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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수험생 김재석씨는 유죄인가

아내와 함께 백화점 식품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유학생 신분에 거의 유일하게 부리는 사치인 '린트너' 빵집의 통밀 식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나왔으니 평소엔 잘 안 먹는 벨기에 초콜렛도 하나 사 보자며 우리 둘은 들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을 지나 계산을 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무척 행복했다.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걸 발견하기 전까지.  
 
둘이서 백화점 안에서 지나다닌 길을 두 번이나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장갑을 찾을 수 없었다. 10유로. 그닥 비싸지 않고 따뜻한 겨울 장갑의 가격이었다. 둘이서는 집에서 요리를 해먹으면 며칠 식비 정도 되는 금액이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닌 돈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하고 있었던 장갑인데. 이걸 도대체 어디서 떨어뜨린 걸까. 나는 왜 여기서 생돈 10유로를 그냥 길바닥에 버린 걸까. 한 짝은 멀쩡하게 있는데 한 짝이 없어진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고 더 화를 돋우었다. 그래. 결국 내가 죄인이다.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께 생활비 받아 쓰고 있는 내가 죄인이고, 죄인 주제에 물건을 잃어버리기까지 하니 더욱 죄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니 이번엔 이 유치한 감정에 또 화가 난다. 
 
10유로. 한화로 따지만 15,000원 조금 못 되는 이 돈에 사람은 이렇게 화가 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 아침에 460만원을 모아야 한다면. 그 돈이 없어서 지금껏 살아온 삶에서 손꼽을만한 기쁜 일 하나를 그냥 공중에 날려버린다면. 그것도 거의 성사되었던 일 하나를. 그리고 결국 돈은 구하지 못하고, 어떻게 파국을 막아보고자 애 썼지만 그 기회가 지나가 버렸다면. 그는 얼마나 화가 날까. 이 세상에. 그리고 그 보다 스스로에게. 서울에 사는 수험생 김재석 씨가 겪은 일이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에 그동안 여러 운동현장에서 활동해온 경력을 인정받아 NGO전형에 합격한 김재석씨는 2월 초가 되어서야 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 460만원이라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평범한 '19세'의 시민으로써 이 금액에 숨이 턱 막히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잘 도와줄 가족 친지도 별로 없는 가난한 '19세'의 시민으로써 등록금 문제, 학자금 대출관련 정보,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 인터넷 보안 등 한국의 특수하고 불편하기 그지 없는 금융관련 절차에 홀로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조금 늦게, 하지만 여하간 신청기간 내에 등록금 '대출'을 한국'장학'재단에 신청했다. 등록금 납부일은 8일에서 10일 단 삼일이었다. 승인은 더디고 더졌다. 등록금 납부기간이 될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른 김재석 씨가 전화를 하면 재단 측에서는 "일단 사전 등록을 하던가, 460만원을 학교에 먼저 내고 기등록을 한 후 돈을 받도록 하라."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성공회대학교에는 사전 등록 제도가 없었고, 460만원을 당장에 그가 마련할 길은 없었다. 물론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돈을 갑자기 댈 수 있는 친척이 없다 해도 잠깐이지만 사채를 끌어 쓸 수도, 혹은 굴욕을 무릅쓰고 돈을 빌리러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여러 청소년 인권활동을 해 왔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에까지 능통할 수는 없을 19세의 평범한 시민에게 460만원을 하루만에 마련할 길은 없었다. 
 
그는 등록을 하지 못했다. 10일 2시에 승인이 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 만약 그가 회원가입시에 sms를 등록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 일찍 알았을 수도 있다. - 집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는 김재석씨는 PC방에 가야 했고, 외장하드에 담아온 공인인증서가 오류가 났다는 걸 알고, 다시 은행에 다녀와야 했고,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체를 시도했지만, 보안이 낮은 PC방 컴퓨터로는 액티브 액스를 깔고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하고 계좌 이체를 하는 그 모든 절차가 잘 안 된다는 걸 업무마감시간인 4시를 넘겨서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성공회대에 전화를 했다. 하루만 기다려줄 수 있냐고. 지금 승인이 났는데 컴퓨터가 문제가 생겨서 입금을 못한 거라고, 한국장학재단이 일처리가 늦었던 데다가 내 서류 팩스를 한번 누락하기까지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엔 소명서를 받으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을 내비쳤다가 윗선에서 안 된다고 했는지 다시 전화가 와서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김재석씨를 쉽게 비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미 기사화된 그의 이야기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리고 그가 직접 올린 호소문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1월에 합격해 놓고 2월까지 왜 손놓고 있었냐.", "장학재단 홈페이지가 그런 걸 몰랐냐."라는 이야기가 줄줄줄 올라온다. "학교나 장학재단이 문제가 많지만 김재석씨의 행동도 실수가 많았네요 안타깝습니다." 식의 양비론으로 자신은 이렇게 바보같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헛똑똑이들의 댓글도 달린다. 
 
19세의 시민 김재석씨는 죄인인가. 어렸을 때부터 저축이라도 하고, 알바라도 해서 460만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김재석씨가, 명시적으로 공지된 절차보다 더 많은 절차와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김재석씨가,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등록금을 마련해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해하는 그의 가족에 대하여,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함께 괴로워하는 친구들에 대하여, 결국 너무 화가나서 쓴 호소문에 들어간 몇 가지 실수에 대하여, 성공회대와 한국장학재단의 욕먹는 담당자들에 대하여 죄인인가? 김재석씨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겪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비슷비슷하게 학교와 장학재단 사이에 치여서,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들이 죄인인가? 
 
서울의 4년제 대학교 한학기 등록금 및 입학금 460만원. 이것은 내가 멍청하게 어딘가에 떨어뜨린 10유로가 아니다. 이 금액을 내야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조그만 실수라도 몇 개가 쌓이면 온갖 굴욕을 겪으면서 돈을 마련하거나, 등록을 못해 호소문을 쓰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했냐.'라는 댓글을 보게 만드는 이 세상이야말로 유죄가 아닌가! 나는 묻고 싶다. 만약 김재석씨가 힘겹게 460만원을 마련하여 등록을 한다면, 그가 이런 저런 전화나 민원을 넣어서 그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을 장학재단의 담당자나, 성공회대 입학처의 직원은 "정말 이렇게 굴욕을 감내하게 해서, 힘겹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한 마디라도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절차상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그런 사과 한마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스템은 유죄가 아닌가. 
 
