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추노 최고의 씬

The Dispossessed님의 [<추노>, 쿠데타냐 혁명이냐] 에 관련된 글.

 

사회적 재현물로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맑스의 말처럼, 그 재현방식은 대체로 그 사회 지배계급의 정치를 따른다. 즉, 그들은 대체로 지배계급의 존재를 위협할 사회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갈등 중 많은 부분이 그 사회의 계급 모순에 원인을 두고 있음에도, 대체로 그 해결방식은 개인적인 해소로 머물고 만다. 사회 구조는 드라마 외부에 존재하는 배경일 뿐이며, 자연적인 운명이고 인간 존재의 굴레일 뿐이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재현 예술은 이로써 다시 사회의 이데올로그가가 되어 현 체제를 강화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데렐라식 계급상승이다. 또 그 중 일부는 계급적인 분노를 개인적 복수로 해소하기도 하고, '시혜적 자선'을 통해 해소되기도 한다. 그러한 갈등의 해소에서 관객은 도피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애초에 갈등을 만들었던 사회적 모순은 그대로 남는다. 관객은 사회구조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는 운명으로 이해하고, 자신들만의 카타르시스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추노는 좀 달랐다. 추노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극안으로 끌어들였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계급 모순은 배경이 아니라 누구보다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드라마 주요인물들 간의 모든 갈등은 모두 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갈등이었고, 그 모순에 대한 접근 방식은 철저히 계급적이었다. 모든 등장인물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속한 계급적 관점에 따라 해결책을 찾았다.

 

주요 인물들의 행보는 앞서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업복은 특별했다. 본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으니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업복은 한국의 드라마 사상 피지배 계급의 계급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며,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첫회에서 도망다니기 바빴던 노망 노비였던 업복은 노비당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자신의 처지가 추노나 양반 개인 때문에 벌어진 불행이 아니라 계급 모순으로 인한 착취와 억압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계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양반을 상놈으로 내리고 상놈이 양반으로 올라가는 계급 전복이 아니라, 계급 해소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게다가 그는 "우리가 좋은 양반 만나서 이만큼이나 먹고 사는 거다"라고 주장하는 동료 노비까지도 보듬어 안는다. 마지막 회에서 그는 역사를 이야기 하며 궁궐로 쳐들어간다. 그는 배신한 개혁파와 민중을 우롱하던 '지도자', 그리고 권력의 상징인 좌의정을 사살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양반 계급에 복종하던 동료 노비를 자각시키고, 그의 꿈은 총을 든 초복에게로 이어진다. 덕분에 난 추노를 해피엔딩으로 기억할 것이다.

 

업복의 궁궐 진입 씬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봤던 드라마 중 최고의 장면이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