았다. 고침도 물론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사실 다음번에 솔로몬 박사가 타임스에서 자신의 이름이 난 기사를 본 것은 콜래터가 쓴 것인데, "나를 엄청난 치료비를 부과하고 불공정하게 유방이식술 소송 원고를 편 드는 의사들과 한 묶음으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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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험하게 다룬다는 증거는 1997년 10월1일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유방암에 대한 에이치비오(영화전문 유선방송 채널: 번역자)의 다큐멘터리를 평한 것이다. 에이치비오 방송 몇일전 프로듀서가 뉴욕타임스에 비디오테이프 4편을 보냈다. 콜래터는 테이프를 못 받았는데, 텔레비전 평 담당 캐린 제임스(Caryn James)가 그이에게 자기 앞으로 온 테이프를 줬다. 레이철의 딸들(Rachel's Daughters): 유방암의 원인 찾기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유방암에 걸린 6명의 여성이 병의 원인을 찾아 전 미국을 여행한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의 탐구는 대부분 암을 연구하는 20여명의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유방암이 들이닥치자 비난할 곳을 찾아 나섬"이라는 제목의 콜래터 기사는 "이 여성들은... 과학자의 세계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다"라고 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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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전문가 수선 러브(Susan Love) 박사가 "우리는 암의 원인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도, 콜래터는 러브 박사의 자문을 구한 이 여성들이 "유해한 환경 탓에 중독됐다고 확신했다"고 비난했다. 사실 여성들 대부분은 그들이 만난 과학자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에 심하게 절망했다. 유방을 완전히 잘라낸 28살의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확실한 답을 못 듣고 돌아 나오는 것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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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는 이를 "편집적 사고"라고 부르고, 스스로를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의 딸들(카슨은 유방암으로 숨졌다)로 여기는 이 여성들을 정서적 편집증 환자라고 조롱했다. 살충제, 방사선 처리, 성형과 내분비선 절제가 자신들의 병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고 과학자들에 의존하는 태도 변화가 필요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가 의존하라고 하는 과학자들이란 (확실하게 증명되기까지는 가설을 계속 유지하는 대신) "증거가 가설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가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콜래터는 이 영화에 다음과 같은 확실한 꼬리표를 붙여야 한다는 말로 기사를 마무리지었다: "경고. 이제부터 보실 것은 가슴을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거의 상관없거나 아예 무관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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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린 제임스가 이 테이프를 콜래터에게 줬을 때는 아마도 콜래터의 여동생 주디 배리(Judi Bari)가 얼마전 47살에 유방암으로 숨졌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배리가 오랫동안 암과 싸운 것이, 여동생의 죽음을 설명하는 환경적 요인을 찾을 수 없다는 콜래터의 확고한 신념에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같다. 주디의 친한 친구 베티 볼(Betty Ball)은 "주디는 자신의 암이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확고하게 믿었다"고 회고하고, 언니가 암에 대해 쓰는 것 - 사실은 환경 문제에 대한 언니의 일반적인 견해- 에 대해 걱정했다고 말했다. 사실 배리는 아메리카 삼나무 목재 판매를 몇번 막아낸 이후인 1990년 차량 폭탄 공격으로 심하게 다친 숲 보전 운동가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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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하나 더 있는 지나와 주디는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베티 볼은 "지나는 더 할 수 없이 달랐다"고 말했다. 또 "물론 주디는 부모의 정치적 태도를 따랐고 그들을 존경했으며 막내인 마사와 아주 친했다. 그러나 지나와는 사이가 나빴다. 지나에 대해 말을 잘 하지도 않았는데 가끔 '지나와 나는 서로를 상쇄하기 위해 여기 보내진 것같아'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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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의 딸들에 대한 타임스의 평은 성난 편지가 물밀듯 밀려오도록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인터뷰한 여성들과 "친척인 영혼들"이라고 콜래터가 비꼰 과학자들에게서 온 것이다. "콜래터는 암과 유해 환경의 연관성 가설에 대해 말 그대로의 '증명'을 요구한다"고 시애틀에 있는 패시픽 노스웨스트 연구재단의 분자 전염병학(molecular epidemiology) 프로그램 책임자 도널드 맬린스(Donald Malins) 박사가 썼다. "`과학에 아주 익숙한' 이들은 아주 복잡한 전염병 관계에 대한 증명과 입증하는 증거...를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인식할 것이다." 배텔 패시픽 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Battelle 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의 리차드 스티븐스(Richard Stevens) 박사는 콜래터의 평이 "과학적 반응은 논외로 하고 감정적 반응을 배반하는 비열한 가짜"라고 봤다. 