이게 사는 건가. 10유로짜리 장갑의 한 짝을 잃어버려도 화가 치솟고 스스로를 탓하는 인간이 적지 않을(그렇게 믿고 싶다.) 이 세상에서, 매년 수많은 젊은이들이 수백만원의 돈에 가슴이 턱 막히고, 몇 개의 실수가 겹쳐서 그동안 공부하고, 활동했던 것을 통해 얻은 대학입학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야 하고, 악플까지 받아 가면서 성인으로써의 첫 발을 내딛는 이런 게 사람 사는 건가. 한 학기에 30만원 정도의 돈을 내면 시내 교통비까지 포함된 학생증을 주고, 1학기 째에는 시청에서 100유로의 돈을 주는 독일같은 곳이 없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해서 살 수 있도록 월세와 기본생활비까지 주는 덴마크 같은 곳이 없더라도 이 사회는 유죄다. 
 
나는 내 친구 김재석씨가 부디 성공회대 합격이 취소되지 않고 이번 학기부터 학업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가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당당하게 입학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19세의 실수 많았던 시민에게서 공부할 자격을 박탈할 권리가 이 죄 많은 사회에는 없기 때문이다. 김재석씨 한 사람을 이번 학기에 성공회대학에서 받아들이는 건 원칙에 위배되는 온정주의적 해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온정주의는 그 원칙이 정의로운 사회 안에 있는 원칙일 때만 비판받아야 한다. 그 전까지는, 그것은 모든 것을 전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손을 떼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의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김재석씨는 3월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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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절망을 삼켜, 희망을 만든다. d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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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교가풍 민중가요

 

절망을 삼켜, 희망을 만든다. 지금은 비록 작지만
늦지 않았다. 지금은 밤이다. 새벽은 곧 밝아 온다.

기억해줘 무더 웠던 한 여름밤의 싸움
있지 말아줘 서로를 녹이던 겨울거리

우리 여기에, 지지않고 여기에
싸움을 살고 있구나

지치지않고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이제는 반격의 시간이다.

절망을 삼켜 희망을 만든다 by Ki-myoung Kim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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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지금 좌파 정치인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실은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게 문제다. 반면 요 몇년간 새로이 좌익으로 유입된 젊은 활동가들은 이걸 당최 이해를 못하고 있다... “어? 우리 힙한 거 아니었어?

사실 경험도 없고 학습(?)도 부족하다지만, 그들에게는 지금의 좌파 정치인, 운동가들에겐 없는 속도와 자신감이 있다. 좀 더 그들이 뛰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보통 반짝거리면서 들어왔다가 같이 늙어가곤 했....

촛불시민의 찐기 폭행사건과 좌파의 대응은 지금 좌파의 총체적 무능을 아주 스펙타클하게 전시한 거였다. 광장엔 노빠들만 있지 않다. 좌파가 자신의 목소리를 산발적으로가 아니라 강하게 낼 때 함께 할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제발 더 밀리지 말았으면..

지금 젊은 좌익이 화살을 쏠 방향은 노빠들보다도 좌파 정치인들이 아닌가. “엘리엘리라마사막다니”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노빠들과 논쟁하며 담론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은 정작 입을 다물고 있고, 젊은 활동가들이 트윗에서 찌질하게 노빠를 까는 것 같은 이 상황이 정말 역겹다. 언제 87년 이후의 역사가 새롭게 중단될 것인가.

만일 명동해방전선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비롯,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이 FTA판에서 정말 몸대주기 말고 없고, 좌파정치인들이 그들을 끝끝내 내버려둔다면, 정말 ‘두리반’, ‘마리’의흐름을 이어서 독자적 좌파운동을 기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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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

 

*명동해방전선은 11월 19일 토요일, 약 5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해산했다. 해산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때 베를린에서도 몇 글자 보태었다. 비록 조직은 해산했지만, 이 글은 다음의 투쟁을 위해 공유하려 한다. 그리고 <명동해방전선 베를린임시특별연락부>는 향후 별 일 있을 때까지 <재건명동해방전선 베를린망명본부>로 이름을 바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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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있다" 

 

 

1 여러분의 쓸데없는 친구인 명동해방전선 베를린임시특별연락부 김강은 어쩌다 투쟁의 전선으로 부름받은 서울의 모든 동지들에게 불온한 입맞춤으로 인사합니다. 

2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통합사념체가 만든 대유기생명체 컨택트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가 주는 껄끄러움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3 여러분 가운데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는 것을 트위터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해산 이야기도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뭐,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 바꾸면 되는 건데 귀찮네요... 해산하지 마세요... 

 

4 처음에 명동해방전선을 만들었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칠월 둘째 날, 자정에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마리 안에 끌어 모아서 점거를 결의하고, 그날 조직을 만들고, 곧장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5 명동 삼구역 투쟁을 위해서 이 조직화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6 실제로 유력한 사회주의 운동단체로부터 곧장 비판적인 반응이 왔습니다. "자족적이고, 명동 투쟁의 대의를 담지 못한다." 

7 이것은 처음에 준비단계에서 사용했던 이름인 "훼방전선"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지만 

8 그것이 겨냥하는 게 단지 그 이름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문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족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아니 한줌도 안 되는 이 투쟁판에서 그나마의 존재감도 없던 이들이 스스로를 세워 투쟁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자족'이라면 말입니다. 

9 '명동해방전선'이라는 기획을 머리에 떠올리고 초기에 두리반에서 함께 활동했던 몇 명과 이 기획을 발전시켜나가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습니다. 이건 할 수 있는 것일까.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이것은 가능한 기회인가. 

10 근데 가능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한 번 해보고 싶다는데!>_<

 

11 지금도 진행중이겠지만, 그리고 여러 투쟁의 장으로 더욱 확장되었고, 그만큼 집중력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12 우리가 명동 삼구역 카페 마리에서 진행한 투쟁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카페 마리는, 활동가들의 학교였습니다. 투쟁의 방법도, 함께 투쟁할 동지와, 많은 단위들과의 관계도 우리는 이 곳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13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싸움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14 여기서 '우리'가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가 그 모두를 대의하거나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서 - 나는 그 '우리'를 이제는 식상해진 표현인 '몫 없는 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15 이 자본주의에서 1%를 제외하면 보통 잉여로 밀려난다고 봐야 할텐데, 그 중에서도 현 시기 한국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투입한 자본에 비례하여 가장 잉여로 밀려나는 존재들이 여기서 '우리'라고 지칭하는 '몫 없는 이들'일 것입니다. 

16 이것은 단지 경제사회의 영역에 대한 설명만은 아닙니다. 

