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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는 무서운 동물?

작년 봄쯤에 다른 게시판에 썼던 글이다.

사람이름 하나를 바꿨다. (괜히)

원래 이어서 쓰려고 했던 글을 쓰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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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새벽녘까지 술을 먹다가 우연히 고양이 얘기가 나왔고 미영씨와 언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영씨 입장에서는 황당했겠죠.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라는 말 한마디 갖고 저에게 봉변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술을 안먹고 얘기했으면 그 지경까지는 안갔겠죠? 최소한 내가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오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 같네요. 남아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고 쪽팔리는 일이네요.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사과의 글을 안 쓴 것은 제가 말한 방식이나 취한 행동은 백 번 사죄해야 마땅한데, 제가 말하고자한 내용에 대해서는 글쎄요,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서요.

기껏 미안하다고 해놓고는 "그런데 말이에요..."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되면 당연히 제대로 된 사과가 안되겠죠. "미안하다고 해놓고는 지가 하고 싶은 말만 또 떠든다"라고 욕먹기 딱 좋죠. 우롱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최소한 내 아뒤를 보고 짜증이 나지 않도록 글쓰기를 안했습니다. 하여튼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자, 이젠 욕을 먹더라도 얘기를 해야할 차례인 것 같네요. 앞으로 할 얘기 때문에 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정말로 제 사과는 진심입이다. 욕먹게되면 욕먹어야겠지만요.


사건?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미영씨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그건 말도 안된다"고 계속 공격했습니다.
아니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했는데 그게 말이 안된다고 했으니 정말 또라이 같지 않습니까? 고양이를 좋아하고 안좋아하고 하는 "기호"의 문제를 말했는데 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핏발을 올렸으니.

 게다가 "아니, 그냥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 갖고 왜 그래요?"는 미영씨의 말에 저는 "그건 기호나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 박근혜 좋아하는 것도 다양성으로 인정해줘야 하나?"면서 색깔론^^ 공세까지 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죠? 네,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왜 그런 꼴통짓을 했는지 해명이던 변명이던 궤변이던, 하여튼 해보겠습니다.  술 안먹고 차근차근 얘기했다고 해도 제가 이런 내용으로 남을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20세 넘은 성인의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글도 내가 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갑니다.



무지와 편견은 두려움을 낳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간염은 술잔을 돌리거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것 따위로는 옮지 않지만 잘못된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은 아직도 간염환자(혹은 보균자)와 같이 밥 먹는 것을 두려워하죠. 에이즈도 성행위와 수혈 이외의 방법으로는 옮길 확률이 0에 가깝습니다. 한센병(나병)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그렇고,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온 대표적인 동물은 고릴라입니다. 험상궂은 외모에다가 가슴을 치는 습성 때문에 '무서운' 동물로 오해받아왔습니다. 더욱이 킹콩이란 영화가 이런 편견을 오랫동안 부채질해왔고요. 이젠 고릴라가 온순한 초식동물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죠. 하긴 아직도(그래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반면 침팬지는 꽤 포악한 면도 있고 제인구달의 말에 의하면 인간만의 특성인 줄 알았던 "비열한"면도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침팬지를 훨씬 더 친근하게 느낍니다. 고릴라보다 귀엽게 생겼고 머리가 좋아서 사람들이 서커스등에 써먹으려고 훈련을 많이 시켜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그랬을 것 같네요. 타쟌에 나오는 치타의 이미지도 한 몫 했을 거고요.

그런데 누가 제게 "고릴라는 무섭다"라고 하면 제가 이번 경우처럼 열내면서 얘기했을까요? 물론 "고릴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다"라며 설명은 하겠지만 열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릴라와 고양이의 차이가 뭐길래 그럴까요?