어느 편지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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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식품 방사선 처리</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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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는 잘못됐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자신이 판단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을 종종 내세운다. 식품에 대한 방사선 처리 문제가 이런 경우다. 나중에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온전한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에 의해 반박된다. 이런 취재원에 의존해 콜래터는 환경보호주의자, 질병에 걸린 이들과 마이클 콜비(Michael Colby)같은 이들의 혼란스러운 개념을 공격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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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는 `식품과 물'이라는 조직의 이사다. 이 조직의 일 가운데는 식품 방사선 처리가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공개하는 것도 있다. 콜래터는 콜비가 낸 출판물을 통해 그가 식품 방사선 처리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1997년 12월 기사와 관련해 전화를 걸었다. 그 이는 `식품과 물'의 설립자(월터 번스타인, Walter Burnstein)는 의사지만 콜비는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비난해야할 취재원이었다. "그 이는 아주 겸손한 채 하면서도 아주 호전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 도중 몇번이나 말을 막았다."고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콜비는 회상한다. "그래서 나는 방사선 처리를 크게 걱정하는 권위있는 과학자 12명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 이는 이 가운데 누구도 인용하지 않았다." 콜래터는 콜비가 알려준 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명에게는 전화를 했다. 그 이는 뉴저지의대의 예방의학 및 지역건강학과 학과장인 도널드 루리어(Donald Louria) 박사다. 인터뷰 때 루리어는 이 기술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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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방사선 처리에 회의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이 가운데 콜래터가 알기로 골치아픈 존재는 마이클 제이콥슨(Michael Jacobson) 박사다. 이 사람은 공공이익을 위한 과학센터(Center for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의 이사다. 이 단체는 "소비자옹호단체"로 치부될 수 있었고 치부됐다. 그러나 제이콥슨은 미생물학 박사학위가 있으며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무게가 있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인터뷰를 한 뒤 콜래터는 제이콥슨이 "방사선 처리한 식품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 처리기가 더러운 환경에서 처리된 식품을 살균할 때 방사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썼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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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터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줬습니다"라고 제이콥슨은 말한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방사선 사용을 강하게 반대하며 이는 위험이 내포된 값비싼 처리과정이다... 이는 비타민B 함량을 낮추고 노동자들을 위험하게 하며 환경 오염의 우려가 있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콥슨은 1997년 12월4일 타임스에 보낸 간결한 편지에서 자신의 말을 왜곡한 것에 항의했다. 이 편지는 신문에 실리지 않았고 정정도 나가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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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환경 호르몬</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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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초 뉴욕타임스의 4명의 편집자는 당시 과학 담당 편집자 니콜라스 웨이드(Nicholas Wade)의 주선으로 시오 콜번(Theo Colborn) 박사, 존 피터슨 메이어스(John Peterson Myers) 박사, 다이언 두마노스키(Dianne Dumanoski) 등 곧 나올 환경호르몬에 관한 책을 함께 쓴 3명을 만났다. 그 책 <도둑 맞은 미래>는 지난 25년동안 야생동식물을 연구한 생물학자의 발견을 담고 있다. 이 발견은 대부분 유기염소(organochlorines)인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이 이를 섭취한 새와 양서류, 물고기, 포유동물 수백종의 건강과 생식능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 만남은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상당히 균형잡힌 보도를 해온 타임스의 과학 담당 편집자에게 최신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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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들은 의사, 내분비학자, 독성학자과 세포생물학자가 연구한 4천건 이상의 연구결과에 기초해 자신들이 발견한 것을 제시했다. 콜번 박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이 화학물질들이 사람의 건강과 생식능력에 해가 되는지를 판단할 연구를 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도 조심스럽게 제안했고 자신들이 만나 타임스의 편집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산업계와 시민들이 취해야 할 적절한 보호 조처를 제시했다. 