17 정치 캠페인에서 젊은 것들이란 민주개혁진보인지 뭔지 하는 집단에게 동원되는, 정확히는 동원되는 것처럼 잘 보이면 되는 존재입니다. 이를테면 민주당이 이십대를 찬양한다면, 그것은 이십대를 동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18 그것은 이십대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삼사십대를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십대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이십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 청소년은 말해서 무엇하리오! [오호라 그네들은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그들을 이 굴레ㄱ)에서 꺼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ㄱ) 어떤 사본에는 '노예생활'] 

20 진보정당의 캠페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십대나 청소년이 진보정당의 운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21 이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솔직히 잘 못해요... 

22 경험이 없기도 하지만 활동의 프레임 자체가 아저씨들 거라서 젊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도 하죠. 진보정당이나 사회단체에서 젊은 활동가들이나 지지자들은 계륵입니다. 버리자니 진보를 버리는 거고, 같이 하자니 뭐 하나 쓸모가 없고. 

23 [솔직히 맞다니까요? 우린 존나 쓸데 없어요. - 어떤 사본에는 생략] 이런 상황에서 세대론이 유행하면서 이십대나 청소년이 여러가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주목 받는 그 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 잉여로 향할 뿐입니다. 

 

24 이런 상황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은 치고 나가는 짓입니다. 

25 아..아니.. 명동해방전선 자체가 이미 치고 나가는 건 맞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했던 일이 '자족적'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25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삶을 지키는 '방어'를 위해 최소한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뿐입니다. 그게 공격으로 보이는 건 뇌의 착각입니다. 

26 우리가 지금의 안철수나, 나꼼수나, 진보대통합의 논의나, 반값 등록금 시위를 주도하는 한국대학생연합 등등처럼 뭔가를 공세적으로 치고 나가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얼마간 바꿔보겠다고 한다면, 지금의 우리 역량에서 활동가들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 달 이상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27 회의록 작성하고, 블로그 업뎃하고, 이게 말이죠.... 아주 그냥... 하기 싫엉....///_/// 

 

28 하지만 두리반의 경험이 그 시작이었고, 마리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과정이 보여주듯,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을 '자족적'으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29 동지들에게 '자족적'이라는 비난이나 하는 무리들에게 화 있을진저! 라기 보다는 니네 일이나 열심히 하시면 되고요... 

30 어느 시점에서는 분화되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하는 동지들 안에서 좀 더 강고한 조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31 하지만 지금 이 시점, 저들이 한국사회 전체를 새롭게 판을 짜려고 하는 시점에서 굳이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보태기 위해 노력한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32 왜냐하면 무슨 판을 새로 짜든, 우리를 위한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3 지금 필요한 건 진지입니다. 두리반 같은 곳, 마리 같은 곳. 현실의 어떤 장소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제는 독자적으로 공간을 마련하는 점거투쟁이 요구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좀 더 넓게는, 지금의 우리에게 자족적일 수 있을뿐더러, 향후 계속해서 누군가를 전염시킬 수 있는, 우리 삶의 독특함을 드러낼 문화가 필요합니다. 

 

34 베를린에 와서 몇몇 대안공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35 이곳엔 말하자면 두리반 같은 곳이 수십곳이 있습니다. 지난 십년간 좌파당과 사민당이 연정을 해 온 공식적인 사회민주주의의 도시 베를린 아래에는 그것과 대립하기도 하고, 그것을 지탱하기도 하는 무시 못할 세력으로서 각종 급진 세력들과 그들이 머무는 커뮤니티나 바, 인포샵, 클럽들이 있고, 이런 활동의 상당수는 장벽붕괴 이후 활발했던 빈집 점거를 통해 획득한 건물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36 비난으로서 '자족적'이라는 평가는 아마 베를린이라면 유효할 거라 생각합니다. 때때로 점거운동이나 급진좌익 운동 자체가 하나의 화석화된 전통이나 스타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합니다. 

37 하지만 이러한 넓은 급진좌익의 백그라운드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이 지켜오던 삶을 한 순간에 밖으로 확장하게 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38 서울에서 우리가 잉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곳에는 오직 하나의 차원의 정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거 등의 정치일정에 따라 저항하는 삶이 부침을 겪어야만 했던 역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저들이 민주 혹은 진보대통합의 이름으로 벌이는 실험은 사실 이천 이년의 실험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안철수조차도 그러합니다.] 

39 지금 필요한 건 그 동원의 정치에 동원되지 않고 '자족'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것은 투표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40 형제 자매... 아, 아니 동지 여러분, 지 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십년대 이후, 혹은 우리에게는 구십칠년 아이엠에프 이후 진행되었던 역사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벤야민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면,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적들이 역사의 '진보'의 이름으로 맞서기 때문입니다. 

41 우리가 그들의 싸움에 그저 동참할 때, 혹 때로 그 활동이 작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 승리의 열매는 안철수나 김어준, 혹은 우리가 잘 아는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돌아가고, 우리는 그저 '발랄하고 분노한 이십대'로서 찬양받고 말 뿐입니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이러한 꿈을 계속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42 이른바 혁명적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의 행동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기 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43 다시금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입니다. 이 계급은 객관적인 의미에서 '노동계급'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방의 과업을 과거에 때려눕혀진 자들의 세대들 이름으로 완수하는, 최후의 억압 받고 복수하는 계급"입니다. 

44 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구요...  지금 억압받고 있는 우리가 이 빌어먹을 진보의 역사에 복수할 때, 지나간 모든 세대의 억눌려진, 버림받는, 잉여로 밀려난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우리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45 그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일은 제대로 '자족'하는 것입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최대한 연대하는 것입니다. 

 

46 그러나 동지 여러분, 이 투쟁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해선 안 됩니다.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너와 내가 계속 이 투쟁을 함께 싸워나갈 수 있는 만큼만 투쟁하면서 끝까지 동지들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47 미혹하는 촛불시민이나 나꼼수의 거짓 예언을 경계하십시오. 

48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49 오직 굳은 결의...까지는 필요 없고, 끈질기게 지금의 삶과 동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매일 외신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50 보고 싶은 동지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서로 게으르다 질책 말고,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십시오. 

51 항상 노래하십시오. 

52 쉬지말고 개드립치십시오. 

53 모든 일에 쉬엄쉬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 아니... 김정ㅇ... 아, 아니... 여하간 이건 동지들을 향한 제 마음입니다. 

54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잘 붙드십시오. 특히 ㄴ)부농...[ㄴ)어떤 사본에는 '연애']

55 소수자에게 행하여 지는 폭력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55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통합사념체가 만든 대유기생명체 컨택트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56 동지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도 관심 좀 써 주십시오. 

57 돈 생기면 베를린 놀러오십시오. 

 

58 불온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인사하십시오. 

