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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간다.

옛날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난 왜 그만 뒀더라...'도 다시 떠올려보고...

 

그만 둔 이유와 사연이야 많았지만,

지금이야 다 옛날 일들인 거고,

간단히 정리하면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었다.

 

결심을 내린 그 날부터 그냥 안 갔다.

대체적 반응은 "일냈냐?", "드디어 잘린 거냐"는 질문이었고,

또 몇몇은 그게 뭐 대단한 결심이라도 되는 냥,

무슨 일 하려 그만 두었냐고 조심스럽게 묻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하기 위한 적극적 자퇴는 아니었고,

더 이상 다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어느 날 부터 안 간 것 뿐이었다.

그래서 "잘릴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벌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퇴"라고 농담을 하곤 했었다.

 

선배들은 "마, 그냥 졸업장은 따라"고 충고를 늘어놓기도 했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어떻게 이유도 없이 그냥 다니냔 말이지.

(흠.. 하긴 사는 건 별 이유 없이 그냥 계속 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부모님들에게는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고 간단히 '통보'했는데,

아마도 당시 부모님들이 나한테 꼬치꼬치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은

집안에서 오랫동안 찍혔던 '지랄 같은 성격' 탓도 있겠지만,

깝치고 다니더니 드디어 뭔가 사단이 났나보다고 지레 짐작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솔직히 막막 하더라.

그래서 한참 집에 쳐박혀 살았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쫒아다녔는데,

2-3년 가까이 10여 가지가 넘는 온갖 허드레 잡일은 다 해봤던 것 같다.

 

당시 친구에게 내가 무슨 일들을 했었는지 주루륵 나열하자

그 버라이어티 함에 놀라워하던 친구의 반응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당시 도대체 내가 뭔 일을 했었는지는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

두어 군데에는 '취직'도 했다가 더러운 성질 머리로 때려 치운 기억은 난다.

전반적으로 별로 안 좋은 기억이었나보다.

 

당시는 그냥 막막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 지, 내가 앞으로 뭐가 될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 사회에 적응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사는 데 한두 번 불편하긴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럽고 꼴시러운 상황을 보기도 했다.

졸업장을 따지 않아서 생긴 후회도 딱 한 번 있었다.

엄청 하고 싶은 공부 있었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놈의 졸업장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던 때였다.

하지만 그거 때문에 다시 돌아가 졸업장을 따야하는 지는... 글쎄다...

 

그때 그만 두지 않았어도 지금까지의 삶보다 그다지 명랑상쾌발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돌아보면 대체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지랄 같은 게 삶인데,

그 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더 지저분해졌을 것 같다.

잘 그만 뒀다.

 

그만 둘 당시에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학은 몰라도 물리학은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미련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적분도 못하는 쇠대가리인지라 그것도 글렀다.

 

아참.. 근데 자퇴를 해도 '학력 꼬리표'는 종종 따라다니더라.

나야 뭐 서울지역 기타대 자퇴생 꼬리표가 붙어있지만,

아마 이 친구에게는 고대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붙겠지?

거참 자퇴 후에도 종종 따라 붙는 그 꼬리표 그거 참 지랄이다.

그 친구에게도 결코 편치 않은 꼬리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친구가 잘 해나가리라 믿고 싶다.

진심으로 이 친구의 건투를 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대학이란 걸 그만 뒀다고 해서 삶이 더 지랄같아 지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오랜만에 술도 땡긴다.

 

기회가 된다면,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다만.....

내가 그 친구를 알겠나.

그 친구가 날 알겠나....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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