고릴라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즉 사람들이 고릴라를 무서워한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받을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냥이는 저에게 가족같은 존재죠. (물론 동물이 무슨 가족이냐고 따질 분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건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났으니) 내 가족을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는데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장애인을 무서워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실제로 장애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뇌성마비 장애인 같은 경우는 더 그렇고 목발만 짚고 다녀도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줄 일인가요?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에서 오는 두려움이라면 고쳐줘야 하는 것이지 인정해줄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에 누군가와(20대 초반) 얘기하다가 우연히 이주노동자 얘기가 나왔습니다. "왠지 무서워서 피하게 된다"고 하길래 제가 "그럼 영어학원에서 만난 백인 강사도 무섭니?"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안무섭다고 하더군요. 이게 단순히 기호의 차이일까요? 제가 뭐라고 구박을 좀 했더니 그러더만요. "아휴, 하여튼 무서운 걸 어떻해요."


냥이네라는 까페에서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언니와 함께 냥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유치원차를 운전하던 아저씨가 이랬다고 합니다. "미친년들, 재수없게 고양이를 데리고 다녀."
물론 강아지라면 그런 소리 안했겠죠. 냥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도 그딴 소리 안했을 거고, 여자라해도 나이가 많은 분이라면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지 않았겠죠. 이렇게 직접적으로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겠지만 냥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실제 피해의식 같은 게 있습니다. 나비 데리고 병원에 가다보면 따가운 시선을 많이 느낍니다. 캐리어에 넣어서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도 (그냥도 아무 위험이 없지만) 저만치부터 돌아가는 사람, "에그머니나"하고 놀라는 사람. 인상쓰는 사람 등등. 그럴 때마다 당연히 속상합니다. 로드(푸들)를 데리고 나가면 이 사람, 저사람 구경하러 오는 것과는 천지 차이죠.
냥이 관련 까페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글들이 이런 겁니다. "남자 친구가 냥이를 무지무지 싫어해서 속상하다" 근데 댓글을 보면 "제 남친도 그랬는데 지금은 저보다 냥이를 더 좋아해요"라는 글도 심심치않게 올라 옵니다.


실제 무서운 동물일까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개나 여타 동물도 무서워한다면 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유독 고양이만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사실 실제 위험에 있어서는 개가 훨씬 무서운 동물입니다. 저도 개한테 두 번 물린 적이 있고요. 어렸을 때 골목을 뛰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와 제 다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개가 어린이나 노인을 물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들은 덩치가 작거나 허약한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고양이한테 물렸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고양이한테 물린 사람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키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는 장난이었는데 너무 세게 물었을 수도 있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서 할퀴기도 하죠. 고양이는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생각했을 때만 방어차원에서 공격합니다. 즉 사람이 먼저 괴롭히지 않는 한 냥이가 먼저 공격할 확률은 아예 없습니다.

냥이는 무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보다 보통 10~20배 덩치인 인간을 감히 공격하겠습니까? (사자가 자기보다 훨씬 큰 물소를 공격하긴 하지만 기린이나 코끼리 정도로 덩치가 차이나면 공격 못합니다. 그것도 1대1로 공격을?)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냥이가 사람을 안무서워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냥이들을 만나면 녀석들이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안도망간다는 것이죠. 게네들이 금방 안도망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스피드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죠. 조금만 더 냥이에게 가까이가면 금새 도망갈텐데 냥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냥이에게 가까이 갈 생각도 않하죠. 기껏해야 한두발짝 다가가서 위협을 해보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냥이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일정거리 이하로 좁혀지면 후다닥 도망갑니다. 만일 가까이 다가가도 안도망간다면 그건 사람이 기르거나 길렀던 녀석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 주위에서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겠죠. 모든 것을 100% 스스로 판단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고요. 물론 우리의 판단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것은 잘못됐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가 필요이상으로 고양이를 무서운 동물로 생각하게 하는 편견을 많이 만들어냈다는 말입니다. 즉 사람들이 냥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도 여전히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지금처럼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일이 생겨서 쓰는걸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커져서 더 이상 쓸 수가 없네요. 쥐나 바퀴벌레 등 실제적으로 위험한 동물이 아님에도 무서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지금, 아니 이제는 긴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제 글에 누가 반박을 하셔도 제가 답글을 올리지는 못할 것 같네요.

하여튼 다시 한 번 미안하고, 우리 외눈박이 나비를 생각해서라도 냥이를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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