59 나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이 편지를 꼭 모든 동지들에게 읽어주십시오. 

60 여러분에게 김슷캇의 여러 기획들과, 가오리연의 피부와, 공기의 뭐라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사람 잡아 끄는 매력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데헷>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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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앞선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다.”

('오늘의 문예비평'에 기고한 글입니다.)

 

각주 포함한 글 링크

 

 

1.

성묘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조부모님 산소는 안동 학가산 자락에, 외조부모님 산소는 영주의 낙동강 지류를 앞에 둔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묘소라는 공간은 언제나 어떤 멜랑콜리를 불러일으킨다. 산과 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죽음과 삶의 거리를 더욱 부각시켰고, 산 이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잠시 잠깐 떨어져 나오는 경험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잡음에 대한 뉴스였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이었고, 그는 그 뉴스에 따르면 어린 딸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총살당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환호하고 있었고,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도 모종의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번 공개적 암살(?) 행위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세계가 한 시름 놓지 않겠어?”

 

뉴스를 듣다가 아버지께서 던진 이 한마디가 성묘가 준 사적인 멜랑콜리의 감정에 젖어 있던 나를 깨웠다. 이제 은퇴하시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아버지도 ‘세계’를 저리 걱정하고 계시는데 내가 가만히 내 감정의 세계 속에 있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같은 건 물론 아니었고, 아버지와 그리고 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세계’가 무척 궁금해졌다. 왜 빈 라덴의 죽음에 멀고 먼 한국의 한 아저씨는 시름을 놓았는가. 

 

“빈 라덴 살해는 정의롭지 못해요. 그가 9.11 사태의 범인이라면 미국은 그를 사적으로 처단할 것이 아니라 전범재판에 넘겼어야죠.”

 

이것은 라디오에서 나온 비난 여론이었다. 나는 이것이 아주 상식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보통 법정초적인 행위로써, 전쟁이 끝나면 법과 정의는 새롭게 세워진다. 새로운 법과 정의의 체제 — 그것은 종종 ‘평화’라고 불린다. — 아래에서 전쟁의 패자는 전쟁범죄자가 된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패배하고, 전범으로 처벌받음으로써 새로운 법과 정의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미국은 그의 미국을 향한 테러행위를 사법적이고 정치적으로 심판함으로써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절차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그들은 빈 라덴이 어떤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를 가족들 앞에서 살해하고, 시신은 바다에  던졌다. 

 

이것은 즉각적으로는 단지 사적인 복수행위로 보였다. 아마 이 지점이 미국의 양식 있는 종교인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빈 라덴 사망 이후 미국인들이 보여준 환호에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면서 열광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군의 빈 라덴 살해는 정말 공적이어야 할 심판을 사적인 복수로 대체한 것일까? 니체가 지적한 바 있듯이 복수는 동등성의 표현이다. 복수로 표현되는 분노는 그런 점에서 귀족적이다. 오직 능력있는 자만이 당한 것을 되갚을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 복수와 분노의 대극에 있는 것은 원한이다. 복수를 할 수 없는 무능력함이 원한의 감정을 낳는다. 원한은 희생자의 감정이다. 저들은 강하고, 나는 약하다. 저들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자신들의 힘을 사용했다. 따라서 저들은 악하다. 따라서 원한은 능동적인 인간에 대한 혐오와 허무로 나타나며, 신을 요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종교인들의 복수에 대한 불편함은 이 지점에 놓여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미군의 행위는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 따위보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강한 자였다. 그들은 연약한 희생자의 자리에서 악에 대한 신의 심판을 부르짖는 노예도 아니었고, 동등한 위치에서 힘의 대결을 통해 저들이 준 피해를 되갚아 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저 살해행위는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2.

“이제 세계가 한시름 놓지 않겠어? 테러와의 전쟁이 정상적인 전쟁도 아니고, 아주 예외적인 것인데, 무슨 그런 법을 다 지켜가면서 전쟁을 해?”

 

이것은 뉴스를 들으며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빈 라덴의 살해를 둘러싼 법철학적 논의의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빈 라덴의 살해. 그것은 법정초적인 것도, 두 강자들의 영웅적(이고 사적인) 대결도 아닌, ‘세계의 안전’이라는 논리로 행해진 치안 혹은 경찰권력의 수행인 것이다. 이것은 물론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는 그들의 『제국』과 『다중』에서 오늘날의 전지구적 권력이 국민국가 단위의 주권권력이 아니라 더 미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전지구적인 치안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전쟁이 “응집된 거대위협에 맞선 방어에 방향을 맞추기 보다는 확산되는 작은 위협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적의 전반적인 파괴에 집중하기보다는 적을 변형하고 심지어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곧 “고강도의 치안행위”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 어느 국가기구보다 더 법 아래 있어야 할 경찰권력이 이렇게 탈법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경찰권력이 수행하는 역할을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 본다면 경찰권력이 법 아래에 있다는 ‘상식’이 결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앞에서, 유성기업 파업 현장에서 경찰권력은 과연 법 아래에 있었나. 무수한 집회시위의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시위를 불허하고, 차벽을 세워 시위대를 고립시키는 경찰권력은 과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치안이야말로 오늘날 법보다 위에 있는 최상위의 권력으로써 우리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칼 슈미트가 “예외상태를 결정짓는 자”(정치신학)라고 정의한 주권권력보다도 현대 세계에 더 근본적인 권력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현대적 치안권력의 양상을 일치감치 간파한 바 있다.「폭력 비판을 위하여」라는 문제적 텍스트에서 벤야민은 경찰권력이야말로 “민주주의 체제 속의 가장 심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절대군주의 모습으로 입법과 행정이 통합되어 있고, 경찰권력이 지배자의 강제력을 과시하던 절대주의 시대보다 더욱 끔찍한, “문명화된 국가들의 삶 속에 떠도는 (…) 유령같은 형상”(96쪽)으로써 경찰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적인 경찰권력이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법정초적 폭력(전쟁이나 내란, 총파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과 법보존적 폭력의 구분이 지양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법정립적 폭력은 그것이 승리를 통해 입증되기를 요구받으며, 법 보존적 폭력은 그것이 새로운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제한에 묶인다. 그런데 경찰의 강제력은 이 두 조건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경찰의 강제력은 법정립적인데, 그 이유는 경찰권력의 특징적 기능은 (일반적인) 법률의 공표라기보다는, 그것이 법적권리주장을 가지고 반포하는 각각의 모든 포고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의 강제력이  법보전적인 이유는 그 자신이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 따라서 경찰은 법적 목적과 관련이 전혀 없는데도 법령에 의해 규제된 삶을 통해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존재로서 시민을 따라다니거나 또는 시민을 완전히 감시하거나 아니면 명백한  법적 상황이 주어져 있지 않은 무수히 많은 경우에 ‘치안 유지 때문에’ 개입한다.(97쪽)

