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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영화 <인빅터스>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짧은 글에서 차베스 정책 운운하며 베네수엘라의 혁명까지도 통째로 씨니컬하게 씹히는 걸 보면서, 얼마 전 봤던 영화 <인빅터스>가 생각냈다. 차베스가 뻘짓 하는 것 때문에 왜 민중들의 혁명까지 매도되야 하는 걸까? 그들은 왜 '대통령'이, 혹은 '지도자'가 혁명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좋은 '권력자', 착한 '지배자'를 기다리는 건가?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인빅터스>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 '쉽지 않은' 영화였다. ANC는 투쟁시기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막상 정권을 잡은 후에는 만델라의 주도하에 계급적 평등보다 '국민 통합'을 남아공의 1차적 과제로 선택한다. 만델라의 그 어려운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영화는 남아공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델라의 시선으로 따라갔다. 영화는 만델라의 선택에 공감하고, 그 결과에 박수를 보내달라 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스포츠' 하면 우민화 정책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 상황에 놓인 만델라를 그런 도식으로 쉽게 비판할 수는 없었다. 누가 만델라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내가 만델라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그게 저 영화가 원하는 바였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영화는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내가 만델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만일 남아공의 민중이었다면, ANC 활동가였더라면, 혹은 코사투 활동가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마도 만델라의 선택을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그와 함께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가슴이 아파도,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흑인의 손'으로 세운 정권이라도, 그토록 존경해왔던 만델라라도 그 상황에서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다시 '꼴통 좌파' 소리를 들을 지언정, "스포츠를 이용한 감상적인 국가주의는 남아공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결국 민중 운동에 장애물이 될 것이며, 절대 다수의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흑인들이 바로 그 정책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처럼 남아공 노동자들은 ANC 정권과 불화했다.

 

국민 통합에 치중하며, '국가 경제'를 위해 급속히 우경화했던 만델라의 정책은 오늘날 남아공의 상황을 통해 그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델라와 그를 이은 ANC 정권들은 '국가 경제를 살릴 대안'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며, 노동조합인 코사투와 갈등했다. 그들은 산업을 민영화시켰고, 노동환경을 백인 정권 때보다도 더 악화시켰다. 모두 다 국가 경제와 국민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그 결과, 인종차별 정책이 법적으로 파기된지 15년이 지금, 남아공 흑인들의 삶은 그 전보다도 더 비참해졌다. GNP는 약 1만불로 올랐지만, 빈부격차는 심해졌으며, 실업률(백인 5%, 흑인 40%)과 치안 부재 상태는 세계 최악을 달리고 있다. 94년 65세까지 올랐던 남아공의 평균 수명은 만델라 정권이 등장하자마자 급강하하기 시작하여 이제 49세까지 떨어졌으며, 범죄율은 만델라 정권 이전보다 89%나 높아졌다. 수백 년 동안 흑인 정권을 기다렸던 바로 그 흑인들이 만델라 정권이 만든 '평등한 신자유주의 나라'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종차별의 본질은 바로 계급 착취를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과거 ANC는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지만, 정권을 잡은 만델라와 ANC는 계급 문제를 무시한 채 온정적인 통합 정책에 올인했고, 그 결과는 그 전보다도 더 가혹한 인종 계급 차별을 생산해냈다.

 

그래서 난 만델라의 선택에 공감할 수 없다. 그 눈물겨운 승리와 화합에 박수를 보낼 수 없다. 난 저 영화가 싫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민중들이 '혁명 속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중앙권력화와 관료화, 우경화에 맞서는 싸움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다. ANC 정권과 불화하는 민중의 눈으로 남아공을 바라봐야 한다. 이제 ANC 정권과 자본에 맞서 싸우는 남아공 민중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고 싶다.

 

남아공의 인종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영화 덕분이었다. 90년대 초반 극장에서 영화 <사라피나(Sarafina)>를 봤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종차별정책'을 주입하는 학교의 교실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학생들이 만델라의 석방을 간절히 기원하며 자유를 노래하는 모습은 당시 나까지 가슴을 뛰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짠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때는 '지도자'가 필요했었나보다.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전위정당'이란 걸 꿈꾸던 때였다. 흘.. (그래도 노래는 지금 들어도 좋다.)

 


 

  

Freedom is Coming Tomorrow!!

 

 

(97년에 남아공 활동가를 만나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소웨토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을 들었다. 지속된 학살로 최대 2천여명까지 죽었다고 이야기하길래, 우리나라도 80년대 광주에서 2천여명이 죽었다고 이야기 해줬더니, 그게 얼마 동안 일어난 일이냐고 그가 물었다. 그래서 약 일주일간 일어난 일이라고 했더니, 그 활동가는 무척 놀라면서 "일주일 동안 2천명이나 죽였단 말야? 소웨토는 20년간 죽은 게 다 합쳐서 2천명이야! 남아공 백인 정부보다 너희 군부독재가 더 무섭다. 흐....)

 

남아공을 다룬 영화로는 2006년에 나온 < Catch the Fire >도 기억에 남는다. 소심한 민중이 ANC의 투사가 되고, 만델라 정권이 들어선 후 자신을 탄압하던 백인 경찰을 용서하는 부분까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 ANC가 얼마나 급진적인 좌파 무장 조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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