이 조처는 임신한 여성에게 미국 몇몇 특정 지역의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 따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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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설명을 끝내자, 콜래터와 마찬가지로 추정적인 증거나 예방 원칙을 참지 못하는 니콜라스 웨이드가 저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탁자 위에 집어던지고는 마구 화를 냈다. "이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 당신들은 증거도 없이 환경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고 있다... 신빙성도 없다." 이 말은 저자들이 나중에 상기한 말이다. 보스턴 글러브가 주는 상을 받은 과학 저술가 두마노스키는 "웨이드가 적어도 2분동안 꾸짖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두마노스키가 물었다. "닉, 이 책을 읽었소?" "아니오"라고 웨이드가 으르렁거렸다. "시간이 없었소." 그는 이 신문이 기사를 쓸 경우 글을 맡게될 필립 보페이(Philip Boffey)에게도 책을 읽었는지 물었다. 그도 안읽었다. 두마노스키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논쟁 유발성 책입니다"라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만남은 거기서 끝났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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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쓴이들은 웨이드의 광분에 기분이 상해 누가 이 책에 대한 기사를 맡을지 약간 걱정했다. 그들의 걱정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1996년 6월19일 콜래터가 쓴 두개의 긴 기사가 ‘사이언스 타임스’ 섹션에 등장했다. "몇몇 환경보호론자들이, 사람과 야생동물이 합성 화학물질로 유발되는 새롭고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콜래터 기사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콜번의 가설이 환경보호론자가 아니라 과학자 400명의 업적에서 얻어낸 것이라는 점을 무시한 채 말이다. 물론 타임스는 이들 전체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주 기사 내내 콜래터는 콜번과 메이어스를 표현할 때 `ㅎ'으로 시작하는 용어를 계속 썼다. 두명 모두 동물학 박사인데도. 그리고는 메이어스의 직장인 W 앨튼 존스 재단(W. Alton Jones Foundation)을 "한 환경 그룹"이라고 불렀다. (이 사설 재단은 환경문제에 관해 약간의 기부밖에는 안한다.) 콜래터는 과거에도 종종 그랬듯이 콜번과 메이어스의 가설을 공격하기 위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브루스 에임스(Bruce Ames) 박사와 텍사스 A&M의 스티븐 세이프(Stephen Safe) 박사의 견해를 끄집어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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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임스는 ‘건전한 과학 촉진 연합’(The Advancement of Sound Science Coalition, TASSC)의 자문이다. 이 단체는 기업의 지원을 받는 "공공정책에 건전한 과학의 활용을 옹호하는 감시 연합"이다. 회원은 900명이며 이 가운데 375명이 과학자다. 나머지는 화학, 석유, 유업, 목재, 제지, 광산, 제조, 농산물 산업계의 경영자들인데, 이들은 언론과 법정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방어하는 데 골몰하는 이들이다. 이 단체의 인터넷 페이지에는 ‘쓰레기 과학’의 예가 올라있다. 그 바로 옆에는 소의 성장호르몬, 유전조작 식품, 다이옥신, 전자장, 내분비교란물질을 옹호하는 곳들의 목록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이 페이지에선 화학물질과 기술을 옹호하는 지나 콜래터의 기사 거의 전체를 볼 수 있다. 1995년 이 단체는 콜래터에게 "건전한 과학언론상"을 줬다. 그도, 뉴욕타임스도 그 이의 수상 경력에 이 상을 포함시킨 적이 없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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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세이프의 연구소는 화학제조업체와 생산물의 유해성을 평가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콜래터는 유기염소와 유방암의 연관성 연구를 중단할 때라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세이프의 말을 종종 인용한다. 세이프와 에임스의 이름은 <도둑 맞은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화학제조업자협회, 미국 옥수수보호협회, 미국성형술협의회가 언론에 제공하는 "전문가" 명단에 올라있다. 이 명단에 오른 또 다른 이가 독성학교수 마이클 갤로(Michael Gallo)다. 콜래터는 콜번의 작업에 대한 기사에서 갤로가 "사실로 위장한 가설"이라고 말했다고 인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화학기업들의 설명자료에 반복 인용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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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웨이드는 콜번 박사의 가설을 지지하는 성명과 권고문을 전달받았다. 이 성명과 권고문은 국립 환경건강과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의 전직 과학담당 책임자와 미국 소아학 아카데미의 환경 건강 위원회 전직 위원장 명의의 것이다.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장 명의로 1993년 발행된 어린이에 대한 살충제의 영향 연구 결과도 받았다. 만약 콜래터가 이를 봤다면 모두 무시한 셈이다. 대신 콜래터는 화학제조업자협회의 22쪽짜리 언론 홍보자료의 용어를 써가며 계속 책쓴이들의 결론을 잘못 표현했다. 그러나 이 협회는 콜래터보다 관대했다. "우리는 콜번 박사가 총체적이고 완벽한 과학 연구를 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믿는다"고 협회의 보도자료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이론을 내세우는 이가 그 이 한사람뿐은 아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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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과학자 수십명이 타임스에 콜래터의 환경호르몬 보도 태도를 문제삼는 편지를 보냈다. 이들이 보낸 어떤 편지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고 콜래터가 저지른 실수 어느 것도 정정이 나오지 않았다. 좌절한 몇몇 과학자들은 워싱턴에 있는 전국환경트러스트(National Environmental Trust)의 언론 자문역 필 클랩(Phil Clapp)을 접촉해, 뉴욕타임스에 4분의 1면 크기로 낼 광고를 준비하도록 부탁했다. 이 광고는 콜래터의 보도를 비판하고 그 이가 인터뷰했지만 무시한 사람들이 한 말을 공개하는 것이다. 타임스 편집자들은 이 광고의 게재를 거부했다. 