 

냉전의 종료 이후 UN을 통해 국가 간의 전쟁 가능성이 통제되고, 사회주의 역시 (법을 정초하는) 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렸을 때 대두한 것은 단지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전지구적 경찰권력과 함께 도래했다. ‘역사의 종말’(후쿠야마), 그것은 무엇보다 법정초적 폭력의 성공적인 제거였으며, 그 자리를 채운 건 ‘상례화된 예외상태’를 다루는 권력인 경찰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경찰권력의 전면적 대두는 법정초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의 구분을 의문에 붙이며, 매 상황을 예외로서 간주하게 만든다. 테러는 이제 정상상태 바깥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상적(?)이며 항구적인 위협이 되며, 고전적인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에 대한 관념은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테러분자에 대한 규제’로 대체된다. 세계는 이제 끊임없이 ‘한시름 놓기 위해’ 경찰력의 사용을 요구하는 항구적인 예외상태에 놓이고 만다. 이주민, 시위대, 실업자, 철거민, 노동자… 그 모두는 잠재적이고 실제적으로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며, 경찰권력은 자의적 판단에 의해, 그리고 첨단의 강제력을 동원해 그들의 시민적 권리를 통제한다. 

 

3.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치안의 논리가 법적 정당성의 논리를 넘어서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공적 성격 또한 탈각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오래된 논의인)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기구’이며, ‘경찰은 자본가들의 사병’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적 관계가 ‘치안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치안이라는 논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도 지양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의 ‘용역깡패’들이다. 이것은 사실 부적절한 어휘인데, 물론 그들이 지난 80년대의 구사대나 철거깡패의 행태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 이들은 경비업법에 의해 합법의 외양을 걸치고 하나의 ‘사설 경찰’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기업 사태로 유명해진 CJ시큐리티나 용산참사, 각종 철거현장 등에서 활약(?)하는 삼오진 등은 모두 경찰서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업이며, 이들 용역회사 중에는 연 매출이 100억대에 달하는 커다란 기업도 있다. 

 

법적으로는 경찰의 역할과 경비용역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사실상 그들의 ‘진압작전’ 앞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둘 사이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이들을 부리는 누군가에게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노사관계나 재개발 문제 등 일차적으로 사인들간의 대화나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준테러세력’에 대한 소탕의 문제로 담론화되고(‘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용산 철거민들이 대표적이었다.), 용역들과 경찰은 매우 일사분란한 공조태세를 갖춰 노동자들이나 철거민들의 권리주장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안적 개입을 통해 정작 이 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해야 할 상대방인 자본가들은 그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이것은 계약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의 문제다.” 그들은 철거민들과 노동자들이 진압당한 이후에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치안적 개입은 자본가와 노동자, 철거민들 간의 동등한 사적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 반대편의 ‘진압당하는 존재들’은 공적 시민권마저도 체계적으로 박탈당하고 만다. 

 

법정립에 앞선 권력의 정립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이러한 폭력에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주권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정립적 폭력이 사실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실정적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레테 여신의 두 자녀(아폴론과 아르테미스)보다 낫다고 자랑하다가 자녀 모두를 잃는 벌을 받은 니오베의 신화에서 신화적 폭력의 발현을 발견한다. 니오베의 교만은 그것이 법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에게 도전했다는 점에서 자신 위에 내릴 숙명을 불러낸다. 신들의 폭력은 니오베의 자녀들은 피 흘려 죽게 하지만 니오베 앞에선 멈춤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죄 받은 존재로 남겨두며, 그것을 통해 인간과 신의 ‘경계’를 설정한다. 벤야민은 바로 이러한 신의 분노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이 법정립적 폭력보다 더 근원에 놓인 ‘권력의 정립’을 보여준다고 말한다.(107-110쪽)바로 이것이 곧 모든 정립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이 자리 잡은 장소이다. 그것은 사실 어떠한 정당화된 목적을 위한 결단이 아니라 말하자면 ‘운명’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운명’은 ‘치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빈 라덴과 쌍용차 노동자들과 철거민들, 정책 반대자들의 피를 흘린다. 치안의 논리는 어떤 목적을 갖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지배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신의 발현으로써 오늘날 모든 폭력의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우리는 벤야민에게서 이러한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아니 그것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신적폭력’이라는 개념을 만나게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상을 규정하는 예외(주권권력)나 상례화된 비상사태(경찰권력)가 아니라 오직 예외일 뿐인, ‘진정한 비상사태’(「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대한 사유이다.

 

“모든 영역에서 신이 신화와 대립하는 것처럼, 신화적 폭력은 신의 폭력과 대립한다. […] 신화적 폭력이 법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를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가 없으며, 신화적 폭력이 죄 값을 치르게(sühnen) 한다면, 신적 폭력은 죄를 사해주고(entsühnen), 신화적 폭력이 위협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내리치는 폭력이고, 신화적 폭력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온다.”

 

벤야민은 구약성서 민수기에 나오는 고라 일족의 심판 이야기를 니오베의 신화와 대립시킨다. 고라 일족은 엑소더스의 민중지도자인 모세에 반기를 들고, 가문의 유력자들이 합당한 권위를 갖게 해달라는 요구를 주장했다. 심지어 그들은 엑소더스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신은, 그들을 심판했다. 땅이 갈라져 고라의 일족과 그들의 재산을 모두 단번에 집어 삼켰던 것이다. 그런데 일견 이 두 이야기는 별반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라의 심판이 ‘죄값을 치루게 하는 폭력’과는 다른 ‘죄를 사하는 폭력’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벤야민 양자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 것은 ‘피’이다. 신화적인 폭력은 피를 흘리는 존재, 즉 순수하고 단순한 개별의 ‘목숨’에 가해지는 폭력이고, 이와는 반대로 순수하게 신적인 폭력은 살아 있는 자를 위해 “모든 생명 위에” 가해지는 순수한 폭력이다.

