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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쿠데타냐 혁명이냐

요즘 오랫만에 <추노>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보고 있다. 추노가 재미있는 이유는 등장인물 사이에 뚜렷이 대비되는 계급성 때문이다.

 

{사진은 KBS <추노> 등장인물에서)

 

분명 추노의 주인공은 매회의 시작과 말미를 장식하고, 입체적인 성격 변화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추노 대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눈길을 먼저 끄는 것은 노비 혁명을 꿈꾸는 테러리스트 업복이와 혁명군 수장 송태하다.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비서(秘書)' 등의 유사점이 보이기도 해서, 나중에는 둘이 같은 조직의 조직원이었다고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둘의 꿈은 전혀 다르다.

 

본래 강원도에서 포수로 지내다 빚때문에 노비가 된 업복이는 이놈의 양반들 세상을 뒤집고자 당에 가입한다. 그리고 악질 양반들을 죽이는 테러리스트가 되어, 당의 지침에 따라 이미 세 명의 양반을 암살했다. 반면 본래 훈련도감의 판관을 지냈던 송태하는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인조의 장남)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석견을 데리고 올라와, 그 얼라를 모시며 '혁명'을 꿈꾸는 조직의 혁명군 수장을 맡았다.

 

하지만 둘의 계급 의식 차이는 명확하다. 업복이나 송태하나 현재 소속 계급은 노비이지만, 둘의 준거 계급은 다르다. 업복이는 노비로서 자신의 계급 상태를 인정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양반 계급을 척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송태하는 계급구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을 결코 피지배 계급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꿈꾸는 것은 과거 무장세력을 규합해서 소현세자와 그 아들을 복원시키는 것이고, 그가 속한 무리는 무력 '혁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송태하와 그 일당의 '혁명'은 쿠데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쿠데타의 사전적 정의는 '지배계급 내의 일부세력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정치활동'이고, 반면 혁명은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즉, 송태하와 그의 일당이 꿈꾸는 국왕의 권력 찬탈은 쿠데타다. 그들은 권력주체의 변화를 꿈꾸지만, 사회 체제를 바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업복의 당은 피지배계급인 노비의 조직적 무장봉기를 통한 평등사회를 꿈꾸고 있으며, 이가 바로 혁명이다.

 

물론 실존 역사는 당시 그 둘의 꿈이 모두 실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조를 이은 왕은 소현세자의 얼라 석견이 아니라,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 효종이었으며(석견은 효종이 왕으로 책봉된 후 목숨을 구한다), 인조시대부터 조선말까지 노비 계급의 봉기는 성공했던 사례가 한 차례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라면 다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에서는 히틀러를 성공적으로 암살하기도 했고,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는 조선 중기에 근대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니 말이다.

 

계급적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더 뜯어보자면, 주인공 대길은 몰락 양반가의 자손으로서, 현재 직업은 도망 노비를 잡는 '추노', 하지만 그의 의식은 제대로 된 준거 계급을 상실한 소부르주아의 상태를 그대로 잘 보여준다. 노비를 업시 여기지만, 양반 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종종 국법을 무시하며, 국왕 체계에 대한 존중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극우에서 극좌를 오갈 수 있는 캐릭터로서, 앞으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리고 인조의 총망받는 좌의정 자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현실 정치'를 요리하는 이경식, 그 이경식의 사위로 들어가 지배계급 내의 계층상승을 꿈꾸지만 결국 이경식의 행동대원만 하다가 버림받은 황철웅도 역시 지배계급내의 명분과 논리라는 게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업복이가 사는 집에 있는 노비 중에서는 양반님에들 덕분에 노비가 산다는 마름도 있다. 하나도 놓칠 게 없다.

 

(역시 KBS <추노>의 등장인물에서 가져온 사진)

 

이런 드라마를 사극이 아니라 현재의 드라마로 가져오게 되면 어떤 난리가 날 지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다.

무장 봉기를 꿈꾸며, 악질 자본가를 세 명이나 암살한 업복과 구사대 조폭 용역경비 업체 사장 대길, 전쟁판 이용해서 돈 버는 한나라당 총재, 거기에 빌붙어 국회의원 자리 하나 얻으려는 행동대원 사위 황철웅, 전 하나회 소속 장군으로 비록 모가지가 날라갔지만 다시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더불어 군부 쿠데타를 모의하는 송태하 등등...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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