편집자들에게 가장 거슬린 구절은 이런 것이다. "타임스의 기자 지나 콜래터는... 내분비 교란에 대해 널리 퍼져있는 걱정을 `몇명의 환경보호론자'와 `몇몇 생물학자'의 걱정이라며 물리친다." 협상이 계속됐다. "물리치다"(dismisses)를 "보도하다"(reports)라고 고치면 광고를 싣겠다고 타임스의 광고 담당이 클랩에게 제의했고, 그는 과학자들의 핵심 고발을 중립화하는 이 수정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분간 기자로서 콜래터의 명성은 보호됐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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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뉴욕타임스 내부</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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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는 오래전부터 자기 회사 기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케네디 대통령이 비판적인 기사 때문에 베트남포스트에서 제거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이렇게 말한다. "타임스는 자기 회사 사람이 더 갈 수 없을 정도로 잘못을 저지를 때까지는 언제나 보호한다. 이는 자연적인 본능같다." 이 신문의 역사(왕국과 힘)를 쓴 전직 타임스 기자 게이 탤리스(Gay Talese)는 로버트 셜튼(Robert Shelton)과 피터 휘트니(Peter Whitney)의 죽음을 거론하며 한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제임스 레스턴(James Reston)의 감시 눈길 아래 자신의 책상에서 빨갱이 사냥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카시 시대였다. 시대는 변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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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버스탬과 탤리스 모두 동의하는 것은, 요즘 이 회사 차원의 보호를 확실히 보장받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지속적으로 반기업 보도를 하는 태도를 피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과학이나 환경 문제일 때는 더 그렇다. 이를 보여주는 최근의 교훈은 많다. 환경기자 필 쉐비코프(Phil Shabecoff)는 1990~91년 워싱턴지사 책임자(지금은 사설면 편집자임)인 하월 레인스(Howell Raines)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그 교훈을 얻었다. 쉐비코프가 기억하는 대화는 이런 것이다. "뉴욕에서 불만을 떠뜨리고 있어. 당신이 너무 친환경적이고 환경보호의 경제적 비용을 무시한다고 말이야. 그들은 당신이 내국세청(IRS, Internal Revenue Service: 번역자)도 보도하기를 원해요." 쉐비코프는 그만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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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비코프가 떠나자 젊은 기자 키스 슈나이더(Keith Schneider)가 다음 차례를 맡고 나섰다. 이 기자는 계속 다이옥신에 대한 기사를 썼고 전국의 환경보호론자들을 격분시켰다. 특히 다이옥신이 심각한 건강상 위험을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했다. 슈나이더와 한 팀의 기자들이 역시 환경보호론자들을 괴롭힌 슈퍼펀드 사이트(*)에 대한 시리즈 기사를 마치자, 뉴욕의 선임 편집자가 워싱턴으로 전화해 그를 칭찬했다. 이 때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한 기자들에게 5년만에 자신이 타임스에서 일한다고 처음 밝혔다. 과학자들의 비난 편지가 쏟아졌고 동료 언론인과 언론비평지들은 슈나이더의 천박한 취재방식을 비난했고 기사의 근거자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을 무릅쓰고서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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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펀드 사이트: 1980년에 미국 의회는 슈퍼펀드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정부와 기업이 돈을 대서 환경오염이 된 폐기물 처리소를 정화하는 것을 담고있다. 슈나이더는 1993년부터 미국환경청이 실행한 슈퍼펀드 프로그램에 대한 현장 르포성 기사를 뉴욕 타임스에 썼다. 이 중에 한 기사는 디트로이트 옆에 있는 작은 마을 메타모어의 폐기장 청소와 관련된 것이다. 슈나이더는 이 기사에서 폐기물을 파내서 텍사스에 가져가 태우는 작업을 하면서 악취가 더 나는 등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비판적으로 쓰고 있다.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기자가 5년만에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털어놨다는 것은, 이 기사에 키스 슈나이더라는 이름 뒤에 `뉴욕 타임스에 특별기고'(Special to the New York Times)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다. 기사를 쓰면서 슈나이더와 뉴욕 타임스는 슈나이더가 이 회사 기자라는 것을 감춘 것이다. :번역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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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상을 탄 경력이 있으며 퓰리처상 후보로 타임스가 4번이나 지명한 과학, 환경 기자 리차드 시비로(Richard Severo)는 듀폰이 아프리카출신 미국인 직원에 대해 선별적인 유전적 실험을 했다는 것을 폭로하는 시리즈 기사를 쓴 이후 즉석에서 지역부로 보내졌다. 시비로는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와 제너럴일렉트릭의 허드슨강 오염 기사로 이미 기업들의 신경을 거슬린 터였다. 듀폰은 마무리짓는 사건이었다. 시비로는 자신의 부서변경 조처에 대항하기로 마음먹었고 7년동안 중재를 거쳤지만 과학부로 돌아가지 못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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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최근 일로는 과학 저술가 필립 힐츠(Philip Hilts)가 있다. 그는 담배에 대해 80회의 기사를 썼고 1면에 25번 기사를 썼는데 필립모리스(담배회사)에 대한 비난 기사 하나 때문에 제거됐다. 3년전 일이다. 지나 콜래터가 하지않은, 주제에 대한 억제의 목소리를 낸 힐츠는 현재 타임스의 보스턴 지사에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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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 내부의 말로는 책임 편집자 조 릴리벨드가 과학에 관심이 많고 타임스의 과학 문제 보도 질 개선을 아주 갈망한다고 한다. 