 

여기서 벤야민이 다루고 있는 것은 역사의 구원에, 혹은 혁명적 봉기에 있어 누군가의 목숨은 죽어야 하는 그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좀 더 확대해보자면 여기엔 목숨 뿐만 아니라 그 목숨을 가진 개별자에게 속하는 것들, 이를테면 재산이나 인격 등도 포함될 것이다.(독일어 Eigentum이나 영어 Property는 모두 재산이라는 의미와 고유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의 면죄하는 폭력에는 언제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뒤를 따른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 계명이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명은 무엇보다 “이미 실행된 행위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며, “행동하는 인격체 또는 공동체에 대해 행동의 지침으로 있다. 행동하는 인격체나 공동체는 홀로 있으면서 그 계명과 대결해야 하며 예외적인 경우들에서 이 계율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야 한다.”(113쪽) 결국 신적인 폭력은 이러한 법적 정당성의 바깥에서 수행되는 민중의 폭력, 그것이다. 

 

“이 신적 폭력은 종교적 전성을 통해서만 입증되지 않고, 적어도 성화된 발현 속에서 오늘날의 삶에서 발견된다. 완성된 형태의 교육적 폭력으로서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 그러한 신적 폭력의 현상 형식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신적 현상형식들은 신 자신이 폭력을 기적 속에서 행하는 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를  흘리지 않고 내리치며 면죄하는 수행적 요인들을 통해 정의된다. 그것은 마침내는 모든 법정립의 부재를 통해 정의된다.”(112쪽)

 

지젝은 신적폭력이 법을 정초하는 예외적 존재로서의 국가주권과 구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적 폭발로서의 순수한 폭력과도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그 의미에서 신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신화적 폭력 아래에서 구조화된 사회적 공간 바깥에 있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즉각적인 복수와 정의를 요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력이 상례화된 예외상태를, 그리고 법이 무너지더라도 또다시 법정립이 발생하고야 마는 운명의 악순환을 돌파한다.

 

역사에서 이러한 신적 폭력의 이미지에 상응하는 것은 무엇일까? 「폭력 비판을 위하여」텍스트 안에 있는 근거들을 탐색해보자면 일차적으로 그것은 소렐에게서 영감을 받은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이다. 소렐은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을 법정립적인 법정립적 총파업, 즉 입법적이고 제헌적인 정치적 총파업의 폭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법을 파괴하는, 따라서 국가를 파괴하는 총파업이며, 순수 수단으로서 비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02-103쪽) 그러나 벤야민이 신적 폭력을 곧장 프롤레타리아 총파업과 연관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정작 신적 폭력을 다루는 마지막 문맥에서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은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혁명적 폭력’ 역시 조건법으로만 말해지고 있다.

 

벤야민은 어쩌면 ‘신적 폭력’은 실정적인 방식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 즉 폭력이 행사되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런 점에서 ‘사건의 질서’ 안에 있다. 결국 벤야민의 서술 속에서 신적 폭력은 이미 법정립을 통해 성공적으로 역사로 귀속된 어떤 사례로는 제시될 수 없는 ‘신적 폭력’ 그 자체로 남는다. 

 

“특정한 경우에 순수한 폭력이 언제 실제적으로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가능하지도 않고, 똑같이 시급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비할 바 없이 큰 영향을 속에서가 아니라면 신적인 폭력이 아니라 오로지 신화적인 폭력만이 그 자체로서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폭력이 인간에게 주는 면죄하는 힘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11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전태일과 광주라는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다루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완벽하게 코포라티즘으로 전락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서술 속에서가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네 마네를 가지고 청와대와 지역단체들이 다투고 있는 저 화려한 5.18 기념식 속에서가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전태일과 광주를 말이다.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에 불을 붙였을 때, 그것은 1970년대 전체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광주도청의 마지막 총성이 울렸을 때 그 역시 80년대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폭력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크고 작은 억압 받는 자들의 반란들, 법 바깥의 투쟁들은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들을 둘러싼 신화적이고 운명적인 모든 종류의 폭력에 맞선다.   

 

 

5.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작은 식당 '두리반'이 강제로 영업을 종료당했다. 그 일대를 몽땅 사들이고, 세입자들의 연대를 분쇄하여 차례차례 헐값을 주고 내보낸 GS 건설의 유령회사 남전디앤씨는 계고장 하나 미리 보내지 않은 채 갑자기 용역을 동원해서 마지막까지 협상하지 않고 남아 있던 칼국수 요리집 두리반의 집기를 들어내고 펜스를 둘러 쳤다. 공공개발이든, 민간개발이든 재개발은 세입자들에게는 악랄하기 그지 없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홍대 앞의 문화와 상권을 만들며 이 지역의 가치를 올려온 건 땅주인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영업하는 세입자들과 손님들이었건만, 땅주인들이 시세의 열 배가 넘는 평당 8000만원에서 2억 원까지 받고 땅을 팔아 이득을 보는 동안 세입자들은 그나마의 월세 보증금도 소송비용으로 뜯기고, 마치 시혜를 베풀듯 주어지는 몇백만원의 이사비용만 받고 추방당해야 했다. 거대 자본은 세입자들과 어떤 타협을 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돈으로 용역회사를 고용하여 세입자들을 자본이 소유한 땅 — 세입자들이 삶을 이어가는 그 땅 — 에서 몰아냈다. 

 

그 다음날 밤, 두리반의 안종려 사장은 극한의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 그 펜스를 뜯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시혜도, 추방도 거부하고 두리반을 지키며 치안권력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그의 요구는 단지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경찰과 용역회사의 경고와 위협 아래서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농성장의  분위기는 이듬해 2월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던 젊은 음악가들이 함께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농성 주체들의 사정을 듣고 ‘음악가의 방식’으로 연대를 시작했다. 토요일의 ‘자립음악회’와 금요일의 ‘칼국수음악회’가 시작되었고, 2010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점으로 이 연대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65팀의 밴드와 3000여 명의 관객이 모여서 “세계노동절120주년기념전국자립음악가대회뉴타운칼챠제공파티<51+>”를 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두리반 건물 전체는 삶의 기반을 잃게 되어 법 바깥의 투쟁을 시작한 철거 당사자들 뿐 아니라 애초에 잃어버릴 어떠한 삶의 기반도 없이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 삶과 활동의 공간을 찾아 헤매이던 젊은이들에 의해 점거당했다. 공간을 갖게 된 이들은 음악회, 토론회, 영화상영회, 낭독회, 강연회, 세미나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밤마다 모여들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했다. 

