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글까지 따로 남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쓰신 글의 의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물었던 부분은 '폭력'이라는 것이 일반적 사용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말씀하신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면 더군다나 예수의 방법론이 비폭력적이었다면 월터윙크등이 사용하고 있는 '비폭력적 저항'에서 말하는 '저항'의 개념과 구분되는 의미로서 '폭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계신 것인지, 만약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였습니다.
또한 예수가 개념화된 '비폭력주의'에 관심이 없었듯이 김강님이 쓰고계시는 '폭력'의 개념역시 예수가 모르던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워낙 보수적인 환경에서 배워온지라 아직 배우려 노력 중입니다. 모르는 부분이 많네요.^^;;
베땅이/ 흑흑. 그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인데 다시 물어보시니 당황스럽습니다.ㅜㅜ 제가 역시 글을 잘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윗글도, 아랫글도 다시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폭력'을 어떤 고착된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으려 했답니다. 마지막에 유일하게 개념적으로 제시한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그게 그렇게 개념화되기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고자 이야기한 것이지, 그것이 어떤 분명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게다 저는 '비폭력'에 대응되는 의미의 '폭력'을 주장한 것도 아닙니다!^^;; 저들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 저항이든 '폭력'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지요.
(굳이 좀 더 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에 폭력 아닌 게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서로를 어떤 식으로든 한정하면서 실존하는 법일테니까요. 니체는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는 표현으로 부릅니다. 이 개념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객관적인 표현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철학적인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 논의에선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폭력 비폭력이 그렇게 깔끔한 개념일 수 없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듯 하구요.)
마 11장의 예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폭력'에 대해서는 주석적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학 전공자도 아니라서 얕은 수준의 헬라어이지만,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당하고 있다."는 번역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세례요한, 예수로 이어지는 흐름은 분명히 시대시대마다 이스라엘 주류의 하느님 나라 상(혹은 때론 외세)에 대한 저항을 형성했지 않습니까?(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 자신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나오지요.) 그 저항의 형태나 방법은 사실 그때그때마다 또 달랐구요.(예수 당시에도 예수 말고도 많은 메시아 저항운동들이 있었을테고 저는 본문에 그 정황도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예수와 예수의 민중의 행동은 윙크나 요더 등이 개념화하는 '비폭력주의'라는 말로는 다 해명될 수 없는 더 날것의 차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물으신다면 말씀하신 '저항'이 제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폭력'이라는 용례와 가장 비슷하겠습니다. 하지만 성서가 굳이 대놓고 '폭력'(혹은 '공격')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저항'이라는 현대적인 개념으로 순치시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비폭력주의로부터 확~ 환기되는 효과도 있구요^^ 게다 저항은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뉘앙스가 강한 단어이기도...
글 잘읽었습니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은 여기서 말하는 폭력과 비폭력적 저항주의에서 말하는 저항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또 폭력의 개념을 사용할 때 일반적인 사용례는 부정적 의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사용하시는 폭력의 개념이 후대에 재해석된 폭력의 개념을 예수에게 덧씌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면 감솨^^
잼나게 읽었습니다ㅎ 저도 독일어공부 하고 있는데요, 혹시 http://www.dw-world.de/dw/0,,2815,00.html 도이치벨레 페이지를 아실지 모르겠어요. 괴테 다니시면 추천받으셨을수도 있을텐데... 전 이 페이지를 통해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특히 탑테마에서.. 주제를 줄넘기하면서, 추천해드리고 싶어서 살짝 적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