또 내가 들은 말로는, 이 사람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과학은 모든 신념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과학계건 언론이건 똑같다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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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적어도 말의 온전한 뜻으로 볼 때 지나 콜래터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대신 그 이는 기업 과학의 충실한 변론자다. 그렇다고 해도 콜래터를 비판하는 것이 오직 환경보호론자들과 몇명의 불만을 품은 과학자일 뿐이라면, 타임스 편집자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위크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들과 콜래터 자신이 있던 잡지 사이언스가 그 이의 방법과 결론에 의문을 제기할 때는, 기록의 신문도 주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 이는 이 나라의 모든 암 클리닉에 공포를 불러왔다"고 샌프란시스코의 의학 기자 마이클 캐슬먼(Michael Castleman)은 암 치료제 기사가 나간 뒤 자신이 겪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과학 기자로 최악의 것은 "그 이가 과학자들을 겁쟁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캐슬먼은 지적한다. 그는 "과학자들이 기록을 전제로 말하도록 하느라고 고생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 이는 상습적인 공격자다. 그 이가 논쟁을 보도하기만 하면 과학자들을 우리 모두가 취재원을 그 이가 하듯 다루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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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대응자와 강한 편집자의 도전을 받지 않은 채 콜래터가 계속 이런 식으로 보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뉴욕타임스는 균형잡히고 믿을 수 있는 과학뉴스와 논평 매체라는 명성을 손상시켰다. 타임스 과학기자들이 제기하는 주제가 말 그대로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면, 독자들은 취재 방식이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타임스가 중시하는 것이 바뀌지 않는 한, 월터 설리번의 망토를 이어받을 가치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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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도위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과학과 박애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는 네이션 인스티튜트의 조사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Copyright (c) 1997, The Nation Company, L.P. All rights reserved. Electronic redistribution for nonprofit purposes is permitted, provided this notice is attached in its entirety. Unauthorized, for-profit redistribution is prohibited. For further information regarding reprinting and syndication, please call The Nation at (212) 242-8400, ext. 226 or send e-mail to Max Block at mblock@thenation.com.</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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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a href="http://php.chol.com/~marishin/etc/henyt01.html">한영 대역본</a>(인터넷에서 원문을 구할 수 없으니 대역본으로 원문을 확인하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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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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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이 글은 원저작자의 저작권이 없는 글이기에 번역문의 활용이 자유롭습니다. 번역문을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 불허, 개작 허용 1.0’ 조건에 따라 마음껏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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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쿼미시 인디언의 추장 시애틀은 1800년대에 미국 정부에 편지를 보냈다. - 편지에서 시애틀은 모든 사물 속에 깃들어있는 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 편지는 세계 모든 나라의 부모들과 자녀들 가슴에 깊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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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나? 이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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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반짝이는 소나무 잎, 바닷가 모래밭, 짙은 숲속의 안개, 수풀과 지저귀는 곤충들 모두가 우리 민족의 기억과 경험 속에 신성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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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핏줄 속을 흐르는 피처럼 나무 속을 흐르는 수액을 잘 안다. 우리는 이 땅의 한 부분이며 땅 또한 우리의 일부다. 향기나는 꽃은 우리의 자매다. 곰과 사슴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 수풀의 이슬, 조랑말의 체온, 사람, 이 모든 것이 한 가족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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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강을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다. 