 

그들의 행위는 이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자본과 치안권력에 맞서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행위는 불법이었고, 법에 의해 보호받는 재산권의 행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그러니까 쫓겨난 이들, 공간없는 이들, 부유하는 이들의 편에서 보면 정의롭고 즐거운 것이었다. 두리반이라는 불법과 폭력 — 두리반은 어떠한 인간도 해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저들의 것이 된(그러나 이전엔 두리반의 것이었던) 재산을 마음대로 전유하고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 의 공간은, 동시에 이 사회의 몫없는 이들의 해방구와 만남의 장이 되었다. 한국전력은 이들의 불법점거와 폭력을 이유로 한 여름에 전기를 끊었고, 시공사 GS건설은 용산참사 현장의 바로 그 용역회사 삼오진을 고용하여 끊임없이 치안적 개입을 시도했지만, 점거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생산물들과 상징의 힘은 결국 그들을 굴복시켰다. 결국 농성이 450일 가까이 진행될 무렵 저들은 협상을 제의했고, 531일째 되는 날 아침에 최종적으로 "두리반이 기존상권과 유사한 상권에서 재개할 수 있도록 영업손실 배상금을 지급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고, 농성기간 동안 사용한 기초 에너지 요금과 벌금을 시행사가 대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젔다. 

 

이것은 철거민들의 요구가 거의 대부분 받아들여진 승리였지만, 어떠한 잡음도 없는 승리는 물론 아니었다.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목소리로 집약되는데, 하나는 법적 근거도 없는 권리금 등을 보상받는 것이 무슨 정의로운 일이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리반의 승리는 단지 하나의 투쟁사업장의 승리일 뿐 정작 법을 바꾸지 못한 무력함을 전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이 두  비판은 각각 법보존적 시각과 법정초적 시각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두리반의 요구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유재산제도의 근간을 흔들며, 이러한 경우가 보편화될 경우 무수한 선의의 피해자 — 이를테면 애써 모은 재산으로 건물 하나를 겨우 소유한 영세한 소 건물주 — 가 발생할 수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업장을 가진 프렌차이즈 세입자 같은 경우에도 저런 방식의 영업보상을 해줘야 하느냐는 비판을 했고, 후자는 두리반에 모인 잉여들이 입법적(법정초적) 역량이 없으며, 보편적인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이들의 비판은 시민사회가 앞으로 분명하게 의제로 삼아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두리반의 투쟁과 승리가 갖는 법철학적 쟁점에 관하여는 절대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두리반은 단지 법 안에서, 법에 의해 내어 쫓긴 사람들이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오늘날 지배의 작동은 법보다 치안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법은 땅주인에게 세입자에게 새로운 가게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입자와 협의를 통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합의 대신 용역회사를 고용하여 ‘사유재산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도시의 위험요소’에 대한 치안적 개입을 단행한다. 법은 이 경우 치안권력 아래에 실질적으로 종속된다.(그리고 이것은 억압받는 이들 대부분이 겪는 사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의 승리를 즉각적으로 정의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통쾌한 감정의 승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법정립에 앞서는 권력의 정립의 논리, 신화적 폭력의 구조를 두리반이 비록 아주 작은 하나의 사업장에 불과한 수준에서라도 폭로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신적  폭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은 승리는 오늘날 한국사회 안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냈다. 두리반에 모였던 이들, 그리고 두리반의 투쟁과 승리를 지켜보던 또 다른 많은 ‘요즘 젊은 것들’은 두리반 투쟁이 끝날 무렵 시작된 명동의 철거농성장 ‘카페 마리’로 달려가 한 차례  시도된 용역의 침탈을 막아내고 또 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스스로 ‘명동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은 ‘무단점거’라는 법 바깥의 싸움을 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싸움은 이들 안에서 통용되는 유머처럼 “우리는 한 줌이고, 저들은 전부”인 싸움이지만, 벤야민의 말처럼 “이들에게는 이들에게 앞선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다.”(강조는 벤야민)

 

 

6.

그러나 이 신적 폭력은 오로지 이들 민중의 폭력이라는 관점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다시금 성묘의 풍경으로 돌아온다. 외조부모의 산소가 있던 영주의 낙동강 지류. 사실 그곳의 풍경은 내년이면 다시 볼 수 없다고 한다. 4대강 공사가 올해 끝나면 시작될 지류 정비 공사 구간에 그곳이 포함되어서 보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묘를 이장할 일은 없다 하지만, 묘가 자리한 언덕 바로 아래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이제 배를 타야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강가의 모래사장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공사가 어떤 방식으로 토목건설을 제한하는 여러 법규들을 간단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문화재도, 환경영향평가도, 지역의 농민들의 외침도 일사천리로 밀어버리는 포크레인과 경찰, 그리고 역시나 용역들. 마치 강과 사람들을 향한 이 폭력은 어떤 목적보다도 지배 그 자체를 확인하기라도 해야겠다는 듯 하나의 치안행위로써 수행된다. 

 

물론 이것은 이 정권 들어서 새삼스럽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자연’과의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관계를 잃어버린 근대 세계에서 자연을 향한 인간의 이 개발 행위야말로 본래부터 치안적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새만금 물막이 공사나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에서 법을 무기로 맞서려 했던 시도는 모두 철저하게 패배했다. 재판에서만 진 것이 아니라 패소와 함께 운동 역량까지도 무너져내렸다. ‘도룡뇽 소송’이라고 불린 천성산 소송은 더더욱 자연에 대한 지배가 법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는데, 도룡뇽은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법원은 명백한 판례로 남겼던 것이다. 자연을 향한 인간의 관계, 그것은 즉각적인 권력의 정립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오직 인간의 삶을 침식하는 파괴행위 — 물론 이것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폭력적 행위인 것으로써 인지될 것이다. — 를 통해서만 이 권력의 관계를 뒤집는다. 오늘날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자연과의 관계가 복원될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것은 신화적 폭력에서 나타나는 권력관계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적 폭력에서 나타나는 심판의 형태로서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몰락의 가능성 앞에서 억압받는 자들 역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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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발명되어야 한다

전쟁없는 세상 소식지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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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을 생각했다. 민족주의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당국에 쫓기다가, 배에 올라 최하층 노동자가 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동계급의 현실에 눈을 뜨고, 식민모국 프랑스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유력인사가 되고, 이내 코민테른의 조직활동가가 되어 이름을 계속 바꿔가며 중국남부와 인도차이나에서 수많은 조직을 건설했던 불세출의 혁명가. 그러니까 아직 '호치민'이라는 베트남 국민국가의 상징이 되기 전,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신화화된 지도적 인물이 되기 전의 호치민.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인간이었다. 강철같은 의지와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유교적 — 권위주의가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여기는 혁명의 전통으로서 — 도덕과 품성으로 무장한 지하혁명가의 삶과, 언제나 골골대면서 일신의 건강을 챙기기에도 바쁜 내 꼬락서니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래서 더욱 생각했나보다. 두리반이 승리로 마무리될 무렵 시작된 명동의 점거농성장 '마리'에 연대를 결심하면서. 나는 내 마음 속의 영웅, 내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고귀한 삶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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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소)년들을 모든 것을 바닥에서 다시 발명해야 한다. 광주에서 시작되어 87년, 91년에 한 정점을 찍고, 97년 이후 몰락했던 '87년 체제' 혹은 '80년대 운동권'의 역사는 이제 다시 복구될 수 없을만큼 부패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사는, 그 역사를 담지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여전히 현실의 운동을 지도하고 있었고, 다시금 바닥에서 시작하는 청년, 청소년들의 운동은 이들 운동의 보충물이 되어서 '젊고 발랄한 새로운 세대의 운동'으로 소비되었다.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두리반이 보여준 것은 그러한 '꿘의 세계'의 최종적 몰락이었다. 청(소)년들이 오롯이 독자적인 기획 속에서 운동의 내용과 스타일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의 모든 지점들이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밝혀야겠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은 열락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좌충우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자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조직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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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이 끝날 무렵, 명동성당 앞 블록의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두리반도 그랬지만, 도심재개발 과정이란 건 철저한 아웃소싱의 과정이다. 기업은행이 입주를 약속하고 대우건설에 돈을 투자하고, 대우건설은 사실상 유령회사인 시행사를 만들어서 토지를 매입하고, 시행사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세입자들을 폭력으로 내쫓고 건물을 부수도록 한다. 그리고 그 반대쪽은 그들과 반대로 움직였다. 전철협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운동단체를 믿고 그 아래에서 투쟁을 하던 철거민들은 카페 '마리'를 점거하면서 조끼를 벗고 투쟁의 주체로 나섰고, 그 소식을 들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마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6월 19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일요일 오후에 용역들이 용역들이 들이닥치자 이내 트위터를 보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항의집회와 몸싸움 끝에 마리를 되찾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 눌러앉았다. 빼앗길 어떤 기반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 '요새 젊은 것들'은 가지고 있던 삶의 기반을 빼앗긴 철거민들의 투쟁에 연대, 혹은 '기생'했다. 그들은 노래하고, 술마시고, 세미나를 열고, 몸싸움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농성장의 수칙을 정했다. 두리반에서 마지막까지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마리에서 곧장 성취했는데, '명동해방전선'이라는 독자적인 단체를 만들어서 농성장을 함께 꾸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20세기의 게릴라투쟁을 연상시킬 이 이름은 사실 패러디에 가까운데 — 이를테면 윤성호 감독의 영화 <은하해방전선> 같은 — 단체의 정확한 회원이 정해지지 않은 유령단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쪽의 유령회사가 돈으로 용역을 사서 부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이쪽의 유령단체는 정말로 유령처럼 인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튀어나와 공간을 지키고, 저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저들의 시선으로는 인식불가능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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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농성장의 2층을 확대 점거하는 과정에서 용역들과 다시 몸싸움이 붙었을 때, 시행사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순수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놀고 싶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해 주었다. 이 평가는 묘하게도 반대쪽의 운동권들에게서도 나오는데, 그들은 이들의 투쟁이 '자족적'이며, 명동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의 정당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행사건, 운동권이건 이미 도달한 어떤 자리에서 현상을 바라볼 때 어떤 시차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달한 역사 — 그것이 선진화건, 민주화건 — 가 준 범주를 통해서 현상을 본다. 그것은 무언가를 삭제한다. 이미 역사를 통과한 그들에게는 오늘날, 그러니까 아직 역사가 되기 전, 이 현장에서 아래에서부터 연대와 투쟁을 구축하는 명동해방전선의 실천과 삶을 읽어낼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명동에서의 투쟁은 그들의 세계(상)를 파괴하고, 재구축을 강제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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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치민을 생각한다. 그는 장차 사회주의 민족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 그 험한 경로를 거쳐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맞닥뜨린 현장에 사로잡혔고, 운명 앞에 섰던 것이 아닐까. 오늘날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치민과 '요새 젊은 것들'이지만, 이 둘은 절망의 시대에 자신들의 싸움을 새롭게 발명해야 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넘어 공명하고 있다. 사실상 역사란 켜켜이 쌓여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공명하는 어떤 이미지들의 모음인 것은 아닐까. 승리자들의 기록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싸움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싸움의 발명 속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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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 @ Mari 농성장

 

http://www.archive.org/download/ourwor ··· mari.mp3

 

김강, 프리스티, 오이, 주온, 아즈, 김민이 술마시다가 의기투합해서 함께 불렀습니다. 

완전 생 라이브.... 막 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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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의 시작

[메모] 두리반에서 명동 3구역 카페 마리로 이어지는 흐름과  그 곁의 서울대 점거농성등을 보면 지난 몇년간 가시화되고 있는 87-97체제 이후 청년운동이 '점거'라는 형태로 본격화될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두리반도 그렇고, 명동도 그렇고 이전의 가난하고 못 배운 빈민철거민들에게 연대하는 중산층 대학생이라는, 전통적인 연대활동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풍경이다. 상인들이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게 생겨서 시작한 싸움에 아무런 기반조차 갖지 못한 청년, 잉여들이 그 공간을  빌려 일단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명동의  경우, 아직 상인대책위가 확고하 조직상이나 지도력을 갖추지 못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마리로 모여드는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 중 상인들과  관계맺지  않고 이공간에서 점거를 '즐기며' 새로운  공통의 감각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여기서 그 '비정규 점거꾼'들은 노래하고, 술 마시고, 춤추고, 토론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관계를 구축한다. 

 

어쩌면 지금 상가세입자들의 기반을 빌려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싸움이 이제  곧 청년, 잉여들 스스로가 판을 벌리는 점거 싸움으로 확대될 소지도 다분하다. 교육비 문제와 더불어 주거권 역시 청년세대의 삶을 압박하는 주요 요인인 데다가 함께 하는 것의 재미를 맛들린 사람들이 퇴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  점거 싸움은 우리의 가시적 세계를 완전히 허무는 시발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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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

2006년, 공익근무 때문에 훈련소에 다녀왔더니 사람들이 FTA, 대추리, 새만금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행진용으로 만든 노래. 

 

걸을 때 아무 8자 구호나 넣어서 부르면 됨. 

 

후진 녹음기로 녹음한 데다가, 훈련소 다녀온 직후라 목소리가....

 

[ourword.mp3 (1.28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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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그대는 아나요

신곡입니다. 가사도 다 썼는데 누가 나한테 마이크랑 오디오카드좀...

 

 

 

 

[그대는 아나요 3.mp3 (11.34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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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진보에서 역사의 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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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여기 '진보넷' 블로그네(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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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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