우리 조상의 피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땅을 팔면, 이 땅이 신성하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호숫물에 비치는 모든 것은 우리 민족 삶 속의 사건과 기억을 말해준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목소리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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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우리의 형제다. 우리의 갈증을 달래주고 우리의 카누를 옮겨주고 우리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니 당신들은 형제를 대하듯 강을 친절히 대해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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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땅을 당신에게 판다면, 기억하라.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는 모든 목숨 있는 것들에게 정신을 나눠준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쉬게 해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의 정신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거든, 이 땅을 신성하게 세속에서 분리시켜둬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꽃향기로 달콤해진 바람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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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칠건가?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땅에 일이 생기면 땅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생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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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다. 땅은 사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사물은 우리 몸을 연결하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인생의 직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 한가닥일 뿐이다. 이 직물에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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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다. 우리의 신은 당신들의 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땅은 신에게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땅을 해치는 것은 땅의 창조주를 경멸하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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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들의 운명이 어떨지 모르겠다. 들소가 모두 몰살당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야생마가 길들여지면 어떨까? 숲속의 신비한 구석이 사람들 냄새로 가득하고, 말하는 데 쓰는 전선(전화줄)으로 언덕의 전망이 얼룩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귀뚜라미는 어디에 거할까? 사라져버린다. 독수리는 어디 사나? 가버린다. 잽싼 조랑말에게 인사하고 사냥에 나서는 것은 뭔가? 삶의 종말과 살아남기 경쟁의 시작.</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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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빨간 사람(인디언인듯: 옮긴이)이 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 그래도 해안과 숲은 여전히 여기 있을까? 우리 민족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게 될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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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아이가 엄마의 심장 고동 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면, 우리가 했듯이 사랑해주라. 우리가 했듯 돌봐주라. 이 땅을 받았을 때처럼 땅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땅을 보존하고 사랑해주라.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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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땅의 일부이듯 당신들도 이 땅의 일부다. 이 땅은 우리에게 소중하며, 당신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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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우리는 안다. 신은 하나라는 것을. 빨간 사람이든 흰 사람이든 사람은 나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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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올린 이의 말: 위의 글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시애틀 추장이 실제로 말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의 감동을 생각해 고치지 않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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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기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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